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0일 목요일

‘멕시코 4강신화’ 평생 축구선생 박종환 감독, 성남 FC. 일화 시절, 국제 대회 성적, 月60만원으로 떠돌이 생활하게 된 사연,,,

‘멕시코 4강신화’ 평생 축구선생 박종환 감독, 성남 FC. 일화 시절, 국제 대회 성적, 月60만원으로 떠돌이 생활하게 된 사연,,,

평생 축구선생 박종환 감독,

‘축구 영웅’ 박종환, 月60만원으로 떠돌이 생활하게 된 사연,

‘멕시코 4강신화’ 박종환 전 감독 “지인에게 전 재산 사기당해”

축구감독 박종환 프로필 근황 과거 가족 부인 자녀 나이 고향 재산 연봉 축구 감독 아내 아들,,,

선수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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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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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FC. 일화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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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라이벌, 

수원 삼성 블루윙즈 - 마계대전,

서울 이랜드 - 탄천 더비,

수원 FC - 깃발라시코,

FC 서울,

전북 현대 모터스,

강원 FC,

유니폼,

팬덤,

응원가,

홈 경기장,

클럽하우스,

논란,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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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영상 

참고,
박종환 성남FC 감독 "화끈한 공격축구로 명가 재건”

박종환(1938년 2월 9일~)은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으로 수많은 팀을 맡아 이끌었던 전설적인 지도자이다.

‘축구 영웅’ 박종환(83) 전 감독의 안타까운 근황이 전해졌다.

1983년 6월 한국의 청소년들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 대회에서 세계 강호 멕시코와 우루과이를 꺾고 4강에 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선수들을 지휘했던 박종환 감독은 대한민국 영웅으로 등극했고, 이후 성남 일화(현 성남FC) 감독이 된 그는 1993년부터 1995년까지 K리그 최초 리그 3연패를 달성하며 승승장구했다.

이어 한국 여자축구 연맹 초대 회장, 성남FC, 대구FC 감독을 역임하며 오랫동안 지도자로서 활동을 해 왔다.

화려한 전성기를 보낸 박 전 감독은 몇 년 전부터 활동이 뜸해졌다.

그러다 돌연 자취를 감춰 주변의 걱정을 샀다.

알고 보니 박 전 감독은 믿었던 지인들에게 금융 사기를 당해 많은 돈을 잃고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 것.

박 전 감독은 13일 방송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서 “지인들에게 여러 번 사기를 당하고 금융문제에 휘말려 극단적인 생각까지 할 정도로 심각한 좌절에 빠졌다”며 “친한 친구, 선배 7~8명에게 돈을 빌려줬다.

몇 천 만원이 아니고 있는 걸 다 줬다.

한 푼도 못 받고 다 줬는데 얼굴도 못 보는 신세가 됐다.

돈 받으러 가겠다는 말이나 전화도 안 했고 믿고 기다렸다.

누가 보면 화려할 거 같지만 정말 비참하게 살았다”고 밝혔다.

현재 박 전 감독은 한 여성의 집에 얹혀 살고 있다.

박 전 감독이 힘들 때 먼저 손을 내밀고 보호자를 자처한 남다경씨는 “감독님과 인연을 맺은 건 2년 반 정도 됐다.

지인에게 감독님이 많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가더라.

유명한 분인지 몰랐다”며 “전화로 상담하다가 감독님이 극단적 선택을 한다고 해 찾아갔는데 나도 힘들었던 사람이라 마음을 알겠더라.

저분을 도와줄 수 없을까 생각해 도움 손길을 내밀었다”고 했다.

박 전 감독은 6년 전 아내를 먼저 떠나 보냈다.

아들과 딸도 출가해 바쁘게 살고 있다.

박 전 감독은 “노령 연금 30만원과 아들이 주는 용돈 30만원이 전부다.

자존심이 세 신세 지는 것도 싫어한다.

축구 후배들이 후원금을 모아줬지만 거절했다”며 “다들 화려한 줄 알지만 사는 게 엉망, 속으로 후회한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멕시코 4강신화’ 박종환 전 감독 “지인에게 전 재산 사기당해” ‘멕시코 4강 신화’ 박종환 전 축구감독이 지인에게 전 재산을 사기를 당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에 첫 4강 신화를 안긴 전 축구감독 박종환이 13일 방송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했다.

박종환 전 감독은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세계적인 강호 멕시코와 우루과이를 격파하고 기적 같은 4강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는 연이어 대표팀의 지휘봉과 프로 무대 3연패 달성, 이후 한국 여자 축구 연맹 초대 회장부터 대구FC와 성남FC의 창단 감독을 지내며 대한민국 K리그 최고령 축구 감독으로 그 명성을 이어갔다.

하지만 박종환 전 감독은 각종 논란과 개인사에 얽혀 활동이 뜸해지기 시작했고, 돌연 자취를 감춰 모두를 궁금하게 했다.

박종환 전 감독은 ‘마이웨이’를 통해 “그동안 지인들에게 여러 번 사기를 당하고 금융 문제에 휘말리게 돼, 극단적인 생각까지 할 정도로 심각한 좌절에 빠져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지인 7~8명에게 있는 것을 모두 줬다”며 “‘돈 받으러 가야겠다’고 전화를 안 했다.

‘가져갔으니까 알아서 언젠가 가져와라’ 했지만 한푼도 받지 못하고 얼굴도 못보고 있다”고 힘들었던 기억을 전했다.

박종환 전 감독은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혼자 보호소에서 얹혀살고 있다.

박종환 전 감독은 “누가 보면 잘 사는 줄 알겠지만, 비참하다”며 “노령연금 30만원과 아들이 보내는 용돈 30만원으로 산다.

사는 게 엉망”이라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강원도 춘천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박종환 감독은 ‘제2의 고향’ 춘천을 찾아 ‘축구 레전드’ 손흥민 선수와의 특별한 인연도 공개했다.

그는 “손흥민은 초등학교 때 내가 여기 와서 한 달간 훈련해 줬다”며 “노력파”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종환 감독은 현재 시니어 축구팀 감독으로 활동중이며 “다시 태어나도 축구인을 하실거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당연하다”고 답했다.


‘멕시코 4강신화’ 박종환 전 감독 “지인에게 전 재산 사기당해”

‘멕시코 4강 신화’ 박종환 전 축구감독이 지인에게 전 재산을 사기를 당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에 첫 4강 신화를 안긴 전 축구감독 박종환이 13일 방송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했다.
 
박종환 전 감독은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세계적인 강호 멕시코와 우루과이를 격파하고 기적 같은 4강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는 연이어 대표팀의 지휘봉과 프로 무대 3연패 달성, 이후 한국 여자 축구 연맹 초대 회장부터 대구FC와 성남FC의 창단 감독을 지내며 대한민국 K리그 최고령 축구 감독으로 그 명성을 이어갔다.
 
하지만 박종환 전 감독은 각종 논란과 개인사에 얽혀 활동이 뜸해지기 시작했고, 돌연 자취를 감춰 모두를 궁금하게 했다.
 
박종환 전 감독은 ‘마이웨이’를 통해 “그동안 지인들에게 여러 번 사기를 당하고 금융 문제에 휘말리게 돼, 극단적인 생각까지 할 정도로 심각한 좌절에 빠져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지인 7~8명에게 있는 것을 모두 줬다”며 “‘돈 받으러 가야겠다’고 전화를 안 했다.

‘가져갔으니까 알아서 언젠가 가져와라’ 했지만 한푼도 받지 못하고 얼굴도 못보고 있다”고 힘들었던 기억을 전했다.
 
박종환 전 감독은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혼자 보호소에서 얹혀살고 있다.

박종환 전 감독은 “누가 보면 잘 사는 줄 알겠지만, 비참하다”며 “노령연금 30만원과 아들이 보내는 용돈 30만원으로 산다.

사진=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 방송화면 캡처,

사는 게 엉망”이라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강원도 춘천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박종환 감독은 ‘제2의 고향’ 춘천을 찾아 ‘축구 레전드’ 손흥민 선수와의 특별한 인연도 공개했다.

