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49번 심문보고서, 충격적인 실체, 일 극우세력, 풍선으로 소녀상 만들어 조롱…성매매 연상 행위까지,일본제국전쟁범죄] 박영심 할머니 원본 영상과 인터뷰 공개,위안부 관련 미군 문서를 악용하는 이들,,,
'위안부' 49번 심문보고서, 충격적인 실체,
위안부 피해 부정,
어이없는 내용,
은연중에 사실 실토,
일 극우세력, 풍선으로 소녀상 만들어 조롱…성매매 연상 행위까지,
일본제국전쟁범죄] 박영심 할머니 원본 영상과 인터뷰 공개,
위안부 관련 미군 문서를 악용하는 이들,
1920년생이며 이민자인 일본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인 알렉스 노부오 요리치.
'위안부' 49번 심문보고서, 충격적인 실체,
한일 극우세력에 이용된 보고서, 내용 들,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파헤치는 르포영화 <코코순이>가 8월 25일 개봉된다.
미국 전시정보국(Office of War Information)의 심문 보고서를 소재로 하는 영화다.
흔히 '전시정보국 49번 심문 보고서'로 불리는 이 문건은 '일본인 전쟁포로 심문 49번 보고서(Japanese Prisoner of War Interrogation Report NO. 49)'라는 제목으로 작성됐다.
작성자인 알렉스 요리치(Alex Yorichi)는 1944년 8월 10일 버마(미얀마)에서 포로가 된 위안부들을 심문한 뒤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 보고서의 원본은 서울시 서울기록원(https://archives.seoul.go.kr/item/82)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44년 10월 1일 자로 제출된 이 보고서 7쪽 말미에, 심문 대상자인 피해자 20명과 위안소 업자 2명의 인적 사항이 적혀 있다.
이 중에서 14번째 위안부로 거명된 인물이 코코순이(Koko Sunyi)라는 여성이다.
1944년에 21세였던 이 피해자가 이번에 개봉될 영화의 주인공이다.
코코순이에 대한 추적을 통해 위안부 강제동원의 실상을 밝히는 방식으로 영화가 전개된다고 보도되고 있다.
위안부 피해 부정,
그런데 지금까지 이 보고서는 위안부 피해를 인정하는 쪽이 아니라 부정하는 쪽에 의해 주로 활용됐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주장은 거짓이고 사기다'라고 주장하는 한·일 양국의 극우세력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로 사용해왔다.
그런 자료가 이번 르포영화에서 활용되는 것이다.
심문관인 알렉스 요리치는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학 교수의 관점으로 위안부들을 바라봤다.
정확히 말하면, 마크 램지어가 알렉스 요리치의 관점을 차용했다.
보고서 서두에서 알렉스 요리치는 "위안부(comfort girl)는 병사들의 편의를 위해 일본군에 딸린 매춘부 혹은 직업적인 군속(professional camp follower)에 불과하다"라고 규정했다.
그는 일본군이 싸우는 곳에서는 어디서든 위안부들을 발견할 수 있다면서, 이들이 '럭셔리'한 대우를 누렸다고 서술했다.
"이들은 다른 곳과 비교하면 버마에서 거의 호화로운(near-luxury) 생활을 했다"라고 말한다.
그는 여성들이 옷·신발·담배·화장품 등을 살 수 있는 돈이 있었고, 병사들이 받은 위문품을 선물로 받기도 했으며, 군인들과 함께 외출도 하고 쇼핑도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오늘날 이런 내용은 위안부가 성노예였음을 부정하는 핵심 논거로 활용되고 있다.
실제로 위안부들이 받은 것은 군표(점령지에서 군용물품 구입 등에 사용된 긴급 통화)였고 그것은 휴지조각이 됐다.
그리고 사적인 시간을 누리기도 했다는 사실이 그들이 성노예였음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고대의 노예나 노비들도 근무시간 외에는 사적인 시간을 향유했다.
이런 이치를 무시한 채 한·일 양국의 극우세력들이 49번 보고서 같은 것을 활용해 진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어이없는 내용,
그런데 이 보고서의 작성자가 누구인지 살펴보면, 문서의 신빙성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중립적 관점으로 한국인 피해자들의 실상을 기록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인물이 심문을 담당하고 보고서를 작성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기관의 책임하에 작성된 보고서이기는 하지만, 보고서를 만든 알렉스 요리치는 일본계 미국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미국에서는 일본계 주민에 대한 강제수용을 피하고자 미군에 자원 입대하는 일본계 2세가 많았다. 요리치도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보고서의 신빙성을 평가할 때는 요리치의 처지도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의 적대국인 일본의 혈통을 가진 재미 일본인의 마인드와 한국인을 식민지 주민으로 하대하는 제국주의 일본인의 마인드가 보고서에 투영됐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그럴 가능성은 가능성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보고서에 반영됐다.
