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군. 寧越郡.
정의
강원도 남부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태백시, 서쪽은 원주시, 남쪽은 충청북도 제천시·단양군 및 경상북도 영주시, 북쪽은 평창군·정선군 등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8° 06′∼128° 54′, 북위 37° 01′∼37° 24′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1,127.60㎢이고, 인구는 4만 216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개 읍, 7개 면, 179개 행정리(57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에 있다.
동경 128° 06′∼128° 54′, 북위 37° 01′∼37° 24′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1,127.60㎢이고, 인구는 4만 216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개 읍, 7개 면, 179개 행정리(57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에 있다.
자연환경
북동쪽에는 태백산맥이 남북으로, 남동쪽에는 소백산맥이 분기하여 동서로, 북서쪽에는 차령산맥이 남서 방향으로 각각 뻗어 있어 그 산맥의 여파가 군내 각지에 미쳐 산악이 중첩한 산간 지역을 이룬다.
평지는 주천면 주천리와 영월분지 외에는 별로 없다.
주위의 높은 산지에는 옛 침식면인 고위평탄면이 넓게 발달해 있어 고랭지채소를 중심으로 하는 고랭지농업이 행해진다.
주위의 높은 산지에는 옛 침식면인 고위평탄면이 넓게 발달해 있어 고랭지채소를 중심으로 하는 고랭지농업이 행해진다.
군내에는 옥천신지향사대(沃川新地向斜帶)에 속하는 곳이 많아 석회석과 무연탄을 부존하는 조선누층군(朝鮮累層群)과 평안누층군(平安累層群)이 분포하고 있어, 시멘트 공업과 탄전을 비롯한 각종 광물자원의 개발로 잘 알려져 있다.
한반도면 옹정리·쌍룡리, 남면 연당리, 김삿갓면 각동리 일대에는 석회암 지역의 용식지형(溶蝕地形)인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되었고, 고씨동굴과 같은 석회 동굴도 여러 곳에 발달해 있다.
북서쪽에 백덕산(白德山, 1,426m)·두위봉(斗圍峰, 1,466m)·직운산(織雲山, 1,172m), 남쪽에 태화산(太華山, 1,027m)·어래산(御來山, 1,064m)·선달산(先達山, 1,236m)·구룡산(九龍山, 1,346m) 등이 주위를 둘러싸고 군내에도 매봉산(1,268m)·망경대산(望景臺山, 1,027m)·응봉산(鷹峰山, 1,013m)·봉래산(蓬來山, 800m) 등이 솟아 있다.
이들 산지 사이를 남한강의 지류인 주천강(酒泉江)과 평창강(平昌江)이 심한 곡류를 하면서 한반도면의 신천리 부근에서 합류하여 동류하다가, 영월읍 하송리에서 한강 본류와 합류한다.
구룡산에서 발원한 옥동천(玉洞川)이 서류하여 김삿갓면 각동리에서 한강 본류인 남한강에 흘러든다.
구룡산에서 발원한 옥동천(玉洞川)이 서류하여 김삿갓면 각동리에서 한강 본류인 남한강에 흘러든다.
남한강 본류의 주요 부분과 큰 지류들은 산록계상(山麓階狀)의 침식면 사이에 깊숙히 형성되어 있는 하곡을 곡류하고 있어, 침식면과 하곡 사이에는 상당한 고도의 사면(斜面)들이 있고, 이들 사면을 따라 완사면단구와 하성단구(河成段丘)들이 발달하였다.
남한강 본류에는 영월읍 일대에 여러 단(段)의 단구가 발달해 있고, 영월읍의 방절리 일대(청령포부근)는 곡류의 절단으로 특색 있는 지형을 이루고 있다.
남한강 본류에는 영월읍 일대에 여러 단(段)의 단구가 발달해 있고, 영월읍의 방절리 일대(청령포부근)는 곡류의 절단으로 특색 있는 지형을 이루고 있다.
내륙 산간지대에 위치하기 때문에 기온의 일교차가 큰 내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연평균 기온 10.8°C, 1월 평균기온 -5.7°C, 8월 평균기온 25.5°C이며, 연 강수량은 999.7㎜이다.
연평균 기온 10.8°C, 1월 평균기온 -5.7°C, 8월 평균기온 25.5°C이며, 연 강수량은 999.7㎜이다.
역사
구석기인이 거주하였던 흔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나 인접한 횡성군 둔내면에서 1만∼2만 년 전의 후기구석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주먹도끼·찍개·긁개 등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 지역에도 구석기시대에 인류가 살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삼한시대에는 진한의 일부였고 4세기 초부터 한산성(漢山城: 지금의 광주)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 백제의 세력이 커져 한강 하류지역 일대를 차지함에 따라 이때부터 백제에 속하게 되었다.
그당시 이 고장은 100가구가 넘는다는 뜻으로 백제의 백월(百越) 땅이라 불렸다.
그당시 이 고장은 100가구가 넘는다는 뜻으로 백제의 백월(百越) 땅이라 불렸다.
북쪽의 고구려 세력이 낙랑군을 정복하면서 남하하게 되고 또한 반도 동남부에서 일어난 신라의 세력이 팽창하여 북상해 오면서 한강 이남의 중부 지방은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 사이에 치열한 경쟁의 중심지가 되었다.
장수왕 때에 고구려는 국도를 평양으로 옮기고 그 세력을 남으로 뻗쳐 백제의 도읍지인 한성을 함락시킨뒤 한강 유역은 고구려가 점령하게 되어 백월은 고구려에 속하게 되었고 내생현(奈生縣)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 후 신라가 통일을 이루고 통치제도를 정비하면서 내생현을 내성군(奈城郡)으로 개칭하였으며, 9주 5소경 중 명주(溟州)에 속하게 되었다.
그 후 신라가 통일을 이루고 통치제도를 정비하면서 내생현을 내성군(奈城郡)으로 개칭하였으며, 9주 5소경 중 명주(溟州)에 속하게 되었다.
후삼국기에 이 지역은 고려에 영속되었고 940년(태조 23)영월로 고쳤다가 1018년(현종 9)에 주천현(酒泉縣)을 폐하면서 원주(原州)에 이속시켰다.
995년(성종 14) 전국을 10도로 나눌 때 원주와 같이 중원도에 속하였고, 5도양계 이후에는 양광도(楊廣道)에 편입되었다가 1372년(공민왕 21)에 영월 출신 환자(宦者) 연달마실리(延達麻實里)가 명나라에 있으면서 국가에 공이 있다고 하여 영월을 군으로 승격시켰다.
995년(성종 14) 전국을 10도로 나눌 때 원주와 같이 중원도에 속하였고, 5도양계 이후에는 양광도(楊廣道)에 편입되었다가 1372년(공민왕 21)에 영월 출신 환자(宦者) 연달마실리(延達麻實里)가 명나라에 있으면서 국가에 공이 있다고 하여 영월을 군으로 승격시켰다.
1401년(태종 1)에 이 지역은 강원도에 귀속되면서 지군사(知郡事)가 다스렸다.
1457년(세종 3)에는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되어 왔다. 1698년(숙종 24)에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고려 때 이름 높았던 학자 정추(鄭樞)가 읊은 대로 “칼 같은 산들은 얽히고 설켜 있고, 비단결 같은 냇물은 맑고 잔잔한” 영월땅은 산이 높고 골이 깊어 심심산골로 이름난 정선 못지않게 수려한 경관을 보여준다.
백운산, 두위봉, 태화산, 운봉, 구룡산 들이 높이 솟아 영월을 둘러싸고, 이들 산 사이에서 흘러 나온 주천강, 평창강, 하동천이 심한 굴곡을 이루며 군내 곳곳을 어루만진다.
영월땅에는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는데, 삼국 시대에는 백제와 고구려, 신라가 치열한 힘 대결을 벌였고, 고려 때에 이르러 ‘편안히 넘어가는 곳, 영월(寧越)’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본래는 충청땅이었으나 조선 초기인 정종 1년(1399)에 강원도에 속하게 되었다.
강원땅 가장 남쪽에 오이처럼 길쭉하게 누워 있는 영월은 동서쪽으로는 원주·횡성과 더불어 삼척에 잇닿아 있고, 북쪽으로 횡성·평창·정선, 남쪽으로 충북의 단양·제천, 경북의 봉화·영풍 등 아홉 개 군에 둘러싸여 있는 내륙이다.
단종의 무덤인 장릉을 비롯하여, 관풍헌, 자규루, 청령포 등 단종과 관련된 역사 유적이 곳곳에 있으며, 단종의 행적에 얽힌 땅 이름과 전설도 많이 남아 있다.
동북쪽 언저리인 수주면에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의 대도량이었던 법흥사가 있다.
하동면 와석리에는 조선 후기 몰락 양반 출신으로 방랑길에 올라 양반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했던 김삿갓의 묘가 있는데, 그가 영월땅에 묻혔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불과 10여 년 전인 1982년의 일이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권력 다툼의 희생양이 된 단종(조선 6대왕)이 쫓겨 들어와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슬픈 역사를 간직한 땅, 그리고 조선 후기 봉건적 신분 질서가 무너지는 시기에 양반 관료들의 탐욕과 부패를 조롱하고 풍자하며 방방곡곡을 다니던 김삿갓의 최종 행선지가 된 영월. 수려한 산수 속에 두 인물의 한과 삶이 눈앞에 보이듯 펼쳐진다.
