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29일 토요일

사전 , 辭(事)典.

조선어사전, 朝典.


1938년에 간행한 『조선어사전』을 수정증보하여, 
1940년에 출간한 『수정증보판 조선어사전』


조선어사전 수정증보판(속표지)
구분국어사전
저자문세영(文世榮) 편찬
출간 시기1938
출판사조선어사전간행회()
문세영()이 편찬한 국어사전. A5판. 1938년 조선어사전간행회()에서 간행하였다. 권두에 ‘지은이말슴’ 3면, ‘일러두기’ 5면, 본문 1,634면, 권말에 ‘한문글자 음찾기’ 26면, ‘이두()찾기’ 21면 등 총 1,689면이다. 본문은 4단으로 세로로 짜여 있다.

이 사전은 수록어휘가 10여만을 헤아리며 배열방식이나 주석의 내용도 세련되어 있고 현대사전으로서의 면목을 갖추고 있다. <한글맞춤법통일안>에 의하여 표기한 최초의 사전이기도 하여 당시의 표준어 보급에도 기여한 바 크다. 어휘수집과 주석은 10여년의 각고 끝에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주석 · 체재 · 인쇄 · 교정 과정에서는 편자와 교분이 있었던 이윤재() ∙ 한징() 등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표기는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준수하였는데, 일반 열람자를 위하여 새로 제정된 맞춤법과 대조하여 제시하기도 하였다.

즉, 돗치다→돋히다. 업다→엎다 또는 없다 등으로 되어 있다. 외래어 표기는 사안()인듯한 표기가 가끔 나타난다. 가령 ‘넬뽈(net ball)’, 그리고 유성음 ‘g, d, b’를 일률적으로 된소리로 표기한 따위가 그것이다. 복합어는 각 형태소를 짧은 선으로써 나타내었다. 장음표시는 해당음절 왼쪽에 쌍점(ː)으로 하였는데, 제2음절 이하에서 단음화하였을 때에도 그것이 원래 장음이면 그대로 표시하였다(보기 : 번ː호(), 옛ː말 등).

품사는 명사 · 대명사 · 자동사 · 타동사 · 지정사 · 접속사 · 부사 · 형용사 · 감탄사 · 조사의 9품사로 나누고, 수사는 명사에 포함시키고 관형사는 접두사로 처리하였다. 그리고 접미사와 접두사로 표제어로 삼아 풀이하였는데, 접두사에 딸린 파생어들은 총독부편 《조선어사전()》에서와 같이 따로 표제어로 삼지 않고 그 접두사 밑에 일괄적으로 벌여 풀이하였다.

배열순서는 <한글맞춤법통일안>에 준하였는데, 초성의 경음은 따로 세우지 않고 평음과 동등하게 다루었다. 어휘는 순수국어 · 한자어 · 외래어 · 옛말 · 이두 · 방언, 그리고 속담 · 성구() 등이 포함되어 있고 일부 고유명사들이 포함되었다. 명사의 주석은 명사로 끝내어 풀이하였고, ‘-하다’ 따위를 붙여 동사나 형용사가 되는 부수항목의 풀이는 의존명사 ‘것’으로 끝냄을 원칙으로 하였다. 그리고 동사 · 형용사의 풀이는 서술어로 끝내되 동사는 동사 서술어로, 형용사는 형용사 서술어로 풀이하였다. 발음의 표시는 대체로 표기와 달리 발음되는 경우에 한정하였고, 변칙활용의 경우에는 변칙의 종류를 표시하고서 ‘아/어, ㄴ/은(또는 ‘니, ㄴ’)’과의 결합형을 표시하였다.

이 사전은 1940년 12월에 약 1만단어를 추가하고 일부 주석을 보완하여 약 200여면을 증면, 1,854면으로 하여 수정증보판을 출간하였는데, 출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여 저작권이 강의영()에게로 넘어갔다.
조선어사전 [朝鮮語辭典] (국어국문학자료사전, 1998., 한국사전연구사)


사전 , ()典.

