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3일 수요일

청와대,

청와대,

청와대가 대통령이 사는 집이라고 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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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대한민국 최고 권력의 심장부이자 수뇌부다.


이곳을 거쳐 간 역대 대통령들의 드라마 같은 영욕의 세월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대변한다.


해방과 분단, 한국전쟁을 치르고서도 대한민국은 기적 같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스스로 이뤄낸 그 업적에 대한 평가에 인색한 편이다.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더 그렇다.


*옛날에는 왕이 정치를 하고 나라를 다스렸어요. 오늘날에는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뽑고, 대통령은 국민의 의견을 존중하여 국가와 국민을 위해 나라 살림을 꾸려 가지요.


*청와대는 ‘푸를 청(靑)’에 ‘기와 와(瓦)’‘푸른 기와집’이라는 뜻으로 대통령이 *집무를 보고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곳이에요.


*대통령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국가 원수라고도 해요. 


대한민국 최고 책임자로 행정부에 관한 최고의 권한을 가지고 있지요.


*대통령은 국무총리, 장관 등과 국무 회의를 열어 나라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며우리나라를 대표하여 국제 회의에 참석하기도 하고 외국의 손님도 맞이 하는곳이기도 하며. 나라에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에는 국민들의 생활을 직접 살펴요.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로 1에 위치한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이 건물은 대통령 집무실을 비롯하여 회의실·접견실·주거실 등이 있는 2층 본관과 경호실·비서실 및 영빈관 등 부속건물이 있고, 정원과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후원 및 연못 등의 미관을 갖추고 있다.


1948년 8월 정부수립 후, 1960년 8월까지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명명으로 제1공화국의 대통령 관저명 ‘경무대(景武臺)’로 불려오다가,


그 해 8월 13일 제2공화국 대통령으로 윤보선(尹潽善)이 선출되어 입주하면서 청와대로 개명하였다.

이 명칭은 대리석으로 된 본관 건물이 청기와로 이어져 있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청와대 터는 고려시대 남경(南京)의 이궁(離宮)이 있던 곳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26년(세종 8)에 창건된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神武門) 밖으로 후원에 해당하는 이 지대를 경무대라 하였다.

북악산 산록에 위치하여 서울 장안을 전망할 수 있는 이 경무대는 어영(御營: 조선시대, 인조반정 


대통령이 사는 청와대?

ⓒ (주)천재교육 | BY-NC-ND
ⓒ (주)천재교육 | BY-NC-ND

춘추관

*춘추관은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때 정치나 행정의 기록을 맡았던 기관의 이름이에요. 지금은 대통령이 기자 회견을 여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지요.


*1층에는 기자들이 사용하는 기자실과 자료실이 있고, 2층에는 대통령이 기자 회견을 하는 방이 있어요.


녹지원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 *식수가 있는 야외 행사장이에요. 경복궁 뒤뜰이었던 곳으로 청와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예요.


여러 종의 나무들과 예쁜 잔디가 심어져 공원처럼 산책하기 좋아요.


본관

*본관은 대통령이 일하는 곳과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어요. ‘청와대’ 하면 떠오르는 푸른 지붕의 집이 바로 본관이랍니다.


*청와대는 우리나라 건축 양식 중의 하나인 팔작 지붕으로 아름답게 지어졌고, 푸른 기와로 지붕이 덮여 있지요.


여기서 잠깐 〈팔작 지붕은 무엇인가요?〉


팔작 지붕은 위쪽 절반은 세모 모양으로, 아래쪽 절반은 네모 모양으로 만든 지붕이에요. 팔작 지붕은 한옥의 지붕 모양 중에서 아주 아름다운 모양으로 꼽힌답니다.영빈관


*큰 연회를 열거나 외국의 중요한 손님들을 위한 공식 행사를 치르는 곳이에요. 


1층은 만남의 장소와 공연이 열리는 공간이에요. 2층에서는 식사 대접과 행사가 치러지지요.


용어 사전

*식수(심을 식 植, 나무 수 樹) : 나무를 심음. 또는 심은 나무. (예) 월드컵 공원에는 월드컵의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식수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사는 집, 청와대

하남 덕풍초등학교 3학년 한예찬

대통령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일을 하고 가족과 함께 생활을 하는 곳이라고 해서 가 보았다.


인상 깊었던 점

청와대는 다양한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외국 손님들과 이야기를 하는 곳, 식사 대접을 하는 곳, 행사가 열리는 곳,


대통령이 일하는 곳 등 보는 곳마다 신기하게 느껴졌다. 가장 인상에 남는 곳은 녹지원이었다.


