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 Bodhisattva , 菩薩 ]
산스크리트 보디사트바의 음사(音寫)인 보리살타(菩提薩陀)의 준말.
보디(bodhi)는 budh(깨닫다)에서 파생된 말로 깨달음 ·지혜 ·불지(佛智)라는 의미를 지니며, 사트바(sattva)는 as(존재하다)가 어원으로 생명 있는 존재, 즉 중생(衆生) ·유정(有情)을 뜻한다. 보살의 일반적인 정의(定義)는 ‘보리를 구하고 있는 유정으로서 보리를 증득(證得)할 것이 확정된 유정’ ‘구도자(求道者)’ 또는 ‘지혜를 가진 사람’ ‘지혜를 본질로 하는 사람’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보살이 모든 사람을 뜻하게 된 것은 대승불교(大乘佛敎)가 확립된 뒤부터이지만, 그 용어와 개념의 시초는 BC 2세기경에 성립된 본생담(本生譚:석가의 前生에 관한 이야기)에서였다. 본생담은 크게 깨달음을 얻은 석가를 신성시하고, 그 깨달음의 근원을 전생에서 이룩한 갖가지 수행에서 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구도자로서의 석가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특히 연등불수기(燃燈佛授記:석존이 연등불로부터 불타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계기로 하여 석가를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 즉 보살이라 일컫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같이 단수로서 석가만을 가리키던 보살이 복수로서 중생을 뜻하게 된 것은 본생담의 석가가 출가(出家) 비구(比丘)에 국한되지 않고 왕 ·대신 ·직업인 ·금수(禽獸)이기도 하였으며, 나아가 과거 ·현재 ·미래세계에 다수의 부처가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석가보살과 같은 특정의 보살만이 아니라, 누구든지 성불(成佛)의 서원(誓願)을 일으켜 보살의 길로 나아가면 그 사람이 바로 보살이며, 장차 성불(成佛)할 것이라는 이른바 ‘범부(凡夫)의 보살’ 사상이 생겨났다.
이러한 보살사상은 공(空) 사상과 결합하여 하나의 절대적 경지에 이르렀으며, 육바라밀(六波羅蜜) ·사무량심(四無量心:慈 ·悲 ·喜 ·捨) ·무생법인(無生法忍) 등의 실천을 근간(根幹)으로 대승불교의 기본적인 축(軸)이 되었다. 대승불교의 보살사상 중 기본적인 두 개념은 서원(誓願)과 회향(回向)이다. 그것은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이며, 자기의 쌓은 바 선근공덕(善根功德)을 남을 위해 돌리겠다는 회향이다. 보살은 스스로 깨달음을 여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머물러 일체중생을 먼저 이상세계[彼岸]에 도달하게 하는 뱃사공과 같은 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보살도 그 수행단계에 의하여 몇 가지 계위(階位)로 분류할 수 있다. 즉 초발심(初發心:최초단계로서의 진리를 추구함), 행도(行道: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수행함) ·불퇴전(不退轉:도달한 경지에서 물러나거나 수행을 중지하는 일이 없음) ·일생보처(一生補處:한생이 끝나면 다음에는 부처가 됨)의 4단계가 있는데, 후에 《화엄경》에서는 십지(十地:歡喜 ·離垢 ·發光 ·焰慧 ·難勝 ·現前 ·遠行 ·不動 ·善慧 ·法雲地)로 정리되기도 하였다.
보살의 개념이 확대되어 미륵불(彌勒佛)이 탄생하였다. 미륵불은 미래에 성불할 자로서, 현재는 도솔천(兜率天)에 미륵보살로서 거주한다는 미래지향의 미륵신앙이 나타났다. 또한 정토사상과 관련하여 아촉불(阿閦佛:아촉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法藏 보살)의 관계가 성립되었다. 그리고 자비와 절복(折伏)의 신앙대상으로 관음(觀音)보살과 대세지(大勢至)보살, 《반야경》 계통의 문수(文殊)보살, 《화엄경》 계통의 보현(普賢)보살이 성립되고, 이어 지장(地藏)보살 등 수많은 보살들이 나타났다. 또한 보살은 실재했던 고승(高僧)이나 대학자에 일종의 존칭과 같이 사용되어 인도의 용수(龍樹) ·마명(馬鳴) ·제바(提婆) ·무착(無着) ·세친(世親) 등도 보살이라 불렀으며, 중국에서는 축법호(竺法護)가 돈황(敦煌)보살로, 도안(道安)이 인수(印手)보살로, 그리고 한국에서는 원효(元曉) 등이 보살의 칭호를 받았다.
