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1일 금요일

국제적으로 대마도가 한국 땅인 이유 !!!???

국제적으로 대마도가 한국 땅인 이유 !!!???
대마도(對馬島)는 명백히 우리영토, 대한민국의 영토입니다.<script data-ad-client="ca-pub-4162949345545299" async src="https://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대마도는 해안선 길이가 14.5km에 이르며, 암석해안과 해식애가 발달하여 해식동굴이 발달되고 온화한 해양성 기후로 인해 해변 배후 방품림으로 해송숲 등의 천혜의 자원과 자연환경을 머금은 섬이다.

일본 당국 온갖 수단 꺼낸 상황! 미국 공식 문서와 고지도 발견!
독도는 물론이고, 대마도도 한국의 영토라는 사실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반드시 주장해야 할 이유마저 있습니다. 또한 협약이 담긴 미국 공식 문서와 고지도가 나왔고, 일본이 갑자기 적극적은 방어에 나선 것도 의문을 증폭시킵니다.

면적 2.816km2, 해안선 길이 14.5km의 대마도는 1973년도에 197가구 1153명, 264명의 학생들이 사는 섬이었으나 현재는 73가구 116명이 살고 있고 분교생은 2명이다. 하조도와 서거차도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섬이 ‘큰 말’ 모양으로 되어 있어 ‘대마도(大馬島)’라 하였다고 하며, 조선시대엔 말 목장이 있었다고 한다. 섬의 최고높이는 173m이며, 대부분 100m 내외의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대마도는 하늘에서 보면 눈에 확 띌 만큼 희한하게 생긴 섬이다. 좌우로 움푹 들어가 특이한 문양처럼 보이는 섬이다. 큰 말처럼 생겼다 해서 ‘대마도’라는 지명이 붙었다 하지만, 지도상으로 보는 대마도는 말 모양이 아니라 변형된 ‘역 S자’형이다. 풍수지리상 바다에 떠 있는 형상이 말을 닮은 이유이리라.

해안은 돌출한 갑과 깊숙한 만이 연이어 있어 해안선의 드나듦이 심한 편이라 해안선 길이는 섬의 크기에 비하면 큰 편이다. 모두 14.5km이다. 북쪽과 동쪽 해안을 제외하면 대부분 암석해안이다. 높은 해식애가 발달했으며 만입부에 약간의 갯벌이 있다.

사람들이 처음 섬에 들어온 시기는 1600년대 초기로 경기도 광주에서 양주 허씨 일가의 후손이 들어왔고, 이웃 섬인 관매도에서 강릉 함씨 함재춘의 후손이 이곳으로 이동해오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또 하나는 1600년경에 김해 김씨가 정주하였다고도 전해진다.

대마도에는 ‘막재’ 또는 ‘말재’라 부르는 고개가 있다. 여기에서 마을이 갈라지는데, 이곳을 경계로 하여 서쪽은 ‘대막(大幕)’, 동쪽은 ‘큰 마을’이라는 뜻의 ‘대마(大馬)’가 자리잡고 있다.

대마 마을은 1구와 2구로 나뉜다. 과거 이곳에 말목장이 있었다고 하며, 1789년에는 ‘대행입리’로 표기하였다고 한다.
대마도 해수욕장 전경,

대마도,(對馬島) (쓰시마 [対馬)
일본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자!
대마도-한국영토 거론이 두려운 일본,
일본이 또 다시 독도 시비를 걸고 있다.
일본도 독도는 역사적으로 신라때 이사부 장군이 점령접수했고,일본 메이지(明治)때 태정관지령(太政官指令)에서도 일본영토가 아님을 인정했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저들이 왜 이렇듯 시비를 멈추지 않을까!

이유가 있다.
대마도(對馬島)-한국영토 거론이 불거지는 것을 막기 위한 고도의 작전이다.
'對馬島本是我國之地'(대마도는 본시 우리땅이다.)
이는 세종대왕이 선언한 것을 실록이 기록하고있는 글귀다.

대마도(對馬島)는 명백히 우리영토, 대한민국의 영토입니다.
부산에서 대마도까지는 50km,
일본 (후쿠오카)에서는 138km이다.
이 대마도에 고대부터 한국인이 건너가 살았다.
(魏志) 고대 馬韓(마한)과 마주보는 땅이라 하여 우리 선조는「對馬島」로 명명하였다.

세종대왕은 이종무로 하여금 대마도(對馬島)의 왜구를 토벌하고 확실하게 한국령(경상도)에 예속시켰다....
以白山爲頭 大嶺爲脊 嶺南之對馬 湖南之耽羅 爲兩趾
(백두산은 머리고, 대관령은 척추며,
영남의 대마와 호남의 탐라를 양발로 삼는다)....
이 글귀는 1750년대 제작된 ‘해동지도’에 있는 글귀다.
대마도는 우리의 땅이고 우리 민족의 한쪽다리인 것이다.
그런데 일본이 그 對馬島를 자기들 멋대로 자기영토로 편입 시켜버렸다.
우리는 일본이 잘라간 그 한쪽발(嶺南之趾)을 되찾아야 한다.

