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31일 일요일

금와왕, [ 金蛙王 ]

금와왕, [ 金蛙王 ]

역사를 군주의 정치관련 본기와 신하들의 개인 전기인 열전, 통치제도, 문물, 경제, 자연 현상 등을 내용별로 분류해 쓴 지와 연표 등으로 기록하는 편찬 체재. 현전하는 최초의 기전체 문헌인 삼국사기.
유형/ 시대/ 출생 - 사망/ 성격/ 성별/
인물
고대/초기국가
미상 ~ 미상
생몰년 미상. 동부여의 왕. 금와(金蝸)라고도 표기함.

서기전 1세기에 활동한 것으로 보이며, 그의 행적은 고구려 시조인 동명성왕의 신화를 전하고 있는 ≪삼국사기≫·≪삼국유사≫, 그리고 이규보(李奎報)의 <동명왕편 東明王篇>에 전해지고 있다.

삼국사기(권13) / 고구려본기 동명왕 원년조, 역사를 군주의 정치관련 기사인 본기, 삼국사기.

"{삼국사기(권13) / 고구려본기 동명왕 원년조, 역사를 군주의 정치관련 기사인 본기와 신하들의 개인 전기인 열전, 통치제도, 문물, 경제, 자연 현상 등을 내용별로 분류해 쓴 지와 연표 등으로 기록하는 편찬 체재. 현전하는 최초의 기전체 문헌인 삼국사기}.

부여왕 해부루(解夫婁)는 늙도록 아들이 없어 산천에 후사를 구하러 다녔다. 그러던 중 곤연(鯤淵)이라는 연못가의 이상한 돌 밑에서 금빛나는 개구리(또는 달팽이) 모양의 아이를 발견하고 그를 하늘이 준 자식이라 생각하여 데리고 가서 키웠다.

금와라는 이름은 바로 금빛나는 개구리 모양을 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 뒤 태자로 책봉되어 해부루를 이어서 부여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태백산 남쪽의 우발수(優渤水)에서 하백(河伯)에게서 쫓겨난 하백의 딸 유화(柳花)를 발견하고 궁중으로 데려왔다.

그런데 유화가 이상하게도 알을 낳자 이를 버리게 하였다. 그러나 곧 알의 신비함을 인정하고 유화에게 돌려주었는데, 이 알에서 주몽이 탄생하였다. 그의 일곱 아들들이 주몽을 시기하여 그를 처치할 것을 건의하였지만 금와는 듣지 않고 주몽으로 하여금 말을 기르게 하여 그 뜻을 시험하고자 하였다.

그 뒤 주몽이 달아나자 그를 추격하는 군대를 파견하였지만 잡지는 못하였다. 주몽이 고구려 건국을 위하여 남쪽으로 떠난 후에 유화가 24년에 죽자 태후(太后)의 예로서 장사를 치러주었다. 그의 사후 왕위는 아들인 대소(帶素)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금와왕 설화, [ 金蛙王 說話 ]
동부여()의 왕인 금와()의 탄생 설화.
분류
문학 & 이상적인물형 > 군은(君恩)형
• 갈래 : 전설
• 시대 : 삼국이전
• 신분 : 왕족
• 지역 : 기타
• 출처 : 삼국유사 ()
• 내용 :
기원전 59년 4월 8일 아침, 하늘이 열리면서 천제가 다섯 마리의 용을 타고 홀승골성으로 내려와 나라를 세웠다. 국호를 북부여, 이름을 해모수라 하였고, 아들을 낳았는데, 부루라 이름지었다. 해모수왕에 이어 해부루왕이 북부여를 다스릴때였다. 어느날 해부루의 대신 아란불의 꿈에 천제가 나타났다. “장차 내 자손으로 하여금 이곳에 나라를 세우도록 할터이니, 너는 동해가에 가섭원이란 곳으로 가거라. 땅이 기름져 왕도로 삼기에 적당할 것이다.” 그리하여 아란불은 왕에게 권고하여 그곳으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동부여라 하였다. 그 뒤 북부여에서 동명왕이 졸본주를 도읍으로 정하여 졸본부여를 세웠으니 이것이 고구려왕조의 시작이다. 그런데, 해부루에겐 근심이 있었으니, 바로 늙도록 아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산천에 제사를 지내 대를 이을 아들을 달라고 빌었다.

