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8일 금요일

사자성어 1

사자성어. 2019.02.05 18:24

낙양지귀 (洛陽紙貴)
洛 물 이름 낙 陽 볕 양 紙 종이 지 貴 귀할 귀낙양의 종이가 귀해졌다는 뜻
속뜻 : 저서(著書)가 호평(好評)을 받아 잘 팔리는 것을 비유한 말

어떤 책이 큰 인기를 끌게 되면 그 책을 많이 만들기 위해 그만큼의 종이가 필요하겠지요. 그러다 보니 종이가 귀한 예전에는 종이 값이 올랐고 그로부터 유래한 표현이 바로 낙양지귀입니다. 낙양지가(洛陽紙價)라고도 하지요.

진(晉, 265∼316)나라 무렵 좌사(左思)라는 시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얼굴도 못생겼고 말더듬이였지만 붓만 잡으면 놀라운 시를 써냈습니다. 
그는 고향 임치에서 시를 쓰다가 도읍인 낙양으로 이사한 뒤 〈삼도부(三都賦)〉란 시를 10년에 걸쳐 완성했지요. 
그러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그의 시를 읽어본 유명한 시인 장화가 크게 칭찬했지요. 
그때부터 〈삼도부〉는 낙양의 화제작이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찾게 되자 낙양의 종이 값이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장 가운데는 이런 문장도 있습니다. 
읽기 위한 문장이 아니라 결의를 다지기 위한 문장, 혁명을 위한 문장, 주모자를 감추기 위한 문장입니다.


명경지수 [ 明鏡止水 ]
明 : 밝을 명 鏡 : 거울 경 止 : 그칠 지 水 : 물 수밝은 거울과 정지된 물이라는 뜻으로, 고요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리키는 말.

《장자(莊子)》 덕충부편(德充符篇)에 나오는 말이다. 
노(魯)나라에 죄를 지어 다리를 잘린 왕태(王駘)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를 따라 배우는 사람이 공자의 제자 수와 같았다. 
공자의 제자가 그에게 사람들이 모여드는 까닭을 묻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사람은 흘러가는 물에는 비춰 볼 수가 없고 고요한 물에 비춰 보아야 한다. 
오직 고요한 것만이 고요하기를 바라는 모든 것을 고요하게 할 수 있다(人莫鑑於流水 而鑑於止水 唯止能止衆止)."
물론 《장자》의 다른 부분과 같이 장자 자신이 공자의 말을 빌려 하는 형식이다.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다.

신도가(申徒嘉)는 형벌을 받아 다리를 잘린 사람으로 정자산(鄭子産)과 함께 같은 스승을 모시고 있었다. 
정자산이 신도가에게 말하였다. 
"내가 먼저 나가거든 자네가 머물러 있고, 자네가 먼저 나가면 내가 머물러 있음세." 이튿날 같은 방에 자리를 함께 하고 있을 때 정자산은 또 신도가에게 말하였다.

"내가 먼저 나가거든 자네가 머물러 있고, 자네가 먼저 나가면 내가 머물러 있기로 하세. 지금 내가 나가려고 하는데, 자네는 머물러 있겠는가, 나가겠는가. 또 자네는 집정(執政) 하는 나를 보고도 피하지 않으니 자네도 집정하는 나와 같단 말인가?" 이에 신도가가 말하였다. 

"선생님 문하에서 집정이란 세속적 지위가 문제가 되는가? 자네는 자기가 집정임을 내세워 사람을 무시하고 있네. 듣건대 거울이 밝으면 먼지가 끼지 못하고, 먼지가 끼면 거울이 밝지 못하네. 어진 사람과 오래도록 함께 있으면 허물이 없어진다고 하네(鑑明則塵垢不止 止則不明也 久與賢人處 則無過). 세상에는 잘못을 변명하는 사람은 많으나 제 잘못을 인정하면서 그로 인해 받는 죄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네" 하며 정자산을 꾸짖었다.  

이와 같이 명경지수란 본래 무위(無爲)의 경지를 가리켰으나 후일 그 뜻이 변하여 순진무구한 깨끗한 마음을 가리키게 되었다.



반포지효 [ 反哺之孝 ]
反 : 돌이킬 반 哺 : 먹일 포 之 : 어조사 지 孝 : 효도 효어미에게 되먹이는 까마귀의 효성이라는 뜻으로, 어버이의 은혜에 대한 자식의 지극한효도를 이르는 말. 

이밀(李密:224-287)의 《진정표(陳情表)》에 나오는 말이다. 이밀은 진(晉) 무제(武帝)가 자신에게 높은 관직을 내리지만 늙으신 할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관직을 사양한다. 무제는 이밀의 관직 사양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심정이라고 크게 화내면서 서릿발 같은 명령을 내린다. 그러자 이밀은 자신을 까마귀에 비유하면서 “까마귀가 어미새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조모가 돌아가시는 날까지만 봉양하게 해 주십시오(烏鳥私情, 願乞終養)”라고 하였다.

까치나 까마귀에 대한 인식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거의 같다. 보통 까치는 길조, 까마귀는 흉조라고 인식한다. 까마귀는 음침한 울음소리와 검은 색깔로 멀리 하는 새이며, 좋지 않은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또한 까마귀는 시체를 먹는 불결한 속성이 있어 까마귀 밥이 되었다고 하면 곧 죽음을 의미한다. 이렇듯 까마귀는 불길의 대명사로 인식하고 있지만 인간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간과할 수 없는 습성도 있다.

명(明)나라 말기의 박물학자 이시진(李時珍:1518~1593)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 까마귀 습성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까마귀는 부화한 지 60일 동안은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지만 이후 새끼가 다 자라면 먹이 사냥에 힘이 부친 어미를 먹여 살린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까마귀를 자오(慈烏:인자한 까마귀) 또는 반포조(反哺鳥)라 한다. 곧 까마귀가 어미를 되먹이는 습성을 반포(反哺)라고 하는데 이는 극진한 효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연유로 반포지효는 어버이의 은혜에 대한 자식의 지극한 효도를 뜻한다. 비슷한 말로 반의지희(斑衣之戱), 반의희(斑衣戱), 채의이오친(綵衣以娛親)이 있다.



방약무인 [ 傍若無人 ] 
傍 : 곁 방 若 : 같을 약 無 : 없을 무 人 : 사람 인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여긴다는 뜻으로,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이르는 말.

《사기(史記)》〈자객열전(刺客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위(衛)나라 사람인 형가(荊軻)는 성격이 침착하고 생각이 깊으며, 문학과 무예에 능하였고, 애주가였다. 그는 정치에 관심이 많아 청운을 품고 위나라의 원군(元君)에게 국정에 대한 자신의 포부와 건의를 피력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연(燕)나라 및 여러 나라를 떠돌아 다니며 현인과 호걸과 사귀기를 즐겼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연나라에서 사귄, 비파(琵琶)의 명수인 고점리(高漸離)인데 이 두 사람은 호흡이 잘 맞아 금방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만나 술판을 일단 벌여 취기가 돌면, 고점리는 비파를 켜고, 형가는 이에 맞추어 춤을 추며 고성 방가하였다. 그러다가 신세가 처량함을 서로 느껴 감정이 복받치면 둘이 얼싸안고 울기도 웃기도 하였다. 이때 이 모습은 마치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傍若無人] 보였다.  

원래 방약무인은 아무 거리낌없이 당당한 태도를 말하였는데 변해서 천방지축으로 날뛰고, 무례하거나 교만한 태도를 표현할 때 인용된다. 이후 진(秦)나라의 정(政:훗날 시황제)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연나라의 태자 단(丹)이 형가의 재주를 높이 평가하여 그에게 진시황제 암살을 부탁하였다. 형가는 단의 부탁으로 진시황제 암살을 기도하였지만 진시황제의 관복만 뚫었을 뿐 암살은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그는 진시황제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암살하기 위해 진나라로 떠나기 전 그가 읊은 노래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는 찬데 장사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不還]”라는 구절은 유명하다. 이 노래를 들은 이는 모두 눈을 부라리고 머리카락이 하늘로 솟았다고 한다. 비슷한 말로 안하무인(眼下無人), 아무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행동한다는 뜻의 방벽사치가 있다.


불가구약 [ 不可救藥 ]
不 : 아닐 불 可 : 옳을 가 救 : 구할 구 藥 : 약 약 일이 처음 상태로 돌이킬 수 없는 처지에 이른 것을 이르는 말. 

악인(惡人)을 구원할 수 없거나 나쁜 습관을 고치기 어려운 경우를 비유하는 말이다. 
비슷한 뜻으로 무가구약(無可救藥)이라고도 한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판(板)'이라는 시에 나오는 말인데, 주(周)나라 때 범백(凡伯)이 지은 시라고 전해진다.  

주나라 여왕(厲王)이 백성을 탄압하는 정책을 펼치자, 대신(大臣)들은 불만에 가득찼으며, 백성들은 왕을 저주하였다. 
그래서 범백은 잔혹한 여왕에게 어진 정치를 베풀도록 간언하였으나 간신들은 그를 비웃기만 하였다. 
이에 몹시 흥분한 범백은 다음의 시에서 답답한 심정을 나타냈다.

하늘이 이렇게 가혹한데 그렇게 놀리지 마십시오.
노인은 정성을 다하는데 젊은 사람은 교만하고
내가 망령부린 말도 하지 않았는데 장난삼아 놀리는구나.
장차 많은 악행을 일삼으면 '치료할 약도 없다[不可救藥].'

결국, 핍박받은 주나라 백성들이 폭동을 일으킴으로써 여왕의 포악한 정치도 끝나게 되었는데, 불가구약은 일이 회복할 수 없는 형편에 이른 것을 말한다.
 


관직공기(官職公器) 
[요약] (벼슬 관벼슬 직공 공그릇 기)
벼슬자리는 공공의 기구라는 뜻으로관직을 사욕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말.[출전조선왕조실록 태조 3
  
[내용조선 태조 3(1394) 12월 26일에 대사헌 박경 등이 첨설직 제수 방안에 대해 올린 상소을 올린 가운데 이 성어가 나오며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사헌 박경(朴經등이 상소하였다.

  
관직은 공기(公器)이니 마땅히 덕망을 먼저 보아야 하고함부로 임명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국가에서 고려의 옛 제도에 의하여 순자(循資=관리들을 근무에 따라서 승진시키던 인사제도의 하나)의 법을 쓰고 있는데진실로 재질과 덕망이 출중하지 않으면 계급을 뛰어 올릴 이치가 없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숙위(宿衛)하는 군사들 가운데 포상을 받지 못한 자가 있을까 하여그 공로의 다소로 계급의 등급을 매겨서 (명예직으로 설치한)첨설관(添設官)의 직을 주고자 하매여러 장군과 절제사로 하여금 그 이름을 기록해 올리게 한 것인데그 중에는 간사하고 교활한 자가 거짓으로 전의 계급을 올려서 높은 벼슬을 취한 자도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심이 다 같이 미워하는 것이며국법으로 징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미 여러 도에 영을 내려서이런 무리들을 찾아내어 말을 징발하고 직첩을 거두게 하였으나신 등은 그윽이 생각하옵건대뒤에 징계하는 것이 어찌 당초에 살피는 것과 같겠습니까바라옵건대지금부터는 가선(嘉善이하 4품 이상의 첨설직을 받는 자는 모두 교명(敎明=사령장)에 그 전직을 기록하여 거짓이 없게 하고그 교명은 다 사헌부로 내려보내서 전 직첩을 조사해 본 뒤에 발령하게 하면사람들이 무턱대고 승진하려 하는 마음이 없어질 것이요,
나라에서도 함부로 상주는 폐단이 없을 것입니다.”
임금이 그대로 윤허하였다.

大司憲朴經等上疏曰:
官職公器宜先德望不可假濫。 國家因前朝之舊乃用循資之格苟非才德出衆固無超資之理。 殿下顧念宿衛之士有未霑恩命者以其功勞多少第其資級高卑授以添設官職。 諸將軍節制使錄其職名以進其中奸黠者詐增前級躐取高官者蓋多有之。 此人心所同惡而國法所當懲也。 今已下令諸道搜索此輩徵之以馬仍收職牒。 臣等竊謂與其懲之於後曷若審之於初伏望自今嘉善已下四品已上受添職者皆於敎命錄其前職以防僞濫其敎命皆下本府考其前職之牒方許出給則人絶冒進之心國無濫賞之弊。 上允之
  

  
조선왕조(朝鮮王朝)를 세운 태조(太祖이성계(李成桂)가 임금 노릇한 지 2년쯤 됐을 때 대사헌(大司憲박경(朴經)이 이런 상소를 했다. ‘벼슬 자리는 공공의 기구입니다먼저 그 사람의 덕행을 보고 임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가짜를 함부로 임명해서는 안 됩니다 (官職公器宜先德行不可假濫)’라고 했다.
  
태조가 나라를 세우고 나서 내가 세운 나라인데봐 줄 사람 좀 봐 주어야지라는 심정으로 2년 정도 나라를 다스려 왔다
즉각 강직한 신하들의 반발이 있었고태조는 그래도 그런 건의를 받아들였다.
  
역대 대통령들이 인사문제로 골치를 앓았다
취임한 지 1년쯤 지나면 국민들의 지지도가 내려가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인사문제를 잘못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서 같이 일하던 사람종교가 같은 사람이북 출신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잘 아는 군인들을 많이 발탁했다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가신들이 요직을 많이 차지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코드가 같은 사람을 쓴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도 결국은 자기와 평소에 친하던 정치인 언론인 교수 등이 주류를 이뤘다
박근혜 대통령 때는 누가 장난을 치는지국무회의에 통과되기도 전에 누가 어떤 자리에 간다고 인사에 관한 유언비어가 나돌았는데결과는 그대로 된 경우가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앞 시대 대통령들의 적폐를 청산한다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다
그런데 벌써 권력 사유화가 제일 심하다고 한다
문 대통령이 1년 반 동안 임명한 사사로운 인사가 박근혜 대통령 4년 동안 한 것보다 더 많다고 한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인사 8명을 장관에 임명했다
자기와 동업하던 변호사를 법제처장에 임명했고미투사건에 연루돼 도지사 출마를 못하고 물러났던 인사를 슬그머니 국회의장 비서실장에 임명했다대학 동기는 한국자유연맹 총재 자리에 앉혔다
해양진흥공사 사장은 자기 중고교 동기다.
  
나라는 대통령 개인의 것이 아니다대통령은 5년 운전석에 앉았다가 내려간다
그동안에 망쳐놓으면 다음 대통령이 고생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이 어렵게 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되기 직전에 어떤 대담집에서 국가권력을 사사롭게 여기고권력을 사익 추구의 수단으로 삼는다라고 했다
박근혜 정권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 누가 문 대통령님은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물으면,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답할 수 있을까지금부터라도 정신을 차려야 2의 최순실 사태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타면자건 [唾面自乾]
唾 : 침 타 面 : 낯 면 自 : 스스로 자 乾 : 마를 건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면 그것이 저절로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는 뜻으로, 처세에는 인내가 필요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이 말은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것으로, 남이 나의 낯에다 침을 뱉을 때 이를 바로 닦으면 그 사람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되므로 저절로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는 뜻이다.
당(唐)나라의 측천무후(則天武后)는 중국사상 유일한 여제(女帝)로서 약 15년간 전국을 지배하였다. 

측천무후는 고종이 죽자, 자신의 아들 중종(中宗)과 예종(睿宗)을 차례로 즉위시키고 정권을 독차지하여 독재 권력을 휘둘렀다. 
자신의 권세를 유지하기 위하여 탄압책을 쓰는 한편, 유능한 신흥 관리를 많이 등용하고 명신을 적절히 등용하여 정치를 담당시켰기 때문에 천하는 그런 대로 태평했다.

그 무렵, 측천무후의 유능한 신하 중에 누사덕(婁師德)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성품이 온후하고 관인(寬仁)하여, 아무리 무례한 일을 당해도 그 자세에 흔들림이 없이 항상 똑같았다. 
하루는 그의 아우가 대주자사(代州刺史)로 임명되어 부임하려고 할 때였다.

그는 동생을 불러 "우리 형제가 다같이 출세하고, 황제의 총애를 받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만큼 남의 시샘도 크다고 보면 틀림이 없을 거다. 
그러한 시샘을 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처신하면 된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동생이 "비록 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더라도 결코 상관하거나 화내지 않고 잠자코 닦겠습니다. 
만사를 이런 식으로 사람을 응대하여 결코 형님에게 걱정이나 누를 끼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동생의 대답을 듣고 누사덕은 다음과 같이 훈계했다. 
"내가 염려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네게 침을 뱉는다면 그것은 네게 뭔가 크게 화가 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네가 바로 그 자리에서 침을 닦아버린다면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게 되어 그는 틀림없이 더 크게 화를 내게 될 것이다. 
침 같은 것은 닦지 않아도 그냥 두면 자연히 마르게 되니, 그런 때는 웃으며 그냥 침을 받아 두는 게 제일이다."

여기서 타면자건(唾面自乾)이란 말이 나왔으며, 이는 처세에 인내가 얼마나 중요한 미덕인가를 말해 준다.