일본은 임진왜란→스페인, 영국 등 서구근대와 세력의 해양영토 약탈시기→식민지 시기 등 연이은 불행한 소용돌이를 이용해 대마도를 슬그머니 도둑질 한 후 (1871년에 일방적으로 이스하라현으로 그 후 1876년에는 나가시키현에 편입)아예 자기들 영토로 삼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사적으로 조선조정(한국)은 어떤 형태가 되었던 일본에 대마도를 넘겨준 일이 없다.
도둑질한 대마도를 두고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대마도는 일본 땅」이라고 한국인뿐 아니라 그들(후손) 자신도 세뇌했다.

우리는 그 쇠뇌작전과 특히 조작된 일제 식민사관에 젖어 지금까지 대마도는 일본 땅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건국) 대통령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선포하고,
불과 사흘 후(8월 18일) 「역사의 진실은 어쩔 수 없다, 대마도는 우리 땅이므로 일본은 속히 반환하라」고 천명했다.

6.25직전(3년 동안)까지 60여차례나 요구했다.

일본은 역사학회•고고학회 등으로 하여금 대마도에 관하여 왜곡-논문을 발표케 하면서 변명했다.

「쓰시마의 역사적 위치(1949)」,
「대마 문제(1951)」 논문 등이 그 예다.
1950년 6•25가 발발하고 미•소가 대립하자 일본은 「이때다」하고 미국에 읍소로비를 했고 미국은 마침내 한국을 배제한채 일본과 다음과 같이 전후(戰後)처리 (샌프란시스코협정)를 하였다.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비롯한 도서는 한국에 모든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내용이다.

이 샌프란시스코 조약(1951)에서 미국은 독도와 대마도에 대해서는 영토속국을 명백히 하지 않은 것이다.

아! 6.25가 대마도 반환 걸림돌"
이승만은 이에 불복하고 우선 평화선 선포를 통해 우선 독도만은 어족(魚族)보호 명분을 들어 독도만은 실효지배를 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지난 2005년에 확인된 미국 국무부 외교문서에 따르면 1951년 4월 27일 한국 이승만은 대마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이 대마도에 대한 모든 권리, 호치, 청구를 분명히 포기하고 그것을 한국에 돌려줄 것을 요청한다.
(In view of this fact the Republic of Korea request
that Japan specifically renounce all right, title and
claim to the Island of Tsushima and return it to
the Republic of Korea)

여기에서 「specifically renounce」귀절에 주시해야 한다.
이는 외교문서로서는 최고로 강력한 의사표시다.
대마도 회복(반환) 문제는 우리 7,000만 민족의 숙제다.
대마도를 우리 땅으로 회복하는 문제에 있어 국제관례의 관점에서 아무런 제약이 없다.

왜냐하면1862년에 미국의 영토가 된 일본 남부 오가사와라(小笠原) 군도를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일본 영토로서 인정받고 반환 받았던 국제적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내놓은 지도 ‘삼국접양지도’(하야시시헤이 (林子平) 제작, 프랑스어판)가 그 근거이다.

미국이 오가사와라 군도가 일본 영토임이 옳다고 판단하게 한 그 지도에 오가사와라가 일본 영토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지도에 독도와 대마도가 엄연히 한국 영토로 표기되어 있는 것이다.

최근에 이에 준하는 증거가 또 발굴되었다.

지리학자로 영국에서 활동하였던 이태리인 J.H.Kernot씨가 1790년에 작성한 「일본과 한국」이라는 지도에서 울릉도와 독도뿐만 아니고 대마도도 한국 영토로 그려져 있는 사실이 발굴(견)된 것이다.

이 지도에는 대마도가“STRAIT OF COREA'로 표시되어 있고 특히 독도와 울릉도, 대마도의 관할 국가를 표시하는 지도 바탕 색깔을 한국 본토와 같은 황색으로 나타내 이들 섬이 한국령이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하고 있다.

일본은 이러한 일련의 사실이 부각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독도 시비를 계속하며 분칠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간에 지리적 문제로 다툼이 있으면 강•약을 떠나 가장 기본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원칙이 국가를 기준해서 땅은 근거리에 위치한 국가의 소유가 타당합니다. 힘이 더 있는 국가에서 괜히 욕심내고 있지요..

"대마도도 만주도 우리땅인데더구나 만주땅은 우리땅이라고 거론조차 안하고 있는것이 안타까울뿐입니다,

그래도 조금의 위안이 되는 부분은 요즘 한국인들이 대마도 땅을 많이 사들여서 일본 정부에 규제 요청을 했고 니뽄 언론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 했습니다,

주로 정치인 일본인들 그들의 속셈이 가증스럽다.

독도시비에 말려들고 「對馬島本是我國之地」 세종대왕이 선언한 이 확실한 증거를 두고도 우리의 대마도는 일본 땅으로 여기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약소국이 아니다.

적어도 자기것은 자기것이라고 당당하게 임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권에선 나 몰라라 하는 형국이니,

우리 네티즌 들이라도 이글을 여러 카페로 올려 여론을 형성하고, 독도를 떠나서 대마도 반환운동의 계기가 될 수 있게하는 초석이 되고자 이 글을 올려본다,

이글을 펌해서 여러 밴드나 블르그 페이스북 기타등등 에 날라서 우리가 못하면 우리의 후손들 이라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전 국민 모두다 이글을 꼭 읽도록 해요 -^0^-.

