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삼"
산에 자연적으로 나는 삼(人蔘)으로, 적응증이나 효용은 인삼과 비슷하나 약효과가 월등하다.
산삼(山蔘)은"
한반도, 만주 남부, 연해주 일부 지역에 자생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맛은 달고 약간 쓰며 성질은 약간 따뜻하고 비 ·폐경에 들어가며 원기를 많이 보하여 주고 보비익폐(補裨益肺), 생진지갈(生津止渴), 안신증지(安神增智)한다. 기허욕탈(氣虛欲脫)이나 피를 많이 흘린 후나 토하고 설사를 많이 하고 혹은 비기부족으로 권태감이나 무력감, 식욕부진, 상복부 팽만감, 더부룩하고 토하고 설사하거나 혹은 폐기가 약하여 숨쉬기가 가쁘고 행동에 힘이 없고 동측기천(動則氣喘)을 치료하거나 진액이 상하여 입에 갈증이 있을 때 사용한다.
산삼종자가 산에서 자연상태로 발아후 생육된삼.
산삼은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자연산 고려인삼으로 한국어 고유 명칭은 심, 방추 등이 있다. 산삼을 정의하는 기준은 사람의 손을 거친 정도에 따라 나뉜다. 너무 건조하지도 습하지도 않으며, 응달도 아니고 양달도 아닌 곳에서만 자란다.
효능"
산삼은 기본적으로 여러해살이풀이기 때문에 해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자란다. 크게 지상부(줄기, 잎)와 뿌리로 나뉜다. 지상부와 뿌리를 노두가 나누고 있다. 노두 아래를 뿌리로 부르는데, 이 뿌리는 땅속줄기로 볼 수 있으며 약용으로 쓰는 부위이다. 뿌리는 수령이 찰수록 조금씩 성장하나 그 속도는 매우 느리다. 뿌리에는 보통 가락지로 부르는, 마디 비슷하게 생긴 횡추라는 구조가 형성이 된다. 산삼은 열보다는 냉기에 강하다. 보통 영하 15도 정도에도 버틸 수 있는데, 이는 산삼 뿌리를 이루는 체세포의 농도가 크기 때문이다. 질병에도 강하여 뿌리썩음, 탄저병, 무름 등에도 잘 걸리지 않는다. 특유의 강한 향기가 나는데, 이는 정유성분(精油成分)으로 불리는 특수한 물질 때문이라고 한다. 자연 산삼 또는 인삼의 열매를 새가 먹은 뒤, 근처 삼림 지대에서 배설물을 뿌리면 나무 아래서 뿌리가 내리고 발아하게 된다. 새가 먹느냐 짐승이 먹느냐에 따라 산삼의 평가에 차등을 두기도 하는데, 새의 위장을 통과하면서 장 속의 화학적 작용으로 씨앗이 발아하기에 적합한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보통 땅에 떨어진 씨앗이 발아하기까지는 2년이 걸린다고 한다. 발아한 뒤 삼대로 불리는 줄기가 나오며, 이 삼대에서 잎자루 1개가 돋는다. 잎자루에서는 3개의 잎이 나는데, 빛의 양에 따라 이 숫자는 줄어들 수 있다. 이상이 첫 해의 상황이고, 두 번째 해부터는 잎자루나 잎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매년 초봄에 일찍 새싹이 돋으며, 초여름에 뿌리가 부드러워지면서 무게가 줄어든다. 5월 중순 잎이 자라는 것을 멈춘다. 이 시기 황록색의 꽃이 30~50개 핀다. 열매는 6월에 열린 뒤 8월에 붉은 색으로 익는다. 씨앗은 콩팥 모양으로 2개가 열리며 색은 연한 우윳빛이다. 가을에는 잎과 줄기에 있던 영양분이 뿌리로 내려간 뒤 지상부는 시들어 떨어진다. 겨울에는 뿌리 부위만 남아 봄까지 기다린다. 산삼은 자라면서 1년에 1센티미터씩 더 깊게 땅 속으로 뿌리를 파고 내려간다. 그러나 15센티미터 정도 깊이 밑으로는 내려가지 않으며, 이 상태가 되면 지상부의 무게가 늘어나므로 하중을 견디기 위해 뿌리 부위는 수직 모양에서 지표면과 수평 방향으로 누워 자라게 된다. 가지 수와 잎이 많아질수록 지근이 촘촘하게 돋는데, 이는 무거워진 만큼 쓰러지지 않고 몸체를 지탱하기 위한 본능이다. 개중에는 뿌리를 내리기 어려운 낭떠러지나 경사가 가파른 곳에서는 지근 외에 측근(側根)이 생겨 한쪽으로 쓰러지지 않게 반대쪽에서 뿌리부 전체를 지탱해 주기도 한다. 꽃은 발육 조건이 좋다고 가정할 경우 발아 후 6~7년째 되어야 첫 꽃이 열리고 2~3개의 씨앗이 생산된다. 두 번째 꽃이 열릴 때는 6~10개의 씨앗이 생긴다. 새나 짐승 등이 열매를 먹은 뒤, 과육은 소화하고 단단한 씨앗을 배설물로 배출하는데, 이 배출된 부분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게 된다. 산삼의 성장 속도는 매우 느리다. 이는 산삼의 탄소 동화 작용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 증언에 따르면 47년산 산삼의 무게가 고작 58그램에 불과했다고 하는데, 이는 초기 씨앗의 무게에 대비하여 빠른 속도로 자라는 여타 식물과 비교하면 매우 작은 성장비율이다.