백아절현 [伯牙絶絃]
伯 : 맏 백 牙 : 어금니 아 絶 : 끊을 절 絃 : 악기줄 현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어 버렸다는 뜻
속뜻 : 자기를 알아주는 절친한 벗, 즉 지기지우(知己之友)의 죽음을 슬퍼함을 이르는 말

《열자(列子)》의 〈탕문편(湯問篇)〉 및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원래 초(楚)나라 사람이지만 진(晉)나라에서 고관을 지낸 거문고의 달인 백아가 있었다. 
백아에게는 자신의 음악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절친한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있었다. 백아가 거문고로 높은 산들을 표현하면 종자기는 “하늘 높이 우뚝 솟는 느낌은 마치 태산처럼 웅장하구나”라고 하고, 큰 강을 나타내면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의 흐름이 마치 황허강 같구나”라고 맞장구를 쳐주기도 하였다.

또 두 사람이 놀러 갔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져 이를 피하기 위해 동굴로 들어갔다. 
백아는 동굴에서 빗소리에 맞추어 거문고를 당겼다. 처음에는 비가 내리는 곡조인 임우지곡(霖雨之曲)을, 다음에는 산이 무너지는 곡조인 붕산지곡(崩山之曲)을 연주하였다. 
종자기는 그때마다 그 곡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조금도 틀리지 않게 정확하게 알아 맞혔다. 
이렇듯 종자기는 백아가 무엇을 표현하려는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고, 백아와는 거문고를 매개로 서로 마음이 통하는, 음악 세계가 일치하는 사이였다.

그런데 종자기가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등지자 너무나도 슬픈 나머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거문고 줄을 스스로 끊어 버리고[伯牙絶絃] 죽을 때까지 다시는 거문고를 켜지 않았다고 한다. 
백아는 자신의 음악을 알아 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거문고 줄을 끊은 것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친구를 사귀거나 친구를 배신하는 현대 사회의 이기적인 모습에서 진실한 우정을 생각하게 하는 고사성어이다. 
깊은 속마음까지 서로를 알아 주고 위하는 완벽한 우정을 비유할 때 인용된다. 
줄여서 절현이라고도 하며, 백아파금(伯牙破琴)이라고도 한다. 
비슷한말은 지음(知音), 고산유수(高山流水:높은 산과 그곳에 흐르는 물이라는 말로, 아주 미묘한 음악, 특히 거문고 소리를 이르거나 知己를 비유하는 뜻), 지기지우(知己之友) 등이다.

기천정신(己千精新)
[요약] (자기 기일천 천정할 정새 신)
자신은 천 번을 할 수 있는 정신을 가지라는 뜻으로남보다 잘 하기 위해 백 번이나 천 번을 할 수 있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말.
[출전중용(中庸)
  
[내용이 성어는 중용(中庸)에서 공자가 학문을 하는 자세를 말하는 가운데 나온 말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배워서 넓게 하고물어서 살피생각하여 삼가고분별하여 밝히며실천하여 두터이 해야 한다(博學之審問之愼思之明辨之篤行之)
배우지 않을 수 있으나배움을 시작하면 잘하지 않으면 그만두지 않아야 한다(有弗學學之弗能弗措也)
묻지 않을 수 있으나일단 물으면 알지 못하면 그만주지 않아야 한다(有弗問問之弗知弗措也)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나일단 생각하면 얻음이 없으면 그만 두지 않아야 한다(有弗思思之弗得弗措也)
분별하지 않을 수 있으나일단 분별하게 되면 밝히지 못하면 그만두지 않아야 한다(有弗辨辨之弗明弗措也)
실행하지 않을 수 있으나실행을 하게 되면 두터이 하지 않았으면 그만두지 말아야 한다(有弗行行之弗篤弗措也)
남들이 한 번에 그 것을 잘 한다면 나는 백 번을 하고남이 열 번에 그 것을 잘한다면 나는 천 번을 하여야 한다(人一能之己百之人十能之己千之)

과감하게 결단하여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이 이치를 따르면 아무리 어리석어도 사리에 밝게 되며유약해도 반드시 강해질 것이다(果能此道矣雖愚必明雖柔必強)


가담항설 [街談巷說]
街 : 거리 가 談 : 말씀 담 巷 : 거리 항 說 : 말씀 설길거리나 세상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나 뜬소문을 이르는 말.

가설항담(街說巷談)·가담항어(街談巷語)·가담항의(街談巷議)라고도 하며 도청도설(道聽塗說)과 비슷한 말이다. 
'거리의 말이나 이야기'라는 뜻으로 가(街)는 도시의 번화가, 항(巷)은 골목을 나타낸다. 
거리의 뜬소문이라는 뜻의 가담과 항간에 떠도는 말이라는 뜻을 지닌 항설을 반복하여 강조한 성어로 길거리나 일반 민중들 사이에 근거 없이 떠도는 소문을 말한다.

중국 후한 초기의 역사가인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서 소설(小說)에 대한 설명 가운데 나오는 고사성어이다.

'소설은 패관으로부터 나왔으며 가담항설과 도청도설로 만들어졌다[小說者流 蓋出於稗官 街談巷說 道聽塗說之所造也].' 소설은 민간의 풍속이나 정사를 살피려고 임금이 하급관리인 패관에게 가담항설을 모아 기록하게 함으로써 생겨났다. 
세상 이야기나 길거리의 뜬소문은 길에서 듣고 말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패관은 한(漢)나라 때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기록하여 정리해 상부에 보고 하는 일을 담당한 벼슬아치이다. 
가담항설이나 도청도설을 모아 만들어진 소설은, 패관들이 소문과 풍설을 주제로 하여 자기 나름의 창의와 윤색을 덧붙여 설화문학(說話文學) 형태로 쓴 패관문학(稗官文學)이다. 
 
백척간두 [百尺竿頭]
百 :  일백 백 尺 :  자 척 竿 :  대줄기 간 頭 :  머리 두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섰다는 뜻
속뜻 : 위태로움이 극도에 달함

매우 위태롭고 어려운 지경임을 말한다. 막다른 위험에 놓이게 됨을 뜻하는 말로 '백척간두에 서다'로 쓰이며 줄여서 '간두'라고도 한다. 

노력한 위에 한층 더 노력하는 상태 또는 마음가짐을 뜻하기도 한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 하여, 어떤 목적이나 경지(境地)에 도달하였어도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노력함을 뜻하거나, 충분히 언사(言辭)를 다하였어도 더 나아가서 정묘(精妙)한 말을 추가함을 말한다.

1004년(경덕1) 송나라의 도원이 저술한 불교서적인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쓰여 있으며, 자신의 나태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스스로 극한상태에 올려놓고 정신의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뜻이다.


독서삼도(讀書三到)
[요약] (讀: 읽을 독. 書: 글 서. 三: 석 삼. 到: 이를 독)
독서를 하는 세 가지 방법이라는 뜻으로, 입으로 다른 말을 아니 하고 책을 읽는 구도(口到), 눈으로 다른 것을 보지 않고 책만 잘 보는 안도(眼到), 마음속에 깊이 새기는 심도(心到)를 말함.


[내용] 책을 읽을 때는 주위 환경에 휘둘리지 말고 정신을 집중하라는 말로, 삼도란 심도(心到), 안도(眼到), 구도(口到)를 가리킨다. 
마음과 눈과 입을 함께 기울여 책을 읽으라는 것이다. 
독서삼매라고도 한다. 
본래 삼매(三昧)란 불교에 있어서의 수행법으로,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시켜 감각적 자극이나 그 자극에 대한 일상적 반응을 초월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삼매에 빠지면 옆에서 벼락이 쳐도 모르는 것이다. 
삼도(三到)도 그런 경지를 의미한다.


송나라 주희(朱熹)가 '훈학재규(訓學齋規)'에서 말했다. '독서에는 삼도(三到)가 있다. 심도(心到)와 안도(眼到), 구도(口到)를 말한다. 마음이 여기에 있지 않으면 눈은 자세히 보지 못한다. 
마음과 눈이 한곳에 집중하지 않으면 그저 되는 대로 외워 읽는 것이라 결단코 기억할 수가 없고, 기억한다 해도 오래가지 못한다. 삼도 중에서도 심도가 가장 급하다.

마음이 이미 이르렀다면 눈과 입이 어찌 이르지 않겠는가(讀書有三到, 謂心到眼到口到. 心不在此, 則眼不看仔細, 心眼旣不專一, 却只漫浪誦讀, 決不能記, 記亦不能久也. 三到之中, 心到最急. 心旣到矣, 眼口豈不到乎)?'

이른바 독서삼도(讀書三到)의 얘기다. 
비중으로 따져 심도를 앞세우고 안도와 구도의 차례를 보였다. 
안도는 눈으로 읽는 목독(目讀)이다. 
구도는 소리를 내서 가락을 타며 읽는 성독(聲讀)이다. 심도는 마음으로 꼭꼭 새겨서 읽는 정독(精讀)이다. 눈으로만 읽으면 책을 덮고 남는 것이 없다. 
입으로 읽는 것이 좋지만 건성으로 읽으면 소리를 타고 생각이 다 달아난다. 
손으로 베껴 쓰며 읽는 수도(手到)를 하나쯤 더 꼽고 싶은데, 목도든 구도든 수도든 모두 심도에 가닿지 못하면 헛 읽은 것이다.

주희의 독서법을 한 단락 더 소개한다. "단정하게 바로 앉아 마치 성현을 마주한 듯 한다면 마음이 안정되어 의리가 쉽게 들어온다. 
많이 읽기를 욕심내거나 폭을 넓히기에만 힘을 쏟아 대충대충 보아 넘기고는 이미 알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의심나는 곳이 있으면 다시 사색하고, 사색해도 통하지 않으면 바로 작은 공책에다 날마다 베껴 기록해 두고, 틈나면 살펴보고 물어봐야지 까닭 없이 들락거려서는 안 된다. 
뜻 없는 대화는 줄여야 하니 시간을 낭비할까 걱정된다. 잡서는 보지 말아야 하니 정력이 분산될까 싶어서다(端莊正坐, 如對聖賢. 則心定而義理易究. 不可貪多務廣, 涉獵鹵莾, 纔看過了, 便謂已通. 小有疑處, 卽更思索, 思索不通, 卽置小冊子, 逐日抄記, 以時省閱資問, 無故不須出入. 少說閑話, 恐廢光陰, 勿觀雜書, 恐分精力).'

목표를 세워 읽는 다독과 닥치는 대로 두서없이 읽는 남독(濫讀)은 자기만족이야 있겠지만 소화 불량이 되기 쉽다.

견강부회 [牽强附會]
牽 : 끌 견 强 : 굳셀 강 附 : 붙을 부 會 : 모을 회가당치도 않은 말을 억지로 끌어다 대어 자기 주장의 조건에 맞도록 함을 비유하는 한자어. 

전혀 가당치도 않은 말이나 주장을 억지로 끌어다 붙여 조건이나 이치에 맞추려고 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도리나 이치와는 상관 없이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면서 합당하다고 우기는 꼴이니, 지나치게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을 가리킬 때 자주 쓰는 표현이다. 

이와 유사한 표현에는 '아전인수(我田引水)'가 있는데, 제 논에 물 대기라는 뜻으로, 자기에게만 이롭게 되도록 생각하거나 행동한다는 말이다. 

'수석침류(漱石枕流)'는 돌로 양치질을 하고 흐르는 물로 베개를 삼는다는 뜻이니, 가당치도 않게 억지를 부린다는 말이요, 
'추주어륙(推舟於陸)'은 배를 밀어 육지에 댄다는 뜻이니, 역시 되지 않을 일에 억지를 쓴다는 말이다. 

그밖에 '영서연설(郢書燕說)'이란 표현이 있는데, 이는 영 땅의 사람이 쓴 편지를 연나라 사람이 잘못 해석하고도, 자신이 해석한 내용대로 연나라를 다스렸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우리말에 '채반이 용수가 되게 우긴다'는 속담이 있으니, 가당치도 않은 의견을 끝까지 주장한다는 말이요, 
'홍두깨로 소를 몬다'는 속담 역시 무리한 일을 억지로 한다는 뜻으로, '견강부회'와 통한다.


 간목수생 [乾木水生]
乾 : 마를 간 木 : 나무 목 水 : 물 수 生 : 날 생 마른 나무에서 물을 짜내려 한다는 뜻으로 불가능한 일을 억지로 이루려 할 때 쓰이는 말이다. 

간목생수(乾木生水), 강목수생(剛木水生)이라고도 한다. 바싹 마른 나무에서 물을 짜낸다는 말로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게 무엇을 무리하게 요구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불가능한 일을 하려는 모양을 비유하기도 하는데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한다'는 뜻의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이 쓸 수 있다.   
견문발검 (見蚊拔劍 )
見,볼 견, 蚊,모기 문, 拔,뺄 발, 劍,칼 검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 보잘것 없는 작은 일에 지나치게 큰 대책을 세움. 또는 사소한 일에 화를 내는 소견이 좁은 사람. 

모기를 보고 옆구리에 찬 칼을 뺀다? 참으로 웃기지요. 
풍차를 보고 창을 빼어 든 돈키호테가 생각나는군요. 
그래서 별 거 아닌 일에 과도한 대응을 할 때 쓰는 표현입니다. 
이런 경우 사용하는 속담이 있는데요, ‘도끼 들고 나물 캐러 간다.’, 

‘쥐구멍 막자고 대들보 들이민다.’와 같은 표현입니다. 사소한 일에 너무 대단한 것을 동원하고 있군요. 그런 까닭에 우둔한 사람을 가리킬 때 쓰기도 한답니다.
검(劍)은 도(刀)에 비해 큰 칼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검객(劍客), 검술(劍術)이라 하고 과도(果刀), 단도(短刀)라고 하지요.
그렇다면 세상에서 작은 칼을 가장 잘 다루던 사람은 누구일까요?




군자표변 [君子豹變]
君 : 그대 군 子 : 어르신네 자 豹 : 표범 표 變 : 고칠 변 군자는 표범처럼 변함

표범의 털가죽이 아름답게 변해 가는 것처럼 군자는 자기 잘못을 고쳐 선(善)으로 향하는데 신속함을 말한다. 
주역(周易)은 시경(詩經)과 함께 중국 지식인의 필독서(必讀書)로 오경(五經) 의 하나이다. 
그 주역의 효사(爻辭)에 도덕적 교훈이 있다. 
주역의 64괘(卦)의 하나에 혁괘(革卦)가 있는데 그 효사에, ‘대인호변(大人虎變) 군자표변(君子豹變) 소인혁면(小人革面)’이라는 말이 있다. 
〈군자표변〉 앞에 〈대인호변〉이라는 말이 나오고 뒤에는 〈소인혁면〉이 따른다. 이 말은 소인 위에 군자가 있고 군자 위에 대인이 있다고 본 것이다. 여기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호변〉이며 그 다음이 〈표변〉이고 〈혁면〉이 그 아래라는 것이다. 

대인호변은 호랑이가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털을 갈고 가죽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것처럼 천하를 혁신하여 세상의 폐해(弊害)가 제거되어 모든 것이 새로워짐을 뜻한다. 
표범도 가을이 되면 털이 바뀌지만 호랑이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군자들이 혁명의 마무리 사업에 노력하여 구습을 버리고 과감하게 세상을 새롭게 바꾸는 것이 마치 가을에 새로 난 표범의 털처럼 아름답다는 뜻이다. 
군자가 잘못을 고침에 있어 표범의 털처럼 선명하고 아름답게 변한 뚜렷한 태도로 선(善)으로 옮겨가는 행위가 아주 빛난다.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은 변해야 할 때 과감히 변해서 새로운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소인은 혁면(革面), 즉 대인의 새로운 사업에 안면(顔面)만을 고치고 윗사람의 새로운 사업에 따르도록 마음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군자표변의 원뜻이 군자의 신속한 자기개선이나 자기변혁에 의하여 덕행을 쌓는 것으로, 호변이나 표변이나 모두 좋게 달라진다는 뜻이었는데, 지금은 이제까지의 방식 또는 태도를 한꺼번에 바꾸어버리는 사람이라는 부정적 의미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영달과 욕망 때문에 정의나 의리를 헌신짝 버리듯 하는 세상이다. 우리 주위의 소인은 윗사람의 눈치만 살피면서 얼굴색을 수시로 바꾸고 있다. 더욱이 표변과 혁면을 혼돈하고 있기도 하다. 자기가 하는 짓은 군자표변이고 남이 하는 짓은 소인혁면으로 생각하고 우겨대는 경우가 많다.

호접지몽 [胡蝶之夢]
胡 : 오랑캐 호 蝶 : 나비 접 之 : 의 지 夢 : 꿈 몽나비가 된 꿈이라는 뜻으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 또는 인생의 무상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호접지몽(胡蝶之夢)’은 ‘물아(物我)의 구별을 잊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 장자(莊子)가 꿈에 나비가 되어 즐기는데, 나비가 장자인지 장자가 나비인지 분간하지 못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약해서 ‘호접몽(胡蝶夢)’이라고도 한다.  

