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0일 금요일

삼국지 주요 인물들.

유비(劉備, 161년 ~ 223년)
자는 현덕(玄德). 중국 삼국 시대 촉한(蜀漢)의 개국 황제. 전한(前漢) 경제(景帝)의 아들인 중산정왕(中山靖王) 유승(劉勝)의 후손이다.
황족의 후예임에도 삶이 어려워 어려서부터 짚신, 돗자리 등을 만들어 팔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삼국지에 등장하는 여러 군웅들과 달리 아무런 기반도 없이 결의 형제들과 함께 거병하였다.
원소, 원술과의 동맹에도 참여하고 황건적을 토벌하는 등 여러 차례 전투에 참가하였으나 뚜렷한 업적을 이루지는 못했고 도겸, 유표, 조조에게 의탁하는 등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돌았다. 하지만 제갈량, 조자룡 등 인재를 등용하면서 서서히 자기 세력을 확보하였고 손권과 손잡고 적벽에서 조조를 대패시켜 천하 삼분지계를 완성한다. 그 후 스스로 한의 정통을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촉한의 황제가 됐으나 결의 형제인 관우와 장비가 잇따라 사망하자 그 복수를 위해 무리하게 대군을 일으켰고 결국 이릉에서 대패하여 제갈량에게 나라를 맡기고 세상을 뜬다.
조조(曹操 155년 ~ 220)자는 맹덕(孟德). 지금의 안휘성 출신으로 황건적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후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었다. 동탁 암살 실패로 세상을 떠돌던 중 원소, 원술과 동맹을 맺기도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후에 동탁이 죽자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를 옹립하였으나 그 자신은 동탁보다 더한 전횡을 휘두른다. 또 최대 군웅 세력인 원소를 관도대전에서 격파하고 화북 지방을 거의 다 손아귀에 넣으면서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르게 된다. 그 후 천하 통일을 위해 남하하였으나 손권, 유비 연합군에게 적벽에서 대패하고 그 후로는 양자강 이남으로 그 세력을 뻗지 못했다. 승상, 위왕(魏王)의 관직을 받았으나 스스로 황제에 오르지는 않았고 220년에 낙양에서 사망했다. 아들 조비(曹丕)가 뒤를 잇고 헌제에게 양위를 받아 위나라 황제가 된 뒤 태조 무황제로 추존되었다. 그동안 '난세(亂世)의 간웅(奸雄)'이라 하여 간신(奸臣)의 전형처럼 그를 평가했으나 근대에 이르러 여러 제후와 군벌 중 진정한 패자(覇者)이자 영웅으로 재평가하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관우(關羽, 160~ 219년)자는 운장(雲長). 현재의 산시성 출신으로 탁현(褶縣)에서 유비를 만나, 장비와 함께 의형제를 맺으면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 의병에 가담하고 여러 전투에 참가하였는데 단칼에 화웅의 목을 벤 일로 여러 군벌들과 조조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긴다. 후에 조조는 여러 차례 관우를 회유하려 하였으나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208년 적벽대전에서 수군을 이끌고 큰 공을 세웠으나 과거의 은혜를 갚기 위해 패퇴하는 조조를 살려 준 일화로도 유명하다. 후에 홀로 형주를 지키던 관우는 손권의 협공으로 대패하여 사망한다. 후에 유비는 관우의 복수를 위해 무리한 전쟁을 일으켜 패망의 길로 접어들고 만다. 현재 관우는 충신의 전형으로서 민중 사이에서 무신(武神)으로 숭배되고 있다.

장비(張飛, ?~221)자는 익덕(益德). 연나라 출신인 장비는 성격이 호탕하고 시원시원한 인물. 유비와 관우를 만나 의형제를 맺고 함께 한나라의 부흥을 위해 의병에 가담한다. 유비, 관우와 함께 공손찬, 공융, 도겸 휘하에서 장수로 참전하여 많은 전쟁에서 용맹을 떨쳤다. 조조가 형주(荊州)를 공격해 오자 장판교(長坂橋) 위에서 기병 20기만을 데리고 고함소리로 조조군을 물리친 일화가 유명하다. 이후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대군을 물리치는 데 큰 수훈을 세우고 유비가 익주(益州)를 공략할 때도 선봉에 서서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급한 성격과 더불어 술에 대한 집착으로 여러 차례 문제를 일으켰고 관우와 유비에게 지적을 당했으며 군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유비가 관우의 복수를 위해 대군을 일으켰을 때 부장에게 살해되고 만다.

