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27일 금요일

국정원장 박지원 과거 불법사찰·정치개입 사과.. "文정권 부당 지시 없어"

 

"국정원장 박지원 과거 불법사찰·정치개입 사과..!? "文정권 부당 지시 없어"

국정원장, 27일 정부서울청사서 대국민 사과
"국정원 불법사찰·정치개입, 과거 정권 보좌기관 오인"
"정치의 계절.. 정치와 거리두기 실천할 것"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국정원)이 27일 과거 국정원의 불법사찰 및 정치개입에 대해 “문재인 정부 들어 국정원의 불법사찰과 정치개입은 없었다”며 대국민 사과했다.

박 원장은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저와 국정원 전 직원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엄중한 명령을 받들어 과거 국정원의 불법사찰과 정치개입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이같이 밝혔다.

박 원장은 “과거 국정원의 불법사찰 및 정치개입은 (당시)청와대의 부당한 지시는 물론 국정원 지휘체계에 따라 조직적으로 실행됐다”며 “정·관계, 학계 인사와 관련 단체, 그리고 그 가족과 단체 회원까지 사찰하고 탄압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문화·예술·종교계 인사들의 동향 수집, 연예인 블랙리스트 작성, 친정부 세력 확보를 위한 특정 단체·사업에 대한 금전 지원 등 과거 국정원이 벌인 불법사찰과 정치개입 사례를 열거하며 “국가정보기관을 ‘정권 보좌기관’으로 오인하고 정권 위에 국가와 국민이 있다는 것을 망각했었다”고 덧붙였다.

박 원장의 대국민 사과는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국정원 불법사찰 재발 방지 결의안 내용을 이행하는 차원이다.

결의안에는 ‘국정원장이 재발 방지와 국민사찰의 완전 종식을 선언하고 해당 사찰 피해자·단체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박지원 국정원장이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국민사찰 종식 선언 및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사진)

박 원장은 문재인 정권 이후에는 불법사찰 및 정치개입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인 만큼 저와 국정원 전 직원은 철저한 정치 거리두기를 실천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한반도 평화를 지원하고, 대공·방첩 사건도 잘 처리하고, 산업기술 유출이나 사이버 해킹, 대테러 등 국익·안보·안전·민생에 기여하는 서비스 기관으로 나아가겠다”고 약속했다


국가정보원, (가칭 )국정원

개요,

정부조직법 제17조(국가정보원) ①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되는 정보·보안 및 범죄수사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으로 국가정보원을 둔다.
② 국가정보원의 조직·직무범위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따로 법률로 정한다.

국가정보원법 제2조(지위)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라 한다)은 대통령 소속(직속)으로 두며, 대통령의 지시와 감독을 받는다.


역사,

대한민국의 국가정보기관으로, 속칭 회사(Company)이다.

전신인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 시절부터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서 대통령이 지시하는 일만 하고 보고하면 되는 기관이므로 다른 정부 부처와 협의할 필요도 없고 국무회의 출석 의무도 없다.

다만, 비상사태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출석하지만 의결권은 없다.

약칭은 정부조직 영어명칭에 관한 규칙(시행 2018.08.01)에 의거한 국정원(NIS)이다.

국가정보원 소속의 3급 이상 공무원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 대상인 고위공직자에 해당한다.

여러모로 미국 중앙정보국과 비교된다.

국가정보원 변천사
중정

안기부

국정원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
국가정보원
中央情報部
國家安全企劃部
國家情報院
Korean Central Intelligence Agency
(KCIA)
Agency for National Security Planning
(ANIS)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NIS)
원 훈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1961 ~ 1998)
정보는 국력이다 (1999 ~ 2008)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 (2008 ~ 2016.6.)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 (2016. 6. ~ 2021. 6.)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 (2021. 6. ~ 현재)


국가정보원은 5.16 군사 쿠데타 직후 김종필에 의해 만들어진 중앙정보부와 제2공화국 설립 직후 국가중앙정보기관의 필요성에 따라 창설한 장면 총리 직할의 중앙정보위원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중앙정보위원회는 위원장인 이철희 장군의 군번을 따서 약칭 '79호실'로 불렸다.