새우리말큰사전 / 신기철
1947년 조선어학회가 제1권을 간행한 한글사전. 1950년 ≪큰사전≫으로 개제했다.
유형개념용어
단어를 모아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고 그것에 대하여 해설한 책.

사전()은 단어의 의미·품사·용법·어원·표기법 등을 해설한 책이고, 사전()은 사상()의 체계적 분석·기술에 의한 지식 및 정보를 제공하는 책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이 엄밀하게 그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자()를 부수와 획수에 따라 배열, 해석한 책은 따로 옥편() 또는 자전()이라 한다.
사전은 기준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누어지나 대체로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1) 배열의 기준에 따라 
① 문자(로마자·한자·한글 등)를 기준으로 하여 그로부터 발음이나 의미를 알 수 있도록 한 것, 
② 발음을 기준으로 하여 그로부터 문자나 의미를 알 수 있도록 한 것, 
③ 의미에 따라 분류하고 그로부터 문자나 발음을 알 수 있도록 한 것.

2) 색인() 및 설명어에 따라 
① 같은 언어로 된 것(국어사전 등), 
② 서로 다른 언어로 된 것(대역사전, 곧 영한사전·한독사전 등).

3) 수록어()의 성격에 따라 
① 보통사전, 
② 특정부분의 지식에 중점을 둔 특수사전(발음사전·액센트사전·어원사전·인용문사전·유의어사전·반의어사전·관용어사전·고어사전·방언사전 및 역사·법률·문학·언어학·음악·건축·미술·철학·동물학·식물학·수학·천문학·지명·인명 등 각 전문어를 수록, 해설한 사전).
영국의 사전은 라틴어 단어에 영어 번역을 붙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용어해(glossary)의 명칭으로 된 것은 8세기경의 것도 있으나, 현재 알려진 최초의 영라사전()은 1440년경 편집된 ≪Promptorium Parvulorum≫으로 약 2,000단어를 수록하고 있다.
나영사전()은 1460년경의 ≪Medulla Grammatice≫가 최초라 일러진다. 
그 뒤 대역사전의 전통은 1600년경에 확립되었고, 이런 일들이 영어사전 출현의 지반을 이루었다.
최초의 영어사전은 코드리(Cawdrey, R. )의 ≪어려운 영어단어의 알파벳표 A TableAlphabetical of Hard Words≫로서 수록 어휘수는 약 3,000이었다. 

코드리 이후 18세기까지 많은 사전이 간행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난해어(hard word)사전의 성격을 띠는 것이었고, 일상어는 독자가 당연히 아는 것으로 생각하여 생략하였다.

교양인이 사용하는 모든 단어를 모아 이를 정의하려는 시도는 베일리(Bailey,N.)의 ≪Dictionarium Britannicum≫(1730) 등에서부터라 할 수 있다. 

유명한 존슨(Johnson,S.)의 ≪A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1755)는 베일리의 사전을 기저로 하여 만든 것이다.
이는 당시까지의 사전편찬자들의 업적을 집대성한 것이며, 영어사전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이 사전은 당대를 전후한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서 있었던 주관주의적 사전 편찬태도를 보이고 있다.
곧 사전의 편자는 자기의 주관적 판단에 의하여 채록어()의 취사를 결정하고, 또한 채록어에 대해서도 옳고 그르다는 가치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사전편찬자는 주관적인 호오()의 판단을 버리고 모든 단어를 과학적·역사적으로 수집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역사주의적인 주장을 명확한 형태로 발표한 사람은 트렌치(Trench, R. C.)이다. 
<영어사전의 결함에 대하여 On some Deficiencies in our English Dictionaries>(1857)라는 영국언어학협회 (Philological Society)의 발표에서 사전편찬자는 역사가(historian)이어야지 비평가(critic)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머리(Murray,J. A. H.)가 편찬한 ≪A New English Dictionary≫(1884∼1928)는 이러한 주장이 결실된 위대한 사전이다. 
이 사전은 총 10권, 1만 5488쪽의 방대한 규모로서 수록 어휘는 41만 4825개 낱말이고, 인용한 용례는 182만 7306개로 되어 있다.
역사적 원칙을 철저히 따른 이 영어사전은 통칭 N.E.D. 로 약칭되며, 옥스퍼드대학 출판부에서 간행되었으므로 붙여진 별명 ≪옥스퍼드영어사전 The Oxford English Dictionary≫의 약칭 O.E.D. 로도 불리다가, 1933년 증보판을 내면서 정식명칭을 ≪옥스포드영어사전≫으로 바꾸어 근년에는 흔히 O.E.D.로 약칭되고 있다.

