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Judas),
- 1) 레아가 B.C 1755년에 하란에서 낳았다.
- 여러형제가 어린 동생 요셉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미디안 상인에게 팔게 했다(창37:26-27).
- 2) 흉년에 양식을 사러 애굽에 갔을때 요셉이 베냐민을 가두려 하는고로 애걸하였다(창44:18-34).
- 4) 그후 온가족이 애굽에 내려갈 때는 세 아들을 데리고 갔다(창46:12).
- 6) 그 기업지는 가나안 남방인데 다른 지파보다 광대하고 예루살렘 시온산 성전,왕궁들이 다 이지방에 있고 국명도 유다라 하고 왕통도 다윗으로 부터 23대 시드기야왕까지도 계승하였고 만왕의 왕 예수님도 이 지파에 서 탄생하셨으니 야곱의 축복이A하였다(창49:10).
4, 예수의 동생이다(마13:55).
6, 바사바라하는 유다로서 예루살렘교회의 유력자로 공회의 결의안을 가지고 실라와 같이 회신사가 되어 안디옥 교회에 갔다(행15:22).
7, 갈릴리 유다로서 주후 6년에 호적할 때 백성을 속여 모반하다가 패망하였다 (행5:37).
[8] 다메섹성 직가에 사는 유다로 그는 유대인이었다. 바울이 회심하던날 그 집에 유숙하였다(행9:11).
이새의줄기 :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11:1). 게에르트겐 토트 신트 얀스의 1475-1476년 경의 유화로 크기는 89*59cm이며 암스테르담 라악시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벽으로 둘러싸인 마당 가운데서 잠을 자고 있는 늙은 이새로부터 줄기와 가지가 뻗어 예수의 조상인 유다의 열왕들을 지탱하고 있다.다윗왕이 수금을 들고 있고 그뒤 우편이 솔로몬왕이다. 나무 꼭대기에는 마리아가 안고 있는 아기 예수에게 두 천사가 경배드리고 있다. 이새의 좌우에 서 있는 예언자는 이사야와예레미야이다.
유다의 이름은 찬송한다는 뜻입니다. 레아의 소생으로 야곱의 넷째 아들이 었습니다. 유다는 일처리에 신중한 사람이었고 설득력이 있고 이론이 정연한 변론가였습니다. 어린 동생 요셉을 형들이 죽이기로 모의할 때에 그를 구하기 위해 이스마엘 상인에게 팔도록 제안한 사람이 유다였습니다(창 37:26-27).
또한 그의 형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사람들을 속여 할례를 실시하게 한 후 그 성민을 도륙할 때에 유다는 거기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에 양식을 구하러 애굽에 내려갔을 때에 베냐민을 볼모로 잡아두려 하자 요셉에게 베냐민을 놓아주도록 호소력있게 긴 설명을 조리있게 전개한 사람도 유다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물려진 혈통적으로 계승된 축복을 르우벤을 제쳐놓고 요셉이 받았다면 영적인 구속의 혈통을 계승한 대표적인 지파는 유다였습니다. 그러므로 유다를 사자라 호칭했고 또 유다가 남조의 국명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윗으로부터 시드기야까지 23대의 모든 왕이 유다의 혈통이요 예수님도 유다지파를 통해 오셨습니다(창49:10).그러나 유다가 본의 아니게 자기 며느리 다말의 계획적인 유혹에 넘어갔던 것은 큰 실수였습니다. 이 사건이 담고있는 교훈도 기억해야 합니다.
교훈과 적용,
첫째,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으로 열두형제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항상 신앙과 기도를 앞세워 문제를 다루어야 합니다.
둘째, 유다와 다말의 사건은 구속의 원리를 밝혀 주었습니다. 한마디로 인류는 다 죄의 혈통입니다. 이는 구원의 가능성을 확인시킨 교훈입니다.