산삼의 자생 영역은 과거 고구려 영토와 비슷하다. 한국 왕조의 자체 수요용으로 쓰였으며 이는 백성들에 대한 가렴주구로 이어지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재배 인삼의 탄생을 부추기게 된다. 산삼에 대한 기록은 중국에 처음으로 나타나며 한국, 일본에도 기록이 전해진다. 산삼은 매우 느린 속도로 자라며, 씨를 섭취한 새의 배설물이 땅에 떨어져 싹이 트고 이후 여러 해에 걸쳐 잎과줄기의 개수를 늘리면서 뿌리를 깊이 드리워 간다. 생장에 위협을 주는 환경 하에서 휴면 상태에 돌입하는, 아직은 검증되지 않은 특이한 생존법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산삼은 그 개체수가 매우 적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생태나 효능에 대한 자세한 학문이 정립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그 효능에 대해 주술적, 미신적이고 과장된 평가가 내려지기도 하며, 수령이나 진품 여부, 채집 장소 등이 논란의 주제로 떠오르기도 한다. 과거 산삼의 주산지는 중국 동북 3성 지역과 한반도, 연해주 일부였다. 특히 고구려의 영토는 앞의 지역들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려인삼은 고구려 판도 안에서만 서식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만리장성이 세워지면서 중국 본토와 만주 일대 동북부의 교류는 끊겼고 이 상황은 한 무제 때까지 이어진다.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자리에 한사군을 설치하면서 한반도 북부 및 만주 남부와 중국 본토의 교류가 시작되었고, 이 지방의 특산물이었던 산삼도 중국에 알려지게 된다. 이후 산삼은 중국과의 대표적인 거래품으로 자리잡게 된다.
중국은 한국을 대표적인 산삼의 주산지로 보았으며 각종 공물 목록에 산삼을 포함시키는 일이 많았다.
발해"
일본과의 외교 예물로 산삼을 보내기도 했으며, 이후 산삼은 예물이자 교역품으로 한국에서 일본으로 지속적으로 유입되었다. 중국 및 고려 조정에서 요구하는 산삼의 양은 점차 많아졌고, 수량을 맞추기 위해 백성들은 고되게 산삼을 찾아 나서야 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백성들은 공납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도망치는 사태까지 생겼으며, 이런 와중에 산삼 채집의 수고를 덜고자 일부 주민들이 인위적으로 산삼 씨앗을 파종, 인삼 재배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시진이 저술한 《본초강목》에는 14세기 말부터 개성에서 인삼을 재배했다고 기록하였는데, 이 시기를 기준으로 산삼이라는 개념이 인위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인삼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인삼 재배가 활성화되기 전 기록물에 나타난 인삼은 산삼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 용어이다. 그러나 인삼이 조선후기 상품 작물로 재배되기 시작하면서,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자연산 인삼은 산삼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적인 개념을 얻게 된다.
자연산 인삼은 동북아시아의 고려인삼, 북아메리카 일부 지방의 미국인삼, 중국 일부 지역의 인삼 등으로 나뉘나, 한국에서 산삼이라고 부르는 대상은 위 셋 중 자연산 고려인삼만을 가리키기 때문에, 본 문서도 자연산 고려인삼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하 산삼으로 표기한 명칭들은 원문에는 인삼으로 표시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나 임의로 통일시켜 표기했다. 인삼 재배가 활성화되기 전 기록물에 나타난인삼은 산삼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 용어이다. 그러나 인삼이조선후기 상품 작물로 재배되기 시작하면서,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자연산 인삼은 산삼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적인 개념을 얻게 된다.
자연산 인삼은 동북 아시아의 고려인삼, 북아메리카 일부지방의 미국인삼,중국 일부지역의 인삼 등으로 나뉘나,
한국에서 산삼이라고 부르는 대상은 위 셋 중 자연산 고려인삼 만을 가리키기 때문에, 자연산 고려인삼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하 산삼으로 표기한 명칭들은 원문에는 인삼으로 표시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나 임의로 통일시켜 표기했다. 과거 산삼의 주산지는 중국 동북 3성 지역과 한반도, 연해주 일부였다. 특히 고구려의 영토는 앞의 지역들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려인삼은 고구려 판도 안에서만 서식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만리장성이 세워지면서 중국 본토와 만주 일대 동북부의 교류는 끊겼고 이 상황은한 무제때까지 이어진다.한나라가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자리에한사군을 설치하면서 한반도 북부 및 만주 남부와 중국 본토의 교류가 시작되었고, 이 지방의 특산물이었던 산삼도 중국에 알려지게 된다.이후 산삼은 중국과의 대표적인 거래품으로 자리잡게 된다. 중국은 한국을 대표적인 산삼의 주산지로 보았으며 각종 공물 목록에 산삼을 포함시키는 일이 많았다. 발해는 일본과의 외교 예물로 산삼을 보내기도 했으며, 이후 산삼은 예물이자 교역품으로 한국에서 일본으로 지속적으로 유입되었다.
"휴면"산삼의 특이점 중 하나가 이 휴면(休眠) 상태이다.