독일에서는 19세기에 발달한 과학적 언어학의 성과와 함께 이를 실행에 옮긴 그림(Grimm, J.) 형제에 의하여 1852년부터 ≪독일어사전 Deutsches Worterbuch≫이 간행되게 되었다. 
그림 형제는 15세기경부터의 문학어를 집중적으로 기술하고, 이에 어원적·역사적 설명을 하고 중요한 방언적 어휘를 추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프랑스의 경우는 리트레(Littre, E.)의 ≪프랑스어사전 Dictionaire de la LangueFranaise≫(1863∼1872)이 그림 형제의 ≪독일어사전≫과 같은 방침으로 만들어졌다. 

최신의 사전으로 주목되는 것으로는 로베르(Robert, P.)의 ≪Dictionaire Alphabetique etAnalogique de la langue Franaise≫(1951)가 있다.

문자로서의 한자는 형()·음()·의()의 세 가지 면에서 해설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① 한자 자체()의 해설을 주로 한 자서(), 

② 한자의 자음() 해설을 주로 한 운서(), 

③ 고전어()를 주석하는 훈고()의 자서, 

④ 고실()과 사물을 분류, 열거한 유서(), 

⑤ 그 밖에 위 여러 자료를 하나의 책으로 묶은 종합적인 실용자서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들은 한자를 주축으로 한 것으로 중점은 고어()에 놓여 있었다.  
현대에 접어들면서 처음으로 

⑥ 구어()에 중점이 놓여 한자보다 오히려 언어 자체를 해설하는 사전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자체를 주로한 자서에는 ≪설문해자 ≫가 있다. 
이는 후한()의 허신()이 서기전 99년에 지은 것이다. 
540부()로 나누어 편방()에 따라 9,353자를 분류하였다.

자음을 주로 한 운서는 수()의 육법언() 등이 지은 ≪절운 ≫(601)에서 비롯되어 당()의 손면()이 지은 ≪당운 ≫(전하지 않음.), 북송()의 척륜() 등이 지은 ≪광운 ≫(1008), 그리고 ≪광운≫의 약본인 ≪예부운략 ≫(1037), 그 증보본인 ≪집운 ≫(1066) 등이 만들어졌다.

훈고의 자서는 전한()의 ≪이아 ≫에서 비롯되어 ≪광아 ≫·≪비아 ≫ 등으로 이어졌으며, 청나라 완원()의 ≪경적찬고 ≫에 이르러 많은 고전어와 그것의 훈해()를 집성한 편리한 사서가 되었다.

오늘날의 백과사전에 해당하는 유서는 ≪이아≫에 기원을 두는 것으로, 그 뒤 당나라 두우()의 ≪통전 ≫, 송나라 이방()의 ≪태평어람 ≫(977) 등으로 이어졌다.
종합적인 실용자서의 최고본은 양()나라 고야왕()의 ≪옥편 ≫(543)이지만 전해지지 않는다. 

현재로는 송나라 진팽년() 등의 ≪대송광회옥편 ≫이 최고본이다.
이 밖에 명나라 매응조()의 ≪자휘 ≫ 등이 있었으며, 실용에 적합한 대표적인 것으로는 청나라의 장옥서() 등이 왕명에 의하여 편집한 ≪강희자전 ≫(1710년 완성, 1716년 간행)을 들 수 있다. 