야곱의 넷째아들-- 하나님의 섭리 불순종 고통과 부끄러움 당해 유다는 야곱이 레아에게서 얻은 넷째 아들로서 그 이름의 뜻은 [찬양하다]이다. 그는 열두 형제중 지도력이 탁월하여 그의 후손 중에서 치리자가 태어날 것이라는 메시야 예언의 축복을 받게 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 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49:9-10).
그는 르우벤, 시므온, 레위처럼 통간과 살인의 죄는 범치 아니 했으나 가나안의 아둘람 사람 수아의 딸과 결혼한 것이 실수였다.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취하여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그가 다시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 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심에 있었더라](창38:2-5)
아브라함에서 유다, 유다에서 다윗, 다윗에서 그리스도에게로 흐르는 혈통이 순결하지 못할때 하나님께선 그 혈맥을 끊으시고 새롭게 이어 가시는 장면을 우리는 유다를 통해 다시 한번 찾아 볼수 있다. 유다와 가나안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 엘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므로 죽임을 당했으며 그의 동생 오난도 결국 죽게 되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왕가의 혈통을 잇기 위해서 유다와 그의 자부 다말에게서 베레스를 태어나게 하셨다.
이처럼 유다의 생애를 통하여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인위적 계획이 하나님 섭리의 흐름을 막는 경우 하나님께선 그 섭리의 물꼬를 트시기 위하여 제방을 허물어 버린다는 것이며, 그리고 하나님께선 자신의 뜻과 방법대로 그 섭리를 추진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만일 유다가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지 않았더라면 자식의 죽음과 자부의 몸에서 후사를 얻는 고통과 수치는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본 문 : 창38:1-11
요 절 : (마5:28)
요 절 : (마5:28)
경솔한 결혼과 그 결과,
1) 유다는 일찍 결혼하였으나 그 결혼은 경솔한 결혼이었다. 그는 불신자인 이방인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의 소개로 수아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1) 유다의 3 아들의 이름은?(창38:3-5)
(2) 유다의 장자 엘의 아내 이름은?(창38:6)
(1) 유다의 3 아들의 이름은?(창38:3-5)
(2) 유다의 장자 엘의 아내 이름은?(창38:6)
2) 유다의 3아들 중에 두 명은 비명에 죽었다.
(1) 유다의 장자 엘이 죽은 이유는 무엇인가?(창38:7)
(2) 유다의 차남 오난은 그 당시의 관습대로 계대결혼을 하였다. 즉 자식을 얻지 못하고 죽은 형의 대를 보존하기 위하여 형수와 동침하여 자식을 낳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난이 죽은 이유는 무엇인가?(창38:8-9)
(1) 유다의 장자 엘이 죽은 이유는 무엇인가?(창38:7)
(2) 유다의 차남 오난은 그 당시의 관습대로 계대결혼을 하였다. 즉 자식을 얻지 못하고 죽은 형의 대를 보존하기 위하여 형수와 동침하여 자식을 낳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난이 죽은 이유는 무엇인가?(창38:8-9)
* 죄악의 피는 어떤 경우에 가정에서 대를 이어 흐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다의 불순한 동기가 자식에게 자식은 여인에게로 계속 번져가고 있다.
아내의 죽음과 근친상간,
1) 유다는 술에 취하여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거리의 창녀를 가까이 하게 되었다.
(1) 유다 앞에서 창녀로 가장한 여인은 누구였나?(창38:13-14)
(2) 그렇게 한 이유는?
(1) 유다 앞에서 창녀로 가장한 여인은 누구였나?(창38:13-14)
(2) 그렇게 한 이유는?
2)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통간은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며느리 다말의 신세도 기구한 일이다.
(1) 유다가 창녀로 가장한 며느리 다말에게 어떤 제의를 하였나?(창38:16-17)
(2) 다말의 요구는?(창38:18)
(3) 그 결과는?(창38:24-26)
(1) 유다가 창녀로 가장한 며느리 다말에게 어떤 제의를 하였나?(창38:16-17)
(2) 다말의 요구는?(창38:18)
(3) 그 결과는?(창38:24-26)
*가문의 씨를 받으려는 여인의 간교함 며느리 다말을 범한 시아버지 유다의 수치스러움 등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지만 주께서는 그런 집안도 사랑하셨다.