그는 “손흥민은 초등학교 때 내가 여기 와서 한 달간 훈련해 줬다”며 “노력파”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종환 감독은 현재 시니어 축구팀 감독으로 활동중이며 “다시 태어나도 축구인을 하실거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당연하다”고 답했다.


축구감독 박종환 프로필 근황 과거 가족 부인 자녀 나이 고향 재산 연봉 축구 감독 아내 아들,,,

박종환 감독은 '스타 다큐 마이웨이'에 나오면서 근황 소식을 알렸습니다.

전 재산 사기로 인해 떠돌이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오늘은 박종환 축구 감독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과거 축구선수 활동을 하다가 축구 감독, 체육교사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축구 감독 시절에는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대한민국 U-20 청소년 축구 국가대표팀이 4강 진출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밖에 단국공업고등학교, 유신 고등학교, 성남 고등학교, 서울시청 축구단, 숭민 원더스, 대구 FC, 성남 FC, 여주 시민축구단, 대한민국 대표팀, 일화 천마 천안 일화 천마, 우한 야치 등에서 축구 감독 활동과 체육 선생님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프로필 본명 박종환, 1938년 2월 9일생으로 만으로 나이 84살입니다.

고향은 황해도 웅진군이며 키 171cm이라고 합니다.

가족은 부인 안흥석, 자녀 아들 박재호, 딸 박성숙이 있습니다.

학력은 경희대학교 체육학과, 춘천 고등학교이며 연봉 정보는 1991년 기사에 5천1백60만 원에 연봉 재계약을 했으며 2002년 기사에는 계약금 2억 원, 연봉 2억 원 축구단 감독 3년 계약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10년 아시아축구연맹 공로상, 1990 대통령 포상, 1983년 서울특별시 문화상 체육부문, 1984년 대한민국체육상으로 수상 내역이 있습니다.

1965년 아내 안흥석과 결혼식을 올렸으며 자녀는 아들 1명, 딸 1명이라고 합니다.

자녀들과 아내 안흥석이 미국 생활을 하면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축구 감독으로 많은 사랑을 받다가 각종 논란, 개인사 등으로 돌연 자취를 감췄다고 하는데요.

멕시코 4강 신화를 만든 감독이지만 지인에게 전 재산 사기를 당해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고 합니다.

현재 일정한 거처도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노령 연금 30만 원과 아들이 보낸 용돈 30만 원으로 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축구선수가 된 계기는 과거 중학교 시절에 축구를 하게 되면서 축구부에 들어갔고 고등학교 때는 대학 드래프트에 뽑히지 못해 고등학교를 1년 더 다녔다고 합니다.

청소년 대표팀에 선발되면서 경희대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고 합니다.

대학교 졸업 후에는 석탄공사 실업팀에서 축구 선수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과거 축구선수 손흥민 초등학교 시절에 박종환 감독이 한 달간 축구 훈련을 해줬다며 손흥민 선수와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그럼 오늘은 박종환 축구 감독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언제나 즐거운 정보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수 프로필,

  • 이름 : 박종환,
  • 생년월일 : 1938년 2월 9일생,
  • 선수경력,

클럽축구팀/ 경력/ 연도/ 소속팀,
1960 ~ 1963경희대학교 축구부
1964 ~ 1966대한석탄공사 축구단

국가대표 경력/ 연도/ 소속팀,
1960AFC U-19 챔피언십 우승
1962메르데카배 국제축구대회 참가
19641964년 도쿄 올림픽 강화훈련 참가
 

지도자 프로필,

지도자 경력,

연도/ 소속팀/ 직책,
1966 ~ 1969단국공고 축구부감독
1970 ~ 1972성남고등학교 축구부
1973 ~ 1974유신고등학교 축구부
1975전남기계공고 축구부
1976 ~ 1988서울시청 축구단
1982 ~ 1986청소년대표88 올림픽대표팀
1989 ~ 1995 일화 천마
1995 ~ 1996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1999 ~ 2002숭민 원더스
2003 ~ 2006 대구 FC
2014 ~ 2014. 4. 22 성남 FC


수상 경력,

연도/ 소속팀/ 업적,
1992 일화 천마K리그 컵대회 우승
1993 ~ 1995K리그 우승 (3연패)
1996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K리그 감독 기록,

소속팀/ 리그연도/ 승무패/ 리그순위/ 컵대회/ FA컵/ 아챔통산 (K리그)클래식-124154133K리그
3연패, 컵대회 1회ACL 1회 우승,
 일화 천마K리그1989621135위미개최미개최-
1990710136위-
19911311165위-
199213198준우승우승-
199314129우승5위-
1994171184위-
199516136준우승우승
 대구 FC20037162111위미개최
-
20049161110위9위
-
2005129159위7위
-
20061016137위13위
-
 성남 FC클래식2014234중도 사임



선수 시절,
1966 ~ 1969단국공고 축구부감독
1970 ~ 1972성남고등학교 축구부
1973 ~ 1974유신고등학교 축구부
1975전남기계공고 축구부
1976 ~ 1988서울시청 축구단
1982 ~ 1986청소년대표88 올림픽대표팀
1989 ~ 1995 일화 천마
1995 ~ 1996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1999 ~ 2002숭민 원더스
2003 ~ 2006 대구 FC
2014 ~ 2014. 4. 22 성남 FC

황해도 옹진군 출신으로 1945년 고향인 옹진군을 떠나 강원도 춘천시 약사동에 정착하였으며, 춘천중학교와 춘천고등학교경희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주 포지션은 라이트 풀백으로 빠른발을 이용해 끝까지 상대 선수를 따라다니기로 유명한 악바리 수비수 였다고. 춘천고 3학년 졸업반 시절 대학팀의 스카우트를 받는데 실패하여, 고등학교를 1년 더 다녔던바 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청소년대표 선발전에 나가게 된 박종환 선수는 악착같이 뛰어, 대표팀에 뽑히게 되었고 1960년 제 2회 AFC U-19 챔피언십에 나가 우승까지 차지하고 돌아오게 되었다. 

덕분에 대학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오게 되어, 경희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경희대를 졸업하고서는 대한석탄공사 축구단에 입단했다.

석공 시절 올림픽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태극마크를 다는듯 했지만... 올림픽대표 연습경기에서 큰 부상을 당하게 되어, 결국 올림픽 출전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후 크게 실망한 박종환은 선수 생활을 정리하자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2년 더 석공에서 뛴 뒤 은퇴를 선언하고 지도자의 길을 걷기에 이른다.

요약하자면, 감독 시절의 화려함에 비해 선수 시절은 무명에 가까웠던셈.


박종환 감독…

▲1936년 2월 황해도 옹진 출생 ▲강원 춘천고-경희대 졸업▲대한석탄공사에서 선수 은퇴(1966년) ▲축구 국제심판 ▲수원 유신고·단국공고 감독 ▲서울시청 감독(1975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대표팀 감독(1983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1984년) ▲프로축구 일화 천마축구단 감독(1989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대표팀 감독(1990년) ▲프로축구 최초 3년 연속 우승(1993∼95년) ▲아시안컵 축구 A대표팀 감독(1996년) ▲대구 FC 감독(2003년) ▲아시아축구연맹 공로상(2010년) ▲성남 FC 감독(2014년)


지도자 생활,

추가해야 함 'ㅈ ㅅ' 다음 박종환 감독 2 로 기재 예정 입니다,,,


지도 스타일,

군대식 합숙문화와 동계전훈에서의 살인적인 체력보강 훈련등 소위 스파르타식 훈련이 박종환 감독의 스타일이다. 덕분에 빠따로 선수를 패면서 조련한다더라는 박빠따라는 별명도 붙었다.

젊은 시절에는 그러했을지는 모르나 일화 천마 감독직 이후로는 굳이 빠따를 들지않더라도 선수들이 알아서 기가죽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지휘했다.

선수들은 박감독의 스타일에 크게 반발했을법도 하지만, 애초에 여기서 밀리면 끝이다 싶은 선수들만 박종환 감독이 뽑아온 탓에 군소리없이 훈련에 매진했다고.