나아가 ‘범부(凡夫)의 보살’은 재가(在家) ·출가(出家)를 불문하고 모든 불교도 전체로 확대되었는데, 특히 중기 대승불교 이후 성했던 여래장(如來藏) ·불성(佛性)사상과 표리관계를 이루며, 불─보살─일체중생(산천초목도 포함)의 활동은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한다)’‘자미도 선도타(自未度 先度他: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먼저 제도한다)’라는 말을 낳았으며, 불교활동의 중요한 추진력이 되었다.
불교의 구도자. 범어(梵語) 보디사트바(Bodhisattva)의 음차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①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본래는 수천, 수백 번의 전생(轉生)을 반복하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수행을 계속한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의 전생(前生) 모습을 일컫던 말. 보살의 용어와 개념은 서기전 2세기 무렵에 성립된 ≪본생담(本生譚)≫에서 처음 등장하였는데 이 때는 부처가 되기 이전의 구도자였던 석가모니만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반야경(般若經)≫이 저술되면서 점차 대승(大乘) 불교의 보살로서 복수화(複數化)・일반화되어 실천을 통하여 성불(成佛)하겠다는 사람에 대한 칭호가 되었음. 이를 통하여 대승 불교의 출발점이면서 정화(精華)가 되었고 나아가 출가자보다는 재가 신도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아졌음. 또는 보살 대사(菩薩大士)라 하여 깨달음을 구하는 위대한 사람이라고도 함. 이는 소승 불교가 일반 신자의 구제에 무관심하였기 때문에 대승 불교가 발생하면서 대승 불교가 보살의 종교라고 말하는 경우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위대한 이타(利他)의 완성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이 세상이 모든 중생을 구원하겠다는 자비심을 가지고 자신과 타인의 깨달음을 위해서 힘쓰는 대승 불교의 수행자를 뜻함.
보살이 복수로서 중생을 의미함에 따라 과거•현재•미래에 다수의 부처가 있다는 다불(多佛) 사상과, 누구든지 성불하겠다는 서원(誓願)을 하고 보살의 길에 나아가는 이가 바로 보살이며 장차 성불할 것이라는 범부 보살 사상(凡夫菩薩思想)이 일어났음. 이러한 보살 사상은 공(空) 사상과 함께 대승 불교의 근간을 이룸. 이후 보살의 개념이 확대되어 미래불인 미륵불(彌勒佛)이 나타났고 정토(淨土) 사상과 관련하여 아축불(阿閦佛), 아미타불(阿彌陀佛)•법장 보살(法藏菩薩)이, 자비와 절복(折伏)의 신앙으로 관세음 보살(觀世音菩薩)과 대세지 보살(大勢至菩薩), ≪반야경(般화엄경(華嚴經若經)≫ 계통의 문수 보살(文殊菩薩), ≪화엄경(華嚴經)≫ 계통의 보현 보살(普賢菩薩)이, 그리고 지장 보살(地藏菩薩) 등 여러 보살들이 나타났음. 이들 보살들은 사람들의 신변에 나타나 중생의 성취를 위하여 교화 실천에 전념하는데 이러한 모습은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신라 불교의 주요한 요소였음. ②실재하였던 고승이나 대학자에 대한 존칭으로 사용. 인도의 용수(龍樹)•마명(馬鳴) 등과 우리 나라 원효(元曉)가 그러하였음. ③현재에는 모든 불교 신자에게 확대되어 사용되는 호칭으로까지 쓰거나 독실한 여자 신도를 존칭하는 말로 쓰임.
용례
- ㉠용상의 승려는 천하의 복전이 되고 대승•소승의 불법은 수도의 자운이 되었다. 타방의 보살이 세상에 출현하고<분황의 진나, 부석의 보개, 낙산의 오대 등이 이것이다.> 서역의 명승들이 이 땅에 오시니 이로 말미암아 삼한이 합하여 한 나라가 되고 온 세상은 어울려 한 집이 되었다. ; 龍象釋徒 爲寰中之福田 大小乘法 爲京國之慈雲 他方菩薩出現於世<謂芬皇之陳那浮石寶蓋 以至洛山五臺等是也> 西域名僧降臨於境 由是倂三韓而爲邦 掩四海爲家 [삼국유사 권제3, 7장 뒤쪽~8장 앞쪽, 흥법 3 원종흥법 염촉멸신]
㉡보살은 보리살타이다 한 말을 줄이어 말함이니, 보리는 부처 도리이고, 살타는 중생을 이루는 것이니, 부처 도리로 중생을 제도하시는 사람을 보살이라고 하느니라. ; 菩薩菩提薩埵ㅣ라 혼 마
보리살타,[ 菩提薩唾 ]
(1) 싼스끄리뜨 보디사뜨바(bodhissattva)의 음사(音寫). 부처님과 같은 깨침을 얻으려고 수행하는 사람. 대승불교에 귀의한 사람. 큰 서원을 세우고 육바라밀을 수행하며,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목적으로 자리이타행을 닦아 마침내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 약칭으로 보살이라 한다.