이 책은 전12집, 매집() 3권 119부를 설정, 부수()·부중() 다 같이 필획순으로 배열하고 있다.
문자보다는 언어 그 자체를 해설한 사서는 중화민국에 들어와 비로소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 최초의 것은 육이규() 등이 편집한 ≪사원 ≫(1915)이며, 이 밖에 육비규() 등의 ≪사해 ≫(1936), 주기봉()의 ≪사통 ≫(1934), 왕이() 등에 의한 ≪국어사전 ≫(1943) 등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사전은 종래 운서와 옥편에 국한되었고, 한글을 기초로 단어를 배열, 주해하는 진정한 의미의 사전은 주로 외국인의 손에 의하여 비롯된 현대적 사전들에서 그 전통을 찾게 된다. 
≪조선어사전 ≫(1920)은 국어를 한글 자모순으로 배열, 이에 일어로 주석을 붙인 사전이다.

1911년 조선총독부 취조국에서 편찬에 착수, 박이양()·현은()·송영대()·김돈희() 등이 위원이 되어 편찬한 것으로, 비록 일어로 주석되었으나 최초의 본격적인 국어사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수록어휘는 5만 8639어로 한자어 4만 734어, 고유어 1만 7178어, 이두 729어로 되어있다.

이 밖에 한국인에 의하여 이루어진 사서로는 
김동성()의 ≪최신선영사전 ≫(1928), 조선어연구회의 ≪선화신사전 ≫(1930), 
이종극()의 ≪모던외래어사전 Modern≫(1937) 등이 있다.
그 뒤 최초의 한한사전()으로 1938년 문세영()의 ≪조선어사전 ≫이 간행되었고, 1947년 이윤재()의 ≪표준조선말사전≫이 나왔다.

국어의 정리와 통일체로서의 역사적 의의가 큰 조선어학회의 ≪조선말큰사전≫(1950년 ‘큰사전’으로 개제)은 1947년 제1권이 간행되었고, 1957년에 전 6권이 완간되었다.

이 사전의 편찬작업은 1929년 10월 31일에 108명의 발기로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함으로써 비롯되었는데, 권덕규() 외 32명의 사업추진준비위원과 신명균()·이극로()·이중화()·최현배() 등 5명의 집행위원을 두었다.

1936년 4월 이 사업이 조선어학회로 넘어가면서 이극로·이윤재·정인승(주무)·한징()·이중화의 5명이 전임 집필위원이 되었으며(뒤에 권승욱()·권덕규·정태진() 증원), 1942년 가을까지 어휘카드 대부분의 초벌 풀이가 끝나 일부 조판까지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에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이 일어나 광복되었을 때는 이들 원고가 분실되고 말았다. 

광복 후 다시 원고를 찾고 정리하여 1947년 10월 9일 그 
첫째권을 을유문화사()에서 
≪조선말큰사전≫(본문 564면)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하기에 이르렀고, 
둘째권은 1949년 5월 5일에, 
셋째권은 1950년 6월 1일에 각각 간행하였다.
6·25 등의 사정으로 6권 전부를 완간한 것은 1957년 6월 30일이었는데, 이때는 ≪큰사전≫(한글학회 지음)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사전의 편찬간행은 <한글맞춤법통일안>(1933)과 <사정한 조선어표준말모음>(1936)과 함께 우리 어문생활의 기초를 확립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이 사전이 간행된 뒤에 많은 국어사전이 나왔다. 

외국인에 의해서는 대역사전이 편찬되었는데, 서양인의 한국어사전은 대부분 기독교 선교사의 손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푸칠로의 ≪노한사전≫은 이때까지 출판된 구주어()·한국어 대역서의 최초의 것이다.

리델(Ridel, F.C.) 등의 ≪한불자전≫은 비교적 체재가 구비된 것이나, 이것보다 스코트의 ≪영한사전≫을 거쳐 정비된 게일(Gale, J.S.)의 ≪한영자전≫이 당시 가장 훌륭한 사전이었다.

