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21일 수요일

동강 아름다운 경치

동강 아름다운 경치.


영월군을 동서로 가르며 흐른다 하여 동쪽을 동강, 서쪽을 서강으로 부른다. 
이 지역 사람들은 암강, 수강이라 부르기도 한다. 
동강은 평창군 오대산에서 발원하는 오대천과 정선군 북부를 흐르는 조양강이 합류하여 흐르다가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에서 서강과 만나 남한강 상류로 흘러든다. 
서강은 평창군 북부 오대산 남쪽에서 발원한 평창강과 태기산에서 발원한 주천강이 영월군 서면에서 합류해 흐르는데 이 지점부터 동강과 합류할 때까지의 강을 이른다.

한반도지형.
선암마을. 仙巖 .


서강(西)의 샛강인 평창강() 끝머리에 자리잡고 있으며, 마을 앞에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를 꼭 빼닮은 절벽지역인 한반도지형이 있어 유명해졌다. 
선암마을에는 고려 때 선암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며, 한때는 역말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평창강은 길지 않지만 유로연장()이 220km가 될 만큼 심하게 곡류하며, 주천강()과 합쳐지기 전에 크게 휘돌아치면서 동고서저(西) 경사까지 한반도를 닮은 특이한 구조의 절벽지역을 만들어냈다.
오간재 전망대에서 남산재 쪽을 바라보면, 한반도를 빼닮은 절벽지역을 내려다볼 수 있다. 
오간재는 이 절벽지역을 처음 발견하고 외부에 알린 이종만의 이름을 따서 종만봉이라고도 부른다. 
절벽지역은 동쪽으로 한반도의 백두대간을 연상시키는 산맥이 길게 이어져 있고 서쪽에는 서해처럼 넓은 모래사장도 있으며, 동쪽으로는 울릉도와 독도를 닮은 듯한 작은 바위도 있다.  
나무와 솔가지로 만든 임시다리인 섶다리(주천리와 판운리 2곳)를 건너면 갈 수 있는데, 여름에 큰물로 다리가 떠내려가면 옛 교통수단인 줄배를 타고 건너야 한다. 
백두대간격의 능선 중간쯤에는 한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끊이지 않는 큰 구멍 뚫린 구멍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 때문에 동네처녀가 바람이 나지 않는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한적하고 아름다운 강변마을로서, 마을 앞에는 넓은 자갈밭에 수박돌과 잔돌들이 깔려 있다. 
강 건너편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절벽에 돌단풍이 군락을 이루어서, 가을에는 화려한 단풍으로 장관을 이룬다.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어 백로·비오리·원앙·수달 등 여러 동물을 볼 수 있으며, 강물 속에는 천연기념물인 쉬리·어름치와 민물조개다슬기 등이 서식하고 있다. 
섶다리마을이라고 불리는 주천리와 판운리에서는 2004년 6월 26~27일에 영월 주천감자꽃축제(또는 섶다리축제)를 처음으로 개최하였다.
주변에 장릉과 청령포 등의 단종 유적지와 동강, 서강, 김삿갓계곡을 비롯해 영월책박물관, 곤충생태박물관, 별마루천문대, 영월 고씨굴 등 관광명소가 많다.  
곡류하천을 가리키는 우리말로는 물도리, 물굽이 등이 있는데, 범람원에서 자유로이 곡류하는 자유곡류하천과 구분해서 감입곡류하천이라는 어려운 학술 용어를 사용한다. 
감입곡류하천의 경우 계곡 자체가 곡류하고 있다. 
곡류하천 만곡부의 산각이 한반도를 닮았다는 의미에서 이름 붙여진 한반도지형은 이제 전 국민적 고유명사, 아니 일반명사가 되었다. 
곡류하천이 발달한 남한강 유역의 여러 시ㆍ군에서는 지역 관광 상품의 주요 아이콘으로 한반도지형을 이용하고 있다. 
영월군은 2009년 10월 선암마을 한반도지형을 이러한 지형의 원조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에서 영월군 서면을 영월군 한반도면으로 개칭했다.

감입곡류하천은 동해가 갈라지고 한반도가 융기하기 이전인 신생대 제3기 중엽에 한반도가 하천침식에 의해 평탄했다는 증거로 제시된다. 
지반의 융기로 하방침식이 진행되면서 과거 자유곡류하천의 평면 형태가 그대로 유지된 채 하도가 깊어진 것이다. 
선암마을 한반도지형은 한반도 동고서저의 지형적 특색을 모식적으로 보여 주고 있으며, 왼편의 모래톱은 서해안의 간석지를 닮았다. 
한반도지형 전망대로 가려면 산길을 따라 제법 가야 한다. 
산길 주변 평탄한 곳이 바로 평창강의 하안단구이며, 이곳에는 석회암의 용식지형인 돌리네가 곳곳에 나타난다.

동강(정선).

개요

한강의 발원지 태백의 검용소에서부터 시작된 골지천이 정선 임계를 지나 여량 아우라지에서 대관령에서부터 흘러내려오는 송천과 합류하여 조양강을 이룬다. 
조양강은 다시 나전리에서 오대산 발원의 오대천과 합류하여 수량을 불리우고 곧 정선시내를 휘돌아 흐른 뒤 가리왕산 회동계곡의 물을 받아 강폭을 더욱 넓힌다. 
정선읍 가수리에 이르면 태백 고원지역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동남천과 만나고 여기서 비로소 동강이 시작된다. 
멍석을 깔고 누우면 하늘이 멍석만하게 보인다는 첩첩산중의 정선땅을 흐르는 동강은 그 이름만큼 사연이 많다. 
댐건설로 동강이 동강날 판이었다는 웃지 못할 얘기나 다시 댐 건설 백지화로 인해 가슴앓이하는 과거 수몰예정지역 주민얘기들 모두 예나 지금이나 애환이 섞여있는 듯하다. 
동강은 가수리 동남천과 합류하는 지점부터 장장 51km를 흘러 영월에서 서강과 만나 남한강이 되어 흐른다. 
정선 동강은 가수리부터 강을 따라 약 21km에 이르는 구간이다.

정선-평창간 42번 국도 상의 광하교를 건너기 전 조양강 물줄기를 따라 들어가면 이내 산과 물이 돌고 도는 강변길이 시작되고 강변 양쪽에 띄엄띄엄 자리한 아담한 마을들이 눈에 들어온다. 
강마을 중 가장 큰 마을인 가수리를 뒤로 하고 가탄마을, 하미마을을 지나 운치리 점재에 이르면 작은 나루터가 있다. 
예전에는 동강변 어디에나 그러하지만 강 건너편 마을을 가기 위해서는 줄배를 타고 건너가야 했으나 지금은 잠수교가 놓여 있어 배를 타는 정겨운 모습은 볼 수 없다. 
줄배를 타고 강을 건너 점재마을에서는 동강의 기수라 할 수 있는 백운산(해발 882m)에 오를 수 있다. 
점재마을에서 정상까지는 약 2시간 30분 정도 숨이 턱밑에까지 차오는 급경사 길을 올라야 하지만 오름길 도중 보이는 뱀처럼 구불구불 돌아 흐르는 정선 동강의 모습은 잊을 수 없는 광경이다. 
길이 다소 험하고 급경사 절벽이 많아 조심해야 하지만 정선동강의 모습을 한눈에 보기엔 더할나위 없이 좋다. 
최근 여러 산악회나 단체에서 많이 오가면서 등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다.
백운산 정상에서 사행천 동강의 모습을 바라보며 조심조심 2시간 정도 내려오면 칠족령(또는 칠목령)이다. 
칠족령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정선 고성리 제장마을, 오른쪽 하산길은 평창 마하리 문희마을이다. 
문희마을의 유래가 그 마을에서 기르던 개이름이었다는 것, 
칠족령이란 지명도 '문희' 라는 개가 발바닥에 옻칠을 하고 넘어다녔다는 데서 이름붙여졌다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문희마을부터는 평창군 동강지역이다. 
뇌른마을을 지나면 우렁찬 소리를 내며 세차게 흐르는 황새여울을 만나게 된다. 이 여울과 영월 동강 어라연 앞의 된꼬까리(꼬까리는 여울이라는 지역 방언이다.)에서는 예전에 떼사공이 거친 물살에 많이 희생 당했다고 한다. 
진탄나루터를 지나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뉘어지는데 곧장 가면 영월 동강 문산마을로 갈 수 있다. 
직진하지 않고 윗길 마하본동을 지나 플라잉낚시로 유명한 기화천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 평창군 미탄면 소재지로 갈 수 있다. 
백운산을 겸한 정선 동강 트레킹이 어렵다면 점재나루에서 계속 물길을 따라 고성리 고성산성에 올라 한폭의 동양화같은 백운산과 동강을 조망하는 것도 좋다.
백운산에서 제장마을로 내려와 건너편 고성리에서 덕천리 소사마을로 넘어가면 강 건너편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마을인 연포마을이 있다.

