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동굴사찰.
일붕사
주소:경남 의령군 궁류면 평촌리 174 (옛주소)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 청정로 1180-42 (현주소)
055-572-7777
고려광종19년(968)창건,..석조미룩보살 에관한 설화..
한여인이 반야산 에서 나물을 캐다가 아이 우는 소리를 듣고 가보니 아이는 없고 큰 바위가 땅 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이소식을 들은 조정에서는 바위에 불상을 조성 하라고 혜명스님에게 명하였다 불사을완성 하여 세우자
미간의 옥호 에서 발한 빛이 세상을비추었는데 중국의 지안스님이 그빛을 ?아와 예불하였으며
그빛이 촛불과 같다하여 절 이름을 관촉사 라하였다..
우암사.
부산에서 제일 긴 인공 동굴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때 구리를 채굴하여 방치된 동굴을 30여 년 전에 이 동굴을 이용한 사찰이 생긴 것이다.
또 굴 위에 조각한 석불에서는 자주 서광이 빛나며 산곡과 동천석굴에 비친다고 한다.
불교, 동굴사찰.
# 논산 가야곡 반야사 동굴법당.
언양 '송운사' 동굴법당
신비의 용왕전도 들어가 보았어요.
아맞다~ 송운사 미타大석굴 오백나한도량 부터는
카메라 빠데리가 다 된 관계로 휴대폰으로 찍었는데요.
확실히 차이가 있더라고요.
화질에서 부터 어두운 곳이라 더욱더 티가 많이 나는 듯
송운사 미타大석굴 오백나한도량
송운사는 빼어난 풍경 외에도 석굴법당이 불자는 물론이고 일반인들까지
발길을 모으고 있다고 하는데요.
자수정을 체굴하기 위해 개발하다가 버려진 석굴을 활용을 하여
지어진 석굴 사찰,
# 여여정사.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행곡리 1058, 전화: 055-355-9290.
석굴에 조성된 대웅전으로 가는 길에
우리를 맞이하고 있는 12지신들
하얀 모습에 면사포 쓰신 백옥 약사 관세음보살님! 어느날 꿈을 꾸었네. 뽀얀 모습에 백의 관세음보살님 친견하였네.
백옥관음대불상 점안식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77호인 목조관음보살좌상(木造觀音菩薩坐像)이 모셔져 있는 곳이다.
부산에서 제일 긴 인공 동굴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때 구리를 채굴하여 방치된 동굴을 30여 년 전에 이 동굴을 이용한 사찰이 생긴 것이다.
굴의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부처님의 몸에 떨어져 산화되어
초록색을 띤다.
길이 1km가 더 된다고 말씀을 하시는 조장섭 국장님.
대중매체에 소개되어 궁금증을 해결 하고 싶은 모양이다.
동굴은 아직도 구리성분이 남아 있는 것이 확인 되었다.
옆에 마하사를 찾는 현대 불자의
욕구에 맞추어 절도 진화하고 있다.
마하사를 지나 1625 둘레길에 암맥이 바위를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안산암으로 보이는 바위에 암맥이 관입하면서
열접촉변성작용으로 적자색의 변성암이 보인 것이다.
문화도 기존의 문화에 새로운 문화가 들어오면
마찰에 의해 사회적 갈등이 생길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귀한 목숨이 희생되기도 한다.
일반 암석보다 암맥이 들어가 생기는 암석이
더욱 아름답듯이
문화의 접촉에서도
갈등에 의한 그 당시의 상처를 살펴 보려 하는 것이다.
함월산 골굴사(含月山 骨窟寺)
골굴사(骨窟寺)
신라문화의 뿌리는 불교문화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으며 경주남산과 토함산,
골굴사와 기림사가 있는 함월산은 그 대표적 유적지라고 할 수 있다.
골굴사는 기림사로 들어가는 길목의 왼쪽 골짜기 안.
절벽을 이루며 솟아있는 응회암벽 아래에 있으며.
화강암에 비해 강도가 낮은 응회암에 인공으로 여러 개의 석굴을 파고
불상을 모셨으나 지금은 대부분 소실되거나 파손되고
주존불만 남아있는 신라의 고찰이다.
불국사보다 약 200여년 먼저 조성된 골굴사는 신라의 불교가 성행하던 6세기경
인도에서 온 광유성인(光有聖人)이 임정사(林井寺-지금의 기림사)를 건립한 뒤
다시 이곳 암반전산에 마애여래불을 조성하고 인위적인 12개의 석굴을 조성하여
법당과 요사채로 사용해온 국내 유일의 석굴사원이다.
함월산은 화강암 재질로 동굴 형성이 어려운 한국의 산들과 달리
석회암 재질로 이루어져 있어 천생석굴(자연석굴)이 존재했고
거기다가 인공으로 석굴 조성이 가능했던 것이다.
골굴암은 단순한 동굴에 불상을 조성한 것이 아니라
인도 당시의 석굴사원 양식을 그대로 적용하였으며
당시 인도 사원의 생활 방식이 그대로 전해졌다는데서 그 의의를 가진다.
또 하나 주목할 만 한 점은 12처 석굴이라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감실을 만들고 부처님을 모신 곳이나 한 두 개의 동굴 속에
부처님을 모신 단순한 형태의 동굴법당들은 몇 개 있으나
골굴사처럼 12개의 석굴 그 자체가 가람인 곳은 한 군데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12처 석굴의 유래도 인도 석굴사원의 양식에서 찾을 수 있다.
