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랑전설 , 阿娘傳說.
- 경상남도 밀양(密陽) 영남루(嶺南樓)에 얽힌 전설.
- 아랑각억울하게 죽은 아랑이 원령이 되어 자신의 원한을 푼 뒤 변고가 없어졌다는 설화. 경남 밀양에 전승된다. 설화가 담긴 아랑각. 경남 밀양시 내일동.
"아랑전설의 아랑 맞군요~
예전에 드라마 방영도~
"밀양 영남루에 있는 아랑각
"그림으로 보셔도 대략적인 내용이.. ..
+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가 그린 영정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유모에게서 자란 미모의 처녀로, 음흉한 유모와 통인(通引:지방 관아의 심부름꾼) 주기(朱旗)가 흉계를 꾸며 어느 날 밤 달 구경 나온 아랑을 욕보이려 하였다.
아랑은 통인에게 결사코 항거하다가 끝내는 칼에 맞아 죽고, 대숲에 버려졌다.
부사는 아랑이 외간 남자와 내통하다 함께 달아난 것으로 알고 벼슬을 사직하였다.
부임 첫날 밤에 나타난 아랑의 원혼에게서 억울한 죽음을 들은 그는 원한을 풀어주기로 약속하였다.
이상사는 곧 백가를 잡아 처형하고 아랑의 주검을 찾아내어 장사지내니 그뒤로는 원혼이 나타나지 않았다 한다.
억울하게 죽은 아랑이 원령이 되어 자신의 원한을 푼 뒤 변고가 없어졌다는 설화.
신이담(神異譚) 중 초인담(超人譚)에 속하며, 원령설화(怨靈說話)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경상남도 밀양에 전승된다.
아랑이라는 규수가 아버지를 따라 밀양에 갔다.
별안간 딸을 잃은 아버지는 태수직을 사퇴하고 서울로 돌아갔다.
신임 태수가 도임 당야에 촛불을 밝히고 책을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음풍이 일며 방문이 열리고, 산발한 채 가슴에서 피를 흘리는 여인이 목에 칼을 꽂은 채 나타났다.
그 여인은 아랑으로, 태수에게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고 그 범인인 통인의 이름을 가르쳐 준다.
손진태는 『조선민족설화의 연구』에서 이러한 계열의 설화를 ‘아랑형전설(阿娘型傳說)’이라 이름을 짓고 다각도로 살핀 바 있다.
「아랑설화」의 원천적 문헌으로서 송나라 홍매(洪邁)의 『이견지(夷堅志)』 소재의 「해삼랑전설(解三娘傳說)」의 전문을 인용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역관(驛館)이나 역정(驛亭)에서도 항상 귀신이 머무르고 있는데, 그곳에 묵는 자들이 변사하는 내용의 이야기가 많은 것에서 유추하여 우리나라의 이 「아랑설화」는 중국 설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랑설화」는 밀양을 본고장으로 지리적 배경이 고정되어 있고, 실제로 밀양에 아랑각(阿娘閣)이 있어 더욱 설화의 진실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어느 날 그 고을 통인과 유모의 음모에 휘말려 영남루에 나갔다가 통인에게 욕을 당하게 되었다.
‘아랑설화’라고 제목이 붙여진 것은 손진태(孫晋泰)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인데, 그 유래는 정인섭(鄭寅燮)의 『온돌야화(溫突夜話)』에서 연유한다.
전력을 다하여 항거한 아랑은 끝내 통인에게 피살되고 그 시체는 강가 숲으로 던져졌다.
그 뒤로 신관이 부임할 때마다 그날 밤중에 귀신이 나타나 신관은 기절하여 죽고 말았다.
밀양태수로 가고자 하는 자가 없자, 조정에서는 자원자를 구하여 내려 보냈다.
신임 태수는 이튿날로 범인을 잡아 처형하였더니 그 뒤로는 신임 태수가 변을 당하는 일이 없어졌다.
그에 따르면, 이런 화형(話型)은 중국 설화에 널리 있는 것으로 중국에서는 ‘아랑(阿娘)’이 ‘해랑(解娘)’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이런 계열의 설화가 원령설화의 성격으로 굳어져 이루어진 「장화홍련전」과 같이 소설로서 작품화된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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