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14일 화요일

화엄사상,(華嚴思想),

화엄사상, (華嚴思想),

불교에서 『화엄경』을 소의경전으로 하여 정립된 불교교리.
화엄사상의 철학적 구조는 법계연기(法界緣起)이다. 즉, 우주의 모든 사물은 그 어느 하나라도 홀로 있거나 일어나는 일이 없이 모두가 끝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의 원인이 되며, 대립을 초월하여 하나로 융합하고 있다는 사상으로, 화엄에서 가르치는 무진연기(無盡緣起)의 법칙이다. 사법계(四法界)·십현연기(十玄緣起)·육상원융(六相圓融)·상입상즉(相入相卽) 등은 이 무진연기를 설명하는 화엄사상의 골자이다.
사법계란 현상과 본체와의 상관관계를 사법계(事法界)·이법계(理法界)·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 등 넷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사물이 제각기 한계를 지니면서 대립하고 있는 차별적인 현상의 세계를 사법계라 하고, 언제나 평등한 본체의 세계를 이법계라 한다.
현상과 본체는 결코 떨어져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어서, 항상 평등 속에서 차별을 보이고 차별 속에서 평등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를 이사무애법계라 한다. 다시 나아가 현상, 그것도 각 현상마다 서로서로가 원인이 되어 밀접한 융합을 유지한다는 것이 사사무애법계이다.
이 사사무애법계는 화엄사상의 특징을 나타낸 것으로, 일반적으로 중중무진(重重無盡)의 법계연기라고 하며, 그 특징적인 모습을 열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 10문은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은밀현료구성문(隱密顯了俱成門) 등으로서 십현연기문이라고도 한다.
동시구족상응문이라 함은 현세에 과거와 미래가 다 함께 담겨 있음을 뜻하고, 제법상즉자재문은 현상계의 모든 사물이 서로 차별하는 일이 없이 일체화되고 있다는 말이다. 또, 하나[一]는 하나의 위치를 지키고 다(多)는 다의 면목을 유지하는 가운데, 하나와 다가 서로 포섭하고 융합한다는 것이 일다상용부동문이다. 이때 하나가 없으면 다가 없으며, 하나가 있으면 일체가 성립한다. 모든 것이 홀로 고립된 것이 아니라 하나로도 되고 십으로도 되고 일체로도 된다는 것이다.
이에 근거하여 화엄에서 가르치는 일즉일체(一卽一切)·일체즉일(一切卽一)·일즉십(一卽十)·십즉일(十卽一)의 논리가 전개되는 것이다. 또한, 모든 현상의 각각에는 총상(總相)·별상(別相)·동상(同相)·이상(異相)·성상(成相)·괴상(壞相) 등 여섯 가지 모습이 함께 갖추어져 있고, 전체와 부분 또는 부분과 부분이 서로 일체화되고 있다는 것을 전개시킨 것이 육상원융의 이론이다.
『화엄경』에서 설하는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는 현상계와 본체, 또는 현상과 현상이 서로 대립하는 모습을 그대로 지니면서도 서로 융합하여 끝없이 전개되는 약동적인 큰 생명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 연화장세계에서는 항상 『화엄경』의 중심불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대광명을 비추어 모든 조화를 꾀하고 있다. 『화엄경』은 우주의 질서를 미적으로 표현한 경전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통일국가의 상징이기도 하다.
화엄의 가르침은 서로 대립하고 항쟁을 거듭하는 국가와 사회를 정화하고, 사람들의 대립도 지양시킴으로써 마음을 통일하게 하는 교설이다. 따라서, 중국이나 우리 나라와 같은 전제왕권국가의 율령정치체제를 정신적으로 뒷받침하는 큰 구실을 담당하였다.
『화엄경』은 인도 용수(龍樹)의 편집이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이 「용수전」에 의하면, 대룡보살(大龍菩薩)의 인도로 용궁에 들어갔던 용수가 방등경전과 무상묘법(無上妙法)의 글을 얻어왔다는 기록만이 있을 뿐 『화엄경』을 가져왔다는 말은 없다. 다만, 법장(法藏)의 화엄전기에서만 용수가 용궁에서 가져왔다고 기록되었을 뿐이다.
『화엄경』을 사상적인 측면에서 보면 무착(無着)과 세친(世親) 등의 연기사상(緣起思想)에 힘입어 교학의 체계가 정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세친이 「십지품 十地品」의 별행(別行)과 『십주경 十住經』에 의거해서 『십지경론 十地經論』 12권을 제작하여 『대지도론 大智度論』·『섭대승론 攝大乘論』과 함께 화엄사상의 기초교리를 이루었다.
그렇지만 상승(相承)하는 조사(祖師)를 정할 때는 인도의 마명(馬鳴)과 용수, 그리고 중국에서는 두순(杜順)을 초조(初祖)로 삼아 지엄(智儼)→법장→징관(澄觀)→종밀(宗密)까지를 합해서 화엄칠조(華嚴七祖)로 세우고 있다. 마명을 화엄조사로 받들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 대승경전을 약축하여 사상을 정립한 『대승기신론 大乘起信論』을 저술하였으며, 중국의 화엄종주들이 한결같이 『대승기신론』을 즐겨 연구하였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최초로 『화엄경』을 번역한 승려는 동진의 각현(覺賢)이다. 그 뒤 한역본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종단이 두순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두순은 『오교지관 五敎止觀』과 『법계관문 法界觀門』을 저술하여 종지를 확립하였다. 두순의 제자 지엄은 『화엄경』 본문을 해석하는 『법계관문』과 『화엄경』의 요지만을 모은 『공목장 孔目章』, 그 밖에도 『오십요문답 五十要問答』과 『일승십현문 一乘十玄門』을 저술하였다.
지엄의 제자로는 중국의 법장과 신라의 의상(義湘)이 있다. 의상은 지엄의 인가를 받은 뒤 신라로 돌아와 원효(元曉)와 함께 화엄사상을 전파하였다. 법장은 중국에 화엄학을 꽃피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의 『화엄경탐현기 華嚴經探玄記』와 『화엄오교장 華嚴五敎章』은 중국화엄종의 기초를 확립한 대표적인 저술이다. 법장의 문하에는 혜원(慧苑)이 있고 혜원의 문하에서는 징관이 나왔으나, 징관은 『수소연의초 隨疏演義鈔』를 지어 혜원의 『음의 音義』가 비정통이라고 논파하였다.
징관의 법맥을 이은 종밀은 『원인론 原因論』을 지어 유·불·도 삼교의 사상을 대비시킴으로써 불교의 참뜻을 선양하였고, 교(敎)와 선(禪)의 병행을 논하는 『선원제전집도서 禪源諸詮集都序』를 저술하여 고려의 지눌(知訥)에게 사상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종밀의 사상은 송대에 와서 정원(淨源)으로 이어졌는데, 정원은 고려의 의천(義天)과 사상적인 교류가 많았던 화엄종사이다.
삼국시대의 화엄사상
화엄사상은 일찍부터 우리 나라에 전래되었고, 그 어떤 사상이나 신앙보다 중요시되면서 끊임없이 연구되어 한국불교사상의 한 전통으로 정립되었다. 그러나 고구려와 백제가 화엄사상을 수용하여 연구한 사실은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다. 화엄사상을 이 땅에 크게 일으킨 고승은 원효와 의상이지만, 화엄의 진리가 이들에 의하여 펼쳐지기 이전부터도 화엄사상은 이미 신라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지리산화엄사사적」에 의하면, 544년(진흥왕 5) 인도승려 연기조사(緣起祖師)가 화엄원돈(華嚴圓頓)의 깊은 이치를 해동에 유동시키니 계림(鷄林)의 대승불교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하였다. 또 의천은 화엄사에 들러 연기조사의 진영(眞影)을 보고 “일생을 바쳐 노력하여 화엄의 종풍을 해동에 드날렸네.”라는 찬을 남겼다. 그러나 연기조사가 실재인물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고 그에 대한 기록들도 모두 믿기 어려운 점이 많다.
역사적으로 뚜렷이 증명되고 있는 화엄학의 전래자는 자장(慈藏)이다. 자장은 흔히 계율을 엄중히 정비하여 신라불교계를 정리한 율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에 의하면 자장은 자신의 개인집을 절로 만들고 그곳에서 『화엄경』을 강의하는 등 포교활동을 전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화엄의 묘의를 통달하였던 인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자기가 태어난 집을 원녕사(元寧寺)로 고치고 낙성회(落成會)를 베풀어 『화엄경』 1만 게(偈)를 강하였을 때 52류(類)의 여인이 감동하여 현신(現身)을 하고 들었다. 또한, 『향전 鄕傳』에서는 자장이 당나라에 가 있을 때 당태종이 몸소 그를 무건전(武乾殿)에 맞아들여 화엄의 설법을 들었다고 하는데,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기사이다. 
통일신라시대 전기의 화엄사상
통일신라시대로 들어서면서 화엄사상에 대한 이해는 중국을 앞지를 만큼 창의적이었고, 또 그 방대한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체계화시켜 나갔다. 그와 같은 작업은 주로 원효와 의상에 의해 기틀이 마련되었다.
원효의 『화엄경소 華嚴經疏』는 중국 화엄학의 대가인 법장이 그의 『탐현기』에서 즐겨 인용할 만큼 정평이 있던 명저였을 뿐 아니라 원효의 뛰어난 사상성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원효가 『화엄경소』 가운데서 제시한 삼승별교(三乘別敎)·삼승통교(三乘通敎)·일승분교(一乘分敎)·일승만교(一乘滿敎)의 사교판설(四敎判說)은 교상판석(敎相判釋)의 역사상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사제(四諦)와 십이연기(十二緣起) 등의 소승불교의 가르침을 삼승별교로 보고 『반야경 般若經』과 『해심밀경 解深密經』 등의 경전을 삼승통교로 본 것은 이미 중국에서 혜관(慧觀, 368∼438)이 시도한 바 있었으므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불교의 교설을 삼승과 일승으로 나누고 일승을 다시 분교와 만교로 나눈 뒤, 일승분교에 『범망경 梵網經』과 『영락본업경 瓔珞本業經』을 놓고 『화엄경』을 일승만교에 놓아 화엄의 철학을 가장 으뜸된 가르침으로 삼은 것은 분명히 탁견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사교판설이 법장 등 중국의 화엄종에서 전폭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 계기가 되어 원효를 해동화엄종주로까지 칭하게 되었으나 그 자신은 화엄종에 사로잡히지도, 종주로 자처하지도 않았다. 오직 보다 높은 차원에서, 접하는 경전마다 그 경전의 관점에서 가치를 논하였을 뿐이었다. 다만, 그가 행화(行化)할 때 가지고 다닌 도구를 『화엄경』의 일게(一偈)를 취하여 ‘무애(無碍)’라 명명하였고, 이에 의하여 「무애가 無碍歌」를 지어 세상에 퍼뜨렸다.
원효의 화엄관계 저술로는 『화엄강목 華嚴綱目』 1권, 『화엄경소』 10권, 『화엄경종요 華嚴經宗要』, 『화엄입법계품초 華嚴入法界品抄』 2권, 『일도장 一道章』 1권, 『보법기 普法記』 등이 있으나, 이 중에서 『화엄경소』 권3(光明覺品 제9에 해당)만이 현존하고 있다. 
의상은 화엄학을 대성시킨 중국의 화엄종주들과 어깨를 견줄 만큼 화엄사상사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다. 676년(문무왕 16)에 부석사(浮石寺)를 창건하여 화엄의 종지를 널리 편 이래 오늘날까지 화엄종을 개창한 자로서 숭앙받고 있다. 의상은 원효와는 달리 하나의 조직을 갖추었고 체계화된 방법으로 화엄사상을 널리 선양하여 해동화엄의 초조(初祖)가 되었다. 
의상이 남긴 저술 중 화엄관계의 저술은 『십문간법관 十門看法觀』 1권, 『입법계품초기 入法界品鈔記』 1권, 『화엄일승법계도 華嚴一乘法界圖』 1권, 『백화도량발원문 白花道場發願文』 1편 등이 있으나, 지금까지 전해오는 것은 『법계도』와 『백화도량발원문』 그리고 『일승발원문 一乘發願文』의 게송 일부뿐이다. 그러나 『법계도』는 그의 화엄사상을 잘 드러내 주는 탁월한 저술이며, 이후의 화엄학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는 『법계도』에서, 화엄의 최고경지인 해인삼매(海印三昧)를 물결 없는 넓은 바다에 비유하였다. 천상과 지상의 만물뿐 아니라 수중의 것이 바다에 모두 비치듯이, 부처의 삼매 속에 한량없는 세계가 남김없이 비치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또, 연기를 가리켜 모든 것이 서로 일체화되어 평등을 나타낸다는 상즉(相卽)으로 풀이하기도 하였다.
그가 내세운 오교판설(五敎判說)이나 십현연기문(十玄緣起門)의 명칭·배열 및 설명은 스승인 지엄의 설을 그대로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이이무애법계(理理無礙法界)라는 독창적인 설을 내세우기도 하였다. 중국의 화엄종에서는 이사무애와 사사무애는 설하였지만 이이무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이무애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그 전제로서 이(理)의 차별이 있어야 하는데, 의상은 이도 사(事)의 경우처럼 차별적인 것이기도 한 것이라 하여 이의 차별적인 면도 아울러 강조하였던 것이다. 
연기를 설명함에 있어서 10전(十錢)을 예로 들어 일즉십·십즉일 등의 논지를 전개시킨 것도 그에 의해서 처음으로 시도되었다. 부처의 경지를 논함에 있어서도 수행의 입장에서 열 가지 특징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행경십불(行境十佛)만을 지적하고, 지혜를 그 기준으로 삼는 해경십불(解境十佛)을 지적하지 않음으로써 지혜보다 행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해경십불만을 지적한 법장의 설과는 크게 대조를 이루는 불신론(佛身論)이다. 
그는 화엄의 요지를 7언 30구 210자로 요약한 『법성게 法性偈』를 지었다. 처음 4구와 다음 18구에서는 각각 자리행(自利行)과 이타행(利他行)을, 그리고 나머지 8구에서는 보살이 닦는 수행의 이득을 말하였다. 그리고 이 법성게를 54각의 굴곡으로써 도시(圖示)하되 그 전체의 모양을 사각형으로 하였다. 첫귀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의 첫 법(法)자를 한가운데 놓고 그로부터 각형을 따라 좌하→좌상→우상→우하로 전진하여 끝귀 구래부동명위불(舊來不動名爲佛)의 마지막 불(佛)자에서 끝나도록 배열하였다, 
법성게가 끊기지 않고 잇대어 연속되는 것은 만물의 총상과 화엄의 일승사상을 나타내기 위함인데, 그 사이에 굴곡을 두었음은 별상을 나타내어 중생의 자질이 서로 같지 않다는 삼승을 보이려는 것이다. 그 굴곡의 54수는 화엄의 수행단계인 54위(位)를 가리키는 것이며, 사각형의 네모는 각각 자(慈)·비(悲)·희(喜)·사(捨)의 사무량심(四無量心)을 뜻한다. 특히, 불교를 상징하는 불·법·승 삼보(三寶)를 강조하게끔 불(佛)·법(法)·중(衆) 3자를 가운데에 나란히 배열시켰음은 주목된다.
