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는 신라시대 때 사물현이라는 작은 포구였으나 고려시대에 조세미를 수송하기 위하여 통양창을 설치하였다.
조창을 설치하자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자 삼천리라는 마을이 생겼다.
삼천리 지명은 이곳에서 고려 개성까지 수로로 삼천리나 되었기 때문이다.
1956년에 삼천포읍과 남양면을 통합으로 삼천포시가 되었고 1995년에 삼천포시와 사천군이 통합되어 사천시가 되었다.
한려수도의 중심 항구이자 수산물의 집산지로 이름이 높은 삼천포는 기후가 온난하고 한려수도의 빼어난 경관이 감싸고 있어 새로운 관광지로 떠오른 것이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학섬이다.
경남 사천시에 있는 항구로 1966년 4월 개항되었다
삼천포시에 들어서면 비린내가 많이 나는 곳인데 그 이유는 쥐포 공장이 많기 때문이다.
쥐포는 1960년에 수산물검사소에 있는 강봉희는 일본에서 쥐포를 보고와 국내에서 처음 가공하기 시작하여 1970년 오징어와 함께 국민의 간식거리로 등장해 삼천포시에 쥐포 공장이 100개나 되던 것이 1990년대에 들어서 기온변화와 생태계 변화 등 알 수 없는 이유로 어획량이 급격히 떨어져 현재 30개의 공장을 운영하지만 그곳마져 인건비와 원료 인상으로 지금은 값비싼 베트남에서 수입한 쥐포가 우리나라 쥐포시장을 거의 점령하고 있다.
옛날 쥐포는 고소하면서 맛이 있는데 수입 쥐포는 뒷 맛이 씁쓸한 맛이 나는데 이는 솔비르톨이라는 인체에 해로운 화학조미료를 넣어 만들었기 때문에 많이 먹으면 설사와 복통을 일으킨다.
남해안에 자리 잡은 항구로서 살 만한 곳은 ‘한국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통영과 여수를 꼽지만, 남해에 다리가 놓이고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삼천포 역시 좋은 항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3번 국도가 시작되는 삼천포는 사람들에게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라는 말로 더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오밀조밀한 항구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서 한번 가본 사람들은 다시 가고 또 가는 곳이다.
원래 행정의 중심지로 발달한 것이 아니고 한갓진 포구에 지나지 않았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야 겨우 면이 된 곳이다.
행정구역상 진주, 사천, 고성에 번갈아 소속되기도 했으나 1956년에 시로 승격되고 1966년 개항에까지 이른 삼천포시는 우리나라의 어느 항구도시보다 비린내가 많이 진동하는 곳이다.
선구동에 자리 잡은 어판장에서 갈치, 멸치, 삼치, 고등어, 전어 등의 여러 생선들이 내는 냄새이기도 하지만 삼천포의 명물인 쥐치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풍기는 것이기도 하다.
1918년 옛 사천군의 수남면(洙南面)과 문선면(文善面)을 통합하여 삼천포면이 되었다가 1931년에 삼천포읍이 되었다.
경상남도의 남서쪽 해안저지(海岸低地)에 있던 시(市).
1956년에 사천군(泗川郡)의 남양면(南陽面)을 편입, 삼천포시로 승격하였으며, 같은 해 삼천포시 관내(管內)에 남양출장소(南陽出張所)를 설치하였다.
1995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사천군과 통합되어 사천시가 되었다.
선구동에 자리 잡은 어판장에서 갈치, 멸치, 삼치, 고등어, 전어 등의 여러 생선들이 내는 냄새이기도 하지만 삼천포의 명물인 쥐치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풍기는 것이기도 하다.
두미 욕지 큰 애기는 고구마 빼 때기로 살이 찌고
닭섬 새섬 머스마는 전어배 타고 다 늙는단다."
마도의 노동요인 「갈방아타령」으로 전어잡이 어부들이 소나무 껍질을 방아에 넣고 찧으면서 부르는 노래다.
소나무 껍질의 가루는 전어잡이 그물에 먹이는 풀로 쓰였다고 한다.
<갈방아타령> 보다 더 이름난 것이 삼천포 일대에서 나는 전어밤젓인데, 전어의 배알 중에 ‘밤’이라고 부르는 둥글둥글한 부위를 발라내어 담근 젓이다.
빛깔은 검지만 젓이 곰삭았을 때의 그 고소하고 쌉쌀한 감칠맛은 어느 젓갈도 따를 수 없는 독특한 맛을 자랑한다.
