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26일 수요일

대한민국헌법 , 大韓民國憲法.

대한민국헌법 ,法.

제헌헌법 전문
대한민국 헌법인 제헌헌법 전문.1948년 7월 12일 작성되었다.
유형제도
시대현대
성격법제, 법률
시행일시1948년 7월 12일


국가통치체제의 기초를 정하는 최고의 근본법.


헌법과 그 기초 위에 서는 통상법()을 구별하는 것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이래로 행하여진 일이다.


대한민국헌법은 한국의 최고 기본법으로 민정(民定), 경성(硬性), 성문(成文)의 단일법전이다.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로 구성된 국회(제헌국회)가 헌법기초에 착수하여 동년 7월 17일 공포된 제헌헌법 이후 1952년 대통령 직선제 1차 개헌, 1954년 이승만 대통령 3선을 위한 소위 '사사오입' 파동을 통한 2차 개헌, 1960년 4ㆍ19 뒤 내각책임제로 전환하는 3차 개헌, 반민주행위자처벌에 관한 부칙조항 삽입을 위한 4차 개헌, 그해 5ㆍ16 발생 후 대통령제로 전환하는 5차 개헌이 있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 3선을 위한 목적으로 단행된 6차 개헌, 1972년 유신체제 전환을 위한 7차 개헌, 1980년 5ㆍ18 이후 신군부 집권에 따른 전두환 정권으로의 전환을 위한 8차 개헌, 그리고 1987년 6ㆍ29 이후 민주화 결과에 따라 대통령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중심으로 하는 9차 개헌 등이 있었다.

지난 1987년 10월 27일 국민투표에 의하여 제9차로 개정, 공포되어 1988년 2월 25일부터 시행된 현행 헌법은 전문(前文)을 비롯하여 총강(總綱), 국민의 권리와 의무, 국회, 정부, 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 지방자치, 경제, 헌법개정 등 10장으로 나뉜 본문(本文) 제130조 및 부칙(附則) 제6조로 구성되어 있다.




근세에 이르러 정치상의 자유주의의 욕구로 군주의 전제권력에 대하여 제한을 가하려는 요구가 강하여짐에 따라 이 구별은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한 근본법 특히 자유주의·민주주의를 기본원리로 하는 국가의 근본법을 헌법이라고 부르는 관습이 발생하였다.
헌법의 개념은 다음의 셋으로 구별되는 것이 보통이다.

고유의미의 헌법:
국가의 근본법으로서의 헌법을 말하는데 이런 의미에서의 헌법은 국가가 있는 이상 반드시 있는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의 헌법을 가지지 않는 국가는 국가가 아니고 무정부이다.


입헌주의적 의미의 헌법:
이 의미에서의 헌법의 개념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원리로 하는 입헌정체()를 채택하는 국가의 근본법만을 지칭하는 것이며, 이 의미에서는 모든 국가가 헌법을 가지는 것은 아니고 국가는 ‘헌법을 가지는 국가’, 즉 입헌정체의 국가와 ‘헌법을 가지지 않은 국가’, 즉 비민주적인 비입헌정체의 국가로 구분된다.
입헌주의적 의미의 헌법은 첫째로 국민의 자유보장을 위한 기본권의 규정, 둘째로 권력분립에 관한 규정을 가지는 데 특색이 있고, 또 특수한 예외를 제외하고 대개가 성문헌법이다. 이 의미의 헌법의 개념은 근대의 입헌국가의 성립과 더불어 발생하였으므로 근대적 의미의 헌법이라고도 한다.



형식적 의미의 헌법:
고유의미의 헌법 또는 입헌주의적 의미의 헌법에 속하는 법규범의 전부 또는 일부가 성문법의 형식, 즉 성문헌법의 형식을 취하고 그 위에 그 성문헌법이 다른 성문법, 특히 국회가 제정하는 법률과 구별되는 특수한 성문법 형식을 취할 때 이것을 형식적 의미의 헌법이라고 한다.
우리의 <대한민국헌법>이 그 좋은 예이다. 형식적 의미의 헌법의 주요한 내용은 실질적으로 국가의 근본법을 의미하는 실질적 의미의 헌법에 속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양자가 전적으로 범위를 같이하는 것은 아니다.
위에 본 세 가지의 어느 의미에서도 헌법은 국가의 근본법이며 최고법()이기 때문에, 법률·명령·규칙 등 모든 국법은 직접·간접으로 헌법의 수권()에 의하여 제정되고 헌법에 최종적인 타당 근거를 두며 헌법에 의한 제한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헌법에 위반되는 법률·명령·규칙 등은 위헌심사에 의하여 그 효력이 부인되는 것이 통례이다.
우리 나라의 성문헌법이며 형식적 의미의 헌법인 <대한민국헌법>은 1948년 7월 12일에 제정, 그달 17일에 공포되고, 1952년 7월 7일 제1차 개정, 1954년 11월 29일 제2차 개정, 1960년 6월 15일 제3차 개정, 1960년 11월 29일 제4차 개정, 1962년 12월 26일 제5차 개정, 1969년 10월 21일 제6차 개정, 1972년 12월 27일 제7차 개정, 1980년 10월 27일 제8차 개정, 1987년 10월 27일 제9차 개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 원리로 하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로서의 입헌주의, 그 중에서도 대중민주주의와 복지국가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적 입헌주의를 그 기본질서로 삼고 있다.

입헌주의:
첫째,
헌법은 국민주권의 원리 내지 국민자치의 사상에서 국민주권의 원리를 선언하는 동시에 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하고 있다.
대통령선거권·국회의원선거권·지방의회의원선거권·공무원선거권·공무담임권을 규정하고 있으며, 직접민주정치의 방법으로 헌법개정에 대한 국민표결제와 대통령이 부의한 중요 정책에 대한 국민표결제를 채택8하고, 소급입법에 의한 제한도 받지 않도록 보장하였다.