휴면은 산삼이 생존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외부 요인이 발생할 때 자기 보호 수단으로 발동하는 것으로 추측하기도 하나, 정확한 원인 및 검증된 휴면 기간 연구 결과는 아직 없다. 예를 들어 벌목으로 빛을 가리던 나무들이 사라져 일사량이 증가할 때, 또는 나무가 지나치게 무성해져 빛이 약해질 때, 토양의 수분이 과다하게 늘어날 때, 또는 그 반대로 물기가 지나치게 줄어들 때, 땅의 얼음이 덜 녹아 뿌리를 뻗기에 지나치게 차가울 때, 병충해로 지상부에 상처를 입었을 때, 역시 지상부를 동물에게 뜯어먹혀 상처를 입었을 때, 산불로 잎과 줄기가 타 버렸을 때 등이 산삼이 휴면 상태로 자신을 보호하게 되는 원인이라고 한다.휴면 상태가 되면 산삼의 뿌리 부분은 딱딱해지면서 색은 검은 갈색으로 되고 무게는 가벼워진다. 지근(支根)은 떨어져 나간다.러시아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산삼은 6년에서 최대 24년 동안이나 휴면 상태를 유지하며 그동안 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저서에 따라서는 2~3년으로 기록한 경우도 있다."효능"산삼 뿌리는 예전부터 만병통치약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산삼의 효능은 과학적으로 제대로 분석된 바가 없다. 치료 효과에 대한 연구는 기초적인 성분 분석물 비교를 제외하고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순수한 자연산 산삼의 시료를 구하기가 매우 힘들고, 구하더라도 무엇이 자연산 산삼이고 무엇이 인공적으로 가공한 인삼인지 기준을 세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과학적 분석이 없기 때문에 산삼의 치료 효과는 민간 전승이나 심마니들의 지식 및 증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그 효능이 지나치게 과장된 면이 있으며, 주술적, 미신적인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산삼은 오래된 것일수록 약효가 뛰어나다."라는 것이다. 이는 의학적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물론 현대 의학의 기준일 뿐이지만, 한국산 약재의 효능을 기록했던 기록물들이 심 또는 인삼으로 표시했던 것들은 현대의 재배종 인삼이 아니라 자연 상태의 산삼이다. 이는 현대 인삼의 효능이 과거 기록물의 그것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현대의 산삼 개체수가 워낙 적어 그 효과를 통계적으로 수집하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에, 과거 자료를 이용하여 그 효능을 예측할 수밖에 없다. 다만 지금까지 비공식적(일부 공식적)으로 알려진 산삼의 효과는 다음과 같다. 원기 회복/ 당뇨병 치료 / 항암 작용 / 노화 예방 / 성기능 활성화 촉진 / 발기부전 치료 / 혈압 정상화 / 치매 초기증세 예방 / 비염 치료 / 중추신경계 흥분 및 진정 효과 / 뇌기능 증진 / 면역 기능 조절 / 간 기능 증강 / 심혈관 장애 및 동맥 경화 치료 / 갱년기 장애 치료 / 골다공증 예방 / 위궤양 및 염증 치료 / 마약 중독 증세 치료 / 신장 기능 장애 치료 / 항산화 활성작용 / 방사선 장애 방어효과산삼을 섭취하면 사람에 따라 차이가 나기는 하나 명현작용 으로 부르는 일종의 '치료 효과'가 발현된다. 이는 술에 취한 듯 판단력이 흐려지거나, 몸에 후끈거리는 화기(火氣)가 올라오거나, 가볍게 인사불성 증세를 겪거나, 피부에 붉은 반점이 올라오거나, 깊은 잠을 자거나, 공중에 붕 뜬 느낌을 받거나, 과거에 경험했던 통증이나 질병이 재발하나
상쾌함이 동반되는 등 다양하다.다만 선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따라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부작용을 명현 작용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치료 대상자가 산삼의 효능을 맹신하기 때문에 빚는 사고이다. 대표적인 부작용은 다음과 같다. 고열 증세 / 가슴이 답답해짐 / 구토 / 어지러움증 / 코피를 흘림 / 두통이 옴 / 설사가 계속 남다음과 같은 경우 복용을 금지해야 한다.
급성 신장염, 급성 간염 환자에게 부작용 / 임산부 및 산모 섭취시 위험할 수 있음산삼은 따는 시기에 따라 그 효과가 다른데, 이는 산삼 내 들어 있는 영양분이 계절에 따라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봄삼, 여름삼, 가을삼 셋으로 구별하는데, 이 중 늦게 채집한 가을삼을 황절(黃節)이라고 하여 최고로 친다. 봄삼의 경우 줄기와 잎이 연한 시기이므로 뿌리와 함께 지상부를 달여 먹거나 따로 지상부만 나물로 먹는다. 여름삼은 일단 캔 뒤 뿌리만 물이끼로 싸서 촉촉하게 유지시키고, 지상부 부분이 마르면 뿌리만 먹는다. 가을삼은 지상부가 말라 죽고 영양분이 뿌리에 다 모여 있어 약효가 가장 뛰어난 상태이다. 인위적으로 기른 인삼과 산삼은 뚜렷한 구별 없이 조선시대에도 공납물품으로 취급되었다.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는 조선이 자연삼을 연간 수만 근 채취하여 일본과 중국 사이의 중개무역 물품으로 사용, 상인들이 막대한 부를 쌓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고 해설하고 있다.산삼의 한국 고유 명칭은 심이지만 어원과 유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심이라는 명칭은 《동의보감》, 《방약합편》, 《제중신편》 등의 의학서에 일관되게 등장하고 있다.
