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8일 금요일

사자성어 2

사자성어 .


독서삼도 [ 讀書三到 ]
讀 : 읽을 독 書 : 글 서 三 : 석 삼 到 : 이를 도책을 읽어 삼도(三到)에 빠진다는 말로, 정신을 집중하여 책을 읽는 것을 뜻함

책을 읽을 때는 주위 환경에 휘둘리지 말고 정신을 집중하라는 말로, 삼도란 심도(心到), 안도(眼到), 구도(口到)를 가리킨다. 마음과 눈과 입을 함께 기울여 책을 읽으라는 것이다. 독서삼매라고도 한다. 본래 삼매(三昧)란 불교에 있어서의 수행법으로,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시켜 감각적 자극이나 그 자극에 대한 일상적 반응을 초월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삼매에 빠지면 옆에서 벼락이 쳐도 모르는 것이다. 삼도(三到)도 그런 경지를 의미한다.  

동양권에서의 교육열은 예부터 대단하여, 공자(孔子)는 논어(論語) 첫머리에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하였고, 맹자(孟子)도 진심편(盡心篇)에서 군자에게는 세 가지의 즐거움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천하의 영재를 얻어 그를 교육하는 것(得天下英才而敎育之)’이라고 하였다. 송대(宋代)의 주자는 다음과 같은 권학가를 지어 학문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말하고 있다.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은 금방 늙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 잠깐의 시간이라도 가벼이 하지 말라. 미각지당춘초몽(未覺池塘春草夢) 못가의 풀들이 봄꿈에서 깨기도 전에 
계전오엽이추성(階前梧葉已秋聲) 마당가의 오동나무 잎이 가을 소리를 낸다. 

동양권에서는 관직에 나가는 것이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얻는 길이었다. 그리고 관직에 나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거쳐야 했으므로, 자연히 교육과 학문을 중시하게 되었다. 책을 읽는, 즉 독서하는 마음가짐을 강조한 말이 이 독서삼도이다.



무문농법(舞文弄法)
[요약] (舞: 춤출 무. 文: 글월 문. 弄: 희롱할 농,롱. 法: 법 법)
문장을 교묘하게 꾸며 법을 희롱한다는 뜻으로, 관리들이 법을 자기 입맛이나 권력자의 구미에 맞게 조작함으로써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고 나아가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말함.
[동어] 무문왕법(舞文枉法). (무문농묵舞文弄墨).
[출전] 《사기(史記) 卷一百二十九 화식열전(貨殖列傳)》

[내용] 사마천(司馬遷)은 화식열전(貨殖列傳)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재물을 얻고자 노력하는 것) 이러한 이치로 볼 때 어진 사람이 낭묘(廊廟= 묘당.廟堂= 조정의 정사를 논의하는 건물)에서도 도모하고 조정에서 논의하며 신의를 지켜 절개에 죽고, 동굴 속에 숨어 사는 선비가 높은 명성을 얻으려는 것은 결국 무엇을 위해서인가? 그것은 다 부귀로 귀착된다. 그러므로 청렴한 벼슬아치도 시간이 오래되면 더욱 부유해지고, 공정한 장사꾼도 마침내 부유해진다. 부라는 것은 사람의 타고난 본성이라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얻고 싶어한다. .....
.....由此觀之,賢人深謀於廊廟,論議朝廷,守信死節隱居巖穴之士設為名高者安歸乎?歸於富厚也。是以廉吏久,久更富,廉賈歸富。富者,人之情性,所不學而俱欲者也。.............

주살로 고기를 잡고 활을 쏘아 사냥하면서 새벽과 밤을 가리지 않고 서리와 눈을 무릅쓰며 동굴과 깊은 골짜기를 뛰어다니고 맹수의 위험을 피하지 않음은 맛있는 것을 얻기 위해서이다. 
도박. 경마. 닭싸움. 개싸움 등을 하면서 얼굴빛을 바꿔 가며 서로 자랑하고 반드시 싸워 이기려고 다투는 것은 져서 돈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나 도사 그 밖의 여러 가지 기술로 먹고 사는 사람이 노심초사하며 자신의 재능을 다하려는 것은 막대한 보수를 얻기 위해서이다.
벼슬아치가 글을 교묘하게 꾸며 법을 농간하고(吏士舞文弄法) 도장과 문서를 위조하여 자신들에게 내려질 형벌마저 피하지 않는 것은 뇌물을 탐닉하기 때문이다. 
농. 공. 상들이 저축하고 이익을 늘리는 것은 부를 구하고 재산을 불리려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혜와 능력을 다해 온 힘을 기울여서 남에게 재물을 넘겨주는 일은 없을 뿐이다. ....
弋射漁獵,犯晨夜,冒霜雪,馳阬谷,不避猛獸之害,為得味也。博戲馳逐,鬬雞走狗,作色相矜,必爭勝者,重失負也。醫方諸食技術之人,焦神極能,為重糈也。吏士舞文弄法,刻章偽書,不避刀鋸之誅者,沒於賂遺也。農工商賈畜長,固求富益貨也。此有知盡能索耳,終不餘力而讓財矣。


사마천의 <사기>에는 공직자들만을 다룬 문장이 세 편이나 있다. 
‘순리열전’, ‘유림열전’, ‘혹리열전’이 그것이다. ‘순리열전’은 백성들을 위해 올바르게 공직 생활을 한 모범 공직자들의 기록이다.
‘혹리열전’은 권력자의 눈치를 보며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백성들을 가혹하게 작취한 공직자들의 기록이다. ‘유림열전’은 이도저도 아닌 오로지 두 눈알만 굴리며 납작 엎드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복지부동한 공직자들의 기록인데 공교롭게 유학자들로 자처하는 자들이 대부분이어서 ‘유림열전’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 중 ‘혹리열전’에 등장하는 일부 사법관들의 행태는 지금 우리 현실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중 주양유(周陽由)라는 자는, 자기가 애호하는 사람은 죽을죄를 지어도 법률을 멋대로 유권 해석해 살려주고, 그가 증오하는 사람은 법령을 왜곡해서라도 사형판결을 내렸다.

 장탕(張湯)이란 자는, 처리한 안건 중에서 황제가 죄를 엄히 다스리고자 하는 뜻을 보이면 그 안건을 냉혹한 감사(監史)에게 맡겨 엄중하게 집행하게 했고, 만일 황제가 죄인을 석방시키자는 뜻을 보이면 법을 가볍게 적용하고 공평무사하게 집행하는 감사로 하여금 처리하게 했다.

 또 왕온서(王溫舒)라는 자는, 아첨을 잘하여 권세가들에게 비위를 잘 맞추었고, 권세가 없는 자는 노비처럼 대했다. 권세가 있는 자들은 설령 그 죄가 산처럼 많이 쌓여 있어도 건드리지 않았다.

 사마천은 이처럼 법조문을 교묘하게 악용하는 자들을 두고 ‘무문농법(舞文弄法)’이라 했다. 
‘문장력을 놀려 법을 농단한다’는 뜻이다. 
관리들이 법률 지식을 악용하여 법을 자기 입맛이나 권력자의 구미에 맞게 조작함으로써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고 나아가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지적한 사자성어로 ‘무문왕법(舞文枉法)’ 또는 ‘무문농묵(舞文弄墨)’이라고도 한다.

최근 우리 사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납득할 수 없는 판결들을 보노라면 ‘무문농법’과 이를 사리사욕을 위해 악용한 법관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법의 공평성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실현 요구가 어느 때보다 높다. 법관들은 법과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성찰하고, 법조문 뒤에 숨지 말고 세상과 사람을 통찰하는 인문학 소양을 길러야 할 것이다.

“어느 날 변호사 3000명이 한꺼번에 물에 빠져 죽었다. 이게 뭐지?”  “좋은 세상!”(영화 ‘필라델피아’ 중에서) 


動未嘗正

 움직일 동(力-9)아닐 미(木-1)일찍이 상(口-11)바로잡을 정(止-1)

이제 ‘죽간본’ 14-1이다. “其安也, 易持也; 其未兆也, 易謀也; 其脆也, 易判也; 其幾也, 易散也. 爲之於其亡有也, 治之於其未亂.”(기안야 이지야; 기미조야, 이모야; 기취야, 이판야; 기기야, 이산야. 위지어기무유야, 치지어기미란) 
“편안할 때 지켜가기 쉽고, 조짐이 나타나기 전에 꾀하기 쉽고, 무를 때 가르기 쉽고, 낌새가 있을 때 흩뜨리기 쉽다. 생겨나기 전에 해야 하고, 어지러워지기 전에 다스려야 한다.”

여기서 安(안)은 편안하다, 안정되다는 뜻이다. 易(이)는 쉽다는 뜻이다. 持(지)는 유지하다, 지속하다는 뜻이다. 兆(조)는 조짐, 징후를 뜻한다. 謀(모)는 꾀하다, 헤아리다는 뜻이다. 脆(취)는 무르다, 연하다는 뜻이다. 判(판)은 가르다, 나누다는 뜻이다. 幾(기)는 희미하다, 위태하다, 낌새를 뜻한다. 散(산)은 흩뜨리다, 내치다는 뜻이다. 

노자의 無爲(무위)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하지 않는 것,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이치대로 하는 것을 뜻한다는 점은 이미 거듭해서 말한 바 있다. 여기서는 또 다른 무위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쉽게 하는 것도 무위라는 말이다.

무슨 일이든 쉽게 하려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힘든 일이든 중요한 일이든 쉽게 할 수 있으면 쉽게 하려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쉽게 해서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얻는다면, 그게 이로움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러하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일이다. 
어떤 일인지, 언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알아야 쉽게 할 수 있는데, 일이나 상황은 제쳐두고 저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면서 덤비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문자’ ‘道原(도원)’에 나온다. “夫人從欲失性, 動未嘗正也.”(부인종욕실성, 동미상정야) “무릇 사람은 욕심을 따르다가 본성을 잃기 때문에 움직였다 하면 바르게 되는 적이 없다.
” 여기서 ‘본성’은 두 가지 뜻으로 쓰였다. 
첫째는 자신의 자질과 기질, 취향, 능력 따위를 이른다. 둘째는 전체적인 상황과 해야 할 일의 성질이다. 이 두 가지를 잘 파악하고 움직여야 하는데, 대개는 욕심이나 의욕이 앞서 그 점을 놓친다.



