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석천 . 帝釋天.
불교의 수호신으로 강력한 신들의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석제환인(석제환인)이라고도 부른다.
불교의 수호신으로 고대 인도의 신인 인드라(Indra)를 수용한 것이다.
불교의 수호신으로 고대 인도의 신인 인드라(Indra)를 수용한 것이다.
제석천은 수미산 정상에 있는 하늘인 도리천의 주인으로 , 수미산 중턱의 사천왕을 거느리고 불법과 불제자를 보호한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에 등장하는 천신 중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으로, 벼락과 쇠갈고리, 인드라망을 무기로 하여 일체의 악마를 정복하는 신이었으나, 불교에 수용되어서는 범천과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 수호하고 사바세계에 있는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제석천이 부처 설법회장을 항상 떠나지 않는 것은 일찌기 부처님이 도리천에 올라가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해 설법할 때 제석천이 사자좌(獅子座)를 설치하고 정성으로 부처님을 영접한 데서 비롯된다.
제석천의 형상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몸에는 각종 영락을 걸치고 금강저를 잡고 있거나 갑옷을 입고 보관을 쓰고 막대를 든 모습 등 다양하다.
제석천의 형상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몸에는 각종 영락을 걸치고 금강저를 잡고 있거나 갑옷을 입고 보관을 쓰고 막대를 든 모습 등 다양하다.
금강저는 인간의 탐욕과 죄악을 씻어주는 지혜를 상징한다.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할때는 금강저를 들거나 합장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석천과 범천이 중심이 된 신중탱화에는 동진보살 외에도 일궁천자·월궁천자·천동(天童)·천녀(天女)가 함께 자리한다.
정의
도리천의 왕으로 불교의 수호신.
불교에서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며 고대 인도 힌두교의 신 인드라를 불교에서 수용한 것이다;
내용
범어로는 샤크로데반드라(S'akrodevandra)이며,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라고 쓰던 것을 줄여 제석천이라 하였다.
그가 머무르는 곳은 도리천(忉利天)이다.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須彌山)이 있는데 그 정상에 도리천이라는 하늘이 있다고 한다.
제석은 선견성(善見城)에 머무르면서 사천왕(四天王)과 주위의 32천왕(天王)을 통솔한다.
그는 불법을 옹호하며,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보호할 뿐 아니라, 아수라(阿修羅)의 군대를 정벌하기도 한다.
그의 무기는 그물인데, 이것을 인다라망(因陀羅網)이라고 하여 세간의 얽히고 설킨 인과에 비유한다.
원래 인도의 신격 가운데 인드라(Indra)가 불교의 변화를 보인 한 예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그 이름이 단군신화에도 나타난다.
단군의 할아버지를 묘사할 때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표기하였다.
자장(慈藏)이 당나라에 유학하였을 때 중국 청량산(淸凉山)을 참배하였는데, 사람들이 말하기를 제석천왕이 석공(石工)을 데리고 와서 조성한 문수상(文殊像)이라는 기록이 있다.
선덕여왕이 죽기 전에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유언하였는데 뒤에 사천왕사(四天王寺)가 그 왕릉 밑에 건립되어 그 예언이 맞았다는 기사가 있다.
사왕천(四王天)의 위가 도리천이기 때문에 여왕은 죽기 전에 묻힐 곳을 알았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제석신앙은 ‘하늘’에 대한 외경 심리와 결부된다.
불교가 도입되기 이전 막연하게 숭배의 사상이 되었던 하늘에 제석천이 있다는 불교신앙이 도입되면서 그 민간신앙은 이론의 근거를 갖게 된다.
고대 한국인들은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하나로 보았다.
‘한울님’에 관한 원초적 신앙은 유일 창조주를 부정하는 불교의 입장과 위배되었기 때문에 다만 민간신앙으로만 유포되었다.
제석천의 조상(彫像)은 석굴암의 석실에 조성되어 대범천(大梵天)과 나란히 모셔져 있다.