삼천포의 전어밤젓은 예로부터 전라도의 토하젓 만큼이나 알려져 있다.
동해안에는 울산, 포항, 강구, 묵호, 강릉 주문진, 원산, 함흥, 청진, 나진 등의 항구들이 발달해 있는데 그중 강릉 근처에 있는 주문진은 오대산 자락에 자리 잡은 항구로 퍽이나 아름다운 곳이다.
1927년 6월에 지정된 주문진항은 강릉의 외항이면서도 동해안에서는 손꼽는 어항이다.
부근 연해에는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고 해안에서 인접한 곳일지라도 수심이 깊어 명태와 오징어, 정어리 등의 어족자원이 풍부하다.
남해안에 자리 잡은 항구로서 살 만한 곳은 ‘한국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통영과 여수를 꼽지만, 남해에 다리가 놓이고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삼천포 역시 좋은 항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3번 국도가 시작되는 삼천포는 사람들에게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라는 말로 더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오밀조밀한 항구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서 한번 가본 사람들은 다시 가고 또 가는 곳이다.
행정의 중심지로 발달한 것이 아니고 한갓진 포구에 지나지 않았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야 겨우 면이 된 곳이다.
서해안에는 신의주, 남포, 인천, 오천, 보령, 장항, 군산, 법성포, 목포 등이 있는데 부안의 곰소나 법성포와 같은 항구는 토사가 밀려들면서 항구의 기능이 쇠퇴해 버려서 굴비와 젓갈의 명산지로 그 명맥을 이어 가고 있을 뿐이다.
보령은 우리나라 5대 해수욕장의 하나인 대천 해수욕장을 끼고 발달한 항구로서 충청남도 중서부 해안의 거점도시로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남해 연안의 싱싱한 횟감 소문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남해를 잇는 삼천포대교가 개설되면서 남해 금산이나 통영과 연계관광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한려수도의 중심 항구이자 수산물의 집산지로 이름이 높은 삼천포는 기후가 온난하고 한려수도의 빼어난 경관이 감싸고 있어 새로운 관광지로 떠오른 것이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학섬이다.
우리 국토에서 바닷가 마을만큼 변화의 급물살을 탄 곳도 드물다.
19세기 후반에 부산, 목포 등이 개항하였고 죽변, 장생포, 통영 등 동남해안의 항구들은 어업으로 활기를 띠었다.
삼천포와 남해도 사이의 한려수도국립공원에 자리 잡은 학섬(鶴島)은 늑도 동쪽에 있는 섬으로 백로와 왜가리의 서식지인 까닭에 붙은 이름이다.
그 모양이 바다에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와 같다고 하여 ‘부어도(浮魚島)’ 또는 ‘헤에섬’이라고도 하고, 또 바다에서 ‘굴러 들어온 섬’이라고 하여서 구을섬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스개 이야기지만 ‘삼천포’를 ‘쥐포’의 변형 음식 정도로 아는 사람도 있다.
이는 ‘삼천포’에 대한 심한 모독이다.
‘삼천포’는 경상남도 남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아름다운 항구 도시이기 때문이다.
기후가 온화하고 해안 경치가 빼어날 뿐만 아니라 먹을거리가 풍부해 그 어느 지역보다 살기 좋은 고장이다.
‘삼천포’는 진주(晋州) 바로 아래에 있어 서울이나 부산에서 이곳으로 오려면 진주를 거치게 된다.
‘삼천포’는 1995년 5월 행정구역 개편 때 사천군(泗川郡)과 합쳐져 ‘사천시’로 바뀌면서 그 이름이 사라졌다.
행정 명칭상 ‘삼천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삼천포’라는 지명은 ‘삼천포로 빠지다’는 독특한 표현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이 말이 사라지지 않는 한 ‘삼천포’라는 지명은 아무리 행정 명칭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입에서 입으로 오랫동안 전해질 것이다.
‘삼천포’는 한자로 ‘三千浦’이다.
이 도시가 포구에 형성되어 있기에 ‘浦’ 자가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게 보이지만, ‘三千’이 어떤 이유에서 붙게 된 것인지는 잘 알 수 없다.
어떤 사람은 ‘三千’을 ‘온갖 것’을 뜻하는 불교 용어로 보고 이를 이상향의 상징으로 설명한다.
‘三千浦’를 수없이 많은 개〔浦〕가 있는 이상적인 항구로 해석한다.