상전벽해 [ 桑田碧海 ]
桑 : 뽕나무 상 田 : 밭 전 碧 : 푸를 벽 海 : 바다 해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뜻으로, 세상이 몰라볼 정도로 변함을 비유한 말

원래 《신선전(神仙傳)》의 ‘마고선녀이야기’에 나오는 말이지만, 유정지(劉廷芝)의 시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에도 보인다. ‘마고선녀이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선녀 마고가 왕방평(王方平)에게 “제가 신선님을 모신 지가 어느 새 뽕나무 밭이 세 번이나 푸른 바다로 변하였습니다[桑田碧海]. 이번에 봉래(逢萊)에 갔더니 바다가 다시 얕아져 이전의 반 정도로 줄어 있었습니다. 또 육지가 되려는 것일까요.” 또한 ‘대비백두옹’은 다음과 같다.

낙양성 동쪽 복숭아꽃 오얏꽃[洛陽城東桃李花]
날아오고 날아가며 누구의 집에 지는고[飛來飛去落誰家]
낙양의 어린 소녀는 제 얼굴이 아까운지[洛陽女兒惜顔色]
가다가 어린 소녀가 길게 한숨짓는 모습을 보니[行逢女兒長嘆息]
올해에 꽃이 지면 얼굴은 더욱 늙으리라[今年花落顔色改]
내년에 피는 꽃은 또 누가 보려는가[明年花開復誰在]
뽕나무 밭도 푸른 바다가 된다는 것은 정말 옳은 말이다[實聞桑田變成海].

상전벽해는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의미에서 자신도 모르게 세상이 달라진 모습을 보고 비유한 말이다. 또한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될 수 있을지라도 사람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세월의 무상함을 연상케 하는 고사성어이므로, 그날 그날을 최선을 다하여 삶을 누리는 것이 지혜로운 인생살이이다. 상전변성해(桑田變成海)라고도 한다. 동의어는 창해상전(滄海桑田), 창상지변(滄桑之變), 상창지변(桑滄之變), 비슷한말은 능곡지변(陵谷之變:언덕과 골짜기가 서로 바뀐다는 뜻), 고안심곡(高岸深谷:높은 언덕이 무너져 골짜기가 되고, 깊은 골짜기가 언덕으로 변한다는 뜻)이다.


 신상필벌 [ 信賞必罰 ]
믿을 신:信, 상줄 상:賞, 반드시 필:必, 벌할 벌:罰공이 있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죄를 범한 자에게는 반드시 벌을 줌.

행동의 결과가 성과물로 나타나는 분야에서는 신상필벌이 필수입니다. 행동의 결과 공이 있는데도 임금에게 비판적이라고 해서 벌을 내리거나, 죄를 지었는데도 임금이 총애한다고 해서 상을 준다면 병사들은 실력을 쌓기보다는 임금 가까이 가기 위해 노력하겠지요. 따라서 신상필벌은 강력한 국가 건설에 필수 원리입니다. 
신(信)은 ‘믿는다, 믿음’과 같은 뜻의 글자인데, 위에서는 신(信)이 ‘분명히 하다’라는 의미로 씌었습니다. 이번에는 신(信)이 믿는다는 뜻으로 쓰인 경우입니다. 
 



안빈낙도 [ 安貧樂道 ]
安  편안 안 貧 가난할 빈  樂  즐길 낙(락), 노래 악, 좋아할 요  道 길 도구차(苟且)하고 궁색(窮塞)하면서도 그것에 구속(拘束)되지 않고 평안(平安)하게 즐기는 마음으로 살아감

공자가 제자들에게 강조했던 정신 중의 하나이다. 공자의 제자 중 특히 안회는 안빈낙도를 실천했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안회는 너무도 청빈하게 살았기 때문에 쌀뒤주가 항상 비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스승이 가르쳐 준 도를 즐겼다고 한다. 평생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했지만, 외부의 환경을 탓하거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주어진 환경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성인(聖人)의 도를 실천했다.

안빈낙도의 정신은 조선시대의 가사나 시조에서 많이 드러나고 있다. 정극인의 <상춘곡>에서는 자연을 벗하며 안빈낙도하고자 하는 작가의 바람이 나타난다. 이밖에도 조식, 송순, 한호 등의 시에서도 안빈낙도의 정신이 드러나고 있다.

 
各復其根

 각기 각(口-3)돌아갈 복(彳-9)그 기(八-6)뿌리 근(木-6)

장자처럼 슬펐다가 곧 누그러지면 무정한 것일까? 그처럼 아내의 죽음 앞에서 근원을 따지고 논리적으로 추론을 하는 것은 매정하고 삭막한 짓일까?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하는 것은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방식으로 부적절한 것일까? 더덩실 신명나게 춤을 추며 보내면 안 되는 일일까? 죽음은 그저 두려워해야 하는 일일까? 과연 삶은 좋고 죽음은 나쁜 것일까? 삶이 좋고 죽음이 나쁘다고 한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자. 우리는 늘 오늘 하루를 산다. 日常(일상)이라는 말 자체에 이미 그런 뜻이 담겨 있다.

하루가 가면 하루가 오고, 하루가 오면 또 하루가 간다. 그런 하루를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산다고 말은 하지만, 하루를 죽는 것 아닌가?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하는 말은 하루를 잘 살라는 말이면서 동시에 잘 죽으라는 말 아닌가? 하루가 아니라 순간순간마다 우리는 삶과 죽음을 겪고 있지 않는가?

1930년대 루돌프 쇤하이머(Rudolf Schoenheimer)는 당시에 새롭게 도입된 안정적인 질소 동위 원소 15N을 추적자로 하여 체내에 있는 대부분의 단백질 분자들이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며칠에 걸쳐서 ‘전환’된다는, 즉 기존의 분자는 파괴되고 새로운 분자가 생성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로써 살아 있는 생물은 겉으로는 비교적 안정적이고 한결같은 물리적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 실제로는 분자와 세포들이 끊임없이 분해되고 재생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상처 입은 자리에 딱지가 생기고 그 딱지가 떨어진 뒤에 새살이 돋는 것을 떠올려보라.

날마다 해가 뜨고 지는 것에, 계절이 바뀔 때마다 꽃이 피었다가 지고 마른 가지에 다시 새싹이 돋는 것에, 달이 찼다가 기울고 기울었다가 차는 것에, 우리가 밤마다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는 것에 ‘돌고 도는’ 하늘의 길이 작동하고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그 하늘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해 결국 “各復其根”(각복기근) 즉 “각각은 제 뿌리로 돌아간다.”





도청도설 [ 道聽塗說 ]
道 : 길 도 聽 : 들을 청 塗 : 진흙 도 說 : 말씀 설길에서 들은 일을 길에서 이야기한다는 뜻으로, 무슨 말을 들으면 그것을 깊이 생각지 않고 다시 옮기는 경박한 태도를 이르는 말. 

천박한 사람은 좋은 말을 들어도 그것을 깊이 자기의 것으로 간직하지 못한다는 데도 비유된다. 
공자의 《논어(論語)》 〈양화편(陽貨篇)〉에 나오는 말로 “道聽而塗說 德之棄也(길에서 듣고 길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덕을 버리는 짓이다)”에서 비롯되었다.  
 因時安位
- 따를 인(口-3)때시(日-6)편안할 안(宀-3)자라 위(人-5)

노자는 “其安也, 易持也”(기안야, 이지야) 곧 “편안할 때 지켜가기 쉽다”고 말했다. 安(안)은 안정되어 편안하다는 뜻이다. 안정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일정한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고, 편안함은 그런 안정으로 말미암아 육체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편하고 좋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면 이미 안정되고 편안한데, 그저 누리면 되는 것 아닌가? 구태여 지키려 애써야 하는가?

持(지)에는 가지다는 뜻과 함께 지키다, 버티다는 뜻도 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지키고 버틴다는 뜻이다. 누구나 안정되고 편안한 삶을 바란다. 그것은 그만큼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안정되고 편안한 상태에 이르기도 어렵지만, 그 상태를 유지하고 지속해 나가는 일도 매우 힘들다. 이는 역설적으로 인간이 불안정과 불편함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참으로 혼돈과 무질서의 파도를 타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어렵사리 안정된 상태에 이르러 편안함을 누리게 되면, 대개의 인간은 망각하고 착각한다. 안정된 상태가 계속 이어질 것이며 편안한 삶도 지속될 것이라고. 안타깝게도 삶도 세상사도 그렇지 못하다. 우리가 안정이라 여기는 것은 혼돈의 파도를 타면서 잠시 얻은 균형과 조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게 비록 편안함과 즐거움을 주었다고 해도 마냥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안정과 편안함을 느낄 때, 그 때 파도를 주시하며 파도의 형태와 추이를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간신히 얻은 안정과 편안함을 잃지 않고 훨씬 쉽게 지켜갈 수 있다.
‘문자’ ‘九守(구수)’에 나온다. “所謂聖人者, 因時而安其位, 當世而樂其業”(소위성인자, 인시이안기위, 당세이락기업) 
“이른바 성인은 때에 따라서 자신의 자리를 편안하게 하고, 세상의 변화를 마주하면서 자신의 일을 즐긴다.” 성인과 범부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어디에서든 자신의 자리를 편안하게 하고 무슨 일이든 그 일을 즐길 줄 아느냐로 나뉜다.

달리 말하면, 범부는 안정과 편안함에 망각하고, 성인은 다음 파도를 기다린다.

거재두량 [ 車載斗量 ]
車 : 수레 차 載 : 실은 재 斗 : 말 두 量 : 잴 량수레에 싣고서 말[斗]로 잰다는 뜻으로, 아주 흔하거나 쓸모 없는 것이 많음을 비유하는 말. 

《삼국지(三國志)》 〈오서(吳書)〉 '오주손권전(吳主孫權傳)'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219년 오나라의 손권이 위(魏)나라의 조조(曹操)와 결탁하여 촉한(蜀漢)의 용장 관우(關羽)를 죽였다. 221년 촉한이 오나라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오나라의 손권은 위나라에 구원을 요청하기로 하였다. 위나라의 사자로 중대부(中大夫) 조자(趙咨)가 뽑혔다.  

