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악. 五岳..Five Greatmountains.
중국에는 예로부터 산악 신앙이 있었는데 전국시대 이후 오행사상(五行思想)의 영향을 받아 5악의 관념도 생겼다.
한대(漢代)의 5악은 동쪽의 타이산[泰山:山東省], 서쪽의 화산[華山:陝西省], 남쪽의 헝산[衡山:湖南省], 북쪽의 헝산[恒山:河北省], 중부의 쑹산[嵩山:河南省]이며, 나라에서 제사를 지냈다.
정상 또는 산록에는 도교(道敎)의 사묘(祀廟)가 많이 있고 중화민국 이전에는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냈다.
중국의 오대 명산으로 총칭으로 산시성(山西省)의 북악항산(北岳恒山), 산시성의 서악 화산(西岳华山), 허난성(河南省)의 중악 쑹산(中岳嵩山), 산둥성(山东省)의 동악(东岳) 타이산(泰山, 태산), 후난성(湖南省)의 남악 헝산(南岳 衡山)을 일컫는다.
중국 내에서 가장 높은 산은 아니나 평지 또는 분지에 위치하여 고대인이 유달리 높고 험준한 산으로 여기게 되어 봉선(封禅)과 제사 등의 성대한 의식이 거행되고 정상 또는 산록에는 도교의 사묘(祀廟) 등 많은 유적 등으로 인해 명성이 점점 높아지게 되었다.
'5악(五岳)'이란 용어는 주례(周礼)에 처음 등장하며, 예기(礼记)의 왕제(王制)에도 기재되어 있으나 구체적 명칭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동한(东汉)의 정현(郑玄)이 주례(周礼)의 주석(注释)에 오악(五岳)의 명칭을 ‘五岳, 东曰岱宗, 南岳曰衡山, 西曰华山, 北岳曰恒山, 中岳曰嵩山’으로 거명하였다.
한(汉) 무제(武帝) 이후 역대 제왕들이 오악을 받들기 시작하여 당(唐) 현종(玄宗)은 오악을 왕으로, 송의 진종(眞宗)은 오악을 제(帝)에 봉하였고, 명 태조(太祖)는 오악을 높여 신으로 삼았다.
'5악(五岳)'이란 용어는 주례(周礼)에 처음 등장하며, 예기(礼记)의 왕제(王制)에도 기재되어 있으나 구체적 명칭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동한(东汉)의 정현(郑玄)이 주례(周礼)의 주석(注释)에 오악(五岳)의 명칭을 ‘五岳, 东曰岱宗, 南岳曰衡山, 西曰华山, 北岳曰恒山, 中岳曰嵩山’으로 거명하였다.
한(汉) 무제(武帝) 이후 역대 제왕들이 오악을 받들기 시작하여 당(唐) 현종(玄宗)은 오악을 왕으로, 송의 진종(眞宗)은 오악을 제(帝)에 봉하였고, 명 태조(太祖)는 오악을 높여 신으로 삼았다.
한(汉)의 선제(宣帝)가 정한 오악은 안후이성(安徽省) 톈주산(天柱山, 천주산)이 남악이고, 허베이성(河北省) 취양현(曲阳县, 곡양현)의 헝산(恒山, 항산)이 북악으로 되어 있으나 나중에 후난성(湖南省)의 헝산(衡山, 형산)을 남악으로 삼았고, 명대에는 산시성(山西省) 헝산(恒山, 항산)을 북악으로 삼았다.
국가제사의 제도로서는 한의 무제에서 시작하며, 한의 선제가 확정하였다.
쑹산. Song Shan, 嵩山(숭산).
중웨산[中岳山]이라고도 부른다.
예로부터 와이팡산[外方山]·타이스산[太室山]·쑹가오산[嵩高山] 등 많은 별칭이 있었다.
중국 허난성 덩펑시 북쪽에 있는 산으로 타이스산·싸오스산[少室山] 등 모두 72개의 산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서길이는 60km, 해발 1,440m이다. 최고봉은 위자이산[御寨山]으로 해발 1,512m이다.
산 중에는 세 첨봉이 있는데 중간을 쥔지봉[峻極峰], 동쪽을 타이스봉[太室峰], 서쪽을 샤오스봉[少室峰]이라고 한다.
중국 5대 명산, 즉 5악(岳)의 하나로 꼽히며, 당(唐)나라 때인 688년에 신악(神嶽)으로 지정되었다.