제갈량(諸葛亮, 181~234)자는 공명(孔明).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출신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세상을 피해 은거했음에도 그 명성과 학식이 높아 와룡선생이라 불렸다. 207년에 삼고초려를 통해 유비에게 발탁된 후 천하 삼분지계를 준비한다. 다음 해에 오나라의 손권(孫權)을 설득하여 유비와 연합하게 하였고, 적벽대전에서 계략을 써서 조조의 대군을 물리친다. 유비는 점점 더 제갈량을 신임했고 황제에 오른 후에는 그를 승상으로 삼았으며 세상을 떠날 때에는 나라와 자식을 모두 부탁했다. 유비는 자신의 아들 유선(劉禪)이 황제의 재목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황제에 올라도 좋다고 유언하였으나 제갈량은 끝까지 유선에게 충성을 다하였다. 두 번에 걸쳐 출사표를 쓰고 직접 군을 지휘하여 출병하였으나 전쟁 도중 사망하고 만다. 그의 출사표는 지금까지도 역사상 가장 뛰어난 명문장으로 꼽힌다.

조운 (趙雲, ?~229년)자는 자룡(子龍). 상산군(常山郡) 출신. 8척에 이르는 큰 키에 준수한 외모를 지닌 조운은 무예가 매우 출중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창을 잘 썼다고 한다. 공손찬의 부하였던 조운은 공손찬에게 몸을 의탁한 유비를 보고 그의 부하가 된다. 유비가 장판에서 조조의 공격으로 탈출할 때 홀로 적진을 뚫고 가서 어린 유선을 구출해 온 일화가 매우 유명하다. 후에 유비가 황제가 된 후 관우, 장비, 황충, 마초 등과 함께 오호 대장군이 된다. 관우가 손권과 위나라의 협공으로 사망하자 유비는 오나라 정벌에 나서는데, 이때 조운이 나서 위나라를 먼저 치지 않으면 위태로울 것이라고 간언하였다 전해진다. 하지만 유비는 결국 조운의 말을 듣지 않았고 정벌을 강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장비마저 목숨을 잃고 만다. 유선이 황제가 된 후에 정남장군이 되었으며 고령의 나이에도 제갈량과 함께 북벌에 나섰고 229년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동탁(董卓, ? ~ 192년)자는 중영(仲潁). 지금의 감숙성 출신. 처음에는 중국의 소수 민족이었던 강족(羌族)을 토벌해 세력을 키웠다. 당시 전횡을 일삼던 환관 십상시를 제거하기 위해 외척이었던 하진의 부름을 받아 낙양으로 입성하게 된다. 그러나 그가 낙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십상시와 하진이 모두 사망한 상태였기 때문에 동탁은 힘 들이지 않고 조정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는 헌제를 옹립하고 스스로를 상국에 임명한 후 조정을 주물렀다. 동탁의 폭정이 계속되자 전국 제후들이 들고 일어나 원소를 필두로 하는 동맹군이 결성되었다. 이에 겁을 먹은 동탁은 낙양성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천도하였다. 천도 후에도 그의 만행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자 당시 조정의 사도였던 왕윤은 연환계를 쓰고 그 결과 자신의 양자였던 여포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여포(呂布, ?~198)자는 봉선(奉先). 현재의 네이멍구 출신. 원래 병주자사 정원의 수하로 있었으나 후에 동탁과 정원이 대립하자 동탁의 편에 서서 정원을 죽인다. 이때 동탁이 여포의 마음을 사기 위해 적토마를 선물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당시 적토마는 천하에서 가장 빠른 말로서 ‘사람 가운데는 여포, 말 중에는 적토마’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후에 동탁의 양자가 되어 권력을 휘둘렀다. 하지만 단순하고 귀가 얇은 성격이었던 여포는 왕윤의 연환계에 빠져 동탁을 살해한다. 헌제에게 관직을 받았으나 장안을 공격해 온 곽사, 이각에게 패해 도망친다. 후에 거처 없이 떠돌며 무용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의탁하였다가 유비의 하비성을 빼앗아 세력을 굳히는 듯했으나 조조의 군대에게 포위되었고 결국 부하들의 반란으로 조조에게 사로잡혀 처형되고 만다.

