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9일 화요일

봄.

봄, [spring}

기상학적으로는 양력 3∼5월을 말하나 천문학적으로는 춘분(3월 21일경)에서 하지(6월 21일경)까지이다.<script async src="https://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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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상으로는 입춘(立春, 2월 4일)에서 입하(立夏, 5월 6일) 전까지를 말하며, 음력으로는 1∼3월을 말한다.
자연계절로는 일평균기온, 일최고·최저기온, 강수량 등으로 계절을 나누며, 봄은 또 초봄·봄·늦봄으로 구분된다.
초봄은 일평균기온이 5∼10℃, 일최저기온이 0℃ 이상으로, 서울에서는 대체로 3월 19일경에서 4월 11일경까지이다.

봄은 일평균기온이 10∼15℃, 일최저기온이 5℃ 이상인 기간(서울에서는 대체로 4월 12일∼5월 6일)이며, 늦봄은 일평균기온이 15∼20℃이고 일최저기온이 10℃ 이상이 되는 때(대체로 서울에서 5월 7일∼5월 28일)이다.
생물계절(生物季節)로는 봄의 화신(花信)이라 불리는 개나리·진달래가 남쪽에서 시작하여 봄의 진행과 함께 북쪽으로 올라온다.

진달래의 개화가 가장 빠른 곳은 울산으로 3월 25일경이며, 같은 시기에 개나리는 남해안 지방에서 개화한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중부 지방에서는 4월 5일경, 평양 일대에서는 4월 10일 이후, 개마고원 일대에서는 4월 20일 이후로 늦어진다.

본격적인 봄꽃인 벚꽃의 개화일은 제주가 3월 30일경, 남해안 지방이 4월 5일경, 서울 일대 중부 지방이 4월 15일경, 신의주·함흥 이북의 북부 지방이 4월 30일경, 청진 이북은 5월 10일 이후이다.
봄을 알리는 제비를 처음 보는 날은 남해안에서는 4월 중순이다.
북쪽으로 올라감에 따라 늦어져서 평안북도와 함경남도에서는 4월 하순이고 함경북도 일대는 5월 상순이다.

봄철이 되면 겨울 동안 맹위를 떨치던 시베리아 고기압이 약해져 북서 계절풍도 약해진다. 약화된 고기압에서는 그 일부가 분리되어 성격이 변질된 양쯔강 기단이 생성된다. 우리 나라 봄철의 날씨를 지배하는 이 양쯔강 기단은 비교적 온난한 기단이며 이동성 고기압으로 동진해 온다.

이 이동성 고기압이 우리 나라를 통과할 때는 날씨가 맑고 일조량(日照量)도 증가하여 기온이 올라가 따뜻한 봄날씨가 된다. 그러나 그 뒤를 따르는 저기압은 봄비를 내리는 궂은 날씨를 나타낸다.
이러한 변덕스러운 봄날씨는 이동성 고기압과 저기압의 빈번한 통과에 기인한다.
이른봄에는 때때로 시베리아 기단이 되살아나서 꽃샘추위 또는 되풀이한파가 나타나기도 한다.

꽃샘추위는 벚꽃의 개화기까지도 나타나며 겨울 한파가 다시 되돌아온 것과 같은 봄추위를 느끼게 한다.

봄철에는 황사현상(黃砂現象)이 일어난다. 황사현상은 고비사막이나 화북 지방과 같은 중국 내륙의 건조 지역의 황진(黃塵)이나 황사가 고층 기류에 운반되어 우리 나라를 지나 멀리 북태평양까지 운반되는 과정에 발생한다.
황사현상은 4∼5월에 4∼5회 정도 일어나며 시계(視界)를 나쁘게 한다. 봄철에는 강한 바람이 자주 부는데 이것은 빈번한 저기압의 통과와 시베리아 고기압에서 떨어져 나온 이동성 고기압의 통과가 주원인이다. 또한 대기 상하층의 온도차에 따르는 난류(亂流) 등에 기인하는 경우도 있다.

저기압이 한반도 북쪽을 통과할 때는 따뜻한 남풍이 불어 들어 기온을 높이고 화창한 봄날씨를 보인다. 봄철 강수량은 겨울철 다음으로 적어 연강수량의 25∼15%에 불과하며, 제주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15∼20% 내외이다.
따라서 봄철에는 가뭄이 발생하기 쉽다. 봄철 가뭄은 건조한 이동성 고기압이 우리 나라를 중심으로 띠모양으로 오래 정체할 때 발생하며, 이때 이상건조현상(異常乾燥現象)도 일어난다.

보통 3·4월의 평균 습도가 60∼70%이지만, 고기압 내에서 기온이 상승하면 상대 습도는 낮아져 30% 이하가 될 때가 있다. 이러한 이상 건조와 강한 봄바람은 산불을 발생시킬 위험성이 높다.

이 봄철 가뭄이 초여름까지 계속되고 여름 장마도 늦어지는 해에는 극심한 한발을 일으킨다. 또 봄철에는 낮 기온은 높으나 밤 기온이 낮아 일교차가 심한 것이 특색이다. 그 결과 야간의 복사냉각(輻射冷却)에 의하여 안개가 발생하기 쉽고 때로는 늦서리도 내려 농작물에 큰 피해를 준다.

 

동식물

우리 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다고는 하나 계절 사이의 경계를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종일토록 청려장 지팡이를 짚고 봄을 찾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매화나무 가지 끝에 봄이 와 있더라.”고 하는 표현과 같이 어느 사이엔가 봄이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봄이 왔음을 알리는 것은 역시 꽃의 개화이다.

우리 나라의 산야에는 식물의 종류가 풍부해서 봄을 알리는 꽃의 종류도 다양하다. 호젓한 산기슭과 잔디밭 또는 풀밭에 고개를 내미는 할미꽃은 스치는 찬바람 속에서도 문득 느껴지는 봄기운을 상징한다. 눈부셔 태양을 쳐다보지 못하면서 고개 숙여 수줍어하는 모양을 우리는 예로부터 사랑해왔다.
꽃잎 바깥쪽이 흰 털로 덮여 있어서 할미꽃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수수께끼에서도 ‘젊어도 할머니 노릇하는 꽃’이라고 하여 봄을 흥겨워하였다.

“뒷동산에 할미꽃은 늙으나 젊으나 꼬부라졌네.”라는 내용의 동요도 예로부터 봄철에 불리어졌다. 꽃이 지면 긴 흰 털을 덮어쓰는 꼴이 역시 늙은이를 닮았다고 해서 백두옹(白頭翁)이라고도 한다.

신라의 설총(薛聰)이 신문왕을 위해서 한 이야기에 “모란은 화왕(花王)이 되고 장미는 가인(佳人)이 되고 할미꽃은 장부가 되어 포의(布衣)에 가죽띠를 매고 머리에는 하얀 털을 늘어뜨리고 지팡이를 짚고 걸어와 허리를 굽히면서, ‘나는 서울 큰 길가에 있는 백두옹입니다. 장미는 임금을 유혹하고 장부는 바른 말로 임금께 충간하는데…….’”라는 구절이 있다.

이처럼 장부로 표현된 할미꽃이 외양이 화려한 장미나 모란보다도 사랑받았음을 알 수 있다. 할미꽃의 꽃잎은 식물학상으로는 진정한 꽃잎은 아니고, 여섯 개의 꽃받침이 꽃잎처럼 보이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 꽃을 꺾어 긴 술을 머리처럼 땋아서 처녀의 머리에 견주어 놀기도 하였다.

높은 산에는 눈 녹은 틈을 찾아 얼레지꽃이 피어나는데, 이 또한 할미꽃처럼 고개 숙여 피는 모습이 엄청난 자연의 장엄성에 외경을 표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낙엽수의 잎이 돋아나기 전에 양지 바른 곳에서는 바람개비꽃이 신화처럼 산과 숲을 단장하는가 하면, 들과 길가에는 민들레꽃이 봄을 말하여 준다. 찬바람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땅바닥에 바짝 붙어서 자란다.
매화는 봄을 알리는 꽃 중에서도 가장 이르게 개화하는 꽃으로 맑은 향기와 청아한 꽃은 고결한 자세로 봄소식을 전한다.

매화는 가난하여도 그 향기를 파는 일이 없다는 맑고 지조 높은 마음씨를 우리 민족에게 심어 주었다.
매화에 가까운 것으로 살구꽃과 복숭아꽃이 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라는 가사는 우리 민족이 꽃피는 궁궐 안에서 봄이라는 시간을 보내었음을 말하여준다.

여기에 오얏꽃이 뒤질새라 피어난다. “도화야 떨어지지 말아라. 어자(漁子) 알까 하노라.”라는 것은 복숭아꽃으로 단장된 화려한 자연을 감당하기 어려움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살구꽃은 그 화사한 꽃색과 대단한 향기로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고 겨우내 음산하게 웅크려 있던 마음과 몸을 밖으로 끌어내고는 하였다.

산수유나무의 노란 꽃은 낮게 떠 있는 구름같이 보인다. 경기도 등지의 중부 지방에서는 이 나무를 동백나무라고도 불렀다. 역시 노란 꽃으로 산을 수놓는 것에는 생강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크게 자라지는 않지만 우리 나라의 산야에는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가지에 다닥다닥 붙은 노란 꽃의 모임은 산 속에 감추어져 있던 정열이 밖으로 터져 나오는 봄의 아픔이라고도 생각된다.

봄을 수놓은 노란 꽃에는 또 개나리가 있고 황매화도 있다. 개나리는 왕성한 번식력과 땅을 가리지 않는 강한 적응력 때문에 어디에서나 군집을 이루며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개나리꽃을 입에 물고 달아나는 병아리 떼의 모습은 우리 나라 어린이들에게 꿈과 평화를 심어주는 봄의 광경이었다. 진달래는 우리 나라 산야에 특히 많아서 노래와 시에 많이 등장할 뿐만 아니라 화전놀이 등의 세시풍속과도 관련이 깊다.