의상의 문하에는 3,000여 명의 학승이 따랐다. 그 가운데 10명의 제자인 표훈(表訓)·신림(神琳)·지통(智通)·오진(悟眞)·진정(眞定)·진장(眞藏)·도융(道融)·양원(良圓)·상원(相源)·능인(能仁) 등은 그의 화엄사상을 전수하여 후세에 의상의 학덕을 선양하였으며, 통일기의 신라불교를 융성하게 한 고승들이었다. 그리고 그의 학풍은 여러 사찰을 중심으로 전파되었는데, 이 사찰을 의상화엄전교십찰(義湘華嚴傳敎十刹)이라고 부른다.
『삼국유사』의 의상전교조와 최치원(崔致遠)이 찬술한 「법장화상전 法藏和尙傳」에 기록된 십찰의 명칭은 서로 일치하지 않고, 또 『삼국유사』의 것은 10개가 되지 못하여 문제가 있다. 이를 대비하면 [표1]과 같다. 이 화엄십찰들의 창건연대를 살펴보면 몇몇 사찰은 의상이 생존하였던 시기와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의상이 직접 창건한 사찰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 문하제자들에 의하여 그의 사상이 전승된 곳이거나, 신라 화엄사상의 중심도량이 되었던 곳임에는 틀림이 없다. 
표 1] 삼국유사·법장화상전의 화엄십찰 
연 번/ 삼 국 유 사/ 법 장/ 화 상 전/ 
1太白山 浮石寺北岳 浮石寺
2原州 毘摩羅寺
3伽倻 海印寺伽倻山 海印寺 普光寺
4毘瑟 玉泉寺毘瑟山 玉泉寺
5金井 梵魚寺良州 金井山 梵魚寺
6南岳 華嚴寺南岳 智異山 華嚴寺
7中岳 公山 美理寺
8熊州 迦耶峽 普願寺
9鷄龍山 岬寺
10全州 毋山 國神寺
11漢州 負兒山 淸潭寺
의상에 의하여 정착된 신라 화엄사상은 후학들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의상의 10대제자 중 지통과 도신(道身)은 각각 『화엄요의문답 華嚴要義問答』과 『화엄일승문답 華嚴一乘問答』을 찬술하여 의상의 화엄사상을 계승하였고, 법장의 문하에서 수학한 승전(勝詮)은 692년(효소왕 1) 당나라로부터 귀국할 때 법장의 저서인 『화엄경탐현기』 등을 의상에게 전하는 한편, 갈항사(葛項寺)에서 『화엄경』을 강의하였다. 또, 그의 제자 가귀(可歸)는 『화엄경의강 華嚴經義綱』을 저술하여 화엄의 요의를 밝혔다. 
승전 이후의 고승인 범수(梵修)·심상(審祥)·태현(太賢) 등도 화엄의 대가였다. 특히, 심상은 법장의 문하에서 수학한 뒤 740년(효성왕 4) 일본에 건너가서 일본화엄종의 초조가 되었다. 이 밖에도 많은 신라승들이 화엄에 관한 저술을 남겼으나 오늘날 온전하게 전해 오는 것은 표원(表員)의 『화엄경문의요결문답 華嚴經文義要決問答』과 견등(見登)의 『화엄일승성불묘의 華嚴一乘成佛妙義』, 명효(明皛)의 『해인삼매론 海印三昧論』 등이다. 
표원은 그의 저술에서 화엄교학과 관련되는 문제들을 18과(科)로 나누어 석명(釋名)·출체(出體)·문답의 삼문분별(三門分別)로 그 각각을 정의, 분석하고 설명하였다. 그 주된 내용은 ① 화엄경 자체에 관한 문제, ② 화엄교설의 특수 연기사상, ③ 진실성으로서의 실제·여여(如如) 등에 관한 문제, ④ 역대의 교상판석(敎相判釋)과 일승론, ⑤ 보살의 수행도에 관한 문제들이 다루어지고 있다. 
견등은 그의 『화엄일승성불묘의』 가운데서 성불(成佛)을 위성불(位成佛)과 행성불(行成佛)과 이성불(理成佛)의 셋으로 구별하여 설명하였다. 이것은 의상의 화엄사상과 주류를 달리하는 것으로, 그가 법장을 사조(師祖)로 삼은 점으로 보아 법장의 사상체계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견등의 화엄사상은 천태(天台) 및 『기신론』의 논리와 상통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그의 화엄사상은 일본에서 크게 선양되었다. 
생몰연대 미상인 견등과 표원은 그의 저술에서 다같이 원효와 의상의 설은 물론 중국화엄종의 지엄·법장·안름(安廩, 507∼583)의 설까지를 널리 언급하고 있으면서도 화엄과 선의 일치를 주장한 중국화엄종의 제4조 징관의 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로 보아 그들은 당나라에서 돌아온 범수에 의해서 처음으로 징관의 『화엄경소 華嚴經疏』가 신라에 소개된 799년(소성왕 1) 이전의 승려인 듯하다. 
명효 역시 신라의 어느 때 인물인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해인삼매론』을 저술하고 화엄의 요지를 7언 28구 196자로 요약하였던 화엄학의 대가이다. 그는 의상의 『법계도』와 비슷한 모양으로 삼매도를 만들었다. 첫 귀절인 생사열반비이처(生死涅槃非異處)의 첫 생(生)자를 한가운데에 놓고 그로부터 각형을 따라 전진하여 마지막 귀절인 부지생사즉열반(不知生死則涅槃)의 끝 반(槃)자에서 끝나도록 맺었으나, 그 이어가는 진로는 의상의 것과 달리 우하→우상→좌상→좌하로 하였다. 
이 삼매론은 우리 나라에서는 별로 유통되지 못하였고, 오히려 일본에서 크게 선양되었다. 『화엄경』은 때때로 국가적 규모로 강설되었는데 754년(경덕왕 13) 법해(法海)가 황룡사에서 강경한 것은 대표적인 예이다.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화엄사상
삼국통일 전후로부터 경덕왕대까지의 당나라 불교는 화엄종과 법상종(法相宗)이 성행하였기 때문에 신라의 입당승(入唐僧)도 대부분이 화엄과 법상학을 전래하였지만, 혜공왕 이후에는 당나라에서 화엄종과 선종이 흥행하게 됨에 따라 입당승들도 대부분 선을 배우고 귀국하였다. 그러나 선문구산(禪門九山)의 선승들 대부분이 화엄을 겸수(兼修)하고 있는데, 이것은 화엄사상이 선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북종선(北宗禪)을 전래한 신행(神行)의 뒤를 이어 821년(헌덕왕 13)에 남종선(南宗禪)을 최초로 전한 도의(道義)는 지원승통(智遠僧統)과의 문답 중 화엄의 4종법계를 논의하고 있다. 그것을 보면 도의도 화엄에 깊은 조예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 또, 실상산파(實相山派) 홍척(洪陟)의 제자 수철(秀徹)도 화엄을 수학하였고, 동리산파(桐裏山派) 혜철(惠哲)도 부석사에서 화엄을 배웠다.
성주산파(聖住山派)의 무염(無染)도 언설 및 정토와 예토(穢土)를 천명하는 교문의 응기문(應機門)과, 무설(無說) 및 부정불예(不淨不穢)를 천명하는 선문의 정전문(正傳門)을 구별할 때 “교문의 극치는 여래심(如來心)을 증득하는 것이니 그것을 해인정삼종세간법인(海印定三種世間法印)이라 한다.”고 한 것으로 보면 그 역시 화엄의 이치를 깊이 체득하여 화엄으로써 교문을 대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범일(梵日)과 같이 남천(南泉) 문하의 선을 전한 도윤(道允)도 귀신사(鬼神寺)에서 『화엄경』을 청강하였고, 절중(折中)도 부석사에서 화엄을 수학하였다. 위앙종(潙仰宗)을 널리 폈던 순지(順之)가 사대팔상(四對八相)의 원상상전(圓相相傳)을 천명한 것도 역시 화엄의 원교(圓敎)에서 기인한 것이다. 
석상(石霜)의 선을 전승한 행적(行寂)도 가야산 해인사에서 화엄묘의를 수득하였고, 그의 동학인 개청(開淸)도 화엄사에서 화엄의 오묘한 종지를 수학하였다. 이상을 통하여 볼 때 선문구산의 선승들이 거의 화엄과 인연이 깊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시대의 화엄관계 찬술문헌은 [표2]와 같다. 
표 2] 신라시대 찬술 화엄사상관계저서 
저 자/ 문 헌 명/ 권수/ 현 존/ 여 부/ 비 고/
元 曉華嚴綱目1
華嚴經疏10一部存서문, 권3현존
華嚴經宗要미상
一道障1
普法記미상
大乘觀行3
華嚴入法界品抄2
義 湘華嚴一乘法界圖1
入法界品崇記1
華嚴十門看法觀1
一乘發願文1篇
白花道場發願文1篇
智 仁佛地論疏4
智 通華嚴要義問答2錐洞記
道 身華嚴一乘問答2道身章
義 寂華嚴經綱目2
表 員華嚴經文義要訣問答4
華嚴經要義問答3
明 藝海印三昧論1
太 賢華嚴經古迹記10
宗 一華嚴經料簡1
大華嚴經疏20
緣 起華嚴經要訣12
華嚴經眞流還源樂圖1
華嚴經開宗決疑30
見 登華嚴一乘成佛妙義1
珍 嵩華嚴孔目記6
義 融華嚴經釋名章1
審 祥華嚴起信觀行法門1
華嚴經疏12
梵 如華嚴經要訣6
可 歸華嚴經義綱1
法 融法界圖記미상法融記
崔致遠唐大薦福寺故寺主潼經大德法藏和尙傳1
고려 전기의 화엄사상
신라 말 선종이 크게 유행하는 분위기 속에서 신라 의상 계통의 화엄종 문도들은 서로 다른 법통을 주장하며 대립의 일면을 보이게 되었다. 신라 말 가야산 해인사에는 두 사람의 화엄종장(華嚴宗匠)이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의 귀의를 받았던 희랑(希朗)과 후백제 견훤의 귀의를 받았던 관혜(觀惠)이다. 희랑의 문도들은 북악부석사(北岳浮石寺)를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며, 관혜의 문도들은 남악화엄사(南岳華嚴寺)를 근거로 활동하였다. 
이렇게 화엄은 남북 양악(南北兩岳)으로 나누어졌고, 그 주장하는 바도 각각 달라 양파간의 논쟁이 치열하였다. 그 상황이 물과 불의 관계와 같아서 서로를 조금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남악과 북악의 화엄사상이 어떻게 달랐는지는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다만, 고려시대의 저술인 『법계도기총수록 法界圖記叢髓錄』에 남악 관혜의 수전법사상(數錢法思想)이 인용되어 있다. 
고려 광종 때의 『균여전 均如傳』에는 선공초삼십여의기(先公鈔三十餘義記)의 간단한 내용이 나타나 있는데 이것이 북악의 사상과 연결되고 있는 정도이다. 이를 통하여 살펴보면, 남악사상은 성기(性起)를 나타내지 않은 것은 아니나 연기(緣起)에 더 비중을 두었고, 북악사상은 연기가 나타나 있지 않은 대신 성기가 나타나 있고 육상(六相)의 원융한 면이 강조되었다. 
이 논쟁에 대하여 균여는 깊이 탄식하고 하나의 화엄종 속에 이 둘을 귀일하게 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균여의 화엄사상은 본래 북악의 융회불교의 입장에서 남악의 사상까지를 종합하여 화엄종 교단의 통합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법상종의 세력까지 흡수하기 위하여 성상융회사상(性相融會思想)을 주창하였다. 균여의 성상융회사상은 광종이 중소토호(中小土豪) 이하의 세력을 흡수하여 왕권의 광범한지지 기반을 성립시키는 근거가 되었기 때문에 광종의 깊은 신임을 얻었다. 균여는 광종의 귀의를 받아 귀법사(歸法寺)·개태사(開泰寺)·법수사(法水寺)에서 화엄종풍을 크게 천명하였다. 
그의 저서로 『석화엄교분기원통초 釋華嚴敎分記圓通鈔』 등 총 10종 74권이 있는데, 대부분 중국의 지엄과 법장의 저서를 주석하는 데 주력하였고, 의상에 관한 것은 『법계도기 法界圖記』 두 권뿐이다. 북악의 계승자인 균여의 저술이 중국의 화엄과 깊이 연결되고 있는 것을 통하여, 남악은 의상의 화엄사상을 전승하는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으나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균여의 화엄사상이 비록 광종대의 전제정치의 이념으로 성립되어 갔지만 당시 화엄종파를 대표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968년(광종 19) 이후에 균여는 같은 화엄종 승려인 정수(正秀)와 귀법사 내에서 대립하게 되었다. 정수는 균여를 이정수행자(異情修行者)라고 배척한 것으로 보아 순수교리적 화엄사상가로 이해된다. 그에 비하여 균여는 이정을 닦는 융회불교를 펴고 있었다. 이러한 대립은 일단 균여의 승리로 끝맺어지지만 그가 화엄종단 전체의 지지를 받고 있지 않았음을 알려주기에 충분하다. 
균여의 사상은 후에 의천 등에 의하여 배척을 받으면서 그 세력이 크지 못하였으나, 무신의 난 이후 조계선종(曹溪禪宗)에 의하여 다시 주목을 받게 되어 고려대장경 속에 그의 저술 일부가 판각되어 들어가게 되었다. 아울러 「보현십원가 普賢十願歌」를 향가로 지어 민간에 널리 유포함으로써 화엄교학의 대중화에 노력한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균여 당시에 그와 함께 귀법사에 머물렀던 화엄종주로서 탄문(坦文)이 있다. 그는 북한산 장의사(藏義寺)신엄(信嚴)으로부터 화엄을 배웠고, 이 후 구룡산사(九龍山寺)에서 화엄을 수학하였으며, 당시 서백산(西伯山)의 신랑(神朗)이 방광비종(方廣秘宗)을 강연한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화엄원리를 논하여 굴복시키기도 하였다. 또한, 고려 왕실의 깊은 귀의를 받기도 하였다. 
즉위 직후 혜종은 『화엄경』 삼본(三本)을 사경(寫經)하여 천성전(天成殿)에서 법연(法筵)을 설할 때 탄문을 청하여 『화엄경』을 강연하게 하였으며, 정종과 광종도 그에게 귀의하였다. 탄문이 귀법사에 머무른 것은 963년(광종 14)이다. 이때 귀법사의 주지는 17년 후배인 균여였다. 그들은 모두 성상융회사상의 경향을 지녀 서로 통할 수는 있었지만, 탄문은 화엄사상 내에 선종사상을 융회하려는 경향을 지녀 균여의 성상융회사상과는 결국 일치하지 않게 되었다. 