둘째,
삼권분립주의를 채택하여 입법·행정·사법의 삼권을 분립시켜 이를 국회·정부·법원에 분속시키고 삼권의 견제·균형의 상호작용을 마련하고 있다.


셋째,
헌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법치주의를 채택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다음, 헌법에 열거되지 않은 이유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경시되지 않는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에 의하여서만 제한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위에 그 제한은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게 하고 있는데, 본질적 내용의 침해란 제한의 필요와 정도가 비례()의 원칙에 심하게 어긋나서 그 자유나 권리를 인정한 보람을 느낄 수 없게 된 것을 말한다.


넷째,
헌법은 국민의 평등을 보장하며,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 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전문),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불합리한 차별을 받지 않으며, 사회적 특수계급제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있다.



현대적 입헌주의:
첫째,
헌법은 재산이 없는 국민에게도 선거권을 비롯한 참정권을 부여하는 대중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데, 이것은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에서의 보통·평등 선거제에 가장 명백하게 나타나고 있다.


둘째,
헌법은 복지국가주의에 서서, 먼저 전문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의 모든 국민의 기회균등의 보장을 선언한 다음, 특히 경제조항(제9장)에서 우리 나라 경제질서의 목적이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유지 및 경제의 민주화에 있음을 명백히 하였다.
이를 위하여 필요한 범위 안에서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극단적인 개인주의, 자유방임주의에 선 초기 자본주의의 폐단과 모순의 제거를 기하고 있다.
국민의 권리·의무에 관하여서도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함을 원칙으로 하되, 소극적인 질서유지뿐 아니라 적극적인 공공복리의 향상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재산권의 행사에 있어서 공공복리를 위한 의무화를 규정하며(제23조 제2항), 나아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생존권적 기본권을 보장하는 동시에 교육의 의무, 근로의 의무와 같은 공공복리를 위한 현대적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평화주의:
헌법은 국가 내외에 걸쳐 평화주의를 그 기본원리의 하나로 하고 있다.

첫째,
헌법은 대내적으로 평화통일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것은 한반도에 6·25전쟁과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한 남북대화를 전제로 한 것이며, 이에 관한 헌법의 조항으로서는 전문, 대통령의 의무, 대통령의 취임선서 등에 관한 것도 들 수 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적 통일정책의 수립 및 추진을 규정하는 제4조와 제92조의 민주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에 관한 것이다.
다음으로 헌법은 대외적으로는 국제평화주의를 채택하여 전문에서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것을 선언한 다음 제5조 제1항에서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전쟁을 부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헌법>은 단일법전인 성문헌법이며 형식적 의미의 헌법이다.
구성은 전문·10장·부칙으로 되어 있다.
민정()·경성()·성문의 단일법전이다. 
1987년 10월 27일 개정·공포된 현행 헌법은 전문()을 비롯하여 총강, 국민의 권리의무, 국회, 정부, 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 지방자치경제, 헌법개정 등 10장으로 나뉜 본문 130조 및 부칙 6조로 구성되어 있다.

헌법의 제정·개정의 유래와 이념 및 목적을 규정한 전문,
제1장 총강,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3장 국회,
제4장 정부,
제5장 법원,
제6장 헌법재판소,
제7장 선거관리,
제8장 지방자치,
제9장 경제,
제10장 헌법개정 및 부칙 6개조가 이것이다.


‘전문’에서는 헌법의 목적 내지 이념으로서 민족단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로서의 입헌주의의 확립, 복지국가의 구현, 국제평화주의 등을 선언한 다음 헌법의 제정·개정의 연혁을 기술하고 있다.
제1장
‘총강’에서는
국가형태, 국민 및 재외국민의 보호, 영토, 통일의 지향과 평화적 통일정책의 수립 및 추진, 국제평화주의와 국군의 사명, 국제법의 국내법적 효력과 외국인의 지위, 공무원, 정당,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 등을 규정하고 있다.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서는 국민의 권리와 의무의 기본 원리인 동시 자유민주국가의 최고구성원리인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의 존중 및 이를 위한 기본적 인권의 보장을 규정한 다음, 평등권·자유권·참정권·수익권·생존권의 순으로 기본권을 규정하고, 국민의 의무로 납세·국방·교육·근로의 의무 등을 규정한다.


제3장
‘국회’에서는 입법부인 국회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제4장
‘정부’에서는 제1절 대통령에서 행정부 수반이며 국가원수인 대통령에 관하여 규정한 다음,
제2절 행정부에서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을 규정하고 이어 정책최고심의기관인 국무회의와 중앙집행기관인 행정 각 부를 규정한 뒤 감사원에 관한 규정을 두었다.

제5장
사법부인 법원을,

제6장
법률위헌심사권·탄핵심판권·정당해산결정권, 국가기관상호간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간 및 지방자치단체상호간의 권한쟁의에 관한 심판권 및 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의 심판권을 가지는 헌법재판소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다.


제7장
선거의 공정과 정당사무의 처리를 위한 선거관리위원회 및 선거관리를,


제8장
민주정치의 훈련장이라 불리는 지방자치를,


제9장
현대복지국가의 수정자본주의에 관한 경제조항을, 제10장에서는 헌법개정을, 부칙 6개 조에서는 경과규정을 각각 규정하고 있다.




한국 헌법 개정사

대한민국헌법은 한국의 최고 기본법으로, 현재까지 9차례 개정이 이루어졌다.

<제1공화국>
제헌헌법-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로 구성된 국회(제헌국회)가 헌법기초에 착수하여 동년 7월 17일 공포. 대통령, 부통령을 국회에서 간접 선거로 선출하도록 함.

