대마도(對馬島)는 명백히 우리영토, 대한민국의 영토입니다.<script data-ad-client="ca-pub-4162949345545299" async src="https://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대마도는 해안선 길이가 14.5km에 이르며, 암석해안과 해식애가 발달하여 해식동굴이 발달되고 온화한 해양성 기후로 인해 해변 배후 방품림으로 해송숲 등의 천혜의 자원과 자연환경을 머금은 섬이다.
일본 당국 온갖 수단 꺼낸 상황! 미국 공식 문서와 고지도 발견!
독도는 물론이고, 대마도도 한국의 영토라는 사실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반드시 주장해야 할 이유마저 있습니다. 또한 협약이 담긴 미국 공식 문서와 고지도가 나왔고, 일본이 갑자기 적극적은 방어에 나선 것도 의문을 증폭시킵니다.
면적 2.816km2, 해안선 길이 14.5km의 대마도는 1973년도에 197가구 1153명, 264명의 학생들이 사는 섬이었으나 현재는 73가구 116명이 살고 있고 분교생은 2명이다. 하조도와 서거차도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섬이 ‘큰 말’ 모양으로 되어 있어 ‘대마도(大馬島)’라 하였다고 하며, 조선시대엔 말 목장이 있었다고 한다. 섬의 최고높이는 173m이며, 대부분 100m 내외의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대마도는 하늘에서 보면 눈에 확 띌 만큼 희한하게 생긴 섬이다. 좌우로 움푹 들어가 특이한 문양처럼 보이는 섬이다. 큰 말처럼 생겼다 해서 ‘대마도’라는 지명이 붙었다 하지만, 지도상으로 보는 대마도는 말 모양이 아니라 변형된 ‘역 S자’형이다. 풍수지리상 바다에 떠 있는 형상이 말을 닮은 이유이리라.
해안은 돌출한 갑과 깊숙한 만이 연이어 있어 해안선의 드나듦이 심한 편이라 해안선 길이는 섬의 크기에 비하면 큰 편이다. 모두 14.5km이다. 북쪽과 동쪽 해안을 제외하면 대부분 암석해안이다. 높은 해식애가 발달했으며 만입부에 약간의 갯벌이 있다.
사람들이 처음 섬에 들어온 시기는 1600년대 초기로 경기도 광주에서 양주 허씨 일가의 후손이 들어왔고, 이웃 섬인 관매도에서 강릉 함씨 함재춘의 후손이 이곳으로 이동해오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또 하나는 1600년경에 김해 김씨가 정주하였다고도 전해진다.
대마도에는 ‘막재’ 또는 ‘말재’라 부르는 고개가 있다. 여기에서 마을이 갈라지는데, 이곳을 경계로 하여 서쪽은 ‘대막(大幕)’, 동쪽은 ‘큰 마을’이라는 뜻의 ‘대마(大馬)’가 자리잡고 있다.
대마 마을은 1구와 2구로 나뉜다. 과거 이곳에 말목장이 있었다고 하며, 1789년에는 ‘대행입리’로 표기하였다고 한다.
대마도,(對馬島) (쓰시마 [対馬)
일본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자!
대마도-한국영토 거론이 두려운 일본,
일본이 또 다시 독도 시비를 걸고 있다.
일본도 독도는 역사적으로 신라때 이사부 장군이 점령접수했고,일본 메이지(明治)때 태정관지령(太政官指令)에서도 일본영토가 아님을 인정했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저들이 왜 이렇듯 시비를 멈추지 않을까!
이유가 있다.
대마도(對馬島)-한국영토 거론이 불거지는 것을 막기 위한 고도의 작전이다.
'對馬島本是我國之地'(대마도는 본시 우리땅이다.)
이는 세종대왕이 선언한 것을 실록이 기록하고있는 글귀다.
대마도(對馬島)는 명백히 우리영토, 대한민국의 영토입니다.
부산에서 대마도까지는 50km,
일본 (후쿠오카)에서는 138km이다.