철쭉은 진달래보다는 꽃 피는 시기가 늦지만 함께 사랑을 받았다. 설악산·한라산·소백산 등지의 철쭉은 유명하다. 이는 이른바 ‘철쭉제’라고 하여 산신에 대한 제사를 겸한 등산인들의 행사로 나타나기도 한다. 철쭉은 오히려 철로 보아서는 늦봄이지만 그 생육 장소인 산지의 기후로 보아서는 초봄으로 볼 수 있다.

초봄을 장식하는 꽃으로는 또한 목련을 들 수 있다. 목련은 우리 나라 산에서 자생하는 것이지만, 외국에서 들여온 백목련도 많이 심어져 있다. 백목련은 목련과 함께 흰 옥돌과 같은 깨끗한 모습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꽃다운 애정과 향기로운 생각이 얼마인지 아는가, 집을 떠난 산승이 목련꽃으로 인하여 출가를 후회하더라(芳情香思知多少 惱得山僧悔出家).”라는 시는 목련꽃이 지닌 가치를 대변해 준다. 목련은 절에 흔히 심는 자목련과 함께 다분히 종교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는 꽃이라고 할 수 있다.

깊은 계곡의 얼음이 녹기 시작하고 얼음 틈새에서 찬물이 흐르는 것을 보게 될 때 아직 군데군데 흰 눈이 남아 있는데도 버들강아지는 부끄러운 듯 봄을 알린다.

겨울 동안 얼어붙어서 찾지 못하던 개울가로 빨랫감과 빨랫방망이를 들고 나서면 버들강아지가 마음을 출렁거리게 하는 것이다. 갯버들·키버들 등도 다투어 초봄을 알린다.

무르익어 가는 봄을 알리는 것으로 명자나무가 있다. 붉으면서도 앳된 꽃의 생김새는 항상 발랄한 분위기를 주며 생동하는 봄기운을 그대로 드러낸다. 아가씨꽃이라고도 하는데, 그 별명처럼 이 꽃은 봄과 더불어 생리의 절정을 상징한다.

싱그러운 봄날 아침 뜰의 먼지를 쓸고 물을 뿌린 뒤 깨끗한 공기를 깊게 호흡하고 나면 뜰 구석의 명자나무꽃을 볼 수 있다. 비스듬히 내려온 아침햇살을 받아 이 꽃은 늙음을 멀리하는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횟잎나무와 두릅나무의 새순은 그 독특한 향기와 맛으로 봄의 정취를 느끼게 하고, 패랭이꽃·씨름꽃(제비꽃)은 갸날픈 아름다움으로 봄을 장식한다. 패랭이꽃은 산뜻하고 깨끗하여 구김새 없는 젊음을 상징하기에 우리의 눈길을 끈다.

<화개월령 花開月令>에 보면 정월에는 매화·동백꽃·두견화가 피며, 2월에는 매화·홍벽도(紅碧桃)·춘백·산수유꽃이 피며, 3월에는 두견·앵도·살구·복숭아·배·사계화(四季花)·해당·청향·능금·사과꽃이 핀다고 하였다. 봄은 붉음으로, 여름은 초록으로, 가을은 흰색으로, 겨울은 검정으로 상징되는데, 그렇다면 봄의 그러한 상징은 울긋불긋한 꽃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월 3일은 삼짇날이라고 한다. 강남에 갔던 제비도 이 날이 되면 옛집을 찾아온다고 하며 마음씨 좋은 사람의 집을 찾아가서 추녀 밑에 둥지를 만들고 새끼를 깐다고 믿었다. 이처럼 제비는 항상 반가운 남쪽으로부터의 봄손님이었다.

두견새의 애달픈 부르짖음이 노래가 되고 학들이 모여드는 봄날은 길게 느껴지고는 한다. 긴 동면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활동을 하고 곤충들도 활동을 시작하여 노랑나비·흰나비·벌 등이 날아다닌다. 이처럼 봄은 갓 피어난 꽃,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벌과 나비, 새들의 지저귐이 어우러지는 젊음과 생명을 상징하는 계절이다.

 

풍속

세시풍속에서의 봄은 사계절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한 해의 시작이므로 어느 계절보다 중요하다. 그러므로 사계절 가운데 봄의 세시풍속이 가장 다양하다.

봄철의 첫달인 음력 정월에 세시풍속이 집중되어 있다. 봄철의 대표적인 명절로는 설날인 정월 초하루와 대보름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2월 초하루 머슴의 날, 3월 3일의 삼짇날이 있다.

정월 초하루와 대보름은 8월 한가위와 더불어 1년 중 가장 큰 명절이다. 초하루는 원단(元旦)·세수(歲首) 또는 연수(年首)라고도 하며, 일반적으로는 설 혹은 설날이라고 한다.

설날 아침 일찍 사대부의 집안에서는 세찬과 세주를 마련하여 사당에 차려 놓고 제사를 지냈다. 이를 다례(茶禮)라고 하는데 보통 차례라고 말한다. 차례는 4대조까지만 지낸다. 사당에는 4대까지만 신주(神主)를 모시고 그 윗대 조상은 10월 시제(時祭) 때 산소에서 제사를 지낸다.

차례가 끝나면 웃어른께 새해 첫인사로 세배를 드린다. 집안의 어른들에게 세배가 끝나면 세찬으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일가 친척과 이웃 어른들을 찾아가서 세배를 드린다.

정초에 서로 만나면 세배 때와 마찬가지로 덕담(德談)을 주고 받는다. 덕담은 새해의 소원 성취와 기복(祈福)에 관한 것들로, 예들 들면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새해에는 소원 성취하십시오.” 등이 주로 쓰인다.

이 밖에도 설날은 1년 동안 복되기를 빌기 위하여 대문에 세화(歲畫)라 하여 장군상(將軍像)을 그려 붙이거나 호랑이·용 등의 글씨를 써서 붙인다.

삼재(三災)가 든 사람은 부적을 붙여서 액을 막고 복조리를 사서 매달아 두기도 한다. 또 원일소발(元日燒髮)이라고 하여 1년간 머리를 빗을 때마다 모아두었던 머리칼을 태워 액막이도 하였다.

설날 새벽에 거리로 나가서 처음 듣는 짐승 소리로 그 해의 운수를 점치는 청참(聽讖)이라는 풍습도 있었다. 까치 소리를 들으면 풍년이 들고 행운이 오며, 참새 소리를 들으면 흉년이 들고 불행이 올 조짐이라고 한다.
그 밖에도 상치세전(尙齒歲典)·법고(法鼓) 풍속 및 야광귀(夜光鬼) 예방 풍속을 비롯하여 정초 십이지일(十二支日)의 각종 금기가 있다.

정월 대보름은 새해 들어 첫 만월 때이어서 상원(上元)이라고 한다. 설날의 풍속이 제석(除夕: 섣달 그믐)의 수세(守歲)에서 이어지듯이 상원풍속도 열나흗 날부터 시작된다.

열나흗 날 농가에서는 화적(禾積 : 볏가릿대)을 세운다. 화적은 짚으로 깃대 모양을 만들어 그 안에 벼·기장·피·조의 이삭을 집어 넣고 목화를 장대 꼭대기에 매단 것이다.

그 해의 풍년을 비는 풍속이다.
또 이날이나 보름날 아침에 가수(嫁樹)풍속이 있다.

‘나무 시집보내기’ 혹은 ‘나무 장가보내기’라고도 하는데, 과일 나무를 가진 집에서는 나무의 벌어진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둔다.

성행위를 상징하는 일종의 주술 행위로써 역시 과실의 풍년을 기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추나무·감나무·밤나무·배나무 등 과실이 많이 열리는 다산성(多産性) 나무를 시집 보낸다.

정초에 삼재면법(三災免法)이 있듯이 보름 전날에는 직성(直星)을 예방하는 풍속이 있다.
사람에게는 나이에 따라 운수를 맡아보는 아홉 직성이 있는데, 그 중 액운을 주는 것으로 제웅직성이 있다.
제웅직성은 9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게 되는데 남자는 열 살, 여자는 열한 살 때 처음으로 든다고 한다.

제웅직성이 들면, 제웅이라는 짚인형을 만들어 허리나 머리 부분의 속을 헤치고 돈이나 쌀, 액년이 든 사람의 생년월일시를 적은 한지를 함께 넣어 밖에 버린다.

지나가는 사람 중 제웅을 보는 사람이 그 액을 가져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웅을 본 사람은 침을 세 번 뱉고 발을 세 번 구른다.
그러나 아이들은 제웅 속에 든 돈을 갖기 위하여 놀이로도 즐겼다.

열나흗 날 밤이면 동네 아이들은 문밖으로 몰려와서 제웅을 내던지라고 한다.

제웅을 주운 아이들은 허리 부분을 파헤쳐서 돈만 꺼내고 나머지는 길에다 내버리며 노는데 이를 제웅치기라 한다.

제웅은 처용(處容)을 말하며, <처용설화>와 관계가 있다.
대보름날 자정이면 마을에서는 동제(洞祭)를 지낸다.

동제는 지역에 따라 산제·서낭제·별신제 등으로 불리는데, 자연 마을 중심으로 동민 전체가 추렴을 하여 공동의 금기를 지키며 마을의 평안과 행운을 비는 제사이다.

제사의 형태도 유가제례형(儒家祭禮型), 농악패가 주축이 되는 마을풍물굿형, 도당굿형 등이 있으나 오늘날에는 유가제례형의 간소한 동제가 주류를 이룬다.

대보름날 아침에는 부럼을 깨고 더위를 판다.

이른 아침에 사람을 보면 재빨리 상대방의 이름을 불러 대답하면 “내 더위 사가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더위를 팔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눈치 채고 있는 사람은 보름날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데 이를 학(謔)이라고 한다.

이날 저녁에는 달맞이를 한다.

달이 뜰 무렵 뒷동산이나 집안에서 달이 잘 보이는 장독대에 올라가서 달이 솟을 때 제각기 소망을 빈다.

남보다 먼저 달을 보는 사람은 1년 동안 운수가 좋다고 믿는다.

그리고 달의 빛깔이 붉으면 가뭄이, 희면 장마가 들 징조로 점친다.

