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19일 목요일

박정희, [ 朴正熙 ]

박정희, [ 朴正熙 ]

본관은 고령(). 1917년 11월 14일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 117번지[현 경상북도 구미시 상모동 171]에서 아버지 박성빈과 어머니 백남의의 5남 2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대구의 저명한 항일 운동가인 박상희()는 박정희()의 형이다. 5·16 군사 정변을 함께 감행한 김종필()은 박상희의 사위로, 박정희의 처조카이다. 부인은 육영수()이고, 자녀는 딸 박근혜(槿), 박서영[본명 박근영(槿)]과 아들 박지만()이 있다.
출생 - 사망 직업,
1917년 ~ 1979년
대통령, 정치가, 군인
이칭/ 별칭/ 유형/ 시대/ 출생 - 사망/ 성격/ 출신지/ 성별/ 본관/ 관련/ 사건/ 대표/ 관직(경력)
 중수(中樹)
인물
현대
1917년 ~ 1979년
군인, 정치인
경상북도 구미
고령(高靈)
4·19혁명, 2·27선언, 6·3사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제5·6·7·8·9대 대통령
해방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제5, 6, 7, 8, 9대 대통령 등을 역임한 군인. 정치가.
본관은 고령(高靈). 창씨개명한 이름은 다카키마사오[高木正雄], 호는 중수(中樹). 경상북도 구미 출생. 빈농인 아버지 박성빈(朴成彬)과 어머니 백남의(白南義) 사이에서 5남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 문경소학교에서 3년간 교직생활을 한 다음, 1940년 만주의 신경군관학교(新京軍官學校) 제2기생으로 입학, 군문에 들어갔다. 당시 군관학교에 지원하기 위하여 혈서를 썼으며, 일본인으로서 개와 말의 충성[犬馬の忠]을 다하겠다고 지원서에 썼다. 이 일은 크게 회자되어 『만주신문(滿洲新聞)』(1939. 3. 31. 7면)에 실렸다. 이 군관학교를 최우등생으로 수료한 뒤 일본육군사관학교로 전학, 1944년 졸업과 함께 만주군 소위로 임관되어 관동군(關東軍)에 배치되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현장을 촬영중인 박정희 경부 고속도로 건설 현장을 시찰하여 공사 진행 공정을 직접 촬영하는 모습.
광복 때까지 만주와 화북지방에서 일본군 장교로 전쟁에 가담했다가, 1946년 귀국하여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제2기로 졸업하고 육군대위로 임관되었다. 6·25전쟁 동안 주로 육군본부 정보국에서 근무하다 1953년 장군이 되었다.
1954년 제2군단 포병사령관, 1955년 제1군참모장, 1960년 육군군수기지사령관, 제1관구사령관,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을 거쳐, 1961년 제2군부사령관으로 재직중, 군부쿠데타를 주도하여 정권을 장악하였다. 육군본부 정보국에 근무하고 있던 1949년, 사상관련사건에 연루되어 군법회의에 회부된 적이 있었다.
당시의 신문보도에 의하면 여순반란사건 관련 공산주의 혐의자로 되어 있는데,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을 언도받았으나 육군본부의 동료·상사들의 구명운동으로 복역은 면제되었다. 이 때문에 한때 군인의 신분을 박탈당하였다가 6·25전쟁이 일어난 뒤 현역으로 복적되었다.
1950년 육영수(陸英修)와 결혼하였다. 군부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는 18년5개월간을 집권하였는데, 그의 통치시대는 3단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4·19혁명으로 성립된 민주당정부를 무능·부패 정부로 규정하고 쿠데타에 의해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와 그를 따르는 일단의 장교들은 쿠데타 성공 후 곧바로 계엄령을 선포, 삼권을 장악하였다. 이른바 혁명주체세력은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설치, 이를 통해 입법·행정권과 사법권의 일부를 행사하였다.
그 의장은 박정희였다. 이로부터 2년 7개월간 군정이 실시되는데, 최고통치권자인 최고회의의장 박정희는 먼저 구질서의 전면적인 개혁이라는 목표 아래 모든 정당·사회단체의 해체를 포고하는 한편, 용공분자와 폭력배의 검거에 착수하였다. 정권을 장악한 그 해 말까지 3,000여 명의 용공분자와 4,000여 명의 폭력배를 체포하였다.
군사정부는 <농어촌고리채정리령>을 발표하였으며 부정축재자에 대한 가차없는 조사를 실시하였다. 사회기풍을 바로잡기 위하여 댄스홀·고급요정 등 모든 환락가의 문을 폐쇄하게 하였으며, 비밀댄스홀에서 춤을 즐기던 남녀를 군사재판에 회부하여 최고 1년 6월의 징역을 선고하였다.
쿠데타 1개월이 못 되어 전국적으로 보안관계 범법혐의자의 검거수만도 3만 5,000여 건에 달하였다는 사실은 군정 초기에 얼마나 철저한 구악일소작업과 강력정치가 진행되었던가를 짐작하게 한다.
또한 군사정부는 국민운동본부를 설치, 생활간소화·가족계획·문맹퇴치사업을 벌이는 한편, 친선방문외교·초청외교 등 적극외교의 자세를 보였다. 획기적인 경제조치의 하나로 단행된 통화개혁은 실패로 끝났다.
군정 초기의 집권세력 내부에는 주류파와 비주류파 사이에 주도권쟁탈전이 벌어져 일련의 반혁명사건이 꼬리를 이었다. 이 과정에서 비주류파는 완전히 거세되고 박정희 중심의 주류세력이 실권파로 정권장악의 기반을 확고히 하였다. 군정 후반은 민정이양을 둘러싼 공방으로 전국이 소란하였다.
박정희는 처음에는 2년 후에 정권을 민간에 이양하겠다는 민정이양일정을 발표하였으나 1963년 1월부터 시작된 정치활동재개 이후 야당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서는 이른바 ‘2·27선언’을 통하여 자신의 원대복귀를 약속하였다.
그러나 ‘4·8조치’로 군정연장을 계획하였다가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철회하는 등 번의를 거듭하였다. 그 사이 군정은 이른바 ‘4대 의혹사건’을 저질러 국민들로부터 ‘구악을 뺨치는 신악’이라는 비판을 듣기도 하였다.
박정희는 1963년의 대통령선거에서 야당의 단일후보인 윤보선(尹潽善)을 근소한 표차로 누르고 당선됨으로써 제3공화국의 통치권자가 되었다. 대통령취임사를 통해 박정희는 “정치적 자주와 경제적 자립, 사회적 융화·안정을 목표로 대혁신운동을 추진함에 있어서 우리는 먼저 개개인의 정신적 혁명을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제3공화국의 박정희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한 작업은 경제발전과 한·일국교정상화였다. 박정희는 이미 군정기간인 1962년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수립, 추진하였다.
사회경제적인 악순환을 지양하고 자립경제확립을 위한 기반구축을 목표로 한 제1차 5개년계획은 당시 후진국 가운데서는 가장 높은 국민총생산(GNP) 성장률인 연평균 7.1%를 책정하였다. 그러나 계획 자체의 졸속과 무엇보다도 경제발전에 필요한 자본 부족으로 제1차 5개년계획은 전반적으로 실적미달이었다.
한·일국교정상화는 경제발전에 필요한 자본확보와 미국의 압력이라는 복합적인 이유로 추진되었다. 박정희는 집권하자마자 대일협상에 강한 의욕을 보였으며, 이미 군정기간인 1961년 10월에 일본 동경에서 제1차 한·일회의가 열렸다.
이와 함께 실무교섭이 활발히 진행되었고, 박정희는 국가원수로서는 최초로 일본수상과 회담하는 등 한·일문제 타결에 열의를 보였다. 이같은 대일자세는 ‘친일외교’·‘흑막외교’라는 비난을 받았다. 박정희정부의 대일저자세시비는 제3공화국 의회 벽두에 대통령국회출석결의안 등으로 논란될 만큼 국민의 대일감정을 자극하였다.
특히 한국어민의 생명선이라 할 수 있는 어업 및 평화선문제와 이른바 ‘김·오히라메모(金·大平memo)’로 결정된 6억 달러의 대일청구권자금은 여론의 강력한 반대를 받았다.
한·일문제를 둘러싼 여야와 정부·국민간의 공방은 ‘6·3사태’ 등 한때 정국의 위기까지 불러일으켰으나 박정희정부는 반대의견을 물리치고 일을 성사시켜 결국 1965년 6월 22일 한일협정이 정식으로 조인되었다.
한·일국교정상화에 따른 일본으로부터의 자금도입과 기타 차관 등을 통하여 제3공화국 후반부터는 급속도로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다. 박정희는 고성장·수출드라이브·산업기지건설 등을 통하여 국정에 자신감을 가졌으며, 이와 함께 점차 독재성향을 띠어가기 시작하였다.
한일회담 타결, 월남파병 등으로 미국으로부터도 신임을 얻은 박정희는 강한 권력욕을 드러냈는데, 그 결과는 1968년 3선개헌으로 나타났다.
1972년 10월 박정희는 헌법효력의 일부 정지, 국회해산, 정당활동금지의 담화를 발표하고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정부는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하여 대통령을 선출하는 ‘유신헌법’을 제정, 국민투표를 거쳐 확정한 후, 이 헌법에 따라 제8대 대통령에 박정희를 선출하였다. 이로써 제4공화국이 시작되었다.
영동.동해고속도로 개통식에 참석한 박정희,
유신체제는 사실상 박정희의 영구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체제였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권한을 막강한 것으로 보장해줌으로써 박정희에게 독재체제의 길을 열어주었다. 이 체제 아래서 민주주의는 크게 후퇴하였다.
유신헌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주장이 야당과 재야세력에서 광범위하게 대두하였으나, 박정희는 이를 ‘대통령긴급조치’로써 탄압하였다. 유신체제 7년간 수많은 정치인·종교인·지식인·학생들이 긴급조치에 걸려 투옥당하였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여론도 한국의 강압정치를 비난하였으나 박정희는 굽히지 않았다. 독재적인 통치에 의해 박정희정부는 이 기간 기록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연간 10%를 넘나드는 고도성장이었고 국민소득도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빈부격차를 가속화시켰고, 황금만능사상으로 사회갈등과 함께 국민정신문화를 크게 황폐화시키는 결과를 빚었다. 한편, 경제발전을 배경으로 국가안보면에서 빈틈없는 태세를 구축한 것은 박정희의 업적으로 평가된다.
박정희는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남북대화에 힘써 한동안 남북적십자회담·남북조절위원회회담 등을 열었고, 남북간 밀사교환을 이루었으나 대화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박정희 대통령 생가 경북 구미시 상모동에 있는 박정희의 생가. 경상북도 기념물 제86호.,
박정희는 1979년 유신체제에 항거하는 ‘부마사태(釜馬事態)’가 절정을 이루던 때, 10월 26일 궁정동 만찬석상에서 측근의 한 사람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金載圭)가 쏜 총탄을 맞고 서거하였다. 그와 함께 유신체제도 끝났다.
대한민국의 제5 · 6 · 7 · 8 · 9대 대통령, 정치가, 군인. 1961년에 육군 소장으로 5 · 16 군사정변을 주도하여 최고 권력 기관인 국가 재건 최고 회의 의장이 되었으며, 1963년에 예편하여 민주 공화당 총재로 제5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1972년에 10월 유신(維新)을 단행하였고, 1979년 제9대 대통령 재임 중에 중앙정보부장의 총격으로 사망하였다.
1917∼1979. 군인·정치인. 국가재건최고회의 2대 의장. 대한민국 제5·6·7·8·9대 대통령. 1961년 5·16 군사정변 주도 및 1972년 10월 유신헌법 선언 등을 통해 18년 5개월간 장기집권하다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저격으로 사망하였다. 한편, 대통령으로 임기 중 경제개발5개년계획 및 새마을운동 등을 통해 조국근대화 및 경제발전을 기록적으로 이룩했다는 것이 대표적인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1917년 경상북도 선산(善山)에서 출생하였다. 부친 박성빈(朴成彬)과 모친 백남의(白南義) 사이에서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26년 구미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32년 졸업하였고 그해 4월 대구사범학교에 입학하여 1937년 졸업하였다. 사범학교 졸업후 경상북도 문경에 소재한 문경공립보통학교에서 3년간 교사로 부임하여 1940년 2월까지 근무하였다.
교사를 그만두고 만주의 무단장시[牡丹江市]에 소재한 제6군관구 사령부 초급장교 양성학교인 신경(新京:지금의長春)군관학교를 지원하여 합격하였다. 이때 그는 나이 제한에 걸려 1차에서 낙방하였으나 장교가 되겠다는 자신의 간곡한 편지를 보내 합격하게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 생가 경북 구미시 상모동에 있는 박정희의 생가. 경상북도 기념물 제86호., 박정희대통령생가, 제5대에서 제9대까지 대통령을 지낸 박정희가 태어나서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건립 당시는 초가였으나 1964년에 개축하였다.[네이버 지식백과]박정희 [朴正熙] (두산백과).
2년간의 군사교육을 마치고 우등생으로 선발되어 1942년 일본육군사관학교 3학년에 편입하였다. 1944년 일본 육군사관학교 제57기로 졸업하였으며, 8·15광복 이전까지 주로 관동군에 배속되어 일본군 중위로 복무하였으며 팔로군을 공격하는 작전에 부관으로 참가하였다.

