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홍련전. 薔花紅蓮傳.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구성 및 형식
필사본·목판본·활자본이 모두 전하며, 이들을 표기문자에 따라 다시 한글본, 한문본, 국한문본으로 나눌 수 있다.
한문본은 전동흘의 6대손 전만택(全萬宅)의 간청에 의하여 박인수(朴仁壽)가 1818년(순조 18) 12월 1일에 쓴 것이다.
한글본은 효종연간에 전동흘(全東屹)이 평안도 철산부사로 가서, 배좌수의 딸 장화(薔花)와 홍련(紅蓮)이 계모의 흉계로 원통하게 죽은 사건을 처리한 사실담(事實談)을 소재로 하여 쓴 한문본을 대본으로 하여 썼다.
이 한문본은 전동흘의 8대손 전기락(全基洛) 등이 1865년(고종 2)에 편찬한 『가재사실록(嘉齋事實錄)』과 『가재공실록(嘉齋公實錄)』(全庸甲, 1968)에 실려 있고, 국한문본은 『광국장군전동흘실기(光國將軍全東屹實記)』에 전한다.
한글 필사본으로는 신암본(薪菴本)과 의산본이 있으며, 한글 목판본으로는 자암본(紫岩本)·송동본(宋洞本)·불란서동양어학교본(佛蘭西東洋語學校本) 등이 있다.
구활자본(딱지본)은 13종이나 되는데, 특징에 따라 세창본(世昌本, 1915년)·영창본(永昌本, 1915년)을 비롯하여 동명본(同明本, 1915년) 계열로 나뉜다.
내용
이 작품은 공안류소설(公案類小說)인 동시에 가정형계모소설(家庭型繼母小說)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한글본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세종조에 평안도 철산에 배무룡이라는 좌수가 있었는데, 그의 부인이 선녀로부터 꽃송이를 받는 태몽을 꾸고 장화를 낳았다.
그리고 2년 후 홍련을 낳았다.
홍련이 다섯 살 때에 부인이 죽자, 좌수는 대를 잇기 위하여 허씨와 재혼하였다.
허씨는 용모가 추할 뿐 아니라 심성이 사나웠으나 곧 삼형제를 낳았다. 허씨는 아들이 생긴 뒤 전부인의 딸들을 학대하기 시작하였다.
장화가 정혼을 하게 되자, 혼수를 많이 장만하라는 좌수의 말에 재물이 축날 것이 아까워 장화를 죽이기로 흉계를 꾸몄다.
큰 쥐를 잡아 털을 뽑아서 장화의 이불 속에 넣었다가 꺼내어 좌수에게 보여 장화가 부정을 저질러 낙태하였다고 속이고, 아들 장쇠를 시켜 못에 빠뜨려 죽였다.
그 순간 호랑이가 나와 장쇠의 두 귀와 한 팔, 한 다리를 잘라가 장쇠는 병신이 되었다.
이에 계모는 홍련을 더욱 학대하고 죽이려 하였다.
홍련은 장쇠에게 장화가 죽은 것을 알았고, 꿈에 장화가 홍련의 꿈에 나타나 원통하게 죽은 사실을 알려주자, 홍련은 장화가 죽은 못을 찾아가 물에 뛰어들어 죽었다.
그로부터 그 못에는 밤낮으로 곡소리가 났으며, 원통하게 죽은 두 자매가 그 사연을 호소하려고 부사에게 가면 부사는 놀라서 죽었다.
이런 이상한 일 때문에 부사로 올 사람이 없었는데, 마침 정동우(鄭東佑)라는 사람이 자원하여 부사로 부임하였다.
도임 초야에 장화·홍련이 나타나 원통하게 죽은 원인과 원을 풀어줄 것을 간청하였다.
이튿날 부사는 좌수 부부를 문초하였는데, 장화는 낙태하여 투신자살하였고, 홍련은 행실이 부정하더니 야음을 틈타 가출하고 소식이 없으며, 장화의 낙태물이라고 증거물을 제시하는 것을 보고, 이를 사실로 여기고 좌수 부부를 훈방하였다.
그날 밤 꿈에 두 소저가 나타나 계모가 제시한 낙태물의 배를 갈라 보면 알 것이라 하고 사라졌다.