손권(孫權, 182~252)
자는 중모(仲謀). 오나라 초대 황제. 손견(孫堅)의 차남으로 형인 손책이 죽자 그 뒤를 계승했다. 조조의 세력이 강남을 향하자 대신들은 화의를 청하였으나 주유와 노숙이 전쟁을 주장하자 그 뜻을 따랐다. 손권은 유비와 손잡고 적벽대전에서 조조를 대패시킨 후 확고한 위상을 세웠고 스스로 오나라의 황제가 되었다. 형주의 귀속 문제로 유비와 마찰이 계속 되던 중, 조조와 결탁하여 관우를 죽이고 형주를 빼앗았다. 하지만 태자가 급작스럽게 죽는 바람에 후계 쟁탈전이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국력이 많이 쇠약해졌다. 결국 10살의 막내 아들을 태자로 세운 후 71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주유(周瑜, 175년~210년)자는 공근(公瑾). 노강군 서현 출신. 명문가 출신의 주유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신동으로 이름이 높았다. 손견의 장자인 손책과 형제처럼 지냈다. 손견이 죽은 후 손책의 수하가 되어 여러 전공을 세운다. 손책의 뒤를 이어 동생 손권(孫權)이 정권을 잡자 그에게도 충성을 다했다. 조조가 강남으로 압박해 왔을 때 노숙과 함께 항전을 결사하였고 손권을 설득한다. 때마침 손권을 찾아온 제갈량과 손잡고 적벽대전을 대승으로 이끌고 오나라의 기반을 닦는다. 이때 자신보다 뛰어난 제갈량을 질투하며 하늘을 원망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후에 삼국 통일을 이루겠다는 꿈을 품고 익주 정벌을 나섰다가 돌아오는 중 36세로 요절하고 만다. 당대의 미녀로 꼽히는 소교를 아내로 두었다.

사마의(司馬懿, 179~251)자는 중달(仲達). 지금의 하남성 온현 출신.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난 사마의는 학식이 깊어 명성이 자자했다. 이를 들은 조조는 그를 초빙해 태자의 스승으로 삼았으며, 뛰어난 안목과 책략으로 조정에서 큰 활약을 했다. 조조가 죽은 후 조조의 아들 조비를 섬겼으며 조비가 죽은 후에는 조예를 보좌하였다. 이때에 대장군이 되어 제갈량이 이끄는 촉한의 공격을 물리치기도 하였다. 후에 조조, 조비, 조예, 조방을 모두 섬긴 4대 충신으로 추앙 받아 무양후에 봉해졌다.

소교(小喬).언니 대교와 더불어 당대의 최고 미인 자매로 꼽힌다. 주유는 손책과 함께 형주의 많은 지역을 점령하였는데 그때 교공(橋公)의 두 딸을 생포하였다. 이를 계기로 언니 대교는 손책의 아내가 되었고 동생 소교는 주유의 아내가 되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적벽대전(赤壁大戰)이 발발하기 전, 손권의 참전을 유도하기 위한 제갈량의 꾀에 소교가 등장한다. 제갈량(諸葛亮)은 조조가 지은 동작대부에, 조조가 대교와 소교를 탐한다는 내용을 집어넣어 불렀고 이를 들은 주유가 대노하여 전쟁에 참여했다고 전해진다.
초선(貂蟬)한나라의 사도 벼슬을 하고 있던 왕윤의 양녀. 원래 충신의 후예였던 초선은 왕윤의 눈에 들어 양녀가 된다. 우연한 계기로 여포가 초선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왕윤은 여포에게 초선을 시집 보내기로 약속한 후 동탁을 집으로 불러들여 초선을 만나게 한다. 초선의 미모에 빠진 동탁은 초선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고 여포는 초선을 되찾기 위해 양아버지 동탁을 죽인다. 이로서 한나라를 부흥시키겠다는 왕윤의 계략은 성공하지만 초선의 말년은 비참했다고 한다. 사실 초선은 정사에는 등장하지 않는 허구의 인물로 헌제의 시녀와 추문이 있었던 동탁의 이야기를 삼국지연의에서 각색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초선은 담비의 꼬리와 매미의 날개라는 뜻인데 이는 궁중 관리의 의복에 다는 장식이다. 아마도 관리의 관복을 담당하는 궁녀였을 것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손상향(孫尙香)손견의 딸이자 손권의 누이. 상향이라는 이름은 경극에 등장하는 것이며 손부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문무를 겸비한 여걸로 유명한 손상향은 평소에도 칼을 차고 다녔으며 오라비인 손권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손권의 권유로 유비에게 시집을 갔다. 훗날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후 손권의 계략으로 오나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때 유비의 아들 유선을 데려가려고 하다가 조운 때문에 실패하고 그 일로 인해 유비와는 다시 만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주요인물

