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volley ball, 排球]
1917년 무렵 YMCA를 통해, 또는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미군을 통해 유럽지역에 전해졌으며, 1916년에는 YMCA와 미국 NCAA(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대학체육협회)가 공동으로 규정집을 발행하였다. 1922년 미국 최초의 전미배구대회가 YMCA 전미체육위원회 주최로 뉴욕시(New York) 브루클린(Brooklyn) 중앙YMCA에서 열렸다.
1920년대 중엽에는 비공식적인 전미배구위원회가 결성되었으며, 1928년 USVBA(United States Volleyball Association:미국배구협회)가 결성되어 규칙을 제정하고 경기를 관장하는 기구로 인정받았다. 1928년부터 USVBA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4년과 1945년을 제외하고는 해마다 전미남자배구선수권대회와 35세 이상이 참여하는 전미성인 남자배구선수권대회를 개최하였다.
첫째, 랠리포인트 스코링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즉 매 랠리마다 득점을 하게 되는데, 리시브팀이 랠리를 이겼을 때 그 팀은 한 점을 얻고 서브권을 갖게 되며, 그 팀의 경기자는 시계방향으로 한자리씩 이동한다.
과거 5세트 경기 때처럼 각 세트에서 서브미스가 있을 때 상대방이 점수를 얻게 되므로 과거의 서비스권을 가졌을 때만 점수를 얻는 방식보다 경기시간이 단축되었다. 1∼4세트까지는 25점을 선취하면 이기며, 5세트에서는 15점을 선취하면 이기는데, 각 세트마다 상대팀과 2점차가 나야 하며 점수 상한은 없어졌다.
서브에서 볼이 네트에 닿고 상대방 쪽으로 넘어갈 때 경기는 계속되며, 경기를 하거나 경기를 방해할 때를 제외하고 네트를 터치하는 것은 반칙이 아니다.
둘째, 세트간 모든 휴식시간은 3분으로 정해졌다. 2·3세트 사이의 휴식시간은 조직측 요청에 따라 권한을 가진 기구가 10분까지 연장할 수 있다. 타임아웃은 보통 경기에서 30초 동안 이루어지며, 각 팀은 세트당 2번의 타임아웃을 가진다.
FIVB 및 세계 공식경기에서 모든 타임아웃은 60초 동안 이루어지고 5세트에서는 30초간이다. 1∼4세트에서 각 팀은 단 한번의 타임아웃을 부를 수 있으며, 점수가 앞선 팀이 8점과 16점일 때 2번의 테크니컬 타임아웃(TTO)이 주어진다. 5세트에서 각 팀은 2회 30초 동안 타임아웃을 할 수 있으며 테크니컬 타임아웃은 없다. 과거 국제규칙에서는 시합중에 각 팀은 한 세트 중 30초씩 2번의 작전타임을 얻을 수 있었다.
셋째, 리베로 선수에 대한 신설된 규칙이 있다. 각 팀은 12명 최종 선수명단에 1명의 수비전문선수 리베로 등록을 선택적으로 할 수 있다. 리베로 선수는 후위지역 선수로만 경기할 수 있도록 제한된다. 리베로는 팀 내 다른 선수들과 구별되는 색상이나 다르게 디자인한 셔츠를 입어야 한다.
과거 국제룰에서도 5세트를 겨루었는데, 6인제인 경우 이름 그대로 각각 6명의 선수가 네트를 사이에 두고 상대하여 볼을 상대방 쪽으로 쳐 넘겨 15점을 선취하면 한 세트를 이기며 3세트를 선취하는 팀이 승리이다. 또한 14:14가 되면 2점을 먼저 리드한 팀이 이기고, 모든 세트의 상한 점수는 17점이며, 16대16 동점인 경우 1점을 리드하여 17점을 선취한 팀이 그 세트를 이긴다. 정식경기가 아닌 경우 사정에 따라 3세트 시합을 하기도 하는데, 이때는 2세트를 선취하면 이긴다.