중국 5대 명산, 즉 5악(岳)의 하나로 꼽히며, 당(唐)나라 때인 688년에 신악(神嶽)으로 지정되었다.
산중에는 승려와 도사(道士)의 수업도량(修業道場)이 되었던 사찰이 있다.
그 중 샤오스봉 북쪽 기슭에 있는 샤오린사[少林寺]는 선종(禪宗)의 시조 달마대사(達磨大師)가 면벽 9년의 좌선을 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 샤오스봉 북쪽 기슭에 있는 샤오린사[少林寺]는 선종(禪宗)의 시조 달마대사(達磨大師)가 면벽 9년의 좌선을 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타이스봉 서쪽 기슭의 쑹웨사[嵩岳寺]는 수당(隋唐)시대에 북종선(北宗禪)의 중심이었던 절인데, 12각 15층의 탑은 북위(北魏) 때의 것으로 중국에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탑이다.
문화유적으로는 중웨묘[中岳廟]·쑹웨사탑[嵩岳寺塔]·한(漢)나라 때의 쑹산싼췌[嵩山三闕]·쑹양서원[嵩陽書院]·관싱대[觀星臺]·파왕사[法王寺] 등이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중웨묘[中岳廟]·쑹웨사탑[嵩岳寺塔]·한(漢)나라 때의 쑹산싼췌[嵩山三闕]·쑹양서원[嵩陽書院]·관싱대[觀星臺]·파왕사[法王寺] 등이 있다.
소림사. Shaolin of Temple, 少林寺.
서기 464년, 불타선사(佛陀禪師)라는 인도의 승려가 중국으로 와서 불법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소림사(少林寺, 샤오린샤)는 북위의 효문제의 명으로 495년 공사를 시작하여 창건되었다.
바로 이 소림사에서 인도의 불경들이 중국어로 번역되었으며, 선종의 교리가 완성되었다.
불타선사는 또한 참선을 보완하는 수행 방법의 하나로 무술을 도입한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 무술이 훗날 고난도의 악명 높은 소림 쿵후로 발전하였다.
원래의 절 구조는 단순했지만, 왕조가 바뀔 때마다 증축을 거듭하여 더욱 웅대해지는 바람에 현재의 구조는 주로 명대와 청대의 것이 대부분이다.
원래의 절 구조는 단순했지만, 왕조가 바뀔 때마다 증축을 거듭하여 더욱 웅대해지는 바람에 현재의 구조는 주로 명대와 청대의 것이 대부분이다.
주요 건물이 중앙축을 따라 늘어서 있는, 완벽한 대칭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으려고 애쓴 것이 한눈에 보인다.
여기에는 산문(山門), 종루, 고루(鼓樓), 천주전(天主殿), 본전, 주지승방, 대웅전, 그리고 불경을 보관하는 암자도 포함된다.
가장 크고 인상깊은 건물은 천불전(千佛澱)으로, 그 실내는 정교한 벽화로 장식되어 있는데 오늘날까지도 보존 상태가 좋다.
소림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중국 건축사상 가장 위대한 프로젝트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탑림(塔林)이 있다.
소림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중국 건축사상 가장 위대한 프로젝트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탑림(塔林)이 있다.
이곳에는 놀라우리만큼 다양한 형태의 탑들이 246개의 묘소를 지키고 있다.
이러한 구조상의 다양성에 선종의 발생지라는 중요성까지 더해져 소림사는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불교 유적 가운데 하나이다.
처음에 이 사찰은 496년에 북위(北魏)의 효문제(孝文帝)가 발타선사(跋禪師)를 위하여 창건했다고 전한다. 달마(達磨)가 530년부터 9년간 여기서 좌선했다는 사실로도 유명하다.
유명한 소림권법(少林拳法)은 달마(達磨)가 인도에서 들여온 행(行)의 일종으로 선승(禪僧)의 수행법. 인도의 의성(醫聖) 기파(耆婆)가 연구한 경맥비공(經脈秘孔:인체의 급소)의 원리에 따라 발생한 이 격기(格技)를 불교에서 받아들여 발달시켰는데, 불교도들의 심신단련과 호신에 크게 도움이 되었으며, 소림사는 불교의 수양도량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중국 고유무술의 커다란 발원지로 그 명성을 세계에 떨쳤다.
소림사의 무술은 지난 1985년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이 복원에 관심을 쏟은 뒤로 중흥되고 있다.