탄문과 균여의 뒤를 이은 화엄의 대덕으로는 결응(決凝)이 있다. 그는 정종의 왕사, 문종의 국사가 되었는데, 항상 화엄삼매를 닦았다. 만년에 고향에 절을 창건하였을 때 문종은 화엄안국사(華嚴安國寺)라는 칙액(勅額)을 내렸다. 결응 이후 의천 사이의 시기에는 화엄학자로 보현사(普賢寺)의 탐밀(探密)과 그의 제자 굉확(宏廓)이 있었고, 문종 때에 이르러서는 화엄의 대가 해린(海麟)과 난원(爛圓)을 주로 한 불사가 성행하였다. 
1067년(문종 21) 흥왕사(興王寺)가 창건된 이후 이 절에 홍교원(弘敎院)을 두어 항상 화엄교의를 설하게 하였고, 1077년에는 금자화엄경(金字華嚴經)을 전경(轉經)하게 하였다. 이 당시 활동한 난원은 곧 의천의 스승이다. 이때의 화엄종 사찰로서는 광종 이후의 중심사찰인 귀법사와 문종 이후의 중심사찰인 흥왕사를 비롯하여 흥교사(興敎寺)·홍호사(弘護寺)·불일사(佛日寺)·진관사(眞觀寺)·봉선사(奉先寺)·영통사(靈通寺)·구산사(龜山寺)·숭선사(崇善寺)·묘지사(妙智寺)·송천사(松川寺)·귀신사(歸信寺)·홍원사(洪圓寺)·부석사·해인사·화엄사·보원사(普願寺) 등이 그 대표적인 사찰이다. 
당시 고려의 불교는 화엄종과 법상종이 크게 대우를 받으면서 대립하였고, 제3의 종단이었던 선종은 선종대로 자체의 분파성을 극복하지 못한 채 교선대립의 상황에 처하여 있었으며, 각 교단은 귀족세력과 연결됨에 따라 생겨난 많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의천이 화엄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고려불교의 중흥을 표방하게 되었다.
의천은 문종의 제4왕자로서 11세에 출가하였다. 난원의 문하에서 처음 수업하기 시작한 곳이 화엄종의 영통사였으며, 죽은 뒤 그의 유골을 안치한 곳도 이 영통사의 동산(東山)이었다. 일찍이 중국화엄종의 제4조인 징관의 글을 보고 그 뒤부터 불교의 이해가 날로 더하였다고 한 것으로 보아 의천이 영통사에서 처음 공부한 것이 『화엄경』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23세 때 제일 먼저 강론하기 시작한 경전도 정원신역(貞元新譯)의 『화엄경』과 그 소(疏)였다. 
그 뒤 의천이 송나라에서 귀국한 이래 계속 머물렀던 흥왕사는 금자화엄경을 봉안한 고려화엄종의 본거지였으며, 해인사로 퇴거하기 직전에 머물렀던 홍원사도 법장·징관 등 화엄조사의 구조당(九祖堂)이 있는 화엄종의 사찰이었다. 뿐만 아니라, 송나라에 갔을 때 만났던 50여 명의 승려 중 10명이 화엄종의 승려였으며, 중국승려 중 가장 오래 접촉하고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도 화엄종의 정원이었다. 
의천이 정원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송나라로 가기 전부터였고, 의천이 송나라에 갔을 때에는 의천에게 혜인원(慧因院)에서 특별히 화엄을 강하여 주었으며, 그 강이 끝난 뒤 전법(傳法)의 표시로 의천에게 수로(手爐)와 불자(拂子)를 주었다. 이후 정원은 의천을 화엄승통(華嚴僧統)이라고 불렀다. 
김부식(金富軾)이 찬한 「대각국사탑비문」에 의하면, 의천이 화엄종뿐만 아니라 점돈대소승(漸頓大小乘)의 경율론장소(經律論章疏)에 이르기까지 탐색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불교에 대한 이해가 대단히 넓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의천의 중심사상은 화엄이었으며 그 자신도 화엄종의 승려로 자처하고 있었다. 
특히, 『신편제종교장총록 新編諸宗敎藏總錄』을 편찬함에 있어 권1의 제일 앞에 『화엄경』을 배당하였으며, 그 서문에 자신을 해동전화엄대교사문(海東傳華嚴大敎沙門)이라고 자서하였다. 그리고 그가 편찬한 『신집원종문류 新集圓宗文類』의 원종은 화엄종을 말하는 것이다. 
그 서문에 “화엄종의 이론은 대단히 복잡하기 때문에 그것을 인용하기도 어려운 것인데, 더욱이 근세에 이상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 종(華嚴宗)의 무리들이 근본을 버리고 지말을 좇아 억설이 분분하므로 조사의 현지(玄旨)가 막혀 통하지 못하게 된 것이 10 중 7, 8이나 된 것을 개탄하여 광문(廣文)을 간추려서 분류하여 요람으로 만들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화엄종의 입장에서 화엄종의 여러 이설들을 종합, 통일하려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의천은 선종의 원찰로서 화엄종의 사찰이었던 홍원사에 구조당을 설치하고 그때까지 통일되지 않았던 화엄종의 조보(祖譜)를 새로 정하여 마명·용수·천친·불타(佛陀)·광통(光統)·제심(帝心)·운화(雲華)·현수·청량(淸凉) 등을 9조로 하였다는 것도 화엄종의 교리와 종단의 통합에 대한 의천의 노력의 일단을 말하는 것이다. 
의천은 화엄사상 가운데 법계연기론(法界緣起論)을 가장 중요시하였고, 화엄종에 있어서의 실천수행과 이론적 교리조직으로서 삼관오교를 주장하였다. 삼관은 화엄종에서 법계의 진리를 증득하기 위하여 닦은 법계삼관(法界三觀)의 약어로 다음과 같다.
① 모든 법은 실성(實性)이 없고 유와 공의 두 가지 집착을 떠난 진공임을 관하는 진공관(眞空觀), ② 차별 있는 현상의 법과 평등한 본체의 법은 분명하게 존재하면서도 서로 융통하는 것임을 관하는 이사무애관(理事無碍觀), ③ 우주의 온갖 사물은 개개가 모두 일체를 포용하고 있음을 관하는 주변함용관(周遍含容觀)을 말하는 것이며, 오교는 화엄종의 교상판석인 소승교·대승시교(大乘始敎)·종교(終敎)·돈교(頓敎)·원교(圓敎, 화엄)를 말하는 것이다.
결국 삼관오교는 학문과 실천, 교와 관을 함께 닦는 것을 그 내용의 중심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의천이 보기에는 당시 고려의 화엄종은 말법투쟁(末法鬪爭)의 시기를 당하여 모순이 격화된 채 그 도 자체가 거의 끊어지게 된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 모순을 극복하는 방법으로서 교관병수(敎觀並修)를 주창하였는데, 자연히 모순이 극화된 고려화엄종이 아닌 신라화엄종의 전통을 재인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신라의 원효와 의상을 추모하여 그들의 사상을 천명하기에 노력을 기울였다. 
의천은 화엄종 관련 장소(章疏)의 정리와 강론, 문도의 양성, 종보의 통일 및 교관병수의 주장 등을 통하여 화엄사상의 통일과 화엄종단의 정비에 주력하였으나, 그의 불교개혁운동은 자신의 종파인 화엄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화엄종을 중심으로 다른 종파를 하나로 회통시키고자 함에 있었다. 그는 각 종파를 종합, 정리함으로써 그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일불승(一佛乘)의 사상체계로 회통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화엄종의 삼관오교로써 화엄종 내의 모순을 극복하고 다른 교종의 여러 파를 종합하여 절충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마련할 수는 있었으나, 교종과 대립되어 있던 선종까지를 포섭하여 불교를 쇄신하고 전체 불교계의 사상을 통일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으므로 말년에 새로운 종파로서 천태종(天台宗)을 개창하게 되었다. 
이것은 교종의 입장에서 선종을 융섭하려 하였던 사상적 흐름인데, 그 밑바닥에는 화엄사상이 잠재되어 있었다. 의천은 신라의 원효와 의상 이후 해동화엄중흥조(海東華嚴中興祖)로서 평가되고 있다. 
의천의 뒤를 이어 화엄을 널리 전파한 승려로는 계응(戒膺)과 혜소(惠素)·낙진(樂眞)·징엄(澄儼) 등이 있다. 태백산 각화사(覺華寺)의 계응이 화엄을 설할 때에는 언제나 1,000여 명 이상이 경청하였으며 40여 년 동안 화엄의 대법을 선양하였다고 한다. 또, 서호견불사(西湖見佛寺)의 혜소는 의천의 입적 후 대각국사행록 10권을 지었으며, 인종을 위하여 『화엄경』을 강설하기도 하였다.
화엄의 학장(學匠) 낙진은 의천을 따라 중국에 들어갔을 때 정원으로부터 그 총명을 인정받았으며, 귀국 후에는 봉선사·담화사·불국사·안엄사 등의 사찰에서 화엄을 전교하였다. 징엄은 의천의 밑에서 화엄을 통달한 뒤 홍원사·개태사·귀신사·흥왕사 등지에 머무르면서 화엄을 가르쳤으며, 인종이 즉위하자 계율종(戒律宗)·법상종·열반종·법성종·원융종을 총괄하는 오교도승통(五敎都僧統)이 되었다. 
고려 후기의 화엄사상
고려 의종은 즉위 즉시 영통사에서 『화엄경』을 50일 동안 강하게 하였고, 1156년(의종 10)에는 흥왕사에 행행(幸行)하여 『화엄경』을 전교한 법회 종사자들에게 상을 주고 금은자화엄경(金銀字華嚴經) 2부를 사경하여 흥교원에서 소장하게 하였다. 그러나 의종 이후 법문의 문란은 극에 달하였고, 무신의 난 등 국내정세로 인하여 고려의 불교는 의식 중심의 형식불교로 흐르고 있었다. 
이때 지눌이 수선사(修禪社)를 창설하여 고려불교의 새로운 기운을 회복시켰다. 지눌이 화엄사상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29세 때 하가산 보문사(普門寺)에 머무르고 있을 때였다. 그때 지눌은 혜능(慧能)의 『육조단경 六祖壇經』을 통하여 즉심시불(卽心是佛)의 선지(禪旨)를 체득하였으나, 자심(自心)만 찾고 사사무애를 체득하지 못하면 불과(佛果)를 이룰 수 없다는 말에 크게 자극을 받았다. 
지눌은 교학이 된 불어(佛語)가 어떻게 선(禪)인 불심과 계합하는가 하는 의문을 품고 보문사에서 『화엄경』을 탐독하였다. 그 뒤 이통현(李通玄)의 『화엄론 華嚴論』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아 『화엄론절요 華嚴論節要』와 『원돈성불론 圓頓成佛論』을 저술하여 화엄사상을 천명하였다. 지눌은 순수한 이론 중심의 교의문(敎義門)과 실천을 중심으로 하는 관행문(觀行門)이라는 화엄학의 2대 문 가운데 후자를 따랐다. 
그러나 그의 관행문은 중국의 화엄사상가들과는 달리 일진성해(一眞性海)의 본체를 바로 반조하여 돈오(頓悟)하는 선문으로 회통시킨 특징이 있다. 일찍이 중국의 징관과 종밀은 선과 화엄을 융회하려 하였지만 화엄의 교의문에 서서 선을 바라보면서 그 공통점을 찾으려 하였고, 문익(文益)과 연수(延壽)는 선사로서 화엄교를 선적(禪的)으로 응용하였으나 화엄을 완전히 선문으로 흡수하지는 못하였다. 
그런데 지눌은 선에 입각하여 화엄교지가 선과 상통한다는 점을 발견하였고, 특히 이통현의 『화엄론』을 중국의 화엄사상가와는 다른 원리로서 터득하였다. 그는 『화엄론』의 요지인 부동지불을 중생의 본원심지(本源心地)로 삼고, 그 부동지불에 대한 자각을 부처의 인지(因地)로 삼는다는 주안점을 명확히 파악하여, 본래 깨끗하고 물듦이 없는 일심의 근원에서 부동지불을 발견하는 것이 곧 선문의 돈오와 같다고 주창하였다. 
나아가 자기의 몸과 말과 뜻의 경계가 여래의 몸과 말과 뜻의 경계임을 직관하여, 생각마다 보현행원(普賢行願)을 닦아 선재동자(善財童子)의 공행(功行)을 성취하는 것이 주초성불의(住初成佛義)임을 주장하였다. 지눌은 이론만으로 교를 논하거나 반조만 하면서 원행(願行)을 닦지 않는 것을 모두 배척하였다. 지눌은 당시의 교계를 주도하던 화엄교지를 선에로 귀납시켜 원돈관행문(圓頓觀行門)을 설정한 것이다. 
종래의 선문에서 돈오견성(頓悟見性)하면 모든 수행을 끝마친 듯이 여겼던 지견지상주의(知見至上主義)를 지양하고, 그 돈오가 십신초위(十信初位)임을 자각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꾸준히 정혜력(定慧力)을 길러 십주초위(十住初位)에 들어가서 물러남이 없는 믿음을 성취하고 보현(普賢)의 광대한 원행을 실천할 것을 주장한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화엄을 선문으로 회통시키려 함이었고, 중국의 지견주의(知見主義) 선을 행원문으로 바꾸려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지눌의 화엄사상으로 인해 선문과 화엄학은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이후의 한국불교사상을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분기점이 되었다. 
지눌의 뒤를 이은 혜심(慧諶)은 화엄사상을 기본으로 한 선교일치사상을 천명하고 있으나 지눌의 사상을 넘어설 만한 특기 사항은 없다. 충지(冲止)도 화엄과의 관계 속에서 몇 편의 선시(禪詩)만을 남겼을 뿐이다. 충렬왕 때의 혜영(惠永) 또한
『화엄경』 십지품(十地品)의 사상을 천명하였으나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세우지는 못하였다. 
고려 말 화엄사상의 천명에 새로운 전기를 맞게 한 승려로는 충숙왕과 충혜왕 때에 활동한 화엄종의 체원(體元)을 들 수 있다. 체원은 이제현(李齊賢)의 가형(家兄)이다. 그가 20세를 전후하여 출가하였을 당시의 화엄종단은 정치적인 배경을 잃고 사상계를 주도하는 위치에 있지 못한 채 기층사회 속에서 실천신앙을 강조하는 입장에 있었다. 