훈련 스타일이 스파르타라면, 전술적인 스타일은 소위 정형화된 5가지의 툴을 선수들에게 반복 훈련하여 주입시키고 상황에 따라 박종환 감독이 5가지 전술중 하나를 지시하면 그에따라 움직이는 수동적인 전술 스타일을 고집하였다.

이같은 방식은 선수들이 능동적으로 경기상황에 맞춰 플레이를 바꾸기보다 감독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하기 때문에, 팀워크와 박종환 감독에 대한 선수단의 절대적인 믿음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런 훈련과 전술 스타일의 최대 강점은 평균 수준의 선수 자원을 가지고도 조직력과 경기 운영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구 FC 감독 시절의 대구의 선수단 수준과 경기력을 떠올린다면 쉽게 수긍이 갈 것이다.

다만 이 같은 스타일의 최대 약점은 감독의 비중이 너무도 막중하다는데 있다.

때문에 선수들은 박종환 감독의 그늘을 벗어나면 별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져갔다.


에피소드,

서울시청 축구단 감독 시절이었던 1970년대에는 지도자 뿐만 아니라 국제심판 자격으로도 다방면에서 활약하였다.

그러나 심판 출신 지도자라면 누구보다 심판의 권위를 존중해야 할거 같은데, 일화 천마 감독 시절 경기 도중 주심에게 폭력 행사를 가해 징계를 먹기도 했었다.

개그맨으로 유명한 故 이주일 씨와 절친이었다.

이주일 씨는 춘천고등학교 시절까지 박종환 감독과 함께 축구선수로 활약하기도 하엿다.

경기가 마음에 안들면 하프타임에 라커룸 집기를 집어던지면서 선수들에게 불벼락을 내리곤했다.

이후 후반에 뒤집은 경기가 셀수없이 많다. 

이런 거침없는 성격은 대구 FC 감독 시절에도 그대로였다.

청소년대표 시절 박종환,

한번은 대구 FC와 대학 축구부와의 연습경기 도중, 대학 선수가 대구 FC 선수에게 백태클 시전 후 다이렉트 퇴장을 당했는데 쓰러져 괴로워하는 대구 선수에게 눈길 한번 주지않고 대학선수가 퇴장하자 박감독이 폭발. 그 자리에서 대학 선수의 뺨을 갈겨버렸고 대학 축구부 감독 및 심판들도 (..) 박감독을 진정시키느라 경기가 중단되었던바 있다.

문제는 성남 FC 감독을 맡은 2014년에도 이런 모습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거..

결국 이같은 행실이 2014년 4월 22일 불명예 퇴진을 당하는데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언행도 거침이 없고 관록이 묻어나는 편이다.

특히 대구 감독 시절, 내가 수원 감독이면 눈 감고도 우승할 수 있다!는 발언으로 선수가 없다는 타령을 하던 강팀 감독들에게 일침을 가했고 덕분에 국내축구갤러리 등지에서 호평을 받은바 있다.


성남 FC. 일화 시절,

2014 시즌 이전의 역사에 대한 내용은 성남 FC/일화 시절 문서 참고하십시오.

1989년 통일교 교주 문선명에 의해 창단되었다. 

일화가 공식적인 모기업이기 때문에 기업구단으로 분류되지만, 일화 자체가 통일교 산하의 기업이기 때문에 종교구단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축구광인 문선명의 과감한 투자와 지속적인 관심을 바탕으로 성남은 1990년대와 2000년대를 호령하며 성남 왕조를 구축했다.


성남 FC,

하지만 2012년, 통일교 교주 문선명이 고인이 되면서 구단에 대한 통일교로부터의 지원이 줄기 시작했다.

결국 이듬해 통일교가 구단 매각 의사를 밝히며 인수 의향을 가진 기업을 물색했다.

하지만 인수 의향을 가진 기업은 나타나지 않았고, 예상치 않게 안산시에서 관심을 보이며 구단 인수 의사를 타진했다.

하지만 성남 팬들의 거센 반대에 직면하며 안산시의 구단 인수는 무위로 돌아가고, 구단 인수에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던 성남시에서 인수를 결정하면서 2014년 기업구단에서 시민구단으로 전환되었다.

성남시는 통일교로부터 구단 법인을 그대로 인수했으며, 인수 후 법인명만 변경하여 운영하고 있다.

또한 성남 FC는 성남 일화 천마의 역사와 기록을 승계하였다.


국제 대회 성적,

자세한 내용은 성남 FC/AFC 챔피언스 리그 문서 참고하십시오.

성남은 국내 대회뿐만 아니라 아시아 대회에서도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AFC 챔피언스 리그 2회 우승(1995, 2010)과 2회 준우승(1996-97, 2004), 아시안 슈퍼컵 1회 우승(1996), 아프로-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회 우승(1996), A3 챔피언스컵 1회 우승(2004), 홍콩 구정컵 1회 우승(2012), FIFA 클럽 월드컵 4위 등 각종 국제 대회에서 눈부신 성적을 거뒀다.

통일교 주최의 피스컵에는 여러번 출전했지만 우승을 거두진 못했다.

2004년, 성남은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알 이티하드와 맞붙었다.

원정 1차전을 3-1로 완승을 거둔 성남은 당연히 홈에서 편안하게 우승컵을 가져올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홈 2차전에서 5-0으로 대패를 당하면서 충격적인 준우승을 거두게 됐다.

당시 준우승의 충격은 너무나도 커서, K리그 3연패를 일궈냈던 차경복 감독이 충격패의 책임을 지고 사임을 했을 정도였다.
2010 FIFA 클럽 월드컵 대륙별 출전팀,

디에고 밀리토 가 성남을 상대로 골을 넣고 환호하고 있다.

경기 전 서로 맞교환한 패넌트,

FIFA 클럽 월드컵 준준결승에서 개최국 자격으로 참가한 UAE 챔피언 알 와흐다를 4-1로 대파하였으나, 준결승에서 유럽 챔피언 인테르에게 3-0으로 완패하였고, 3-4위전에서 남미 챔피언 인터나시오날에게 4-2로 패배하면서 4위로 대회를 마감하였다.

2014년 FA컵 우승으로 다시 AFC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을 획득하며 성남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조별리그의 상대는 각국의 챔피언 둘이었기 때문에 불안감이 많았다.

하지만 오히려 조별리그 5라운드에서 일찌감치 16강 진출을 확정지으면서, 챔피언스 리그 DNA가 어디 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16강에서 아시아 강자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를 홈으로 불러들여 2-1 승리를 거두었다.

다만 광저우 원정에서 0-2로 패하면서, 오랜만의 아시아 도전은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탄천 요새,

성남의 홈 경기장인 탄천 종합 운동장에서의 국제 기록은 어마어마하다. 

탄천 요새라는 별명은 이러한 기록 때문에 붙은 것인데, 감바 오사카광저우 헝다

우라와 레즈 등 아시아 강팀들을 상대로 19전 14승 4무 1패를 기록했으며, 심지어 이 1패는 시민구단으로 전환되고 기록한 것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한국에서 축구 잘하는 팀 한국왕자(韓国王者)로 알려져 있는 듯 하다.

2007년 우라와 레즈가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할 당시, 우라와가 가장 힘들었던 경기는 성남과의 준결승이었다고 누구나 인정할 정도였다.

그리고 2012년 프리시즌 컵 대회인 홍콩 구정컵 결승에서 시미즈 S펄스에게 5-1 대승을 거뒀을 때, "썩어도 준치라고, 썩어도 성남이구나"라는 코멘트가 남겨질 정도였다.