1차 개헌(1952년 발췌개헌)-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승만이 국회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없음을 인정하고 장기 집권을 위해 강제력을 동원하여 헌법을 개정함.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정부안과 의원내각제를 주내용으로 하는 의외 발의안이 충돌하자 정부와 의회가 협장으로 양 개정안에서 발췌한 발췌개헌안을 만들어 공고절차도 없이 기립표결로 통과. 이렇게 야당의 개헌안과 정부의 안을 절충한데서 '발췌개헌'이라고 함.

2차 개헌(1954년 사사오입)- 이승만 대통령 3선을 위한 개헌
대통령의 중임을 1차로 제한한 규정을 초대 대통령에 한하여 철폐하는 것이 골자.
당시 국회에서 재적 203명 중 135표를 얻어서 개헌선(재적 2/3인 135.333)에 0.333인이 미달되어 부결되었다. 
의장은 부결을 선포했으나 2일후 '4사5입' 이론을 내세워 개헌선을 135표로 수정하여 개헌을 선포하였다.

<제2공화국>
3차 개헌(1960년 6월)- 4.19 혁명 후 내각책임제로 전환
이승만 정권의 3.15부정 선거는 대대적인 국민의 저항을 받아 4.19로 이어지게 되고 자유당 정권은 무너졌다. 
이승만은 하야하였고, 그 후 의원 내각제 정부 형태로 3차 개헌을 하게 되었다. 
개헌에 따라 의원내각제가 도입 되었고, 장기집권에 따른 독재를 방지하기 위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보장하고 공무원의 신분 및 정치적 중립성 보장하는 내용이다.

4차 개헌(1960년 11월)- 반민주행위자처벌에 관한 부칙조항 삽입
3.15부정선거 관련 반민주 행위자 처벌을 위한 소급적용을 허용하는 헌법부칙만 개정.

<제3공화국>
5차 개헌(1962년 12월)- 5.16 발생 후 대통령제로 전환
1961년 박정희가 주도하는 5.16쿠데타로 헌정이 중단되고 군정이 실시되었다. 
이후 민정 이양을 위한 헌법 개정이 이루어져 대통령제로 복귀하고 대통령의 재임을 2기로 국한하는 5차 헌법 개정안이 국민 투표로 확정되어 제3공화국이 출범하게 되었다. 
5차 개헌은 처음으로 국민투표를 거친 헌법 개정이었다.

6차 개헌(1969년 3선개헌)- 박정희 대통령 3선을 위한 목적으로 단행
5차 개헌때 3선을 금지한 조항을 철폐, 대통령의 재임을 3기까지 가능하게 함.

<제4공화국>
7차 개헌(1972년 유신헌법)- 유신체제 전환을 위한 개헌
1972년 10월17일 비상초치로 헌정이 중단되었고 비상국무회의에 의해 만들어진 개정안이 11월 국민투표를 통과하였다. 
유신헌법의 특징은 기본권의 약화와 대통령의 1인 장기집권체제의 제도적 확립이다.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해 간접선거로 선출되며, 임기는 6년으로 중임이나 연임제한에 관한 조항을 두지 않아 1인 장기집권이 가능하였다.

<제5공화국>
8차 개헌(1980년)- 신군부 집권에 따른 전두환 정권으로의 전환
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 유신체제가 막을 내리고 최규하 대통령이 취임하자 12.12사태로 전두환 , 노태우 신군부가 정권 장악. 신군부는 국회를 해산하고 자의로 국가보위입법회의라는 기구를 만들어 헌법을 만들고 국민투표로 확정하였다. 
이 헌법은 전면 개헌으로서 대통령을 간선으로 뽑고 대통령의 임기를 7년 단임으로 하였다.

<제6공화국>
9차 개헌(1987년 현행헌법)- 대통령 직선제
1987년 범국민적 저항운동 6월 항쟁이 일어나자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 이른바 '6.29선언'으로 직선제 개헌을 약속. 그 결과 최초로 여야 합의를 통해 개헌을 하게 되었다. 
1987년 10월 27일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된 현행 헌법은 대통령을 직선제로 하고 5년 단임으로 하였다. 
현행 헌법은 전문(前文)을 비롯하여 총강(總綱), 국민의 권리와 의무, 국회, 정부, 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 지방자치, 경제, 헌법개정 등 10장으로 나뉜 본문(本文) 130조 및 부칙(附則) 6조로 구성되어 있다.

헌법 , 法.

유형개념용어
시대현대


국가통치체제와 기본권 보장의 기초에 관한 근본법규.

헌법개념은 역사적 발전과정과 사회적 접근방법에 따라 다르게 분석, 정의되는 다의적 개념으로 변천되어 왔기 때문에 이를 일의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본다면 헌법이란 국가의 기본법으로서 국가의 구성·조직·작용과 기본권보장에 관한 기본적 원칙을 규정한 근본법이며 최고의 수권법이라고 할 수 있다.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 제16조에 “권리의 보장이 확보되지 않고 권력분립이 되어 있지 아니한 모든 사회는 헌법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기본권보장과 권력분립은 헌법의 불가결한 내용이다.

헌법개념의 이중성 헌법은 국가의 구조·
조직의 의미에서도 사실로서의 국가의 통치형태를 의미하나 다른 면에서는 이와같은 국가의 통치형태를 규율하는 법규범을 의미한다.

사실로서의 헌법개념(사회학적 헌법개념):
라살레(Lassale,F.)는 헌법의 본질을 국가에 존재하는 사실적 권력관계라 하였고, 스멘트(Smend,R.)는 국가를 통합과정이라 보고 헌법을 통합과정의 법질서 내지 생활형식이라 하였으며, 슈미트(Schmitt,C.)는 헌법이란 헌법제정권력의 행위에 의한 국가의 정치생활의 종류와 형태에 관한 근본결단이라 하였다.