그날도 왕이 종일토록 기도를 올리고 해질무렵 귀가를 할 때 였다. 갑자기 왕이 탄 말이 곤연이란 연못에 이르자 커다란 돌을 보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멈춰섰다. 이를 본 왕은 이상히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돌을 옮기게 했다. 그랬더니 그곳에는 개구리처럼 생긴 황금빛 사내아이가 있는게 아닌가! 왕은 기뻐하며 하늘이 내려주신 아들이라 기뻐하며 말했다.“하늘이 내려주신 아들이로구나. 그 모습이 금개구리와 같으니 금와라 하면 어떻겠느냐.” 그리하여 그날부터 금와를 곁에 두고 길러 금와가 청년이 되자 해부루는 그를 태자로 삼아 자신의 뒤를 잇게 하였다. 부루가 죽자 금와가 왕이 되었고, 금와왕 이후 태자 대소가 나라를 이었으나 고구려의 무휼왕이 쳐들어와 동부여를 정복했다. 그로써 동부여는 멸망하게 되었다.

『삼국사기』 권13,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 제1 시조 동명성왕조(始祖東明聖王條)와 『삼국유사』 권1, 기이(紀異) 제1, 동부여 고구려조에 나타나 있는 금와왕의 탄생에 얽힌 문헌설화이다. 위의 두 책에 실려 있는 설화 내용은 거의 일치한다.

부여왕 해부루(解夫婁)가 늙도록 아들이 없어 산천에 제사하고 왕위를 이을 아들[嗣子]을 구하였는데, 하루는 왕이 탄 말이 곤연(鯤淵)에 이르러 큰 돌을 보고 마주 대하여 눈물을 흘렸다.

이를 보고 왕이 이상히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돌을 들추어 보니 그 밑에 한 어린 아기가 있는데, 빛은 금빛 같고 모습은 개구리와 같았다. 왕은 크게 기뻐하며, 이것은 하늘이 대를 이을 아들을 주신 것이라 생각하고 거두어 이름을 금와(金蛙)라고 하였다. 금와가 장성하자 태자를 삼고 해부루가 죽은 뒤 왕위를 잇게 하였다.

「금와왕설화」는 인간 생명의 용출(湧出)로서의 지생관(地生觀)을 바탕으로 하여 천생관(天生觀)과 대립된다. 이는 또한 자연 발생적 인간 기원을 이야기하여 「견훤설화(甄萱說話)」류의 인위토생적(人爲土生的) 기원론과 대립된다. 한편, 금와왕은 고구려 시조 「동명왕신화」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금와왕은 즉위한 뒤 태백산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한 여자를 만나 물으니, 그 여자는 본시 하백(河伯)의 딸로 이름은 유화(柳花)인데, 천제의 아들 해모수(解慕漱)와 사통(私通)하여 부모에게 내쫓기어 우발수에 살고 있었다. 금와가 유화를 데려왔는데, 햇빛이 유화의 몸을 따라다니며 비추었다.

도읍을 옮겨 새로 동부여를 창업한 해부루는 늙도록 아들이 없었다. 

그로 인하여 태기가 있더니 마침내 닷 되들이만 한 알을 하나 낳으니, 금와는 이를 내다 버리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개·돼지·소·말 들이 이 알을 피하여 먹지 않으며, 새들이 보호하려 들자 왕 자신이 알을 깨뜨리려 해도 깨뜨리지 못하게 되니 왕은 알을 어미에게 되돌려 주었다. 이 알에서 태어난 아기가 바로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이다.

부여의 왕 해부루() 때의 재상() 아란불()이 에 천제()를 만났는데, 천제가 하기를 "내 자손으로 하여금 이 곳에 나라를 세우게 할 터이니 너희들은 이 곳을 피하여 동해 부근의 가섭원()으로 왕도()를 옮기도록 하여라"라고 하였다. 아란불은 곧 왕에게 권하여 그 곳으로 천도()를 하고 국호()를 동부여라고 하였다.

해부루는 슬하에 아들이 없어 산천에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곤연()이라는 곳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타고 있던 말이 큰  앞에 서서 눈물을 흘렸다. 왕이 이상히 여겨 돌을 굴려 보니 그 곳에서 금빛을 두른 개구리 형상의 아이가 나왔다.

왕은 이를 하늘이 내린 축복이라 여기고 그 아이의 이름을 금와라 짓고 고이 길렀다. 이후 금와는 자라서 태자가 되었고, 해부루가 죽은 뒤에 왕위를 계승하였다. 

동부여는 북부여의 왕 해부루가 천제의 명에 따라 도읍을 동해 바닷가 가섭원으로 옮겨 세운 나라이다. 뒷날 태백산() 남쪽의 우발수()에서 하백()의 딸 유화()를 데려다가 방에 가두었더니 내리쬐는 햇볕을 받고 잉태하여 알을 낳았는데, 그 알에서 뒤에 고구려의 시조가 된 주몽(:동명왕)이 나왔다.