체원은 개경의 세력권에서 벗어난 해인사를 근거지로 하여 인근 법수사(法水寺)·반룡사(盤龍寺)·동천사(東泉寺) 등지에서 활약하였으며, 경주지방의 지방토호 등과 유대를 맺으며 저작활동을 하였다. 그는 『백화도량발원문약해 白華道場發願文略解』·『화엄경관자재보살소설법문별행소 華嚴經觀自在菩薩所說法門別行疏』·『화엄경관음지식품 華嚴經觀音知識品』 등과 『삼십팔분공덕소경 三十八分功德疏經』이라는 위경(僞經)의 발문을 남겼다.
이 저술들은 1330년 전후의 저작이며, 『화엄경』의 관음신앙과 전통적인 민간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저작된 순서별로 그의 입장은 다르게 표현되고 있다. 『별행소』는 40권 『화엄경』 중 관음보살의 법문을 통해서 관음신앙에 대한 이론적 바탕을 정리하는 한편, 영험과 신이(神異)를 통해서 실천신앙을 강조한 것이었다. 『약해』는 의상이 지은 『백화도량발원문』에서 신라화엄종의 관음신앙에 대한 예를 구하려 한 것이었다.
『지식품』은 지송용(持誦用)으로 저작한 것이며, 실천신앙을 현실 속에 정착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체원이 발문을 지은 『공덕소경』은 기층사회의 독자적인 형태의 전통적 민간신앙과 화엄종의 염불신앙을 결합시켜 영험과 공덕을 강조함으로써 기층사회의 실천신앙을 정착시키려 한 의도로 저작된 것이다. 
당시 화엄종단의 주축이었던 체원의 이러한 노력은 실천신앙을 통해서 기층사회와 결합하고, 영험과 공덕을 강조함으로써 14세기 고려사회의 현실적 자각과 발원을 기대하였으며, 기층사회의 전통신앙과 화엄종의 실천신앙을 결합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4세기 이후의 화엄종은 전체 사회 속에서 이념적 기능을 담당할 수 없었고 한 단계 진전된 사상을 표방하는 인물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실천신앙과 영험만을 강조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었던 한계점을 보이기도 하였다. 
고려 말 공민왕의 신임을 받은 우운(友雲)은 화엄교관에 통달하였고 연도(燕都)를 내왕한 화엄종사였다. 그의 제자 의침(義砧)은 판화엄종사(判華嚴宗事)를 역임하였으나 이들의 화엄사상은 자세히 전래되지 않고 있다. 고려의 화엄관계 찬술문헌은 [표3]과 같다. 
[표 3] 고려시대 찬술 화엄사상관계저서 
저 자/ 문 헌 명/ 권수/ 현 존여 부/ 비 고
均 如釋華嚴敎分記圖通痹10敎分記釋
釋華嚴旨歸章圖通痹2
華嚴三寶章圖通記2三寶章記
十句章圖通記2十句章記
一乘法界圖圖通記2法界圖圓通記
搜玄方軌記10
孔目章記8
五十要問答記4
探玄記釋28
入法界品抄記1
赫連挺大華嚴首座圓通兩重 大師均如傳拄序1
義 天圓宗文類23一部存14 22권
知 訥華嚴論節要3
圓頓成佛論1
李藏用華嚴錐洞記(潤色)1
體 元華嚴經觀自在菩薩所 說法門別行疏2
華嚴經觀音知識品1一部存後半部
白華道場發願文略解1
미 상法界圖記叢髓錄4
조선의 화엄사상,
억불숭유라는 국가적 시책에 의하여 조선시대 태종·세종대에는 불교종파의 폐합이 강행되어 불교의 12종은 7종으로 줄었다가, 다시 선종과 교종의 양종만 남게 되었다. 이에 따라 화엄학도 이전의 한국불교사의 주종이었던 역사적 특성을 잃어버리고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계속되는 쇠퇴의 길을 걷던 불교는 1549년(명종 4)부터 보우(普雨)의 노력에 힘입어 확장되기 시작하였고, 1551년 선교양과를 신설하여 선교양종을 중심으로 한 승과제도를 실시하였다, 
이때 선종은 『전등 傳燈』과 『염송 拈頌』에 의거하였고, 교종은 주로 화엄사상에 중점을 두었다. 이는 천태학을 중심으로 한 『법화경』 연구에 주력하였던 조선 초기의 불교학이 중기에 들어서면서 화엄학으로 전환하게 된 획기적인 일면이다.
이와 같은 조선시대의 화엄사상을 불러일으킨 인물은 보우로서, 그의 저서인 『나암잡저 懶菴雜著』에서는 화엄의 삼원관설(三圓觀說)·일정설(一正說) 등의 독특한 주장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화엄학을 전문으로 강수한 사실이 없고, 화엄학에 직접 관련된 논저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조선불교의 태두는 휴정(休靜)이지만 그가 화엄사상을 특별히 천명한 바는 없다. 다만, 그의 수제자인 사명(泗溟)은 화엄의 교학을 높이 평가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화엄경발 華嚴經跋』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화엄경의 돈교는 참으로 위대한 것이다. 그 실체는 본래 생긴 것이 아니므로 처음도 끝도 없으며, 그 작용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므로 이루어지는 일도 무너지는 일도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모든 교의 근본이요 모든 법의 으뜸이다. ······이것을 넓혀 충실히 하면 물건마다 모두 비로자나불의 진신이요, 이것을 믿어 행하면 걸음마다 모두 보현보살의 묘행(妙行)이다. 그리하여 이것을 듣는 사람은 부처를 이루고, 이것을 따라 기뻐하면 범부를 뛰어넘는다. 그러므로 그 재주가 천종(天縱)을 뛰어나고, 그 지혜가 생지(生智)를 넘어선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능히 바른 믿음을 내고 큰 서원을 세우며 이 뜻을 크게 펼 수 있을 것인가.” 
이 글만 보면 사명이 화엄교가(華嚴敎家)가 아닌가 착각하리만큼 철저한 화엄사상의 신봉자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명은 화엄사상을 중심으로 한 저술은 남기지 않았다. 오히려, 이보다는 선수(善修)의 제자들 중에서 화엄학을 연구한 승려가 많았다. 특히, 『화엄경』을 전승한 사람으로는 각성(覺性)의 제자 수초(守初)가 있고, 수초의 제자 성총(性聰)이 있다. 
의심(義諶)은 『화엄경』의 동이(同異)를 연구하고 음석(音釋)을 가하였으며, 같은 편양(鞭羊) 문하의 도안(道安)은 화엄종주라고 불릴 정도로 화엄을 설법하였다. 도안 문하의 지안(志安)은 1725년(영조 1)에 금산사에서 화엄대법회를 개설하였는데 그때 법회에 참가한 자는 모두 1,400명에 이르렀다.
정혜(定慧)는 화엄에 깊이 통달하였으며, 화엄을 강설하는 데 있어 당대의 독보적 존재였다고 한다. 이 때부터 조선불교는 선사상보다 화엄사상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된다. 도안 문하의 새봉(璽封)도 화엄강회를 선암사에서 베풀었는데 그때 모였던 1,207명의 회중 명단은 지금도 남아 있다. 
조선 후기의 화엄종사로는 상언(尙彦)과 의소(義沼)와 유일(有一) 등이 있다. 상언은 체정(體淨)의 제자로서 33세에 용추사(龍湫寺)에서 강석(講席)을 열었다. 그는 오교삼승(五敎三乘)의 교학을 모두 통달하였지만 특히 화엄학에 정통하였다. 그는 강원의 주교재인 징관의 『화엄경소초 華嚴經疏鈔』 가운데 소과(疏科)가 결여된 것을 찾아내어 도표로써 보완하였고, 인문(引文)이 잘못된 것을 하나하나 교정하였다. 
징광사(澄光寺) 화엄경판본이 불타 없어졌을 때 대교수호(大敎守護)의 대원을 발하여 이를 다시 각판하여 봉안하는 등 평생을 화엄학의 연구와 홍포에 힘썼다. 그러나 그의 화엄학에 관한 논저가 남아 있지 않아 사상을 살펴볼 수는 없다. 그의 맥은 의소와 유일에게 전하여졌다. 
의소는 상언의 맥을 전승하여 비슬산(琵瑟山)·팔공산(八公山)·계룡산(鷄龍山)·불령산(佛靈山) 등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화엄을 강하며 행화(行化)하였다. 그의 제자는 100여 명이나 되었으며, 『화엄경사기 華嚴經私記』를 남겼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엄종주 유일은 30여 년 동안 호남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화엄학을 강설하였으며, 『화엄현담사기 華嚴玄談私記』 2권과 『화엄유망기 華嚴遺忘記』 5권을 저술하였는데, 이후의 화엄학 강사들은 모두가 그의 『화엄현담기』를 지침서로 삼았다. 
이 『화엄현담기』는 당시 우리 나라 불교강원에서 주교재로 사용하던 『화엄경소초』 중 해석상 의견을 달리하였거나 오류를 보인 부분에 대하여 선교융합의 태도를 취하면서 교의적인 면과 본분적인 면을 종합하여 가장 요령 있게 해석하고 정리한 것이다. 현대 화엄사상가로는 탄허(呑虛)를 꼽을 수 있는데, 그는 이통현(李通玄)의 『화엄론절요』에 대한 우리말 번역과 주소를 출판하였다. 
유일 이후 조선의 승려들은 거의 대부분이 화엄과 염불과 선을 함께 체득하는 독특한 사상체계를 보이고 있는데, 이와 같은 경향은 고려시대 지눌의 화엄사상에서 그 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화엄사상관계 찬술문헌을 보면 [표4]와 같다. 
[표 4] 조선시대 찬술 화엄사상관계저서 
저 자/ 문 헌 명/ 권수/ 현존여부
雪 岺華嚴一乘法界圖註1
性 聰華嚴經持驗記3
定 慧華嚴經疏隱科未詳失(?)
尙 彦淸祺崇摘抉隱科1存(?)
鉤玄記1存(?)
最 訥華嚴科圖1失(?)
華嚴品目1
華嚴品目會要34면
有 一華嚴玄談私記2
玄談怜足1책
華嚴解題玄談1책
華嚴玄談重玄記
重玄記30
(零落本)
玄談遺忘記1책
華嚴疏抄遺忘記1책
華嚴遺忘記5
有 聞法性偈科註1
義 沾三寶私記1
三寶記1
十地記1
雜華柄1
華嚴經私記1
華嚴記1
華嚴柄鉢2
會玄記1
天 旿華嚴法華略纂摠持1
李長者大方廣佛華嚴經禮懺文1
鼎 奭華嚴大禮文1
未 詳光明記3
大寶鏡1
玄談重玄記1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 진본 권13 1330년경 감색의 종이에 은니로 쓴 ≪화엄경≫. 보물 제1103호. 호림박물관 소장.   

출처 ^ 참고문헌
  • 화엄학개론 (안진호, 동국대학교 출판부, 1960)
  • 한국의 불교사상 (이기영, 삼성출판사, 1976)
  • 『균여화엄사상연구(均如華嚴思想)』(김두진,한국연구원,1981)
  • 한국화엄사상연구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동국대학교 출판부, 1982)
  • 한국불교사연구 (안계현, 동화출판공사, 1982)
  • 「화엄사상의 연구」(김영수,『백성욱박사송수기념불교학논문집』,동국대학교,1959)
  •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의 근본정신」(이기영,『신라가야문화』 4,영남대학교 신라가야문화연구소,1972)
  • 「신라화엄학의 계보와 사상」(김지견,『학술원논문집』 12,1973)
  • 「지눌의 화엄사상」(이종익,『한국불교사상사,』 원광대학교,1975)
  • 신라화엄사상연구 (김상현, 민족사, 1991)
  • [한국학중앙연구원,유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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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3일 월요일

불교경전?

불교경전?

대장경이란 말은 불교성전 일체의 총칭이란 뜻으로 일체경이라고도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모은 경과 불제자들이 지켜야할 수향덕목을 모은 율(律)과 마명, 용수, 천친 같은 보살 논사들이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교리를 모은 논의 3장이란 뜻으로 3장경. 장경이라고도 한다.
대장경의 원본은 sanskrit로 기록된 범어본과 파리어로 기록된 파리어본이 두 가지로 구분된다. 산스크리트어는 인도 고대의 표준문장어였다. 이것을 번역하여 범어라고 하는데 그 뜻을 하늘 나라말, "하나님의 말"이란 뜻이며 완성이란 의미를 지닌다. BC. 6C경부터 문자가 있었다고 하고 B.C 3C경에 문법학자 <바니니>에 의해 범어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범어는 인도 고대 사회에 있어서 지식계급, 지도계급에서 사용하던 어문이었다.
이에 대한 일반 서민계급, 노예계급, 교육, 지식부재의 사회에서 사용하던 속어를 prikrt(르라크리트)라 했는데 그 말은 자연생이란 뜻으로 소승불전의 원어인 파리어를 가리킨다.
산스크리트어 장경은 원본으로 하여 번역한 대장경에는 한역장경, 서장장경이고 또 한역과 서역장을 원본으로 하여 번역한 대장경에는 몽고장경, 만국장경, 일본장경과 우리나라의 팔만대장경등이 있다. 그 가운데 산스크리트어의 범본장경은 그 대부분이 한역된 한자경전으로 전해오고 있을뿐 많은 양의 원본 반 이상이 망실되어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이 범본불전에 의지하는 불교국은 대승권으로서 중국, 서장, 몽고, 한국, 일본 등의 인도 북방지대에 속하므로 북방불교라고도 한다. 파리어계의 장경은 주로 스리랑카, 버어마, 태국 등의 남방으로 전해졌으므로 이것을 남방불교라고 한다. 남방불교는 불멸후 300년 경에 인도천하는 처음으로 통일한 아쇼카왕(B.C 2C)이 8만 4천탑을 세우고 제3차 결집등 많은 불사를 이룩하고 희랍의 국가에 까지 전도승을 파견할 때 세일론(스리랑카), 버마등지에는 수나가, 율다라, 마혜다, 스마나 등이 맡아서 포교하도록 했는바, 그 뒤 이 지역에는 파리어계의 장경이 전해졌던 것이다.
세존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는 모든 것을 부처님에 의해 직접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처님 멸도후에는 불제자들이 각각 기억하고 있는 부처님의 설법을 정리해서 성문화 할 필요를 느꼈다. 부처님의 유교가 흩어지지 않게 해야하고 그 유법에 따라 교전을 확립해야 되겠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제자들이 모여서 부처님께 들은 법문을 외워내어 교법을 완성하고 성전을 편찬하는 결집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모여서 불법을 결집하는 큰 일을 한 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무려 4회 내지 5,6회 네 차례 걸쳐서야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제1결집] (5백결집, 왕사성 결집)
부처님의 상수제자이신 마하가섭존자가 회의를 소집하여 5백인의 대아라한(유능한 비구)들이 왕사성의 교외에 있는 칠엽굴에서 아난존자는 경을 외워내고 우팔리존자는 율을 외워내어 대중이 검토결정해서 교단의 이름으로 편집결정했다. 이것을 혹은 5백결집, 왕사성결집, 상좌부결집이라고도한다. 여기에 굴내결집, 굴외결집 두가지 결집설이 있는데 이것은 뒤에 상좌부가 된다.