이튿날 부사는 다시 그 낙태물을 살피고 배를 갈라 보니 쥐똥이 나왔다.
이에 부사는 계모를 능지처참하고, 장쇠는 교수형에 처하였으며, 좌수는 훈방하였다.
그리고 못에 가서 자매의 시신을 건져 안장하고 비(碑)를 세워 혼령을 위로하였더니, 그날 밤 꿈에 두 자매가 다시 나타나 원한을 풀어 준 일을 사례하며, 앞으로 승직할 것이라 하였다.
그뒤 그 말대로 부사는 승직하여 통제사에 이르렀다.
배좌수는 윤씨를 세 번째 부인으로 맞았는데, 꿈에 두 딸이 나타나 상제가 전세에 못다한 부녀의 연분을 다시 이으라고 하였다는 말을 전하였다.
윤씨부인은 꿈에 상제로부터 꽃 두 송이를 받은 태몽을 꾸고 쌍둥이 자매를 낳았다.
꿈을 생각하여 장화와 홍련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두 자매가 장성하여 평양의 부호 이연호의 쌍둥이와 혼인하여, 아들 딸을 낳고 복록을 누리며 잘살았다.
평가
「장화홍련전」은 계모와 전처자식의 관계에서 빚어질 수 있는 윤리의 문제점과 무능한 가장으로 인해 가정이 파멸되는 비극적 모습을 가족구성원 간의 갈등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후처제의 제도적 모순과 함께 가장의 무책임을 함께 다루는 현실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계모 허씨를 악인으로, 장화홍련을 선인으로 묘사하여 선·악의 대립에서의 선의 승리하는 방향으로 작품을 이끌어 가고 있다는 한계를 갖는다.
『장화홍련전』(薔花紅蓮傳)은 작자와 연대를 알 수 없는 고전 소설이다.
효종대 전동흘(全東屹, 1610~1685)이 평안도 철산 부사로 재직할 당시 실제로 처리한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콩쥐팥쥐전』과 함께 대표적인 계모형(繼母型) 소설로 손꼽힌다.
지방관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공안 소설로 분류하기도 한다.
『장화홍련전』은 조선시대 민간에 널리 유행하여 이본만도 30여 편에 이르는데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평안도 철산 땅에 사는 좌수 배무룡(裴武龍)은 늘그막에 장화와 홍련을 두었는데 부인 장씨가 세상을 떠나자 후취로 허씨를 맞아들인다.
평안도 철산 땅에 사는 좌수 배무룡(裴武龍)은 늘그막에 장화와 홍련을 두었는데 부인 장씨가 세상을 떠나자 후취로 허씨를 맞아들인다.
허씨는 용모도 흉악하지만 마음씨마저 간악하여 두 딸을 학대하였다.
장화의 혼담이 오가자 혼수 비용을 아까워한 허씨는 자신의 친아들 필동을 시켜 장화를 살해하고, 뒤에 이 사실을 알게 된 홍련은 자살을 하고 만다.
억울하게 죽은 자매는 원한을 풀고자 부사를 찾아가지만 장화 자매의 모습에 부사들이 놀라 죽거나 도망을 치는 바람에 번번이 실패하였다.
이러한 괴소문을 들은 정동우(鄭東祐)라는 사람이 자원하여 철산 부사로 부임한다.
그는 자매를 만나 그 억울한 이야기를 듣고 허씨를 처형한 뒤 연못에서 두 자매의 시체를 건져 내어 무덤을 만들어 준다.
그 뒤 배 좌수는 다시 장가들어 두 딸의 현신인 쌍둥이 딸을 낳는다.
이들은 자라서 평양의 거부 이연호(李連浩)의 쌍둥이 아들 윤필·윤석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산다.
『장화홍련전』은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하였지만 내용은 완전히 소설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 『장화홍련전』은 계모와 전처 소생이 겪는 갈등의 모든 책임을 계모에게 전가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 시대의 남녀 성 차별 의식이 그대로 투영된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배좌수의 딸 장화(薔花)와 홍련(紅蓮)이 계모의 흉계로 원사(寃死)한 사건을 처리한 실력담(實歷談)을 소재로 하여 한문본을 대본으로 하여 썼다.