심마니의 '심'이 산삼을 일컫는 명칭일 것으로 추측된다.이외에 함경남도의 심마니들은 산삼을 방추, 방초로 부르는데 이는 한자어 방초(芳草)에서 온 말로 보인다.보통 대한민국의 산삼 관련 서적들에서 산삼을 정의하는 기준은 뚜렷하지 않다. 다만 산삼은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일수록 그 가치가 높고 본래의 산삼 뜻에 맞는데, 크게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자연생 산삼: 다른 이름으로 조복삼(鳥腹蔘)으로도 부른다. 이는 사람이 아닌 새가 열매를 먹은 뒤 소화가 되지 않은 씨를 배설하고, 여기에서 싹이 돋아 자라는 경우를 말한다. 여기에도 구별이 있는데, 새가 자연생 산삼의 열매를 먹고 배설한 경우와 인삼 열매를 먹고 배설한 경우로 나뉜다. 전자를 심마니들은 천종(天種)으로 부르며 최상급으로 친다.
장뇌산삼:
사람이 산삼 씨를 채취한 뒤 생육 조건이 좋은 산에 뿌려 자연 상태에서 자라도록 방치한 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채집하는 것이었으나 대부분 해발고도가 낮은 지역에서 키워 효능이 떨어지지만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키운 삼은 효과가 크다. 외관은 자연생 산삼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비슷하다. 가격은 자연산의 5분의 1~10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장 과정을 자연에 맡긴다는 점에서 산삼으로 분류된다. 서적에 따라서 장뇌삼을 산양 산삼의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산양(山養) 산삼:
사람이 인삼씨를 채취한 뒤 산이 아닌 거주지 근처에서 작물처럼 키우는 것이었으나, 현재 산양산삼은 해발고도 700미터 이상에서 키우는 삼이 많아지고 있다. 산양산삼의 가치는 해발고도 700미터 이상에서 재배한것과 그 이하 고도에서 키운것인가에 따라 가치의 차이가 난다. 해발고도 700미터 이상에서 자란 산양삼은 천종산삼의 약 70% 정도 효능을 가진다. 해발고도가 낮은 지역에서 키운 삼의 가치는 앞의 둘에 비해 떨어진다. 서적에 따라서는 산양산삼을 산삼의 범주에서 빼는 경우가 있다. 산삼의 한국 고유 명칭은 심이지만 어원과 유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심이라는 명칭은 《동의보감》, 《방약합편》, 《제중신편》 등의 의학서에 일관되게 등장하고 있다.
심마니의 '심'이 산삼을 일컫는 명칭일 것으로 추측된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 문헌으로, 양나라 도홍경(陶弘景)이 지은 의학서적 《신농본초경집주》, 《명의별록》에 3국의 산삼을 언급하였다.
《양서 梁書》 본기(本記)에 무제(武帝) 때 백제 무령왕이 산삼을 조공으로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진(陳)의 《국정백록 國政百錄》에는 고구려가 미역과 산삼을 보냈다는 기록이 나온다. 1123년송나라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에도 "고려인삼은 고려 전역에서 나온다."라고 언급이 되어 있으며, 이 때의 인삼은 사람이 키운 것이 아닌 산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나라 《책부원구》에는 627년신라진평왕이 고조에게 산삼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명나라 이시진이 1578년 쓴 《본초강목》에는 한국이 삼국 시대 때 자국에서 채취한 산삼을 중국에 수출하였다는 대목이 나온다.한국측 문헌으로 가장 먼저 산삼이 등장하는 곳은 김부식의 《삼국사기》로, 신라 소성왕 1년 길이가 9척이나 되는 산삼을 당나라에 진상하였으나 덕종이 보고 산삼이 아니라며 받기를 거절했다는 언급이 있다. 고려 고종 때의 《향약구급방》 중 〈방중향약목〉에 산삼을 한국 고유의 약재로 기록했다.
662년문무왕 때 나당연합군 편성을 기리는 차원에서 산삼 200근을 당나라에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1009년현종 원년 아랍 상인들과 고려인들이 산삼을 거래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전국 329개의 군현 중 113개소가 산삼을 공납물로 바쳤다고 기록되어 있다.일본측 문헌으로 서기 739년쇼무천황 11년, 발해 문왕이 국서와 산삼 30근을 도다이사(東大寺)에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서구권"유럽측의 기록에 처음으로 산삼이 언급되는 곳은 1692년네덜란드 사람 니콜라스가 쓴 《동북달단기》이다. 이후1714년 중국에 파견된 프랑스 신부 자톡스는 자신의 수기에 '달단인삼'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달단인삼을 당시 조선국에서 40리(16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부락에서 받은 것'이라고 서술했다. 그는 본인이 산삼 뿌리를 직접 먹어 보았으며 그 효능을 몸으로 확인했다고 기록했다.
자톡스는 주민들에게 받은 산삼의 효능과 위상을 서술하고 생김새를 그려 첨부, 프랑스 본국에 보냈다. 인위적으로 기른 인삼과 산삼은 뚜렷한 구별 없이 조선시대에도 공납물품으로 취급되었다.