이 시냇물은 영월ㆍ
상동을 지나 정선 고을로 들어간다. 
고을 앞 임계 서쪽에 있는 산기슭 남쪽이 정선 여량촌()이고, 우통수 물이 북쪽에서 여량촌을 둘러 남쪽으로 흘러간다. 
양쪽 기슭이 제법 넓고 언덕 위에는 키 큰 소나무와 흰모래가 맑은 물결을 가리고 비추기 때문에 참으로 은자()가 살 만한 곳이다. 
전지()가 없는 것이 한스러우나 마을 백성은 모두 자급자족하여 넉넉하다.
『택리지』에 기록된 내용이다. 정선은 산 깊은 골짜기인지라 사는 것이 쉽지 않은 고을이었던 모양이다.
이곳을 찾았던 허소유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땅이 궁벽하니 누구인들 쉽사리 갈 수 있으랴
온 종일 몰아 달려서 강성()을 택했네
개 어금니처럼 울퉁불퉁하여 고르지 않은 험한 길에 당했으니 고단(, 땅 이름)이 멀고
여자의 눈썹처럼 공중에 떴으니 태백산이 가로질렀네
냉담()한 것으로 즐거움을 삼으니 세속의 취미 어긋나고
평안하고 한가로움으로 스스로 즐기는 것이 나의 장점이네
토지는 메마르고 무거워서 유리()해 도망한 백성이 많으니
집집마다 석청(, 돌 사이에 모은 벌꿀)을 뽑아 바치는 것을 차마 못 보겠네
임계천을 받아들인 골지천은 구미정()을 지나 정선군 북면 여량리, 아우라지에서 송천을 받아들인다. 
아우라지는 정선군 북면 여량리 한강 상류에 있는 나루터로, 평창군 대관령면의 황병산과 구절리에서 흘러내린 송천, 동쪽에서 흘러온 임계천이 합류하는 곳이다.
이 아우라지의 뱃사공이 부르던 노래가 바로 「정선아리랑」이다. 
「정선아리랑」, 즉 「정선아라리」가 처음 불리기 시작한 것은 조선 초기부터였다고 한다. 
고려 왕조를 섬기고 벼슬에 올랐던 사람들 중 일곱 선비(전오륜, 고천우, 김충한, 변귀수, 김한, 이수생, 신안)가 불사이군()의 충성을 다짐하면서 개성의 깊은 산골 두문동에 은신하다가 지금의 정선군 남면 낙동리 거칠현동으로 옮겨와 살면서 지난날 섬기던 임금을 사모하고 고려 왕조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였다.  
보고 한시로 지어 읊은 것이 「정선아리랑」의 시원이 되었다고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사철 임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다른 설에 따르면, 옛날 여량리에 사는 처녀와 아우라지 건너편 유천리에 사는 총각이 연애를 하였다.
그들은 동백을 따러 간다는 구실로 유천리에 있는 싸리골에서 서로 만나곤 하였다. 
어느 가을에 큰 홍수가 나서 아우라지에 나룻배가 다닐 수 없게 되자 그 처녀는 총각을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정선아리랑」 가락에 실어 부르게 된 것이다.
눈이 오려나 비가 오려나 억수장마 지려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
명사십리가 아니라면은 해당화는 왜 피나
모춘삼월이 아니라면은 두견새는 왜 우나 ····
정선읍내 일백오십 호 몽땅 잠들여놓고서
이호장네 맏며느리 데리고 성마령을 넘자
그러나 「정선아라리」는 사회적, 시대적 흐름에 따라 새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반달 같은 우리 오빠는 대동아전쟁 갔는데 샛별 같은 우리 올케는 독수공방 지키네”라거나, “사발그릇은 깨어지면은 세네 쪽이 나고 삼팔선이 깨어지면은 한 덩어리로 뭉치네”라고 분단 상황을 노래하기도 하였으며, “아우라지 건너갈 때는 아우라지더니 가물재 넘어갈 때는 가물감실하네”라고 날 가문 날을 노래하기도 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동면같이 경치 좋은 곳에 놀러 한번 오세요. 
용산소, 폭포수 물 밑에도 해당화만 핍니다. 
산천이 고와서 뒤돌아다봤소. 
정든 곳이라서 뒤돌아다봤지”라는 구절도 있고, “겉눈은 슬쩍 감구야. 속눈으로 보니, 대관령 서낭님두 돈 시구 가잔다. 
연감은 할멈 치고, 할멈은 아 치고, 아는 개 치고, 개는 꼬리치고, 꼬리는 마당 치고, 마당 가역에 수양버들은 바람을 받아 치는데, 우리 집 그대는 낮잠만 자느냐”라고 노래하기도 하였다.

성마령()은 정선군과 평창군 사이에 있는 고개로 지금은 잘 쓰이지 않지만 옛날에는 이 고을의 관문이었다. 
어찌나 높은지 그 마루에 서면 별을 만질 수가 있을 듯하다는 뜻에서 성마령이라고 불렀다 한다.

정선군 북면 유천리 양짓말에서 갓거리로 넘어가는 가물재는 몹시 가팔라서 재 밑을 내려다보면 정신이 가물거린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고, 자족령이라고도 부르는 칠족령은 신동면 제장에서 평창군 미탄면 마사리 뇌룬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꽃베리는 강릉에서 정선읍으로 오려면 반드시 지나야 했던 베리, 곧 벼루(벼랑)였다. 
조선시대에 어느 관리가 가마를 타고 지나면서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자 가마꾼에게 얼마나 더 가야 되느냐고 몇 차례를 물었는데, 그때마다 가마꾼들이 곧 베리가 끝난다고 했던 데서 ‘곧베리’가 되었다가 나중에 ‘꽃베리’로 바뀌었다고 한다.

마전치는 정선읍 광하리 마전에서 평창군 미탄면 백운리로 넘어가는 재로, 고개가 하도 높아서 마치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비행고개라고도 부른다.

만항재에서 바라본 함백산만항마을 꼭대기에 위치한 만항재는 태백과 영월, 정선이 만나는 상징적인 경계에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자동차가 오를 수 있는 포장도로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한편 조선시대에 이곳 여량리에는 여량역이 있었다. 
큰 말 2마리, 짐 싣는 말 4마리, 역리 84명, 역조 77명, 역비 12명이 배속되어 있었다.
피곤에 지친 말은 실처럼 가는 길 뚫고 가기 주저하는데
삐죽삐죽 산봉우리는 깎아지른 듯 겹쳐진 성과 같네
바람은 바위틈에서 나오니 대포 실은 수레가 구르는 듯하고
물은 마을 터 안고 흐르니 한 필의 비단 가로놓인 듯
내 신세 백년을 살며 양쪽 귀밑머리만 희어지고
강산 천리 길로 벼슬살이하러 다니는 심정이여
난간에 기대 앉아 동쪽 산에 떠오르는 달 기다리는데
고요한 밤 시를 짓고 싶은 마음 오래될수록 더욱 맑아져
용재 성현의 시가 흐르는 듯한 아우라지를 지난 강물은 나진을 지나고 한반도 지형을 빼닮은 상장산 자락을 지나 정선에 이른다. 
여기부터가 동강이다.

「정선아리랑」을 연구하는 진용선은 “옛 문헌을 보면 우리 선조들은 아우라지에서부터 동강이라는 말을 썼고, 표기도 지금의 ‘동녘 동()’이 아니라 ‘오동나무 동()’을 썼다”라고 말한다. 
영월읍을 중심으로 동쪽은 동강, 서쪽은 서강이라고 한 것은 일제강점기부터였다는 것이다.