국한문본 · 한글본으로 이루어진 유파문학(流播文學)으로서 공안류소설(公案類小說)인 동시에 가정형계모소설(家庭型繼母小說)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한글본의 경개는 다음과 같다.
세종조에 평안도 철산에 배무룡이라는 좌수가 있었는데, 그의 부인이 선녀로부터 꽂송이를 받은 태몽을 꾸고 장화를 낳았다.
이태 후 홍련을 낳았다.
홍련이 다섯 살 때에 부인이 죽으니, 좌수는 후사를 얻기 위하여 허씨에게 재취하였다.
허씨는 용모가 추할 뿐 아니라 심성이 사나웠으나 곧 삼형제를 낳았다.
허씨는 소생이 생긴 뒤 전실의 딸들을 학대하기 시작하였다.
장화가 정혼을 하게 되자, 혼수를 많이 장만하라는 좌수의 말에 재물이 축날것이 아까워 장화를 죽이기로 흉계를 꾸며, 큰 쥐를 튀하여 장화의 이불 속에 넣었다가 꺼내어 좌수에게 보이고 장화가 부정을 저질러 낙태하였다고 속여, 아들 장쇠를 시켜 못에 빠뜨려 죽였다.
그 순간 범이 나와 장쇠의 두 귀와 한 팔, 한 다리를 잘라가 장쇠는 병신이 되었다.
이에 계모는 홍련을 더욱 학대하고 죽이려 하였다.
홍련은 장쇠에게서 장화가 죽은 것을 알았고, 꿈에 장화가 현몽하여 원사한 사실을 알고, 장화가 죽은 못을 찾아가 물에 뛰어들어 죽었다.
그로부터 그 못에는 주야로 곡성이 났으며, 원사한 두 자매가 원정(寃情)을 호소하려고 부사에게 가면 부사는 놀라서 죽었다.
그로부터 그 못에는 주야로 곡성이 났으며, 원사한 두 자매가 원정(寃情)을 호소하려고 부사에게 가면 부사는 놀라서 죽었다.
이런 변고로 부사로 올 사람이 없었는데, 마침 정동우(鄭東佑)라는 사람이 자원하여 부사로 부임하였다.
도임 초야에 장화 · 홍련이 나타나 원사한 시말과 설원(雪寃)해 주기를 간청하였다.
이튿날 부사는 좌수 부부를 문초한 바, 장화는 낙태하여 투신자살하였고, 홍련은 행실이 부정하더니 야음을 틈타 가출하고 종무소식이며, 장화의 낙태물이라고 증거물을 제시하는 것을 본 바 낙태물인 것 같아서, 좌수 부부를 훈방하였다.
그날 밤 꿈에 두 소저가 나타나 계모가 제시한 낙태물의 배를 갈라 보면 알 것이라 하고 사라졌다.
그날 밤 꿈에 두 소저가 나타나 계모가 제시한 낙태물의 배를 갈라 보면 알 것이라 하고 사라졌다.
이튿날 부사는 다시 그 낙태물을 살피고 배를 갈라 본즉 쥐똥이 나왔다.
이에 부사는 계모를 능지처참하고, 장쇠는 교수형에 처하였으며, 좌수는 훈방하였다.
그리고 못에 가서 자매의 시신을 건져 안장하고 비(碑)를 세워 혼형을 위로하였더니, 그날 밤 꿈에 두 자매가 다시 나타나 설원해 준 일을 사례하며, 앞으로 승직할 것이라 하였다.
그뒤 그 말대로 부사는 승직하여 통제사에 이르렸다〔Ⅰ〕.
배좌수는 윤씨를 삼취(三娶)로 맞았는데, 꿈에 두 딸이 나타나 상제가 전세에 못다한 부녀의 연분을 다시 이으라고 하였다는 말을 전하고, 윤씨 부인은 꿈에 상제로부터 꽃 두 송이를 받은 태몽을 꾸고 합동녀를 낳아 꿈을 생각하여 장화와 홍련이라 이름하였다.
두 자매가 장성하여 평양의 부호 이연호의 쌍둥이와 혼인하여, 유자생녀하고 부록을 누리며 잘 살았다〔Ⅱ〕.
한문본 및 국한문본의 경개는 〔Ⅰ〕과 같고, 한글본은 〔Ⅰ〕과 환생(還生) 후의 이야기〔Ⅱ〕를 합한 것이다.