1457년(세종 3)에는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되어 왔다. 1698년(숙종 24)에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고려 때 이름 높았던 학자 정추(鄭樞)가 읊은 대로 “칼 같은 산들은 얽히고 설켜 있고, 비단결 같은 냇물은 맑고 잔잔한” 영월땅은 산이 높고 골이 깊어 심심산골로 이름난 정선 못지않게 수려한 경관을 보여준다.
백운산, 두위봉, 태화산, 운봉, 구룡산 들이 높이 솟아 영월을 둘러싸고, 이들 산 사이에서 흘러 나온 주천강, 평창강, 하동천이 심한 굴곡을 이루며 군내 곳곳을 어루만진다.
영월땅에는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는데, 삼국 시대에는 백제와 고구려, 신라가 치열한 힘 대결을 벌였고, 고려 때에 이르러 ‘편안히 넘어가는 곳, 영월(寧越)’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본래는 충청땅이었으나 조선 초기인 정종 1년(1399)에 강원도에 속하게 되었다.
강원땅 가장 남쪽에 오이처럼 길쭉하게 누워 있는 영월은 동서쪽으로는 원주·횡성과 더불어 삼척에 잇닿아 있고, 북쪽으로 횡성·평창·정선, 남쪽으로 충북의 단양·제천, 경북의 봉화·영풍 등 아홉 개 군에 둘러싸여 있는 내륙이다.
단종의 무덤인 장릉을 비롯하여, 관풍헌, 자규루, 청령포 등 단종과 관련된 역사 유적이 곳곳에 있으며, 단종의 행적에 얽힌 땅 이름과 전설도 많이 남아 있다.
동북쪽 언저리인 수주면에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의 대도량이었던 법흥사가 있다.
하동면 와석리에는 조선 후기 몰락 양반 출신으로 방랑길에 올라 양반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했던 김삿갓의 묘가 있는데, 그가 영월땅에 묻혔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불과 10여 년 전인 1982년의 일이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권력 다툼의 희생양이 된 단종(조선 6대왕)이 쫓겨 들어와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슬픈 역사를 간직한 땅, 그리고 조선 후기 봉건적 신분 질서가 무너지는 시기에 양반 관료들의 탐욕과 부패를 조롱하고 풍자하며 방방곡곡을 다니던 김삿갓의 최종 행선지가 된 영월. 수려한 산수 속에 두 인물의 한과 삶이 눈앞에 보이듯 펼쳐진다.
1895년(고종 32) 을미개편 때 군이 되었으며, 원주·평창·정선 등과 함께 충주부에 편입되었다가 1896년 전국을 13도로 나눌 때에 다시 강원도로 복귀하게 되었다.
1914년원주에 속해 있던 수주면(水周面)과 좌변면(左邊面)이 이 지역으로 귀속되었으며, 1915년에는 정선군 신동면 석항리가 편입되었다.
1931년천상면(川上面)이 군내면(郡內面)으로 개칭되었으며, 1937년 7월군내면이 영월면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원주에 속해 있던 수주면(水周面)과 좌변면(左邊面)이 이 지역으로 귀속되었으며, 1915년에는 정선군 신동면 석항리가 편입되었다.
1931년천상면(川上面)이 군내면(郡內面)으로 개칭되었으며, 1937년 7월군내면이 영월면으로 개칭되었다.
1960년 1월 1일영월면이 상동면 연하리를 편입하여 읍으로 승격되었다.
1963년 1월 1일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의 천평리·덕구리가 상동면에 편입되고, 수주면 강림리·부곡리·월현리가 횡성군 안흥면으로 편입되었다.
1963년 1월 1일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의 천평리·덕구리가 상동면에 편입되고, 수주면 강림리·부곡리·월현리가 횡성군 안흥면으로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에는 상동면이 정선군 신동면 천포리 일부의 편입을 받아 읍으로 승격되었고, 하동면(지금의 김삿갓면) 정양리와 남면 흥월리가 영월읍에, 서면(지금의 한반도면)의 북쌍리가 남면에 편입되었다.
1986년상동읍의 녹전(碌田)·석항(石項) 2개 출장소를 통합, 중동면을 설치하였다.
1986년상동읍의 녹전(碌田)·석항(石項) 2개 출장소를 통합, 중동면을 설치하였다.
2009년에는 하동면이 김삿갓면으로, 서면이 한반도면으로 각각 명칭이 변경되었다. 2016년 11월에는 수주면이 무릉도원면으로 변경되었다.
유물·유적
영월군 보유 지정문화재는 국가지정문화재로 보물 1개, 사적 및 명승 3개, 천연기념물 4개가 있고, 강원도지정문화재로는 유형문화재 10개, 기념물 6개가 있으며, 문화재 자료는 11개가 있다.
영월읍과 북면에서 간석기, 김삿갓면 각동리의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간돌칼과 간돌화살촉이 발견되었다.
성곽으로는 영월읍 정양리의 영월왕검성(寧越王儉城, 일명 鵲城, 강원도문화재자료 제52호)과 무릉도원면 법흥리의 성터가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무릉도원면의 영월무릉리마애여래좌상(강원도유형문화재 제74호)을 비롯하여 법흥리의 영월법흥사부도(寧越法興寺浮屠, 강원도유형문화재 제73호)·영월법흥사석분(石墳, 강원도유형문화재 제109호)·영월흥녕사징효대사탑비(寧越興寧寺澄曉大師塔碑, 보물 제612호)·영월징효국사부도(강원도유형문화재 제72호)·흥녕선원지(興寧禪院址, 강원도기념물 제6호), 상동읍의 구래리사지(九來里寺址) 등이 있다.
영월읍 영흥리의 보덕사극락보전(報德寺極樂寶殿, 강원도문화재자료 제23호)·염불당·사성전·금몽암(禁夢庵, 강원도문화재자료 제25호)·오층석탑, 주천면 주천리의 주천삼층석탑(강원도문화재자료 제28호), 무릉도원면의 무릉리오층석탑·삼층석탑 등과 현존 사찰로 법흥사·봉정사·보덕사·망경사·금산사·백룡사·덕안사·송산사·문암사·고안사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영월읍 영흥리의 영월향교(강원도유형문화재 제100호)를 비롯하여 자규루 및 관풍헌(子規樓―觀風軒, 강원도유형문화재 제26호)·영모전(永慕殿, 강원도유형문화재 제56호)·창절사(彰節祠, 강원도유형문화재 제27호)·민충사(愍忠祠, 강원도문화재자료 제27호)·금강정(錦江亭, 강원도문화재자료 제24호), 한반도면 후탄리의 관란정(觀瀾亭), 무릉도원면 무릉리의 요선정(邀仙亭, 강원도문화재자료 제41호)·모현사(慕賢祠) 등이 있다.
모현사는 원호(元昊)의 사당이다.
원호는 단종이 영월에 유배되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인 원주로 낙향하였다가 단종이 죽은 뒤 지금의 사당 자리에 토굴을 파고 은신하였는데, 1699년(숙종 25) 그의 충절을 가상히 여긴 왕의 명으로 그가 토굴을 파고 은거하였던 곳에 사당을 건립하였다 한다.
원호는 단종이 영월에 유배되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인 원주로 낙향하였다가 단종이 죽은 뒤 지금의 사당 자리에 토굴을 파고 은신하였는데, 1699년(숙종 25) 그의 충절을 가상히 여긴 왕의 명으로 그가 토굴을 파고 은거하였던 곳에 사당을 건립하였다 한다.
영월읍 영흥리에 장릉(莊陵, 사적 제196호)·영월정조대왕태실 및 태실비(寧越正祖大王胎室―胎室碑, 강원도유형문화재 제114호), 남면 광천리에 청령포(淸泠浦, 강원도기념물 제5호)·의호총(義虎塚)·낙화암(落花巖)이 있으며, 무릉도원면 두산리에는 1859년(철종 10) 나무를 보호하기 위하여 세운 금표(禁標)도 있다.
정려로는 엄흥도(嚴興道) 정려각을 비롯하여 연일정씨·경주이씨 효부각, 영월엄씨·온양방씨 열녀문, 신영숙(辛永叔)·김지룡(金知龍)·엄민도(嚴敏道)·유영복(劉永福)·채빈하(蔡彬夏)의 효자각, 유용식(劉龍植)이 조상들의 위패를 봉안한 흥현각(興賢閣)과 효자문이 있다.
고가로는 남면 북상리에 영월우구정가옥(寧越禹九鼎家屋, 강원도문화재자료 제70호)·창원리에 영월고진하가옥(寧越高鎭河家屋, 강원도문화재자료 제72호), 주천면 주천리에 영월김종길가옥(寧越金鍾吉家屋, 강원도문화재자료 제71호), 무릉도원면 무릉리에 영월원용성가옥(寧越元容星家屋, 강원도문화재자료 제73호)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김삿갓면 진별리에 영월고씨굴(천연기념물 제219호), 영월읍 하송리에 수령 1,300년 된 영월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76호), 남면 광천리에 영월의 관음송(寧越―觀音松, 천연기념물 제349호)이 있다.
그 밖에 기념물로 임진왜란 때 피난처로 이용된 김삿갓면 진별리의 영월용담굴(寧越龍潭窟, 강원도기념물 제23호)·영월대야동굴(寧越大野洞窟, 강원도기념물 제32호), 영월읍 연하리의 영월연하동굴(寧越蓮下洞窟, 강원도기념물 제31호) 등 석회암 자연동굴이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는 1398년(태조 7)에 창건된 영월읍 영흥리의 영월향교가 최초였다.
이 향교는 영월 유림의 본거지였으며, 지금의 영월초등학교 초기 졸업생이 이곳에서 공부하였다.
1912년 영월공립보통학교의 개교를 시작으로 근대 교육기관이 들어섰다.