일본이 패망하자 베이징을 거쳐 천진항에서 부산항으로 귀국하였다. 귀국후 1946년 9월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전신)에 입학하여 3개월간 교육을 마치고 조선국방경비대 육군 소위가 되었다. 그 당시 1946년 9월 대구에서 좌익에 의한 시위가 일어났는데 박정희의 형인 박상희가 시위를 주도하였다. 10월 1일 대구시민들과 경찰간의 충돌이 발생하였고 박상희가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형의 영향을 받았던 박정희는 군부에 비밀리에 조직된 남로당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1947년 육군소령이 되어 육군사관학교 중대장이 되었다.
1948년 10월 국방군 내 좌익계열의 군인들이 제주4.3사건 진압을 거부하고 일으킨 여수·순천사건이 일어나자 육군 정보사령부 작전참모로 배속되었다. 그해 박정희는 당시 국군 내부 남로당원을 색출하자 발각되어 체포되었으며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만주군 선배들의 구명운동과 군부 내 남로당원 존재를 실토한 대가로 무기징역을 언도 받았다. 이후 15년으로 감형되어 군에서 파면되었다.
청운각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리. 박정희대통령이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문경국민학교에서 2년간 재직할 때 기거하던 집.,
군에서 파면 되었지만 육군본부에서 비공식 무급 문관으로 계속 근무하다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소령으로 군에 복귀하였다. 1953년 11월 준장이 되었고, 미국으로 건너가 육군포병학교에서 고등군사교육을 받았다. 1954년 제2군단 포병 사령관, 1955년 제5사단 사단장, 1957년 제6군단 부군단장과 제7사단 사단장을 거쳐 1958년 3월 소장으로 진급한 뒤 제1군 참모장으로 임명되으며, 1959년 6관구 사령관이 되었다. 1960년에 군수기지 사령관, 제1관구 사령관,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을 거쳐 제2군 부사령관으로 전보되었다.

1961년 5월 16일 제2군 부사령관으로 재임중에 5·16군사정변을 주도하여 7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되었고, 1962년 대통령권한대행을 역임하였으며, 1963년 육군대장으로 예편하였다. 이어 민주공화당 총재에 추대되었고, 그해 12월 제5대 대통령에 취임하여 1967년 재선된 후 장기집권을 위하여 1969년 3선개헌을 통과시켰다.
제3공화국 재임동안 '한·일국교정상화'와 '월남파병문제'를 강행하였다. 1972년 국회 및 정당해산을 발표하고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한 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로써 유신정권인 제4공화국이 출범하였다.
박정희대통령 가족 1남 2녀의 박정희대통령가족. 왼쪽부터 박근영, 박근혜, 박지만이다.
유신 초기에는 새마을운동의 전국민적 전개로 농어촌의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였고, 제5차 경제개발계획의 성공적 완성으로 국민들의 절대적 빈곤을 해결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상대적 빈곤의 심화와 장기집권에 따른 부작용, 국민들의 반유신 민주화운동으로 그에 대한 지지도가 약화되자 긴급조치를 발동하여 정권을 유지하려 하였다. 이런 가운데서 내치(內治)의 어려움을 통일문제로 돌파하고자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을 민족통일의 3대원칙으로 규정한 1972년 7·4남북공동성명과 1973년 6·23선언이라 불리는 '평화통일외교정책'(할슈타인원칙의 폐기)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그 내용의 획기성에도 불구하고 실제 정책면에서는 북한의 비협조와 당시의 국제정세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1974년 8월에는 영부인 육영수가 북한의 지령을 받은 조총련계 문세광(文世光)에게 저격당했다. 이러한 정권의 위기는 결국 '부마민주항쟁(釜馬民主抗爭)'을 야기시켰으며,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安家) 만찬석상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金載圭)의 저격으로 서거(逝去)하였다.

저서로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 《민족의 저력》, 《민족중흥의 길》, 《국가와 혁명과 나》, 《지도자의 길》, 《연설문집》 등이 있다.
경북 구미 선산을 방문한 박정희 경북 구미 선산에 성묘를 마친 뒤 주변 경관을 바라보는 박정희대통령과 육영수여사.
박정희 연보출생 1917.11.14~ 사망 1979.10.26
1917
11월 14일 경북 구미면에서 출생.
1932
구미공립보통학교 졸업.
1937
대구사범학교 졸업. 문경공립보통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1944
일본육군사관학교 졸업.
1950
육영수와 결혼.
1957
육군대학 졸업.
1961
7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역임.
1962
대통령권한대행 역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추진.
1963
12월. 제5대 대통령으로 취임.
1967
12월. 제6대 대통령으로 취임.
1969
9월. 대통령의 3기 연임을 허용하는 주요 내용을 담은 제6차 개헌(3선개헌) 실시.
1970
새마을운동 추진.
1971
12월. 제7대 대통령으로 취임.
1972
계엄령 선포 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됨.
유신정권 단행.
1974
부인 육영수 서거.
1979
부마민주항쟁 발발.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 사망.
<한국의 역대 대통령>
 
이 름
재임기간
제1~3대 대통령
1948.07 ~ 1960.04
제 4대 대통령
1960.08 ~ 1962.03
제5~9대 대통령
1963.12 ~ 1979.10
제10대 대통령
1979.12 ~ 1980.08
제11~12대 대통령
1980.09 ~ 1988.02
제13대 대통령
1988.02 ~ 1993.02
제14대 대통령
1993.02 ~ 1998.02
제15대 대통령
1998.02 ~ 2003.02
제16대 대통령
2003.02 ~ 2008.02
제17대 대통령
2008.02 ~ 2013.02
제18대 대통령
2013.02 ~ 2017.03
제19대 대통령
2017.05 ~ .
박정희 제 5,6,7,8,9대 대통령.
부산군수기지사령부 사령관을 지낸 군인이자 대한민국 제5~9대 대통령.

활동 사항

1. 군사 쿠데타 이전의 전력

박정희는 1932년 3월 25일 구미공립보통학교[현 구미초등학교], 1937년 3월 25일 대구사범학교[현 대구교육대학교], 1942년 3월 25일 만주국 육군군관학교, 1944년 4월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박정희는 1937~1939년까지 문경공립보통학교[현 문경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다가, 만주국 육군군관학교에 진학하여 졸업하고 만주군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이듬해인 1945년 7월에는 만주군 중위로 승진하였다.

1945년 8·15 해방을 맞아 박정희는 중국으로 가서 1945년 8월 29일 광복군 제3지대 소속으로 귀국하였다. 1946년 9월 24일 조선경비사관학교 제2기생으로 입교하여, 12월 국방경비대 소위로 임관하였다. 1948년 11월 남로당 관련 혐의로 체포되었지만, 무기 징역에서 감형되고 다시 형 집행 정지로 풀려났다. 1950년 6월 25일 소령으로 복귀했으며, 1958년 3월 1일 소장으로 진급하였다.

2. 쿠데타의 단행

박정희는 자유당 말기인 1960년 1월 21일 군수기지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부산으로 오면서 쿠데타 모의를 구체화하였다. 그는 동래 온천장 별관 등에서 김동하, 이주일, 홍종철, 전두열 등의 군인들과 모의를 거듭하였다. 부산을 방문한 장도영 2군 사령관에게 쿠데타 계획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는데, 이때 장도영은 원칙적으로는 찬동하면서도 시기와 방법은 더 연구하자고 하였다.

박정희는 송요찬(宋堯讚) 육군참모총장이 미국으로 건너가는 1960년 5월 8일을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또 박정희는 부산에서 『부산 일보』의 주필로 있던 황용주(黃龍珠)와 자주 만났다. 황용주는 박정희의 쿠데타 모의에 깊숙이 관여하며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박정희의 쿠데타 계획은 3·15 부정 선거로 촉발된 학생과 시민들의 4·19 혁명이 폭발하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4·19 혁명이 발발하자 이승만 정부는 전국 주요 도시에 비상계엄을 선포하였고, 박정희는 부산지구 계엄사무소장을 맡게 되었다.

4월 26일 이승만의 하야 성명이 나오자 부산 전역이 데모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분노한 군중들은 몽둥이와 사이다 병으로 경찰서, 파출소, 자유당 의원 집, 자유당 사무실, 구청, 소방서, 반공 청년단 사무실 등을 모조리 파괴하였다. 일부 학생들이 시민에게 자제를 요청했으나 민중의 분노를 막을 수 없었다. 박정희는 도청 앞으로 나와 “군은 데모를 보호하기 위해 나왔다.”, “이성을 잃지 말고 폭행과 파괴를 말자.”고 외쳤으나 시위는 더욱 강하게 번졌다. 시위가 격화되면서 군중들은 원정 시위대를 조직하여 경상남도의 농촌 지역과 마산까지 휩쓸었다.