이처럼 깊은 뜻이 담긴 ‘삼천포(三千浦)’에 느닷없이 ‘빠지다’가 붙어 ‘삼천포’라는 지명의 이미지에 큰 손상을 주게 되었다.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졌다”는 표현에서 보듯 어떤 목적지를 가려다 의도하지 않았던 삼천포로 잘못 들어섰다는 뜻을 담고 있으니 이는 ‘삼천포’ 사람들에게 별로 유쾌한 표현은 아니다.
‘삼천포로 빠지다’는 표현이 언제부터 쓰였는지 이 지역 사람들조차 잘 알지 못한다.
그 유래 또한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삼천포 사람들이 만들어 쓴 것이 아니므로 이 지역 사람들이 그와 같은 표현이 쓰인 시기나 유래를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 지역 공무원들이 조사한 바로는 이 표현에 대한 유래설이 예닐곱 가지가 된다고 하니 놀랍기 그지없다.
그 몇 가지 유래설을 소개해 본다.
1) 옛날 어떤 장사꾼이 장사가 잘되는 진주로 가려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장사가 안 되는 삼천포로 가는 바람에 낭패를 봤다.
2) 부산발 진주행 열차는 개양역에서 삼천포행의 객차를 분리하여 운행했다.
이때는 반드시 안내 방송을 통해 진주행 손님과 삼천포행 손님이 각각 몇 호 차로 갈아탈 것을 알렸다.
그런데 진주로 가는 손님이 술을 과하게 마시고 졸다가 엉뚱하게 삼천포행 객차로 옮겨 타게 되어 진주가 아닌 삼천포로 잘못 가게 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3) 부산발 순천행 열차는 진주에서 분리하여 삼천포로도 운행을 하였다.
순천으로 가는 손님이 객차를 분리할 때 삼천포행 객차로 잘못 옮겨 타 삼천포까지 가게 되었다.
4) 진주에서 고성을 가다 보면 사천을 조금 지나 3번 국도와 겹쳐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고성을 가려면 왼쪽 길로 들어서야 하는데 자칫 직진 코스인 3번 국도를 탈 수가 있다.
3번 국도를 타고 내려가면 그 종점인 삼천포에 닿는다.
5) 진주로 가는 길과 삼천포로 가는 길이 갈려 있었다.
진주로 가려던 사람이 삼천포로 향하는 길로 잘못 접어들어 결국 삼천포까지 가게 되었다.
6) 진해에 근무하던 해군 병사가 서울에서 휴가를 보내다가 기차로 귀대하고 있었다.
진해로 가려면 삼랑진에서 열차를 갈아타야 하는데, 잘못해서 삼천포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게 되었다.
그 병사는 귀대 시간을 훨씬 넘겨 도착하여 기합을 받았다.
이 유래설을 종합해 보면 열차나 자동차를 타고 ‘진주’나 ‘고성, 순천, 진해’ 등으로 가다가 열차를 잘못 갈아타거나 길을 잘못 들어서 엉뚱한 장소인 ‘삼천포’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그 본래의 목적지로 ‘진주’와 ‘고성, 순천, 진해’ 등이 거론되지만 ‘진주’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진주’는 아래로 ‘삼천포’와 직접 연계되는 도시이자 ‘삼천포’보다 큰 도시이기 때문이다.
‘진주’로 가려다가 길을 잘못 들어 진주 밑에 있는 삼천포까지 가게 되었다는 것이 이 표현의 핵심 요지가 아닐까 추측된다.
여기에 자동차를 탔건 기차를 탔건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삼천포로 빠지다’는 표현은 ‘길을 잘못 들다’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이야기가 곁길로 빠지다’, ‘어떤 일을 하는 도중에 엉뚱하게 다른 일을 하다’ 등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로도 쓰인다.
삼천포 주민들이 ‘삼천포’가 들어가는 이 표현을 좋아할 리가 없다.
공식석상에서 이 표현을 썼다가 정식 사과하는 일까지 생기는 것을 보면, 삼천포 주민들이 이 표현을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알 수 있다.
지역 감정을 유발하는 이 표현보다 이왕이면 “잘 나가다 샛길로 빠지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라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되었던 삼천포는 현재 사천시로 이름이 바뀌었다.
하지만 기후가 온난하고 한려수도의 빼어난 경관이 감싸고 있어 한 번 가본 사람들이 다시 찾는 아름다운 도시다.