나자렛의 요셉,
성모 마리아의 남편이며 예수의 양부(養父). 예수는 요셉을 통해 다윗의 후손이 된다. 이름은 나자렛 마을에서 사는 요셉이란 뜻이다.
직업은 목수라고 하는데, 근처에 나무가 많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석공이었다는 말도 있다. 직업이 뭐였든 한평생 노동을 하였던 인물이므로, 가톨릭에서는 노동자의 수호성인이다. 상징물은 나르드 꽃 또는 백합이 핀 나무지팡이와 목수의 도구이다. 이러한 이유로 축일은 3월 19일이지만, 공산주의를 견제하기 위해 노동절로 잘 알려져 있는 5월 1일을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로 선포하였다.
성모 마리아와 함께 한국 가톨릭 교회의 수호성인이기도 하였다. 조선 포교지가 청나라 북경교구에 예속되어 있던 관계로, 북경교구의 주보인 성 요셉을 조선대목구의 주보성인로 모시게 된 것이 유래다. 1831년 9월 9일,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조선을 북경교구에서 분리시켜 조선대목구를 설정했다. 조선대목구 제2대 대목구장인 앵베르 범 라우렌시오 주교가 1838년 12월 1일자로 포교성성 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새로운 주보로 원죄 없이 잉태된 동정 성모 마리아를 정하여 줄 것을 청했다. 이에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1841년 8월 22일자로 성 요셉을 함께 주보로 모실 것을 조건으로 이를 허락하였다.
다음은 이와 관련하여 문서에 나타난 기록이다.
1841년 8월 22일에 있었던 성하의 공식 알현 예식 중에서. 갑사의 주교이자 조선의 대목구장인 라우렌시오 앵베르 주교의 겸손한 청원에 대해서, 하느님의 섭리로 우리 장상이신 그레고리오 16세 성하께서는, 포교성성 장관인 본인이 아래와 같이 기록하도록 하시며, 자애로우시게도 선교지의 주보성인으로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의 호칭 아래 기념하도록 선포하셨다. 그렇지만 요셉 성인의 축일도 마찬가지로 앞서 언급한 선교지의 공동 주보로 유지하도록 하셨다.
- 한국천주교회사 2, 한국교회사연구소, 2010, 323쪽.
이에 한국 천주교는 성 요셉과 성모 마리아를 공동 수호자로 모시게 되었다.
이후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의견에 따라 '한국 교구 고유 전례력과 고유 거행'이 개정되어 2017년 12월부터 시행되면서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자" 명칭이 삭제되었다.
비록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자' 칭호는 없어졌지만, 서울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성당 약현성당의 주보성인으로 성 요셉이 지정되었고, 6년 후 세워진 명동성당은 성모 마리아를 주보 성인으로 지정했다. 말하자면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이들 두 성당이 예수의 보호자인 두 성인에게 봉헌된 것으로 그 유산이 남겨진 셈.
(양)아들과 아내가 너무 유명한 나머지 묻힌 인물로 마리 퀴리에게 묻힌 피에르 퀴리나, 신사임당과 이율곡에게 묻힌 이원수와 같은 처지. 물론 가톨릭에서는 매해 3월을 성 요셉 성월(聖月)로 지정해 성인의 전구를 청하는 달로 정할 정도로 대우가 매우 좋은 성인임에는 틀림없다. 게다가 웬만한 천주교 성당을 가보면 중앙의 예수 십자고상 좌우에는 성모상과 함께, 성 요셉의 성상도 세워져 있는 것을 볼수 있다.
