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2일 수요일

지수신 , 遲受信.

지수신 , 遲信.



생몰년 미상. 백제의 부흥운동가.
660년(의자왕 20) 백제가 멸망한 뒤 유민들이 부흥운동을 일으켜 처음에는 고구려·왜국의 후원을 받음으로써 그 세력이 강하여졌다.
얼마 가지않아 백제부흥군 지도층의 내분이 생기고, 또 663년(문무왕 3) 9월 당나라와 신라 연합군의 침공을 받아 두릉이성()·주류성() 등 여러 성이 함락당하자, 
백제왕 부여풍()은 고구려로 달아나고, 왕자 부여 충승()·부여 충지() 등은 그 무리를 이끌고 왜인과 함께 항복하였지만, 그만은 북부의 거점인 임존성()에 웅거하며 항복하지 않았다.

10월 21일부터 시작된 신라군의 침공을 잘 막아 11월 4일 스스로 물러가게 하였다. 
대부분의 성이 주류성의 함락과 동시에 항복하고 말았으므로 임존성은 고립되어 있었고, 부흥운동을 하다가 당에 항복한 흑치상지()·사탁상여() 등이 오히려 임존성을 공격해 오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663년말 고구려로 달아났으며, 임존성도 함락되고 말았다.

신라 문무왕() 3년(663년) 백제왕은 도망하고 왕자들은 항복하였으나 백제 장군 지수신은 임존성()을 차지하고 끝까지 지켰다. 
신라군이 여러 차례 쳤으나 이기지 못하고 퇴군(退)하였다.

660년 나(羅)·당(唐) 연합군의 침입으로 사비성이 함락되자 임존성에서 거병한 백제의 좌평 귀실복신과 도침을 따라 부흥운동에 나선 것으로 보이지만, 부흥운동 시기의 자세한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한때 당군이 주둔하던 사비성을 포위해 보급로를 차단하며 승승장구하던 백제 부흥군 지도부가 내분으로 와해되어가는 와중에, 지도부 내의 실력자였던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전권을 장악한 것도 모자라, 거꾸로 부여풍까지 죽이려다 거꾸로 부여풍에게 살해당하고, 백강 전투에서 백제·왜의 연합군이 나·당 연합군에게 궤멸되고 부여풍이 달아난 주류성이 연합군에게 함락되는 등, 백제 부흥군 세력의 패색이 점차 짙어져가는 상황 속에서 끝까지 임존성을 지켰다. 

당나라에 항복한 옛 백제 장수 흑치상지·사타상여의 공격으로 마침내 임존성이 함락당하자 처자를 버리고 고구려로 망명했다. 


망명 뒤의 행적은 알 수 없다.

조선조 남효온이나 안정복 같은 유학자들에 의해, 다 스러져가는 나라를 끝까지 지킨 충신으로 추앙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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