코칭 스태프 명단,


직책한글 성명영문 성명국적생년월일
감독김남일Kim Nam-il
1977년 3월 14일
수석 코치정경호Jeong Kyung-Ho
1980년 5월 22일
코치이태우Lee Tae-Woo
1984년 1월 8일
코치남궁웅Namkung Woong
1984년 3월 29일
골키퍼 코치백민철Baek Min-Chul
1977년 7월 28일
피지컬 코치한상혁Han Sang-Hyuk
1992년 9월 5일
트레이너강훈Kang Hoon
1970년 6월 8일
트레이너이강훈Lee Kang-Hoon
1992년 12월 27일
트레이너김한결Kim Han-Kyul
1994년 4월 2일
전력분석관이승민Lee Seung-Min
1991년 7월 18일
통역최혁순Choi Hyuk-Soon
1993년 1월 16일

선수 명단,


성남 FC 2022 시즌 스쿼드
등번호국적포지션한글 성명영문 성명생년월일신체 조건비고
1
GK최필수Choi Pil-soo1991년 6월 20일190cm, 80kg
2
DF이시영Lee Si-Young1997년 4월 21일173cm, 65kg
3
DF권완규Kwon Wankyu1991년 11월 20일183cm, 80kg
4
DF강의빈Kang Ui-bin1998년 4월 1일188cm, 85kg
5
DF마상훈Ma Sang-Hoon1991년 7월 25일183cm, 79kg
6
MF김현태Kim Hyun-tae1994년 11월 14일187cm, 74kg
7
MF권순형Kwon Soon-Hyung1986년 6월 16일176cm, 73kg주장
8
FW뮬리치Fejsal Mulić1994년 10월 3일203cm, 105kg
9
FW박용지Park Yong-Ji1992년 10월 9일183cm, 74kg
13
MF김민혁Kim Min-Hyeok1992년 8월 16일186cm, 71kg부주장
14
FW정석화Jung Seok-Hwa1991년 5월 17일168cm, 63kg
15
FW이재원Lee Jae-Won1997년 2월 21일173cm, 66kg
16
MF이종성Lee Jong-Sung1992년 8월 5일187cm, 72kg재임대
17
FW조상준Cho Sang-Jun1999년 7월 11일176cm, 70kg
18
DF이지훈Lee Ji-Hun1994년 3월 24일176cm, 69kg
19
FW엄승민Eom Seung-Min2003년 5월 2일181cm, 78kg2년 임대
20
DF곽광선Kwak Kwang-sun1986년 3월 28일186cm, 76kg
21
GK허자웅Heo Ja-Woong1998년 5월 12일185cm, 80kg
22
MF안진범An Jin-Beom1992년 3월 10일175cm, 66kg
23
MF구본철Goo Bon-cheol1999년 10월 11일173cm, 73kg
24
DF양시후Yang Si-Hoo2000년 4월 4일185cm, 80kg
25
MF강재우Kang Jae-Woo2000년 5월 30일180cm, 72kg
26
DF조성욱Jo Sung-Wook1995년 3월 22일188cm, 79kg
27
DF장영기Jang Young-Gi2003년 3월 4일175cm, 67kg
28
FW박지원Park Ji-Won2000년 11월 1일166cm, 63kg
29
DF장효준Jang Hyo-Joon2000년 2월 9일174cm, 67kg
31
GK정명제Jeong Myeong-Jae2002년 6월 30일192cm, 80kg
33
FW전성수Jeon Seong-Soo2000년 7월 13일185cm, 85kg
34
DF최지묵Choi Ji-Mook1998년 10월 9일178cm, 70kg
36
DF김지수Kim Ji-Soo2004년 12월 24일192cm, 84kg준프로
41
GK김영광Kim Young‑Kwang1983년 6월 28일182cm, 85kg
66
MF박수일Park Soo-il1996년 2월 22일178cm, 68kg부주장
92
DF김민혁Kim Min-hyeok1992년 2월 7일187cm, 73kg

임대 구단국적포지션한글 성명영문 성명생년월일신체 조건비고
김천
DF연제운Youn Jae-Woon1994년 8월 28일185cm, 78kg2022년 9월 7일 전역
김천
MF유인수Yoo In-Soo1994년 12월 28일177cm, 69kg2022년 9월 7일 전역
전남
FW이중민Lee Jung-Min1999년 11월 3일187cm, 79kg임대
전남
MF전승민Jeon Seung-Min2000년 12월 15일174cm, 69kg임대
서울E
MF박태준Park Tae-Joon1999년 1월 19일175cm, 62kg임대
아산
FW홍현승Hong Hyeon-Seung1999년 3월 13일180cm, 75kg임대

역대 감독,

성남 FC 역대 감독
국적이름기간
1대
박종환1989 ~ 1996
2대
이장수1996
3대
레네 드자이에르1997 ~ 1998
4대
차경복1998 ~ 2004
5대
김학범2005 ~ 2008
6대
신태용2009 ~ 2012
7대
안익수2013
8대
박종환2014
대행
이상윤2014
대행
이영진2014
9대
김학범2014 ~ 2016
대행
구상범2016
대행
변성환2016
10대
박경훈2017
11대
남기일2018 ~ 2019
12대
김남일2020 ~

역대 주장,

레전드,


라이벌,  

다른 구단들과의 관계는 무난한 편이다.

팬들의 성향도 비교적 온건하고, 척을 질 정도의 사건도 없었기 때문에 괜찮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더비 매치/대한민국/축구 문서 참고.

그러나 아래 소개된 구단들은 이런저런 계기로 라이벌리가 형성된 경우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 - 마계대전,

자세한 내용은 마계대전(축구) 문서 참고하십시오.

한때 K리그를 호령하던 성남과 수원은 K리그 명문구단이라는 타이틀을 두고 서로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다.

이 두 팀 간의 라이벌전은 마계대전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성남이 시민구단으로 전환되고 마스코트가 천마에서 까치로 바뀌면서 계작살(鷄鵲殺) 더비라는 이름로도 불리고 있다.

비록 성남이 시민구단으로 전환되고 기세가 예전 같지 않지만, 여전히 양 팀 간에는 명문구단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경쟁의식이 강하며 성남과 수원 간의 경기에서는 치열한 무승부와 역전승이 잘 나오는 편이다. 사실상 성남이 가장 라이벌리를 갖고 있는 팀은 수원이다.

양 팀은 서로 라이벌 관계지만, 선수 이적이 많은 편이다. 

김대의조동건정성룡홍철은 성남에서 수원으로 이적했으며, 김두현은 수원과 성남을 두 번이나 왔다갔다 했다. 

샤샤하강진은 수원에서 성남으로 이적했다.


서울 이랜드 - 탄천 더비,

2015년, 서울에 서울 연고의 두 번째 구단 서울 이랜드가 창단되었다.

성남의 탄천종합운동장과 서울 이랜드의 서울올림픽주경기장이 탄천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양 팀 간 더비를 탄천 더비라 부른다.

서울 이랜드가 창단될 당시만 하더라도 서울 이랜드가 승격하여 K리그 클래식에서 더비가 일어날 거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2016년 성남이 K리그 챌린지로 강등 당하면서 2부 리그에서 탄천 더비가 열리게 되었다.

그리고 2018년 성남이 K리그1 승격을 확정지으면서, 성남이 다시 강등당하거나 서울 이랜드가 승격하지 않는 한 리그에서 다시 더비를 보기는 어려워졌다.

그런데 2021년 K리그 마스코트 반장선거에서 까오와 서울 이랜드의 레울이 탄천 동맹을 맺었다.


수원 FC - 깃발라시코,

자세한 내용은 깃발라시코 문서 참고하십시오.

같은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인 이재명 전 성남시장과 염태영 수원시장 두 정치인이 만든 억지 라이벌전.

2014 시즌 FA컵 우승과 2015 시즌 리그 상위 스플릿 안착으로 고무되어 축구팬을 자처하던 성남 FC의 전 구단주 이재명 전 성남시장이 마침 K리그 클래식에 올라온 수원 FC의 구단주 염태영 수원시장에게 승리팀의 시 깃발을 패배팀의 시청에 걸자는 내기를 제안했다.

이런 제안이 있기 전까지는 양 팀 간 접점은 거의 없었다.

수원 FC가 프로화되기 전에는 실업 리그인 내셔널리그에 있어서 FA컵에서만 2004년과 2012년에 두 번 부딪친게 전부였다.