해부루가 나라를 옮긴 이유는 북부여의 도읍에 천제의 자손, 곧 주몽이 나라를 세울 것이라는 천제의 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와왕은 동부여를 세운 해부루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금와왕은 후에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를 우발수에서 발견하여 궁에 가두었고, 주몽이 태어난 후에는 그의 양육자가 된다. 아들들이 주몽을 두려워하여 죽이자고 했지만 그는 주몽을 시험하기 위해 말을 기르도록 한다.

주몽이 남쪽으로 떠나 고구려를 세운 뒤 동명왕 14년 8월에 유화가 죽자 금와왕은 태후의 예를 갖추어 장사를 지내고 신묘를 세워 준다. 이렇듯 금와왕은 문헌 기록상으로 보면 <주몽신화>의 조연으로 등장한다. 금와왕 스스로 주연인 이야기는 그의 탄생과 왕위 계승에 관한 이야기뿐이다.

이 신화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동명왕편(東明王篇)」 등에 전해지는데 내용상 큰 차이는 없다. <금와왕신화>에서 의미 있는 부분은 둘인데, 하나는 기자치성(祈子致誠)이고 다른 하나는 금와라는 이름의 유래인 ‘곤연의 큰 돌 아래서 나온 금빛 개구리 형상의 아이’이다.

기자치성은 일찍이 건국신화에서부터 나타난다. <단군신화>에서 웅녀는 신단수 아래서 아이를 기원한다. 이때 숭배의 대상은 단수, 곧 나무이다. 해부루는 곤연이라는 연못 안 또는 연못가에 있는 큰 바위에서 기자치성을 드린다. 말이 큰 돌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신화적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곤연이 제사의 장소이고 큰 바위가 숭배의 대상이므로 이는 곧 큰 바위에 빌었다는 뜻이다. 큰 바위는 오늘날까지도 기자석, 여음석, 남근석, 미륵바위 등으로 불리면서 널리 기자치성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금와왕은 바위에 기원하여 얻은 아들, 곧 산천이 점지한 아들이라는 신화적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금와왕신화>의 핵심 화소는 금개구리이다. 『삼국사기』에는 금와(金蛙)를 금와(金蝸)로 쓰기도 한다고 했지만, 초점은 달팽이가 아니라 개구리이다. 이 개구리는 아이의 형상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동부여를 상징하는 신화적 동물로 보인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에 따르면 유리왕 29년 6월에 모천(矛川)에서 검은 개구리와 붉은 개구리가 무리지어 싸우다가 검은 개구리가 이기지 못하고 죽은 일을 두고 검은 색은 북쪽의 색이므로 북부여가 패망할 징조로 해석하고 있다. 여기서 북부여는 금와왕을 이어 대소왕이 통치하고 있던 동부여를 가리킨다. 이 기사에서 개구리는 단지 시끄러운 양서류가 아니라 특정 세력을 상징하는 신화적 동물이다.

개구리는 신화적으로는 물, 달, 여성적 원리를 상징한다. 그래서 개구리는 하천 주변의 평야지대에 거주하며 농경에 종사하는 종족의 상징체계 속에 자주 등장한다. 동이계의 신화적 인물인 예(羿)의 처 항아(姮娥)가 불로장생을 원하는 남편을 위해 서왕모의 약을 훔치고는 달로 도망쳐 두꺼비가 되었다는 신화에서 알 수 있듯이 달은 두꺼비, 곧 개구리와 깊은 관계가 있다. 또, 여러 신화에서 개구리는 비를 예고하거나 비를 내리게 하는 동물로 등장한다. <금와왕신화>의 금개구리는 금와가 동부여의 수신계 집단을 상징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금와를 발견한 해부루는 북부여에서 온 해모수의 아들로, 해[日]나 밝음[光]의 상징체계를 지닌 집단, 다시 말하면 태양을 중심으로 한 천신계 집단의 수장이다. 고구려 <주몽신화>에서 천제의 아들 해모수는 아침에 내려와 정사를 보고 저녁에 승천한다고 하여 천왕랑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다. 해모수는 태양신이 인격화된 존재이다. 이 해모수의 아들이 북부여의 해부루인데, 이는 동부여를 세운 주도 세력이 북부여 및 고구려의 주도 세력과 마찬가지로 천신계 집단이라는 것을 뜻한다.

