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북부 강원도(북한) 금강군·고성군·통천군에 걸쳐 광범위하게 펼쳐진 산.
동서길이 약 40km, 남북길이 약 60km, 면적은 약 530㎢이다. 최고봉인 비로봉(1,638m)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오봉산·옥녀봉·상등봉·선창산·금수봉, 서쪽에는 영랑봉·용허봉(룡허봉), 남쪽에는 월출봉·일출봉·차일봉·백마봉, 동쪽에는 세존봉 등이 솟아 있다. 1952년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전에는 회양(淮陽)·통천(通川)·고성(高城)·인제(麟蹄)의 4개군에 걸쳐 있었다.
신생대 제3기 중신세 이후에 진행된 경동성 요곡운동으로 형성되었으며, 화강편마암이 노출된 신금강(新金剛)의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조립질(粗粒質)의 흑운모 화강암과 반상(斑狀) 화강암으로 형성되어 있어 절리가 발달되고 풍화침식이 쉽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금강산을 부르는 이름이 5가지 있다. 첫째가 금강산(金剛山)이고, 둘째는 개골산(皆骨山), 셋째가 열반산(涅槃山), 넷째가 풍악산(楓嶽山), 다섯째가 기달산(怾怛山)이다. 금강과 열반은 불교적 이름이다. 이와 달리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그 경색이 달라져 판이한 정취를 주므로 계절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있다. 봄에는 온 산이 새싹과 꽃에 뒤덮이므로 금강이라 하고, 여름에는 봉우리와 계곡에 녹음이 무성하므로 봉래(蓬萊)라고 하며, 가을에는 1만 2000봉이 단풍으로 곱게 물들기 때문에 풍악이라고 하며, 겨울이 되어 나뭇잎이 지고 나면 암석만 뼈처럼 드러나므로 개골이라고 부른다. 여러 이름으로 불리면서도 사람들이 금강산으로 통칭하는 것은 이 산이 불교의 영적인 산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눈·비가 많은 지역으로 태백산맥을 기준으로 서쪽은 7월, 동쪽은 8월에 비가 집중적으로 오며, 겨울에는 눈이 2~3m씩 내린다. 따라서 여행은 우기가 시작되기 전인 4~5월이나, 우기가 끝나는 9월 중순이나 10월이 적기이다. 동해안에 근접해 있어 짙은 안개가 자주 끼며, 산악기후로 일기가 고르지 못해 갑자기 바람이 불거나 순간적으로 폭우가 내리기도 한다. 단풍은 설악산보다 빠른 9월 하순부터 시작된다.
금강산에는 동해로 흘러드는 남강·온정천·천불천·선창천과 서해로 흘러드는 금강천·동금강천 등의 하천이 있다. 각양각색의 크고 작은 폭포들이 많은데 그중 4대 폭포로 이름난 구룡연계곡의 구룡폭포와 비봉폭포, 구성계곡의 옥영폭포, 석문동계곡의 십이폭포 등이 있다. 또 관동팔경의 하나로 이름난 삼일포를 비롯하여 영랑호·감호 등 자연호수들이 있다.
식물분포는 해발고도 300~400m 아래에는 소나무림, 해발 300~800m에는 소나무·참나무의 혼성림, 800m 위로는 활엽수림을 이룬다. 940여 종의 식물이 있고 그중 880여 종은 꽃피는 식물이며, 세계적으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1속 1종인 금강국수나무·금강초롱꽃과 한국 특산식물인 금강봄맞이꽃·만리화 등이 있다. 또한 칼새목·딱따구리목·도요새목 등 20여 목의 새와 금강모치·열목어·어름치 등 희귀보호어종이 산다.
곳곳에 자연미와 인공미의 조화를 보이는 유서 깊은 사찰과 석탑·불상·불당(佛堂)·암자 등이 많다. 금강군 일대에는 고인돌 16기, 만폭동·옥류동에는 바위글씨가 있다. 계절에 따른 아름다움이 각각 달라, 봄에는 금강산, 여름에는 봉래산(蓬萊山), 가을에는 풍악산(楓嶽山), 겨울에는 개골산(皆骨山)이라고 한다.
금강산의 주봉은 비로봉(1638미터)이다. 북쪽으로는 영랑봉(1601미터), 옥녀봉(1424미터), 상등봉(1227미터), 오봉산(1264미터)이 있고, 남쪽으로는 월출봉(1580미터), 일출봉(1552미터), 차일봉(1529미터), 미륵봉(1538미터), 백마봉(1510미터), 호룡봉(1403미터), 국사봉(1385미터) 등이 솟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금강산의 서쪽 봉우리로 만경봉, 백운대, 국망점, 비로봉을 큰 봉우리로 싣고 있다.