≪한불자전≫
≪한영자전≫은 주석이 외국어이나 그 체재로 보아 국어사전의 선구적 존재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일본인의 손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은 일한사전()에 치우쳤다. 
≪일한회화사전≫은 표제어가 4,500여, ≪일한이로하사전≫은 7,100여, ≪선역국어대사전≫은 20여만에 이르는 대사전이었다.
국어의 보통 사서 외에 백과사서적() 성격을 띤 책들은 그 항목배열에 따라 
의미상 분류하는 
유해식()과 어휘 끝자의 운()을 기준으로 분류하는 
운부식()으로 나눌 수 있는데, 다음과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유해식에 
≪지봉유설≫(, 1614)·
≪유원총보 ≫(, 1646)·
≪고사신서 ≫(, 1771)·
≪성호사설유선 ≫(, 연도 미상)·
≪재물보 ≫(, 정조조)·
≪물보 ≫(, 1802)·
≪물명유고 ≫(, 순조조)·
≪송남잡지 ≫(, 순조조)·
≪오주연문장전산고 稿≫(, 헌종조)·
≪만가총옥 ≫(편자·연도 미상)이 있고, 
≪대동운부군옥≫(, 1798)·  운부식,
≪옥휘운고 ≫(, 연도 미상)가 있다.

특수한 사항에 관한 사상()을 채록, 설명한 특수사서()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법제류에 
≪동국문헌비고≫(, 1770)·
≪증보문헌비고≫(, 1908)·
≪반계수록≫ (, 1737), 

지리류에 
≪동국여지승람≫( 등, 1530), 

처세류에 
≪증보산림경제≫(, 1766), 

전기류에 
≪해동명장전 ≫(, 1816)·
≪고려명신전≫(, 1822)·
≪국조인물지 ≫(, 1909), 

의서류에 
≪동의보감≫(, 1613)·
≪제중신편 ≫(, 1799), 

서지류에 
≪조선도서해제≫(조선총독부, 1919)·
≪조선서지 Bibliographie Coreene≫(Courant, M., 1890) 등이다.

운서는 
≪삼운통고 ≫가 가장 오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는 고려말 충렬왕대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106운 ≪예부운략 ≫(1226)을 대본으로 한 것이다.
최근에는 특수사전도 여러 가지가 간행되었다. 
유재원의 ≪우리말 역순사전≫(1985), 
남영신의 ≪우리말 분류사전(전4권)≫(1987∼1992), 
박용수의 ≪겨레말 갈래사전≫(1993), 
남광우·이철수·유만근의 ≪한국어 표준발음사전≫(1984), 
한국방송공사의 ≪표준한국어 발음대사전≫(1993), 
박용수의 ≪겨레말용례사전≫(1996), 
남광우의 ≪고어사전≫, 
유창돈의 ≪이조어사전≫(1964), 
홍윤표·송기중 등의 ≪17세기 국어사전≫(1995), 
이기문의 ≪속담사전≫(1962), 
김민수 편저의 ≪우리말 어원사전≫, 
김재홍 편저의 ≪한국현대시 시어사전≫(1997), 
김윤식·최동호 편저의 ≪한국현대소설 소설어사전≫(1998) 등이 그것이다.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 편의 ≪국어국문학사전≫(1974), 
정병욱 편의 ≪시조문학사전≫(1966), 
장삼식의 ≪대한한사전≫(1964),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의 ≪한국 한자어사전(전4권)≫(1997), 
한국문화 상징사전 편찬위원회의 ≪한국문화상징사전≫(1992), 
이훈종의 ≪민족생활어사전≫(1993), 
이홍직이 편한 ≪국사대사전≫(1963) 등이 있다.
한글학회에서 펴낸 ≪지명총람(전20권)≫(1966∼1986)은 대표적인 지명사전이라 할 것이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펴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한국학의 압축판이라 할 것이다.