조자에게 손권이 말하였다. "결코 오나라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마시오." 조자가 위나라의 수도에 도착하자, 위왕 조비(曹丕)는 그가 찾아온 이유를 알면서도 짐짓 속내를 떠보았다. "오나라의 군주는 어떤 사람인가?" "총명하고 자애롭습니다. 또한 재능이 뛰어나고 원대한 지략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과장이 심하군." 조비가 비꼬듯 웃었다. 그러자 조자가 하나하나 실례를 들어가며 반론하였다. 조비가 또 물어보았다. "만일 위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한다면?" "대국에 무력이 있다면, 소국은 방위책이 있습니다." "위나라가 두려운가?" "오나라에는 100만의 용맹한 군사와 함께 지리적인 천험(天險)이 있습니다." "그대 같은 인재가 오나라에는 얼마쯤 되나?" "나 같은 자는 수레에 싣고 말로 잴 정도[車載斗量]입니다." 조비가 탄복하여 말하였다. "사신으로서 군주의 명을 욕되게 하지 않는다 함은 그대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오." 

배석한 위나라의 신하들도 감동하였다. 조자의 활약으로 오나라와 위나라의 군사 동맹이 성립되었다. 조자가 돌아오자, 손권은 상(賞)과 함께 기도위(騎都尉) 벼슬을 내렸다.


모수자천 [ 毛遂自薦 ]
毛 : 털 모 遂 : 드디어 수 自 : 스스로 자 薦 : 천거할 천  모수가 스스로를 천거했다는 뜻으로, 부끄러움 없이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을 빗대어 가리키는 말. 

《사기(史記)》 평원군열전(平原君列傳)에 나오는 말로, 본래는 어려운 일을 당하여 스스로 그 일을 맡고 나선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으나, 차츰 의미가 변질되어 일의 전후도 모르고 나서는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 다음과 같은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전국시대에 진(秦)이 조(趙)의 수도 한단(邯鄲)을 포위하자, 조왕은 평원군을 초(楚)나라에 보내 합종(合從)을 맺음으로써 이를 격퇴하려 하였다. 평원군은 출발에 앞서 문하에 출입하는 식객 중 20명을 뽑아 같이 가려 했는데, 19명을 선발하고 적당한 사람이 없어 1명을 채우지 못했다. 이때 식객 중에 모수(毛遂)라는 사람이 스스로 자기가 끼기를 청하였다(毛遂自薦). 그것을 보고 평원군이 말하였다.

"당신은 내게로 와 몇 년이나 되었소?" 모수가 3년 되었다고 대답하자, 평원군은 다시 물었다. "대체로 현인이란 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아서 가만히 있어도 드러나는 법인데, 3년 동안 나는 당신에 관한 말을 들은 적이 없구료." 그러자 모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그래서 이제 주머니에 넣어 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결국 평원군은 모수를 데리고 초나라로 갔다. 초왕과의 회담에서 식객 19명이 모두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평원군은 마침내 모수에게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이 말을 들은 모수는 칼을 빼어든 채 초왕의 면전으로 나아가 "당신은 수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있지만 지금 당신의 목숨은 내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은(殷)의 탕왕(湯王)이나 주(周)의 문왕(文王)이 패업을 이룬 것은 군사가 많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초나라는 땅도 비옥하고 군사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진나라 군사에게 종묘를 위협받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합종은 초나라도 위한 것이지 조나라만 위한 것은 아닙니다" 하고 설득하여 마침내 합종을 성공시켰다. 일을 마무리하고 조나라로 돌아온 평원군은 이후 모수를 상객(上客)으로 모시고 후하게 대접했다 한다.




방심부구(放心不求)
[요약] (놓을 방마음 심아닐 부찾을 구)
마음을 놓아 버리고서도 찾을 줄을 모른다는 뜻으로사람의 길은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이라는 의미.
[출전]맹자(孟子고자장구 상(告子章句 上)》 
  
[내용이 성어는 맹자가 학문의 길을 이야기한 내용이다
  
孟子께서 말씀하셨다。 
은 사람의 마음이요는 사람의 길이다그 길을 버리고 다니지 아니하며그 마음을 풀어 내놓아 버리고도 찾을 줄 모르니슬프도다。 
사람이 닭이나 개가 있어 풀어 내놓아 버리면 찾을 줄은 알면서도풀어 내놓아 버린 마음이 있는데도 찾을 줄을 모른다。 學問의 길은 다른 것이 아니다。 그 풀어 내놓아 버린 마음을 찾을 따름이다
孟子曰:「人心也人路也舍其路而弗由放其心而不知求哀哉人有雞犬放則知求之有放心而不知求學問之道無他求其放心而已矣。」 

이하 [문화일보박석 교수의 古典名句 放心不求의 글.
  
人有鷄犬放 則知求之 有放心而不知求(인유계견방 즉지구지 유방심이부지구)
사람이 닭이나 개가 도망가면 찾을 줄을 알지만 마음을 잃고서는 찾을 줄을 모른다
  
맹자의 고자상(告子上편에 나오는 말이다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면서 우리 몸에 사지가 있듯이 우리의 마음에는 누구나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사단(四端)이 있다고 말했다이뿐만 아니라 최선을 다해 그 마음을 잘 닦는 자는 그 본성을 알게 되고 본성을 알게 되면 하늘을 알게 된다는 주장도 펼쳤다맹자에게 있어 마음이란 바로 지고의 하늘을 알 수 있는 통로이다그런데 사람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닭이나 개를 잃어버리면 그것을 찾으려고 애를 쓰지만 이렇게 소중한 자신의 마음을 잃어버리고는 그것을 찾으려 하지 않으니 맹자로서는 개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성선설을 주장했던 맹자와는 달리 동시대의 사상가인 고자는 인간의 마음은 원래 선악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환경에 따라 선악이 결정될 뿐이라고 말했고조금 후대의 사상가인 순자는 성악설을 펼쳤다오랜 세월 맹자의 성선설이 정통으로 여겨졌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는 그것이 반드시 옳다고 볼 수도 없다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개나 닭보다는 훨씬 더 소중하지 않으냐는 맹자의 개탄은 지금도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이전 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그러나 삶에 대한 만족도는 그다지 오르지 않았고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여기는 사람도 많다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데는 기본적인 물질적 조건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역시 자신의 마음을 잘 챙기는 것이다인간과 자연을 사랑하고 자그마한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그런 아름다운 마음을 다 잃어버리고 나면 어디에서 만족과 행복을 찾을 수 있겠는가?   



목경지환 [ 木梗之患 ]
木 : 나무 목 梗 : 인형 경 之 : 어조사 지 患 : 근심 환나무 인형의 근심이라는 뜻으로, 타향에서 죽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거나 자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

《사기(史記)》 색은(索隱)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맹상군(孟嘗君)은 제(齊)나라의 공족(公族)이며, 전국시대 말기 '사군(四君)'의 한 사람으로, 이름은 전문(田文)이다. 선왕(宣王)의 서제(庶弟)인 아버지 전영(田瓔)의 뒤를 이은 다음, 귀천의 구분 없이 천하의 인재들을 모아 후하게 대접하였다. 그래서 식객이 수천 명이나 되었으며, 어질다는 소문을 천하에 떨치게 되었다. 맹상군이 진(秦)나라 소왕(昭王)의 초빙으로 진나라로 들어가려 했을 때의 일이다. 여러 빈객들이 반대했으나 그는 간언을 물리치며 이렇게 말하였다.

"인간 세상의 일로 나를 간한다면 그것은 내가 전부 아는 일이며, 만약 귀신의 일을 빌려 나를 간한다면 나는 그를 죽일 것이다." 그때 소대(蘇大)라는 빈객이 들어와 그에게 말하였다. "제가 이곳으로 오면서 치수(淄水) 위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흙으로 만든 인형과 나무로 만든 인형이 서로 말하고 있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나무 인형이 흙 인형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본래 흙인데 인형으로 만들어졌군요. 이제 폭우가 쏟아져 물이 불면 사람들은 당신을 부수어 무너진 곳을 막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흙 인형이 대답하기를, '나는 무너진 곳을 막다가 나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당신은 정원에 있던 복숭아나무인데 깎여 나무 인형이 되었군요. 폭우가 내려 물이 불면 당신은 반드시 둥둥 떠내려가 멈출 수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진나라는 천하를 노리는 강한 나라이고, 호랑이나 이리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래도 진나라로 들어간다면 혹 나무 인형의 화를 입게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이 말을 듣고 맹상군은 진나라로 들어가는 것을 멈추었다.

목경지환이란 나무 인형이 화를 당하면 본래의 나무로 돌아갈 수 없듯이, 본래의 자기 모습을 잊고 함부로 행동해서는 돌이킬 수 없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또 타향에서 죽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未兆易謀

- 아닐 미(木-1) 조짐 조(儿-4) 쉬울 이(日-4) 꾀할 모(言-9)

노자는 “其未兆也, 易謀也”(기미조야, 이모야) 곧 “조짐이 나타나기 전에 꾀하기 쉽다”고 말했다. 이 말을 옳게 여기지 않을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그럼에도 대개의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거나 손사래를 칠 것이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기는 지독하게도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니, 조짐이 나타나기 전이 뭐냐. 일이 터진 뒤에도 좀체 파악하지 못하고, 감지한 뒤에는 허둥대는 게 다반사인데.

칼 야스퍼스가 ‘축의 시대’라 명명했던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 사이에 인류는 정신의 발달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이룩했다. 노자를 비롯한 제자백가의 사상가들이 활동한 시기이기도 하다. 바로 그 시기부터 인류는 역사를 본격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인류가 남긴 수많은 역사 기록은 흥미롭게도 인간의 위대함보다는 왜소함을 더 잘 보여준다. 특히 사람들이 서로 시기하고 배신한 일, 탐욕으로 기만한 일, 권력을 쥐려고 온갖 술수와 계략을 꾸민 일, 그러다가 패가망신한 일로 가득하다.

사마천이 치욕적인 宮刑(궁형)을 감내했던 것은 선친의 유업을 이어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역사서가 무엇이기에? 사마천은 “欲以究天人之際, 通古今之變, 成一家之言”(욕이구천인지제, 통고금지변, 성일가지언) 즉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꿰뚫어 일가의 문장을 이루고자” ‘사기’를 썼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천하에 흩어져 있는 이야기를 모아서 사건들을 고찰했는데, 그것은 성공과 실패, 흥기와 멸망의 요체를 찾아내 후세 사람들을 일깨우기 위해서였다. 
사마천의 ‘사기’는 동아시아에서 2000년 넘는 세월 동안 모든 지식인이 반드시 읽고 배워야 할 역사서였다. 그런데 보라! ‘사기’의 제국인 중국에서만도 얼마나 많은 가문과 왕조가 명멸했는가? 고려와 조선은 또 어떻고! 

