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陳壽)의 《삼국지》에 서술된 위(魏)·촉(蜀)·오(吳) 3국의 역사는 천하의 패권(覇權)을 둘러싸고 3국이 벌이는 힘과 지혜의 다툼이 워낙 치열하게 펼쳐졌기에 일찍부터 중국인들에게 흥미 있는 이야기로 전해져 왔다. 당(唐, 618~907) 시대에 이미 3국의 이야기가 야담(野談)으로 전해진 기록이 있으며, 송(宋, 960∼1279) 시대에는 전문적인 이야기꾼인 설화인(說話人)들의 이야기 대본인 화본(話本)으로 정리되고, 연극으로 공연되기도 하였다. 당시 곽사구(禱四究)의 ‘설삼분(說三分)’은 매우 유명했으며, 인종(仁宗, 1010~1063) 때에는 3국의 이야기를 공연하는 ‘피영희(皮影戱)’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원(元, 1271∼1368)의 영종(英宗, 재위 1320~1323) 때, 전래되던 화본(話本)들을 바탕으로 푸젠성(福建省) 젠양(建陽)의 출판업자 우(虞)씨가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平話)》를 간행하였다. 이 책은 3권으로 되어 있으며 위에 그림, 아래에 글을 넣은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元) 시대에는 이를 바탕으로 많은 희곡이 만들어져 공연되었는데, 종사성(鍾嗣成)의 《녹귀부(錄鬼簿)》에 따르면 그 수가 30~40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平話)》는 명(明, 1368∼1644) 시대에도 출판되었지만, 야담(野談)과 화본(話本)에 기초해 있었기에 허황된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고 역사적 사실과도 차이가 많았다. 그래서 나관중(羅貫中, 1330?~1400)은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平話)》의 줄거리를 근간으로 하되,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와 429년 배송지(裵松之, 372-451)가 이를 보완한 《삼국지주(三國志註)》,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의 《자치통감(資治通鑑)》 등을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에 어긋난 부분을 바로잡아 장회소설(章回小說) 형식으로 재구성하여 《삼국지연의》를 편찬하였다.
《삼국지연의》는 후한(後漢) 말부터 위(魏)· 촉(蜀)·오(吳) 삼국의 정립시대(鼎立時代)를 거쳐서 진(晉)이 천하를 통일하기까지의 역사를 유비(劉備), 관우(關羽), 장비(張飛) 등 세 인물의 무용(武勇)과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지모(智謀)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원본(原本)은 전해지지 않으며 명(明)의 가정제(嘉靖帝, 1507~1566) 때인 1522년에 간행된 ‘가정본(嘉靖本)’이 가장 오래된 판본(版本)으로 전해진다.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란 제목으로 간행된 이 판본은 홍치제(弘治帝, 1470~1505) 때인 1494년의 서문(序文)이 실려 있어 ‘홍치본(弘治本)’, 혹은 나관중(羅貫中)의 성을 따서 ‘나본(羅本)’으로도 불린다. 모두 24권(卷) 240절[節, 혹은 칙(則)]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장 나관중의 원본(原本)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진다.
《삼국지연의》는 그 뒤 가정본(嘉靖本)을 근간으로 하면서 문체나 내용이 보완되어 왔으며, 수많은 속본(俗本)들을 낳았다. 명(明) 말기에 이지(李贄, 1527~1602)는 《삼국지연의》에 평을 붙이면서 2개의 절(節)을 하나로 합하여 240절(節)을 120절(節)로 줄였는데, 이를 ‘이탁오평본(李卓吾評本)’이라고 한다. 그리고 청(淸)의 강희제(康熙帝, 1654~1722) 때인 1679년(강희18년)에 모성산(毛聲山)과 모종강(毛宗岡) 부자(父子)는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에 기초해 작품 전체의 통일성을 높이고 문체(文體)를 간결하게 다듬어 19권(卷) 120절(節)로 구성된 새로운 판본을 간행하였다. 이를 ‘모본(毛本)’이라고 하는데, 모종강(毛宗崗)의 개정본은 다른 판본을 압도하고 정본(定本)이 되었다. 오늘날 번역되는 《삼국지연의》의 내용도 대부분 이 ‘모본(毛本)’에 기초하고 있다.
