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3
석유의 역사는 현대 문명의 역사다,
석유 시추, 바다에서 검은 황금을 퍼 올리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땅에서 검은 액체가 스며나오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리스 사람들은 이것을 '돌기름(석유, 石油)'이라고 불렀지요. 불이 잘 붙어서 등잔에 넣거나 귀한 약으로 사용했어요. 원래 옛 사람들은 고래 기름을 이용하여 불을 켜곤 했는데, 고래 잡기가 힘들어지자 석유를 더 많이 찾게 되었어요.
석유는 바다 생물들이 땅속에 묻혀 퇴적물이 계속 쌓여 높은 열과 압력을 받아 만들어진 것으로 석탄과 더불어 화석 에너지의 하나이다. 화석 에너지는 매장량이 한정되어 있어 지금과 같은 정도로 계속 사용한다면 석탄은 100년, 석유는 40년 정도밖에 쓸 수 없다고 한다.
19세기 후반 이후 현대 문명사회에서 에너지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광물 자원은 석유이다. 석유는 생물의 유해가 퇴적된 후에 생긴 탄화수소와 그 밖의 유기 분자의 혼합물이다. 머나먼 지질 시대에 바다에 살던 생물(동물과 식물)들의 사체가 해저에 가라앉고 그 위에 진흙과 모래 등의 퇴적물이 쌓였으며, 수백만 년 동안 지하의 열과 압력, 박테리아의 분해 작용에 의해 석유로 변하였다. 천연가스도 이와 비슷한 과정에 의해 생겼다.
지금 우리는 석유를 이용하여 재배한 채소와 고기를 먹고, 석유로 만든 옷을 입고, 석유를 태워 움직이는 자동차와 기차를 이용해요. 장난감, 컴퓨터, 놀이기구, 도로, 건물, 윤활유, 세제, 농약, 플라스틱 제품 등 석유를 이용한 물건들로 둘러싸여 있어요. 만약 단 하루만이라도 석유를 구할 수 없다면 큰 난리가 벌어질 거예요.
오늘날 세계 모든 나라가 석유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어요. 유전(油田 : 석유가 나는 지역)을 갖고 있는 나라는 지키기 위해, 유전이 없는 나라는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는 중이랍니다. 매일매일 석유 가격이 어떻게 오르내리느냐에 따라 세계의 살림살이가 흔들리는 상황이 되었거든요.
사람들은 지난 150년 동안 석유를 사용해 왔지만, 인구가 갑자기 늘어나면서 사용하는 석유의 양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요. 묻혀 있는 양은 그대로인데 사용량만 늘어나고 있으니 어떻게 되었을까요?
육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유전은 이미 거의 바닥이 나고, 이제는 바다로 눈길을 돌려 탐사를 하게 되었답니다. 전체 석유 자원의 3분의 2는 육지에, 나머지는 바닷속에 있다고 해요. 육지의 석유를 이미 3분의 2 이상 뽑아 썼기 때문에 이제는 바닷속 석유에 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태예요.
바닷속 깊은 곳에 어떻게 석유가 들어 있는 걸까요?
바닷속 깊은 곳에 어떻게 석유가 들어 있는 걸까요?
1. 죽은 생물이 해저에 가라앉은 뒤
2. 사암이나 이암(泥岩)으로 뒤덮이고
3. 압력과 열이 작용해 석유가 만들어진다.
바다에서 석유를 캐내려면 석유가 저장되어 있는 지층을 먼저 찾아야 해요. 육지에서야 직접 야외 조사를 하면 되지만 바다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해요. 그래서 배에서 음파(소리)를 바다 아래쪽으로 쏘아 보낸 뒤, 되돌아오는 반응을 보고 바다 밑바닥의 지층을 간접 조사할 수밖에 없다.
그런 다음, 바다 밑바닥보다 더 깊은 곳 어느 지층, 석유가 모여 있는 곳까지 구멍을 뚫어서 바다 표면 위로 끌어올려야 하니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까요? 처음에 육지에서 석유를 뽑아 쓸 때는 땅에 구멍을 뚫은 뒤 펌프 장치만 설치하면 되었지만, 바다에서 석유를 캐는 작업은 이와 다르지요. 바다에는 늘 움직이는데다, 때로 거칠게 요동하는 바닷물이라는 방해꾼이 있으니까요. 게다가 바다 밑으로 갈수록 압력은 세지고, 사람이 직접 땅에 발을 대고 작업할 수도 없으니 어려움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런 이유로 바다에서 석유를 생산하는 데 드는 돈은 육지에서 가장 비싼 곳과 비교해 보더라도 4배 이상 비싸답니다.