염태영 수원시장이 이재명 전 성남시장의 내기를 받아들였고, K리그 클래식 2016 시즌 개막을 앞두고 이재명과 염태영의 트위터 기싸움이 벌어졌다. 제시와 화답.

양 팀 사이에 흥미로운 볼거리가 생기는 와중에 전통의 라이벌 수원 삼성 블루윙즈 팬덤에서 반대가 터져나왔다. 

"왜 우리 수원시청기를 시장 마음대로 내기에 거느냐?

혹여 패배했을 때 수원시청에 성남시청기가 걸려있는 모습을 보면 크게 자존심 상할 것 같다."는 이유였다.

다른 팬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와 "스토리도 생기고 좋지 않은가?"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이후 협의를 거치면서 거는 깃발을 시청 깃발에서 구단 깃발로 바뀌었고, 거는 곳도 시청사에서 경기장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수원 팬들이 우려할 만한 일은 사라졌다.

성남 팬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더비를 환영한다는 평가와 이제 막 승격한 구단과 K리그 최고 명문 구단을 라이벌로 엮는 것은 이상하다는 평가 둘로 나뉘었다.

당장 이미 같은 연고지에 전통의 라이벌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있으니 평가가 갈릴 수밖에 없었다.

2016년 두 팀이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란히 강등을 당하고 이재명 전 성남시장이 경기도지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더비도 사라졌다.

2017년과 2018년, 2년간 2부 리그에 함께 있었던 두 팀이었지만, 양 팀의 대결은 주목받지 못했다.

2021년 이 매치업이 부활했으나, 깃발라시코라는 이름은 쓰이지 않았다.


FC 서울,

FC 서울과는 썩 좋은 것도 아주 적대적인 것도 아닌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서울이 같은 수도권의 수원이나 인천과 슈퍼매치나 경인 더비로 얽혀 여러가지 사건사고와 이슈들을 쏟아내는데 반해, 성남과 서울은 관중간 폭력 사태나 시비 없이 비교적 조용한 편이다.

2010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양 팀 간의 경기에서는 K리그 단일 경기 역대 최다 관중 60,747명이 몰리면서 리그 신기록을 경신한 적도 있다.

소위 슈퍼매치조차 이 관중 수를 넘어선 적이 없다.

2014년 FA컵 결승전에서 성남과 서울이 맞붙게 되었다.

문제는 한 달 전 FA컵 4강전에서 성남이 전북을 승부차기 끝에 꺾고 결승에 진출하자, 서울 선수들이 매우 기뻐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을 구단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려 놓았다는 것이었다. 

성남 팬들의 비난이 이어지자 서울 구단과 팬들은 "홈에서 결승전을 치를 수 있게 되어 기뻐서 그런 것이다."고 해명했지만, 좀처럼 비난은 가라앉지 않았다.

대망의 결승전 당일, 성남은 승부차기 끝에 서울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고, 시민구단 전환 후 첫 해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성남 선수들은 서울을 조롱하는 걸개 앞에서 환호하는 사진을 찍어올려 자신들을 무시했던 서울에게 도리어 한 방 먹였다.

성남과 서울 양 팀 역시 선수들의 왕래가 자주 있었다. 

현영민김태환은 서울에서 성남으로 이적했으며, 심우연은 성남에서 서울로 이적했다.

그리고 2010년 서울의 K리그 우승 주역 제파로프가 중동에서 실패한 후 성남으로 이적해 재기했고, 서울의 레전드 김한윤이 선수로서 마지막을 보낸 팀이 성남이었다.

반대로 2010년 성남의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주역 몰리나가 서울로 이적해 데얀과 데몰리션 콤비를 이루면서 서울의 전성기를 이끌기도 했다.


전북 현대 모터스,

2015년 3월 7일, K리그 클래식 개막전 당일 성남의 원정 응원석인 전주월드컵경기장 S석 2층에서 머리만 남은 까치의 사체가 발견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해당 사건은 용의자를 특정할 증거나 증인을 확보하지 못하였고, CCTV 검증 결과 특별한 악의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을 찾지 못하였기에 수사 2주만에 사건이 종결되었다.

그리고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시설물 관리에 더 신경을 써달라는 공문을 전 구단에 발송하면서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잘린 까치 목이 발견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축구팬들이 몇 가지 의견을 제시했는데, 개막전이 있기 며칠 전 까치집 제거 작업이 있었기 때문에 그때 잘못되었을 수 있다는 가능성과 고양이가 까치를 사냥하여 까치 목을 잘라도 저런 식으로 나오기 때문에 고양이가 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양 팀 간 선수 이적도 잦은 편인데, 대표적으로 성남에서 전북으로 이적한 선수에는 김정우김상식이동국윤정환 등이 있고, 반대로 전북에서 성남으로 이적한 선수에는 김도훈심우연임선영 등이 있다.


강원 FC,

2016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의 논란으로 인해 성남은 현재까지 강원에 악감정을 갖고있다.

사건의 중심이 된 세르징요는 2015년 한 시즌 동안 대구 FC에서 브라질 국적의 외국인 선수로 뛰었던 선수였다.

그러나 2016년 6월 세르징요가 자신이 시리아 국적도 함께 보유한 이중국적자임을 밝히며 아시아 쿼터로 강원 FC에 입단하기를 요청했다.

강원 FC는 세르징요가 시리아 여권으로 브라질 주재 한국 대사관으로부터 정상적으로 비자를 발급받은 후 인천국제공항 입국심사대를 통해 입국한 것을 확인하고 6개월간의 계약에 합의했다.

또한 강원 FC는 FIFA로부터 수령한 세르징요의 이중국적과 관련된 질의서에 "시리아 출신 조부의 가족력을 기반으로 시리아 국적을 취득했다"는 그의 진술을 포함해 관련 서류 일체를 FIFA에 제출하면서 외국인 선수 영입 과정에서 필요한 적법한 절차를 모두 준수하였다.

그러나 2016년 10월 17일, 세르징요는 '사문서 위조 및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죄' 혐의로 경찰청 외사정보과 및 법무부 서울출입국 이민특수수사대의 보호하에 경찰청으로 이동해 이틀간 조사를 받았다.

세르징요는 조사 중 "브라질 체류 당시 한 브로커로부터 세르징요의 조부가 시리아계여서 시리아 국적 취득이 가능하다는 설명을 듣고, 이후 브라질 주재 시리아 대사관으로부터 2013년 5월에 시리아 시민권을, 2014년 6월에 시리아 여권을 차례로 취득했다"는 진술을 하였다.

그리고 경찰은 2014년 6월에 세르징요가 브라질에서 시리아 국적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브로커를 통해 위조된 여권을 보유하게 된 것으로 추측하고 집중 조사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해 강원 FC는 2016년 10월 19일 구단 보도자료를 통해 세르징요의 경찰 수사 상황을 공개하면서 법원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세르징요를 잔여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기로 했음을 밝혔다.

보도 당시까지는 강원 FC가 승격을 위한 치열한 순위 경쟁이 펼쳐지는 시즌 막판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팀 내 악재를 자발적으로 공개하며 부정의혹이 있는 선수를 자체적으로 출전 제한시킨 것은 용기 있는 결단이라고 비춰졌다.

그러나 세르징요의 출전 제한은 3경기를 넘지 않았고, 경남과의 리그 최종 라운드를 통해 복귀한 세르징요는 부산과의 준플레이오프,부천과의 플레이오프,성남과의 승강 플레이오프 1, 2차전을 풀 타임으로 소화하며 팀의 승격을 도왔다.

강원 FC는 세르징요와 그의 변호사가 무죄추정의 원칙을 근거로 출전 제한은 부당하다고 주장해 왔으며, 세르징요가 경찰 조사를 받은 것 뿐 기소되지는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의 혐의에 대해 불분명한 부분이 많다고 항변했다.

