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26일 화요일

인도, [ India, Republic of India , 印度 ]

인도, India, Republic of India , 印度 ]

남부아시아 히말라야산맥 남쪽에 있는 공화국.
남부 아시아에 있는 나라로, 1857년 무굴제국이 멸망한 후 영국의 직할식민지로 편입되었다. 1947년 8월 15일 영국의 지배를 벗어나 힌두권인 인도와 이슬람권인 파키스탄이 각각 영국연방의 자치령으로 독립하였고, 1950년 자치령의 지위에서 벗어났다. 
인도는 세계 4대 문명 발상지 중 하나인 인더스 문명을 갖고 있는 나라입니다그만큼 역사가 오래되었죠인더스는 기원전 약 3300년 전부터 있었던 문명이며지금 파키스탄과 북서쪽 인도에 걸쳐있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인더스 문명이 원래 믿었던 종교가 무엇인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며기원전 1500년경에 북쪽에서 아리아인이 브라만교(Brahmanism)와 함께 침입하게 됩니다그리고 이 브라만교가 인도의 토착 신앙과 결합해서 변형된 것이 바로 힌두교입니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바로 이때 형성되었습니다. 브라만교의 지배 계급 카스트인 브라만크샤트리아 등은 피부가 흰 편인 아리아인 핏줄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었고피부가 어두운 편인 인도의 토착 민족과  섞이길 싫어해서 이런 제도를 만든 것,
가운데 들어가는 것은 24개의 축을 가진 파란색 법륜이다.
유형/ 시대/ 성격/ 위치/ 인구/ 면적/ 수도/ 정체·의회/ 형태/ 언어/ 종교/
지명/국가
현대
국가
남부아시아
12억 5169만 5584명(2015년 현재)
328만 7263㎢
뉴델리
의원내각제, 양원제
힌디어, 영어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 시크교, 불교, 자이나교
수도뉴델리: 국가모든 국민의 마음,
위치/ 경위/ 도/ 면적(㎢/ )해안선(km/  )시간대/ 수도/ 종족구성/ 공용어/ 종교/ 건국일/ 국가원수/국무총리/ 국제전화정체통화/ 인터넷도메인/ 홈페이지ISO 3166-1ISO 3166-1/ Alpha-3인구(명)/ 평균수명(세)1인당/ 명목 GDP($)/ 수출규모(억$)/ 수입규모(억$)/ 인구밀도(명/㎢)/ 1인당 구매력/ 평가기준 GDP(PPP)($)/
남부아시아, 아라비아해와 벵골만 연안, 미얀마와 파키스탄 사이
동경 77° 00', 북위 20° 00'
3287263
7000
IST (UTC+5.5)
뉴델리
인도-아리아족(72%), 드라비다족(25%), 몽고족 및 기타(3%)
힌디어, 영어
힌두교(80.5%), 이슬람교(13.4%), 기독교(2.3%), 기타(3.8%)
1947년 08월 15일
프라납 무커지(Pranab Mukherjee) 대통령(2012.7 취임)
+91
연방공화제
루피(Rupee, Rs)
.in
http://india.gov.in
356
IND
1,205,073,612(2012년)
69.25(2008년)
1,591(2012년)
3,072(2011년)
4,753(2011년)
382(2011년)
3,851(2012년)
정식명칭은 인도공화국(Republic of India)이며, 힌디어()로는 바라트(Bharat)라고 한다. 수도는 뉴델리(New Delhi)이다. 면적은 328만 7263㎢ 로 세계 제7위이고, 인구는 1989년에 8억743만 명으로 세계 제2위였으며, 2015년 현재는 12억 5169만 5584명(2015년 현재)이다. 인구의 대부분은 북방의 아리안족(70%)과 남방의 드라비다족(25%)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어는 힌디어(연방공용어)(32%)와 영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종교는 힌두교가 80% 이상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회교(11.4%)·기독교·시크교(2%)·불교 등을 믿고 있다. 기후는 전체적으로 열대몬순기후를 나타내며, 3월에서 5월에 이르는 건조혹서기(乾燥酷暑期), 6월에서 10월 상순에 이르는 습윤고온기(濕潤高溫期), 그리고 10월에서 2월에 이르는 건조한랭기(乾燥寒冷期) 등의 삼계(三季)로 되어 있다.
서쪽으로 파키스탄, 북동쪽으로 중국·네팔·부탄, 동쪽으로 방글라데시·미얀마와 국경을 접한다. 1914년 맥마흔(McMahon) 선언에 따라 영국령인 인도와 중국의 국경이 히말라야 산맥 분수령에 설정된 이후 중국과 국경분쟁이 이어졌고 1962년 전쟁까지 치렀다.
파키스탄과는 독립 당시부터 카슈미르 지역을 둘러싼 영토분쟁을 벌여왔다. 아시아 문명의 원천으로 불교가 발상한 곳이며, 천축()이란 이름으로 예부터 알려진 곳이다. 국명은 산스크리트어()로 된 인더스강()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국토면적은 세계 7위이며, 인구는 세계 2위이다. 행정구역은 29개 주(state)와 7개 연방직할지(union territory)로 되어 있다.
힌두교는 기원전 6세기 경 불교의 탄생으로 세력이 약해진 적도 있었지만, 12세기 경에 침입한 이슬람교의 박해로 인해 발상지임에도 불구하고 인도 본토의 불교는 거의 소멸되다시피 하고 말았습니다이슬람교 역시 나중에 힌두교로부터 박해를 받아 한 나라였던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되었으며지금까지도 서로 으르렁대고 있는 상황입니다.
브라만교에는 ‘베다’라는 경전이 있습니다. 신을 찬미하는 내용의 <리그베다(Rigveda)>, 찬가를 영창하는 방법이 있는 <사마베다>, 제사 때 쓰는 말이 있는 <야주르 베다>, 주술과 의술 등이 기록된 <아바타르베다> 등의 4가지가 가장 중요한 베다들이죠. 베다는 글로 써진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서 암송하는 것이었으며, 그렇기에 이를 뒷받침하는 브라마(브라흐마)나, 아라냐카, 우파니샤드 등의 부속서들이 존재했습니다.  
19세기에 기록된 리그베다. 1028개의 시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그리고 서사시인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가 있는데, 이것은 전사 계층인 크샤트리아가 주인공인 읽을 거리로 서민들을 위한 오락과 종교의 목적을 모두 담은 서적이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경전과 시가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전이나 시마다 찬양하는 신들이 각각 달랐습니다. 어떤 책에서는 인드라를, 어떤 책은 불의 신 아그니를, 힌두교와 결합하면서부터는 힌두교의 신들까지 주인공의 대열에 합류해서 경전마다 제각각 최고의 신을 다르게 꼽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힌두교 내부에서는 지금도 어떤 신을 최고로 꼽느냐에 따라서 파가 갈린다고 합니다.
 
아바타,
힌두교에서는 그리스 신화처럼 인간과 신의 교류가 잦습니다. 그런데 신의 모습으로 바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간이나 동물 등의 모습을 빌어 이 세상에 나타납니다. 이것이 바로 아바타라(Avatara)입니다.

컴퓨터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분신을 ‘아바타(Avatar)’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여기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이 용어는 1979년, 메인프레임 컴퓨터에 사용하는 PLATO(컴퓨터 보조 교육 프로그램의 일종)용으로 개발된 <아바타>라는 게임에 처음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게임은 멀티플레이 롤플레잉 게임으로, 플레이어 혼자서는 굉장히 어려웠기 때문에 꼭 그룹으로 행동하면서 다른 플레이어에게 마법을 걸거나 힐도 할 수 있는, 오늘날의 MMORPG의 모습을 꼭 닮은 조상격인 게임이었습니다.

이후 리처드 개리엇이 1985년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 <울티마 IV: 퀘스트 포 아바타>에서 플레이어의 분신을 아바타라고 부르면서 더 널리 퍼지게 되었지요.
플라토 시스템에서 돌아가는 아바타 게임. 현재의 MMORPG의 잊힌 고대 조상.
인도 신화의 세계 창조,
다른 신화의 세계 창조설은 여러 가지 설들이 있어도 보통 전체적인 구조는 비슷한 것과 달리, 인도 신화의 창조는 누가 창조했는지조차 각각 다른 구조입니다.

창조신으로 언급되는 것은 브라마나 비슈누, 또는 원시 인간인 프루샤가 있습니다. 여기서 프루샤는 북유럽 신화의 이미르(Ymir)나 중국 창조설화의 반고 같은 세계 각지의 거인 창조 신화처럼 온몸이 갈가리 찢어지면서 그곳에서 세상 만물들을 창조한 존재입니다.

세계는 브라마가 잠에서 깨어나면서 생성되며, 그가 다시 잠이 들 때 일시적으로 종말을 맞이합니다. 브라마의 하루는 43억 2천만 년이기 때문에 세계는 43억 년마다 종말을 맞이하고, 또 재창조됩니다.