이 대마도에 고대부터 한국인이 건너가 살았다.
(魏志) 고대 馬韓(마한)과 마주보는 땅이라 하여 우리 선조는「對馬島」로 명명하였다.
세종대왕은 이종무로 하여금 대마도(對馬島)의 왜구를 토벌하고 확실하게 한국령(경상도)에 예속시켰다....
以白山爲頭 大嶺爲脊 嶺南之對馬 湖南之耽羅 爲兩趾
(백두산은 머리고, 대관령은 척추며,
영남의 대마와 호남의 탐라를 양발로 삼는다)....
이 글귀는 1750년대 제작된 ‘해동지도’에 있는 글귀다.
대마도는 우리의 땅이고 우리 민족의 한쪽다리인 것이다.
그런데 일본이 그 對馬島를 자기들 멋대로 자기영토로 편입 시켜버렸다.
우리는 일본이 잘라간 그 한쪽발(嶺南之趾)을 되찾아야 한다.
일본은 임진왜란→스페인, 영국 등 서구근대와 세력의 해양영토 약탈시기→식민지 시기 등 연이은 불행한 소용돌이를 이용해 대마도를 슬그머니 도둑질 한 후 (1871년에 일방적으로 이스하라현으로 그 후 1876년에는 나가시키현에 편입)아예 자기들 영토로 삼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사적으로 조선조정(한국)은 어떤 형태가 되었던 일본에 대마도를 넘겨준 일이 없다.
도둑질한 대마도를 두고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대마도는 일본 땅」이라고 한국인뿐 아니라 그들(후손) 자신도 세뇌했다.
우리는 그 쇠뇌작전과 특히 조작된 일제 식민사관에 젖어 지금까지 대마도는 일본 땅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건국) 대통령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선포하고,
불과 사흘 후(8월 18일) 「역사의 진실은 어쩔 수 없다, 대마도는 우리 땅이므로 일본은 속히 반환하라」고 천명했다.
6.25직전(3년 동안)까지 60여차례나 요구했다.
일본은 역사학회•고고학회 등으로 하여금 대마도에 관하여 왜곡-논문을 발표케 하면서 변명했다.
「쓰시마의 역사적 위치(1949)」,
「대마 문제(1951)」 논문 등이 그 예다.
1950년 6•25가 발발하고 미•소가 대립하자 일본은 「이때다」하고 미국에 읍소로비를 했고 미국은 마침내 한국을 배제한채 일본과 다음과 같이 전후(戰後)처리 (샌프란시스코협정)를 하였다.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비롯한 도서는 한국에 모든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내용이다.
이 샌프란시스코 조약(1951)에서 미국은 독도와 대마도에 대해서는 영토속국을 명백히 하지 않은 것이다.
아! 6.25가 대마도 반환 걸림돌"
이승만은 이에 불복하고 우선 평화선 선포를 통해 우선 독도만은 어족(魚族)보호 명분을 들어 독도만은 실효지배를 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지난 2005년에 확인된 미국 국무부 외교문서에 따르면 1951년 4월 27일 한국 이승만은 대마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이 대마도에 대한 모든 권리, 호치, 청구를 분명히 포기하고 그것을 한국에 돌려줄 것을 요청한다.
(In view of this fact the Republic of Korea request
that Japan specifically renounce all right, title and
claim to the Island of Tsushima and return it to
the Republic of Korea)
여기에서 「specifically renounce」귀절에 주시해야 한다.
이는 외교문서로서는 최고로 강력한 의사표시다.
대마도 회복(반환) 문제는 우리 7,000만 민족의 숙제다.
대마도를 우리 땅으로 회복하는 문제에 있어 국제관례의 관점에서 아무런 제약이 없다.
왜냐하면1862년에 미국의 영토가 된 일본 남부 오가사와라(小笠原) 군도를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일본 영토로서 인정받고 반환 받았던 국제적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내놓은 지도 ‘삼국접양지도’(하야시시헤이 (林子平) 제작, 프랑스어판)가 그 근거이다.
