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부석 (望夫石)
천궁의 왕자는 지신의 딸을 보자마자 한눈에 정이 들었다. 공주의 자색에 매혹된 왕자는 은근히 공주만 주시하다보니 연회가 끝날 때까지 술도 몇 잔 들지 못하였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천궁의 귀빈들은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천왕이 먼저 용거(龍車)를 불러다가 타고 하늘로 오르자 그의 뒤를 따라 구름도 타고 무지개도 타고 바람도 잡아타면서 천궁의 귀빈들은 잠깐 사이에 사라졌다. 천궁으로 돌아간 왕자는 자나깨나 공주를 잊지 못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왕자는 미칠 것만 같았다. 그는 천궁 밖에 나가서 백두산을 내려다보면서 얼없이 서있곤 하였다.
그러던 왕자는 천왕의 눈을 피해 가만히 백두산으로 내려왔다. 그가 백두산에 내려와 점심을 먹던 곳을 찾으니 웅장한 새 궁전이 우뚝 솟아있었다. 그사이에 지신은 천왕의 방문을 기념하여 연회를 베풀었던 자리에다 새 궁전을 지었던 것이다. 궁전 뜨락에서는 공주가 시녀들과 함께 꽃차를 둘러싸고 춤을 추며 노래부르고 있었다. 한참 지나서였다. 공주는 꽃차에 홀로 올라가서 너울너울 춤을 추었고 시녀들은 손을 잡고 꽃차 주위를 빙빙 돌면서 노래를 불렀다. 공주가 휘젓는 팔은 백학이 나래치는 듯, 하느적거리는 허리는 봄바람을 맞은 실버들인 듯, 웃음을 머금은 얼굴은 이슬을 굴리는 함박꽃이런 듯...
넋을 잃고 바라보던 왕자는 바람신을 시켜서 공주와 꽃수레를 몽땅 소나무숲속으로 가져오게 하였다. 차에 앉은대로 소나무숲속으로 오게 된 공주는 영문을 모르고 어리둥절해서 서있었다. "공주께선 놀라지 마시고 머리를 들고 대상을 보시라." 낯선 사나이의 목소리인지라 공주는 간이 콩알만해졌다. 두렵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그는 머리를 숙인 채 처들지 못하였다. "공주님, 어이하여 이 왕자를 잊었나이까. 한번 만나본 후 그대 생각이 절절하여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찾아왔나이다. 오늘 무례하게 여기로 모셔왔으니 널리 양해하기를 바라나이다."
왕자의 정다운 목소리를 들은 공주는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왕자의 눈에서는 불타는 연정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금빛은빛이 반짝이는 옷을 입은 왕자는 어찌보면 미남같고 어찌 보면 천하에 당할 자 없는 장수 같았다. 공주의 가슴에는 이름할 수 없는 이상야릇한 감정이 짜릿하게 파고들었다. 왕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공주를 찾아오게 된 경과를 이야기하고 반석같은 연모의 정을 고백하였다.
"왕자님께서 어이 이런 말씀을 하시와요. 그대는 천궁의 사람이옵고 소저는 지상의 사람이와요. 배필이란 마음뿐인가 하오이다."
"이 왕자에겐 변신술이 있사온즉 낮이면 그대를 새로 만들고 밤이면 그대를 사람으로 만들어 저의 곁에 있게 하겠나이다."
"천왕과 황후께서 허락할리 만무하오니다. 아예 단념하심이 좋을 듯하오이다."
"그럴리 없나이다. 절대 그럴리 없나이다. 천황과 황후께 이미 여쭈었나이다."
왕자는 어여쁜 공주를 놓칠까봐 슬쩍 거짓말을 꾸며댔다. 그러자 공주는 부끄러워서 아미를 숙이었다. 왕자는 "후-"하고 공주를 불어서 새로 만들어가지고 하늘로 올라갔다. 황후는 왕자의 일에 다소 짐작이 있었지만 시침을 뚝 땄다. 그러다가 하루는 왕자에게 물었다. "네가 요즈음은 왜 새와 떨어질 줄 모르느냐? 그 새는 도대체 어디서 생긴거냐?" 왕자는 어머니를 기이었다. "예, 저 새는 백두산의 새인데 전일에 내려갔다가 하도 고와서 어깨에 앉혀왔사옵니다."
"그렇다면 그 새를 조롱에 가두어서 천궁의 안쪽문 위에 걸어놓아라." 가련한 공주는 이렇게 조롱 안에 갇혔다.
