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9일 화요일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뜻 의미 세계평화를 부르는 민요:

옛날부터 지금까지 우리 민족의 정서와 가장 가깝게 맞닿아 있는 민요입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억눌려 왔던 민족의 감정과 분노를 아리랑에 얹어 부르기 시작하면서 아리랑은 전국적으로 불리는 민족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남한과 북한에 나뉘어 살던 이산가족이 만났을 때, 올림픽에서 남북이 하나의 팀으로 입장할 때도 아리랑이 울려 퍼졌습니다.

작가 미상의 민요로
한민족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아주 유명한 민요입니다

아리랑 뜻을 알아보기 이전에
먼저 이 민요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건
1차와 2차의 세계대전과 6.25전쟁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세계대전 당시에 아이랑 연구가
김연갑은 러시아 병사(조선인 추정)이 부른
음원을 삽입해서 공개하였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인 아리랑은 역사적으로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한국의 일반 민중이 공동 노력으로 창조한 결과물이다.

아리랑은 단순한 노래로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라는 여음(餘音)과 지역에 따라 다른 내용으로 발전해온 두 줄의 가사로 구성되어 있다.

인류 보편의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는 한편, 지극히 단순한 곡조와 사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즉흥적인 편곡과 모방이 가능하고, 함께 부르기가 쉽고, 여러 음악 장르에 자연스레 수용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아리랑’이라는 제목으로 전승되는 민요는 약 60여 종, 3,600여 곡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간의 창의성, 표현의 자유, 공감에 대한 존중이야말로 아리랑이 지닌 가장 훌륭한 덕목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누구라도 새로운 사설을 지어 낼 수 있고, 그런 활동을 통해 아리랑의 지역적·역사적·장르적 변주는 계속 늘어나고 문화적 다양성은 더욱 풍성해진다.

아리랑은 한민족 구성원들에게 보편적으로 애창되며 사랑받고 있다.

그와 동시에 각 지역사회와 민간단체 및 개인을 포함하는 일단의 지방 민요인 아리랑 전수자들은 해당 지방 아리랑의 보편성과 지역성을 강조하면서 대중화와 전승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아리랑은 또한 영화·뮤지컬·드라마·춤·문학 등을 비롯한 여러 다양한 예술 장르와 매체에서 대중적 주제이자 모티프로 이용되어 왔다.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한민족을 하나로 묶고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힘을 가진 아리랑은 심금을 울리는 한민족의 노래이다.

아리랑은 한민족의 가장 대표적 민요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랑은 강원도의 ‘정선 아리랑’, 호남 지역의 ‘진도아리랑’ 경상남도 일원의 ‘밀양아리랑’ 등 3가지이다.

아리랑은 해외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어 세계 어디에 거주하든 한국인과 대한민국, 또 한국인과 다른 한국인 사이를 이어주는 문화의 탯줄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감정적인 연결 끈은 특히 20세기 초 일제강점기에 이주하여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일본·중국·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 가장 뚜렷하게 확인된다.

아울러 비교적 최근에 이민을 통해 이주한 브라질·독일·미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등지의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아리랑은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다.

한민족이라면 거의 모두가 아리랑을 알고 즐겨 부른다.
아리랑은 단일한 하나의 곡이 아닌 한반도 전역에서 지역별로 다양한 곡조로 전승되었다.

전문가들은 ‘아리랑’이라는 제목으로 전승되는 민요의 수가 약 60여 종, 3,600여 곡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리랑은 기본적으로 단순한 노래로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라는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여음과 지역에 따라 다른 내용의 사설로 발전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아리랑의 가사(사설)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여음)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사설)”

아리랑의 사설은 특정 개인의 창작물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한국 일반 민중이 공동으로 창작한 결과물이다.

사랑, 연인과의 이별, 시집살이의 애환, 외세에 맞선 민족의 투쟁 등 민중이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노랫말에 담았다.

아리랑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한국의 전통음악이라는 영역을 넘어 초현대적인 한국 문화의 모든 장르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아리랑은 발라드·로큰롤·힙합 등의 다양한 현대의 대중가요 장르는 물론이고 관현악곡 등으로도 편곡되어 폭넓은 청중에게 호소하며 한민족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이런 이유로 아리랑은 한국의 비공식적 국가(國歌)로 묘사되기도 한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김연아 선수는 2011년 세계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아리랑 선율을 주제로 편곡한 ‘오마주 투 코리아(Homage to Korea)’라는 음악을 배경으로 피겨스케이트 프로그램을 연기하기도 하였다.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 상징의 하나이기도 한 아리랑은 영화·연극·텔레비전 드라마의 소재로, 상품명이나 식당 이름, 방송국 회사 이름 등으로 폭넓게 이용되고 있다.

 

예능보유자 & 기능보유자

아리랑은 한민족이 보편적으로 애창하는 곡이다.

그와 동시에 각 지역사회와 민간단체 및 개인을 포함하는 지방 아리랑 전수자들은 해당 지방 아리랑의 보편성과 지역성을 강조하면서 아리랑의 대중화와 전승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와 같은 공적·사적 영역에서의 노력은 동시다발적이고 열정적이며 또한 상호보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중앙 정부 및 각 지방 자치단체는 예능보유자 및 기능보유자 또는 단체를 국가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또는 시·도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인간문화재’)로 지정하고 있으며,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이들의 기예가 전승될 수 있도록 전수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전수 단체 및 개인은 미래 세대에게 아리랑을 전승할 특별한 책임을 지고 있다.

