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31일 일요일

알프스 . Alps.

알프스 . Alps.

유럽의 중남부에 있는 큰 산계로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 걸쳐있다. 최고봉은 높이 4,807m인 몽블랑이다. 피레네산맥과 함께 북쪽의 유럽대평원과 남쪽의 지중해 연안지역을 기후적·문화적으로 구분하고 있다.

스위스·프랑스·이탈리아·오스트리아에 걸쳐 있다. 독일어로 알펜(Alpen), 프랑스어로는 알프(Alps), 이탈리아어로는 알피(Alpi)라고 한다. 산을 뜻하는 켈트어 albalp 또는 백색을 뜻하는 라틴어가 어원인데, ‘희고 높은 산’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 또 오스트레일리아알프스·일본알프스와 같이 각국의 산맥 중에도 알프스라는 이름을 붙여 높은 산맥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이 산계는 지중해 가까이에서 시작되어 북쪽으로 뻗은 다음 활 모양을 이루며 동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이 지역은 히말라야까지 계속되는 지구의 지질적 약선부()에 해당하며, 제3기에 일어난 대규모 조산운동으로 생긴 습곡산맥이다. 장소에 따라 습곡·조산의 강도에 약간의 차이가 있으며, 평균해발고도는 2,500m이다.

최고봉은 몽블랑(4,807m)으로 히말라야산맥·안데스산맥에 비하면 고도가 떨어지지만, 정상부에는 빙하가 발달해 있어 알레치빙하(길이 16.5km), 메르드글라스빙하, 고르너빙하 등이 있다. 빙식을 당한 침봉군(), 삼림한계 위에 있는 초원(alp), 호수 등과 함께 아름다운 고산 풍경을 이루어 등산·관광객이 많이 모여든다. 유럽의 큰 하천인 라인·론·도나우(상류의 인강)·포강 등은 알프스에서 발원한다.
프랑스∼이탈리아의 몽스니(길이 1만 2233m), 스위스∼이탈리아의 생플롱(2만 44m), 생고타르(1만 4990m) 등의 고개에서는 긴 터널을 통해 국제열차가 다니고 있다. 도로는 이들 고개 외에 생베르나르(프랑스∼이탈리아)·그랑생베르나르·슈플뤼겐·마로야(스위스∼이탈리아)·브레너·탈비스(오스트리아∼이탈리아)가 있다. 
알프스는 유럽 중남부에 장벽처럼 우뚝 솟아 있으며, 피레네산맥과 함께 북쪽의 유럽대평원과 남쪽의 지중해 연안지역을 기후적·문화적으로 구분하고 있다. 특히 지중해 연안에서는 강수량이 적은 지중해성 기후의 생성요인 구실을 한다. 문화적·민족적으로 북쪽과 남쪽의 교류를 방해해 왔는데, 지금은 도로와 철도가 많이 뚫려 있다.
지역구분과 고봉.
알프스는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서부 알프스〉 지중해에 가까운 해안 알프스로부터 몽블랑 산괴와 이어지는 부분으로, 흔히 프랑스알프스라고 한다. 산맥은 주로 남북으로 뻗어 있는 비교적 낮은 산지이지만, 펠부 산군에는 메이지(3,987m), 에크랭(4,103m) 등의 아름다운 산들이 있다. 
북부의 몽블랑 산군에는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과 에귀베르트(4,127m) 등 화강암질의 침봉군이 있으며, 몽블랑 기슭의 샤모니는 예로부터 등산관광의 기지로 알려져 있다.
〈중부 알프스〉 주로 스위스쪽 부분이며, 알프스 산맥은 여기에서부터 동서쪽으로 방향이 바뀌고 크게 둘로 갈라지는데, 북쪽이 베르너오벌란트 산괴(베르너고지)이고 남쪽이 발리스알프스이다. 발리스알프스는 이탈리아 국경에 걸쳐 동서방향으로 뻗은 산맥과 북상하는 두세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의 한 계곡에 있는 체르마트는 등산 기지로서 유명하다. 
알프스 제2의 고봉 몬테로사(4,634m), 리스캄(4,538m), 마터호른(프랑스어로 Mont Cervn4,478m), 미샤벨 산괴의 돔(4,555m), 바이스호른(4,505m) 등 높이 4,500m급의 산들이 많다.
이탈리아어로는 몬테 비앙코(Monte Bianco)라고 하며, ‘흰 산’이라는 뜻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에 위치하며, 화강암질의 몽블랑 산군()에 속한다. 이탈리아 쪽은 비탈면이 매우 가파르고 프랑스 쪽은 비교적 완만하다. 빙하가 발달하여 메르 드 글라스 빙하, 아르장티에르 빙하, 제앙 빙하, 보송 빙하 등이 있다. 정주취락()으로서는 이탈리아 쪽에 해발고도 1,306m의 앙트레브가 있고, 프랑스 쪽에는 몽블랑의 등산기지로 유명한 샤모니몽블랑이 있다. 
몽블랑은 18세기 중엽부터 등산가의 주목을 끌기 시작하였는데, 1786년 8월 8일 J.발마와 M.파카르가 처음으로 등정하였고, 그 다음해에 발마의 안내로 스위스의 자연과학자 소쉬르가 산정을 정복하였다. 현재는 샤모니몽블랑과 앙트레브를 잇는 케이블이 있으며, 이탈리아의 쿠르마이외에서 프랑스의 샤모니몽블랑에 이르는 몽블랑 터널이 뚫려 관광도로 겸 프랑스와 이탈리아 간 산업도로로서 이용되고 있다. 
몽블랑 부근은 기류가 나빠 항공사고가 잦고, 주변의 취락은 본래 이목경제()를 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샤모니몽블랑과 쿠르마이외 등이 국제적인 관광지로서 사철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다.

이에 비하여 베르너오벌란트 산괴는 고도가 약간 낮으며, 등산기지로서 유명한 그린델발트 마을을 중심으로 핀스터아어호른(4,275m)을 비롯하여 융프라우(4,158m) ·묀히(4,105m) ·아이거(3,970m) ·베터호른(3,708m) 등 등산사상 유명한 산들이 많다. 
발리스알프스의 산들보다 북쪽에 있기 때문에 설선()이 낮고 빙하가 발달해 있으므로 오르기 힘든 융프라우는 정상 가까이까지 교통기관이 있으며, 스위스의 산악 중에서 가장 많은 산악인들이 이곳을 찾는다. 특히 아이거는 등반하기 어려운 곳으로 유명하다. 베르너오벌란트의 북쪽에는 고도는 낮지만 루체른 ·레만 등의 호수와 가까운 당뒤미디 등의 산군이 있다.
〈동부 알프스〉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부분으로 알프스산맥이 더욱 더 많이 갈라져 남북으로 퍼져 나가고 고도가 낮아지며, 그 북쪽과 남쪽 언저리에는 석회암이 있다. 북쪽 언저리는 독일에 들어가 있으며, 독일의 최고봉 추크슈피체(2,963m)가 유일한 고봉이다. 이 지역이 티롤리안알프스이며 빙하는 거의 없다. 
남쪽 언저리는 이탈리아와의 국경을 동쪽으로 뻗어 있는 외츠탈알프스(Ötztaler Alpen)이며, 높이 3,700 m급의 산과 빙하가 있다. 이탈리아로 통하는 브레너 고개 너머에 칠러탈알프스(Zillertal Alpen)가 있는데, 그 남쪽에 돌로미테의 암봉군()이 있고, 동쪽으로 가면 오스트리아의 최고봉 그로스글로크너(3,798m)가 있는 글로크너 산군에 이어지며, 니더베른산맥을 거친 알프스는 빈에서 끝난다.
알프스의 동물과 식물
알프스의 식물 분포는 해발고도에 따라 구분된다. 너도밤나무·자작나무 등의 낙엽교목이 저지대에서부터 해발 1,500m 지점까지 자라고 있으며, 해발 1,800m부터 삼림한계인 2,000m의 중간지대에는 가문비나무·소나무·전나무 등의 침엽수가 자란다. 삼림한계 위로는 관목지대가, 그 위 해발 2,400m까지에는 고산식물의 초원이 펼쳐지는데, 고산식물로는 에델바이스 알펜로제가 특히 유명하며, 에델바이스는 스위스의 국화이기도 하다. 
해발 3,000m 이상의 고산지대에는 식물이 자라지 않으며, 암석과 만년설이 덮여 있다. 산록과 곡저()의 평지는 목장 및 밭으로 개발되어 보리와 감자가 재배되고 있다. 동물은 아시아 지역의 고산에 비하여 그 종류가 적고, 국립공원들과 보호구에서 아이벡스염소·알프스산양·마못·산토끼·검독수리 등이 살고 있다. 새는 뇌조류()가 많다.
알프스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빙하가 후퇴하기 시작한 무렵이라고 한다. 알프스 지방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주로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이며, 남동부에서는 크로아티아어가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언어의 사용지역은 제대로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뒤얽혀 있다. 종교는 그리스도교이며, 로마가톨릭이 많지만 스위스의 일부에서는 프로테스탄트가 우세하다. 
풍속과 습관에서는 대부분의 지역이 근대화되었으나, 티롤과 바바리아에는 전통적인 의상과 춤 등이 남아 있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바바리아 지방에는 나무로 만든 가옥이 많고, 이탈리아 ·프랑스에 가까운 지역에는 돌로 만든 가옥이 많다. 
산업은 유축()농업과 관광이 대표적이다. 산중의 농촌은 골짜기 같은 데에서 보리 ·감자 ·포도 등을 재배하며, 가축은 이목()형태를 취하고 있다. 즉 겨울에는 축사에서 사육하다가 여름에 눈이 녹으면 산 위의 알프스 목장에서 방목하여 버터 ·치즈 등을 만든다. 
여러 방향으로 흐르는 급류는 수력발전에 이용되며 산록의 기업을 위한 동력원 구실을 한다. 알프스의 고산 빙하와 암벽은 아름다운 호수와 함께 중요한 관광자원이 되어 있으며, 도로 ·여관 ·스키 시설 등 관광시설과 스포츠 시설도 갖추어져 있다. 
스위스의 그린델발트 ·체르마트 ·다보스 ·장크트모리츠, 프랑스의 샤모니, 이탈리아의 코르티나담페초, 오스트리아의 인스브루크 등 국제적인 등산 ·스키장이 있으며 많은 관광객이 찾아든다.
유럽 중남부에 있는 큰 산계. 스위스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 걸쳐 있다. 알프스라는 이름은 '산'을 뜻하는 켈트 어 'alb''alp' 또는 '백색'을 뜻하는 라틴 어가 어원인데 빙설로 뒤덮인 '희고 높은 산'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이 산계는 지중해 가까이에서 시작되어 북쪽으로 뻗은 다음 활 모양을 이루며 동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평균 해발 고도 2,500m로 최고봉은 몽블랑 산(4,807m)이다. 빙식을 당한 침봉군(), 삼림 한계 위에 있는 초원, 호수 등과 함께 아름다운 고산 풍경을 이루어 등산·관광객이 많이 모여든다.