[제2결집] (7백결집)
석존멸후 100년경에 계율에 대한 이견이 생겨서 비사리성에 모여 장로야사를 중심으로 율장을 보완 편찬하였는바 이때 열가지 그릇된 법을 주장했다. 이로인해 두 부파로 갈라지게 되었다(대중부와 상좌부).


  • *십사(十事)란? 
  • 1.뿔로 만든 용기에 소금을 넣어 갖고 있다가 음식물에 넣어 먹는 것이 합법인가. 
  • 2.수행자는 정오를 넘으면 식사를 할 수 없다. 그런데 정오가 지나서 태양의 그림자가 손가락 두 마디만큼 지난 시각까지 식사 시간을 연장하는 것은 합법인가. 
  • 3.한 번 탁발해서 충분한 식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마을에 들어가 식사대접을 받는 것은 합법인가. 
  • 4.동일 지역내에서 포살을 따로 행하는 것은 합법인가. 
  • 5.승가의 여러 사항을 결정하는데 우연히 비구 전원이 참석하지 않았을 때 참석한 성원만으로 먼저 결정을 한 다음에 나중에 온 비구에게는 사후 승낙을 구하는 것은 합법인가. 
  • 6.붓다나 아사리가 관행으로 행하고 있던 것을 자기도 행하는 것은 합법인가. 
  • 7.우유를 충분히 마시고서도 또 다시 마시는 것은 합법인가. 
  • 8.수액을 발효시켜 아직 알코올 성분이 나오지 않은 음료를 마시는 것은 합법인가. 
  • 9. 테두리가 없는 헝겊을 좌구(坐具)로 쓰는 것은 합법인가. 
  • 10.금이나 은을 신자로부터 받는 것은 합법인가. 
  • [제3결집](천인결집)
    블멸후 200년(혹은 300년)경에 아육왕이 호법하여 목건련제수존자를 상좌로 파탈리푸트라에 일천비구가 모여서 삼장을 확정하다. 이때는 아육왕이 불교의 신자이므로 외도들이 의식이 궁핍해지자 불제자의 차림을 하고 혼란을 일으키는 등의 사건이 일어나므로 이런일에 대처하려는 것이 직접적인 동기가 되기도 하였다.
    [제4결집]
    불멸후 400년경(혹은 불멸 600년경, AD.2C) 카니시카왕의 호법아래 협존자와 세우보살을 법주로 하여 가습미라성에 500비구가 모여 삼장의 주석을 붇이는 제4결집을 했다. 그것이 바로 대비바사론 이라고 하는데 남방불교에서는 이것을 의문시 한다.
    경전의 성립,
    보통 불교경전이라 하면 한역 대장경을 많이 연상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처음부터 어렵고 복잡한 방식으로 가르침을 펴신 것으로 착각하게 되는데, 이것은 우수한 외래 문화의 도입과정에서 비롯된 오해에 불과합니다.
    처음부터 경전이 있었던 것은 아니며 부처님 스스로는 당신 자신이 가르친 내용을 저서나 기록 또는 어떤 방법으로도 보관하거나 전승시키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가르침을 들은 제자나 신도들이 머리 속에 기억하여 정리하고 보존, 전달해 왔을 따름입니다. 수백년 동안은 글자로 베껴 쓰는 일도 없었는데, 이것은 당시의 일반적인 전통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부처님의 설법 내용을 제자나 신도의 기억에 의존하여 구술로 전달하는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그 내용을 한 마디도 어긋나지 않게 기억 속에 간직하기란 기대할 수 없는 것이고, 다만 설법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줄거리만 기억하였던 것입니다. 더구나 그 내용의 파악에 있어서도 사람들이 다 똑같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같은 설법을 듣고도 듣는 사람에 따라 견해가 조금씩 달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입멸하시고 나자, 사소했던 이러한 견해 차이가 보다 심각한 상황을 야기할 우려가 발생하여 자신의 견해를 부처님의 것인 양 주장하는 사태도 발생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에 대한 생생한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그 분의 실제 가르침을 확인하고 정리해 둘 필요성이 제기되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청취한 제자들이 전체 회의라 할 수 있는 모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모인 불제자들의 회합을 ‘결집’이라 하는데, 비록 이 모임의 결과가 문자화되지는 않았지만, 이 모임에서 결정된 내용들이 후대에 소위 경전으로 결실을 맺게 됩니다. 물론 이것이 실제 있었던 사건이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부가 있지만,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당시의 상황과 이에 관한 이야기의 전통을 고려할 때, 이 회합을 일단 사실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입니다.
    모든 경전은 첫머리에 여섯 가지의 필수적인 요건을 갖추고 있는데, 이것은 육성취(六成就)라고 하여
    석존의 가르침이 틀림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신성취(信成就 : 여시如是)와
    내가 직접 들었다는 문성취(聞成就 : 아문我聞),
    설법의 때를 명시하는 시성취(時成就 ; 일시一時),
    설법을 한 것이 붓다였다는 주성취(主成就 : 불佛),
    설법한 장소를 밝히는 처성취(處成就 : 재사위국在舍衛國),
    어떤 사람이 들었는가를 밝히는 중성취(衆成就 : 여대비구與大比丘) 입니다.
    그래서 모든 경전이 "여시아문 일시 불 재사위국 여대비구~"하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대승불교의 출현은 곧 대승경전의 출현과 때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대승경전 가운데 제일먼저 출현한 것이 반야경계의 경전으로 밝혀졌으며 대체로 불멸후 삼백년이후 4,5백년경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되고 그 뒤에 이어서 방등부의 경전들, 그리고 불멸후 6백년경에 법화부가 화엄부의 경전은 불멸후 7백년경에 차례로 출현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경들이 출현내지 유행되기 시작한 곳은 간다라, 카슈미르 지방 곧 대월지국이었다. 
    부처님일대를 다섯시기로 나누어 분석하는 법을 오시교라한다. 여기에 천태의 5시교, 화엄의 5시교, 열반종의 5시교 등의 구별이 있다.

  • 천태오시교 - 화엄시, 녹원시(아함), 방등시, 반야시, 법화.열반시
  • 열반오시교 - 삼승별교, 삼승통교, 억양교, 동귀교, 상주교
  • 화엄오시교 - 인천교(아함), 반야유마, 법화경, 열반경, 화엄경
  • 12분교(十二分敎)
    12분교(十二分敎)는 불멸 직후 열린 제1결집 후에 분류된 것으로 문체, 문장 및 기술의 형식과 내용 등을 기준으로 경전을 12가지로 분류한 것을 말하는데 12부경, 12분성교, 12분경이라고도 합니다. 또한 12분교에서 인연과 비유, 논의 등 세가지를 뺀 아홉가지를 9분교라 부르기도 합니다.
    1) 경(經)은 범어 sutra를 번역한 말인데 수다라(修多羅)라 음역하며, 이는 사상적으로 그 뜻을 완전히 갖춘 경문을 말합니다. 즉 단순한 이야기, 또는 비유만의 서술이 아니라 예컨대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과 같은 사상을 완전히 표현한 경문을 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2) 고기송(고기송)은 범어 gatha 의 번역으로, 게송 또는 송이란 뜻입니다. 가타(伽陀) 게타(偈陀), 또는 게(偈)라 음역하기도 하는데, 이는 운을 부친 시체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운문으로서 술한 경문을 말하는데, 산문체로 된 경전의 1절 또는 총결한 끝에 아름다운 귀절로서 묘한 뜻을 읊어 놓은 운문 부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경전에는 본문의 내용을 거듭 읊은 중송이 있기도 하지만, 고기송이라 번역되는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본문과는 관계없이 노래한 운문을 말합니다.
    3) 중송(重頌)은 범어 geya 를 번역한 말인데, ‘기야(祈夜)’라 음역되기도 합니다. 이는 앞의 고기송과는 대조적으로 운(韻)을 부치지 아니한 시체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시체이나 운을 안부치고 그 앞의 산문으로 된 본문의 뜻을 거듭 설명하는 부분을 가리킵니다.
    4) 무문자설(無問自說)은 범어 udana의 번역으로 감흥어(感興語)라 번역되기도 하며 우타나(優陀那)라 음역되기도 합니다. 이는 부처님이 종교적 체험을 감격한 그대로 말하는 부분인데, 경전에 보면 부처님은 제자나 신도의 질문에 의해 설교하시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누구의 질문에 의하지 아니하고 설하시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것을 udana, 즉 무문자설이라 하는 것입니다.
    5) 미증유법(未曾有法)은 범어 abhuttadharma 를 번역한 말로 희법(稀法)이라고도 하며 아부다달마(阿浮多達磨)라 음역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경 가운데 불가사의한 일을 말한 부분입니다. 다시 말하면 범부(凡夫)는 경험하지 못하는 성자 특유한 심경(心境), 또는 정신적 기적 같은 것을 설한 부분입니다.
    6) 여시어(如是語)는 범어 iti vuttaka 를 번역한 말로 이제불다가(伊帝弗多迦)라 음역되기도 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경전 첫 머리에 보면 ‘여시아문(evam maya-srutam) 즉 ‘이와같이 나는 들었노라’라는 말은 곧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설하셨다’는 말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 말 속에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므로 그대로 믿고 의심치 않는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7) 인연(因緣)은 범어로 nidana를 번역한 말로 니타나(尼陀那)라 음역되기도 합니다. 이는 어떤 경전을 설하게 된 사정이나 동기 등을 서술한 부분을 말합니다.
    8) 비유(비유, avadana )를 번역한 말로 아파타나(아파타나)라 음역되기도 하며, 이는 경 가운데서 비유나 우언(寓言)으로써 교리를 설명, 해석한 부분을 말합니다. 불교 경전에는 이 비유가 매우 다양하고 풍부하며, 경에 따라서는 이 비유의 이야기만으로 구성된 경전도 있습니다.
    9) 본생(本生) 범어 jataka 를 번역한 말로 자다가 또는 자타가라 음역되기도 합니다. 이는 부처님의 전생의 이야기를 적은 경문으로, 부처님이 전생에 하신 육바라밀의 행업 등을 말한 부분이다. 파알리어 삼장에는 550종의 본생이 기록되어 있고, 한역 대장경에는 생경이라던가 육도집경 또는 불본행집경 등의 경이 모두 이 본생을 담은 경전들입니다.
    10) 수기(授記, vyakarana) 를 번역한 말로, 화가라나(和伽羅那)라 음역되기도 합니다. 이는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음 세상에서 성불하리라는 것을 낱낱이 예언하는 경문의 부분인데, 보통 문답식으로 의론을 전개하다가 최후에 부처님이 인가를 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11) 논의(論議)는 범어로 upadesa를 번역한 말로 달리 축분별소설(逐分別所說)이라고도 한역되며, 우파제사(優波提舍)라 음역합니다. 이는 해석, 논술로써 연구 논문 형식의 경문을 말하는데, 부처님이 논의하고 문답하여 온갖 법의 내용을 명백히 말한 부분을 가리킵니다.
    방광(方廣)은 vaipulya 를 번역한 말로 방등(方等)이라고도 번역되며, 비부략(毗浮略), 비불략(毗佛略) 또는 비부라(毘富羅) 등으로 음역되기도 합니다. 이는 부처님의 설교가 문답을 추구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면서 논리적으로 깊고 넓게 의미를 확대하고 심화(深化)하여 철학적 내용이 성격을 띤 경문을 말합니다.
    서(序), 정종(正宗), 유통(流通)의 삼분(三分)
    중국에서 경전을 서지학적으로 연구한 최초의 불교학자인 동진의 도안은 한 경전의 조직을 보면 서분, 정종분, 유통분의 3단으로 되어 있다고 갈파하였는데, 이 3단번은 극히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어 그 후의 학자들은 모두 이를 채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서분은 경문의 첫 머리에 ‘여시아문’ 이하 그 경을 설한 때와 장소, 그리고 대상 등 일체의 사정을 서술한 부분이고, 정종분은 석존의 설법을 서술한 경의 본체이며, 유통분은 경문의 마지막에 그 설법을 들은 대중의 감격이라던가 계발의 정도, 그리고 장래에 이 경을 읽는 사람의 이익이나 공덕, 또는 그 경의 이름 등을 기록한 부분입니다.
    이와같은 삼분을 염두에 두고 경전들을 살펴보면 단편의 경전은 정종분만 있는 것도 있고 또 서분과 유통분이 극히 간단한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편의 경전은 반드시 이 삼분을 구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후의 이분이 분명하게 서술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서
    분과 유통분만 아니라 전후의 이분이 분명하게 서술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는데, 서분과 유통분과는 석존이 설법한 언사를 기록한 것이 아니고 석존의 설법을 들은 사람의 말이거나 쓴 사람의 기술이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경전이라는 것은 석존의 설법만을 문자화하여 책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불교학자들은 서분의 기술 여하에 의해서 그 경전의 사상이라던가 내용의 심천 등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하여 매우 중요시 했습니다. 정종분도 또한 오로지 석존의 설법만이 아니고 제자들의 문답 왕복과 제천(諸天)의 말, 시방세계(十方世界) 보살들의 말 등이 석존의 말씀보다 더 많이 기록되어 있는 경전이 적지 않습니다. 유명한 ‘화엄경’과 같은 80권이나 되는 장편의 경전도 석존의 말씀은 겨우 2,3장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는 모두 석존 이외의 사람의 말이 기록되어 있고, 그 짧막한 말도 간단한 설명 또는 회화가 아니라 시가(시가), 운문, 비유, 논설 등 이른바 십이분교의 제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경에는 부처님이 실제로 말씀하신 직경과 뒷사람이 거짓으로 조작해서 만들어진 위경(僞經)과 그것 저것이 확실치 않아서 부처님의 진설로 볼수 없지만 교리적 내용으로 보아 어긋나는 정도가 심하지 않은 의경(疑經)이 있다.
    위경이란 어떠한 경전인가?
    불교에서 경전이라 하면 원칙적으로 부처님이 직접 설파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 문헌을 가리킨다. 물론 꼭 이러한 경우에만 경이라는 호칭이 뒤에 붙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그의 행적을 다루는 문헌으로서 부처님이 직접 설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권위를 인정받은 문헌도 한문으로 번역된 경우에는 경이라 불려 왔던 것이 관례이다.
    위경(僞經)이란 말 그대로, 명목상 부처님이 설한 것인 양 위조된 경전을 가리킨다. 이와 반대되는 경전을 진경(眞經)이라든가 정경(正經)이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드시 그러한 원칙에 의해 위경과 진경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인도에서는 부처님의 이름으로 경전을 편찬하는 풍습이 점차 성행함으로써, 부처님이 설한 순수한 교리와 혼동되는 예가 적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대승경전일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대승경전을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보는 것은 큰 잘못이다(제29문 참조).