성 요셉의 인식 변화에 관해서는 재미있는 사실이 있는데, 근대 이전 중세 유럽에선 아무리 절대자에 의한 것이라곤 하지만 아내를 뺏기냐며 각종 연극에서 우스꽝스럽게 표현되었고, 민간 전승에서는 오쟁이 진 사람들의 수호성인이라고 일컬어졌다고 하는.. 등 공적이 아닌 사적인 영역에서는 상당히 취급이 박한 인물이었다. 참고로 '중세는 종교로 꽉 막힌 시대'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그 때도 사람들이 살던 시기다. 일반 민중들이 이런 식으로 '성인'이나 주류 윤리 도덕을 조롱하고 놀리는 사례는 항상 존재했다.
특히 근대 이후 노동계층이 사회의 주류로 부상하고, 근면성실한 노동이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부상하고 공산주의가 세계 무대에 전면에 등장하면서 노동자와 무신론적 공산주의와 투쟁하는 자들의 수호성인으로서의 요셉 성인에 대한 존경이 많이 커졌고, 성인의 이미지도 크게 달라졌다. 교황 비오 12세는 1955년 공산주의자들의 노동절에 대응, 5월 1일을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로 선포했다.
지금은 과거의 조롱섞인 이미지는 사실상 찾아보기 힘든 수준. 성 요셉 호칭기도에서 성 요셉은 교회 전체의 주보로 공경받을 뿐만 아니라 지도자들, 아버지들, 성직자와 수도자, 여행하는 사람들, 노동자, 가정, 동정녀, 환자, 임종하는 자의 주보로 공경받고 있다. 교황 문헌과 일반 신자들에 의하여 기도하는 이, 내적 생활, 가난한 이들의 주보로 불리고 있다.
성 요셉을 특별히 공경하는 달인 3월 성 요셉 성월은 1840년대부터 기념되기 시작했다. 의인이며 신앙인의 모범인 그의 덕을 본받고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요셉 성월 신심서는 1850년 처음 발행됐으며 5년 뒤 교황청의 정식 인가를 받았다.
요셉 역시 성모 마리아의 처녀임신을 알고 있었다. 또 마리아에 대해 사회적으로 쏟아질 의혹이나 비난 내지는 처벌을 의식해 마리아의 임신을 알리지 않고 은밀히 파혼하려 했다. 그러던 요셉에게 천사가 나타나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니 불륜 의혹은 걱정하지 말고 마리아와 결혼하라"고 알려 결론적으론 요셉과 마리아는 딱히 구설수 없이 조용히 결혼했다.
요셉이 의인이라서 마리아를 조용히 내치려고 했다는 글에 모순점을 느낄 사람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그 당시 혼전순결을 깨고 외간 남자와 성관계를 맺은 여자에게 내려지는 형벌은 사형인데, 돌로 쳐죽이는 것이었다. 약혼녀가 바람이 났네 불결하네 난리치고 마리아를 고발하려 들지 않고 그저 파혼만 하고 조용히 수습하려고 했던 건, 당시 풍습이나 사회분위기를 감안하면 충분히 대인배 맞다. 사실 오늘날 기준으로도 약혼녀가 자신과 잠자리를 하지도 않았는데 임신했는데 주위에 크게 떠들지 않고 조용히 파혼만 하는건 대인배가 맞다.
참고로 성모 마리아와 결혼했을 당시 마리아가 10대였다. 정교회에서는 성모 평생 동정설의 근거를 들어 요셉과 나이차가 엄청 많이 났고 요셉은 첫부인 사별 후 재혼한 것이라고 본다. 당시 기준으로는 그리 특이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개신교에서는 아래에 나온 것처럼 성모 평생 동정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요셉도 10대-20대의 청년이었고 둘 다 초혼이었다고 본다.