아울러 지역의 많은 민간단체들은 해당 지방 아리랑의 보존을 위해서 헌신하고 있다.

대부분 해당 지역의 명창이 주도하고 있는 아리랑 보존회들은 전문 소리꾼, 그리고 특별 프로그램에 따라 훈련받은 연구자들이 있다.

아리랑 보존회는 공연, 전수교육, 홍보, 해당 지방 아리랑의 고유한 특징을 강조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면서 해당 아리랑의 보존 및 전승에 힘쓰고 있다.

이들 단체 중에서도 특히 정선아리랑 보존회, 진도아리랑 보존회, 밀양아리랑 보존회 등이 대표적이다.

 

전승?

한국인이라면 요람에서부터 아리랑을 배운다.

한국을 대표하는 민요로서 아리랑의 폭넓은 인기는 일상생활에서의 지속적인 노출과 광범위한 공교육 프로그램의 힘이 컸다.

명창, 각종 보존회, 전문 음악가, 초등학교·중학교 및 국립국악원 등은 아리랑의 보급 및 전승을 위한 여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들의 노력 뒤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중의 요구와 열정이라는 원동력이 존재한다는 점 역시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다.

국가가 지원하는 무형문화재 전수교육 및 전승 프로그램은 아리랑의 세대 간 전승을 위해 주력한다.

국가 공인 예능보유자들은 주민의 열정적인 참여 속에 1주일에 1번 또는 2번 단위로 정규 전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매년 새로운 공연을 기획하고 선보임으로써 사회의 문화적 소외 계층에게도 다가가고 있다.

공교육 기관에서도 아리랑을 광범하게 교육하고 있다.

아리랑은 초등학교·중학교 음악 수업 및 방과 후 활동의 의무 교과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각 지방 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지역 문화센터에서는 아리랑 보존회와 명창을 초청하여 아리랑을 교육하거나 관련된 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최고 기량의 한국 전통 음악인들의 전당인 국립국악원은 참신한 전통 음악 축제를 통하여 아리랑 홍보활동에 기여하고 있다.

그 분원인 국립부산국악원과 국립남도국악원(진도 소재) 역시 수준 높은 공연을 통하여 국내외 아리랑의 홍보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무형유산?....

2006년 6월 대한민국 정부는 설문조사를 토대로 한국을 대표하는 ‘100대 민족문화상징’ 중 하나로 아리랑을 선정했다.

시간적·공간적으로 가장 널리 불리는 민족의 노래’라는 것이 선정 이유였다.

근대 이전의 아리랑은 전통 사회의 서민들이 느끼는 기쁨과 슬픔을 담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한민족이 겪어야 했던 개인적·국가적 차원의 고난, 가슴속에 품은 독립을 향한 열망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한국인들이 부르는 아리랑의 가락을 타고 전달되는 이러한 희망과 바람 덕분에 아리랑은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문화유산으로서 현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면면히 전승되고 있다.

오늘날 아리랑은 한민족의 통합에 있어서도 한몫 하고 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회식에서는 남한과 북한의 대표팀은 올림픽 경기장에 공동 입장하면서 함께 아리랑을 불렀다.

2002년 한국 - 일본 월드컵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는 열정적인 응원단체인 ‘붉은 악마’는 아리랑을 날마다 불렀다.

이처럼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 있는 매순간에 한민족을 하나로 묶어 주는 힘을 지닌 아리랑은 심금을 울리는 민족의 노래라고 여겨져 왔다.

해외에서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아리랑을 함께 부를 때마다 그들의 민족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한편, 고국의 동포들은 각 지방의 아리랑이 해당 지방의 정체성을 더욱 돈독하게 한다고 믿고 있다.

아리랑은 또한 영화·뮤지컬·드라마·춤·문학 등을 포함하는 여러 다양한 예술 장르와 매체에서 대중적인 주제이자 모티프로 이용되어 왔다.

해외에서 일고 있는 한국 대중음악 열풍과 함께 오늘날의 아리랑은 한국을 가장 명확하게 대표하는 문화 상징이자 음악적 영감의 순수한 원천으로서 전 세계인에서 알려질 것으로 보인다.

아리랑, 한국의 서정민요 [Arirang, lyrical folk song in the Republic of Korea]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영/불어 원문))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바로 6.25전쟁 당시에
미국의 피트 시거(가수)가 1952년 자신의
음원에 첫 번째 라이브 앨범에 삽입했습니다

하지만 점쟁으로 인해서
알려지기 시작한 아이랑은 신기하게도
그 안에 다양한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아리'는 고운이라는 뜻의 옛말
그리고 그 뒤에 '랑'은 님을 뜻합니다



'아리'는 사무치게 그리운 뜻으로
현대어로 표기하자면 마음이 아리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고개'란
고운님과 가슴 아픈 이별을 하여
님을 사무치게 그리워한다는
가슴 시린 사연의 뜻도 담겨 있습니다








我 나 아
理 다스릴 리
朗 밝을 랑

나를 찾기 위해서는
고난의 고개를 넘어야 하지만
이때 진리(깨달음)를 외면하고
떠나 욕망의 즐거움에 빠져도오욕락을
얼마 가지 못해서 고통에 빠지고 만다

그러니 나를 찾아 다스리고
밝은 곳으로 인도해 즐거움을 누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뜻을 담고 있는
한민족의 민요 아리랑은 세계 유산이 되어
이제는 우리의 자랑스런 재산입니다