    따라서 예로부터 위경이라 칭하는 것은 오로지 중국 등지에서 새로 제작된 경문(經文)만을 가리키고, 인도나 티베트에서 전래된 것들은 모두 진경이라 간주되어 삼장(三藏) 속에 편입되어 왔다. 그러나 티베트에서도 명백한 위경들이 상당히 제작되었다.
    이상과 같은 입장에서 진경과 위경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산스크리트 원본 등으로부터 번역된 경전을 진경 또는 정경이라 칭하는 데에 반하여, 그로부터 번역된 경전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것들을 위경 또는 의경(疑經)이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위의경(僞疑經)이라는 호칭된 사용된다.
    그나 중국에서 편찬된 경전목록, 즉 경록(經錄)에 의하면, 의경과 위경을 구별하는 경우도 있다. 한역된 경전이라 보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는 경전을 의경이라 하고, 위조된 것임이 확실한 경전을 위경이라 하는 것이다. 결국 진경과 위경을 가리는 기준은 원전이 불교의 본산지인 인도에서 제작되었느냐의 여부와, 그 원전의 언어가 산스크리트인가 아닌가의 여부에 있다. 팔리어의 경우에는 그로부터 한역된 예가 매우 드물어서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중국에는 상당한 양의 위경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는 여러 종의 경록들이 편찬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남북조(南北朝)시대에는 46부 56권, 수나라 시대에는 209부 490권, 당나라 초기에는 406부 1,074권의 위경들이 비약적으로 증가되었음을 볼 수 있다. 특히『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이라는 유명한 경록이 대장경에 편입된 것으로 수록하고 있는 문헌의 수가 1,076부 5,048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위경들이 유행하였는지를 엿볼 수 있다.

    중국불교의 완성기라고 하는 수(隋)와 당(唐)의 시대는 위경의 전성시대이기도 했다. 이러한 위경들은 난해한 불교교리를 이해하는 데에 소질이 없었던 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불교를 근거로 삼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단서를 간직하고 있지만, 그 권위를 인정받지 못함으로써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모습을 감추었다. 비록 대장경에서는 모습을 감출 수밖에 없었지만, 민간에서는 끊임없이 이들 위경들이 진경과 마찬가지로 신봉되어 남몰래 서사(書寫)되고 널리 유포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유행했던 위경들도 송나라 시대 이후에는 거의 사라져 버리고 그 편린이나 이름만이 남게 되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근래에 돈황에서 발견된 문헌들 속에는 적지 않은 위경들이 포함되어 있어, 그간의 면모를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해준다.
    호국의 법을 밝힌 것으로 유명한『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은 잘 알려진 위경이다. 또 이를 바탕으로 하여 보살의 계위를 논하였던『범망경(梵網經)』(초기경전 중의『범망경』과는 다르다)은 남북조시대에 있어서 통치자의 비법(非法)과 승려의 비행을 바로 잡으려는 의도로 제작되었다. 이들과 연관있는 유명한 경전으로서『보살영락본업경(菩薩瓔珞本業經)』도 위경이라 간주된다. 위경이라 하여 무조건 배척하는 선입관도 크게 잘못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위경인 줄 모르고서 불교의 진면목인 양 신봉하는 것도 위험하다. 위경이 큰 영향을 끼친 예로서는 중국의 삼계교(三階敎)가 있다.

    말법시대의 중생구제를 위한 강력한 실천을 내세웠던 삼계교는『상법결의경(像法決疑經)』이라는 위경을 중요한 근거로 삼았던 것이다. 이 경전은 6세기 후반의 불교를 둘러싼 사회적 여건을 반영한 것으로서 불교계의 타락과 헛된 신행을 지적하며 반성과 개혁을 강조하였다.
    위경에 있어서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비불교적 요소의 삽입이다. 이 경우 도교의 영향을 받은 위경이 많다.『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이라는 위경에서 설명하는 점찰법이란, 나무 바퀴를 가지고 과거 세상의 선악업과 현세의 고락길흉 등을 점치고, 흉사가 나타나면 지장보살(地藏菩薩)을 예참하여 죄를 멸하고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는 불교의 본래 입장이 아닐 뿐더러 결코 바람직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당연시되고 있는 신행이 혹시 과거에 유행했던 위경에 의한 그릇된 것이 아닌 지를 항상 점검해 보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1) 천수경(관음신앙)
    불교의 진리에 입문하는 첫걸음은 대개 신앙의 문을 통과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데 그 때에 필요한 경전이 바로 이 천수경이다.
    천수경은 약칭으로 부르는 경명(經名)이고 갖춘 이름으로는 천수천안 관세음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다라니경이라고 한다. 이 경은 본래 당나라 가범달마에 의해 번역된 역본이 유통되고 있으며 생략하여 천수경 또는 천수 다라니경 이라고도 하며 송나라 사명존자에 의해 널리 유포되어 그 효험이 많은 것으로 전한다.
    현재의 천수경은 7가지 경전이 합쳐진 것이다.
    2) 반야심경(공사상)
    반야심경은 교리적 철학적 입문서이지만 이 경속에 실려있는 교리적 내용으로 봐서는 반드시 입문서적이라 할 수 없다.
    260자밖에 되지 않은 가장 짧은 경문 가운데 대소승.제경의 취지로 간결하게 담뿍담고 있을뿐 아니라 조석예불을 비롯한 대소의식에는 물론 식사시에까지 이 심경은 지송되고 있어서 초 종파적으로 소의하는 경중의 경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유포되고 있는 것은 당나라 현장삼장의 번역이며 일본이나 중국등지에서도 이 현장본을 지송한다. 
    한국적 불경(전통 강원교재)
    사미의 교과적
    1) 초발심자경문
    불문에 출가했어도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한 어린이는 마음과 몸이 연약하므로 고된 비구의 수행을 다 따라 할 수 없다. 그래서 계율도 아주 기초적인 10계만을 지키게 하고 하기 힘든 난행과 고행은 하지 않아도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예습적인 수도기간의 납자들을 불교에서는 남자는 사미, 여자는 사미니라 이름한다.

    성년이 되었더라도 늦게 출가하여 아직 구족계를 받지 못했으면 역시 사미다. 사미는 주로 출가수행 생활에 심신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계율을 익히는 일에만 전념해야 한다. 따라서 사미가 처음 배우는 교과들도 모두 간단한 계와 언행, 어른 앞에서 하는 몸가짐. 식사하고 잠자는 일 등에 관한 교육 그리고 발심, 경책 등을 돈독히 하는 글들인데 우리나라에서느 그 첫째번 교과가 바로 이 초발심 자경문이다.
    초발심자경문은 고려 보조국사의 계초심학입문과 신라 원효대사의 발심수행장, 그리고 고려말(혹은 신라말) 야운비구의 자경문을 한권의 책으로 엮어 이름한 것이다.
    2) 치문경훈
    치문이란 검은 옷을 입은 승려의 세계란 뜻이니, 치자의 본래의 뜻은 검다, 검은빛이 있는데, 변하여 승려를 뜻하는 자의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불문의 대명사로 치문이란 말을 쓰게 된 것은 불교의 도입과 거의 같은 시기가 아닌가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치문하면 불문을 가르키는 것으로 쓰이며 치문경훈이란 책명은 [불문에 들어온 사람들을 경계하고 훈계한다] {승려가 삼가고 지켜야할 길]이란 뜻이 된다.
    이 치문경훈은 본래 고승대덕이 제자나 후대인을 훈계하고 동료와 자신의 수행을 독려 경책한 훈계. 좌우명. 서장 등을 집대성하여 초학사미로 하여금 익히게 했던 것이다.
    조선초에 사미과 교재로 채용된 것이라 전해진다.
    3) 사미율의 계
    사미율의라 함은 사미가 지켜야 할 10계와 의식 크고 작은 행동거지를 일컫는다. 사미는 범어 srama nneraka의 음역을 줄인 말이니 번역하면 악을 쉬고 자비를 실천한다. 장차 비구가 되기 위해 부지런히 닦고 책려한다는 내용이다.
    사미가 지켜야 할 열가지 계목에 대한 해설과 의식. 예불. 위의 등에 대한 규범을 실고 있는바 세수하고 잠자는 일, 밥 먹고 대소변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일거일동에 대한 자세한 규범들로 짜여져 있다.
    사집과 교과ㅡ
    4) 서장(서장)
    서장은 대혜서장이라고도 하며 대혜종고(1088 - 1163, 송나라)선사의 편지를 모은 책을 이름한다. 대혜서는 42인의 편지글 62통으로 엮어져 있으며, 그 주된 취지는 삿된 지견을 깨트리고 정법의 눈을 열어 주려는 것이다.
    이 서장이 어느때에 우리나라에서 판각되었느냐 하면 고려말기 부터이다.
    5) 도서
    선원제전집도서를 줄여서 도서라고 부르는데 중국 화엄종 제5조이며 초기에 크게 융성했던 하택종의 제5조이기도 한 규봉종밀선사(780 - 841)의 저술이다.
    1500년 전후에 우리나라에 전래된 듯하다.
    도서의 핵심은 선과 교의 본 뜻은 둘이 아니라는데 있다.
    6) 선요
    선에 대한 요의를 설명했다는 뜻이며 고봉원묘(1238 - 1295)화상의 저서이니 고봉은 달마로부터 제 18대, 임제종의 개조인 임제의 17대법사이다. 간화선법이 한참 유행할때의 대선장이다.
    7) 절요
    절요한 법집별행록 절요병입사기의 약칭이니, 지눌 보조국사의 저술이다. 그 내용은 법에는 변하지 않는 불변이 본체계와 인연에 따라 나타나는 가변적인 작용의 두가지 뜻이 있고 사람에게는 두가지 문이 있으니 본체계의 진리를 단번에 증득하여 깨닫는 돈오와 그 뒤에 점차 닦아서 보임이 수행을 더함으로 단계를 거쳐 깨달음을 얻는 점오의 문이있다.
    사교적 교과,
    8) 능엄경
    능엄경은 약칭이고 구체적인 경명은 대불정여래밀인 수증요의 제보살 만행수능엄경 또는 대불정수능엄경이라고도한다. 경의 뜻을 간추리면 무한하게 크고 무상최극의 절대한 깨달음을 성휘하신 부처님이 되기 위해 닦는 보살들의 완전무결하고 견고무비한 6도만행의 수행법을 말씀하심 경이란 뜻이 된다.
    9) 대승기신론
    대승기신론이란 여러 대승경전의 진리를 통론적으로 체계적으로 논리를 세워 밝힌 글이란 뜻이다. 저자는 중인도 마가다국 출신의 마명보살(100년경)이다. 대승불교사상을 체계화하고 최초로 크게 선양하였다.
    10) 원각경
    원각경은 줄인 이름이며 자세히는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이라 한다. 대승의 최후구경인 원돈(圓頓=원만하고 단번에 최후의 진리를 깨닫는 것)의 진리를 말씀하고 그 깨달는 법과 수행하는 법을 기록한 경이다.
    어느때 여래가 <신통대광장>이란 삼매에 드시어 모든 것이 하나인 不二의 경지에서 10만의 대보살과 함께 계시었는데, 문수.보현.보안.미륵 등 12보살과 더불어 문답하신 내용으로 되어 있다.
    11) 금강경
    금강경의 구체적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이고 금강반야경이라고도 한다. 금강과 같이 단단하고 밝은 완전한 반야의 空智로 열반을 성취하고 보살행을 하여 불타가 된다는 뜻의 이름이다.
    대교적 교과,
    12) 화엄경
    화엄경은 약칭이며 원래 명칭은 대방광불화엄경이다. 번역된 화엄경중 현존하는 것은 80권(당, 실차난타, 신역), 60권(진, 불타발타라) , 40권(반야삼장)이 있다.
    이 경의 요지는 대승보살도 사상을 구체적으로 보인것인데 불타가 처음 성도한 것으로 부터 부사의한 불타의 과덕과 그 경계를 가장 장엄하게 문학적으로 찬술했고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52위의 보살계통이 있음을 교리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을 만나 대승보리심을 일으킨뒤 52명의 선지식(부처님의 지혜와 덕을 갖춘이)을 찾아 무궁무진한 불법을 묻고 보살도를 닦아 마침내 부사의 해탈경계를 성취하는 입법계품으로 끝맺는다.
    수의적 교과,
    13) 법화경
    현재 유행하는 경본은 구마라습(407)삼장이 번역한 7권 28품으로 된 묘법연화경이다. 묘법연화경은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뜻을 밝히는데 그 요지가 있다. 일체중생이 다 갖추고 있는 불지견을 열어 주어서 해탈케하는 일대사인연이 바로 그것이다.
    14) 경덕전등록
    경덕전등록은 생략하여 전등록이라고도 하는바, 부처님의 법을 이어 받아서 불법을 길이 후세에 빛낸 법통을 기록한 저서라 하겠다. 전등이란 바로 진리의 등불을 전한 기록이란 뜻이고 경덕은 중국 송나라 연호이다.
    15) 선문염송
    선문염송이란 선문에서 들어보이고 게송을 읊어서 현묘한 진리를 일깨워 준다는 뜻이다. 저자는 진감국사 혜심(고려, 1178 -1234)이다.
    화두에 대한 설명과 주석으로 되어있다.
    1) 범망경
    범망경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줄인 이름이고 갖춘 이름은 범망경 노사나불설 보살심지계품제십이라한다.
    보살이 지녀야 할 마음의 자세, 실천덕목 곧 대승계율을 담고 있어 대승의 모든 종파에서 소의 율전으로 되어 왔다. 이 범망경의 대승계는 재가, 출가를 막론하고 두루 통용되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2) 사분율
    사분율이란 출가한 비구가 불법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계율에 관해 자세히 기록한 60권의 율전을 일컫는다.
    곧 비구의 250계와 비구니 348계를 말하는데 이를 소승율장이라하고 보살계는 대승율장이라 하며 또 대승율장은 중생의 마음이나 불보살의 마음의 근본핵심인 心地자리를 동일한 것이며 이 심지를 계발하여 잘 지키면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는 근원적인 원리에 의해 베풀어진 것이므로 이 계라하고 성도즉시 한꺼번에 말씀하셨다하여 돈계라 하지만 소승계는 허물을 범하는 자가 생기면 그때 그때 마련된 계이므로 점계라하고 낱낱의 행위를 구체적으로 말했다하여 구족계라 한다. 
    1) 유마경
    유마경의 갖춘이름은 유마힐소설경이나 13권으로 구마라습삼장이 번역했다(405).
    정명경, 불가사의해탈경이라고도 하는데 유마힐 거사가 설한 경이란 뜻이고 불가사의하여 가희 생각이나 언설로는 헤아려 볼수 없는 해탈경계의 진리를 설한 경이란 뜻이다.