그 후의 요셉의 일생에 대해서는 학계의 견해가 나누어진다.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그 후 성모 마리아의 순결을 건드리지 않고 예수의 공생활 전에 사망했다는 전승이 내려오지만, 개신교에서는 예수 출생 이후에는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면서 아이를 낳았다고 해석하며, 그래서 개신교 입장에서 만든 창작물, 특히 개신교의 세력이 강한 미국에서 만든 영화, 애니메이션 등 영상물에서는 요셉도 마리아처럼 젊은 청년으로 묘사된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제자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셨다.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자 많은 사람이 그 말씀을 듣고 놀라며 "저 사람이 어떤 지혜를 받았기에 저런 기적들을 행하는 것일까? 그런 모든 것이 어디서 생겨났을까? 저 사람은 그 목수가 아닌가? 그 어머니는 마리아요,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다 우리와 같이 여기 살고 있지 않은가?" 하면서 좀처럼 예수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 마르코 복음서 6장 1~3절
그러나 중세 이후, 르네상스 화가들에 의해 조금 더 나이들어보이는 모습으로 그려지거나 약간은 소외된 듯한 구도로 그려지기도 했는데, 이는 동정녀 마리아의 순결함을 더 부각시키려는 의도다.
위 성경에 예수의 형제로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의 4명이 있다는 언급이 있기 때문에 이를 두고 가톨릭과 정교회, 개신교의 해석이 서로 엇갈리기도 한다. 일단 가톨릭에서는 요셉 또한 마리아와 똑같이 평생 동정을 지켰으며 위 본문에 나오는 인물들은 성모 마리아의 자매인 동명이인의 여인이낳은 이들, 즉 예수의 사촌들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가톨릭에서는 이들을 단순한 일가친척으로 보고 있으며, 이 중 야고보와 유다는 12사도 중 하나이자 알패오라는 사람의 아들인 소(小) 야고보와 그 형제인 유다 타대오로 본다. 그 근거 중 하나는 아람어와 히브리어에 사촌형제 자매를 지칭하는 말이 따로 없이 모두 형제나 자매라고 일컬기에, 저 위의 형제를 부모가 같은 형제로 해석하기엔 의미가 좁아진다고 본다. 반면 개신교에서는 이들을 말 그대로 예수 출생 이후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나온 형제들이라고 해석한다. 반면 정교회에서는 요셉이 사별한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이들로 예수에게 이복형제에 해당하는 이들이라고 보고 있다.
이후 로마 역사가들이 기록한 역사서에는 예수의 형제 이야기만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예수라는 게 당시에는 흔히 있었던 이름이라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세인트 영멘에서는 예수가 목수 동료들을 만나러 가는 장면이 있는데. 요셉을 "아, 내 인간 쪽 아버지"라고 말한다. 이에 목수 동료들은 "무슨 소리야!? 요셉 어르신이야말로 우리 목수들의 신이라고!"라고 말하는데. 일본에서 기독교에 대해서 무지함을 드러내는 부분일 수도 있으나, 일본 TV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달인을 보고 자막에 신 출현이라고 하는 걸 썼을 수도 있고 인간 쪽 '양' 아버지를 그냥 아버지라고 불렀을 수 도 있다.
여담으로 예수가 성인으로서 설법하기 돌아다닌 것은 30대였기 때문에 20살이 넘어갈 수록 요셉의 눈이 "쟤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어떻게 하지"(=내 아들도 아니고 하나님 아들도 아니면)라는 의혹으로 예수를 보기 시작했다고....