대한민국 주소, 전남 진도군 조도면 대마도리,

대한민국 주소: 전남 진도군 조도면 대마도리/ 복사

설명
대한민국 주소: 전남 진도군 조도면 대마도리/
면적 2.816km2, 해안선 길이 14.5km의 대마도는 1973년도에 197가구 1153명, 264명의 학생들이 사는 섬이었으나 현재는 73가구 116명이 살고 있고 분교생은 2명이다. 하조도와 서거차도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섬이 ‘큰 말’...

지식백과 더보기

면적 2.523㎢, 인구 129명(2005)이다. 하조도와 서거차도의 중간에 위치한다. 1600년대 초기에 경기도 광주에서 양주 허씨 일가가 들어와 살았고, 관매도에 살던 강릉 함씨의 후손이 이곳으로 옮겨와 살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 섬의 모양이 큰 말 모양으로 되어 있어 대마도라 하였다고 하며, 조선시대엔 말 목장이 있었다고 전한다.

최고점은 173m이며, 대부분 100m 내외의 구릉지를 이루고 있다. 해안은 돌출한 갑과 깊숙한 만이 연이어져 있어 해안선의 드나듦이 심한 편이다. 북쪽과 동쪽 해안을 제외하면 대부분 암석해안으로, 높은 해식애가 발달했으며 만입부에 약간의 갯벌이 있다. 1월 평균기온 3℃ 내외, 8월 평균기온 26℃ 내외, 연강수량 943㎜ 정도이다.

출처 ^ 참고문헌,
[대마도[大馬島] - 조선시대 말목장이 있던 섬 (한국의 섬 - 진도군, 2015.., )
[네이버 지식백과] 대마도 [大馬島] (두산백과)
[푸른솔 조영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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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기와 사정 ,

발기와 사정 ,

정액을 체외로 사출하는 메커니즘,
한 번의 사정으로 사출하는 정액의 양은 2~6mℓ다.
정액 대부분은 액체 성분으로 고체 성분의 정자는 전체의 약 1%이다.
그중에 1억~6억 개의 정자가 있다,
성적 흥분으로 음경의 해면체에 혈액이 충만해서 발기한다. 흥분이 정점에 달하면 척수가 반응해서 사정한다.

발기 구조
음경 내부의 음경해면체와 요도해면체는 수많은 모세혈관이 모인 스펀지 구조다. 성적 흥분이 고조되면 해면체의 모세혈관에 음경동맥으로부터 대량의 혈액이 흘러들어가 크게 팽창한다. 해면체는 백막이라는 튼튼한 막으로 싸여 있기 때문에 일정크기 이상으로 팽창하지 않고 혈액의 압력으로 딱딱해진다. 이 상태를 발기라고 한다.
발기하면 부푼 해면체 때문에 혈관이 눌려 음경 밖으로 혈액이 유출되는 것을 차단한다. 이렇게 발기를 유지한다. 발기하면 음경은 평상시의 1.5~2배 크기가 된다. 사정 등으로 성적 흥분이 진정되면 해면체의 혈액량이 감소해서 발기 상태가 진정된다.
발기 구조,
성적 흥분이 고조되면 여러 신경의 움직임으로 음경해면체와 요도해면체에 다량의 혈액이 흘러 들어간다. 그러면 해면체가 크게 팽창해서 해면체를 싸고 있는 백막(남성 생식기 구조의 음경구조 이미지 참조) 안이 혈액의 압력으로 딱딱해진다.

발기의 종류와 ED
발기에는 성적 상상 등으로 대뇌피질이 흥분해서 일어나는 중추성 발기와 생식기의 물리적 자극에 따른 반사성 발기 두 가지가 있다. 발기를 담당하는 신경은 방광이나 전립선 부근을 지나기 때문에 자극을 받으면 반사성 발기를 일으키기도 한다. 발기가 정상으로 일어나지 않는 ED(발기부전)는 당뇨병이나 정신적 이유 때문이다.
발기의 종류와 ED발기를 담당하는 신경은 천수에서 나와 전립선의 바로 옆을 지나 음경에 도달한다.

사정 구조
성적 흥분이 고조되면 정소상체에 비축된 정자가 연동운동으로 정관의 말단(정관팽대부)까지 운반된다. 성적 흥분이 정점에 달하면 척수의 사정중추가 반응해서 사정반사가 일어나고 정낭이나 전립선에서 분비된 점액과 정자가 혼합되어 정액이 된다. 이때 방광의 출구에 있는 내요도 괄약근은 수축해서 방광으로의 정액 역류를 막는다.
전립선보다 아래에 있는 외요도 괄약근도 수축해서 정액이 모인 전립선 안의 요도 내압이 올라간다. 이 상태에서 외요도 괄약근이 이완하면 전립선 안의 정액이 내압으로 밀려나와 외요도 입구에서 한꺼번에 사출된다.
사정 구조
① 성적 흥분이 고조되면 정소에서 만들어진 정소상체에 비축된 정자가 정관으로 나온다.
② 정자는 연동운동으로 정관의 말단까지 운반된다.
③ 전립선액이 분비되고 밀려 나온 정낭의 분비액과 정자가 혼합되어 정액이 된다.
④ 내요오 괄약근이 수축하여 방광 안으로의 정액 역류를 막는다.
⑤ 외요도 괄약근이 수축하고 이완해서 한꺼번에 정액을 사출한다.
생식기는 남성과 여성의 성세포를 만들고 수정해서 자손을 만든다. 남성의 생식기는 정자를 만드는 정소가 있는 음낭, 음경, 정낭, 전립선 등으로 이루어진다. 여성의 생식기는 난자를 만드는 난소 외에 질, 자궁 등으로 구성된다. 수정란은 자궁내막에 착상해서 성장하고 약 40주 후에 출산한다.식기,