    2) 대반열반경
    대반열반경은 부처님의 돌아가심에 대한 경이란 뜻인데 그러나 단순한 부처님의 돌아가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생사왕래가 끊어진 절대무위 경지에 돌아감을 뜻하는 열반이다. 여기에 대승의 열반경과 소승의 열반경이 있다.
    1) 아미타경
    아미타경. 불설아미타경이라고도 하고 줄여서 미타경. 호렴경. 소경이라고도한다.
    구마라습삼장이 번역한 아미타경1권이 널리 유통되고 있다.
    상권에서는 아미타불의 인과와 그 48대원을, 하권에는 중생이 아미타불 정토에 태어나려면 염불. 제행의 두가지 방법이 있음을 설하고, 받게 되는 과보에 대해 설했습니다.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면 극락에 태어난다는 타력신앙을 설하고 있다.
    2) 무량수경
    대경, 쌍권경, 관무량수경이라고도 한다.
    무량의경이란 무량수불의 과거보살 일때의 인행을 기록한 경이란 뜻이니 무량수불은 곧 수명이 한량없다는 아미타불을 가르킨다.
    아미타불과 그 화신인 관음.세지의 두 보살, 극락정토의 장엄을 구체적인 마음의 대상으로 관하는 법을 설한, 타력신앙의 진실성을 밝힌 경입니다.
    3) 관무량수경
    관무량수불경, 무량수불경, 십육관경, 관경 등의 이름으로 불리운다.
    열여섯가지 관법에 의하여 아미타불을 관하고 극락세계는 관념불이라 할 수 있는 관법이 있으므로 관무량수경 또는 관경이라고 한 것이다. 
    1) 법화경
    묘법연화경의 천태종의 주된 소의 경전일 뿐만 아니라 삼부경의 하나로써 나라의 안위와 번영을 위해 이 경을 수지독송하는 공덕이 무량하다고 했다.
    2) 인왕경
    인왕경은 약칭이고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 또는 인왕호국반야바라밀경이라고 한다. 이 경은 부처님께서 16국왕으로 하여금 그 나라를 보호하고 편안히 잘 다스리게 하기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수지하라고 말씀하신 경전이다.
    3) 금광명경
    부처님께서 기사굴산에서 신상보살을 위해 부처님 수명이 한량없음을 말씀하셨고 그리고 견로지신을 위한 찬탄하시는 게송과 4천왕, 대변천신, 공덕천 등을 위해 이경이 위대한 뜻을 가지고 있어서 여러 경의 왕이 될만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1) 미륵상생경
    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이라하며 미륵보살반열반경. 관미륵경. 하생경이라고도 한다.
    미륵보살이 도솔천에 왕생한다는 내용.
    2) 미륵하생경
    이 다음세상에 미륵보살이 성불할 때에 도솔천에서 인간세상에 태아나시어 석가세존과 출가, 성도하시고 설법하시는 일을 기록한 경이란 뜻이며 관미륵보살하생경, 미륵성불경, 미륵당래하생경이라고도 한다. 
    1) 능가경
    능가경의 갖춘이름은 입능가경이며 7권또는 10권에 이르는 방등부의 경전이다.
    이 경은 五法 三性 八識 二無我에 대한 진리를 갈파한 경으로 선종의 초조인 달마대사도 이 경이 선의 종지와 계합하는 것으로 보고 2조 혜가에게 이 경과 함께 법을 전했다고 하며 금강경과 함께 선종의 소의 경전으로 되기도 했다.
    2) 신심명
    신심명은 3조 승찬대사께서 중생이 본래 부처인 뜻을 전한 불조의 대도를 널리 유통시키기 위해 전술했다고 한다. 신심이란 마음이 결정되어 의심치 않음을 말하며 마음 전체가 믿음뿐이어서 믿는 주체와 믿는내용의 대상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뜻한다. 또 명이라 함은 마음에 새기어 두는 좌우명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신심명이라 함은 믿음과 마음이 둘이아닌 신심불이의 절대의 지도를 뜻한다.
    3) 육조단경
    육조단경은 육조대사법보단경의 약칭이니 선종의 제6조 혜능대사의 설법, 어록을 그의 제자 전해 1권으로 편집한 것이 전해온다.
    약하여 법보단경, 단경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에는 10문이 있다.
    4) 증도가
    증도가는 당나라 6조 혜능대사의 5대제자중의 한 사람으로 영가현각대사의 저술이다. 그래서 영가증도가 라고도 하는데 자기가 닦아서 증득한 마음 자리의 경지를 노래로 읊었다는 뜻이다.
    이 책은 많은 선문학서 가운데 그 내용과 더불어 문장력이 절묘한 것으로 인정되어 고래로 많이 수지독송되었다. 
    1) 십문화쟁론
    신라의 원효대사가 저술한 2권으로 된것.
    2) 금강삼매경론
    신라의 원효대사가 저술한 것.
    3) 법성게
    법성게는 진리의 요체를 간단한 게송으로 읊어서 표시했다는 뜻이니 신라의 화엄종 초조 의상대사(625 - 702)가 화엄의 요의를 210자의 글에 뽑아엮은 명문이다. 칠언절구로된 이 글은 우리나라 불교각종 의식에 빠짐없이 수지되어 왔으며 특히 제례의식에는 반야심경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겨진다.
    4) 보조법어
    정혜결사문, 수심결, 진심직설, 법집별행록절요, 화엄론절요, 원돈성불론, 간화결의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의 문집.
    5) 선가구감
    조선조 서산대사(1500 - 1604)의 저술이다. 이조 불교의 교과서가 되다시피하였고 중국, 일본에까지 알려진 명저로 평가되었다.
    계율에 관한 경전
    1) 영락본업경
    요진의 축불렴삼장이 번역했으며 보살영락본업경이라고도 하며 약하며 <본업경>이라고도 한다.
    42현성의 보살이 닦아나가야 할 단계적이고 필수적인 수행, 현재의 성현으로서 과위를 성취하는데는 아득한 과거세로부터 청정한 계율을 닦고 중생을 위해 6도만행을 닦는 원인적인 업행이 있다고 하여 보살영업본업경이라 한 것이다.
    2) 우바색계경
    북량의 담무참삼장이 번역했으며 일명 성생경이라고도 하는데, 전편 7권 28장으로 되어있다.
    대승율에 속하며 삼귀오계에 대해 말씀한 내용으로 세속에 있으면서 불법을 받드는 재가 남자가 지켜야 할 계율적인 교법을 말한다.
    효도에 관한 경,
    1) 목련경
    대목견련경이라고도 하며 불설목련경이라고도 한다. 송나라때 법천삼장의 번역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아마도 우란분경을 원본으로 하여 다른 불제자의 효행을 대목련의 그것에 얹어서 엮은 경으로 보인다.
    2) 우란분경
    이 경은 목련존자의 소청에 의해 하안거 정진이 끝난 7월15일, 자자일에 대중승려에게 공양하여 일곱세상과 금세의 돌아가신 부모를 구제하는 내용이다. 백미의 음식과 과일을 갖추어 시방의 불보살과 대중승들에게 공양하므로 지옥에 떨어진 부모의 망령을 건저 낸다는 이 경의 뜻이 오늘날 행하는 우란분재, 우란분회의 뜻이되었다.
    3) 부모은중경
    부모의 은혜가 무겁고 깊은 뜻과 그 은혜를 갚고 죄를 소멸하는 법을 간곡히 말씀한 효도의 극치를 말씀한 경이라 하겠다.
    신앙적인 경, (불국정토)
    1) 약사여래 본원경
    수나라 달마굽다 삼장이 번역한 경전으로 줄여서 약사경이라고 한다. 약사여래가 동방에 불극정토를 건설하였는데 그 나라이름이 정유리국이라하며 12가지 대원을 성취하여 일체중생을 제도하는데 온갖병을 고쳐주고 마지막에는 생사의 근원이 되는 무명 그 마음의 근본병을 고쳐주어서 모두 다 성불하게 한다는 약사정토신앙의 경전이기도 하다.
    2) 지장경
    지장보살본원경이라고도 한다. 당나라 실차난타삼장 번역으로 2권이 있다. 부처님이 도리천에서 어머니를 위해 설법하신 내용인데 지장보살을 부르시어 지장보살이 백천방편으로 6도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죄를 짓고 온갖 지옥고통받는 중생들을 평등하게 제도하게 제도하여 해탈케하려는 지장보살의 큰 서원을 말씀하신 내용이다.
    3) 팔상록
    팔상록이란 부처님의 8상을 기록했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신앙경전,
    1) 승만경
    승만경은 승만사자후 일승대방 편방광경의 줄인 이름이다. 송나라 구나빌타라삼장이 번역,부처님이 대승의 진리를 승만이라는 부인으로 하여금 설명하도록 한 경이다.
    2) 선생경
    선생동자가 바라문의 법을 따라 매일 아침 세수 목욕하고 6방을 향해 예경하는 것을 보시고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설법하신 것이 이 경의 줄거리다. [조부모를 위해 동방을 보고 다섯가지로 예경하고, 스승을 위해 남방에 다섯가지로 예경하고, 아내와 가족을 위해 서방을 보고 예경하고, 부하를 위해 북방을 보고 예경하며 스님이나 도닦는 이를 위해 사방을 보고 다섯가지로 예경하면 죽어서 천상에 나게 되리라]고.
    3) 나선비구경
    나선비구경은 B.C 2세기경의 나선비구가 북인도로 정복한 희랍의 왕자 미란타를 불교에 귀의시키고 진여연기의 깊은 뜻을 담은 귀중한 경전이다.
    4) 법구경
    법구경의 법은 모든 경전을 의미하고 구는 경전에 있는 진리의 말씀을 의미한다.
    불교의 진리를 간단명료하고 평이하게 엮었고 금구명언으로 되어서 실제의 생활과 비교하여 쉽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 특징이다.
    5) 사십이장경
    인도에서 중국으로 불전이 들어올 때 맨 처음 전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후한의 가섭마등, 축법란 삼장이 함께 번역한 한권으로 된 단일본이다. 수행하여 증득하는 과위와 선악의 업보, 인명의 무상등 불교의 요지를 42장으로 나누어 편집한 출가자를 위한 교훈집이다.
    6) 현우경
    현우인연경이라고도 하며 범부와 성인의 인연비유의 행적을 재미있게 엮은 내용이다.
    7) 옥야경
    옥야는 기원정사를 세운 수달다 장자의 자부이름이다. 그 자부는 친정이 큰 부호로 권세가 높음만 믿고 시부모와 남편을 공경할 줄 몰랐다. 부처님은 장자의 청을 받고 신통과 설법으로 그를 교화하여 마침내 부처님께 귀의해서 계를 받았으며 그 뒤로 부덕을 잘 준수하여 모범적인 현모양처가 되었다는 설화가 실린 경이다.
    8) 대비경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즈음에 대범천왕과 제석천왕과 가섭,아난등에게 바른 신심, 바른 법을 전하도록 부촉하신 경이다.
    9) 숫타니파아타
    길고 짧은 시로 된 경전이며 중간에 산문도 더러 섞여 있습니다. 총 5장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법구경]과 더불어 주옥 같은 말들이 담겨 있습니다.
    10) 자타카
    22권 547편의 본생담으로 된 경입니다. 자타카란 본래 특별한 형식과 내용을 갖춘 불교문학의 한 장르를 일컫는 말입니다. 석존이 탄생하기전의 전생이야기, 부처가 되기 전 보살로서 수행하던 모습 등 과거세에 쌓은 공덕의 인과로 부처가 된 이야기들이 실린 경입니다.
    11) 백유경
    총 98가지의 비유, 우화를 모은 경입니다. 비유나 우스운 이야기를 통해 바르게 살고, 불교의 기본적 교리를 이해하게 한 경입니다.
    12) 유교경
    석존께서 입멸에 즈음하여 제자들에게 마지막 설법을 하는 광경을 적은 경입니다.
    13) 관음경
    본래 독립된 경이었으나 후에 [법화경] 제 25품으로 흡수되었습니다. 관음 신앙의 가장 대표적인 경전으로서 관세음보살이 32신을 나타내어 중생의 재난을 구하고 소원을 이루게 한다는 내용입니다.
    14) 무량의경
    법화삼부경(무량의경, 법화경, 관보현경)중의 하나이며 법화경을 설하기 위한 서설이라고 할수 있는 경입니다. 따라서 내용도 법화경의 요점에 바탕을 두고 구성괴어 있습니다.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 권36 당의 실차난타가 695-699년 동안 한역한 주본 80권의 초조본 ≪화엄경≫. 제 36권. 국보 제277호. 목판권자본. 개인 소장. 고려 현종 때의 경전으로 석가의 깨달음과 장엄하고 방정한 이치가 담긴 대승경전이다.   

    1) 아함부
    아함경이라 함은 소승경의 모든 경을 총칭하는 말이다. 아함이란 팔리어 Agama로 표기하며 뜻은 전해내려온 부처님 말씀을 모아서 완성했다는 의미의 성전입니다.
    내용은 주로 사성제, 팔정도, 12연기 등 불교의 기본사상에 관한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아함경종류는 4종류가 있습니다.
    장아함 - 비교적 긴내용만을 추려서 엮은 경
    중아함 - 중간정도의 길이 경을 모아 엮은 경
    증일아함 - 법수에 따라 설한 경.
    잡아함 - 짧은 내용을 모아 엮은 경
    2) 본연부
    본연은 본생 또는 본기라고도 하는데, 주로 부처님이 아득한 과거세의 영겁다생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자아의 완성을 위한 보살행을 한 일종의 고사, 전생설화 등을 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전이 자타카, 즉 본생경입니다. 이 경이 부분적으로 번역되어 생경, 현우경, 잡보장경, 육도집경, 보살본연경, 보살본행경, 보살본생만론 등에 실려 있습니다.
    3) 반야부
    대승불교 초기의 경전으로 공사사을 설한 경전으로 반야경과 금강경등이다.
    4) 법화, 열반부
    법화경은 대승불교를 대표하는 경이며 "무량의경", "관보현경"과 더불어 법화삼부경이라고 합니다. 법화경 이전에 설한 삼승(三乘 : 성문, 연각, 보살)은 참다운 진리에 이르는 방편이었음을 밝히고(會三歸一),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설한 경입니다.
    열반경은 석존께서 입멸하기 직전 라자가하에서 입멸하신 구시나가라까지 가는 동안의 행적과 설법내용, 그리고 입멸 후의 다비, 사리의 분배, 봉안 등이 자세히 설해진 경으로 나라를 지키는 7가지 법, 교단이 번영하는 7가지 법, 유명한 자등명(自燈明). 자귀의(自歸依)의 설법, 순타의 최후의 공양 발병, 최후의 유훈(遺訓) 등이 실려 있습니다.