아리랑 안에 '아리'는
밝음과 광명을 담고 있어서
광복과 더 나아가서 평화를 담은
평화를 염원하는 민요하고 불립니다

그래서 행사에서 평화를
염원하기 위해서 자주 불리기도 합니다

그 예로 전쟁 종식과 세계평화를 담은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 만국회의 개막식에선
평화의 아리랑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최근 많이 화자되는
격암유록 갑을가(甲乙歌)의
아리랑고개도 그렇고 [격암유록 참조]

 ‘격암유록’의 내용을 보아
신앙인들은 성경의 계시록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깨달아서

종교적으로도 풀이하여
아리(亞裡)는 하나님 계신
십(十, 亞 가운데)자가의 도가 있는 곳이며,

아리령(亞裡嶺)은 아리에
이르기 위해 넘어야 할 고개라는 의미로
세계평화 만국회의 행사에서는
전쟁종식 세계평화 뿐만아니라
종교대통합 만국회의를 기반으로
평화를 염원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아리랑의 뜻의
그리운님,  고운님, 자아성찰
마지막으로 평화를 의미하는 민요입니다

전쟁으로 알려지면서
전쟁의 끝을 노래하는 평화의 민요
평화는 언제나 아름답고 빛나는 단어지만
이젠 글이 아니라 삶에 다가오길 바래봅니다






아리랑, 한국의 서정민요(Arirang, lyrical folk song in the Republic of Korea)© 2009 by Jeongseon Arirang Research Institute

아리랑의 뜻 처럼
나 자신을 찾아 깨달아서
오늘 하루도 즐겁고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1926년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곡으로 만들어져 널리 불리게 된 신민요의 제목 또는 그 이전부터 한반도 여러 지역에서 불리던 아리랑 계통의 악곡과 그 이후에 만들어져 불리는 다양한 아리랑 계통 악곡 모두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이름. 

<아리랑>은 ‘아리아리’, ‘아라리’, ‘아라성’, ‘아리랑’ 등의 입타령으로 된 후렴을 수반하는 장절형식의 민요군을 가리키며, 그 제목에 주된 전승 지역의 이름을 붙여 ‘○○아리랑’ 또는 ‘○○아라리’ 등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아리랑 계통 악곡으로는 향토민요로 전승되는 노래를 포함하여 통속민요와 신민요, 나아가 대중가요나 예술가곡 작품으로 만들어진 악곡까지를 포함하기도 한다.

이 중 통속민요로 전승되는 아리랑은 <강원도아리랑>, <정선아리랑>, <구조아리랑>, <긴아리랑>, <본조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해주아리랑> 등이 있다.

이들 노래의 가락을 조금 변형하거나 가사를 다양하게 붙여 부르면서 제목을 달리하는 많은 노래들이 전승되고 있다.

함경도의 <어랑타령>이나 평안도의 <긴아리>·<자진아리>를 아리랑계 악곡으로 보려는 경우도 있으나, 이들 노래의 후렴에는 아리랑계 입타령이 들어 있지 않으므로 일반적으로 아리랑 계통 악곡에 넣지 않는다.

오늘날 아리랑으로 불리는 대표적인 악곡은 경기민요의 하나인 <아리랑>이다.

이 곡은 1926년 나운규감독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곡으로 만들어졌다.

그 이전과 이후의 다양한 아리랑계 악곡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영화음악 아리랑> 또는 <신아리랑>이라 불리다가, 성경린·장사훈의 『조선의 민요』(1949)에서부터 <본조아리랑>이라 불리게 되었다.

다양한 갈래의 아리랑계 악곡 중 향토민요로 전승되는 것은 강원도 지역의 노래들이다.

강원도 대부분 지역에서는 <아라리>·<어러리>·<얼레지>·<아라레이> 등으로 불리는 노래가 널리 전승된다.

3소박 3박을 기본 리듬으로 하고, 메나리토리의 선율로 구성된 이들 악곡은 비교적 느리게 불리기 때문에 흔히 <긴아라리>라 부른다.

강원도의 <긴아라리> 중에서는 정선 지방의 노래가 널리 알려져서 흔히 이 노래를 <정선아라리> 또는 <정선아리랑>이라 부른다.

정선 지역에서는 <긴아라리>를 부르다가 중간에 해학적인 내용을 담아 사설을 길게 확대하고, 이를 빠른 속도로 촘촘하게 엮어 부르기도 한다.

이 같은 노래를 <엮음아라리>라 한다. 반면에 강원 영동 지역에서는 2소박과 3소박으로 구성된 혼소박 리듬의 <자진아라리>가 <모심는 소리> 등의 노동요로도 불린다.

이 노래는 강원 영서 지역뿐만 아니라 경기도 동부와 충청북도, 경상도 북부 지역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지역에서 불리고 있다.

오늘날 전승되는 아리랑계 악곡 중 향토민요(토속민요)로 확고한 전승 기반을 지닌 노래는 강원도에 바탕을 둔 위의 세 가지 아리랑이다.

따라서 다양한 아리랑계 악곡의 원형은 이들 세 아리랑이라 할 수 있다.