이로부터 1년여가 지난 1961년 5월 16일 새벽 박정희는 5·16 군사 정변을 감행하였으며, 1961년 7월 3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취임하였다. 1963년 12월 17일 박정희는 제5대 대통령 취임하였으며, 1967년 7월 1일 제6대 대통령 취임, 1971년 7월 1일 제7대 대통령 취임, 1972년 10월 17일 제8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3. 부산과의 관계

박정희와 부산과의 관련을 보면, 1962년 3월 27일 군사 정부는 부산의 대표적 기업가이자 2~3대 국회 의원을 지냈던 김지태(金智泰)를 부정 축재 처리법과 재산 해외 도피 혐의로 입건하였다. 이후 중앙정보부는 김지태에게 부일장학회를 강제로 국가에 헌납하도록 하였다. 부일장학회는 (주)삼화와 『부산 일보』, 한국문화방송 등을 창업한 김지태가 1958년에 설립한 재단이었다. 이때 김지태는 부일장학회의 땅 약 33만㎡[10만 평]와 『부산 일보』 주식 100%, 한국문화방송 주식 100%, 부산문화방송 주식 100%를 군사 정부에 넘겼다. 이 부일장학회는 이후 5·16장학회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82년 박정희와 부인 육영수의 이름을 한 자씩 따서 만든 재단 법인 ‘정수장학회(正修獎學會)’로 바뀌었고 박정희의 큰딸 박근혜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가 정치적 쟁점이 되자 공식 사퇴하였다.

박정희가 부산과 관련되는 또 다른 사안은 김영삼(金永三)의 제명과 부마 항쟁이었다. 1970년대 내내 박정희는 신민당 총재 김영삼과 대립 관계에 있었는데, 김영삼은 부산광역시 서구에 지역구를 가진 부산의 대표적인 정치인이었다. 1972년 10월 박정희가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유신 헌법을 선포했을 때 김영삼은 미국에 가 있다가 소식을 듣고 10월 21일 귀국하였고, 곧바로 군인들에게 가택 연금을 당하였다. 이때 김영삼의 오른팔이라고 불리던 부산의 국회 의원 최형우(崔炯宇)는 헌병대로 끌려가 무자비한 고문을 당하면서 김영삼의 정치 자금 출처 등을 추궁 받았다. 1978년 12월 27일 박정희는 제9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박정희와 김영삼이 최고도로 격돌한 것은 1979년 5월 김영삼이 신민당 총재로 재선된 이후였다. 김영삼은 정면으로 유신 헌법의 철폐를 요구하였고, 박정희 정권은 정치 공작을 통해 그를 제거하고자 하였다. YH 사건과 총재 직무 정지 가처분 등의 사태를 거쳐 마침내 김영삼의 국회 의원직 제명 사태까지 이르게 되었을 때 독재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부산에서 먼저 분출되었다.

1979년 10월 16일과 17일 양일에 걸친 분노한 시민들의 항쟁을 직접 시찰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金載圭)는 부마 항쟁을 ‘민란’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로부터 열흘 후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에 의한 10·26 정변이 발생하여 박정희의 처참한 죽음과 함께 유신 체제는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지도자도-혁명 과정에 처하여』[1961], 『국가와 혁명과 나』[1963], 『조국 근대화의 지표』[1967], 『우리 민족의 나갈 길』[1969], 『민족의 저력』[1971], 『민족 중흥의 길』[1978] 등이 있다.
묘소,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동작동 산41-2]의 국립서울현충원 국가원수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1979년 10월 26일 서거한 후 국장이 치러졌으며 매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1999년 7월 26일에는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가 설립되었고, 기념관 설립을 비롯한 여러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부마항쟁,[ 釜馬抗爭 ]
1979년 10월에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박정희의 유신체제에 반대한 민주화운동.
박정희의 유신체제는 1979년 들어서도 각종 시국사건에 대해 강압적으로 반정부 인사들에 대해 체포ㆍ연금ㆍ구금한다. 같은 해 5월 3일 ‘민주회복’을 목표로 한 김영삼(金泳三)이 신민당 총재로 당선되자 박정희는 김영삼 의원직 제명(除名) 안을 변칙으로 국회를 통과시켜 김영삼의 의원직 박탈 등의 일련의 사건으로 유신체제에 대한 야당과 국민의 불만이 극에 달한다. 그리하여 10월 15일 부산에서, 부산대학에서는 민주선언문이 배포되고, 16일 5, 000여 명의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하고, 시민들이 합세하여 대규모 반정부시위를 벌인다. 시위대는 16일과 17일에도 ‘유신체제타도’와 ‘정치탄압중단’ 등의 구호를 외치며 파출소ㆍ경찰서ㆍ도청ㆍ방송국 등을 공격하고, 18일과 19일에는 마산과 창원으로 시위가 확산된다.
10월 20일 정부는 마산과 창원 일원에 위수령을 발동하여 505명을 연행하고 59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한다. 10월 26일에는 부마사태의 수습책을 둘러싼 대통령경호실장 차지철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격렬한 언쟁을 벌이고 도중 김재규는 차지철과 박정희를 권총으로 살해하여 박정희의 유신체제는 종말을 맞는다.
12·12군사반란,[ 十二十二軍事叛亂 ]
유형/ 시대/ 성격/ 발생/ 시작/ 일시/ 관련/ 인물/ 단체/
사건
현대
군사충돌,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노태우
1979년 12월 12일 군부의 실세였던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등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군사반란 사건.
이들이 이끌던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세력이 당시 대통령이었던 최규하(崔圭夏)의 재가도 없이 휘하 부대 병력을 동원하여 정승화(鄭昇和) 육군참모총장을 강제로 연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군사반란 사건이다. 유혈충돌이 수반된 하극상 사건이었다.
12·12군사반란·12·12하극상·12·12쿠데타·12·12쿠데타적사건 등이라고도 한다. 신군부 세력은 이 사건으로 군 내부의 주도권을 장악한 뒤 1980년의 5·17사건을 일으켜 새로운 권력을 획득하였다.
5·17사건은 명백한 정치적 쿠데타로 간주될 수 있지만 12·12사건 당시에는 신군부의 정권장악 목표가 아직 명백하게 표출되지 않았으므로 12·12군사반란은 예비 쿠데타로 간주되기도 한다.
역사적 배경,
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살해된 뒤 최규하 과도정부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정승화 육군참모총장(대장)을 계엄사령관에 임명하였다.
정승화는 군 장악을 위해 윤성민(尹誠敏, 참모차장), 장태완(張泰玩. 수경사령관), 정병주(鄭炳周, 특전사령관) 등을 중용하여 지휘계통을 개편하였으며, 10·26사태에 직접 연루되었던 중앙정보부와 대통령 경호실을 축소 개편하였다.
이로써 정승화는 군에 대한 지휘체계를 확보하고 자신이 정치 일정을 이끌어 가는 데 핵심역할을 담당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군부 내 사조직이었던 하나회가 4년제 육군사관학교 최초의 기수인 11기의 지도 아래 하나의 배타적인 파벌집단을 형성하면서 군부내 세력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보안사령관의 자격으로 10·26사태에 대한 수사를 전담하는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고 있던 전두환 소장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군부세력(신군부)이 기존의 육군지도부였던 정승화 세력과 갈등하게 되었던 것이다. 갈등을 일으키게 한 대립의 쟁점은 사건수사와 군의 인사문제였다.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세력은 군부 내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정승화가 김재규(金載圭)의 내란에 방조한 혐의가 있다고 주장하고, 10·26사태 수사에 소극적이고 비협조적임을 내세워 정승화를 강제 연행하기로 계획하였다.
10·26사태 당시 정승화는 궁정동 안가의 대통령 시해현장 부근에 대기하였으며 사건 이후 김재규를 구속할 때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 그 수사를 지연시킨다는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물론 정승화가 10·26사태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은 후일 명백히 밝혀졌다).
정승화의 연행을 실행하기 위해 11월 중순 국방부군수차관보 유학성(兪學聖), 1군단장 황영시(黃永時), 수도군단장 차규헌(車圭憲), 9사단장 노태우 등과 함께 모의한 뒤 12월 12일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20사단장 박준병(朴俊炳), 1공수여단장 박희도(朴熙道), 3공수여단장 최세창(崔世昌), 5공수여단장 장기오(張基梧) 등과 사전 접촉하였다.
그리고 12월 초순 전두환은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李鶴捧)과 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許三守),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 우경윤에게 정승화 연행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하였다.
전두환 합수부장의 지시에 따라 12일 저녁 허삼수·우경윤 등 보안사 수사관과 수도경비사령부 제33헌병대 병력 65명은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난입하여 경비원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제압한 뒤 정승화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로 연행하였다.
윤성민 육군참모차장 지휘하의 육군 수뇌부는 이 사실을 확인하여 전군(全軍)에 비상을 발동하고 합동수사본부측에 정승화의 원상회복을 명령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이미 1공수여단과 5공수여단 병력이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점령하였으며 9사단 병력 등은 중앙청으로 진입하였던 것이다. 이에 진압군 병력 출동을 추진하였던 육군수뇌부(장태완 수경사령관과 정병주 특전사령관, 李建榮 3군사령관, 윤석민 참모차장, 文洪球 합참본부장)는 모두 서빙고 분실로 불법 연행되었다.
이와 같은 반란군의 정승화 연행과 병력이동은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 없이 이루어졌다. 사후 승인을 받기 위하여 신군부세력은 최규하에게 압력을 가하여 총장연행 재가를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전두환 합수부장은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승화가 김재규와 연루된 새로운 사실(돈을 받는 등)을 발견하였으니 정승화를 연행 조사토록 승인해 달라고 요청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승화는 후일 김재규에게 받은 돈 300만 원은 단순한 추석 촌지로서 당시 전두환도 500만 원 수령 사실을 인정했었다고 주장하였다. 대통령의 재가를 얻는 데 실패한 신군부세력은 국방장관 노재현(盧載鉉)을 체포하여 그를 통하여 대통령이 총장연행을 재가하도록 설득하였다.
결국 최규하는 13일 새벽정승화의 연행을 재가할 수밖에 없었다. 13일 오전 9시 9사단장 노태우와 50사단장 정호용(鄭鎬溶)은 각각 수경사령관과 특전사령관에 취임함으로써 당시의 군부가 반란의 주도세력에 의해 장악되었다.
결국 신군부세력은 1980년 5·17쿠데타까지 주도해 제5공화국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하였다. 미국은 12·12사태를 사전에 알지 못했으며, 한미연합사의 작전통제권 하에 있는 부대들을 적절한 통고없이 사용한 데 대하여 한국 군부에 항의하였다.
12·12사건의 주도세력인 전두환과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재임한 1993년 초까지 12·12사건은 집권세력에 의하여 정당화되었으나, 김영삼(金泳三)정부가 출범한 이후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자는 국민들의 요구가 있었으므로 김영삼정부는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규정하였다.
1993년 7월 19일 정승화 등 22명은 전두환·노태우 전임 대통령을 비롯한 38명을 12·12 군사반란 혐의로 고소하였으며, 1994년 5월 13일 정동년(鄭東年) 등 5·18광주민주화운동의 관련자들은 전두환·노태우 등 35명을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 혐의로 고소하였다.
이에 같은 해 10월 29일 검찰은 12·12 사건에 대해 기소유예 결정을 내렸으나 1995년 1월 19일에 헌법재판소에서는 12·12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았다는 결정을 내려 논쟁이 계속되었다.
같은 해 7월 18일 검찰은 5·18 관련자들에 공소권이 없으므로 불기소 처분을 내린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5·18특별법을 제정하라는 요구가 있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11월 16일 비자금관련사건으로 구속되면서 11월 24일 김영삼 대통령은 민주자유당에 5·18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전격적으로 지시를 내렸다.
이 과정에서 김영삼은 국민들의 요구에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구호로 부응하였던 것이다. 11월 30일 검찰은 12·12사건과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하고 재수사에 착수하였으며, 전두환 전 대통령도 반란수괴 등의 혐의로 12월 3일 구속, 수감되었다. 12월 19일 5·18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였으며 1996년 1년 내내 전두환·노태우 피고인에 대한 12·12사건 및 5·18사건, 비자금 사건 관련 공판이 진행되었다.
재판의 과정에서 전두환은 제5공화국 정부는 합헌정부이며, 내란정부로 단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였으며, 노태우는 이 사건이 사법처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이에 재판부가 1997년 4월 17일 12·12사건은 명백한 군사반란이며 5·17사건과 5·18사건은 내란·내란목적살인 행위였다고 단정함으로써 폭력으로 군권이나 정권을 장악하는 쿠데타는 성공하더라도 사법심판의 대상이며 형사책임은 배척할 수 없다는 판례를 남겼다.
1996년 12월 16일 항소심에서 전두환은 무기징역, 벌금 2205억 원 추징을, 노태우는 징역 15년, 벌금 2626억 원 추징이 선고되었고, 1997년 4월 17일의 상고심에서 위 형량이 확정되었으나 김대중 후보의 대통령 당선에 즈음해 1997년 12월 22일 특별사면으로 양인 등은 석방되었다. → 십이륙사태, 오일팔광주민주화운동
참조항목,
역참조항목,
카테고리,
출처 &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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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항쟁 [釜馬抗爭] (21세기 정치학대사전, 정치학대사전편찬위원회)
[네이버 지식백과] 12·12군사반란 [十二十二軍事叛亂]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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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대통령 박정희,