이 중앙정보위는 이철희, 이후락 등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었다.

김종필 본인은 부인했지만 중앙정보위원회가 최초의 군사적 정보 외의 포괄적 정보를 수집, 운용하고 관리 감독하던 기관은 중앙정보위였고, 중앙정보부와 국가정보원의 모태가 되었다는 견해는 많다.

초기 중앙정보부 법령이 발표되었을 때 권한이 너무 막강한 나머지 일각에서는 헌법보다 상위의 법처럼 여겨질 정도였다고 한다.

중앙정보부는 미국의 CIA와 FBI와 동급의 권한을 가진 매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으며 군사정부 시절에 실제로 그렇게 쓰인 내력이 있다.

1965년 대한민국 정부는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을 통해 일본국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약칭 한일기본조약/한일청구권협정)을 체결하였다.

1972년 7월 중앙정보부장 이후락 부장은 ‘7.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하였다.

10.26 사건의 여파로 대대적인 중앙정보부 물갈이 작업이 이루어지며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 부장서리를 겸했고 신군부 집권 후 1980년에 중앙정보부를 국가안전기획부로 개편하였다.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는 큰 틀에서 차이가 나지 않는 기관이었으나, 국가안전기획부는 형식적이긴 했으나 명칭 그대로 국가의 안전을 기획하는 역할을 특히 강화하였다.

1995년 국가안전기획부 시절에 남산 청사가 비좁아지자 남산과 이문동 청사를 모두 통합하여 현재의 내곡동으로 이전하였다.

다른 곳 다 놔두고 내곡동으로 이전한 이유는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넓은 부지가 서울 내에서는 이곳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995년까지는 남산과 이문동에 청사가 있었다.

남산에는 남파공작원과 좌익사범의 색출을 담당하는 국내 파트가, 이문동에는 대외·대북 정보수집과 분석을 담당하는 해외 파트가 소재하고 있었다.

국내 파트가 소재한 남산은 인권 유린과 고문이 이루어진다고 알려진 장소여서 90년대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은 남산에서 나왔다는 말로도 벌벌 떨었다.

그곳에 끌려가면 사람이 불구가 되거나 행방불명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과거 중정과 안기부 시절 횡행했던 고문을 동원한 불법 대공/공안수사나 사법살인으로 이어진 여러 증거조작 사건들, 무분별한 정치사찰의 공포 때문에 현재까지도 일부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국가정보원의 이미지가 아직도 나쁜 것은 아직 한국에 군부독재 시절의 그림자가 남아있다는 뜻이며, 이는 국가정보원이 끝나는 날까지 지고 가야 할 짐이기도 하다.

권력자의 밑에서 행한 수치스러운 사건들은 원죄이니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국가정보원의 역사가 곧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면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당시 높으신 분들의 뜻에 따라 움직인 것이라고 해도 그것이 면죄부가 되지는 못한다.

이 과정에서 억울하게 죽거나 불구가 되고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며, 현재도 몇몇 피해자들은 정당한 보상은 커녕 가해자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이런 어두운 흑역사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등이 집권하면서 관련된 증거를 인멸하고 시간이 너무 흘러 이후 진상규명이 거의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부에서도 이것을 자신들의 죄라고 보고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지만 애국을 했을 뿐이라거나 어쩔 수 없었다는 둥의 자기합리화로 이를 피하려 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1998년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평생에 걸쳐 정보기관의 용공조작과 사찰, 감시에 시달렸던 사람이었고, 정치공작에 깊게 관여했던 권영해 부장과 국가안전기획부는 불법적인 자료를 대거 소각하고 시치미를 떼며 김대중 대통령을 맞이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군인 출신이자 중앙정보부, 민주정의당 출신의 이종찬을 안기부장으로 발탁하여 국가안전기획부를 1999년 1월 국가정보원으로 개편하고 새출발시켰다. 

국민의 정부의 정보기관 개혁작업이 첫 삽을 뜨자 이에 반발한 일부 관계자들이 '이대성 파일'을 비롯한 언론플레이용 괴문서 유출과 내부저항으로 현상유지를 시도했다. 