비로봉은 금강산의 주 봉우리로 바위에 무늬가 있다. 오랫동안 산 기운과 안개로 인하여 아롱지게 섞이고 어리어 눈[설(雪)]빛 같다. 산 이름을 개골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린 글이다. 금강산에는 일출봉과 월출봉이 있는데 해와 달이 뜨는 모습이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답다.
금강산은 우리나라 동해 위에 있다. 지형의 아름다움이 세상에 높이 뛰어났다. 그런 까닭에 그 이름이 천하에 퍼진 것이다. 내가 어릴 때 듣기로, 세상 사람들이 와서 보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나, 그렇게 되지 못함을 한탄하여 그 그림을 그려놓고 예배(禮拜)하는 사람까지 있었다고 하였다. 그 사모함의 간절함이 이러하였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이 나라에 나서, 이 산과의 거리가 수백 리도 못 되건만 벼슬에 얽매이고 세속의 명리에 분주하여 일찍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표연히 떠나 멀리 가고 싶은 마음은 일찍이 가슴속에서 오락가락하지 앓을 때가 없었다. 병자년 가을에 중국에 가서 천자를 뵈었더니 황제가 친히 글제(題)를 내시어 시 20여 수를 짓게 하였다. 그중의 하나가 금강산이라는 제목이었다. 이에 이 산의 이름이 과연 온 천하에 높아서 내가 어릴 때 들은 말들이 헛말이 아닌 것을 알았다.
조선 초기의 문장가인 권근의 글이다. 그는 명나라에서 귀국하는 즉시 금강산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전보다 더 바빠져서 끝내 금강산에 갈 수 없었다. 가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나 먹지만 그 소원대로 되는 것은 아니어서 조선시대 사대부들 중 금강산을 유람했던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당시 권근이 중국의 황제에게 바쳤던 금강산 시는 다음과 같다.
높고 높은 천만봉(千萬峯)이 눈처럼 희게 섰으니, 바다 구름이 옥부용(玉芙蓉)을 열어 내놓았네. 신령한 빛이 출렁거리니 창해(滄海)가 가깝고, 기운이 굼실굼실 조화(造化)가 모임이로다. 우뚝 높이 솟은 언덕과 봉우리는 조도(鳥道)에 임하고,맑고도 그윽한 동학(洞壑)은 신선의 자취를 숨기었네. 동쪽으로 노닐어 문득 그 높은 정상에 올라, 홍몽(鴻濛, 천지가 아직 나누어지지 않은 상태, 즉 광대하고 뚜렷하지 않은 상태를 말함)을 굽어보며 한번 시원히 가슴을 씻어볼 것인가.
권근과 동시대의 사람으로 조선 왕조를 개창하는 데 한몫을 했던 하륜도 금강산에 대한 글을 남겼다.
풍악은 진실로 기이하고 뛰어나서 사랑할 만하다. 납의(衲衣, 중이 입는 옷)를 입은 자들이 그 사이에 살고 있으니, 돌계단이 1000길이나 되어서 사람의 발자취가 드물게 이르기 때문에 마음이 경계와 더불어 고요할 수 있다. 그리하여 간혹 그 도(道)를 깨닫는 자가 있다. 그러나 그 산을 금강산이라고 일컫는 것은 『장경(藏經)』의 설을 빌린 것이다. 『장경』에 금강산을 말하기를 “동해 속의 팔만유순(八萬由旬)의 곳에 1만 2000의 담무갈(曇無竭, 보살의 이름)이 항상 그 가운데에 머무른다”라고 하였으니, 풍악을 말한 것은 아니다. (······)
풍악을 일컬어 금강산이라고 하는 것은 그 풍악의 기이하고 뛰어난 것을 사랑함인가. 그 금강(金剛)이라는 가설(假說)을 사모함인가. 거짓된 설(說)이 한 번 나와 온 세상 사람들이 그치지 않고 분주히 달려가기에 내가 변박(辨駁)하려 한 것이 오래다. 이제 그대가 시를 청하는 것을 인연으로 알고 이미 그 옛일을 생각하고, 산을 사랑하는 뜻에서 이 글을 쓴 것이니 그대는 참작할지어다. 만약 “모든 상(相)은 상(相)이 아니며, 진(眞)도 가(假)도 다 공(空)이라고 말한다면, 내가 감히 변론할 바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하륜은 금강산에 대한 이야기가 불교에서 유래되어 사람들에게 잘못 전해지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서 금강산 답사를 떠나는 승려에게 이 글을 보냈던 것이다.