성경에 의하면 마리아는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와중에 동정인 상태로 임신을 했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요셉을 예수의 친부가 아닌 양부로 보고, 본인도 예수가 자신의 친아들이 아님을 인정했다고 한다. 목수로 번역된 희랍어 단어 τέκτων의 뜻은 나무든 돌이든 뭐든 갖고 집짓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가구만드는 소목장이 아니라 집 짓는 대목장이라는 것 일부에서는 이를 근거로 프리메이슨을 성 요셉이 조직했다고도 하는데... 당연히 말이 안되는 개소리다. 당장 가톨릭과 프리메이슨이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인 것만 봐도.. 1937년에는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무신론적 공산주의와 투쟁하는 성인'으로 정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노동자 요셉'이라는 세례명을 쓰는 경우는 영명축일이 5월 1일이다. 2017년 12월부터 적용된 새 전례력에서부터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자"명칭이 삭제되었다,
한국 103위 순교성인중 하나.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2015년 추계 정기총회에서 승인현대에도중동 지역에서는 시행되고 있다.이 4형제들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된 것이 4형제 중 야고보가 썼다는 야고보 복음이다. 이 야고보 복음은 요셉 노인 재혼설(...)이 기록되어 있으며,예수의 어린 시절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예수가 상당한 민폐, 불량 소년으로 기록되며 그가 이웃집 사람을 저주하여 떨어뜨려 죽이자 요셉이 훈계하기도 하는 등 내용이 조잡하기 때문에, 어느 기독교에서도 정경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자매의 이름도 마리아인데,성모 마리아와 자매 마리아와의 관계는이복자매라고 한다. 즉 이 둘의 아버지인요아킴은...이것이정교회의 가르침에도 부합되는지는 확인바람. 뻐꾸기 새끼를 기르는 어미새에게까지 얘기를 걸기도 했다고. 참고로 뻐꾸기는 탁란으로 유명한 새다,
예수가 상당한 민폐, 불량 소년으로 기록되며 그가 이웃집 사람을 저주하여 떨어뜨려 죽이자 요셉이 훈계하기도 하는 등 내용이 조잡하기 때문에, 어느 기독교에서도 정경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자매의 이름도 마리아인데,성모 마리아와 자매 마리아와의 관계는이복자매라고 한다. 즉 이 둘의 아버지인요아킴은...이것이정교회의 가르침에도 부합되는지는 확인바람. 뻐꾸기 새끼를 기르는 어미새에게까지 얘기를 걸기도 했다고. 참고로 뻐꾸기는 탁란으로 유명한 새다,
창세기 49장 1-28절,
창세기 48장과 49장에는 임종을 앞둔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불러 축복한 뒤(창 48장), 또 다시 12 아들들을 불러놓고 남긴 유언의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49장). 오늘 본문을 보면 12 아들들의 행적에 따라 어떤 아들들에겐 축복의 말씀이, 어떤 아들들에겐 저주와 심판의 선언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12 아들로 상징되는 이스라엘 12지파가 장차 겪게 될 사건들을 미리 알려준, 예언적 의미가 담긴 유언인 것입니다. 오늘은 이 12지파 가운데 특별히 장자의 축복을 계승한 요셉과 유다 지파에게 주어진 말씀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장자의 축복은 통치권과 상속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장자는 집안을 책임지고 모든 형제를 대표하는 자입니다. 집안을 책임지고 대표하기 때문에 장자에겐 다른 형제들이 받는 유업에 두 배가 돌아가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야곱(이스라엘)의 12 아들들 가운데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통치권은 유다지파에게 돌아갔지만, 유업을 두 배로 받는 상속권은 요셉에게 돌아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이 비록 11번째 아들이었지만 그 형제들을 구원하는 장자의 사명을 감당했기 때문에 장자의 축복이 돌아간 겁니다. 이제는 유다와 요셉에게 주어진 장자의 축복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유다 지파,
르우벤은 야곱의 첫째 아들이었지만 야곱의 첩인 빌하와 통간함으로(창 35:22) 장자의 축복을 빼앗기게 됩니다. 둘째와 셋째인 시므온과 레위는 여동생 디나가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자 그 원수를 갚겠다고 세겜 사람들을 쳐 죽인 일로 인해 장자의 축복에서 제외됩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장자의 축복이 4째 아들인 유다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이렇듯 장자의 축복을 받은 유다에겐 장차 그의 후손들 가운데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나오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리라(10)하십니다.