1) 촉나라
●유비 현덕(劉備 玄德 161~223) 촉한 황제
●관우 운장(關羽 雲長 ?~219) 촉한 전장군
●장비 익덕(張飛 益德 ?~221) 촉한 거기장군
●제갈량 공명(諸葛亮 孔明 181~234) 촉한 승상
●조운 자룡(趙雲 子龍 ?~229) 촉한 진군장군
●황충 한승(黃忠 漢升 ?~220) 촉한 후장군
●방통 사원(龐統 士元 179~214) 촉한 군사중랑장
●서서 원직(徐庶 元直 ?~?) 위 어사중승
●간옹 헌화(簡雍 憲和 ?~?) 촉한 소덕장군
●손건 공우(孫乾 公祐 ?~?) 촉한 병충장군
●진진 효기(陳震 孝起 ?~235) 촉한 성양정후
●이적 기백(伊籍 機伯 ?~?) 촉한 소문장군
●법정 효직(法正 孝直 176~220) 촉한 상서령
●허정 문휴(許靖 文休 ?~222) 촉한 사도
●장완 공염(蔣琬 公琰 ?~246) 촉한 대사마●미축 자중(?~220) 촉한 중신
●미방 자방(?~?) 촉한 강릉 태수
●초주 윤남(초周 允南 201~270) 촉한 광록대부
●등지 백묘(鄧芝 伯苗 ?~251) 촉한 거기장군
●동윤 휴소(董允 休昭 ?~246) 촉한 보국장군
●비위 문위(費褘 問偉 ?~253) 촉한 대장군
●강유 백약(姜維 伯約 202~264) 촉한 대장군
●관평(關平 ?~219) 관우의 아들
●관흥 안국(關興 安國 ?~?) 관우의 아들, 촉한 시중
●장포(張苞 ?~?) 장비의 아들
●요화 원검(寮化 元儉 ?~264) 촉한 우거기장군
●이엄 정방(李嚴 正方 ?~234) 촉한 표기장군
●오의 자원(吳懿 子遠 ?~237) 촉한 거기장군
●위연 문장(魏延 文長 ?~234) 촉한 정서대장군
●왕평 자균(王平 子均 ?~248) 촉한 진북장군
●장익 백공(張翼 伯恭 ?~264) 촉한 좌거기장군
●장억 백기(張억 伯岐 ?~?) 촉한 탕구장군
●마충 덕신(馬忠 德信 ?~249) 촉한 진남장군
●오반 원웅(吳班 元雄 ?~?) 촉한 표기장군
●마량 백상(馬良 187∼222) 촉한 시중, 모사(謀士)
●마속 유상(馬謖 190∼228) 촉한 대장
●마초 맹기(馬超 176∼222) 촉한 표기장군
●마충 덕신(馬忠) 촉한 장군