내금강·외금강·신금강·해금강의 4개 지역으로 구분되는데 최고봉인 비로봉이 솟아 있는 중앙 연봉을 경계로 서쪽은 내금강, 동쪽은 외금강, 외금강의 남쪽 계곡은 신금강, 동단의 해안부는 해금강이다.
1998년 9월부터 바닷길을 통한 해로관광이 시작되었으나 2004년 1월에 중단되었고, 육로 관광은 2003년 9월부터 개방되었다. 2008년 7월 북한군의 피격으로 관광객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모든 관광이 잠정 중단되었다.
내금강.
주맥인 옥녀봉(1,424m)·비로봉·월출봉(1,580m)·차일봉(1,529m)·호룡봉(1,403m) 등 연봉의 안쪽에 위치하며 동쪽 외금강과 접한다. 수려한 계곡미로 유명하며, 암석과 계류, 잣나무·전나무 등의 수림 및 사찰로 구성되어 우아하고 조화된 경관으로서의 특색을 지녀 외금강이 남성적이라면 내금강은 여성적인 절경을 이룬다.
만천·만폭·백운대·명경대·망군대·태상·구성·비로봉 구역의 8개 명승구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내금강의 진수는 내강리에서 장안사터를 거쳐 표훈사·정양사터·만폭동을 지나 보덕암·마하연·묘길상을 도는 만폭동 코스이다.
장안사·명경대·망군대·삼불암·표훈사·정양사·만폭동 등의 빼어난 명승고적과 경관이 있다. 장안사는 내금강의 입구부인 노송(老松)이 늘어선 곳에 자리잡은 신라 때에 창건한 거찰로 여러 차례에 걸친 흥망의 역사를 지닌다.
장안사·명경대·망군대·삼불암·표훈사·정양사·만폭동 등의 빼어난 명승고적과 경관이 있다. 장안사는 내금강의 입구부인 노송(老松)이 늘어선 곳에 자리잡은 신라 때에 창건한 거찰로 여러 차례에 걸친 흥망의 역사를 지닌다.
내금강의 주된 계곡을 이루는 동금강천의 상류는 백천동으로 이어지고, 그 동쪽으로 황천강 계곡이 갈린다. 그 계곡에 하늘을 가로막고 우뚝 솟은 암벽이 명경대인데, 이름 그대로 거울처럼 생긴 암벽이 그 아래에 짙푸르게 괸 벽담(碧潭)에 그림자를 만들며 신비로운 경승을 이룬다.
백천동에서 서쪽으로 갈리는 백탑동(百塔洞)을 따라 올라간 곳에 망군대가 있다. 수십 명이 앉을 수 있는 평면을 이루는 망군대는 수십 길 암벽 위에 있어 산중에서 제일가는 전망대로, 내금강의 여러 봉우리와 골짜기 및 비로봉을 비롯한 금강산 주맥의 연봉이 이루는 장관을 내려다볼 수 있다. 부근에는 폭포의 경승으로 알려진 수렴동(水簾洞)이 있다.
백천동 본류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명연담(鳴淵潭)·삼불암(三佛巖)의 명소에 이어 계곡 서쪽 기슭에 표훈사가 있다. 그 뒤의 정양사 헐성루(歇惺樓)는 망군대와 더불어 금강산을 조망하기에 좋다. 표훈사에서 금강문(金剛門)을 거쳐 올라가면 비로봉을 정면으로 하는 만폭동 계곡이 나타난다. 만폭동은 길이 약 2km 계곡으로 바위와 물이 내금강에서 으뜸가는 경승을 이루는데, 특히 흑룡담·벽하담·분설담·진주담·구담·선담·화룡담 등 8개의 담이 층층으로 놓여 있는 8담이 있다.
비로봉 아래 계곡에는 거대한 암상(岩床)에 양사언(楊士彦)의 웅혼한 필적으로 된 '蓬萊楓嶽元化洞天(봉래풍악원화동천)'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고, 비로봉 북쪽 4km 지점의 용마석 위에는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태자인 마의태자의 무덤이 있다. 계곡 말단부 가까이에 있는 사선교(四仙橋)는 비로봉을 오르는 등산구(登山口)로 금강산의 최고봉인 비로봉 정상에 오르면 멀리 동해가 보이고, 금강산 1만 2000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1998년 금강산 여행이 시작될 때 내금강을 오르는 코스는 개방되지 않았다.