한문본은 전동흘의 철산부사 재임시에 겪은 실력담을, 그의 6대손 만택(萬宅)의 간청에 의하여 박인수(朴仁壽)가 1818년(순조 18) 섣달 초하룻날에 쓴 것이다.
이 한문본은 전동홉의 8대손 기락(基洛)등이 1865년(고종 2)에 편찬한 《가재사실록(嘉齋事實錄)》과 《가재공실록(嘉齋公實錄)》(全庸甲, 1968)에 실려 있고, 국한문본은 《광국장군전동흘실기(光國將軍全東屹實佳)》에 실려 전한다.
한글 필사본은〔Ⅰ〕의 내용을 담은 것으로 신암본(薪菴本)과 의산본이 있으며, 〔Ⅰ〕과 〔Ⅱ〕의 내용을 담은 한글 목판본은 자암본(紫岩本) · 송동본(宋洞本) · 불란서동양어학교본(佛蘭西東洋語學校本) 등과 신활자본(딱지본)으로 세창본(世昌本) · 영창본(永昌本)을 비롯하여 동계본(同系本)이 있다.
단성사 박승필연예부(朴承弼演藝部)가 제작하였다.
1928년 9월에 개봉하였고, 촬영은 이필우(李弼雨), 주연은 김옥희(金玉姬)·김설자(金雪子)가 맡았다.
일본인들의 자본과 기술에서 독립해 우리 영화사상 처음으로 우리의 민족자본과 기술로 제작된 영화이며 흥행을 하는 극장 단성사(團成社)가 직접 영화제작을 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필우가 촬영기사로 인정을 받게 된 것도 이 작품에서 비롯되었다.
단성사가 영화제작에 손을 댄 것은 그 목적이 프로그램 쟁탈이라는 이해관계에도 있었으나, 그 목적을 따지기 이전에 그로 인해 우리 영화제작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점이다.
어쨌든 「장화홍련전」은 우리에게 영화제작과 흥행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그러면서도 일본인들의 투기에 의해서 초창기 우리 영화사(映畫史)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아쉽게 하는 계기로 기억된다.
같은 제목의 영화가 1936년 경성촬영소(京城撮影所)에서 발성영화로 제작되어 그 해 1월 조선극장(朝鮮劇場)에서 개봉되었다.
감독에 이명우(李明雨), 주연은 문수일(文秀一)·문예봉(文藝峰)이 맡았다.
이 영화는 경성촬영소가 「춘향전」(발성영화)의 재제작에서 흥행적으로 성공한 여파였다.
1938년 영화제의 발성부문에서 10대작품 중의 한 작품으로 뽑혔다.
1956년에도 같은 제목의 작품이 정창화(鄭昌和) 감독에 의하여 만들어진 바가 있다.
A Tale of Two Sisters.
계모와 두 자매라는 설정만 같을 뿐 모든 장면의 연출과 콘셉트, 소품 하나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시대 배경은 현대에 두고 있다.
고전이 비극적인 가족사와 권선징악의 내러티브로 전개된 데 비해 영화 ‘장화, 홍련’은 선악이 모호한 비극적 가족사를 현대에 맞춰 복원시키고 있다.
고전이 비극적인 가족사와 권선징악의 내러티브로 전개된 데 비해 영화 ‘장화, 홍련’은 선악이 모호한 비극적 가족사를 현대에 맞춰 복원시키고 있다.
대부분의 호러영화들이 외부적인 두려움, 즉 타자를 공포의 근원으로 삼는다면 영화 ‘장화, 홍련’은 자신의 죄의식에서 비롯하여된 공포를 그리고 있는 것이 다르다.
임수정과 문근영이 각각 수미(장화), 수연(홍련)으로 등장하여 괴기스런 집안 분위기를 조성해낸다.
가장 잔혹한 장면은 새엄마가 피가 줄줄 흐르는 자루(자매의 시체가 담긴)를 몽둥이로 쳐대는 장면이다.