알프스 산맥은 피레네 산맥과 함께 북쪽의 유럽 대평원과 남쪽의 지중해 연안 지역을 기후적·문화적으로 구분하고 있다. 특히 지중해 연안에서는 강수량이 적은 지중해성 기후의 생성 요인 구실을 한다. 북쪽과 남쪽을 연결하는 도로와 철도가 많이 뚫려 있다. 알프스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빙하가 후퇴하기 시작한 무렵이라고 하는데 유축() 농업과 관광업이 대표적인 산업이다. 
알프스를 넘었다는 최초의 기록은 제2차 포에니 전쟁 때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군사를 이끌고 알프스의 고개를 넘었다는 사실이 있다. 그러나 이후 이 산은 악마가 사는 곳이라 하여 두려움의 대상이었므로 18세기 중엽까지는 등산이 거의 중지된 상태였다. 1786년 스위스의 소쉬르의 노력으로 샤모니의 가이드 발마와 의사 파카르가 몽블랑을 정복함으로써 근대 등산사가 시작되었다.
몽블랑터널.Mont Blanc Tunnel.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을 뚫어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잇는 자동차 전용 터널.
길이 11.6 km. 프랑스인 G.드레피네가 1870년 제안했고, 1958년 착공되어 65년 7월 개통되었다. 이 터널의 개통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의 자동차 교통이 약 200 km 단축되었으며, 유럽의 새 동맥이라고 일컬어진다. 알프스 계곡과 아오스타 계곡을 직결시키며, 샤모니몽블랑에서 북으로 제네바를 거쳐 리옹에서 프랑스 각지로 통하는 길과, 쿠르마이외에서 남으로 토리노·밀라노·로마로 통하는 길이 1년 내내 연결되어, 그 정치적·경제적 영향이 매우 크다.

융프라우와 소통하는 데 거친 호흡은 필요 없다. 알프스의 하늘을 날고 땅을 밟고 향기를 맡는 일들이 편리하게 진행된다. 산행을 끝내고 해 질 녘 노천바에 앉으면 ‘행복한 노곤함’은 감동으로 전이돼 가슴에 새겨진다.
가는 길 
융프라우 여행은 호수마을인 인터라켄이 출발점이다. 스위스의 관문인 취리히제네바나 베른에서 열차를 타고 인터라켄을 경유해 그린델발트나 라우터브루넨에 도착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산악열차로 정상까지 이어진다. 이 일대 구석구석을 즐기고 싶다면 3일 동안 산악열차를 이용할 수 있는 VIP 패스를 구입하는 게 저렴하다.


프라우가 친숙한 것은 역과 산악열차 때문이다. 암벽을 뚫고 1912년부터 운행되기 시작한 산악열차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역(3,454m)인 융프라우요흐까지 이어진다. 덕분에 힘 안 들이고도 정상근처까지 오르는 호사가 가능해졌다. 역전 우체국도, 컵라면도 덤으로 유럽 최고가 됐다. 산악열차는 2012년이면 100주년을 맞는다.

프스의 최고봉 몽블랑을 뚫어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잇는 자동차 전용 터널.
길이 11.6 km. 프랑스인 G.드레피네가 1870년 제안했고, 1958년 착공되어 65년 7월 개통되었다. 이 터널의 개통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의 자동차 교통이 약 200 km 단축되었으며, 유럽의 새 동맥이라고 일컬어진다. 알프스 계곡과 아오스타 계곡을 직결시키며, 샤모니몽블랑에서 북으로 제네바를 거쳐 리옹에서 프랑스 각지로 통하는 길과, 쿠르마이외에서 남으로 토리노·밀라노·로마로 통하는 길이 1년 내내 연결되어, 그 정치적·경제적 영향이 매우 크다.
샤모니몽블랑.Chamonix-Mont-Blanc.
프랑스 남동부 오베르뉴론알프 레지옹(Région) 오트사부아 데파르트망(Département)에 있는 휴양도시.
스위스 국경에 인접하고, 레만호()로 흘러드는 아르브강 상류의 몽블랑 산기슭 해발고도1,037m에 위치한다. 스케이트를 비롯한 동계 스포츠의 시설이 잘 되어 있어 1924년의 동계올림픽을 시초로 각종 경기가 개최되었다. 

국립 스키학교와 등산학교가 있고, 알프스 등산의 출발지점이기도 하여 스포츠인과 등산객 및 관광객을 위한 호텔과 휴양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몽블랑 등의 전망을 즐길 수 있는 에귀뒤미디산(3,842m)까지는 로프웨이로 약 30분 걸린다. 
메르드글라스 빙하()가 보이는 몽탕베르산(1,913m)과는 등산철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1965년에 개통된 몽블랑 터널(11.5km)을 통과하면 이탈리아 쪽으로 갈 수 있다.
메르드글라스.Mer de Glace.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 근처에 있는 몽블랑 산괴에서 가장 큰 빙하.
프랑스어로 ‘빙원()’이라는 뜻이다. 제앙(Géant) ·레쇼(Les chaux) ·탈레프르(Taléfre)의 세 빙하가 합류한 것으로 너비 1∼2km, 길이 7km에 이르며, 샤모니 북동쪽에서 론강()의 지류인 아르브강으로 유입한다. 샤모니로부터 케이블카로 20분 거리에 있는 몽탕베르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장관을 이룬다. 표면적 42km2, 평균 두께 322m, 얼음의 전량() 13.5km3로 추정된다.

알프스 융프라우 지역
신이 빚어낸 알프스의 보석.
스위스 융프라우는 세계의 알짜 명소다. 여행자들의 로망인 런던, 파리에 이어 누구나 유럽여행 중에 꼭 한 번쯤은 들려봤음 직한 단골 방문지이며, 또 귀에 박힐 정도로 익숙해진 곳이다. 사실 융프라우는 알려진 겉모습보다는 속살이 더 옹골지고 매혹적이다. ‘신이 빚어낸 알프스의 보석’이라는 칭송을 받는 데는 숨겨진 이유가 있다.
융프라우의 높이는 4,158m다. 아이거묀히와 더불어 융프라우 지역의 3대 봉우리 중 최고 형님뻘이지만, 이름에 담긴 뜻은 아이러니하게도 ‘젊은 처녀’다. 그러나 수줍은 처녀처럼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 산 밑 인터라켄의 날씨가 화창하더라도 융프라우는 구름에 만년설로 덮인 알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빼어난 알프스의 고봉들이 즐비한 가운데 융프라우는 알프스 최초로(200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융프라우와 더불어 산줄기 사이로 뻗은 알레치 빙하도 유산에 속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변화무쌍한 날씨가 등재 이유 중 하나라는 점인데, 유네스코 목록을 뒤져보면 빼어난 산세, 빙하와 함께 끊임없이 계속되는 날씨 변화를 등재 사유로 적고 있다. 유럽 사람들이 정상에 느긋하게 머물며 날씨와 산세를 더불어 음미하는 데는 이런 사연이 있다. 산 위의 날씨가 시시각각 변하는 게 융프라우의 매력이라는 것이다. 3,000m가 넘는 고지에는 천문대와 연구소도 들어섰다. 물론 유네스코는 융프라우가 유럽의 예술, 문학, 등반, 여행에 큰 몫을 하고 있다는 점을 빼놓지 않고 높이 사고 있다.
산세를 제대로 감상하는 포인트는 플라토 전망대나 빙하지대로 이어지는 역 뒷문이다. 밖으로 나서면 융프라우와 22km 뻗은 알레치 빙하가 코앞에 펼쳐진다. 알레치 빙하는 유럽 최장 길이로 독일의 흑림지대까지 뻗어 있다. 서 있는 발 아래는 한여름에도 만년설이다.
만년설을 밟으며 빙하 트레킹(도보 여행)을 즐기는 게 융프라우 감상의 ‘첫 번째 숨겨진 속살’이다. 트레킹은 묀히산장까지 이어지는데 두세 시간이면 왕복이 가능하다. 걷다 보면 융프라우의 3대 봉우리가 ‘3D 파노라마 영화’처럼 장면을 바꾼다. 산장에서 맛보는 뚝배기 커피(주인장은 마운틴 커피라 부른다)는 감칠맛이다.
그림 같은 산악마을
융프라우 여행에도 금기사항은 있다. 열차는 그린델발트라우터브루넨벤겐 등의 산악마을을 스쳐 지난다. 이런 청정마을을 열차 갈아타는 용도로만 이용하지 말자는 것이다. 위로 올라설수록 마을은 호젓하고 그윽하다. 벤겐뮈렌 등의 마을에는 100년 넘은 샬레풍의 세모집들이 옹기종기 늘어서 있다. 마당에는 야생화가 가득 피었고 길 옆 노천 바에서는 맥주 한 잔 기울이는 호사스러운 휴식도 가능하다.
이방인들로 흥청거리는 인터라켄보다는 이곳 산악마을에서 꼭 묵어 보기를 권한다. 창문만 열어도 라우터브루넨의 슈타우바흐 폭포와 그린델발트의 아이거 북벽 을 감상할 수 있다. 알프스에서 만끽하는 ‘엽서 한 장의 휴식’이란 이런 것이다. 게스트하우스나 산장의 시설은 유럽 어느 곳보다 빼어나다. 캠핑장에 개를 위한 샤워장이 있을 정도다.
최근 융프라우 일대에서 유행처럼 인기 높은 게 트레킹이다. 70여 개 코스, 200km의 다양한 코스가 거미줄처럼 뻗어 있다. 트레킹 루트는 곤돌라를 타고 2,000m 지점에서 시작해 산악마을과 야생화 길을 완만하게 걷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 중 피르스트 의 바흐알프(Bachalpsee) 호수로 향하는 트레킹 코스는 백미로 통한다. 설산과 호수가 만들어내는 데칼코마니 의 진수를 목격할 수 있다. 피르스트에는 만년설의 봉우리들 사이로 뛰어드는 황홀한 패러글라이딩 포인트도 자리 잡았다.
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Gotthard Base Tunnel.
스위스 남부 알프스 지역을 통과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 전용 터널로, 길이 약 57km에 이른다. 2016년 하반기 개통 예정이다.
약어로 'GBT'라고도 불린다. 스위스 남부 알프스 지역의 지하를 통과하는 철도 전용 터널이며 길이가 약 57km에 이른다. 스위스는 국민투표를 거쳐 터널 건설을 결정했다. 도로 교통량을 완화시키고 연간 120만 대의 화물수송 트럭이 내뿜는 온실가스와 소음 등으로 인한 환경 훼손을 막기 위해 건설한 터널이다. 스위스 알프스 운송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계획되어 1996년 착공되었다.