천신계 집단에 속하는 해부루가 수신계 집단을 상징하는 금와를 발견하여 왕위계승자로 삼았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해부루와 금와가 같은 혈통이 아니라는 데서 알 수 있듯 동부여는 서로 다른 세력이 연합한 국가였다는 뜻이 숨어 있다. 그런데 동부여 <금와왕신화>에는 이 연합 관계가 고구려 <주몽신화>처럼 결혼 관계로 표현되어 있지 않다. <주몽신화>에서 해모수와 유화의 결혼은 천신계와 수신계 집단의 연합을 상징한다. 이런 상징성이 <금와왕신화>에서는 왕과 태자의 관계로 표현되어 있다. 왕권이 천신계 집단에서 수신계 집단으로 넘어간 상황의 신화적 표현일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금와왕신화>의 두 번째 함의이다.

개구리는 물의 상상계를 대표하는 동물 가운데 하나로 신화나 도상에 자주 나타나는데 <금와왕신화>는 한국의 건국신화나 왕권신화 가운데 유일하게 개구리 모티프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조항목,

역참조항목,

카테고리,
출처 ^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광개토왕비문」
[금와 [金蛙]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encykorea.aks.ac.kr/
[금와왕설화 [金蛙王說話]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설화문학연구』(서울대학교출판부, 1978)
[금와왕설화 [金蛙王說話] (두산백과)
[금와왕신화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
[문화콘텐츠닷컴 원문보기
[금와왕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한국설화 인물유형), 2005.,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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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자장암과 자장율사,[ 通度寺 - 慈藏律師]

통도사 자장암과 자장율사,[ 通度寺 - 慈藏律師]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에 전해 내려오는 통도사의 창건 연기설화.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번지,
분야/ 유형/ 지역/ 시대/ 출처/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작품/설화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고대/삼국 시대
디지털양산문화대전-「자장율사와 통도사」
자장율사와 통도사,
통도사는 신성한 매개물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사찰 연기 설화이다. 사찰 연기 설화는 사찰을 대상으로 그에 얽힌 창사·중건·폐사 혹은 고승·보살·부처 등을 통해 불교적 세계관을 드러내는 설화이다. 사찰 연기 설화가 일반 설화와 다른 점은 일반 설화처럼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불교 교화라는 뚜렷한 목적성을 가지고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신라 때 자장율사는 당나라에 건너가 불도를 닦던 중 석가가 입던 가사와 진신 사리를 얻게 되었는데, 꿈에 문수보살이 나타나 신라에 부처를 모시도록 알려주었다. 이에 자장율사가 신라에 돌아와 나무로 오리를 만들어 날려 보내자, 그 오리는 한 송이의 칡꽃을 물고 왔다.

엄동설한에 칡꽃이 핀 곳이 절터임을 깨닫고 찾아 나선지 며칠 후에, 자장율사는 영축산 밑 큰 못 근처에서 칡꽃 두 송이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세 송이였으나 자장율사가 날려 보낸 오리가 한 송이를 물고 왔던 까닭에 두 송이만 남은 것이다. 자장율사가 이 못을 메우고 통도사를 세웠다고 한다.

자장암, [ 慈藏庵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에 있는 암자. 신라 진평왕때 자장율사가 바위산 틈에서 초막을 짓고 수도를 하던 곳인데, 통도사 본 절보다 더 오래된 암자이다.
분야/ 유형/ 지역/ 시대/ 출처/
종교/불교
기관 단체/사찰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통도사로 108]
조선/조선
디지털양산문화대전-자장암
자장율사와 금개구리, (자장암)
1081m고봉 영축산을 주산으로 북으로는 신불산,남으로는 함박등,죽바우등,오룡산으로 큰 산맥이 통도사를 보호하뜻 감싸고 있다.
양산 통도사와 주변19개의 암자는 영축산과 주변의 고봉에 둘려쌓여 크다란 표주박 속에 들어 있는것 같은데,큰산으로 자연재해를 막아주는 풍수적으로 길지에 자리잡은 곳이다.
통도사와 산내 19암자. 통도사를 깃점으로 19암자 순례도 새벽부터 시작해야하는...
이번에 통도사 자장암등, 몇군데의 암자를 둘러 보았다.
통도사 자장암통도사를 짓기 전인 진평왕 때에 자장율사가 바위 벽 아래에 움집을 짓고 수도하던 곳으로, 자장율사 입적 후에는 율사의 제자들이 수도하였다.