최남선의《조선상식문답》에는 조선이 자연삼을 연간 수만 근 채취하여 일본과 중국 사이의 중개무역 물품으로 사용, 상인들이 막대한 부를 쌓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고 해설하고 있다.
산삼이 자라기 위해서는 적당한 일조량과 적당한 수분을 포함한 토양이 동시에 갖추어져야 한다. 산삼은 직사광선을 받으면 잎이 금방 시들어 버린다. 이처럼 까다로운 생육 조건 때문에 산삼이 자랄 수 있는 장소는 극히 한정되어 있으며, 산삼 자체도 군집하여 자라지 않고 독립적으로 떨어져 한 개체씩 자라난다.
"채집 문화"
산삼을 채취할 수 있는 시기는 4월 중순부터 11월초 까지이다.산삼은 예전부터 희소성으로 그 가치가 높았기 때문에, 한국에는 전문적으로 산삼만을 찾아 돌아다니는 소위 심마니들이 있어 왔다. 이들은 산삼 채집 과정에 토속 신앙을 엮어서 독특한 생활방식과 채취의식을 지켰으며, 심마니들만이 사용하는 특수한 은어를 만들었다. 예로, 이들은 입산 날짜를 정하면 산에 들어가는 날까지 고기를 먹지 않거나 살생을 금하였으며, 집을 떠나거나 입산 장소 민가에서 머물 때에는 인사 등을 일체 하지 않는다. 입산일에는 산신제, 수배제, 어인선생제 의식을 거행한다. 이후 산삼을 발견했을 때도 산삼 분배 및 소유권에 대한 심마니들만의 규칙이 있다. 산삼 획득 후 감사의 표시로 산신제를 올린다. 이들은 산삼을 캘 때 가는 뿌리(지근, 支根)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채취하는데, 이는 지근이 끊어지는 등 다치면 산삼이 놀라며 이를 먹은 사람도 놀란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같은 이유로 지근이 끊어진 산삼은 제 값을 받지 못한다.
(옛날이야기)
1: 아주 옛날, 지금의 충청남도 공주군 의당면 월곡리 한 젊은 내외가 늙은 아버지와 일곱 살짜리 아들과 함께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살림은 넉넉지 않았지만 마음씨 고운 내외는 열심히 일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그러던 어느 날, 연로하신 아버지가 갑자기 몸져눕게 됐다. 효성이 지극한 젊은 내외는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좋다는 약은 다 써 보았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여보, 아무래도 아버님께서 속히 일어나시지 못 할 중병에 걸리셨나 봐요. “그래도 어디 좀 더 노력해 봅시다.” 긴 병에 효자 없다지만 젊은 내외는 직극 정성으로 간병을 계속했다. 젊은이의 아내는 약으로 효험을 얻지 못 하자 문득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머리 속에 어릴 때 목욕재계하고 기도하시던 친정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아내는 마치 훌륭한 영약이라도 얻은 것처럼 얼른 남편에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그것 참 좋은 의견이구려. 어째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을까?” 젊은 부부는 매일 새벽마다 몸을 단정히 하고 관음기도를 올렸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내외는 마치 합장을 하듯 한 마음 한 목소리로 아버님의 회복을 기원했다. 그렇게 기도를 올리기 백 일째 되던 날이었다. 젊은이의 아내가 들에 나간 남편 점심을 챙기고 있는데 밖에서 목탁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가난한 살림살이였지만 정성껏 쌀 한 되를 들고 나가 시주 나오신 늙은 스님께 공손히 절을 하고는 바랑에 부었다. 쌀을 받아 넣은 스님은 막 사립문 안으로 들어서려는 젊은이의 아내를 불렀다. “부인,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데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지요 ? “네, 저의 시아버님께서 벌써 여러 달째 병환으로 고생하시고 계십니다. “거참 안 되었구려. 한 가지 방법이 있긴 있는데...”스님은 무슨 말인지 하려다가 그만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스님 , 방법이 있으시다구요?” “글쎄, 있기는 하지만 그게 너무 어려운 일이라서...” 아버님을 구하는 일인데 어려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알려만 주시면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이 집 내외가 효자라는 소문은 들었으나 좀처럼 쉽지 않을 텐데...” 부인의 청이 하도 간곡했기 때문인지 스님은 망설이면서 방법을 일러 줬다. “당신의 아들을 물에 삶아 아버님께 드리면 곧 일어나실 게요. “아들을요?” 소스라치게 놀라는 부인을 남겨 둔 채 스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젊은 아낙은 잠시 꿈을 꾼 듯 싶었다.
정신을 가다듬은 그녀는 남편 점심을 담은 함지를 이고 들로 나갔다. 그녀는 논둑길을 걸으면서 시아버지를 위해 아들을 희생시켜야겠다고 결심했다. 다른 날보다 점심이 늦은 데다 아내의 안색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남편은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어디가 아프오? “아니예요.” 아내는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말하고 싶었으나 남편의 점심 식사가 끝날 대까지 아무런 재색도 하지 않았다. “여보,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나 본데 어서 이야기해 보구려.” 아내로부터 자초지종을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놀라는 얼굴이 되었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여보, 아버님 병환을 고치는 일인데 주저해서 되겠어요? 아들은 또 낳을 수 있으나 부모님은 한 번 돌아가시면 다시 뵐 수 없잖아요.”