여성 생식기 없이 태어나는 ‘MRKH 증후군’
"최근 여성의 생식기가 없이 태어나는 ‘MRKH(마이어-로키탄스키-퀸스터-하우저)’ 증후군을 앓고 있는 영국 소녀의 사연이 전해져 화제를 모았다.
이 소녀가 앓고 있는 MRKH 증후군은 선천적으로 자궁, 질 등 생식기가 없는 기형 질환으로 염색체 이상으로 발생하는 증후군으로 여성 5000명 중 1명 꼴로 발생하는 증상이다. 태아 발생 과정 중에 일어나는 뮐러관 기형의 일종으로 자궁과 질의 무형성 혹은 형성부전이 특징적이다.
MRKH 증후군은 청소년기에 월경이 없어 병원에 내원했을 때도 발견되며 무월경 증상이나 성관계의 불편함이 나타날 때까지 진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월경은 없지만 외형은 성 발달이 완료된 정상적인 여성 2차 성징, 즉 유방발달과 음모를 보이며, 외형 생식기도 정상으로 보인다.
MRKH 증후군은 동반 기형 여부에 따라 전형적인 또는 I형 MRKH 증후군과 비전형적인 II 형 MRKH 증후군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전형적인 형태에서는 자궁의 완전한 무형성만을 보이나 비전형적인 형태에서는 자궁의 무형성 및 형성 부전, 한쪽 혹은 양쪽 난관의 무형성 및 형성 부전이 나타나며 신장, 심장, 경흉추의 기형과 난청 등 타 장기의 기형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MRKH 증후군의 치료는 질을 재건하여 원활한 성 생활을 가능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비수술적 방법과 수술적 방법이 있다. 치료 상담은 환자가 성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연령이 되고 감정적으로 성숙하게 되었을 때 시작하게 된다.
또한 예민한 시기에 자궁과 질이 없다는 이야기를 처음으로 접하게 될 경우 환자들은 극심한 불안감과 고도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겪기 때문에 치료 전후로 환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한 상담이 반드시 필요하다. 출처: 건강을 위한 첫걸음 하이닥 (www.hidoc.co.kr)

성기능장애 여성, 생식기 감각 감소 경향
성기능장애 여성은 생식기 부위 촉각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고 American Journal of Obstetrics and Gynecology에 발표됐다.

미국 예일 의대의 캐슬린 코넬 박사와 연구진은 성기능장애가 있는 여성 56명을 대상으로 생식기 부위의 신경기능을 압박, 진동, 정적인 접촉을 통해 역치를 판별하고 성기능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연구대상자의 48%는 한가지 이상의 성기능 장애가 있었고 나머지 52%는 성기능에 문제가 없어 성기능에 문제가 없는 여성을 대조군으로 선정했다.

성기능 장애는 성욕, 자극, 오르가즘, 통증 등 4가지로 나누어졌는데 성기능장애 여성의 약 25%는 한가지 이상의 성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성기능 장애가 있는 여성의 경우 클리토리스의 촉각이 감소했으며 성욕, 자극 기능부전인 여성의 경우에도 클리토리스의 감각이 감소했다. 자극 기능부전인 여성은 회음의 감각이 감소했다.

코넬 박사는 여성 성기능 장애는 극도로 연구가 어려우나 이번 연구에서 성기능 장애가 있는 여성에게는 장기간 강한 자극을 주거나 다른 종류의 자극을 시도할 수 있다는 선택의 여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신경 조사 결과, 자극 시도 필요.

#생식기 #발기와 사정 구조 #정액을 체외로 사출하는 메커니즘 #한 번의 사정으로 사출하는 정액의 양은 2~6mℓ다 #정액 대부분은 액체 성분으로 #고체 성분의 정자는 전체의 약 1%이다 #1억~6억 개의 정자가 있다 #성적 흥분으로 음경의 해면체에 혈액이 충만해서 발기한다. 흥분이 정점에 달하면 척수가 반응해서 사정한다 #발기 구조 #음경 내부 #음경해면체 #요도해면체 #수많은 모세혈관이 모인 스펀지 구조 #성적 흥분 #해면체의 모세혈관 #음경동맥 #대량의 혈액 #해면체 #백막이 #튼튼한 막 #일정크기 #팽창 #혈액 #압력 #성기능 장애 #여성의 경우 클리토리스의 촉각이 감소 #성욕 자극 기능부전인 #여성의 경우에도 클리토리스의 감각이 감소 #자극 기능부전인 여성은 회음의 감각이 감소 #성욕 #자극 #오르가즘 #통증 #생식기 부위 #신경기능을 압박 진동 #정적인 접촉을 통해 역치를 판별 #성기능에 대한 설문조사 #성적 흥분이 고조되면 정소상체에 비축된 정자가 연동운동으로 정관의 말단(정관팽대부)까지 운반된다 #성적 흥분이 정점에 달하면 척수의 사정중추가 반응해서 사정반사가 일어나고 #정낭이나 전립선에서 분비된 점액과 정자가 혼합되어 정액이 된다 #방광의 출구에 있는 내요도 괄약근은 수축해서 방광으로의 정액 역류를 막는다 #전립선보다 아래에 있는 외요도 괄약근도 수축해서 정액이 모인 전립선 안의 요도 내압이 올라간다 #외요도 #괄약근이 이완 #전립선 #정액 #내압으로 밀려나와 외요도 입구에서 한꺼번에 사출된다