그리고 2017년 4월 4일, 춘천지방법원은 세르징요에게 위조사문서행사 등 혐의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고, 세르징요는 국외 추방과 더불어 향후 5년간 대한민국에 입국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대해 2017년 5월 4일, 성남 FC는 무자격 선수인 세르징요가 출전한 2016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 결과를 ‘성남의 3-0 몰수승’으로 정정해달라는 내용 증명을 한국프로축구연맹에 발송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만약 한국프로축구연맹의 별다른 조치가 없을 경우 소송 등 법적 절차를 밟겠다고 선언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승강 플레이오프 대회 요강에 따르면 ‘무자격 선수가 출전한 것이 경기 중 또는 경기 후 발각되어 경기 종료 후 48시간 이내에 상대 클럽으로부터 이의가 제기된 경우 무자격 선수가 출전한 클럽이 0-3으로 패배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성남 FC는 당시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직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48시간 이내에 세르징요가 무자격 선수라는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연맹은 당시 성남이 보낸 공문[공문]은 '규정 문의'였지 '이의 신청'이 아니었으며, 또한 당시 세르징요는 법원의 판결이 나오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 결과가 변경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2017년 5월 17일, 운명의 장난인지 2부 리그로 떨어진 성남 FC와 1부 리그로 올라간 강원 FC가 FA컵 16강에서 맞붙게 되었다.

성남은 강원에게 짜릿한 1-0 승리를 거뒀고, 위 포스터를 내보이며 강원을 비난하였다.

성남 FC의 2016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 결과 정정 요청이 한국프로축구연맹에 받아들여지지 않자, 성남은 2017년 5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한국프로축구연맹을 상대로 2016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 결과 정정을 요청하는 내용의 민사조정을 신청했다.

성남 FC와 한국프로축구연맹은 2017년 6월 15일 1차 조정을 가졌으나, 서로의 입장 차만 확인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2017년 7월 11일 2차 조정을 가졌으나 역시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양 측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양 측의 쟁점은 두 가지였다.


*** 이의 제기 공문의 인정 여부,
한국프로축구연맹 측은 성남 FC가 승강 플레이오프 패배 이후 48시간 이내에 연맹에 공문을 보낸 것은 맞지만, '이의 신청'이 아닌 ‘규정 문의’라는 내용으로 보냈기 때문에 법률적으로 명확한 표현이 아니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성남 FC 측은 연맹의 규정에 '이의 제기'라는 용어를 써야한다는 내용은 없으며, 이의 제기를 위한 별도의 양식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반박하였다.

또한 공문의 내용과 성격상 성남 FC는 억울한 점을 언급한 것이고 연맹 역시 공문을 이의 제기로 해석하고 형식적으로나마 답변을 했다고 주장하였다.


*** 세르징요의 무자격 시점,
한국프로축구연맹 측은 2016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당시 세르징요는 무자격 선수라는 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무자격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성남 FC 측은 48시간 이내에 법원 판결이 이루어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며, 연맹의 주장대로라면 무자격 요건 해당 시점을 다른 팀에서도 악용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규정의 불합리함을 주장하였다.

2017년 8월 24일 열린 3차 조정도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끝이 나면서 해당 건은 민사소송위의 강제조정 절차로 넘어가게 되었다.

한편 한국프로축구연맹은 2017년 9월 1일 상벌위원회를 개최하여 세르징요에게 영구등록금지 징계를 내리고, 강원 FC에게 제재금 3000만원을 부과했다.

상벌위원회는 무자격 선수가 출장한 것이 사후에라도 밝혀질 경우 소속팀을 징계하도록 한 국제축구연맹과 아시아축구연맹의 규정과 사례를 참고하였으며, 이번 사건에서 강원 FC는 결과적으로 외국인 선수 등록 및 출전 자격 규정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에 징계가 이루어졌다고 설명했다.

2017년 9월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조정위는 "2016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 결과를 ‘성남의 3-0 몰수승’으로 정정하라"는 강제조정안을 제시했다.

강제조정 절차의 강제조정안은 법적 구속력을 갖지는 않으며, 강제조정안마저도 제시된 지 2주 이내에 한 측에서 이의를 제기하면 강제조정 결정은 효력을 상실하고 소송 절차로 넘어가게 된다.

2017년 9월 14일 한국프로축구연맹은 강제조정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였고, 결국 사건은 소송 절차로 넘어가게 되었다.

2018년 5월 2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0민사부가 성남 FC의 청구 소송에 관해 각하 판결을 내렸다.

제30민사부는 "경기 결과를 정정해달라는 성남의 청구는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사실관계를 확인해달라는 취지일 뿐 법률관계에 관한 것이 아니어서 판단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고 각하의 이유를 설명하였다.

그리고 2018년 6월 1일, 성남 FC는 "구단과 팬들의 명예 회복과 함께 연맹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기 위해 법적 다툼을 이어갔지만, 이 사안을 계속 쟁점화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라며 "법원의 소 각하 판결을 받아들이고 항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약 2년 동안 이어진 '세르징요 사태'는 성남의 상처와 함께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2018년 성남이 K리그1으로 승격하면서, 성남과 강원은 다시 같은 리그에서 만나게 되었다.

2021 시즌 최종전을 앞두고 강원은 K리그1 11위를 기록하며 승강 플레이오프로 떨어지게 되었고, 5년 전 사건을 기억하는 성남 팬들은 강원 원정에서 당시의 울분을 담은 걸개를 내걸었다.


유니폼,

자세한 내용은 성남 FC/유니폼 문서 참고하십시오.


팬덤,

서포터즈 - 블랙리스트,


응원가,

자세한 내용은 성남 FC/응원가 문서 참고하십시오.


홈 경기장,


성남 FC 홈 경기장
2000~04년, 2009년, 2019년2005~08년, 2010년~
성남종합운동장탄천종합운동장

클럽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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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축구센터
Seongnam Football Center
착공일2019년 4월 2일
준공일2021년 12월 14일
위치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4-12번지
시설클럽하우스 1동 (연면적 7,304㎡)
천연잔디구장 2면 (8,892㎡, 9,006㎡)

논란,

자세한 내용은 성남 FC/사건 사고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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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과거 일화 시절에는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양질의 선수들을 많이 영입했는데, 특히 골키퍼 라인이 돋보였다.

흔히 K리그에서 가장 골키퍼 계보가 화려한 팀을 떠올리면 울산 현대의 최인영 - 김병지 - 서동명 - 김영광 - 김승규 - 조현우의 라인업을 많이 떠올리지만, 성남 FC의 골키퍼 계보도 이에 못지 않다.

K리그 역대 최고의 골키퍼 사리체프를 시작으로 김해운[29] - 김용대 - 정성룡 - 박준혁으로 계보가 이어진다. 

박준혁이 현역으로 군 복무를 한 후 대전으로 이적하면서 공백이 생겼지만, 성남 유스 출신의 김동준이 등장하여 리그 최고 수준의 골키퍼 명가임을 과시했다.

김동준이 대전으로 이적한 후에는 전종혁과 김영광이 골키퍼 명가의 계보를 잇고 있다.

등번호 7번하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7번이 역사가 유명한데, 성남에게도 7번은 특별한 등번호다.

K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레전드이자 성남의 영원한 에이스 신태용의 등번호였기 때문이다.

비록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신태용이 선수로서든 지도자로서든 성남에 있는 동안에는 7번을 넘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성남에서 현역을 보낸 선수가 감독으로 부임하면 현역 선수에게 감독의 현역 시절 등번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신태용의 은퇴 이후 최성국과 김철호가 이 등번호를 받았으나, 전자는 승부조작으로 축구계 전체에 상처가 되었고, 후자는 기량의 노쇠화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2016년에 새로 영입된 황진성이 7번을 물려받았다.

뛰어난 테크니션이었기에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유리몸 때문에 제대로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했고, 결국 타 팀으로 이적하게 됐다.

2017년에는 제주에서 이적한 김영신이 7번을 달았지만 한 시즌만에 타 팀으로 이적했고, 2018년에는 에델이 7번을 이어받았으나 2020년 다시 제주로 이적했다.

현재는 2020년 영입된 권순형이 등번호 7번을 이어받았다.성남의 등번호 7번에 얽힌 이야기

만화가 샤다라빠가 응원하는 축구단이다.

2015년을 앞두고는 직접 유니폼이나 머플러 등의 상품을 디자인하였고, 운영위원으로도 위촉되었다.