그런 다음, 바다 밑바닥보다 더 깊은 곳 어느 지층, 석유가 모여 있는 곳까지 구멍을 뚫어서 바다 표면 위로 끌어올려야 하니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까요? 처음에 육지에서 석유를 뽑아 쓸 때는 땅에 구멍을 뚫은 뒤 펌프 장치만 설치하면 되었지만, 바다에서 석유를 캐는 작업은 이와 다르지요. 바다에는 늘 움직이는데다, 때로 거칠게 요동하는 바닷물이라는 방해꾼이 있으니까요. 게다가 바다 밑으로 갈수록 압력은 세지고, 사람이 직접 땅에 발을 대고 작업할 수도 없으니 어려움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런 이유로 바다에서 석유를 생산하는 데 드는 돈은 육지에서 가장 비싼 곳과 비교해 보더라도 4배 이상 비싸답니다.
석유의 원료는 바로 생물이에요. 동식물이 죽어서 묻힌 다음, 적당한 깊이에서 압력과 열을 받아 익어야 석유가 될 수 있어요. 우선 생물들이 살다가 죽고, 물이 있어 퇴적물을 가져다 그 사체를 쉽게 묻을 수 있는 곳, 땅이 갈라지거나 구부러지고 산이 높아지는 등 지구의 변동을 가장 먼저 겪는 곳이어야 해요. 어딜까유?
그곳은 바로 바닷가예요. 석유가 땅속 어딘가에서 만들어진 다음, 땅속의 틈 사이를 헤집고 한곳에 모여 우리가 캘 수 있는 유전이 되기까지는 수백만 년 이상이 걸려요. 때로는 유전이 해안에 나타나기도 하고 육지 쪽에서 발견되기도 하지만, 원료를 대개 바다가 제공해 주지요.
석유는 잔구멍이 많은 다공질의 암층을 통해 위쪽으로 올라가는데, 치밀한 암층에 이르면 흐름을 멈추고 고인다. 주로 사암층에서 고이는데 이처럼 석유가 고인 곳을 ‘오일 풀(oil pool)’이라고 한다. 오일 풀은 지각의 변동이나 대륙의 이동 등으로 바다에서 육지로 이동하여 육지의 유전 지대를 만들었다. 중동 지역이나 미국, 러시아, 중국 등에 위치한 대부분의 유전은 바다에 있던 오일 풀이 육지로 이동한 것이다. 하지만 육상의 매장량은 점점 줄어 50년쯤 후에는 고갈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전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석유의 생성과 부존의 충족 조건이 모두 갖추어졌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석유(가스)의 매장량이 경제적 가치를 가져야 유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대륙붕과 대륙사면 해저에서 석유가 생산되는 해역은 멕시코 만과 캘리포니아 남쪽, 알래스카 연안, 북해 등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970년대부터 개발 가능성이 있는 몇몇 해역에서 탐사를 지속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서해와 남해는 대륙붕이 발달하여 석유가 묻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특히 제주도 남쪽에서 시추 중인 미국 석유 회사들은 최소한 6억 배럴의 석유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민간 기업도 인도네시아의 마두라 해역 및 북예멘의 바다에서 석유ㆍ천연가스 개발 사업을 하고 있다.
유전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석유의 생성과 부존의 충족 조건이 모두 갖추어졌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석유(가스)의 매장량이 경제적 가치를 가져야 유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대륙붕과 대륙사면 해저에서 석유가 생산되는 해역은 멕시코 만과 캘리포니아 남쪽, 알래스카 연안, 북해 등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970년대부터 개발 가능성이 있는 몇몇 해역에서 탐사를 지속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서해와 남해는 대륙붕이 발달하여 석유가 묻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특히 제주도 남쪽에서 시추 중인 미국 석유 회사들은 최소한 6억 배럴의 석유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민간 기업도 인도네시아의 마두라 해역 및 북예멘의 바다에서 석유ㆍ천연가스 개발 사업을 하고 있다.