장자는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로 성은 장(莊), 이름은 주(周)이다. 전쟁이 끊이지 않는 불안한 시대를 살았던 그는 인간의 참 자유가 무엇인지를 사유하게 되었고, 그 자유를 추구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그 결과 물(物)의 시비(是非)·선악(善惡)·미추(美醜)·빈부(貧富)·화복(禍福) 등을 구분짓는 일이 어리석은 일임을 깨닫고, 만물은 결국 하나의 세계로 귀결된다[物我一體]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제창하였다. 
호접지몽이라는 고사에 이러한 생각이 비유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다음은 《장자》의 〈제물론편(齊物論篇)〉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장자가 어느 날 꿈을 꾸었다. 나비가 되어 꽃들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녔다. 그러다가 문득 깨어 보니, 자기는 분명 장주가 되어 있었다. 이는 대체 장주인 자기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인지를 구분할 수 없었다. 장주와 나비는 분명 별개의 것이건만 그 구별이 애매함은 무엇 때문일까? 이것은 사물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 도대체 그 사이에 어떤 구별이 있는 것인가?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피상적인 구별, 차이는 있어도 절대적인 변화는 없다. 장주가 곧 나비이고, 나비가 곧 장주라는 경지, 이것이 바로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세계이다. 물아의 구별이 없는 만물일체의 절대경지에서 보면 장주도 나비도, 꿈도 현실도 구별이 없다. 다만 보이는 것은 만물의 변화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이처럼 피아(彼我)의 구별을 잊는 것, 또는 물아일체의 경지를 비유해 호접지몽이라 한다. 오늘날에는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해서 쓰이기도 한다.


두문정수(杜門靜守)
[요약] (杜: 막을 두. 門: 문 문. 靜: 고요할 정. 守: 지킬 수)
문을 닫아걸고 고요하게 지킨다는 뜻으로, 밖의 생각에 매달리지 않고 정신을 가다듬어 자신을 지킨다는 말.


[내용] 이하 [정민의 世說新語] [491] 두문정수(杜門靜守)의 글.
조선일보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곱게 물든 은행잎에 아파트 단지 길이 온통 노랗다. 느닷없이 밤송이를 떨궈 사람을 놀라게 하던 마로니에 나무의 여섯 잎도 노랗게 물들었다. 만추(晩秋)의 고운 잎을 보면서 곱게 나이 먹어가는 일을 생각했다.

이수광(李睟光·1563~1628)이 말했다. "사람이 세상을 살다 보면 역경이 적지 않다. 구차하게 움직이다 보면 그 괴로움을 이기지 못한다. 이 때문에 바깥일이 생기면 안배하고 순응하고, 형세나 이익의 길에서는 놀란 것처럼 몸을 거둔다. 다만 문을 닫아걸고 고요하게 지키면서 대문과 뜨락을 나가지 않는다. 마음과 운명의 근원을 마음으로 살피고, 함양하는 바탕에 대해 오로지 정신을 쏟는다. 엉긴 먼지가 방 안에 가득하고 고요히 아무도 없는 것같이 지내도, 마음은 환히 빛나 작은 일렁임조차 없다. 질병이 날로 깊어가도 정신은 더욱 상쾌하다. 바깥의 근심이 들어오지 못하고, 꿈자리가 사납지 않다(人之處世, 多少逆境. 苟爲所動, 殆不勝其苦. 故外物之至, 安排順應, 勢利之道, 斂身若驚. 惟杜門靜守, 不涉戶庭, 玩心於性命之源, 專精於涵養之地. 凝塵滿室, 若無人. 而方寸炯然, 微瀾不起. 故疾病日痼, 精神益爽, 外慮不入, 夢境不煩)."

세상사는 일에 어려움은 늘 있게 마련이다. 일에 닥쳐 아등바등 발만 구르면 사는 일은 고해(苦海) 그 자체다. 두문정수(杜門靜守), 바깥으로 쏠리는 마음을 거두어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누가 돈을 많이 버는 수가 있다고 꼬드기면, 못 들을 말을 들은 듯이 몸을 움츠린다.

생각지 않은 일이 생기면 낙담하지 않고 곧 지나가겠지 한다. 나이 들어 몸이 아픈 것이야 당연한데 덩달아 정신마저 피폐해지면 민망하다. 거처는 적막하고 소슬해도 마음속에 환한 빛이 있고, 웬만한 일에는 동요하지 않는 기상이 있다. 근심이 쳐들어와도 나를 흔들지 못하고, 늘 꿈 없이 잠을 잔다.

몸은 기운이 남아도는데 마음에 불빛이 꺼진 인생이 더 문제다. 세상일마다 다 간섭해야 하고, 제 뜻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니 마음에 분노가 식지 않고, 밤마다 꿈자리가 사납다. 가을은 수렴의 계절, 손에 쥔 것 내려놓고 닥쳐올 추운 겨울을 기다린다. 낙목한천(落木寒天)의 때를 맞이하려고 나무마다 저렇게 환하게 등불을 밝혔구나.



가렴주구 [苛斂誅求]
苛 : 가혹할 가 斂 : 거둘 렴 誅 : 책망할 주 求 : 구할 구가혹하게 거두고 강제로 빼앗는다는 뜻으로 세금 등을 혹독하게 거두어들이고 재물을 빼앗아 백성들이 살아가기 힘든 정치를 가리키는 고사성어.

지방 관리들이 혹독하게 세금을 거두어들여 백성들이 살아가기 힘든 정치적 상황을 나타내는 말로 '가렴'과 '주구'가 합쳐진 말이다.

'가렴(苛斂)'은 《구당서(舊唐書)》 <목종기(穆宗紀)>의 "당나라 헌종(憲宗)은 나라 재정이 궁핍하여 황보박(皇甫鎛)을 재상으로 발탁하여 정책을 펼치도록 하였다. 그런데 그가 백성들로부터 조세를 가혹하게 거두어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해졌고 결국 재상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였다.[憲宗用兵, 擢皇甫鎛為相. 苛斂剝下, 人皆咎之, 以至譴逐.]"에서 유래한 말로 '가혹하게 거둔다'는 뜻이다.

'주구(誅求)'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31년>의 "우리나라(鄭나라)는 아주 작은 나라로서 크고 강한 나라들 사이에 끼어 있다. 따라서 그 대국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가혹한 공물(貢物)을 바쳐야 하기 때문에 감히 편하게 지낼 날이 없었다.[以敝邑褊小, 介於大國. 誅求無時, 是以不敢寧居.]"에서 유래한 말로 '무리하게 빼앗는다'는 뜻이다.

같은 뜻으로 가혹한 정치를 사나운 맹수에 빗댄 말인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가 흔히 쓰이고, 그 외에 주구무이(誅求無已)·횡정가렴(橫征苛斂) 등의 성어가 있다.
 
 
혼정신성 [昏定晨省]
昏 : 어두울 혼 定 : 정할 정 晨 : 새벽 신 省 : 살필 성 저녁에는 잠자리를 살피고, 아침에는 일찍이 문안을 드린다는 뜻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도리를 이르는 말. 

이 말은 《예기(禮記)》의 〈곡례편(曲禮篇)〉에 나오는 말로 ‘밤에 잘 때 부모의 침소에 가서 밤새 안녕하시기를 여쭙는다.’는 뜻의 ‘혼정(昏定)’과 ‘아침 일찍 일어나 부모의 침소에 가서 밤새의 안후(安候)를 살핀다.’는 뜻의 ‘신성(晨省)’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말이다. 부모에 대한 공경을 바탕으로 한 행위가 곧 효, 또는 효행이다. 이 효사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륜의 가장 으뜸되는 덕목으로 중시되었다. 즉 ‘효는 백행지본(百行之本)’이라 하여 부모를 봉양하고, 공경하며, 복종하고, 조상에게 봉제사(奉祭祀)하는 일이 의무화되면서 효사상이 사회규범으로 굳어졌다.

공자는 이러한 효에 대해 그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제시하여 확고히 정착시켰다. 이 유교적인 효사상은 맹자에 와서는 자식의 부모에 대한 의무가 더욱 강조되었고, 한대(漢代)에 이르러 《효경(孝經)》에서 도덕의 근원, 우주의 원리로서 명문화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효사상이 가장 중요한 도덕규범으로 정착되자 자연히 효에 대한 행동상의 규범도 많아지게 되었다. 일종의 구체적인 실천방법으로, 먼저 부모를 대하는 얼굴가짐을 중시했다. 늘 부드러운 얼굴빛으로 부모를 섬겨 편안하게 해드려야 한다는 것으로,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 하여 ‘색난(色難)’이라 하였다. 또 부모의 잘못을 보면 간언은 하되 뜻은 거역하지 않으며, 살아 계실 때에는 정성으로 모시고 돌아가시면 3년간 부모의 평소 생활습관을 바꾸지 않고 지켜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평소 일상생활 중에서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를테면 저녁에는 잠자리가 어떤지 직접 손을 넣어 확인해보고 아침에는 간밤에 잘 주무셨는지 여쭌 다음 부모의 안색을 주의깊게 살폈으니, 이것이 바로 ‘혼정신성’으로 부모를 모시는 기본 도리였던 것이다.

이 말은 겨울에는 따뜻하게[溫] 여름에는시원하게[淸] 해드리고, 밤에는 이부자리를 펴고[定] 아침에는 문안을 드린다[省]는 뜻의 '온청정성(溫淸定省)'이란 말과 뜻이 통한다. 또 부모를 섬기기는 데,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서늘하게 한다는 뜻의 '동온하청(冬溫夏凊)'이라는 말도 모두 《예기》에 나오는 말로서 그 뜻이 서로 통하는 말이다.
 



나작굴서 [羅雀堀鼠]
羅 : 그물 라 雀 : 참새 작 掘 : 팔 굴 鼠 : 쥐 서새그물로 참새를 잡고 땅을 파서 쥐를 잡음.

그물로 참새를 잡고 땅을 파서 쥐를 잡는다는 뜻으로, 최악의 상태에 이르러 어찌할 방법이 없음을 비유하여 나타낸 말이다. 《당서(唐書)》〈장순전(張巡傳)〉편에 있는 이야기이다.

당(唐)나라 천보(天寶) 말년에 장순(張巡)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충직한 신하였을 뿐만 아니라 재주도 많고 무인(武人)답게 담력 또한 컸으며 대의(大義)가 분명한 인물이었다. 안녹산(安祿山)의 반란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웠을 때, 그는 허원일(許遠一)이라는 자와 함께 수양이라는 곳을 수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따라 성(城)을 지키고 있는 군사는 겨우 3천여 명에 불과하여, 10만 명이 넘는 반란군을 대적(對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장순은 비록 병사의 숫자면에서는 열세를 면치 못하였지만, 죽음을 각오하고 성을 지키려고 하였다. 자신만만한 반란군들은 갖은 방법으로 성을 공격하는가 하면, 온갖 회유(懷柔)로 항복을 요구하였다. 그렇지만 장순은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다.

반란군에 포위된 지 며칠이 지나자, 성 안에 비축(備蓄)해 놓은 군량미는 바닥을 드러냈고, 군량미의 공급도 되지 않아 점점 굶주림에 허덕이게 되었다. 허기에 지친 병사들은 나무껍질을 벗겨 씹어 먹기도 하고, 그물을 쳐서 참새를 잡아[羅雀] 먹기도 하였으며, 또 땅을 파서 쥐를 잡아[掘鼠] 먹기도 하였다. 장순은 지휘관의 입장에서 자식 같은 병사들의 몸부림을 안타깝게 여겨 자기 아내를 죽여 국을 끓여서 병사들에게 먹이기까지 하였다.

그렇지만 상황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악화되어 갔고, 더 이상 성을 고수(固守)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성으로 진격해 들어오는 반란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장순이 항복을 한 것은 아니다. 그는 항복을 요구하는 반란군들을 향하여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고는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소리로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자 반란군은 그 자리에서 그의 목을 베었다. 죽음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장순의 부하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의 죽음과 바꾼 충성심에 새삼 고개를 떨구게 되었다.

비록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고 하는 오늘날이지만,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절개를 지킨 장순의 사람됨은 오래도록 칭송되었다.

 

근묵자흑 [近墨者黑] 
近 : 가까울 근 墨 : 먹 묵 者 : 놈 자 黑 : 검을 흑검은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뜻

먹을 가까이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검어진다는 뜻으로, 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훌륭한 스승을 만나면 스승의 행실을 보고 배움으로써 자연스럽게 스승을 닮게 되고, 나쁜 무리와 어울리면 보고 듣는 것이 언제나 그릇된 것뿐이어서 자신도 모르게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을 일깨운 고사성어이다. 중국 서진(西晉) 때의 문신·학자인 부현(傅玄)의 〈태자소부잠(太子少傅箴)〉에 나온다. 

"무릇 쇠와 나무는 일정한 형상이 없어 겉틀에 따라 모나게도 되고 둥글게도 된다. 또 틀을 잡아 주는 도지개가 있어 도지개에 따라 습관과 성질이 길러진다. 이런 까닭으로 주사(朱砂)를 가까이 하면 붉게 되고, 먹을 가까이 하면 검게 된다(故近朱者赤 近墨者黑). 소리가 조화로우면 울림이 맑고, 형태가 곧으면 그림자 역시 곧다." 

주변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 한자성어로는 '귤화위지(橘化爲枳)·남귤북지(南橘北枳)',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마중지봉(麻中之蓬)·봉생마중(蓬生麻中)', '일부중휴(一傅衆咻)' 등이 있다.



거재두량 [車載斗量]
車 : 수레 차 載 : 실은 재 斗 : 말 두 量 : 잴 량수레에 싣고서 말[斗]로 잰다는 뜻으로, 아주 흔하거나 쓸모 없는 것이 많음을 비유하는 말.

《삼국지(三國志)》 〈오서(吳書)〉 '오주손권전(吳主孫權傳)'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219년 오나라의 손권이 위(魏)나라의 조조(曹操)와 결탁하여 촉한(蜀漢)의 용장 관우(關羽)를 죽였다. 221년 촉한이 오나라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오나라의 손권은 위나라에 구원을 요청하기로 하였다. 위나라의 사자로 중대부(中大夫) 조자(趙咨)가 뽑혔다.

조자에게 손권이 말하였다. "결코 오나라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마시오." 조자가 위나라의 수도에 도착하자, 위왕 조비(曹丕)는 그가 찾아온 이유를 알면서도 짐짓 속내를 떠보았다. "오나라의 군주는 어떤 사람인가?" "총명하고 자애롭습니다. 또한 재능이 뛰어나고 원대한 지략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과장이 심하군." 조비가 비꼬듯 웃었다. 그러자 조자가 하나하나 실례를 들어가며 반론하였다. 조비가 또 물어보았다. "만일 위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한다면?" "대국에 무력이 있다면, 소국은 방위책이 있습니다." "위나라가 두려운가?" "오나라에는 100만의 용맹한 군사와 함께 지리적인 천험(天險)이 있습니다." "그대 같은 인재가 오나라에는 얼마쯤 되나?" "나 같은 자는 수레에 싣고 말로 잴 정도[車載斗量]입니다." 조비가 탄복하여 말하였다. "사신으로서 군주의 명을 욕되게 하지 않는다 함은 그대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오."

배석한 위나라의 신하들도 감동하였다. 조자의 활약으로 오나라와 위나라의 군사 동맹이 성립되었다. 조자가 돌아오자, 손권은 상(賞)과 함께 기도위(騎都尉) 벼슬을 내렸다


 간뇌도지 [肝腦塗地]
肝 : 간 간 腦 : 뇌 뇌 塗 : 진흙 도 地 : 땅 지간장과 뇌수가 땅에 쏟아진다는 뜻으로 참혹한 죽음 또는 나라를 위한 희생을 이르는 말이다. 

《사기(史記)》 유경숙손통열전(劉敬叔孫通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한(漢) 고조(高祖) 유방(劉邦)이 항우(項羽)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중원을 평정한 후 도읍을 새로 정하는 것에 대해 신하들과 논의하였다. 신하들은 이렇게 말했다. "주(周)나라는 낙양(洛陽)을 도읍으로 하여 왕조가 몇 백 년을 유지하였고, 진(秦)나라는 함양(咸陽)을 도읍으로 하였다가 2대를 채 못 넘기고 멸망하였습니다. 그러니 낙양을 도읍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고조는 주저하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한 고조 5년, 유방이 낙양을 순행하고 있었는데 누경(婁敬)이라는 사람이 황제를 알현하기를 청하여 물었다. "폐하께서 낙양을 도읍으로 하려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주나라 왕실과 융성함을 견주려는 것입니까?" 유방이 대답했다. "그렇소." 이에 누경이 말했다. "폐하께서 천하를 얻으신 것은 주나라와 다릅니다. 주나라 왕실은 그 선조 때부터 덕행을 수십 년 쌓아왔기에 사람들이 그를 기꺼이 따르려고 하였고 많은 살육을 거치지 않고도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풍현(豊縣)의 패읍(沛邑)에서 일어나 삼천 명의 기병을 이끌고 무수한 전쟁을 치러서 촉(蜀)과 한(漢) 땅을 석권하시고 삼진(三秦)을 평정하시고 항우와 더불어 형양(滎陽)에서 교전하시고, 성고(成皐)의 요충지를 장악하시기 위해 70차례의 큰 전투를 하시고 40차례의 작은 전투를 치르셨습니다. 천하의 무고한 백성들의 간장(肝腸)과 뇌수(腦髓)가 대지에 쏟아지게 하시고, 아버지와 자식의 뼈가 함께 들판에 뒹굴게 하신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지경입니다. 통곡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부상을 당한 사람들이 아직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는데 주나라 왕실의 융성함과 비교하려 하시니, 소인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방은 누경의 말을 듣고 낙양으로 정도하려던 생각을 바꾸고 관중(關中, 지금의 서안 일대)을 도읍으로 삼았다. 그리고 누경에게 자기 성씨인 유(劉)를 하사하였다.