그러던 중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공인력 숙청 논란이 있었고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이종찬 안기부장이 해명한 바 있다.

그리고 당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전 세계적으로 박수와 존경을 받던 시대였는데, 만델라는 인종차별에 맞선 운동을 벌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백인정권에게 반역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26년 만에 출소하여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이 되었다.

만델라는 남아공 백인 우월주의, 백인 보수주의자들의 테러나 정치적 반동 움직임, 쿠데타 시도에 평화적이면서도 실용적인 대응을 통해 혼란스런 정국을 풀어냈고 만델라의 '잊지는 않지만, 용서한다(forgive without forgetting)'는 '진실과 화해' 정책은 당시 세계 곳곳에서 과거사 규명과 통합의 모델이 되었다.

만델라는 가해자들이 죄를 스스로 고백, 사죄하는 조건으로 모든 죄를 사면해 줬고, 이러한 정책은 보복이 되풀이 되지 않고 국가적 역량을 결집시킬 수 있는 미래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대중 대통령은 안기부를 국가정보원으로 개편하면서 만델라에게서 이 모델을 채택했는데, 일각에서는 불법을 저지른 관계자들에 대한 처벌이 미흡했던 탓에 이후에도 계속해서 비슷한 일들이 되풀이되었다.

정보기관, 국군의 인권유린 가해자들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부분이 빠져있었으며, 김대중 대통령의 용서만이 있었다고 비판한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가정보원 업무를 해외정보로 국한하거나 심지어 해체하자는 주장을 했었다. 

이러한 주장은 이후 누가 야당이 되든 야당 쪽을 중심으로 계속되었다.

이름을 국가정보원으로 바꿨지만 바뀐 후에도 군사정권 하에서 벌어질법한 일들이 자꾸만 일어났다.

김대중 정권 시절에도 2002년 대표적인 국정원 불법 도청 사건이 일어났다. 

참여정부 시절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여 변모하는 모습을 잠깐 보였다.

국가정보원 직원들은 현대적인 공안 엘리트 집단이라는 이미지가 이때 형성되어 그 당시 몇 년간은 국내 최고의 선망 직장으로 여겨진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 들어 우경화된 댓글 및 인터넷 여론 조작, 각종 정치공작, 사찰활동 등으로 이미지가 다시 나빠지기 시작했는데,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취임 3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터졌다.

하지만 몇몇 사건은 이명박 정권 당시 벌어졌던 일이 밝혀지거나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정상회담록 무단공개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카카오톡 사찰 논란, 전라도 지역과 진보성향 민간인사, 야권 정치인을 비하하는 인터넷 글을 쓰던 좌익효수 등 불미스러운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고 있고, 실제로 정보력에서 크게 하락하고 있다.