석유는 언제부터 인간에게 알려졌을까? 원시 시대부터 석유는 알려져 있었다. 다만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이 지금과 같이 다양하거나 폭넓지도 않았고, 또 그렇게 유용할 줄 상상도 하지 못했을 뿐이다. 석유란 말은 돌기름 즉, 영어의 petroleum을 번역해 생긴 말이다. 이 단어는 petra(돌)란 말과 oleum(기름)이란 라틴어 단어를 묶어서 만든 말로 ‘돌에서 얻은 기름’ 즉, 석유(石油)가 된 것이다. 동서양 어디에서 처음으로 석유를 사용하기 시작했는지는 명확히 알 수는 없다. 다른 모든 일이 그렇듯이 서양 사람들은 서양에서 먼저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중국인들은 또 그들이 처음이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서양 사람들은 대략 기원전 2000년쯤에 이미 저절로 땅에서 올라온 석유를 윤활유로 쓰거나 설사제로 사용했다고 한다. 기원전 400년쯤에는 페르시아 군대가 아테네를 공격하면서 석유를 방화용 기름으로 화살촉에 발랐다고도 전한다. 메소포타미아·페르시아 등지에서는 적어도 기원전 3200년경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석유의 유적이 있다. 기록상으로 보면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에 방수용으로 아스팔트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당시로서는 지표에 자연적으로 스며나온 원유나 아스팔트를 채취하여 사용한 정도일 것이다.
13세기경 미얀마·카스피 해 연안에서 간단한 채굴 도구를 사용하여 원유를 채굴했다는 기록도 있으며, 12세기 아랍인들이 스페인을 침공하면서 비로소 유럽에 석유가 전해졌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15세기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탐험하게 되자 그곳의 원주민인 인디언이 이미 석유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즈음만 하더라도 석유는 램프를 밝히는 고래 기름을 대신할 물질 정도로 인식되었을 뿐이다.
동양에서의 석유 역사 또한 유구하다. 중국인들은 기원전 2000년 전부터 이미 중국에서 석유를 이용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석유에 관한 중국의 첫 기록은 한나라 때의 반고(班固, 32~92)가 지은 역사책 『한서(漢書)』에서 발견된다. 그 후에도 여러 책에 석유에 대한 간단한 기록들이 나오지만, 정식으로 이를 ‘석유’란 말로 정착시킨 사람은 송(宋)나라 때의 과학자 심괄(沈括, 1031~1095)이었다. 심괄은 ‘석유는 얼핏 보면 옻나무의 진과 다름없이 보이며, 태우면 짙은 연기를 내고 센 불길을 낸다. 그 연기로 먹(墨)을 만들 수가 있는데, 이렇게 만든 먹으로 쓴 글은 옻칠로 쓴 것처럼 검고 윤기가 돈다’고 기록했다. 이어 그는 석유는 땅속에서 나오는데, 그 양이 아주 많아서 앞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쓰일 것이라고 예언까지 했다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석유란 것이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다. 『후한서(後漢書)』에 기록된 것을 보면 주천(酒泉)이란 곳에서는 비즙(肥汁)이 나는데, 이것은 아주 밝게 타며 먹을 수는 없다고 되어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석유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렀던 것이 확인된다. 고서에는 비즙, 수비(水肥), 석지(石脂), 화유(火油), 맹화유(猛火油), 웅황유(雄黃油), 석뇌유(石腦油) 등 여러 이름이 전해진다. 5~6세기 남북조 시대의 기록을 보면 지금의 신장웨이우얼 자치구 구자국이란 곳의 산중에서 끈적거리는 액체가 흘러나와 개울을 이루어 몇 리를 흐르다가 땅속으로 스며들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액체는 의학적으로 탁월한 치유 효과가 있었다고 서술되어 있다.
이렇게 유구한 역사를 가진 석유가 현대적 의미의 에너지 자원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세기 유럽에서였다. 1861년 1월 21일자 런던의 《타임스(The Times)》는 “1859년 11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서는 석유를 뽑아내기 위해 유정(油井)을 팠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것이 최초의 석유 시추 성공 사례로 알려지고 있다.