골굴사는
신라함월산기림사사적(新羅含月山祇林寺事蹟. 1740년, 승려 방사파(方詞婆)편찬)에
나타난 골굴사 기록을 보면,
"산 북쪽에 천생석굴이 있으니 옛적에 십이구로 나뉘어 각기 이름을 지었던 것이다.
돌 빛이 결백하여 혹은 설산(雪山)이라 하며 혹은 단특산(檀特山)이라고도 한다.
매우 기구하고 험준하여 발붙일 곳이 없다 한다."
돌을 갈아 발 디딜 자리를 만들고 굴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속에 돌이 편편하여 방처럼 생긴 곳이 있어
돌을 베개하고 누우면 차지도 않고 훈훈하며 병자가 거주하면 병이 낫기도 한다.
그리고 굴벽에는 조각한 석불도 있는데
어느 때의 조성인지 알 수 없으나 연기에 끄슬려서 알아 볼 수가 없다.
또 굴 위에 조각한 석불에서는 자주 서광이 빛나며 산곡과 동천석굴에 비친다고 한다.
이러한 기적이 해마다 있는 것이다."
위의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12처 석굴의 모습이 남아 있었고,
당시의 골굴사가 석굴사원으로서 병을 치유하는 종교적 측면이 강조 되어 있으며,
현재의 관음굴 내부 마애불과 현재 보물 581호로 지정된
마애여래불의 상서로운 이적 등이 묘사 되어 있다.
골굴사는 예로부터 인근 주민들의 기도처였으며
불교정신문화의 산실로 이어져왔으나 조선 후기 화재로 전소되어
거의 폐사지로 남아있던 도량을
1933년 박석조 스님이 인법당을 신축하고(현재의 대적광전 자리) 법당과 요사채로
사용하였다.
1972년에 태고종 사찰로 등록하여
1989년 11월 까지 태고종단의 소속 사찰로 유지되어 왔다.
박석조 스님의 아들인 박굴보 스님은 골굴사에서 출생 선친으로부터 승려 교육을 받고
골굴사를 이어 받아 1984년 입적할 때 까지 골굴사를 지켰다.
박굴보 스님 입적이후 그
의 장남인 박원수가 1985년에 태고종단으로부터 교임임명을 받았으나
1987년에 이 사찰을 개인에게 매매를 하였다,
이에 천년고찰이 사라질 위기를 느낀 신도들이 1
989년 11월 25일에 당시 기림사 주지였던 설적운스님(현 골굴사 주지)에 부탁하여
개인에게서 이를 매입하고,
태고종단소유의 사찰을 1990년 대한불교 조계종으로 등록 및 등기 이전하였다.
현재 골굴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1교구 불국사 말사로 등록 되어 있다.
골굴사 관음굴(骨窟寺 觀音窟)
골굴사의 12개 석굴중에서 가장 넓은 석굴법당으로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시고 있으며,
동굴의 벽면에는 108관음보살상을 모셨다.
옛날에는 벽면에 마애불상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거의 흔적이 없으며,
정동쪽을 향해 있는 입구에는 겸재 정선의 골굴석굴도에 있는 것처럼
목조전실을 조성해 놓았다.
예전에는 온돌을 놓아 난방을 했으나 지금은 그냥 마루방으로 개조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이 석굴볍당에서 잠을 자고나면
병들고 허약한 이가 생기를 얻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법당 안에서는 청량한 기감을 느낄 수 있다.
이곳 함월산지역은 석회암지층으로서 제오라이트 등의
광산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암반의 성분이 맥반석처럼 인체에 유효한 발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골굴(骨窟)
區分十二天生窟 (구분십이천생굴) - 열 두 개로 나뉘어진 천생(天生)의 굴은
逈絶塵緣恒淨潔 (형절진연항정결) - 속세(塵緣)와 길이 끊겨져 항상 정결하도다
縹緲危巒戴月高 (표묘위만대월고) - 멀리 보이는 험준한 산이 아스라하고,
머리 위 달은 높디 높구나
崎嶇曲路彫崖出 (기구곡로조애불) - 험하디 험한 굽이굽이 구불한 길,
벼랑 위 바위에 여래가 새겨있고
岩房不熱石還懊 (암방불열석환오) - 바위 속 돌방은 훈훈하여 그 속에 드니
일만 근심이 사라지는구나
檀木無煙焄自鬱 (단목무연훈자울) - 불에 타 그을려 흔적 없는 곳에
박달나무만이 저 스스로 우거져있네
休道天西驄嶺外 (휴도천서총령외) - 길조차 쉰 이곳이 달마대사 짚신 지고
넘던 총령 아닌가 하노라
海東亦有眞闍堀 (해동역유진사굴) - 해동에서 참 부처님 모신 굴은 예뿐인가 하노라.
골굴사 선무도
선무도란
위빠사나’(vipasannā)라고 불리는 수행법으로
본래는 불교금강영관(佛敎金剛靈觀)이라 하여 부처님 당시부터 전수되어 온 수행법이다.
이는 깨달음을 위한 실천 방법으로 인도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오던
요가와 명상을 아우르는 관법수행이다.
1960년대 양익(兩翼)스님이 흩어진 관법수련을 체계화하여
이를 승가에만 전수하였는데,
1970년대에 이를 설적운스님이 전수받아 대중포교(大衆布敎)를 위해
1985년도부터 ‘선무도’라고 칭하게 되었다.
선무도의 수련방법에는 선요가, 좌관법, 입관법, 행관법이 있다.
현재 선무도는 해외보급과 전문지도자를 배출하기 위하여 골굴사와
국내 대학에 특강 및 교양과목으로 개설되어 있다.
또한 사단법인 세계선무도협회 산하에 국내외 지원과 지부를 두어 활동하고 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