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은 이스턴 터널(57.091km)과 웨스턴 터널(56.978km)로 이루어져 있으며, 터널과 진입로 등을 포함한 총길이는 151.8km에 달한다. 14년간 총 인원 35,000명 이상의 인력이 투입된 공사를 통해 2010년 10월 이스턴 터널이, 2011년 3월 웨스턴 터널이 완공되었으며, 현재는 터널에 철로를 놓는 공사를 진행중이다.

2016년까지 철로 공사가 완료되면 시속 250km의 고속열차가 이 터널을 이용하여 스위스 취리히와 이탈리아 밀라노를 오가게 된다. 하루 평균 300편의 열차가 터널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되며, 취리히-밀라노간 운행시간이 기존 3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로 단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의 혼슈와 홋카이도를 연결하는 길이 약 54km의 일본 세이칸터널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 터널로 기록되었다.

고트 하르트베이스 터널 ( GBT , 독일어 : 타드 - Basistunnel , 이탈리아어 : 갤러리아 디 기지 델 산 Gottardo ,로만 슈어 : 터널 다 BASA의 DAL 아들 Gottard가 ) 철도 인 터널 이 관통 알프스 스위스한다. 그것은 2016년 6월 1 일에 오픈, 그리고 풀 서비스 12 월 2016 년 11 일에 시작 57.09 km (35.5 마일)의 경로 길이, 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길고 깊은 교통 터널 알프스 산을 가로 지르는 첫 번째 편평한 저 레벨 루트. 그것은 Gotthard 의 중심에 놓여있다.축과의 접속 칸톤 제 터널 구성 우리당 과 티씨를 애프터, 고 타르 터널 과 타드 도로 터널 .
이 링크는 Erstfeld (Uri)와 Bodio (Ticino)를 연결하고 Sedrun ( Graubünden )을 통과하는 두 개의 단일 트랙 터널 로 구성됩니다 이것은 알프스 (NRLA) 프로젝트를 통한 새로운 철도 링크의 일부이며, 남쪽 의 Ceneri Base Tunnel (2020 년 후반에 개장 예정)과 다른 주요 남북 축의 Lötschberg Base Tunnel도 포함 됩니다. 기존의 고 타드 (Gotthard) 철도 선로 의 대부분을 우회하기 때문에 기본 터널 " 이라고 불립니다 . 1882 년 세인트 고 타드 대산 괴를 가로 지르는 굴곡 산길입니다.이는 GBT가 개통되기 전에 운영되었다. 새로운 기본 터널은 고속철도 및 무거운화물 열차가 사용할 수있는 직접 경로를 구축합니다
타드베이스 터널의 주된 목적은 특히 로테르담 - 바젤 - 제노바 회랑 에서 화물 운송, 특히 트럭에서화물 열차로화물 운송량을 이동 하는 것과 같이 알프스 장벽을 통해 현지 운송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 입니다. 이것은 트럭과 관련된 치명적인 도로 충돌의 위험을 크게 줄이고 대형 트럭으로 인한 환경 피해를 줄 입니다. 터널은 Ticino 주와 스위스의 나머지 지역뿐만 아니라 북유럽과 남부 유럽 사이를 더 빠르게 연결 하여 여객 열차 의 바젤 / 취리히 - 루가노 - 밀라노 여행 시간을 1 시간 단축합니다.루체른 에서 벨린 쪼나 까지 45 분). 
스위스 유권자의 64 %가 1992 년 국민 투표 에서 NRLA 프로젝트를 수락 한 후 1996 년에 예비 준비 작업과 탐사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공식 건설 시작은 1999 년 11 월 4 일 Amsteg 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동부 터널에서 드릴링 작업은 스위스 TV에 생중계 획기적인 의식 15 년 10 월 2010 년 완성되었다. 23 2011 년 3 월에 서쪽 터널에서 터널의 생성자, AlpTransit 타드 AG는, 원래 손 계획 2016 년 12 월 에 스위스 연방 철도 (SBB CFF FFS) 터널을 거쳐 운전 상태에 있음 그러나 2014 년 2 월 4 일 AlpTransit 홈페이지에서 850 일간의 카운트 다운 일정이 시작됨에 따라 2016 년 6 월 5 일로 이전되었습니다. 1998 년 현재 프로젝트의 총 예상 비용은 632.32 억 CHF 이다. 2015 년 12 월 현재 최종 비용은 95.5 억 스위스 프랑으로 예상됩니다. 건설 중 9 명이 사망했다.

13 세기 이래로 2,106m 높이의 Gotthard Pass는 북부에서 남부 유럽까지 중요한 무역 경로였습니다. 접근 경로를 통제함으로써 스위스 남부 연합 (Swiss Confederacy)이 생겨 났습니다 . 고 타드 패스 (Gotthard Pass)는 루체른 호수 와 마기 오레 호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항해 할 수있는 라인 과  사이의 가장 짧은 링크 입니다. 그 패스의 트래버스에는 며칠이 걸렸습니다.  북쪽 - 남쪽 축 (예 : Simplon , San Bernardino , Brenner ) 에서 알프스를 통과하는 다른 경로들 , 즉 1822 년에 처음으로 Saint-Gotthard Pass 도로가 수세기 동안 굴레를 쓴 경로 로 설립되었습니다 1842 년 이후로 Gotthard Post 의 일일 코스 ( 열 좌석이 5 마리씩 달린 역마차)는 Como 에서 Flüelen 까지 약 23 시간이 걸렸습니다 .

1882 년,의 취임식에 타드 철도 터널 사이의 여행 시간 알트 도프와 Biasca의는 종종 거대한에서 하룻밤 숙박을 동반하지만, 시간 만에 극적으로 감소했다 지느러미 드 siècle Biasca의 예를 들면 : - 호텔. 그 당시에는 여전히 모험이었고 매우 부자들에게만 적당했습니다.
1921 년 가을에 마지막 역마차가 통과했습니다.
1922 년 철도 노선이 전산화되면 여행 시간이 훨씬 단축되었습니다. 증기 기관차의 보일러 보충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전기 엔진의 기술적 장점과 향후 기술 향상이있었습니다.
첫 번째 자동차가 1895 년에이 통과를 통과했다고합니다. 1901 년에 처음으로 통과 한 것으로 보아 여전히 1 일 이상 걸렸습니다.
1924 년부터 철도 터널을 통한 열차 운행이 시작되었습니다. Göschenen과 Andermatt , Schöllenen 계곡 , 특히 Tremola 사이의 구간 은 패스의 절정에서부터 패스 의 남쪽 측면에있는 Airolo 까지 무수한 머리 핀 회전과 뱀 모양의 곡선을 그리며 고도 1,000m (3,300ft)를 떨어 뜨 렸습니다. 자동차에 대한 큰 도전.

1953 년 이후, 통과 도로는 Gotthard 길을 따라 몇 구간에서 순차적으로 개선되고 확장되었으며, 1977 년 Tremola를 완전히 우회하는 고속도로가 개통 됨으로써 마침내 끝났습니다.

Gotthard Road 터널 이 개설 되고 Urner Reusstal을 통해 A2 고속도로의 북부가 완성 되고 1980 년에 바젤에서 Gotthard Road 터널로 이어지는 터널 이 추가로 추가되어 교통 시간이 크게 감소 되었습니다. 1986 년에 완성 된 발레 레벤 티나 (Valle Leventina) 의 A2 고속도로 , 아이 롤로에서 벨린 고나 (Bellinzona ) 로 이어지는 거대한 계곡 1983 년 벨린 조나 (Bellinzona)와 루가노 (Lugano) 사이 의 몬테 세라 네 (Monte Ceneri)의 상 승은 마침내 바젤 의 스위스 북부 국경 Chiasso 의 남쪽 국경까지, 북 독일 함부르크 에서부터 남 이탈리아 시실리 까지 의 가장 짧은 고속도로 노선 으로 인해 철도 노선의 경쟁력이 떨어졌습니다. 
오늘날, 철도 및 도로 노선은 남북 축에서 알프스를 통과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 중 하나입니다.
자동 터널이 개통 된 1980 년 교통량은 10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기존 터널은 2013 년까지 가동 될 예정이었습니다.  국민 투표에 이어 두 번째 터널이 첫 번째 터널 옆에 건설 될 것입니다. 건설은 2020 년에 시작하여 2027 년에 끝난다.