사마천을 비롯해 수많은 역사가가 그토록 경고하고 경계했건만, 결국 사람들은 무시와 망각으로 화답하며 옛사람의 전철을 밟았다. 이런 지경인데, 조짐이 나타나기 전에 무슨 일을 꾀한단 말인가! 


목인석심 [ 木人石心 ]
木 : 나무 목 人 : 사람 인 石 : 돌 석 心 : 마음 심나무나 돌처럼 마음이 굳다는 뜻으로, 의지가 강하여 세속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 

《진서(晉書)》 하통전(夏統傳)에 나오는 말로, 권력이나 부귀, 여색 등 세상의 유혹에 움직이지 않는 지사(志士)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삼월 삼짇날, 서진(西晉)의 태위(太尉) 가충(賈充)이 일행을 거느리고 도성 밖의 뤄허[洛河]로 봄나들이를 나갔다. 한창 봄빛을 즐기던 가충의 눈에 문득 한 인물이 들어왔다. 수면 위에 작은 배를 띄우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약초를 말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주위의 소란도 잊은 듯 얼굴에 작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를 불러 누구냐고 묻자, 회계군(會稽郡) 태생의 하통이라고 했다. 

세속이 싫어 시골에 묻혀 사는데 어머니 약을 사러 이곳에 왔다고 한다. 호기심이 생긴 가충이 물었다. "그대는 강변 태생이니 배를 부리는 것에는 능숙하겠구먼. 그 솜씨를 한번 보여주지 않겠나?" 하통은 그러마고 답한 후 약초를 치우고 노를 저어 나갔다. 배는 마치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고, 배가 나아갈 때마다 흰 물결이 아름다운 파도를 만들었다. 너무나 훌륭한 솜씨에 가충은 넋을 잃었다. 하통이 돌아오자 그에게 반한 가충이 다시 물었다. 

"그대는 고향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가?" "제가 좋아하는 대우(大禹)와 효녀 조아(曹娥), 의인 오자서(伍子胥) 세 분의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하통이 대답하고는 발로 장단을 치며 노래하는데, 가락이 절묘하여 듣는 사람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 가충이 그에게 벼슬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자, 그때부터 하통은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가충은 '이야말로 목인심석이로군' 하며 감탄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흔히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목석같다고 한다.  

목인심석이란 본래 세속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심지가 굳은 사람을 가리켰는데, 오늘날에는 뜻을 확대하여 바보 같은 사람을 목석이라고도 한다.


문유십의(文有十宜)
[요약] (文: 글월 문. 有: 있을 유. 十: 열 십. 宜: 마땅할 의)
글이 반드시 갖춰야 할 10가지 조건이라는 뜻.
[출전] 《독서보(讀書譜)》


명나라 때 설응기(薛應旂·1500~ 1575)가 말한, 문장이 반드시 갖춰야 할 열 가지(文有十宜)를 소개한다. '독서보(讀書譜)'에 나온다.

첫 번째는 진(眞)이다. 글은 참된 진실을 담아야지 거짓을 희롱해서는 안 된다. 다만 해서는 안 될 말까지 다 드러내서는 안 되니 경계의 분간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실(實)이다. 사실을 적어야지 헛소리를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이때 다 까발리는 것과 사실을 말하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
세 번째는 아(雅)다. 글은 우아해야지 속기(俗氣)를 띠면 안 된다. 겉만 꾸미고 속이 속되고 추하면 가증스럽다.
네 번째는 청(淸)이다. 글은 맑아야지 혼탁해서는 못쓴다. 그래도 무미건조해서는 곤란하다.
다섯 번째는 창(暢)이다. 글은 시원스러워야지 움츠러들어서는 안 된다. 이때도 시원스레 활달한 것과 제멋대로 구는 것의 구별이 필요하다.

여섯 번째는 현(顯)이다.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야지 감춰지면 안 된다. 하지만 뜻이 천근(淺近)해서 여운이 없는 글은 못쓴다.
일곱 번째는 적확(的確)이다. 꼭 맞게 핵심을 찔러야지 변죽만 울리면 못쓰는 글이다. 그러자면 글이 한층 상쾌해야 한다.
여덟 번째는 경발(警拔)이다. 글은 시원스러워야지 낮고 더러워서는 안 된다. 그래도 그 안에 화평스러운 기운이 깃들어야 한다. 이게 참 어렵다.
아홉 번째는 남이 하지 않은 말을 하는 것(作不經人道語)이다. 제 말을 해야지 남의 말을 주워 모아서는 안 된다. 다만 문장의 구법(句法)과 자법(字法)은 모두 바탕이 있어야 한다. 억지로 지어내면 못쓴다.
마지막 열 번째를 필자가 추가하자면 간(簡)을 꼽겠다. 글은 간결해야지 너절해서는 안 된다. 할 말만 해서 자기 뜻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어서 그는 통탄한다. 요즘 사람은 공부도 없고 문장의 법도도 모르면서 남의 말을 끌어와 그럴듯한 흉내로 남의 이목을 속이기만 좋아한다. 한번 보면 속이 훤히 들여다보여서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제목과 관계도 없는 내용을 늘어놓아 대중을 현혹하고 법도도 지키지 않는다. 이런 글은 모두 문마필요(文魔筆妖), 즉 문장의 마귀요 글의 요괴에 해당한다. 이를 범하는 자는 당장 몰아내어 경계로 삼아야 한다.


요원지화 [ 燎原之火 ]
燎 : 화톳불 요  原 : 들판 원 之 : 어조사 지  火 : 불 화 화톳불처럼 타들어 가는 들판의 불길이라는 뜻으로, 어떤 일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원상태로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를 가리키는 말.

《서경(書經)》의 반경편(盤庚篇)에 나오는 말이다. 고대 중국 은(殷)나라 탕(湯)임금의 10대 손인 반경(盤庚)이 황하의 수해를 피하기 위해 수도를 경(耿)에서 은(殷)으로 옮기려고 하자 여기저기서 반대의 소리가 많았다. 반경은 수도를 옮기려는 의지가 확고했지만 반대 여론을 힘으로만 누르지 않고 잠재우기 위해 설득에 나섰다. 맨 먼저 조정의 문무백관을 설득하려고 그는 관리들을 모아 놓고 간곡히 부탁했다. “너희는 어찌 나에게 고하지 않고서(汝曷弗告朕), 서로 뜬소문으로 부추겨, 백성들을 공포에 잠기게 하는가?(而胥動以浮言 恐沈于衆) 마치 불이 들판에 붙은 것과 같아서(若火之燎于原), 너희에게 가까이 갈 수조차 없는데 어찌 그것을 박멸할 수 있겠느냐(不可嚮爾 其猶可樸滅). 그러므로 오직 너희 무리가 스스로 편안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지, 나에게 허물이 있는 것이 아니다(則惟爾衆 自作弗靖 非予有咎).” 이것을 알기 쉽게 풀이한다면 “너희들이 나에게 알리지도 않고서 뜬소문을 퍼뜨려 백성들이 공포와 혼란에 빠져 있다. 나쁜 소문이 번져가면 그것은 마치 넓은 벌판에 화톳불을 붙여 놓은 것과 같아 아무도 그것에 근접할 수도 없고 더군다나 그 불을 끄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너희가 스스로 불안한 상태를 만들어낸 것이지 내 잘못은 없다.”라는 뜻이다.

이처럼 요원지화란 원래 무서운 기세로 타고 있는 들판의 불길을 뜻하였으나 현대에 와서는 오랫동안 억눌린 세력이나 주장이 걷잡을 수 없게 퍼져나가는 상태를 가리키게 되었다


목후이관 [ 沐猴而冠 ]
沐 : 목욕 목 猴   : 원숭이 후 而 : 어조사 이 冠 : 갓 관 원숭이가 관을 썼다는 뜻으로, 의관은 그럴 듯하지만 생각과 행동이 사람답지 못하다는 말.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오는 말이다. 홍문(鴻門)의 연(宴)으로 유방으로부터 진(秦)의 수도 함양을 넘겨받은 항우는 약탈과 방화를 자행하여 함양을 폐허로 만들었다. 함양이 폐허로 변하자, 자기의 성공을 고향에서 뽐내기도 할 겸 해서 초(楚)의 팽성(彭城)으로 천도를 서둘렀다. ‘부귀한 뒤에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는 금의환향(錦衣還鄕)의 욕심 때문이었다. 함양은 주(周)와 진(秦)이 일어났던 패업의 땅으로, 관중(關中)이라고도 불리는 천혜의 요지이다. 그럼에도 항우가 천도를 고집하자, 간의대부(諫議大夫) 한생(韓生)이 이를 간하였다. “관중은 예부터 천혜의 요지로 패업의 땅이었고, 토지 또한 비옥합니다. 여기에 도읍을 정하고 천하의 왕이 되십시오. 지난 번 범승상(范丞相:范增)이 떠날 때도 결코 함양을 버리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이 말을 들은 항우는 화를 벌컥 내면서 한생의 말을 막았다. 한생은 크게 탄식하며 물러나서는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원숭이를 목욕시켜 관을 씌운 꼴이군(沐猴而冠).” 그런데 이 말을 그만 항우가 듣고 말았다. 항우가 옆에 있던 진평에게 그 뜻을 묻자, 진평이 답하였다. “폐하를 비방하는 말이온데,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원숭이는 관을 써도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과 원숭이는 꾸준하지 못해 관을 쓰면 조바심을 낸다는 것, 그리고 원숭이는 사람이 아니므로 만지작거리다가 의관을 찢고 만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듣고 격분한 항우는 한생을 붙잡아 펄펄 끓는 가마솥에 던져 죽였다. 한생이 죽으면서 말했다. “나는 간언하다가 죽게 되었다. 그러나 두고 보아라. 백일 이내에 한왕(漢王)이 그대를 멸하리라. 역시 초나라 사람들은 원숭이와 같아 관을 씌워도 소용이 없구나.” 결국 천도를 감행한 항우는 관중을 유방에게 빼앗기고 마침내는 해하(垓下)에서 사면초가(四面楚歌) 속에 목숨을 끊고 말았다



파과지년 [ 破瓜之年 ]
破 : 깨뜨릴 파 瓜 : 오이 과 之 : 의 지 年 : 해 년 여자의 나이 16세, 남자의 나이 64세를 가리키며 '파과(破瓜)'가 오이를 깨뜨린다는 뜻으로, 초경(初經)이 있게 되는 나이를 비유하거나 처녀성을 잃게 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파과지년(破瓜之年)'이란 말은 '瓜(과)'자를 세로로 한가운데를 나누면 두 개의 '八(팔)'자가 되는데, 이것을 합하면 16, 곧 여자의 나이 16세를 가리키는 수(數)가 되고, 또 이것을 곱하면 64가 되어 남자의 나이 64세를 가리키는 수가 된다는 데서 온 말이다. 약칭으로 '파과'라고도 한다. '파과(破瓜)'는 '외를 깨친다'라는 뜻으로, 오이를 여성으로 비유하여 여자의 나이 16세를 가리킨다. 또 여자가 처녀를 깨친다 하여 '처녀성을 잃는다'는 의미와 '초경이 시작되는 나이'를 가리키기도 한다. 중국 진(晉)나라의 손작(孫綽)의 시 《정인벽옥가(情人碧玉歌)》에 이 말이 나온다.  