이 향교는 영월 유림의 본거지였으며, 지금의 영월초등학교 초기 졸업생이 이곳에서 공부하였다.
1912년 영월공립보통학교의 개교를 시작으로 근대 교육기관이 들어섰다.
교육기관으로는 2015년 현재 초등학교 19개교, 중학교 11개교, 고등학교 6개교, 세경대학교가 있다.
군립 도서관이 있어 교육·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1965년에 개원한 영월문화원은 단종제(端宗祭) 등 각종 문화예술 행사를 주관하고 자료의 연구 결과를 출판하여 향토 문화의 계승과 개발에 공헌하고 있다. 문화공간으로는 공공공연장, 미술관, 복지회관이 있다.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는데, 단종역사관, 난고 김삿갓문학관, 동강사진박물관, 들꽃민속촌, 묵산미술관, 영월곤충박물관, 영월책박물관, 조선민화박물관 등이 있다.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는데, 단종역사관, 난고 김삿갓문학관, 동강사진박물관, 들꽃민속촌, 묵산미술관, 영월곤충박물관, 영월책박물관, 조선민화박물관 등이 있다.
민속
민속놀이로는 칡줄다리기·띠놀이·도깨비놀이 등이 있다.
칡줄다리기는 줄다리기의 일종으로, 대개 정초에 동강(東江)을 중심으로 두 편으로 나뉘어 행해지는데, 진 편이 한 해 동안 이긴 편의 부역까지 부담도록 되어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줄을 일반적으로 볏짚으로 만드는 데 비해 여기서는 칡덩굴로 만든다는 점이 특징이다.
칡줄다리기는 줄다리기의 일종으로, 대개 정초에 동강(東江)을 중심으로 두 편으로 나뉘어 행해지는데, 진 편이 한 해 동안 이긴 편의 부역까지 부담도록 되어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줄을 일반적으로 볏짚으로 만드는 데 비해 여기서는 칡덩굴로 만든다는 점이 특징이다.
띠놀이는 이곳에서 죽은 단종이 신유생 닭띠로 그 운명이 기구하였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이 놀이는 12지에 해당되는 각 동물의 가면을 만들어 쓰고 풍물을 울리면서 각 동물의 특성을 연출하는 마당놀이 이다.
이 놀이는 12지에 해당되는 각 동물의 가면을 만들어 쓰고 풍물을 울리면서 각 동물의 특성을 연출하는 마당놀이 이다.
도깨비놀이 또한 단종과 관련된 것이다.
단종의 능이 장릉이 되기 전 노산묘(魯山墓)였을 때, 묘를 수호하는 사람이 없어 도깨비가 수호하였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도깨비탈을 쓰고 놀았던 놀이이다.
단종의 능이 장릉이 되기 전 노산묘(魯山墓)였을 때, 묘를 수호하는 사람이 없어 도깨비가 수호하였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도깨비탈을 쓰고 놀았던 놀이이다.
동제는 서낭제와 산신제가 있는데, 단종과 관련된 동제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단종이 죽은 뒤 태백산 산신이 되었다는 속신에서 유래한 것으로, 동강변 느티나무거리에서 하는 굿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것은 단종이 죽은 뒤 태백산 산신이 되었다는 속신에서 유래한 것으로, 동강변 느티나무거리에서 하는 굿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동강변 느티나무거리에서의 굿은 매년 태백산 산신이 된 단종의 혼령을 모셔 놓고 무당을 불러 큰굿을 올려 단종의 넋을 위로하고 아울러 풍년과 평안을 빌던 것이었는데, 대왕의 혼령을 굿으로 모시는 것은 속되다 하여 1900년부터 중단되었다.
영월읍 영흥리 능말 서낭당, 상동읍의 구래리 서낭당, 중동면 녹전리 서낭당, 김삿갓면 내리의 서낭당에서도 단종의 혼령을 모신 동제가 행해지고 있다.
내리에서는 모든 마을이 서낭제를 지내는 반면, 남면 광천리에서는 30가구는 서낭제를 지내고 14가구는 산신제를 지낸다.
이곳은 음력 정월 초사흗날에 제향을 지낸 다음, 가구마다 소지를 올려 그 해의 길흉을 점친다.
내리에서는 모든 마을이 서낭제를 지내는 반면, 남면 광천리에서는 30가구는 서낭제를 지내고 14가구는 산신제를 지낸다.
이곳은 음력 정월 초사흗날에 제향을 지낸 다음, 가구마다 소지를 올려 그 해의 길흉을 점친다.
설화·민요
설화로는 단종이 이곳에 유배되었다가 죽은 사실과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며, 이 밖에 실재했던 인물의 행적이 전설화된 것이 전해지고 있다.
단종의 능에 관한 「장릉설화」는 단종이 사사되어 그 시신이 영월 강물에 떠내려가던 중 영월 호장(戶長)이었던 엄흥도가 동강과 서강이 합수하는 곳에서 이를 건져 지금의 장릉 자리에 암장하고는 세조의 보복이 두려워 종적을 감추었다는 내용이다.
단종의 능에 관한 「장릉설화」는 단종이 사사되어 그 시신이 영월 강물에 떠내려가던 중 영월 호장(戶長)이었던 엄흥도가 동강과 서강이 합수하는 곳에서 이를 건져 지금의 장릉 자리에 암장하고는 세조의 보복이 두려워 종적을 감추었다는 내용이다.
「추충신설화(秋忠臣說話)」는 단종과 추익한(秋益漢)이라는 충신에 얽힌 설화이다. 단종이 배소에서 외로이 지낼 때 추익한이 자주 머루를 따다 드렸다.
어느 하루는 추익한의 꿈에 단종이 백마를 타고 지나가기에 행선지 물었더니 태백산으로 간다고 하여 배소에 가보았더니 이미 사사되었다.
추익한은 꿈에 단종을 만난 길을 따라 달려가다가 죽었다.
영월읍 서낭당에서는 백마를 탄 단종과 머루를 바치는 추익한의 그림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어느 하루는 추익한의 꿈에 단종이 백마를 타고 지나가기에 행선지 물었더니 태백산으로 간다고 하여 배소에 가보았더니 이미 사사되었다.
추익한은 꿈에 단종을 만난 길을 따라 달려가다가 죽었다.
영월읍 서낭당에서는 백마를 탄 단종과 머루를 바치는 추익한의 그림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낙화암전설」은 단종이 죽자 그를 시봉하던 시녀들이 동강 절벽에서 꽃처럼 떨어져 죽었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어라연전설(魚羅淵傳說)」은 죽은 단종의 혼령과 영월읍의 어라연 사이에 얽힌 전설이다.
단종의 혼령이 영월에서 제일 경치가 뛰어난 어라연을 보고는 여기에서 신선처럼 살고자 하였는데, 어라연의 크고 작은 고기들이 줄을 지어 현신하여 단종에게 태백산 산신령이 되어야 한다고 하여 단종의 혼령이 그렇게 하였다.
이곳을 고기가 떼지어 진언한 곳이라 하여 어라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단종의 혼령이 영월에서 제일 경치가 뛰어난 어라연을 보고는 여기에서 신선처럼 살고자 하였는데, 어라연의 크고 작은 고기들이 줄을 지어 현신하여 단종에게 태백산 산신령이 되어야 한다고 하여 단종의 혼령이 그렇게 하였다.
이곳을 고기가 떼지어 진언한 곳이라 하여 어라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금몽암설화」는 단종이 영월에 있을 때 근교의 절에 가보았더니 궁중에 있을 때 꿈에 본 절과 꼭 같다 하여 그 이름을 금몽암이라 하였다는 내용이다.
「단종현몽설화」, 영월부사의 아들과 영월기생 고경춘(高瓊春)에 얽힌 「염정설화」, 엄효자(嚴孝子)가 3년 시묘 생활을 하는 동안 호랑이가 그를 돌보았다는 「신호설화(神虎說話)」, 주천면의 바위에서 물 대신 술이 나왔다는 「술샘전설」등이 전해지고 있다.
강원도에서도 산악문화권에 속하는 고을이면서 강원도 민요를 대표하는 「정선아리랑」의 본고장인 정선과 이웃하고 있는 탓으로 영월의 민요는 「정선아리랑」의 영향을 받았다고 여겨진다.
이 곳이 단종의 슬픈 사연이 얽혀 있는 고장인 탓으로, 이별의 애절함과 임 생각, 인생의 무상함을 읊은 노래가 전해진다.
이 곳이 단종의 슬픈 사연이 얽혀 있는 고장인 탓으로, 이별의 애절함과 임 생각, 인생의 무상함을 읊은 노래가 전해진다.
「정선아리랑」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이는 것으로는 “명사십리(明沙十里) 해당화야 꽃 진다고 설워 마라.”라든지, “모본단 이불이 십여 폭 되는데 깔고 덮고 농탕만 친다...”등이 있다.
임과의 이별에서 오는 애절한 사연이 담긴 민요로는 “……녹수진경 너른 들은 님 다니시던 길인가 보구나 이여라 놓아라 내 못 놓겠네…….”, “……갈랴거든 진작이나 가지 정들여 놓고 갈랬던가 이여라 놓아라 내 못놓겠네 사지를 찢어도 못놓겠네…….”가 있다.
“우리 낭군 가실 적에 달 뜨거든 오마더니 저 달이 지도록 아니 오네.”, “자군(自君)으로 득병신(得病身)이 군불약래(君不若來)면 아(我)는 사(死)지.”도 임과의 관계를 노래하고 있다.