그것은 자신이 지켜주지 못해서 동생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언니의 죄책감이 빚은 상상력이지만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 긴장감 속에서 ‘장화, 홍련’은 정통 공포영화의 진수를 보여준다.(「‘장화 홍련’ ‘살인의 추억’ 시험대에 오르다」, 《씨네21》 04. 8. 24)
당시 미국에서 ‘A Tale of Two Sisters’란 제목으로 개봉된 후 미국의 유명 영화 칼럼니스트 존 파(John Farr)가 “2000년 이후 개봉한 해외영화 중 최고의 영화(BestInterna-tional Films of the Decade So Farr)”(나우뉴스 08. 1. 30)로 선정했다.
한국영화 중 가장 비싼 가격에 할리우드에 리메이크 판권이 팔렸다.
해외 마케팅과 배급을 담당하는 시네클릭 아시아는 미국의 드림웍스와 계약금 100만 달러와 제작 시점에서 추가로 100만 달러를 지급받아 총 200만 달러에 판권 계약을 체결했다.
프랑스, 스칸디나비아, 이탈리아, 일본, 홍콩, 중국 등에 판매되어 100만 달러 이상의 수출 수입을 올렸고 국내 흥행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
전국 314만 6,000명 관객 동원으로 2004년도 한국영화 흥행 순위 5위, 역대 한국영화 흥행 순위 34위(08년 1월 25일 기준)에 올라 있다.
줄거리
수미(임수정)와 수연(문근영) 자매가 서울에서 오랜 요양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새엄마 은주(염정아)는 아이들을 반기지만 아이들은 그녀가 달갑지 않다.
이들이 함께 살게 된 뒤부터 기이한 분위기가 집안에 감돌자 수미는 죽은 엄마를 대신해 아버지 무현(김갑수)과 늘 겁에 질려 있는 동생 수연을 손수 챙기려든다.
이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진 은주는 그런 두 자매와 번번이 부딪치게 되고 아버지 무현은 그들의 불화를 무기력하게 바라볼 뿐이다.
결국 정서불안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은주는 집안을 공포 분위기로 몰아가고 수미는 동생 수연을 지키기 위해 이에 맞선다.
집안 곳곳에서 괴상한 일들이 잇달아 일어나고 감춰졌던 가족의 비밀이 그 진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알다시피 계모(繼母)는 친어머니가 죽거나 내쫓긴 후 아버지가 재혼하여 새로 맞이한 부인을 가리킨다.
의모(義母), 후모(後母) 등으로도 불리는 계모는 일부일처제 사회에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전통 시대에는 여성이 계속적인 출산, 과중한 노동, 부족한 영양 등으로 천수를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였으므로 계모가 더욱 많을 수밖에 없었다.
계모는 '어머니의 연장선상에 있는 사람'이란 말뜻에서도 나타나듯 친어머니와 다름없기 때문에 친모와 동일한 지위가 부여되었다.
『경국대전』에 친모나 계모 모두에게 삼년상을 지내도록 규정한 것은 그 단적인 예이다.
하지만 법적인 지위와 상관없이 가정 내에서 계모의 위치는 대개 유동적이고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법적인 지위와 상관없이 가정 내에서 계모의 위치는 대개 유동적이고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원인은 대부분 전실 자식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이었다.
광해군대의 김진원(金振遠)이라는 인물은 정언(正言, 간쟁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정6품의 사간원 관직)으로 있었으면서도 계모를 어머니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집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여 구설수에 올랐는데, 이러한 갈등은 당시 흔한 것이었다.
갈등이 형사 사건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갈등이 형사 사건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효종대의 평안도 사람 서헌문(徐獻文)은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계모를 살해하여 교수형에 처해졌다.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전라도 지역의 어느 형제는 재산이 많은 계모가 재물을 나누어 주지 않은 것에 불만을 품고 있던 중 계모가 간음을 하자 직접 결박하여 관아에 고발하기도 하였다.
『장화홍련전』『콩쥐팥쥐전』과 함께 대표적인 계모형 소설로 손꼽힌다. 이러한 계모형 소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퍼져 있는데, 자칫 계모는 무조건 나쁘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 줄 가능성이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계모에 대한 홀대는 인륜에 관계된 일이므로 국가에서도 가능한 한 엄중하게 처리하였다.
앞서 본 전라도 지역의 형제는 계모를 결박하였다는 이유로 함께 벌을 받았으며, 현종대에 군수를 지낸 이성시(李聖時)는 계모를 어머니로 여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벌을 받기도 하였다.