1947 년 초 에두아르 그루 너 (Eduard Gruner ) 엔지니어 는 Amsteg 에서 Biasca까지 철도 및 도로 의 2 층짜리 기본 터널을 상상했으며 , Sedrun에서 멈추고 스위스 알프스를 통과하는 빠르고 평평한 통로를 제공했습니다 Gruner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GBT는 Gotthard Massif를 통해 오래된 터널 아래 약 600m (2,000ft)를 자릅니다 

역사적인 트랙상의 타드 철도은 1,300까지 열차  t (1400 짧은 톤 , 1300 긴 t ) 기관차 2 또는 1,500 t까지 사용하는 경우, 추가로 (1700 짧은 톤 1500 긴 톤) 뱅크 엔진기차 끝에서 좁은 산 골짜기를 통과하고 해발 1,151m (3,776 피트) 높이의 오래된 터널 포털까지 올라가는 나선형 터널 을 통과 할 수 있습니다. GBT는 정식 서비스이므로 표준화물 열차는 최대 3,600 톤 (4,000 단 톤, 3,500 톤)이 자연 장벽을 통과 할 수 있습니다.
1992 년 9 월 NRLA 제안을 수락함으로써 스위스의 유권자들은 국제 트럭 운송량이 계속 증가함에 따라 운송 정책을 전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94 년 2 월 의 알프스 산 보호법 (Alpine Protection Act )  은 트럭 수송에서 열차 수송까지 가능한 한 많은 톤수의 이동을 요구한다.
두 법률의 목적은에서 스위스를 통해 트럭, 트레일러 및화물 컨테이너를 수송하는 것입니다 바젤 에 아소 하고, 철도로 넘어하면 남용 길을 완화하고, 그 타드 특히, 사용하여 복합화물 수송 및 고속도로 롤링 ( 전체 트럭이 운송되는 곳). GBT는 실질적으로 두 법의 요구 사항에 기여하며 , 라인강을 통해 북해 (특히 로테르담)에서 지중해 (특히 제노아) 항구로의 직접적인 편평한 항로를 가능하게합니다 .
여객 열차는 GBT를 통해 최대 250km / h (155mph)까지 이동할 수 있으며, 현재 트랜스 알프스 열차 여행의 소요 시간은 약 40 분, 인접한 Zimmerberg 및 Ceneri Base 터널 이 완료되면 1 시간 단축 됩니다. 이것은 특히 알프스 산맥과 고 타드 (Gotthard)에 의해 다른 나라와 분리 된 티치노 (Ticino)의 고립 된 지역에서 혁명으로 보입니다. Bellinzona 와 Lugano (각각 "Ticino의 문"및 "Ticino의 Terrace"라고 명명 된) 의 두 역은 다른 개선 사항들 가운데 GBT가 열리기 위해 전적으로 개조되었습니다.
Gotthard Base Tunnel은 2016 년 현재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 터널입니다 . Gotthard 터널 (15km, 1882)과 심플 론 터널 (19.8km, 1905) 이후에이 제목을 쓴 세 번째 스위스 터널 입니다. 고 타드 터널 (Gotthard Tunnel)과 고 타드로드 터널 (Gotthard Road Tunnel)을 따라 고 타드 (Gotthard) 아래 세워진 세 번째 터널입니다.

설명 

고 타드베이스 터널은 57.09 킬로미터 (35.47 마일)의 길이와 총 151.84 킬로미터 (94.3 마일)의 터널, 샤프트 및 통로,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 터널이며 , 은 측지 거리 가 두 포털간에 55.782 킬로미터 (34.661 마일). 또한, 관통 제 편평 경로이다 알프스 해발 549m (1천8백1피트)의 최대 높이, 또는 임의의 다른 주요 산맥, 에 상당 베른 . 그것은 2,450m (8천40피트)의 최대 깊이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철도 터널, 의 필적 깊은 광산지구에. 환기가 없으면 산 내부의 온도가 46 ° C (115 ° F)에 도달합니다. 

타드 아래를 통과하는 다른 두 개의 터널과 마찬가지로, 고트 하르트베이스 터널은 가로 지르는 두 개의 알파인 계곡에 연결 생고 타르 산맥을 다음 Urner Reusstal 에서 우리 주 강 흐르는, 로이스 (Reuss)을 , 그리고 발레 라벤 , 가장 큰 계곡 구획의 티씨 강되는, 티씨가 흐른다. 

다른 터널과 달리 Gotthard Base Tunnel은 알프스, Glarus 알프스 , Saint-Gotthard Massif 의 주요한 하위 계단이되는 몇 개의 별개의 산 대산 괴 아래로 지나가고 Anterior Rhine 계곡 Surselva 계곡Graubünden 의 주에서 , 그들 사이. 터널은 Chrüzlistock (2,709m (8,888ft))과 Piz Vatgira ( Lukmanier Pass 근처 2,983m (9,787ft ))보다 2km 이상 떨어져이 두 범위를 통과 합니다. Uri와 Ticino의 구획은 각각 스위스의 독일어 및 이탈리아어 사용 영역의 일부이지만 Surselva는 주로 Romansh -speaking 입니다.

알프스 산맥은 유럽 ​​기후 와 특히 스위스의 기후에 강하게 영향을 미치며 Ticinese 건축가 마리오 보타 (Mario Botta)가 묘사 한 GBT의 각 끝에서 실질적으로 다른 기상 조건이있을 수 있습니다 . "Gotthard의 빛 변화 : 지중해의 빛 변화 바다는 대륙과 바다, 중앙의 땅,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유럽의 바다와는 다릅니다. " 평균적으로 온도는 북쪽보다 남쪽에서 2 ~ 3 ° C (4-5 ° F) 높지만 때로는 온도 차이가 10 ° C (18 ° F)를 훨씬 상회합니다. 

북쪽 입구는에 루스 펠트 (Erstfeld) 시정촌 북쪽의 로우스 (Reuss) 동쪽 460m 높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터널은 Bälmeten 과 Chli Windgällen 의 서쪽 경사면에 침투 하여 Maderanertal의 개울 인 Chärstelenbach 계곡을지나 갑니다 . 
거기에서, 터널은 Witenalpstock 아래에있는 Etzli 의 작은 계곡과 평행을 이룬다 . Reuss와 Anterior 라인 사이의 유역 인 Glarus 알프스의 주요 볏은 Chrüzlistock 아래로 건넜다.이 볏은이 지점에서 약 2,700 미터 (8,900 피트)의 고도를가집니다. 

산등성이와 국경에서, 터널은 세드 룬 (Sedrun) 과 전방 라인 (Line) 아래로 지나기 전에 스트렘 강 (Val Strem)의 작은 계곡과 평행을 이룬다 계곡의 바닥에서, 고삐 다 Nalps (발 Nalps)과의 계곡쪽으로 터널 진행의 동쪽 통과 라이 다 Nalps을 의 서쪽 정상 아래의 Gannaretsch 범위를 통과하기 전에, 피즈 Vatgira (2,981m (9천7백80피트)) . 이것은 터널의 가장 깊은 지점이며, 그 위에 2,450 미터 (8,040 피트)의 암석 층이 있습니다. 터널은 라인 다 메델 (Val Medel) 계곡과 라이 다 손티 마리아 (Lai da Sontga Maria ) 서쪽으로 지나갑니다.

수 킬로미터 후에, 터널은 Pizzo dell'Uomo ( 2,525 미터 (8,284 피트))의 북쪽에있는 Anterior 라인과 Ticino 사이의 유역을 횡단합니다 이 점 은 알프스 의 주 체인에 해당 하며, 라인 과  사이의 주요 배수 구분 입니다. 
몇 킬로미터를 들어, 터널은 두 가지 서쪽 지류 아래를 통과 Brenno 에서 발레 산타 마리아 마지막 범위의 서쪽 교차하기 전에 파 Predèlp 의 (약 2,500m (8,200피트))과 동쪽 Faido을 . 그 다음 큰 Valle Leventina 의 동쪽 경사면을 따라갑니다.,에서 남쪽 포털 약 18 킬로미터 (11 마일)의 티치노 계곡, 보디 오 전 312m (1,024피트), 불과 3 킬로미터 (1.9 마일)의 고도에서, Biasca의 Brenno는 티치노와 수렴,

포털에 가장 가까운 기차역은 Altdorf 와 Biasca 입니다. 베이스 라인 (2016/17 현재)에서 처음으로 정기적으로 제공되는 철도역은 Arth-Goldau ( Schwyz ), 루체른 과 취리히 , Bellinzona ( "Gate of Ticino") 링크가있는 철도 노드이며 링크 가 있습니다. 
로카르노 , Luino 와 루가노 (비아 몬테 Ceneri 철도 터널). Arth-Goldau에서 Bellinzona까지의 여행은 1 시간을 넘지 않습니다. 
Altdorf의 역은 2021 년까지 제공 될 예정입니다. Biasca의 사용법에 대한 이야기도있었습니다. Altdorf와 Biasca 사이의 여행은 25 분 미만으로 지속됩니다.