밤이 되자 왕자는 공주를 박쥐로 둔갑시켜서 조롱에서 빠져나오게 하였다. 왕자의 침실로 돌아온 공주는 눈물을 머금고 하소연하였다. "천궁으로 올 때 양량친께서 응낙이 있었다고 하옵시고는 내가 갇히게 되어도 어이하여 말씀 한마디도 여쭈지 못하오이까?" 왕자는 성근하게 빌었다.
"내 그대를 사랑함은 일편단심이오이다. 급히 자시는 밥에 목이 멘다는데 그대는 너무 급히 서두르지 마오이다. 내일 내가 어머님께 청을 들겠으니 그리 아오이다." 하여 날이 희붐히 밝자 공주는 다시 박쥐로 변하여 조롱안에 들어갔고 조롱안에 들어간 후에는 또 새로 변하여야 하였다. 그러나 이러기도 며칠을 가지 못하였다. 황후는 왕자의 기미를 눈치 차리고 구멍이 더 작은 조롱에다 새를 가두게 하였다. 왕자는 새를 매미로 변신시켜서 조롱에서 빠져나오게 하였다.
"저도 그대를 불같이 뜨겁게 사랑하오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연분은 절대 성사될 것 같지 못하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서라도 지상으로 돌려보내주옵소서." 공주는 참고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대는 너무 상심하지 마오이다. 내일은 황후가 일이 되도록 천왕께 여쭈겠다 하였나이다."
공주와 갈라질 수 없다고 생각한 왕자는 이런 거짓말로 공주를 달래었다. 그는 황후가 시녀를 시켜서 은근히 조롱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밤이면 조롱속의 새가 없어진다는 시녀의 말을 들은 황후는 구멍이 더 작은 조롱에다 새를 가두라고 분부하였다. 밤이 되자 왕자는 공주를 골팽이로 둔갑시켜서 조롱을 빠져나오게 하였다. 왕자의 방으로 온 공주는 구슬프게 울었다.
"왕자님, 지상에 돌려보내주시지 않으려면 절 죽여주소이다. 더는 이렇게 살아갈 수 없나이다."
"그댄 상심하지 마옵소서. 내일이면 사랑의 신과 의논하고 그대를 나의 떳떳한 안해로 맞아들이겠나이다."
왕자가 아무리 구슬려도 공주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천궁의 왕자가 자기의 딸을 꾀여갔다는 소식을 뒤늦게야 듣게 된 지신은 천왕이 노여워할까봐 인차 사자를 띄워서 자기 딸을 돌려보내달라고 하였다. 천왕이 만조백관들을 불러다가 웬 일이냐고 물어보았으나 입을 여는 신하가 없었다. 이때 황후가 나서서 아들이 공주를 데려온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다. 천왕은 왕자를 불러들이고 엄하게 꾸중하였다. "네가 만약 공주와 기어이 배필을 맺는다면 천왕의 왕위를 계승하려니 꿈도 꾸지 말어라." 그리고는 신하들에게 "당장 공주를 돌려보내거라."
공주를 잃어 버린 왕자의 가슴은 오리오리 찢기는 듯이 아팠다. 공주가 그리워 밥맛이 떨어질 지경이었다. 날이 갈수록 그의 가슴속에서는 사랑의 불길이 더욱 세차게 타올랐다. 왕자는 더는 참을 수 없어서 오색구름을 잡아타고 다시 백두산으로 오르내리기 시작하였다. 백두산의 공주도 왕자가 그리운지라 그들은 만나기만 하면 시간 가는줄도 몰랐다. 이 일을 안 천왕은 왕자에게 여러번 충고하였지만 왕자는 그냥 귀밖으로 흘려버렸다.
천왕은 더는 그대로 둘 수 없어서 사랑의 신을 불러들였다. "그들의 사랑이 굳어 버리게 그들의 심장을 돌심장으로 만들어 버려라. 9만년을 돌바위로 굳어지게 하라." 천왕의 엄한 령을 받은 사랑의 신은 왕자의 뒤를 슬그머니 따라서 백두산으로 날아 내려왔다. 왕자가 공주를 찾아서 궁전으로 갈 때 그들이 서로 마주오는 것을 보고 사랑의 신은 그들을 돌바위로 굳어지게 하였다. 백두산의 지하삼림 속에는 지금도 왕자와 공주의 망부석이 우뚝 솟아있다.
대표적인 설화는 신라시대 박제상(朴堤上, 또는 金堤上)의 아내가 치술령에서 죽어 망부석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눌지왕 때 고구려에 볼모로 잡혀간 왕제(王弟)를 구해 온 박제상은 집에도 들르지 않고 바로 일본에 건너가 또 다른 왕제를 구해 보낸 뒤 일본에서 신라의 신하임을 고집하다 죽는다.