외금강과 신금강.
태백산맥 동쪽 비탈면에 자리잡은 외금강은 내금강과 동해안 해금강 사이에 펼쳐져 있다. 내금강에서와 같은 사찰 등 인공적인 요소가 가미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경관으로 한층 웅대하고 대담한 경관을 드러낸다.
비로봉을 기준으로 북쪽에는 옥녀봉(1,423m)·상등봉(1,229m)·온정령(858m)·오봉산(1,264m)이, 남쪽에는 월출봉(1,580m)·일출봉(1,552m)·내무재령(1,275m)·차일봉(1,529m)·외무재령(1,137m)이 주능선으로 있다.
온정·만물상·구룡연·수정봉·천불동·선창·백정봉 구역 등 7개 명승구역이 있는데, 온정리에서 한하계·육화폭포·만상정·천선대·만물상을 도는 만물상 코스와 온정리에서 신계사터·옥류동·비봉폭포·구룡폭포·상팔담을 도는 구룡연 코스에서 외금강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온정구역은 외금강휴양소 일대를 포괄하는 금강산 관광의 중심지로서 금강산혁명사적관이 있으며, 대자봉에는 금강산온천이 있다.
온정·만물상·구룡연·수정봉·천불동·선창·백정봉 구역 등 7개 명승구역이 있는데, 온정리에서 한하계·육화폭포·만상정·천선대·만물상을 도는 만물상 코스와 온정리에서 신계사터·옥류동·비봉폭포·구룡폭포·상팔담을 도는 구룡연 코스에서 외금강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온정구역은 외금강휴양소 일대를 포괄하는 금강산 관광의 중심지로서 금강산혁명사적관이 있으며, 대자봉에는 금강산온천이 있다.
신계천 계곡 입구에 있는 신계사(神溪寺)는 지금은 대웅전 앞의 고탑(古塔)이 있을 뿐이나, 집선봉(1,351m)과 채하봉의 조망이 뛰어나고, 신계사를 지나면 정면의 옥녀봉을 중심으로 오른쪽의 세존봉(1,222m), 왼쪽의 관음연봉 등이 내금강에서는 볼 수 없는 웅혼한 산의 모습을 드러낸다.
일응대(一應臺)에서 계곡을 건너 남하하면 계곡미의 절정을 이루는 옥계류가 나타나는데, 특히 대반석 위를 맑은 물이 비단폭처럼 흘러내리면서 곳곳에 주렴 같은 폭포를 이루는 비봉폭포와, 거대한 바위 위를 흘러내린 물이 짙푸른 소를 이루는 옥류동의 경승이 뛰어나다. 계곡이 끝나는 곳에는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을 낙하하는 높이 74m, 너비 4m의 구룡폭포가 있다. 그 위에는 8개의 맑고 푸른 상팔담 연못이 있고, 아래에는 수심 13m의 폭호(瀑壺) 구룡연이 있다.
만물상(萬物相)은 금강산의 가장 대표적인 경승지로, 온정리에서 약 6km 지나면 입구인 만상정(萬相亭)이 있고, 그곳에서 물도 없고 수목도 거의 없는 한하계가 시작된다. 삼선암·귀면암 등 유명무명의 암봉들이 각각 천태만상의 기괴한 모습들을 드러내어 자연의 조화에 의한 걸작을 보여줌으로써 천하에 둘도 없는 장관을 형성한다.
금강산 주맥의 월출봉에서 동쪽으로 뻗어 채하봉·집선봉 등 산봉을 일으키는 지맥을 경계로 남쪽에 외금강과 분리된 신금강(新金剛)이 있다. 신금강의 대표적인 경승에는 급경사의 계곡을 흘러내리는 물이 곳곳에서 폭포를 이루는 십이폭과 은선대·칠보대·직류폭포·채하폭포·바리소·무지개다리·송림굴·소연소·구룡소·선담 등이 있다. 그밖에 금강산 제일의 거찰 유점사와 송림사가 있다.
유점사는 신라시대에 창건한 고찰로, 본당 능인전에는 53불이 안치되어 있고, 부근에 반야암·백련암·명적암 등 암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