요리치가 심문 내용을 공정하게 기록하지 않았다는 점은 보고서 곳곳에서 쉽게 발견된다.
그는 "심문은 평균적인 조선인 위안부들이 약 25세이며, 배우지 못했고 유치하고 엉뚱하며 이기적임을 보여준다"라고 말한다.
심문의 결과로 그런 결론이 도출됐다는 것이다.
유치하고 이기적이라는 평가는 그가 과연 객관적으로 여성들을 바라봤는지를 의심케 한다.
전쟁터에서 포로가 된 민간인 여성들을 보고 연민이 아닌 경멸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일반적인 인지상정에서 벗어난다.
전쟁통에 미얀마까지 끌려간 여성들이 생존 문제에 집중하다 보면, 오로지 자기 자신만 생각하게 되기 쉽다.
1944년 8월 20일부터 9월 10일까지 3주간이나 집중적으로 심문을 진행한 사람이 그 정도 이해력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요리치가 보고서를 제출한 것은 10월 1일이다.
심문 종료와 보고서 제출 사이에 3주간의 간격이 있었다.
그사이에 판단을 가다듬거나 감정을 배제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위안부들에 대해 공정한 시각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가 공정한 심문관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은 "그녀들은 일본인이나 백인 어느 기준으로 봐도 예쁘지 않다"라는 문장에서도 나타난다.
인격을 의심케 할 만한 이런 서술은 요리치 본인의 문제점보다도 그에게 그런 일을 맡긴 상관의 안목을 의심케 한다.
더 황당한 대목도 있다.
"낯선 사람 앞에서 그녀들의 태도는 조용하고 얌전하지만, 그녀들은 여성의 간계(wile)를 알고 있다"라는 문장이다.
wile은 엉큼함이나 속임수로도 번역된다.
위안부 여성들이 겉으로는 양순하지만 실제로는 엉큼하고 간계를 부린다고 서술한 것이다.
굳이 쓸 필요도 없는 이런 내용을 그는 보고서에 담았다.
그가 위안부 문제의 공정한 사관(史官)이 될 수 없음은 이런 서술만으로도 잘 드러난다.
공정한 심문관의 자질을 결여했기 때문에 그가 내린 결론에도 당연히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위안부들이 돈도 많고 대우도 융숭하게 받았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것이 위안부들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은연중에 사실 실토,
보고서 7쪽의 인적 사항을 살펴보면, 위안부와 심문관 사이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영화 제목으로 등장한 코코순이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요리치가 상대방의 성명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15번 연무지(Yon Muji), 16번 오푸니(Opu Ni), 19번 오키송(Oki Song), 20번 김겁투고(Kim Guptogo) 등의 인명이 그러하다.
심문관이 가장 기본적인 사항인 포로의 이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20명 중에 한두 명이라도 일어를 잘했다면, 그 한둘이 나머지 사람들의 인적 사항을 정확히 전달해줬을 것이다.
요리치 본인도 그 한둘을 통역으로 활용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발음이 불분명한 인명들이 보고서에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미국 상관들이 한국인 인명에 서툴지 않았다면, 그는 보고서를 다시 써야 했을 수도 있다.
포로들과의 대화가 거의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이는데도, 요리치는 위안부들에 대해 7쪽이나 되는 보고서를 생산했다.
이는 그가 누군가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들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단서가 보고서 말미에 적혀 있다.
위안부들의 인적 사항을 적은 7쪽 끝부분에, 함께 붙들린 일본인 위안소 업자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38세 된 기타무라 도미코, 41세 된 기타무라 에이분이 그들이다.
성도 같고 주소도 같은 이 두 사람이 모리치의 진짜 심문 대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위안부들이 돈이 많고 대우도 잘 받았다는 진술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매주 수요시위 현장에 나타나 '위안부는 사기다'라고 주장하는 한국인들과 바다 건너 일본에서 이들을 응원하는 일본 극우세력의 핵심 논거 중 일부는 요리치의 보고서에서 나왔다.