서강
강원도 영월군 서면에서 만난 평창강과 주천강이 영월읍 서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동강과 합류할 때까지의 강을 서강이라 한다.
동강에는 열두 곳의 아름다운 경치가 있다. 여울과 소, 절벽, 섶다리, 마을 풍경이 그것들이다. 
1경은 가수리 느티나무와 마을 풍경이고, 
2경은 신동읍 운치리의 수동 섶다리다. 
3경은 나리소와 바리소(신동읍 고성리~운치리), 
4경은 백운산(고성리~운치리)과 칠족령(덕천리 소골~제장마을), 
5경은 고성리 산성(고성리 고방마을)과 주변 조망, 
6경은 바새마을 앞 뼝대, 
7경은 연포마을과 홍토 담배 건조막, 
8경은 백룡동굴(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9경은 황새여울과 바위들, 
10경은 두꺼비바위와 어우러진 자갈, 모래톱과 뼝대(영월읍 문산리 그무마을), 
11경은 어라연(거운리), 
12경은 된꼬까리 여울과 만지나루(거운리) 등이다.

산은 높고 골은 깊은 정선군에서 흘러내린 물이 골지천, 오대천, 지랑천, 용탄천, 어천, 임계천 같은 여러 내를 이루며 흘러내리다가 조양강이 되고 다시 더 내려가 동강이 된다.

정선은 고구려 때 잉매현()이었다가 신라의 경덕왕 때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으며, 현종 때 군으로 승격되어 조선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고려 때 사람인 곽충룡은 이곳 정선을 두고 “풍속은 순박하고 백성들은 송사를 벌이지 않는다”라고 하였고, 역시 고려 때의 문장가인 이색은 “일천 산엔 겹겹 푸름이 가로놓였으니 한 가닥 길은 푸른 공중으로 들어간다”라고 하였다. 
곽충룡은 이어서 “일백 번 굽이져 흐르는 냇물은 멀리 바다로 향하고 천 층으로 층계 진 절벽은 하늘에 의지해 가로질렀네”라고 하였다. 
산이 높고 물이 깊은 정선군을 일컬어 고려 때의 문인 한철충은 그의 시에서 “벼랑을 따라 보일 듯 말 듯 가느다란 길이 있구나. 
옛 읍이 산을 의지하였는데 산은 성을 이루었네. 산중에 숨어 살고자 하나 참으로 방도가 없구나. 
비록 벼슬을 그만두겠다고 말하나 진정()이 아닌 것만 같네”라고 하였다.

정추는 “하늘 모양은 작은 것이 우물 속에 비쳐서 보이는 것 같고, 산의 푸름은 멀리 구름 위에 가로놓였다. 
다섯 동혈()은 차고 서늘하여서 능히 뼛속까지 시리게 하고, 한 시냇물은 목메어 울어 순정()을 호소하는 것 같다”라고 노래하였다. 
이 근래에도 정선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장을 두고 “하늘이 세 뼘밖에 되지 않는다”라거나 “앞산과 뒷산을 이어서 빨랫줄을 맬 수 있는 곳” 또는 “닭이 울면 그 소리가 온 고을을 메울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안축은 그의 시에서 “산마을에 돼지의 배부름은 반드시 새벽에 물 먹인 것이 아니요, 이웃집 닭이 살져도 날마다 훔쳐가는 자가 없다”라고 하였다.
정선 관아의 북쪽에는 봉서루라는 이름의 정자가 있었다. 
그 정자를 두고 안축은 다음의 시를 남겼다.
가파른 언덕을 빙빙 돌아 말을 급히 몰아가니
뽕나무와 삼[마()]이 십 리를 이은 옛 성터
거친 땅엔 자갈만 삐죽삐죽 규전()도 적고
비좁은 산허리에 가로질러진 실낱같이 가는 길
빗소리 들으니 나그네 시름 더하고
구름 보니 어버이 그리는 마음 참기 어렵네
바람 바위 물구멍은 사람 세상 아니로세
티끌 흔적 씻어내니 뼛속까지 시원하네
한편 이곳 정선에서 거두어들인 전세()는 무명이 1동() 19필이었고 『여지도서』에 그 이동 경로가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3월에 거두어들여 4월에 바친다. 
처음에는 육로로 실어 날라 사흘이면 충주 목계강에 도착한다. 
배에 싣고 출발해 자진포, 두무포를 거쳐 경강의 뚝섬에 도착한다. 
순풍을 만나면 이틀 반이면 호조에 바칠 수 있다. 
대동과 균세도 이와 같다.
두메산골이었던 정선이 새롭게 변모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정선 오일장의 부활이다. 5월에서 가을까지 2일과 7일에 서는 정선 오일장에는 서울에서 관광차 오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정선읍내의 오일장에는 정선군 일대에서 채취된 산나물이 다 쏟아져 나온다. 
참취, 곰취, 며느리취, 나물취, 참나물, 누롯대, 참두릅, 개두릅, 더덕, 고비, 도라지, 곤드레 등 나물도 좋지만 무엇보다 정선 여행의 별미인 콧등치기와 올챙이국수를 맛볼 수 있어 더욱 좋다. 콧등치기는 일종의 메밀국수다. 
메밀을 반죽하여 국수를 만든 것인데 올챙이국수에 비해 끈기가 있고 단단하여 국숫발이 물에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 
육수에 된장을 살짝 풀고 깨소금 양념을 하여 먹는데 맛이 좋아 급히 빨아들이다 보면 국숫발이 살아 있는 듯 콧등을 친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

올챙이국수는 찰옥수수를 갈아서 묽게 반죽하여 나무로 만든 굵은 체에 내려 만든 것이다. 찰기가 적어서 국숫발이 부슬부슬 끊어지는데, 갖은 양념을 하여 묵처럼 말아서 숟갈로 떠먹는다. 
옛 시절 정선의 명물이었던 꿩꼬치산적 같은 음식은 아쉽게도 찾아볼 수가 없다.

태백에서 시작된 남한강이 유장하게 흐르는 영서지방을 두고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영의 오른쪽은 영서(西)라고 한다. 
모든 물이 서쪽으로 흘러 한강과 합류하여 바다로 들어가는데, 물이 적은 데는 거룻배가 다닐 수 있고, 물이 많은 데는 큰 배가 다닐 수 있다.
이익이 생존했던 18세기 중엽만 해도 남한강엔 수없이 많은 배들이 오르내렸지만 오늘날엔 큰 배는커녕 고깃배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곳 정선군 고한읍에 자장율사가 세운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의 하나인 정암사가 있다. 신라의 큰 스님이었던 자장율사가 태백산 서쪽 기슭에 정암사를 창건한 것은 선덕여왕 14년이었다. 
‘숲과 골짜기는 해를 가리고 멀리 세속의 티끌이 끊어져 정결하기 짝이 없다’는 의미에서 정암사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이 절은 오대산의 상원사, 양산의 통도사, 영월의 법흥사, 설악산의 봉정암과 더불어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다. 
정암사의 창건 설화와 문수보살을 만난 자장율사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정암사 적멸보궁태백산 서쪽 기슭에 자리한 정암사는 신라의 큰스님이었던 자장율사가 선덕여왕 14년에 창건한 절이다.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다.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불교의 융성에 힘쓰던 자장율사는 진덕왕 때 대국통의 자리에서 물러나 강릉에 수다사를 세우고 살았다. 
어느 날 꿈에 한 스님이 나타나 말했다. 
“내일 너를 대송정에서 보리라.” 
놀라 깨어난 자장이 대송정에 이르자 문수보살이 나타나 “태백의 갈반지에서 만나자” 하고 말한 뒤 다시 사라져버렸다. 
태백산에 들어가 갈반지를 찾아 헤매던 자장은 큰 구렁이들이 나무 아래 서로 얽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 그곳이 문수보살이 말한 갈반지라 여겨 ‘석남원(, 곧 정암사)’이라는 절을 지었다.

자장율사가 석남원에 머물며 문수보살이 나타나기를 몹시 기다리던 어느 날 다 떨어진 가사를 걸친 초라한 늙은이가 죽은 개를 삼태기에 싸들고 와서 “자장을 보러 왔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자장율사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이 언짢았던 자장의 시중이 “어디서 온 누구인가?” 하고 호통을 치자, 
그 늙은이는 천연덕스럽게 “자장에게 전해라. 
그래야 갈 것이다”라고만 대꾸하였다.