인물 정보, 대통령 박정희,

1917년 경북 구미 출생. 1937년 대구사범학교 졸업 후 문경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만주군관학교 거쳐 1944년 일본육사 졸업. 1946년 조선경비사관학교(육사 전신) 졸업 후 소위 임관. 6·25때 육군본부 정보국 제1과장 거쳐 1953년 준장 승진. 제5·7사단장 거쳐 1958년 소장 승진. 1961년 5·16군사혁명을 주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취임. 1963년 대장 예편 후 민주공화당총재로 제5대 대통령 당선. 1962년부터 경제개발5개년계획과 새마을운동 추진. 1967년 제6대 대통령 재선. 1970년 경부고속도로·포항제철 건설. 1971년 제7대 대통령 당선. 1972년 제8대 대통령 당선. 1978년 제9대 대통령 당선.1979년 10·26사태로 서거. 저서에 《우리민족의 나아갈 길》《국가와 혁명과 나》《민족의 저력》《민족중흥의 길》등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출생-사망1917년 11월 14일, 경상북도 구미 - 1979년 10월 26일가족배우자 육영수, 딸 박근혜, 딸 박근령, 아들 박지만수상1963년 무궁화대훈장경력1978.12~1979 제9대 대한민국 대통령,
1972.12~1978 제8대 대한민국 대통령,
1972 통일주체국민회의 의장관련정보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밀양표충사,

1978.12 ~ 1979

제9대 대한민국 대통령

1972.12 ~ 1978

제8대 대한민국 대통령

1972

통일주체국민회의 의장

1971.07 ~ 1972

제7대 대한민국 대통령

1967.07 ~ 1971

제6대 대한민국 대통령

1963.12 ~ 1967

제5대 대한민국 대통령

1963 ~ 1979

제2대 민주공화당 총재

1962 ~ 1963

대통령 직무대행

1961 ~ 1963

제2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1960

대한민국 육군 제2군 부사령관

1958

대한민국 육군 소장

1957

대한민국 육군 제7사단장

1955

대한민국 육군 제5사단장

1953

대한민국 육군 준장

1950

대한민국 육군 정보국 제1과장

1937 ~ 1940

문경서부심상소학교 교사,
박정희는 생전에 수많은 저술을 발표하고 적지 않은 분량의 유고를 남겼는데, 그중 정식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은 <지도자도(指導者道>(1961), <우리 민족의 나갈 길>(1962), <국가와 혁명과 나>(1963), <민족의 저력>(1971), <민족중흥의 길>(1978)의 5종이다. 2016년 말 각계 원로들로 구성된 박정희 탄생 100돌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위원장 정홍원 전 국무총리. 이하, ‘추진위’)는 이 저서들을 4권의 영인본으로 재출간(<우리 민족의 나갈 길>, <지도자도>는 합본)하는 것과 동시에, 역시 4권의 ‘평설’로 풀어 쓰고(남정욱 풀어씀), 이제까지 공개된 박정희 생전의 자필 시 전편(全篇)과 일기 선집을 한데 묶은 <박정희 시집>을 합쳐 모두 9권의 ‘박정희 전집’으로 발간했다.
추진위 위원장을 맡은 정홍원 전 총리가 전집 발간사를 썼다. 박정희 저술을 모은 ‘전집’과 함께, <박정희 바로 보기> <박정희 새로 보기>(이상 기출간, 2017), <인간 박정희> <박정희 동반성장의 경제학> <박정희와 노동자의 새벽>(이상 가제, 근간) 등 교양서 및 연구서 시리즈도 순차로 발간 중이다. 모든 출판물은 도서출판 기파랑에서 간행한다.
I. 인간개조의 민족적 과제,
1. 민족적 각성의 필요성
(1) 민족적 위기의 인식 / (2) 민족애의 결핍 / (3) 특권 특수의식의 지양 / (4) 파당의식의 지양 / (5) 민족적 자아 확립의 필요성
2. 민족사회의 재건
(1) 사회정의의 실현 / (2) 사회적 경제적 평등 / (3) 개인경제생활의 보장 / (4) 개인의 인권과 자유 / (5) 자치능력의 향상 / (6) 봉사의식의 향상

II. 우리 민족의 과거를 반성한다
1. 李朝 건국이념의 형성
2. 이조의 사회구조가 지닌 병리
3. 이조의 전제적 토지제와 ‘양반’ 경제
4. 이조 당쟁사의 반민주적 폐습
5. 이조사회의 악(惡)유산들
(1) 사대주의: 자주정신의 결여 / (2) 게으름과 불로소득관념 / (3) 개척정신의 결여 / (4) 기업심의 부족 / (5) 악성적 이기주의 / (6) 명예관념의 결여 / (7) 건전한 비판정신의 결여
6. 전승해야 할 유산들
(1) 지방자치의 발생: 향약과 계 / (2) 국난 극복을 위한 애국전통: 이충무공과 의병운동, 동학농민운동 등 / (3) 서민문학의 개화 / (4) 퇴계와 실학사상
7. 이조 망국사의 반성: 민중의 반란, 외래 식민문화의 망국사 반성
8. 파멸에서 재건으로: 이조 망국, 6.25, 4.19, 5.16
9. 한국의 근대화를 위하여: 우리나라 민족혁명의 과제

III. 한민족의 수난의 역정
1. 민족 수난의 역사
2. 사대외교와 한.일수교의 민족사적인 비극
3. 러시아의 남하정책과 한.미수교의 의의
4. 국제적 승인하의 일본의 한국 침략
5. 魔의 38선과 한국의 운명
6. 한국동란과 UN 참전 16개국
7. 신 미.일방위조약과 한국의 외교적 위치
8. 한국 통일: 극동의 공산 침략과 북한집단

IV. 제2공화국의 ‘카오스’
1. 4.19혁명의 유산: 張정권의 흥망
2. 病胎兒인 제2공화국
(1) 민주당의 계보와 성격: 한민당의 쌍생아, 자유.민주...
(1) 민주당의 계보와 성격: 한민당의 쌍생아, 자유.민주 양당 / (2) 분당 난투극과 감투싸움 / (3) ‘약체 내각’과 감투 분배 / (4) 극도에 달한 사회적 혼란 / (5) 지도력의 빈곤
3. 장 정권의 붕괴,

V. 후진 민주주의와 한국혁명의 성격과 과제,
1. 현대 후진 민주국가의 위기
2. 위기의 본질
3. 혁명기에 있어서의 민주주의: 행정적 민주주의
4. 행정개혁과 국민의 자치정신

VI. 사회재건(국가)의 이념과 철학,
1. 평화와 자유: 인류의 희망
2. 사회재건에 있어서 우리들의 기본적 가치관
3. 국가질서
4. 최대의 자유와 최소의 계획
5. 소득의 균등과 경제의 공익화
6. 영세농업의 탈피와 농촌 부흥의 길
7. 협동적인 복지사회의 질서
8. 민주적 이념과 문화와 교육의 새로운 질서

(부) 지도자道: 혁명과정에 처하여!
1. 序言
2. 지도자의 성격
지도자의 상대성 / 과거의 지도자 / 현대적 지도자
3. 피지도자의 분석
우리가 당면한 이 시대 / 우리 겨레의 구성요소 / 우리 겨레의 소원
4.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지도자의 자격
동지의식 / 판단과 해결의 능력 / 선견지명 / 원칙에 충실: 양심적 인물 / 용단 /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 목표에 대한 확신 / 지도자단의 단결 / 성의와 정열 / 신뢰감     
5. 結語
망국사를 딛고 새 역사를 창조하자”
5천 년 잠자던 민족혼을 일깨우다
영인 우리 민족의 나갈 길(附 지도자道) (박정희 전집 2),,,,,
5.16혁명 이듬해 펴낸 박정희의 <우리 민족의 나갈 길>(초판 1962)은 세로짜기, 국한문혼용이다. 아직 정치인이 아니고 ‘임시 관리자’를 자처하던 박정희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 보여 주는 총 277쪽의 묵직한 책이다. 박정희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 책을 원본 그대로 영인해 펴낸다.
<우리 민족의 나갈 길>은 박정희가 청년 시절부터 꿈꿔 왔고, 혁명을 계기로 이제부터 만들고 싶어 한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철저히 ‘교사, 군인, 혁명가’의 스탠스에 이제 막 ‘경영자’의 시야를 장착한 때였음을 명심하자. ‘나’ 또는 ‘본인’은 철저히 뒤로 숨고, 시종일관 앞세우는 것은 ‘우리=겨레=나라’다. 과거의 우리를 자성(自省)하고 현재의 우리를 염려하고 미래의 우리의 청사진을 내놓는 구조다.   
과거와 현재 돌아보기는 통렬하기를 넘어 자조(自嘲)적일 만큼 신랄하다. 그사이 역사학의 새로운 해석과 의미부여도 꾸준히 있어 왔다. 55년 전 글이라는 것, ‘민족적 각성’을 아예 ‘인간 개조’라는 강한 필치로 촉구하는 충격요법 목적의 글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간, ‘우리나라가 이다지도 망할 나라였던가!’ 하는 반감 가까운 한탄이 절로 나올 만하다. 그런가 하면, 장밋빛 일색의 대한민국 미래 청사진은 당시로서는 얼마나 허무맹랑하게 받아들여졌을까? 북한보다도 못살던 아시아 최빈국이자 후진 민주주의 국가가 ‘복지사회’는 또 무엇이며 심지어 ‘나면서부터 무덤까지’(영인 264쪽, 평설 194쪽)라니! 그런데 지금의 관점으로 찬찬히 보면 그 울림이 얼마나 새록새록 가슴을 파고드는가?
아무도 꿈꿀 엄두조차 못 낸 꿈을 반세기 앞질러 꾼 박정희. 그가 꿈꾼 바로 그런 나라를 지금 사는 우리가 다시 이 책을 돌아봐야 할 이유다. 
세로쓰기와 한자 노출이 낯선 1970년대 이후 출생 세대를 위해, 책을 현대어로 풀어 쓰고 간추린 가로쓰기 <평설 우리 민족의 나갈 길>(남정욱 풀어씀, 박정희 전집 6, 기파랑 刊)을 동시출간했다.
<지도자도(指導者道)>(부제 ‘혁명과정에 처하여’)는 5.16 한 달 뒤인 6월 16일 펴낸, 본문 27쪽(총 36쪽)짜리 소책자이다. 이 해 신문지상에 발표한 ‘혁명과업 완수를 위한 국민의 길’, 그리고 ‘국가재건최고회의 1962년 시정방침’과 한데 엮어 이듬해인 1962년 초 <지도자의 길, 국민의 길>(공보부 刊)이라는 가로짜기 합본으로 재출간됐으나, 1962년 판본은 풀어쓰기를 넘어 아주 새로 쓰다시피 한 해설판이어서 원본의 모습은 더 이상 없다. 그 원본을 권말에 영인으로 함께 수록했다.
민주주의를 가장 잘 이해한 지도자,