2020년 9월 10일 목요일

망부석 (望夫石)

망부석 (望夫石)  

절개 굳은 아내가 집을 떠난 남편을 고개나 산마루에서 기다리다 죽어서 되었다는 전설적인 돌,  <script data-ad-client="ca-pub-4162949345545299" async src="https://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명사
절개 굳은 아내가 집을 떠난 남편을 고개나 산마루에서 기다리다 죽어서 되었다는 전설적인 돌. 특히 신라 때 박제상(朴堤上)의 아내가 치술령(鵄述嶺)에서 남편을 기다리다 그대로 굳어져 된 바위가 유명하다.

망부석 설화 (望夫石 說話),
1, 옛날 옛적의 어느 어느 하루였다. 천궁의 천왕은 일가친척들을 거느리고 백두산에 내려와 산천경개를 구경하였다. 점심때가 되자 지상의 지신은 풍성한 연회를 베풀고 천궁의 귀빈들을 모시였다. 술이 몇 순배 돌아간 후 지신은 공주를 불러다 술을 따르라고 분부하였다. 공주가 연회석에 나타나자 갑자기 더 환해진 듯하였다. 그가 얼마나 고운지 천궁의 선녀들도 무색하게 되었다.

천궁의 왕자는 지신의 딸을 보자마자 한눈에 정이 들었다. 공주의 자색에 매혹된 왕자는 은근히 공주만 주시하다보니 연회가 끝날 때까지 술도 몇 잔 들지 못하였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천궁의 귀빈들은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천왕이 먼저 용거()를 불러다가 타고 하늘로 오르자 그의 뒤를 따라 구름도 타고 무지개도 타고 바람도 잡아타면서 천궁의 귀빈들은 잠깐 사이에 사라졌다. 천궁으로 돌아간 왕자는 자나깨나 공주를 잊지 못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왕자는 미칠 것만 같았다. 그는 천궁 밖에 나가서 백두산을 내려다보면서 얼없이 서있곤 하였다.

그러던 왕자는 천왕의 눈을 피해 가만히 백두산으로 내려왔다. 그가 백두산에 내려와 점심을 먹던 곳을 찾으니 웅장한 새 궁전이 우뚝 솟아있었다. 그사이에 지신은 천왕의 방문을 기념하여 연회를 베풀었던 자리에다 새 궁전을 지었던 것이다. 궁전 뜨락에서는 공주가 시녀들과 함께 꽃차를 둘러싸고 춤을 추며 노래부르고 있었다. 한참 지나서였다. 공주는 꽃차에 홀로 올라가서 너울너울 춤을 추었고 시녀들은 손을 잡고 꽃차 주위를 빙빙 돌면서 노래를 불렀다. 공주가 휘젓는 팔은 백학이 나래치는 듯, 하느적거리는 허리는 봄바람을 맞은 실버들인 듯, 웃음을 머금은 얼굴은 이슬을 굴리는 함박꽃이런 듯...

넋을 잃고 바라보던 왕자는 바람신을 시켜서 공주와 꽃수레를 몽땅 소나무숲속으로 가져오게 하였다. 차에 앉은대로 소나무숲속으로 오게 된 공주는 영문을 모르고 어리둥절해서 서있었다. "공주께선 놀라지 마시고 머리를 들고 대상을 보시라." 낯선 사나이의 목소리인지라 공주는 간이 콩알만해졌다. 두렵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그는 머리를 숙인 채 처들지 못하였다. "공주님, 어이하여 이 왕자를 잊었나이까. 한번 만나본 후 그대 생각이 절절하여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찾아왔나이다. 오늘 무례하게 여기로 모셔왔으니 널리 양해하기를 바라나이다."

왕자의 정다운 목소리를 들은 공주는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왕자의 눈에서는 불타는 연정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금빛은빛이 반짝이는 옷을 입은 왕자는 어찌보면 미남같고 어찌 보면 천하에 당할 자 없는 장수 같았다. 공주의 가슴에는 이름할 수 없는 이상야릇한 감정이 짜릿하게 파고들었다. 왕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공주를 찾아오게 된 경과를 이야기하고 반석같은 연모의 정을 고백하였다.

"왕자님께서 어이 이런 말씀을 하시와요. 그대는 천궁의 사람이옵고 소저는 지상의 사람이와요. 배필이란 마음뿐인가 하오이다."

"이 왕자에겐 변신술이 있사온즉 낮이면 그대를 새로 만들고 밤이면 그대를 사람으로 만들어 저의 곁에 있게 하겠나이다."

"천왕과 황후께서 허락할리 만무하오니다. 아예 단념하심이 좋을 듯하오이다."

"그럴리 없나이다. 절대 그럴리 없나이다. 천황과 황후께 이미 여쭈었나이다."