녹지원에서는 역대 대통령들이 심었다는 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대통령들은 나무를 심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우리나라가 잘 사는 나라, 발전하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며 나무를 심었을 것 같다.


느낀 점

청와대에 와서 보니 대통령이 하는 일이 무척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통령은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또, 우리나라를 지켜야 하는 책임이 있고, 국민의 세금을 걷어 우리나라의 살림을 하는 행정부를 통솔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국민에게 엄청난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와대의 공식 행사가 열리는 영빈관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허물을 말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게 청와대 터다. 청와대 터가 좋지 않아서 국운이 사납고 대통령들의 말로가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와 하와이 망명,


박정희 대통령 내외의 비극적인 죽음, 전두환, 노태우(盧泰愚, 1932~ ) 대통령의 구속, 김영삼, 김대중(金大中, 1924~2009) 대통령 아들 구속,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이 청와대 터와 상관관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청와대 터가 나빠서 대통령들이 불행했다면 그들이 이끈 대한민국은 어떻게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초고속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할 수 있었던 걸까?.


결과론적으로 터에 관해 흠잡기에 나섰던 사람들이 반드시 답해야 할 사항이다. 


대통령들은 불행하지만 나라는 잘 되는 터라는 해석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북악산은 수려한 산이다. 


시내 중심가에서 이처럼 빼어난 산을 볼 수 있다는 건 분명 서울시민의 축복이다.


맑은 날, 경복궁과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 정상에서 광화문 거리를 바라보면 수도 서울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오른쪽으로 이어진 인왕산에 올라서 동쪽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북악산 자락에 자리 잡은 청와대와 경복궁이 그림처럼 눈에 들어온다.


이만한 터가 또 어디에 있다고 흠을 잡고 터를 탓하는 걸까?. 


한국인들이 지나 치리만큼 기대치가 높아서가 아닐까. 


한국의 문화 상징 ‘풍수’를 소설화한 작가 입장에서 청와대 터가 나빠 대통령들이 불행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물론 이론서를 기준으로 삼자면 흠이 없는 건 아니다. 


북악산 정상이 독불장군처럼 치켜든 머리를 동쪽으로 살짝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주산(主山)집이나 궁궐 등의 뒷산의 형국은 그 터가 품은 뜻이자 땅의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쌀쌀맞고 무정하게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보다는 온유하고 유정하게 똑바로 보는 형세가 좋다.


북서쪽(자하문 터널)이 함몰된 것도 흠이다.


북서풍을 타기 때문이다. 굳이 황천살(黃泉殺) 같은 풍수 용어를 들먹이고픈 마음은 없다. 


도로를 뚫어 현실적인 편리를 추구해온 마당에 새삼 풍수를 들먹이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가뜩이나 함몰된 지점에 터널을 뚫어서 북서풍을 더 끌어들인 건 천연의 지세가 아니라 인간이다. 


북악터널, 남산터널에 어디 풍수논리가 있던가.


용도에 따라 적합한 터가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머물고 일하는 공간은 환경적인 영향뿐만 아니라 국민 의식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국민들 또한 그 공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말도 많은 곳 청와대, 하필이면 왜 경복궁 후원 깊숙이 급하게 떨어지는 북악산 바로 밑에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를 세웠던 걸까.


경복궁의 북문 신무문(神武門) 뒤쪽은 신(神)의 영역이다.


궁궐 자체를 시민들에게 돌려준 지금이야 늘 열려 있지만 왕조시대에는 닫힌 문이었다.


신의 영역은 특별한 행사 때나 드나들 수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태조 4년(1395) 2월 29일 기사에는 백악(白岳, 북악)을 진국백(鎭國伯, 국사당)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북악산 정상 백악신사(白岳神祠)에서 제사를 올렸다. 그 아래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는 무예를 수련하는 공간인 연무장(鍊武場)과 과거장(科擧場), 왕이 시범적으로 농사를 짓던 친경지(親耕地)가 있었다.

경복궁과 청와대를 잇는 신무문
청와대의 부속 건물들
청와대의 부속 건물들

“1926년 일제는 경복궁 근정전(勤政殿) 앞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세우고 1939년 경복궁 후원인 북원(北苑)에 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郞, 1874~1955)의 관저를 짓지요. 경복궁을 사이에 두고 일제의 업무 공간과 주거 공간을 설치한 것입니다. 


경복궁을 앞뒤에서 억누르는 모양인데 남의 나라를 강점한 입장이라 절대로 떳떳한 자리가 될 수 없다. 