《삼국지연의》는 중국인에게 오랫동안 애독되었고, 그 내용은 연극(演劇)이나 강담(講談) 등으로 글자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전달되었다. 관우(關羽)는 민간에서 신앙의 대상이 되어 관제묘(關帝廟)가 곳곳에 세워지기도 하였으며, 《삼국지연의》에서 비롯된 ‘삼고초려(三顧草廬)’나 ‘계륵(鷄肋)’, ‘읍참마속(泣斬馬謖)’ 등의 표현이 고사(故事)와 함께 널리 쓰였다.
《삼국지연의》는 한국에서도 조선(朝鮮) 시대부터 매우 폭넓게 읽혔다. 《삼국지연의》는 이미 16세기 초에 조선(朝鮮)에 전해져 1569년에는 국내에서 원문(原文)으로 간행되었다. 인조(仁祖, 1595~1649) 때인 1627년(인조 5년)과 숙종(肅宗, 1661~1720) 때에도 출간(出刊)되었다. 《삼국지연의》를 번역(飜譯)하거나 번안(飜案)한 작품들도 상당수 전해지는데, 이는 사대부(士大夫)만이 아니라 부녀자(婦女子)나 민간(民間)에서도 폭넓게 읽혔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시조(時調)나 소설(小說), 속담(俗談) 등에서도 《삼국지연의》의 영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렇듯 《삼국지연의》가 널리 읽히고 확산된 것은 이 작품이 충효(忠孝)와 의(義)를 강조하는 조선(朝鮮)의 유교적(儒敎的) 지배이념과 일치되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근대 이후에도 《삼국지연의》는 수많은 번역본을 낳으며 폭넓게 읽혔는데, 1904년 박문서관(博文書館)에서 최초로 근대적 활자본이 간행되었고, 1929년에는 양백화(梁白華, 1889~1938)가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每日新報)에 연재하였다. 그리고 1945년에 박태원(朴泰遠, 1909~1987)이 ‘모본(毛本)’을 기초로 현대적 번역본을 출간(出刊)한 뒤, 박종화(朴鐘和, 1901~1981), 김구용(金丘庸, 1922~2001) 등 수많은 작가들이 각기 다양한 번역본을 출간하였다.
한편 현대에 와서 《삼국지연의》는 영화나 컴퓨터게임, 애니메이션 등으로도 활발히 만들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고우영(高羽榮, 1938~2005)이 만화로 신문에 연재한 작품이 1979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일본에서는 요코야마 미츠테루(橫山光輝, 1935∼2004)가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였다. 그리고 일본의 코에이(KOEI)는 1985년 ‘삼국지(三國志, samgugji)’라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개발하였다. 그 밖에도 《삼국지연의》의 내용에 바탕을 두고 경영학이나 처세학 등을 논하는 책들도 폭넓게 출간되고 이.
주요인물들"
유비 - 현덕, 관우 - 운장, 조조 - 맹덕, 손권 - 중모, 여포 - 봉선, 원소 - 본초, 원술 - 공로, 공손찬 -백규, 손견 - 문대, 손책 - 백부 순욱 - 문약, 조운 - 자룡, 정욱 - 중덕, 곽가 - 봉효, 제갈량 - 공명, 육손 - 백언, 주유 - 공근, 노숙 - 자경, 여몽 - 자명, 하후돈 - 원양, 하후연 - 묘재, 조인 - 자효, 조홍 - 자렴, 조휴 - 문열, 조진 - 자단, 강유 - 백약, 황충 - 한승, 위연 - 문장, 마초 - 맹기, 이엄 - 정방, 장료 - 문원, 장합 - 준예, 악진 - 문겸, 이전 - 만성, 서황 - 공명, 제갈근 - 자유, 제갈각 - 원손, 허저 - 중강, 방덕 - 영명, 태사자 - 자의, 유표 - 경승, 동탁 - 중영, 방통 - 사원, 법정 - 효직, 유장 - 계옥, 사마의 - 중달, 마등 - 수성,
1.조조: 기존에는 망탁조의라고 해서 중국사의 대표적인 역적중 하나로 손꼽아지던
인물이지만 마오쩌뚱에 의해서 재평가를 됨과 동시에 삼국지시대의 실질적으로
중심이 되는 위나라의 위왕에 오른 인물로 삼국중 가장 세력이 강한 위의 군주입니다.