아내의 결심이 고맙긴 했으나 남편은 차마 승낙을 못하고 하늘만 쳐다봤다. 아내는 눈물을 글썽 이며 그 날 밤에 일을 치르자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 칠성이는 그 날도 밖에서 놀다가 들어와 저녁을 먹고는 곤하게 잠이 들었다. 잠든 아들을 끓는 물 속에 넣는 젊은 내외의 가슴은 터질 것만 같았다. 그 날 밤, 노인은 무슨 약인지도 모르고 며느리가 떨리는 손으로 온 약을 먹기가 좋다면서 두 그릇이나 마셨다. 이튿날 아침 노인은 언제 아팠었느냐는 듯이 거뜬히 일어났다. 젊은 내외에게 있어서 아버님 병환이 쾌차한 기쁨은 잠시였다. 아들을 생각하면 그냥 눈물만 쏟아질 뿐이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저녁 무렵, 밖에서 칠성이가 ‘엄마’하고 부르면서 뛰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아내는 헛것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엄마, 어젯밤에는 서당에서 공부하다 늦어서 그만 선생님과 함께 자고 왔어요. 용서하세요.” 부부는 아무래도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눈 앞에 서있는 사내아이는 분명히 자신들의 아들 칠성이었다. 엄마 아빠가 반기기는커녕 오히려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이 칠성이는 이상했다. “엄마, 왜그러세요. 저 때문에 걱정하시다 화나셨어요? “아 아니다.” 넋잃은 사람들처럼 제 정신을 못 가누고 있는 내외 앞에 이번엔 어제 다녀간 노스님이 나타났다. “너무 놀랄 것 없소. 그대들의 효심이 하도 지극하여 부처님께서 산삼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예?” 내외는 즉시 부엌으로 달려가 솥뚜껑을 열어 보았다. 솥 속엔 정말 커다란 산삼 한 뿌리가 들어 있었다. 젊은 부부는 기뻐서 눈물을 흘리며 스님을 향해 합장을 했다. 그러나 스님은 어느 새 간 곳이 없었다. 칠성이네 집에는 그날부터 다시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심산유곡에서 나는 이 산삼은 흰색으로 단맛이 있었다 한다. 이것을 끓여 정신안정·오장보익·신장병·류머티즘 등에 특효약으로 썼다고 한다.
2 : 효성이 지극한 한 부부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어머니가 병이 들자 부부는 약을 구해다 썼으나 약이 듣지를 않았다. 하루는 중이 시주를 하러 집에 왔다가 아들을 보고는 “이 집에 우환이 들었구나.”하고 탄식을 하였다. 아들은 중에게 “어머니를 살릴 방법이 없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중은 “있기는 하나 쉬운 방법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아들이 “시키는 대로 뭐든 할 테니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하고 청하자 중은 “자식을 가마솥에 삶아 고아서 그 물을 퍼다 어머니를 드리면 병이 나을 것입니다.”하고 길을 떠났다. 아들은 고민하다 부인에게 “자식은 또 낳으면 되니 어머니 병을 낫게 합시다.”하고 말하고, 나갔다 돌아오는 아들을 가마솥에 넣고 삶아 어머니에게 드렸다. 이리해서 어머니의 병이 씻은 듯 나았지만, 아내는 자식을 생각하며 부엌에 숨어 울고 있었다. 그런데 저녁때가 되어 문 밖에서 아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아내는 귀를 의심하고 가마솥 뚜껑을 열어 보았는데, 그 안에는 아들이 아니라 커다란 산삼이 있었다. 이는 중이 아들 내외의 효심에 감복하여 도술을 써 산삼을 준 것이다. "삼령" 산삼의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 검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중에 팔리는 산삼의 나이(삼령, 蔘齡)는 검증 없이 부풀려지는 경우가 많다(백 년 단위로 불리는 때도 많다). 산삼의 나이를 아는 방법으로 기존에 널리 퍼진 방법은 네 가지이다. 뇌두: 뇌두는 줄기가 붙어 있다가 말라 죽은 흔적이다. 뇌두 1개당 1년 나이로 칠 수 있다는 믿음이 퍼져 있다. 황취: 황취는 산삼의 몸에 난 가락지 비슷한 흔적이다. 이 개수로 나이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줄기와 잎: 산삼은 나이가 많아질수록 지상부의 줄기와 줄기 하나마다 난 잎의 수가 많아진다고 한다. 옥주: 산삼의 지근에 좁쌀처럼 달라붙은 동그란 마디. 역시 이 수가 많을수록 오래된 산삼이라고 한다.