이성시에 대한 처분에 대해서는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현종은 이성시가 앞으로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것이라며 비난하였다.
물론 계모를 지성으로 모신 효자도 있었다.
물론 계모를 지성으로 모신 효자도 있었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조헌(趙憲)은 계모가 자신을 모질게 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외할머니가 계모 욕을 하자 계모일망정 어엿한 어머니인데 잘못을 들추어내는 것을 자식된 도리로 차마 들을 수 없다며 외갓집에 발길을 끊어 외할머니와 계모가 모두 감동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중종대의 김석련(金石連)은 계모가 병이 나자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먹여 병을 고쳤고, 계모가 죽자 삼년상을 지냈으며 그 후에도 계속하여 상식(上食)을 올리고 애도하여 정문(旌門)이 세워지기도 하였다.
계모를 잘 모신 일이 기특한 행적으로 전해지고 있는 데서 나타나듯 계모와 갈등 없이 지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계모를 잘 모신 일이 기특한 행적으로 전해지고 있는 데서 나타나듯 계모와 갈등 없이 지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예부터 '계모 모시기가 어렵다'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
계모 모시기가 어려운 만큼 전실 자식을 사랑하는 것 또한 힘든 일이었다.
'계모'하면 흔히 전실 자식에 대한 학대를 떠올리게 된다.
선입견의 빌미를 제공한 못된 계모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정조대의 학자 이덕무(李德懋)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는 계모의 악행과 관련된 두 편의 실화가 소개돼 있다.
하나는 처녀 향랑(香郞)의 이야기로, 향랑은 어릴 적부터 계모에게 구박을 받았는데 시집간 후 남편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계모가 끝내 받아 주지 않아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는 사연이다.
다른 한 편의 이야기는 이보다 좀 더 소설적이다.
어느 처녀가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첫날밤에 난데없이 창밖에서 군복을 입은 도적이 나타나 큰 칼을 비껴 들고 광채를 내면서 신랑에게 방에서 나가지 않으면 단칼에 쳐죽이겠다고 협박을 하였다.
도적은 다름 아닌 처녀의 계모로, 신부를 모함해 파혼시키려고 술책을 부린 것이었는데 처녀가 계모를 알아보는 바람에 사람들 앞에서 정체가 탄로나고 말았다.
이에 더욱 앙심을 품게 된 계모는 결국 처녀를 살해하였으며, 처녀의 억울한 죽음은 후일 남편이 밝혀냈다고 한다.
모시기도 어렵고 사랑하기도 힘든 계모와 전실 자식의 관계는 팽팽한 긴장감과 숱한 사연을 쏟아 낸다.
모시기도 어렵고 사랑하기도 힘든 계모와 전실 자식의 관계는 팽팽한 긴장감과 숱한 사연을 쏟아 낸다.
초록
Janghwahonglyunjun is a mythological text, which means that it shows masculine domination mechanism operating on women through materialized consciousness. On the basis of such consciousness, the ferocious face of masculine domination disguises itself through `making-a-stepmother-a-bad-woman` and `making-a-daughter-a-Wongui[寃鬼, a revengeful spirit]`. Though we automatically think of good-natured yet miserable sisters and a bad stepmother whenever we read Janghwahonglyunjun; we are likely to overlook the influence of such customary images which have been instilled into our mind ever since we read fairy tales of `Kongjui-Patjui` kind. That `overlooking` is the effect which the mythological discourse intends to produce and the very drive of permanent male domination. `Making-a-stepmother-a-bad-women` is a kind of scapegoating related to the crisis of male domination in the Choson Dynasty. Janghwahonglyunjun imputes to a stepmother all the home problems caused by the crisis of male domination and patriarchal incapacities, which enables us to call it a mythological text. For myth is at once what allows us to understand something and what forces something else upon us. Janghwahonglyunjun forces us readers to blame a stepmother as it compelled many women of the Choson Dynasty to do so. And they mistook the imposition for their desire. Janghwa and Honglyun, too, don`t solve their problems for themselves but stick to the solution by government, the masculine ruling powers. They also asserted their father`s innocence. Masculine domination continues to operate on women through the incarnation of male domination into women`s bodies and the mythology of masculine domination can be accomplished only in conspiracy with the second se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