달의 윤곽과 달무리를 보고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달의 사방이 두터우면 풍년, 얄팍하면 흉년, 차이가 없으면 평년작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이와 같은 농점(農占)은 보름달 외에 콩으로 하거나, 보리 뿌리를 보고 풍흉을 점치는 맥근점(麥根占)도 있다.

이 밖에도 아이들이 나무 조롱을 허리에 차거나 부잣집의 흙을 훔쳐다 자기네 부뚜막에 바르는 복토(福土)훔치기 등 여러 가지 풍속이 대보름을 전후하여 행해진다.

이렇게 정월을 명절로 보내고 나면 실제 기온상 봄을 맞게 된다.
입춘이 설 무렵에 드는 수가 있지만, 대개 정월은 절기상 봄이라고는 해도 실제 날씨는 겨울에 가깝다.

입춘일에 눈 밑에 돋아난 햇나물을 뜯어다 입춘절식으로 먹는 풍속과 ‘입춘대길(立春大吉)’ 등 좋은 뜻의 글을 써서 대문에 붙이는 풍속이 있다.

봄을 느끼게 되는 시기는 2월부터이다. 2월에는 크게 명절로 삼는 날이 없다.

다만 2월 초하루를 머슴날이라고 하여 주인은 머슴들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머슴들은 농악을 울리며 노래와 춤으로 하루를 즐긴다.

이 날을 노래기날이라 하여 ‘향랑각시 천리속거(香娘閣氏千里速去)’, ‘노낙각시 천리속거’라는 글을 써서 벽에 붙여 노래기를 예방하고 콩을 볶아 먹는다.

여기서 향랑각시나 노낙각시는 노래기를 대접하여 일컫는 말이다.

콩을 볶을 때는 “새알 볶아라.”, “쥐알 볶아라.”, “콩 볶아라.” 등의 주문을 외는데, 이는 새와 쥐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2월 초순께는 바람신인 영등할머니를 맞아 집집마다 부엌이나 장독대에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하며 소지(燒紙: 신령 앞에서 비는 쪽으로 종이를 불살라 공중으로 올리는 일)를 올려 소원을 빈다.

특히 제주도에서는 영등맞이굿을 대대적으로 벌여 평안과 풍어를 빈다.

3월이 되면 삼짇날이 있는데, 크게 여기지는 않고 작은 명절로 지킨다.

강남 갔던 제비도 삼짇날이면 돌아온다는 이 무렵이면 날씨가 온화하여 꽃이 피기 시작하며 뽕잎으로 누에를 친다.

삼짇날에는 처음으로 본 나비의 색깔로 점을 친다. 노랑나비나 호랑나비 등 색깔이 있는 나비를 보면 길조이고, 흰나비를 보면 부모의 상을 당하게 될 흉조라고 한다.

부녀자들은 삼짇날에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이 물 흐르듯이 소담하고 아름답다고 한다.

봄철에 꼽을 수 있는 음식으로는 우선 설날·대보름·삼짇날 등의 명절식을 들 수 있다.
설날의 음식을 세찬(歲饌)이라고 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멥쌀을 가루내어 쪄서 만든 떡국이다.
차례상에도 오르고 설날 떡국을 먹으면 나이를 한 살 먹은 것으로 여긴다.

떡국에는 만두를 빚어 넣기도 한다. 세주(歲酒)는 설날에 마시는 찬술로서 산뜻한 봄을 맞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대보름의 명절식으로는 오곡밥·진채식·약밥, 그리고 부럼 등을 들 수 있다.
오곡밥은 찹쌀·차수수·조·콩·팥 등 다섯 가지 이상의 곡식을 섞어 지은 밥인데, 정월 열나흗날 푸짐하게 만들어 보름날까지 먹는다.

특히 대보름에 여러 집의 오곡밥을 먹어야 좋다는 백가반(百家飯) 풍속이 있다.

오곡밥은 곧 복이 담긴 음식이라 생각하므로 복을 많이 먹는 셈이 된다.
오곡밥에는 반드시 진채(陳菜 : 묵은 나물)를 먹는다.

진채로는 산나물을 주로 쓰는데, 박나물·버섯·무고지·호박고지·가지나물·고사리·고비·취나물 등 여러가지가 있다.
진채식은 여름철 더위를 막는다고 여겼다.

김을 굽거나 배추잎을 삶아서 밥을 싸먹는 복과(福裹, 복쌈)도 보름의 명절식이다.

약밥은 찹쌀에 대추·밤·기름·꿀·간장 등을 섞어 함께 쪄서 잣을 박은 음식이다.

약밥의 유래는 ≪삼국유사≫ 사금갑(射琴匣)편에 기록되어 있다.

상원을 오기일(烏忌日)이라고 하는데, 이날 까마귀에게 약밥을 지어 제사를 함으로써 위로하고 은혜를 보답하였다고 한다.

대보름날 이른 새벽, 해가 뜨기 전에 생밤·은행·잣 등 견과류를 깨물면서 “1년 열두 달 무사태평하고 종기나 부스럼을 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하고 주언을 왼다.

이를 ‘부럼 깨문다.’고 한다.

부럼을 깨면 이가 튼튼해지고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또 보름날 아침에는 이명주(耳明酒)로 차가운 청주 한 잔을 마신다.

이 술은 귀가 밝아지고 1년 내내 좋은 소식을 듣게 해준다고 한다.

2월 초하루 머슴날에는 콩을 볶아 먹고 보름날 볏가릿대를 털어 흰떡(백설기)이나 송편을 해 먹는다.

삼짇날에 부녀자들은 야외로 나가 진달래꽃을 찹쌀 반죽에 붙여 화전(花煎)을 지져 먹으며 봄놀이를 한다.

화면(花麵)·수면(水麵)도 봄의 시절식으로 즐긴다.

영남 지방의 <화전놀이노래>가 내방 가사로 유명한 것만 보아도 삼짇날 무렵의 화전은 별미였다.

이 밖에도 3월의 시절식으로는 탕평채와 애탕(艾湯, 쑥국)·산떡[散餠]·환떡[環餠], 그리고 두견주·도화주 등의 온갖 꽃술이 있다.

봄철의 놀이는 정월 명절의 다른 행사와 마찬가지로 정월에 집중되어 있다.

논두렁·밭두렁을 다니면서 불태우는 쥐불놀이와, 이 놀이가 격해져서 벌어지는 횃불싸움이 있고, 편을 갈라서 하는 줄다리기·석전(石戰)·고싸움·동채싸움·농기세배·원놀음 등이 있다.

달밤에 집단적으로 놀며 즐기고 승부를 겨루어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한다.

지신밟기·소놀이·거북놀이를 하여 가내의 평안을 빌고, 달집태우기로 그 해의 재앙을 예방하였다.

그리고 탈춤·답교(踏橋, 다리밟기)·연날리기·윷놀이·팽이치기·종경도놀이 등으로 제액초복(除厄招福)하며 명절의 흥을 돋우었다.

윷놀이는 남녀노소 누구나 한데 어울려 놀 수 있는 놀이로서 승부의 결과로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한다.

마을끼리 놀이를 벌여 이긴 편은 그 해 농사에 풍년이 든다고 믿는데 이는 대보름의 대표적인 놀이인 줄다리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줄다리기는 남자와 여자편(총각은 여자편에 속함.)으로 갈라 여자편이 이겨야 풍년이 드는 것으로 생각한다.

여성의 출산과 생산력을 연관시키는 것이다.

이긴 편의 줄을 썰어서 논에 뿌리면 풍년이 들고, 고기잡이배에 실어가면 풍어를 한다고 믿는다.

연날리기는 정초, 때로는 섣달 중순께부터 한다.

겨울 동안 날리던 연을 대보름에 날려 보내는데 연에다 ‘송액영복(送厄迎福)’ 등의 글을 써서 날린 다음 연줄을 끊는다.

지신밟기 역시 정초부터 보름까지 계속된다.

지신패(또는 농악대)가 마을을 돌며 풍물을 울리고 각 가정의 지신을 밟아 주는데 이렇게 하면 가내가 평안하고 농사도 풍작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삼짇날 무렵이면 산야에 꽃과 풀이 돋아나므로 소년·소녀들은 풀피리·풀각시놀이를 하며, 활터에서는 궁술대회가 열린다.

산야로 화류희(花柳戱 : 꽃놀이)를 가는데 오늘날의 벚꽃놀이도 여기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겠다.
화류희 역시 노래가 있을 만큼 봄놀이로는 유명하였다.

이상과 같이 봄철의 세시풍속은 정월에 집중되어 있지만 각 달마다 크건 작건 명절이 있어 계절의 마디로서 하나의 리듬을 준다.
정월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이 달이 계절의 첫 달일 뿐 아니라 한 해의 첫 시작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 해가 시작되는 정초는 우주의 시작과도 같아 모든 만물이 생성되기 이전의 특별 기간(신성기간)이다.

이 기간에는 신성력(神聖力)으로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온갖 민속 행사가 행해진다.

섣달 그믐에 수세·폭죽 등 불과 관련된 행사가 있듯이 대보름에도 쥐불놀이·횃불놀이 등 불과 관련되고 소란스러운 놀이가 많다.

이는 과거의 시간을 소거시키기 위한 행사이다.

섣달 그믐날 묵은 해를 소거시켜 새해를 맞이하는 한편, 대보름에는 이제까지의 특별한 기간에서 벗어나 일상의 상황을 찾기 위한 소거이다. 그래야만 일상의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사로 치면 봄철은 파종기이다.

정월에는 농사일을 직접 하지는 않지만 풍작을 비는 온갖 예축적인 행사가 벌어진다.

특히 대보름을 전후하여 보다 많은 행사가 있는 것은 보름의 만월과 풍요와의 관계 때문이다.
이렇게 풍농과 풍어를 예축하는 세시 행사를 치르고 나면, 2월에는 초경(初耕)을 하는 등 파종 준비를 하고 3월에 본격적인 파종이 시작되는 것이다.