이 점은 한·일 양국에서 위안부 피해를 부정하는 세력과 이들을 지지하는 일본 정부가 얼마나 허술한 토대 위에 놓여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는 일본 정부와 극우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감대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베를린 같은 데에 소녀상이 세워지는 이유도 알려준다.
위안부 피해를 부정하는 세력이 그처럼 허술한 자료들에 의존하고 있으니, 그들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위안부들에게 불리한 서술을 하는 와중에도 요리치가 이 문제의 실상을 보고서 곳곳에 흘렸다는 점이다.
그의 보고서에서는 피해 여성들이 스스로 위안부를 자원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 은연중에 튀어나오곤 한다.
요리치는 업자들이 여성들을 동원할 때 '위안부로 가게 된다'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고 '부상병들을 치료하고 부상병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을 하게 된다'라고 이야기했다고 설명한다.
싱가포르에서 돈을 많이 벌게 해준다는 말도 했었다고 알려준다.
그는 여성들이 이런 말에 속아 버마로 오게 됐노라고 말한다.
오늘날 위안부 문제의 쟁점 중 하나인 '자발적 참여 여부'에 관해 요리치가 적절한 증언을 해준 것이다.
이 대목은 요리치가 피해 여성들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로 폄하한 배경 중 하나를 시사한다.
거짓말에 속아 버마까지 가게 된 여성들이 그의 눈에는 불쌍하게 보이기보다 한심하게 보였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요리치는 위안부들이 일본군의 통제를 받은 사실도 노출했다.
일본군이 가는 곳마다 이들이 있었으며 일본군의 규정이 이들에게도 적용됐다고 설명한다.
아베 신조 전 총리 등이 극구 부인했던 '일본군의 관여' 사실을 요리치가 실토한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49번 보고서는 위안부 피해를 부정하는 쪽이 아니라 긍정하는 쪽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활용될 수 있는 자료다.
신뢰성 낮은 요리치의 태도는 이 자료에 근거한 극우 세력의 주장을 배척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보고서 중간중간에 나오는 사기·기망에 의한 강제연행과 일본군 개입의 실상은 일본의 국가범죄를 입증하는 데도 유용하다.
르포영화 <코코순이>가 일본 극우세력의 무기인 이 보고서를 소재로 진실 규명에 나서는 것은 그런 면에서 의의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일 극우세력, 풍선으로 소녀상 만들어 조롱…성매매 연상 행위까지,
일본 극우 세력이 최근 도쿄에서 ‘위안부’ 소녀상을 조롱하는 행사를 벌였다.
3년 전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강제 중단하게 한 후 자신들은 ‘혐한(嫌韓)’ 전시회를 열었던 이들이다.
일본 극우정당 ‘일본제일당’은 지난 21일부터 이틀간 도쿄에서 ‘2022 도쿄 트리엔날레’라는 행사를 열었다.
트리엔날레는 3년마다 열리는 미술 전시회를 뜻한다.
검은색 한복 치마와 흰색 저고리를 입은 일본제일당 당수 사쿠라이 마코토는 유튜브로 전시회를 생중계했다.
행사장에는 풍선으로 만들어진 소녀상들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마코토는 ‘위안부’와 관련된 당시 신문 기사들이 들어간 펌프라고 소개한 후 그 중 한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축 늘어져있던 풍선 인형이 다리를 벌린 채 의자에 앉은 모양이 됐고, 행사 관계자들은 이를 보며 웃고 떠들었다.
소녀상 인형 어깨에 앉혀진 새는 일본 지폐로 감쌌다.
강제 연행이 아닌 대가를 받은 성매매였다는 주장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본래 평화의 소녀상 어깨 위에 놓인 새는 ‘자유와 평화’, 돌아가신 분과 살아 있는 사람을 연결하는 ‘영매’의 의미를 지닌다.
이 밖에도 행사장에는 태극기가 붙은 소녀의 그림자의 입이 악마처럼 웃거나 안중근 의사의 손을 바닥에 그려놓고 조롱하는 등의 그림이 전시됐다.
해당 생중계 영상을 본 일부 네티즌은 후원금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마코토는 인종차별주의 단체인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회’ 설립자이자 전 회장으로, 재일한국인 등 혐한 시위를 주도해 왔다.
3년 전 일본 아이치현에서 열린 국제 예술제에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되자 일본제일당은 “소녀상을 부수겠다”고 협박해 전시를 강제 중단시켰다.
이후 자신들은 ‘일본인을 위한 표현의 자유전’이라는 이름으로 혐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일본제국전쟁범죄] 박영심 할머니 원본 영상과 인터뷰 공개,
이 영상과 관련된 미군 보고서도 확인된다.