고대국가 성립 이래 이 나라는 전제군주정이었다. 전제정 만도 못한 일제의 식민통치를 35년 가까이 겪고, 역시 외국의 군정을 거쳐 1948년, 단군 이래 처음으로 남녀노소 1인 1표로 ‘국민 대표’라는 것을 뽑고(제헌의회), 거기서 대통령(왕이 아니고!)을 뽑았다(대한민국 정부수립, 1948). 2년도 못 돼 전쟁이 일어나 3년을 끌었다. 그러나 성공적으로 전후복구와 개발을 이끌어 가던 정부는 불통을 조장해 사익을 챙기는 무리들로 썩어 들어갔다. ‘못살겠다, 갈아 보자’던 외침은 1956년 정.부통령 선거 당시는 실현되지 못하고, 4년 뒤에야 학생과 지식인들이 앞장서 정권교체를 성사시켰다(4.19). 그렇게 구성된 정부가 ‘갈아 봤자 별수 없’더라는 좌절감이 팽배할 때, 다시 1년 만에 군인들이 일어나 무능한 정부를 몰아냈다면?      
그때의 눈으로 보자. 단군 이래 최초의 민주공화국 경험 겨우 13년, 겨레와 나라가 아직 동일시되고, 지배층이 무능하고 부패하기는 반세기 전이나 다름없던 그때를 살던 사람들에게, 이 나라 이 겨레는 가망이 있었을까? 5.16 당일과 이튿날, 교수와 지식인 사회는 물론이고 나중에 ‘반(反) 독재 민주화투쟁’의 아이콘이 되는 인사들(함석헌, 장준하 등)조차 두 손 들어 군사혁명을 반긴 이유다.      
박정희가 18년 통치기간 동안 줄곧 부여잡은 화두(話頭)인 ‘한국적 민주주의’의 밑그림이 그려지는 것이 바로 이때다. 그 본고장인 서구의 민주주의는 그가 보기에, 오랜 세월 일군 토양에 ‘피’라는 거름을 뿌려 키운 나무다. 해방이 그러했든 민주주의 역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이나 다름없던 이 나라에서 서구식 민주주의의 껍데기를 따라 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나 다름없는 ‘후진(後進) 민주주의’였다. 그러나 교사 출신에 군인으로서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덕에 자유민주주의의 근본정신만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전쟁과 혼란에서 막 벗어난 혁명 2년차, 이때 단계에서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한 한국적 민주주의를 그는 ‘행정적 민주주의’라 명명했다(제5장 3절). 지금 눈으로 보면 절차적 민주주의, 복지민주주의쯤 된다. 과거사를 통렬히 반성하면서도 향약과 계, 화랑과 이충무공, 조선 후기 서민문학, 퇴계성리학과 실학 등 ‘전승해야 할 유산들’을 잊지 않고 짚고 넘어가고(제2장 6절), 책의 마무리를 ‘문화와 교육’으로 삼은 것은, 박정희 혁명이념의 선진적 성격을 새삼 곱씹게 한다.
<우리 민족의 나갈 길> 출간 당시 박정희는 아직 현역군인 신분이었고, 최고회의는 혁명과업이 완수되면 완전히 민정으로 이양하기로 약속한 상태였다(‘혁명공약’ 제6). 아직 그 시간표는 나오지 않았지만, 혹시 박정희 자신이 언젠가 군복을 벗고 민간인으로서 ‘대권’을 잡을 꿈은 없었을까? 확실히 이때까지는 아니고, “미묘한 인식 변화가 감지”(남정욱)되기 시작하는 것은 이듬해 1963년, <국가와 혁명과 나>부터라는 지적은 흥미롭다. <국가와 혁명과 나>는 박정희 전집 제3권(영인), 7권(평설)으로 함께 출간되었다(기파랑, 2017).
탄생 100돌(1917~2017) <박정희 전집>(全 9권) 발간,

2017년은 박정희(1917. 11. 14~1979. 10. 26) 탄생 100주년. 그의 공과(功過)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인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박정희가 없었더라면 이 나라는 더 잘되었을 것”이라 말하는 사람은 없다. 정치인 박정희를 비판, 심지어 증오하는 편에서조차 ‘오늘의 대한민국을 설계하고, 세계사에 유례없는 경제발전을 이룬 공’을 정면으로 부정하지 못한다. 그러나 18년 동안 집권하고 사후 38년이 지난 이 ‘한국현대사의 거인’에 대한 평가는 언제나, ‘공과’가 아니라 ‘오직 과(過)’에만 집중되어 있다.
박정희는 생전에 수많은 저술을 발표하고 적지 않은 분량의 유고를 남겼는데, 그중 정식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은 <지도자도(指導者道>(1961), <우리 민족의 나갈 길>(1962), <국가와 혁명과 나>(1963), <민족의 저력>(1971), <민족중흥의 길>(1978)의 5종이다. 2016년 말 각계 원로들로 구성된 박정희 탄생 100돌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위원장 정홍원 전 국무총리. 이하, ‘추진위’)는 이 저서들을 4권의 영인본으로 재출간(<우리 민족의 나갈 길>, <지도자도>는 합본)하는 것과 동시에, 역시 4권의 ‘평설’로 풀어 쓰고(남정욱 풀어씀), 이제까지 공개된 박정희 생전의 자필 시 전편(全篇)과 일기 선집을 한데 묶은 <박정희 시집>을 합쳐 모두 9권의 ‘박정희 전집’으로 발간했다. 추진위 위원장을 맡은 정홍원 전 총리가 전집 발간사를 썼다.
박정희 저술을 모은 ‘전집’과 함께, <박정희 바로 보기> <박정희 새로 보기>(이상 기출간, 2017), < > <박정희 동반성장의 경제학> <박정희와 노동자의 새벽>(이상 가제, 근간) 등 교양서 및 연구서 시리즈도 순차로 발간 중이다. 모든 출판물은 도서출판 기파랑에서 간행한다.

박정희 전집 (全9권)
01 시.일기 박정희 시집
02 영인 우리 민족의 나갈 길(附 지도자道)_박정희 저
03 영인 국가와 혁명과 나_박정희 저
04 영인 민족의 저력_박정희 저
04 영인 민족중흥의 길_박정희 저
06 평설 우리 민족의 나갈 길_박정희 저, 남정욱 풀어씀
07 평설 국가와 혁명과 나_박정희 저, 남정욱 풀어씀
08 평설 민족의 저력_박정희 저, 남정욱 풀어씀
09 평설 민족중흥의 길_박정희 저, 남정욱 풀어씀
민족중흥의 길,
“목표는 선명하며 길은 뚜렷하다” 대한민국 새 역사 창조의 출사표, 평설 민족중흥의 길 (박정희 전집 9)

‘선진 한국’ 마스터플랜의 완결판

‘기리거나 욕하거나(Love him or hate him).’ 박정희 18년 동안의 3대 거사 중 2가지가 1970년대에 나왔다. 10월유신(또는 독재)과 새마을운동(또는 관제官制 운동)이 그것이다(나머지 하나는 1961년의 ‘혁명 또는 쿠데타’). 그중 새마을운동이 대한민국 현대사의 긍정적인 유산으로 각종 조사에서 첫손 꼽혀 기억되고 외국에도 수출되는 효자상품인데, 하필이면 그의 탄생 100돌을 맞는 해에 그 수출을 스스로 그만두겠다는 대한민국이다(기로에 놓인 원자력발전 수출도 그러고 보니 박정희의 유산이다). 지금 박정희의 [민족중흥의 길](초판 1978)을 다시 읽어야 할 이유다.

바로 앞 저작인 [민족의 저력]이 나온 해가 그보다 7년 전인 1971년이다(기파랑 재발간, 2017). 그러니까 박정희의 1970년대는 [민족의 저력]으로 열려 [민족중흥의 길]로 닫혔다. 그사이 1971년 마지막 직선제 대통령선거(제7대)에서 당선되고, 1972년 10월유신 직후 제8대 대통령 당선(통일주체국민회의 간선, 12월 23일), 1975년 유신헌법 재신임 국민투표 압승, 1978년 제9대 대통령 당선(간선, 7월 6일). 그 후 두 달이 채 안 돼 이 책이 나왔으니, 9대 대선 전에 이미 책이 조판 중이었거나, 최소한 얼개는 잡혀 있었을 듯하다.

10월유신과 새마을운동이 내건 청사진을 수치로 요약한 구호가 ‘1980년대 수출 백억 불, 국민소득 천 불’이다. 당시로는 말도 안 될 것만 같은 목표였는데, 실제 박정희는 이 두 가지를 1977년에 앞당겨 달성했다. 그래 봤자 중진국 수준이지만, 기세를 몰아 ‘선진 한국’을 얘기하는 게 하나도 어색하지 않던 시절이다. 그래서 [민족중흥의 길]을 ‘선진 대한민국 예약 선언’으로 읽어도 좋다.
한국국민에게 고함,
박정희의 애국사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핵심저서-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 국가와 혁명과 나, 민족의 저력, 민족중흥의 길, 혁명과업완수를 위한 지도자의 길, 혁명과업완수를 위한 국민의 길-, 그리고 박정희의 인간적 면모를 느끼게 해주는 일기와 시편들이 이 책 안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박정희를 위하여, 삭풍이 몰아치는 황량한 벌판에 서서 홀로 외치는 그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이 아니다. 진정 나라를 생각하는 젊은이라면 깊은 박정희의 이야기를 들어라.,,
박정희에 대하여 우리는 무엇을 아는가?