봄은 계절의 주기로 볼 때 시작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한 해의 계획은 봄에 세우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봄은 긴 겨울 동안 농사의 소출이 없기 때문에 식량부족으로 시달리기 일쑤여서 이때를 ‘보릿고개’라 하였고, 다른 말로는 ‘춘궁기(春窮期)’라고 하였다.

식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무척 긴 것으로 느꼈으며, ‘봄떡은 들어앉은 샌님도 먹는다.’

‘봄에 의붓아비 제사지낼까’ 등의 속담은 모두 봄의 궁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봄에 흔히 보게 되는 생리적 현상인 낮잠을 두고 생겨난 말로 ‘일장춘몽(一場春夢)’이 있는데, 이 말은 ‘덧없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봄에 잠깐 낮잠을 이루었을 때 흔히 꾸게 되는 꿈은 덧없다는 뜻이다.

봄이라는 계절이 기간으로 보아 짧기 때문에 덧없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봄은 오랜 겨울 동안 움츠렸던 생리현상을 활발하게 한다는 데서 유추된 생각이 ‘봄바람’ ‘춘정(春情)’ 등으로 나타난다.

이 말은 계절적인 봄이 인생의 봄인 사춘기의 격정적 충동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과 관련이 있는데, 봄에는 들뜨기 쉽다는 경계가 담겨있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봄은 새로움 · 시작을 의미하고, 긴 동면 뒤의 깨어남 · 생동감, 봄의 온화하고 화창함에서 오는 흥겨움 · 풍류 등을 연상하게 한다.

예술작품에 봄

(1) 문학
정학유(丁學游)의 작품으로 알려진 <농가월령가>에서는 봄의 계절적인 변화와 농촌에서의 할 일 등을 가사체로 노래하고 있다. 먼저 1월에 관해서는 “졍월은 



츈이라 립츈 우슈 졀긔로다”라고 절기를 말한 뒤에, 1월이 한 해의 시작이며 그 시작은 봄이라는 계절의 새로운 빛으로 이루어짐을 묘사하였다.

2월 부분에서는 봄이 바야흐로 무르녹는 모습을 풀빛이나 개구리 또는 묏비둘기 등의 동식물을 통하여 그려내고 아울러 봄농사가 시작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어 3월에 대해서는 꽃과 새를 통하여 봄의 화창하고 생동하는 계절 감각을 노래하고 있다.

봄철의 모습이나 느낌을 나타내기 위하여 꽃과 새를 소재로 하는 것은 우리 문학에 있어 매우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 밖에도 봄철을 나타내는 보편적인 소재로 봄바람·봄비 같은 자연현상이라든가 풀이나 개구리 같은 동식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세시풍속을 소재로 해서 봄의 계절감을 나타내기도 하고, 별다른 소재 없이 봄 그 자체를 생동감이나 화창함 또는 소생의 의미로 상징화해서 표현하기도 한다.

구체적인 소재를 통해서든지, 아니면 봄 그 자체를 상징으로 하든지, 봄에 대하여 주어지는 의미는 봄이라는 계절의 속성이라 할 수 있는 ‘새로움·시작·생명력·순환’ 등이 주류를 이룬다.

그런데 봄에 대한 정서적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하나는 봄의 온화하고 화창한 경물(景物)에 접해서 느끼게 되는 흥겨움이다.

이 흥겨움을 가리켜 흥취라고도 하고, 이 흥취는 자연에 묻혀서 즐기는 풍류라는 것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봄이 가지는 화창함이나 순환성에 비하여 괴로움 많고 유한한 인생이라는 대비에서 오는 비애감도 봄에 대한 정서적 반응의 또 다른 한 측면을 이루고 있다.

고전 작품에 나타난 것을 보면, 먼저 신라 때 화랑 득오(得烏)가 지은 <모죽지랑가 慕竹旨郎歌>에서 “간봄 그리매 모



 것



 우리 시름……”(양주동 해독에 의함.)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는 가버린 봄, 즉 지나가 버린 세월이라는 뜻에서 돌이킬 수 없으므로 아쉽다는 정서를 나타내고 있다.

고려 시대의 노래 <동동 動動>은 월령체의 노래로서 계절의 감각을 풍성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월(正月)ㅅ 나릿므른 아으 어져녹져 






 누릿 가온



 나곤 몸하 



올로 녈셔……”라 함으로써 1월은 얼음이 녹는 계절이므로 시작이라는 의미를 환기시키고 있다.

자연의 이법은 그러한데 인간인 나는 홀로 지내고 있음을 드러내어 자연에 상반하는 인간사의 비애를 노래하였다.
2·3월의 노래에서는 “이월ㅅ보로매 아으 노피 현 등(燈)ㅅ불 다호라 만인(萬人) 비취실 즈



샷다……”로 현등(懸燈)의 세시풍속을 통하여 봄을 노래하였고, “삼월나며 개(開)



 아으 만춘(滿春)



 욋고지여



 브롤 즈



 디녀 나샷다……”라고 해서 꽃을 통한 계절감을 노래하였다.

역시 고려 때 노래인 <만전춘별사 滿殿春別詞>에서는 “경경(耿耿) 고침상(孤枕上)애 어느 



미 오리오 셔창(西窓)을 여러



니 도화(桃花)ㅣ 발(發)



두다 도화



 시름업서 쇼츈풍(笑春風)



다 쇼츈풍



다.”라고 하여 복숭아꽃의 아름다움에 비하여 상반되는 인간의 고독을 상대적으로 드러내었다.
조선 시대의 대표적 문학 장르인 시조에서 봄을 형상화하는 주된 이미지는 도화·이화(梨花)·매화·낙화(落花)·버들·풀 등의 식물과 꾀꼬리·자규(子規)·기러기·앵무새·제비·뼈꾸기 등의 새가 주류를 이룬다.

이러한 동식물과 연관해서 표현되는 자연현상으로는 동풍·청풍·춘풍 등으로 표현되는 바람과 봄비·아침비·밤비 등으로 표현되는 비, 그리고 햇빛 등이 있다.

소재들에 투영되는 정서가 한결같은 것은 아니다.
먼저 일반적인 꽃을 소재로 하는 경우, “낙양 삼월시에 곳곳마다 화류ㅣ로다/만성춘광(滿城春光)이 태평을 그렷



듸/어즈버 당우(唐虞)세계를 다시 본듯 



여라”(李鼎輔)와 같이 봄의 화려하고 아름다움을 객관적으로 본 부류가 있는가 하면, “별원(別院)의 봄이 깁고 사창(紗窓)에 



 긴젹의/적막 중문(重門)에 무르린들 뉘 이시리/다만 



 대화단장(對花斷腸)에 임풍루적(臨風淚滴) 



이로다”처럼 봄날의 비애나 외로움을 노래한 것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구체적인 꽃을 노래한 경우에도 볼 수 있다.

가령 도화의 경우 “두류산(頭流山) 양단수(兩端水)를 녜 듯고 이



 보니/도화 







은 물에 산영(山影)조



 잠겨셰라/아희야 무릉이 어



오 나



 옌가 



노라”(曺植)는 <도화원기 桃花源記>에 나오는 고사를 연관지어 가며 도화가 핀 봄경치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는 데 반하여, “이화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인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야 알냐마



/다정도 병인 양



여 



 못 일워 



노라”(李兆年)와 같은 시조는 봄밤의 애상적인 정서를 표출하고 있다.
여기서 애상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큰 몫을 하는 것은 자규인데, ‘자규·두견새·귀촉도’ 등은 그 울음 소리와 관련된 설화 때문에 애상적인 정서와 자주 연관되는 소재이다. “



에나 님을 볼려 잠 일울가 누엇드니/



벽달 지



도록 자규성(子規聲)을 어이 



리/두어라 단장춘심(斷腸春心)은 너나 



나 달으리”(扈錫均)같은 것이 그 예이다.
반면 “담안의 ○치여늘 못가의 버들이라/



고리 노



고 나뷔



 츔이로다/지금의 화홍유록(花紅柳綠) 앵가접무(鶯歌蝶舞)



니 취코 놀녀 



노라”(安玟英)에서 보듯이 꾀꼬리는 봄의 화창한 분위기와 흥겨움을 형상화하는 데 자주 사용되는 소재이다.
이 밖에 비나 풀·바람 등 봄을 형상화하는 많은 소재들이 있다.

이들이 환기하는 정서도 화창함이나 흥겨움 등 밝은 측면이 있는가 하면 고독이나 우수 등 어두운 측면이 있어서 한결같지 않다.

결국 정서란 대상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 고전 작품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경물(景物: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경치)은 아름다운 꽃과 새로운 풀빛, 비가 내리면 더욱 싱그러워지는 풍경으로 대표된다.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아름다움을 느끼며 그 아름다움에서 자연과 더불어 즐겁고자 하는 흥취와 거기서 발전적으로 전개된 풍류의 모습을 문학 작품에서 보여주기에 이른다.

시조 작품 가운데도 “남산에 봄 춘자 드니 가지가지 ○ 화○라/일호주 가질 지 허니 세



가에 안질 좌○/좌중이 조을 호 질○ 낙 풍년 풍 저물 모허니 도라갈 귀○”(작자 미상) 같은 것에서 풍류를 표방한 태도를 볼 수 있는데, 가사 작품에서 더욱 풍성한 표현을 볼 수 있다.