엄브로 및 관련 디자이너들을 닦달하여 멋진 상품들을 잘 뽑아냈다.

샤다라빠가 소속되어 있는 황기청년단의 응원 모습은 TV 중계 때마다 전담 카메라를 통해 전파를 타는 중이다.

그리고 황기청년단 외에도 성남에는 천마불사, 지오바니, Y.R.U. 등 많은 서포터즈가 있다.

2021년부터는 서포터즈가 블랙리스트로 통합되었다.

성남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가 2015년 5월 김천시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성남 FC가 성남시의 유일한 프로스포츠단이 되었다.

2016년 8월 16일, 피파 프로게이머인 김정민을 영입했다. 

국내 프로구단이 직접 e스포츠에 참가한 것은 성남이 최초다.

이후 김정민을 비릇한 팀원 전부가 2019년을 끝으로 T1으로 이적했다.

탄천요새에서 성남이 승리를 거두면 항상 신해철의 그대에게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가끔 가수 백아연이 성남의 경기를 보러 온다.

어렸을 적부터 성남에 살아서 일화 시절부터 경기를 보러 오곤 했다고 한다.

부친이 이재명 前 성남시장의 수행비서라서 이재명이 경기를 보러 오면 같이 경기를 보러오는 경우가 많았다.

2020년 3월 28일, 아프리카TV 대표이사 서수길이 개인방송을 통해 성남 FC를 인수하고픈 마음이 있다고 언급하였다.

이미 3년 전, 성남 FC 인수를 시도한 적이 있었으나, 아프리카TV 직원들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었다.

2020년부터 시작된 K리그 마스코트 반장선거에서 첫 해에 8위를 기록했던 까오가 야심차게 리뉴얼을 단행한 뒤, 2021년 꼴찌로 주저앉는 충격적인 결과를 얻었다.

심지어 주최 측에서도 대놓고 이전의 모습이 더 귀여웠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성남시 지역 언론에서 관련기사가 나기도 했다. K리그 마스코트 반장선거, 성남FC '까오' 성형실패로 '꼴찌'


둘러보기,


탄천종합운동장의 애칭은 탄천요새다.

16,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구장이지만, 골대 뒤에 가변석을 설치하면서 현재는 사실상 14,000여 명만 수용 가능하다.

지금은 성남 FC의 보조 경기장으로 알려진 구장이지만, 성남종합운동장은 과거 한국 하키계의 성지였다.

1988 서울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여자 하키 국가대표팀이 은메달을 차지한 곳이어서 경기장을 축구장으로 개조할 당시 하키계의 반발이 심했다.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면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야구장으로 개조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사건은 성남시가 비난의 대상이 되었어야 했는데, 축구계의 욕심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하여 대한체육회에서 축구계의 입지가 곤란해진 적이 있었다.

이 사달을 치러놓고 고작 4년만 사용한 후 탄천으로 주 경기장을 옮겼다는 것도 큰 문제가 됐다.

2019년 전반기에 탄천종합운동장 보수공사 때문에 성남종합운동장을 한시적으로 다시 사용한 적이 있다.

2019년 7월 14일, 대구전부터 다시 탄천으로 돌아갔다.

전 성남시 행정기획조정실장. 두 번째 성남시 공무원 출신 대표이사다.

K리그1 최초 3연패 기록과 재차 3연패의 2회 3연패 기록을 갖고있다.

1993, 1994, 1995 시즌 우승은 서울 연고 시절 우승이고, 2001, 2002, 2003 시즌 우승은 현재 성남 연고 우승이다.

이적료 + 선수 1명 트레이드 형태.

감바 오사카는 J1리그에서 미니 트레블을 달성했고, 부리람 유나이티드 역시 타이 리그 1에서는 전북급의 강자였다.

게다가 광저우 부리 역시 중국의 머니 파워에 걸맞게 화려한 팀이었다,


박종환 감독이 중간중간 징계로 지휘를 하지 못했을 때는 원흥재 코치가 임시로 감독 역할을 했다.

원흥재 코치는 서울시청 때부터 박종환 감독을 보좌해 왔으나 숭실대 감독으로 떠나면서 박종환과는 멀어졌다.


구단 최초의 외국인 감독.



구단 최초의 선수 출신 감독.


구단 선수 출신 감독.

선수 폭행 논란으로 중도 사임.

구단 선수 출신 감독대행.

구단 선수 출신 감독대행.


구단 선수 출신 감독대행.


구단 선수 출신 감독.

K리그1 승격. 

당시 전적은 2004 FA컵 32강전 3:1 수원 FC 승리, 2012 FA컵 32강전 1:5 성남 승리로서 2전 1승 1패였다.[공문] 

사리체프를 능가할 골키퍼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실력이 뛰어난 선수는 많이 등장했있지만 자신의 실력으로 리그의 흐름과 제도까지 바꾼 선수는 사리체프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리체프 때문에 리그가 골키퍼란 포지션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고, 구단이 골키퍼 코치를 두기 시작했으며, 연맹이 외국인 선수 제도를 바꾸었다.

성남 FC의 전 골키퍼 코치.

2021 시즌 부천으로 임대. 

2018년부터 2019년까지 남기일 감독이 성남 FC의 감독을 맡고 있는 동안 등번호 12번을 달고 있는 현역 선수가 없었다.

그리고 신태용 감독이 부임해 있던 시즌에도 등번호 7번을 달고 있던 현역 선수가 없었다.

예외로 2013년 안익수 감독이 부임했을 때, 자신의 현역 시절 등번호 5번을 심우연이 달고 뛰었다.

여기에 대해서 안익수 감독은 쿨하게 넘어갔다고 한다. 

K리그 웹툰을 연재했으며, 2021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연재가 종료되었다.

성남의 팀 컬러 검정색에 착안한 서포터즈명이다.

국내 피파계에서는 전설급 선수다.
  1. 이중적인 표현이다. 긍정적인 측면(성적)에서도 전설적이지만 부정적인 측면(선수/심판 폭행 등)에서도 전설적인 인물..
  2. 월간축구 1973년 1월호에 따르면, 1972년 9월 성남고 축구부가 해체된 뒤, 박종환 씨는 동국대학교 코치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973년께부터 유신고등학교 축구부 코치 겸 주심으로 활동하였던 것으로 보면 동국대 코치는 임시적으로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3. 당시 박종환 감독 이외에도 청소년대표에 김삼락 전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표 감독, 故 차경복 전 성남 일화 천마 감독, 故 조윤옥 전 대우 로얄즈 감독 등이 소속되어 있었다.
  4. 이 때문에 혹자는 선수들이 박감독의 손가락만 보며 움직인다하여 손가락 전술이라 호칭하기도..
  5. 강력한 체력 훈련을 바탕으로 한 정형화된 전술 틀의 운용 측면에서 2002 FIFA 월드컵 당시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던 후스 히딩크의 지도 스타일과 유사한 형태다.
  6. 빳따를 맞지는 않았다고 하더라. 다만 몇몇 선수의 뺨이 벌개진걸 목격한 팬들은 있었다 (..)


박종환 성남FC 감독 "화끈한 공격축구로 명가 재건”

관련이슈,

K리그 최고령 박종환 성남FC 감독,

“화끈한 공격축구로 명가 재건, 팬들 다시 찾아오도록 만들 것”올해 국내 프로축구의 최대 화두는 ‘올드보이’의 귀환이다.

40대 감독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1부 리그)에 60대 감독뿐 아니라 심지어 70대 사령탑이 탄생했다.

예전 같았으면 깜짝 놀랄 일이다.
박종환 전감독 인터뷰, 세계일보, 겹쳐,

돈으로 살 수 없는‘노병’의 관록과 경험을 높이 평가한 때문이다.

올드보이들이 녹색 그라운드에 돌아오면서 관중도 늘어나고 있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980∼9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승부사’ 박종환(76) 감독이 시민구단으로 새로 출범한 성남 FC의 지휘봉을 잡고 나서 그라운드에 볼거리와 함께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변함없이 공격 축구를 구사하기 때문이다.