푸른 구슬이 외를 깨칠 때[碧玉破瓜時(벽옥파과시)] 
님은 마음을 쏟아 사랑을 한다[郎爲情顚倒(낭위정전도)] 
낭군에게 마음을 느껴 부끄러워하지 않고[感君不羞赧(감군불수난)] 
몸을 돌려 님의 품에 안겼네[廻身就郎抱(회신취랑포)] 

이 시는 연애시로서, 여기서 '과(瓜)를 깰 때'란 말은 여자가 처녀를 깨친다는 뜻이며, 초경이 시작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 사랑을 알게 되는 16세를 가리키기도 한다. 청(淸)나라의 문인인 원매(袁枚)의 시론(詩論) 《수원시화(隨園詩話)》에는 '외를 깨치니, 즉 풀어서 말하여 첫 월경이 시작되었을 때, 외를 깨침과 같이 , 곧 홍조를 보게 된다, 안 그런가[破瓜 或解以爲月事初來 如破瓜則見紅潮者 非也]?'라는 말이 있다. 또 청나라의 적호(翟灝)의 《통속편(通俗編)》에는 '살피건대, 풍속에 여자가 몸을 깨침으로써 외를 깨친다 하거니와, 안 그런가[按俗以女子破身爲破瓜 非也]?'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파과'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초경의 시작과 처녀성을 잃는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밖에도 '파과'는 남자의 나이 64세를 비유하여 쓰이기도 하는데, 남자로서 이 나이가 되면 혼자서 잠자리에 드는 나이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송(宋)나라의 축목(祝穆)이 쓴 《사문유취(事文類聚)》에는, 당나라의 여동빈(呂洞賓)이 장기에게 보낸 시에 '공성당재파과년(功成當在破瓜年)'이란 것을 들어, '파과'는 남자의 나이 64세의 뜻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견위필규(見違必糾)
[요약] (見: 볼 견. 違: 어길 위. 必: 반드시 필. 糾 : 바로잡을 규)
어긴 것을 보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이하 [경남신문]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견위필규(見違必糾)의 글
어긴 것을 보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국민들이 국가를 위해서 세금을 내고 국방의 의무를 하는 것은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아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다. 국가는 국방과 치안을 유지하여 국민들을 안전하게 살게 해 줄 의무가 있다. 그래서 거의 모든 국가에는 군대, 사법부, 경찰, 검찰 등의 기관을 두고 있는 것이다.
공기가 오염되거나 자연환경이 오염되면 정화를 시키려고 국가나 민간단체에서 많은 노력을 한다. 법률 위반이나 질서 파괴 등은 환경오염 못지않은 정신적 오염이니 이를 정화시켜야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법치(法治)가 무너진 지 오래됐다. 역대 정권들이 정통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불법행위를 하는 사람에게 제재를 가하지 못했다. 혹 제재를 가했다 해도 곧 사면해 주어 버린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면 영웅이 되었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법은 아무런 권위가 없게 되었다. 공권력에 도전해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법질서를 파괴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통령이나 집권당에서 오히려 법을 어기는 시위대를 편드는 태도를 보인다.
벌써 일반 국민들이 불안해서 살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민노총 시위대가 지난달 14일에는 대검청사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여 문무일 검찰총장과 대검찰청 간부들은 모두 피하여 뒷문으로 출근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이런 일이 처음 발생했다.
대법원장이 출근하는 차에 70대 남성이 화염병을 던졌다.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재판을 받던 피의자가 법원 질서를 유지하는 경위를 폭행하고 법원 기물을 부수었다. 충남 아산에서는 민노총 노조원들이 회사 전무를 폭행하는 공포 분위기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민노총 소속 노조원들을 우선적으로 고용하라고 전국 각 기업을 다니며 압력을 가하고 있다. 곳곳에서 불법 시위 점거, 폭행이 연일 이어지고 있어 국민들은 불안하다. 더 심각한 것은 대통령, 법무부장관, 검찰총장, 경찰청장, 대법원장 등이 이런 사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민노총의 불법시위는 문제 삼지 않고 상당히 대우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통령의 이런 언행은 민노총 간부들로 하여금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누구를 막론하고 공권력을 파괴하거나 도전하면 반드시 정당하게 응분의 처벌을 해야 한다. 공권력을 파괴하고 도전하는 것을 그대로 두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다. 미국 같은 나라는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나라라 관대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공권력에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강력한 제재를 가한다. 시위대가 경찰 제지선을 넘으면 곤봉으로 무차별 난타를 한다. 필요할 때는 범죄자에게 총도 발사한다. 주차허가지역 아닌 곳에 주차를 하면 자동차를 부수어버린다고 한다.
각종 법을 어기는 것을 막는 것이 민주주의다. 법을 어겼으면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 동방한학연구소장

수불석권 [ 手不釋卷 ]
手 : 손 수 不 : 아닐 불 釋 : 놓을 석 卷 : 책 권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뜻으로, 열심히 공부함을 이르는 한자성어.

항상 손에 책을 들고 글을 읽으면서 부지런히 공부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항상 책을 가까이 두고 독서하는 것을 가리킨다. 《삼국지(三國志)》 〈오지(吳志)〉 '여몽전(呂蒙傳)'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에서 후한(後漢)이 멸망한 뒤 위(魏)·오(吳)·촉한(蜀漢) 세 나라가 정립한 삼국시대에 오나라의 초대 황제인 손권(孫權)의 장수 여몽(呂蒙)은 전쟁에서 세운 공로로 장군이 되었다. 손권은 학식이 부족한 여몽에게 공부를 하라고 권하였다. 독서할 겨를이 없다는 여몽에게 손권은 자신이 젊었을 때 글을 읽었던 경험과 역사와 병법에 관한 책을 계속 읽고 있다고 하면서 "후한의 황제 광무제(光武帝)는 변방일로 바쁜 가운데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으며[手不釋卷], 위나라의 조조(曹操)는 늙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였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래서 여몽은 싸움터에서도 학문에 정진하였다. 그뒤 손권의 부하 노숙(魯肅)이 옛친구인 여몽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다가 박식해진 여몽을 보고 놀랐다. 노숙이 여몽에게 언제 그만큼 많은 공부를 했는지 묻자, 여몽은 "선비가 만나서 헤어졌다가 사흘이 지난 뒤 다시 만날 때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볼 정도로 달라져야만 한다[刮目相對]"라고 말하였다. 《삼국지》에 나오는 여몽의 고사로, 손권이 여몽에게 부지런히 공부하라고 권유하면서 말한 '수불석권'은 손에서 책을 놓을 틈 없이 열심히 글을 읽어 학문을 닦는 것을 의미한다.


속수지례 [ 束脩之禮 ]
束 : 묶을 속 脩 : 육포 수 之 : 어조사 지 澧 : 예도 례
묶은 육포의 예절이라는 말로, 스승을 처음 만나 가르침을 청할 때
작은 선물을 함으로써 예절을 갖춘다는 뜻.

《논어》술이(述而)편에 나오는 말이다. 자왈(子曰;공자가 말하기를) 자행속수지이상 오미상무회언(自行束脩之以上, 吾未嘗無誨焉;속수 이상의 예를 행한 자에게 내 일찍이 가르쳐주지 않은 바가 없었다.) 속수(束脩)는 열 조각의 마른 고기로, 예물 가운데 가장 약소한 것이다. 공자는 모든 가르침은 예(禮)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제자들에게 가장 작은 선물인 속수 이상의 예물을 가지고 오도록 함으로써 제자의 예를 지키도록 하였다. 여기에서 속수지례란 제자가 되기 위하여 스승을 처음 뵈올 때에 드리는 예물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지단의장(紙短意長)
[요약] (紙: 종이 지. 短: 짧을 단. 意: 뜻 의. 長: 길 장)
짧은 종이에 담긴 긴 뜻이라는 뜻으로, 겉보다는 담긴 말이 지극하다는 의미.



악목불음[ 惡木不蔭 ]
惡 : 악할 악木 : 나무 목不 : 아닐 불蔭 : 그늘 음
나쁜 나무에는 그늘이 생기지 않는다는 말로, 덕망이 있는 사람 주변에 따르는 무리들이 많다는 뜻.

법가(法家)인 관중(管仲)의 《관자(管子)》에 나오는 말이다.
“선비는 덕망이 있고 큰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쁜 나무에는 그늘이 생기지 않는 법이다. 나쁜 나무도 이것을 수치스러워 하는데 하물며 악인들과 함께 있는 경우에는 어떠하겠는가?”
《순자(旬子)》에는 ‘수음조식(樹陰鳥息)’이란 말이 나온다. 즉 나무에 그늘이 있어야 새가 쉴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이 나쁜 마음을 품고 있으면 그 주위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는다. 사람이 덕망이 있어야만 사람들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만한 대인관계에 힘쓰고 인격과 덕망을 갖추도록 노력하라는 뜻에서 쓰인 말이다.