건립경위 및 변천
자장율사가 창건한 이래, 연대는 미상이나 회봉(檜峰)이 중건하였고 1870년(고종 7)에 한 차례의 중수를 거쳐 1963년 용복(龍福)이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승려 현문, 범룡 외 6명이 상주하고 있다. 암자이지만 종무소가 있는데, 이곳에 적정심 보살이 사무를 보고 있다. 전체 건물은 5동 23칸이다. 법당은 4칸의 관음전(觀音殿), 왼쪽에 자장율사의 영정을 봉안한 자장전(慈藏殿)과 수세전(壽世殿, 사찰에서 일반적으로 칠성각이라고 불리는 전각으로 칠성신을 모시는 것이 보통이지만 수세전에서는 부처를 모시고 있다)이 있다. 법당 오른쪽에는 요사채가 있으며, 자장전 옆에 취현루(醉玄樓)가 있다.

관음전 바닥, 자연석 위에 바닥을 깔았다, 거북바위,

관음전은 거북바위 위에 그대로 전각을 올려서 자연미를 살리고 있다. 관음전 앞에는 거북의 꼬리 부분, 관음전 뒤에는 거북의 머리 부분, 법당 안에는 거북의 몸통 부분 일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관음전에는 석가모니불과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자장전 앞에는 높이 약 4m의 거대한 마애불이 새겨져 있는데, 통도사 산내에서는 유일한 마애불이며, 1896년 조성했다는 기록이 암벽에 새겨져 있다. 마애불의 중앙에는 아미타불좌상, 그리고 좌우에는 각각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이 음각되어 있다. 자장전 뒤에는 자장율사가 당으로부터 가져온 부처의 진신사리탑이 있다.

계단오르기전 좌측에 있다,

"자장암에는 법당뒤에 큰 바위 위에 자장율사가 당으로부터 가져온 부처의 진신사리탑 있다.

바위 중간 1m50cm높이에 손가락 크기의 구멍이 있는데 돌구멍 안에 금개구리가 산다고 한다. 돌구멍 안을 쳐다보면 금개구가 보이는지는 잘 모르지만 자장율사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자장암입구 계단,

​통도사 구룡지에 살던 용(龍)다섯마리가 날라가서 몸을 숨겼다고 하는 오룡산(五龍山). 오룡산에서 발원한 물이 자장암 앞으로 흘려 통도천을 이루면서 통도사쪽으로 흘려내린다.
통도사주변에는 통도8경이 있다. 통도8경에는 자장동천(慈藏洞天)이 있는데 ,자장암 앞 계곡,보이는 산맥,구릉지등이 극락세계 처럼 평온하게 펼쳐지고 신라 진평왕때 자장율사가 처음으로 이곳으로 들어와 초막을 짓고 수도를 하던곳이다.

자장암계단 오르다 중간에 있는 탑입니다,
계단을 다오르몀 이렇게 문이 있읍니다,
자장암 관리동,
관음전 입구, 
높이 약 4m의 거대한 마애불이 새겨져 있는데, 통도사 산내에서는 유일한 마애불이며, 1896년 조성했다는 기록이 암벽에 새겨져 있다. 마애불의 중앙에는 아미타불좌상, 그리고 좌우에는 각각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이 음각되어 있다.

통도사 자장암 마애 아미타 여래 삼존상, 등록문화재 제617호 조선 고종33년(1896)에 조성하였다.
통도사에서 유일하게 마애불상이 자장암에 있다.


관음전,

석가모니불과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자장암 관음전,
관음전에는 석가모니불과 관음불을 봉안하였다.

자장암 전경,

​자장암은
관음전,자장전(수세전과 산령각 겸용)


자장암 관음전, 관음보살상,

자장전


자장전에는 자장율사의 영정이 봉안되어있다.

독성, 나반존자,

*독성은 스승없이 혼자 깨달음을 얻은 성자를 일컫는 말로, 우리나라에서는 나반존자()라 한다.

본래 부처의 제자로 아라한과()를 얻은 뒤 부처의 수기()를 받았다.

그후 남인도 천태산에 들어가 말세가 되면 중생의 복덕을 위해 세상에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신,

"개구리는 동아시아에서는 다산과 행운의 상징이다. 불교에서도 개구리는 신이한 영물이기도 하다, 통도사 자장암의 금개구리 설화가 이를 잘 보여준다,

자장암은 통도사 창건주인 자장율사의 수도처였다. 법당 뒤 큰 암벽에는 석간수가 나오는데, 율사가 바위에 구멍을 뚫어 금개구리를 살게 했다고 한다.

금와당,

"{여기가 바로 통도사 암자 중에 하나인 자장암 금개구리 있는 곳으로 자장암 금개구리가 살고 있는 바위가 있습니다.

금와당이라고 하는데요. 사진촬영은 금지해서 여기까지만 하고 저 혼자만 들어갔다 왔습니다.

아직은 추워서 그런지 바위 안쪽에는 있을 겁니다.