건설
AlpTransit Gotthard AG 는 건설을 담당했습니다. 스위스 연방 철도 (Swiss Federal Railways, SBB CFF FFS) 의 전액 출자 자회사입니다 .
건설 시간을 반으로 줄이기 위해 Erstfeld, Amsteg, Sedrun, Faido 등 4 개의 다른 부지에서 건설 공사가 동시에 시작될 수 있도록 4 개의 출입 터널이 건설되었습니다. Bodio에서 5 위가 나중에 추가되었습니다. 두 개의 터널은 갤러리를 연결하여 약 325m (1,066ft)마다 연결됩니다. 열차는 Sedrun 과 Faido 에있는 2 개의 다기능 역의 터널 사이를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이 스테이션은 환기 설비 및 기술 인프라를 갖추고 비상 정지 및 피난 경로로 사용됩니다. 
세드 룬 (Sedrun) 역까지의 접근은 세드 룬 (Sedrun) 근처의 계곡 바닥에서 1km (0.6 마일) 정도의 길이의 접근 터널을 이용한다. 액세스 터널의 끝에서 두 개의 수직 축이 기본 터널 수준까지 800m (2,625ft)를 안내합니다. 이 부지에있는 Porta Alpina ( Romansh 의 "Alpine Gate") 라는 철도역을 건설하기위한 제안 이 평가되었지만, 2007 년에 프로젝트가 보류되었고 2012 년에 연방 정부가 비경제로 결정을 취소했습니다. 
동관의 마지막 돌파구는 2010 년 10 월 15 일 14:17 +02 : 00에있었습니다. 서쪽 관의 마지막 돌파구가 2011 년 3 월 23 일 12:20에 일어났습니다. 
2013 년 8 월 30 일, 디젤 기차, 버스 및 도보로 6 시간 만에 Bodio에서 Erstfeld까지 처음으로 터널을 통과했습니다. 
2013 년 12 월 16 일 Faido와 Bodio 사이의 서쪽 관의 남쪽 부분에서 13 킬로미터 (8.1 마일) 뻗기에서 작동 테스트 단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목적은 인프라와 모든 부수적 인 시스템을 테스트하는 것이 었습니다. 
2014 년 10 월 31 일에 철도 트랙 설치가 완료되었습니다. 금 침대 트랙의 맨 마지막 부분에 진행이 이정표를 표시하기 위해 이벤트 기간 동안 설치되었다. 
2015 년 10 월 1 일, 연방 교통국 (Federal Office of Transport)의 허가를 받아 GBT의 전체 길이에 대한 첫 번째 테스트가 꾸준히 가속화되었습니다. 11 월 8 일 열차는 275km / h의 최고 속도에 도달했습니다.


작업 할당 

계약은 섹션에서 수여되었습니다 :
  • Erstfeld ( Erstfeld 에서 Amsteg까지 7.7km (4.8 마일) 구간 ), 두 개의 터널 보링 머신 (TBM)이 두 개의 튜브를 지루하게합니다. Erstfeld와 Amsteg 사이의 동쪽 관의 돌파구는 2009 년 6 월 15 일에 열렸습니다. 포털 지역은 지표 채광되었습니다 .
  • Amsteg (Amsteg에서 Sedrun 북쪽으로 11.3km (7.0 마일) 구간 ), ARGE AGN ( Strabag 및 Züblin Murer)은이 부문에서 업무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2009년 12월 9에서 Amsteg 섹션은 공식적으로, 피팅 아웃의 소유자에게 전달되었다. 2010 년 초에 완료 토목, 건축, 콘크리트 라이닝 작업과 함께 
  • Transco ( Bilfinger SE , Implenia , Frutiger 및 Impresa Pizzarotti )가 수행 한 작업과 함께 Sedrun (Sedrun의 북쪽과 남쪽에 8.6 km (5.3 mi) 동관 및 8.7 km  서쪽 관의 마지막 돌파구는 2011 년 3 월에 일어났다.  
  • Amsteg에서 Sedrun 다기능 역 (북쪽)까지의 북쪽 방향 관은 2011 년 9 월 15 일에 철도 시스템 계약자 Transtec Gotthard에게 인도되었으며, 건설 일정에 명시된 날짜. 
  • Saidrun 남쪽에서 Faido까지의 구간에서 Faido (13.4km (8.3 마일) 동관과 13.6km 서쪽 관), Consorzio TAT (Alpine Mayreder Bau, CSC Impresa costruzioni, Hochtief 및 Implenia 및 Impregilo ) 와 함께 . 
  • Bodio (East 동쪽 15.9km, Bodio에서 Fighto에서 West tube 15.6km), Consorzio TAT (Alpine Mayreder Bau, CSC Impresa costruzioni, Hochtief, Implenia 및 Impregilo)가 수행 한 작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46] 토목 공학 건축, 콘크리트 및 안대기 일은 2010 년 초에 완료되었다 .

건설 중 사망 

9 명의 노동자가 건설 중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Amsteg 단면도에서 1 개, Sedrun 단면도에서 2 개, 그리고 최남단 Faido 및 Bodio 단면도에서 각각 3 개.  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 2000 년 6 월 8 일, 터널 공사의 첫 희생자 인 독일 출신의 노동자는 700 미터 아래로 떨어지는 지루한 막대기에 맞았다. 
  • 2002 년 3 월 12 일 남아공 출신의 노동자가 굴착 자재로 묻혔다. 
  • 2003 년 4 월 3 일, 독일 노동자가 암석에 부딪쳤다. 
  • 2003 년 9 월 11 일 오스트리아의 한 노동자가 쓰러진 케이블 드럼으로 인해 부서졌다. 
  • 2005 년 1 월 21 일 이탈리아와 스위스의 한 노동자가 충돌하는 광산 열차에 충돌했습니다. 
  • 2006 년 11 월 23 일, 독일 노동자가 광산 열차에 의해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 2010 년 6 월 24 일, 독일 노동자가 검사 열차에서 퇴출되었습니다. 
  • 2012 년 7 월 16 일 이탈리아 노동자가 비계에서 떨어졌습니다


정치

NRLA 의 핵심 요소 인 GBT의 실현 은 또한 스위스 의 직접 민주주의 의 전형적 사례입니다 이 메가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정치 기관 들은 다음을 포함하여 많은 의회 세션과 몇 가지 주요 투표 를 극복해야했다 
  • 1992 년 9 월 27 일, NRLA 제안 ( 의무 투표 ) : 연방 의회 의 최종 제안은 63.6 %의 찬성 투표로 통과되었다. (1 + 2 / 2 칸톤 감소, 투표율 45.9 %) 
  • 2 월 20 일 1994 년 알프스 이니셔티브 ( 연방 인기 이니셔티브 ) : 트래픽의 부정적인 영향에서 알파인 환경을 보호하기위한 목적으로 몇 개인 사람에 의해 시작이 받아 들여졌다  51.9 %로, 투표율 41 7 개 (州) 감소 표 (예 %).  이 계획은, 어떤 대안없이 주도권을 감소 12 년 2 월 1992 년 연방 의회에 의해 권고에도 불구하고 받아 들여졌다  18에서 의회 추천 (양원) 1993년 6월에도 불구하고 하락 이니셔티브. 
  • 1998 년 11 월 29 일 대중 교통 자금 지원 ( 필수 국민 투표 ) : 여러 대중 교통 프로젝트에 대한 300 억 스위스 프랑의 총 예산은 63.5 %의 찬성 투표 (1 + 3 / 2 칸톤 감소, 투표율 38.3 %)에 의해 수용되었습니다. "NRLA는 136 억 스위스 프랑을 받는다" 
  • 2000 년 5 월 21 일, 양자 간 EU 협정 / 40 톤 트럭 / 중 교통료 ( 선택적인 국민 투표 ) : 유럽 연합 (EU)과의 여러 양자 협정의 전체 패키지의 일환으로 스위스는 67.2 %의 찬성 투표 (2 칸톤 감소, 투표율 48.3 %) 28 톤 내지 40 톤의 트럭 상한의 시프트하지만 EU도 NRLA 자금을 사용하는 새로운 무거운 트래픽 요금에 동의 동시에 
  • 2003년 12월 17일는 Ceneri 자료 터널 (국회)의 논쟁 자금 Ceneri 자료 터널은 마침내에만 의회의 승인에 의해 통과되었다; 선택적인 국민 투표의 가능성은 정치 집단이나 대중에 의해 제기되지 않았다. 당시 교통부 장관 모리츠 루엔 버거 (Moritz Leuenberger )는 "철도를 [고 타드 축]으로 바젤과 치아 소 간의 평행선으로 만드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6 년 Gotthard 주변에서 축제 및 특별 전시회를 비롯한 여러 행사가 개최되어 6 월 초 취임식을 마쳤으며 Gottardo 2016으로 명명 되었습니다 . 공공 기관은 행사에 참여 : 스위스 포스트는 특별한 발행 된 우표 타드베이스 터널을 기념, 와 Swissmint은 오프닝에 전념 금은 동전을 발행했다.
2016년 5월에 31 일 취임식 전에 건설 중 사망 구명이있는 북쪽 포털에서 행사에 기념했다 Erstfeld 카톨릭에 의해 주도되었다 교구 신부 일반의의 교구 신부 열린 우리당의 복음주의 - 개혁 교회 하는 유태인 랍비, 무슬림 이맘. 독일에서 4 명, 이탈리아에서 3 명,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오스트리아에서 각각 한 명의 청동 기념 상패가 AlpTransit Gotthard AG CEO 인 Renzo Simoni에 의해 공개되었습니다. 광부의 후원자 인 세인트 바바라에 있는 카톨릭 신전 은 터널 안에 기념물로 서있다.

터널 공식적으로 6월 2016 년 1 일 취임했다. Erstfeld에서 북쪽 입구에서, 연맹의 대통령 요한 슈나이더 아만는 동안, "스위스 그러나 동등 우리의 이웃과 대륙의 나머지 부분에 대한 거대한 단계"의 이야기 라이브 릴레이 (live relay) 는 Bodio 의 남쪽 입구에있는 교통부 장관 Doris Leuthard 에 의해 연설 을했다 
corpore에서 연방 의회, 이웃 국가와 유럽 국가에서 교통 장관에서 국가와 정부의 머리를 포함 Erstfeld에서 조립 손님, 오프닝 쇼에 참석하면서 첫 번째 여행은 무승부로 티켓을 수상했다. 
스위스 시민의 수백을 수행 크레을 델 Gottardo 에 의해 볼커 헤세고 타드 (Gotthard) 주변의 알파인 문화와 신화를 축하하는 600 명의 무용수, 곡예가, 가수 및 음악가가 등장 합니다 . 다음 주말에는 10 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참석 한 인기있는 축제와 특별전이 열렸습니다.
8 월 2 일부터 2016 년 11 월 27 일까지 스위스 연방 철도 는 일반인에게 공개 된 "Gottardino"터널을 통해 특수 열차 운행을 실시했습니다. Flüelen 기차역 에서 Biasca 기차역까지 그리고  으로 1 일 1 회 운행 되었습니다 열차는 터널 내부에서 멈추게되어 승객 들은 보통 Sedrun 의 지하 다기능 역 내 에서 비상 사태시에만 사용되는 전시회를 방문 할 수있게 되었습니다.