(2) 우바리(優婆夷)에 대한 존칭.
(3) 조정에서 덕이 높은 스님에게 주는 칭호.
육바라밀[ 六波羅蜜 ]
외국어 표기
sāt-paramitā(산스크리트어) |
바라밀은 바라밀다(波羅蜜多)의 준말로, 저 언덕 [彼岸] 에 이른다는 뜻이다. 대승불교의 보살은 이 육바라밀의 실천을 통해 자신의 완성을 이룩해 가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도 완성시켜 정토(淨土)를 건설해 간다.
육바라밀은 구체적으로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의 여섯 가지를 말한다.
보시는 조건 없이 기꺼이 주는 생활이다. 이 보시에도 그 주는 내용에 따라 물질적인 재보시(財布施), 교육적인 법보시(法布施), 종교적인 무외시 (無畏施)의 세 가지가 있다.
지계는 계율을 잘 지켜 악을 막고 선을 행하는 생활이다.
인욕은 박해나 곤욕을 참고 용서하는 생활이다.
정진은 꾸준하고 용기 있게 노력하는 생활이다.
선정은 마음을 바로 잡아 통일되고 고요한 정신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지혜는 진상(眞相)을 바르게 보는 정신적 밝음이다.
지계는 계율을 잘 지켜 악을 막고 선을 행하는 생활이다.
인욕은 박해나 곤욕을 참고 용서하는 생활이다.
정진은 꾸준하고 용기 있게 노력하는 생활이다.
선정은 마음을 바로 잡아 통일되고 고요한 정신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지혜는 진상(眞相)을 바르게 보는 정신적 밝음이다.
이 가운데 보시·지계· 인욕은 타인을 위한 이타(利他)의 생활인 자비의 실천으로, 보통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생활이라 한다. 정진 ·선정·지혜는 자신을 위한 자리(自利)의 생활로서, 지혜를 추구하는 상구 보리(上求菩提)의 생활이다. 이렇게 볼 때 대승불교의 교육정신은 이 육바라밀에 압축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삼학(三學)이 해탈에 이르기 위한 불교일반의 수행의 길이라고 하면, 육바라밀은 대승불교일반의 수행도라고 할 수 있다. 해탈에 이르는 길로 붓다가 제시한 것은 "여덟 가지 바른길[八正道]" 즉 계율과 선정 그리고 지혜[戒·定·慧]의 삼학이었다.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바라밀(智慧波羅密)"로 이루어진 육바라밀 역시 그 내용상 계정혜 삼학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언뜻 보기에도 육바라밀은 삼학을 확대 재편한 개념임이 드러난다. 다만 불교역사의 전개과정에서 삼학 중 어떤 요소를 특별히 강조하고 발전적으로 분화시킬 필요가 생겼고, 그 결과 전통적인 삼학을 대체하며 나온 개념이 육바라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 그러한 수행관의 변화를 야기시킨 역사적 우연성이나 논리적 필연성은 무엇이고, 또 그로 인해 강조된 삼학의 요소는 어떠한 것인가.
불교교단은 붓다 입멸 후 100년경부터 계율이나 교리를 둘러싼 이견이 발생하여 분열하게 된다. 따라서 각 분파는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서 독자적이면서도 전문적인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불교의 이론은 복잡해지고 번쇄하게 되었으며, 붓다의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가르침은 형해화되었다. 그러한 이론이 일반대중들을 소외시키기에 이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때 붓다의 정신을 되찾고자 일어난 움직임이 "대승불교(大乘佛敎)"이다. 그들은 대중을 소외시킨 채, 자기 혼자만의 열반을 추구하는 아라한(阿羅漢)의 길을 "소승(小乘)"이라고 비판하고,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즉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해주는[自利利他]" 보살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부각시켰다. 따라서 육바라밀은 아라한과 차별화된 보살을 위한 수행도로서 출현하게 되었던 것이다.