법규범으로서의 헌법개념(법학적 헌법개념):
켈젠(Kelsen,H.)은 헌법을 광의의 헌법과 협의의 헌법으로 나누고 있는데, 협의의 헌법은 기본헌법 또는 기본질서라고 하고, 광의의 헌법은 국가조직법과 인권보장법으로 구성된다고 하였다. 캐기(K○gi,W.)는 헌법을 국가최고법규범의 체계로 파악하였다. 스테른(Stern,K.)은 국가의 통치질서와 가치질서의 기본원칙에 관한 최고위의 규범적 표현이라 하였다.

헌법개념의 규범성의 우위:
헌법현상은 헌법규범과 현실의 순환관계에 의하여 형성되고 있으며, 어느 일면을 배제하고 헌법개념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고 양면을 모두 파악하여야 한다. 그러나 헌법의 본질에 대해서는 그 규범적 측면이 보다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고유한 의미의 헌법" 
고유한 의미의 헌법이란 국가의 최고기관을 조직, 구성하고, 이들 기관의 행위의 방법, 권력기관의 상호관계 및 활동범위를 규정하는 국가의 근본조직법을 말하며, 어떠한 국가든지 이 고유한 의미의 헌법은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근대적·입헌주의적 의미의 헌법" 
근대적·입헌주의적 의미의 헌법은 국가권력의 조직과 제한에 관한 근본적 규범(권력분립)과 함께 국민의 국가권력에 대한 지위보장(기본권보장)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 헌법으로서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구현한 것으로 국가권력을 조직하는 측면보다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측면이 더 중요시되고 있다.

현대적·복지주의적 의미의 헌법" 
근대적·입헌주의적 의미의 헌법은 오늘날 현대적·복지주의적 헌법으로 변천하고 있다. 근대적·입헌주의적 의미의 헌법은 자유와 형식적 평등을 중요시한 데 반하여 현대적·복지주의적 의미의 헌법은 실질적 평등의 보장을 보다 중요시하고 있다.
이러한 현대적·복지주의적 의미의 헌법은, 첫째 국민주권주의를 실질화하고, 둘째 기본권 중에서 사회적 기본권을 특히 보장하며, 셋째 실질적 법치주의를 채택하고, 넷째 권력행사의 통제와 합리적 조정을 기하며, 다섯째 정당국가적 경향과 정당제도의 헌법적 수용이 나타나고, 여섯째 사회적 시장경제체제를 보장하며, 일곱째 대외적 기본원칙으로서 국제평화주의를 채택하고 있다는 특질을 가지고 있다.

실질적 의미의 헌법" 
실질적 의미의 헌법이란 성문 또는 불문의 형식여하를 불문하고 그 내용이 성질상 국가의 구성·조직·작용 및 국민과의 관계에 관한 근본원칙이 들어 있는 법을 말한다. 따라서, 성문헌법이 없는 영국 등의 불문헌법국가도 실질적 의미의 헌법은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형식적 의미의 헌법" 
형식적 의미의 헌법은 법에 규정되어 있는 내용에 착안하지 않고 그 성립형식·존재형식·형식적 효력 등의 외형적 특징에 따라서 정의한 헌법개념으로서, 헌법전이라는 특별한 형식으로 성문화된 법규범을 말한다. 형식적 의미의 헌법은 대체로 실질적 의미의 헌법과 그 내용을 같이하나 반드시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는 1910년 일본의 강제에 의한 한일합병조약에 의하여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광복 이후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총선거에 의하여 구성된 국회에서 제1공화국 <헌법>이 제정되었다. 그 주요 내용은 3권분립제와 기본권보장제의 채택 및 대통령(간접선거)중심제와 단원제국회, 사법부 등이 있다.

1952년 7월 2일 양원제, 대통령 직선제 및 국회의 국무원불신임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제1차개헌(발췌개헌), 1954년 11월 29일 초대 대통령에 한하여 3선금지규정의 폐지, 국무총리제폐지, 국무위원에 대한 개별적 불신임제, 군법회의에 관한 헌법적 근거설정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제2차 개헌(사사오입개헌)이 있었다.

1960년 6월 15일 4·19혁명에 의한 개헌으로 의원내각제채택,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의 절대적 기본권화, 정당보호규정의 설정,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및 헌법재판소의 설치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제3차 개헌(제2공화국헌법), 1960년 11월 29일 반민주행위자처벌을 위한 특별법제정의 근거를 부칙에 마련하고, 특별재판부 및 특별검찰부의 설치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제4차 개헌이 있었다.

1962년 12월 26일 5·16군사정변에 의한 개헌으로 대통령중심제, 정당정치적 경향 강화, 헌법개정의 국민투표제, 법원의 위헌법률심사권 행사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제5차 개헌(제3공화국헌법), 1969년 10월 21일 대통령의 계속 재임시 3기까지 가능, 국회의원정수의 증원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제6차 개헌, 1972년 12월 27일 10월유신 선언에 의한 개헌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 신설, 임기연장과 긴급조치권·국회해산권 등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 강화, 헌법위원회 신설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제7차개헌(제4공화국헌법:유신헌법)이 있었다.