정극인(丁克仁)의 <상춘곡 賞春曲>을 보면, “엇그제 겨을 지나 새봄이 도라오니/도화행화(桃花杏花)



 석양리(夕陽裏)에 퓌여 잇고/녹양방초(綠楊芳草)



 세우중(細雨中)에 프르도다/칼로 



아낸가 붓으로 그려낸가/조화신공(造化神功)이 물물(物物)마다 헌



롭다/수풀에 우






 춘기(春氣)







내 계워 소



마다 교태로다”라고 하여 봄을 나타내는 보편적인 소재를 거의 망라하여 봄을 형상화하였다.
그 다음 “



괴여 닉은 술을 갈건(葛巾)으로 밧타노코/곳나모 가지 것거 수노코 먹으리라/화풍(和風)이 건



 부러 녹수(綠水)



 건너오니/청향(淸香)은 잔에 지고 낙홍(落紅)은 옷새 진다/준중(樽中)이 뷔엿거



 날



려 알외여라/소동(小童) 아



려 주가(酒家)에 술을 믈어/얼은은 막대 집고 아



 술을 메고/미음완보(微吟緩步)



야 시냇



의 호자 안자/명사(明沙)조



 물에 잔 시어 부어 들고/청류



 굽어보니 






니 도화(桃花)ㅣ로다”에서 보듯이 봄의 흥겨운 계절감이 자연을 즐기는 풍류로 발전하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태도가 강호시가의 전통을 수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정철(鄭澈)의 <성산별곡 星山別曲>에서도 볼 수 있다. “



창(梅窓) 아젹 볏



향긔(香氣)예 







니/션옹(仙翁)의 



욜 일이 곳업도 아니



다./울밋 양디(陽地)편의 욋씨







혀 두고/미거니 도도거니 빗김의 달화내니/쳥문고



(靑門故事)



 이제도 잇다



다/망혜(芒鞋)



 뵈야신고 ○쟝(竹杖)을 흣더디니/도화○ 시내길히 방초쥬(芳草洲)의 니어셰라/닷봇근 명경중(明鏡中) 절로 그린 셕병풍(石屛風) 그림애



 버들사마/셔하(西河)로 



○ 가니 도원은 어드매오 무릉이 여긔로다”에서 보듯이 봄이 오니 산 중의 생활에서도 할 일이 있다고 하였으나, 그것은 관념적이고 상징적인 일일 뿐 실질적인 생계 도모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이렇듯 강호 자연에 은거하는 삶을 예찬한 것을 일러 강호시가라고 하는데, 이러한 유(類)의 시가는 주로 양반 사대부들의 작품에서 흔히 나타난다.

부녀자들에 의해서 창작된 화전가는 봄을 찬미하고 즐기는 화전놀이를 노래한 것이다.

여러 편의 작품이 전해지지만 그 표현이나 구성이 대동소이해서 전형을 이루고 있는데, 대체로 여자로서의 신변에 관한 일들을 늘어놓은 다음, 봄이 왔음을 찬미한다.

“입춘을 지냈으니 춘하절이 분명하다/반가울사 반가울사 춘하절이 더욱 좋다/삼십육정 도시춘에 봄춘자가 더욱 좋다/하양하목 이귀춘에 꽃화자가 더욱 좋다/당나라 악양루도 꽃화자가 보기 좋다/반가울사 반가울사 춘풍삼월 반가울사/백백홍홍 자진 곳에 만화방창 시절이라/놀고 보세 놀고 보세 화전하고 노라보세……”로 표현된 봄의 예찬에 이어 화전놀이를 계획하는 내용이 나오고, 이어 그 준비 과정과 연락 그리고 출발에 앞선 설레임이 묘사된다.

이어 화전놀이의 묘사에서는 “동산으로 올아간이 청산유수 여기로다/청산나무 좋을시구 참색물색 좋을시고/임자 업난 이 산천을 우리들이 주장하여/송이송이 피난 꽃은 벙긋벙긋 웃난고나/홍홍백백 만난 중에 만자천홍 불건난데/송이마다 벌이로다 송이마다 나비로다……”라고 봄경치를 예찬한 뒤에 화전을 구워서 여흥과 함께 즐기는 모습을 묘사한 뒤 귀가하는 모습까지를 그리고 있다.

규중의 여인들이 봄을 즐기던 상황과 흥겨움의 정서가 드러나 있는 예가 화전가이다.
민요 특히 월령체 형식의 노래에서는 봄의 아름다움이나 화창함에 비하여 인생은 그렇지 못하다는 비애의 정서 쪽을 표현한 것이 많다.

단양 지방에서 채록된 민요로 “정월이라 십오야에 망월하는 소년들아/망월도 하려니와 부모공양 늦어간다/뒷동산에 우는 꿩을 보라매로 잡아다가/엄동육절 제사차려 거리거리 선재하고 골골이 술 먹을 제/우리 님은 어디가고 이렇게도 무심한가” 같은 것은 계절적인 풍속이나 절기를 말하면서도 임을 원망하는 내용으로 끝맺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달거리 형식의 민요에서 한 정형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민요가 주로 삶의 고달픔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게 되는 데서 온 특징인 것으로 해석된다.

민요의 이 같은 경향은 월령체에 한한 것이 아니고 두루 퍼져 있는 현상으로 꽃을 소재로 한 민요에서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정읍 지방에서 채록된 민요 가운데 “명사십리 해당화야 네 꽃진다 설워마라/너는 명년 춘삼월에 황산 청산 꽃이 피면/오는 한량 가는 한량 너를 잡고 희롱치만/이내 몸은 죽어지면 한 번 살기 어렵드라/육신은 진퇴되고 영혼은 구름같이 흩어지니/그 아니 불쌍하냐” 같은 것이 그 예이다.

인생의 유한성에서 오는 비애나 고달픔이 다른 정서에 선행하는 것이 민요의 특징이다.

한시에도 봄을 노래한 작품은 많으나 그 경향은 국문 시가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고려 때 사람 진화(陳澕)의 <야보 夜步>는 “옥매화 이울고 버들은 늘어졌네·한가로이 푸른 산빛 밟아나가니·주막문은 닫혔어도 사람소리 새어나고·강 위에 봄비는 푸른 실오리같네(小梅零落柳僛垂 間踏靑嵐步步遲 漁店閉門人語少 一江春雨碧絲絲).”라고 노래해서 버들과 바람 그리고 봄비가 한데 어우러져 봄을 나타내고 있다.

정몽주(鄭夢周)의 <춘흥 春興>이라는 시는 “봄비가 듣는 둥 마는 둥 내려·밤들자 적지만 소리 들리네·눈 녹아 시냇물 부니·풀싹도 조금쯤 돋아나겠네(春雨細不滴 夜中微有聲 雪盡南溪漲 草茅多少生).”라고 시냇물·봄비·새싹을 한데 어울러 봄을 형상화하고 있다.

조선 후기 이수광(李睟光)의 <도중 途中>이라는 시는 “강기슭의 버들가지 사람 맞아 춤추고/숲속의 꾀꼬리 손님 맞아 노래하네/비가 개니 산에는 생기가 넘치고/바람결 따스하니 풀빛도 도누나/아름다운 풍경은 시이자 그림이요/샘물 소리는 악보에 없는 거문고 소리/길은 멀어 갈 길은 끝이 없는데/서산에 해는 붉게 걸리었네(岸柳迎人舞 林鶯和客吟 雨晴山活態風暖草生心 景入詩中畫 泉鳴譜外琴 路長行不盡 西日破遙岑).”라고 하여 꾀꼬리·버들·봄바람 그리고 샘물 소리까지 한데 어울린 봄의 정경을 노래하고 있다.

이렇듯이 봄을 노래한 한시는 많지만 그 주된 경향은 계절의 정서를 되도록 뒤로 감추면서 그 정경을 그려내는 데 치중하고 있는 점이 특색이다.

이는 본래 한시의 지향이 그러한 데서 온 국문 시가와의 차이이다.

따라서 한시는 봄날의 정경이나 아름다움을 그리는 데서 풍류를 드러내는 쪽으로 전개되었고, 조선 후기 실학파와 위항 시인들의 한시에 와서 비로소 봄날의 삶이 어려운 것을 노래하게 되었다.

소설의 경우에도 봄의 묘사는 시가의 경우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널리 알려진 <춘향전>에 이도령과 춘향이 처음 만나는 발단의 시간적 배경을 묘사하면서, “잇○는 어느 ○뇨 놀기 조흔 삼춘이라.

호련비조 뭇



들은 농초화답 ○을 지어 쌍거상



 나러드러 온갓 춘졍 닷토난듸, 남산화발 북산홍과 쳔사만사 유양지의 황금조는 벗 부른다. 나무나무 셩임



고 두견 졉동 나지 나니 일연지가졀이라……”(완판 열녀춘향수절가)라고 한 것은 ‘춘향’의 이름이 봄의 향기라는 뜻인 것과 일치하면서 봄이 모든 일의 시작임을 암시하는 것임도 엿볼 수 있다.

결국 화려하고 아름다운 계절이면서 동시에 시작의 계절이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아름다운 꽃과 화창한 분위기로 봄을 묘사하는 전형성은 현대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김동인(金東仁)의 <운현궁의 봄>에서도 “한양의 정기를 한 몸에 지니고 있는 백악에는 봄이 이르렀다.

필운대의 살구꽃과 북문의 복숭아꽃과 흥인문 밖의 버들을 화류장(花柳場)으로 꼽고, 봄이 되면 삼삼오오 떼를 지어 그리로들 놀러가지만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백악 바위 틈에도 진달래는 송이송이 봄빛을 자랑하고 있었다.”라 묘사하여 전형성을 보이고 있다.

그 밖의 작품에 등장하는 봄의 묘사도 이러한 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현대 소설 작가 가운데서 봄의 의미를 작품의 중요한 동기로 사용하였던 사람은 김유정(金裕貞)이다.

<동백꽃>·<봄봄>·<봄과 따라지>·<봄밤> 등의 표제가 이러한 성향을 암시해 준다.

실제로 <동백꽃>은 인생의 봄을 맞아 성숙해 가는 사춘기 애정의 한 모습을 작품화한 것이다.

<봄봄>은 “봄이 되면 온갖 초목이 물이 오르고 싹이 트고 한다. 사람도 아마 그런가보다 하고 며칠 내에 부쩍(속으로) 자란 듯 싶은 점순이가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는 표현이 암시하듯 인생의 봄인 사춘기에 걸어 보는 성혼에의 기대가 그 내용이다.

이는 봄이 단순한 자연의 계절적 순환인 것으로 인식되던 데서 삶의 한 단계 또는 그 순환으로 인식되고 표현이 옮아간 예가 된다.

현대시에서 나타나는 봄의 표현도 꽃이나 새, 또는 바람이나 비를 소재로 하는 점은 고시가와 비슷하다.