강원도 지역에 전승되던 향토민요 아라리계 악곡들이 조선 후기에 유희요로 통속화되면서 후렴의 ‘아라리’ 또는 ‘아리아리’라는 말이 ‘아리랑’이라는 말로 변하여 <자진아리랑>, <긴아리랑>, <엮음아리랑> 등으로 그 명칭이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노래들이 경기 명창들의 공연용 악곡으로 수용되면서 <자진아리랑>은 <강원도아리랑>, <엮음아리랑>은 <정선아리랑>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강원도 정선 지방에서 향토민요로 불리는 <엮음아리랑>과 경기 명창들이 부르는 <정선아리랑>은 사설을 엮어 부르는 방법에 차이가 있어, 이를 구분하기 위하여 경기 명창들의 노래를 <서울제 정선아리랑>이라 부르기도 한다. 

위의 경우는 전문 음악인인 경기 명창들이 강원도 지역의 향토민요를 수용하여 자신들의 공연종목으로 삼은 경우이다.

전문 음악인들은 음악적인 훈련을 거쳐 뛰어난 음악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음악어법의 노래도 본래의 모습에 가깝게 부를 수 있으나, 음악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 서민·대중은 다른 지역의 음악어법으로 된 노래를 그대로 부르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강원도 지역의 아리랑계 악곡들이 주변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음악어법이 변화되어 새로운 노래를 만들게 되는데, 이 같은 변화가 활발하게 일어난 시기는 조선 말기로 보인다.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건에 따라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게 되자, 강원도 지역의 인력도 경복궁 중건 공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특히 목재의 주된 생산지였던 강원도에서는 다량의 목재를 뗏목으로 엮어서 남한강수운水運을 이용하여 서울 지역으로 수송할 인력을 필요로 하였다.

이 무렵 대표적인 뗏목의 출발 지역인 강원도 정선 지역의 인력이 대거 한양으로 진출하게 되었고, 이들에 의하여 강원도의 향토민요 아리랑이 서울·경기 지역에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의 아리랑이 서울·경기 지역에 전해지면서 본래 강원도의 음악어법인 메나리토리로 짜였던 노래가 서울 지역의 보편적인 음악어법인 경토리(진경토리)로 변화되어 불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변화의 과정은 1896년 헐버트H. Hulbert, 1863~1949가 채보한 <아라렁타령>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현재 경기 통속민요 중 <구조아리랑>이라는 곡명으로 전승되는 곡이 헐버트 채보의 <아라렁타령>과 같은 곡임을 볼 때, 이 곡은 19세기 말경에 서울·경기 지역에서 흔히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아리랑의 전승 과정에서 전환점이 되는 곡은 영화 음악인 <아리랑>이다.

1926년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곡으로 만들어진 이 곡은 나운규 감독이 단성사 악단에 편곡을 의뢰하여 완성한 것이라 한다.

편곡자는 당시 단성사 극장의 변사이자 영화감독이었고, 작곡가이기도 하였던 김영환金永煥, 1898~1936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운규는 고향인 함경북도 회령에서 청진까지 이어지는 철도 공사를 위하여 남쪽에서 온 노동자들이 부르던 가락을 기억하였다가 이를 바탕으로 영화 음악을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하였다고 하는데, 영화 음악 <아리랑>의 후렴 선율을 살펴보면 강원도 지역<자진아라리>의 선율 구조가 그대로 드러난다.

메나리토리로 된 <자진아라리> 후렴 구절의 선율을 경토리로 변화시킨 것이 영화 음악 <아리랑> 후렴구의 선율과 같다.

결국 나운규가 고향에서 들었다고 하는 선율은 함경도의 남쪽인 강원도 지역의 <자진아라리>였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강원도 지역의 메나리토리 곡조인 <긴아리랑>이 서울지방의 진경토리로 변화되어 경기민요 <구조아리랑>이 되었고, 강원도 <자진아리랑>이 전문 음악가의 편곡을 통하여 영화 음악 <아리랑>이 된 것이다.

그런데 메나리토리 구성음 중 최저음이 종지음이 되는 <긴아라리>는 진경토리에 잘 맞았지만, 메나리토리의 중간음 ‘라’로 종지하는 <자진아라리>는 진경토리와 달리 ‘솔·라·도·레·미’의 5음 음계 중 중간음인 ‘도’가 종지음이 되어 마치 서양 음악의 5음 음계 도선법, 즉 일본 음악의 요나누키 장음계와 같은 음계 구조를 갖게 되었다.

영화 <아리랑>의 대중적인 인기와 더불어 영화 음악 <아리랑>도 짧은 시간 안에 전국적으로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이 노래는 당시 식민지 조선인의 정서를 대변하는 노래로 민족적인 감성의 표현인 동시에, 피압박 민족의 저항의식까지를 드러내는 노래로 한민족의 정서적 동질감을 형성하는 촉매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30년대에 녹음된 유성기 음반의 아리랑 곡조들은 서양 악기의 반주에 창가식 창법으로 불렀으며, 전통민요가 지니고 있는 고유한 창법이나 시김새 등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영화 음악 <아리랑>은 그 초기에는 민요라는 인식보다는 새롭게 만들어진 노래의 하나로 여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음악 <아리랑>은 대중적인 지명도를 바탕으로 하고, 경기민요의 일반적인 특성인 5음 음계 진경토리와 구성음을 공유한다는 음악적 유사성을 더하여 ‘신민요’의 하나로 인식되기 시작하였으며, 전통음악을 연주하던 민요 명창들이 <아리랑>을 자신들의 공연 종목으로 수용하고, 유성기 음반에 녹음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다양한 아리랑계 악곡과의 구별을 위하여 이 곡을 <본조아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여기서의 ‘본조’란 모든 아리랑의 근본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민요 명창들이 부르는 통속민요 아리랑계 악곡 중 서울 지방의 음악어법을 지닌 주된 아리랑이라는 의미로 보인다.