광이불요(光而不耀)
[요약] (光: 빛 고아. 而: 말 이를 이. 不: 아닐 불. 耀: 빛날 요)
빛나되 번쩍거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너무 번쩍거리면 뒤탈이 나므로 처신을 잘 하라는 의미.
[출전] 《노자(老子) 五十八章》
[내용] 이 성어는 노자(老子) 58장에 나오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 다스림이 어리숙하면 그 나라는 돈후해지고, 다스림이 깐깐하면 그 나라는 황폐해진다. 재앙에는 복이 기대고 있고, 복에는 재앙이 엎드리고 있으니, 누가 그 끝을 알겠는가. 정해진 올바름이란 없다. 올바른 것은 다시 이상한 것이 되고, 선한 것은 다시 요망한 것이 되니, 사람들의 미혹됨은 참으로 오래되었구나. 이 때문에 성인은 반듯하면서도 남을 재단하지 않고, 청렴하되 남에게 상처주지 않으며, 곧되 널리 펼치지 않고, 빛나면서도 번쩍거리지 않는다.
其政悶悶, 其邦惇惇. 其政察察, 其邦缺缺. 禍福之所倚, 福禍之所伏, 孰知其極. 其无正也. 正復爲奇, 善復爲妖. 人之迷也, 其日固久矣. 是以聖人方而不割, 廉而不劌, 直而不肆, 光而不耀.

광해군 때 권필(權韠·1569~1612)이 시를 지었다.
"어찌해야 세간의 한없는 술 얻어서, 제일 높은 누각 위에 혼자 올라 볼거나.(安得世間無限酒, 獨登天下最高樓)"
성혼(成渾)이 말했다.
"무한주(無限酒)에 취해 최고루(最高樓)에 오른다 했으니, 남과 함께하지 않으려 함이 심하구나. 그 말이 위태롭다."
뒤에 권필은 시로 죄를 입어 비명에 죽었다.
정인홍(鄭仁弘·1535~1623)이 어려서 산속에서 글을 읽고 있었다. 감사가 우연히 묵었다가 한밤중의 글 읽는 소리에 끌려 그 방으로 찾아갔다. 기특해서 시를 지을 줄 아느냐고 묻고, 탑 곁에 선 어린 소나무를 제목으로 운자를 불렀다. 정인홍이 대답했다.
"작고 외론 소나무가 탑 서쪽에 있는데, 탑은 높고 솔은 낮아 나란하지 않구나. 오늘에 외소나무 작다고 하지 말라. 훗날에 솔 자라면 탑이 외려 낮으리니.(短短孤松在塔西, 塔高松下不相齊. 莫言今日孤松短, 松長他時塔反低)" 감사가 그 재주와 높은 뜻에 탄복하며 말했다.
"훗날 반드시 귀히 되리라. 다만 뜻이 지나치니 경계할지어다." 나중에 그는 대단한 학문으로 벼슬이 영의정에 올랐지만 인조반정 때 88세의 나이로 형을 받아 죽었다.
'도덕경' 21장의 말이다. "반듯해도 남을 해치지 않고(方而不割), 청렴하되 남에게 상처 입히지 않으며(廉而不劌), 곧아도 교만치 아니하고(直而不肆), 빛나되 번쩍거리지 않는다(光而不耀)." 반듯하고 청렴한 것은 좋지만, 그로 인해 남을 해치거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곧음은 자칫 교만을 부른다. 빛나는 존재가 되어야 하지만, 너무 번쩍거리면 꼭 뒤탈이 따른다. 빛나기는 쉬워도 번쩍거리지 않기는 어렵다.
'순자(荀子)'에서도 "군자는 너그럽되 느슨하지 않고(寬而不慢),청렴하되 상처주지 않는다(廉而不劌)"고 했다.
남구만(南九萬·1629~1711)이 병조판서 홍처량(洪處亮)의 신도비명에서 그 인품을 두고
"화합하되 한통속이 되지는 않았고(和而不流), 부드러우나 물러터지지도 않았다(柔而不絿)"고 한 것이나
'삼국사기'에서 백제의 새 궁궐을 두고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儉而不陋), 화려하나 사치스럽지는 않았다(華而不侈)"고 말한 것도 다 한 가지 뜻이다. 사람은 얼핏 보아 비슷한 이 두 가지 분간을 잘 세워야 한다. 지나친 것은 늘 상서롭지 못하다
始于足下

- 시작할 시(女-5)에서 우(二-1)발 족(足-0)아래 하(一 -2)
인간은 지성을 뽐내지만, 그것은 마치 범이 가죽을 뽐내고 코끼리가 엄니를 뽐내며 철갑상어가 알을 뽐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뽐내는 것이 그 자신을 드높이기도 하지만 바로 그것으로 말미암아 횡액을 당하기도 한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짙듯이 지성을 뽐낼수록 그 그림자가 짙어지니, 바로 착각과 오만이다.
지성은 지식과 지혜를 갖출 수 있는 타고난 품성이다. 말 그대로 타고난 품성을 이르는 것이지, 이미 현실적으로 완성된 능력을 이르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마치 그런 능력을 갖춘 듯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고 빨리 이룰 수 있다고 여긴다.
전문가도 쉽지 않은 주식 투자에 함부로 손을 댔다가 깡통을 차는 것도, 아는 것도 해 본 적도 없으면서 성공할 수 있다며 사업을 벌였다가 부도를 내는 것도, “맘만 먹으면 못할 게 없다”면서 남의 충고와 조언을 무시하고 밀어붙이는 것도 모두 착각과 오만에서 비롯된 일이다.
사실 사람들이 모두 지성을 타고난다고 해도 그 능력이 똑같지는 않다. 타고난 지성에서도 차이가 나지만, 그 지성을 얼마큼 능력으로 전환하느냐에 따라서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어쩌면 타고난 지성보다는 배우고 익힐 줄 아는 후천적인 노력과 열의가 더 큰 차이를 낸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순자는 “騏驥一躍, 不能十步, 駑馬十駕, 功在不舍”(기기일약, 불능십보, 노마십가, 공재불사) 곧 “준마도 한 번 뛰어 열 걸음을 갈 수 없고, 둔한 말도 열 배의 힘을 들여 수레를 끌면 준마를 따를 수 있으니, 공이 이뤄지는 것은 그만두지 않는 데 있다”고 했다.
과연 사람들 가운데 준마가 몇이나 될까? 대부분은 둔한 말 아닐까? 그럼에도 자신의 지성을 과신하여 실제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반걸음에 천리를 가려고 한다. 뜻이 크고 굳세며 하려는 일이 올바르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서두르다가 망치는 경우가 매우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노자는 이렇게 일침을 가한다. “千里之行, 始于足下”(천리지행, 시우족하) “천리 길도 발아래서 시작된다.” 



안도색기[ 按圖索 ]
按:살필 안 圖:그림 도 索:찾을 색 驥:천리마 기
그림에 그려진 대로 천리마를 찾는다'라는 뜻으로, 융통성 없이 원리원칙만 따져 일을 처리함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춘추시대의 백락(伯樂)과 관련된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안도색준(按圖索駿)이라고도 한다. 백락은 춘추시대 진(秦)나라 사람으로, 원래 이름은 손양(孫陽)이다. 그에 대하여는 '백락이 있은 뒤에 천리마가 있으니, 천리마는 항상 있지만 백락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명마를 알아보는 안목이 뛰어났다. 그는 말에 대한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정리하여 《상마경(相馬經)》을 지었다.
백락에게는 조금 우둔한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그 아들은 두꺼비를 보고는 백락에게 "좋은 말을 찾았습니다. 불쑥한 이마와 툭 튀어 나온 눈이 아버지가 쓰신 책에 있는 그대로이고, 단지 발굽만 조금 다르게 생겼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백락은 기가 막혀 웃으며 "네가 찾은 말은 뛰기는 잘 하겠지만 수레를 몰 수는 없겠구나"라고 말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을 비유하는 '백락자(伯樂子)'라는 고사성어는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백락의 아들은 좋은 말을 구별할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은 전혀 없이 책에 쓰여 있는 내용에만 의존함으로써 어처구니없이 두꺼비를 좋은 말로 단정해 버린 것이다. 여기서 유래하여 안도색기는 보통 어떤 일을 처리할 때 원리원칙에 지나치게 얽매여 융통성이라고는 전혀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색인이나 목록을 이용하는 것처럼 기존의 자료를 근거로 하여 필요한 사항을 찾는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장경오훼[ 長頸烏喙 ]
長 : 길 장 頸 : 목 경 烏 : 까마귀 오 喙 : 부리 훼
길다란 목에 까마귀 부리같이 뾰족한 입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관상을 표현할 때 쓰는 말.

이 말은 범려가 월왕(越王) 구천(勾踐)의 관상(觀相)을 표현한 것이다. 《사기(史記)》 〈월세가(越世家)〉에 전한다. 오왕(吳王) 합려가 월왕 구천에 의해 죽자, 그의 아들 부차(夫差)는 매일 장작더미 위에서 자면서[臥薪] 복수의 칼을 갈았다. 이것을 안 구천이 먼저 부차를 공격하였으나, 도리어 대패하고 사로잡혔다. 구천은 범려의 충고로 부차의 신하되기를 자청하였다. 부차의 신하가 된 구천은, 방의 서까래에다 돼지의 쓸개를 매달아 놓고 매일 핥았다[嘗膽]. 십여 년이 지나, 마침내 구천은 오나라를 쳐서 멸망시켰다.
이렇게 월이 오를 멸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범려였다. 그는 20여 년 동안 구천을 보필하면서, 마침내 그를 패자(覇者)로 만들었다. 그 공로로 범려는 상장군(上將軍)이 되었다. 그러나 범려는 구천의 인물됨에 대해 꿰뚫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구천에게 작별을 고하고 제(齊)나라로 갔다. 제나라에서 그는 자신과 절친했던 월나라의 대부(大夫) 종(種)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새가 다하면 좋은 활은 쓸모가 없고[鳥盡弓藏],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겨 죽으니[兎死狗烹], 적국(敵國)이 망하면 모사(謀士)가 죽는 법이오. 게다가 구천의 상(相)은 목이 길고 입은 까마귀 주둥이오. 이런 인물은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으나 즐거움은 함께 누릴 수 없소. 빨리 구천을 떠나시오.” 종은 범려와 함께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한 충신이었다. 구천은 얼마 뒤 종을 죽였다.