유명한 소림권법(少林拳法)은 달마(達磨)가 인도에서 들여온 행(行)의 일종으로 선승(禪僧)의 수행법. 인도의 의성(醫聖) 기파(耆婆)가 연구한 경맥비공(經脈秘孔:인체의 급소)의 원리에 따라 발생한 이 격기(格技)를 불교에서 받아들여 발달시켰는데, 불교도들의 심신단련과 호신에 크게 도움이 되었으며, 소림사는 불교의 수양도량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중국 고유무술의 커다란 발원지로 그 명성을 세계에 떨쳤다.
소림사의 무술은 지난 1985년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이 복원에 관심을 쏟은 뒤로 중흥되고 있다.
지금도 소림사 일대에서 5,000여명의 수련생들이 무술을 연마하고 있다.
소림사는 서기 496년 중국 하남성 숭산에 창건된 본산 외에 태국과 독일에 하나 씩있다.
중국 내에서 가장 높은 산은 아니나 평지 또는 분지에 위치하여 고대인이 유달리 높고 험준한 산으로 여기게 되어 봉선(封禅)과 제사 등의 성대한 의식이 거행되고 정상 또는 산록에는 도교의 사묘(祀廟) 등 많은 유적 등으로 인해 명성이 점점 높아지게 되었다.
'5악(五岳)'이란 용어는 주례(周礼)에 처음 등장하며, 예기(礼记)의 왕제(王制)에도 기재되어 있으나 구체적 명칭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동한(东汉)의 정현(郑玄)이 주례(周礼)의 주석(注释)에 오악(五岳)의 명칭을 ‘五岳, 东曰岱宗, 南岳曰衡山, 西曰华山, 北岳曰恒山, 中岳曰嵩山’으로 거명하였다.
한(汉) 무제(武帝) 이후 역대 제왕들이 오악을 받들기 시작하여 당(唐) 현종(玄宗)은 오악을 왕으로, 송의 진종(眞宗)은 오악을 제(帝)에 봉하였고, 명 태조(太祖)는 오악을 높여 신으로 삼았다.
'5악(五岳)'이란 용어는 주례(周礼)에 처음 등장하며, 예기(礼记)의 왕제(王制)에도 기재되어 있으나 구체적 명칭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동한(东汉)의 정현(郑玄)이 주례(周礼)의 주석(注释)에 오악(五岳)의 명칭을 ‘五岳, 东曰岱宗, 南岳曰衡山, 西曰华山, 北岳曰恒山, 中岳曰嵩山’으로 거명하였다.
한(汉) 무제(武帝) 이후 역대 제왕들이 오악을 받들기 시작하여 당(唐) 현종(玄宗)은 오악을 왕으로, 송의 진종(眞宗)은 오악을 제(帝)에 봉하였고, 명 태조(太祖)는 오악을 높여 신으로 삼았다.
한(汉)의 선제(宣帝)가 정한 오악은 안후이성(安徽省) 톈주산(天柱山, 천주산)이 남악이고, 허베이성(河北省) 취양현(曲阳县, 곡양현)의 헝산(恒山, 항산)이 북악으로 되어 있으나 나중에 후난성(湖南省)의 헝산(衡山, 형산)을 남악으로 삼았고, 명대에는 산시성(山西省) 헝산(恒山, 항산)을 북악으로 삼았다.
중국의 화산은 높지 않지만 '귀가 닿는 절벽'에 나 있는 좁은 길을 보면 도저히 믿기지 않을 것이다.
이 산은 2,200미터지만 가파른 지세 때문에 '중국의 5 악'의 하나로 꼽는다.
중국 중부에 있는 섬서 성의 수도인 서안에서 동쪽으로 12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화산 산은 평원에서 똑바로 수직으로 솟아 구름 속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산 아래에서 정상까지 가파른 절벽과 산줄기를 따라 아주 오래전부터 만들어져 있던 12킬로미터의 좁은 길을 따라 걸으면 심장이 멎을 것 같지만 주변 풍경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화산'이라는 이름은 정상의 다섯 봉우리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다섯 꽃송이'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화산'이라는 이름은 정상의 다섯 봉우리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다섯 꽃송이'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길을 따라 절과 도교의 사원들이 세워져 있으며 폐허가 된 궁궐도 있다.
화산의 다양한 볼거리에는 귀가 닿는 절벽, 천 길 낭떠러지, 하늘 사다리, 해와 달 절벽, 해 봉우리, 도끼가 깨지는 바위, 운명의 절벽 등이 있다.