미국 OWI(전시 정보국) 인도-버마전구 미육군 소속 심리전팀이 작성한 일본포로 심문보고서 제49호 등이다.
당시 구출한 ‘일본군 위안부’를 심문한 내용이다.
심문장소는 인도 레도 포로수용소,
1944년 8월 20일에서 9월 10일 사이 심문한 기록이다.
미군 OWI에는 10월 1일 보고됐다
심문자는 일본계 미군 알렉스 요리치(Alex Yorichi)로 기재돼 있다.
이 영상은
현재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tional Archive)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영상의 일련번호는 ‘RG 111-ADC-10455’.
위안부 관련 미군 문서를 악용하는 이들,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라는 이영훈 교수의 발언이다.
이 분의 용기 하나는 정말 존경심이 들 정도로 대단하다 여겨진다.
한국 땅에서 것도 사람들 다 알아듣는 한국어로 이런 말하기 쉽지 않은데 거침없이 위안부 할머니들 모두를 창녀로 만들어 버리고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같은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을 보면 아마도 아래 이 자료를 통해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듯하다.
1944년 버마에서 조사된 위안부 관련 미군 문서인데 자료로 꽤 많이 떠돌고 있으니 궁금하면 직접 검색해보시기 바란다.
온라인에 떠도는 자료들 보면 훨씬 더 소상하게 설명을 곁들이나 따로 간단하게 핵심 부분만 모아봤다.
빨간 박스 안에 써여져 있는 글이 위안부가 매춘부라 말하는 사람들의 말과 똑같다.
글에서 컴포트 걸은 창녀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일본군의 편의를 위해 일하는 종사자(또는 군 접대부로 해석 가능)라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맨 아래 빨간 줄을 보면 1942년 703명가량의 한국 여자들이 버마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검색하기 귀찮은 분들을 위해 문서에 어떤 내용이 나오는지 조금의 가감 없이 추가 내용을 간략하게 곁들이면 조사는 20명의 한국 여자들을 상대로 했고 여기 오게 된 배경은 돈을 벌고 싶어 왔다고 한다.
와서는 좋은 환경에서 맛난 것도 먹으며 번 돈으로 옷도 사 입고 다른 지역과 달리 버마에서는 집도 꽤 괜찮은 곳을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여자들은 못생겼고 무식하고 못 배웠다고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오기 전부터 매춘에 종사하던 여자도 있었으며 6개월에서 1년 정도 일하면 돌아가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몇 명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 갔을 수도 있지만 사이비 종교에서도 사람 처리하고 집에 갔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간 사람의 증언이 아니라 못 가고 남은 사람들의 증언이다.
거짓 광고에 속아서 오기도 했는데 간단한 의료 행위나 편의를 봐주는 일인 줄 알았으나 실상은 매춘이었다고 한다.
이 문서를 작성한 조사관이 굉장히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일본군에 의한 강제적 모집이었으면 한국인 정서상 죽기를 각오하고 일본군에게 저항했을 것이나 허위 광고 사기성은 있을 지언정 한국 여자들이 버마에 오게 된 이유는 자발적 참여 아니면 아버지가 딸을 팔아넘겼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사견을 조금 넣자면 어려운 형편으로 인해 딸을 식모로 보내는 경우는 많이 봤어도 집안 체면을 목숨처럼 중시 여기는 유교문화가 강한 한국에서 아버지가 딸을 창녀로 팔아넘기는 문화가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는 줄은 정말이지 조금도 몰랐다)
공식 표기된 화대다.
계급이 높을수록 화대가 높아진다.
일반 병사는 1.5엔 장교는 5엔을 받는다.
빨간 줄에 적힌 글을 순서대로 번역하면 "하우스 마스터" 위안부 관리 업자 또는 두 글자로 포주라 해도 되겠다.
이들은 매춘으로 벌어들인 돈의 절반 이상을 가져간다.
5,60프로 정도. 여자들은 한 달 평균 1,500엔을 벌었고 절반인 750엔 정도를 업자에게 지불해야 했다.
많은 업자들은 음식이나 생필품 잡화에 높은 가격을 책정해 돈을 많이 뜯어 갔다.
(여기서 또 사견을 넣자면 의료 도우미 같은 일인줄 알고 자발적으로 갔는데 번 돈의 절반을 가져가고 거기다 음식 잡화 비용까지 높은 가격을 책정해 이중으로 뜯어가는게 강제로 끌고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연히 이해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 정도면 요즘 기준으로도 '성노예'로 뉴스에 보도되지 않나?)