홀은 왕권을 상징합니다. 그런고로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하신 말씀은 장차 유다 지파 가운데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들이 일어날 것인데, 그 왕권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 선지자에게 왕을 요구했을 때, 처음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된 자는 베냐민 지파의 사울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울 왕이 교만하여 불순종의 길을 갈 때 하나님은 저를 폐하시고, 유다 지파 이새의 아들인 다윗을 세워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이렇듯 다윗으로부터 시작된 유다지파의 왕권은 솔로몬과 남 유다의 왕들로 이어지다가 결국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에게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리라”*(10)하신 야곱의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된 것입니다.
9절과 10절에는 구체적으로 다윗으로부터 시작된 유다지파의 왕권 어떤 과정을 통해 예수님께로 이어지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먼저, 9절을 보니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하십니다. 유다지파의 왕권이 사자 새끼로부터 시작하여 수사자와 같이 강성하다가 결국엔 암사자(KJV, 늙은 사자)와 같이 쇠퇴하게 될 것을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새끼 사자와 같이 어린 다윗으로부터 시작된 유다지파의 왕권은 솔로몬 히스기야와 같은 왕들을 통해 한 때 강성한 권세를 자랑하기도 했지만, 결국엔 늙은 암사자와 같이 쇠퇴의 길을 걷다가 결국 바벨론에 의해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사무엘과 열왕기의 역사가 바로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사실 이스라엘의 왕정시대는 실패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사울 왕으로부터 시작된 왕정시대가 실패함으로 결국 바벨론에게 나라를 빼앗겨 70년간이나 포로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포로생활을 겪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생겨난 믿음이 바로 ‘메시아 대망사상’입니다. 사람이 세운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가 오시어 다스릴 때 비로소 이스라엘이 열방 가운데 높아져 온전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유다지파의 왕권이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라”(10)하십니다. 실로는 메시아에 대한 또 다른 명칭입니다. 다윗으로부터 시작된 유다지파의 왕권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 이어지게 될 것을 예언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를 전후로 해서 쓰여진 선지서들은 바로 유다지파 가운데 오실 메시아에 관한 예언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53장과 같은 말씀에는 초림의 주님이 오셔서 이루실 ‘대속의 사역’에 관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고, 스가랴 14장, 이사야 65장과 같은 말씀에는 재림의 주님이 오셔서 행하실 심판과 이 땅에 세우실 천년왕국에 관한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에 지루한 족보가 등장하는 것도, 예수님이 바로 유다지파,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아임을 증거하기 위한 것입니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10) 바로 이 예언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었고 또 성취될 것입니다.
“네 형제의 찬송이 되고 원수를 이길 것”이라 하십니다(8, 11).
유다라는 이름 자체가 ‘찬송’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유다 이제 형제들 가운데 높아져 찬송을 받으며 원수를 이길 것이라 하십니다(8). 이는 장차 유다 지파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찬송을 받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실 것을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처럼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테텔레스다이)”라는 승리의 고백을 남기셨습니다. 야곱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11절에는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하십니다. 요한계시록 19장을 보면 예수님이 “피 뿌린 옷을 입고”(계 19:13),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았다”(계 19:15)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는 7년 대환난의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이스라엘을 진멸하기 위해 므깃도 언덕에 모인 적그리스도와 천하만국의 군대들을 심판하시는 모습(아마겟돈 전쟁)을 묘사한 말씀입니다. 초림의 주님이 십자가에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것처럼, 재림의 주님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을 진멸하기 위해 므깃도 언덕에 모인 원수들을 이기실 것입니다.
요셉,
이제는 요셉지파에 주어진 예언들을 살펴봅니다.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실질적인 장자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장자의 사명을 감당했기에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장자의 축복 가운데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축복은 유다지파에게 돌아갔지만, 유업을 두 배로 받는 축복은 요셉 지파에 돌아갔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두 몫의 분깃을 받았습니다(48:5).