정치적인 의도로 국가기록물을 공개해서 나눠주는 정보기관은 적어도 상식적인 민주국가의 정보기관들 중에서는 국가정보원이 유일하다,,,


#정보기관 #정치적인 의도로 국가기록물을 공개 #민주국가의 정보기관 #박 원장 #문재인 정권 #불법사찰 #정치개입이 없었다고 강조 #대선을 앞두고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인 만큼 #저와 국정원 전 직원은 철저한 정치 거리두기를 실천할 것”이라고 약속 #한반도 평화를 지원하고 #대공·방첩 사건도 잘 처리하고 #산업기술 유출 #사이버 해킹 #대테러 #국익·안보·안전·민생에 기여 #서비스 기관으로 나아가겠다”고 약속 #정·관계 #학계 인사 #관련 단체 #그 가족과 단체 회원까지 사찰하고 탄압했다 #문화·예술·종교계 인사들의 동향 수집 #연예인 블랙리스트 작성 #친정부 세력 확보를 위한 특정 단체·사업에 대한 금전 지원 #과거 국정원이 벌인 불법사찰과 정치개입 사례를 열거 #국가정보기관 #정권 보좌기관’으로 오인하고 #정권 위에 국가와 국민이 있다는 것을 망각했었다 #박 원장의 대국민 사과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국정원 불법사찰 재발 방지 결의안 내용을 이행하는 차원 #결의안 #국정원장이 재발 방지와 국민사찰의 완전 종식을 선언하고 #해당 사찰 피해자·단체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라’는 내용이 포함 #국정원장 박지원 #과거 불법사찰·정치개입 사과 #文정권 부당 지시 없어 #국정원장, 27일 정부서울청사서 대국민 사과 #국정원 불법사찰·정치개입 #과거 정권 보좌기관 오인 #정치의 계절 #정치와 거리두기 실천할 것 #과거 국정원의 불법사찰 및 정치개입 #당시)청와대의 부당한 지시는 물론 국정원 지휘체계 #조직적으로 실행됐다 #정·관계 #학계 인사와 관련 단체 #그 가족과 단체 회원까지 사찰하고 탄압했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 직원들 #현대적인 공안 엘리트 집단이라는 이미지가 이때 형성 #당시 몇 년간은 국내 최고의 선망 직장으로 여겨진 시절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 우경화된 댓글 #인터넷 여론 조작 #각종 정치공작 #사찰활동 #이미지가 다시 나빠지기 시작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 #취임 3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터졌다 #몇몇 사건은 이명박 정권 당시 벌어졌던 일이 밝혀지거나 그대로 이어진 것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 #정상회담록 무단공개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 #카카오톡 사찰 논란 #전라도 지역과 진보성향 민간인사 #야권 정치인을 비하하는 인터넷 글을 쓰던 좌익효수 #불미스러운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고 있고 #실제로 정보력에서 크게 하락하고 있다 #만델라에게서 이 모델을 채택 #불법을 저지른 관계자들에 대한 처벌이 미흡 #이후에도 계속해서 비슷한 일들이 되풀이되었다 #정보기관 #국군의 인권유린 #가해자들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부분이 빠져 #김대중 대통령의 용서만이 있었다고 비판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가정보원 업무를 해외정보로 국한하거나 #심지어 해체하자는 주장을 했었다 #이러한 주장은 이후 누가 야당이 되든 야당 쪽을 중심으로 계속되었다 #이름을 국가정보원으로 바꿨지만 #바뀐 후에도 군사정권 하에서 벌어질법한 일들이 자꾸만 일어났다 #김대중 정권 시절에도 #2002년 대표적인 국정원 불법 도청 사건이 일어났다 #대한민국의 국가정보기관으로, 속칭 회사(Company)이다 #전신인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 시절부터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서 #대통령이 지시하는 일만 하고 보고하면 되는 기관 #다른 정부 부처와 협의할 필요도 없고 #국무회의 출석 의무도 없다 #비상사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출석하지만 의결권은 없다 #약칭은 정부조직 영어명칭에 관한 규칙(시행 2018 08 01)에 의거한 국정원(NIS)이다 #국가정보원 소속의 3급 이상 공무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 대상인 고위공직자에 해당한다 #미국 중앙정보국과 비교된다 #남산 청사가 비좁아지자 #남산과 이문동 청사를 모두 통합하여 #현재의 내곡동으로 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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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정, "이혼 3번, 교통사고 4번" '끔찍한 인생사 ,

김하정, "이혼 3번, 교통사고 4번" '끔찍한 인생사 ,

197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 김하정이 종합편성채널 TV조선 인생수업토크쇼 '대찬인생'에 출연해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털어놨다.

김하정이 최근 녹화에서 밝힌 인생스토리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첫 남편이었던 코미디언 쓰리보이(본명 신선삼)와의 끔찍했던 결혼생활, 그리고 3번의 이혼과 4번의 교통사고, 7번의 성형수술까지 김하정의 인생은 MC 박미선과 출연진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가수, 김하정,

김하정은 70년대 가수 패티김을 닮은 음색으로 혜성같이 등장해 '사랑', '야생마', '금산 아가씨' 등 히트곡을 선보이며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 여가수 중 최초로 비키니를 입어 화제를 모았고, 10대 가수상 수상을 비롯해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당시 성대모사의 달인으로 유명했던 쓰리보이와의 결혼생활은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자신은 원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결혼할 수 밖에 없었던 사연, 그리고 남편의 도박과 폭력, 외도 등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다.