왕자는 어여쁜 공주를 놓칠까봐 슬쩍 거짓말을 꾸며댔다. 그러자 공주는 부끄러워서 아미를 숙이었다. 왕자는 "후-"하고 공주를 불어서 새로 만들어가지고 하늘로 올라갔다. 황후는 왕자의 일에 다소 짐작이 있었지만 시침을 뚝 땄다. 그러다가 하루는 왕자에게 물었다. "네가 요즈음은 왜 새와 떨어질 줄 모르느냐? 그 새는 도대체 어디서 생긴거냐?" 왕자는 어머니를 기이었다. "예, 저 새는 백두산의 새인데 전일에 내려갔다가 하도 고와서 어깨에 앉혀왔사옵니다."

"그렇다면 그 새를 조롱에 가두어서 천궁의 안쪽문 위에 걸어놓아라." 가련한 공주는 이렇게 조롱 안에 갇혔다.

밤이 되자 왕자는 공주를 박쥐로 둔갑시켜서 조롱에서 빠져나오게 하였다. 왕자의 침실로 돌아온 공주는 눈물을 머금고 하소연하였다. "천궁으로 올 때 양량친께서 응낙이 있었다고 하옵시고는 내가 갇히게 되어도 어이하여 말씀 한마디도 여쭈지 못하오이까?" 왕자는 성근하게 빌었다.

"내 그대를 사랑함은 일편단심이오이다. 급히 자시는 밥에 목이 멘다는데 그대는 너무 급히 서두르지 마오이다. 내일 내가 어머님께 청을 들겠으니 그리 아오이다." 하여 날이 희붐히 밝자 공주는 다시 박쥐로 변하여 조롱안에 들어갔고 조롱안에 들어간 후에는 또 새로 변하여야 하였다. 그러나 이러기도 며칠을 가지 못하였다. 황후는 왕자의 기미를 눈치 차리고 구멍이 더 작은 조롱에다 새를 가두게 하였다. 왕자는 새를 매미로 변신시켜서 조롱에서 빠져나오게 하였다.

"저도 그대를 불같이 뜨겁게 사랑하오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연분은 절대 성사될 것 같지 못하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서라도 지상으로 돌려보내주옵소서." 공주는 참고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대는 너무 상심하지 마오이다. 내일은 황후가 일이 되도록 천왕께 여쭈겠다 하였나이다."

공주와 갈라질 수 없다고 생각한 왕자는 이런 거짓말로 공주를 달래었다. 그는 황후가 시녀를 시켜서 은근히 조롱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밤이면 조롱속의 새가 없어진다는 시녀의 말을 들은 황후는 구멍이 더 작은 조롱에다 새를 가두라고 분부하였다. 밤이 되자 왕자는 공주를 골팽이로 둔갑시켜서 조롱을 빠져나오게 하였다. 왕자의 방으로 온 공주는 구슬프게 울었다.

"왕자님, 지상에 돌려보내주시지 않으려면 절 죽여주소이다. 더는 이렇게 살아갈 수 없나이다."

"그댄 상심하지 마옵소서. 내일이면 사랑의 신과 의논하고 그대를 나의 떳떳한 안해로 맞아들이겠나이다."

왕자가 아무리 구슬려도 공주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천궁의 왕자가 자기의 딸을 꾀여갔다는 소식을 뒤늦게야 듣게 된 지신은 천왕이 노여워할까봐 인차 사자를 띄워서 자기 딸을 돌려보내달라고 하였다. 천왕이 만조백관들을 불러다가 웬 일이냐고 물어보았으나 입을 여는 신하가 없었다. 이때 황후가 나서서 아들이 공주를 데려온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다. 천왕은 왕자를 불러들이고 엄하게 꾸중하였다. "네가 만약 공주와 기어이 배필을 맺는다면 천왕의 왕위를 계승하려니 꿈도 꾸지 말어라." 그리고는 신하들에게 "당장 공주를 돌려보내거라."

공주를 잃어 버린 왕자의 가슴은 오리오리 찢기는 듯이 아팠다. 공주가 그리워 밥맛이 떨어질 지경이었다. 날이 갈수록 그의 가슴속에서는 사랑의 불길이 더욱 세차게 타올랐다. 왕자는 더는 참을 수 없어서 오색구름을 잡아타고 다시 백두산으로 오르내리기 시작하였다. 백두산의 공주도 왕자가 그리운지라 그들은 만나기만 하면 시간 가는줄도 몰랐다. 이 일을 안 천왕은 왕자에게 여러번 충고하였지만 왕자는 그냥 귀밖으로 흘려버렸다.

천왕은 더는 그대로 둘 수 없어서 사랑의 신을 불러들였다. "그들의 사랑이 굳어 버리게 그들의 심장을 돌심장으로 만들어 버려라. 9만년을 돌바위로 굳어지게 하라." 천왕의 엄한 령을 받은 사랑의 신은 왕자의 뒤를 슬그머니 따라서 백두산으로 날아 내려왔다. 왕자가 공주를 찾아서 궁전으로 갈 때 그들이 서로 마주오는 것을 보고 사랑의 신은 그들을 돌바위로 굳어지게 하였다. 백두산의 지하삼림 속에는 지금도 왕자와 공주의 망부석이 우뚝 솟아있다.