유배와 결부시켜 생각할 수 있는 민요로는 “산역부지(山亦不知) 산도 설고 수역부지(水亦不知) 물도 선데 뇌하인이(賴何人而) 눌바래고 내차호(來此乎) 여기 왔니.” 등이 있다.
유배와 결부시켜 생각할 수 있는 민요로는 “산역부지(山亦不知) 산도 설고 수역부지(水亦不知) 물도 선데 뇌하인이(賴何人而) 눌바래고 내차호(來此乎) 여기 왔니.” 등이 있다.
산업·교통
내륙 산간지대이기 때문에 총 경지면적 7,013㏊ 중 논이 937㏊, 밭이 6,076㏊로 밭이 훨씬 많다.
농가 가구는 4,605가구, 농가 인구 1만 831명으로 농가 가구와 인구가 모두 감소 추세이다.
농가 가구는 4,605가구, 농가 인구 1만 831명으로 농가 가구와 인구가 모두 감소 추세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옥수수·감자 등이고, 특히 옥수수는 상동읍·중동면·영월읍 및 주천면에서 많이 생산되며, 땅콩은 주천면, 잎담배는 영월읍에서 생산량이 많다.
채소류는 배추·양배추·수박·당근 등 다양한데, 질운산·백운산·두위봉 등 고산지에 형성된 고위평탄면에서 배추를 비롯한 고랭지채소의 재배가 활발하며, 고추의 생산량도 많다.
채소류는 배추·양배추·수박·당근 등 다양한데, 질운산·백운산·두위봉 등 고산지에 형성된 고위평탄면에서 배추를 비롯한 고랭지채소의 재배가 활발하며, 고추의 생산량도 많다.
군내에 초지가 많아 목축업도 점차 발전되어 가축의 사육 두수도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한우는 영월읍·북면·남면·주천면, 젖소는 주천면(전체의 60% 이상)·영월읍·남면, 돼지는 북면·김삿갓면·영월읍·한반도면 등지에서 주로 사육되고 있다.
임야면적 9만 379㏊ 중 국유림 5만 5018㏊, 공유림 5,091㏊, 사유림 3만 270㏊이다. 임목지 8만 9566㏊ 중 침엽수림 2만 9732㏊, 활엽수림 2만 4726㏊, 혼효림 3만 5108㏊이다. 주요 임산물은 갱목을 비롯하여 밤·대추·잣·도토리·송이·표고버섯 등이다.
군내에는 지질 구조상 지하자원이 많이 매장되어 있어 광업이 번창하였으나, 석탄 합리화 정책과 중국산 자원의 수입에 따라 가행 광산이 크게 줄었다.
무연탄은 영월읍·북면, 규석과 납석은 주천면, 운모는 김삿갓면에서 채굴되고 있다.
석회석은 한반도면·주천면·남면·중동면에서 채굴되고 있는데, 생산량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한때 남한 제1의 중석 광산이었던 상동중석광산은 1994년 초 폐광되었다.
2015년 현재 영월군에는 16개의 광산업체가 있는데, 주로 장석, 석회석, 운모, 납석, 규석, 고령토, 백운석 등이 채굴되고 있다.
이 중 석회석이 1670만 7107t이 생산되고 그 다음으로 백운석이 50만 3714t, 규석이 37만 6729t, 납석이 8만 6481t이 생산되고 있다.
무연탄은 영월읍·북면, 규석과 납석은 주천면, 운모는 김삿갓면에서 채굴되고 있다.
석회석은 한반도면·주천면·남면·중동면에서 채굴되고 있는데, 생산량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한때 남한 제1의 중석 광산이었던 상동중석광산은 1994년 초 폐광되었다.
2015년 현재 영월군에는 16개의 광산업체가 있는데, 주로 장석, 석회석, 운모, 납석, 규석, 고령토, 백운석 등이 채굴되고 있다.
이 중 석회석이 1670만 7107t이 생산되고 그 다음으로 백운석이 50만 3714t, 규석이 37만 6729t, 납석이 8만 6481t이 생산되고 있다.
한반도면 쌍룡리에서 쌍용양회가 생산되고, 영월읍 정양리에는 시설용량 40만㎾의 영월화력발전소와 복합화력발전소가 있었으나 현재는 폐기되고 대체 복합전력 생산 시설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북면 문곡리에는 농공단지가 조성되고 있어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된다.
북면 문곡리에는 농공단지가 조성되고 있어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된다.
상업활동은 예로부터 정기시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770년대 군내에는 읍내장과 서면(지금의 한반도면) 신천장이 1일, 상동의 녹번장(현 중동면 녹전)이 3일, 연평장(현 북면 연덕리)이 4일에 개설되는 등 4개의 장이 있었다.
1770년대 군내에는 읍내장과 서면(지금의 한반도면) 신천장이 1일, 상동의 녹번장(현 중동면 녹전)이 3일, 연평장(현 북면 연덕리)이 4일에 개설되는 등 4개의 장이 있었다.
1830년대에는 부내장(현 영월읍)이 5·10일, 토교리장(현 남면 토교리)이 1·6일에 각각 개설되었다.
1912년대에는 영월읍장은 종전대로 개설되고, 이외에 주천면에 주천장이 1·6일, 북면에 마차장이 4·9일에 개설되어 3개로 증설되었고, 1923년대에는 개시일은 변동 없이 영월읍과 주천장 2개만이 남게 되었으며, 1926년대에는 앞의 2개 외에 수주면(지금의 무릉도원면)에 강림장이 4·9일에 개시됨으로써 1개가 증설되었다.
1912년대에는 영월읍장은 종전대로 개설되고, 이외에 주천면에 주천장이 1·6일, 북면에 마차장이 4·9일에 개설되어 3개로 증설되었고, 1923년대에는 개시일은 변동 없이 영월읍과 주천장 2개만이 남게 되었으며, 1926년대에는 앞의 2개 외에 수주면(지금의 무릉도원면)에 강림장이 4·9일에 개시됨으로써 1개가 증설되었다.
1938년대에는 영월·주천·강림 외에 하동면(지금의 김삿갓면)에 옥동장(玉洞場)이 2·7일, 상동면에 녹전장이 3·8일, 북면에 문곡장(文谷場)이 4·9일, 서면(지금의 한반도면)에 신천장(新川場)과 남면에 연당장(淵堂場)이 1·9일에 개설되는 등 8개로 증가되었다.
1963년대에는 영월읍에 상설시장과 정기시장, 주천·녹전장 외에 상동면에 구래장(九來場)과 북면에 마차장(磨磋場)이 4·9일에 개설되는 등 5개로 감소되었고, 1994년에는 종래의 5개 외에 서면(지금의 한반도면)의 신천장이 2·7일에 개설되어 6개로 증가했다.
교통은 산업철도인 태백선(太白線)이 군 중앙에 있는 쌍룡·연당·영월·연하·석항 등의 역을 통과한다. 군내를 지나는 31번 국도와 38번 국도는 북면 문곡리에서 합쳐져서 영월읍을 가로지르고 중동면 석항리에서 다시 갈라져 제천·평창·태백 등지와 연결된다.
지방도로는 402번이 영월·신천·주천·원주, 413번이 문곡∼창리, 519번이 영춘∼쌍용, 593번이 영춘∼면당, 595번이 영월∼영춘(단양), 597번이 황강(주천)∼평창, 998번이 영월∼현동을 연결하는 등 7개 노선이 있다.
시·군도는 13개 노선이 있어 각 읍·면 지역 사이에 교통이 이루어지는데, 이들 노선을 보면 1번 신천∼무릉, 2번 운학∼무릉, 3번 입석∼주천, 4번 쌍룡∼연당, 5번 광전∼원동, 6번 연당∼영월, 7번 연당∼하송, 8번 의풍∼와석, 9번 영월∼마차, 10번 우구치∼덕구, 11번 녹전∼직동, 12번 외룡∼녹전, 13번이 영월∼마하를 연결하고 있다.
원주, 제천, 평창, 정선, 단양 등 여러 지역에서 찾아가는 길이 있으나 제천에서 38번 국도를 타고 들어가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다.
원주에서 5번 국도를 타고 제천 쪽으로 가다가 신림에서 402번 지방도로 좌회전해 주천을 지나 영월로 가면서 이 지역의 여러 문화유산과 만날 수 있다.
정선 쪽에서는 38번 국도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영월은 서울, 강릉, 원주, 평창, 대전, 청주, 춘천 등 대도시와의 교통이 편리하고, 태백선의 모든 열차도 이곳을 거쳐 간다.
영월읍과 주천면에는 숙식할 곳이 여러 군데 있다.
원주, 제천, 평창, 정선, 단양 등 여러 지역에서 찾아가는 길이 있으나 제천에서 38번 국도를 타고 들어가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다.
원주에서 5번 국도를 타고 제천 쪽으로 가다가 신림에서 402번 지방도로 좌회전해 주천을 지나 영월로 가면서 이 지역의 여러 문화유산과 만날 수 있다.
정선 쪽에서는 38번 국도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영월은 서울, 강릉, 원주, 평창, 대전, 청주, 춘천 등 대도시와의 교통이 편리하고, 태백선의 모든 열차도 이곳을 거쳐 간다.
영월읍과 주천면에는 숙식할 곳이 여러 군데 있다.
관광
이 지방은 산수가 아름다워 영월팔경(寧越八景)이 있고, 석탄, 중석, 석회석 등 지하자원이 풍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은 돌 하나, 소나무 한 그루. 산 고개, 마을에 이르기까지 단종의 사연이 얽히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
단종의 유배지, 원한의 땅인 남면 광천리의 청령포(淸泠浦)에는 지금은 단종이 거처하던 집은 찾을 길 없고, 유지비각(遺址碑閣)만 서 있다.