브라마의 수명은 100년으로 이걸 인간 시간으로 환산하면 311조 4천억 년이 되는데, 브라마가 죽으면 대홍수가 일어나 모든 것이 사라져 태초의 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인도의 창조신 브라마,
주요도시
인도의 인더스 문명 성립,
뉴델리, 구름많음, 27.0℃|45.0℃
시간뉴델리02:16:55 AM환율1 INR=16.31원언어힌디어(40%)외 14개 공용어영어(상용어)면적3억 2,872만 5,900㏊ 세계7위 (2016 국토교통부, FAO 기준)인구13억 8천만 4,385명 세계2위 (2020 통계청, UN, 대만통계청 기준)GDP2조 7,263억 2,261만 6,821.3달러 세계7위 (2018 한국은행, The World Bank, 대만통계청 기준)기후위도로 볼 때 기후가 아열대에서 온대에 위치하지만, ...종교힌두교 80.5%, 이슬람교 13.4%, 기독교, 시...역사
인도의 역사는 인더스강을 중심으로 하는 인더스 문명,
인도의 역사는 인더스강을 중심으로 하는 인더스 문명과 함께 시작하였다. 인더스 문명의 주인공은 드라비다족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단정할 수는 없다. 인더스 문명은 기원전 3,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 사이에 발전하였던 문명으로, 이집트 문명이나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조금 늦게 발달하였다. 인더스 문명은 단순히 인더스 강 주변 지역이 아니라 가하하크라 강 유역까지 포함하는 폭과 길이가 모두 1,000km가 넘는 매우 광범위한 범위에 걸쳐서 발달하였다.
갠지스강에서의 목욕 힌두교도들은 갠지스강을 성스러운 강으로 여겨 이곳에서 목욕을 하면 면죄를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유적지들은 지점마다 멀리 산재해 있는데 하라파와 모헨조다로(Mohenzodaro)간의 거리만 600km 정도 떨어져 있다. 또한 모헨조다로의 동쪽 40km의 코트디지 유적과 델리의 서쪽 270km의 칼리방간 유적이 발굴되어, 인더스문명 직전의 문화가 밝혀졌다. 칼리방간과 암리의 유적은 하라파(Harappa)보다 앞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트디지 유적에서는 인더스 문명에 속하는 4층의 밑에 12층에 이르는 코트디지문화의 층이 있으며, 견고한 요새를 가진 작은 도시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발굴된 어느 유적에서도 철기시대의 유적이 발견되지 않아 인더스 문명은 청동기 문명으로 보고 있다.

인더스 문명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모헨조다로나 하라파의 유적은 BC 2,500년경의 것으로 정교한 도시계획을 가진 도시문명의 흔적을 보여준다. 양자는 모두 동일한 도시 계획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첫째 시가지에서 약간 높은 곳에 성채가 있으며 이곳에는 주로 제단과 공공시설이 있고 낮은 쪽에 일반시민들의 주거지역이 집중되어 있는 구조를 보이고, 둘째 도로는 바둑판 모양으로 질서정연하게 조성되어 있고, 셋째는 매우 정교한 배수시설을 가지고 있으며, 넷째 집들은 견고한 구운 벽돌을 재료로 사용하고 있었다.
스리나가르 인도 잠무카슈미르주의 나긴호수에 떠 있는 수상가옥과 승객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
또한 이들 도시에는 지배자를 위한 시설이나 신관들이 사용하는 소욕장과 일반시민들이 사용하는 대욕장이 나눠져 있는 목욕시설이 발달해 있고 곡물창고, 상, 하수도 시설 등의 공공시설를 가지고 있다. 주택 외에 상점·식당도 있었으나, 하라파나 모헨조다로에는 신전이나 왕궁으로 볼 수 있는 대건축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하라파의 대규모 식량창고와 모헨조다로의 대형 목욕탕은 당시의 도시의 규모가 상당하였고,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하였음을 보여준다.

인더스 문명의 유물인 채도, 금은 세공품, 구리, 청동제식기 등의 분포로 미루어 이란과 메소포타미아 지역까지 교역을 하고 있었으며 멀리 나일강 유역과도 활발한 문물교류가 이루어졌다고 추정된다. 인장처럼 생긴 유물은 동일한 모양의 유물이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도 많이 발견되고 이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인장에 등장하는 악어, 코뿔소, 물소 등의 동물로 미루어 보아 오늘날보다는 습하고 숲이 우거진 환경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미 마스지드 이슬람사원 이슬람 사원 중에서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인더스 문명의 주인공들이 목화를 옷감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아 최초의 목화 재배자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 신앙생활을 위한 성채가 마련되어 있고, 여러 동물이 그려져 있어 자연물 숭배의 흔적도 보인다. 그런데 시바신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삼면신(여신상)이 발견되었으며, 수많은 동물에 둘러싸여 요가의 자세를 취하는 수행자의 모습이 인장이나 돌 위에 새겨놓은 그림에 나타나는 바, 오늘날의 인더스인의 신앙인 힌두교와 깊은 관계가 있다.

그런데 높은 수준을 보여주었던 인더스 문명은 그 갑작스런 멸망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몰락의 원인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게 추측된다. 천재지변인 홍수로 인해 강이 범람하면서 붕괴하였을 것이라는 설, 고생물학적 연구에 따라 과도한 경작과 삼림파괴로 인한 환경의 변화로 붕괴하였다는 설, 이후에 이 지역에 들어온 아리아족과 같은 외적의 침입을 받아 멸망했다는 설 등이 있다.
칼리 사원 본당,
인물,
마하트마 간디철학자인도의 정신적 지도자,
샤 자한정치인무굴제국 제 5대 황제,
여행정보,
  • 맥그로드 간즈 - 히말라야에 들어선 티베트인의 망명정부인도 북부 맥그로드 간즈는 히말라야의 작은 티베트로 불리는 곳이다. 중국을 떠난 티베트 난민들의 망명 정부와 삶터가 들어선 애틋한 땅이다.글서영진발행일2012.01.02
  • 인도 국립현대미술관 - 세계의 미술관 기행아직 다 완성되지 않아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인도 국립현대미술관. 단순히 전시만 하는 곳이 아니라 출판과 영상 제작 작업을 통해 꾸준히 양적 팽창을 지속하고 있다. 글국립현대미술관발행일2010.02.25
  • 델리 - 종교의 도시인도는 신의 나라로 유명하다. 수많은 힌두의 신들은 인도 곳곳에 빼곡하게 들어앉아 있다. 이미 힌두의 신만으로도 가득 찬 나라, 또 다른 종교가 들어갈 틈이 있을까?글박사발행일2010.11.04
물가,
국내총생산2조 7,263억 2,261만 6,821.3달러 세계7위 (2018 한국은행, The World Bank, 대만통계청 기준)국민총소득2조 6,986억 1,782만 3,250.7달러 세계7위 (2018 한국은행, The World Bank, 대만통계청 기준)경제성장률6.98% 세계8위 (2018 한국은행, The World Bank, 대만통계청 기준)1인당국내총생산2,015.59달러 세계118위 (2018 한국은행, The World Bank, 대만통계청 기준)
타지마할과 정원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무굴제국 황제 샤 자한이 세운 인도의 대표적 이슬람 건축.
GDP단위(달러)
2조 7,263억 2천만 인도
20조 4,940억 미국
1조 7,208억 9천만 한국
GNI단위(달러)
2조 6,986억 1천만 인도
20조 7,383억 미국
1조 7,254억 한국
경제성장률단위(%)
6.98 인도
8.66 기니
2.7 한국
이슈,
다친 아빠 자전거 태우고…15살 인도 소녀의 1200㎞ 귀향