고려시대에는 태조가 919년(태조 2)에 송악으로 도읍을 옮기고 법왕사(法王寺)내제석원(內帝釋院) 등 10대사찰을 건립하였다.
925년에도 외제석원(外帝釋院)을 건립하였으며, 928년에도 제석원을 설치하였다.
1032년(덕종 1) 외제석원에서 왕이 재를 베풀었고, 1060년(문종 14) 정월에는 천제석도량을 문덕전(文德殿)에서 베풀었다.
1085년(선종 2)에도 천제석도량을 문덕전에서 베풀었고, 1098년(숙종 3)에는 왕이 외제석원에 행차하여 재를 베풀었으며, 1099년 정월과 1101년 정월에 천제석도량을 문덕전에서 베풀었다.
이를 통하여 고려에서는 매년 정월에 제석도량을 베푼 것을 알 수 있다.
1107년(예종 2) 정월과 1110년 정월에도 제석도량을 문덕전에서 베풀었고, 1114년 4월에는 예종이 외제석원에 행차하여 공양하였으며, 1130년(인종 8) 정월에는 제석도량을 중화전(重華殿)에서 베풀었다.
1132년 2월에는 천제석도량을 명인전(明仁殿)에서 베풀었고 1148년(의종 2) 정월에는 제석도량을 문덕전에서 베풀었으며, 1176년(명종 6)에는 천제석도량을 명인전에서 베풀고, 1177년 3월에는 제석도량을 내전에서 베풀었으며, 1181년 3월에 제석도량을 명인전에서 베풀었다.
1203년(신종 6) 정월에는 제석도량을 수문전(修文殿)에서 베풀었고 1214년(강종 4) 정월에도 제석도량을 수문전에서 베풀었으며, 같은 해 3월에는 제석재를 행하였다.
1223년(고종 10)에 제석도량을 수문전에서 베풀었고, 1251년에는 천제석도량을 궐안에서 베풀었다.
고려시대에는 제석천에 대한 호국진병(護國鎭兵)의 신앙의식이 많이 행하여졌다.
불교의 수호신으로 고대 인도의 신 인드라(Indra)를 수용한 것이다.
석제환인다라(釋帝桓因陀羅)·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로 음역하고 줄여서 석제환인·제석천이라 한다.
경전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 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천제석(天帝釋)·천주(天主)라고도 부른다.
한국에서는 천제석(天帝釋)·천주(天主)라고도 부른다.
《법화경》 서품에 나오는 '제석은 환인이며, 도리천주이고 옥황상제로서 제석이라 일컫는다'는 말에 따른 것이다.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 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제석천이 부처님 설법회상을 항상 떠나지 않는 것은 일찍이 부처님이 도리천(忉利天)에 올라가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해 설법할 때 제석천이 사자좌(獅子座)를 설치하고 정성으로 장엄하여 부처님을 영접한 데서 비롯된다.
밀교에서는 호세팔방천(護世八方天) 및 십이천(十二天)의 하나로서 동방을 수호하는 신이다.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제석천이 사용하는 강력한 무기는 인다라망(因陀羅網)이다.
제석천이 사용하는 강력한 무기는 인다라망(因陀羅網)이다.
이것은 제석천궁에 장엄되어 있는 그물로 수많은 보배 구슬로 이루어져 있어 흔들면 서로 빛을 발하면서 함께 어우러져 적을 물리친다.
불교에 귀의한 뒤의 인다라망은 일체 세상 모든 존재가 홀로 있지 않고 첩첩이 겹쳐진 가운데 서로 얽히고 맞끼워져 함께 존재함을 설명하는 중중무진법계(重重無盡法界)의 진리에 비유된다.
불상으로는 일찍이 간다라 지방에서 범천과 함께 삼존상으로 제작된 예가 보이고, 한국에서는 경주 석굴암의 제석천왕상이 대표적이다.
이 불상은 오른손에 불자(拂子), 왼손에 금강저(金剛杵)를 쥐고 있는데, 불자는 중생의 번뇌를 털어내는 도구이며 금강저는 인간의 탐욕과 죄악을 씻어주는 지혜를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