원정재사(原情在辭)
[요약] (原: 근 원 원. 情: 뜻 정. 在: 있을 재. 辭: 말 사)
사람의 마음을 캐내는 것은 그 말에 있다는 뜻으로, 그 사람의 말에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 쌓여 있는 감정이 자신도 모르게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라는 말.
[출전] 《홍재전서(弘齋全書) 일득록(日得錄)九 정사(政事)[四]》
[내용] 홍재전서(弘齋全書) 일득록(日得錄)九 정사(政事)[四]에서 정조(正祖)는 다음과 말한다.
상이 이르기를, “본마음을 캐는 것은 말에 달려 있고, 행적을 집어내는 것은 일에 달려 있다. 그 마음이 태연한 자는 그 말이 느슨하고 그 마음이 분한 자는 그 말이 사나우며, 그 마음이 원통스러운 자는 그 말이 괴롭고 그 마음이 다급한 자는 그 말이 급박하며, 그 마음이 겁나는 자는 그 말이 황당하고 그 마음이 황당한 자는 그 말이 어지러우며, 그 마음이 거짓인 자는 그 말이 왜곡되고 그 마음이 나약한 자는 그 말이 한만하다. 말을 따라 본마음을 헤아리고 본마음을 미루어 행적을 논하면 사람이 어찌 숨길 수 있겠는가. 사람이 어찌 숨길 수 있겠는가.” 하였다.
原情在辭。執跡在事。其情泰者其辭舒。其情憤者其辭厲。其情寃者其辭苦。其情急者其辭迫。其情怯者其辭謊。其情誕者其辭亂。其情詐者其辭曲。其情懦者其辭漫。緣辭而參情。推情而論跡。人焉廋哉。人焉廋哉。

‘진심을 캐내는 것은 말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옛날부터 말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했습니다. 말에는 마음속에 쌓여 있는 감정이 자신도 모르게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조대왕은 마음이 태연한 사람은 말이 느긋하고, 마음에 분노가 가득 찬 사람은 말이 사납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원통한 사람은 말이 괴롭고, 마음이 다급한 사람은 말이 횡설수설한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허한 사람은 말이 어지럽고, 마음이 거짓된 사람은 말이 왜곡된다고 했습니다. 말로 나타나는 사람의 마음을 숨길 수는 없습니다. 또 말에 따라서 일을 하다보면 그 행적은 겉으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행동이 조심스러운 이유입니다.
명심보감에도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따뜻하기가 솜과 같고, 사람을 상하게 하는 말은 날카롭기가 가시 같아서 한마디 말이 무겁기가 천금과 같다. 한마디 말이 사람을 중상함은 그 통증이 칼로 베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맹자는 ‘편파적인 말을 들으면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어떤 것에 의해서 가려져 있는지를 알 수 있고, 음탕한 말을 들으면 그 말을 하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 것에 빠져 있는지도 알 수 있다. 간사한 말을 들을 땐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올바른 도리에서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고, 둘러대는 말을 들으면 그 말을 하는 사람이 궁지에 빠져 있음도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네 가지의 말들은 오직 마음에서 생겨서, 정치에도 해를 끼치게 되고, 사회 속으로 떠돌아다니면서 국론분열도 일으킴을 경고하였습니다.
최근 판사들이 ‘행정처 개XX, 은따(은근히 왕따)시키자. 똥 뿌리는 종자들아, 침 맞아야 할 새X들아. …’ 등의 글들로 서로 다툼을 하여 시끄럽습니다. 국민들은 염려스럽습니다. 대한민국 사법부의 민낯에 자괴감이 듭니다. 그들만의 문체반정이라도 일으켜야 합니다. 판사든 누구든 진심을 캐내는 것은 말에 달려 있습니다.


저수하심[ 低首下心 ]
低 : 밑 저 首 : 머리 수 下 : 아래 하 心 : 마음 심
머리를 숙이고 마음을 낮춘다는 뜻으로 순종하여 감히 반항하지 못하는
모습을 비유하는 말이다.

중국 당(唐) 나라의 대문학가 한유(韓愈)는 불교를 배척한 유학자였다. 헌종(憲宗)이 부처의 사리(佛骨)을 조정에 들여놓으려 하자 〈논불골표(論佛骨表)〉라는 글까지 써서 비판하였다. 이에 화가 난 헌종은 그를 사형으로 엄벌하려 했으나, 재상 배도(裴度) 등의 도움으로 한유는 죽음을 면하고 조주자사(潮州刺史)로 좌천되었다.
한유는 쫓겨난 처지였지만 관리로서 소임을 다하기 위해 백성들의 근심거리를 알아보러 다녔다. 그러던 중 악어떼가 깊은 계곡에 모여 있다가 수시로 사람을 해쳐 큰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에 그는 〈제악어문(祭鰐魚文)〉이라는 글을 쓰고 부하들을 보내 돼지 한 마리와 양 한 마리를 물속에 던져서 악어떼가 먹게 하였다. 글에는 악어와 인간이 이 땅에 함께 살 수 없으니 바다로 갈 것을 회유하며, 7일 이내에 남쪽 바다로 가고 그렇지 않으면 명사수를 시켜 날카로운 독화살로 다 죽이겠다고 엄포하는 내용이 쓰여 있다. 글 가운데 다음의 말이 있다.
"자사가 비록 노둔하고 약하나, 또한 어찌 악어에게 머리를 숙이고 마음을 낮추어 두려워하고 흘금흘금 눈치를 보아 백성과 관리에게 수치를 당하면서 이곳에서 구차히 살려 하겠는가(刺史雖駑弱,亦安肯爲鰐魚低首下心, 伈伈睍睍,爲民吏羞,以偷活於此邪)!"
이 글에서 유래하여 저수하심은 남에게 순종적으로 굴복하는 태도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비슷한 말로 머리를 수그리고 기운을 잃다는 뜻으로 의기소침한 모습을 비유한 수두상기(垂頭喪氣), 반대말로 의기양양하여 거만하게 뽐내는 태도를 뜻하는 성어로 기세를 토하며 눈썹을 치켜 올리는 모양을 나타내는 토기양미(吐氣揚眉), 발을 높이 올리며 힘차게 걷는 모습을 뜻하는 지고기양(趾高氣揚) 등이 있다.


文質彬彬

무늬와 바탕이 잘 어우러진 것  

- 무늬 문(文-0) 바탕 질(貝-8) 빛날 빈(彡-8)
대체로 문화와 예술 정책은 정치가나 경제인들게 관심 밖이다. 국방이 중요한 나라에서는 문화를 호사가 취미쯤으로 여기고, 군사 정권이 들어서면 문화는 고작 노리갯감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우리의 현대사가 이미 잘 보여주었다. 그러니 그동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운운하며 문화를 나란히 거론한 것은 허울이요 눈속임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문화적 토대가 허약하고 문화적 수준이 낮은 나라는 결코 선진국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이르렀다는 데도 안정과 행복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마천은 ‘사기’ ‘貨殖列傳(화식열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倉廩實而知禮節, 衣食足而知榮辱’. 禮生於有而廢於無.”(‘창름실이지예절, 의식족이지영욕’. 예생어유이폐어무)
“‘곳간이 가득 차야 예의와 절도를 알고, 먹고 입을 것이 넉넉해야 영예와 치욕을 안다’고 했다. 예절은 재물이 있는 데서 나오고 없는 데서 사라진다.” 먹고살 만 해야 예의를 차리고 부끄러움도 안다는 말인데, 달리 말하면 먹고살 만하면 반드시 예의를 차릴 줄 알아야 하고 부끄럽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지 않겠는가?
문화란 사전적으로 말하자면 개인이나 공동체가 오랜 세월 동안 축적하고 향유해 온 정신적 물질적 산물을 이른다. 간단히 말하면,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곧 문화다. 누구나 먹고살 만하면 여유를 갖고 교양을 갖추어서 문화적으로 세련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것도 그게 사람다운 삶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공자도 이렇게 말했다.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질승문즉야, 문승질즉사. 문질빈빈, 연후군자)
“바탕이 무늬보다 나으면 촌스럽고, 무늬가 바탕보다 나으면 번지르르하다. 무늬와 바탕이 알맞게 어우러져야 군자가 된다.”
여기서 말하는 무늬와 바탕이 잘 어우러진 것이 곧 문화다. 바탕이 무늬를 따르지 못하면 과시가 되고, 무늬가 바탕을 따르지 못하면 촌스럽다. 문화란 내면과 외양의 조화가 표현된 것이라는 말이다.


 절차탁마[ 切磋琢磨 ]
切 : 끊을 절 磋 : 갈 차 琢 : 쪼을 탁 磨 : 갈 마
칼로 다듬고 줄로 쓸며 망치로 쪼고 숫돌로 간다는 뜻으로,
학문을 닦고 덕행을 수양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