뉴델리서 다르반가로 열흘 동안 달려
“너무 더웠지만 다른 선택 할수 없었다”
인도 사이클연맹도 “테스트 하자” 관심
인도 현지 신문에 소개된 쿠마리와 아버지의 귀향 기사. 인도사이클연맹 페이스북 갈무리,
인도의 15살 소녀가 코로나19 여파로 일거리가 끊기자, 다친 아버지를 자전거에 태우고 1200㎞를 달려 고향으로 돌아갔다. 소녀는 “살아남기 위해 다른 선택이 없었다”고 말했다.24일(현지시각) <타임스오브인디아>와 <가디언> 등 보도를 보면, 인도 뉴델리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던 15살 소녀 조티 쿠마리는 지난 3월 1200㎞ 떨어진 고향 다르방가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코로나19 봉쇄 속에 전동 릭샤(삼륜차)를 몰던 아버지의 일거리가 없어지면서, 먹고 살길이 막막해졌기 때문이다.설상가상으로 다리를 다친 아버지는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결국 쿠마리는 자전거를 한 대 사서, 아버지를 뒤에 태우고 열흘 동안 달려 고향 마을에 돌아갔다. 하루 120㎞씩 달린 셈이다. 쿠마리는 평소 학교에 가기 위해 날마다 5㎞씩 자전거를 탔다고 한다.
지난 23일(현지시각) 15살 인도 소녀 조티 쿠마리(오른쪽)와 그의 아버지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부녀는 여정 도중 낯선 사람들이 주는 음식과 물을 먹었다. 한 차례 자전거를 트럭에 태우는 도움을 받기도 했다. 쿠마리는 “힘든 여정이었다”며 “날씨가 너무 더웠지만,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내 맘 속에는 단 한 가지 목적, 집에 가자는 생각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쿠마리의 사이클 실력에 인도사이클연맹도 관심을 보여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쿠마리는 코로나 봉쇄령이 종료되는 대로, 사이클 연맹의 시험을 볼 계획이다.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 트럼프는 트위터에 “인내와 사랑의 아름다운 위업”이라고 썼다.
칸다리아사원의 조각 인간의 성적 아름다움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인도의 동물,
인도의 동물은 약 7만 6000여 종이 기록되어 있으며, 별로 알려지지 않은 무척추동물과 많이 알려진 척추동물로 나뉜다. 어류는 1,650종에 이르고 뱀 종류도 400종이나 되며, 이 중에서 코브라 등의 11종은 독사이다. 조류는 풍부하여 세계의 14%에 달하고, 공작은 옛날부터 애육()되었으며, 지금은 국조()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포유동물()로는 긴팔원숭이·곰·여우·표범·코끼리·사자·호랑이 등 46종이 있다. 그러나 삼림의 파괴와 수백 년에 이르는 자유수렵의 결과 치타 등 몇 종은 멸종되었으며, 현재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서 47개의 보호구역과 23㎢에서 1,550㎢에 이르는 국립공원이 설치되었고, 사자는 인도의 국민수()로 지정되어 있다.
인도는 세계에서 역사가 가장 일찍이 발달한 나라 중 하나로, 서기전 2500년 무렵에 이미 인더스(Indus)강 유역에 청동기 도시문명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기원전 7세기 무렵에는 불교와 자이나교가 흥기하는 등 인도의 특색 있는 문화와 사회형태가 만들어졌다. 그 뒤 마우리아(Maurya)제국이 인도의 통일제국을 이룩하였다.
마우리아제국은 찬드라굽타(Chandragupta)에 의해서 기원전 317년에 건설되었는데, 3대 1세기에 걸쳐 강대한 상비군과 관료제도를 주축으로 아프가니스탄 남부에서 마이소르(지금의 카르나타카) 북부에 이르는 영토를 지배하였다. 그러나 이 제국이 쇠퇴한 뒤 약 5세기 동안 통일 지배는 무너지고 분열된 상태가 되었다.
이어 4세기 전반에 출현한 굽타(Gupta)제국이 북인도 일대를 지배하고 마우리아제국 이후의 지배체제와 사회구조를 재편하게 되었다. 8∼12세기에 걸쳐 무슬림(Muslim) 세력이 서북부지방을 침입하게 되었고, 이들에 의한 무슬림왕조가 계속 이어져 내려왔다.
인도의 정치적 통일과정은 1526년 무굴(Mughal)제국 성립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무굴제국의 건설은 제3대 악바르(Akbar, 재위 1542∼1605)에 의해서 행해졌다. 그는 주위의 세력들을 무찌르고 무굴 세력을 확립하는 동시에 황제의 지위와 권력을 구축하였다. 무굴제국은 그 뒤 약 150년 동안 번영을 누렸으나, 18세기가 되면서 모든 지방의 세력들이 독립해서 분립하거나 혼란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아그라 성,
이와 같은 분립된 상황 속에서 영국의 식민지 침략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포르투갈·네덜란드·프랑스·영국의 상인들이 연이어 인도에 건너와서 각지에 상관(商館)을 설치하고 면직물·향료 등의 무역에 종사하였다. 이들은 무역의 패권을 둘러싸고 서로 각축을 벌였는데, 영국이 다른 나라를 제압하고 마침내 프랑스를 격파하여 패권을 장악하였다.
1765년 영국은 벵골(Bengal)의 영유권을 획득해서 인도 식민지 지배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600년에 설립된 동인도회사가 벵골을 영유하게 되자 인도를 통치할 기관으로 인도 총독을 두었다.
그 무렵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인도의 모든 왕국들을 상대로 한 전쟁을 통하여 영토를 빼앗거나 복속시켜서 북서부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 지배권을 확립하였다. 인도는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급격히 늘어난 상품 시장, 원료 공급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1857년 영국군의 인도용병(印度傭兵) 반란이 있었으며, 이는 농민에서 구 지배계급에 이르는 광범한 계층이 참가한 대반란이어서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영국은 1858년 동인도회사에 의한 통치를 마치고 직접 통치하기 시작하였다. 인도인들은 인도인들대로 힌두교의 종교와 사회를 반성, 개혁하려는 운동이 일어났다.
마침내 1885년 인도 국민의회파(Indian National Congress)가 창설되었다. 국민의회파는 인도 경제가 빈곤한 것은 부(富)가 영국으로 유출되기 때문이라고 하고, 또 인도인들의 정치를 향상시키기 위해 힌두교도의 종교와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인도의 독립을 요구하는 정치운동도 전개되었다. 그리하여 국민의회파는 스와라지(Swaraj:자치·독립)·스와데시(Swadeshi:국산품 사용)·민족교육의 강령을 내걸고 반항하였다. 독립을 위한 투쟁방법을 둘러싼 급진파와 온건파의 대립도 있었으며,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와의 대립도 깊어져 1906년에는 무슬림연맹(Muslim league)이 발족하였다.
새로운 민족운동이 전개된 것은 제1차세계대전 후 간디(Gandhi,M.)의 지도하에 비폭력적인 저항운동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상이 퍼져 나갔으며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도 활발해졌다. 대공황 후의 제2차 비폭력적인 저항운동에 의해서 독립을 요구하는 열기가 높아졌으며, 마침내 인도 민중의 힘이 결집되었다.
제2차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회의파는 전쟁비협력을 선언하고 영국의 철수를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는 동안 1906년에 창설된 무슬림연맹은 파키스탄지역의 분리를 결의하였고, 전후에는 각지에서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간의 싸움이 일어나 결국 1947년 8월 15일 인디아공화국과 파키스탄공화국으로 분리해서 각각 독립하였다.
오늘날의 정부형태는 의회민주주의체제하의 연방국가로서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연방은 22개 주와 9개의 연방 직할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행정부는 22개의 성(省)으로 구성되고, 대통령은 5년 임기로 상·하 양원 및 주의회 의원으로 구성되는 선거인단에 의해서 선출되며, 상징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실권을 가진 수상은 하원의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의 지도자로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인도는 비동맹운동 창설을 주도한 이래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다. 아울러 인도, 아시아대륙에서의 안정 유지 및 대미·소관계에서 균형주의를 취하고 있다.
인도의 경제는 풍부한 인적·물적 자원을 바탕으로 한 자급자족적인 경제구조, 국민경제의 농업 의존성, 격심한 빈부 격차 등을 특징으로 한다. 독립 이래로 사회주의적인 혼합경제체제를 유지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인종·종교·언어의 다원성과 이질적 문화의 공존, 카스트제도 등으로 인하여 경제발전은 침체되어 있다.
1987년 국민총생산은 2413억500만 달러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300달러이었다. 2015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2조 900억 달러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1617 달러이다. 무역은 1988년의 경우 대인도 수출은 153억1240만 달러(홍차·의류·공업제품)이고, 수입은 243억1000만 달러(석유·철강·기계류)이던 것이 2015년에는 2015 년의 경우 대인도 수출은 2876억 달러(홍차·의류·공업제품)이고, 수입은 4323억 달러(석유·철강·기계류)이다.
인도는 풍토조건이 상이한 광대한 지역, 지방에 따라 다양한 인종과 180여 종의 복잡한 언어, 종교간의 갈등, 격심한 빈부 격차와 68%의 높은 문맹률, 생활 저변에까지 깔려 있는 사회적인 신분제도(카스트제도) 등의 많은 이질성·다양성, 그리고 갈등요소를 가진 복합사회이다.
한국과의 관계,
인도는 외교적으로 한국이나 북한 어느 한쪽을 지지하거나 깊이 관여하지 않으려는 입장을 취해 왔다. 그러나 한국의 국력 신장, 국제적인 지위 상승을 높이 평가해서 한국과의 관계 증진이 실질적으로 유리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1962년 4월 총영사관을 설치했으며, 1973년 12월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한국과는 무역협정·문화협정(1974.8.), 과학기술협력협정(1976.3.), 이중과세방지협정(1985.7.), 항공협정(1992.3.), 관광협정(1993.9.), 투자보장협정(1996.5.) 등을 체결하였다.
인도와 한국의 교역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인도는 철강·시멘트 등 중간재를 주로 수입하고 있는데, 이는 인도 내의 중간재 생산 침체와 공업화 추진에 따른 수요 증가에 의한 것이다. 최근에는 인도의 석유개발 장비·전자부품·제강시설·선박 등 고도기술산업 분야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어서 한국의 주요 수출시장이 되고 있다.
한국은 인도에서 주로 철광석·원면·원피·피혁제품 등을 수입하고 있다. 인도는 한국과의 무역적자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철광석·원면·농산물·기계류의 더 많은 수입을 바라고 있다. 1988년 인도의 대한 수출은 1억5400만 달러이고, 수입은 5억1200만 달러로 큰 적자를 나타냈으나, 2015년의 대한 수출은 128억 달러이고, 수입은 53억 달러로 1988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출이 증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74년 8월 문화협정이 체결된 이래 두 나라 사이에는 문화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1978년·1981년·1983년 세 차례에 걸쳐 한국·인도공동위원회를 개최하였다. 1976년 이래 인도 네루대학 한국어과에 담당 교수를 파견해 왔으며, 예술단 교류도 활발해서 한국 민속무용단이 1980년과 1982년 두 차례 인도를 방문했으며, 인도측에서도 1975년·1981년·1983년에 예술단을 파견하였다.
한국은 1971∼1982년 인도 트리에날국제미술전 4회, 1977년 제6회 인도국제영화제, 1982년 제5회 세계도서전에 참가했으며, 인도는 1976년 제22회 서울아세아영화제에 참석하였다. 또, 한국은 1975년 이래 매년 인도에서 개최되는 DCM축구대회에 참가하고 있으며, 1981년에는 여자 농구단이 인도를 방문, 친선경기를 갖기도 하였다.
인도측은 1977∼1982년 대통령컵국제축구대회, 1982년 아시아아마추어복싱선수권대회, 남자초청 국제농구대회 및 국제배구대회 등에 참가하였다. 이 외에도 각종 국제대회를 통한 두 나라 사이의 교류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인도는 원칙적으로 외국 이민이나 거주를 목적으로 하는 장기 체류 외국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제도적인 사정으로 인하여 우리 교민은 겨우 3세대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6·25전쟁 이후 제3국을 선택한 반공포로 출신으로 인도에 정착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최근 두 나라 사이의 경제협력관계가 증진됨에 따라 상사 주재원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인데, 1988년에는 교민이 17명, 체류자가 270명이었으나 1997년에는 교민은 42명이고, 체류자는 1,072명으로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였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73명의 선수단이 참가하였다.
인도와 북한과의 관계는 인도 대외정책의 기조인 모든 국가와의 우호관계 유지 및 남북 등거리외교정책 추구라는 차원에서 유지되고 있다. 1962년 3월 1일 영사관계가 수립된 이후, 1962년 7월 21일 주뉴델리 총영사관 개설, 1968년 10월 주평양 인도 총영사관 개설을 거쳐 1973년 12월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두 나라 사이에는 해운협정(1974.11.)·항공운반협정(1976.6.)·무역협정(1978.2.)·문화협정(1979.2.) 등이 체결되었다. 그리고 문화교류협정(1974.8.)에 의거 1978년부터 1989년까지 5차에 걸쳐 한·인문화공동위원회가 개최되었다.
북한은 1980년 1월 간디 수상이 재집권한 이후 간디 수상의 친소정책에 편승하여 관계를 긴밀하게 하려고 노력했으나, 주재국에서의 이미지 하락으로 정상적인 외교관계의 위축은 물론, 경제·통상면에서도 발전 징후가 보이지 않고 있다.
문화사적 관계
우리나라와 인도와의 관계는 선사시대(신석기·청동기)의 바위 조각에서 어떤 관련성이 인정될 수도 있지만, 본격적으로 문화관계를 맺은 것은 불교문화가 전래되면서부터이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해진 공식적인 《삼국유사》의 연대는 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이지만, 이를 전후해서 삼국 모두 불교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 당시의 인도 문화는 굽타 문화 초기단계 내지 그 이전 단계인 쿠샨왕조의 문화로 여겨지고 있다. 고구려에는 처음에 순도(順道)가 들어오고 그 다음에 아도(阿道)가 들어왔다. 이들은 간단한 문맥으로 보아 인도 내지 서역 승려일 가능성이 짙다. 순도의 경우 중국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전도하다가 고구려로 온 것으로 표현하고 있고, 아도는 일반적으로 인도 승려로 추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에는 인도의 쿠샨 문화가 직접적으로 전해졌거나 또는 중국을 거쳐 간접적으로 전해졌거나 간에, 어떤 형태로든 4세기에는 전해졌다고 볼 수 있다.
백제에는 384년(침류왕 2)에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불교를 전파했는데, 마라난타는 인도 승려 아니면 서역 승려가 분명하다. 그가 인도 승려였다면 인도 문화를 직접적으로 백제에 전했을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 뒤 겸익(謙益)이라는 백제 승려가 바다를 통해 인도에 다녀오면서 불경을 가져와 72권을 역경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른바 우리나라 승려가 인도를 직접 순례하고 인도 문화를 전래해 왔던 것으로,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승려가 인도에 간 최초의 예라고 하겠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인도 승려 배달다삼장(倍達多三藏)을 모시고 왔으므로 인도 문화를 직접 전했다고 할 수 있다.
신라는 백제나 고구려와는 달리 훨씬 뒷날인 527년(법흥왕 14)에 불교를 공식적으로 공인하였다. 그러나 이보다 약 1세기 앞서 5세기 초에 불교가 신라에 처음 전래되었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데, 아도 또는 묵호자(墨胡子) 등으로 불리던 인도 승려 또는 서역 승려를 전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인의 특징인 묵호자로 이해했다는 것은 분명히 인도인 승려가 신라에 전도했음을 알려 주는 것이다.
이처럼 불교 전래 초기에는 인도 승려들이 압도적으로 우리나라에 전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인도의 불교 문화, 특히 쿠샨왕조 말 내지 굽타 문화가 직접적으로 전해진 사실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이후 인도의 불교 문화는 계속 전래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가령, 요동성에 아육왕(阿育王) 탑이 있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것은 인도의 아소카(Asoka)왕이 직접 만든 탑으로 이해했고, 그 모양도 인도탑 형식인 복발형이었다는 내용으로 보아 인도 양식의 불탑을 직접 받아들였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한 가야에도 인도의 불교 문화가 직접적으로 전래되었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인 허왕후(許王后)가 인연의 나라로 탑을 싣고 오다가 가야에 도착해서 불교를 믿게 했다는 것이다. 인도의 공주가 가야까지 와서 왕후가 되면서 파사석탑 같은 인도의 불교 문화를 전파한 사실을 극적으로 묘사한 《삼국유사》의 이 전설은 인도 문화의 직접적인 전파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사람은 오지 않고 아소카왕이 보낸 불교 문화를 수용한 사실을 알려 주는 예는 신라에도 있다. 인도의 아소카왕이 보낸 불상 모형과 동 및 황금으로 황룡사의 금동장륙상(金銅丈六像)을 조성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은 인도 문화의 전파 사실을 분명히 시사하는 예라고 하겠다.
초기의 불교 문화는 삼국시대에 주로 전파되었는데, 그 뒤 굽타의 난숙(爛熟)한 인도 문화는 600년을 전후해서 어느 정도 수용되었지만, 통일신라 초기 이른바 7세기 후반에 대거 받아들여진다. 난숙한 사실주의의 조각이나 불화양식이 전파되어 새로운 문화를 꽃피웠던 것이다. 인도나 서역 승려들이 오기도 했고, 우리의 신라 승려들이 유학하기도 했으며, 또 중국을 통해서 인도 굽타의 불교 문화가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이러한 문화 전파는 650년을 전후해서 인도에 순례 온 신라 승려를 무려 8명이나 보았다는 의정(義淨)의 기록인 《대당서역구법고승전 大唐西域求法高僧傳》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특히 다년간 인도에 유학을 다녀온 뒤 《왕오천축국전 往五天竺國傳》이라는 세계 3대 기행문을 저술한 혜초(慧超)의 예는 인도와 우리나라의 문화 교섭을 가장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극히 단편적인 몇 가지 예만 보아도 우리나라와 인도의 문화사적 관계가 매우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인 4세기부터 고려시대인 14세기까지 불교 문화가 주류를 이루었으므로 인도의 불교 문화는 우리 나라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인도에 있는 한국 문화의 유적·유물
인도와 우리나라의 문화사적 관계는 인도 문화가 우리나라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인도에 한국 문화의 흔적인 유적·유물이 있을 가능성은 극히 드문 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승려들이 상당 기간 머물면서 불사에 참여했거나 살펴보고 예배한 유적·유물은 상당수 있다. 이 가운데 확실한 것은 혜초가 본 유적·유물이라고 하겠다.
알다시피 혜초는 704년(성덕왕 3)에 신라에서 태어났으며, 719년에 중국 광주로 유학갔다가 밀교의 조사, 금강지(金剛智)와 불공(不空)을 사사했는데, 금강지의 권유로 723년에 바닷길을 통해 인도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그는 5년 동안 인도 천하를 순례하다가 727년 11월에 서역의 쿠처에 도착했고, 그 뒤 장안에 머물면서 금강지를 도와서 역경사업에 종사하게 된다.
금강지가 열반한 뒤 불공의 제2제자가 되어 대흥선사(大興善寺)에서 경전을 연구했으며, 780년부터 오대산에 들어가 787년 입적할 때까지 수도에 정진하였다고 한다.
그가 인도에 도착한 것은 동부 인도였다. 곧 석가가 입멸한 쿠시나국을 보았는데, 여기서 열반탑이나 열반지 기념사원 등을 참배하게 되었다. 이후 남쪽의 바라나시국을 방문했는데, 여기에서는 최초의 설법지인 녹야원에 들러 사원과 탑을 둘러보게 된다.
녹야원에는 유명한 사원이 있고 다메크탑 등 거대한 탑이 있었으며, 아소카왕 석주 등 난숙한 불교 문화의 정수들이 있었다. 혜초는 이러한 불교 문화의 진수에 진심으로 환희했고 경건하게 참배했다고 한다.
이 녹야원을 지나 부처가 가장 많이 머물렀고, 최초로 절을 세워 대중 포교에 나섰던 왕사성(王舍城)으로 갔다. 여기에는 인도 문화의 정수가 모여 있었으므로, 죽림정사(竹林精舍)·망고원·법화경 설법처 등 수많은 사찰과 사찰터를 둘러보았다.
그 다음 중천축국으로 가서 4대 영탑(四大靈塔)에 참배했는데, 4대 영탑은 당시 인도에서는 가장 유명한 불탑으로 이름나 있었으므로 불교 문화의 진면목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곳을 지나 부처의 탄생지인 룸비니동산에 가서 그곳 유적을 보면서 깊은 감회에 젖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발길을 남쪽으로 돌려 남천축국으로 갔으며, 현재의 아잔타·엘로라 등 유명한 석굴에 들러 수많은 석굴을 참관하고 수도에도 정진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서북쪽으로 나아가 탁실라국에 도착했는데, 여기에서 혜초는 탁실라의 도시 유적과 죠우리안 등 수많은 사원과 불탑의 위용에 감탄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이곳의 유적과 유물은 상당히 잘 보존되고 있는데, 8세기 당시에는 더욱 정연하게 남아 있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간다라 문화의 정수이기 때문에 혜초는 의미심장하게 느꼈을 것이다.
또한, 현재의 카슈미르지방인 가시미라국에 들어가 수많은 사원과 도성들을 둘러보고 인도 문화에 심취한다. 여기에서 북쪽으로 비단길의 험로를 간신히 넘어 대발률국·소발률국의 여러 사원과 도성을 방문하였다.
이 나라는 고구려 유장(遺將) 고선지(高仙芝)가 정복하여 불교 문화를 직접 접했던 곳이기도 하였다. 탑상이 새겨진 수많은 바위 조각과 범본(梵本) 《법화경》이 발견된 사원을 자세히 참배했던 것으로 믿어진다.
카슈미르를 지나 간다라 문화의 중심지 간다라국에 들어가 동서문화가 잘 조화된 간다라 문화의 여러 유적지를 방문하였다. 카니슈카(Kaniska)왕이 건립한 카니슈카사원 등에 참배하면서 간다라 불교 문화를 마음껏 보고 느꼈을 것이다.
이처럼 혜초는 8세기 당시 불교 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유적과 유물 그리고 수많은 사원과 도시들을 살펴보았고, 이들을 경건하게 참배했으므로 이들은 우리나라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 유적과 유물이 될 것이다. 이 외에도 많은 순례승들이 이들을 참배했으므로 우리 선인들의 손길이 그대로 남아 있는 셈이다.
① 랄 킬라(Red Fort) ② 자미 마스지드 ③ 타지마할 ④ 간디 슴리티 ⑤ 아그라 성 ⑥ 카주라호 사원군 ⑦ 불교의 성지 ⑧ 다르질링 ⑨ 엘로라 석굴 사원 / 아잔타 석굴 사원,
인도에서의 한국학 연구현황,
인도의 네루대학에는 한국어과가 있어서 한국의 언어와 한국학 등이 광범하게 논의되고 있는데, 동국대학교의 서경수(徐景洙) 교수(작고)가 기초를 다졌고, 같은 학교 정병조(鄭柄朝) 교수가 이어서 발전시켰다.
이 밖에 네루대학에는 국제정치학과에서 우리나라의 현대 정치외교 등을 연구하고 있다. 이와 아울러 한국 유학생들이 수십 명 유학하고 있으며, 교민들도 많아져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동국대학교에 인도철학과가 있고, 외국어대학교에 인도어과가 있어서 인도학 연구에 직접적으로 관계하는 학자 및 학생들이 상당수 되며, 불교학·불교미술·불교음악 등을 연구하는 간접적인 연구도 매우 활발한 편이다.
랄 킬라(Red Fort)
고대에 우리가 몰랐던 문명이 존재했으며, 현재를 뛰어넘는 대단한 과학 기술을 갖고 있었다는 설정, 그리고 그 기술을 발굴해서 사용한다는 상상은 판타지 물에서는 흔히 보는 설정이죠? 과학이 발전하지 않았던 시기에는 이것은 단지 창작물을 만들기 위한 상상이 아니라 근거 있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