하루하루가 지옥과도 같았던 결혼생활은 남편 외도현장을 급습해 3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후 결혼을 2번 더 했지만 실패했고, 마치 이혼의 징크스처럼 교통사고를 당했다.

특히 머리를 200바늘이나 꿰매고 식물인간 상태로 있다 6개월 만에 겨우 의식을 회복하기도 했다.

게다가 교통사고로 망가진 외모를 되찾기 위해 7번의 성형수술을 견뎌야만 했던 이야기는 스튜디오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불행한 삶의 연속이었던 김하정에게도 행복은 찾아왔다.

38년 만에 첫사랑과 재회해 아름다운 만남을 이어나가고 있고, 앨범 발매를 준비하며 다시 한번 가수로서 새로운 출발을 꿈꾸고 있다.


김하정 신아리랑,     https://youtu.be/6932dUuiOLE

김하정의 파란만장한 인생 스토리,,,


사랑 / 야생마 / 모닥불 / 노래: 김하정,

김하정 - 사랑,

1) 사랑이란 슬픈 길을 알고 왔어도

젊음에 꽃밭에는 찬비만 내려

운명이라 달래 보는 백의의 천사

행여나 오실까

아 아 못다 한 사랑

그늘에서 곱게 피다 지리라

2) 그리움을 꿈에 실은 밤이 지나면

또다시 맞아할 서러운 아침

얼어붙은 북녘 하늘 눈덮인 옛날

언제나 만날까

아 아 영원한 사랑

기다리는 여인 울지 않으리,

대한민국 가요 전설 비운의 스타 김하정 사랑,

김하정 - 야생마,

내 통곡의 의미를 알면은 다시는

비가 안 내려야지

빗줄기 타고서 이 가슴에 때리는

그 젊음의 몸부림 통곡을 했었다.

메아리도 없었다

그러나 조용히 가버린

내 젊은 야생마 비가 내리는 밤이면

비가 내리는 밤이면

빗줄기 타고서 이 가슴 때리는

그 젊음의 몸부림 통곡을 했었다

메아리도 없었다

내 젊은 야생마 비가 내는 밤이면

비가 내리는 밤이면

가수 김하정 50년 喜怒哀樂의 변화무쌍한 인생사,,,

https://youtu.be/pNXgN1zW6uk

https://youtu.be/yt8zFkuOyVg

https://youtu.be/zRpWzNATZs8


풀꽃사랑/가수 김하정,

차창에 기대어 바라보니

새벽 안개 자욱한데

​뿌옇게 핀 수은등 아래

그 사람 울고 서있네

​이 순간을 위하여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나요

바보같은 우리들의 장난은

이별로 끝이 났지만

​너무나 사랑했던 기억들을

어떻게 지울수 있나

​이세상 그 누구도 우리를

갈라놓치 못 할 거라고

​별빛이 쏟아지는 그 밤에

당신은 내게 말했죠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이별은 다가오고

​풀꽃같은 우리들의 사랑은

눈물로 끝이 났지만

​내곁에 그대 없는 숱한세월

어떻게 견딜수 있나


풀꽃사랑/가수 김하정,

https://youtu.be/zRpWzNATZs8

차창에 기대어 바라보니

새벽 안개 자욱한데

​뿌옇게 핀 수은등 아래

그 사람 울고 서있네

이 순간을 위하여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나요

바보같은 우리들의 장난은

이별로 끝이 났지만

너무나 사랑했던 기억들을

어떻게 지울수 있나

이세상 그 누구도 우리를

갈라놓치 못 할 거라고

별빛이 쏟아지는 그 밤에

당신은 내게 말했죠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이별은 다가오고

풀꽃같은 우리들의 사랑은

눈물로 끝이 났지만

내곁에 그대 없는 숱한세월

어떻게 견딜수 있나


김하정 과거사 고백 충격…“신선삼이 ‘넌 내거야’ 방에 쳐들어와…”

김하정 과거사 고백,

가수 김하정이 충격적인 과거사를 밝혔다.

김하정은 14일 방송된 종합편성채널 TV조선 '대찬인생'에 서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고백했다.