자장율사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 늙은이를 쫓아내게 하였다. 
늙은이는 “아상이 있는 자가 어찌 나를 볼 수 있으리오” 하고 탄식하면서 가지고 온 삼태기를 뒤집으니 죽은 강아지가 푸른 사자로 변하였다. 
늙은이는 그 사자를 타고 빛을 뿌리며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알고 보니 바로 그 노인이 문수보살이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자장이 곧바로 뒤를 쫓아갔으나, 이미 문수보살은 떠나가버린 뒤였다. 자장은 몸을 남겨두고 떠나며 “석 달 뒤에 돌아오마. 
몸뚱이를 태워버리지 말고 기다려라” 하고 당부하였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한 스님이 와서 오래도록 다비하지 않음을 크게 나무란 뒤 자장의 몸뚱이를 태워버렸다. 
석 달 뒤 자장이 돌아왔으나 이미 몸이 없어진 뒤였다. 
자장은 “의탁할 몸이 없으니 끝이로구나! 어찌하겠는가. 내 유골을 석혈()에 안치하라” 하는 부탁을 하고 사라져버렸다.

한편 자장은 사북리의 산꼭대기에 사리탑을 세우려 하였으나 세울 때마다 계속 쓰러졌다. 간절히 기도하였더니 하룻밤 사이에 칡 세 줄기가 눈 위로 뻗어 지금의 수마노탑, 적멸보궁, 사찰 터에서 멈추었으므로 그 자리에 탑과 법당과 본당을 짓고 그 절의 이름을 갈래사()라고 하였다. 
고한읍에는 갈래라는 마을의 이름과 함께 갈래초등학교가 있고, 상갈래하갈래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정암사는 숙종 39년(1713)에 중수되었으나 낙뢰로 부서져 6년 뒤 다시 중건되었고, 1771년과 1872년 그리고 지난 1972년에 다시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아우라지 : 아우라지는 평창군 대관령면의 황병산과 구절리에서 흘러내린 송천, 동쪽에서 흘러온 임계천이 합류하는 곳이다. 
정선읍으로부터 19.4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며, 송천과 골지천이 이곳에서 합류하며 어우러진다고 하여 아우라지라고 한다.

사진은 선돌에서 서쪽으로 서강의 상류를 바라보고 촬영한 것이다. 
멀리 보이는 산들은 영월(강원도)과 제천(충청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산릉들이다. 
왼편에 송전탑과 독립가옥이 들어서 있는 하안단구의 가장자리에는 기반암으로 된 단구애가 발달해 있으며, 같은 하안을 따라 멀리 취락이 입지해 있는 하안단구보다는 고도가 더 높다. 
오른편 하안에 있는 하안단구는 왼편의 낮은 하안단구와 고도가 같다. 
같은 시기에 형성된 같은 높이의 하안단구가 하천 양안에 대칭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한쪽에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곳은 취수가 어려워 밭농사 위주이며, 산촌()의 형태를 띤다.

하상()의 높이가 현재보다 높은 하천 양쪽의 계단상의 지형이다. 
하성단구()라고도 한다. 
하안단구는 하천유로를 따라 양쪽에 나타나는데 현재의 하천이 아닌 곳에 나타날 수도 있다. 
과거의 유로를 찾아 볼 수 있는 좋은 증거가 된다. 
하천이 빠른 속도로 하각작용을 할 때 단구애(terrace cliff)가 나타나며 구범람원의 형성 시에 쌓인 사력층이 존재하는데 이를 단구역층이라 하며 단구를 식별하는 좋은 증거가 된다. 
하안단구의 구성물질이 기반암석일 때 암석단구라 하고 구성물질이 사력층으로 이루어진 경우 사력단구라 한다. 
단구면이 하천의 측방침식에 의하여 평탄화된 것을 침식단구라 한다. 

한편 사력층의 두께가 두터운 단구를 퇴적단구라 한다. 하안단구를 성인적으로 구분하면 구조단구와 비구조단구로 나눌 수 있다. 
구조단구는 하상의 침강, 융기에 의해 이루어진 단구를 말하며 비구조단구는 기후단구()라고도 하는데 강수량의 변화, 간빙기와 빙기의 교대에 의해 형성된 단구를 말한다. 

하안단구는 하천의 성장, 쇠퇴의 기록이므로 지형발달을 연구하는 데 매우 좋은 예가 된다. 한편 단구면은 구하천의 하상()으로 구석기인의 거주의 중요무대(경기도 전곡리)였음을 알 수 있다. 
하안단구는 해수면 변화, 융기 등의 결과이다.

동강(영월).

개요

* 영월의 대표적인 자연관광지, 동강(영월) *
동강은 남한강 수계에 속하며 정선, 평창 일대 깊은 골짜기를 흘러내린 물들이 정선읍내에 이르면 조양강이라 부르고, 이 조양강에 동남천 물줄기가 합해지는 정선읍 남쪽 가수리부터 영월에 이르기까지의 51km 구간을 '동강'이라 부른다. 
산자락을 굽이굽이 헤집고 흘러내리는 동강은 마치 뱀이 기어가는 듯한 사행천()을 이루고 있으며, 전 구간에 걸쳐 깎아지른 듯한 절벽지형을 이루고 있다.

유역은 4억 5000만 년 전에 융기되어 형성된 석회암층 지역으로, 약 2억 년 전에 단층운동과 습곡운동의 영향으로 현재의 지형이 형성되었고, 현재도 하천운동으로 인한 퇴적작용과 침식작용 등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동강 유역에는 지표운동과 지하수·석회수의 용식작용 등으로 인해 많은 동굴이 형성되었는데, 2002년 현재까지 보고된 동굴만도 256개나 된다. 
백룡동굴()은 천연기념물 206호로 지정되어 있다.

생태계 역시 잘 보존되어 수달, 어름치·쉬리·버들치, 원앙·황조롱이·솔부엉이·소쩍새·비오리·흰꼬리독수리, 총채날개나방(미기록종)·노란누에나방, 동강할미꽃(미기록종)·백부자·꼬리겨우살이 등 미기록종을 포함해 많은 천연기념물·희귀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동강의 생태계를 한 눈에
산림청 임업연구원들이 독자적으로 수행한 조사에는 ‘식물의 경우’ 신품종 후보종 1종 ‘뻐꾹채’ 와 ‘백부자’, ‘꼬리겨우살이’ 등 희귀식물 6종의 서식이 확인됐으며 포유류는 총 8종 가운데 천연기념물인 ‘수달’의 서식이 확인됐다. 
조류 분야에서는 천연기념물인 ‘원앙’, ‘소쩍새’, ‘까막딱따구리’ 의 서식지와 희귀조인 ‘비오리’도 확인됐다. 
산림곤충으로는 미기록종인 ‘총채날개나방’과 ‘노란누에나방’ 등 희귀종 2종이 확인됐다. 
산림경관으로는 석회암 붉은벽과 흰사구 등이 발달했으며 그 중 어라연 지역이 대표적으로 평가됐다.

동강의 백미, 어라연
동강의 백미인 어라연은 뛰어난 경치로 인해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어린 나이에 죽은 단종의 혼령이 영월에서 경치가 가장 뛰어난 이곳의 경치를 보고 여기서 신선처럼 살고자 하였는데 이때 물고기들이 줄을 지어 반겼으며 그 일대가 마치 고기비늘로 덮힌 연못과 같았다고 '어라연'이란 지명을 붙였다고 한다. 
약 1km에 걸친 협곡을 따라 흐르는 동강의 중앙부에 3,000여 평의 바위섬이 위치한 어라연은 돌로 된 바위 위에 분재와 같은 소나무와 물에 잠긴 너럭바위에서 반사되는 햇살, 병풍 같은 절벽이 세상의 시름을 잊게 한다. 
가끔 이곳을 찾는 외국인들은 “한국의 그랜드 캐넌으로 중국의 계림에 버금가는 명승지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개요

동강은 남한강 수계에 속하며 정선읍 가수리부터 영월에 이르기 까지의 57km 구간을 이른다. 
동강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신비스러움에 싸인 어라연은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울창한 송림이 천혜의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2004년 12월 7일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4호로 지정되었다. 
어라연은 자연환경보전지역으로 차량출입이 통제되어 트레킹으로 잣봉을 경유하여 어라연을 돌아보는 방법(3시간 소요)과 래프팅을 타고 둘러보는 방법(2시간~3시간 소요)이 있다.