오늘날 한국의 성숙한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필수적이며 이를 가능케 한 경제발전을 이룩한 위대한 지도자로서의 박정희의 업적을 되돌아보고 있다. 박정희는 정권 18년 동안 자립경제력을 갖춘 현대국가를 건설하고, 지난 5천년의 진보보다 더 많은 발전을 이룩했다. 정치적, 경제적 개혁의 성공, 새마을운동을 통한 의식개혁, 사회 기강, 법과 질서의식의 확립,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국민정신을 일깨워 ‘조국근대화’를 실현한 것이다.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오늘의 젊은이들이라면 박정희를 제대로 읽고 그 속에서 흔들릴 수 없는, 민족이 나아갈 교훈을 찾아야 한다.
“중단하는 자는 승리하지 못하며, 승리하는 자는 중단하지 않는다” 평설 민족의 저력 (박정희 전집 8)

자주, 자립, 자조의 10년

민족의 저력,
초판은 5.16혁명 10주년을 맞는 1971년 3월 1일에 나왔다. 지나간 1960년대 10년간은 유엔개발계획이 선포한 ‘개발연대’이기도 했다. 개발연대 마지막 해인 1969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당시는 GNP로 계상)은 198달러. 2016년의 1인당 GDP 2만 7,539달러(명목)에 비하면 헛웃음이 나오겠지만, 그 10년 전(1959)의 59달러에 비하면 무려 4배 가까이, 연평균 8.6퍼센트씩 성장했다. 유명한 마지막 문장, “중단하는 자는 승리하지 못하며, 승리하는 자는 중단하지 않는다”의 울림은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도 대단하다. 이 책이 장제스(장개석) 시대 자유중국(대만)에서까지 번역 출간된 데는 다 이유가 있다(대만 제호 [민족적잠력民族的潛力], 1977).

한국경제의 골든타임이었던 그 10년의 키워드를 박정희는 ‘자주, 자립, 자조’로 요약한다. 장차 새마을운동의 ‘근면, 자조, 협동’으로 발전할 새싹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키워드는 이미 그 전 해인 1970년, 1월 1일 신년사와 8.15 광복절 25주년 경축사에서 거듭 피력한 바 있다. 두 연설문을 책 부록에 포함시킨 이유다.
한국의 군인, 정치가.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보통학교 교사였다가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를 졸업하고 만주군중위가 되었다. 해방 후 한국군 소장이 되어 5·16 군사정변을 주도하였다. 1963년 제5대 대통령이 되어 경제개발을 단행하였고 한편에서는 국가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상대적 빈곤의 심화와 장기집권에 따른 부작용, 국민들의 반유신 민주화운동으로 그에 대한 지지도가 약화되자 긴급조치를 발동하여 정권을 유지하려 하였다. 그 이후 정권의 위기로 인해 결국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 만찬석상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저격으로 사망하였다.
이 글은 박정희 대통령 께서 돌아 가신 뒤 일어난 일이다.

그는 수선한 바지를 입은 해진 혁대,(허리띠) 고물 세이코 시계, 멕기가 벗겨진 넥타이 핀을 꽂고 있었다. 서민의 품속에서 서민의 모습으로 죽고싶다던 그의 소망은 성취되었다. 
박정희 대통령 께서 검소하게 살았기 때문에 한국인 은 배불리 먹을 수 있었고 김일성 김정일 이 호화판 으로 살았으므로 북한동포 들은 굶주린 것이다. 
**참비교 안 되죠??? 현명 한 선택 을하셨던 것 같읍니다....
^^ 성불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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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이웃블르그 소개,,,