이곳은 돌 하나, 소나무 한 그루. 산 고개, 마을에 이르기까지 단종의 사연이 얽히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
단종의 유배지, 원한의 땅인 남면 광천리의 청령포(淸泠浦)에는 지금은 단종이 거처하던 집은 찾을 길 없고, 유지비각(遺址碑閣)만 서 있다.
유지비각 서편에 서 있는 노송인 관음송(觀音松), 단종이 죽자 여섯 시녀가 몸을 던져 장렬히 죽은 동강변의 낙화암, 낙화암에서 순절한 시녀들이 두견이 되어 단종의 영혼 앞에 울며 절한다는 배견정(拜鵑亭), 단종의 능인 장릉, 단종에게 충절을 바친 이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제사를 지내는 금강정·창절사·영모전 및 자규루 등은 이 곳을 찾는 관광객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영월읍에서 영월화력발전소 쪽으로 가면 국민 관광지로 지정되어 있는 석회암 동굴인 영월 고씨동굴이 있다.
고씨굴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임진왜란 당시 고씨 일가가 동굴에서 난을 피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동굴 내부에는 호수를 비롯하여 3개의 폭포와 6개의 광장이 있어 지하 대공원을 방불케 한다.
고씨굴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임진왜란 당시 고씨 일가가 동굴에서 난을 피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동굴 내부에는 호수를 비롯하여 3개의 폭포와 6개의 광장이 있어 지하 대공원을 방불케 한다.
또한, 평창강 지류들이 합류한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 동남쪽 계독산 줄기에 자리한 영월 왕검성, 4대 적멸보궁의 하나인 법흥사 등은 고려·신라 시대의 고적이다.
동강은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은 이유로 인하여 원시의 비경, 주민들의 토속적 생활환경이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비슷한 유량을 가진 국내 하천중 생태계가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손꼽히며 경관 또한 빼어나 국내 10대 경승지로 손꼽힌다.
영월댐 건설이 공식적으로 백지화된 이후 보존과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한 대책이 절실한 실정이다. 주요 경관으로는 둥글바위, 만지, 된꼬까리, 어라연, 황새여울, 나래소, 파랑새절벽, 백룡동굴 등이 있다.
비슷한 유량을 가진 국내 하천중 생태계가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손꼽히며 경관 또한 빼어나 국내 10대 경승지로 손꼽힌다.
영월댐 건설이 공식적으로 백지화된 이후 보존과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한 대책이 절실한 실정이다. 주요 경관으로는 둥글바위, 만지, 된꼬까리, 어라연, 황새여울, 나래소, 파랑새절벽, 백룡동굴 등이 있다.
동강유역에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시점은 신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시대에서부터 현재까지 사람들이 거주하며 나름대로 독창적인 문화를 형성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동강유역의 신석기 유적지는 고성리 바위그늘유적, 덕천리 소골유적, 운치리 유적등 있으며 청동기 유적으로는 덕천리 소골유적, 운치리유적, 고성리 고인돌유적, 제장 고인돌유적, 귤암리 고인돌유적, 삼옥리 고인돌유적 등이 있고 철기시대유적으로는 덕천리 소사유적, 수동유적, 가수리 유적, 문산리 유물산포지, 용탄리 유물산포지 등이 존재하며 이 지역의 유적은 국내의 모든 고고학자들이 덤벼 들어도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려야 발굴이 가능할 정도로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
이러한 선사시대의 유적과 더불어 동강유역에는 삼국시대의 유적으로 추정되는 고성리 산성, 완택산의 완택산성, 정양산의 왕검성이 존재하고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영월읍 팔괴리와 단양군 영춘면에는 태화산성, 온달산성 등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 지역이 삼국시대 삼국의 영토확장의 격전지임을 말하여 주고 있다.
이외에도 뗏목문화와 함께 형성되고 발전된 정선아리랑은 이 지역의 대표적인 노래문화로 음악적인 우수성과 더불어 이 지역 주민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동강유역에는 감입곡류의 지형적 특성과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용과 관련한 전설, 민담 등이 전 지역에 골고루 분포하고 있다.
동강유역에는 감입곡류의 지형적 특성과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용과 관련한 전설, 민담 등이 전 지역에 골고루 분포하고 있다.
마을관리휴양지로는 둥글바위, 연하계곡, 응고개, 직동계곡, 문개실, 판운강변, 요선정, 법흥천, 백년골, 엄둔천, 신선계곡, 운학천 등이 있다.
난고 김삿갓 문학관은 그의 문학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백일장에서 조부를 욕되게 하는 시를 썼다는 자책감으로 평생 방랑 시인을 지낸 방랑시인 김삿갓의 업적을 기리고, 그의 문학적 위상을 재조명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이곳에는 시비와 문학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으며, 김삿갓의 묘와 생가가 있다.
김삿갓 유적지는 김삿갓면 와석리 노루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은 차령산맥과 소백산맥 준령의 북단과 남단에 위치하며, 경북 영주시와 충북 단양군과 경계를 이루는 3도 접경지역으로 산맥의 형상이 노루가 엎드려 있는 듯한 모습이라 하여 노루목이라 불려오고 있다.
백일장에서 조부를 욕되게 하는 시를 썼다는 자책감으로 평생 방랑 시인을 지낸 방랑시인 김삿갓의 업적을 기리고, 그의 문학적 위상을 재조명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이곳에는 시비와 문학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으며, 김삿갓의 묘와 생가가 있다.
김삿갓 유적지는 김삿갓면 와석리 노루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은 차령산맥과 소백산맥 준령의 북단과 남단에 위치하며, 경북 영주시와 충북 단양군과 경계를 이루는 3도 접경지역으로 산맥의 형상이 노루가 엎드려 있는 듯한 모습이라 하여 노루목이라 불려오고 있다.
김삿갓 유적지 내에 흐르는 곡동천은 여름철에는 유리알처럼 맑고 풍부한 수량이 기암괴석 사이로 넘쳐흐르고 가을에는 형언각색 단풍으로 인하여 보는 이의 가슴을 평온하게 만들어 주는 신비로운 곳이다.
1998년도부터 매년 10월초에는 “난고 김삿갓문화큰잔치”가 개최된다.
1998년도부터 매년 10월초에는 “난고 김삿갓문화큰잔치”가 개최된다.
영월 별마로천문대는 동강과 서강이 만나는 해발 799.8m인 영월읍 봉래산 정상에 있으며 2001년 10월 13일 개관하였다.
국내 최대 규모의 천문대에는 국내 최대 규모인 직경 80㎝ 주망원경을 비롯하여 보조망원경 10대등 총 11대가 설치되고 내부에는 천문전시실과 시청각교재실, 주관측실 및 보조관측실들이 들어서 신비로운 우주 세계를 보여준다.
영월에 천문대 건립이 추진된 데는 강원 중부 내륙 산간지역에 위치해 산림지역으로 오염원이 없고 연간 천체를 관측할 수 있는 맑은 날이 연(年) 192일로 50%를 넘는 천혜의 천체 관측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한국천문연구원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추진된 것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천문대에는 국내 최대 규모인 직경 80㎝ 주망원경을 비롯하여 보조망원경 10대등 총 11대가 설치되고 내부에는 천문전시실과 시청각교재실, 주관측실 및 보조관측실들이 들어서 신비로운 우주 세계를 보여준다.
영월에 천문대 건립이 추진된 데는 강원 중부 내륙 산간지역에 위치해 산림지역으로 오염원이 없고 연간 천체를 관측할 수 있는 맑은 날이 연(年) 192일로 50%를 넘는 천혜의 천체 관측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한국천문연구원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추진된 것이다.
전국 최초인 영월 곤충박물관은 특히 동강 유역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종이 포함되어 관광객들에게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며 책 박물관·민화박물관·김삿갓 문화관 등과 더불어 테마관광지로도 활용되고 있다.
영월 지역은 지형적으로 남방계곤충과 북방계곤충의 경계지점이자 다양한 곤충들이 서식하는 곤충 생태환경의 보고이므로 다양한 곤충표본을 직접 보고 곤충의 생태를 관찰하는 생태체험 학습장이다.
영월 지역은 지형적으로 남방계곤충과 북방계곤충의 경계지점이자 다양한 곤충들이 서식하는 곤충 생태환경의 보고이므로 다양한 곤충표본을 직접 보고 곤충의 생태를 관찰하는 생태체험 학습장이다.
읍·면
"상동읍(上東邑)
군의 동부에 위치한 읍. 면적 139.51㎢, 644세대, 1,347명에 남자 680명, 여자 667명이다(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내덕리이다.
본래 영월의 동쪽 위에 있다, 하여 상동면이라 불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정선군 신동면의 석항리(石項里)를 편입하였다.
1960년영월면이 읍으로 승격될 때 연하리(蓮下里)가 영월읍으로 이속되었고, 1963년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의 덕구리와 천평리 등 2개 리가 편입되었으며, 1973년정선군 신동면의 천포리 일부를 편입하면서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녹전·석항 출장소가 통합되어 중동면이 설치되면서 관할 구역이 축소되었다.
1999년, 영월군조례 제1665호에 의거, 21개 리 65개 반에서 15개 리 47개 반으로 조정되었다.
1986년녹전·석항 출장소가 통합되어 중동면이 설치되면서 관할 구역이 축소되었다.
1999년, 영월군조례 제1665호에 의거, 21개 리 65개 반에서 15개 리 47개 반으로 조정되었다.