플라톤이 남긴 기록 속의 아틀란티스나 무 대륙의 존재가 바로 그런 고대 문명 중의 하나죠. 그런데 아틀란티스나 무 대륙은 그래봤자 인도의 고대 문명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인도의 옛 서사시 <라마야나>나 <마하바라타>에는 중력을 무시하고 날아다니는 하늘 궁전과 마치 UFO와 같은 나는 탈 것그리고 핵 무기를 연상케 하는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무기가 등장하거든요.
마하바라타를 묘사한 그림,
이번 게임 판타지 백과에서는 이런 환상적인 내용을 담은 인도 신화와 그것과 연관된 게임에 대해,
참조항목
역참조항목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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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 五思想よりみた彌勒の著作: 特に瑜伽論の著者について, 宗敎硏究 208. 橫山紘一(Yokoyama, Koitsu)
#인도 #인더스문명 #사회와 문화 #인더스 문명 #마하트마 간디 #뉴델리 #루피 #바라트 #천축 #힌디어 #브릭스 #공작 #사자 #고빈다난다 #고살라 #나가족 #나갈랜드주 #다르마팔라 #다민족국가 #다비 #서기전 2500년 무렵에 이미 인더스(Indus)강 유역에 청동기 도시문명이 형성 #기원전 7세기 무렵에는 불교와 자이나교가 흥기 #인도의 특색 #문화와 사회형태 #마우리아(Maurya)제국이 인도의 통일제국을 이룩 #마우리아제국은 찬드라굽타(Chandragupta)에 의해서 기원전 317년에 건설 #3대 1세기에 걸쳐 강대한 상비군과 관료제도를 주축으로 아프가니스탄 남부에서 마이소르(지금의 카르나타카) #북부에 이르는 영토를 지배 #이 제국이 쇠퇴 #약 5세기 동안 통일 지배는 무너지고 분열된 상태가 되었다 #4세기 전반에 출현한 굽타(Gupta)제국이 북인도 일대를 지배하고 마우리아제국 이후 #지배체제와 사회구조를 재편 #8∼12세기에 걸쳐 무슬림(Muslim) 세력이 서북부지방을 침입 #무슬림왕조 #금강지가 열반 #불공의 제2제자가 되어 대흥선사(大興善寺)에서 경전을 연구 #780년부터 오대산에 들어가 787년 입적할 때까지 수도에 정진하였다고 한다 #인도에 도착한 것은 동부 인도였다 #석가가 입멸한 쿠시나국 #열반탑이나 열반지 기념사원 등을 참배 #남쪽의 바라나시국을 방문 #최초의 설법지인 녹야원에 들러 사원과 탑 #녹야원에는 유명한 사원 #다메크탑 등 거대한 탑 #아소카왕 석주 등 난숙한 불교 문화의 정수 #혜초는 이러한 불교 문화의 진수에 진심으로 환희했고 경건하게 참배 #녹야원을 지나 부처가 가장 많이 머물렀고 #최초로 절을 세워 대중 포교에 나섰던 왕사성(王舍城) #인도 문화의 정수 #죽림정사(竹林精舍)·망고원·법화경 설법처 #수많은 사찰과 사찰터 #중천축국 #4대 영탑(四大靈塔)에 참배 #4대 영탑은 당시 인도에서는 가장 유명한 불탑으로 이름  #불교 문화의 진면목 #부처의 탄생지인 룸비니동산 #그곳 유적을 보면서 깊은 감회에 젖었다고 한다 #발길을 남쪽으로 돌려 남천축국 #아잔타·엘로라 #유명한 석굴에 들러 수많은 석굴을 참관하고 수도에도 정진 #서북쪽으로 나아가 탁실라국에 도착 #혜초는 탁실라의 도시 유적과 죠우리안 #수많은 사원과 불탑의 위용에 감탄한 것 #유적과 유물은 상당히 잘 보존 #8세기 당시에는 더욱 정연하게 남아 있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간다라 문화의 정수이기 때문에 혜초는 의미심장하게 느꼈을 것이다 #카슈미르지방인 가시미라국에 들어가 수많은 사원과 도성들 #인도 문화에 심취 #북쪽으로 비단길의 험로를 간신히 넘어 대발률국 #소발률국의 여러 사원과 도성을 방문 #이 나라는 고구려 유장(遺將) 고선지(高仙芝)가 정복하여 불교 문화를 직접 접했던 곳이기도 하였다 #탑상이 새겨진 수많은 바위 조각과 범본(梵本) 《법화경》이 발견된 사원을 자세히 참배했던 것으로 믿어진다 #카슈미르 #간다라 문화의 중심지 간다라국 #동서문화가 잘 조화된 간다라 문화의 여러 유적지를 방문하였다 #카니슈카(Kaniska)왕이 건립한 카니슈카사원 등에 참배 #간다라 불교 문화 #과 유물 #많은 순례승들이 이들을 참배했으므로 우리 선인들의 손길이 그대로 남아 있는 셈이다 #인도에서의 한국학 연구 #인도의 네루대학 #한국어과 #고구려 유장(遺將) #고선지(高仙芝)가 정복하여 불교 문화를 직접 접했던 곳 #탑상이 새겨진 수많은 바위 조각과 범본(梵本) 《법화경》이 발견된 사원 #카슈미르 #간다라 문화의 중심지 간다라국 #동서문화가 잘 조화된 간다라 문화의 여러 유적지를 방문 #카니슈카(Kaniska)왕이 건립한 카니슈카사원 등에 참배 #간다라 불교 문화 #중천축국 #4대 영탑(四大靈塔)에 참배 #4대 영탑은 당시 인도에서는 가장 유명한 불탑으로 이름 #불교 문화의 진면목 #부처의 탄생지인 룸비니동산에 가서 그곳 유적을 보면서 깊은 감회에 젖었다고 한다 #발길을 남쪽으로 돌려 남천축국 #현재의 아잔타·엘로라 등 유명한 석굴에 들러 수많은 석굴을 참관하고 수도에도 정진 #서북쪽으로 나아가 탁실라국에 도착 #혜초는 탁실라의 도시 유적과 죠우리안 #수많은 사원과 불탑의 위용에 감탄 #유적과 유물은 상당히 잘 보존 #8세기 당시 #간다라 문화의 정수이기 때문에 혜초는 의미심장 #카슈미르지방 #가시미라국에 들어가 수많은 사원과 도성 #인도 문화에 심취 #비단길의 험로를 간신히 넘어 대발률국·소발률국 #여러 사원과 도성을 방문 #석가가 입멸한 쿠시나국