속여서 머나먼 버마 그러니까 지금의 미얀마에 데려다 놓고 매춘을 시켰다.
의료 도움이 필요한 붕대나 감아주는 줄 알고 왔다가 매춘을 한다는 걸 알았을 때 다들 얼씨구나 더 큰돈을 벌 기회다라고 여겼을지 아니면 무시무시한 일본군의 위세 앞에 강제적으로 매춘을 강요 당했을지는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쪽 확률이 더 높을지 알고 있으리라 본다.
그러나 같은 민족을 헐뜯기에 앞장서는 무리들은 옷도 거지같이 입고 음식도 죽이나 먹으며 살아야 자발적 창녀가 아닌 '성노예'의 삶이라 생각하는 듯 하다.
7,80년대 인신매매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 납치되어 창녀 생활을 해도 여자들의 기본적 성향은 있기에 꾸밀 건 꾸미고 다녔다.
또한 꾸민 이유 중에는 손님에게 보기 좋게 보여야 하는 부분도 크다.
속아서 어린 나이에 이국땅까지 와서 살기 위해서라도 매춘을 해야는데 먹는 낙도 없이 인생 포기하고 하염없이 울기만 하다 죽어야 '성노예'가 된다는 생각은 인간으로서 가지지 말아야 한다.
맛난 거 먹고 옷 사 입었다는 이유로 자발적 매춘부라 부르는 교수님들 정말 존경스럽다.
그리고 화대와 한 달 평균 수입을 계산해 보면 일단 상대하는 군인 계급은 당연 일반 병사가 비율상 더 많았을 것이다.
장교 숫자에 비해 일반 군인 숫자가 훨씬 많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관계를 한번 가질 때마다 2엔을 조금 넘게 받았다 계산하면 한 달 평균인 1,500엔을 받으려면 700명과 넘게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700명이면 매일 하루도 쉬지 않고 관계를 가져도 하루에 20명을 넘게 상대해야 한다. (장교는 20엔을 내면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한다)
그런데 위대한 이영훈 교수님은 몇 년 전 이런 계산법까지 남기셨나 보다.
일본 극우 단체의 주장을 제외하면 세계 모든 자료에서 추산하는 위안부의 추정 숫자는 10만에서 20만명 사이다.
그러나 이영훈 교수는 150명당 1명의 위안부를 두는 방침이었다며 일본군이 280만 명이니 위안부는 1만 8,000명이라고 못 박는다.
1937년이 위안부 공식 설치 연도면 1945년까지 8년 동안 모집 시작하자마자 18,000명을 모아 8년간 한 사람의 이탈자도 없었다는게 진심으로 말이 된다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1937년도에 자발적 매춘부를 1만 8,000명 모집했는데 그 후 8년간 단 한 명의 이탈자도 없이 1만 8천 명의 매춘부를 유지 관리하는 일본의 능력은 또 새로이 알게 된 부분이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콘돔 수까지 들고 나오며 1942년에 콘돔 3210만개가 지급되었기에 끼워 맞추기 식의 계산법인 위안부 수는 1만 7000명이라 못 박아 버린다.
위안부 수가 교수님이 주장하는 17,000명이어야 하는데 아무리 끼워 맞추기라도 1년 365일 숫자를 바꿀 수는 없다.
그래서 무슨 증언을 기준으로 계산을 했는지 하루 상대하는 장병의 수를 5명이라고 정해버린다.
5 x 365 x 17,000 명은 콘돔 숫자다.
1년 치 콘돔이 떨어지면 모든 대일본제국 병사들은 성관계를 멈추고 다음 해 콘돔을 새로 받을 때까지 셀프 타임으로 전향해 그래서 일본군이 자위대가 되는 것인가 보다.
그나마 환경이 좋았다는 버마 지역만 보더라도 한 달 1500엔을 벌기 위해서는 하루 5명은 도무지 나올 수가 없는 숫자이다.
심지어 버마 중심지가 아닌 다른 지역을 지휘하던 무라야마는 저 가격마저 반값으로 깎아 버렸다고 한다.
당시 성노예로 끔찍한 일을 겪었던 1000명이 넘는 필리핀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은 쉴 새 없이 일본군들을 상대해야 했다고 증언한다.