1980년 10월 27일 10·26(박대통령 저격 사망)사태에 의한 개헌으로 기본권의 개별적 법률유보 삭제 등 기본권조항 보강, 선거인단에 의한 대통령간선 및 단임 7년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제8차개헌(제5공화국헌법), 1987년 10월 29일 6·29선언에 의한 제9차개헌(제6공화국헌법)이 있었다.
현행 제6공화국 <헌법>은 제4·5공화국 <헌법> 당시 대통령의 간선과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 및 그 남용 등에 대한 국민불만의 폭발에 의하여 개정되었기에 무엇보다도 대통령의 직선 및 그 권한 축소, 기본권의 보강 등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따라서 현행 제6공화국 <헌법>은 과거 제4·5공화국 <헌법>에 비하여 국민의 기본권보장 및 권력분립에 보다 충실을 기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으나 아직도 미흡한 점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하겠다.
현행 제6공화국 <헌법>에서 개정 또는 신설된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전문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의 계승 및 조국의 민주개혁을 천명하였고, 둘째 총강에서 평화적 통일노력의무 및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하였으며, 셋째 기본권분야에서 적법절차도입, 언론·출판·집회·결사에 대한 허가·검열 금지, 최저임금제, 형사피해자의 법정진술권, 범죄피해구조청구권, 근로권의 확대 등의 규정을 둠으로써 기본권을 보다 강화하였다.
넷째 국회의 국정감사권을 부활하여 국회의 지위와 권한을 강화하였고, 다섯째 대통령직선제와 5년 단임으로하고, 대통령의 국회해산권은 삭제, 대통령의 비상조치권을 법률적 효력을 가지는 긴급재정경제처분·명령권 및 긴급명령권으로 축소조정하여 권력분립에 보다 충실을 기하였으며, 여섯째 대통령이 대법관을 임명함에 있어서 국회의 사전동의를 얻도록 함으로써 대법원 구성에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 하였다.
일곱째 과거의 유명무실하였던 헌법위원회를 폐지하고 새로이 헌법재판소를 설치하여 기관간 권한쟁의 심판·헌법소원심판·위헌법률심사·정당해산심판·탄핵심판권을 추가로 부여하였고, 소장은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 여덟째 경제질서에 있어서는 경제민주화를 위한 규제와 조정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초안

대한민국 헌법 초안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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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헌법
임정 헌법

대한민국헌법 [大韓民國憲法]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홍익인간 `

    • 홍익인간 `

    •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삼국유사≫의 단군 신화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나라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최고 이념으로, 윤리 의식과 사상적 전통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삼국유사≫의 단군 신화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나라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최고 이념으로, 윤리 의식과 사상적 전통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 넓을 홍
 : 더할 익
 : 사람 인
 : 사이 간

≪삼국유사()≫ <기이편()>에 실린 고조선() 건국 신화에 나오는 말로, ‘널리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삼국유사≫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고기()>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인()의 아들인 환웅()이 자주 세상에 뜻을 두어 인간 세상을 탐내므로( ),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 태백()을 내려다보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했다( ). 이에 천부인() 3개를 주고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그곳을 신시()라 이르니 이가 환웅 천왕()이다. 그는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곡식()ㆍ생명()ㆍ질병()ㆍ형벌()ㆍ선악()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이 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았는데, 늘 신웅(, 환웅)에게 사람되기를 빌었다(). 마침내 신(, 환웅)이 신령스러운 쑥 한 심지와 마늘 20개를 주며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이 되리라 하였다. 곰과 호랑이는 이것을 받아 먹었다. 하지만 곰은 세 이레(21일)를 금기하여 여자가 되었지만, 호랑이는 참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했다. 웅녀()는 혼인을 할 상대가 없어 늘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 배기를 축원하였다. 환웅이 잠깐 변해 그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으니, 이름을 단군 왕검()이라 하였다.”

이러한 내용의 단군() 신화에는 우리 민족의 가치 의식이 그대로 나타나 있을 뿐 아니라,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과 ‘세상으로 나아가 도리로 교화한다’는 ‘재세이화()’의 인본주의적이고 현세주의적인 윤리의식과 철학사상의 특질이 잘 나타나 있다. 단군 신화에서는 하늘의 신인 환웅()도 인간 세계로 내려와 살기를 원하고(), 땅의 곰과 호랑이도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단군 신화에는 다른 나라의 신화와 달리 세계의 창조나 내세에 대한 내용이 없고, 오직 현재의 인간 세상만이 중시된다. 그리고 하늘의 신인 환웅의 관심도 어떻게 하면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고 도리로 교화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단군 신화에서 환웅()은 ‘홍익인간()’을 실천하기 위해 곡식ㆍ생명ㆍ질병ㆍ형벌ㆍ선악 등 인간 사회의 온갖 일을 주관하였다. 이처럼 ‘홍익인간()’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경제와 사회, 복지와 정의 등 인간의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끊임없는 개선과 향상을 지향하는 사회적이고 실천적인 개념이다.

단군 신화에서는 다른 나라의 신화들과는 달리 신들 사이의 대립이나 신과 인간 사이의 갈등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심지어 곰과 호랑이도 같은 굴에서 살며 대립하지 않는다. 이처럼 ‘홍익 인간’의 이념에는 조화와 평화를 중시하는 세계관이 담겨 있다. 환웅이 웅녀와 혼인하여 단군을 낳는 과정은 천상과 지상의 결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단군은 하늘과 인간이 합하여 하나가 된 ‘천인합일()’의 존재이다. 조화와 평화를 중시하는 이러한 세계관은 원효의 화쟁() 사상, 불교의 ‘교선일치()’ 전통, 유ㆍ불ㆍ도(彿)를 통합한 동학() 등에서도 보여지듯이 한국 사상의 중요한 특징으로 나타났다.