그의 아내는 일본에 간 남편을 기다리다 죽어서 망부석이 되고, 그 곳 주민은 부인을 칭송한다. 박제상의 부인은 죽어서 치(審)라는 새가 되고 같이 기다리다 죽은 세 딸은 술(述)이라는 새가 되었다는 전설도 있고, 이들 모녀가 치술령신모(審述嶺神母)가 되었고 이에 주민들이 사당을 지어 모셨다는 기록도 있다.
엄밀히 말해서 사람이 돌로 변한다는 화석(化石) 모티프는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돌’이라는 단어에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찬양받을 만한 기념물이라는 뜻이 있다.
이러한 돌로 후에 인공으로 기념비를 세우거나 죽은 장소에 있던 자연석을 기념하는 대상물로 삼게 되면, 그 곳 주민은 망부석(기념비나 자연석)을 대할 때 훌륭한 부인을 대할 때와 같은 경건한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줄이면 바로 사람이 죽어 망부석이 되었다는 화석(化石)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부인이 죽어 새가 되었다는 〈치술령망부석전설〉에서의 새의 의미는 일본에 건너간 뒤 소식이 없는 남편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새가 되어 훨훨 날아 바다를 건너가고 싶은, 살아서의 공간을 극복하려는 의지이다.
부부의 만남이 산 몸으로는 불가능하므로 죽은 뒤에 새가 되어 소원을 푸는 것이니, ‘이 몸이 새가 된다면’ 하는 살았을 적의 소원이 죽어서 실현이 되었다는, 죽음을 초월한 부부의 사랑을 뜻한다. 마찬가지로 새가 되어서라도 아버지를 만나고 싶은 소원 때문에 딸도 새가 된 것이다.
경상북도 월성군 외동면의 치술령 아래에 이들 새가 살았다는 은을암(隱乙庵)과 위패를 모신 당(堂)이 있다. 오랜 기념정신은 망부석으로, 죽어서라도 만나겠다는 의지는 새로, 주민의 부인에 대한 존경심과 신앙심은 산신으로 나타난 것이다.
전라북도 정읍시 정읍사공원에 있는 망부석은 아내가 장사를 나간 남편을 기다리던 곳을 기념한 돌이며 여기에 〈정읍사 井邑詞〉 노래와 이 노래를 이야기로 꾸민 전설이 있는데, 이것도 오랜 기념정신을 뜻하는 것이다.
경상북도 영일군의 〈망부산(望夫山)솔개재전설〉은 신라 말 경애왕 때 소정승(蘇政丞)이 일본에 사신으로 가 돌아오지 않자 부인이 산에 올라가 기다리다 지쳐 죽어 산 이름이 망부산이 되었으며, 부인을 기념하는 뜻에서 사당인 망부사(望夫祠)를 짓고 같이 기다리던 개와 말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는 내용으로, 〈치술령망부석전설〉의 변형이라 하겠다.
다만 망부석이 망부산으로 규모가 커진 것이 다르다. 고기를 잡으러 갔거나 혹은 중국에 사신으로 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아내가 떨어져 죽었다는 서해안의 〈낙화암전설 落花巖傳說〉도 이 망부석설화의 변형으로 보인다.
역사적인 사건을 한 여인이 정절을 통해 고통 속에 소화하고 후세 주민은 이를 기리는 내용인 망부석설화는 한국인의 의식을 단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섬세함을 하나하나 읽어보면, 단순히 사랑하는 이들의 헤어짐이 아니라,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과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상황앞에 스러져간 젊은 부부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시,
영화,
- 원작자: 이서구
- 조명: 장기종
- 미술: 박석인
- 망부석 - 네이버 영화
밝아 찾아보니
처마 끝엔 빈둥지만이
구구 만리 머나먼 길
다시 오마 찾아가나
저 하늘에
가물 거리네
헤에야 날아라
헤야 꿈이여
그리운 내 님 계신곳에
푸른 하늘에
구름도 둥실둥실 떠가네
높고 높은 저 산 너머로
내 꿈마저 떠가라
두리둥실 떠가라
오매불망 내 님에게로
깊은밤 잠못 이뤄
창문열고 밖을보니
초생달만 외로이 떴네
멀리 떠난 내님 소식
그 언제나
오실텐가 가슴 졸여
기다려지네
헤에야 날아라
헤야 꿈이여
그리운 내 님 계신곳에
달아래 구름도
둥실둥실 떠가네
높고 높은 저 산 너머로
내 꿈마저 떠가라
두리둥실 떠가라
오매불망 내 님에게로
달아래 구름도
둥실둥실 떠가네
높고 높은 저 산 너머로
내 꿈마저 떠가라
두리둥실 떠가라
오매불망 내 님에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