좁고 가파른 길을 올라갈 생각에 무릎이 후들거린다면 정상까지 설치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수도 있다.
- 중국 산시성[陝西省] 동부 친링[秦嶺]산맥 동단 웨이수이강[渭水] 연변에 있는 산. 1992년 중국 국가급풍경명승구(国家级风景名胜区)로 지정되었다.
중국 산시성[位于陕西省] 화인시[华阴市]에 위치한다.
시안[西安]에서 동쪽으로 120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산시성 남부의 친링[秦岭]산맥에 있다.
오악(五岳) 중 하나인 서악(西岳)으로, 타이화산[太華山] 또는 화산[花山]이라고도 불린다.
다섯 개의 주봉 중 가장 높은 것은 난봉[南峰]으로 높이는 2154.9m이다. 그 외에도 약 36개의 작은 봉우리가 있다.
오악 중 가장 험준한 산으로 알려져 있다.
오악 중 가장 험준한 산으로 알려져 있다.
화산에는 창콩잔다오[长空栈道], 야오즈판션[鹞子翻身], 쳰츠촹[千尺幢], 바이츠샤[百尺峡], 라오쥔리거우[老君犁沟] 등을 비롯하여 210여개의 명소가 있다.
화산은 또한 도교 성지로, 유명한 도교 승려인 진전(陈抟), 혁대통(郝大通), 하원희(贺元希) 등이 이곳에서 수행하였다.
기원전 2세기 서봉묘(西峰庙)라는 도교 사원이 화산 기슭에 있었다.
기원전 2세기 서봉묘(西峰庙)라는 도교 사원이 화산 기슭에 있었다.
도교 신도들은 화산에 염라대왕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고, 서봉묘를 염라대왕과 그의 신하를 만날 수 있는 장소로 여겨졌다.
순례의 목적지가 된 타이산[泰山]과 달리, 화산은 등정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화산 인근 주민들이나 황제만이 방문했으며,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순례자가 방문하지 않는 장소였다.
화산에서는 다양한 약초가 자라고 유명한 약이 발견되었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영생을 찾는 사람들이 화산을 방문했다.
화산의 5개의 주봉 중 하나인 차오양봉[朝阳峰, 높이 2096.2m]은 일출을 보기에 가장 좋은 장소로 꼽히고, 뤄옌봉[落雁峰]은 화산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그 높이가 2154.9m에 달한다.
화산의 5개의 주봉 중 하나인 차오양봉[朝阳峰, 높이 2096.2m]은 일출을 보기에 가장 좋은 장소로 꼽히고, 뤄옌봉[落雁峰]은 화산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그 높이가 2154.9m에 달한다.
롄화봉[莲花峰, 높이 2082.6m]은 봉우리 모양이 연꽃을 닮았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으며, 그 외에 위뉘봉[玉女峰], 윈타이봉[云台峰]이 있다.
태화산(太华山)으로도 불리며 예전에는 화산(花山)으로도 칭했다.
북악(北岳) 헝산(恒山, 항산), 동악(东岳) 타이산(泰山, 태산), 남악(南岳) 형산(衡山), 중악(中岳) 쑹산(嵩山, 숭산)과 더불어 오악(五岳) 중의 서악(西岳)으로 불린다.
산시성(섬서성) 시안시(西安市, 서안시)에서 동쪽으로 100여 ㎞ 거리의 화음현(华阴县, 화인현)의 성(城) 남쪽에 위치하며, 남봉(南峰)이 해발 2154.9m에 달하고 험준하기로는 오악(五岳) 중의 첫 번째이다.
산시성(섬서성) 시안시(西安市, 서안시)에서 동쪽으로 100여 ㎞ 거리의 화음현(华阴县, 화인현)의 성(城) 남쪽에 위치하며, 남봉(南峰)이 해발 2154.9m에 달하고 험준하기로는 오악(五岳) 중의 첫 번째이다.
헝산. 恒山(항산).
중국의 오악(五岳)의 하나인 북악(北岳).