맛집' 이웃블르그 소개,,,

“사람과 동물 자연 모두의 행복을 추구한다 는 좋은 취지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하며 아무 거리낌없이 생활 과 아픔없이 웃음만 안고 삶을 영위하는 세상살이 야말로...
[대구/수성구] 종로1번지 역전아재맥주
# 아늑한 실내분위기, 넓은 주차공간, 커피한잔의 여유..
# 저렴한 생맥주 500cc (3300원), 300cc (2200원) 만원 이하의 맛있는 안주 '가성비 끝판왕'
0일 남음0/5
[천안/서북구] 정통일식 청이해
* 신선한 재료만을 고집합니다.
* 10년동안 사랑받아온 천안의 핫플레이스
4일 남음0/5
[청주/금천동] 소간지 금천점
소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주는 이곳
#윤기좔좔 #소고기한입 #느끼할땐 #국물한번 #크으으
1일 남음0/5
[수원/영통] 착한타이마사지
미친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곳 시원함이 진짜 남달라 ♡ 야근으로 뭉친 어깨 저리 가버렷!
#힐링을느끼러가자요 #마사지받고피로풀자 #영통역핫플
1일 남음0/5
[경남/창원] 키친606
# 인스타 감성! # 여심저격 데이트 장소로 딱!
# 퀄리티 갑 스테이크 맛집! # 분위기에 반하고, 맛에 반하다!
1일 남음0/5
[수원/권선구] 블리스커피
#커피콩을 직접 볶는 로스터리 커피점
#프리미엄 카페 #핸드드립 #커피전문점
4일 남음0/6
[경남/김해] 샤브샤브 '사마정' 김해내외점
* 누구나 좋아하는 샤브샤브
* 사마정에서 먹으면 더 맛나지요 :D
4일 남음0/5
[부산/해운대] 샤브샤브 '사마정' 해운대본점
* 누구나 좋아하는 샤브샤브
* 사마정에서 먹으면 더 맛나지요 :D
4일 남음0/6
[천안/성거읍]달인수제어묵 (망향휴게소)
# 망향휴게소 부산방향에 위치한 수제어묵
# 따뜻한 수제어묵 드려보셔요 ^^
1일 남음0/5
[부산/동래] 제주상회 온천천점
#맛있는~이야기 #제주산 生오겹 #제주산 통목살
#제주산 특수부위모듬 #제주산 건강돼지갈비 #샐러드바 #1시간무료주차
7일 남음0/5
[양산/물금] 계복치
당신의 입맛을 훔칠 그가 온다 !
#숯불치킨은 #밥 #비벼먹어야 #제맛이지!! #밥도둑
4일 남음0/10
[인천/서구] 임창정의 대단한갈비(검단점)
* 한번 맛보면 반한다 #.#
* 연예계 미식가! 임창정의 대단한갈비
4일 남음0/5
[부산/연산] 불막열삼 연산교대점
고기의 성지! 맛있는 고기는 여기서 다 먹을 수 있다!
#뭐먹을지 #싸우지말고 #다시키자!!
4일 남음0/5
[온라인] 챰타로 카카오톡 상담
속시원하게 풀어드립니다 ! 연애/직로/직장/고민 챰타로에서 시원하게 풀고가세요~
#동치미같은풀이 #이제귀찮게오프라인은그만~
4일 남음0/2
[강서/화곡] 선식당 화곡점
#가성비쩔어#맛도쩔어#이미소문난맛집 !
#데이트코스로?오#줄서서먹는곳
4일 남음0/5
[경기/광명] 선식당 광명점
#광명핫플#이미 소문난 맛집
#광명시데이트코스#가성비와 맛모두 ?오 +ㅁ+
4일 남음0/5
[경기/군포] 선식당 군포점
#군포핫플#맛과양이푸집한 맛집>.<
#놀이방있어#가족모두 즐겁게 식사하는 집
4일 남음0/5
[김해/진영] 생고기제작소 진영점
# 소고기가 먹고싶다면! 소고기가 끌린다면! 생고기제작소로!
# 고퀄리티 무한리필 소고기! # 육즙 대박... 이 맛은 감동이야!!
4일 남음0/5
[화성/병점] 신진미통닭
배가 찢어질정도로 맛있는 통닭 맛집! 다리 ?! 날개 ?! 잡고 찢어먹는 그 맛♡
#넘나경이로운맛인것 #맛이가있다 #병점핫한치킨맛집
5일 남음0/5
[온라인] 안녕사주타로 카카오톡 상담
사돈에 팔촌까지 소개해주고 싶은 안녕타로 ♡
#너무잘보잖아 #알고가면현명해
4일 남음0/5
[송파/위례] 아이디헤어 위례중앙타워점 명규원장
# 인생머리맛집! # 위례신도시에서 찾은 나만의 미용실!
# 헤어스타일에서 첫인상은 좌우된다!! # 스타일 변신!
5일 남음0/5
[충남/아산] 레스토랑 리베르따
#정통 이탈리안 레스토랑 #원수의 마음도 돌려놓을 요리 #품격에 문화를 더하다!
#주말 감미로운 클래식 디너 #탁 트인 스카이라운지, 전망 좋은 인생 #내 영혼에 선물하는 자유와 휴식
4일 남음0/5
[전남/광양] 가문의짬뽕
# 여름별미 냉짬뽕으로 더위를 날려보세요! # 짬뽕 국물이 끝내줘요!
#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가문의짬뽕! # 푸짐한 한끼!
4일 남음0/3
[광주/전남대] 깻잎통닭
이것이 진정한 인생치킨 광주 전남대 학생들의 명물 깻잎통닭 ! 이 집 치킨은 식어도 맛있어! 뭐야 정체가???
#깻잎콕콕 #식은치킨도맛있는집이진짜맛집 #프로치킨러들모여라
4일 남음0/5
[서울/송파] 쨍베트남쌀국수
(경) 쨍베트남 쌀국수 전국 지점 확장기념 (축)
#로컬도 인정하는 베트남 맛집!!
6일 남음0/5
[울산/명촌] 문어홀릭
# 울산 유명 문어요리 전문점!! # 문어요리가 가득한 문어홀릭!
# 명촌 핫플레이스! # 문어홀릭에 반하다!! # 퀄리티 대박!!
6일 남음0/5
[서울/용산] 이태원 고우
# 이태원 이자카야 인기술집
# 13년 전통의 꼬치구이 전문점
4일 남음0/5
[회기/경희대] 인생소곱창
#인생 곱창 #경희대 소곱창 맛집 :D
인생 소곱창에서 맛깔나는 다양한 곱창 체험
7일 남음0/5
[대전/대덕구] 맥주의 전설
#국내최초#부드럽고진한 맥주 맛!
#국내산재료#얼음생맥주가 맛있는곳
4일 남음0/4
[곤지암역/초월역] 단미
경기도 광주 데이트하기 좋은
#베이커리카페 #굿굿 #추천
4일 남음0/5
[천안/신방동] 맛있는짬뽕작전
# 푸짐하고 넉넉하게 만족스러운 식사를 제공합니다 ^^
# 오직 대표메뉴로 맛집으로 인정받고 있는 착한식당!!
0일 남음0/5
[경기/하남] 노랑통닭 미사2호점
# 가마솥에 튀기는 추억의 옛날통닭! 염지 無!! 저나트륨 1위 선정!!!
# 노랑통닭 맛의 기본은 '추억'입니다.
1일 남음0/5
[강남/논현] BB PUB 신논현점
# 논현동 분위기 좋은 술집! # DJ 음악이 있는 PUB! # 논현동 핫플레이스!
# 퀄리티 갑인 다양한 안주와 생맥주,50여종 세계맥주를 즐길 수 있다!!!
1일 남음0/5
[강서/마곡] 왁싱하우스
#럭셔리의 끝판왕#프리미엄왁싱샵
#강서구왁싱#발산역왁싱#마곡왁싱
4일 남음0/5
[온라인] 비나타로 카카오톡 상담
별 빛이 내린다 샤랄라 좋은 운세가 좋은 기운이 샤라락..★
#유명한타로집 #전국유명카톡상담 #나의2020년이궁금하면얼른!
4일 남음0/5
[강원/속초] 속초751샌드위치
# 속초 최초 끝내주게 맛있는 수제샌드위치를 만들고 있습니다.
# 매일 신선한 식재료와 그때 그때 일일이 손수 만들어 고객님들에 건강까지 생각한 속초751샌드위치입니다.
5일 남음0/5
[경기/과천] 강원농산 착한샤브
*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래요 ~
* 과천 핫플레이스 '강원농산 착한샤브'
4일 남음0/5
[경기/과천] 농부네 수제갈비
# 아이와 함께가기 좋은고기집
# 먹고 또 먹고싶은 그집
4일 남음0/5
[경기/안산] 고.잔.일.미 고깃집
* 즐거운사람들과 함꼐하는 즐거운 식사한끼
* 이게 소확행 이죠 :D
1일 남음0/5
[경기/안산] 아.오.모.리
* 맛은 기본! 분위기까지 사로잡는 이 곳
* 안산 중앙동 핫플레이스를 소개합니다 :D
0일 남음0/5
[경기/용인] 삼미당만두전골
*삼미당 만두전골은 신선한 야채로 어머니의 손맛으로 직접 빚은 손만두입니다. 슴슴한 국물이 자연스럽게 야채에서 우러나와 진하고 감칠맛이 일품인 삼미당의 겨울철 별미입니다.
* 놋그릇에서 오랜동안 열을 보존해줘서 더욱 특유의 전골감칠맛이 일품인 삼미당 만두전골 에서 어머니께서 해주신 고향의 진한 정성과 손맛을 맛보시면 좋겠습니다~
4일 남음0/5
[경기/화성] 선에스테스파 (서포터즈)
# 피부비결이요?
# 한번 와보시면 알아요 ^^
1일 남음0/5
[경기/화성] 콩마루
* 매일 아침 가마솥으로 직접 만드는 순두부와 두부 전문점 콩마루입니다.
* 기본 제공되는 반찬은 9가지이며 매일매일 농장에서 재배한 신선한 재료들로 반찬을 만들고 있습니다.
4일 남음0/5
[경북/구미] 청풍면옥
# 시원한 냉면 / 얼큰한 왕갈비탕
# 하계, 동계 입맛에 맞는 맛있는 착한메뉴
5일 남음0/5
[광주/광산구]새마을식당 첨단점
# 누구나 좋아하는 그 맛집
# 한끼를 먹어도 맛있게 먹자 :ㅇ
0일 남음0/5
[경기/안산] 샘라이브7080
#안산 생일파티 #안산모임 #7080라이브 #안산 라이브
#안산 프로포즈 #제일CC 앞 #안산 이색 카페 #상록구 분위기 좋은 카페
4일 남음0/5
[서울/동작구] 흑석 도리도리하찌 (닭도리탕)
* 동작구의 핫플레이스를 소개합니다
* 중앙대 맛집으로 유명한 닭도리탕전문
4일 남음0/5
[대구/수성구] 열무밭에돈
# 건강한먹거리가 가득한 이곳!
# 사계절열무와 5일숙성 고기만을 고집합니다
6일 남음0/3
[대전/중구] 선화동소머리해장국.매운김치
# 24시간 좋은 재료와 정직한 맛으로 한분 한분 모십니다.
# 예약하고 오시면 더욱 편하게 드실 수 있어요
4일 남음0/3
[서울/강남] 대참치 강남점
#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그 맛
# 강남맛집하면 여기!
1일 남음0/5
[서울/강동] 빙삼 (고기집)
* 저희 암사동 냉동삼겹살 전문 빙삼은 100%국내산 암돼지를 당일 도축하여 40도 이하의 온도에 급속냉동한 신선한 원육만을 선별하여 매일 공수하고 있습니다..
* 추억의 냉동삼겹살을 이제는 저희 빙삼에서 고품질로 느껴 보실 수 있습니다.
5일 남음0/6
[목동/오목교] 멋진인생 에스테틱
# 산소같은피부 # 수분충전 더 이뻐지자 :D
당신의 더 빛나고 아름답게 가꿔드립니다
4일 남음0/5
[전주] 명가등심
# 입에 넣으면 녹아버리는 한우
엄선된 최상급 한우 암소만 드리겠소 :D
1일 남음0/5
[서울/마포] 곰탕반
# 날씨 쌀쌀한 요즘
# 따뜻한 곰탕 한그릇
1일 남음0/5
[전북/정읍] 정읍 청평식당
* 수준 높은 고기의 질과 저렴한 가격으로 손님들을 친절하고 맞이하고, 더 맛있는 고기를 제공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가게입니다.
* 언제나 기회가 되신다면 청평식당을 찾아 주시고 맛있는 고기에 함께 좋은 추억들을 만들어가셨으면 합니다.
0일 남음0/3
[아산/배방] 마루벌돌구이 배방점
#아산맛집 #아산회식 #아산삼겹살 #싱싱고기
#아산모임하기좋은음식점 #아산고기 #모두모여라
1일 남음0/5
[신촌] 라임
#신촌초밥 #신촌스시 #신촌맛집 #신촌소개팅 #신촌데이트맛집
#아보카도 #살살녹아요
4일 남음0/4
[제주/조천] 괸당집 함덕점
#급냉삼겹(1등급제주산)+ 키조개관자(국내산) #1등급제주산 급냉동삼겹 전문점
#가족, 일가친척이 찾는 집 #옛날삼겹살#멸치국수 #비빔국수 #김치말이국수
4일 남음0/5
[중랑/면목동] 1번지옛날통닭사가정30호점
#옛날통닭의 원조#1번지옛날통닭
#안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먹으면 자꾸 생각나는 추억의 통닭>.<
4일 남음0/5
[경기/남양주] 속초상회
* 고소한 코다리조림 맛있게 잘하는 곳!!
* 코다리맛집 '속초상회'가 남양주에 떳다!!
4일 남음0/5
[청주/율량동] 고부심 (고기자부심)
# 고기라고 다 같은 고기가 아니다!
# 맛으로 느끼는 고기의 레벨
4일 남음0/6
[화성/향남] 김밥천국
#여러가지#다양한음식#김밥천국
#향남#맛있는분식집
4일 남음0/5
[화성/향남] 김밥천국
#여러가지#다양한음식#김밥천국
#향남#맛있는분식집
7일 남음0/5
[판교] 뚜에이오
이태리 가정식 파스타의 진수
즉석에서 갈아주는 통치즈가 일품
4일 남음0/5
[대구/달서구] 임창정모서리족발
#세상 맛있다고 소문난 족발집 +ㅁ+
#월성동맛집#족발집의 끝판왕!
4일 남음0/4
[세종시] 담온식당
#술한잔하기좋은식당 #직접끓인 간장과 고추장소스#민물새우매운탕 맛난 바로 그곳!
#세종시칼국수맛집#나성동맛집
4일 남음0/5
[제품/배송] 쓰레기책
#지속가능한 #지구 #쓰레기를 #자원으로
#인류의 #숙제
7일 남음0/10
[김포/고촌] 김포울동네세탁
#손질못하는 의류가 없다 >.<
#국가 기능사의 집#전문가의 손길을 느껴보세요 :D
7일 남음0/5
[부산/부곡] 범일돼지국밥
# 부산국밥 1번 맛집 가즈아!
# 부산최고의 돼지국밥집
4일 남음0/5
[부산/수영역] 베러먼데이 수영역교차로점
월요일도 빨간 날과 같이 기대되는 날이 될 수 있을까?
#월요일을 #즐겁게 #커피로 #시작! #당신의 #일상을 #응원한다!
6일 남음0/5
[부산/연산동] 베러먼데이 연동시장점
당신의 일상시작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이곳
#마셔라 #당신의 #하루가 #힘나게
6일 남음0/5