이 시기 식민지 조선을 떠나 해외로 이주한 동포들은 고향 땅을 떠나던 무렵에 전국적으로 불리던 <아리랑>을 조국의 상징처럼 여기게 되었으며, 타향에서 고향을 떠 올릴 때면 으레 아리랑을 부르면서 망향의 한을 달랬다.

이후 아리랑은 한민족 해외 이주민들에게는 조국의 상징이 되었으며, 제2의 국가처럼 온 한민족의 민요를 대표하는 노래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이 무렵 서울 지역에서 활동하던 경기 명창들은 <아롱타령>이나 <알알타령[卵卵타령]> 등의 노래를 음반에 남기기도 하였으며, 강원도의 <긴아리랑> 곡조를 바탕으로 <강원도아리랑>이라는 이름의 노래를 유성기 음반에 녹음하기도 하였다.

이후 경기 명창들은 혼소박계통의 악곡인 강원도 <자진아라리>를 수용하여 부르게 되었는데, 이 노래가 오늘날의 통속민요 <강원도아리랑>이 되었다.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박남포는 <아롱타령>의 선율을 차용하고, 밀양 지역의 설화 등을 토대로 노랫말을 붙여 <밀양아리랑>을 만들었다.

다른 아리랑계 악곡에 비하여 경쾌하고 씩씩한 느낌의 이 곡은 광복군의 군가처럼 불리면서 <광복군아리랑>이라는 이름도 갖게 되었다.

<밀양아리랑>의 모곡으로 보이는 <아롱타령>은 오늘날 <해주아리랑>이라는 이름으로 전승되고 있으나, 해주 지방과의 관련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전라남도 진도 출신의 대금 명인 박종기는 1930년대에 <진도아리랑>의 곡조를 짰는데, 이 곡은 전라도 지역에서 불리던 향토민요 <산아지타령>의 선율에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의 후렴을 붙인 것이다.

이후 전국 각 지역에서는 저마다 자기 고장의 전설이나 유명한 소재를 노랫말로 지어 다양한 아리랑 선율에 얹어 부르면서, 자기 고장의 이름을 앞에 넣어 ‘○○아리랑’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제목의 수 많은 아리랑이 있으나, 이들 악곡의 모곡이 된 것은 주로 <구조아리랑>, <본조아리랑>, <강원도아리랑(자진아리랑)>, <밀양아리랑> 등이다.

강원도의 향토민요였던 아리랑 계통 노래가 서울·경기 지역에 전해지고, 영화 <아리랑>의 주제곡으로 거듭나면서, 한민족의 민요를 대표하는 악곡이 되었다.

그리고 각 지역을 대표하는 아리랑계 악곡을 생성하는 전기를 마련하였으며, 수많은 아리랑계 악곡의 모곡이 되기도 하였다.

오늘날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의 차원을 넘어 세계 속에서 한국과 한민족을 상징하는 문화코드가 되었으며, 이제 아리랑은 세계 도처에 흩어져 사는 한민족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아리’, ‘아라리’, ‘아라성’, ‘아리랑’이라는 입타령으로 된 후렴이 딸리는 장절 형식이며 이름에 ‘아라리’, ‘아라성’, ‘아리랑’이라는 말이 붙는 우리나라의 민요군.

아리랑은 강원도와 그 인접 지역에서 노동요, 토속민요로 부르던 메나리토리로 된 <강원도자진아라리>와 <강원도긴아라리>와 같은 ‘아라리’가 원형으로 보이고 나머지는 여기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아라리>에서도 노랫말을 촘촘히 길게 엮는 <강원도엮음아라리>가 파생되었다.

강원도 지역에 전승되던 아라리가 조선 후기에 유희요로 통속화되면서 후렴에 붙는 ‘아라리’라는 말이 운율이 좋은 ‘아리랑’이라는 말로 변하여 <강원도긴아리랑>, <강원도자진아리랑>, <강원도엮음아리랑>으로 명칭이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것들이 전국적으로 널리 불리게 되면서 서울 지역에서 <강원도자진아리랑>을 ‘강원도아리랑’이라 이르고, <강원도엮음아리랑>을 ‘정선아리랑’이라 이르게 된 것이다.

한국 민요 가운데 후렴에 ‘아리랑’이라는 말이 나오고 제목에 ‘아리랑’이라는 말이 붙는 민요는 수없이 많지만 통속민요로 정착한 것은 <강원도자진아리랑(강원도아리랑)>, <강원도긴아리랑>, <강원도엮음아리랑(정선아리랑)>, <서울긴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등이 있고, 많이 부르다가 사라진 것에는 <서울구조아리랑(서울자진아리랑)>, <아롱타령(해주아리랑)>, <영천아리랑> 등이 있다.

<어랑타령(신고산타령)>을 아리랑으로 꼽는 이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이를 아리랑으로 꼽지는 않는다.

<강원도자진아리랑>은 강원도 지역에 전승되는 민요의 하나이다.

지금은 통속민요가 되었지만 본디 강원도와 그 인접 지역에서 모심기소리, 방아소리로 전승되던 토속민요 ‘강원도자진아라리’가 그 원형인데, 이것이 통속민요로 불리면서 널리 알려져 서울에서 이를 ‘강원도아리랑’이라 이르게 된 것이다.