이용안내

주차시설

있음(소형 50대 / 대형 10대 주차 가능)

수용인원

제한없음

신용카드가능여부

가능

애완동물가능여부

불가

체험안내

래프팅
※ 문의 : 영월군래프팅연합회 033-375-0012

문의및안내

영월관광안내 1577-0545

관련 홈페이지

영월 문화관광 http://www.ywtour.com

상세정보

입산통제 구간

지정된 등산로 이외 지역

관광코스안내

거운분교-마차-잣봉-어라연-만지동-거운분교(총7km, 총 3시간 30분)

입 장 료

없음(체험비별도)

화장실

있음

주차요금

무료


연관목하안단구.river terrac하안단구란 과거의 하상이나 범람원이 융기하여, 홍수 시에도 범람이 되지 않는 하천 변의 평평한 대지를 말한다. 하안단구와 하천과의 경계나 상위 단구와 하위 단구와의 경계를 따라 급경사의 절벽이 나타나므로, 높이가 다른 여러 개의 단구가 마치 계단처럼 보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하안단구의 대부분은 단구면이 두부를 자른 듯이 매끈하지 않고 하천 쪽으로 미약한 경사를 보인다. 이는 단구면이 노출된 후 적어도 수만 년 동안 배후산지로부터 퇴적물이 중력에 의해 사면을 따라 이동한 결과이다.


2018년 2월 20일 화요일

곶감.

곶감.
우리나라 건조과실의 대표격이다. 
떫은 맛이 있는 생을 완숙되기 전에 따서 껍질을 얇게 벗겨 대꼬챙이나 싸리꼬챙이 같은 것에 꿰어 햇볕이 잘 들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매달아 건조시킨다. 
수분이 1/3 정도로 건조되었을 때 속의 씨를 빼내고 손질하여 다시 말리고, 그것을 볏짚에 싸서 상자에 늘어놓고 밀폐된 상태로 두면 이 완전히 건조되면서 표면에 포도당(글루코오스)의 흰가루가 생기는데, 이것을 꺼내 다시 한번 건조시켜서 상자에 넣고 밀폐해 두면 곶이 된다.

곶감의 효능건강한 음식인 ‘곶감’을 소개함으로써 학생들의 입맛을 건강하게 되찾아주고, 건강한 식습관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이다. 감의 떫은맛의 타닌은 설사를 멈추게 하고, 감 한 개에 들어 있는 비타민의 양은 사과 10개와 비슷하다. 감을 햇볕에 말려 만든 곶감은 감보다 당분과 영양이 더 많은 건강식품이다.


정의

껍질을 벗겨 말린 감.

내용

곶감은 명절이나 제사 때 쓰는 과일의 하나이다. 
장기간 저장할 수 있는 것으로, ‘건시()’라고도 한다. 
감은 ≪향약구급방≫에 기록되어 있어 고려시대부터 재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감를 말린 곶감은 문헌에 보이지 않고 있다.
곶감은 조선시대에 많이 애용된 듯하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1682년(숙종 8) 중국에 보낸 예물목록 중에 보인다. 
19세기 초의 문헌 ≪주영편 ≫에는 종묘제사 때 바치던 계절식료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규합총서≫·≪진연의궤≫·≪진찬의궤≫ 등에도 기록이 있다. .
감에는 껍질이 두꺼운 것과 얇은 것이 있다. 
곶감용으로는 껍질이 얇고 육질이 치밀하며 당분이 많은 봉옥()·미농() 등의 품종이 좋다. 
완숙하기 전에 채취한 떫은 감이 좋다. ≪도문대작≫에서는 지리산의 오시()가 곶감 만드는 데 좋다고 하였다.
곶감 만드는 법은 ≪규합총서≫에 의하면, 8월에 잘 익은 단단한 수시(; 물감)를 택하여 껍질을 벗기고 꼭지를 떼어 큰 목판에 펴놓아 비를 맞지 않도록 말린다. 
위가 검어지고 물기가 없어지면 뒤집어놓고, 마르면 또 뒤집어 말린다고 하였다.
다 말라서 납작해지면 모양을 잘 만들어 물기 없는 큰 항아리에 켜켜로 넣는다. 
감껍질을 같이 말려 켜켜로 격지를 두고 위를 덮는다. 
그런 다음에 좋은 짚으로 덮어 봉하여 두었다가 시설( : 곶감거죽에 돋은 흰가루)이 앉은 뒤에 꺼내면 맛이 더욱 좋다고 한다.
대규모의 곶감 제조에 있어서는 유황훈증( : 유황 연기를 쐬어서 찜.)을 하여 질을 향상시키고 있다. 
이것은 껍질을 벗긴 감을 유황으로 30∼40분간 훈증하여 햇볕을 잘 쬔다. 그리고 통풍이 잘 되는 건조장으로 옮겨서 30∼38℃에서 4∼5일간 건조시키는 방법이다.
감이 황갈색으로 되고 외피가 굳어지기 시작하면 과육을 손으로 문질러 연하게 하고 씨를 빼낸 다음에 구멍을 합쳐서 건시모양을 만든다. 
3주일이 지나서 곶감의 무게가 생감 무게의 75% 정도 되고, 손가락으로 누르면 과육이 들어갔다가 곧 원상으로 돌아올 정도가 되면 거두어들인다.
상자에 잘 말린 짚을 켜켜로 깔고 곶감을 담아 시원한 곳에 두어 곶감의 표면에 흰 당분가루가 덮이도록 한다. 
감의 껍질을 벗길 때는 쇠로 만든 칼을 사용하면 감에 함유되어 있는 탄닌과 반응하여 빛깔이 변하므로 스테인레스 스틸로 만든 칼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감은 무게에 비하여 건조면이 좁으므로 갑자기 말리는 것을 피하는 것이 좋다. 
너무 건조시키면 과육이 굳어지고 건조가 부족하면 곰팡이가 생기기 쉬우므로 매우 조심하여야 한다. 
곶감의 조성분은 수분 32%, 단백질 6.3%, 지방 0.44%, 탄수화물 44.8%, 섬유질 15%, 회분 1.99%로 되어 있다.
곶감은 그대로 먹기도 하고, 곶감에 호두를 싸서 곶감쌈을 만들기도 한다. 
실백을 박아 숙실과(한과를 말함)이나 생실과(생과일)에 곁들여 놓기도 할 뿐 아니라, 수정과의 주원료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손님 접대용과 노인이나 어린아이의 간식으로 많이 이용되었다.



생감을 완숙되기 전에 따서 껍질을 벗겨 건조시킨 곶감은 쫄깃한 식감에 달콤한 맛이 특징입니다. 겨울철이 제철인 곶감은 옛날 추운 겨울날 변변찮은 간식거리가 없던 시절에 휼륭한 영양간식이였답니다.

기본정보

구입요령 : 나무 꼬치에 꿰어 놓은 사이를 잘 살펴 보아 곰팡이가 없고 깨끗한 것으로 고르고 색이 아주 검거나 지나치게 무른 것, 딱딱한 것은 피해야 한다.

유사재료 : 감 (곶감은 감을 말린 것이다.)

보관온도 : 18~25℃

보관일 : 7일

보관법 : 서늘하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 보관하거나 장기간 보관할 때는 냉동 보관한다.

손질법 : 곶감 표면의 하얀 가루는 당분이 농축된 것이다. 
곶감을 섭취할 때는 특별한 손질 없이 바로 섭취가능하다.

산지특성 및 기타정보 : 감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에서 생산된다.

섭취정보

섭취방법 : 말린 것을 생으로 먹거나 수정과에 넣어 고명으로 띄워 먹는다.

궁합음식정보 : 수정과 (수정과에 잣을 넣으면 곶감속에 들어 있는 탄닌과 수정과 속의 철분의 결합으로 탄닌산철이 되는 것을 막아 빈혈과 변비를 예방하여 궁합이 맞는 식품이 된다.)

다이어트 : 칼로리가 낮아 비만인 사람에게 적합하다.

효능 : 기침/가래 치유 (곶감은 한방에서 목소리를 윤택하게 하고, 기침, 가래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아이들 설사에도 좋다고 전해진다.)