문헌

  • 『국어학사』(김민수, 일조각, 1980)
  • 『국어사전편찬론』(조재수, 과학사, 1984)
  • 「국어사전사편고」(이병근, 『백영정병욱선생화갑기념논총』, 1982)
  • 「말모이의 편찬에 대하여」(김민수, 『동양학』 13, 1983)
  • 「국어사전편찬의 역사」(이병근, 『국어생활』 7, 국어연구소, 1986)
  • 「사전에 대하여」(이응백, 『국어생활』 7, 1986)
  • 「최초의 국어사전 ≪국한회화≫에 대하여」(홍윤표, 『백민전재호박사화갑기념국어학논총』, 1986)
  • 「국어사전의 현황과 그 편찬방식에 대하여」(남기심, 『사전편찬학연구』 1, 탑출판사, 1987)
  • 「한국어사전 편찬과 문답 정보」(홍재성, 『어학연구』 23-1, 서울대학교 어학연구소, 1987)
  • 「국어사전 편찬과 문법형태소의 처리」(이상복, 『사전편찬학연구』 2, 1988)
  • 『朝鮮語學史』(小倉進平, 刀江書院, 1964)
  •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편찬원칙과 형성과정」(이상섭, 『사전편찬학연구』 1, 1987)
  • Dictionaries, Lexicography and Language Learning(Robert Ilson, ed., Oxford:Pergaman Press, 1985)
  • Lexicography:An Emerging International Profession(Robert Ilson, ed., Manchester: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85)


조선어사전 수정증보판

조선어사전 수정증보판
1938년에 간행한 『조선어사전』을 수정증보하여, 1940년에 출간한 『수정증보판

사전 [辭(事)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속담 , 俗談.

속담俗談.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예로부터 민간에 전하여 오는 비유적인 짧은 글귀.


속담()은 시대정신이나 민중의 삶의 지혜와 가치가 녹아 있는 함축된 문장으로 된 글귀를 말한다. 
속담은 누가 언제 만든 것인지 알 수 없다.  
지역에 따라 생활양식과 정신이 짙게 배인 민중들의 공동 소작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계급을 풍자하거나 남성과 여성의 차등성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드러나기도 한다.


속담은 사람들이 일상생활 등에서 사용하는 말을 간결하고도 비유적으로 형상적인 언어 형식으로 표현한 구비() 단문이다. 
속담은 표현과 기능에 따라 격언()과 이언()으로 나눌 수 있다.

격언은 사회적·역사적인 경험이 정식화된 것으로서, 실천적인 규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격언은 그 자체로서 완전한 문장을 이루고 있으며, 대개 교훈적인 내용을 주제로 삼고 있으며, 서술문·명령문·의문문 등으로 표현된다. 
“시작이 반이다”, 
“아는 길도 물어 가라”, 
“공든 탑이 무너지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언은 주로 현실을 비유하는 데 사용될 뿐 교훈적인 내용은 담고 있지 않다. 
이언은 대체로 사물이나 현상의 실태나 본질, 또는 직접적인 형상을 짧은 언어 형태로 비유하고 형용하기 때문에 불완전한 문장으로 표현된다. 
“빛 좋은 개살구”, 
“옷이 날개”, 
“그림의 떡”,
“약방에 감초”,
“개밥에 도토리”, 
“벙어리 냉가슴 앓듯”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속담 역사

『삼국사기』의 「온달전()」에 나오는 “한 말의 곡식도 찧어서 함께 먹을 수 있고, 한 자의 베도 기워서 같이 입을 수 있다”라는 속담은 곤궁한 생활 속에서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 나가는 과정에서 체험한 생활의 교훈이 담겨 있다.

『삼국유사』의 「수로부인전()」에 나오는 “뭇 사람의 말은 쇠까지 녹일 수 있다”는 속담은 대중의 말이 씨가 되고 힘이 된다는 일종의 주술성과 예언성을 보여 주는 속담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삼국 당시에 전했던 속담들은 대개가 일상생활의 체험과 거기에서 획득한 어떤 교훈이나 진리 등을 담고 있다. 

통일신라, 고려 시대를 거치면서 속담은 더욱 활발하게 창조되었으며, 주제도 매우 다양해졌다. 
발해 사람들이 창조한 “발해의 사람 셋이면 범 한 마리를 당한다”라든가, 
통일신라의 속담 “내일 바빠 한댁 방아”라든가, 
『위앙전에 대한 평론』에서 인용한 고려 시대의 속담 “원수의 말을 어찌 믿으랴”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자료를 통해 당대 사회의 역사적·문화적 현상 등을 추적할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역사적으로 전승되어 왔던 속담들을 정리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현존하는 자료에서 성현()[1439~1504]의 『용재총화()』를 속담 정리본의 가장 고형으로 볼 수 있다. 
성현은 『용재총화』에서 같은 의미를 가진 속담들을 한데 묶어서 소개하고 있다. 
“하루 내내 걱정거리는 이른 아침에 먹은 술이요, 일 년 내내 걱정거리는 발에 맞지 않는 신이요, 
일생 내내 걱정거리는 성질 사나운 아내라” 하였고,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배부른 돌담, 수다한 아이, 손 큰 아낙네”라고 하면서 “말은 비록 상스러우나 역시 격언이다”라고 하였다.