위치 산시성[山西省] 훈위안현[渾源縣] 남동 10km 지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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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2,052m 높이 2,052m. 한대(漢代) 이래 허베이성[河北省] 취양현[曲陽縣] 북서쪽 70km의 다마오산[大茂山:恒山]을 북악으로 삼아 제사를 지내 왔으나, 명대(明代)에 산시성[山西省] 훈위안현[渾源縣] 남동 10km 지점의 현악(玄岳:2,052m)을 헝산산으로 개칭하여 북악으로 간주하였다. 실제로 이곳에서 북악의 제사를 지낸 것은 청대(淸代) 초기 1660년에 이르러서였다. 산 위의 북악묘(廟)는 북악으로 정해지기 이전부터 있었던 고묘(古廟)를 개수한 것이다. 서우웨산[壽岳]이라고도 한다. 높이 1,265m. 후난성[湖南省] 헝양시[衡陽市] 북쪽 40km 지점에 있다. 남 ·동 ·북쪽을 샹장[湘江]이 둘러싸듯이 흐르며 주위는 400km나 된다. 산속에는 주룽[祝融:1,265m] ·쯔가이[紫蓋] 등 모두 72개의 봉우리가 있다. 산중에는 사찰이 많고, 산록의 난웨[南岳]는 창사[長沙] ·헝양을 잇는 교통의 요지로서 산물의 집산이 활발하다. 타이산. Mount Tai, 泰山(태산).
중국 산둥성(山東省) 중부 타이산 산맥의 주봉(主峰)으로 높이 1,532m, 총면적 426㎢이다. 중국의 5대 명산(名山)의 하나인 동악(東岳)으로 신성하게 여겨졌다.
한나라 무제는 5번, 청나라 건륭제는 11번이나 봉선의식을 행했다고 한다.
타이산에는 도교와 불교 사원과 특정인을 숭배하는 사당, 권세가들의 누각들이 들어섰는데, 가장 대표적인 곳이 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다이먀오(岱庙)다.
황제들이 봉선의식을 올렸던 곳으로, 특히 경내의 티엔황디엔(天皇殿)은 북경 자금성(紫禁城, 쯔진청)의 타이허디엔(太和殿), 취푸(曲阜)에 있는 공자묘 안의 다청디엔(大成殿)과 함께 중국 3대 전각으로 꼽히는 곳이다.
1009년 송나라 때 처음 건축되었으며 높이 22m, 너비 49m의 크고 화려한 전각이다.
현재의 건물은 17세기에 재건한 것이지만 송나라 때의 거대한 벽화는 그대로 남아 있다.
산 중턱에는 우숭팅(五松亭)이 있다. 진시황(시황제)이 타이산을 오르다가 폭풍우를 만나자 그 아래서 비를 피했다는 소나무가 있었던 곳이다.
정상에는 비샤시(碧霞祀)라는 사당이 있다. 비샤위안쥔(碧霞元君)이라는 여신을 모신 곳으로 11세기에 창건되었다.
이외에도 타이산에는 이티엔먼(一天門), 중티엔먼(中天門), 난티엔먼(南天門), 다이쭝팡(岱宗坊), 훙먼궁(紅門宮), 완셴러우(萬仙樓) 등의 많은 명소가 있다.
산 곳곳의 암벽과 수백 개의 비석에 새겨진 글자와 경문이나 시문도 타이산의 명물이다.
타이산(태산)을 신성시하기는 일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다.
타이산에 한번 오를 때마다 10년씩 젊어진다고 하여 누구나 타이산 등정을 평생의 숙원으로 삼을 정도였다.
때문에 이곳을 오르려는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며, 산 정상까지 7,412개의 돌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중국의 UNESCO 세계유산]
신성한 타이 산의 장엄한 유적은 우거진 숲과 고대 사찰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거의 2,000년 동안 중국인들의 순례지였던 이곳에서는 자연 경관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예술 걸작들이 발견된다.
이 산은 중국 예술가와 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고대 중국 문명과 신앙을 상징한다.
산둥(山東) 성 중부, 타이안(泰安) 시 바로 북쪽에 있는 타이 산은 산둥 지방 중부의 광활한 평원에 우뚝 솟아 있다.
타이 산의 지질은 중국 동부에서 캄브리아기(Cambrian period)를 대표하는 고대 변성암 체계 중에 가장 오래되고 가장 중요한 사례로 알려져 있다.
타이 산 지질대로 일컫는 이곳의 지형은 2억 년~1억 7,000만 년 전의 시생대(始生代)에 형성된 화성암, 변성암, 퇴적암, 그리고 여러 가지 관입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뒤를 이어 원생대(原生代)에 시작된 타이 산 지역의 융기는 신생대(新生代) 중기까지 계속되었다.
타이 산 지역에 생겨난 편마암이 중국 북부 지역의 기반암을 이룬다.