    5) 화엄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합니다. 이 경의 내용은 대승보살도 사상을 구체적으로 보이면서 부처의 성도와 과덕, 그 경계를 장엄하게 문학적으로 기술하면서 실천하는 과정에서 52위의 보살계통이 있음을 교리적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을 만나 대승보리심을 일으킨 뒤 52명의 선지식(先智識: 부처님의 지혜와 덕을 갖춘 이)을 찾아 불법을 묻고 보살도를 닦아 마침내 해탈경계를 성취하는 입법계품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6) 보적부
    대보적경을 말한다. 보살이 수행하는 법과 장차 미래세에 부처가 되어 중생을 어떻게 제도하게 되리라는 예언을 받는 수기성불 등에 관한 경전을 말한다.
    7) 대집부
    대집부에 해당하는 모든 경을 다 모았다는 뜻으로 이 경전은 13종의 독립적인 대승경전들을 분 또는 품이라는 단위로 분류하여 하나의 경전처럼 엮었습니다. 주요 내용은 보살이 닦아야 할 불도를 반야경의 공사상에 근거하여 설교한 것입니다. ¨ 대승대집지장십륜경 - 줄여서 ‘지장십륜경’이라고 하는데, 내용은 지장보살의 물음에 대하여 부처님이 10종의 불륜(佛輪)을 설한 것입니다.
    8) 밀교부
    대일경 - 당 선무외삼장이 번역했으며 구체적인 경명은 대비로자나성불신변가지경이라 한다. 전경이 7권으로 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경의 본문은 6권이고 공양하는 순서와 방법에 대한 의식1권으로 나눌수 있다. 대일여래가 부사의한 위신력으로 스스로 증득한 법신 자체의 경지를 말씀하신 경전이다.
    금강정경 - 불공삼장의 역본이 유통되고 이음.
    금강정일체여래진실섭대승대교왕경이 있다.
    9) 율부
    계율에 대한 불전을 모았다는 뜻이다.
    10) 논부
    논은 범어 아비달마의 번역이며, 경과 율의 대의를 편찬한 것으로 교리연구에 있어서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이해의 관문으로 일컬어 진다. 

  • 01. 장아함경
  • 02. 중아함경 1 - 3
  • 05. 잡아함경 1 - 3
  • 08. 별역잡아함경
  • 09. 증일아함경 1 - 2
  • 11. 대루탄경 (외)
  • 12. 불반니원경 (외)
  • 13. 아라한구덕경
  • 14. 비화경(외)
  • 15. 불본행집경 1 - 2
  • 17. 찬집백연경
  • 18. 현우경(외)
  • 19. 출요경(외)
  • 20. 법구경(외)
  • 21. 대반야경 1 - 20
  • 41. 법화경
  • 42. 화엄경(60권본) 1 - 3
  • 45. 화엄경(80권본) 1 - 3
  • 48. 화엄경(40권본)
  • 49. 열반경 1 - 2
  • 51. 대방등대집경 1 - 2
  • 53. 대애경(외)
  • 54. 아차말보살경(외)
  • 55. 대집회정법경(외)
  • 56. 현겁경(외)
  • 57. 유마경(외)
  • 58. 입능가경(외)
  • 59. 정법염처경 1 - 3
  • 62. 사분율 1 - 3
  • 65. 선견율비바사
  • 66. 구사론 1 - 2
  • 68. 중론백론
  • 69. 현양성교론(외)
  • 70. 대승기신론소별기
  • 71. 부휴당집(외)
  • 72. 선문염송 1 - 5
  • 77. 조당집 1 - 2
  • 79. 전등록 1 - 3
  • 82. 무용당집(외)
  • 83. 백곡집, 월저당집
  • 84. 법원주림 1 - 5
  • 89. 경율이상 1 - 2
  • 91. 본생경(쟈아타카) 1 - 5
  • 96. 대보적경 1 - 5
  • 101. 대지도론 1 - 5
  • 106. 종경렵비담팔건도론
  • 176. 아비달마발지론
  • 177. 아비담심론
  • 178. 아비달마순정이론 1 - 4
  • 182. 아비담비바사론 1 - 3
  • 185. 사리불아비담론 1 - 2
  • 187.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파승사
  • 189. 근본설일체유부니타야목득가
  • 190. 근본설바답율섭
  • 191. 마하승지율 1 - 2
  • 193. 성유식론
  • 194. 대방광십륜경
  • 195. 해탈도론
  • 196. 십송률(十誦律)
  • 197. 일자불정륜왕경(一字佛頂輪王經) 외
  • 198. 유가대교왕경(瑜伽大敎王經) 외
  • 199. 수호국계주다라니경(守護國界主?羅尼經) 외
  • 200. 아비달마장현종론(阿毗達磨藏顯宗論)
  • 201. 아비달마장현종론
  • 202. 아비달마구사석론(阿毗達磨俱舍釋論)
  • 203.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
  • 204. 마하반야바라밀경 외
  • 205. 광찬경(光讚經) 외
  • 206. 대승이취육바라밀다경(大乘理趣六波羅蜜多經) 외
  • 207. 대방광보살십지경(大方廣菩薩十地經) 외
  • 208.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외
  • 209. 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 외
  • 210. 반야등론석(般若燈論釋) 외
  • 211.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 212. 신화엄경론
  • 213. 보운경(寶雲經) 외
  • 214. 십지경론(十地經論) 외
  • 215. 삼법도론(三法度論) 외
  • 216. 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大唐大慈恩寺三藏法師傳) 외
  • 217. 속고승전(續高僧傳)
  • 218. 속고승전
  • 219. 속고승전
  • 220.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약사(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藥事) 외
  • 221. 계소재경(戒消災經) 외
  • 222. 석화엄교분기원통초(釋華嚴敎分記圓通?)
  • 223. 석화엄교분기원통초
  • 224. 연담대사임하록(蓮潭大師林下錄) 외
  • 225. 초의집(艸衣集) 외
  • 226. 아비달마구사석론(阿毘達磨俱舍釋論) 외
  • 227. 존바수밀보살소집론(尊婆須蜜菩薩所集論) 외
  • 228. 대위덕다라니경(大威德?羅尼經) 외
  • 229. 대법거다라니경(大法炬?羅尼經) 외
  • 230. 현증삼매대교왕경(現證三昧大敎王經)
  • 231. 방광반야경(放光般若經)
  • 232. 대명도경(大明度經) 외
  • 233.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외
  • 234. 섭대승론석론(攝大乘論釋論) 외
  • 235. 비나야(鼻奈耶) 외
  • 236. 미사색부화혜오분율(彌沙塞部和醯五分律)
  • 237. 미사색부화혜오분율 외
  • 238. 법계도기총수록(法界圖記叢髓錄) 외
  • 239. 십구장원통기(十句章圓通記) 외
  • 240. 여래부사의비밀대승경(如來不思議?密大乘經) 외
  • 241. 아촉불국경(阿?佛國經) 외
  • 242. 법집경(法集經) 외
  • 243. 복개정행소집경(福蓋正行所集經) 외
  • 244. 사익범천소문경(思益梵天所問經) 외
  • 245. 미증유정법경(未曾有正法經) 외
  • 246. 월등삼매경(月燈三昧經) 외
  • 247.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 외
  • 248. 고승전(高僧傳) 외
  • 249. 대승집보살학론(大乘集菩薩學論) 외
  • 250. 입세아비담론(立世阿毘曇論) 외
  • 251. 석마하연론(釋摩訶衍論) 외
  • 252. 대반니원경(大般泥洹經) 외
  • 253.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 254. 대반열반경
  • 255. 불공견삭신변진언경(不空?索神變眞言經)
  • 256. 대공작주왕경(大孔雀呪王經) 외
  • 257. 다라니집경(?羅尼集經) 외
  • 258.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羅尼經) 외
  • 259. 소실지갈라경(蘇悉地厘?經) 외
  • 260. 칠불팔보살소설신주경(七佛八菩薩所說神呪經) 외
  • 261. 문수사리근본의궤경(文殊師利根本儀軌經) 외
  • 262. 금강수보살대교왕경(金剛手菩薩大敎王經) 외
  • 263. 금강불공삼매대교왕경(金剛不空三昧大敎王經) 외
  • 264. 불모대공작명왕경(佛母大孔雀明王經) 외
  • 265. 칠구지불모다라니경(七俱?佛母?羅尼經) 외
  • 266. 십주단결경(十住斷結經) 외
  • 267. 대방광총지보광명경(大方廣總持寶光明經) 외
  • 268. 살바다비니비바사(薩婆多毘尼毘婆沙) 외
  • 269. 좌선삼매경(坐禪三昧經) 외
  • 270. 선법요해(禪法要解) 외
  • 271. 제경요집(諸經要集)
  • 272. 제경요집
  • 273. 대승보요의론(大乘寶要義論) 외
  • 274. 화엄경수현기(華嚴經搜玄記) 외
  • 275. 석가보(釋迦譜) 외
  • 276.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외
  • 277. 집고금불도논형(集古今佛道論衡) 외
  • 278. 홍명집(弘明集)
  • 279. 광홍명집(廣弘明集)
  • 280. 광홍명집
  • 281. 어제비장전(御製?藏詮)
  • 282. 어제비장전
  • 283. 어제연화심윤회문게송(御製蓮花心輪廻文偈頌)
  • 284. 어제소요영(御製逍遙詠) 외
  • 285. 역대삼보기(歷代三寶紀) 외
  • 286.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 외
  • 287. 대당내전록(大唐內傳錄) 외
  • 288.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 289. 개원석교록 외
  • 290. 정원신정석교목록(貞元新定釋敎目錄)
  • 291. 정원신정석교목록 외
  • 292. 중경목록(衆經目錄) 외
  • 293.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
  • 294. 일체경음의
  • 295. 신집장경음의수함록(新集藏經音義隨函錄)
  • 296. 신집장경음의수함록
  • 297. 신집장경음의수함록
  • 298. 신집장경음의수함록
  • 299. 신집장경음의수함록
  • 300. 신집장경음의수함록
  • 301. 신집장경음의수함록
  • 302.신집장경음의수함록
  • 303. 신집장경음의수함록
  • 304. 신집장경음의수함록
  • 305.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
  • 306. 일체경음의
  • 307. 일체경음의
  • 308. 일체경음의
  • 309. 일체경음의
  • 310. 일체경음의
  • 311. 일체경음의
  • 312. 일체경음의
  • 313. 일체경음의
  • 314. 일체경음의
  • 315. 속일체경음의(續一切經音義)
  • 316. 대장일람집(大藏一覽集)
  • 317. 대장일람집
  • 318. 일체경음의(表琳) 색인
  • 우리는 신앙인의 입장에서 경전을 어떻게 읽어야하는가를 나름대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첫째, 경전의 성립 시기와 그 당시의 사회상황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경전 성립의 사회적 배경은 경전 자체의 내용과 더불어 경전 속에서는 드러나 있지 않지만 그 경전을 편찬한 주체자들이 어떠한 입장을 지닌 이들인가에 대해 어느 정도의 윤곽을 제공해 준다.
    둘째, 각 품의 특징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승경전들은 대개 여러 품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러한 각 품의 차이와 특징을 파악하는 것은 그 경전의 전체적인 구도를 조감하는데 확실한 도움을 줄 것이다.
    세째, 경전 속에 등장하는 비유와 상징들에 대해 현대적인 해명을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대승경전들은 부파불교시대를 거쳐 성립되었다. 따라서 직설적인 기술이 얼마나 심하게 왜곡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피부로 느꼈던 이들이 대승경전의 편찬자들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무수한 상징과 비유를 통해 자신들의 뜻이 시대를 초월해서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와 같은 비유와 상징들은 우리 자신의 현실 속에 재해석될 때에만이 그 생명을 되찾는 것이다.
    끝으로 지금까지의 모든 주석가들의 견해에 얽매이지 말 것을 권하고 싶다. 모든 주석가들의 주석은, 결국 그들 시대 속의 해석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시대의 해석임을 명심해야 한다. 선가(禪家)에서 전해오는 불립문자(不立文字)도 본래의 뜻은 주석에 얽매이지 말고 주체적으로 경전을 보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화엄사상(華嚴思想),
    불교에서 『화엄경』을 소의경전으로 하여 정립된 불교교리.
    화엄사상의 철학적 구조는 법계연기(法界緣起)이다. 즉, 우주의 모든 사물은 그 어느 하나라도 홀로 있거나 일어나는 일이 없이 모두가 끝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의 원인이 되며, 대립을 초월하여 하나로 융합하고 있다는 사상으로, 화엄에서 가르치는 무진연기(無盡緣起)의 법칙이다. 사법계(四法界)·십현연기(十玄緣起)·육상원융(六相圓融)·상입상즉(相入相卽) 등은 이 무진연기를 설명하는 화엄사상의 골자이다.
    사법계란 현상과 본체와의 상관관계를 사법계(事法界)·이법계(理法界)·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 등 넷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사물이 제각기 한계를 지니면서 대립하고 있는 차별적인 현상의 세계를 사법계라 하고, 언제나 평등한 본체의 세계를 이법계라 한다.
    그러나 현상과 본체는 결코 떨어져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어서, 항상 평등 속에서 차별을 보이고 차별 속에서 평등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를 이사무애법계라 한다. 다시 나아가 현상, 그것도 각 현상마다 서로서로가 원인이 되어 밀접한 융합을 유지한다는 것이 사사무애법계이다. 
    화엄사상은 일찍부터 우리 나라에 전래되었고, 그 어떤 사상이나 신앙보다 중요시되면서 끊임없이 연구되어 한국불교사상의 한 전통으로 정립되었다. 그러나 고구려와 백제가 화엄사상을 수용하여 연구한 사실은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다. 화엄사상을 이 땅에 크게 일으킨 고승은 원효와 의상이지만, 화엄의 진리가 이들에 의하여 펼쳐지기 이전부터도 화엄사상은 이미 신라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지리산화엄사사적」에 의하면, 544년(진흥왕 5) 인도승려 연기조사(緣起祖師)가 화엄원돈(華嚴圓頓)의 깊은 이치를 해동에 유동시키니 계림(鷄林)의 대승불교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하였다. 또 의천은 화엄사에 들러 연기조사의 진영(眞影)을 보고 “일생을 바쳐 노력하여 화엄의 종풍을 해동에 드날렸네.”라는 찬을 남겼다. 그러나 연기조사가 실재인물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고 그에 대한 기록들도 모두 믿기 어려운 점이 많다.
    역사적으로 뚜렷이 증명되고 있는 화엄학의 전래자는 자장(慈藏)이다. 자장은 흔히 계율을 엄중히 정비하여 신라불교계를 정리한 율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에 의하면 자장은 자신의 개인집을 절로 만들고 그곳에서 『화엄경』을 강의하는 등 포교활동을 전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화엄의 묘의를 통달하였던 인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 이어집니다,,,
    출처 ^참고문헌,
    [불교경전
    [한국학중앙연구원,유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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