패티김을 닮은 허스키한 보이스로 '사랑', '야생마' 등 히트곡을 내며 인기를 모은 김하정은 코미디언 쓰리보이(본명 신선삼)과 결혼했지만 결국 이혼했다.

김하정은 "어느날 지방공연을 가서 선배 여가수와 한 방을 쓰게 됐는데 (신선삼이) '넌 내거야'라며 내 방에 쳐들어왔다"라고 고백했다.

김하정은 "손만 잡혀도 결혼을 해야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내 운명을 받아 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분이 다음 날 기자들을 불러서 우리가 결혼한다고 발표했다.

이미 스캔들이 났기 때문에 결혼해야 했다"고 말했다.

'당시 신선삼이 세 번의 이혼 경험과 애까지 있었다.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냐'는 물음에 "어머니가 다시는 안 본다고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김하정의 결혼 생활은 불행했다. 김하정은 "신혼여행을 간 첫날밤 새벽이 되도록 남편이 오지 않았다.

알고봤더니 카지노 도박장에 가서 밤을 새고 왔더라"라고 말했다.

김하정은 "내가 남편에게 한소리 했더니 오히려 남편이 나에게 화를 냈다.

'용서해줄 테니 반성해라. 베란다로 나가서 반성하라'고 하더라. 당시 12월 초 첫 눈이 내릴 무렵이었는데 얇은 잠옷차림으로 밖에 섰다"고 말했다.

김하정은 "남편이 그 모습을 보고 '울면 눈을 콱 뽑아버린다'라고 했는데 그 말에 너무 질려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김하정은 "눈 가리고 귀 닫고 3년을 살았다.

가수도 못하게 했다.

남편이 의처증도 조금 있었다.

내 무대 의상을 다 찢어버렸고 외출 하는 것도 힘들었다"고 힘들었던 결혼 생활에 대해 털어놨다.

하루하루가 지옥과도 같았던 결혼생활은 남편 외도현장을 급습해 3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후 결혼을 2번 더 했지만 실패했고, 마치 이혼의 징크스처럼 교통사고를 당했다.

특히 머리를 200바늘이나 꿰매고 식물인간 상태로 있다 6개월 만에 겨우 의식을 회복하기도 했다.

게다가 교통사고로 망가진 외모를 되찾기 위해 7번의 성형수술을 견뎌야만 했던 이야기는 스튜디오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후 38년 만에 첫사랑과 재회해 아름다운 만남을 이어나가고 있고, 앨범 발매를 준비하며 다시 한번 가수로서 새로운 출발을 꿈꾸고 있다고 김하정은 전했다.            


쓰리보이 코메디언,

쓰리보이,

쓰리보이(1940년 ~ 2002년 2월 25일, 경상남도 울산)는 대한민국의 희극인으로, 본명은 신선삼(申善三)이다.

코미디언 고(故) 신선삼 씨. 사진=동아일보DB

생애,

신선삼은 1940년에 경상남도 울산군에서 태어났다.

서라벌예술고등학교를 나왔으며, 19세 때인 1959년에 미8군 영내 행사인 ‘김 시스터스 쇼’의 MC로 데뷔하여 총소리 폭발음 등을 입으로 흉내내며 제2차 세계대전을 재현해 내 찬사를 받았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활동하였다. 예명인 쓰리보이는 자신의 이름 영문표기에 알파벳 S가 3번 들어간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연예계에 발을 내딛은 신선삼은 ‘후라이보이’ 곽규석과 함께 원맨쇼의 달인으로 인기를 끌었다.

시민회관에서 열리는 모든 코미디쇼와 가요 공연에서는 '쓰리보이가 MC를 보지 않으면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60, 70년대 그는 인기 MC였다.

특히 유명 가수를 잘 모사했는데 그중 루이 암스트롱을 흉내내는 장면은 김상국과 함께 한국의 루이암스트롱으로 불린 만했다.

황문평 선생의 회고에 따르면 후라이보이 곽규석보다 신선삼이 훨씬 인기가 있었는데 이유는 입으로 흉내내는 트럼펫과 색소폰이 일품이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연예협회 위원장을 맡아 활동하던 중 2002년 2월 지병인 당뇨로 별세했다.