드레이크는 펜실베이니아 석유 회사에 고용된 기술자였다. 펜실베이니아 주 오하이오 크리크의 타이터스빌에 있는 유전의 개발 명령을 받게 되었고, 다락집, 동력강굴, 케이싱 등의 방법을 고안하여 오일 크리크(Oil Creak) 근처에서 지하 21미터를 파내려가 석유 채굴에 성공했다. 이것이 근대 석유 공업의 시작으로 꼽히는 대사건이 된 것이다. 그 후 1848년 영국의 화학자 J. 영이 탄갱에서 용출된 원유와 석탄가루 타르에서 처음으로 석유의 역사는 현대 문명의 역사다 (청소년을 위한 미래과학 교과서 - 신재생에너지, 2009. 10. 16., 손재익, 강용혁) 등을 추출하는 것을 연구해 특허를 획득했다. 영의 방법은 곧 미국에 전해졌고, 석탄유(coal oil)라 불리면서 종래의 식물유·동물유 대신 원유나 석탄에서 정제등화용 연료(등유)의 제조가 급격히 보급되었다.
석유의 용도가 매우 다양화된 것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로, 그 최초의 동기가 된 것은 1879년 미국의 에디슨(Thomas Edison, 1847~1931)에 의한 전등의 발명, 1883년 G. 다임러(Gottlieb Daimler, 1834~1900)에 의한 가솔린 기관 자동차의 발명, 1893년 R. 디젤(Rudolf Diesel, 1858~1913)에 의한 디젤기관의 발명 등이었다. 증기기관 시대에는 주로 장작 그리고 석탄이 주요한 에너지원이었다. 가끔 오래된 흑백 영화에서 석탄이나 장작을 열심히 태우며 흰 연기를 날리는 열차를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증기기관은 이러한 가솔린 기관의 등장과 함께 소멸했다.
그 후 제1, 2차 세계대전을 겪는 동안 석유의 중요성이 크게 인식됨으로써 석유 산업이 더욱 발전했다. 우선 20세기에는 전등의 보급으로 석유 램프가 후퇴함에 따라 등유의 수요는 감소했으나 중유나 아스팔트가 이용되기 시작했고, 자동차의 발전으로 그때까지 폐기물에 불과했던 가솔린이 중요한 석유 제품이 되었다. 특히 1903년 포드(Henry Ford, 1863~1947)가 포드 자동차를 설립하고, 수년 내에 독자적인 양산 방식을 확립한 이래, 가솔린의 수요는 더욱 급증했다. 더욱이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항공기가 급속히 발전하자, 고옥탄가의 가솔린 제조가 급진적으로 발달했다.
한편 기선, 군함 등에 있어서는 디젤화가 이루어져 선박용 연료도 석탄으로부터 점차 중유로 전환되었다. 또한 제1, 2차 세계대전 동안에 소형 고속 디젤 기관이 두드러지게 발전함에 따라 자동차, 기관차, 트랙터 등의 연료로 경유의 이용도 급증했다. 더불어 전후 가정용 연료로 크게 보급된 것으로 석유 정제 과정 중 부산물로 산출되는 액화석유가스(LPG)가 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후 항공기의 주력은 프로펠러기에서 제트기로 바뀌어 제트 연료도 중요한 석유 제품이 되었다.
이후 1950년대부터 중동 지역에서 세계 최대의 유전이 발견되고 적극적으로 개발되자, 석유는 값싸고 대량 사용이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에너지 자원의 최고 위치는 석탄에서 석유로 바뀌고 석유의 대량 소비 시대에 들어감으로써, 이른바 에너지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에너지 혁명은 현대 사회를 석유 없이는 인간의 존재를 상상하기도 힘든 상황으로 이끌어왔다. 인간의 일상생활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근본과도 같은 석유의 패러다임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있는가? 질문은 여기서 출발한다.
고대 서양 사람들은 대략 기원전 2000년쯤에 이미 저절로 땅에서 올라온 석유를 윤활유로 쓰거나 설사제로 사용했다고 한다. 기원전 400년쯤에는 페르시아 군대가 아테네를 공격하면서 석유를 방화용 기름으로 화살촉에 발랐다고도 전한다. 메소포타미아·페르시아 등지에서는 적어도 기원전 3200년경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석유의 유적이 있다. 기록상으로 보면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에 방수용으로 아스팔트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당시로서는 지표에 자연적으로 스며나온 원유나 아스팔트를 채취하여 사용한 정도일 것이다.