직접 가보시면 바위 중간에 동그란 게 보이실 겁니다.}

자장암 관음전 뒷쪽 암릉에는 손가락 크기의 구멍이 뚫려있다.

이 바위 구멍안에 금개구리 2마리가 살고 있다고 한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자장율사가 이곳 암릉에서 초막을 짓고 수양을 하던중 어느날 공양미를 씻으로고 암벽아래 석간수가 흘려 나오는 옹달샘으로 갔다.

금와석굴,

​석간수 옹달샘에 개구리가 헤엄을 치면서 놀고 있는게 아닌가!

개구리가 헤엄치면서 석간수 물을 흐려 놓아,스님은 개구리 한쌍을 근처 숲속에 놓아 살도록 하였고다.

금와보살,

다음날 석간수옹달샘에 오니 또다시 개구리 한쌍이 헤엄을 치면서 노는 것이다.

이번에도 숲속에 개구리를 갔다 놓았고...

이런식으로 몇일을 하면서 스님은 개구리를 자세히 살펴 보니 일반적인 개구리와는 차이점이 많은것을 알았다.

금개구리,

​보통 개구리와 다르게 입과 눈가에 금줄이 선명히 보였고,등에는 거북등 문양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
스님은 "불연이 있는 개구리구나"하면서 석간수 옹달샘에 살도록 하였다.
계절이 지나 겨울철이 되었고...석간수 옹달샘에 살던 개구리가 겨울잠 자러 땅속으로 가야 하는데 그렇치 않고 옹달샘에 있는 것이다.

스님은 개구리가 겨울철 얼어 죽겠구나 하면서 큰바위에 손가락으로 찔러서 구멍을 뚫고 그 안에 개구리를 넣어 주었다.

금와석굴, 자장율사와 개구리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이렇게 하여 자장암 관음전 뒷편 큰바위 구멍에 개구리가 살게 되었다.

이후, 금개구리를 "금와"라 부르고 바위를 "금와석굴"이라 부르는데 바위구멍의 지름은 약 2cm,깊이는 10cm정도의 바위구멍이다.

자장암 앞 소나무밭,
양산통도사 자장암입구,

 양산 통도사 산내 암자인 자장암 법당 뒤 절벽 바위에는 1천4백 년 전부터 금개구리가 살고 있다고 전한다.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 자장암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사찰 연기 설화는 불교 교화의 도량인 사찰이나 암자를 대상으로 그와 관련한 창사·폐사·중건, 또는 고승·보살·부처 등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러한 설화는 불교적 세계관을 담고 있으며, 사찰의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되면서 불교 교화의 한 방편이 되었다. 통도사 자장암의 금개구리 설화는 고승 자장의 신통력과 금개구리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를 주제로 하는 이야기인데, 불법의 흥성과 불심의 독려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1996년에 발간된 『하북면지』에 채록되어 있다.



자장암은 통도사 창건주인 자장율사의 수도처였다. 법당 뒤 큰 암벽에는 석간수가 나오는데, 율사가 바위에 구멍을 뚫어 금개구리를 살게 했다고 한다. 이능화[1869~1945]의 『조선불교통사』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한다.

“자장암 금개구리는 몸은 청색이고 입은 금색인데, 벌·나비·거미 등으로 변하기도 하며 여름철에 바위가 가열되어도 그 위를 자유로이 뛰어다닌다고 한다. 산문 밖으로 나가지 않으며 가지고 나갈 수도 없는데, 이는 자장율사의 신통력으로 자라는 것이라 한다.”


요즘도 자장암에서 정성들여 기도를 잘하면 볼 수 있다는 이 금개구리는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세우기 전, 석벽 아래 움집을 짓고 수도하고 있을 때 나타났다.


입과 눈가에 금줄이 선명하고 등에는 거북 모양의 무늬가 있는 개구리를 보고 불연이 있는 개구리라 생각한 자장율사는 암벽에 구멍을 내어 금와라 이름을 지어주어 살게 하였다. 그 뒤 통도사 스님들은 이 개구리를 금와보살, 바위를 금와석굴 이라 불렀다.

자장율사의 수기를 받아 오늘까지 살아온다고 전해지는 이 금와보살은 통도사 내에 길조가 생길 때면 나타난다고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 금개구리들은 자장을사의 신통력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통도사 자장암을 참배하는 불자들은 으레 금와보살을 친견하려 한다.

그러나 신심이 돈독한 사람에게만 보이므로 친견 못하고 돌아서는 불자들이 더 많다고 한다. 금개구리 친견으로 자신의 신심을 한 번쯤 측량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자장율사],
"우리나라 전국 곳곳 산속에 흩어져 있는 오래된 사찰들의 역사를 보면 자장율사를 빼놓고 얘기를 할 수가 없습니다.