망해가는 후한의 황제를 내세워서 세력을 모으고 하북의 원소를 상대로 승리하여 중원을 평정하였지만
적벽대전에서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에 패해서 삼국이 정립되게 됩니다.
서주대학살, 원소군 항병 학살, 발구중랑장(도굴을 전담하는 관직) 등 악행 역시 적지 않은
인물이지만 둔전제, 호조법, 원호법 등 난세로 피폐해진 중원을 복구하는데 큰역활을 한 인물이다.
2.손권: 동오 땅에서 형 손책이 점령한 호족세력들을 중심으로 오나라를 세우고
유비와 동맹을 통해서 조조를 적벽에서 물리쳐 삼국을 정립하지만
형주문제로 유비의 장수인 관우를 죽이고 형주를 점령한바람에 이릉대전이 일어나서
촉의 국력이 떨어져서 제갈량이나 후대의 촉나라인물들이 고생하게 된다.
유비 사후 손권의 오나라와 유선의 촉한은 다시 동맹관계를 회복한다.
조조사후에도 수시로 위나라를 괴롭혔기 때문에 위나라입장에서는
촉나라보다 오나라 쪽이 더 위험한 상대였다.
손권 개인의 무력이나 정치적역량은 높았지만 뛰어난 지휘관이라고 하기에는
장료,만총,문빙 등의 위나라쪽 인재들이 너무 뛰어났기에 매번 위나라정벌을 성공하지는 못했다.
3.유비: 전한의 황족출신으로 자수성가를 한 인물로 적벽대전에서 조조를 상대로
승리하여 형주일부를 기반으로 촉땅을 점령하고 한중을 조조에게서 빼앗아서
촉나라를 건국한다. 하지만 오나라와 형주를 두고 벌인 분쟁에 형주방면 책임자였던
관우가 전사하고 형주를 빼앗기자 대신들의 반대에도 오나라를 징벌하려고 군사를
잃으켰다가 이릉대전에서 대패해서 수많은 군사와 인재들을 상실하였고 그 후유증으로
인해 촉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백제성에서 죽는다.
이런 대패로 인해 유선시대에 제갈량,장완,비의 등의 신하들에게 권력이 넘어가는 계기가
됬지만 그 재상들이 대부분 인격자에 능력자였기에 황위 찬탈이나 신권의 강화로 인해
일어난 문제가 적었고 오히려 촉한이 부흥되는 계기가 된다.
4.관우: 유비 휘하에서 큰공로를 세웠던 맹장으로 많은 활약을 펼치고
유비가 조조에게서 한중을 빼앗자 그다음해 형주를 기반으로 조조를 치는 북벌을 하지만 위나라의 조인,서황의 활약과 오나라와의 외교실패로 인해 오나라군대에게 본진인 형주를 잃고 결국 전사하고 만다. 하지만 다른 삼국지 인물과 달리 죽은후에 무신으로써 숭상받다가 그성향이 재물을 늘려주는 재신으로 바뀐이후 현대의 중국에서도 신으로 숭배를 받게 된다.
5.제갈량: 소설과 달리 군사적역량이 신기에 달할 정도는 아니지만 정치 행정가 즉 재상으로 중국사에서 손꼽힐만한 인물로 유비가 이릉대전으로 크게 약해진 촉나라를 부흥시키고 북벌을 통해 위나라를 상대하려고 했지만 장합,학소,곽회,사마의 등 위나라의 뛰어난 인재들과 내부적인 문제로 인해 북벌을 모두 실패한다. 하지만 이 명재상의 이미지는 민중들에 의해 계속 숭상을 받았기에 현대에 이르러서도 숭상받고 있다.
6.사마의: 조조의 정권을 성립하는데 큰 도움을 준 중원에서도 이름난 명문가 출신으로 조조시절에 출사하여 조비시절부터 중용되어서 수많은 군공을 세웠고, 고평릉사변을 일으켜서 조씨 친족들을 몰락하게하였고 그 아들들과 손자로 인해 촉,위,오 모두 망하게 하고 중국을 다시 통일한 진나라가 들어서게 만든다.대표적인 역적들을 묶어부르는 망탁조의에서 의가 이 사마의다.