2, 절개 굳은 아내가 외지에 나간 남편을 고개나 산마루에서 기다리다가 만나지 못하고 죽어 돌이 되었다는 설화. 망부석의 유래설화로, 아내가 죽어서 돌이 된 것이 아니라 자연석인 돌에서 기다려 그 돌에 망부석이라는 이름이 붙은 경우의 설화도 이에 해당된다.

대표적인 설화는 신라시대 박제상(朴堤上, 또는 金堤上)의 아내가 치술령에서 죽어 망부석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눌지왕 때 고구려에 볼모로 잡혀간 왕제(王弟)를 구해 온 박제상은 집에도 들르지 않고 바로 일본에 건너가 또 다른 왕제를 구해 보낸 뒤 일본에서 신라의 신하임을 고집하다 죽는다.

그의 아내는 일본에 간 남편을 기다리다 죽어서 망부석이 되고, 그 곳 주민은 부인을 칭송한다. 박제상의 부인은 죽어서 치(審)라는 새가 되고 같이 기다리다 죽은 세 딸은 술(述)이라는 새가 되었다는 전설도 있고, 이들 모녀가 치술령신모(審述嶺神母)가 되었고 이에 주민들이 사당을 지어 모셨다는 기록도 있다.

엄밀히 말해서 사람이 돌로 변한다는 화석(化石) 모티프는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돌’이라는 단어에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찬양받을 만한 기념물이라는 뜻이 있다.

이러한 돌로 후에 인공으로 기념비를 세우거나 죽은 장소에 있던 자연석을 기념하는 대상물로 삼게 되면, 그 곳 주민은 망부석(기념비나 자연석)을 대할 때 훌륭한 부인을 대할 때와 같은 경건한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줄이면 바로 사람이 죽어 망부석이 되었다는 화석(化石)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부인이 죽어 새가 되었다는 〈치술령망부석전설〉에서의 새의 의미는 일본에 건너간 뒤 소식이 없는 남편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새가 되어 훨훨 날아 바다를 건너가고 싶은, 살아서의 공간을 극복하려는 의지이다.

부부의 만남이 산 몸으로는 불가능하므로 죽은 뒤에 새가 되어 소원을 푸는 것이니, ‘이 몸이 새가 된다면’ 하는 살았을 적의 소원이 죽어서 실현이 되었다는, 죽음을 초월한 부부의 사랑을 뜻한다. 마찬가지로 새가 되어서라도 아버지를 만나고 싶은 소원 때문에 딸도 새가 된 것이다.

경상북도 월성군 외동면의 치술령 아래에 이들 새가 살았다는 은을암(隱乙庵)과 위패를 모신 당(堂)이 있다. 오랜 기념정신은 망부석으로, 죽어서라도 만나겠다는 의지는 새로, 주민의 부인에 대한 존경심과 신앙심은 산신으로 나타난 것이다.

전라북도 정읍시 정읍사공원에 있는 망부석은 아내가 장사를 나간 남편을 기다리던 곳을 기념한 돌이며 여기에 〈정읍사 井邑詞〉 노래와 이 노래를 이야기로 꾸민 전설이 있는데, 이것도 오랜 기념정신을 뜻하는 것이다.

경상북도 영일군의 〈망부산(望夫山)솔개재전설〉은 신라 말 경애왕 때 소정승(蘇政丞)이 일본에 사신으로 가 돌아오지 않자 부인이 산에 올라가 기다리다 지쳐 죽어 산 이름이 망부산이 되었으며, 부인을 기념하는 뜻에서 사당인 망부사(望夫祠)를 짓고 같이 기다리던 개와 말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는 내용으로, 〈치술령망부석전설〉의 변형이라 하겠다.

다만 망부석이 망부산으로 규모가 커진 것이 다르다. 고기를 잡으러 갔거나 혹은 중국에 사신으로 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아내가 떨어져 죽었다는 서해안의 〈낙화암전설 落花巖傳說〉도 이 망부석설화의 변형으로 보인다.

역사적인 사건을 한 여인이 정절을 통해 고통 속에 소화하고 후세 주민은 이를 기리는 내용인 망부석설화는 한국인의 의식을 단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3, 신라 눌지왕 때의 충신 박제상이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잡혀간 왕자를 구한 후 자신은 죽음을 당하는 설화이다.

그의 아내가 기다리다가 죽어 망부석이 되었다는 아내의 죽음 설화도 포함된다. (삼국유사)에는 김제상으로 되어있다.

박제상은 고구려에 볼모로 잡혀간 왕제 보해(寶海:삼국사기에는卜好)를 구하러 변복을 하고 가서 왕의 추격을 무릅쓰고 같이 탈출하여 무사히 귀국하였다.

다음에는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 있는 왕제 미해(美海:삼국사기에는 未斯欣)를구하러 가서 신라를 도망해 왔다고 하며 왕의 신임을 얻은 후에 미해를 탈출시키고 자기는 붙잡혀서 문초를 받았다. 일본왕의 문초와 설득에도 " 차라리 계림의 개나 돼지가 될지어정 왜국의 신하는 되지 않겠으며 차라리 계림의 벌을 받을지언정 왜국의 벼슬이나 녹을 먹지 않겠다."라는 말로 계림사람임을 주장한 후에 발바닥의 껍질을 벗기운 채 불타 죽었다. 