임금,퇴직금, 체불.

임금,퇴직금, 체불.

체불임금의 정의

체불임금(滯拂賃金)란 말그대로 '지급이 연체,지체된 임금'을 말합니다.
재직중 임금(월급여, 상여금, 기타 수당 등)의 경우,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임금지급일에서 1일이라도 임금지급이 지체되면 "임금체불이 되었다"고 봅니다. (근로기준법 제43조 2항 : "임금은 매월 1회 이상 일정한 기일을 정하여 지급하여야 한다.")
사망·퇴직시의 임금의 경우,
해고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의 사망·퇴직시에는 14일 이내 '임금,보상금 기타 일체의 금품'을 청산해야 합니다.(근로기준법 제36조)

14일의 여유를 주는 까닭은 지급일이 미리 정해진 월급여나 상여금 등과 달리, 근로자의 사망이나 퇴직이라는 것이 이를 미리 예측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사업주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근로자의 사망·퇴직에 따른 각종의 금품(퇴직금 등 각종의 임금)을 마련해야할 시간적 준비와 여유를 부여하자는 배려차원입니다.

이러한 임금체불을 자행한 사업주(근로기준법 제36조 위반 또는 제43조 위반)에 대해서는 3년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집니다. (근로기준법 제109조)
임금이란?
임금이란, "사용자가 근로의 대상으로 근로자에게 임금, 봉급 기타 어떠한 명칭으로든지 지급하는 일체의 금품"을 말합니다. (근로기준법 제2조)

즉 (1)사용자가 지급하는 것 (2)근로제공에 대한 댓가성이라면 그 명칭을 불문하고 임금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다만, 사용자의 임의적, 호의적 배례에 의한 금품과 실비변상 의미의 금품은 비록 사용자가 지급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근로제공에 대한 댓가성이 부인되기 때문에 임금으로 보지 않는 것이 상당합니다.
체불임금 해결방법,
진정이란?
진정(陳情)이란, 근로자가 사업주의 근로기준법 위반사항을 근로감독관에게 알리고 관련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하는 행위입니다.

근로기준법 제102호에 따라 근로감독관은 노동관계법령 위반의 죄에 관한 '사법경찰관'의 자격으로 근로자의 진정사건에 대해 근로자와 사용자를 조사하고, 사업주의 위법사항에 대해서는 시정조치를 내리며, 시정조치를 이행치 않을시 사용자를 검찰에 형사고발을 할 수 있습니다.