옥동(玉洞)·진별(津別)·각동(角洞)·대야(大野)·예밀(禮密)·와석(臥石)·외룡(外龍)·내(內)·주문(注文) 등 9개 리가 있다.
북쪽으로 정선군·평창군, 서쪽으로 횡성군·원주시, 남쪽으로 충청북도 제천시·단양군 및 경상북도 영주시·봉화군, 동쪽으로 강원도 태백시에 접한다.
백운산·매봉산(1,268m)·구룡산·삼동산(1,178m) 등 높은 산이 솟아 있어 평야 지역은 거의 없고, 남한강 지류인 옥동천이 서쪽으로 흐르는 산간지대이다.
산록이나 산중복의 평탄면에서 주로 밭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농산물로는 마늘·깨 등이 약간 재배되고, 감자·옥수수 등이 많이 나며, 약용 작물로 백작약·당귀·황기 등의 재배가 활발하다.
산록이나 산중복의 평탄면에서 주로 밭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농산물로는 마늘·깨 등이 약간 재배되고, 감자·옥수수 등이 많이 나며, 약용 작물로 백작약·당귀·황기 등의 재배가 활발하다.
1916년 철·망간·중석광이 발견되고, 1917년 회중석이 발견되어 1923년부터 중석광의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구래리를 중심으로 광업 도시로 발달하였다.
중국산 중석의 수입 등으로 채산이 맞지 않아 1994년 초상동중석광업소가 폐광됨에 따라 그 여파로 인구가 점차 감소되고 있다.
중국산 중석의 수입 등으로 채산이 맞지 않아 1994년 초상동중석광업소가 폐광됨에 따라 그 여파로 인구가 점차 감소되고 있다.
교통은 31번 국도가 옥동천 계곡을 따라 읍의 중앙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태백시와 영월읍을 연결하고, 10번 시·군도가 덕구∼우구치(경북 봉화)를 이어주고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방진두(方鎭斗)효자각, 남원양씨효부각, 녹전리의 수령 1,250년 된 소나무, 직동리에 김구현(金九鉉)효자각, 천도교 사적지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내덕(內德)·구래(九來)·천평(川坪)·덕구(德邱) 등 4개 리가 있다.
"영월읍(寧越邑)
군의 중앙에 위치한 읍. 면적 172.35㎢, 8,624세대, 인구 2만 2006명으로 남자 1만 1109명, 여자 1만 897명이다(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영흥리이다.
본래 영월 군청의 소재지라는 뜻으로 군내면(郡內面)이라 부르다가 1937년영월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60년상동면 연하리를 편입하여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동면(지금의 김삿갓면) 정양리와 남면의 흥월리·팔괴리가 편입되었다.
197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동면(지금의 김삿갓면) 정양리와 남면의 흥월리·팔괴리가 편입되었다.
대부분이 산지이고, 시가지 뒤에는 봉래산이 우뚝 솟아 있다. 영월 시가지는 하성단구 위에 발달한 도시이다.
남한강 상류인 동강(東江)과 서강(西江)의 합류점인 하송리 일대와 서강이 곡류하다가 절단된 방절리 일대에 규모는 작으나 비교적 기름진 평지가 있고, 덕포리에는 석회암 용식지형인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되어 있다.
남한강 상류인 동강(東江)과 서강(西江)의 합류점인 하송리 일대와 서강이 곡류하다가 절단된 방절리 일대에 규모는 작으나 비교적 기름진 평지가 있고, 덕포리에는 석회암 용식지형인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되어 있다.
농산물은 식량작물이 주로 재배되며, 감자·녹두·땅콩·옥수수·깨·마늘 등이 재배된다.
잎담배 생산이 군내에서 1위이고, 약용작물로 목단·적작약·당귀·황기 등도 재배된다. 정양리에는 시설용량 40만kw의 화력과 복합발전소가 있다.
잎담배 생산이 군내에서 1위이고, 약용작물로 목단·적작약·당귀·황기 등도 재배된다. 정양리에는 시설용량 40만kw의 화력과 복합발전소가 있다.
교통은 31번과 38번 국도가 읍의 중앙을 동서로 지나 제천과 태백시를 연결시키고, 595번 지방도가 영월∼단양을 이어주며, 6·7번 시·군도가 영월∼연당, 9번이 영월∼마차, 13번이 영월∼마하를 연결시켜 준다.
철도교통은 덕포리에 태백선의 영월역이, 연하리에 연하역 등이 있어 편리하다.
철도교통은 덕포리에 태백선의 영월역이, 연하리에 연하역 등이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으로는 장릉, 장릉 단종비각, 창절서원, 보덕사, 금몽암, 엄흥도정려각, 박충원정려각, 금강공원선정비군, 김현석군수청덕비각, 신영숙효자각, 김지룡효자각, 경주이씨효부각, 엄윤효자각, 온양박씨열녀각, 엄민도효자각, 방절리지석묘, 최순준 처 정씨 효부문, 유용식효자각, 왕검성, 영월향교, 민충사, 정종대왕태실 및 태실비, 하송리 은행나무 등이 있다. 관광 명소로는 장릉, 어라연, 낙화암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4개 교(분교 3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2개 교, 전문대학 1개 교가 있다.
영흥(永興)·하송(下松)·방절(芳節)·덕포(德浦)·연하(蓮下)·정양(正陽)·팔괴(八槐)·흥월(興月)·거운(巨雲)·삼옥(三玉)·문산(文山) 등 11개 리가 있다.
"무릉도원면(武陵桃源面)
"무릉도원면(武陵桃源面)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153.37㎢, 825세대, 인구 1,608명으로 남자 822명, 여자 786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무릉리이다.
본래 원주군의 관할이었는데, 1895년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영월군에 편입되어 중방(中方) 등 1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8개 리로 개편되었다.
1931년양변면(兩邊面)이 수주면과 주천면(酒泉面)으로 분리되었으며, 196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현(月峴)·부곡(釜谷)·강림(講林) 등 3개 리가 횡성군 안흥면(安興面)으로 이관되었다.
1998년 9월 운학출장소가 폐지되었다.
2016년수주면에서 무릉도원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현 무릉리, 법흥리, 도원리, 운학리, 두산리의 법정 5개 리와 행정 12개 리를 관할하고 있다.
1998년 9월 운학출장소가 폐지되었다.
2016년수주면에서 무릉도원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현 무릉리, 법흥리, 도원리, 운학리, 두산리의 법정 5개 리와 행정 12개 리를 관할하고 있다.
북쪽에 사자산과 백덕산이 솟아 있고, 서쪽에 차령산맥이 뻗어 산지가 많다.
농산물로는 쌀 외에 감자·옥수수·마늘·깨 등이 소량 재배되고, 녹두 생산은 군내 1위를 차지한다.
군내에서 교통이 가장 불편한 곳으로서, 1번 군도가 무릉∼신전, 2번 군도가 무릉∼운학 등을 연결하고 있을 뿐이다.
농산물로는 쌀 외에 감자·옥수수·마늘·깨 등이 소량 재배되고, 녹두 생산은 군내 1위를 차지한다.
군내에서 교통이 가장 불편한 곳으로서, 1번 군도가 무릉∼신전, 2번 군도가 무릉∼운학 등을 연결하고 있을 뿐이다.
문화유적으로는 법흥리에 흥령사증효대사보인탑비·흥령사증효대사부도·법흥사부도·법흥사석분·흥령선원지, 무릉리에 마애여래좌상·요선정·모현사·원용성가옥, 요선암5층석탑, 무릉리5층석탑 등이 있으며, 두산리에 금표가 있다.
주천리에 삼층석탑과 김종길가옥이 있고, 이외에 신일리에 고려고분, 의호총(義虎塚), 빙허루, 채빈하효자각, 비석군, 금마리 독립운동상 등이 있다.
망산은 조선 숙종의 태를 봉안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유명한 법흥사 적멸보궁·법흥사적멸보궁사리탑 등이 있다.
주천리에 삼층석탑과 김종길가옥이 있고, 이외에 신일리에 고려고분, 의호총(義虎塚), 빙허루, 채빈하효자각, 비석군, 금마리 독립운동상 등이 있다.
망산은 조선 숙종의 태를 봉안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유명한 법흥사 적멸보궁·법흥사적멸보궁사리탑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무릉(武陵)·법흥(法興)·도원(桃源)·운학(雲鶴)·두산(斗山) 등 5개 리가 있다.
"한반도면(韓半島面)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69.88㎢, 1,571세대, 인구 3,520명으로 남자 1,820명, 여자 1,700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천리이다.
본래 영월읍의 서쪽에 위치한다 하여 서면이라 하고 북상(北上) 등 11개 리를 관할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6개 리로 개편되었으나 1973년북쌍리가 남면으로 이관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1976년 1월 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광전1리를 1·3리 분할, 신천리를 2·3리로 분할, 쌍용 1·2·3·4·5리에서 6·7리로 분할 조정하였고, 1984년 1월 1일쌍용 5·6리 일부를 쌍용8리로 분할 조정하였다.
2005년 6월 24일광전 1·3리를 1리로 통합조정하였다.
2009년 10월 서면이 한반도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6개 리로 개편되었으나 1973년북쌍리가 남면으로 이관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1976년 1월 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광전1리를 1·3리 분할, 신천리를 2·3리로 분할, 쌍용 1·2·3·4·5리에서 6·7리로 분할 조정하였고, 1984년 1월 1일쌍용 5·6리 일부를 쌍용8리로 분할 조정하였다.
2005년 6월 24일광전 1·3리를 1리로 통합조정하였다.