미국이 오가사와라 군도가 일본 영토임이 옳다고 판단하게 한 그 지도에 오가사와라가 일본 영토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지도에 독도와 대마도가 엄연히 한국 영토로 표기되어 있는 것이다.
최근에 이에 준하는 증거가 또 발굴되었다.
지리학자로 영국에서 활동하였던 이태리인 J.H.Kernot씨가 1790년에 작성한 「일본과 한국」이라는 지도에서 울릉도와 독도뿐만 아니고 대마도도 한국 영토로 그려져 있는 사실이 발굴(견)된 것이다.
이 지도에는 대마도가“STRAIT OF COREA'로 표시되어 있고 특히 독도와 울릉도, 대마도의 관할 국가를 표시하는 지도 바탕 색깔을 한국 본토와 같은 황색으로 나타내 이들 섬이 한국령이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하고 있다.
일본은 이러한 일련의 사실이 부각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독도 시비를 계속하며 분칠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간에 지리적 문제로 다툼이 있으면 강•약을 떠나 가장 기본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원칙이 국가를 기준해서 땅은 근거리에 위치한 국가의 소유가 타당합니다. 힘이 더 있는 국가에서 괜히 욕심내고 있지요..
"대마도도 만주도 우리땅인데더구나 만주땅은 우리땅이라고 거론조차 안하고 있는것이 안타까울뿐입니다,
그래도 조금의 위안이 되는 부분은 요즘 한국인들이 대마도 땅을 많이 사들여서 일본 정부에 규제 요청을 했고 니뽄 언론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 했습니다,
주로 정치인 일본인들 그들의 속셈이 가증스럽다.
독도시비에 말려들고 「對馬島本是我國之地」 세종대왕이 선언한 이 확실한 증거를 두고도 우리의 대마도는 일본 땅으로 여기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약소국이 아니다.
적어도 자기것은 자기것이라고 당당하게 임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권에선 나 몰라라 하는 형국이니,
우리 네티즌 들이라도 이글을 여러 카페로 올려 여론을 형성하고, 독도를 떠나서 대마도 반환운동의 계기가 될 수 있게하는 초석이 되고자 이 글을 올려본다,
이글을 펌해서 여러 밴드나 블르그 페이스북 기타등등 에 날라서 우리가 못하면 우리의 후손들 이라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전 국민 모두다 이글을 꼭 읽도록 해요 -^0^-.
대한민국 주소: 전남 진도군 조도면 대마도리/ 복사
설명
대한민국 주소: 전남 진도군 조도면 대마도리/
면적 2.816km2, 해안선 길이 14.5km의 대마도는 1973년도에 197가구 1153명, 264명의 학생들이 사는 섬이었으나 현재는 73가구 116명이 살고 있고 분교생은 2명이다. 하조도와 서거차도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섬이 ‘큰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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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2.523㎢, 인구 129명(2005)이다. 하조도와 서거차도의 중간에 위치한다. 1600년대 초기에 경기도 광주에서 양주 허씨 일가가 들어와 살았고, 관매도에 살던 강릉 함씨의 후손이 이곳으로 옮겨와 살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 섬의 모양이 큰 말 모양으로 되어 있어 대마도라 하였다고 하며, 조선시대엔 말 목장이 있었다고 전한다.
최고점은 173m이며, 대부분 100m 내외의 구릉지를 이루고 있다. 해안은 돌출한 갑과 깊숙한 만이 연이어져 있어 해안선의 드나듦이 심한 편이다. 북쪽과 동쪽 해안을 제외하면 대부분 암석해안으로, 높은 해식애가 발달했으며 만입부에 약간의 갯벌이 있다. 1월 평균기온 3℃ 내외, 8월 평균기온 26℃ 내외, 연강수량 943㎜ 정도이다.
출처 ^ 참고문헌,
[대마도[大馬島] - 조선시대 말목장이 있던 섬 (한국의 섬 - 진도군, 2015.., )
[네이버 지식백과] 대마도 [大馬島] (두산백과)
[푸른솔 조영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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