성현의 뒤를 이어서 조선 중기의 학자 어숙권()의 『패관잡기()』를 비롯하여 홍만종()[1643~1725]의 『순오지()』, 이덕무()[1741~1793]의 『청장관전서()』에서 속담의 정리가 속속 이루어졌다.

이후 속담의 수집 및 정리는 정약용()[1762~1836]에 의해서 크게 진전되었다. 
정약용은 당대 서민들의 삶을 관찰하면서 속담을 수집·정리하였고, 이를 『이담속찬()』으로 편찬하였다. 

『이담속찬』에 210여 편의 속담을 싣고 있는데, 
“농사꾼은 굶어 죽어도 종자를 베고 죽는다”, 
“말 잃고 외양간 고친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내 배 부르면 종이 배고픈 줄 모른다”, 
“사흘 굶어 도적질 안 하는 놈 없다”,
“지렁이도 디디면 꿈틀한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승되고 있는 자료들이 많다.

1914년 일제 강점기에 다카하시 도루[]가 쓴 『조선속담집』은 1,300여 개의 조선 속담을 조사한 자료집으로, 조선인들의 속담 속에 비친 조선인들의 의식을 부정적 시각에서 타자화하여 천박하고 더러운 조선인으로 폄하하기도 하였다.

근래에 편찬된 『속담사전』에는 약 1만여 수에 가까운 속담이 수록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속담이 얼마나 풍부한지를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지역의 속담

1) 이중성과 양면성 
 [앞에서 하는 행동과 뒤에서 하는 행동이 다름]

-뒤통수 때리 놓고 배를 만친다.  [뒤통수 때려놓고 배를 어루만진다.]

-앞에서 꼬랑대기 흔드는 개가 뒷 발꿈치 문다.  [앞에서 꽁지를 흔드는 개가 뒷 발꿈치를 문다.]

-간에 붙었다 콩팥에 붙었다 한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

-똥꾸멍으로 호박씨 깐다.  [똥구멍으로 호박씨 깐다.]


2) 경계와 경각심   
 [만사에 주의를 기울일 것]

-호랭이한테 물리 가도 정신을 차리야 된다.  [호랑에게 물려 가더라도 정신은 차려야 한다.]

-주맥은 가깝고 법은 멀다.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

-나는 새도 떨어질 때가 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질 때가 있다.]

-접시물에도 빠져 죽는다.  [접시 물, 즉 얕은 물에도 빠져 죽는다.]

-갈방비에 속옷 적신다.  [가랑비에 속옷 젖는다.]

-호맹이로 막을 꺼를 개래로 막는다.  [호미로 막일 일을 가래로 막는다.]


3) 격에 맞지 않는 기발함  [예상치 못한 행동이나 하는 말.]

-뺄가벗은 몸에 은장도 찬다.  [발가벗은 몸에 은장도를 찬다.]

-번갯불에 콩 뽂아 묵는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다.]

-햇빝 쫴는데 비락 맞는다.  [햇볕 쬐이는데 벼락을 맞는다.]

4) 격에 맞지 않거나 불가능한 행동이나 언사  [가능하지 않는 시도를 하는 행동이나 말]

-활을 소며 콧물 닦는다.  [활을 쏘면서 콧물 닦는다.]

-맑은 날에 비옷 입는다.  [비가 그친 맑은 발에 비옷 입는다.]

-돼지우리에 주석 자물통 채운다.  [돼지 우리에 주석 자물통 채운다.]


5) 오랜 경험의 유리함  [삶의 학습에서 오랜 경험이나 체험의 중요함]

-서당개 삼년에 풍월 이린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 읽는다.]