빽빽하게 우거진 숲 지대의 80%를 차지하는 989종의 초목이 다양하게 자란다.
이 중에 약초가 총 462종이며, 마디풀(knotweed)과의 각종 풀, 타이산 인삼(人蔘, Taishan ginseng), 중국지치(Chinese gromwell), 둥굴레(sealwort) 등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동물은 200종을 넘고 조류도 122종이나 된다.
300~800m에 이르는 유수(流水)에서는 큰 물고기를 발견할 수 있다.
문화유산이 매우 풍부한 타이 산은 자연 경관과 함께 그 완전성에 있어서 귀중한 유산이라 할 수 있다.
문화 유물에서는 기념물을 비롯하여 건축물, 암석 조형물, 고고학 유적이 매우 중요하다.
중국 문명 발상지 중에 하나인 타이 산에는 구석기 시대 이위안 원인(沂源猿人, Yiyuan Man)이 400,000년 전에 활동한 흔적이 남아 있다.
6,000년~5,000년 전 신석기 시대에 타이 산은 북쪽의 다원커우 문화(大汶口文化)와 남쪽의 룽산 문화(陇山文化)가 꽃을 피운 문화 중심지가 되었다.
주(周) 왕조(기원전 1100~기원전 221)의 춘추 시대(春秋時代, 기원전 770~기원전 476)에는 북쪽의 제(濟)나라와 남쪽의 노(魯)나라가 경쟁하면서 문화적으로 활기를 띠게 되었다.
전국 시대(戰國時代, 기원전 475~기원전 221)에는 제나라가 초(礎)나라의 침입에 대비하여 500㎞에 이르는 긴 성벽을 쌓았다.
중국 역사상 최초인 이 거대한 성벽의 초기 흔적이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다.
3,000여 년 동안, 중국 왕조의 황제들은 제물을 바치고 숭배 의식을 할 목적으로 타이 산을 순례하였다.
이곳의 바위에 새겨져 있는 글과 비문이 이를 증명한다.
저명한 학자들 중에 취푸(曲阜, Qufu)가 고향인 공자(孔子, 기원전 555~기원전 479)는 시와 산문을 지어 이 산에 남겨 놓았다.
취푸는 타이 산에서 70㎞ 거리밖에 안 된다.
타이 산은 도교와 불교의 주요 중심지였다.
기원전 351년에 랑(Lang)이라는 고승이 처음으로 이 산에 와서 영암사(靈岩寺) 사원을 세웠다.
남북조(南北朝) 시대(420~589)에는 옥천사(玉泉寺), ‘God's Treasure’ 보조사(普照寺) 등이 건립되었다.
당(唐, 618~907)의 재상 리지푸(LiJiefu)는 영암사(靈岩寺)를 중국의 경이로운 4대 사찰 중에 하나라고 하였다.
도교 사원으로는 서왕모(西王母)를 모시는 사원인 만선루(萬仙樓), 두모궁(斗母宮), 벽하사(碧霞祠), ‘Rear Rock Basin Temple’ 그리고 옥황사(玉皇寺) 등이 있다.
최초의 사원은 삼국시대(220~280) 이전에 건립된 만선루이고 벽하사는 중국의 절반 이상의 지역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다.
중국 산둥성(山東省) 중부 태산 산맥의 주봉(主峰)으로 높이 1,532m, 총면적 426㎢이다. 중국의 5대 명산(名山)의 하나인 동악(東岳)으로 신성하게 여겨졌으며, 역대 황제들이 하늘의 뜻을 받는 봉선의식(封禪儀式)을 행했던 곳이다.
봉선의식을 치렀던 대묘(岱廟)를 비롯해 많은 유서 깊은 사당과 사찰ㆍ정자ㆍ비석 등이 있을 뿐 아니라, 산세와 경관 또한 아름다워 1987년 유네스코 복합유산, 즉 세계문화유산과 세계자연유산으로 동시에 지정되었다.
태산(泰山) : 중국 산동성(山東省)에 있는 높은 산. 이 작품에서는 크고 높은 산을 뜻함.
제 : 자기가. 이 작품에서는 ‘자기 스스로’의 의미이다.
이 작품의 주제는 꾸준히 노력하며 실천하는 자세의 중요함이라고 할 수 있다.
『청구영언』, 『가곡원류』, 『병와가곡집』 등에 실려 있으며, 시조집마다 표기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원문은 『청구영언』의 표기를 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