여기서 전하여 간뇌도지는 끔찍한 죽음을 통한 희생 또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라를 위해 충성을 바치는 모습을 뜻한다. 비슷한 말로 분신쇄골(粉身碎骨), 분골쇄신(粉骨碎身), 분불고신(奮不顧身), 이신허국(以身許國) 등이 있다
 

​타면자건 [唾面自乾]
唾 : 침 타 面 : 낯 면 自 : 스스로 자 乾 : 마를 건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면 그것이 저절로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는 뜻으로, 처세에는 인내가 필요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이 말은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것으로, 남이 나의 낯에다 침을 뱉을 때 이를 바로 닦으면 그 사람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되므로 저절로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는 뜻이다. 당(唐)나라의 측천무후(則天武后)는 중국사상 유일한 여제(女帝)로서 약 15년간 전국을 지배하였다. 측천무후는 고종이 죽자, 자신의 아들 중종(中宗)과 예종(睿宗)을 차례로 즉위시키고 정권을 독차지하여 독재 권력을 휘둘렀다. 자신의 권세를 유지하기 위하여 탄압책을 쓰는 한편, 유능한 신흥 관리를 많이 등용하고 명신을 적절히 등용하여 정치를 담당시켰기 때문에 천하는 그런 대로 태평했다.

그 무렵, 측천무후의 유능한 신하 중에 누사덕(婁師德)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성품이 온후하고 관인(寬仁)하여, 아무리 무례한 일을 당해도 그 자세에 흔들림이 없이 항상 똑같았다. 하루는 그의 아우가 대주자사(代州刺史)로 임명되어 부임하려고 할 때였다.

그는 동생을 불러 "우리 형제가 다같이 출세하고, 황제의 총애를 받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만큼 남의 시샘도 크다고 보면 틀림이 없을 거다. 그렇다면 그러한 시샘을 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처신하면 된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동생이 "비록 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더라도 결코 상관하거나 화내지 않고 잠자코 닦겠습니다. 만사를 이런 식으로 사람을 응대하여 결코 형님에게 걱정이나 누를 끼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동생의 대답을 듣고 누사덕은 다음과 같이 훈계했다. "내가 염려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네게 침을 뱉는다면 그것은 네게 뭔가 크게 화가 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네가 바로 그 자리에서 침을 닦아버린다면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게 되어 그는 틀림없이 더 크게 화를 내게 될 것이다. 침 같은 것은 닦지 않아도 그냥 두면 자연히 마르게 되니, 그런 때는 웃으며 그냥 침을 받아 두는 게 제일이다."

여기서 타면자건(唾面自乾)이란 말이 나왔으며, 이는 처세에 인내가 얼마나 중요한 미덕인가를 말해 준다.




 파과지년 [破瓜之年]
破 : 깨뜨릴 파 瓜 : 오이 과 之 : 의 지 年 : 해 년여자의 나이 16세, 남자의 나이 64세를 가리키며 '파과(破瓜)'가 오이를 깨뜨린다는 뜻으로, 초경(初經)이 있게 되는 나이를 비유하거나 처녀성을 잃게 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파과지년(破瓜之年)'이란 말은 '瓜(과)'자를 세로로 한가운데를 나누면 두 개의 '八(팔)'자가 되는데, 이것을 합하면 16, 곧 여자의 나이 16세를 가리키는 수(數)가 되고, 또 이것을 곱하면 64가 되어 남자의 나이 64세를 가리키는 수가 된다는 데서 온 말이다. 약칭으로 '파과'라고도 한다. '파과(破瓜)'는 '외를 깨친다'라는 뜻으로, 오이를 여성으로 비유하여 여자의 나이 16세를 가리킨다. 또 여자가 처녀를 깨친다 하여 '처녀성을 잃는다'는 의미와 '초경이 시작되는 나이'를 가리키기도 한다. 중국 진(晉)나라의 손작(孫綽)의 시 《정인벽옥가(情人碧玉歌)》에 이 말이 나온다.

푸른 구슬이 외를 깨칠 때[碧玉破瓜時(벽옥파과시)]
님은 마음을 쏟아 사랑을 한다[郎爲情顚倒(낭위정전도)]
낭군에게 마음을 느껴 부끄러워하지 않고[感君不羞赧(감군불수난)]
몸을 돌려 님의 품에 안겼네[廻身就郎抱(회신취랑포)]

이 시는 연애시로서, 여기서 '과(瓜)를 깰 때'란 말은 여자가 처녀를 깨친다는 뜻이며, 초경이 시작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 사랑을 알게 되는 16세를 가리키기도 한다. 청(淸)나라의 문인인 원매(袁枚)의 시론(詩論) 《수원시화(隨園詩話)》에는 '외를 깨치니, 즉 풀어서 말하여 첫 월경이 시작되었을 때, 외를 깨침과 같이 , 곧 홍조를 보게 된다, 안 그런가[破瓜 或解以爲月事初來 如破瓜則見紅潮者 非也]?'라는 말이 있다. 또 청나라의 적호(翟灝)의 《통속편(通俗編)》에는 '살피건대, 풍속에 여자가 몸을 깨침으로써 외를 깨친다 하거니와, 안 그런가[按俗以女子破身爲破瓜 非也]?'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파과'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초경의 시작과 처녀성을 잃는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밖에도 '파과'는 남자의 나이 64세를 비유하여 쓰이기도 하는데, 남자로서 이 나이가 되면 혼자서 잠자리에 드는 나이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송(宋)나라의 축목(祝穆)이 쓴 《사문유취(事文類聚)》에는, 당나라의 여동빈(呂洞賓)이 장기에게 보낸 시에 '공성당재파과년(功成當在破瓜年)'이란 것을 들어, '파과'는 남자의 나이 64세의 뜻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절차탁마 [切磋琢磨]
切 : 끊을 절 磋 : 갈 차 琢 : 쪼을 탁 磨 : 갈 마칼로 다듬고 줄로 쓸며 망치로 쪼고 숫돌로 간다는 뜻으로, 학문을 닦고 덕행을 수양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 

《시경(詩經)》 <위풍(衛風)> 기욱편(淇澳篇)의 다음 시구에서 유래하는 말이다.

저 치수이 강[淇水, 기수] 모퉁이를 보니, 푸른 대나무가 무성하도다![瞻彼淇澳, 菉竹猗猗.]
아름다운 광채 나는 군자여! 잘라놓은 듯하고 간 듯하며 쪼아놓은 듯하고 간 듯하다.[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엄밀하고 굳세며 빛나고 점잖으니, 아름다운 광채 나는 군자여! 끝내 잊을 수 없다.[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諠兮.]

원래 이 시는 군자를 칭송한 것으로, 학문과 인격을 끊임없이 갈고 닦아 겉모습까지 완성된 것을 푸른 대나무에 빗대어 말한 것이다. 이로부터 '절차탁마'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유의어로 절치부심(切齒腐心), 와신상담(臥薪嘗膽), 자강불식(自强不息) 등의 성어가 있고, 반의어로는 깊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다는 의미의 불구심해(不求甚解), 얕게 맛보고 곧바로 그만둔다는 뜻의 천상첩지(淺嘗輒止)가 있다.



法天順地

 본받을 법(水-5)하늘 천(大-1)따를 순(頁-3)땅 지(土-3)

노자는 ‘人法地(인법지)’ 곧 “사람은 땅을 본받는다”고 말했다. 이는 인간 존재의 근거와 생존 방식을 간명하게 드러낸 말이다.

사람은 필연적으로 땅에서 태어나 땅에서 나는 것에 기대 살다가 땅으로 돌아간다.

결코 땅으로부터, 땅의 순환과 운행의 원리에서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도 살 수도 없음을 ‘法(법)’이라는 한 글자에 담아낸 것이다. 하늘과 도, 자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문자’ ‘九守(구수)’에도 나온다.

“精神本乎天, 骨骸根于地. 精神入其門, 骨骸反其根, 我尙何存?”(정신본호천, 골해근우지. 정신입기문, 골해반기근, 아상하존?) “사람의 정기와 신명은 하늘에 밑동을 두고, 뼈와 살은 땅에 뿌리를 둔다. 정기와 신명은 그 문(하늘)으로 들어가고, 뼈와 살은 그 뿌리(땅)로 돌아가니,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我尙何存(아상하존)?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간단히 말하자면,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한다.

너무 간단해서 싱거운가? 이런 것도 철학인가? 노자뿐만 아니라 공자나 맹자도 이런 철학을 했다. 철저하게 경험에 입각해서, 뼈와 살로 된 몸을 가지고 그 몸속에서 도는 정기와 신명으로 한껏 느끼면서 감각으로 철학했다. 그래서 논리적이고 관념적인 표현이나 사유가 드물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날마다 생생하게 느끼고 경험하는 것들을 오롯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 문명이 차곡차곡 쌓아온 관습과 고정관념에 짓눌렸거나 그 틀 속에 갇혀버렸기 때문이다. 안정적이라고 여긴 문명 속에서도 괴로움과 불행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관념에서 벗어나고 틀을 깨는 길은 의외로 가까이 있다.

역시 ‘문자’ ‘구수’에 나온다. “聖人法天順地, 不拘于俗, 不誘于人, 以天爲父, 以地爲母, 陰陽爲綱, 四時爲紀.”(성인법천순지, 불구우속, 불유우인, 이천위부, 이지위모, 음양위강, 사시위기) “성인은 하늘을 본받고 땅을 따르며, 세속에 구애되지 않고 사람들의 꾐에 넘어가지 않으며, 하늘을 아비로 삼고 땅을 어미로 삼으며, 음양을 벼리로 삼고 사계절을 기틀로 삼는다.” 고전학자    



단사표음 [簞食瓢飮]
簞 : 대광주리 단 食 : 밥 사 瓢 : 표주박 표 飮 : 마실 음 한 소쿠리의 밥과 표주박의 물이라는 말로, 매우 소박한 생활이라는 뜻.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는 일생 동안 무려 3천 명의 제자를 두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는 자공(子貢)처럼 이재(理財)에 밝은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자로(子路)처럼 벼슬길에 나아가 성공한 사람도 있고, 안회(顔回)처럼 가난하지만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공자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제자는 안회였다. 공자는 제자들을 그 역량에 따라 평하고 그에 맞는 충고를 하곤 했지만, 안회에게만은 늘 칭찬을 잊지 않았다.

공자의 기대에 맞추어, 안회도 워낙 학문을 좋아하여 나이 29세에 벌써 백발이 되었다 한다. 자공이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聞一知十)'며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 사람도 바로 안회이다. 그러나 안회는 찢어지게 가난하여 끼니 거르기를 밥 먹 듯했으며 평생 찌게미조차 배불리 먹어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가난은 그의 수행과 학문 연구에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었다. 이런 안회를 보고 공자가 칭찬하였다. “어질도다, 안회여. 한 소쿠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누추한 곳에 거처하며 산다면, 다른 사람은 그 근심을 견디어내지 못하거늘 안회는 즐거움을 잃지 않는구나.어질도다 안회여(賢哉回也 一簞食一瓢飮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 한 소쿠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사는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즐거움을 잃지 않으므로 공자는 두 번이나 ‘어질도다 안회여.’라고 찬미한 것이다.

옹야편에는 이 말고도 안회를 칭찬하는 내용이 많다. 가령 “안회는 그 마음이 석 달이 지나도 어진 것을 어기지 않는다. 그러나 나머지 제자들은 겨우 하루나 한 달 동안 어진 것에 이를 뿐이다.”라든가, 애공(哀公)이 학문을 좋아하는 제자에 대해 묻자, "안회가 있어 학문을 좋아하고 노여움을 오래 지니지 아니하며, 허물 되는 일을 두 번 하지 않았으나, 불행하게도 명이 짧아 일찍 죽은지라, 그가 떠나간 지금에 와서는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듣지 못하였다."고 대답하는 예 등이다. 요절한 안회에 대한 공자의 그리움이 절절하다.

공자의 말씀 이후 단사표음은 초야에 묻혀 사는 은사들의 생활의 표상이 되었다. 옹야편의 표현 그대로, 일단사일표음(一簞食一瓢飮)이라고도 한다.


박주산채 [薄酒山菜]
(엷을 박薄, 술 주酒, 메 산山, 나물 채菜) 변변치 못한 술과 산나물. 소박한 음식을 가리킴.
질이 떨어지는 술과 고기 한 점 없는 나물 반찬. 참 소박한 상이죠. 그래서 손님을 접대할 때 자신이 마련한 술상을 낮추어 부르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요즘 말로 하면 ‘차린 것은 없지만 많이 드십시오.’네요. 
한편 우리에게는 한석봉으로 잘 알려져 있는 명필 한호(1543~1605)가 지은 시조 가운데 이 표현이 들어간 작품이 있습니다. 

짚방석 내지 마라 낙엽엔들 못 앉으랴 
솔불 켜지 마라 어제 진 달 돋아 온다. 
아해야 박주산채일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낙엽 위에 앉아서 달빛을 벗 삼아 소박한 술상을 친구와 나누는 정경이 그림처럼 떠오르는군요.



사고무친[四顧無親]
넉 사 四, 돌아볼 고 顧, 없을 무 無, 친할 친 親사방을 둘러보아도 아는 사람 하나 없음

앞서 본 외로운 사람과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을 사람이군요. 친(親)은 ‘친척, 친구, 친한 사람, 이웃’과 같은 뜻을 두루 갖는 글자죠. 고(顧)는 ‘돌아보다’라는 뜻의 글자로 회고록(回顧錄), 고문단(顧問團) 같은 단어에 쓰입니다.
우리 속담 가운데 ‘서 발 장대 휘둘러도 거칠 것이 없다’는 게 있습니다. 긴 장대를 휘둘러도 사방에 걸리는 사람 하나 없을 만큼 외롭고 고독한 상황을 나타내는 표현이지요. )


사기종인 [舍己從人]
舍 : 버릴 사 己 : 자기 기 從 : 좇을 종 人 : 남(타인) 인 자기의 이전 행위를 버리고 남의 착한 행동을 따르는 것을 이르는 말. 

자기를 버리고 타인(他人)을 좇는다'는 뜻으로, 자기 개인의 이익과 욕심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선량한 행실을 본떠서 따른다는 것을 말한다.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이황(李滉:1501~1570)의 《퇴계집(退溪集)》에 나오는 다음 구절에서 유래한 성어(成語)이다.  

"자기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따르지 못하는 것은 배우는 사람의 큰 병이다[不能舍己從人 學者之大病]. 천하의 의리는 끝이 없는데 어떻게 자기 자신만 옳고 남을 옳지 않다고 할 수 있는가?[天下之義理無窮 豈可是己而非人] 사람이 질문을 하면, 곧 얕고 가까운 말이라도 반드시 마음에 담아두고 잠깐 뒤에 대답하며, 즉시 질문에 응하여 답하지 말라[人有質問 則淺近說 必留意 少間而答之 未嘗應聲而對]."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만을 내세우지 않고 다른 사람의 뜻을 좇는다는 뜻인데, 타인의 말과 행동을 본받아 자신의 언행(言行)을 바로잡는다는 말이다.



 악목불음 [惡木不蔭]
惡 : 악할 악 木 : 나무 목 不 : 아닐 불 蔭 : 그늘 음나쁜 나무에는 그늘이 생기지 않는다는 말로, 덕망이 있는 사람 주변에 따르는 무리들이 많다는 뜻. 

법가(法家)인 관중(管仲)의 《관자(管子)》에 나오는 말이다.

“선비는 덕망이 있고 큰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쁜 나무에는 그늘이 생기지 않는 법이다. 나쁜 나무도 이것을 수치스러워 하는데 하물며 악인들과 함께 있는 경우에는 어떠하겠는가?”

《순자(旬子)》에는 ‘수음조식(樹陰鳥息)’이란 말이 나온다. 즉 나무에 그늘이 있어야 새가 쉴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이 나쁜 마음을 품고 있으면 그 주위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는다. 사람이 덕망이 있어야만 사람들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만한 대인관계에 힘쓰고 인격과 덕망을 갖추도록 노력하라는 뜻에서 쓰인 말이다. 
 


자강불식 [自强不息]
自 : 스스로 자 强 : 힘쓸 강 不 : 아닐 불 息 : 쉴 식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는 뜻으로 자신의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역경(易經)》 〈건괘(乾卦)·상전(象傳)〉에 나오는 다음 구절에서 유래하는 말이다.

하늘의 운행이 굳세니, 군자가 이것을 응용하여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天行健,君子以自强不息.]