자리이타(自利利他)를 목표로 하는 보살에게 있어서, 기존의 계정혜 삼학에 비해 이타적 덕목이 더 선명하게 부각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물론 전통적인 삼학에 이러한 이타적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얘기가 될 것이다. 다만 대승불교의 경우에는 그러한 이타적 요소가 보살의 길을 따르고 있는 수행인들에게 명시적으로 인식되고 또 수행되었다는 점이다.
기존의 "계율을 지킴[持戒]"이라는 덕목에 추가하여 새로이 수행인의 덕목으로 추가 된 것이 "타인에게 베품[布施]"과 "고난과 고통을 잘 참음[忍辱]" 그리고 "꾸준히 힘써 행함[精進]"이었다. 그렇다면 보살에게 이러한 이타적 덕목이 가능하게 해주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기와 남", "부처와 중생", "윤회와 열반"을 완전히 별개로 생각하지 않는 사고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그것들이 서로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면 그것들은 서로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 된다. 이 대립항들은 서로 상대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한 쪽이 없이는 다른 한 쪽도 있을 수가 없다. 우리가 괴로움으로 가득 찬 윤회의 세계에서 나 자신과 나의 것만을 생각하며 사는 태도는 이러한 상관관계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는 나와 "연기(緣起)"적으로 관계하고 있으며, 관계의 그물을 벗어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와 같은 사물의 연기적 인식이 바로 "지혜바라밀(知慧波羅密)"이 갖는 의미인 것이다. 보살들의 이타적 수행은 이러한 지혜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도 육바라밀은 삼학을 확대 재편한 개념임이 드러난다. 다만 불교역사의 전개과정에서 삼학 중 어떤 요소를 특별히 강조하고 발전적으로 분화시킬 필요가 생겼고, 그 결과 전통적인 삼학을 대체하며 나온 개념이 육바라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 그러한 수행관의 변화를 야기시킨 역사적 우연성이나 논리적 필연성은 무엇이고, 또 그로 인해 강조된 삼학의 요소는 어떠한 것인가.
불교교단은 붓다 입멸 후 100년경부터 계율이나 교리를 둘러싼 이견이 발생하여 분열하게 된다. 따라서 각 분파는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서 독자적이면서도 전문적인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불교의 이론은 복잡해지고 번쇄하게 되었으며, 붓다의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가르침은 형해화되었다. 그러한 이론이 일반대중들을 소외시키기에 이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때 붓다의 정신을 되찾고자 일어난 움직임이 "대승불교(大乘佛敎)"이다. 그들은 대중을 소외시킨 채, 자기 혼자만의 열반을 추구하는 아라한(阿羅漢)의 길을 "소승(小乘)"이라고 비판하고,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즉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해주는[自利利他]" 보살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부각시켰다. 따라서 육바라밀은 아라한과 차별화된 보살을 위한 수행도로서 출현하게 되었던 것이다.
자리이타(自利利他)를 목표로 하는 보살에게 있어서, 기존의 계정혜 삼학에 비해 이타적 덕목이 더 선명하게 부각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물론 전통적인 삼학에 이러한 이타적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얘기가 될 것이다. 다만 대승불교의 경우에는 그러한 이타적 요소가 보살의 길을 따르고 있는 수행인들에게 명시적으로 인식되고 또 수행되었다는 점이다.
기존의 "계율을 지킴[持戒]"이라는 덕목에 추가하여 새로이 수행인의 덕목으로 추가 된 것이 "타인에게 베품[布施]"과 "고난과 고통을 잘 참음[忍辱]" 그리고 "꾸준히 힘써 행함[精進]"이었다. 그렇다면 보살에게 이러한 이타적 덕목이 가능하게 해주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기와 남", "부처와 중생", "윤회와 열반"을 완전히 별개로 생각하지 않는 사고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그것들이 서로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면 그것들은 서로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 된다. 이 대립항들은 서로 상대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한 쪽이 없이는 다른 한 쪽도 있을 수가 없다. 우리가 괴로움으로 가득 찬 윤회의 세계에서 나 자신과 나의 것만을 생각하며 사는 태도는 이러한 상관관계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는 나와 "연기(緣起)"적으로 관계하고 있으며, 관계의 그물을 벗어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와 같은 사물의 연기적 인식이 바로 "지혜바라밀(知慧波羅密)"이 갖는 의미인 것이다. 보살들의 이타적 수행은 이러한 지혜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은 본래 생겨나는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니어서 그 본체가 허공과 같이 공적하다. 그렇다면 육바라밀조차 텅 빈 마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공적한 마음이 움직임이 없이 육바라밀을 갖추고 있는 이치를 원효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삼계에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보시바라밀을 갖추고, 계율의 상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지계바라밀을 갖추며, 청정하여 망념이 없으므로 인욕바라밀을 갖추고, 거두어들임도 놓아버림도 없기 때문에 정진바라밀을 갖추며, 성품이 금강과 같기 때문에 선정바라밀을 갖추고, 삼보를 무너뜨리지 않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갖춘다."