이 아리랑은 강원도 동부 지역에 전승되는 <자진아라리>가 원형으로 보이며, 이것이 주목되는 것은 모든 아리랑의 근원적 특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 아리랑의 노랫말에는 아직도 토속민요의 향토적이고 소박한 특성이 남아 있다.

아주까리 동백아 여지 마라/ 산골에 큰애기 바람난다

아리아리 스리스리 아라리요/ 아라리고개로 넘어간다

좀 빠른 혼소박 4박자 엇모리장단으로 알려졌지만 실은 좀 빠른 혼소박 8박자(엇모리 두 장단)가 장단 주기를 이루며 전형적인 메나리토리이다.

곡조는 소박하고 향토적인 느낌을 준다.

<강원도긴아리랑>은 강원도 지역에 전승되는 아리랑 민요이다.

지금은 통속민요가 되었지만 본디 강원도와 그 인접 지역에 모심기소리, 뗏목소리, 나무꾼소리로 전승되던 토속민요 <강원도긴아라리>가 그 원형이다.

이 민요를 토대로 강원도 정선·평창 지역에서 ‘엮음아라리’가 파생되고 이것이 통속민요가 되면서 널리 알려져 서울에서 ‘정선아리랑’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것이 통속민요화되고 서울에 전파되면서 여기에서 <서울긴아리랑>이 파생되고, 또 여기에서 각종 아리랑이 파생되었기 때문에 아리랑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아리랑이다.

지금은 통속민요로 부르지만 아직도 그 노랫말에는 향토적인 소박한 사설이 남아 있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가 질라나/
만수산 기슭이에 실안개가 도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장단은 느린 3소박(3분박) 3박자 세마치장단을 치는데 세마치장단 네 장단이 장단 주기가 되므로 3소박 중모리장단이 맞는다.

전형적인 메나리토리로, 곡조는 처량하고 향토적인 소박한 느낌을 준다.

<강원도엮음아리랑>은 강원도 정선·평창 지역에 전승되는 민요이다.
본디 강원도 정선·평창 지역에서 <강원도긴아라리>의 사설을 촘촘히 엮는 <강원도엮음아라리>가 생성되었고, 이것이 서울 소리꾼이 부르면서 널리 알려져 이를 서울에서 ‘정선아리랑’이라 이르게 된 것이다.

사설을 촘촘히 길게 엮기 때문에 ‘엮음아라리’라 하는데 그 가락의 근원은 <강원도긴아라리>에 있다.


<강원도긴아리랑>에는 아직도 사설을 엮지 않는 원형이 더러 남아 있다.

정선 읍내 물레방아는 물살 안고 도는데/
우리 집의 서방님은 날 안고 돌 줄 모르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이를 <엮음아라리>에서는 앞 행을 길게 촘촘히 엮고 있다.

정선 읍내 물레방아 일삼 삼육십팔 마흔여덟
스물네 개의 허풍산이 물살 안고 도는데
우리 집의 서방님은 날 안고 돌 줄 모르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엮는 대목은 좀 빠른 불규칙한 장단으로 되어 있고 엮지 않는 대목은 원형인 <강원도긴아리랑>과 같이 좀 느린 3소박 3박자 세마치장단으로 되어 있다.

세마치장단 네 장단에 장단 주기가 이뤄진다.

전형적인 메나리토리로, 처량하고 향토적인 느낌을 준다.

<강원도엮음아리랑>은 전문적인 서울 소리꾼들이 전승하면서 약간 변화되어 <강원도엮음아리랑>보다 좀 느리고 강원도 메나리토리 특유의 시김새가 약화된 반면에, 서울의 대중적인 목이 강화되어 향토적인 정서는 덜하지만 대중적인 감정 표현은 매우 세련되게 변하였다.

<서울긴아리랑>은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수 시에 동원된 강원도 장정들이 부르던 <강원도긴아리랑>을 서울 소리꾼들이 경토리로 바꿔 부른 데서 발생한 것이라 한다.

<강원도긴아리랑>은 향토적인 소박한 맛이 있지만, 전문적인 소리꾼들이 부르는 <서울긴아리랑>은 도시적이고 대중적인 세련된 정서를 담고 있다.

만경창파 너른 바다 고기 둥실 뜬 배
거기 잠간 닻 주어라 말 물어보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로구료
아리랑 아리얼수 아라리로구료

<강원도긴아리랑>과 같이 3소박 3박자 세마치장단으로 되어 있고 세마치장단 네 장단이 장단 주기인 경토리이다. 처량한 느낌을 준다.

<서울자진아리랑>은 조선 말기에 <서울긴아리랑>을 빠르게 변주하여 만든 신아리랑이지만 뒤에 이를 변주한 <본조아리랑>이 생기면서 이를 ‘구조아리랑’이라 부르기도 한다.

조선 말기에는 한때 크게 유행하였지만 지금은 <본조아리랑>에 밀려 거의 잊히고 있다.

2소박 세마치장단으로 되어 있고 세마치장단 여덟 장단이 장단 주기인 경토리이다.

서울 근대 도시민의 정서가 담겨 경쾌한 느낌을 준다.

<본조아리랑>은 일제강점기 초기에 나운규가 일련의 아리랑 영화를 만들고 <서울자진아리랑>을 영화 음악으로 쓰면서 서양 정서로 편곡된 것이다.