유교의 경전 중 하나인 《역경》은 자연현상의 원리를 통해 우주철학을 논하는 동시에, 그것을 인간사에 적용하여 구체적인 유교적 규범 원리를 제시하는 책이다. 위 글은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해가 지면 달이 뜨는 것처럼 천체우주의 운행과 대자연의 순환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함없이 굳건한데, 학식(學識)과 덕행(德行)이 훌륭한 군자와 같은 사람은 이것을 본받아 자신의 몸을 단련하고 정신을 수양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자강불식은 스스로를 단련하여 어떤 시련이나 위기가 닥쳐도 굴복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굳은 의지를 비유하는 말이다.

유의어로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 노력한다는 의미의 절치부심(切齒腐心), 발분망식(發憤忘食), 와신상담(臥薪嘗膽) 등이 있다. 반의어로는 자신의 몸을 스스로 해치고 돌보지 않는다는 의미의 자포자기(自暴自棄),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에 전하는 말로 함부로 자신을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여긴다는 의미의 망자비박(妄自菲薄)이라는 성어가 있다.


모수자천 [毛遂自薦]

毛 : 털 모 遂 : 드디어 수 自 : 스스로 자 薦 : 천거할 천 모수가 스스로를 천거했다는 뜻으로, 부끄러움 없이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을 빗대어 가리키는 말.

《사기(史記)》 평원군열전(平原君列傳)에 나오는 말로, 본래는 어려운 일을 당하여 스스로 그 일을 맡고 나선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으나, 차츰 의미가 변질되어 일의 전후도 모르고 나서는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 다음과 같은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전국시대에 진(秦)이 조(趙)의 수도 한단(邯鄲)을 포위하자, 조왕은 평원군을 초(楚)나라에 보내 합종(合從)을 맺음으로써 이를 격퇴하려 하였다. 평원군은 출발에 앞서 문하에 출입하는 식객 중 20명을 뽑아 같이 가려 했는데, 19명을 선발하고 적당한 사람이 없어 1명을 채우지 못했다. 이때 식객 중에 모수(毛遂)라는 사람이 스스로 자기가 끼기를 청하였다(毛遂自薦). 그것을 보고 평원군이 말하였다.

"당신은 내게로 와 몇 년이나 되었소?" 모수가 3년 되었다고 대답하자, 평원군은 다시 물었다. "대체로 현인이란 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아서 가만히 있어도 드러나는 법인데, 3년 동안 나는 당신에 관한 말을 들은 적이 없구료." 그러자 모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그래서 이제 주머니에 넣어 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결국 평원군은 모수를 데리고 초나라로 갔다. 초왕과의 회담에서 식객 19명이 모두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평원군은 마침내 모수에게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이 말을 들은 모수는 칼을 빼어든 채 초왕의 면전으로 나아가 "당신은 수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있지만 지금 당신의 목숨은 내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은(殷)의 탕왕(湯王)이나 주(周)의 문왕(文王)이 패업을 이룬 것은 군사가 많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초나라는 땅도 비옥하고 군사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진나라 군사에게 종묘를 위협받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합종은 초나라도 위한 것이지 조나라만 위한 것은 아닙니다" 하고 설득하여 마침내 합종을 성공시켰다. 일을 마무리하고 조나라로 돌아온 평원군은 이후 모수를 상객(上客)으로 모시고 후하게 대접했다 한다.
 


가렴주구 [苛斂誅求]
苛 : 가혹할 가 斂 : 거둘 렴 誅 : 책망할 주 求 : 구할 구가혹하게 거두고 강제로 빼앗는다는 뜻으로 세금 등을 혹독하게 거두어들이고 재물을 빼앗아 백성들이 살아가기 힘든 정치를 가리키는 고사성어. 

지방 관리들이 혹독하게 세금을 거두어들여 백성들이 살아가기 힘든 정치적 상황을 나타내는 말로 '가렴'과 '주구'가 합쳐진 말이다. 

'가렴(苛斂)'은 《구당서(舊唐書)》 <목종기(穆宗紀)>의 "당나라 헌종(憲宗)은 나라 재정이 궁핍하여 황보박(皇甫鎛)을 재상으로 발탁하여 정책을 펼치도록 하였다. 그런데 그가 백성들로부터 조세를 가혹하게 거두어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해졌고 결국 재상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였다.[憲宗用兵, 擢皇甫鎛為相. 苛斂剝下, 人皆咎之, 以至譴逐.]"에서 유래한 말로 '가혹하게 거둔다'는 뜻이다. 

'주구(誅求)'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31년>의 "우리나라(鄭나라)는 아주 작은 나라로서 크고 강한 나라들 사이에 끼어 있다. 따라서 그 대국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가혹한 공물(貢物)을 바쳐야 하기 때문에 감히 편하게 지낼 날이 없었다.[以敝邑褊小, 介於大國. 誅求無時, 是以不敢寧居.]"에서 유래한 말로 '무리하게 빼앗는다'는 뜻이다. 

같은 뜻으로 가혹한 정치를 사나운 맹수에 빗댄 말인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가 흔히 쓰이고, 그 외에 주구무이(誅求無已)·횡정가렴(橫征苛斂) 등의 성어가 있다.


 화광동진 [和光同塵]
和 : 화할 화 光 : 빛 광 同 : 한가지 동 塵 : 티끌 진빛을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에 같이한다는 뜻으로, 자기의 지덕(智德)과 재기(才氣)를 감추고 세속을 따름을 이르는 말. 또는 부처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그 본색을 숨기고 인간계(人間界)에 나타남을 이르는 말. 

화광동진(和光同塵)이란 《노자(老子)》에 나오는 구절로, 자기의 지혜와 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인과 어울려 지내면서 참된 자아를 보여준다는 뜻이다. 다음은 《노자》 제56장에 나오는 말이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그 이목구비를 막고 그 문을 닫아서, 날카로운 기운을 꺾고, 혼란함을 풀고, '지혜의 빛을 늦추고[和其光]', '속세의 티끌과 함께하니[同其塵]', 이것을 현동(玄同)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친해질 수도 없고, 소원해지지도 않는다. 이롭게 하지도 않으며, 해롭게도 하지 못한다. 귀하게도 할 수 없으며, 천하게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천하에 귀한 것이 된다[知者不言 言者不知 塞其兌 閉其門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是謂玄同 故不可得而親 不可得而疏 不可得而利 不可得而害 不可得而貴 不可得而賤 故爲天下貴]."

참으로 아는 사람은 그 앎에 대하여 말하지 않으니, 앎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진정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진정한 앎이 있는 사람은 그 이목구비를 틀어막고, 지혜의 문을 닫으며, 지혜의 날카로움을 꺾고, 지혜 때문에 일어나는 혼란을 풀고, 지혜의 빛을 늦추고, 그리고 속세의 티끌과 하나가 되니, 이것을 현동(玄同)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현동의 사람에 대하여는 친해질 수도 없고, 멀어질 수도 없으며, 이득을 줄 수도 해를 줄 수도 없고, 귀하게 할 수도 천하게 할 수도 없으니, 천하에 가장 귀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화광동진이란 말이 비롯되었으며, "도(道)는 언제나 무위(無爲)하면서도 무위함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노자의 도가사상(道家思想)을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말 중의 하나가 바로 '화광동진'과 '현동'이라고 볼 수 있다.



거어지탄 [車魚之歎]
車 : 수레 거 魚 : 물고기 어 之 : 어조사 지 歎 : 탄식할 탄수레와 고기에 대한 탄식이라는 뜻으로 끝이 없는 욕심을 일컫는 말이다.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 편에 다음 고사가 전해진다. 제(齊)나라에 풍훤(馮諼)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살림이 궁핍하여 생계를 꾸릴 수가 없자 아는사람에게 부탁해 당대 권력가이자 많은 식객을 거느리고 있던 맹상군(孟嘗君)에게 그의 식객으로 받아주기를 청했다. 이에 맹상군이 말했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 풍훤이 대답했다. "딱히 좋아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럼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 "잘하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이에 맹상군은 웃으며 그를 받아주었다. 

다른 식객들은 맹상군이 그를 하찮게 여기는 것이라 생각하고 변변찮은 음식(가장 하급 식객 대우)을 주었다. 얼마 지나 풍훤이 기둥에 기대 칼을 두드리며 이렇게 노래 불렀다. "장협아, 돌아가자! 밥에 생선 하나 없구나[長鋏歸來乎, 食無魚]" 다른 이들이 이를 알리자 맹상군이 말했다. "주어라. 고기 먹는 식객(중급 식객) 대우를 해주어라." 또 얼마 지나서 풍훤이 칼을 두드리며 노래했다. '장협아, 돌아가자! 타고 나갈 수레도 없구나[長鋏歸來乎, 出無車]" 이를 알리자 맹상군이 말했다. "주어라. 수레 타는 식객(상급 식객) 대우를 해주어라." 얼마 후 풍훤이 또 칼을 두드리며 노래했다. "장협아, 돌아가자! 가족을 먹여 살릴 것이 없구나." 이에 다른 이들이 탐욕스러워 만족할 줄 모른다고 못마땅해 했지만, 맹상군은 그에게 노모가 있음을 알고 일용할 양식을 보내주어 노모가 궁핍함이 없도록 해주었다. 그 후로 풍훤은 다시 그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여기서 전하여 거어지탄은 현재의 분수나 처지에 만족할 줄 모르고 한없이 욕심 부리는 행태 또는 그러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같은 뜻으로 '말을 타면 노비를 거느리고 싶어 한다'는 뜻의 기마솔욕노(騎馬欲率奴), '농나라를 얻고 나니 촉나라를 갖고 싶어 한다'는 뜻의 득롱망촉(得隴望蜀), '마루를 빌려 쓰다 안방까지 차지한다'는 뜻의 차청차규(借廳借閨) 등이 있다.



구우일모 [九牛一毛]
아홉 구:九, 소 우:牛, 한 일:一, 터럭 모:毛아홉 마리 소 가운데서 뽑은 터럭 하나, 대단히 하찮은 것을 가리킴

한 마리 소에서 터럭 하나를 뽑아도 알아볼 사람 하나 없을 텐데 하물며 아홉 마리 가운데서 터럭 하나를 뽑는다고요? 당연히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하찮은 일이겠지요. 이 표현은 참으로 안타까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한 충신의 편지로부터 비롯되었거든요.
《사기》를 집필한 불후의 역사가 사마천은 사실 일찌감치 죽었어야 하는 인물입니다. 왜? 궁형(宮刑)을 당했거든요. 궁형이란 남성의 생식기를 발라내는 형벌로, 선비라면 이런 치욕을 당하기에 앞서 자결하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마천은 왜 이런 형벌을 받았고, 왜 수치를 견디며 살아남았을까요? 


천도시비 [天道是非]
天 : 하늘 천 道 : 길 도 是 : 옳을 시 非 : 아닐 비하늘의 도는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곧 천도라는 것이 의심스럽다는 뜻.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사마천(司馬遷)은 태사령(太史令)이었다. 당시, 이릉(李陵)이 5천의 군사로 흉노와 대적하다 포로가 되었다. 이를 두고 무제와 조정의 백관들이 이릉을 비난하였다. 그러나 사마천 혼자 이릉을 비호하였다. 이것이 무제의 비위를 건드려 억울하게 궁형(宮刑)을 당하였다. 정당한 일을 정당하게 주장하다 형을 받은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여, 사마천은 《사기(史記)》 〈열전편(列傳篇)〉 '백이숙제열전(伯夷叔齊列傳)'에서 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천도는 공평무사하여 언제나 착한 사람의 편을 든다.' 그렇다면 백이숙제와 같은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들은 인과 덕을 쌓고 청렴 고결하게 살다가 굶어 죽었다. 그리고 공자는 칠십 제자 중에 오직 안회(顔回)만을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추상(推賞)하였다. 그러나 그는 가끔 뒤주가 비어 있었으며, 지게미나 쌀겨도 배불리 먹지 못하다가 끝내 요절(夭折)하였다. 하늘은 착한 사람에게 보답한다는데, 이것은 도대체 어찌된 셈인가? 한편 도척은 날마다 죄없는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간을 회치는 등, 포악 방자하여 수천 사람의 도당을 모아 천하를 횡행하였지만 천수를 누렸다. 그렇다면 그가 도대체 어떤 덕행을 쌓았단 말인가?

이러한 것들은 가장 현저한 예라 하겠지만, 근세에 이르러서도 소행이 도를 벗어나 오로지 악행만을 저지르는데 종신토록 일락(逸樂)하고 부귀가 자손대대로 끊이지 않는다. 이와 달리 정당한 땅을 골라서 딛고 정당한 발언을 해야 할 때만 말을 하며 항상 큰길을 걸으며 공명정대(公明正大)한 이유가 없으면 발분(發憤)하지 않고, 시종 근직(謹直)하게 행동하면서도 오히려 재화를 당하는 예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래서 나는 의심한다. 천도는 과연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목불식정 [目不識丁]
目 : 눈 목 不 : 아닐 불 識 : 알 식 丁 : 고무래 정고무래를 보고도 정자를 알지 못한다는 뜻으로, 일자무식인 사람을 가리키는 말.

한국 속담에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불학무식(不學無識:배우지 못해 아는 것이 없음), 일자무식(一字無識:한 자도 아는 것이 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불식일정(不識一丁)도 같은 의미이다.

당(唐)나라 때 지방에 절도사로 파견된 장홍정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배운 것도 많지 않고 무능했지만, 집안이 대대로 나라에 공을 세워, 그 덕으로 벼슬길에 나아가게 된 인물이다. 부유한 집에서 본 바 없이 자란 그는 성품이 오만 불손하고 방자하여 주위 사람의 질책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절도사로 권력을 잡자, 방약무인한 행동이 걷잡을 수 없었다. 보다 못한 주위 사람들이 이를 간하기라도 하면, 반성은 커녕 오히려 화를 내면서 “네놈들은 글자도 모르는 목불식정만도 못해!” 하고 업신여기기 일쑤였다. 참다 못한 부하 관리들이 반란을 일으켜 장홍정을 잡아 가두자, 이 소식을 들은 황제는 장홍정의 직책을 박탈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한다. “그놈이야말로 목불식정이로고.”

사람은 아는 만큼 보고, 보는 만큼 느낀다고 한다. 아는 것이 없으면 그 만큼 세상을 보는 폭이 좁아진다는 말이다. 그러나 배웠으면서도 무지한 행동을 하는 것은 실제로 모르고 무지하게 행동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 목불식정이 실제로 배움이 없다는 뜻보다는 무지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된 연유일 것이다.


만고풍상[萬古風霜]
萬:일만 만, 古:오래될 고, 風:바람 풍, 霜:서리 상오랜 세월에 걸쳐 겪어 온 힘겨운 고생

일만 년이나 된 바람과 서리라! 바람과 서리가 좋은 일을 뜻할 것 같지는 않지요. 일반적으로 해, 달, 꽃 같은 자연이 행복함이나 아름다움을 뜻한다면 바람, 서리, 눈은 고생, 힘겨움 등을 나타냅니다. 앞서 살펴본 설상가상(雪上加霜)을 봐도 그렇지요. 만고풍상은 일만 년 동안이나 겪어 온 고생입니다. 과장법이 심하군요. 
만고(萬古) 즉 오랜 옛날이란 의미가 포함된 표현은 또 있습니다.



무불통지 [無不通知]
無 : 없을 무 不 : 아니 불 通 : 통할 통 知 : 알 지무엇이든 환히 통하여 모르는 것이 없음을 뜻하는 고사성어

'교양'은 현대에서만 요구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요구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과거에 교양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면 인문적인 교양을 쌓은 사람, 따라서 우리 나라 또는 동양의 고전(古典)에 대한 지식이 많은 것을 의미하였으며, 또 그것을 장려하였다.

그러나 교양은 다만 고전에 대하여 많이 안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유를 위하여, 즉 자연의 세계에 대하여 뿐 아니라 사회적, 도덕적 발전을 위하여 쌓은 업적을 이해하는 동시에 그 자신도 그와 같이 노력함으로써 새 자유를 얻으려고 하는 자유의 정신과 신생(新生)의 교양이었다. 이러한 교양을 두루 갖춘 것을 가리켜 무불통지라고 한다. 
 



다배불공茶杯不空
차다(艸-6)잔배(木-4)아닐 불(一-3)비울 공(穴-3)

소통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왜 대화가 잘 되지 못할까?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것도 아닌데 왜 대화를 하지 못할까? 가장 가깝다는 가족이 모여도 대화가 없거나 대화를 하더라도 끊겼다 이어졌다 하는 경우가 흔하다.   대화가 다툼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10여 년 전, 지상파 방송의 일요일 예능 프로그램에서 ‘대화가 필요해’라는 코너가 있었다. 참으로 시의적절한 코너였다. 대화하려 애쓰지만 실제로는 대화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 대화를 한다면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들을 잘 그려냈다. 그 덕분에 공감을 얻고 인기도 끌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대화를 잘하고 사는가? 안타깝게도 이제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할 정도가 아니라 ‘대화가 정말 절실하다’고 말해야 할 지경에 이른 듯하다. 세대 간의 대화나 정치가들 사이의 대화도 엉망이지만, 가족들 내에서나 친구 사이에서도 대화다운 대화는 매우 드물다. 왜 대화를 제대로 하지 못할까?