과거 6인제 경기에서 가장 큰 특징은 직접 득점이 되는 경우와 득점이 되지 않고 서비스권만을 얻는 경우이다. 즉 서브를 넣은 팀이 상대방 코트 내에 볼을 때려넣어 성공하거나 상대방 선수가 반칙을 했을 때에만 득점이 되며, 공격에 성공하지 못하면 상대방으로부터 서브권만을 빼앗아와서, 득점에 결부될 수 있는 서비스팀이 되었다.
배구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순서에 의하여 진행된다. 서브에 의하여 넘어간 볼은 상대방의 서브리시브→토스→스파이크로 서브측에 넘어오고, 서브한 쪽은 블로킹→리시브→토스→스파이크로 볼을 다시 넘긴다. 즉 리시브→토스→스파이크로 응수하는 반복이 전개된다. 이 사이에 여러 가지 룰이 있어서 득점이나 사이드아웃이 된다.
코트의 중앙에는 코트를 둘로 가르는 센터라인이 있고, 그 센터라인에서 각각의 엔드라인 쪽으로 3m 떨어진 곳에 어택라인이 그어져 있다. 어택라인은 룰에 정해져 있는 후열 선수가 어택라인보다도 앞으로 나와 네트 쪽의 지역에서 공격하거나 블로킹하는 동작을 방지하기 위한 표시이다.
선수들은 경기가 진행되고 있을 때는 중앙선을 넘어갈 수 없으며, 구획선은 흰색이어야 하고 코트와 프리존의 색은 각각 달라야 한다. 코트의 표면은 균일하고 수평하며 평탄해야 한다. 경기자가 부상을 당할 위험물이 있어서는 안되며, 거칠거나 젖었거나 미끄러운 표면에서의 경기는 금지되어 있다. 실내코트의 표면은 단색이어야 하고 밝고 선명해야 한다.
서비스지역은 엔드라인 후방(엔드라인은 포함되지 않음)에 너비 9m 지역으로서, 양쪽의 오른쪽에 각각 길이 15㎝의 짧은 선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 선은 사이드라인 연장선상에서 엔드라인 후방 20㎝에 너비 5㎝로 그린다. 이 두 선은 서비스구역에 포함된다. 센터라인은 시합중에 상대방 선수가 잘못 넘어 들어와 부딪히거나 발을 삐는 일이 없도록 미리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한 예방적인 표시이면서 동시에 각각 구역을 가르는 가장 기본이 되는 라인이다.
또한 마음 놓고 공을 서브하고 리시브하여 넘길 때 공이 천장에 닿지 않고 경기를 하려면 코트 위에 최소한 7m 높이까지 장애물이 없어야 한다. 또한 국제경기 때에는 사이드라인으로부터 5m, 엔드라인으로부터 8m의 프리존이 있어야 하며, 코트 면당 12.5m까지 장애물이 없어야 한다.
9인제 경기에서 코트는 서브존이 없으며, 양 사이드라인 내 엔드라인 뒤쪽에서라면 어디에서나 서브할 수 있다. 어택라인은 없으며, 페니트레이션 폴트는 적용하지 않는다. 사이드라인으로부터 최소 3m, 엔드라인으로부터 최소 5m의 프리존을 둔다.
네트의 높이는 네트 꼭대기에서 코트 중앙의 바닥까지를 말하며, 청소년이나 낮은 네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다. 6인제인 경우 남자일반은 2.43m, 여자일반은 2.24m, 고등학생 남자 2.4m, 고등학생 여자 2.2m, 중학생 남자 2.3m, 중학생 여자 2.15m, 초등학생 2m이다. 9인제의 경우 네트 중앙에서 남자일반 2.38m, 여자일반 2.15m, 고등학생 남자 2.25m, 고등학생 여자 2.05m, 중학생 남자 2.15m, 중학생 여자 2m, 초등학생 1.9m이다.