역사에서 4,5차북벌에서 제갈량에게 전투에서 패배했지만 전쟁에서 목적을 달성해서 막아냈지만 소설인 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량에게 계속 패배하지만 위나라에서 제갈량을 상대할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묘사된다.
7.동탁: 황건적의 난이 갓평정된 후한의 조정에서 내시들인 십상시와 하진의 권력투쟁으로 인해 많은 인명이 살상되고, 황제가 도주하는 십상시의 난당시에 하진과 원소의 계략으로 십상시를 제거하기위해 모집됬던 지방군벌 중 하나로 도망치던 황제를 얻음으로써 십상시에게 암살당한 하진의 세력을 얻어서 낙양을 장악하고 황제를 폐위하고 왕이었던 유협을 황제로 세움으로써 한나라를 장악한다. 하지만 이사건으로 인해서 한나라의 권위가 떨어지고 반동탁세력들과의 전쟁이 벌어지는데 원술과 손견으로 인해 호진과 여포가 대패하는 바람에 낙양에서 장안으로 천도를 하지만 이후 왕윤과 손을 잡은 여포에게 죽임을 당한다. 난세를 실질적으로 열어버린 인물로 대표적인 역적들을 묶어부르는 망탁조의에서 탁이 동탁이다.
8.원소: 삼공을 여러번 배출한 원씨가문의 서자였지만 삼년상을 2번 치러서 청류파들의 대표주자인 인물로 대두된다. 십상시의 파벌에 속하던 하진의 권력이 강해지면서 하진과 연합하여서 십상시를 처내려고 하지만 그로 인해 동탁이 정권을 잡으며 난세가 시작하게 되었고 하북으로 도망쳐서 반동탁연합의 맹주가 되었지만큰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동탁다음가는 군벌인 공손찬을 상대하여 하북을 얻게 되서 천하에서 가장강한 세력을 얻게 되지만 조조를 상대로 관도대전에서 거의다 이겨놓고 내부세력간의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군량저장한 오소를 상실하고, 그 책임의 희생양으로 억울하게 몰린 장합의 배신으로 본진마저 잃게 됨으로써 다이긴 전쟁을 패배한다. 실제 하북을 상실하지 않아서 세력은 건재했지만 원소본인이 관도에서 패배의 후유증으로 몇년뒤 죽게 되고, 사후 뒤를 이을 후계자를 확실히 정하지 않은 것때문에 그의 두아들이 하북을 놓고 다투는 걸 이용해서 조조가 하북을 장악하면서 세력이 사라진다.
9. 원술: 원소처럼 원씨 가문의 인물이지만 이쪽은 원소와 달리 적자였기에 대부분의 원씨가문의 인물들이 원소가 아닌 원술에게 힘을 실어줬다. 원소와 달리 동탁도 원술을 좋아해서 후장군에 임명하는등 우호적인 자세를 취했지만 원술은 남양 땅으로 도망쳐서 세력을 모았고 손견과 동맹을 맺고 반동탁세력의 맹주로써(소설과 달리 원소와 함께 한적이 없다)
동탁의 군대를 패퇴시켜 낙양에서 장안으로 천도하게 만들지만 이과정에서 무리한 징세 와 착취로 민심을 잃은 바람에 훗날 조조군에게 패배를 하고, 이후 제기를 하지만 스스로 천자에 오르고 나라를 세운 바람에 주변 제후들의 공격으로 망하게 된다.
10. 공손찬: 동탁 다음가는 세력을 지닌 군벌로 이민족 억압정책과 군비 확장을 위해서
하북에서 가혹한 정치를 일삼았고, 이에 반대하던 그의 상관이며,
이민족조차 존경하던 유우를 죽임으로써 원소가 공손찬을 노리는 계기가 되고, 하북의 민심이 그에게서 등을 돌려서 결국 패망하게
된다. 소설인 삼국지연의와 다르게 정의롭거나 선한 인물이 결코 아니다.
휘하에 유비를 거느린적도 있었지만 유비는 유우를 죽인이후 공손찬세력에서
이탈해서 도겸세력에 합류한다.
원소조차도 한복의 세력을 얻고, 국의라는 걸출한 장수가 공손찬을 상대로 승리하고
원소를 구하지 않았다면 이 공손찬에게 패망했을 가능성이 높을 정도로 소설과 달리
엄청나게 강력한 군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