영양성분
니아신
0.80mg
나트륨
5.00mg
단백질
2.20g
당질
63.20g
레티놀
0.00㎍
베타카로틴
187.00㎍
비타민 A
31.00㎍RE
비타민 B1
0.02mg
비타민 B2
0.01mg
비타민 B6
0.02mg
비타민 C
4.00mg
비타민 E
0.10mg
식이섬유
17.73g
아연
0.24mg
엽산
3.20㎍

65.00mg
지질
0.20g
철분
1.30mg
칼륨
736.00mg
칼슘
28.00mg
콜레스테롤
0.00mg
회분
1.50g
영양성분 : 100g 기준
상주 곶감.
호랑이도 울고 간다. 임금에게 진상하던 상주 곶감.
곶감특구로 지정받은 상주 곶감은 전국 곶감 생산량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대한민국 대표 명품 곶감이다. 
상주에서 나는 감은 떫은맛을 내는 둥시로 유명한데 다른 지역과는 달리 '탄닌'함량이 많은 대신 물기가 적어 곶감재료로는 제격이다. 
상주가 우리나라 곶감 최대 생산지가 된 것도 바로 좋은 재료 덕분. 조선 예종 때 임금에게 상주 곶감을 진상할 정도로 예로부터 최고의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상주 둥시 곶감
과일 단맛의 극치.
감나무는 우리나라 중부 아래 지방에서 흔히 자란다. 가을에 들면 남녘의 어느 마을을 가든지 빨갛게 익어가는 감을 볼 수가 있다. 
마당에도 있고 산에도 있으며 마을 골목골목에도 있다. 
나무에 그냥 두면 홍시로 익고 이를 따서 껍질을 얇게 깎아 말리면 곶감이 된다. 
곶감은 어떤 감으로 만드는가에 따라 맛 차이가 있는데, 경북 상주의 둥시로 만든 곶감이 예부터 유명하다.

곶감은 토종 감으로 만든다

감은 크게 단감과 떫은감으로 나뉜다. 
생으로 단맛이 나는 것이 단감이고, 홍시나 침시, 곶감으로 해야 먹을 수 있는 감이 떫은감이다. 단감은 애초 우리 땅에 없었다. 
일본에서 들여온 것이다. 
일부 일본 떫은감 품종이 국내에 들어와 있기는 하지만 재배량은 그다지 많지 않다. 
떫은감은 우리 땅에서 자생하는 것이니만큼 예부터 전해오는 품종이 꽤 다양하다. 200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맛있기로 이름나 있는 감들은 지역명과 품종명이 결합되어 있다. 지방마다 감 품종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청도 반시, 의성 사곡시, 산청 단성시 또는 고종시, 고령 수시, 완주 고종시 또는 고동시, 논산 월하시, 임실 먹시, 장성 비단시 등이다. 상주는 둥시이다. 
지역마다 주요 품종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두서너 가지가 뒤섞여 있는데, 충북 영동 같은 경우는 둥시, 월하시, 반시, 먹시 등 여러 종류가 자라고 역시 곶감으로 유명하다. 
상주는 둥시가 90% 정도를 점하고 있다. 
감의 이름에는 감의 특징이나 옛 이야기가 담겨 있다. 둥시는 감이 둥글다 하여 붙은 것이다. 
반시는 납작하게 반을 잘라놓은 것 같다 하여 그리 부르며, 먹시는 감의 겉면에 먹을 묻힌 것 같이 검은 반점이 있어 그렇게 이름이 지어졌다. 
고종시는 조선의 왕인 고종이 좋아한 감이란 말이 전한다. 
고동시는 고동처럼 길쭉하여, 수시는 물이 많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우리 땅에서 오래도록 자라온 식물이니 이름에도 우리의 정서가 잘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좋은 곶감의 조건
감의 떫은맛은 탄닌의 맛이다. 
떫은감을 먹기 위해서는 나무에 그대로 둔 채 홍시로 익히거나, 따뜻한 물에 담그거나 알코올을 뿌려 숙성을 하여야 한다. 
곶감을 만들어도 떫은맛이 없어진다. 이렇게 해도 감에서 탄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떫은맛이 느껴지지 않게 불활성화될 뿐이다. 
탄닌은 몸속의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등 건강에 이로운 작용을 한다. 곶감은 떫은맛이 없어지는 것에 더해 단맛도 강해진다. 
수분이 달아나면서 단맛이 농축되는 것이다. 
감 상태에서는 20 브릭스 정도의 당도가 곶감으로 완성되면 50~60 브릭스에까지 이른다. 
감에 있는 비타민 등 영양소들도 곶감에 농축된다. 곶감 표면에 하얗게 이는 분은 포도당과 과당이 넘쳐 밖으로 삐져나온 것이다. 
곶감을 손으로 주무르면 분이 더 많이 일게 되는데, 옛날에는 이 분을 따로 모아 단맛을 내는 조미료로 썼다.
곶감은 감 종류와 지역 여건에 따라 30~70일 정도의 건조기간이 필요하다. 
수분 35% 정도의 곶감을 얻기 위한 기간이다. 
상주 둥시곶감은 60일 정도 자연건조를 한다. 
상주 둥시는 약간 큰 감에 속하고 건조기간도 그만큼 길다. 
최근에 유행하는 반건시는 40일 정도의 건조기간을 거친다. 
반건시의 수분 함량은 45~50%에 이른다. 
열풍기 등을 이용하여 기계건조를 하면 건조기간이 짧아진다. 그러나 맛은 자연건조에 비해 크게 모자란다. 
맛있는 곶감은 겉껍질이 얇아 이물감이 없어야 하고 속은 조청처럼 부드러워야 한다. 
기계건조를 하게 되면 겉껍질은 질기고 속은 단단해진다. 
색깔도 짙고 불투명해진다. 
곶감 속에 빈 공간이 있는 것은 채 여물지 않은 감으로 건조한 것으로 맛이 떨어진다.

지리적표시 등록한 상주 곶감

상주는 예부터 쌀과 누에, 곶감이 유명해 ‘삼백()의 고장’이라 불렸다. 
이 중에 현재 가장 유명한 것은 곶감이다. 
전국 곶감 생산량의 65% 정도를 상주에서 낸다. 
연간 7,000톤의 곶감을 생산하며 올해 상주에서 곶감으로 얻는 경제효과는 2,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자가노동력만으로 곶감을 말리는 농가에서부터 한 번에 100만 개 이상의 곶감이 걸리는 가공 공장도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곶감은 항상 비싸게 느껴진다. 
한입에 쏙 들어가는 작은 크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농가들은 손이 많이 가는 데 비해 곶감 생산 마진은 적다고 말한다. 상주곶감발전연합회 박경화 회장의 말이다. 
“원료 감 25킬로그램짜리 한 박스를 5만 원에 구입해 무르고 깨진 감 버리면 100개 정도 건진다. 
이를 깎고 건조대에 걸어 60일간 말리면서 10% 정도 달아난다. 
인건비, 연료비 등등을 더하면 생산원가가 1개당 1,000원에 이른다. 
여기에 포장, 보관, 운송비가 들어가면 소매가격 1개당 1,500원 받아도 남는 게 별로 없다.” 
상주곶감발전연합회는 420여 상주 곶감 생산농가가 모여 결성된 단체이다. 
이 생산자단체는 상주 곶감 지리적표시 등록 권리자이다. 
단체에서 내는 곶감은 상주 곶감이 확실하며 품질에서 신뢰할 수 있다.
조청처럼 부드러운 곶감의 속 자연건조한 곶감은 살이 투명하다. 껍질 바로 아래는 연한 색이고 속은 약간 짙다. 속살이 조청처럼 부드럽게 입 안에서 풀려야 좋은 곶감이다. 또 껍질은 얇아 이물감이 없어야 한다. 사진의 곶감은 지난해에 말린 상주 둥시곶감이다. 냉동보관한 것인데 햇곶감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조청처럼 부드러운 곶감의 속_자연건조한 곶감은 살이 투명하다. 껍질 바로 아래는 연한 색이고 속은 약간 짙다. 속살이 조청처럼 부드럽게 입 안에서 풀려야 좋은 곶감이다. 또 껍질은 얇아 이물감이 없어야 한다. 사진의 곶감은 지난해에 말린 상주 둥시곶감이다. 냉동보관한 것인데 햇곶감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축제와 곶감길
곶감 한입 먹으며 곶감길 걷고 곶감 축제 즐기자.
‘곶감’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곳, 바로 경북 상주다. 
시골에서야 산이며 들이며 집집마다 흔한 것이 감나무라지만, 상주에는 유독 곶감으로 만들면 맛있는 둥글둥글한 감이 많이 자란다. 
둥글둥글하다고 해서 ‘상주 둥시’라는 이름을 얻었다. 
물기가 적고 탄닌 함량이 높아 곶감 만들기에 좋은 품종이다.
청도 반시, 산청 고종시, 임실 먹시, 논산 월하시 등 전국에는 지역 특성에 따라 맛도 모양도 유래도 다른 여러 감 품종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상주 둥시로 만든 상주 곶감은 예부터 한겨울 추위를 잊게 할 만큼 입에 착착 감기는 달고 보드라운 맛으로 유명하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임금에게 진상되었다는 [예종실록]의 기록도 상주 곶감의 맛을 입증한다.
감을 말려 곶감이 되면 당도는 3~4배가 되고 비타민 등 영양가도 훨씬 높아진다. 
호랑이가 온대도 울음을 그치지 않던 아이가 곶감을 주자 금방 울음을 그치고 방긋방긋 웃었다는 이야기는 상주 곶감의 감칠맛을 한마디로 설명한다. 
곶감은 기관지염이나 설사, 체했을 때 달여 먹으면 좋은 약이 된다고 한다.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이 먹으면 몸이 따뜻해지는 효과까지 있다니 한겨울 간식으로도 손색없다.