접수 및 관할* 진정사건의 접수,
원칙상 문서, 구두, 전화, 우편 등의 방법으로 접수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문서(진정서)를 제출해야만 합니다. 진정서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근로자가 미리 작성하여 제출할 수도 있고, 관할 지방노동관서에 간단한 진정서 양식이 비치되어 있어 직접 작성할 수도 있습니다.

* 진정사건의 접수처,
사업장(회사)을 관할하는 지방노동관서(지방고용노동청 또는 고용노동지청)

* 진정사건의 지정,
대개의 경우 근로감독관은 동(洞)별로 지정되어 있어 사업장 주소지 관할 근로감독관이 사건을 조사하게 됩니다.

조 사: 진정사건이 지방노동관서에 접수되면 대개 10일~14일후 근로자와 사업주를 상대로 사실조사를 진행합니다.

* 조사는 우선 신고인(근로자)의 요구사항을 세밀하게 조사합니다. (다만, 사건이 경미한 경우에는 근로자에 대한 조사를 생략할 수 있습니다.) 근로자 조사이후 사용자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경우에 따라 근로자와 사용자를 함께 조사할 수도 있습니다. 아울러 조사를 위해 필요한 경우 참고인의 출석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조사결과의 처리: 근로감독관은 당사자 조사도중 서로 화해를 권하거나 사용자에게 시정명령을 내려 이를 이행토록 할 수 있습니다. 당사자간에 서로 화해하거나 시정명령이 이행되는 경우 근로감독관은 진정사건을 내사를 종료하고 시정명령이 이행되지 아니하면 사용자를 검찰로 입건송치합니다.

근로감독관은 당사자 조사도중 서로 화해를 권하거나 사용자에게 시정명령을 내려 이를 이행토록 할 수 있습니다. 당사자간에 서로 화해하거나 시정명령이 이행되는 경우 근로감독관은 진정사건을 내사를 종료하고 시정명령이 이행되지 아니하면 사용자를 검찰로 입건송치합니다.

* 근로기준법 제36조(각종금품 미청산)위반사항 처리기준,
「개인별 금품이 1,000만원 이상이거나 그 미만의 금품이라도 민원처리 기간내에 청산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즉시 입건송치. 다만, 개인별 금품이 1,000만원 이상인 경우라도 민원처리기간내에 전액 청산되고 근로자가 사용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을 때에는 검사의 지휘를 받아 불입건 할수 있음」(노동부 『근로감독관 직무규정』중에서)

* 근로기준법 제43조(임금의 체불,부정기불,비통화불,간접불 등)위반사항 처리기준,
「임금정기 지급일로부터 30일 이내 청산하지 아니하거나 2월분 이상의 임금이 누적체불된 경우 즉시 범죄인지 보고후 수사에 착수. 다만, 사업주가 체불임금 조기청산을 위하여 소유재산 처분 등 적극적 청산노력을 다하여 전액 청산되고, 근로자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내사 종결할 수 있음」

「1년 이내에 3회 이상 집단체불하거나 체불로 인하여 노사분규가 발생하 경우에는 범죄인지 보고후 수사에 착수」,

「기타는 25일 이내에 시정하도록 서면지시하되~!
i) 기한내에 시정완료하면 내사종결하고
ii) 기한내에 시정하지 아니하면
범죄인지 보고후 수사에 착수」(노동부 『근로감독관 직무규정』중에서)

라. 처리기한* 1차적으로 사건 접수일로부터 25일 이내에 처리함 (단, 고소 고발사건은 2개월이내에 수사를 완료하여 검찰에 송치함)
* 부득이한 사유로 25일 이내에 사건을 처리하기 곤란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1회 연장할 수 있음

마. 재진정* 이미 처리된 사건이라도 근로자가 이의를 제기하여 재진정서를 제출하면 관할 지방노동관서에서는 담당근로감독관을 변경하여 재차 조사, 처리합니다.

바. 처리이후* 사용자가 노동부의 임금청산 이행지시를 지키지 않고 검찰로 입건된 사건에 대해 당해 근로자가 민사소송을 위해 <체불임금확인원> 및 <무공탁가압류 협조공문>을 요청하면 담당근로감독관은 이를 발급합니다.
"「체불임금확인원」의 청구,
전반적인 경제상황의 경색과 그에 따른 기업의 임금지불능력의 저하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사업주가 고용노동부의 체불임금 청산을 촉구하는 시정지시(행정지시)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행치 않는 경우 자주 발생합니다.

시정지시를 사용자가 이행하지 이 경우 고용노동부로서는 사용자를 체불임금죄로 검찰에 형사입건 조치하는 것외에 별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에 체불임금사건의 해결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최근의 추세입니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임금체불 진정사건이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사용자가 시정지시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근로자의 민사소송의 편의를 돕기위해 <체불임금확인원>과 <무공탁가압류 협조공문>(사용자의 재산을 가압류하는 경우 공탁금이 필요한데 사회적 약자인 근로자의 편의를 위해 고용노동부가 법원장에게 해당근로자가 공탁금없이 가압류할수 있도록 협조를 구하는 공문서)를 발급합니다. 이 문서들은 근로자의 민사소송과 가압류, 배당신청 등에 유용히 활용되는 문서로서 이들 문서를 통해 법률구제활동을 진행하면 편리합니다.

체불임금확인원은 근로자가 요구하여야만 발급되므로 담당 근로감독관에게 반드시 체불임금확인원을 발급해주도록 요구하여야 합니다.

체불임금확인원은 사용자의 임금체불사실이 최종적으로 확인되는 때(범죄인지,검찰송치)부터 발급해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용자의 체불임금사실이 고용노동부에 의해 최종적으로 확인되기 전이라도 급박한 상황(압류된 사용자의 재산이 경매처분된 경우)에 놓여 있는 경우라면 근로자는 사용자로부터 임의적으로 체불임금사실 및 그 내역서 등을 발부받아 근로감독관에게 제출하면 사용자를 조사하지 아니하고 협조를 구하면 발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체불임금 확인원은 다음과 같은 경우 등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 민사소송전 사용자의 재산에 가압류신청을 할 때, 가압류신청 금액을 입증하는 자료
- 법원에 민사소송(소액재판,지급명령신청)을 신청할 때, 임금채권의 내역 및 액수를 입증하는 자료
- 근로자들이 미쳐 모르는 사이 사용자의 재산권이 경매처분되어 급박하게 그 배당금을 청구해야할 때, 배당요구액을 소명하는 자료 등
"법원에 소송하기,
가. 소액재판* 소액재판제도의 개요
최고장 발송을 통한 당사자간의 해결, 고용노동부에 체불임금등에 관한 진정활동 등을 통해서도 체불임금사건이 해결되지 않는 경우에는 근로자는 별도리없이 민사소송을 통해 해결해야 합니다.

"청구금액의 제한,
소액재판이란 원고(근로자)가 청구하는 금액이 2000만원 이하인 사건(소액사건)을 법원이 소액사건심판법에 따라 재판하는 것을 말합니다.

"소의 제기방법,
소액재판을 제기하려면 소장을 작성하여 피고의 주소지(개인회사인 경우 사업주의 거주지, 법인회사인 경우 사업장 소재지)를 관할하는 법원에 제출함으로써 재판절차가 개시됩니다. 소장의 기재사항은 간단하기 때문에 첨부된<소액재판 소장작성 예제>를 참조하여 근로자 스스로 작성할수도 있으며, 법무사,변호사 등이 작성할 수 있습니다.

*재판의 절차 및 특징

"즉각적인 변론기일의 지정,
소의 제기가 있으면 담당판사는 지체없이 변론기일을 지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1회 심리의 원칙,
절차의 신속을 위하여 되도록 1회의 변론기일로 심리를 종결합니다.(다만, 판사의 필요에 따라 1회 연장할 수 있다.)

"즉시 판결의 선고,
판결의 선고는 변론종결후 즉시 할 수 있습니다.

"공휴일,야간의 개정,
판사는 필요한 경우 근무시간외 또는 공휴일에도 개정할 수 있습니다.

"소송의 대리,
소액재판에서는 변호사의 선임없이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원고)이 스스로 자신을 변호하거나 소송을 밟아 나갈 수 있으며 당사자의 배우자,직계혈족,형제자매 또는 세대주 등도 법원의 허가없이 대리인이 될 수 있습니다.

"소송비용,
송달료는 22,600원 기준이며 인지액은 소가(청구금액)에 0.005를 곱한 금액입니다. 즉 500만원의 체불임금사건은 송달료 22,600원 + 인지액 25,000원 (5,000,000 * 0.005) = 47,600원이 소송비용으로 소요된다.

"판결까지의 소요기간,
일반 민사사건이 1심판결까지 최소 7개월 이상 소요됨에 비해 소액사건심판은 이상의 특수성으로 인해 약 30일 소요됩니다. (단, 판사가 원고와 피고의 주장이 서로달라 서로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제출 등에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1회 연장 할 수 있다.) 퇴직금 뿐만 아니라, 시간외근로수당,야간근로수당 등 근로자가 받아야 할 임금으로서 받지 못한 금액이 2천만원이하일 경우 소액재판을 이용하면 자신의 권리를 빠른 시간내에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지급명령 신청* 이란?

"지급명령이란 임금 기타 금전 등의 지급에 대해 사용자와 근로자간의 다툼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근로자로 하여금 통상의 판결절차보다 신속, 저렴하게 채무명의를 얻게 하는 절차로서, 이 절차에 의해 법원은 근로자의 신청서만 검토하고 사용자에게 지급명령을 발하게 됩니다.

"법원이 발한 지급명령에 대하여 상대방인 사용자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근로자로서는 신속하게 '채무명의'를 얻을 수 있지만, 채무자가 지급명령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면 지급명령절차는 통상의 소송절차로 이행하게 되며 그 이후는 일반 민사소송절차와 완전히 동일합니다.

"채무명의(債務名義)란?
당사자간 다툼이 되는 청구권의 존재 및 그 범위를 표시하고 강제집행력을 법률상 인정하는 공적인 문서로서 이에는 확정판결문, 지급명령서, 화해조서, 조정조서 등이 있다.