2,016 동안 GBT 광범위하게 시험 하였다.  받으며 12 월 11 일 일정한 스케줄로의 통합 전의. 12 월 5 일에, 스위스 연방 철도 는 새로운 기본선을 사용하기 위하여 연방 수송 사무실에게서 허가를 수여되었다. 
InterCity 열차 ( ICN)와 EuroCity 열차 ( EC ) 에는 기본 터널이 사용되지만, 정상 열차는 지역 열차에 계속 사용됩니다.  2019 년 이후 Gotthard 축은 SBB 함대 의 고속 열차 및 미래 기함 인 Stadler EC250 (Giruno)에 의해 지원 될 것 입니다.
Amsteg 포털에서 가이드 투어는 고 타드베이스 터널 단지 내에 구성되어 있습니다. 창이 열리 며 방문객들은 터널에서 열차 운행을 볼 수 있다.




























백두산.白頭山. 1

백두산.山.

백두산은 지금부터 약 100만 년 전에 화산 작용으로 땅속 깊은 곳에서 용암이 솟아나와 이루어진 화산이다. 본래 이 지역은 화강편마암과 화강암으로 된 흔히 볼 수 있는 산지였으나 화산이 용암을 분출했을 때 처음에는 현무암 용암이 솟구쳐나와 수많은 골짜기들을 메우면서 넓게 퍼져서 현무암 지대를 이루어놓았다.

천지를 중심으로 병사봉(2744미터)을 비롯하여 망천후(2712미터), 백암봉(2741미터), 차일봉(2596미터), 백운봉(2691미터), 청석봉(2662미터) 등 해발 2500미터 이상의 날카로운 산봉우리들이 수없이 솟아 있다.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중국의 오악()에 비교하여, 동악인 태산()의 웅장함도 없고, 서악인 화산()의 준험함도 없고, 남악인 형산()의 수려함도 없고, 북악인 항산()의 그윽함도 없고, 중악인 숭산()의 신기함도 없으나, 특이한 분화구를 가진 백두산의 수직적인 자연경관과 생태체계는 오악도 따를 수 없는 세계적인 영산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높이 2,155m에 바다처럼 깊고도 넓은 천지를 가진 산은 이 지구상에 오로지 백두산뿐이며 물이 흘러 들어오지도 않는데, 주야로 넘쳐 거대한 비룡폭포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신비로운 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근래 미국·캐나다·일본·서독 등에서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하여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천지 주변은 고산 툰드라식생대 지역이며 호수의 물은 10월 중순부터 다음해 6월 중순까지 결빙된다.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고 여름에는 비오는 날이 많다. 천지 호수 관광과 천지 12경은 천지 호반의 기암, 수면, 평지, 바위 등 12개소가 있다.
천지 주변에는 화구벽이 호수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해발 2,500m이상의 화산봉우리가 16개 있으며, 이들 외륜산을 백두연봉이라 한다. 백두산과 천지를 등반하여 눈 아래 펼쳐진 자연경관을 바라보면 대자연의 웅장함과 신비로움에 감탄하게 된다. 백두산은 세계에서 으뜸가는 자연경승지이며, 옛날부터 우리 민족이 숭상하는 선산이며 우리 국민들이 가고 싶어하는 관광목적지이다.
백두산 용암고원 주위에는 많은 소규모 화산지대가 있으며 소천지를 비롯하여, 원지(), 왕지()와 같은 소규모 호수가 산재한다. 이러한 호수는 철새들의 서식처이고 자연경관이 수려하다. 소천지는 백두산 북부 능선 사스레나무림대에 위치한 호수로서 둘레 260m, 면적 5,300제곱미터, 평균수심 10m 이고, 호수 주위는 울창한 삼림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백두산 북측사면 악화유곡 북쪽 4km 지점에 위치한 지하삼림은 침식작용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계곡의 깊이는 80~90m이며, 계곡 아래에는 침엽수림이 밀집서식하고 있어 극지삼림을 형성하였다.
백두산 서측사면에 위치한 금강대협곡의 길이는 5km이며, 깊이가 100m~200m이고 폭은 200m-300m이다. 이 협곡의 양쪽에는 화산재가 흘러내려 침식에 의해 형성된 기둥 모양의 형상들이 있어 독특한 경관을 연출하고 있으며, 협곡 양변은 모두 수직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삼림이 울창하다.

백두산의 산마루는 급한 비탈을 이루면서 급격히 높아졌으나 그 기슭에는 넓고 평탄한 용암 지대가 펼쳐진다. 이렇게 큰 현무암 지대는 세계적으로도 그리 많지 않다. 백두산 둘레에는 대연지봉, 소백산, 무두봉, 대로은산, 청봉 등 백두산의 기생화산들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길주목. ‘경원도호부’조에 기록된 백두산에 대한 내용이다. 우리 민족의 조종산(祖宗山)이자 성산(聖山)이라 불린 백두산이 역사 속에는 어떻게 남아 있을까? 『삼국유사』를 보면 백두산의 옛 이름은 개마산(蓋馬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개마’는 천마(天馬)를 가리킨다. 『산해경』에는 백두산이 불함산(不咸山)으로 실려 있다. “넓은 평야 가운데 산이 있으니 ‘불함’이라 이름 한다. 숙신 땅에 속한다”라고 기록된 불함을 두고 육당 최남선은 ‘붉은’의 역음(譯音)으로 천주, 즉 신명(神明)을 뜻한다고 하였다.

김정호의 『대동여지전도』 서문에는 “백두산은 조선 산맥의 조산이니 3층으로 된 높이가 200리요, 가로로 퍼져 1000리에 걸쳐 있고, 그 정수리에 못이 있어 달문이라 일컫는데 둘레가 800리라, 남쪽으로 흘러 압록강이 되고 동쪽으로는 두만강으로 나뉜다. 그 분수령에서 구불거려서는 연지봉, 소백산, 설한등령, 철령을 일구고, 그 한 갈래가 동남으로 뻗어 도봉산, 삼각산이 되었다”라고 실려 있다.

『택리지』에 실린 백두산을 보자.
백두산은 여진(女眞)과 조선의 경계에 있으며 온 나라의 지붕 역할을 하고 있다. 산 위에는 큰 못이 있는데 둘레가 800리가 되고, 그 못에서 서쪽으로 흐른 물이 압록강이 되고, 동쪽으로 흐른 물이 두만강이 되었으며, 북쪽으로 흐른 물은 혼동강(混同江)인데 두만강과 압록강 안쪽이 곧 우리나라다.

조선 후기 조선의 국토 상황을 기록한 『만기요람(萬機要覽)』(서영보, 심상규 등이 1808년 왕명으로 지은 책)에 보면 “백두산이 서북쪽에서 시작하여 황막한 들로 내려와 솟아올랐는데, 몇천만 길이 되는지 알 수가 없다. 꼭대기의 못은 사람의 숨구멍 같고 빛깔이 검어서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다. 때는 첫여름인데도 얼음과 눈이 쌓였고 바라보면 아득한 은바다를 이루었다”라고 하였다.

다음 알칼리조면암과 흐름무늬암 등의 용암이 흘러나왔는데 그 흐름이 약해져 멀리 흘러내리지 못하고 식어 덧쌓이면서 오늘날과 같은 백두산의 형태를 이루었다. 백두산 꼭대기 가운데 분화구에 물이 고여 생긴 자연 호수를 천지(天池)라고 부른다. 천지는 절벽으로 된 화구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백두산의 기후는 찬 대륙성 기후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백두산 정상 부근에서 봄철이 시작되는 시기는 5월 말이며, 5월 하순에야 0도가 된다. 이때부터 50일이 지난 7월 중순에야 영상 10도가 된다. 한여름에도 산정()의 기온은 영상 20도를 넘지 못한다. 하루 평균 영상 15~22도 이상 되는 날이 3~4일인데 이는 7월 하순에서 8월 상순 사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1500밀리미터로 우리나라에서 한 해 강수량이 제일 많은 지역에 속한다. 여름철 장마 기간에 많은 비가 쏟아지는 것이 특징이다. 소나기는 6월에 집중되며 우박은 6월과 9월에 내린다. 

이곳에 눈이 내리는 기간은 9월 10일에서 이듬해 6월 10일경까지인데, 눈이 쌓이는 기간이 257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 천지 호반 그늘진 골짜기들에는 가장 더운 7월 하순에도 여러 해 묵은 눈이 0.5~1.5미터 두께로 쌓여 있고 그 밑으로 굳은 얼음들이 깔려 있다.

여름철에는 안개가 많이 끼고 그 지속 시간이 길고 바람이 세게 부는 것이 특징이다. 백두산 마루에는 낮과 밤 할 것 없이 주로 겨울철에는 북서풍이, 여름철에는 남서풍이 분다. 평균 바람 속도는 초당 6.3미터, 최대 속도는 초당 59.8미터다. 

이곳의 날씨는 신기할 정도로 변화가 극심하다. 난데없이 구름이 몰려와 비가 억수로 쏟아지다가도 갑자기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기도 하며 다시 순식간에 비구름에 휩싸이기도 한다. 때로는 구름이 산꼭대기까지 닿지 못하고 산중턱에서 빗방울이 되어 떨어지거나, 산중턱에서 우레가 울리고 번개가 치며 벼락이 내려 바위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몇 년 전 백두산 천지를 방문한 필자에게 그곳 안내원이 “백두산 천지는 조선 처녀의 마음을 닮아 하루에도 열두 번씩이나 변덕을 부려 천지를 보기가 쉽지 않습네다. 특히 백두산 천지는 해돋이가 좋은데 심장을 달구고 손과 발을 얼구어봐야 그 진면목을 느낄 수 있습네다”라고 말해준 기억이 난다.

천지를 뒤덮었던 짙은 구름이 불현듯 한쪽으로 밀리면 햇빛에 반짝이는 백두산 봉우리들이 맑은 천지 물에 그대로 찬란하게 비치는데, 다른 어떤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운 절경이다. 