특히 1920년대까지의 시, 특히 민요시파로 일컬어지는 김억(金億)·이광수(李光洙)·김동환(金東煥)·주요한(朱耀翰)의 작품 경향이 그러하며 이러한 전통은 그 뒤 청록파 시인들에게서도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이장희(李章熙)의 <봄은 고양이로다> 같은 작품은 봄에 관한 표현이 현대에 와서 다양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라는 표현에서 향기와 부드러움이라는 서로 다른 감각을 연결하고 있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에서는 봄이 지닌 욕망과 정염을 표현하고 있다.

봄에 대한 감각이 종래에 쓰이던 소재를 벗어나 새롭게 표현된 예가 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상화(李相和)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자연의 순환적 질서와 인위적 박탈의 현실을 대립시키면서 거기서 느끼는 감정의 갈등을 표현하고 있다.

자연의 질서와는 달리 인간은 일회적이고 슬프다는 정서는 민요나 고시가에서도 많이 표현되었지만, 개인적 갈등을 넘어서서 역사성을 봄과 대립시켜 표현한 점은 이 시의 중요한 특징이다.

현대시는 봄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나 표현하는 데 있어서 그만큼 다양해졌다고 할 수 있다.

고전 문학이 전형성에 근거를 두었다면 현대 문학은 개별성의 추구로 그 특성을 설명할 수 있다.


(2) 음악
노래로 불리던 12가사 가운데 봄을 주로 노래한 <춘면곡 春眠曲>이 있다.

이 노래는 봄날 낮잠이 들어 사랑을 꿈꾸는 것을 노래한 것인데 음악적으로는 평화로운 분위기의 노래이다.

잡가 가운데 <유산가 遊山歌>는 “화란춘성하고 만화방창이라. 때 좋다 벗님네야 산천경개를 구경가자……”로 시작하여 새들의 울음 소리와 봄날의 경치를 묘사하는 데 의성어·의태어를 풍부하게 구사하고 있는 노래로 경쾌한 분위기로 되어 있다.

그 밖에도 <노들강변>·<양산도> 등 봄을 노래한 민요가 있고 판소리·단가 가운데서도 <사철가>는 제목이 ‘사철가’인 것과는 달리 주로 봄을 노래한 것이다.

서양 음악이 들어온 뒤에 작곡된 봄의 노래는 주로 시인들의 시 작품에 작곡가가 곡을 붙인 것이 많다.

이은상(李殷相) 작사, 박태준(朴泰俊) 작곡의 <동무생각>, 이은상 작사, 홍난파(洪蘭坡) 작곡의 <봄처녀>, 박목월(朴木月) 작사, 김순애(金順愛) 작곡의 <4월의 노래> 등이 널리 애창된다. 대체로 화사하고 화평한 분위기로 된 노래들이다.


(3) 미술
미술에서 봄을 나타내는 소재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매화다.

매화는 눈 속에서 피는 꽃이기 때문에 봄을 알려주는 꽃이라는 뜻에서, 방 안에서 화분의 매화를 바라보는 관매도(觀梅圖)와 매화를 찾아나서는 심매도(尋梅圖)·탐매도(探梅圖) 등이 많이 그려졌다.

매화를 소재로 한 그림으로 조선 시대 김홍도(金弘道)의 <노매함춘 老梅含春> 같은 그림은 달밤에 바라보는 매화를 그린 것으로 꽃잎의 빛깔이 회색으로 되어 있어 특이하다.




검은 바탕에 그림을 그림으로써 밤경치를 드러낸 것으로 보이는 전기(田琦)의 <매화서옥 梅花書屋)>과 <매화초옥 梅花草屋>이 있다.

매화를 배 위에 앉아 바라보는 은일적인 풍류를 그린 김홍도의 <선상관매 船上觀梅>가 있다.

봄을 나타내는 소재로는 복숭아꽃도 널리 사용되었다.

조선 초기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 夢遊桃源圖>는 굳이 봄경치를 그린 것은 아니고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 桃花源記>와 맥이 닿은 것이기는 하나 지금 남아 있는 도화의 그림으로는 최고 걸작이다.

이 밖에도 조선 후기 안중식(安中植)의 <춘경산수 春景山水>는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봄경치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 밖에 꽃과 버들을 소재로 하여 봄을 나타낸 것으로는 조선 시대 이한철(李漢喆)의 <방화수류 訪花隨柳>, 안건영(安建榮)의 <춘경산수도 春景山水圖>가 있으며, 꾀꼬리를 등장시킨 것으로는 김홍도의 <마상청앵 馬上聽鶯>이 있다.

봄의 경치를 산수화의 기법으로 그린 것이 많으나 화풍에 따른 특색이 두드러진다. 풍속을 담은 그림으로는 신윤복(申潤福)의 <연소답청 年少踏靑>이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의 사회 문제로 제기되었던 한량과 기생의 화류 행렬을 그린 그림이다.

이 밖에 윤두서(尹斗緖)가 그린 <채애 採艾>는 봄철에 쑥을 캐는 여인을 그린 일종의 풍속도다.

고전적인 미술 작품들이 매화·도화를 비롯하여 산수·풍속들을 주로 형상화하였음에 반하여 현대로 오면 그 소재면에서 다양화되는 변화를 보게 된다.

개나리나 진달래 같은 꽃들이 봄의 소재로 등장한다든가, 풍속의 변화에 따른 봄놀이 광경 등이 등장하는데, 그림 자체의 기법이 동양화와 서양화로 크게 갈라지고 서양화는 다시 구상과 추상으로 갈리므로 그러한 변화가 봄의 표현도 다르게 하고 있다.

 

봄" 한국인의 생각

봄은 계절의 주기로 볼 때 시작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한 해의 계획은 봄에 세우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봄은 긴 겨울 동안 농사의 소출이 없기 때문에 식량 부족으로 시달리기 일쑤여서 이때를 ‘보릿고개’라 하였고 다른 말로는 ‘춘궁기(春窮期)’라고 하였다.

식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무척 긴 것으로 느꼈으며, ‘봄떡은 들어앉은 샌님도 먹는다.’든가 ‘봄 사돈은 꿈에 봐도 무섭다. ’,

‘봄에 의붓아비 제사 지낼까.’ 등의 속담은 모두 봄의 궁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봄에 흔히 보게 되는 생리적 현상인 낮잠을 두고 생겨난 말로 ‘일장춘몽(一場春夢)’이 있는데, 이 말은 ‘덧없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봄에 잠깐 낮잠을 이루었을 때 흔히 꾸게 되는 꿈은 덧없다는 뜻이다.

봄이라는 계절이 기간으로 보아 짧기 때문에 덧없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봄은 오랜 겨울 동안 움추렸던 생리 현상을 활발하게 한다는 데서 유추된 생각이 ‘봄바람’, ‘춘정(春情)’ 등으로 나타난다.

이 말은 계절적인 봄이 인생의 봄인 사춘기의 격정적 충동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과 관련이 있는데, 봄에는 들뜨기 쉽다는 경계가 담겨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봄은 새로움·시작을 의미하고, 긴 동면 뒤의 깨어남·생동감, 봄의 온화하고 화창함에서 오는 흥겨움·풍류 등을 연상하게 한다.세시풍속이 해마다 반복되듯이 식물도 봄이 되면 새로운 삶의 시작을 반복한다.

봄꽃으로는 꽃이 무리지어 피는 동백꽃, 생강나무꽃, 산수유꽃, 매화, 개나리, 진달래, 살구꽃, 자두나무꽃, 복사꽃, 앵두나무꽃, 목련 등이 있다.

봄의 풀꽃으로는 보춘화, 복수초, 얼레지, 너도바람꽃, 꿩의바람꽃, 홀애비바람꽃, 나도바람꽃, 앉은부채, 노루귀, 할미꽃, 제비꽃, 봄맞이꽃, 냉이, 꽃다지와 처녀치마 등이 있다.

꽃이 피는지조차 눈에 잘 띄지 않는 오리나무, 개암나무, 사시나무, 버드나무와 참나무 종류들도 종족을 번성시키기 위해 수많은 꽃가루를 퍼뜨린다.

이러한 봄에 피는 꽃들을 절기(節氣)에 맞춰 보면 다음과 같다.

입춘(立春)부터 우수(雨水) 즈음에 볼 수 있는 꽃으로는 동백꽃, 보춘화 그리고 복수초(福壽草)가 있다.

동백나무(冬栢: Camellia japonica L.)는 제주도, 경상남도, 전라도, 충청남도 그리고 백령도와 대청도를 비롯한 남서해안에 분포하는 상록성 소교목이다.

잎은 윤기가 있고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다.

꽃은 암술과 수술이 한 꽃에 있는 양성화이며, 꽃잎은 5∼7개이고 적색이며 수술이 많다.

둥근 열매 안에 있는 흑갈색 종자로 짜낸 기름을 동백기름(동백유)이라 하여, 옛 여인들의 머리에 윤을 내는 화장품과 공업용으로 이용하였는데 주성분은 올레산이다.

목재는 가구재, 조각재, 세공재, 잎은 꽃꽂이의 부재로 사용된다.

동백나무 중 수령(樹齡)이 약 300년 된 충렬사(忠烈祠) 동백나무의 꽃은 유난히 붉고 탐스러워서 옛 처녀들이 풍신제(風神祭)의 정화수로 쓰기 위해 물동이에 동백꽃을 띄워가곤 했다고 한다.

거제도 외간리에 동서로 한 그루씩 있는 약 200년 된 동백나무는 부부나무라 하며 가정과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목(守護木)으로 섬기며, 매년 섣달 그믐날 이 나무에서 당산제(堂山祭)를 지낸다.

예부터 남쪽 바닷가 사람들은 신랑신부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굳은 언약을 맺기 위한 징표로 동백나무 가지를 혼례상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보춘화(報春花: Cymidium goeringii Reich.fil)는 봄을 알리는 난꽃으로 춘난(春蘭)이라고도 하는데, 청초한 이미지와 세속을 초월한 정결한 삶을 상징하는 소재가 되었다.