《시경(詩經)》 <위풍(衛風)> 기욱편(淇澳篇)의 다음 시구에서 유래하는 말이다.
저 치수이 강[淇水, 기수] 모퉁이를 보니, 푸른 대나무가 무성하도다!
[瞻彼淇澳, 菉竹猗猗.]
아름다운 광채 나는 군자여! 잘라놓은 듯하고 간 듯하며 쪼아놓은 듯하고 간 듯하다.
[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엄밀하고 굳세며 빛나고 점잖으니, 아름다운 광채 나는 군자여! 끝내 잊을 수 없다.
[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諠兮.]
원래 이 시는 군자를 칭송한 것으로, 학문과 인격을 끊임없이 갈고 닦아 겉모습까지 완성된 것을 푸른 대나무에 빗대어 말한 것이다. 이로부터 '절차탁마'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유의어로 절치부심(切齒腐心), 와신상담(臥薪嘗膽), 자강불식(自强不息) 등의 성어가 있고, 반의어로는 깊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다는 의미의 불구심해(不求甚解), 얕게 맛보고 곧바로 그만둔다는 뜻의 천상첩지(淺嘗輒止)가 있다.
방채박구(旁采博求)
[요약] (旁: 두루 방. 采: 캘 채. 博: 넓을 박. 求: 구할 구)
널리 사례를 모아 넓게 그 뜻을 찾는다는 뜻.
[내용] 이하 영남일보[고전쏙쏙 인성쑥쑥] 널리 사례를 모아 넓게 그 뜻을 찾는다(旁采博求)의 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세벌대 기단, 굴도리집, 겹처마, 팔작지붕, 5량 가구, 불발기…’에 대해 문화체육부 장관에게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청와대 내에 있는 전통가옥 ‘침류각’의 안내판에 기록돼 있는 내용이 현실적이지 못해서라고 합니다. 사실 문맥을 살펴 연결하지 않고는 뜻이 어렵습니다.
머릿속에서 언뜻 소설 ‘미망’에서 ‘세벌대 높은 댓돌 위에 나는 듯 앉아 있는 안채…’라는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세벌대 기단’은 ‘아하! 집 짓는 토대를 3번 켜켜이 쌓았구나’하고 나름의 해석을 해보았습니다. ‘팔작지붕, 겹처마, 불발기’는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떠올리니까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습니다. 무량수전(팔작지붕), 내소사 대웅보전 꽃 창살무늬(불발기)…로 나름대로 쉽게 엮어보았습니다. 또 ‘도리’를 알면 ‘굴도리’를, ‘가구(架構)’는 ‘시렁을 얹은 구조물’로 유추해 보았습니다.
성호 이익은 근본이 되는 취지를 탐구하기 위해 ‘방채박구(旁采博求)’하는 공부를 했습니다. ‘방채박구(旁采博求)’는 ‘널리 사례를 모아 넓게 그 뜻을 찾는다’는 뜻입니다. 성호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경전의 문구에 매달려 외우고 해석하는 것을 경계해 ‘옛 성현들은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하는 진지한 물음을 갖고 캐 들어가는 회의정신(懷疑精神)으로 일관되게 학문을 탐구했습니다.
그래서 성호는 ‘의심을 하는 것은 그 의심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는 전제조건을 마음에 품었던 것입니다. 사서삼경에는 본문의 뜻을 설명한 주석서나 주해서가 있습니다. 그것은 본디의 뜻이 아니고 공부하는 사람을 이끌어 그 길의 맥을 안내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성호는 목적지에 도달하거나 마음으로 통달하는 것은 오직 ‘공부하는 사람의 몫’이라 했습니다. 주자도 ‘의심을 적게 하면 적게 진보하고, 의심을 크게 하면 크게 진보한다’고 했습니다. 성호의 회의정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성호가 마음을 쏟은 것은 근본이 되는 취지를 널리 증명해 객관적 설득력을 갖도록 하는 ‘방증(旁證)’입니다. 이 방증은 어떤 일의 진위를 밝혀주는 간접적인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성호가 말하는 방증은 ‘생각을 깊게 했는가? 널리 사례를 찾았는가?’의 철저한 검증입니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성호의 ‘방채박구(旁采博求)’는 현재 각종 보고서의 형식에 ‘필요성, 목적, 방법, 결과검증’을 거치는 과정과 닮았습니다. 결과를 여러 방법으로 검증해 미흡할 경우 송환(피드백)의 과정을 거치는 것도 그렇습니다. 성호는 철저하게 현실 문제에 대해 고민을 했고, 그 폐단의 원인을 찾아 치유책을 찾았던 듯합니다. ‘소소한 이야기’인 ‘성호사설(星湖僿說)’의 기록이 그 예입니다.
공부란 ‘왜, 무엇을, 어떻게 했나’의 방법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결과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또 ‘널리 사례를 모아 넓게 그 뜻을 찾았는가’를 꼭 방증(검증)해야 합니다. 방증 후엔 반드시 반성이 필요합니다.
박동규(전 대구중리초등 교장·시인)  



知者弗言
(도를)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知者弗言)
- 알지(矢-3) 사람 자(老-5) 아닐 불(弓-2) 말언(言-0)
죽간본’ 15-1이다.
“知之者弗言, 言之者弗知.”(지지자불언, 언지자불지)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여기서 之(지)는 道(도)를 가리킨다. 따라서 도를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도를 말하는 사람은 도를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는 도에 관한 한 언어의 한계를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요컨대, 언어로는 결코 도를 표현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노자는 이미 “道恒亡名”(도항무명) 곧 “도는 언제나 이름이 없다”고 말했고, “未知其名, 字之曰道, 吾强爲之名曰大”(미지기명, 자지왈도, 오강위지명왈대) 곧 “아직도 그 이름을 몰라 글자로 ‘도’라 하고는 억지로 이름을 붙여서 ‘크다’고 한다”고 말했다.

도에 이름이 없다는 것은 곧 무어라 規定(규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름이란 대상의 성격이나 내용, 의미 따위를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을 때 또는 명확하게 드러내려고 할 때 붙이는 것인데, 이 도는 그런 대상이 아니다.
‘문자’ ‘微明(미명)’에 다음 구절이 나온다. “道, 可以弱, 可以强; 可以柔, 可以剛; 可以陰, 可以陽; 可以幽, 可以明; 可以包裹天地, 可以應待無方.”(도, 가이약, 가이강; 가이유, 가이강; 가이음, 가이양; 가이유, 가이명; 가이포과천지, 가이응대무방) “도는 약할 수도 있고 강할 수도 있으며, 부드러울 수도 있고 굳셀 수도 있으며, 음일 수도 있고 양일 수도 있으며, 어두울 수도 있고 밝을 수도 있으며, 온 천지를 감싸 안을 수 있고 어느 방향에서든 응대할 수 있다.”

도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이니, 이는 곧 特定(특정)하거나 限定(한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온 천지를 감싸 안을 수 있고 어느 방향에서든 응대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보다 더 큰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으로도 미치기 어려운 크기다. 이를 어찌 언어가 거두어들일 수 있겠는가?
어찌 언어만이 그러하겠는가? 음악이든 회화든 조각이든 어떠한 방식으로도 도는 표현이 불가능하다. 





조령모개 [ 朝令暮改 ]
朝 : 아침 조 令 : 법 령 暮 : 저녁 모 改 : 고칠 개
아침에 내린 명령을 저녁에 고친다는 뜻으로, 일관성이 없이 갈팡질팡함을 이르는 말.

《사기(史記)》〈평준서(平準書)〉 재정경제사장(財政經濟史章)에는, 전한(前漢) 문제(文帝) 때의 일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흉노(匈奴)가 자주 변방을 침략하여 약탈을 자행하니, 경작하면서 수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자연히 변방에서 수확하는 곡식만으로 충당하기에 식량이 부족하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곡식을 헌납받는 사람들과, 그 곡식을 변방까지 수송할 사람들을 모집하여 벼슬을 주기로 하였다. 그 벼슬의 지위는 대서장(大庶長)까지였다. 이 조치는, 문제와 경제(景帝) 때의 어사대부(御史大夫)였던 조조(晁錯)의 헌책(獻策)을 취한 것이었음을 《한서(漢書)》 〈식화지(食貨志)〉에서 밝히고 있다. 조조가 상소한 이 헌책은 후세에 〈논귀속소(論貴粟疏)〉라 불리게 되는데, 여기에 조령모개라는 말이 있다. 조조는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지금 다섯 가족의 농가에서는 부역이 과중하여, 노역(勞役)에 복종하는 사람이 두 사람을 내려가지 않는다. 따라서 경작하여 수확하는 것은 백 묘(畝)가 고작인데, 이 백 묘는 많아야 백 석에 지나지 않는다. 봄에 경작하고 여름철에 풀 뽑고, 가을에 수확하여 겨울에 저장하는 외에, 관청을 수리하고 부역에 불려나가는 등 춘하추동 쉴 날이 없다. 또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을 보내고 맞이하며, 죽은 자를 조문하고 고아들을 받고, 어린이를 기른다. 또한 홍수와 한발의 재해를 당하는 위에 갑자기 세금이나 부역을 당한다. 이것은 일정한 때도 정해져 있지 않아, 아침에 영을 내리고 저녁에 고친다(朝令而暮改). 전답이 있는 사람은 반값으로 팔고, 없는 사람은 빚을 내어 10할의 이자를 낸다. 이리하여 농지나 집을 방매(放買)하고, 아들과 손자를 팔아 부채를 갚는 자가 나오게 된다.
여기서 '조령모개'는 '법령에 일관성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청(淸)나라 때의 학자 왕염손(王念孫)은 후한(後漢) 때의 순열(荀悅)이 《한기(漢紀)》에 기록한 대로, '조령이모득(朝令而暮得)’으로 고쳐 써야 한다고 하였다. '조령모득'은 '아침에 법령을 내리고 저녁에 거둔다'는 뜻이다.

조반석죽 [ 朝飯夕粥 ]
朝 : 아침 조 飯 : 밥 반 夕 : 저녁 석 粥 : 죽 죽
아침에는 밥을 먹고, 저녁에는 죽을 먹는다는 뜻을 가진 사자성어.

아침 한끼는 밥을 먹고, 저녁에는 겨우 죽으로 연명하는, 매우 빈곤하고 궁핍한 살림살이를 뜻하는 말이다.


​[초동여담]
송구영신




세상에 없는 세 가지는? 정답, 비밀, 공짜가 정답. 그럼 세상에 있는 세 가지는 뭘까. 하늘의 별, 들의 꽃,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있는 당신!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알아챘겠지만 연말 송년 모임에서 건배사로 많이 쓰인다. 적당한 유머와 센스가 돋보여 열에 열이면 만족해하는 인기 건배사다. 한 해 희로애락을 함께 한 주위 동료와 잔을 부딪치며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 풍습이 여전히 남은 우리나라에서는 분위기 띄울 건배사 하나쯤 기억하는 게 여러모로 편하다. 


세밑 풍습은 나라마다 제각각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음력 설을 주로 기념하는 우리와 달리 양력 설을 최대 명절로 쇤다. 오쇼가쓰(お正月)로 불리는 일본의 설에는 온 가족이 모여 한국의 떡국과 유사한 오조니와 전통 음식 오세치를 술에 곁들여 먹는다. 오세치 찬합에는 새우(장수), 청어알(자손의 번영), 검은 콩(부지런), 멸치(풍작), 토란(다산) 등을 요리해 담는다. 

우리나라가 신정·구정으로 나누는 것처럼 중국에서도 위안단제(元旦節)와 춘제(春節)로 양력과 음력 설을 구분하고 음력 설을 으뜸으로 친다. 남방 지역에서는 주로 떡을, 북방 지역에서는 만두를 많이 먹는다. 12월31일에서 1월1일로 넘어갈 때 쉴 새 없이 폭죽을 터뜨려 밤잠을 설치는 이색 문화도 있다.

한국에서는 떡국을 먹고 어른에게 세배를 하면서 새해를 맞는다. 조선시대에도 세밑 섣달 그믐이면 고관은 왕에게 문안하고 양반가에서는 가묘에 절을 했다. 가가호호 웃어른을 찾아 뵙고 묵은 세배를 올리는가 하면 친지끼리 특산물을 주고 받으면서 한 해를 마무리했다.
       
옛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이하는 풍습을 뜻하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은 원래 송고영신(送故迎新)에서 유래했다. 이전 관리인 구관을 보내고 새로 부임하는 신관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받아들이는 새로운 마음가짐을 반영한다. 오늘 저녁 올해의 마지막 송년 모임 건배 구호는 "올해보다 더 웃을 날 많을 새해를 위하여"로. 


My
이 블로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