일제강점기부터 널리 불렸고 외국에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요가 되었다. ‘본조아리랑’이라는 말이 원조 아리랑이라는 말로 오해되기도 하지만 실은 ‘서울 본바닥조’ 아리랑이라는 뜻이다. 일제강점기 서울 도시민의 정서를 담고 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2소박 세마치장단으로 되었고 세마치 여덟 장단이 장단 주기인 경토리이다.

근래에는 <본조아리랑>을 축제에 대중음악 양식으로 부르며 흔히 2소박 4박자로 바꿔 부르는 경우가 많다. 경쾌하고 유장한 느낌을 준다.

<밀양아리랑>은 일제강점기 초기에 강원도와 그 인접 지역에 전승되는 아리랑이 변형되어 생성된 아리랑이며, 일제강점기 밀양 지역 출신인 박남포가 지었다고 전한다.

통속민요화되어 대중적인 정서가 깃들어 있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얼시구 아라리가 났네

<강원도긴아리랑>과 같이 3소박 3박자 세마치장단이지만 좀 빠른 한 배로 되어 있는 변형된 메나리토리이다.

독특한 리듬과 선율로 활기찬 느낌을 준다.

<진도아리랑>은 일제강점기 초기에 강원도와 그 인접 지역에 전승되는 아리랑이 변형되어 생성된 아리랑이며, 전남 진도 출신의 대금 명인 박종기가 지었다고 전한다.

남도 음악 전문가의 손에 편곡된 것이라 남도적인 흥이 넘친다.

문경 새재는 웬 고갠고/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 난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강원도긴아리랑>과 같이 3소박 3박자 세마치장단이고, 좀 더 빠른 한 배로 되어 있다.

전적인 육자배기토리로, 남도 민요 <산아지타령>·<물레 타령>과 같이 남도 민요 특유의 가락을 담고 있어 독특한 리듬과 선율로 흥겨운 느낌을 준다.

<아롱타령>은 일제강점기 초기에 강원도와 그 인접 지역에 전승되는 아리랑이 높은 음역으로 변형되어 생성된 아리랑의 하나이다.

발생 당시에는 ‘아롱타령’ 또는 ‘아리랑’이라 일렀던 것인데 근래에 ‘해주아리랑’이라 이르는 이들이 있지만 해주와 연관은 없다고 한다.

아주까리 동백아 여지 마라/ 산골에 큰애기 바람난다
아롱 아롱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후렴의 입타령이 ‘아롱아롱’ 하여 <아롱타령>이라 이르던 것이다.

<밀양아리랑>과 비슷하여 <밀양아리랑>의 모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긴아리랑>과 같이 3소박 3박자 세마치장단이고 좀 빠른 한배로 되어 있다.
변형된 메나리토리로, 활기찬 느낌을 준다.

<영천아리랑>은 3소박 3박자 세마치장단 네 장단이 장단 주기(3소박 중모리)로 된 <강원도긴아리랑>이 한배가 빨라져 좀 빠른 2소박 12박자 중모리장단으로 변형된 아리랑이다.

일제강점기 초기에 유행하였는데, 지금은 거의 부르지 않는 것을 근래에 복원하여 부르면서 <영천아리랑>이라 이르고 있다.

그 명칭의 근거는 불분명하다.

메나리토리로, 처량한 느낌을 준다.





아리랑 엽서2014년 3월, 국립민속박물관
조선 말기에 아리랑이 강원도와 그 인접 지역을 넘어서 전국으로 널리 퍼지면서 각 지역 토리로 된 아리랑이 생겼는데, 그 단초는 조선 말기 경복궁을 중수할 때 <강원도긴아리랑>이 서울에 전해지고 이것이 서울토리로 바뀌어 <서울긴아리랑>이 생기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말기에 서울이 근대화되면서 이 <서울긴아리랑>의 한배가 빠르게 변하여 <서울자진아리랑>이 생겼는데, 일제강점기에 <본조아리랑>이 생기면서 이를 ‘서울구조아리랑’이라 이르게 된 것이다.

다른 한편 <강원도긴아리랑>이 각 지역 토리로 변화된 아리랑이 생겼는데, 이 가운데 <밀양아리랑>과 <진도아리랑>이 널리 알려져 이것이 통속민요화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나운규가 <아리랑>이라는 일련의 영화를 만들면서 <서울자진아리랑>을 <아리랑> 영화 음악으로 삼아 영화 상영 현장에서 연주했는데, 그 곡조가 약간 근대식으로 변하여 <서울본조아리랑>이 생겼다.

이것을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많이 불러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지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로 꼽히게 되었다.

이 무렵 각 지역에서 저마다 아리랑을 만들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아리랑이 생겨났지만, 이것들은 대부분 근래에 거의 사라졌다.

그 많은 아리랑 가운데 근대 축제에서 가장 활발히 쓰이고 있는 것은 <본조아리랑>이며, 근래에 대중음악 양식으로 편곡한 것들이다.

아리랑의 기원을 고려 말 유신들의 망국의 한에서 찾고 있는 아리랑의 기원설 내지 전설이, 이미 아리랑이 원천적으로 지니고 있을 역사·사회성에 대하여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랑의 흙다움과 역사·사회다움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비중의 우세를 지적할 때 제기될 수 있는 개념들이다.

그것은 아리랑이 원천적으로 지니고 있었던 역사·사회성이 대원군 시대와 같이 역사적 충격을 받아 상대적으로 흙다움보다 훨씬 목소리를 높였음을 뜻하는 것이다.
아리랑이 사회화하고 역사화하는 제2의 충격은 일제의 침략에 의하여 촉발된 것이라고 가정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표현이 나운규(羅雲奎)가 제작한 영화 <아리랑>이었다고 더불어 가정해 볼 수 있다.