그라운드를 잠시 벗어나 있는 동안 아쉬움과 느낀 점이 많아서 일 게다. 기업구단이던 성남 일화 창단 감독을 맡으며 프로축구 최초로 3연패(1993∼95년)의 금자탑을 쌓은 박 감독을 최근 경기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만났다.

세월에는 장사 없다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쩌렁쩌렁했다.



ㅡ오랜만에 그라운드에 돌아왔다. 감회가 어떠신지.

“7년간 그라운드를 떠나 있었다.

비록 현장에는 없었지만 늘 축구를 옆에 두고 살았다.

60년 넘게 축구를 해온 사람이 축구를 떠난 삶은 있을 수 없지 않은가. 다시 K리그로 돌아온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나이가 있어 엄두를 내지 않았다.

지도자를 하겠다는 생각을 안 했다.

몇 곳에서 팀을 새로 만들면서 요청이 있었지만 아마추어 팀이라 고사했다. 과거 성남 일화에서 업적을 쌓은 공로 때문에 이재명 성남시장이 수차례 찾아와 간곡히 부탁하길래 받아들였다. 평생에 마지막 사령탑으로 여기고 견마지로를 다하겠다.”



ㅡ고령이라 주위에서 걱정도 없지 않다.

“아직까지 20대 선수들과 대등하게 1시간 정도는 풀로 뛸 자신이 있다.

그래야만 선수들에게 전술적인 부분을 가르칠 것 아닌가. 지병도 없고 신체 모든 게 정상이다.

복을 받았다고나 할까. 성남 개막전 때에는 지난해 평균 관중의 5배가 넘는 1만2000여명이 찾는 등 관중이 많이 늘어 고무적이라 생각한다.

팬클럽이 다시 구성됐다고 들었다.”



ㅡ프로축구 최고령 감독으로서 모범적으로 잘해야 된다는 책임감이 작지 않을 텐데.

“프로 감독 및 코칭스태프 대부분이 제자들이다.

나잇값을 제대로 해야 하는데 걱정이 앞선다.

제자들이 경기 전에 찾아와 인사할 때 어깨를 두드리며 열심히 잘하라는 격려의 말을 빼놓지 않는다.

그라운드 밖에서는 사제지간일지라도 경기는 경기이고, 팀은 팀이다.

지든 이기든 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좋은 경기, 깨끗한 모습을 보여주면 다른 팀 감독인 제자들도 나중에 그걸 전수해 줄 것으로 믿는다.”



ㅡK리그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한다면.

“작년에 프로축구가 출범 30년을 맞았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어 안타깝다.

매끄러운 축구가 없고 내용이 시시해서 아쉬웠다.

감독생활을 오래 한 만큼 나 또한 책임이 적지 않다.

관중이 경기장을 찾을 수 있도록 지도자들과 선수들이 보다 흥미있는 축구를 구사하도록 머리를 맞대고 노력해야 한다.

나부터가 바꿀 것임을 약속한다.

프로축구 감독의 연령대가 갑작스럽게 낮아져서 젊은 감독이 팀 운영에 적지 않은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지지 않으려는 축구를 추구한 결과 관중은 그라운드를 외면할 수밖에 없다.

소신 있는 축구가 아쉽다.”



ㅡ성남 FC의 지휘봉을 잡고 난 뒤 어떤 목표를 잡았는가.

“선수들을 보지 않았을 때 기대를 크게 가졌던게 사실이다.

실제로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고 보니깐 답이 보이지 않고 앞이 깜깜하더라.

선수들의 기량이 생각과 크게 달랐다.

싫은 소리하면 선수들의 사기가 떨어지는 걸 알기에 칭찬으로 기를 살려주려 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싫은 소리는 안 한다.

성남에는 따로 주전이 없다. 경쟁해서 이기면 베스트다.

남들은 우리를 보고 강등권이라 평가하지만 얼마든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중위권까지 오를 자신 있다.

선수들에게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도 말고, 내 명예에 먹칠도 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더 나이 먹기 전에 여기서 우승을 이루겠다.

얼마든지 할 수 있다.”



ㅡ현재 성남의 성적은 하위권이다. 언제쯤에나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보는가.

“선수 파악도 못한 채 팀을 맡았다.

핑계거리 같지만 훈련 기간이 짧았다.

두 달 가량 지나면 박종환식 축구를 낼 것으로 본다.

선수들의 기량이 아직 부족하다.

과거처럼 스파르타식으로 호되게 몰아치지는 않는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차근차근 색깔을 입혀가는 중이다.

6월 브라질 월드컵 기간을 전후로 있을 7주간의 휴식기에 특별훈련을 통해 팀을 달라지게 만들겠다.”



ㅡ추구하는 파도축구는 무엇인가.

“파도가 아름다운 것은 갈 수록 파문과 위력이 커진다는 것이다.

파도는 1차 파도에 이어 2, 3차 파도가 밀어닥친다.

늘 흐름이 있기 마련이다.

흐름 있는 공격축구를 하겠다는 뜻이다.

내 사전에 잠그기 또는 수비축구는 단연코 없다.

이렇게 해야만 경기장에 관중이 몰려든다.

어려운 시간을 내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게 최소 본전을 돌려줘야 할 것 아닌가.”



ㅡ구단의 지원은 어떤가.

“작년에 성남 일화 구단은 200억원가량 쓴 걸로 알고 있다.

그중에는 100만달러짜리 선수도 있다.

구단 재정이 성남 일화 시절과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민구단이 어렵긴 다 마찬가지다.

함께 고생하며 성남의 3연패를 이룬 주역인 이상윤, 이영진 등 옛날 제자들이 다시 뭉친 게 그나마 다행이다.

일단 좋은 성적을 내면 구단에서도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리라 생각한다.

창단 감독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릴 뿐이다.”



ㅡ걸어온 축구 인생을 설명해달라.

“이북 출신으로 춘천에 내려와 살았다.

춘천중학 2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으니까 쉰 기간을 빼더라도 60년 가까이 축구공과 함께 한 셈이다.

석탄공사 축구팀 선수(센터포드)로 활약했고, 국제심판으로도 휘슬을 불었다.

수원 유신고 체육교사로 창단 감독을 맡았고, 전남기계공고와 서울시청 감독을 지냈다.

프로에 와서도 성남 일화, 대구 FC 감독을 맡았다.

내가 맡은 팀은 모두 다 창단 감독이다.

‘창단 전문’이다.

그냥 내 팔자려니 하고 여긴다.

창단 팀을 이끌다보면 힘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백지상태의 팀을 맡아서 성적를 내니까 ‘무에서 유의 창조’라고나 할까 큰 보람을 느낀다.

1984년 LA올림픽 대표팀 감독과 96년엔 A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월드컵 대표팀 감독만 못해 봤다.”



ㅡ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는다면.

“박종환 하면 아무래도 1983년 멕시코 청소년 축구 4강이다.

공기가 희박한 해발 2000m가 넘는 멕시코에서의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방독면을 쓰고 훈련했다.

14만 관중이 몰리고 낮 기온이 37도나 되는 경기장에서 홈팀인 멕시코를 2-1로 꺾고 4강에 가리라고는 꿈에도 상상조차 못했다.

더구나 국제축구연맹(FIFA)도 경기장을 임의로 바꿔 우리에게 불리하도록 편법을 쓰기도 했다.

우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혼연일체가 되어 정말 열심히 뛰었다.

얼마나 악바리같이 뛰어다녔으면 ‘붉은 악마’라는 별명이 붙었겠는가.

30년이 지난 당시의 감격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



ㅡ가족관계는.

“평생 축구공만 쫓아다니는 바람에 집사람이 애들(1남1녀)을 책임지고 키웠다.

자식농사는 잘 지었다고 자부한다.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애들을 잘 키워줘 늘 고맙고 미안하게 여긴다.

딸은 평범한 주부로, 아들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신경외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손녀가 벌써 시집갈 나이 25살이다.” 

감독님의 건행을빕니다 ^^

끝까지 시청해 주셧어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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