사람이 함께 만든 걸작


전국 곶감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상주에서 대외적으로 매스컴을 많이 탄 곳은 시내와 멀지 않은 남장동의 남장마을이다. 
주홍빛 감이 마을 곳곳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은 남장마을의 상징이기도 하다. 
남장마을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곶감 공원이 있는 외남면도 곶감 생산지로 둘째가라면 서럽다. 
남장마을은 주로 사들인 감으로 곶감을 만드는 데 비해 외남면은 대부분 농가에서 직접 농사지은 감으로 곶감을 만든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외남면 흔평리의 장창수 씨는 마을에서 가장 크게 감 농사를 짓고 곶감을 만드는 농민이다. 
한 해에 보통 45만여 개의 감을 매단단다. 
모두 직접 농사지은 감이니 한 알 한 알이 모두 자식 같다. 
감 농사를 지은 지도 20여 년이 다 됐지만 감 말리는 일에는 왕도가 없다. 
습도나 날씨의 영향이 절대적이라 20년 곶감 농사의 노하우가 허사가 될 때도 있다. 
재작년에는 1억 넘는 돈이 감과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고
운 빛깔 뽐내며 매달렸던 감이 자칫 잘못 관리하면 순식간에 내려앉아버리는 것이다. 
부모 속 태우는 자식을 닮았다.
감이 마르고 숙성되어 곶감이 되기까지는 35일에서 60일이 걸린다. 
반건시는 한 달 정도, 건시는 두 달 정도가 필요하다. 
시간과 자연, 사람의 정성이 숙성시키는 감의 성숙기다.
감을 따서 깎아 매달아 곶감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보면 하나도 허투루 먹을 수가 없다. 곶감 하나에 들어간 농민의 정성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곶감 하나에 1,000원이라면 소비자는 비싸다고 할지 모르지만 원가를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다. 
보통 생감 한 알이 500~600원인데 감을 깎고 매다는 데 드는 인건비와 연료비, 창고비, 포장비, 보관비, 유통비 등을 합치면 생산원가만 1,000원 선. 곶감 1개에 1,000원을 받으면 사실상 남는 게 거의 없다 싶을 정도다. 
자연과 사람이 함께 만든 걸작에 먹는 사람의 투자도 필요한 셈이다.

곶감길을 걷다
남상주IC에서 가까운 외남면에는 곶감 공원이 있다. 
곶감과 호랑이의 전설을 따라 스토리텔링이 있는 공원을 걷다 보면 끄트머리에서 할미산 곶감길로 오르는 길을 만난다. 

곶감길은 원래 있던 산길인데 곶감 공원을 조성하며 살짝 다듬었다. 
인위적인 요소가 거의 없고, 자연 그대로의 산길을 살린 걷기 좋은 길이다.
주머니에 간식 삼아 곶감을 몇 개 넣고 걷는다. 
낙엽 쌓인 가을산은 발걸음 지날 때마다 부스럭부스럭 소리를 낸다. 혼자 걸어도 외롭지 않도록, 처음 만나는 산과도 금방 친해질 수 있도록, 먼저 말을 걸어주는 것만 같다.

곶감길은 4~5km 정도로 쉬엄쉬엄 걸어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오르는 길은 낙엽이 수북이 쌓인 길이고 내려가는 길은 아늑한 솔숲길이다. 
약간의 오르내림이 있지만 그리 힘들지 않다. 
평지보다는 굴곡이 있고 산보다는 경사가 크지 않다. 

곶감 공원을 감싸안은 동네의 낮은 산을 한 바퀴 돈다고 생각하면 된다.
곶감 공원만 둘러보기 서운한 사람들에게는 곶감길 산책이 그만이다. 
발이 푹푹 빠지는 고즈넉한 낙엽길과 인적 드문 솔숲을 고요히 걸을 수 있으니 걷는 것만으로도 절로 힐링이 된다. 
늦가을 공기는 상쾌하고 간식 삼아 야금야금 씹어 먹는 곶감은 달다. 몸을 덥히는 곶감 덕에 추위도 잊게 된다.



곶감의 고장답게 곶감으로 만든 간식도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곶감 찰보리빵과 곶감 과자, 곶감 약과가 유명하다. 
곶감 찰보리빵 안에는 곶감으로 만든 잼이 들어 있고, 곶감 과자와 곶감 약과는 곶감 분말을 넣어 만들었다. 
곶감 찰보리빵 등은 택배 주문할 수 있어 다른 고장에서도 즐길 수 있다.

곶감 공원에서 나와 마을길로 조금 걸어 내려오다 보면 ‘하늘 아래 첫 감나무’로 불리는 가장 오래된 감나무가 있다. 
이 나무의 수령은 무려 750년이나 됐단다. 
이 감나무에서 열린 감으로 만든 곶감은 일반 감보다 몇 배는 더 비싸게 팔린다. 
몇백 년 된 나무의 정기를 함께 누리고 싶은 사람들의 작은 바람일 테다.

"상주 곶감 축제
최근 단장을 마친 외남면 곶감 공원과 해마다 풍성해지는 곶감 축제는 정재현 상주시의원의 기획으로 시작됐다. 
“겉만 떠들썩한 전시성 축제보다는 농가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축제를 만들고 싶었어요. 
곶감 농가가 살아야 곶감이 살고, 곶감이 살아야 마을이 사는 거니까


곶감 공원을 조성하면서 구전으로만 떠돌던 곶감과 호랑이 전설을 동화책으로 펴내고 노래도 만들었다. 
외남면의 상주곶감축제는 올해로 3회째다. 
1회 때 1억을 투자해 준비한 축제에서 곶감 판매로 130억에 달하는 농가 소득을 올렸다. 
시중에서보다 곶감을 30% 이상 싸게 살 수 있으니 소비자도 좋고 농민에게도 적잖은 수입이 된다.
해마다 반건시와 건시 일부가 나오기 시작하는 12월 중순에 상주곶감축제가 열리는데, 올해는 12월 20일부터 25일까지다. 
축제는 외남면 곶감 공원과 시내의 상주 곶감 유통센터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축제 기간 동안에는 매일 점심시간 곶감 공원에 찾아오는 모든 손님에게 시래기국밥을 무료로 대접한다. 
한겨울 추위를 뚫고 곶감 축제에 와준 손님에게 드리는 주민들의 작은 정성이다. 
축제 기간에는 감 깎기 등 다양한 체험 행사와 임금님 진상 재현 공연 등 부대 행사가 펼쳐진다.
곶감 공원 안에는 편백나무 펜션이 있다. 주민들이 운영하고 있으며 여기서 나는 수익도 주민의 몫이다. 
이 역시 곶감 농가의 소득이 된다. 멀리 이동하지 않아도 한자리에서 곶감길을 걷고, 곶감 축제를 즐기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곶감을 나눠 먹으며 겨울밤을 보내기에 그만이다.

가는 길
* 자가운전
영동고속도로 여주분기점 → 중부내륙고속도로 → 남상주IC → 외남면
* 대중교통
서울고속터미널과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상주행 버스 하루 20여 차례 운행. 상주터미널에서 외남면 가는 버스를 타고 소은리에서 하차. 
버스는 하루 4회 운행

※ 위 정보는 2013년 12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진안 곶감
유형특산물/특산물
지역전라북도 진안군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의 정천면과 상전면에서 생산한 생감의 껍질을 벗겨 말린 감.