산마루에 서린 새벽안개가 산기슭으로 내려와 어둠을 거두어가고 눈부신 햇빛이 부챗살처럼 퍼지기 시작할 때면 천지의 모든 것이 영롱하게 천만 가지 빛을 발하는데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연상시킨다.

정상의 천지는 넓이 9165제곱킬로미터, 둘레 1만 4399킬로미터, 평균 수심 213.3미터, 최대 수심 384.05미터, 물의 부피 19억 5500만 세제곱미터, 수면의 해발 높이 2190미터다. 천지의 물 온도는 7월의 경우 수면이 9.4도, 연중 물 아래쪽은 4도다. 빗물과 눈 녹은 물로 채워지는 천지의 물은 짙은 푸른색이며 대단히 맑다. 

물속에 하등식물은 조금 있으나 물고기는 없었는데 김일성의 지시로 송어를 양식하고 있다. 북측 안내원의 말에 따르면 1미터가 넘는 송어가 잡히기도 한다. 따라서 가끔 천지 속의 괴물 출현 보도는 믿기 어려운 사실이다. 천지의 북동쪽 호안에는 온천이 있다. 백두산의 남서쪽 비탈면에서 압록강이, 남동쪽 비탈면에서 두만강이 시작된다. 또한 북쪽으로 천지의 물이 흘러나가 송화강이 된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조종산이자 성산이라 불린다. 지금부터 약 100만 년 전에 화산 작용으로 땅속 깊은 곳에서 용암이 솟아나와 이루어졌다.

우리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에는 수많은 신화와 전설이 서려 있는데, 삼지연 부근에 단군이 처음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터전을 잡았던 신시(), 즉 천평(천리천평())이 있다고 한다. ‘하늘처럼 높은 곳에 있는 광활한 땅’이라는 뜻을 지닌 천리천평이 육당 최남선의 『백두산근참기』에는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백두산이 오지랖을 벌리고 북포태산이 오른쪽 깃이 되고 증산이 왼쪽 깃이 된다. 둘레 몇백, 몇천 리가 실상 커다란 한 벌판을 이루어, 백두산으로 하여금 높음과 한가지로 크고 넓음이 임자가 되게 하니, 이것이 예로부터 천평이라 하여 신비로운 곳으로 이름 높은 곳이다. 어떤 책에 말한 대로 백두산 둘레의 기슭을 다 천평이라 한다면 시방 서간도, 북간도도 다 여기 들 것이니 그 넓이를 다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말처럼 삼지연에서 백두산으로 오르는 길은 끝없이 펼쳐진 잎갈나무 숲으로 장관이다. 그리고 잎갈나무 숲이 끝나면서 나무 한 그루 없는 광활한 벌판이 펼쳐지는데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서늘해지면서 후련해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천생 나라 하나 만들게 생긴 땅이다”, “그 벌 하나만 해도 나라 하나를 만들기에는 너무 넓겠다”라는 말을 들었던 곳이 천리천평이다.

허항령(, 함경남도 보천군과 함경북도 무산군ㆍ삼장면 경계에 있는 고개)에 올라서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가 없는 천리천평이 끝도 없이 펼쳐지는데 하루 종일 가도 막막하기 그지없는 그 평원도 전해내려오는 천평의 한 자락 귀퉁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조선 선조 때인 1597년 8월 26일에는 “백두산 부근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묽은 흙불이 솟아올랐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1668년과 1702년에는 정상인 천지 부근에서 지진이 일어났으며 그 뒤에도 여러 사건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 백두산 주변에서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분쟁 사건도 자주 일어났다.

1685년(숙종 11)에는 백두산 부근을 답사하던 청나라 관원들이 압록강 건너 삼도구()에서 조선의 산삼을 캐는 사람들의 습격을 받아 외교 문제가 일어났으며 1690년과 1704년, 1710년에도 두만강과 압록강 건너에서 우리나라 사람에게 중국인이 살해된 일이 생겨 청나라 정부의 항의가 있었다. 

1711년에는 청나라의 오라총관()인 목극등이 압록강 대안 현지에 와서 조선의 참핵사(使, 죄인을 공동 심사하는 사절)와 함께 범법 월경 현장을 검핵()한 일도 있었다. 그런데 이듬해에는 청나라에서 이러한 월경 사건을 문제 삼아 백두산에 올라가 국경을 정하려는 계획이 진행되었다. 거기에는 청나라 왕실의 발상지로 여기는 백두산을 청나라의 영역 안에 넣으려는 저의가 깔려 있었다.

청나라에서는 그해 2월에 목극등을 장백산(백두산)에 보내 변경을 사정()하려 하니 협조해달라는 공문을 조선에 보냈으며, 4월에는 목극등 일행이 두도구()에서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와 후주()에 도착하였다. 
청국의 공문을 받은 조선은 접반사(使, 외국 대표를 맞는 조정의 대표) 박권을 보내 함경감사 이선부와 함께 부근에 가서 맞이하여 혜산진에서부터 산간 험지를 10일간이나 강행군하여 5월 15일 백두산 천지 가에 이르게 되었으며, 일행은 거기서 내려와 동남쪽으로 4킬로미터 지점인 해발 2200미터 고지 분수령에 정계비를 세웠다.

그 백두산 바로 아래에 대연지봉(2360미터)과 소연지봉(2123미터)이 있고 소백산(2174미터)이 있으며 허항령 아래에 삼지연군이 있다. 필자가 2003년 가을 삼지연에 갔을 때 그곳은 가을의 향연이 펼쳐지는 별천지였다. 원시림의 마지막 숲을 이루는 사스래나무 숲을 지나 가을 단풍이 들어 노란 잎갈나무 숲과 가문비나무 그리고 자작나무가 드문드문 병풍처럼 드리워진 삼지연은 바라보기가 처연할 만큼 비장미가 있었다. 
세 개의 연못이 푸르기도 하지만 그 밑바닥이 환히 보이는 정경과 어쩌다 찾는 길손의 가슴에 소용돌이를 일으키던 잎갈나무의 노란 아우성은 한마디로 압권이었다. 그 잎갈나무에 관한 글이 조선 성종 때의 학자인 어숙권이 지은 『패관잡기()』 제4권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함경() 육진()에 한 종류의 나무가 있다. 그 잎이 전나무와 같은데 그 지방 사람들이 잎갈나무라고 한다. 그 기름을 취하여 종기에 붙이면 곧 낫고, 등창이 처음 시작될 때에 더욱 잘 듣는다. 
정덕() 중에 비로소 해마다 서울에 공() 바치기를 명령하고, 가정() 계사()에 그 나뭇가지를 갑 속에 넣어서 의관을 시켜 중국에 가서 질문하게 하였다. 여러 어의()에게 물어도 모두 무슨 나무인지 알지 못한다 하였다.
나무가 중국에서 나지 않기 때문에 『본초강목()』 등 여러 방서에 빠져서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인가, 혹은 방서 밖에 따로 이 나무가 있는데, 이름은 있어도 쓰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시험하지 않은 것인가, 
중국에서 이미 알고 있는데, 갑 속에 넣어 잔가지가 말라서 분변하기 어렵기 때문인가. 종기를 다스리는 데 그렇게 묘하다면, 방서에 실리고 실리지 않은 것과 중국에서 알지 못하는 것을 물을 필요가 없다.
중국에서 알지 못한다고, 그래서 실리지 않았다고 물을 필요가 없다니, 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중국에 대한 그러한 생각이 조선시대 대부분의 사대부가 품었던 일반적인 통념이었다.

삼지연에는 15미터쯤 되는 김일성의 대형 동상이 소백산을 등지고 서 있다. 김일성이 항일 유격 활동을 할 때 잠시 쉬어간 곳이라 하여 사적지로 지정되었다. 한 폭의 그림같이 펼쳐지는 삼지연을 최남선은 『백두산근참기』에서 다음과 같이 찬탄하였다.
여기는 삼지라 하여 옛날부터 이름이 들린 곳이니 크고 작은 여러 늪이 느런히 놓인 가운데 셋이 가장 뚜렷한 고로 삼지라 일컫는 것이라 하는데 옛날에는 더 많았을 것이 분명하니 혹 칠성지라는 이름이 있음은 필시 일곱으로 보이던 시절에 생긴 이름일 것이다.
세 호수 중에서 크기로나 아름다움으로나 으뜸이 되는 것은 가운데 있는 것이니 둘레가 7~8리에 파란 물이 잠자는 것처럼 고요한데, 동쪽과 북쪽에는 속돌 부스러진 무게 없는 모래가 백사장을 이룬 밖으로 나직나직한 잎갈나무 숲이 병풍처럼 에두르고 서쪽으로 들어가면서 얽은 구멍 숭숭한 돌들이 운치 있게 꾸민 정원처럼 물가에 깔리다가 그것이 거의 다할 만하여서 잘록한 목장이가 되고 둥글 우뚝한 조그만 섬 하나가 바로 소담스럽게 호수 가운데 솟아, 나무가 우거지고 돌 모양이 운치 있다.
삼지의 아름다움은 삼지만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일면으로는 백두산 이하 간백(), 소백(), 포태(), 장군() 등 7000~8000척의 높고 험한 산들이 멀리서 둘러싸고 일면으로는 천리천(백두산 중턱의 엄청나게 넓은 들)이라고 하는 큰 들의 깊은 수풀이 끝없이 터져나가서 웅장하고 호쾌한 갖은 요소를 다 드러내 보였으니, 이러한 외곽을 얻어서 삼지의 아름다움은 다시 몇백 배의 가치를 더하여 다른 아무 데서도 볼 수 없는 천하의 독특한 지위를 얻었다. 이러한 것은 어쩌다가 한 번 있을 일이요, 어쩌다가 한 군데 생길 것일 만큼, 그 신기하고 소중함이 여간일 수 없다.
삼지를 초점으로 하여 나타난 미의 한 서클은 백두산 아름다움의 클라이맥스인 동시에 실로 조화의 가장 자신 있는 대걸작이요, 인류의 가장 의의 있는 한 재산일 것이다. (······) 삼지는 세계적 절경이요, 또 두드러진 특색과 특별한 맛을 가졌기 때문이다.