자장율사는 전국에 약10개의 사찰을 세웠으며 그만큼 한국의 사찰 창건에 영향력이 매우 컸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난 6월, 천년 넘게 우리의 불교문화를 이어온 한국의 사찰 7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던 약10개의 사찰들 중 <통도사>와 <마곡사> 2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사찰 7곳※
[통도사(경남양산), 부석사(경북영주), 봉정사(경북안동), 법주사(충북보은), 마곡사(충남공주), 선암사(전남순천), 대흥사(전남해남)]

[자장율사]

신라 진평왕 때인 590년 진골 귀족 출신인 김무림이 아이가 생기지 않아 아내와 함께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자식을 낳으면 부처님께 바쳐 세상과 불교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게 하겠다’며 불공을 올린 결과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로 이름은 ‘선종’이었습니다. 선종은 자라서 부모가 부처님께 약속한 것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려 했고 수행을 하며 깊은 깨달음을 얻으려 하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 선종의 비범함을 알게 된 선덕여왕이 선종을 재상자리에 임명하려 하였으나 선종은 계속 거절을 하였고 이에 화가 난 선덕여왕이 재상 자리에 취임하지 않으면 참형을 내릴 것이라고 명했습니다. 하지만 선종은 이에 흔들리지 않고 ‘불교의 계율을 지키고 살겠다.’ 하였고 결국 선종은 ‘자장(慈藏)’ 이라는 이름으로 신라를 대표하는 큰 스님이 되었습니다.

그 후 자장은 제자 10명과 함께 오대산으로 가서 지혜와 깨달음을 상징하는 문수보살에게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자장은 문수보살을 직접 보고 깨달음을 얻고 석가모니 부처의 유골인 진신사리와 입었던 옷인 가사, 머리뼈와 다리뼈 등을 받아서 신라로 돌아와 많은 사람들에게 불교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또한 불교를 따르는 승려들이 지켜야 할 계율을 정비하거나 새롭게 만들어 정하기도 하는 등 계율에 정통하여 율사(律師)라 불렸습니다.

자장율사는 황룡사에 9층 석탑을 세우게 하고 월정사(강원도 평창), 삼화사(강원도 동해), 칠장사(경기도 안성) 등 전국에 사찰 10여개를 세워 신라 불교발전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석가모니 사리를 모셔둔 불보(佛寶)사찰인 통도사를 세우며 그곳에 부처의 사리를 모셨고, 공주의 마곡사를 세운이도 바로 자장율사입니다.

양산 통도사 산내 암자인 자장암은 통도사의 창건주 자장율사가 통도사 창건에 앞서 수도하였던 곳 입니다. 자장암 법당 뒤 절벽 바위에는 1천4백 년 전부터 금개구리가 살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자장암에서 정성들여 기도를 잘하면 볼 수 있다는 이 금개구리는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세우기 전, 석벽 아래 움집을 짓고 수도하고 있을 때 나타났다고 합니다.

입과 눈가에 금줄이 선명하고 등에는 거북 모양의 무늬가 있는 개구리를 보고 불연이 있는 개구리라 생각한 자장율사는 암벽에 구멍을 내어 ‘금와‘라 이름을 지어주어 살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 뒤 통도사 스님들은 이 개구리를 ’금와보살’, 바위를 ‘금와석굴’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자장율사의 수기를 받아 오늘까지 살아온다고 전해지는 이 금와보살은 통도사 내에 길조가 생길 때면 나타난다고 합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 금개구리들은 자장율사의 신통력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통도사 자장암을 참배하는 불자들은 금와보살을 친견하려 하지만, 금와보살은 신심이 돈독한 사람에게만 보이므로 친견을 못하고 돌아서는 불자들이 더 많다고 합니다.

또 다른 예기들 (전설)은 다양해서 금개구리가 부처님께 올리는 물을 탁하게해서 그속에 넣어둿다는 전설과, 자장율사를 사모한 아가씨가 개구리로 변해 암벽뒤에서 자장율사를 지킨다는 전설. 어찌됏든 불심이 깊은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금와보살(금개구리),



{위 사진들은 통도사 산내 암자인 자장암 입니다. 암자 앞 아름다운 아름드리 금광송이 울창한 계곡 과 바위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소리,,,}

자장암은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창건하기 전 먼저 지어서 수도하였던 암자이고 대웅전 바닥에 바위가 솟아 있는 것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자장율사의 얼이 서려 있으며 말로 다 설명 할 수 없는 아주 영험한 암자입니다. 또한 과거 자장암에 금와보살이 출현하여 많은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자비광명을 비추어 주셨고 부처님의 가피를 가득히 고루 내리셨던 곳이라 생각합니다.