삼계의 욕심을 떠나 진여에 입각하는 것이 이욕(離慾)이다. 보시는 이욕을 근본으로 하고, 일체의 중생이 오직 하나의 본각이므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일각에 똑같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의미의 보시바라밀이다. 세간을 벗어난 지계바라밀은 청정한 자성의 마음[自性淸淨心]으로 범부의 계율이든 이승의 계율이든 계율의 상에 머물지 않는 것이다. 공성(空性)의 이치를 알아 몸과 마음을 잊는 것이 곧 인욕바라밀이다. 공과 유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에 입각하여 오온의 공성에 깊이 들어가는 것이 정진바라밀이다. 공적함을 떠나 시방을 교화하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선정바라밀이다. 마음에 출입이 없고 지혜에도 머물지 않는 것이 지혜바라밀이다.
선남자야, 공적한 법을 닦는 자는 삼계에 의지하지 않고, 계율의 상에 머물지 않으며, 청정하여 망념이 없고, 거두어들임도 없고, 놓아버림도 없으며, 자성이 금강과 같아서 삼보를 무너뜨리지 않으니, 공적한 마음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육바라밀을 갖추었다.(188)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존자시여, 육바라밀은 모두 상이 있는 것이니, 상이 있는 법이 세간을 벗어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내가 말한 육바라밀은 상도 없고 작위도 없는 것이다."(190)
"왜 그런가? 이욕(離欲)에 잘 들어가서 마음이 항상 청정하며, 참된 말로 방편을 삼아 본각의 이익으로 남을 이롭게 하니, 이것이 보시바라밀이다. 지극한 생각은 견고하여 마음이 항상 머무름이 없고,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어서 삼계에 집착하지 않으니, 이것이 지계바라밀이다. 공을 닦아 결사를 끊어서 모든 존재하는 것들[有]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삼업(三業)을 적정하게 하여 몸과 마음에 머물지 아니하니 이것이 인욕바라밀이다. 법수(法數)를 멀리 떠나고 공과 유의 견해를 끊어서 오음의 공에 깊이 들어가니 이것이 정진바라밀이다.
공적함을 모두 떠나 모든 공에 머물지 않지만, 마음이 무(無)에 처하여 대공에 있으니 이것이 선정바라밀이다. 마음에는 마음이라는 상이 없으나 허공을 취하지 않고, 모든 행위가 일어나지 않으나 적멸을 인증하지 않으며, 마음에 출입이 없어서 자성이 항상 평등하고, 모든 법의 실제가 다 결정성이어서 모든 지위에도 의지하지 않고 지혜에도 머물지 아니하니 이것이 지혜바라밀이다."(191-199)
삼계의 욕심을 떠나 진여에 입각하는 것이 이욕(離慾)이다. 보시는 이욕을 근본으로 하고, 일체의 중생이 오직 하나의 본각이므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일각에 똑같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의미의 보시바라밀이다. 세간을 벗어난 지계바라밀은 청정한 자성의 마음[自性淸淨心]으로 범부의 계율이든 이승의 계율이든 계율의 상에 머물지 않는 것이다. 공성(空性)의 이치를 알아 몸과 마음을 잊는 것이 곧 인욕바라밀이다. 공과 유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에 입각하여 오온의 공성에 깊이 들어가는 것이 정진바라밀이다. 공적함을 떠나 시방을 교화하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선정바라밀이다. 마음에 출입이 없고 지혜에도 머물지 않는 것이 지혜바라밀이다.