주로 남부의 산지 숲에 자라는 상록성 다년초이며, 꽃은 2∼4월에 꽃줄기에 한두 송이가 피며, 연한 황록색이고 향기도 있다.

꽃잎 중 가운데쪽 아래의 입술꽃잎은 흰색이고 뒤로 젖혀지며 적자주색의 반점이 있다.

민간에서는 피부병, 지혈, 이뇨 같은 데에 약재로 쓰인다.

복수초(福壽草: Adonis amurensis Regel et Radde)는 한자로 ‘복 복(福)’, ‘목숨 수(壽)’와, ‘풀 초(草)’자로서, 복 많이 받고 오래 사는 것을 기원하는 뜻이 담긴 풀이다.

지방에 따라 땅 위에 꽃만 올라온 꽃이라 하여 땅꽃, 이른 봄 얼음 사이에서 피어나 얼음새꽃 또는 눈색이꽃, 또는 눈 속에 피는 연꽃 같다 하여 설연(雪蓮)이라고도 한다.

일본에서는 복수초를 정월 초하루 새해 인사를 갈 때 선물로 가져가며 원단화 또는 원일초라 부른다.

꽃은 꽃줄기 끝에 한 개 달리며, 꽃받침은 밝은 녹색, 뒷면은 자주색을 띠고, 꽃잎은 황색이며 꽃받침은 꽃잎보다 길거나 거의 같고 수술과 암술이 많다.

한방과 민간에서는 진통제, 창종, 강심제(强心劑), 이뇨제(利尿劑)로 사용하지만 유독성 식물이다.

제주도에는 세복수초, 한반도 남서부에는 개복수초가 있다.

경칩(驚蟄)과 춘분(春分) 즈음에는 매화나무, 생강나무, 산수유, 진달래, 앉은부채 따위를 볼 수 있다.

매화나무(Prunus mume Sie. et Zucc.)는 중국 원산으로 우리나라에는 2,000년 전쯤에 들어왔다.

맑고 깨끗한 향기를 그윽하게 풍기는 매화는 사군자(四君子)의 하나로서, 청렴하고 세속을 초월한 절개가 있는 지조 높은 선비의 기풍을 상징한다.

그래서 병풍이나 도자기의 그림과 시의 소재가 되었다.

매화는 양기(陽氣)를 상징하는 봄을 대표하는 꽃으로서 귀하게 여겨왔다.

매화의 꽃받침조각은 5개로서 둥근형이며 붉고, 꽃잎은 5장이며 끝이 둥글고 수술이 많다.

열매는 핵과이며 노란색으로 익고 짧은 털로 덮여 있다.

흰색 꽃이 피는 흰매화, 꽃잎이 많고 흰 꽃인 만첩흰매화, 붉은 꽃잎이 많은 만첩홍매화로 구분하기도 한다.

열매인 매실의 구연산과 무기질 성분은 인체의 혈액을 약알카리성으로 만들고 정혈, 강장, 보간, 피로회복, 노화방지 등에 효과가 있어 매실주, 매실정과, 매실음료 같은 건강 식품으로 애용되고 있다.

특히 카데킨산 성분은 장내의 항균, 살균 작용으로 설사와 변비에 효과가 있다.

뿌리는 매근(梅根), 가지는 매지(梅枝), 잎은 매엽(梅葉), 씨는 매인(梅仁)이라 하여 약용한다. 특히 오매(烏梅)는 5∼6월에 덜 익은 열매를 따서 약 40도로 과육을 건조시킨 후 햇빛에 검게 말린 것으로 수렴(收斂), 지사(止瀉), 진해, 구충의 효능이 있다.

생강나무(Lindera otusiloa l.)는 전국 산지의 계곡이나 숲속의 냇가에서 아직 얼음이 채 녹지 않았을 때 매화보다도 일찍 황색 꽃을 피운다.

이에 황매목(黃梅木) 또는 단향매(檀香梅)라고도 한다. 또한 지방에 따라 산동백 또는 개동백이라고도 하지만, 잎과 가지에서 생강냄새가 나므로 생강나무라고 한다.

잎은 어긋나고 윗부분이 3∼5개로 얕게 갈라지고 꽃은 암수딴그루이며, 수꽃은 화피 6개 안에 수술 9개, 암꽃은 화피 6개 안에 암술 1개와 헛수술 9개가 있다.

열매는 장과이고 둥글며 9월에 검은색으로 익는다.

한방에서는 생강나무 껍질을 삼첩풍이라 하며, 타박상의 어혈과 산후에 몸이 붓고 팔다리가 아픈 증세에 사용한다.

가을에 잔가지를 잘라 말린 황매목(黃梅木)은 건위, 복통, 해열, 거담에 이용하고, 줄기를 삶은 물은 피부병에 이용하기도 한다.

민간에서는 생강나무 꽃을 따서 말렸다가 주머니에 넣어 방에 걸어두면 추위 속에 꽃을 피우는 강인함이 사기(邪氣)를 쫓는다고 믿었다.

진달래(Rhododendron mucronulatum Turcz.)는 참꽃 또는 두견화(杜鵑花)라고도 한다.

진달래는 단맛이 있어 먹을 수 있는 꽃이라 하여 참꽃이라고 하는 데 비해 철쭉은 먹지 못한다 하여 개꽃이라고 하며, 꽃색이 연분홍이며 진달래가 피고 난 다음에 연달아서 핀다하여 연달래라고도 한다.

진달래의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꽃잎은 5장이며, 붉은 빛이 강한 자주색 또는 연한 붉은색이고 겉에 털이 있다.

수술은 10개이고 열매는 삭과이다.

흰색 꽃이 피는 흰진달래, 고산에 자라며 작은 가지와 잎에 털이 있는 털진달래도 있다.

한방에서는 진달래꽃을 영산홍(映山紅)이라 하며, 해수, 기관지염, 감기로 인한 두통, 요통에 약재로 쓴다.

진달래는 두견새에 얽힌 전설, 김소월의 시에서 보듯이 우리의 민족적 정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물이다.

진달래꽃은 삼짇날의 절식인 화전과 화채를 만들거나 절기주인 진달래술(두견주)을 담그는 데 사용하며, 충청남도 당진군(唐津郡) 면천면(沔川面)의 두견주(중요무형문화재 86-나호)가 유명하다. 

앉은부채(Symplocarpus renifolius Schott)는 서양에서 스컹크 캐비지(skunk cabbage)라고 한다.

이는 꽃이 필 때 지난해 준비했던 양분을 한꺼번에 소모하면서 식물체 주위의 눈을 녹일 정도로 호흡열을 많이 발산하는데, 이때 나는 고약한 냄새가 곤충을 유인하여 꽃가루받이를 하게 하는 특징 때문이다.

잎은 꽃이 핀 후에 올라오며 대황이나 배춧잎만큼 커진다.

꽃은 이른 봄인 2월말경 갈색을 띈 자주색 불염포가 잎보다 먼저 올라오고 그 안에 있는 곤봉 모양의 살이삭화서(육수화서)에 핀다.

꽃은 양성화이고 화피조각은 연한 자주색으로 4개이며, 수술은 4개, 암술은 1개이다.

열매는 둥글며 여름에 붉은색으로 익는다.

어린잎은 나물로 이용하나 뿌리에는 독성이 있다. 한방에서는 줄기와 잎을 구토제, 진정제, 이뇨제로 사용한다.

춘분과 곡우 사이의 절기인 청명에는 산다래나무, 자작나무 또는 거제수나무나 박달나무에 상처를 내고, 곡우물을 받는다.

곡우 즈음에는 노루귀, 산수유나무, 버드나무, 할미꽃, 제비꽃, 벚나무 등을 볼 수 있다.

노루귀(Hepatica asiatica Nakai)의 속명인 Hepatica는 잎이 세 갈래로 갈라진 모양이 간과 같은 데서 유래하고, 노루귀는 잎이 올라올 때 잎이 말려서 올라오는 모양이 노루의 귀를 닮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봄을 알리기 위해 눈을 헤치고 꽃을 피우는 풀이라는 뜻에서 파설초(破雪草) 또는 설할초(雪割草)라고도 한다.

꽃은 3월경 잎보다 먼저 피며, 꽃받침은 6∼8개이고 흰색, 연분홍색, 진분홍색, 남색 등 다양하며, 꽃잎은 없다.

우리나라에는 한반도 전체에 분포하는 노루귀 외에 남부와 서부 해안 및 섬에 분포하는 새끼노루귀와 울릉도 특산의 큰노루귀가 있다.

봄에 어린잎을 나물로 식용하거나 관상용으로 심는다. 노루귀 뿌리를 ‘장이세신’이라 하며 민간에서는 8∼9월에 포기째 채취하여 두통과 장 질환에 사용한다.

산수유나무(Cornus officinalis Sieb. et Zucc.)는 생강나무처럼 이른 봄에 꽃이 잎보다 먼저 피어 봄을 알려주는 식물이다.

꽃은 노란색이며 양성화로서 꽃잎은 4개가 붙어 좁은 깔때기 모양이고, 수술 4개, 암술 1개이며 씨방에 털이 있다. 열매는 긴 타원형의 핵과(核果)로서 가을에 붉게 익는다.

종자는 긴 타원형이며 능선이 있다.

산수유 열매는 10월 중순 상강(霜降) 이후에 수확하여 과육과 씨앗을 분리하여 술과 차 또는 한약의 재료로 사용한다.

산수유의 과육(果肉)에는 여러 가지 배당체와 유기산, 비타민A와 당(糖)이 들어 있고, 종자에는 팔미틴산, 올레인산, 리놀산 등이 함유되어 있다.

『동의보감(東醫寶鑑)』,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에 따르면 강음(强陰), 신정(腎精)과 신기(腎氣)를 보강, 수렴하는 효능이 있으며 두통, 이명(耳鳴), 해수병, 해열, 월경과다, 식은땀, 야뇨증 등에도 사용한다고 되어 있다.

산수유는 전남 구례군 산동면과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경북 의성에서 특산품으로 재배하고 있다.