네트의 길이는 9.5m, 너비는 1m이며, 그물망은 가로와 세로 각 10㎝이며 네트 상단에 5㎝ 너비의 밴드를 두 겹으로 붙여야 한다. 네트는 어느 부분이든 똑같은 높이가 되게 수평으로 쳐야 하며, 양쪽 사이드라인 곧바로 위 부분에는 네트 위 끝에서부터 아래 끝까지 너비 5㎝의 흰 천으로 된 사이드마커가 부착되어 있어, 심판들은 서브된 공이나 상대편 코트로 넘어간 공이 그 바깥쪽 가장자리를 따라 네트 위로 80㎝쯤 뻗어 있는 유연한 안테나 안으로 들어갔는지 바깥쪽으로 나갔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안테나는 길이 1.8m, 지름 약 1㎝의 것으로 재질은 글래스파이버, 즉 유리섬유나 그와 비슷한 것으로 유연성이 있는 것이면 된다. 6인제 경기에서는 사이드라인 위의 네트에 수직으로 세우고, 9인제 경기에서는 사이드밴드에서 20㎝ 떨어진 곳에 세운다. 사이드밴드는 너비 5㎝, 길이 1m의 흰색으로 하고 사이드라인상 코트에 수직으로 부착한다. 안테나는 10㎝ 간격의 밝은색으로 가능한 한 빨간색과 흰색으로 얼룩진 무늬를 준다. 안테나와 사이드밴드는 네트의 일부분이다.
공의 둘레는 65∼67㎝이어야 하며, 무게는 260∼280g이어야 한다. 볼의 내부 기압은 0.30∼0.325㎏/㎝(294.3∼318.82mbar 또는 hpa)이어야 한다. 배구경기에 사용되는 모든 볼은 둘레·무게·기압·형태·색상 등이 같은 규격이어야 한다. FIVB에서 주최하는 국제경기에서는 3개의 볼이 사용된다. 이 경우 6명의 볼키퍼는 프리존의 각 코너에 1명씩, 그리고 주심과 부심뒤에 1명씩 있게 된다.
9인제인 경우 볼의 바깥둘레는 일반남녀 및 대학생 66(±1)cm, 남녀 고등학생 63(±1)cm, 남녀 중학생 63(±1)cm이고, 무게는 일반남녀 및 대학생 270(±10)g, 남녀 고등학생 250(±10)g, 남녀 중학생 200(±10)g이다.
팀마다 통일된 청결한 복장으로 출전하여야 한다. 선수는 셔츠·팬츠 및 뒤꿈치가 없는 고무나 피혁제품으로 된 가벼운 신발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시합중에 부상의 원인이 될 염려가 있는 보석·핀·팔찌·팔목시계나 고리가 달린 혁대 등을 부착해서는 안된다. 선수는 가슴과 등에 번호를 붙이는데 1∼15까지의 숫자를 골라서 쓴다.
등번호는 글자너비 2㎝, 글자높이 15㎝, 가슴번호는 글자너비 2㎝, 글자높이 8∼15㎝로 되어 있어야 한다. 주장선수는 왼쪽 가슴에 번호색과 같은 것으로 가로 8㎝, 너비 1.5㎝의 주장마크를 달아야 한다.
FIVB는 국제배구대회를 4년 주기로 개최할 것을 권장했고, 이런 주기는 1969년 월드컵대회로 시작되었다. 월드컵대회는 올림픽경기대회가 열린 이듬해에 열린다. 월드컵대회가 열린 이듬해에는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리고, 그 이듬해에는 유럽선수권대회·아시아경기대회·아프리카경기대회·범미주경기대회 등 지역대회가 열리며, 그 이듬해에는 다시 올림픽경기대회가 열린다.