13세기경 미얀마·카스피 해 연안에서 간단한 채굴 도구를 사용하여 원유를 채굴했다는 기록도 있으며, 12세기 아랍인들이 스페인을 침공하면서 비로소 유럽에 석유가 전해졌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15세기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탐험하게 되자 그곳의 원주민인 인디언이 이미 석유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즈음만 하더라도 석유는 램프를 밝히는 고래 기름을 대신할 물질 정도로 인식되었을 뿐이다.
동양에서의 석유 역사 또한 유구하다. 중국인들은 기원전 2000년 전부터 이미 중국에서 석유를 이용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석유에 관한 중국의 첫 기록은 한나라 때의 반고(班固, 32~92)가 지은 역사책 『한서(漢書)』에서 발견된다. 그 후에도 여러 책에 석유에 대한 간단한 기록들이 나오지만, 정식으로 이를 ‘석유’란 말로 정착시킨 사람은 송(宋)나라 때의 과학자 심괄(沈括, 1031~1095)이었다. 심괄은 ‘석유는 얼핏 보면 옻나무의 진과 다름없이 보이며, 태우면 짙은 연기를 내고 센 불길을 낸다. 그 연기로 먹(墨)을 만들 수가 있는데, 이렇게 만든 먹으로 쓴 글은 옻칠로 쓴 것처럼 검고 윤기가 돈다’고 기록했다. 이어 그는 석유는 땅속에서 나오는데, 그 양이 아주 많아서 앞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쓰일 것이라고 예언까지 했다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석유란 것이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다. 『후한서(後漢書)』에 기록된 것을 보면 주천(酒泉)이란 곳에서는 비즙(肥汁)이 나는데, 이것은 아주 밝게 타며 먹을 수는 없다고 되어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석유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렀던 것이 확인된다. 고서에는 비즙, 수비(水肥), 석지(石脂), 화유(火油), 맹화유(猛火油), 웅황유(雄黃油), 석뇌유(石腦油) 등 여러 이름이 전해진다. 5~6세기 남북조 시대의 기록을 보면 지금의 신장웨이우얼 자치구 구자국이란 곳의 산중에서 끈적거리는 액체가 흘러나와 개울을 이루어 몇 리를 흐르다가 땅속으로 스며들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액체는 의학적으로 탁월한 치유 효과가 있었다고 서술되어 있다.
이렇게 유구한 역사를 가진 석유가 현대적 의미의 에너지 자원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세기 유럽에서였다. 1861년 1월 21일자 런던의 《타임스(The Times)》는 “1859년 11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서는 석유를 뽑아내기 위해 유정(油井)을 팠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것이 최초의 석유 시추 성공 사례로 알려지고 있다.
드레이크는 펜실베이니아 석유 회사에 고용된 기술자였다. 펜실베이니아 주 오하이오 크리크의 타이터스빌에 있는 유전의 개발 명령을 받게 되었고, 다락집, 동력강굴, 케이싱 등의 방법을 고안하여 오일 크리크(Oil Creak) 근처에서 지하 21미터를 파내려가 석유 채굴에 성공했다. 이것이 근대 석유 공업의 시작으로 꼽히는 대사건이 된 것이다. 그 후 1848년 영국의 화학자 J. 영이 탄갱에서 용출된 원유와 석탄가루 타르에서 처음으로 석유의 역사는 현대 문명의 역사다 (청소년을 위한 미래과학 교과서 - 신재생에너지, 2009. 10. 16., 손재익, 강용혁) 등을 추출하는 것을 연구해 특허를 획득했다. 영의 방법은 곧 미국에 전해졌고, 석탄유(coal oil)라 불리면서 종래의 식물유·동물유 대신 원유나 석탄에서 정제등화용 연료(등유)의 제조가 급격히 보급되었다.
석유의 용도가 매우 다양화된 것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로, 그 최초의 동기가 된 것은 1879년 미국의 에디슨(Thomas Edison, 1847~1931)에 의한 전등의 발명, 1883년 G. 다임러(Gottlieb Daimler, 1834~1900)에 의한 가솔린 기관 자동차의 발명, 1893년 R. 디젤(Rudolf Diesel, 1858~1913)에 의한 디젤기관의 발명 등이었다. 증기기관 시대에는 주로 장작 그리고 석탄이 주요한 에너지원이었다. 가끔 오래된 흑백 영화에서 석탄이나 장작을 열심히 태우며 흰 연기를 날리는 열차를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증기기관은 이러한 가솔린 기관의 등장과 함께 소멸했다.