48장에는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야곱으로부터 축복을 받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야곱이 12 아들들을 축복하기 전에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함으로 이들을 각기 이스라엘의 지파로 받아준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여기서도 장자인 므낫세가 아니라 차자인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축복이 주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48:19). 요셉이 아비 야곱에게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려가 장자인 므낫세를 야곱의 오른쪽에, 차자인 에브라임을 왼쪽에 두고 축복을 빌어 달라 했지만, 야곱은 손을 교차하여 오른손으로 차자인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축복을 빌어줍니다. 이를 본 요셉이 오른쪽에 있는 므낫세가 장자라는 사실을 상기시켰지만(17,18) 야곱은 “나도 안다”라고 말하면서 왼쪽에 있는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복을 빌어주었습니다(19).
그렇다면 왜 므낫세가 아닌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축복이 주어진 것일까요? 안타깝게도 성경은 이에 대해 명백하게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에브라임이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자격이 있어서 선택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이 곧 자격이 되었다”는 겁니다. 사실 우리도 요셉의 둘째 아들인 에브라임처럼 자격이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해주셨기 때문에 ‘자녀 된 자격’을 갖게 된 것입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하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음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야곱을 통해 장자의 축복을 얻은 요셉의 둘째 아들 에브라임의 이름은 ‘두 배의 결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므낫세는 ‘잊는다’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 두 아들의 이름처럼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했던 요셉은 이스라엘의 장자로서 그 형제들보다 ‘두 배(갑절)의 축복(에브라임의 축복)’을 받음으로 지금까지 그가 겪은 고난을 ‘잊게 (므낫세)되었다’는 겁니다.
요셉에게 “하늘의 복과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25)이 주어졌습니다.
이 모두는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하는데 필요한 복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한 요셉에게 물질적인 풍요를 더하여 풍성한 삶을 살도록 축복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무성한 가지가 담을 넘었다(22) 하십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하십니다. 무성한 가지도 역시 풍요롭고 축복된 삶을 상징하는 말씀인데, 흥미롭게도 “그 가지가 담을 넘었다”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총으로 자신만 풍요로운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축복의 가지가 담을 넘어 많은 사람을 풍요롭게 했다는 겁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가지고, 그의 형제와 이스라엘을 복되게 하는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요셉의 풍성한 가지가 담을 넘어 그의 형제들을 복되게 한 것입니다.
요셉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가지고 이웃을 복되게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주실 때 나만 누리겠다고 가지치기를 하지 말고 그 가지가 담을 넘게 하자는 겁니다. 풍성한 가지가 담을 넘어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을 먹이고 복되게 하는 사명을 감당하자는 겁니다.
“원수를 이기었다”(23,24)하십니다.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하십니다. 이는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죽을 위기를 겪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훗날 형들을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했던 일을 상기시킨 말씀입니다.
요셉은 그를 죽이려 했던 형들을 용서하였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구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마 5:44),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몸소 실천했던 사람이 바로 요셉인 것입니다.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24)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반석과 목자”는 장차 오실 메시아를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앞서 살핀 것처럼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는 유다지파 가운데 오실 것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장차 요셉 지파 가운데 메시아가 오신다”라고 해석하면 안됩니다. 그 보다는 자신이 겪은 고난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했던 요셉의 생애 자체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신 예수님의 생애를 예표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습니다.
성경의 여러 인물들 가운데서도 흠 없는 삶을 산 것으로 알려진 요셉의 생애는 여러 면에서 예수님의 삶을 닮아 있습니다. 특별히 자신을 죽이려 했던 형제들을 용서하고 오히려 저들을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했던 요셉의 모습은 죄로 원수 된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해주신 예수님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우리의 삶도 요셉처럼 예수님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 론,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라”(10)하십니다. 유다 지파 다윗의 후손 가운데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자신이 겪은 고난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했던 요셉에겐 그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 속하는 갑절의 축복 장자의 축복이 주어졌습니다. 우리도 유다지파 다윗의 후손인 예수님처럼, 야곱의 11번째 아들인 요셉처럼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이웃과 형제들을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장자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출처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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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0 - 유다와 요셉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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