신선삼 씨는 선후배들을 끔찍하게 챙긴 사람이었다.

그는 70년대 후반 연예협회 10대 위원장을 지내고 15, 16대 이사로 재직하면서 생활이 어려운 원로 연예인들을 지원했다가 이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1996년 12월에는 '선행예술인 문화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당시 전국연예예술인노동조합 석현 위원장(57)은 "상가(喪家)에 가면 꼭 만날 수 있는 사람, 만나는 사람에게 반드시 지갑 속 돈의 반절을 나눠주는 사람으로 그는 말년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그의 전처였던 가수 김하정이 티비조선에 나와 그와의 3년간의 결혼생활을 지옥으로 묘사하면서 의리에 죽고 사는 '선행 연예인'으로 알려졌던 신선삼 씨가 실은 폭력 남편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작고한 코미디언 고(故)신선삼(1940~2002)

결혼생활,

당시 가수였던 김하정과 결혼했으나 3년 후 이혼한 경력이 있다.

김하정은 쓰리보이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그가 일방적으로 기자회견을 통해 결혼을 발표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결혼했다고 주장했다.

김하정은 지난 14일 방송된 TV조선 '대찬인생'에서 출연해 "지방 공연을 갔던 어느 날 전남편 '쓰리보이' 신섬삼이 선배언니와 자고 있던 방으로 들어와 '넌 내 거야'라고 하더니 성폭행을 당했다.

“난 이제 당했으니까, 기사가 대문짝하게 나서는 스캔들로 안 좋은 거 보다는 차라리 결혼해서 운명을 받아들이자고 생각했다”고 폭로했다.

김하정 씨는 전 남편 신선삼 씨의 도박과 폭력, 외도 등 불행한 결혼 생활으로 "하루하루가 지옥과도 같았다"

이어 그는 "신선삼은 결혼 첫날밤부터 돌변해서 밤새 도박을 하고 들어와서도 나를 학대했다"며 "의처증도 있어 가수 생활은 꿈도 꾸지 못했다.

내 무대의상을 다 찢어버렸고 외출하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고백해 주변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김하정 씨는 "결혼생활은 남편 외도현장을 급습해 3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주장했다.

사생활,

쓰리보이는 다음과 같은 사건들을 일으켜 대한민국 사회 및 연예계에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1974년 3월 22일 : 자신의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길을 건너던 보행자를 치어 전치 16주의 상해를 입혀 입건되었다.

신선삼은 경찰에서 “공연을 마치고 부인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가던 중 통행금지에 쫓겨 사고를 냈다”고 진술했다.

1976년 12월 4일 : 어느 지방공연 무대에서 알게 된 20대 무희와 두 차례에 걸쳐 정을 통해오다 당시 부인이었던 가수 김하정에게 발각되어 간통혐의로 구속되었다.

1981년 5월 16일 : 서울의 비밀 도박장에서 하루 판돈 3천여만원의 대규모 도박을 상습적으로 하다가 구속되었다.

1986년 6월 5일 : 무면허로 승용차를 몰고 가다가 행인을 치어 중상을 입히자 처벌을 받을 것을 두려워해 내연녀의 동생 김모(당시 29)씨에게 허위진술을 부탁했으나 피해자가 숨진 후 그가 허위진술을 했음을 자백, 교통사고 처리특례법 위반으로 수배된 적이 있다.

1993년 1월 14일 : 1992년 10월 27일 장기공연차 부산의 한 호텔에서 2개월간 숙식한 후 숙식비 418만 9,000원을 지불하지 않고 동년 12월 29일 달아났다가 불구속 입건되었다.

이 사건으로 조사를 받던 중 1990년 5월 3일 선배 희극인 송해를 폭행해서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힌 일도 있다.

1990년에 식당에서 만난 송해가 “너 오랜만이다”라며 악수를 청하자 “내가 네 부하라도 되느냐”며 얼굴을 때렸다고한다.

신선삼은 송해의 고소로 수배를 받던 중 부산 모 호텔에서 2달 동안 머물면서 숙박비 400여만원을 지불하지 않은 혐의(사기)로 1993년 경찰에 검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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