개설

생감이 완숙되기 전에 따서 껍질을 벗겨 건조시킨 것이 곶감이다. 
쫄깃한 식감과 달콤한 맛이 특징으로, 특히 겨울날 영양 간식이다. 
진안군 정천면 운장산 일대의 토양과 고랭지 특유의 기후와 환경에서 전통 기법으로 생산되는 운장산 곶감은 비타민C·카로틴·칼륨·타닌 등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과육의 탄력과 쫀득한 단맛이 좋고 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연원 및 변천

본래 곶감은 ‘꼬챙이에 꽂아서 말린 감’을 뜻하며 ‘곶다’에서 온 말이다. 된소리로 ‘꽂감’이라 하는 것도 ‘꽂다’에서 비롯된 말이다. 
볕에 두어 말린 곶감을 백시 또는 건시라 한다. 
백시는 몸을 따뜻하게 보강하고, 장과 위를 두텁게 하며, 비위를 튼튼하게 해 얼굴의 주근깨를 없애며 목소리를 곱게 한다고 한다.

진안군의 운장산 일대는 지리적 특수성으로 인해 씨 없는 감나무가 잘 자라고 있어 예부터 씨 없는 곶감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진안군 부귀면·정천면·주천면에 대단위 곶감 생산 단지를 조성하면서 ‘운장산의 씨 없는 곶감’은 진안군의 특산품으로 자리 잡았다.

제조(생산) 방법 및 특징

진안군의 상전면과 정천면 고랭지의 청정 지역에서 생산하는 떫은맛이 있는 생감을 완숙되기 전에 따서 껍질을 얇게 벗겨 대 꼬챙이나 싸리 꼬챙이, 또는 실에 꿰어 햇볕이 잘 들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매달아 전통 제조 방법으로 건조시킨다. 
건조된 곶감을 상자에 늘어놓고 밀폐된 상태로 두면 감이 완전히 건조되면서 표면에 포도당[글루코오스]의 흰 가루가 생기는데, 이것을 꺼내 다시 한 번 건조시켜서 상자에 넣고 밀폐해 두면 곶감이 된다. 건시라고도 한다.

현황(관련 사업 포함)

진안군은 2001년 8000만 원으로 16㏊의 감나무 단지를 조성하여 재배 면적을 10㏊에서 26㏊로 넓히고 단계적으로 14㏊를 추가로 조성하였으며, 이와 함께 50채의 곶감 건조장과 10채의 저온 저장고를 설치해 씨 없는 곶감 생산 체제를 갖추었다. 
씨 없는 곶감 단지가 조성되면서 150여 참여 농가에서 연간 20억 원의 소득을 올렸다.

2003년에는 진안군 부귀면·정천면·주천면 등 운장산 주변 40㏊에 10만 그루의 씨 없는 감나무를 심어 대단위 곶감 생산 단지를 조성하여 운장산의 씨 없는 곶감을 진안군의 특산품으로 생산하였다.

2005년부터 진안군 정천면의 마조 마을과 학동 마을은 산촌 마을 개발 사업을 시작하여 곶감 단지 조성 및 으뜸 마을 가꾸기 사업으로 곶감 건조장, 저온 저장고, 감 깎는 기계 등을 연차적으로 지원받아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곶감을 생산하여 농가 소득을 올렸다.

2008년에는 40가구 주민들이 1년에 50동[5,000접]의 곶감을 생산하여 연 3억 원의 소득을 올렸다. 
운장산 곶감 작목반은 2008년 총 9㏊의 친환경 농산물 인증을 취득하였고 친환경 품질 인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진안군 정천면 학동 마을의 씨 없는 곶감 마을은 2㏊의 곶감 단지를 형성하여 관광객들 위한 감 따기, 감 깎기, 감또개 말리기, 곶감 말리기, 감식초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강릉곶감. 江陵.

정의

생감의 껍질을 벗겨서 말린 음식.

개설

감나무는 한국·일본·중국 등 동아시아 지역이 원산지로 감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이다. 
감의 종류는 약 190여 종으로 9~11월에 주로 생산된다. 
식용감에는 떫은감과 단감이 있는데 우리나라 재배종은 대개 떫은감이고 연평균 10~15℃인 경기 이남에서 주로 재배한다. 
남부지방에서는 외래종 단감이 재배되고 있다. 
곶감용으로는 과실이 크고 당도가 높으며 육질은 점질이고 섬유질과 종자가 적은 둥시, 월하시, 고종시 등의 품종이 곶감품질로 우수하다. 
수확시기가 늦을수록 당분함량이 높지만 과실이 연화되어 박피에 어려움과 경제성을 감안하여 과실이 단단한 적숙기에 수확한다.

연원

중국에서는 기원전부터 재배해왔다고 하며 『제민요술()』에는 이미 곶감 만드는 법과 떫은 맛 빼는 법까지 소개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명종 때(1138년) 고욤(감과 비슷한데 과실이 작다.)에 대한 기록이 가장 오래된 것이니 감 재배는 고려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만드는 법

곶감의 건조과정은 수작업이나 동력 박피기로 껍질을 벗기고 천일건조(최근에는 열풍건조)를 시켜 반건시(수분함량 45~50%, 16~20일) 또는 건시(수분함량 35%, 30~35일) 상태로 말린다. 
건조과정에서 백분이 발생(포도당:과당=6:1)되면 포장을 한다. 
최근에는 질소치환 포장을 하는데 상온에서는 20일, 저온에서는 3개월 저장이 가능하다.

역사적 관련사항

곶감은 19세기 초의 문헌인 『주영편()』에 종묘제사 때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규합총서()』, 『진연의궤()』 기록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애용된 듯하다. 
조선후기의 조리서 『규합총서()』에는 만드는 방법이 잘 나와 있으며 현재의 제조방법과 유사하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육질()이 섬세한 감이 좋으며 홍시가 되기 전, 즉 과육()이 말랑말랑해지기 전에 껍질을 벗겨, 꼬챙이에 꿰어 걸거나 또는 줄로 묶어 통풍이 잘 되고 볕이 잘 드는 장소에 널어 건조시킨다.

용도

곶감은 명절, 제사, 차례음식의 삼색실과의 하나로 주로 쓰이고 대개 그대로 먹거나 수정과·곶감쌈·곶감떡, 곶감죽, 곶감양갱()을 만들어 먹는다. 
곶감을 넓고 얇게 저며 대접에 담고 꿀에 재었다가 잣가루를 묻힌 단자로도 만들어 먹는다.

효능

곶감은 연시나 단감에 비해 당질, 칼슘(Ca), 인(P), 칼륨(K)의 함량은 월등히 높으며 곶감을 만들 때 감 표면에 나타나는 흰 분말은 만니트(mannit)로 과당과 포도당이 건조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비타민이 풍부해 감기예방 및 피부미용에 좋으며, 이질, 해소, 토혈, 각혈에 좋다. 
만성기관지염 및 고혈압에 좋고 숙취예방, 정력강화, 바이러스감염에 대해 저항력을 향상시킨다. 
곶감에는 타닌(tannin) 성분이 있어 설사를 멎게 하며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현황

강릉시 성남동의 곶감시장은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여름에는 베전으로, 겨울에는 곶감시장으로 열린다. 
강릉 곶감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감을 손으로 깎아 껍질에 재우고 손으로 주물러서 햇빛에 말린다는 특징이 있어 색이 어둡고 당도가 높으며 독특한 맛이 일품이기 때문에 전국에서 강릉곶감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다.

강릉시에서는 강릉곶감 명품화사업 1단계로 지난 1998년부터 2005년까지 강릉 지역에 감나무묘목 6만 주를 보급하여 감 재배면적 확대에 나섰다. 
2005년에는 강릉시 연곡면과 사천면의 농가에 곶감가공건조장 설치비용을 지원하여 강릉곶감브랜드화 사업을 본격 추진하여 600접을 생산하였다.

2006년도에는 감나무의 주 품목인 갑주백목(봉옥:대봉)의 묘목을 15,000주 공급할 계획이다. 
갑주백목은 일본에서 극히 오래된 품목으로 원예시험장에서 1966년도에 도입하였는데, 연시 및 곶감용으로 우수함이 인정되어 1981년에 최종 선발하였다. 
재래종인 고종시는 작고 수분이 적고 곶감의 빛깔과 질감, 맛, 당도가 높아 앞으로 특산품으로 개발할 계획에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