홍익인간이라는 말은 『삼국유사』 고조선조와 『제왕운기』 전조선기에서 고조선의 건국과정을 전하는 내용 속에 나온다. 『삼국유사』 고조선조에서는 “고기()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인()의 아들 중에 환웅()이 있었는데, 자주 천하에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탐냈다. 아버지 환인이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홍익인간할만 하거늘, 천부인 세 개를 주어 내려가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삼천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로 내려가니 이를 신시()라 하였다”고 전한다. 이에 의하면 홍익인간은 환인이 환웅을 인간세상에 내려 보내면서 제시한 지침이었다. 『제왕운기』에서는 환인이 환웅에게 삼위태백으로 내려가서 홍익인간 할 수 있는지 그 의지를 물었고, 그런 지시에 응하여 환웅이 지상으로 내려온 것으로 되어 있다.
문헌기록에서는 홍익인간이 천신()인 환인이 인간세상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이었던 것으로 되어있지만, 실제적으로는 고조선 건국에 참여한 구성원들의 소망을 진술한 것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고대인들이 국가와 권력 및 통치자들에게 바라던 바를 환인의 이름을 빌어 신화적으로 표명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신화에 의하면 환웅이 지상에 내려와서 신시를 건설하고, 풍백·운사·우사를 거느려 주곡·주명·주병·주형·주선악 등 인간세상 360여사를 관장한 것으로 나오는데, 신시에서 환웅이 처결했다고 한 360여사는 모두 홍익인간이라는 지침을 세상에서 실천한 일이었을 것이다.
홍익인간은 흔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로 해석되나, 자의()에 충실하게 해석하자면 “인간을 크게 도우라”가 될 것이다. 그것은 인간을 모든 가치에 앞세우는 사상이다. 홍익인간은 ‘인간’을 ‘홍익’하라는 구조로 되어 있다. 여기서 ‘홍익’행위의 대상인 ‘인간’은 1차적으로는 인간사회나 공동체라는 의미를 가지지만, 신이나 동물에 대한 상대개념으로의 ‘사람’(HumanBeing)의 의미도 가지며, 국가나 통치자에 대한 상대개념으로의 ‘백성’-피치자의 의미와, ‘나’나 ‘에고’에 대한 상대개념으로의 ‘남’(타인)의 의미도 가진다고 분석된다. 그리고 ‘홍()’은 ‘널리’보다는 ‘크게’의 의미가 우선이다. ‘널리’로의 ‘홍’은 편중되고 독점되며 불평등한 것에 반대되는 의미이지만, ‘크게’로의 ‘홍’은 규모가 작고 부족하며 빈곤한 것에 대립되는 지향을 가진다. ‘익()’은 ‘이롭게 한다’거나 ‘돕는다’의 의미이며, 행복하게 해주라는 취지로 의역할 수 있을 것이다.

학자들 중에는 원효의 「대승기신론소()」에 홍익인간과 유사한 ‘홍익중생()’이라는 용어가 나오는 점 등에 주목하여 홍익인간이 불교사상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이들이 있어 왔다. 그러나 홍익인간은 단군신화에 본래 포함되어 있던 고유적 사상과 관점을 압축적으로 반영한 말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단군신화는 오랫동안 구전되어 오다가 한자가 유입된 후 한자로 번역되어 사서에 채록되는 과정을 밟았는데, 구전의 단군신화 속에 포함된 건국목적이나 지향가치에 해당하는 내용이 ‘홍익인간’으로 번역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군신화를 한문으로 처음 번역한 사람은 신화에 포함된 취지와 관점을 정확하게 전달해줄 적절한 한자어를 찾았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불교문헌에 나오는 ‘홍익중생’ 같은 용어를 보았을 것이지만, 그러나 ‘홍익중생’으로는 고유의 취지를 담아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단군신화는 인간중심사상으로 일관되고 있었으며, 홍익의 대상을 인간만이 아닌 모든 중생으로까지 확장하는 불교의 ‘홍익중생’과는 다른 지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보면 홍익인간은 불교와 상관없는 고유적 사상이었던 것이다.

홍익인간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서는 인본주의나 인간존중·복지·사랑·봉사·정의·민주주의·공동체정신·평화 등과 같은 여러 가지로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그 핵심적인 세 가지는 (1) 국가와 권력·돈·시장·학술·종교·교육과 과학기술 등 모든 문명장치는 인간을 위해(인간의 행복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보는 인본주의적 사상과, (2)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위대한 것으로 보는 이타주의적 윤리관, 그리고 (3) 내세의 행복이 아닌 현세의 복지를 우선시하는 현세주의적 사고 등이라 할 수 있다. 홍익인간은 인간행복을 위협하는 모든 상황에 대해 반대하며, 특히 국가와 권력(통치자)는 홍익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본다. 그리고 개개인들에게는 공동체와 이웃을 위해 대가 없이 봉사하는 적극적 윤리를 제시한다.
홍익인간은 『삼국유사』나 『제왕운기』에서 거론된 후 한말에 이르기까지 특별히 주목되지 않았다. 홍익인간을 되살려 낸 이들은 좌·우익을 초월한 통일민족국가를 추구하던 1920~1930년대의 진보적 민족주의자들이었다. 특히 단군의 건국으로부터 민족사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단군민족주의자들이 큰 역할을 하였다. 좌우통합의 통일이론으로 제안된 조소앙의 삼균주의나 안재홍의 신민족주의 같은 정치이론들은 자기 이론의 사상적 기원을 민족고유의 홍익인간이념에서 찾고 있다. 정인보나 김구는 홍익인간을 선공후사()의 인본주의적 윤리로 해석하여 민족공동체건설을 위한 기초덕목으로 삼았다.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주의자들이 발굴한 홍익인간은 해방직후 미군정의 교육분야 자문기구인 조선교육심의회에 의해 교육의 기본이념으로 채택되었다(1945.12). 그리고 정부수립 후 「교육법」이 정식으로 제정될 때 법제화되게 된다(1949.12). 「교육법」 제1조에서는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공민으로의 자질을 구유케 하여 민주국가 발전에 봉사하며 인류공영의 이상실현에 기여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교개관」(1958)에서는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으로 채택한 이유를, “홍익인간은 우리나라 건국이념이기는 하나 결코 편협하고 고루한 민족주의 이념의 표현이 아니라 인류공영이란 뜻으로 민주주의의 기본정신과 부합되는 이념”으로서, ‘우리 민족정신의 정수’이면서, 기독교의 박애정신과 유교의 인(), 그리고 불교의 자비심과도 상통되는 모든 인류의 이상이라는 데서 찾고 있다. 교육이념으로의 홍익인간은 교육이 길러야 할 인간상을 제시한 것이면서, 교육이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해 규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홍익인간할 수 있는 덕성과 역량을 가진 인재를 교육이 길러야 한다는 뜻과 함께, 교육은 권력이나 돈과 같은 가치가 아닌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활동이어야 한다는 점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홍익인간은 한민족 역사상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건국이상으로 이해되어왔다. 환웅이 신시를 건설한 목적이었고, 단군이 조선을 건국함에 있어서도 그 이념이 계승되었으리라 상정되기 때문이다. 교육사업을 지휘할 최고 지도이념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홍익인간이 현대 한국의 정치와 교육을 규율하는 기조원리로 실천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가 지배적일 것이다. 제시하는 바가 추상적이고 사실이 아닌 신화 속에서 거론된 것이라는 이유로,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시도도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홍익인간은 여전히 교육이념의 지위를 지키고 있으며, 한국의 교육과 정치를 반성하고 문명과 윤리를 비판하는 가치이자 이념으로 지속적으로 호명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삼국유사》에 따르면 하늘을 다스리는 환인의 아들 환웅은 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목적으로 태백산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에 내려와 신시를 세웠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홍익인간의 유래이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민족 정신을 높이기 위해 홍익인간을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건국 이념으로 삼았고, 8 · 15 광복 후에는 우리나라의 교육 이념이 되었다. 미군정의 교육 정책을 자문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선 교육 심의회가 홍익인간을 교육 이념으로 채택한 것이다.
    당시 일부 위원들은 홍익인간이 옛날 책에 나오는 믿기 어려운 말이라며 비판했다. 또한 일본이 천황 중심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내세웠던 팔굉일우(온 세계가 하나의 집이라는 뜻)와 비슷하다며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1949년에 만들어진 교육법 제1조에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교육을 해야 한다.’는 문구를 넣으면서 홍익인간은 우리나라의 교육 이념으로 확정되었다.