자바 섬에 가족들과 거주하다 일본군의 습격으로 끌려간 네덜란드 할머니는 96세로 사망하기 전 미 의회에서 증언한다.
일본군이 17세 이상 여자들을 강제적으로 끌고 가 자신과 또래 여자들을 성노예로 삼았다고 말이다.
평생을 악몽에 시달리는 상처로 가슴속에 안고 살다 마침 한국 위안부 할머니들이 용기 내어 나오기 시작할 무렵 자신도 일본의 만행을 알리게 되었다 한다.
이영훈 교수는 이런 말까지 덧붙인다.
18,000명 위안부 중 조선인 위안부는 20프로에 불과하다며 3500명이 합리적 수치라 말한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한 손기정 선수가 분명 일장기를 달고 뛰었던 걸로 기억한다.
일본이 위안부 제도를 실시한 이유는 난징 대학살로 인해 일본의 이미지가 서구 사회에 너무 안 좋은 쪽으로 노출되어 성폭행 문제라도 관리하고자 국가 차원에서 이미지 쇄신을 위해 실행한 제도이다.
아시아 식민지 국가에서는 갖은 만행을 자행하면서도 서구권 국가들 앞에서는 예의 바른 일본인이 되길 원한 일본은 이때는 조선인 위안부들도 동등하게 황국의 위안부로 대접했을 것이다.
일본인이 위안부에서 차지한 비중이 가장 많은 실제 40프로였다고 말하는 저 주장을 합리적 수치라 주장하는 분도 대단하지만 믿는 사람도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본다.
아래는 문서 마지막에 나온다.
잘라서 올린 문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버마에서 일어난 연합군의 폭격으로 인해 여러 명의 위안부가 다치고 목숨을 잃었다.
이런데도 강남 성매매 업소 여자와 다를 바 없었다는 류석춘 교수는 진심으로 다음 생애는 좀 더 사려 깊고 배려심 있는 사람으로 태어나길 바란다.
연합군의 공습 후 일본군에 의해 도망가던 위안부들은 연합군에 발견되기 전까지 어느 순간 일본군들이 사라지고 자신들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빨간 박스 안에 적힌 말은 이렇다.
위안부들은 자신들이 구조되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자신들이 구조되었다는 사실을 알면 다른 군에 배치된 위안부들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고 말이다.
온라인에서 이 문서 올리고 위안부를 창녀 매춘부라 욕하는 사람 중 마지막 부분까지 올린 글은 못 본듯하다.
폭격으로 위안부들이 무고하게 죽고 다른 위안부들의 목숨을 걱정하는 부분이 자발적 창녀이자 돈만 잘 벌든 호의호식하는 매춘부의 삶과는 좀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색안경을 써도 되는 부분이다.
과연 누가 20명의 한국 위안부를 상대로 인터뷰를 진행하였는가.
문서 캡처 사진을 올릴 때 조사관 이름을 파란색으로 표시했는데 계급 하사의 이름은 아래와 같다.
1920년생이며 이민자인 일본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인 알렉스 노부오 요리치.
문서에서 한국 여성을 무식하고 못 배운 창녀와 같은 표현을 쓰고 못생겼다 말하며 일본군은 이 일에 상관이 없으며 한국인 아버지가 수많은 딸들을 팔아넘겼다는 우리로서는 도무지 공감이 잘 가지 않는 상황 묘사가 미국 사는 일본인이 아니었어도 똑같았을까란 의문점은 충분히 가질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이것을 본질을 흐리는 억측일 수도 있으나 위안부는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니며 수많은 타국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본인들도 성노예였다고 주장하건만 이 문서에서는 자발적 매춘부들만 등장한다.
추가로 이 사람은 한국전 월남전도 참여하며 1947년에는 일본 요코하마 미대사관에서 같은 일본 태생 여자 미치코 나가타와 결혼을 올리고 3명의 자녀를 둔다.
미국 캘리포니아 소재 글렌데일 시와 샌프란시스코 시에 소녀상 문제로 일본인 3세들까지 위안부는 없었다는 주장으로 소녀상 철거를 요구했다.
해외에서 살아도 일본인은 일본인이다.
수많은 증거 자료가 넘쳐남에도 위안부 할머니를 매춘부라 부르는 자들은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이 일관되지 않다는 이유 하나로 나머지 모든 사례를 거짓이라 한다.
100개의 사실이 있다면 99개가 진실이라도 1개가 증언이 일관되지 않다는 이유로 99개의 진실도 거짓이라 우긴다.
최종적 판단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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