6) 과욕에 대한 경계
-산돼지 잡을라카다가 집돼지 이라뿐다.  [산돼지 잡으려다 집돼지 잃어버린다.]

-서둘러 묵은 밥은 모간지에 걸린다.  [서둘러 먹은 밥은 목에 걸린다.]


7) 공짜를 좋아함에 대한 경계  [일하지 않고 공자를 좋아하는 데 대한 경계]

-초상집 술로 배 채운다.  [초상집에 가서 공자술로 배를 채운다.]

-떡 본 짐에 제사지낸다.  [남의 떡을 본 김에 제사지낸다.]


8) 행동이나 말을 해야 할 때 하지 않음을 비꼼.

-하던 지랄도 멍석 깔아 놓으면 안 한다.  [평소에 늘 하던 행동도 꼭 해야 할 때 하지 않는다.]


9) 이기주의와 남에 불행을 즐거워 함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  [불이 난 집에 부채질하다.]

-사촌 논 사머 배가 아푸다.  [사촌이 논을 사면 내 배가 아프다.]

-똥깨도 지 털을 애낀다.  [똥개도 자기 털을 아낀다.]


10) 가난함을 풍자함

-비상을 사물라 캐도 돈이 없다.  [비상을 사 먹으려 해도 돈이 없다.]


11) 자기 분수를 모름

-약방에 감초격이다.  [약방에 감초격으로 온 일에 간섭한다.]


12) 이중적인 성과  [일거양득]

-꽁 묵고 알 묵기  (꿩 먹고 알을 먹기)

-도랑치고 까제 잡는다.  [도랑도 치고 가제도 잡는다.]


13) 명백한 사실에 대한 풍자

-썩어도 괘기 상해도 꽁이 좋다.  [썩어도 고기가 좋고 상해도 꿩이 좋다.]

-썩어 나자빠라져도 괘기가 좋고 늙어도 영감이 좋다.  [썩어 빠져도 고기가 좋고 늙어도 영감이 좋다.]


14) 허위나 허구적 행동에 대한 풍자

-살뜨물 마시고 취한 척한다.  [쌀뜨물 마시고 취한 척 한다.]


15) 기다리면 기회가 온다.

-쥐 궁게 볕드는 날이 온다.  [쥐구멍에도 볕이 드는 날이 온다.]


16) 고부간의 사랑과 갈등

-며느리가 귀하면 발뒷꿈치도 이쁘다.  [며느리가 귀여우면 며느리 발뒷꿈치도 예쁘다.]

-며느리가 이뿌면 방구냄새도 달삭하다.  [며느리가 예쁘면 며느리가 뀌는 방구냄새도 달다.]


영천 지역의 속담은 다른 지역과 비슷하게 과욕을 경계한다거나 가난을 풍자한다거나 고부 갈등을 묘사하는 등의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영천 지역의 속담은 면면히 전승되어 왔지만 도시화와 산업화의 진행으로 오늘날 구비문학 장르가 전반적으로 쇠퇴하고 있고, 속담 역시 빠르게 소멸되고 있다.

속담은 민중들의 삶에 뿌리를 박고 있다는 점에서 영천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나 가치관 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이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 하겠다.

속담대사전       ì†ë‹´ì§‘               ì†ë‹´ì§‘   

방종현, 김사엽이 펴낸 속담집. 국립중앙도서관소장. 총 496면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사전체재를 갖춘 속담집이다. 
1940년 조광사에서 간행되었는데 수록 속담수는 총 4,000여수이며 그 중 우리말 속담은 3,000여수에 달한다.
 속담대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속담사전


속담사전

문헌


  • 『우리 민속문학(民俗文學)의 이해』(김열규 외, 개문사, 1979)
  • 『구비문학개설(口碑文學槪說)』(장덕순 외, 일조각, 1971)
  • 「속담(俗談)」(김선풍, 『한국민속대관』6,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

  • 임동권, 『속담사전』(민속원, 2002)
  • 권순우, 『한국의 속담』(송원출판사, 2006)
  • 高橋亨, 『朝鮮の俚言集附物語』(日韓書房, 1914)
     속담 [俗談]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