다음과 같은 이유로 위 방법들은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뇌두: 줄기가 말라 죽고 나서 뿌리의 다른 곳에서 나지 않고, 이전 뇌두 자리에서 다시 줄기가 이듬해 나오는 경우도 있다. 휴면 기간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기 때문에 실제 연령과 뇌두 개수는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적당한 양의 토양이 뿌리 위를 덮을 경우 뇌두가 길어질 수도 있다.황취: 토양의 수분 함유량 변화에 따라 황취는 어느 해는 생길 수도 있고 어느 해는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뇌두와 마찬가지로 흙이 뿌리 위를 덮을 경우 황취 수가 많아질 경우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황취가 생기지 않을 수 있다. 줄기와 잎: 생육 조건이 좋으면 같은 연령이라도 줄기가더 발달하고, 잎의 수가 더 많을 수 있다. "명산"유명한 산이 따로 있으며 이런 산에서 딴 산삼은 여타 장소에서 채집한 산삼보다 더 영험한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 역시 근거 없는 믿음이다. 산지와 무관하게 한반도의 산삼은 똑같은 성분 및 효과를 갖고 있다. "가짜 산삼"중국에서 생산된 장뇌삼을 대한민국 업주들이 불법 수입한 뒤 국내에 심어 국내산 산삼으로 속여 판매하는 경우가 많아 주의가 요구된다. 이러한 위품(僞品)들이 성행하는 이유는 국가에서 공인한 전문 산삼감정사가 없기 때문이다."민간 설화"산삼은 그 희귀성과 효용성 때문에 오래전부터 한국의 각종 설화의 소재가 되었다. 이들 설화 내에서 산삼은 '행운을 가져다 주는 신비한 대상'으로 묘사되었다. 심마니들의 기준으로 산삼이 살 수 있는 입지조건의 기본은 '경사가 완만한 산 동쪽 방향에, 활엽수와 침엽수가 섞여 자라는 혼효림 지대에, 유기물질이 풍부한 토양'이다.여기서 혼효림을 꼽는 이유는, 침엽수만 있는 곳은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활엽수만 있는 곳은 겨울 때 잎이 다 떨어질 경우 햇빛을 지나치게 받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둘이 섞여 있어야 햇빛의 과다함이나 부족함 없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단삼(Salvia miltiorrhiza Bunge)의 뿌리로 만든 약재(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다섯 가지 삼(參)- 인삼, 고삼, 단삼, 현삼, 사삼 -은 오색(五色)을 띄며 오장(五臟)에 각각 배속되는데 단삼은 심(心)에 들어가기 때문에 적삼(赤參)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단삼은 풍병(風病)을 치료하여 하지무력감을 없애주므로 달리는 말을 쫓아갈 수 있게 한다하여 분마초(奔馬草)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단삼의 뿌리줄기(근경)는 짧고 거칠며 끝부분에 보통 줄기 자국이 남아 있다. 뿌리는 긴 원통형으로 여러 개로 갈라져 있으며 바깥면은 적갈색 또는 어두운 적갈색이고 거칠고 세로 주름이 있다. 오래된 것은 자갈색을 띠며 보통 비늘 모양의 것이 떨어져 나온다. 단삼은 극선초(郄蟬草), 목양유(木羊乳), 분마초(奔馬草), 산삼(山參), 적삼(赤參), 축마(逐馬), 홍근(紅根)이라고도 한다. 이 약은 약간 특이한 향기가 있고 약성은 쓰고 떫으며 약간 차다.[苦微寒], 혈액순환을 돕고, 어혈을 제거하며 사지관절 동통을 완화시킨다. 부인의 생리불순, 생리통, 산후복통, 어혈성심복부통, 타박상 등을 치료한다. 고열로 인한 정신혼몽, 헛소리, 번조, 불면증, 피부발진, 심계항진 등을 치료한다. 약리작용은 관상동맥 확장, 콜레스테롤 강하, 혈압 강하, 간기능 활성화, 진정 항염, 항암, 항균작용이 보고되었다. 현삼은 중대(重臺) ·현대(玄臺) ·귀장(鬼藏) ·축마(逐馬)라고도 한다. 산지에서 자란다. 뿌리가 굵어지고 높이 80∼150 cm로, 단면은 사각형이며 가지가 없다. 잎은 마주달리고 긴 난형이며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으며 잎자루는 짧다. 꽃은 8∼9월에 피고 황록색이며 취산꽃차례에 달린다. 꽃받침은 5개로 갈라지고 화관은 찌그러진 단지처럼 생겼으며 가장자리는 5개로 갈라진다. 4개의 수술 중에서 2개가 길고 삭과(蒴果)는 난형이다. 한방에서 뿌리를 현삼이라고 하며 해열제로 인후염 ·종기 ·림프선염에 사용한다. 근연종에는 울릉도에서 자라는 섬현삼(S. takesimensis), 산지에서 자라는 큰개현삼(S. kakudensis) 및 토현삼(S. koraiensis) 등이 있다. 사삼 높이는 70㎝에서 120㎝사이이며. 꽃은 종 모양으로 7월과 9월사이에 하늘색으로 핍니다. 