조선의 산 가운데 가장 신령스러운 산인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유장하게 이어진 산줄기가 곧 백두대간이다.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동쪽 해안선을 끼고 남으로 맥을 뻗어내리다가 태백산을 거쳐 남서쪽의 지리산에 이르는 국토의 큰 줄기를 이룬다. 이렇듯 대간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산줄기들은 지역을 구분짓는 경계선이 되었으며, 한반도의 자연적 상징임과 동시에 한민족의 인문적 기반이 되는 산줄기라고 할 수 있다.

천지 물의 원천
백두산 천지 물의 원천은 주로 지하수이며 천지 물의 약 61%를 차지한다. 지하수는 주로 지하 온천수로 솟아 나온다. 다음으로는 자연 강수가 약 30%를 차지한다. 증발량이 적고 강수량이 많은 것이다. 세 번째는 천지 주위에서 물이 흘러드는 것으로, 수량이 많지 않아 천지 물의 9%밖에 안 된다. 지하수가 차지하는 비율이 많은 것은 지하 심처의 마그마가 열을 방출하며 냉각 · 고결 과정에서 대량의 수증기가 생겨 지하온천으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천지의 겨울 수면

백두산 천지의 겨울 수면은 11월 말부터 얼어붙어 다음 해 6월에나 녹는다. 겨울의 얼음층 두께는 1.2m이고 가장 두꺼운 얼음층은 3m이다. 다만 천문봉 아래 200m의 천지 온천 수면과 백두봉 아래 천지 가장자리의 수면은 얼지 않는다.



천지의 형성과 연대

백두산 천지의 형성과 연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백두산 천지가 최근(1702년)의 백두산 분출 후 화구에 지하수와 눈, 비 등의 강수가 고여 형성되었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백두산 천지가 후기 홀로세(1,400~1,200년 전)에 백두산이 조면암질 부석을 분출한 후 형성되었다고도 하고, 후기 플라이스토세와 1만 2,000년 전 사이에 형성되었을 것이라고도 한다. 백두산 천지는 백두산 분출 후 화구가 형성되고 그곳에 물이 고여 화구호로 되었다는 것이다.

다음 내용이 천지가 형성된 근거"

1,000년 전에 7개의 화구에서 화산이 분출한 후 함몰작용에 의해 오늘의 화구호가 형성되었다.
천문봉기에 백두산이 강렬히 분출하여 화구가 형성되고, 그 후에 물이 고여 최초의 화구호가 형성되었다.
빙하기에 백두산 화구에 얼음이 차고 이후에 얼음이 녹아 화구호가 형성되었다.
빙하기 이후 백두산이 수차례 분출한 후 화구에 온천수가 솟아 나와 화구호가 형성되었다.

주위의 화구호



소천지

소천지는 백두산 북쪽 비탈 화구에 물이 고여 형성된 화구호이다. 백두산 천지로부터 4km거리에 있는 원형 화구로 둘레는 260m, 면적은 500m2, 깊이는 20m이다. 원래 이름은 은하호()였고, 이 외에 대환호(), 동호()라고도 한다. 호수에는 과두어, 규규어가 서식하고 있다. 호숫물은 남쪽 지하수로 흘러들어 오고 지하수로 유출되고 있다. 주위에는 악화림이 무성하게 자라 호수면에 비쳐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고 있다.
적지
적지()는 소천지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해발 고도는 1,800m이다. 적지는 소천지 면적의 3분의 1 정도이며 동쪽에만 물이 있고 서쪽은 습지로 되어 있다. 적지 남쪽의 단열대 틈에서 흘러나오는 지하수가 적지로 흘러들고 다시 지하수로 흘러 나간다. 아직 호수에 어류가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주위에는 악화림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으며 고요한 수면에 푸른 악화림이 비쳐 경치가 아름답다.
원지
원지()는 백두산 동쪽 30km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백두산 현무용암대지 동쪽 현무암 화산 화구에 물이 고여 형성된 화구호이다. 화구호가 원형으로 되었다고 하여 원지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원지의 지름은 180m, 면적은 0.41km2이며 깊이는 10여m이다.

원지는 호수 중심에서 샘이 솟고 겨울에 얼지 않는다. 원지의 옛이름은 만주어로 부리후리(), 20세기 초에는 천녀욕궁지(), 그리고 그 외에도 옥녀지, 선지(), 원앙지() 등 이름이 많다. 아름다운 원앙새가 짝을 지어 호수에 내려와 놀아 원앙늪이 라고도 한다. 원지는 백두산 화산이 분출한 부석이 원래의 화구를 덮어 현재의 모양이 되었다.

호수의 물은 대부분은 지하수이며, 호수 동쪽 20~30m 지점에서 지표로 흘러나와 작은 물줄기(약류수)를 이루어 흐른다. 홍토산 남쪽에서 약류수와 홍토수가 합쳐 흐르는데, 이 합수목이 두만강의 시작이다. 원지 주위에는 주과 월귤, 부수하엽 등이 무성하고 낙엽송, 홍송산림이 울창하다. 거울같이 맑은 수면에 푸른 산림이 비쳐 경치가 아름답다. 호수 서쪽에는 천녀욕궁지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원래 비석이 분실되어 후세에 다시 세운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원지는 만주족의 발생지라고 한다.
왕지
왕지()는 백두산 서남쪽 13km 거리의 비탈에 있다. 왕지 화구호의 남북 길이는 40m, 동서 너비는 30m이고, 둘레는 110m이다. 왕지 화구는 원형이며 고요한 물에 푸른 산림이 비쳐 절경을 이루고 있다. 호수 동쪽은 고산 악화림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남쪽은 초지가 형성되어 있다. 왕지는 소왕지 또는 악화못이라고도 한다.



화산 화구호
화산 화구호는 백두산에서 서쪽으로 9km 떨어져 있다. 군함산 현무암 화구에 물이 고여 형성되었으며 이를 그대로 화산 화구호라 부른다. 주위에는 산림이 무성하여 풍경이 매우 아름다우며, 서쪽은 현무암 절벽을 이루고 있고, 호수 가운데에는 작은 정자도 있다.
백두산은 백두산 화산 원추체, 협의적 백두산, 광의적 백두산의 3개 지구물리적 구조로 되어 있다.
백두산 화산 원추체
백두산은 화산 원추체와 화구, 후관의 3개 구조로 조성되었다. 화산 원추체는 해발 고도가 1,800~2,750m이며 평면은 타원형으로 북서-동남 방향으로 긴 직경 길이가 30km, 짧은 직경 길이는 20km이다. 총면적은 600km2이고 상부 경사도는 30°이다. 화산 원추체는 주로 조면암과 유문암, 조면암질 부석 화산쇄설물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협의적 백두산
백두산의 협의적 개념은 중심부에 백두산 원추체와 보천(중국 군함산) 현무암 융기 부분으로 구성된다. 해발 1,100~2,750m 높이의 산록경사 현무용암고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남북 길이는 140km이고, 동서 너비는 120km이며 총면적은 16,800km2이다.
광의적 백두산
백두산의 광의적 개념은 백두산 원추체와 산록경사 현무용암고원, 해발 600~1,100m의 백두산 현무용암대지가 포함된다. 산록경사 용암고원과 백두산을 포함한 총면적은 45,600km2이다.

지구의 중력 이상대.
백두산 지역에서 중력 이상대는 백두산을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세 방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부게 이상은 -105mmγ이다. 세 방향의 중력 부게 이상대 중 첫 이상대는 백두산에서 북동 방향으로 중국 안도까지의 이상대로 길이는 약 90km이다. 
높은 이상대 수치는 북동 방향으로 점점 낮아지며 안도 지점에서는 -40mmγ이다. 두 번째 이상대는 백두산에서 북서 방향으로 중국 정우현까지 뻗어 있으며 길이는 150km이다. 이 이상대의 수치는 서북 방향으로 점점 낮아지고 정우현 일대는 -25mmγ이다. 부게 이상대는 부면에서 무송현 일대에 이르러 휘어지는데, 이상대 동쪽은 급격히 낮아지고 서쪽 이상대는 완만하다.

세 번째 이상대는 백두산에서 동남 방향으로 마천령 심부 단열을 따라 길주 무수단까지이다. 이상대의 길이는 320km이다. 백두산에서 동남 방향으로 중력 이상이 낮아져 무수단의 이상 수치는 -25mγ이다. 이 세 갈래 방사상 심부 단열대는 맨틀 상부 연약권까지 이르렀고 초기의 단열대로 마그마 분출의 통로였다.
지각의 열류량
백두산 지각의 열류량은 대륙지각 열류량의 몇십 배이다. 백두산은 열량을 두 가지 경로로 방출하고 있다. 지열은 지각암석층의 열전도 방출이다. 이러한 지열 방출은 명확히 백두산을 중심으로 환대 열류방출대를 형성하고 있다. 백두산 화구의 열류가 가장 높고 그다음은 화산 원추체다. 화산 중심부에서 바깥 쪽으로 나갈수록 열류량이 적어진다. 백두산 화구로부터 40~50km 떨어진 지역의 지각 열류량은 점차 낮아지고 변화가 적다. 백두산의 높은 열류량은 마그마의 위치가 깊지 않음을 암시하는 것이며 백두산의 지각이 얇음을 보여 준다.
열류량 증가. 
백두산은 1702년 분출 이후에도 소규모로 계속 분출하였다. 화산의 폭발적 분출은 열량의 폭발적 방출을 의미한다. 백두산 화구와 원추체의 온천 온도 상승은 지하 마그마 온도의 상승을 의미한다. 이것은 고온의 마그마가 상승하는 것이 원인이다. 백두산 원추체 하부의 마그마 증가는 열류 증가이다. 백두산의 온도 상승으로 지각 밑 마그마가 증가되어 압력이 커지고 지각 열류가 계속 증가하는 상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