    1980년대 교육 민주화 운동이 벌어질 때에도 홍익인간의 이념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홍익인간이 너무 추상적인 데다 현대의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홍익인간은 1997년에 교육법을 폐지하고 대신 만든 교육 기본법 제2조에서도 교육 이념으로 계속 이어졌다.
    - 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고조선의 건국 이념이다.

계륵 , 鷄肋.

계륵 , 鷄肋.

고사성어"

닭 계
닭 계
• 글자 오른쪽 부수 새 조()가 새벽을 알리는 새 ‘닭’을 뜻함.
보기
계란()
삼계탕()
양계()
오골계()
갈빗대 륵(늑)
갈빗대 륵(늑)
• 사람 살과 몸의 육달월()과 힘 력()으로 이루어진 글자로 ‘갈빗대’라는 뜻.
보기
늑간()
늑골()
늑막염()
늑목(체조 기구, )

『삼국지연의』 나오는 이야기이다. 조조와 유비가 한중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치열하게 다툴 때였다. 조조는 군대를 오랫동안 주둔시키면서 싸움을 벌였지만, 쳐들어가더라도 이기기가 어렵고 물러나려 해도 유쾌하지 못한,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심정이었다. 이럴 즈음 마침 하후돈이 군막으로 들어온다. 야간 군호()를 지시 받기 위해서였다. 주방에서 들여온 닭백숙을 들여다보고 있던 조조가 무심결에 튀어나오는 말로 대답을 하고 말았다. “계륵()!” 주부 양수가 이 말을 전해 듣고는 곧바로 전군에 명하여 모든 행장을 꾸려 회군할 준비를 하라고 이른다.

그것을 이상히 여긴 하후돈이 그 이유를 묻자 양수가 대답한다. “닭갈비라고 하는 것은 먹으려고 하면 입에 들어올 만한 고기가 없고, 그렇다고 버리려고 하면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이지요. 이 때문에 틀림없이 회군하리란 사실을 아는 것이지요.” 이후 영채 시찰을 나선 조조가 이 사실을 알고 군심을 미혹되게 하여 혼란시킨 죄를 적용하여 양수를 참살한다. 뒤이어 순서를 바꾸어서 자신의 재간만 믿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한 양수가 수차에 걸쳐 조조의 미움을 사는 일을 서술한다.

즉 조조가 겉으로는 비록 양수를 훌륭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속마음으로는 양수를 몹시 증오하고 시기하였다는 것이다. 특히 조비와 조식이 태자 자리를 놓고 다툴 때 양수는 있는 힘을 다해 조식을 돕는다. 이 소식을 알게 된 조조는 더욱 양수를 미워하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일찍부터 양수를 없애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던 조조는 마침내 군심을 어지럽혔다는 죄목을 씌워 그를 참수한 것이다. 양수가 죽을 때 나이는 겨우 34살로 누가 보아도 애석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삼국지연의』에 묘사된 양수의 죽음은 그 중 적지 않은 줄거리가 모두 역사에서 전하는 기록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변형이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한중쟁탈전에서 확실히 양수가 ‘계륵’이라는 군호의 뜻을 간파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조조는 양수를 죽이지 않았다. 『삼국지ㆍ조조전』 배송지 주석에서 인용된 『전략』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건안 24년 가을에 이르러 조조는 양수가 계속해서 말을 누설시키고 제후들의 사건과 연루되었다는 죄명으로 그를 체포하여 죽였다. 양수는 죽음에 이르자 친구에게 말하기를, “나는 정말 나의 죽음이 늦었다고 생각하네.”라고 했다.’ 그 뜻은 조식 사건과의 연좌 관계를 말하는 것이라 짐작된다. 또 『후한서ㆍ양진전()』에 첨부된 양수() 부분에 기록된 사항을 살펴 보면, 재주가 있고 영민했기 때문에 조조가 심히 양수를 미워했고, 게다가 양수가 원술의 생질이었기 때문에 후환을 우려하여 마침내 사건에 연루시켜 그를 죽인 것이라고 하였다.