자장암은 금와보살을 보기위해 20년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명소였고 금와보살을 친견하면 좋은 일이 있으며 복을 받는다고 하여 모두 소망을 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인터넷과 여러 블로그를 보면 이렇게 영험한 자장암의 금와보살을 이 사람 저 사람이 너무 가볍게 언급하여 글을 쓰거나 말을 하고 있는데 절대 해서는 안 될 행동입니다.

암자에는 그 당시 금와보살의 모습이 사진으로 걸려있습니다. 이처럼 영험한 자장암은 어느 한곳도 흐트러 지거나 어지러진 곳이 없는 아주 단정한 절입니다. 이런 자장암에 나타나는 금와보살의 귀중함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보고 세상을 위해 그리고 중생을 위해 고민하셨던 자장율사의 염원을 조금이나마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금와보살의 귀중함을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현재 금와보살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철없는 중생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하여 바위 굴속으로(금와석굴) 들어가셔서 나오시지 않는 것입니다.

영남알프스 영축산 ㅡ자장암 앞산,

모티프, 분석,
"하늘을 나는 나무오리, 겨울에 핀 칡꽃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사실이다. 「자장율사와 통도사」설화는 이러한 비현실적 매체를 통해 통도사 절터가 성스러운 곳임을 나타내고 있다. 보통 절터의 신성함을 나타내는 매체로는 상서로운 구름, 방광(放光), 연꽃 개화, 돌부처 출현, 코끼리나 하얀 사슴의 출현 등이 있는데 이들은 대체로 불교적 관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통도사 창건 설화의 나무오리는 불교적 관념보다는 민중의 천진한 발상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칡꽃이 3송이라는 점, 즉 숫자 3의 완성과 조화의 의미는 통도사가 불교 도량의 요지(要地)임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금개구리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고대 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부여의 왕 해부루는 금빛 개구리 모양의 어린 아이를 얻었는데, 이 아이가 훗날 금와왕이 되었다. 왕권의 후계자를 금개구리로 상징화한 것은, 개구리의 다산성과 금빛의 신성성을 결합하여 왕권의 흥성을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자장암의 금개구리」에서 자장이 바위에 구멍을 뚫어 금개구리를 살게 했다는 것도 불법의 신성함을 금빛으로, 포교 확산에 대한 바람을 개구리의 다산성으로 상징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이야기가 후대로 전승될수록 금개구리는 불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승려 경봉[1892~1982]이 10세 되던 해였다. 당시 80여 세 이신 승려 용익은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좋은 종이에 탁본하여 모실 수 있기를 발원하며, 통도사 큰 법당에서 백일기도를 올렸다. 

기도가 끝나기 3일 전, 금개구리가 큰 법당 탁상 위에 나타났다. 용익은 금개구리를 보는 순간 불사가 원만히 성취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는데, 며칠 안 되어 시주자가 나타나 팔만대장경 3권을 책으로 묶어 보관하게 됐다고 한다. 

통도사 승려들은 이 개구리를 금와보살이라 하고 바위를 금와석굴이라 하며, 지금도 신심이 돈독한 불자에게는 금와보살이 보인다는 이야기를 한다.

개구리,

  • 무당개구리 동식물백과,
  • 황소개구리 동식물백과,
  • 올챙이와 개구리,

<만남(百千萬劫 難遭遇 백천만겁 난조우)>

통도사입장료? 입장료 성인 3천원,
주차비 소형차 2천원,

출처 ^ 참고문헌,
[문화콘텐츠닷컴 원문보기
[자장율사와 금개구리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불교설화), 2004., 한국콘텐츠진흥원)
[하북면지』(하북면지편찬위원회, 1996)
[한국사찰연기설화의 연구』(동국대출판부, 2005)
[설화문학연구』(단국대출판부, 1998)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http://www.grandculture.net/ ]
[자장율사와 통도사」 [慈藏律師-通度寺]
[한국문화상징사전』(두산동아, 1992)
[하북면지』(하북면지편찬위원회, 1996)
[한국 사찰연기설화의 연구』(동국대학교출판부, 2005)
[인터뷰(자장암 종무소 적정심 보살, 여, 2008.,,)
[네이버 지식백과] 자장암 [慈藏庵]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통도사 자장암,자장율사와 금개구리
[독성각 [獨聖閣] (두산백과)
[자장암 금개구리」 [慈藏庵金-]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자장율사와 자장암 금와보살(금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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