그밖의 세계대회로는 남녀 모두 참가할 수 있는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아시아배구선수권대회·아시아유스배구대회·세계청소년배구선수권대회·세계유스대회가 있다. 또한 남자만 참여할 수 있는 유니버시아드대회와 월드리그 국제남자배구대회가 있으며, 여자만 참여할 수 있는 BCV컵대회와 그랑프리 국제여자배구대회가 있다.
1928년 조선체육협회 주체로 10월에 거행된 조선신궁종합경기대회 때부터 배구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지만, 이때부터 광복 전까지는 학교체육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경기내용면에서도 상당히 발전하였고, 참가팀과 대회 수도 늘어났다. 이 시기에 활약했던 선수들은 모두 해방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배구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 선수들 가운데 철도국의 박계조와 안종호는 우리 배구사에서 신화적인 인물이었다. 박계조의 배구에 대한 열정은 1962년 박계조배 배구대회가 창설되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안종호는 한국사상 처음으로 심판이 되었다. 1945년 11월 20일 KVA(Korea Volleyball Association:대한배구협회)가 발족되면서 불붙기 시작한 배구열은 전국체육대회와 1956년 10월에 창설된 전국남녀 종별 선수권대회 등을 통해서 9인조 배구의 전성기가 펼쳐졌으며, 1960년에는 6인제로 바뀌었다.
1958년 5월 제3회 아시아경기대회에는 6인제만을 출전시켜 남녀 모두 은메달을 차지함으로써 아시아에서의 2위의 지위를 확보했으며, 국내에서는 1959년 제40회 전국체육대회부터 처음으로 6인제 경기를 정식으로 채택하였다. 또한 1959년 10월에는 정식으로 FIVB(Fé dé ration Internationale de Volleyball:국제배구연맹)에 가입하였다. 1964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일본 도쿄에서 열린 올림픽경기대회에 참가하여 남자 10위와 여자 6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1969년 12월 서울에서 개최된 제3회 아시아 청소년배구대회에서 최강을 자랑하던 일본을 물리치고 남녀팀이 함께 우승하였으며 1970년대 한국배구는 기업들의 스포츠 참가가 두드러져서 많은 실업팀의 창단에 기여하였다.
1980년대에는 변혁의 바람이 불어와 4개 단체로 나뉘어 있던 실업·대학·중고등부·초등학교 연맹을 통폐합함으로서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1984년 백구의 대제전이라 부르는 대통령배 배구대회가 창설됨으로써 그동안 계속되온 실업연맹전이 없어지고 성인배구도 반은 프로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1990년대 들어 한국배구는 새로운 양상을 보인다. 여자팀의 경우 대농과 현대의 양대산맥이었던 체제가 무너지면서 호남정유를 시작으로 한일합섬과 흥국생명 등 신흥세력들이 부상하였고, 남자팀의 경우도 상무와 한양대학교·성균관대학교 등이 코트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열기를 띠었다. 그동안 파워와 조직력을 위주로 했던 플레이는 세계적 기류에 맞춘 힘과 높이의 배구로 전환되었다.
1976년 제21회 몬트리올(Montreal) 올림픽경기대회에서 한국 구기사상 처음으로 여자배구에서 동메달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2000년 제27회 시드니(Sydney) 올림픽경기대회에서 남자배구는 9위를 하였으며, 여자배구는 1976년 몬트리올 대회 이후 24년 만에 메달획득에 도전했으나 힘과 높이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여 출전 12개국 가운데 8위에 그쳤다.
국내경기로는 전국체육대회의 배구경기를 비롯하여 종별배구선수권대회·한국배구슈퍼리그·한국실업배구대제전·전국남녀대학배구선수권대회·대통령배전국남녀고등학교배구대회·춘계전국남녀중고배구연맹전·박계조배전국9인제배구대회 등이 있으며, 전국대회 규모의 초등학교 배구대회도 여러 개가 있다.