이현()의 주에서 인용한 『속한서()』에는,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양수가 임치후() 조식과 더불어 술을 마시고는 잔뜩 취해 함께 마차를 탔는데, 궁궐 출입시 반드시 거마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야 하는 황궁의 외문()인 사마문()에서 멋대로 마차를 내달렸는가 하면, 언릉후() 조창()을 헐뜯는 말을 지껄여대더라는 것이었다. 이 소문을 들은 태조(조조)가 크게 노하여 마침내 그를 체포하여 참수하니, 당시 나이 45세였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독자들은 조조의 행동에 더욱더 통탄하고 양수의 죽음에 깊은 동정심을 느끼는 것이다. 

예술적 가치로만 놓고 본다면 작자의 목적은 훌륭하게 달성된 것으로 평가된다.


닭의 갈비뼈라는 뜻으로, 큰 쓸모나 이익은 없으나 버리기는 아까운 사물 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을 비유하는 말이다.
 : 닭 계
 : 갈비 륵

후한서()》 <양수전()>에서 유래한 말이다. 
위()나라 조조()가 촉()나라 유비()와 한중()이라는 지역을 놓고 싸울 때의 일이다. 
한중은 토지가 비옥하고 물산이 풍부한 전략 요충지로서, 조조와 유비 중 누가 이 땅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서로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지역이었다. 
익주()를 점령한 유비가 먼저 한중을 차지해서 세력권 안에 두고 있었다. 
조조의 군대는 갈수록 유비 군대의 강력한 방어에 막혀 전진하기도 수비하기도 곤란한 상태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조조에게 닭국이 바쳐졌다. 
조조는 먹자 하니 먹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닭의 갈비가 꼭 지금의 상황과 같다고 생각되었다. 
그 때 부하가 야간 암호를 정하려고 찾아왔는데 조조가 무심코 ‘계륵’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부하들이 무슨 뜻인지 상의하였으나 아무도 영문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주부(簿)로 있던 양수()만이 조조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짐을 꾸리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놀라 그 까닭을 묻자 양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닭의 갈비뼈는 먹을 만한 데가 없다. 그렇다고 버리기도 아깝다. 
공은 돌아가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양수는 고기가 별로 없어 먹자니 먹을 게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부위인 계륵과 마찬가지로 한중 지역이 버리기는 아깝지만 그렇다고 무리해서 지킬 만큼 대단한 땅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조조의 의중을 파악한 것이었다. 
과연 그의 말대로 조조는 이튿날 철수 명령을 내렸다. 
이 이야기로부터 비롯되어, 특별히 쓸모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까운 사물 또는 그러한 상황을 일컬어 계륵이라고 한다. 
비슷한 말로 진퇴양난(退)이 있다.

다른 의미로 계륵은 몸이 마르고 약한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진서()》 <유령전()>에 전해지는 고사로 죽림칠현() 중 한 사람인 유령()이 술에 취해 어떤 사람에게 시비를 걸었다. 
상대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주먹을 휘두르며 덤벼들자, 유령은 이렇게 말했다. 
“워낙 닭의 갈비뼈 같은 빈약한 몸이라 당신 주먹을 받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소.(.)” 천연덕스러운 유령의 말에 상대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며 때리는 것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고사성어의 유래 ‘버릴 수도, 취할 수도 없는’

유비와 조조가 한중 지역을 놓고 전쟁을 벌일 때 일이다.
두 세력의 싸움은 수개월 동안 이어졌다. 
식량이 바닥나고 사기도 떨어지자 조조군에서 도망치는 군사가 늘어났다.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처지였다. 
어느 날, 조조는 저녁 식사로 들인 닭국을 먹으면서도 마음속으로 진퇴를 놓고 고민에 휩싸였다. 
그때, 장수 하후돈이 들어와 물었다.
“오늘 밤 암호는 무엇으로 할까요?”
조조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무심코 내뱉었다.
“계륵이라고 하시오, 계륵!”

하후돈은 장수들과 군사들에게 ‘계륵’이라고 명령을 전달했다. 
모두가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할 때 행군주부 양수가 웃으며 말했다.
“계륵이라면 닭갈비가 아니오? 닭갈비는 버리기 아까우나 먹을 것이 없소. 
승상께서는 이 한중을 유비에게 내주기는 아깝지만 이득이 없으니 곧 철수할 생각으로 암호를 계륵이라 정하셨소. 
떠날 때 허둥대지 말고 모두 미리 짐부터 꾸리시오.”

이 말을 들은 군사들이 짐을 꾸리느라 진이 소란러웠다. 
보고 받은 조조는 소스라칠 듯이 놀랐다. 양수가 자기 속마음을 환히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조는 “양수를 살려 두면 위험하다”라고 생각했다. 
결국 양수는 군을 어지럽혔다는 죄로 목숨을 잃었는데 얼마 뒤, 조조는 군대에 철수 명령을 내리고 돌아갔다.

여기에서 비롯한 고사성어가 ‘계륵()’이다. 
무엇을 취해도 이렇다 할 이익은 없지만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을 빗댈 때 흔히 쓰인다.

고사 속 숨은 이야기 뛰어난 재주로 목숨을 잃은 양수

뛰어난 인재 양수와 관련한 일화가 몇 개 있습니다. 
조조가 신하들에게 정원을 만들라고 했어요. 정원이 만들어지자 조조는 대문에 활()만 쓰고 돌아갔지요. 
신하들이 누구도 그 뜻을 알지 못하고 있을 때 양수는 “문()에 활()을 썼으니 넓다는 뜻의 활()이 아니겠소? 
정원 크기를 줄이라는 말씀이오”라고 했습니다.

한 번은 누군가 조조에게 낙()이라는 술을 선물했는데요. 
조조는 한 모금 마시고 병에 일합()이라는 글자를 써 신하들에게 돌렸답니다. 
신하들이 멍하니 있을 때 이번에도 양수는 일합()을 풀면 일인일구()이니 한 사람당 한 모금씩 마시라는 조조의 뜻을 알아챘지요. 
이렇듯 양수는 재주가 뛰어났으나 그 탓에 일찍 죽고 말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