열매는 끝에 꽃받침이 달린 채로 익습니다. 약재형태는 방추형 또는 긴 원추형이며 구부러졌고 드물게는 가지뿌리가 있습니다. 사삼은 진액을 보충하여 폐를 윤택하게 하고 열을 식히며 담을 없애 만성적인 기침, 가래를 치료하는 중요한 약재입니다. 따라서 폐가 건조하여 나오는 마른 기침과 몸이 허약해져서 발생하는 기침, 열병을 앓은 후에 생기는 갈증과 허열 등에 효과가 있습니다. 다른이름 苦心(고심), 南沙參(남사삼), 더덕, 鈴兒草(령아초), 文虎(문호), 文希(문희), 白參(백삼),識美(식미), 羊乳(양유), 羊婆奶(양파내), 잔대), 知母(지모), 志取(지취), 虎鬚(호수) 약맛 고(苦) 감(甘) 귀경 폐(肺) 위(胃) 주치 疥瘡, 마른 기침 , 오랜 기침 , 상처 인 트로트 마른 목 의 통증 , 신체 가려움증 , 악 염증 ,위 음 하지 부족 , 음과 가상 천진 손실 , 흐린 가상의 위협 고통 , 두꺼운 가래 , 아픈 궤양 , 폐뜨거운 마른 기침 , 폐 위축 , 폐 음 가상 기침 기침 , 폐 인플레이션 , 기침 기침 , 가상 노동 오랜 기침, 금기"虛寒證에는 服用을 忌한다. 肺寒이나 風寒으로 인한 咳嗽에는 복용을 忌한다. 藜蘆에 反한다. 효능" 가래 정지 기침 , 하는 바람 정지 가려움증 , 방전 고름이 제거 부종 , 유지 위장 원시 진 ,모금 여성 청나라 폐를 다스린다. 문헌근거(본초강목),주치증상"<본경(本經)>: 瘀血과 驚氣를 치료하고 寒熱症을 치료하며 中氣와 肺氣를 補한다. <별록(別錄)>: 胃痺(위비)와 心腹痛을 치료하며, 熱邪가 뭉쳐서 발생한 頭痛과 피부의 邪熱을 제거하며, 五臓을 편안하게 하니 오래 복용하면 좋다. 이것은 또한 羊乳라고도 하는데 頭腫痛을 치료하고 益氣하며 肌肉을 돕는 작용이 있다고 하였다. 견권(甄權): 체표의 風邪를 제거하고, 극심한 하복부 통증을 동반한 탈장을 치료하며 잠이 너무 많이 오는 증상을 치료한다. 또한 肝氣를 기르고 五臓의 風氣를 치료한다. 지대명(池大明): 補虛작용이 있고 놀라고 답답한 것을 그치게 하며 心肺를 돕는다. 아울러 모든 惡瘡과 疥癬 및 피부소양을 치료하며, 排膿작용이 있고 腫毒을 해소한다. 肺火를 제거하기 때문에 오래된 咳嗽(해소)와 肺痿(폐위)를 치료할 수 있다. "약물이름의 기원 "<오보본초(吳普本草)>에서는 白參이라 하였고, <별록(別錄)>에서는 知母, 羊乳, 鈴兒草, 虎鬚,苦心, 文希, 識美, 志取라고 하였고 <本草綱目(본초강목)>에서는 羊婆奶라고 하였다. 陶弘景(도홍경): 이것은 人參, 玄蔘, 丹參, 苦參과 함께 五參이 되는데, 그 형태가 모두 다르나 치료하는 바가 비슷하기 때문에 모두 參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또한 紫參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牡蒙이다. 沙參은 白色이며 모래땅에서 잘 자라므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그 뿌리에는 흰색 즙이 많아서 이인(俚人)들은 양파내(羊婆奶)라고 불렀으며 別錄에 이름만 있고 사용하지 않은 羊乳는 바로 이것이다. 이 약재는 심이 없고 맛이 담담한데 <별록(別錄)>에서 苦心이라고 한 것은 知母와 같은 이름인데 왜 그렇게 불렀는지 모른다. 영아초(鈴兒草)라고 한 것은 꽃 모양 때문이다. 고삼" 한방에서는 뿌리를 말린 것을 고삼이라 하는데, 맛이 쓰고 인삼의 효능이 있어 소화불량·신경통·간염·황달·치질 등에 처방한다. 민간에서는 줄기나 잎을 달여서 살충제로 쓰기도 한다. 같은속의 식물로 산두근(山豆根)이 있는데 생김새가 매우 비슷하다. 한국·일본·중국·시베리아 등지에 분포한다. 도둑놈의지팡이·너삼·뱀의정자나무라고도 한다. 양지 바른 풀밭에서 자란다. 높이 80∼100cm로 녹색이지만 어릴 때는 검은빛을 띤다. 줄기는 곧고 잎은 어긋나며 홀수깃꼴겹잎이다. 작은잎은 15∼40개이고 긴 타원형 또는 긴 달걀 모양이며 길이 2∼4cm, 나비 7∼15mm이다. 잎자루가 길며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6∼8월에 가지 끝에 20cm 정도의 꽃줄기가 나와 나비 모양의 연한 노란색 꽃이 총상꽃차례로 핀다. 꽃 길이는 15∼18mm이다. 꽃받침은 통처럼 생겼고 겉에 털이 나며 끝이 5개로 얕게 갈라진다. 열매는 협과로 염주 모양이다. 짧은 대가 있으며 길이 7∼8cm로 9∼10월에 익는다. 산삼 만물을 구성하는 요소 천, 지, 인, 하늘과 땅과 사람 (천지,지종,인종) 천종 (오래된삼), 지종 (20년 이상된삼), 인종 (야생삼20년미만삼), 야생삼 : 모던삼씨(인삼씨,산양삼씨,산삼씨등.가 산에서 스스로 싹이트고 자란 삼을 통칭 야생삼 이라고한다. 즉 새, 짐승,사람이 산에 삼씨앗을 뿌려준것 포함, 관리하지 않은방임(자연그대로의)상태의 야생에서 자란삼. 산양삼" 산지관리법 제2조 제1호 에서 정의하고 있는산지에서 차광막 등 인공시설을 설치하디 아니하고 생산되는삼 (건조된것포함한것) 을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