'삼국사기'의 기록과 대조해보면 등장인물의 이름에 차이가 있고, 왕제의 부하 이름이 '삼국유사'에는 보이지만 '삼국사기'에는 보이지 않는데, 이것은 사실상 부사가 따라간 것을 밝힌 것도 되고, 박제상이 귀환 활동을 할 때 협조를 얻어 자기 외에 다른 사람이 귀국할 수 있게 설정한 것이기도 하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왕을 설득하였더니 순순히 왕제를 풀어 주었다고 하여 박제상의 언변을
중시하였고, '삼국유사'는 야간 탈출을 하였다고 해서 담력과 지혜를 중시하였다. 두 기록 다 박제상이 집에 들르지 않고 즉시 일본으로 떠났다고 한다.

이것은 부부나 가정의 정보다 국가가 더 중요하다는 박제상의 충성심을 드러내면서도 인간적인 고뇌를 함께 드러낸 대목이다. 그러나 이들 문헌은 박제상의 사실(史實)을 중심으로 기록된 것이므로 민간 설화 측면에서는 박제상 부인편을 드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남편이 집을 떠나자 몸부림쳐 울었고 (그래서 망덕사 앞 모래탑을 장사(長沙)라고함),

만류를 뿌리치고 다리를 뻗고 울었고 (그래서 그곳을 伐知旨라함)

일본에 간 남편을 치술령에 올라가 그리워하다가 죽어서 치술령 신모가 되었으며,그 사당이 지금까지 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은 '삼국사기'보다 설화적인 증거를 많이 제시하고 있다. 박제상의 아내는 일본에 간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지쳐 죽어서 망부석이 되었는데, 그곳의 주민은 아직도 부인의 정렬을 칭송하고 있다고 한다.


4, 정읍사의 상징,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었다는 여인의 석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듯, 먼 곳을 바라보며 가지런히 포개진 두 손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석상 왼편으로는 정읍사에 얽힌 슬픈 사랑 이야기가 동판의 그림과 함께 적혀있습니다.



섬세함을 하나하나 읽어보면, 단순히 사랑하는 이들의 헤어짐이 아니라,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과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상황앞에 스러져간 젊은 부부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기다림 때문에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슬프지만 아름답다. 기다림이란 절망 속에 피어나는 희망의 꽃과 같다..

기다림의 미학이 담긴 정읍사 설화소설에서 발췌한 말,
누군가를 기다리다 죽는다니.. 괜시리 마음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희망을 놓치지 않고, 언제고 돌아오리라는 믿음을 갖을 수 있다면..
그것은 또 아름다운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요즘 세상 얘기는 아니겠지만요^^
한 쪽 벽 면에는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습니다.

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한 있어도 천 년인들 잊으리까/
만 년인들 변하리까 기다리는 마음/ 임오실 길목에 세워 놓고 살아있어도 죽은 듯/
그리움 산이 되고 설움의 눈물/ 강이 되어 고단한 삶/ 찬서리 젖어 생전에 못다한 사랑/
죽어도 임의 품안에 잠들고 싶어/ 차가운 땅 속 시린발 묻고/ 먼 하늘 바라보며/ 선체로 돌이 되어 기다립니다./

영화,

망부석》은 한국에서 제작된 임권택 감독의 1963년 영화이다. 이경희 등이 주연으로 출연하였고 차태진 등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주연
조연
기타
  • 원작자: 이서구
  • 조명: 장기종
  • 미술: 박석인
외부 링크
분류
"the stone on which a faithful wife stood waiting for her husband until she perished/

노래
곡명: 망부석,
작사, 작곡, 가수, 김태곤,

망부석
음악이 필요한 순간, 멜론
www.melon.com
가사: 
간밤에 울던 제비 날이
밝아 찾아보니
처마 끝엔 빈둥지만이
구구 만리 머나먼 길
다시 오마 찾아가나
저 하늘에
가물 거리네
헤에야 날아라
헤야 꿈이여
그리운 내 님 계신곳에
푸른 하늘에
구름도 둥실둥실 떠가네
높고 높은 저 산 너머로
내 꿈마저 떠가라
두리둥실 떠가라
오매불망 내 님에게로
깊은밤 잠못 이뤄
창문열고 밖을보니
초생달만 외로이 떴네
멀리 떠난 내님 소식
그 언제나
오실텐가 가슴 졸여
기다려지네
헤에야 날아라
헤야 꿈이여
그리운 내 님 계신곳에
달아래 구름도
둥실둥실 떠가네
높고 높은 저 산 너머로
내 꿈마저 떠가라
두리둥실 떠가라
오매불망 내 님에게로
달아래 구름도
둥실둥실 떠가네
높고 높은 저 산 너머로
내 꿈마저 떠가라
두리둥실 떠가라
오매불망 내 님에게로/
악보/ 가사,
망부석 악보,

망부석
음악이 필요한 순간, 멜론
www.melon.com
망부석: 이찬원 
이찬원
앨범/ 사랑의 콜센타 PART9/ 발매 일2020.06.05/ 장르성인가요/ FLACFlac 16/24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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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부석/ 비석,
정읍사,
출처 ^ 참고자료
[망부석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백두산), 2004., 한국콘텐츠진흥원)
[三國史記, 三國遺事, 嶺南의 傳說(柳增善, 螢雪出版社, 1971),
[韓國口碑文學大系(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0∼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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