그와 같은 아리랑의 사회화와 역사화는 8·15광복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중첩되어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아리랑의 자체 변화는 민간전승이 역사적 변화에 적응한 결과라고만 설명될 이상의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민간전승이 민간전승으로서, 다른 차원으로 옮겨 갔음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민간전승이 민간전승의 테두리를 떠나 다른 문화영역으로 옮겨 갔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리랑은 농어촌 전통사회의 민간전승에서 좁게는 도시 민간전승, 넓게는 사회 민간전승으로 탈바꿈해간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은 다른 민간전승에서 그 유사한 사례를 찾기 힘든 것이다.

이 경우, 사회 민간전승이란 동시대의 한국사회 전체가 공유한 민간전승임을 뜻한다.

그런 한편, 아리랑은 그 사회화와 역사화를 통하여 대중문화·상업소비문화, 그리고 창조적인 예술문화에까지 그 영역을 확대해 간 것이다.

이 같이 ‘흙의 소리’ 아리랑이 역사화·사회화해 간 사실은 제2차세계대전을 전후해서, 이른바 제3세계들에 걸쳐 광범위하게 일어난 민족주의적 문화운동으로서 일어난 민요운동과 동궤의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도 한 것이다.

신민요아리랑의 파장
아리랑은 앞서 언급한 삼대 전통 아리랑이 그 원류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에서 비롯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경기아리랑> 또는 <서울아리랑>은 신아리랑 또는 신민요아리랑이 잇따라 발생할 수 있는 동기 구실을 다한 것으로 생각된다.

신아리랑 또는 신민요아리랑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대중가요화한 아리랑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민요아리랑 또는 전통아리랑으로 하여금 새로운 시대, 말하자면 상업시대 및 산업사회의 대중들의 노래로서 살아남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이다.

가령 <아리랑삼천리>(박시춘 곡)를 효시로 삼아서, 일제강점기에 창작된 다섯 편 가량의 대중가요 아리랑에서 오늘날의 <영암아리랑>(하춘화 노래)에 이르기까지 ‘대중가요 아리랑’의 맥이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노래로서 아리랑은 전통민요→신민요→대중가요의 길을 걸어갔으며, 한편 ‘가곡 아리랑’의 흐름도 있다. 노래로서 아리랑은 그만큼 다양한 장르들을 포괄하게 된 것이다.

신민요아리랑의 효시라고 보아도 무관한 <경기아리랑>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라는 노랫말로 유명하지만, 음악언어의 원류는 대체로 <정선아라리>에서 찾을 수 있다.

1930년대 이후 숱한 신민요아리랑이 잇따라 창작되었을 때, <경기아리랑>은 달리 <본조아리랑>으로도 호칭되었거니와 그것은 <경기아리랑>이 신민요아리랑의 본조, 곧 본류라는 뜻이다.

<경기아리랑> 이 외의 나머지 신민요아리랑들은 <별조아리랑>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삼대 아리랑을 중심으로 일어난 아리랑의 물살은 시대의 차이, 갈래의 차이를 넘어서서 우리의 근대사회에 널리 또는 깊게 파장을 미쳐간 것이지만, <종두(種痘)아리랑>이나 <한글아리랑>으로 이름지을 만한 특수한 아리랑의 파생을 보기도 하였던 것이다.

<종두아리랑>은 천연두 예방주사를 널리 보급시키기 위하여, <한글아리랑>은 문명퇴치교육의 보급을 위하여 각기 창안된 것들이다.

이들 두 가지 보기들은 아리랑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창조되기도 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나, <독립군아리랑>이라는 또 다른 보기와 함께 이들은 아리랑이 민요의 텃밭인 민간전승 밖으로 벗어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가령, 이와 같은 아리랑의 탈민요 내지 탈민간전승을 크게 보아 아리랑의 원심력 방향 확산이라고 부르게 된다면, 앞에서 이미 언급한 대중가요화나 가곡화도 그 같은 확산의 일례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리랑의 탈민간전승운동이 굳이 한 방향, 한 범주로 묶여서 제약받을 수는 없다.

상업화하는 경향, 예술(문학·음악 등)사에 편입되는 성향, 실용성 높게 사회화하는 경향 등을 지적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독립군아리랑>의 경우는, 가령 그것이 집단적 의지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자체 내에서 창작되어 집단의식의 독자성을 강하게 향유하고 있었다면, 전통민속이 아닌 새로운 시대의 민속으로 평가하여도 좋을 것이다.

원심적 확산의 다양화는 민요아리랑의 사회화 내지 역사화로 표현할 수도 있는데, 이것은 아리랑이 원형 지향적 전통성(구심성) 이외에, 시대변화에 적응하는 높은 정도의 가변성을 향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구심성과 원심성의 극대화된 사례를 다른 전통민요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을 지적한다면, 다른 민요와 상대적으로 아리랑이 가지게 되는 개성이 그만큼 크게 두드러져 보이게 될 것이다.

결국 신민요아리랑의 파장은 급기야 천파만파를 불러 일으켜, 여러 방향으로 동시에 또 다른 파장이 일어나게 한 것이다. >>>다음 1 로이어집니다.





또 다른 구경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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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happyday-2100.tistory.com/142 [살맛 나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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