옛날 어떤 禪師(선사)에게 儒者(유자)가 禪(선)에 대해 물으려 찾아왔다. 선사는 차를 대접했다. 손님의 잔에 차가 가득 찼는데도 선사는 멈추지 않고 계속 따랐다. 이를 가만 지켜보던 유자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외쳤다. 
“넘칩니다! 그만 따르십시오.”
그러자 선사가 말했다. 
“이 잔처럼 그대는 자신의 생각과 견해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대가 잔을 비우지 않는데, 내가 어찌 선을 말해줄 수 있겠습니까?”

茶杯不空(다배불공)! 찻잔을 비우지 않는데, 어찌 새로 차를 따를 수 있으랴. 생각이나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할 뿐 아니라 상대의 말을 내 생각대로 듣고 내 마음대로 해석한다. 여기서 오해와 곡해가 비롯되며, 대화도 단절된다. 말하는 이가 바보가 아니라면 자신의 말이 벽에 부딪혀서 되돌아오고 있음을 느끼는데, 어찌 말을 이어가겠는가. 서로 마음을 비우고 먼저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할 때, 대화가 되고 소통이 이루어진다. 

 
맥수지탄 [麥秀之嘆]
麥 : 보리 맥 秀 : 빼어날 수 之 : 어조사 지 嘆 : 탄식할 탄  보리가 무성하게 자란 것을 탄식한다는 뜻으로 나라가 무너져 예전과 같지 않음을 슬퍼하는 것,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탄식한다는 말이다.

『사기(史記)』 「송미자(宋微子世家」에 나오는 말이다.

고대 중국 은(殷)나라의 마지막 임금 주왕(紂王)은 군주로서의 직분을 잊고 술과 여색에 빠져 백성을 돌보지 않았으며, 미자(微子), 기자(箕子), 비간(比干) 등의 충직한 신하들의 충고도 듣지 않고 폭군으로 군림하였다. 주왕의 서형(庶兄)이기도 했던 미자는 자신의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비관하여 자결하려다가 결국 나라 밖으로 도망갔다. 주왕의 작은아버지이기도 했던 기자는 신하된 자가 간언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하여 나라를 떠난다면 군주의 허물을 들추는 꼴이며 자신이 백성의 기쁨을 뺏는 것이라 하고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미친 척하다가 잡혀서 노예가 되었다. 비간은 기자가 노예가 되는 것을 보고 다시 간언을 했다가 주왕에게 죽임을 당했다.

결국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서쪽의 제후들을 규합해 쳐들어갔고 주왕은 목야(牧野)에서 맞서 싸웠지만 패배하여 자살하였고 은 왕조는 멸망하였다. 훗날 기자가 은나라의 옛 도성을 지나다가 슬픔과 한탄을 담아 시를 지었는데 그 시는 다음과 같다.
보리 이삭은 무성하고, 벼와 기장은 윤기가 흐르는구나.
저 교활한 녀석이, 나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지.
[麥秀漸漸兮, 禾黍油油兮. 彼狡童兮, 不與我好兮.]
화려했던 도읍은 흔적도 없고 옛날 궁궐이 있던 곳에는 곡식은 무성하게 자라있으니, 이 지경에 이른 것은 포악한 주왕이 충신들의 간언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로부터 조국의 멸망을 한탄하는 것을 ‘맥수지탄’이라고 하며 맥수서리(麥秀黍離), 서리맥수(黍離麥秀), 맥수지시(麥秀之詩)라고도 한다.


부화뇌동 [附和雷同]
附 : 붙을 부 和 : 응할 화 雷 : 우레 뢰 同 : 같이할 동우레 소리에 맞추어 천지 만물이 함께 울린다는 뜻으로,자기 생각이나 주장 없이 남의 의견에 동조한다는 말. 

《예기(禮記)》의 〈곡례편(曲禮篇)〉상(上)에 나오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자신의 의견인 것처럼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조하지 말라. 옛 성현들의 행동을 모범으로 삼고, 선왕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또한 《논어(論語)》의 〈자로편(子路篇)〉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화합하지만 부화뇌동하지 않고, 소인은 부화뇌동하지만 화합하지 않는다[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이 말은, 군자는 의를 숭상하고 남을 자신처럼 생각하여 화합하지만, 소인은 이익을 따지는 사람이므로 이해관계가 맞는 사람끼리 행동하여 사람들과 화합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부화뇌동에서 원래 뇌동이란 우레가 울리면 만물도 이에 따라 울린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말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도 않고 부화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며, 부화는 이후 첨가된 말이다. 부화뇌동은 줄여서 뇌동이라고도 하며, 동의어로 뇌동부화, 부부뇌동(附付雷同), 비슷한 말로 경거망동(輕擧妄動), 만장일치(滿場一致), 아부뇌동(阿附雷同)이 있다.

부화뇌동은 자신의 주체적인 의견과 객관적인 기준을 도외시한 채 물질적인 이해관계 또는 남의 주장이나 의견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을 경고하는 고사성어이며, 공자가 말하는 것처럼 소인배들이나 하는 행동이다. 한국의 정치적인 상황을 생각해 볼 때 주체적인 정치적 철학은 무시한 채 오직 당리당략에 얽매여 정치를 펼치는 정치가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말이다.


守中篤也

- 지킬수(宀-3)가운데중(丨-3)두터울 독(竹-10)어조사 야(乙-2)

노자는 “至虛, 恒也”(지허, 항야) 곧 “텅 빔에 이르면 한결같다”고 해놓고 이어서 “守中, 篤也”(수중, 독야) 곧 “가운데를 지키면 도탑다”고 했다. 마음을 비우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왜 또 가운데를 지켜야 한다고 했을까? 가운데를 뜻하는 중(中)이 무엇이기에?

虛(허)는 글자 그대로 虛空(허공)을 연상케 하는데, 이 때문에 오해를 부를 수도 있다. 말하자면, 허공처럼 마음도 늘 비워 둔다고 한다면 결국 아무런 생각도 마음도 없는 상태가 되는데, 그렇다면 애초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고 반문할 수도 있다. 실제로 노자는 無欲(무욕)과 더불어 無知(무지)도 강조하고 있으니,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반문이다.
그래서 이 의문을 해소하려고 中(중)을 말한 것으로 여겨진다.

中(중)은 속이 빈 것(口)을 꿰뚫고(丨) 지나가는 형상의 글자다. 그래서 우선은 가운데, 속, 마음, 몸을 뜻한다. 몸을 뜻한다고 한 데 대해서는 좀 의아하게 여기실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몸도 비어 있는 것에 가깝다. 마음처럼 텅 비어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빈 구석은 의외로 많다. 공기와 물을 마시는 것도 피가 도는 것도 비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먹고 소화하고 배설하는 일련의 과정을 떠올려 보면, 왜 中(중)이 몸을 뜻하는지 한층 분명해진다. 입에서 배설하는 기관까지는 곧장 뚫려 있다. 몸속에 하나의 통로가 있으니, 안이면서 밖이고 밖이면서 안이다. 그 빈 곳으로 음식물이 들어가서 채우고, 소화시켜서 온몸으로 영양분을 공급하며, 찌꺼기는 다시 흘러서 배설된다. 그래서 中(중)에는 뚫다, 채우다, 곧다, 고르다 등의 뜻도 있다.

사실 먹고 마시는 일은 별다른 일이 아니다. 그런데 제대로 먹지 못한다면, 또는 먹은 것을 잘 소화시키지 못한다면, 나아가 제때 배설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어떨까? 소화불량이나 변비는 당뇨나 폐렴, 위암 따위 병에 견주면 하찮게 여겨질 수 있겠으나, 일상에서 몸과 마음을 힘들고 괴롭게 하기는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다.


發而中節
- 일어날 발(癶-7)말 이을 이(而-0)알맞을 중(丨-3)마디 절(竹-9)

우리는 몸 상태가 좋을 때 “가뿐하다”고 말들 한다. 가벼우면서도 상쾌하다는 뜻인데, 보는 사람도 “生氣(생기)가 돈다”고 표현해준다. 반면에 몸이 좋지 않을 때는 “무겁다”고 말하고, 보는 이들도 “생기가 없다”는 말로 표현한다. 어디 몸뿐이겠는가. 마음도 가벼워야 좋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정작 마음을 가볍게 지니고 살지를 못한다. 옛날에도 그러했는데, 오늘날처럼 관계와 일, 현상이 복잡다단할 때는 더욱더 가벼운 마음으로 살기 어렵다. 그렇다고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노자가 말한 ‘守中(수중)’ 곧 ‘가운데를 지킨다’는 말을 더 들여다보자. 몸에 대해서는 이미 말했으니, 감정이나 정서와 관련해서 말하겠다. ‘中庸(중용)’에 나오는 다음 구절이 주요한 실마리다.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희노애락지미발, 위지중; 발이개중절, 위지화) “기쁨·성냄·슬픔·즐거움 따위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을 알맞음이라 하고, 일어나서는 모두 상황에 알맞은 것을 어울림이라고 한다.”

‘중용’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를 中(중)이라 했다. 매 순간 끊이지 않고 감정이 일어나거나 한 번 일어난 감정이 지속되기만 하는 경우는 없다. 감정은 일어났다가 사라지기를 되풀이하며, 일어나지 않은 때가 훨씬 길고 많다. 
그런데 아무리 고약하거나 삿된 사람도 아무런 감정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에는 온화하고 화평해 보인다. 감정이나 마음이 중의 상태 곧 알맞은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감정이 일어났을 때에도 상대나 상황에 알맞은가 하는 점이다.

일어나는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남들과 어울려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는 무작정 자연스러움만 따를 수가 없다. 자칫 인간관계에서 파탄이 일어날 수도 있고, 실제로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일어나는 감정을 알맞게 처리하는 것, 상황에 맞게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和(화), 곧 어울림이다. 노자가 말한 ‘수중’ 곧 ‘가운데를 지켜라’도 어울림의 상태가 되도록 하라는 뜻이다.


守中篤也

- 지킬수(宀-3)가운데중(丨-3)두터울 독(竹-10)어조사 야(乙-2)

노자는 “至虛, 恒也”(지허, 항야) 곧 “텅 빔에 이르면 한결같다”고 해놓고 이어서 “守中, 篤也”(수중, 독야) 곧 “가운데를 지키면 도탑다”고 했다. 마음을 비우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왜 또 가운데를 지켜야 한다고 했을까? 가운데를 뜻하는 중(中)이 무엇이기에?

虛(허)는 글자 그대로 虛空(허공)을 연상케 하는데, 이 때문에 오해를 부를 수도 있다. 말하자면, 허공처럼 마음도 늘 비워 둔다고 한다면 결국 아무런 생각도 마음도 없는 상태가 되는데, 그렇다면 애초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고 반문할 수도 있다. 실제로 노자는 無欲(무욕)과 더불어 無知(무지)도 강조하고 있으니,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반문이다.
그래서 이 의문을 해소하려고 中(중)을 말한 것으로 여겨진다.

中(중)은 속이 빈 것(口)을 꿰뚫고(丨) 지나가는 형상의 글자다. 그래서 우선은 가운데, 속, 마음, 몸을 뜻한다. 몸을 뜻한다고 한 데 대해서는 좀 의아하게 여기실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몸도 비어 있는 것에 가깝다. 마음처럼 텅 비어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빈 구석은 의외로 많다. 공기와 물을 마시는 것도 피가 도는 것도 비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먹고 소화하고 배설하는 일련의 과정을 떠올려 보면, 왜 中(중)이 몸을 뜻하는지 한층 분명해진다. 입에서 배설하는 기관까지는 곧장 뚫려 있다. 몸속에 하나의 통로가 있으니, 안이면서 밖이고 밖이면서 안이다. 그 빈 곳으로 음식물이 들어가서 채우고, 소화시켜서 온몸으로 영양분을 공급하며, 찌꺼기는 다시 흘러서 배설된다. 그래서 中(중)에는 뚫다, 채우다, 곧다, 고르다 등의 뜻도 있다.

사실 먹고 마시는 일은 별다른 일이 아니다. 그런데 제대로 먹지 못한다면, 또는 먹은 것을 잘 소화시키지 못한다면, 나아가 제때 배설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어떨까? 소화불량이나 변비는 당뇨나 폐렴, 위암 따위 병에 견주면 하찮게 여겨질 수 있겠으나, 일상에서 몸과 마음을 힘들고 괴롭게 하기는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다.


노이무공 [ 勞而無功 ]
勞 : 수고로울 로 而 : 말이을 이 無 : 없을 무 功 : 공 공애만 쓰고 보람이 없음

온갖 애를 썼으나 아무런 보람이 없다는 뜻으로 '도로무공(徒勞無功)'이라고도 한다.《장자(莊子)》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옛날과 지금이란 물과 육지나 같은 게 아닙니까. 주나라와 노나라는 배와 수레나 같은 게 아닙니까[古今非水陸與 周魯非舟車與(고금비수륙여 주노비주차여]? 지금 주나라의 방식을 노나라에 행하려 한다는 것은 마치 육지에서 배를 밀고 가려는 것과 같습니다[今蘄行周於魯 是猶推舟於陸也(금기행주어노 시유추주어육야)]. 수고롭기만 했지 아무런 성과도 없을 것이며 자신에게 반드시 재앙이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勞而無功 身必有殃(노이무공 신필유앙)]." 

《순자(荀子)》〈정명편〉에는 "어리석은 사람의 말은 막연해서 갈피를 잡을 수 없고, 번잡하고 통일이 없으며 시끄럽게 떠들어대기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말은 하지만 요령이 없고, 몹시 애는 쓰지만 공이 없다"고 하였고, 《관자(管子)》의 〈형세편〉에도 "옳지 못한 것에 편들지 말라. 능하지 못한 것을 강제하지 말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르지 말라. 이와 같은 것을 가리켜 수고롭기만 하고 공이 없다고 말한다"고 하였다.



무불통지 [ 無不通知 ]
無 : 없을 무 不 : 아니 불 通 : 통할 통 知 : 알 지무엇이든 환히 통하여 모르는 것이 없음을 뜻하는 고사성어

'교양'은 현대에서만 요구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요구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과거에 교양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면 인문적인 교양을 쌓은 사람, 따라서 우리 나라 또는 동양의 고전(古典)에 대한 지식이 많은 것을 의미하였으며, 또 그것을 장려하였다.

그러나 교양은 다만 고전에 대하여 많이 안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유를 위하여, 즉 자연의 세계에 대하여 뿐 아니라 사회적, 도덕적 발전을 위하여 쌓은 업적을 이해하는 동시에 그 자신도 그와 같이 노력함으로써 새 자유를 얻으려고 하는 자유의 정신과 신생(新生)의 교양이었다. 이러한 교양을 두루 갖춘 것을 가리켜 무불통지라고 한다.


直己待命
- 곧게 할 직(目-3) 나 기(己-0) 기다릴 대(彳-6) 도 명(口-5)

‘문자’ ‘符言(부언)’에 나온다. “道者直己而待命. 時之至不可迎而返也, 時之去不可足而援也.”(도자직기이대명. 시지지불가영이반야, 시지거불가족이원야) 
“도란 나를 바르게 하고 명을 기다리는 것이다. 때가 이르는 것을 미리 나가 되돌려 보낼 수 없고, 때가 떠나는 것을 쫓아가 부여잡을 수 없다.”

여기에 명을 기다린다는 뜻의 ‘待命(대명)’이 나온다. 노자 당시에 命(명)은 대체로 吉凶禍福(길흉화복) 따위 운명으로서 명과 도덕적 본성이라는 내재적 명 두 측면에서 주로 거론되었다. 가령 ‘논어’ ‘雍也(옹야)’를 보면, 공자는 제자인 伯牛(백우)가 병을 앓자 병문안 가서 창문 틈으로 그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亡之, 命矣夫! 斯人也而有斯疾也! 斯人也而有斯疾也!”(망지, 명의부! 사인야이유사질야! 사인야이유사질야) “이럴 수가 없다, 운명이로구나! 이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이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여기서 명은 질병이나 생사의 운명을 뜻한다.

‘맹자’ ‘盡心 上(진심 상)에는 다른 의미의 명이 나온다. 
“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 則知天矣. 存其心, 養其性, 所以事天也. 殀壽不貳, 修身以俟之, 所以立命也.”(진기심자, 지기성야; 지기성, 즉지천의. 존기심, 양기성, 소이사천야. 요수불이, 수신이사지, 소이립명야) “그 마음을 다한다면, 그 본성을 알게 된다. 그 본성을 알면, 하늘을 알게 된다. 그 마음을 잘 지니고 그 본성을 잘 기르는 것, 이것이 하늘을 섬기는 방법이다. 일찍 죽느냐 오래 사느냐에는 마음을 두지 않고 몸을 닦으면서 기다리는 것, 이것이 명을 바로 세우는 바탕이다.” 
그런데 ‘대명’의 ‘명’은 운명이나 도덕적 본성으로서 명이 아니라 ‘사태의 흐름이나 추이, 변화’를 가리킨다.

요컨대, 명을 도나 자연, 그 법칙 또는 원리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명을 기다린다’고 할 때 그 기다림은 단순히 기다린다는 뜻이 아니라 도에 따라서, 자연의 법칙을 좇아서 산다는 뜻이며, 時流(시류) 곧 때의 흐름을 잘 알아서 그 흐름을 타고 사는 것을 뜻한다. 서퍼들이 파도를 기다렸다가 그 파도를 타며 즐기듯이. 