2009년 10월 서면이 한반도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높고 험한 산지는 없으나 평지는 평창강과 주천강이 합류되는 신천리 부근에 약간 나타날 뿐이고, 광전리·옹정리·쌍룡리 등지에는 석회암 용식에 의하여 형성된 카르스트 지형이 잘 발달되어 있어 학술적으로 가치가 있다.
시멘트 공장이 들어선 쌍룡리 일대는 석회석이 대량으로 채굴되면서 자연 경관이 많이 파괴되었다.
시멘트 공장이 들어선 쌍룡리 일대는 석회석이 대량으로 채굴되면서 자연 경관이 많이 파괴되었다.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마늘·참깨·잎담배 등이고, 약용작물로 백작약이 재배된다.
광업은 석회석 생산량이 군내 1위이고, 군내의 유일한 시멘트 공장이 있다.
광업은 석회석 생산량이 군내 1위이고, 군내의 유일한 시멘트 공장이 있다.
쌍룡리에 태백선 쌍룡역이 있고, 38번 국도가 면의 중앙을 동서로 지나 제천, 영월, 평창 등지와 연결되며, 519번 지방도가 쌍룡∼충북 영춘, 402번 지방도가 원주·주천·연당을 이어준다.
1번 군도가 신천∼무릉, 4번이 쌍룡∼연당, 5번이 광전∼덕상을 연결시켜 면 전체의 교통이 편리하다.
1번 군도가 신천∼무릉, 4번이 쌍룡∼연당, 5번이 광전∼덕상을 연결시켜 면 전체의 교통이 편리하다.
후탄리 평창강 연변의 단애에 세워진 관란정은 생육신의 한 사람인 원호(元昊)가 단종을 생각하며 은거하던 곳으로, 최근 관광지로서 각광받고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영월신씨열녀비가 있으며, 문화시설로 책박물관이 광전리에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영월신씨열녀비가 있으며, 문화시설로 책박물관이 광전리에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2개 교가 있다.
신천(新川)·옹정(瓮亭)·광전(廣錢)·쌍룡(雙龍)·후탄(後灘) 등 5개 리가 있다.
"남면(南面)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82.18㎢, 1,102세대, 2,383명으로 남자 1,245명, 여자 1,138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연당리이다.
면 소재지는 연당리이다.
본래 영월읍 남쪽에 위치하므로 남면이라 하였고, 원동(院洞) 등 11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7개 리로 개편되었다.
197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흥월(興月)·팔괴(八槐) 등 2개 리가 영월읍으로 이속되고, 서면(지금의 한반도면)의 북쌍리가 편입되었다.
2002년 8월 법정 6개 리, 행정 18개 리, 76개 반, 자연부락 72부락으로 구성되었으며, 2005년 6월 24일 종래의 76개 반에서 60개 반으로 조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7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흥월(興月)·팔괴(八槐) 등 2개 리가 영월읍으로 이속되고, 서면(지금의 한반도면)의 북쌍리가 편입되었다.
2002년 8월 법정 6개 리, 행정 18개 리, 76개 반, 자연부락 72부락으로 구성되었으며, 2005년 6월 24일 종래의 76개 반에서 60개 반으로 조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부분 산지이므로 평지는 적은데, 토교리·창원리(갈문)·연당리 등지에는 석회암층의 용식에 의하여 형성된 카르스트 오목지형이 나타나고, 주천강과 평창강이 합류하여 동류하는 서강(西江) 연안에는 하성단구가 발달해 있어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주요 농산물은 감자·옥수수·참깨·잎담배 등이다.
마늘 생산은 군내 1위이며, 약용작물로 백작약·천궁 등이 재배된다.
석회석의 채석이 활발하다.
교통은 38번 국도가 면을 동서로 지나 영월·평창 및 제천 지역과 연결되고, 593번 지방도가 충북 영춘(永春)과 연결되며, 6·7번 시·군도가 연당∼영월·하송 등지와 이어지는 등 도로교통이 비교적 편리하다.
태백선 철도가 면내를 횡단하여 연당역이 있어 편리하다.
마늘 생산은 군내 1위이며, 약용작물로 백작약·천궁 등이 재배된다.
석회석의 채석이 활발하다.
교통은 38번 국도가 면을 동서로 지나 영월·평창 및 제천 지역과 연결되고, 593번 지방도가 충북 영춘(永春)과 연결되며, 6·7번 시·군도가 연당∼영월·하송 등지와 이어지는 등 도로교통이 비교적 편리하다.
태백선 철도가 면내를 횡단하여 연당역이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으로는 광천리에 낙화암·관음송·청령포, 청령포금표비, 북쌍리에 우구정가옥, 창원리에 고진하가옥, 토교리에 김병식효자각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연당(淵堂)·토교(土橋)·창원(蒼院)·광천(廣川)·조전(助田)·북쌍(北雙) 등 6개 리가 있다.
"북면(北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111.34㎢, 1,069세대, 인구는 2,319명으로 남자 1,226명, 여자 1,093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마차리이다.
본래 영월읍의 북쪽에 위치한다 하여 북면이라 하였으며, 9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5개 리로 개편되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 이외에 감자·녹두·옥수수·잎담배 등이 생산되며 약용작물로 백작약·황기 등이 재배된다.
양돈은 군내 1위이고, 한우 사육도 군내 2위이다.
광업은 무연탄 광산 1개소가 있을 뿐이다.
양돈은 군내 1위이고, 한우 사육도 군내 2위이다.
광업은 무연탄 광산 1개소가 있을 뿐이다.
마차리는 1935년 무연탄 광산이 개발되어 1972년 폐광될 때까지 영월탄전 제1의 광산으로 영월화력발전소에 발전용 연료를 공급하던 유명한 탄광 취락이었다.
현 그 시설의 일부가 대한석탄공사의 교육장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석회석·백운석(白雲石) 등의 개발이 기대된다.
문곡리는 농공단지가 조성되고 있어 평창·정선·제천·영월 등지로 연결되는 교통과 산업 개발의 중심지로 발전하고 있다.
문곡리는 농공단지가 조성되고 있어 평창·정선·제천·영월 등지로 연결되는 교통과 산업 개발의 중심지로 발전하고 있다.
교통은 38번 국도와 31번 국도가 문곡리에서 갈라지고, 413번 지방도가 평창군 미탄면과 연결되며, 5번 군도가 한반도면 광정리∼덕상리, 9번 군도가 영흥리∼마차리와 연결되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으로는 덕안사, 수령 250년 된 마차리 갈참나무, 문곡리의 반공희생자위령탑, 공기리에 홍우보 처 김씨 열녀문, 서양섭 효자비, 김선배 효자문, 경찰전전비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덕안사, 수령 250년 된 마차리 갈참나무, 문곡리의 반공희생자위령탑, 공기리에 홍우보 처 김씨 열녀문, 서양섭 효자비, 김선배 효자문, 경찰전전비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마차(磨磋)·문곡(文谷)·연덕(延德)·공기(恭基)·덕상(德上) 등 5개 리가 있다.
"주천면(酒泉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102.51㎢, 1,788세대, 인구 4,058명으로 남자 2,021명, 여자 2,037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주천리이다.
본래 고구려의 주연현(酒淵縣) 또는 학성(鶴城)이었는데, 신라 때 주천현으로 개칭되어 내성군의 영현이 되었다.
1018년(현종 9)에 원주목(原州牧)에 이속되고, 조선 중엽에 현이 폐지되고 좌변면(左邊面)이 되었다가 1895년 지방관제 개정 때 영월군에 편입되어 4개 리를 관할하였다.
1018년(현종 9)에 원주목(原州牧)에 이속되고, 조선 중엽에 현이 폐지되고 좌변면(左邊面)이 되었다가 1895년 지방관제 개정 때 영월군에 편입되어 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6개 리를 병합하여 양변면(兩邊面)이라 하고 6개 리로 개편되었으며, 1931년주천면과 수주면으로 분리되면서 과거 주천현의 이름을 따서 주천면으로 개칭하였다.
1957년 4월 10일에 15개 리로 행정구역이 개편되었고, 1971년 1월 1일판운 1리 일부를 판운 4리로, 신일 1리를 신일 4리로 분할하여 17개 행정리로 재조정하였다.
1974년 7월 1일 17개 리를 23개 리로 확대 조정하였으며, 1980년 10월 1일 현재와 같은 법정 6개 리, 행정 26개 리로 조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57년 4월 10일에 15개 리로 행정구역이 개편되었고, 1971년 1월 1일판운 1리 일부를 판운 4리로, 신일 1리를 신일 4리로 분할하여 17개 행정리로 재조정하였다.
1974년 7월 1일 17개 리를 23개 리로 확대 조정하였으며, 1980년 10월 1일 현재와 같은 법정 6개 리, 행정 26개 리로 조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천이라는 지명은 망산(望山) 밑에 있는 샘에서 옛날에는 술이 나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횡성군의 태기산(泰岐山)에서 발원하는 주천강이 면의 중앙을 흐르면서 주천리 일대에 넓고 기름진 주천평야를 이루어 군내 제1의 곡창지대를 이룬다.
주곡의 생산 외에 감자·땅콩·깨 등을 많이 재배하고, 옥수수·마늘·잎담배 등의 재배도 성하다. 약용작물로 적작약이 재배된다.
횡성군의 태기산(泰岐山)에서 발원하는 주천강이 면의 중앙을 흐르면서 주천리 일대에 넓고 기름진 주천평야를 이루어 군내 제1의 곡창지대를 이룬다.
주곡의 생산 외에 감자·땅콩·깨 등을 많이 재배하고, 옥수수·마늘·잎담배 등의 재배도 성하다. 약용작물로 적작약이 재배된다.