*지급명령제도의 개요 및 특징,

서류심리만으로 지급명령을 발령합니다.

지급명령절차는 법원이 분쟁당사자를 심문함이 없이 지급명령을 신청한 채권자가 제출한 서류만을 심사하고 지급명령을 발령하므로 채권자는 통상의 소송절차처럼 법원의 법정에 출석할 필요가 없고, 그 결과 법정에 출석하는 데에 따른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습 니다.

신속하게 분쟁해결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급명령절차는 사용자가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에 근로자의 지급명령 신청만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약식의 분쟁해결절차입니다. 따라서 사용자가 이의신청을 하면 통상의 소송절차로 이행되지만, 만일 이의신청을 하지 아니하여 지급명령이 확정되면 근로자는 확정된 지급명령에 기하여 강제집행을 신청하여 신속하게 자신의 채권을 만족받을 수 있으므로 신속한 분쟁해결이 가능합니다.

"근로자가 법원에 납부하는 각종 비용이 저렴합니다.
일반소송비용의 소송의 1/2에 해당하는 수수료와 당사자 1인당 4,520 원의 송달료만 납부하면 되므로, 소송절차에 비하여 소요되는 각종 비용이 저렴합니다.

"다만 확정판결·조정보다는 그 효력이 미약합니다.
지급명령이 확정되면 확정판결과 동일하게 집행력이 있기 때문에 사용자가 임금을 지급하지 아니하면 확정된 지급명령을 채무명의로 하여 강제집행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확정된 지급명령은 확정판결·조정과는 달리 사용자가 청구이의의 소송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다소 효력이 미약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때에 지급 명령절차를 이용하는 것이 좋은지?
지급명령절차는 신속하고 적은 소송비용으로 민사분쟁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는데 그 장점이 있지만, 사용자가 근로자의 지급명령신청에 대해 이의신청을 하면 결국은 통상의 소송절차로 옮겨지는 잠정적 분쟁해결절차입니다.

예컨대 노동부의 체불임금확인원을 발급받았다거나 사용자가 직접작성해준 지불각서 등에 대해 이를 전적으로 인정하지만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면 지급명령절차를 이용하는게 좋겠지만, 사용자가 고용노동부 처리결과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거나 지불각서를 자신이 작성해주지 않았다고 우겨버리는 경우에는 지급명렬절차를 이용하기보다는 직접 조정신청 또는 소송을 곧바로 제기하는 편이 더 바람직합니다.
퇴직금?
퇴직금이라 함은 계속적인 근로관계가 끝남에 따라 퇴직하는 근로자에 대하여 사용자가 지급하는 급부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퇴직금제도의 법적성격은 근로자에게 재직중 적립하여 두었던 임금을 사후적으로 지급하는 근로조건으로서 후불임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퇴직금의 지급요건,
근기법상의 근로자일 것,
퇴직금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에게 지급됩니다. 따라서 임시직, 잡급직, 촉탁직, 일용직 등을 불문하고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라면 퇴직금 청구권이 있는 근로자에 해당됩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경우에는 법정퇴직금제도의 적용되상이 아닙니다 따라서 회사의 대표이사, 이사 등 주식회사의 임원은 상법 제382조에 의해 민법상 위임에 관한 규정을 적용받는 자로서 근기법상의 퇴직금 제도를 적용받을 수 없습니다.
계속 근로연수 1년 이상일 것,
계속근로연수란 ‘근로계약을 체결하여 해지될 때까지의 기간이며 군복무기간, 해외유학기간은 특별히 정함이 없는한 계속근로연수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계속근로연수의 기산일은 입사일, 근로계약체결일 등 출근의무가 있는 날이며 계속근로기간의 마감일은 근로관계의 자동소멸, 임의퇴직, 합의퇴직, 정년퇴직, 해고 등 근로계약이 끝나는날입니다.
퇴직하는 근로자일 것,
퇴직금은 퇴직하는 근로자에게만 발생하므로 근로관계가 자동적으로 소멸되는 근로자의 사망일, 폐업일, 기업의 파산일 등이 산정마감일이 됩니다.

또한 근로자가 사표를 제출하여 임의로 퇴직할 때에는 원칙적으로 사표수리일이 퇴직일이 되며,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 따로이 정함이 있으면 그에 다르게 됩니다.
퇴직금 중간정산,
사용자는 일방적으로 근로자의 퇴직금에 대하여 중간정산할 수 없지만, 근로자의 요구에 따라 퇴직하기 전의 계속근로기간에 대한 퇴직금을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제8조 규정에 따라 미리 정산할 수 있습니다.

즉 퇴직금을 적법하게 중간정산되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요구와 사용자의 승낙이라는 요건이 필요합니다.
퇴직금 차등 제도의 금지,
퇴직금제도를 설정함에 있어서 하나의 사업내에 차등제도를 두어서는 아니됩니다. 직위, 직종은 물론 공장, 지점 등 작업부서나 장소에 있어서의 차등도 금지된다고 할 것입니다.
① 퇴직금제도를 누진제에서 단수제로 변경한후 그 시행일 이전의 기간에 대해서는 기득권을 인정하는 경우,
② 근로기준법 적용대상이 아닌자(회사 임원 등)의 퇴직금제도와 근로자의 퇴직금 제도의 차별,
③ 단체협약 적용대상에 따른 차별,
④ 기업합병과정에서의 차별,
⑤ 명예퇴직자의 퇴직가산금 지급 등은 퇴직금 차등이 되지 아니하는 제도입니다.
퇴직금 계산방법 지급기준,
퇴직금 계산방법 지급기준 알아보도록 할게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때, 얼마나 직장생활을 해야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지, 혹은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도 그만둘 때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지금부터 퇴직금이란 무엇이고, 지급기준과 기한은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퇴직금 계산 방법을 모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퇴직금 계산방법 지급기준
퇴직금제도란?
퇴직금제도란 직장생활을 하던 직원들이 회사를 다니다가 퇴직을 할 때, 
경제적인 어려움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주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퇴직금은 근로자가 상당한 기간을 근속하고 퇴직할 경우에 일시금으로 퇴직하는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일체의 금품을 뜻합니다. 
​퇴직연금,
고용주는 퇴직하는 근로자에게 급여를 지급하기 위해 퇴직급여제도 중 하나 이상의 제도를 설정해야 합니다. 
퇴직급여제도는 일반적인 퇴직금제도와 퇴직연금제도로 볼 수 있으며 세부적으로는 확정급여형 퇴직연금제도,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제도, 개인형 퇴직연금제도로 나뉩니다.
​퇴직연금제도란?
근로자의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근로자 재직 기간 중 사용자가 근로자의 퇴직급여를 금융기관에 적립하고 이 적립금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운용하다가 55세 이후에 연금 또는 일시금으로 수령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확정급여형 퇴직연금
확정급여형 퇴직연금이란 근로자가 퇴직할 때 받을 퇴직급여가 사전에 확정된 퇴직연금제도로 고용주는 퇴직연금 부담금을 적립하며 자기의 책임으로 운용하는 제도입니다. 퇴직 시에는 일시금 또는 연금으로 수령할 수 있습니다.
확정기여형 퇴직연금,
고용주가 납입할 부담금이 매년 근로자 연간 임금총액의 1/12로 사전에 확정되어 있는 퇴직연금제도로 근로자는 직접 자신의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하여, 적립금과 운용수입을 퇴직급여로 지급받을 수 있습니다. 퇴직 시에는 일시금 또는 연금으로 수령할 수 있습니다.
개인형 퇴직연금,
근로자가 직장을 옮기거나 퇴직하면서 지급받은 퇴직급여를 한 계좌로 모아 노후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퇴직연금 통산장치제도입니다.
퇴직급여 지급기준?
근로자
퇴직급여를 받기 위한 조건은 첫째로 근로기준법 상의 근로자입니다.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상시 4명 이하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서도 2010년 12월 1일부터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이 적용되어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 부칙(법률 제10967호, 2011.07.25.) 제8조]에 따라 퇴직급여를 지급해야 합니다. 단, 동거하는 친족만으로 구성된 사업장 및 가사사용인에 대해서는 근로자로 보지 않습니다.
계속 근로기간
퇴직급여를 받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은 계속근로기간입니다. 계속근로기간이란 근로계약을 체결하여 해지될 때까지의 기간을 의미하며, 기간의 정함이 있는 근로계약의 경우에는 계약기간의 만료로 고용관계가 종료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따라서 앞선 요건에 따라 계속근로기간이 1년 이상인 근로자, 4주간을 평균하여 1주간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이상인 근로자는 퇴직급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근로계약이 만료됨과 동시에 근로계약기간을 갱신하거나 동일한 조건의 근로계약을 반복하여 체결한 경우에는 갱신 또는 반복한 계약기간을 모두 합산하여 계속근로기간을 산정해야 합니다.
또한 갱신 또는 반복 체결된 근로계약 사이에 일부 공백 기간이 있다 하더라도 그 기간이 전체 근로계약기간에 비해 길지 않고 방학 기간 등의 사정으로 그 기간 중 근로를 제공하지 않거나 임금을 지급하지 않을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도 근로계약기간을 유지된다고 봅니다. (개인적인 사유 등의 내용은 기준을 정의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관과의 상담을 통해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퇴직금 지급기한?
고용주는 퇴직하는 근로자에게 계속근로기간 1년에 대하여 30일분 이상의 평균임금을 퇴직금으로 지급해야 합니다. 고용주는 근로자가 퇴직한 경우에 그 지급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14일 이내에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지만 만약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라 지급기일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퇴직금 청구권의 소멸시효기간은 3년으로 퇴직금을 받을 권리는 3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로 인해 소멸합니다. (퇴직금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합니다.) 
​퇴직연금 지급기준
확정급여형 퇴직연금제도 또는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제도의 급여는 연금 또는 일시금으로 수령할 수 있으며 수급 요건은 연금은 55세 이상으로 가입기간이 10년 이상인 가입자에게 지급(지급기간은 5년 이상)하며, 연금 수급 요건을 갖추지 못하거나 일시금 수급을 원하는 가입자에게는 일시금으로 지급합니다.
퇴직금 중간정산
퇴직금 중간정산이란 근로자가 특정 사유로 퇴직하기 전에 계속근로기간에 대한 퇴직금을 미리 정산하여 지급받을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퇴직금 중간정산은 근로자가 중간정산 사유에 해당되는 경우 고용주에게 신청할 수 있지만, 고용주가 중간정산 신청을 승낙하지 않아 지급하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사전에 지급 여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퇴직금 중간정산의 사유는 천재지변 등이나 이에 준하는 자연현상으로 발생하는 재해에서 피해를 입었을 때, 무주택자인 근로자가 본인 명의로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주거를 목적으로 전세금 또는 보증금을 부담하는 경우, 근로자 본인, 배우자 혹은 부양가족이 6개월 이상 요양을 필요로 하는 질병이나 부상에 대한 요양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 등입니다. 더 자세한 사유는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 시행령 제3조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퇴직금 계산방법
퇴직금의 산정 공식은 [(1일 평균임금 x 30일) x 총 계속근로기간] 365입니다. 평균임금이란 퇴직금을 산정해야 할 사유가 발생한 날 이전 3개월 동안 해당 근로자에게 지급된 임금의 총액을 그 기간의 총 일수로 나눈 금액을 말합니다. 만약 평균임금이 근로자의 통상임금보다 적으면 그 통상임금을 평균임금으로 합니다.
*평균임금 산정에 제외되는 기간
수습 사용 중인 기간, 고용주의 귀책사유로 휴업한 기간, 출산 전후 휴가 기간, 업무상 부상 또는 질병으로 요양하기 위해 휴업한 기간, 육아휴직 기간, 파업 등의 쟁의행위기간, 병역의무 이행 기간, 고용주의 승인을 받아 휴업한 기간. 만약 휴업한 기간이 3개월을 초과하여 평균임금 산정기준 기간이 없게 되는 경우에는 휴직한 첫날을 평균임금 산정 사유 발생일로 보아 이전 3개월간을 대상으로 평균임금을 산정해야 합니다. 고용노동부 퇴직금 계산기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퇴직금 계산방법 지급기준과 기한. 퇴직금은 직원에게는 권리이자 사업주에게는 의무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에도 요건에 맞는다면 퇴직금을 요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 퇴직금의 조건과 계산방법 등을 통하여 요건을 확인하시고 누려야 할 권리를 꼭 챙겨 보시길 바랍니다. 다음 에 더욱더 유용한 정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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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계약서, 산업재해,