[경북/경산] 베러먼데이 펜타힐즈점
월요일을 휴일처럼 즐기자! 오늘은 토요일이닷!!
#당신의 #하루를 #더욱 #빛나게할 #이곳 #커피맛집
6일 남음0/5
[김포/운양동] 드라이119세탁전문점
#전문가의 손길로 다시 태어난다!
#김포한강신도시에서 제일 깔끔한 세탁소 >.<
5일 남음0/5
[파주/교하동] 아이디헤어 교하점 가희수석실장님
유명한 미용실은 다르다! 유명한 디자이너도 다르다!
#한번 #시술받으면 #끊을수없는 #중독감!! #핵잘핵!!!
8일 남음0/5
[대구/달서구] 엔제리너스 대구수변공원점
#수변공원 차칸엔젤>.<
#속답답함을뚤어줄#시원한아이스아메리치노#원츄원츄
5일 남음0/5
[부산/해운대] 양꼬치앤칭따오
양꼬치 칭따오 조합은 말해뭐해!!!
#오늘한번 #달려보자 #폭식이닷
5일 남음0/5
[제주/서귀포시] 자연샤브 신시가지
* 좋은곳에서 좋은사람들과 함께하는 식사
* 서뷔포 샤브샤브 & 월남쌈 '자연샤브'
5일 남음0/6
[제주/제주시] 밸런싱요가 노형점
#틀어진 체형 바로잡아주는 밸런싱요가
#요즘시대 정말 딱 필요한 요가 :D
4일 남음0/5
[건대] 헤어살롱 기쁘다 건대점
#어마어마한 실력쟁이들만 모였다 !
#헤어살롱 기쁘다에서 나만의 헤어를 찾아드립니다 :D
8일 남음0/10
[광주/북구] 조선짬뽕 전대본점
짬뽕의 짬뽕을 위한 짬뽕에 의한 이곳!!
#세상 #짬뽕 #다 #이기는 #리얼 #짬뽕
4일 남음0/5
[건대역] 다온헤어 건대점
#봄맞이#예쁜머리스타일로 변신
#찐금손디자이너#믿고맏겨보세요: D
8일 남음0/10
[대구/수성구] 청해어랑 포장캠페인
#수성구 활어회 포장,배달 전문점!
#자체개발한 숙성법#착한가격#싱싱하고 맛난 회>.<
7일 남음0/5
[전북/군산] 웨딩폼 (웨딩메이크업)
* 결혼식,연주,프로필,면접,행사,단체메이크업&올림머리퓨전헤어/남.여자연눈썹반영구/1:1퍼스널컬러진단
* 1:1개인메이크업 뷰티클레스..색다른진로직업체험 메이크업폼언니와함께해요
0일 남음0/3
[부산/북구] 철인7호 만덕점 배달
가성비의 끝판왕! 움..움직이지마! 나부터 먹을게 (애교)
#친구랑싸우는맛 #동작그만!닭다리내려놔 #긴장감서리는그맛!
4일 남음0/8
[강서/마곡] 왁싱라운지
#추운겨울#내피부보호#철벽방어
#쌀쌀한날씨로부터 피부 보호해 주세요 :)
1일 남음0/5
[신촌] HG공간헤어&아뜰리에
# 나만의 개성 체험 :D
나만의 개성을 살릴수있는 체험 :D
4일 남음0/5
[인천/부평] 어다리 부평점
#광어 #우럭 #두툼한 生연어 #강도다리 #각종 모듬회
#단체석부터 개별룸까지 #편리한 주차 #유아놀이방 보유
6일 남음0/5
[전남/완도] 카페 완도리
#아따 수제차 요기다잉!
이쁜 식물과 함께 수제차 드시러오세요
5일 남음0/3
[대전/동구] 포차천국 한남대점
#한남대에도 포차천국 상륙!
#치밥과칵테일소주의 환상궁합 +ㅁ+
1일 남음0/5
[목동/오목교] 다다왁싱
# 이너뷰티 # 요즘은 왁싱시대!! # 인생 왁싱샵 등극!
# 목동왁싱 다다왁싱에서 꼼꼼하게!
4일 남음0/5
[안산/고잔] 한우한상
# 가성비 갑! 다양하고 푸짐하게 풀코스로 한상가득!
# 나만알고싶은 한우 맛집! 한우한상 제대로 맛보세요~
5일 남음0/5
[진해/용원] 조선에서왔소 용원점
# 육즙대박! 이게 바로 소고기지~ # 급이다르다! # 퀄리디 보소~
# 조선에서왔소 용원점! # 역시 맛집 인정~!
1일 남음0/5
[서울/숙대입구] 미와쿠
#48시간 이상 숙성 반죽 #16시간 이상 우려낸 육수 #혼밥도OK 가족도 OK
#MSG 무첨가 #첨가제 Free #자가제면면발 #몸에 편한 음식 #숙대입구역 6번출구
1일 남음0/5
[강남/논현] 챔피언떡볶이&팔당충무김밥국수
# 떡볶이 맛집 도장깨기! 챔피언떡볶이 필수!
# 오늘은 떡볶이다! # 튀김,순대,김밥,치킨 골라먹는 재미!
4일 남음0/5
[천안/두정] 이태원곱창도선생
어휴 왠 곱이 이렇게나 많아 이건 그냥 사랑이잖아 곱창 the love ♡
#술이술술 #모듬곱창이라골라먹는재미 #프로곱창러라면가야하는곳
5일 남음0/5
[부산/사상] 대어가횟집
#모듬회의 진짜가 나타났다 !
#가성비?오#진짜 맛난 횟집 +ㅁ+
6일 남음0/5
[서울/서초] 헤드마스터 (바버샵)
# HEAD MASTER 는 1930년대의 유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인테리어로 남성분들을 위하여 만들어진 아늑한 공간
# 남자들을 위하여, 남자를 최고의 모습으로 가꿀 수 있는 진정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1일 남음0/3
[울산/무거] 철인7호 무거점 배달
늬들이 수제를 알어??? (신구인줄) 수제의 진정한 맛을 보여드릴게오 (♡)
#맛으로보여줄게 #그것이진짜여 #둘이먹다하나가죽어도모르진않고아는맛(헷)
4일 남음0/6
[인천/만수동] 포차천국 만수3지구점
# 밥도먹고 술도먹고! # 아낌없이 퍼주고 맛있게 배부른집!!
# 술마시러 왔다가 밥먹고 가지요! # 모든안주고퀄리티! 맛 보장!
5일 남음0/5
[부산/동래] 리호운동재활센터
# 1:1PT다이어트!! #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교정재활! #거묵복 다 드루와~
# 잘못된 자세로 인한 체형 불균형! # 전문가와 함께하세요! # 리호운동재활센터와 함께라면 아프고 불편한 몸이 다시 좋아집니다!
1일 남음0/5
[전주/신시가지] 타이전통샵
노곤노곤 지친 몸 시원하게 풀고가요~ 신시가지 유명 타이전통샵 !
#상사때문에뭉친어깨 #피로에누적된허리 #타이정통샵으로!
1일 남음0/5
[세종/종촌동] 그집손만두 배달의민족 캠페인
# 내공이 느껴지는 맛집! # 자꾸 생각나는 그집손만두
# 푸짐한 한끼! # 만두전골 국물이 진국!!!
1일 남음0/5
[서울/중구] 덕수궁 리에제와플
* 정통 리에주와플 전문점 입니다.
* 생활의달인 463회15.02.09. 와플
1일 남음0/5
[광주/효천지구] 어반브룩
# 광주 핫 플레이스 #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 데이트하기 딱! 좋은 어반브룩
# 포토존 인스타갬성~ # 퀄리티 대박! 전메뉴 맛 보장! # 소중한 추억 만들기
4일 남음0/5
[경기/성남] 필라테스355애비뉴 위례점
* 필라테스는 삶이다!!
*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의 밸런스를 찾고,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경험활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준비된 공간입니다.
1일 남음0/3
[전남/순천] 순천만숲펜션
* 한옥, 독채, 개별바비큐, 와이파이, 단체, 침대방, 2인실, 가족실
* 수영장, 바비큐장, 공용시설, 신축, 모던
1일 남음0/5
[강원/강릉] 바푸리쉬는시간
분식의 최강, 바푸리쉬는시간 !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래요 ♡
#맛있어서또가고싶잖아여 #친절하신사장님
4일 남음0/5
[부산/남구] 대영면옥
* 부산 대연동 부경대후문에 위치한 밀면맛집 대영면옥입니다.
* 저희 밀면의 냉육수는 100% 한우사골과 각종 한약재를 첨가해 24시간이상 달여내어 보약과 같이 건강한 육수입니다
4일 남음0/10
[인천/서구]검단 하나피부샵 속눈썹
# 이젠 피부자신감 뿜뿜 ~
# 예쁜여자는 피부부터 다른법
4일 남음0/5
[천안/두정동] 한촌설렁탕 두정점
24시간 뜨끈하고 진한 국물을 맛볼 수 있는 이곳
#미세먼지 #저리가라 #한방타파
4일 남음0/10
[대전/태평동] 립앤갈비
친절한 쪽갈비 매콤한 갈비찜
#성공적
4일 남음0/5
[대전/중촌동] 놀부네집
이봐 이봐 퀄리티가 달라 국내산 한우를 사용한다구 ! 입이 즐겁고 눈이 즐거운 놀부네집 ♡
#넘나맛있는것 #명가는달라 #벌써단골찜
4일 남음0/5
[서초] 두배족발 배달캠페인
프리미엄 족발 전문점
맛있게 드세요~ :D
4일 남음0/5
[송파/위례] 아이디헤어 위례중앙타워점 해림디자이너
인스타에만 보던 예쁜 머리 남 일이 아니에오 '_' 바로 여기 인스타 헤어 맛집 ♡
#인스타헤어맛집
4일 남음0/5
[경북/경주] 타이짬뽕
#요상하게#끌리는#짬뽕전문점
#자꾸자꾸#생각나는#얼큰한국물 >.<
4일 남음0/5
[대구/광장코아] 99레시피
# 핫플 맛집 대구 평정 군침봐 꺅 +ㅁ+
특색있는 99레시피만의 체험
4일 남음0/5
[부산/진구] 왕자맥주
* 목넘김이 부드러워야 진짜맥주다 'ㅅ'
* 진짜 생맥주로 더 시원한 왕자맥주 !! ^^b
5일 남음0/5
[경기/오산] 수제비뜨는남자
#찰진 쫀득함-수뜨남만의 비범한 숙성반죽 #마음과 양심이 만든 식단 #정성을 함께 떠 드리는 속 편한 자연식
#공기밥 무한 리필-직접농사지은 좋은 쌀 #찬은 셀프바에서 넉넉히 #아이를 위한 유아용의자 #전용주차장 보유
4일 남음0/5
[경남/김해] N타이마사지
#릴렉스 굿~ #24시 건전 마사지 샵 #가족이 함께 찾는 건전업소
#장유타이마사지 #장유커플마사지 #롯데마트4거리
4일 남음0/5
[분당/수내동] 뮤직온 카레하우스
#10시간 볶은 양파 캬라멜 #에이징 비프 카레 #정통 일본식 카레
#생선까스카레 #치킨카레 #치즈카레 #돈까스카레
4일 남음0/5
[대구/달성] 신전떡볶이
중독성 최고 신전떡볶이 ! 신전치즈김밥이랑 떡볶이랑 환상궁합♡
#꿀조합으로즐기기
4일 남음0/5
[청주/분평] 정다운샤브분평직영점
* 안녕하세요 정다운샤브막국수 분평점 입니다. 저희 정다운샤브막국수는 복대본점을 두고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는 매장입니다.
* 노루궁데이,동충하초,황금팽이,백만송이,은이,능이,초고,팽이,느타리,팽이,표고,새송이 버섯을 취급하고 있는매장이며, 샤브샤브를 주문 하면 피자, 쟁반 막국수, 활전복까지 드실수 있습니다.
4일 남음0/10
[서울/서초] 선화의고기
1.냉동이 아닌 냉장소고기 2.100% 원적외선이 나오는 참숯비장탄사용 3.소고기와 잘 어울리는 밑반찬8가지
4.소고기와 잘 어울리는 찍어 먹는 새콤소스와 스테이크소스를 준비 하였습니다. 5.소고기 드신 분들에게는 한우 왕뚝배기된장술밥을 6.000원에 해드립니다. 6.착한 가격으로 고급스럽고 예쁜 맛을 올려 드립니다
6일 남음0/5
[수원/영통] 선에스테스파 수원점
★ '5주' 서포터즈모집
# 모두가 놀랄만한 비밀공개!! 볼때마다 예뻐져~
4일 남음0/5
[서대문/명지대] 미소그릴
이정도는 되야 갈비맛집이쥐~!
남가좌동 핫플레이스 +ㅁ+
5일 남음0/5
[천안/불당] 스시린
천안 최고의 핫플 불당동에서도 매우 쏘핫한 스시린
그냥 입에서 녹아없어지는데 ,, 무슨말이 필요해
4일 남음0/5
[서울/건대] 마실리아2
# 건대 핫플레이스! # 마실리아 2호점 오픈! # 건대룸술집!
# 분위기 끝판왕 마실리아! # 안주 퀄리티 대박! 가성비 갑!
4일 남음0/10
[세종/나성동] 나성횟집
# 꽉차고 퀄리티 높은 정식! # 정성듬뿍 나성횟집
# 365일 싱싱한 회와 쫄깃한 식감까지! # 역시 맛집은 다르다!
4일 남음0/3
[강남/논현동] 달.맞.이
# 오늘 난 소주가 ?긴다
# 줄서서먹는 참돔&숙성회맛집
6일 남음0/7
[강남] 라이프태닝
#건강미는 #역시 #태닝
#미리미리 #준비하자! #섹시바디!
5일 남음0/5
[경남/밀양] 멍멍아노올자 펜션
#아..개로태어날걸
#애견동반펜션 #힐링 #찜질방 #베드민턴장
5일 남음0/5
[광주/북구] 육풍 용봉점
* 고기에 가면 고기가 맛있다!!
* 광주맛집 육풍 용봉점!!! 'ㅅ'
7일 남음0/5
[경기/일산] 데일리짐 주엽역점
#6만포인트#일산에도 데일리짐이 떳다!
#헬스계의최강자#데일리짐#진정한운동방법을 알려드립니돠 :D
5일 남음0/5
[홍대/서교] 긴자료코 홍대점
홍대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는 이곳
#맛이며 #분위기며 #빠지는게없다!
5일 남음0/5
[창원/상남동] 소우소우  
# 이제는 고기도 분위기있게 먹자 :D
# 상남동 핫플레이스를 소개합니다
7일 남음0/5
[강남/선릉] 별미곳간
# 국내 최고 프리미엄 즉석떡볶이 전문점!! # 떡볶이는 사랑입니다.
# 강남 핫 플레이스! # 유명맛집!! # 맛집은 역시 다르다! # 단골각!
5일 남음0/5
[충남/아산] 884낭만돼지
# 방문하는 순간 단골확정! # 육즙 가득품은 삼겹살!
# 고퀄리티 갑! # 기분이 저기압일땐 고기앞으로!
6일 남음0/5
[제주/제주시] 밸런싱요가 일도점
#불균형 체형 밸런스를 잡자!
#꾸준한#요가관리#면역력 뿜뿜
6일 남음0/5
[전주/객사길] 메종드시엘메이크업샵
인스타소장 #특별한메이크업
#웨딩 #메이크업레슨 #하객
6일 남음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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