젖소 사육은 군내의 60%를 차지하고, 석회석·납석·규석 광산들이 있다.
교통은 주천리를 중심으로 402번 지방도가 원주∼신천, 597번 지방도가 제천∼평창을 연결하고, 3번 군도가 주천∼입석을 연결하여 편리한 편이다.
교통은 주천리를 중심으로 402번 지방도가 원주∼신천, 597번 지방도가 제천∼평창을 연결하고, 3번 군도가 주천∼입석을 연결하여 편리한 편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주천(酒泉)·판운(板雲)·도천(桃川)·신일(新日)·금마(金馬)·용석(龍石) 등 6개 리가 있다.
"중동면(中東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124.76㎢, 740세대, 인구 1,655명으로 남자 834명, 여자 821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녹전리이다.
예전엔 영월의 동쪽 위에 있다 하여 상동면(上東面)이라 불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정선군 신동면의 석항리를 편입하였다.
예전엔 영월의 동쪽 위에 있다 하여 상동면(上東面)이라 불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정선군 신동면의 석항리를 편입하였다.
1960년영월면이 읍으로 승격될 때 연하리가 영월읍으로 이속되었고, 1973년정선군 신동면의 천포리 일부를 편입하여 상동읍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상동읍의 녹전출장소와 석항출장소를 통합하여 중동면이 설치되었다.
1998년 5월 8일 석항출장소가 폐지되었다.
1986년상동읍의 녹전출장소와 석항출장소를 통합하여 중동면이 설치되었다.
1998년 5월 8일 석항출장소가 폐지되었다.
백운산·두위봉·예미산·질운산·망경대산·운교산 등 높은 산이 솟아 있어 평야지역은 거의 없으며, 남한강 지류인 옥동천(玉洞川)이 남쪽의 일부를 지나면서 서쪽으로 흐른다. 면의 대부분이 산간지대이므로 산록이나 산중복의 평탄면에서 밭농사 중심의 영농이 행하여질 뿐이다.
농산물 재배는 옥수수가 주종을 이루고, 질운산과 백운산 등의 고위 평탄면에서 고랭지 채소의 재배가 성하다.
농산물 재배는 옥수수가 주종을 이루고, 질운산과 백운산 등의 고위 평탄면에서 고랭지 채소의 재배가 성하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녹전(碌田)·이목(梨木)·직동(稷洞)·석항(石項)·연상(蓮上)·화원(禾院) 등 6개 리가 있다.
"김삿갓면(金삿갓面)
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171.52㎢, 832세대, 인구 1,699명으로 남자 872명, 여자 827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옥동리이다.
고려 때는 밀주(密州)라 불렸으며, 주청사(州廳舍)는 지금의 예밀리에 있었다.
1389년(공양왕 1)에는 강원도로 이속되었다.
고려 때는 밀주(密州)라 불렸으며, 주청사(州廳舍)는 지금의 예밀리에 있었다.
1389년(공양왕 1)에는 강원도로 이속되었다.
1689년(숙종 15)에 주를 폐지하고 하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후 정양(正陽) 등 14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0개 리로 개편되었고, 1973년 7월정양리가 영월읍으로 이속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1979년 9월주문 5·6리를 통합하여 법정 9개 리 행정 17개 리로 개편되었고, 1992년 11월주문 2·3·4·5리를 주문2리로 통합하여 법정 9개 리 행정 14개 리로 개편되었다. 2005년 6월예밀3리를 예밀2리에 통합하여 법정 9개 리 행정 13개 리로 개편하였다. 2009년 10월 하동면이 김삿갓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 후 정양(正陽) 등 14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0개 리로 개편되었고, 1973년 7월정양리가 영월읍으로 이속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1979년 9월주문 5·6리를 통합하여 법정 9개 리 행정 17개 리로 개편되었고, 1992년 11월주문 2·3·4·5리를 주문2리로 통합하여 법정 9개 리 행정 14개 리로 개편되었다. 2005년 6월예밀3리를 예밀2리에 통합하여 법정 9개 리 행정 13개 리로 개편하였다. 2009년 10월 하동면이 김삿갓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각동리에는 영월엄씨(寧越嚴氏), 진별리에 횡성고씨(橫城高氏), 대야리에는 나주정씨(羅州丁氏), 주문리에는 경주김씨(慶州金氏), 외룡리에 삼척김씨(三陟金氏)들이 주로 세거하였다.
면의 대부분이 산지로서 평지는 거의 없고, 상동읍에서 발원하는 옥동천이 면의 중앙을 동에서 서쪽으로 흘러 각동리 부근에서 남한강에 합류한다.
각동리는 하안단구 위에 발달한 취락이고, 이 일대에는 석회암 용식지형인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해 있다. 취락은 주로 옥동천 유역에 분포한다.
각동리는 하안단구 위에 발달한 취락이고, 이 일대에는 석회암 용식지형인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해 있다. 취락은 주로 옥동천 유역에 분포한다.
감자·옥수수·참깨 등이 소량으로 재배되고, 약용작물로 목단·일당귀가 산출된다.
석탄실업 합리화 조치에 의하여 1989년 옥동광업소가 폐광됨으로써 인구가 감소되는 추세이다. 광물로는 운모가 산출될 뿐이다.
북서쪽에 태백선의 석항역이 있고, 31번과 38번 국도가 석항리에서 갈라지며, 31번 국도를 통하여 영월∼태백과 연결된다.
11번 군도가 녹전∼정선의 직통, 12번 군도가 녹전∼하동의 외룡과 이어져 험준한 산지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도로교통이 편리한 편이다.
석탄실업 합리화 조치에 의하여 1989년 옥동광업소가 폐광됨으로써 인구가 감소되는 추세이다. 광물로는 운모가 산출될 뿐이다.
북서쪽에 태백선의 석항역이 있고, 31번과 38번 국도가 석항리에서 갈라지며, 31번 국도를 통하여 영월∼태백과 연결된다.
11번 군도가 녹전∼정선의 직통, 12번 군도가 녹전∼하동의 외룡과 이어져 험준한 산지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도로교통이 편리한 편이다.
도로는 지방도가 옥동천 계곡을 따라 진별∼경상북도 봉화군과 연결되고, 595번 지방도가 영월∼각동∼단양으로 연결된다.
8번 군도가 의풍∼와석, 12번 군도가 외룡∼녹전을 이어주고 있어, 산지가 험한 지역이지만 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8번 군도가 의풍∼와석, 12번 군도가 외룡∼녹전을 이어주고 있어, 산지가 험한 지역이지만 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으로는 진별리에 고씨굴·용담굴·대야동굴, 와석리에 김삿갓 묘, 산촌 가옥의 전형인 내리의 김경하가옥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중앙부를 한강(漢江) 지류인 평창강(平昌江)과 주천강(酒泉江)이 한반도면 신천리(新川里) 부근에서 합류하여 동류하다가 영월읍 하송리(下松里)에서 한강 본류와 합류하고, 다시 각동리(角洞里) 부근에서 옥동천(玉洞川)이 합류하며, 평지는 주천리와 영월분지 외에는 별로 없다.
군내에 석회암층이 곳곳에 있어 쌍룡(雙龍)·옹정(瓮亭)·연당(淵堂)·영월 부근에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해 있고, 진별리(津別里)에는 고씨동굴(高氏洞窟) 등 석회동굴도 여러 개 발달해 있다.
군내에 석회암층이 곳곳에 있어 쌍룡(雙龍)·옹정(瓮亭)·연당(淵堂)·영월 부근에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해 있고, 진별리(津別里)에는 고씨동굴(高氏洞窟) 등 석회동굴도 여러 개 발달해 있다.
내륙 산간지대에 있기 때문에 기온의 연교차가 큰 내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연평균기온 10.8℃, 1월 평균기온 -5.7℃, 8월 평균기온 25.5℃이고, 연 강수량은 1,100mm로 6∼8월에 3/4이 집중되고 있다.
연평균기온 10.8℃, 1월 평균기온 -5.7℃, 8월 평균기온 25.5℃이고, 연 강수량은 1,100mm로 6∼8월에 3/4이 집중되고 있다.
강원남부 내륙의 관문인 영월은 1970년대까지 곳곳에 산재한 탄광이 호황을 누리며 번성했던 사실상 탄전도시였다.
1970년 12만3000여 명에 달하던 인구는 석탄산업합리화 조치 이후 급격히 줄기 시작해 2000년대 들어서는 겨우 4만 명 선에 턱걸이하고 있다.
새로운 잠재가치 창조에 부심하던 영월은 최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관련 산업 유치와 ‘박물관 고을’ 조성을 통한 관광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단종의 애사가 서린 ‘장릉(조선왕릉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관광객이 부쩍 늘고 있는 것은 또 하나의 청신호다.
맛보기;강원도 영월은 예부터 명산준령과 산간계곡이 조화를 이룬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산간 오지 마을로 꼽혀왔다. 그런데 깊은 산골에서 한과 슬픔이 묻힌 역사의 현장으로 바뀐 것은 조선의 제6대 왕 단종의 유배지가 되면서부터다.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降封)당한 뒤 청령포에 유배되었다가 관풍헌에서 사약을 받고 장릉에 묻히기까지, 영월 곳곳에는 단종의 흔적이 남아 있다.
참조항목
구운산, 능암덕산굴, 영월대야동굴, 동강, 마대산, 배향산, 백덕산, 사자산, 석회암동굴, 어래산, 영월연하동굴, 영월 고씨굴, 예미산, 옥동천, 용담굴, 재치산, 직운산, 치악산, 태백산, 태화산, 평창강, 영월 어라연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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