선남자야, 공적한 법을 닦는 자는 삼계에 의지하지 않고, 계율의 상에 머물지 않으며, 청정하여 망념이 없고, 거두어들임도 없고, 놓아버림도 없으며, 자성이 금강과 같아서 삼보를 무너뜨리지 않으니, 공적한 마음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육바라밀을 갖추었다.(188)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존자시여, 육바라밀은 모두 상이 있는 것이니, 상이 있는 법이 세간을 벗어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내가 말한 육바라밀은 상도 없고 작위도 없는 것이다."(190)
"왜 그런가? 이욕(離欲)에 잘 들어가서 마음이 항상 청정하며, 참된 말로 방편을 삼아 본각의 이익으로 남을 이롭게 하니, 이것이 보시바라밀이다. 지극한 생각은 견고하여 마음이 항상 머무름이 없고,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어서 삼계에 집착하지 않으니, 이것이 지계바라밀이다. 공을 닦아 결사를 끊어서 모든 존재하는 것들[有]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삼업(三業)을 적정하게 하여 몸과 마음에 머물지 아니하니 이것이 인욕바라밀이다. 법수(法數)를 멀리 떠나고 공과 유의 견해를 끊어서 오음의 공에 깊이 들어가니 이것이 정진바라밀이다.
공적함을 모두 떠나 모든 공에 머물지 않지만, 마음이 무(無)에 처하여 대공에 있으니 이것이 선정바라밀이다. 마음에는 마음이라는 상이 없으나 허공을 취하지 않고, 모든 행위가 일어나지 않으나 적멸을 인증하지 않으며, 마음에 출입이 없어서 자성이 항상 평등하고, 모든 법의 실제가 다 결정성이어서 모든 지위에도 의지하지 않고 지혜에도 머물지 아니하니 이것이 지혜바라밀이다."(191-199)
반야바라밀다심경, [ 般若波羅蜜多心經 ]
이칭/ 별칭/ 유형/ 시대/ 성격편/ 저자/ 제작시/ 권수·책수간행·발행·발급자(처)/ 소장처
반야심경언해 |
문헌 |
조선/조선 전기 |
구결서, 언해서 |
세조(世祖), 한계희 |
1464년(세조 10) |
1권 1책 |
간경도감 |
서울대학교 도서관 일사문고(一蓑文庫), 규장각 도서 |
당나라 법장(法藏)의 『반야심경약소(般若心經略疏)』에 대한 송나라 충희(忠希)의 주해본에 한글로 구결(口訣)을 달고 번역한 책.
‘반야심경언해‘라고도 한다. 1권 1책. 목판본.
1464년(세조 10)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금강경언해(金剛經言解)』와 동시에 간행되었다. 따라서 간경도감 도제조(都提調) 황수신(黃守身)의 전문(箋文)도 ‘진금강심경전(進金剛心經箋)’으로 되어 있다.
이 전문과 한계희(韓繼禧)의 발문에 의하면 구결은 세조가 달고 번역은 한계희 등이 하였다고 한다. 책의 체재와 번역에 나타난 국어는 당시의 간경도감 간행 언해서와 같다.
원간본은 서울대학교 도서관 일사문고(一蓑文庫)에 소장되어 있다.
원간본의 책판으로 1495년(연산군 1)학조(學祖)의 발문을 새로 붙여 인출한 책이 최범술(崔凡述) 소장으로 전한다. 학조의 발문은 『금강경언해』의 1495년 인출본 등에도 있는데, 인경목활자(印經木活字)로 되어 있어서 서지학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일사문고본은 1973년일지사(一志社), 1495년 인출본은 1975년 보련각(寶蓮閣)에서 영인본으로 출판되었다. 중간본으로는 1553년(명종 8)황해도 심원사(深源寺), 1565년전라도 순창의 무량사(無量寺)에서 원간본을 복각한 것이 전한다. 국어사연구와 불경의 연구에 자료가 되는 문헌이다.
참조항목
역참조항목
카테고리
출처 ^ 참고문헌,
[보살 [菩薩]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보살 [菩薩]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미술대사전(인명편)]
[ 보리살타 [菩提薩唾] (원불교대사전)
[육바라밀 [六波羅蜜] (교육학용어사전, 1995. 6. 29.,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육바라밀 [六波羅密] (『밀린다팡하』 (해제), 2004.,)
[육바라밀 (원효 『금강삼매경론』 (해제), 2006.,)
[고친 한글갈』(최현배, 정음사, 1961)
[增訂朝鮮語學史』(小倉進平, 東京 刀江書院, 1940)
[중세어(中世語)의 한글자료(資料)에 대한 종합적(綜合的)인 고찰(考察)」(『규장각』3, 서울대학교도서관, 1979)
[네이버 지식백과] 반야바라밀다심경 [般若波羅蜜多心經]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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