파과지년 [破瓜之年]
破 : 깨뜨릴 파 瓜 : 오이 과 之 : 의 지 年 : 해 년여자의 나이 16세, 남자의 나이 64세를 가리키며 '파과(破瓜)'가 오이를 깨뜨린다는 뜻으로, 초경(初經)이 있게 되는 나이를 비유하거나 처녀성을 잃게 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파과지년(破瓜之年)'이란 말은 '瓜(과)'자를 세로로 한가운데를 나누면 두 개의 '八(팔)'자가 되는데, 이것을 합하면 16, 곧 여자의 나이 16세를 가리키는 수(數)가 되고, 또 이것을 곱하면 64가 되어 남자의 나이 64세를 가리키는 수가 된다는 데서 온 말이다. 약칭으로 '파과'라고도 한다. '파과(破瓜)'는 '외를 깨친다'라는 뜻으로, 오이를 여성으로 비유하여 여자의 나이 16세를 가리킨다. 또 여자가 처녀를 깨친다 하여 '처녀성을 잃는다'는 의미와 '초경이 시작되는 나이'를 가리키기도 한다. 중국 진(晉)나라의 손작(孫綽)의 시 《정인벽옥가(情人碧玉歌)》에 이 말이 나온다.

푸른 구슬이 외를 깨칠 때[碧玉破瓜時(벽옥파과시)]
님은 마음을 쏟아 사랑을 한다[郎爲情顚倒(낭위정전도)]
낭군에게 마음을 느껴 부끄러워하지 않고[感君不羞赧(감군불수난)]
몸을 돌려 님의 품에 안겼네[廻身就郎抱(회신취랑포)]

이 시는 연애시로서, 여기서 '과(瓜)를 깰 때'란 말은 여자가 처녀를 깨친다는 뜻이며, 초경이 시작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 사랑을 알게 되는 16세를 가리키기도 한다. 청(淸)나라의 문인인 원매(袁枚)의 시론(詩論) 《수원시화(隨園詩話)》에는 '외를 깨치니, 즉 풀어서 말하여 첫 월경이 시작되었을 때, 외를 깨침과 같이 , 곧 홍조를 보게 된다, 안 그런가[破瓜 或解以爲月事初來 如破瓜則見紅潮者 非也]?'라는 말이 있다. 또 청나라의 적호(翟灝)의 《통속편(通俗編)》에는 '살피건대, 풍속에 여자가 몸을 깨침으로써 외를 깨친다 하거니와, 안 그런가[按俗以女子破身爲破瓜 非也]?'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파과'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초경의 시작과 처녀성을 잃는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밖에도 '파과'는 남자의 나이 64세를 비유하여 쓰이기도 하는데, 남자로서 이 나이가 되면 혼자서 잠자리에 드는 나이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송(宋)나라의 축목(祝穆)이 쓴 《사문유취(事文類聚)》에는, 당나라의 여동빈(呂洞賓)이 장기에게 보낸 시에 '공성당재파과년(功成當在破瓜年)'이란 것을 들어, '파과'는 남자의 나이 64세의 뜻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절차탁마 [切磋琢磨]
切 : 끊을 절 磋 : 갈 차 琢 : 쪼을 탁 磨 : 갈 마칼로 다듬고 줄로 쓸며 망치로 쪼고 숫돌로 간다는 뜻으로, 학문을 닦고 덕행을 수양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 

《시경(詩經)》 <위풍(衛風)> 기욱편(淇澳篇)의 다음 시구에서 유래하는 말이다.

저 치수이 강[淇水, 기수] 모퉁이를 보니, 푸른 대나무가 무성하도다![瞻彼淇澳, 菉竹猗猗.]
아름다운 광채 나는 군자여! 잘라놓은 듯하고 간 듯하며 쪼아놓은 듯하고 간 듯하다.[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엄밀하고 굳세며 빛나고 점잖으니, 아름다운 광채 나는 군자여! 끝내 잊을 수 없다.[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諠兮.]

원래 이 시는 군자를 칭송한 것으로, 학문과 인격을 끊임없이 갈고 닦아 겉모습까지 완성된 것을 푸른 대나무에 빗대어 말한 것이다. 이로부터 '절차탁마'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유의어로 절치부심(切齒腐心), 와신상담(臥薪嘗膽), 자강불식(自强不息) 등의 성어가 있고, 반의어로는 깊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다는 의미의 불구심해(不求甚解), 얕게 맛보고 곧바로 그만둔다는 뜻의 천상첩지(淺嘗輒止)가 있다.



法天順地

 본받을 법(水-5)하늘 천(大-1)따를 순(頁-3)땅 지(土-3)

노자는 ‘人法地(인법지)’ 곧 “사람은 땅을 본받는다”고 말했다. 이는 인간 존재의 근거와 생존 방식을 간명하게 드러낸 말이다.

사람은 필연적으로 땅에서 태어나 땅에서 나는 것에 기대 살다가 땅으로 돌아간다.

결코 땅으로부터, 땅의 순환과 운행의 원리에서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도 살 수도 없음을 ‘法(법)’이라는 한 글자에 담아낸 것이다. 하늘과 도, 자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문자’ ‘九守(구수)’에도 나온다.

“精神本乎天, 骨骸根于地. 精神入其門, 骨骸反其根, 我尙何存?”(정신본호천, 골해근우지. 정신입기문, 골해반기근, 아상하존?) “사람의 정기와 신명은 하늘에 밑동을 두고, 뼈와 살은 땅에 뿌리를 둔다. 정기와 신명은 그 문(하늘)으로 들어가고, 뼈와 살은 그 뿌리(땅)로 돌아가니,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我尙何存(아상하존)?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간단히 말하자면,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한다.

너무 간단해서 싱거운가? 이런 것도 철학인가? 노자뿐만 아니라 공자나 맹자도 이런 철학을 했다. 철저하게 경험에 입각해서, 뼈와 살로 된 몸을 가지고 그 몸속에서 도는 정기와 신명으로 한껏 느끼면서 감각으로 철학했다. 그래서 논리적이고 관념적인 표현이나 사유가 드물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날마다 생생하게 느끼고 경험하는 것들을 오롯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 문명이 차곡차곡 쌓아온 관습과 고정관념에 짓눌렸거나 그 틀 속에 갇혀버렸기 때문이다. 안정적이라고 여긴 문명 속에서도 괴로움과 불행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관념에서 벗어나고 틀을 깨는 길은 의외로 가까이 있다.

역시 ‘문자’ ‘구수’에 나온다. “聖人法天順地, 不拘于俗, 不誘于人, 以天爲父, 以地爲母, 陰陽爲綱, 四時爲紀.”(성인법천순지, 불구우속, 불유우인, 이천위부, 이지위모, 음양위강, 사시위기) “성인은 하늘을 본받고 땅을 따르며, 세속에 구애되지 않고 사람들의 꾐에 넘어가지 않으며, 하늘을 아비로 삼고 땅을 어미로 삼으며, 음양을 벼리로 삼고 사계절을 기틀로 삼는다.” 고전학자    


단사표음 [簞食瓢飮]
簞 : 대광주리 단 食 : 밥 사 瓢 : 표주박 표 飮 : 마실 음 한 소쿠리의 밥과 표주박의 물이라는 말로, 매우 소박한 생활이라는 뜻.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는 일생 동안 무려 3천 명의 제자를 두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는 자공(子貢)처럼 이재(理財)에 밝은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자로(子路)처럼 벼슬길에 나아가 성공한 사람도 있고, 안회(顔回)처럼 가난하지만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공자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제자는 안회였다. 공자는 제자들을 그 역량에 따라 평하고 그에 맞는 충고를 하곤 했지만, 안회에게만은 늘 칭찬을 잊지 않았다.

공자의 기대에 맞추어, 안회도 워낙 학문을 좋아하여 나이 29세에 벌써 백발이 되었다 한다. 자공이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聞一知十)'며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 사람도 바로 안회이다. 그러나 안회는 찢어지게 가난하여 끼니 거르기를 밥 먹 듯했으며 평생 찌게미조차 배불리 먹어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가난은 그의 수행과 학문 연구에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었다. 이런 안회를 보고 공자가 칭찬하였다. “어질도다, 안회여. 한 소쿠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누추한 곳에 거처하며 산다면, 다른 사람은 그 근심을 견디어내지 못하거늘 안회는 즐거움을 잃지 않는구나.어질도다 안회여(賢哉回也 一簞食一瓢飮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 한 소쿠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사는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즐거움을 잃지 않으므로 공자는 두 번이나 ‘어질도다 안회여.’라고 찬미한 것이다.

옹야편에는 이 말고도 안회를 칭찬하는 내용이 많다. 가령 “안회는 그 마음이 석 달이 지나도 어진 것을 어기지 않는다. 그러나 나머지 제자들은 겨우 하루나 한 달 동안 어진 것에 이를 뿐이다.”라든가, 애공(哀公)이 학문을 좋아하는 제자에 대해 묻자, "안회가 있어 학문을 좋아하고 노여움을 오래 지니지 아니하며, 허물 되는 일을 두 번 하지 않았으나, 불행하게도 명이 짧아 일찍 죽은지라, 그가 떠나간 지금에 와서는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듣지 못하였다."고 대답하는 예 등이다. 요절한 안회에 대한 공자의 그리움이 절절하다.

공자의 말씀 이후 단사표음은 초야에 묻혀 사는 은사들의 생활의 표상이 되었다. 옹야편의 표현 그대로, 일단사일표음(一簞食一瓢飮)이라고도 한다.


박주산채 [薄酒山菜]
(엷을 박薄, 술 주酒, 메 산山, 나물 채菜) 변변치 못한 술과 산나물. 소박한 음식을 가리킴.
질이 떨어지는 술과 고기 한 점 없는 나물 반찬. 참 소박한 상이죠. 그래서 손님을 접대할 때 자신이 마련한 술상을 낮추어 부르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요즘 말로 하면 ‘차린 것은 없지만 많이 드십시오.’네요. 
한편 우리에게는 한석봉으로 잘 알려져 있는 명필 한호(1543~1605)가 지은 시조 가운데 이 표현이 들어간 작품이 있습니다. 

짚방석 내지 마라 낙엽엔들 못 앉으랴 
솔불 켜지 마라 어제 진 달 돋아 온다. 
아해야 박주산채일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낙엽 위에 앉아서 달빛을 벗 삼아 소박한 술상을 친구와 나누는 정경이 그림처럼 떠오르는군요.



사고무친[四顧無親]
넉 사 四, 돌아볼 고 顧, 없을 무 無, 친할 친 親사방을 둘러보아도 아는 사람 하나 없음

앞서 본 외로운 사람과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을 사람이군요. 친(親)은 ‘친척, 친구, 친한 사람, 이웃’과 같은 뜻을 두루 갖는 글자죠. 고(顧)는 ‘돌아보다’라는 뜻의 글자로 회고록(回顧錄), 고문단(顧問團) 같은 단어에 쓰입니다.
우리 속담 가운데 ‘서 발 장대 휘둘러도 거칠 것이 없다’는 게 있습니다. 긴 장대를 휘둘러도 사방에 걸리는 사람 하나 없을 만큼 외롭고 고독한 상황을 나타내는 표현이지요. )


사기종인 [舍己從人]
舍 : 버릴 사 己 : 자기 기 從 : 좇을 종 人 : 남(타인) 인 자기의 이전 행위를 버리고 남의 착한 행동을 따르는 것을 이르는 말. 

자기를 버리고 타인(他人)을 좇는다'는 뜻으로, 자기 개인의 이익과 욕심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선량한 행실을 본떠서 따른다는 것을 말한다.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이황(李滉:1501~1570)의 《퇴계집(退溪集)》에 나오는 다음 구절에서 유래한 성어(成語)이다.  

"자기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따르지 못하는 것은 배우는 사람의 큰 병이다[不能舍己從人 學者之大病]. 천하의 의리는 끝이 없는데 어떻게 자기 자신만 옳고 남을 옳지 않다고 할 수 있는가?[天下之義理無窮 豈可是己而非人] 사람이 질문을 하면, 곧 얕고 가까운 말이라도 반드시 마음에 담아두고 잠깐 뒤에 대답하며, 즉시 질문에 응하여 답하지 말라[人有質問 則淺近說 必留意 少間而答之 未嘗應聲而對]."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만을 내세우지 않고 다른 사람의 뜻을 좇는다는 뜻인데, 타인의 말과 행동을 본받아 자신의 언행(言行)을 바로잡는다는 말이다.



 악목불음 [惡木不蔭]
惡 : 악할 악 木 : 나무 목 不 : 아닐 불 蔭 : 그늘 음나쁜 나무에는 그늘이 생기지 않는다는 말로, 덕망이 있는 사람 주변에 따르는 무리들이 많다는 뜻. 

법가(法家)인 관중(管仲)의 《관자(管子)》에 나오는 말이다.

“선비는 덕망이 있고 큰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쁜 나무에는 그늘이 생기지 않는 법이다. 나쁜 나무도 이것을 수치스러워 하는데 하물며 악인들과 함께 있는 경우에는 어떠하겠는가?”

《순자(旬子)》에는 ‘수음조식(樹陰鳥息)’이란 말이 나온다. 즉 나무에 그늘이 있어야 새가 쉴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이 나쁜 마음을 품고 있으면 그 주위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는다. 사람이 덕망이 있어야만 사람들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만한 대인관계에 힘쓰고 인격과 덕망을 갖추도록 노력하라는 뜻에서 쓰인 말이다. 
 


자강불식 [自强不息]
自 : 스스로 자 强 : 힘쓸 강 不 : 아닐 불 息 : 쉴 식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는 뜻으로 자신의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역경(易經)》 〈건괘(乾卦)·상전(象傳)〉에 나오는 다음 구절에서 유래하는 말이다.

하늘의 운행이 굳세니, 군자가 이것을 응용하여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天行健,君子以自强不息.]

유교의 경전 중 하나인 《역경》은 자연현상의 원리를 통해 우주철학을 논하는 동시에, 그것을 인간사에 적용하여 구체적인 유교적 규범 원리를 제시하는 책이다. 위 글은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해가 지면 달이 뜨는 것처럼 천체우주의 운행과 대자연의 순환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함없이 굳건한데, 학식(學識)과 덕행(德行)이 훌륭한 군자와 같은 사람은 이것을 본받아 자신의 몸을 단련하고 정신을 수양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자강불식은 스스로를 단련하여 어떤 시련이나 위기가 닥쳐도 굴복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굳은 의지를 비유하는 말이다.

유의어로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 노력한다는 의미의 절치부심(切齒腐心), 발분망식(發憤忘食), 와신상담(臥薪嘗膽) 등이 있다. 반의어로는 자신의 몸을 스스로 해치고 돌보지 않는다는 의미의 자포자기(自暴自棄),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에 전하는 말로 함부로 자신을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여긴다는 의미의 망자비박(妄自菲薄)이라는 성어가 있다.


모수자천 [毛遂自薦]
毛 : 털 모 遂 : 드디어 수 自 : 스스로 자 薦 : 천거할 천 모수가 스스로를 천거했다는 뜻으로, 부끄러움 없이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을 빗대어 가리키는 말.

《사기(史記)》 평원군열전(平原君列傳)에 나오는 말로, 본래는 어려운 일을 당하여 스스로 그 일을 맡고 나선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으나, 차츰 의미가 변질되어 일의 전후도 모르고 나서는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 다음과 같은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전국시대에 진(秦)이 조(趙)의 수도 한단(邯鄲)을 포위하자, 조왕은 평원군을 초(楚)나라에 보내 합종(合從)을 맺음으로써 이를 격퇴하려 하였다. 평원군은 출발에 앞서 문하에 출입하는 식객 중 20명을 뽑아 같이 가려 했는데, 19명을 선발하고 적당한 사람이 없어 1명을 채우지 못했다. 이때 식객 중에 모수(毛遂)라는 사람이 스스로 자기가 끼기를 청하였다(毛遂自薦). 그것을 보고 평원군이 말하였다.

"당신은 내게로 와 몇 년이나 되었소?" 모수가 3년 되었다고 대답하자, 평원군은 다시 물었다. "대체로 현인이란 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아서 가만히 있어도 드러나는 법인데, 3년 동안 나는 당신에 관한 말을 들은 적이 없구료." 그러자 모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그래서 이제 주머니에 넣어 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결국 평원군은 모수를 데리고 초나라로 갔다. 초왕과의 회담에서 식객 19명이 모두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평원군은 마침내 모수에게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이 말을 들은 모수는 칼을 빼어든 채 초왕의 면전으로 나아가 "당신은 수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있지만 지금 당신의 목숨은 내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은(殷)의 탕왕(湯王)이나 주(周)의 문왕(文王)이 패업을 이룬 것은 군사가 많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초나라는 땅도 비옥하고 군사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진나라 군사에게 종묘를 위협받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합종은 초나라도 위한 것이지 조나라만 위한 것은 아닙니다" 하고 설득하여 마침내 합종을 성공시켰다. 일을 마무리하고 조나라로 돌아온 평원군은 이후 모수를 상객(上客)으로 모시고 후하게 대접했다 한다.
 