행정의 중심지로 발전한 곳이 아니고 포구로서 성장한 곳이었다.
고려 성종 때 조세미를 수송하기 위하여 이곳에 통양창(通陽倉)을 설치하였다.
조창을 중심으로 사람과 물산이 집산하게 되니 여기에 삼천리라는 새로운 마을이 생기게 된 것이다.
통양창이 개성에서 수로 3,000리나 되는 먼 곳이라 하여 이러한 지명이 생겼으며, 여기가 삼천포의 근원이라고 전하여 왔다.
1488년(성종 19) 삼천진(三千鎭)을 설치하고 진성을 쌓아 방비를 강화하였다.
삼천진은 1619년(광해군 11) 고성현 산양면(지금의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면) 영운리로 옮기고 진성을 축성하였다.
1895년 지방관제 개정으로 사천군이 되면서 삼천리는 삼천리면으로 승격되었다.
1914년 삼천리면을 수남면으로 개칭하고, 1918년 문선면과 수남면을 합하여 삼천포면으로 하였다가 1931년 읍으로 승격시켰다.
광복후 1956년 삼천포읍이 남양면을 편입하여 시로 승격하여 삼천포시가 되었다.
1988년 당시 삼천포시의 면적은 58.81㎢, 인구는 6만 4464명, 27개 동이 있었으며, 시청소재지는 벌리동이었다.
삼천포와 관련하여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는 부정적 의미의 속담이 있다.
삼천포시는 1995년 5월 10일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당시 사천군과 통합되어 사천시가 되었다.
삼천포항은 1966년 4월 16일 무역항으로 지정되어 남해안과 서해안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서부 경남의 관문으로서 수출 광석류, 고령토 등을 처리하는 동시에 화력발전소 연료 수송지원항으로 발전하고 있다.
형성 or 변천
1962∼1966년 사이에 물량장 복구공사 및 준설공사, 1967∼1971년 사이에 안벽복구·물양장 및 호안복구 등의 공사, 1972∼1976년 사이에 내항 준설공사 등이 이루어졌다.
2009년 현재 주요 항만시설은 안벽이 1,837m, 방파제는 2,335m, 물양장이 3,051m, 잔교는 4기가 있다.
산빅접안능력은 9척으로 10만톤급 2척, 5만톤급 1척, 1만톤급 2척, 5천톤급 2척, 1천톤급 2척 등이다. 연간 하역능력은 1964만 6천톤이다.
현재 낙도 보조항로로 삼천포∼욕지 간 등이 개설되어 있다.
2009년의 전체 입출항 선박은 2,753척이며 총톤수는 2,932만 6,930톤에 달한다.
그 가운데 외항선은 690척에 2,784만 6,211톤이고, 내항선은 2,063척에 148만 719톤이다.
외항선의 입항 척수는 348척이고 총톤수는 1,401만 6,405톤이며, 동남아시아에서 입항한 선박이 160척에 654만 189톤으로 가장 비중이 크다.
다음은 대양주에서 입항한 선박이 83척에 549만 9,543톤,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에서 입항한 선박이 60척에 100만 9,917톤, 북미에서 입항한 선박이 12척에 85만 1,792톤이다.
외항선의 출항선은 342척이고 총톤수는 1,382만 9,806톤이며, 동남아시아로 출항한 선박이 133척에 544만 9,104톤으로 가장 많다.
다음은 대양주로 출항한 선박이 78척에 514만 9,084톤,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로 출항한 선박이 71척에 201만 4,713톤, 북미로 출항한 선박이 15척에 95만 7,597톤이다.
2009년의 입출항 화물물동량 처리실적은 모두 2,412만 8,264톤으로 입항 물동량이 2,412만 8,354톤이고 출항 물동량은 270톤이다.
품목별 화물은 유연탄이 2,228만 4,926톤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뒤를 이어 철광석 광석 및 생산품 62만 2,343톤, 무연탄 44만 7,149톤 등으로 대부분이 유연탄이다.
2009년에 연안으로 입출항한 입항 척수는 모두 1,038척이고 입항 톤수는 73만 6,665톤이다.
출항 척수는 1,025척이고 출항 톤수는 74만 4,054톤이다.
연안 입항화물은 60만 6,919톤이고 연안 출항화물은 59만 5,289톤이다.
울창한 송림이 분포하고 있는 데다 수많은 왜가리가 떼지어 살기 때문에 청송백학(靑松白鶴)의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그래서 학섬은 천연기념물 제208호로 보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