1896년 스프링필드에서 최초의 공개 시합이 개최되었으며, 원래의 규칙은 5인제·21점제였으나 차츰 개량되어 1920년 무렵에는 6인제·15점제·로테이션제 등 현행 6인제 국제 규칙이 확립되었다. 1925년에는 소련 배구협회가 조직체로서는 처음 창설되었다. 창안국인 미국에서는 이보다 3년 늦은 1928년에 미국 배구협회를 설립하였다. 그 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에 미국과 소련이 참전하면서 전 세계에 전파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뒤인 1947년에는 세계적 통일기관으로 국제배구연맹(FIVB)이 결성되었다. 1949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에서 제1회 남자 세계 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소련이 첫 우승을 차지하였다.
여자 대회는 남자보다 3년 늦은 1952년의 모스크바 대회부터 창설되었고, 남자와 마찬가지로 소련이 첫 우승을 차지하였다.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도 1957년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때이며, 실제로 올림픽에 등장한 것은 1964년 도쿄올림픽부터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종목 중 하나로 성장하였으며 국제배구연맹은 규모 면에서 국제육상연맹 다음으로 큰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1927년에는 배구의 기술발전을 위하여 조선 중앙 가톨릭청년회에서 극동올림픽위원인 F.H. 브라운을 초청, 강습회를 갖기도 하였다. 1945년 11월 20일 조선 배구협회가 발족되었고, 광복과 더불어 부활된 전국체육대회(광복경축종합체육대회) 때부터 배구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1955년 제1회 아시아배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여 2위를 하였고, 1958년 제3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6인제에 출전하여 남녀 모두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6인제인 경우 네트의 높이는 남자 대학 및 일반이 2.43m, 여자 대학 및 일반이 2.24m로 국제 규칙을 따르며 고등학교, 중학교는 따로 일정 기준을 설정하여 실시하고 있다. 네트의 높이는 수평을 이루어야 하고 양쪽 사이드라인 바로 윗부분에 바닥과 수직으로 너비 5cm의 흰 천과 안테나를 설치한다. 공격할 때 볼은 안테나 안쪽을 통과시켜야 한다. 6인제에서는 국제 규칙상 코트의 사이드라인과 엔드라인 바깥쪽 2m 이내에는 심판대 이외의 어떠한 장애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코트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는 최저 7m, 가능하면 12m 이상이 바람직하다.
보통 배구 시합 중에 일어나는 플레이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 서브 → 서브 리시브 → 토스 → 스파이크로 서브 측에 넘어오고 블로킹 → 리시브 → 2단토스 → 스파이크로 볼을 다시 넘기면 다시 계속해서 상대편이 리시브 → 토스 → 스파이크로 응수하는 행위가 반복된다. 이 과정에 여러 가지 규칙이 따르며 그 결과에 따라 득실점이 결정된다.
경기 중에 자주 일어나는 배구의 주요 반칙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터치 네트 : 플레이 도중에 선수의 몸이나 의복 등이 네트에 닿는 경우
오버 타임 : 3회 이내의 패스 또는 스파이크로 상대 코트에 볼을 넣어야 하는데, 그 횟수 이상 볼과 닿는 경우. 단, 블로킹으로 생긴 최초 접촉은 포함하지 않는다.
홀딩 : 볼을 잡고 있거나 안고 있거나 하는 경우
오버 네트 : 블로킹 외에 네트 위로 손이 넘어와서 상대편 코트에 있는 볼과 닿는 모든 경우
패싱 더 센터라인 : 플레이 중에 센터라인을 벗어나는 경우
페니트레이션 폴트 : 서브 때 선수가 로테이션에 따라 정해진 위치에 있지 않거나, 랠리 중에 후위 선수가 어택라인을 넘어 네트 위에서 공격한 경우.
- 2016년 제31회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배구 메달 수 : 2개
- 2016년 제31회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배구 종목
· 남자 | 여자 : 12팀 토너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