2) 위나라
●조조 맹덕(曹操 孟德 155~220) 위왕
●조인 자효(曹仁 子孝 168~223) 위 대사마
●하후돈 원양(夏候惇 元讓 ?~220) 위 대장군
●순욱 문약(筍彧 文若 163~212) 조조의 문신, 광록대부
●곽가 봉효(郭嘉 奉孝 170~207) 조조의 모사
●가후 문화(賈珝 文和 147~223) 위 태위
●허저 중강(許楮 仲康 ?~?) 위 모향후
●장합 준예(張합 儁乂 ?~231) 위 정서, 거기장군
●악진 문겸(樂進 文謙 ?~218) 위 우장군
●우금 문칙(于禁 文則 ?~221) 위 안원장군
●장료 문원(張遼 文遠 165~221) 위 진양후
●서황 공명(徐晃 公明 ?~227) 위 양평후
●조비 자환(曹丕 子桓 187~226) 위 문제
●조앙 자수(曹昻 子脩 ?~197) 조조의 장남
●조창 자문(曹彰 子文 ?~223) 위 임성왕
●조식 자건(曹植 子建 192~232) 위 진사왕
●조홍 자렴(曹洪 子廉 ?~232) 위 표기장군
●조진 자단(曹眞 子丹 ?~231) 위 대사마
●조휴 문열(曹休 文烈 ?~228) 위 대사마
●순유 공달(筍攸 公達 157~214) 위 상서령
●정욱 중덕(程昱 仲德 ?~?) 위 위위
●모개 효선(毛介 孝先 ?~?) 위 상서복야
●진군 장문(陳군 長文 ?~235) 위 사공
●종요 원상(種繇 元常 151~230) 위 태부
●만총 백녕(滿寵 伯寧 ?~242) 위 태위
●유엽 자양(劉曄 子楊 ?~?) 위 태중대부
●동소 공인(董昭 公仁 156~236) 위 사도
●양수 덕조(楊修 德祖 175~219) 위 창조속주부
●화흠 자어(華欽 子魚 157~231) 위 태위
●진교 계필(陳矯 季弼 ?~237) 위 사도
●손례 덕달(孫禮 德達 ?~?) 위 사공
○문흠 중약(文欽 中若 ?~?) 위(魏) 장군
●하후연 묘재(夏候淵 妙才 ?~219) 위 정서장군
●이전 만성(李典 曼成 ?~?) 위 파로장군
●가규 양도(賈逵 梁道 174~228) 위 건위장군
●방덕 영명(龐德 令明 ?~219) 위 관문정후
●곽회 백제(郭淮 伯濟 ?~255) 위 양곡후
●학소 백도(학昭 伯道 ?~?) 위 잡호장군
●등애 사재(鄧艾 士載 ?~264) 위 태위
●하후패 중권(夏候覇 仲權 ?~?) 촉 거기장군
●종회 사계(種會 士季 225~264) 위 사도
○만총 백녕(萬寵 伯寧) 조조(曹操) 막하 모사.
○맹건 공위(孟建 公威) 남양(南陽) 숨은 인재. 위 문신
○맹달 자경(孟達 子慶 ?∼228) 유비-조비 장군

3) 오나라
●손견 문대(孫堅 文臺 156~192) 장사태수 - 파로장군
●손책 백부(孫策 伯符 175~200) 토역장군
●손권 중모(孫權 仲謨 182~252) 오 황제
●주유 공근(周瑜 公瑾 175~210) 건위중랑장 - 편장군
●노숙 자경(魯肅 子敬 172~217) 횡강장군
●정보 덕모(程普 德謨 ?~?) 탕구장군
●육손 백언(陸遜 伯言 183~245) 대도독 - 승상
●장소 자포(張昭 子布 156~236) 보오장군
●제갈근 자유(諸葛瑾 子瑜 174~241) 장사 - 대장군
●장굉 자강(張紘 子網 ?~?) 장사
●고옹 원탄(顧雍 元嘆 168~243) 승상
●육적 공기(陸績 公紀 187~219) 진조연 - 편장군
●설종 경문(薛綜 敬文 ?~243) 태자소부
●우번 중상(虞번 仲翔 164~233) 기도위
●여범 자형(呂範 子衡 ?~228) 건위장군 - 대사마
●보즐 자산(步櫛 子山 ?~247) 승상
●감택 덕윤(감澤 德潤 ?~243) 태자대부
●정병 덕추(程秉 德樞 ?~?) 태상
●제갈각 원손(諸葛恪 元遜 203~253) 대장군
●한당 의공(韓當 義公 ?~223?) 도독
●황개 공복(黃蓋 公覆 ?~?) 편장군
●주치 군리(朱治 君理 156~224) 안국장군
●여몽 자명(呂蒙 子明 178~219) 남군태수
●진무 자열(陳武 子烈 ?~215) 편장군
●장흠 공변(張欽 公변 ?~219) 우호군
●주태 유평(周泰 幼平 ?~?) 분위장군
●반장 문규(潘璋 文珪 ?~234) 우장군
●감녕 흥패(甘寧 興覇 ?~?) 절충장군
●태사자 자의(太史慈 子義 166~206) 건창도위
●능통 공적(凌統 公績 ?~?) 편장군
●서성 문향(徐盛 文嚮 ?~?) 안동장군
●주환 휴목(朱桓 休穆 178~239) 전장군
●정봉 승연(丁奉 承淵 ?~271) 대장군
●육항 유절(陸抗 幼節 226~274) 건무교위 - 대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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