그 뒤로 미 군정청 하지(John R. Hodge, 1893~1963) 장군이 사용하고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이명박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들이 집무를 보는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일본 정원 느낌에서부터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에 걸쳐 변천해온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습니다. 


각 시기마다 필요에 의해 세워진 다른 형식의 건물들과 각기 다른 가로등, 도로포장, 조경 등이 혼재돼 있더군요.”


동행 취재했던 김종헌 배재대 건축학부 교수는 청와대에서 한국의 근현대사 편린을 보았다고 한다.


김 교수는 지난 해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청와대 환경 정비 사업에 참여했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의 집무 공간이 주변과 조화롭지 못하고 효율성도 떨어져 보여서 안타까웠다고 한다. 


처음부터 마스터플랜에 의해 지어진 게 아니고 시차를 두고 필요에 따라 기능을 덧붙이다 보니 비롯된 현상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옴나위없는 국사에 전념하느라 업무 환경 개선 같은 데에 숨 돌릴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을 나서면 길 건너 청와대 본관과 바로 마주친다.


대통령의 집무 공간을 고스란히 볼 수가 있다. 당혹스럽다. 


일반 살림집에서도 출입구와 안채가 일직선에 놓이면 안이 들여다 보이지 않도록 대문이나 내담 같은 조형물을 설치해 사생활을 보호하고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았다.


대통령의 집무실이 그대로 노출되는 건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


청와대를 찾아온 귀빈들을 접대하는 영빈관 역시 도로면에 바로 붙어 있어 편안한 장소가 아니다. 


북악산과 인왕산의 풍광을 가리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청와대의 정원이라고 할 수 있는 녹지원 역시 비서동인 위민관과 마주하고 있어서 대통령이 조용히 사색하고 국정을 고민하기에 적합한 장소인지 의문이다.

청와대의 정원

녹지원의 중심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한옥 상춘재도 높이 솟아 있는 기단부로 인하여 정원과 분리된 느낌을 준다. 


자연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한옥의 미덕임을 생각할 때 아쉬움이 남는다.


기단을 낮추고 담장과 조경 등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건물과 공간이 기능에 따라 일정한 축을 형성해야 하는데 청와대는 그렇지 못합니다. 


도로면에 평행하게 일렬로 늘어선 배치 형식은 안정감이 부족하지요. 


위압적인 청와대 본관에 사용된 단청 역시 붉은색은 빼고 청색 위주인데 이 때문에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아 있는 느낌입니다.


 제대로 단청해서 진취적이며 밝고 희망찬 기운이 뿜어나오게 해야 합니다.”


김 교수의 지적은 건축가들은 물론 청와대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이들의 공통된 견해이기도 하다. 


대통령 집무실이 비서실인 위민관과 500미터나 떨어져 있다. 그래서 수석 비서관들이 위민관에서 대통령 집무실까지 가려면 자동차를 이용한다. 


그사이 두 군데 초소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패찰 색깔이 다른 일반 행정관들이나 비서관들은 좀처럼 대통령 집무실에 접근할 수조차 없다.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 오벌 오피스(Oval Office)가 참모들의 방과 겹겹이 붙어 있거나 층만 달리하고 있는 것과 너무 대조적이다.

인왕산에서 바라본 삼청동 일대,  사진 왼쪽 가장자리에 청와대가 보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무실이 참모들의 접근조차 막는 폐쇄형 구조라는 문제점을 간파하고 세종로 종합청사에 대통령 집무실을 두려 했다. 

하지만 경호 문제로 포기했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본관 가까이에 비서동 하나를 신축하고 대통령 집무실을 마련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여민관 집무실로 내려와 비서실장이나 수석 비서관들의 보고를 받는다고 한다. 


처음부터 집무실이 효율적으로 꾸며졌다면 이런 불편은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공간을 꾸미고 그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공간을 통해서 그 사회의 권력구조와 국가 결사체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다. 


경복궁과 북악산 사이에 전통 건축양식으로 들어선 청와대는 지세에 순응하지 못하고 역사 공간을 압도한다. 


풍수학적 배치는 차지하고라도 건축학적 조형미조차 고려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경복궁 후원인 북원을 훼손하며 들어선 일제 총독관저를 별 생각 없이 계승한 탓이다.


“청와대에선 죽어나간 사람은 있어도 태어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내가 1985년에 딸을 낳았을 때 아버지가 너무 좋아했다.

청와대,

청와대 생긴 이후 처음 태어난 생명이라고. 아버지가 손녀딸 업어주느라 출근이 늦어진 적도 있었다.