가렴주구 [苛斂誅求]
苛 : 가혹할 가 斂 : 거둘 렴 誅 : 책망할 주 求 : 구할 구가혹하게 거두고 강제로 빼앗는다는 뜻으로 세금 등을 혹독하게 거두어들이고 재물을 빼앗아 백성들이 살아가기 힘든 정치를 가리키는 고사성어. 

지방 관리들이 혹독하게 세금을 거두어들여 백성들이 살아가기 힘든 정치적 상황을 나타내는 말로 '가렴'과 '주구'가 합쳐진 말이다. 

'가렴(苛斂)'은 《구당서(舊唐書)》 <목종기(穆宗紀)>의 "당나라 헌종(憲宗)은 나라 재정이 궁핍하여 황보박(皇甫鎛)을 재상으로 발탁하여 정책을 펼치도록 하였다. 그런데 그가 백성들로부터 조세를 가혹하게 거두어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해졌고 결국 재상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였다.[憲宗用兵, 擢皇甫鎛為相. 苛斂剝下, 人皆咎之, 以至譴逐.]"에서 유래한 말로 '가혹하게 거둔다'는 뜻이다. 

'주구(誅求)'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31년>의 "우리나라(鄭나라)는 아주 작은 나라로서 크고 강한 나라들 사이에 끼어 있다. 따라서 그 대국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가혹한 공물(貢物)을 바쳐야 하기 때문에 감히 편하게 지낼 날이 없었다.[以敝邑褊小, 介於大國. 誅求無時, 是以不敢寧居.]"에서 유래한 말로 '무리하게 빼앗는다'는 뜻이다. 

같은 뜻으로 가혹한 정치를 사나운 맹수에 빗댄 말인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가 흔히 쓰이고, 그 외에 주구무이(誅求無已)·횡정가렴(橫征苛斂) 등의 성어가 있다.


 화광동진 [和光同塵]
和 : 화할 화 光 : 빛 광 同 : 한가지 동 塵 : 티끌 진빛을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에 같이한다는 뜻으로, 자기의 지덕(智德)과 재기(才氣)를 감추고 세속을 따름을 이르는 말. 또는 부처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그 본색을 숨기고 인간계(人間界)에 나타남을 이르는 말. 

화광동진(和光同塵)이란 《노자(老子)》에 나오는 구절로, 자기의 지혜와 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인과 어울려 지내면서 참된 자아를 보여준다는 뜻이다. 다음은 《노자》 제56장에 나오는 말이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그 이목구비를 막고 그 문을 닫아서, 날카로운 기운을 꺾고, 혼란함을 풀고, '지혜의 빛을 늦추고[和其光]', '속세의 티끌과 함께하니[同其塵]', 이것을 현동(玄同)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친해질 수도 없고, 소원해지지도 않는다. 이롭게 하지도 않으며, 해롭게도 하지 못한다. 귀하게도 할 수 없으며, 천하게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천하에 귀한 것이 된다[知者不言 言者不知 塞其兌 閉其門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是謂玄同 故不可得而親 不可得而疏 不可得而利 不可得而害 不可得而貴 不可得而賤 故爲天下貴]."

참으로 아는 사람은 그 앎에 대하여 말하지 않으니, 앎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진정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진정한 앎이 있는 사람은 그 이목구비를 틀어막고, 지혜의 문을 닫으며, 지혜의 날카로움을 꺾고, 지혜 때문에 일어나는 혼란을 풀고, 지혜의 빛을 늦추고, 그리고 속세의 티끌과 하나가 되니, 이것을 현동(玄同)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현동의 사람에 대하여는 친해질 수도 없고, 멀어질 수도 없으며, 이득을 줄 수도 해를 줄 수도 없고, 귀하게 할 수도 천하게 할 수도 없으니, 천하에 가장 귀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화광동진이란 말이 비롯되었으며, "도(道)는 언제나 무위(無爲)하면서도 무위함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노자의 도가사상(道家思想)을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말 중의 하나가 바로 '화광동진'과 '현동'이라고 볼 수 있다.



거어지탄 [車魚之歎]
車 : 수레 거 魚 : 물고기 어 之 : 어조사 지 歎 : 탄식할 탄수레와 고기에 대한 탄식이라는 뜻으로 끝이 없는 욕심을 일컫는 말이다.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 편에 다음 고사가 전해진다. 제(齊)나라에 풍훤(馮諼)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살림이 궁핍하여 생계를 꾸릴 수가 없자 아는사람에게 부탁해 당대 권력가이자 많은 식객을 거느리고 있던 맹상군(孟嘗君)에게 그의 식객으로 받아주기를 청했다. 이에 맹상군이 말했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 풍훤이 대답했다. "딱히 좋아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럼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 "잘하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이에 맹상군은 웃으며 그를 받아주었다. 

다른 식객들은 맹상군이 그를 하찮게 여기는 것이라 생각하고 변변찮은 음식(가장 하급 식객 대우)을 주었다. 얼마 지나 풍훤이 기둥에 기대 칼을 두드리며 이렇게 노래 불렀다. "장협아, 돌아가자! 밥에 생선 하나 없구나[長鋏歸來乎, 食無魚]" 다른 이들이 이를 알리자 맹상군이 말했다. "주어라. 고기 먹는 식객(중급 식객) 대우를 해주어라." 또 얼마 지나서 풍훤이 칼을 두드리며 노래했다. '장협아, 돌아가자! 타고 나갈 수레도 없구나[長鋏歸來乎, 出無車]" 이를 알리자 맹상군이 말했다. "주어라. 수레 타는 식객(상급 식객) 대우를 해주어라." 얼마 후 풍훤이 또 칼을 두드리며 노래했다. "장협아, 돌아가자! 가족을 먹여 살릴 것이 없구나." 이에 다른 이들이 탐욕스러워 만족할 줄 모른다고 못마땅해 했지만, 맹상군은 그에게 노모가 있음을 알고 일용할 양식을 보내주어 노모가 궁핍함이 없도록 해주었다. 그 후로 풍훤은 다시 그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여기서 전하여 거어지탄은 현재의 분수나 처지에 만족할 줄 모르고 한없이 욕심 부리는 행태 또는 그러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같은 뜻으로 '말을 타면 노비를 거느리고 싶어 한다'는 뜻의 기마솔욕노(騎馬欲率奴), '농나라를 얻고 나니 촉나라를 갖고 싶어 한다'는 뜻의 득롱망촉(得隴望蜀), '마루를 빌려 쓰다 안방까지 차지한다'는 뜻의 차청차규(借廳借閨) 등이 있다.



구우일모 [九牛一毛]
아홉 구:九, 소 우:牛, 한 일:一, 터럭 모:毛아홉 마리 소 가운데서 뽑은 터럭 하나, 대단히 하찮은 것을 가리킴

한 마리 소에서 터럭 하나를 뽑아도 알아볼 사람 하나 없을 텐데 하물며 아홉 마리 가운데서 터럭 하나를 뽑는다고요? 당연히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하찮은 일이겠지요. 이 표현은 참으로 안타까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한 충신의 편지로부터 비롯되었거든요.
《사기》를 집필한 불후의 역사가 사마천은 사실 일찌감치 죽었어야 하는 인물입니다. 왜? 궁형(宮刑)을 당했거든요. 궁형이란 남성의 생식기를 발라내는 형벌로, 선비라면 이런 치욕을 당하기에 앞서 자결하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마천은 왜 이런 형벌을 받았고, 왜 수치를 견디며 살아남았을까요? 


천도시비 [天道是非]
天 : 하늘 천 道 : 길 도 是 : 옳을 시 非 : 아닐 비하늘의 도는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곧 천도라는 것이 의심스럽다는 뜻.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사마천(司馬遷)은 태사령(太史令)이었다. 당시, 이릉(李陵)이 5천의 군사로 흉노와 대적하다 포로가 되었다. 이를 두고 무제와 조정의 백관들이 이릉을 비난하였다. 그러나 사마천 혼자 이릉을 비호하였다. 이것이 무제의 비위를 건드려 억울하게 궁형(宮刑)을 당하였다. 정당한 일을 정당하게 주장하다 형을 받은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여, 사마천은 《사기(史記)》 〈열전편(列傳篇)〉 '백이숙제열전(伯夷叔齊列傳)'에서 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천도는 공평무사하여 언제나 착한 사람의 편을 든다.' 그렇다면 백이숙제와 같은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들은 인과 덕을 쌓고 청렴 고결하게 살다가 굶어 죽었다. 그리고 공자는 칠십 제자 중에 오직 안회(顔回)만을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추상(推賞)하였다. 그러나 그는 가끔 뒤주가 비어 있었으며, 지게미나 쌀겨도 배불리 먹지 못하다가 끝내 요절(夭折)하였다. 하늘은 착한 사람에게 보답한다는데, 이것은 도대체 어찌된 셈인가? 한편 도척은 날마다 죄없는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간을 회치는 등, 포악 방자하여 수천 사람의 도당을 모아 천하를 횡행하였지만 천수를 누렸다. 그렇다면 그가 도대체 어떤 덕행을 쌓았단 말인가?

이러한 것들은 가장 현저한 예라 하겠지만, 근세에 이르러서도 소행이 도를 벗어나 오로지 악행만을 저지르는데 종신토록 일락(逸樂)하고 부귀가 자손대대로 끊이지 않는다. 이와 달리 정당한 땅을 골라서 딛고 정당한 발언을 해야 할 때만 말을 하며 항상 큰길을 걸으며 공명정대(公明正大)한 이유가 없으면 발분(發憤)하지 않고, 시종 근직(謹直)하게 행동하면서도 오히려 재화를 당하는 예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래서 나는 의심한다. 천도는 과연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목불식정 [目不識丁]
目 : 눈 목 不 : 아닐 불 識 : 알 식 丁 : 고무래 정고무래를 보고도 정자를 알지 못한다는 뜻으로, 일자무식인 사람을 가리키는 말.

한국 속담에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불학무식(不學無識:배우지 못해 아는 것이 없음), 일자무식(一字無識:한 자도 아는 것이 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불식일정(不識一丁)도 같은 의미이다.

당(唐)나라 때 지방에 절도사로 파견된 장홍정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배운 것도 많지 않고 무능했지만, 집안이 대대로 나라에 공을 세워, 그 덕으로 벼슬길에 나아가게 된 인물이다. 부유한 집에서 본 바 없이 자란 그는 성품이 오만 불손하고 방자하여 주위 사람의 질책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절도사로 권력을 잡자, 방약무인한 행동이 걷잡을 수 없었다. 보다 못한 주위 사람들이 이를 간하기라도 하면, 반성은 커녕 오히려 화를 내면서 “네놈들은 글자도 모르는 목불식정만도 못해!” 하고 업신여기기 일쑤였다. 참다 못한 부하 관리들이 반란을 일으켜 장홍정을 잡아 가두자, 이 소식을 들은 황제는 장홍정의 직책을 박탈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한다. “그놈이야말로 목불식정이로고.”

사람은 아는 만큼 보고, 보는 만큼 느낀다고 한다. 아는 것이 없으면 그 만큼 세상을 보는 폭이 좁아진다는 말이다. 그러나 배웠으면서도 무지한 행동을 하는 것은 실제로 모르고 무지하게 행동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 목불식정이 실제로 배움이 없다는 뜻보다는 무지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된 연유일 것이다.


만고풍상[萬古風霜]
萬:일만 만, 古:오래될 고, 風:바람 풍, 霜:서리 상오랜 세월에 걸쳐 겪어 온 힘겨운 고생

일만 년이나 된 바람과 서리라! 바람과 서리가 좋은 일을 뜻할 것 같지는 않지요. 일반적으로 해, 달, 꽃 같은 자연이 행복함이나 아름다움을 뜻한다면 바람, 서리, 눈은 고생, 힘겨움 등을 나타냅니다. 앞서 살펴본 설상가상(雪上加霜)을 봐도 그렇지요. 만고풍상은 일만 년 동안이나 겪어 온 고생입니다. 과장법이 심하군요. 
만고(萬古) 즉 오랜 옛날이란 의미가 포함된 표현은 또 있습니다.



무불통지 [無不通知]
無 : 없을 무 不 : 아니 불 通 : 통할 통 知 : 알 지무엇이든 환히 통하여 모르는 것이 없음을 뜻하는 고사성어

'교양'은 현대에서만 요구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요구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과거에 교양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면 인문적인 교양을 쌓은 사람, 따라서 우리 나라 또는 동양의 고전(古典)에 대한 지식이 많은 것을 의미하였으며, 또 그것을 장려하였다.

그러나 교양은 다만 고전에 대하여 많이 안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유를 위하여, 즉 자연의 세계에 대하여 뿐 아니라 사회적, 도덕적 발전을 위하여 쌓은 업적을 이해하는 동시에 그 자신도 그와 같이 노력함으로써 새 자유를 얻으려고 하는 자유의 정신과 신생(新生)의 교양이었다. 이러한 교양을 두루 갖춘 것을 가리켜 무불통지라고 한다. 
 


다배불공茶杯不空
차다(艸-6)잔배(木-4)아닐 불(一-3)비울 공(穴-3)

소통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왜 대화가 잘 되지 못할까?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것도 아닌데 왜 대화를 하지 못할까? 가장 가깝다는 가족이 모여도 대화가 없거나 대화를 하더라도 끊겼다 이어졌다 하는 경우가 흔하다.   대화가 다툼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10여 년 전, 지상파 방송의 일요일 예능 프로그램에서 ‘대화가 필요해’라는 코너가 있었다. 참으로 시의적절한 코너였다. 대화하려 애쓰지만 실제로는 대화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 대화를 한다면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들을 잘 그려냈다. 그 덕분에 공감을 얻고 인기도 끌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대화를 잘하고 사는가? 안타깝게도 이제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할 정도가 아니라 ‘대화가 정말 절실하다’고 말해야 할 지경에 이른 듯하다. 세대 간의 대화나 정치가들 사이의 대화도 엉망이지만, 가족들 내에서나 친구 사이에서도 대화다운 대화는 매우 드물다. 왜 대화를 제대로 하지 못할까?

옛날 어떤 禪師(선사)에게 儒者(유자)가 禪(선)에 대해 물으려 찾아왔다. 선사는 차를 대접했다. 손님의 잔에 차가 가득 찼는데도 선사는 멈추지 않고 계속 따랐다. 이를 가만 지켜보던 유자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외쳤다. 
“넘칩니다! 그만 따르십시오.”
그러자 선사가 말했다. 
“이 잔처럼 그대는 자신의 생각과 견해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대가 잔을 비우지 않는데, 내가 어찌 선을 말해줄 수 있겠습니까?”

茶杯不空(다배불공)! 찻잔을 비우지 않는데, 어찌 새로 차를 따를 수 있으랴. 생각이나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할 뿐 아니라 상대의 말을 내 생각대로 듣고 내 마음대로 해석한다. 여기서 오해와 곡해가 비롯되며, 대화도 단절된다. 말하는 이가 바보가 아니라면 자신의 말이 벽에 부딪혀서 되돌아오고 있음을 느끼는데, 어찌 말을 이어가겠는가. 서로 마음을 비우고 먼저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할 때, 대화가 되고 소통이 이루어진다. 

맥수지탄 [麥秀之嘆]
麥 : 보리 맥 秀 : 빼어날 수 之 : 어조사 지 嘆 : 탄식할 탄  보리가 무성하게 자란 것을 탄식한다는 뜻으로 나라가 무너져 예전과 같지 않음을 슬퍼하는 것,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탄식한다는 말이다.

『사기(史記)』 「송미자(宋微子世家」에 나오는 말이다.

고대 중국 은(殷)나라의 마지막 임금 주왕(紂王)은 군주로서의 직분을 잊고 술과 여색에 빠져 백성을 돌보지 않았으며, 미자(微子), 기자(箕子), 비간(比干) 등의 충직한 신하들의 충고도 듣지 않고 폭군으로 군림하였다. 주왕의 서형(庶兄)이기도 했던 미자는 자신의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비관하여 자결하려다가 결국 나라 밖으로 도망갔다. 주왕의 작은아버지이기도 했던 기자는 신하된 자가 간언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하여 나라를 떠난다면 군주의 허물을 들추는 꼴이며 자신이 백성의 기쁨을 뺏는 것이라 하고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미친 척하다가 잡혀서 노예가 되었다. 비간은 기자가 노예가 되는 것을 보고 다시 간언을 했다가 주왕에게 죽임을 당했다.

결국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서쪽의 제후들을 규합해 쳐들어갔고 주왕은 목야(牧野)에서 맞서 싸웠지만 패배하여 자살하였고 은 왕조는 멸망하였다. 훗날 기자가 은나라의 옛 도성을 지나다가 슬픔과 한탄을 담아 시를 지었는데 그 시는 다음과 같다. 보리 이삭은 무성하고, 벼와 기장은 윤기가 흐르는구나. 저 교활한 녀석이, 나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지. [麥秀漸漸兮, 禾黍油油兮. 彼狡童兮, 不與我好兮.]

화려했던 도읍은 흔적도 없고 옛날 궁궐이 있던 곳에는 곡식은 무성하게 자라있으니, 이 지경에 이른 것은 포악한 주왕이 충신들의 간언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로부터 조국의 멸망을 한탄하는 것을 ‘맥수지탄’이라고 하며 맥수서리(麥秀黍離), 서리맥수(黍離麥秀), 맥수지시(麥秀之詩)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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