근로계약서, 산업재해,

근로계약서 작성,
  • 본문,
근로계약의 체결, 개념,
 “근로계약”이란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이에 대하여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체결된 계약을 말합니다(「근로기준법」 제2조제1항제4호).
근로조건의 기준 및 결정,
「근로기준법」에서 정하는 근로조건은 최저기준이므로 건설일용근로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사용자는 이 기준을 이유로 근로조건을 낮출 수 없으며,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해야 합니다(「근로기준법」 제3조 및 제4조).
근로계약의 일부 무효,
 「근로기준법」에서 정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근로조건을 정한 근로계약은 그 부분에 한하여 무효로 하며, 무효로 된 부분은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기준에 따릅니다(「근로기준법」 제15조).
근로계약 체결 시 금지사항,
▪ 위약 예정의 금지: 사용자는 근로계약 불이행에 대한 위약금 또는 손해배상액을 예정하는 계약을 체결하지 못합니다(「근로기준법」 제20조).
▪ 전차금 상계의 금지: 사용자는 전차금(前借金)이나 그 밖에 근로할 것을 조건으로 하는 전대(前貸)채권과 임금을 상계하지 못합니다(「근로기준법」 제21조).
▪ 강제 저금의 금지: 사용자는 근로계약에 덧붙여 강제 저축 또는 저축금의 관리를 규정하는 계약을 체결하지 못합니다(「근로기준법」 제22조제1항).
근로계약서 작성, 서면 작성,
 사용자는 건설일용근로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에 다음과 같이 근로계약기간, 근로시간 및 휴게, 임금, 취업의 장소와 종사하여야할 업무에 관한 사항 등의 근로조건이 명시된 서면을 건설일용근로자에게 교부해야 합니다(「근로기준법」 제17조「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17조 및 고용노동부, “건설일용근로자 표준근로계약서”).
※ 이를 위반하면 50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태료가 부과됩니다(「근로기준법」 제114조제1호 및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4조제2항제2호).
근로표준 계약서 양식,
건설일용근로자의 국민연금 가입
일용근로자나 1개월 미만의 기간을 정해 사용되는 근로자는 「국민연금법」상 근로자에서 제외됩니다. 다만, 1개월 이상 계속 사용되면서 「건설산업기본법」 제2조제4호에 따른 건설공사의 사업장 등에서 1개월 동안 8일 이상 근무하는 사람은 「국민연금법」상 근로자에 포함되어 국민연금 사업장가입자가 될 수 있습니다(「국민연금법」 제3조제1항제1호, 제8조제1항 및 「국민연금법 시행령」 제2조제1호).
근로조건의 위반,  손해배상 청구 및 근로계약 해제,
명시된 근로조건이 사실과 다를 경우에 건설일용근로자는 근로조건 위반을 이유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며 즉시 근로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근로기준법」 제19조제1항).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무하는 건설일용근로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경우에는 노동위원회에 신청할 수 있으며, 근로계약이 해제되었을 경우에는 사용자는 취업을 목적으로 거주를 변경하는 건설일용근로자에게 귀향 여비를 지급해야 합니다(「근로기준법」 제19조제2항 및 「근로기준법 시행령」 별표 1).
최저임금의 적용 및 지급책임, 최저임금 적용,  
최저임금이란?
“최저임금”이란 국가가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향상을 위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주는 것(「최저임금법」 제1조)으로, 사용자에 대해 그 준수를 강제함으로써 근로자는 최저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 사용자는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는 건설일용근로자에게 최저임금액 이상의 임금을 지급해야 하며, 사용자는 최저임금을 이유로 종전의 임금수준을 낮춰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며, 이 경우 징역과 벌금이 병과(倂科)될 수 있습니다(「최저임금법」 제6조제1항, 제2항 및 제28조제1항).
2020. 1. 1.부터 2020. 12. 31.까지의 최저임금액은 시간급 8,590원입니다[「2020년 적용 최저임금고시」(고용노동부 고시 제2019-43호, 2019. 8. 5. 발령, 2020. 1. 1. 시행)].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근로계약의 효력,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근로계약 중 최저임금액에 미치지 못하는 금액을 임금으로 정한 부분은 무효로 하며, 이 경우 무효로 된 부분은 최저임금액과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기로 한 것으로 봅니다(「최저임금법」 제6조제3항).
"최저임금" ???,
최저임금 지급책임,  
도급인의 최저임금 지급책임,
도급으로 사업을 행하는 경우 도급인이 책임져야 할 사유로 수급인이 건설일용근로자에게 최저임금액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지급한 경우 도급인은 해당 수급인과 연대(連帶)하여 다음의 사유에 대하여 책임을 집니다(「최저임금법」 제6조제7항 및 제8항).
1. 도급인이 도급계약 체결 당시 인건비 단가를 최저임금액에 미치지 못하는 금액으로 결정하는 행위,
2. 도급인이 도급계약 기간 중 인건비 단가를 최저임금액에 미치지 못하는 금액으로 낮춘 행위,
"도급인에게 연대책임이 발생하여 근로감독관이 그 연대책임을 이행하도록 시정지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도급인이 시정기한 내에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최저임금법」 제28조제2항).
직상 수급인의 최저임금 지급책임,
두 차례 이상의 도급으로 사업을 행하는 경우 직상(直上) 수급인(하수급인에게 직접 하도급을 준 수급인)이 책임져야 할 사유로 하수급인(下受給人)이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액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지급한 경우 직상 수급인은 해당 하수급인과 연대(連帶)하여 위의 1.부터 2.까지에 대하여 책임을 집니다(「최저임금법」 제6조제7항, 제8항 및 제9항).
산업재해 보상, 산재,
업무상 재해,  
업무상 재해의 개념,
“업무상의 재해”란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을 말합니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제1호).
“장해”란?
▪ 업무상의 재해에서 “장해”란 부상 또는 질병이 치유되었으나 정신적 또는 육체적 훼손으로 인하여 노동능력이 상실되거나 감소된 상태를 말합니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제5호).
업무상 재해의 범위,
근로자가 업무상 사고, 업무상 질병 또는 출퇴근 재해에 해당하는 사유로 부상·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하면 업무상의 재해로 봅니다. 다만,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는 경우에는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않습니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제1항).
산업재해 보상보험의 적용,
산업재해보상보험은 위험률·규모 및 장소 등을 고려하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제2조로 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됩니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6조).
산업재해 보상 보험급여의 종류,
업무상의 재해가 발생한 경우 건설일용근로자가 받을 수 있는 보험급여에는 요양급여, 휴업급여, 장해급여, 간병급여, 유족급여, 상병(傷病)보상연금, 장의비(葬儀費), 직업재활급여 등이 있습니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6조제1항 본문).
“산업재해보상보험” 더 알아보기(『산업재해보상보험Ⅰ(업무상 재해)』 및 『산업재해보상보험Ⅱ(보험급여)』)
평균임금 산정 특례,  
건설 일용 근로자의 평균 임금 산정 특례,
일용근로자는 근로형태가 특이하여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보험급여를 지급하는 경우 산업재해보상 보험급여가 일용근로자의 실제 근로소득보다 많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일용근로자의 평균임금은 일용근로자의 일당에 통상근로계수(73/100)를 곱하여 산정한 금액으로 합니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6조제5항,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제23조제1호, 제24조제1항제1호 및 「통상근로계수」(고용노동부고시 제2017-82호, 2017. 12. 29. 발령, 2018. 1. 1.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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