” 전두환 전 대통령의 큰아들 전재국 씨가 2010년 9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일화다.


생기 넘치는 공간은 역시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의 저자 이일훈 건축가의 일관된 주장처럼 집보다 정신이 문제다. 


독선과 아집을 버리고 온 국민과 함께 진정으로 울고 웃었다면 국부로 존경받는 대통령이 왜 없었겠는가. 국민들이 고난의 연대에서 입은 상처를 대통령 탓으로 돌린 측면도 있다. 


그만큼 대통령에게 기대하고 의존하는 마음이 컸던 것인지도 모른다.


정권이 바뀌거나 대통령의 신변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때마다 청와대를 옮겨야 한다는 여론이 일곤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충남 공주시 근처로 행정 수도를 옮기려 했었고 노무현 대통령 역시 그런 시도를 했다가 좌절되고 행정 중심 복합 도시 세종시가 탄생했다.


청와대를 옮길 만한 곳으로는 용산공원, 창덕궁 등이 거론된다. 


이제 선진 대한민국 대통령에 걸맞은 집무 환경을 배려해야 할 때라고 본다. 


청와대 자리는 본래 경복궁 북원이었다. 


따라서 경복궁 복원 공사는 청와대가 이전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북원의 장소성이 회복된다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장소성의 회복은 정신의 회복이기도 하다.


수직적 리더십에서 수평적 리더십으로 바뀌길 바라는 시대정신을 반영해서 적합한 터를 찾아야 할 때다.


청기와로 덮은 집이라는 의미의 청와대는 1960년 윤보선 대통령 때 경무대(景武臺)를 고쳐 부른 이름이다.


언뜻 미국의 백악관(White House)이 연상된다.


이름은 터만큼이나 중요하다.

청와대

이름을 바꾸기 전에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지향점부터 정했어야 옳았다.


추구해야 할 가치가 정해지면 이를 구현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구체화될 수 있다. 


경복궁의 근정전과 창덕궁의 인정전(仁政殿), 덕수궁의 중화전(中和殿)은 건물이 세워진 당시의 세계관과 지향점이 들어 있다. 


표피적이고 즉물적인 이름 청와대에 어떤 가치관과 지향점이 들어 있는가. 장소 이전 못지않게 뚜렷한 국가관과 정치철학이 담긴 새 이름이 필요한 이유다.


청와대 찾아가는 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4, 5번 출구, 안국역 1번 출구에서 도보 20분(경복궁역에서 마을버스 8000번 이용. (인터넷으로 사전 신청자에 한해 관람 가능)

청와대 찾아가는 길 ⓒ 다산북스,ㅡ

청와대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로 1번지

총면적 : 25만 3,505㎡


역사
1426년 : 경복궁 후원
1868년 : 경복궁 복원 후 북원이라 칭함
1939년 : 일제 총독관저
1945년 : 미군정 사령관저
1948년 : 대통령관저 경무대
1960년 : 청와대로 개칭
1991년 : 본관 준공
2010년 : 일반인 관람자 약 27만 명


경무대 景武臺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의 옛 명칭.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에 소재한다.

경무대(景武臺) ⓒ Humorahead01/wikipedia | CC BY-SA 3.0

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에 있다.


속칭 '효자동 1번지' 또는 청기와 지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푸른 기와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이 연무장·과거장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 집은 그동안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었고, 그때마다 명칭도 바뀌었다.


원래 이 집은 일제의 식민통치를 받던 1937년 5월 7일 '조선총독관저'로 건축되었다.


일제는 조선민족의 혼이 담겨져 있는 경복궁 앞에 조선총독부를 세운 다음, 경복궁 뒤에 총독관저를 지었던 것이다.


이 집의 최초 주인은 일제의 제7대 조선총독인 미나미 지로[南次郞]였다.


그후 일제의 8, 9대 총독이 이 집에 머물렀는데 8·15해방과 더불어 그 주인도 바뀌었다.


1945년 9월 8일 남한 주둔군 사령관으로 서울에 도착한 J.R. 하지 중장이 이 집에 들어와 1948년 8월 24일 우리나라를 떠날 때까지 3년여 동안 이 집에서 거주했다.


이어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과 더불어 초대 대통령으로 피선된 이승만 대통령과 그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이 집의 주인이 되었다.

1960년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붕괴한 후 이승만 대통령이 4월 28일 이 집을 떠날 때까지 12년 동안경무대라 불렸다. → 이승만


출처 ^ 참고문헌,

[(주)천재교육 | BY-NC-ND

[경무대(景武臺) ⓒ Humorahead01/wikipedia | CC BY-SA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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