그 후 제1, 2차 세계대전을 겪는 동안 석유의 중요성이 크게 인식됨으로써 석유 산업이 더욱 발전했다. 우선 20세기에는 전등의 보급으로 석유 램프가 후퇴함에 따라 등유의 수요는 감소했으나 중유나 아스팔트가 이용되기 시작했고, 자동차의 발전으로 그때까지 폐기물에 불과했던 가솔린이 중요한 석유 제품이 되었다. 특히 1903년 포드(Henry Ford, 1863~1947)가 포드 자동차를 설립하고, 수년 내에 독자적인 양산 방식을 확립한 이래, 가솔린의 수요는 더욱 급증했다. 더욱이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항공기가 급속히 발전하자, 고옥탄가의 가솔린 제조가 급진적으로 발달했다.
한편 기선, 군함 등에 있어서는 디젤화가 이루어져 선박용 연료도 석탄으로부터 점차 중유로 전환되었다. 또한 제1, 2차 세계대전 동안에 소형 고속 디젤 기관이 두드러지게 발전함에 따라 자동차, 기관차, 트랙터 등의 연료로 경유의 이용도 급증했다. 더불어 전후 가정용 연료로 크게 보급된 것으로 석유 정제 과정 중 부산물로 산출되는 액화석유가스(LPG)가 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후 항공기의 주력은 프로펠러기에서 제트기로 바뀌어 제트 연료도 중요한 석유 제품이 되었다.
이후 1950년대부터 중동 지역에서 세계 최대의 유전이 발견되고 적극적으로 개발되자, 석유는 값싸고 대량 사용이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에너지 자원의 최고 위치는 석탄에서 석유로 바뀌고 석유의 대량 소비 시대에 들어감으로써, 이른바 에너지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에너지 혁명은 현대 사회를 석유 없이는 인간의 존재를 상상하기도 힘든 상황으로 이끌어왔다. 인간의 일상생활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근본과도 같은 석유의 패러다임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있는가? 질문은 여기서 출발한다.
석유를 이용한 생활용품의 종류,
우리 생활에서 석유를 이용해서 만든 물건은 참 많아. 학교, 집, 거리 등 다양한 장소에서 석유를 이용한 물건을 찾아보자.
① 석유화학제품의 종류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조사한다.
② 주변의 생활용품 중에서 공장에서 만들어낸 것을 찾는다.
③ 사용 용도 및 장소에 따라 분류한다.
④ 생활용품의 재료가 무엇인지 찾아본다.
☞ 플라스틱, 고무, 섬유, 윤활제, 양초, 특수유리 등 어떤 석유화학제품을 사용했는지 알아본다.
⑤ 석유화학제품을 대체할 수 있는 자연 제품을 찾아본다.
② 주변의 생활용품 중에서 공장에서 만들어낸 것을 찾는다.
③ 사용 용도 및 장소에 따라 분류한다.
④ 생활용품의 재료가 무엇인지 찾아본다.
☞ 플라스틱, 고무, 섬유, 윤활제, 양초, 특수유리 등 어떤 석유화학제품을 사용했는지 알아본다.
⑤ 석유화학제품을 대체할 수 있는 자연 제품을 찾아본다.
쓰임새!,
석유화학제품이란 석유나 천연가스로부터 제조되고, 연료 및 윤활유 이외의 화학적 용도로 사용되는 제품을 말한다. 석유화학 제품은 자동차, 항공기, 직물 등의 제조공업, 식품가공, 농업, 건축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출처 & 참고문헌,
[석유 [石油] (학습용어 개념사전, 2010..,)
[살아있는 과학 교과서
[석유 시추 - 바다에서 검은 황금을 퍼 올리다 (대단한 바다여행, 2009. 12..,)
[석유의 역사는 현대 문명의 역사다 (청소년을 위한 미래과학 교과서 - 신재생에너지, 2009. 10..,)
[네이버 지식백과] 석유 - 가장 값진 자원 (우리 바다 이야기, 2005.,)
[석유를 이용한 생활용품의 종류 조사하기 (한 권으로 끝내는 초등과학 자유탐구 (3~6학년), 20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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