버드나무(Salix koreensis Anderss.)는 갯버들, 능수버들, 수양버들, 용버들과 함께 봄에 나무에 물이 오르는 색의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봄이 오는 정도를 나타내는 신호등 역할을 한다.

전국의 들과 냇가에서 자라며 버들, 또는 뚝버들이라고도 한다.

버드나무는 암수딴그루이며 꽃이 필 때 수나무는 꽃밥 때문에 황록색, 암나무는 암술 때문에 연녹색으로 보인다.

꽃가루는 눈과 피부의 알레르기를 일으키고, 종자에는 털이 있어서 솜털처럼 날아다니므로 암나무나 수나무 모두 봄철에 문제를 일으킨다.

버드나무는 가로수와 풍치용으로 이용하며, 살리실산이 함유되어 있어 나무껍질을 수렴제, 해열제 및 이뇨제로 사용한다.

목련(Magnolia kobus A.P. DC.)은 시, 그림과 가곡의 소재가 되어왔으며, 나무에 피는 연꽃 같다 하여 목련이라고 한다.

옥 같은 꽃에 난초 같은 향기가 있다고 옥란, 난초 같은 나무라고 목란, 꽃봉오리가 모두 북쪽을 향했다고 북향화, 꽃봉오리가 붓끝을 닮았다고 목필이라고도 한다.

꽃눈이 털에 많이 덮여 있고 화피는 6∼9장이다. 흔히 재배되고 있는 백목련과 자목련은 중국 원산으로서 우리나라의 야생 목련보다 꽃덮이가 넓다.

목련의 꽃봉오리를 신이(辛夷)라 하는데 콧병, 특히 축농증에 특효가 있다.

할미꽃(Pulasatilla koreana nakai)은 할머니 등처럼 굽은 꽃줄기에 꽃이 고개를 숙여 피고, 열매의 길고 흰 털이 할머니의 하얀 머리카락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노고초(老姑草)라고도 한다.

희고 긴 암술대가 있는 열매들이 둥근 공 모양을 이루는 것이 백발노인의 머리와 같다 하여 백두옹(白頭翁)이라고도 한다.

산과 들판의 양지쪽에서 자라며 꽃잎은 없고 꽃받침이 붉은 자주색이며 수술과 암술이 많다.

꽃받침 색이 노란 노랑할미꽃, 분홍색인 동강할미꽃도 있다.

뿌리는 해열, 수렴, 소염, 살균제로 약용하거나, 이질 등의 지사제로 사용하고, 민간에서는 학질과 신경통에 이용한다.

제비꽃(Viola mandshurica W. Becker)은 오랑캐들이 식량이 떨어져 쳐들어올 때에 피던 꽃이라 오랑캐꽃, 꽃 두 개를 겹치면 씨름하는 모습이 된다고 하여 씨름꽃, 키가 작다고 하여 앉은뱅이꽃 또는 자화지정(紫花地丁)이라 하고, 또 꽃반지를 만드는 재료로 이용되어 반지꽃이라고도 한다.

제비꽃의 어린 순은 나물 또는 국으로 이용하며 고혈압과 봄철의 나른함에 효과가 있다.

한방에서는 지정이라 하며 태독, 부인병, 중풍, 통경, 불면증, 변비, 만성간염, 생손앓이에 효능이 있다.

제비꽃 즙(汁)은 부기(浮氣) 제거와 타박상 치료에도 좋고, 간장 및 피로해진 눈에도 효과가 있다.

벚나무(Prunus serrulata var. spontanea (Max.) Wils.)는 올벚나무, 개벚나무, 산벚나무, 왕벚나무와 함께 봄동산을 아름답게 하는 꽃이다.

그중 일본의 국화로 알려진 왕벚나무(Prunusyedoensis Matsumura)는 그 기원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였으나 제주도 남제주군 신예리 왕벚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156), 제주시 봉개동의 왕벚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159), 전남 대둔산 왕벚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173)의 분자적 연구를 바탕으로 한국이 기원지임이 밝혀졌다.

벚나무는 종에 따라 꽃이 잎보다 먼저 피거나 꽃과 잎이 동시에 피며 꽃잎은 분홍 또는 흰색이다.

벚나무의 목재는 재질이 단단하여 국궁(國弓)과 고려팔만대장경(高麗八萬大藏經) 경판의 재목으로 이용되었다.

잎사귀로 풀피리를 만들었으며 껍질로 악기 만드는 데 쓰였음이 『악학궤범(樂學軌範)』에 나타나 있다. 열매는 ‘버찌’라고 하여 식용하거나 기침약으로도 이용된다.

냉이(Capsella bursa-pastoris (L.) Medicus)는 들이나 밭에 자라는 풀로 달래, 씀바귀와 더불어 봄의 미각을 대표하는 식물로서 나생이 또는 나숭게라고도 한다.

꽃은 흰색이며 십자(十字) 모양이고 꽃받침과 꽃잎이 4개씩이며 열매는 역삼각형이다.

냉이의 어린 잎과 뿌리는 나물과 국거리로 쓰며, 옛날에는 나물죽을 끓여 구황식품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한방에서는 식물 전체를 제채(齊寀)라 하여, 꽃이 필 때 채취하여 햇볕에 말리거나 생체로 이용한다.

이뇨, 지혈, 해독의 효능이 있다.

얼레지(Erythronium japonicum Decne.)는 잎이 얼룩얼룩한 자주색 무늬가 있으며 무릇처럼 땅속에 비늘줄기가 있어 가재무릇이라고도 한다.

꽃잎 6장이 날렵하게 뒤로 말리고 진한 자색이며 군락으로 피어 매우 화려하다.

잎은 나물과 국으로 식용하고 비늘줄기는 전분을 만들거나 약용한다.

그 외에 꽃다지, 봄맞이꽃, 벼룩나물, 별꽃, 점나도나물, 꽃마리, 산자고 같은 여러 종류의 작은 꽃들이 봄의 산야를 수놓는다.

봄은 사계절 가운데 첫 번째 계절로 겨울과 여름 사이를 말한다.

봄은 초목이 싹트는 따뜻한 계절이지만, 날씨 변화가 심해 따뜻하다가 다시 추워지기도 하며 기상이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기상학적으로는 양력 3, 4, 5월을 봄으로 분류하지만, 천문학적으로는 춘분(春分, 3월 21일경)에서 하지(夏至, 6월 21일경)까지를 일컫는다.

절기(節氣)상으로는 입춘(立春, 2월 4일경)에서 입하(立夏, 5월 6일경) 이전까지를, 음력으로는 정월부터 3월까지를 봄이라 한다.

태양의 운동에 기준을 둔 천문학적 계절 구분이 친숙하여 자주 사용되지만, 지역적인 기후 요소의 변동을 고려하기 힘들므로 기후학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기상 요소의 변화, 기압 배치, 기단, 전선의 특징을 고려한 기후 또는 자연 계절 구분에서 봄은 ‘초봄[早春]’, ‘봄’, ‘늦봄’으로 구분된다.

초봄의 기준은 늦가을, 봄은 가을, 늦봄은 초가을과 같은 기온 조건을 통해 분류된다.

기온이 상승하기 시작하는 초봄에는 일평균 기온이 5~10도, 일최저 기온이 0도 이상이다. 서울은 대체로 3월 19일경에서 4월 11일경까지,

대구는 3월 15일에서 4월 8일까지, 최남단인 제주도는 2월 21일부터 3월 16일까지이다.

기온이 급격히 상승하고, 일기(日氣)가 주기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하는 봄은 일평균 기온이 10~15도, 일최저 기온이 5도 이상인 기간으로, 대체로 서울에서는 4월 12일부터 5월 6일까지, 대구는 4월 9일부터 4월 30일까지,

제주는 3월 17일부터 4월 23일까지이다. 늦봄은 일평균 기온이 15~20도이고, 일최저 기온이 10도 이상이 되는 때이며, 서울은 5월 7일부터 5월 28일까지, 대구는 5월 1일부터 5월 28일까지에 해당된다.

제주는 4월 24일부터 5월 30일까지이다.

늦봄에는 일기의 주기성이 약해지기 때문에 맑은 날이 지속되고, 한여름같이 무덥기도 하다. 

생물계절(生物季節) 상의 분류로 보면, 봄은 동물이 활동을 시작하고, 식물이 발아(發芽)하고 개화(開花)하는 시기이다.

봄의 화신(花信)이라 불리는 개나리와 진달래의 개화는 남쪽에서 시작하여 봄의 진행과 함께 북쪽으로 이동한다.

진달래의 개화가 가장 빠른 곳은 울산으로 3월 25일경이며, 같은 시기에 개나리는 남해안에서 개화한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에서는 4월 5일경, 평양 일대에서는 4월 10일 이후, 개마고원 일대에서는 4월 20일 이후로 늦어진다. 난류의 영향을 받아 기온이 높은 동해안은 서해안보다 개화 시기가 빠르다.

대표적인 봄꽃인 벚꽃의 개화일은 제주가 3월 30일경, 남해안지방이 4월 5일경, 서울과 중부지방이 4월 15일경, 신의주와 함흥 이북의 북부지방이 4월 30일경, 청진 이북은 5월 10일 이후이다. 

봄을 알리는 제비를 처음 볼 수 있는 시기는 남해안에서는 4월 중순이다.

북쪽으로 올라감에 따라 늦어져서 평안북도와 함경남도에서는 4월 하순이고 함경북도 일대는 5월 상순이다.

동면(冬眠)하던 개구리는 남부지방과 중부지방에서는 4월 5일경에, 북부지방에서는 4월 20일경에 땅으로 올라온다. 

봄의 가장 대표적인 기후 특징은 태양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기온이 상승하기 시작하고, 북서계절풍의 세력이 현저하게 약해진다는 것이다.

봄철이 되면 겨울 동안 맹위를 떨치던 시베리아 고기압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북서 계절풍도 약화된다.

약화된 고기압에서는 그 일부가 분리되어 성격이 변질된 이동성 고기압이 생성된다.

우리나라 봄철의 날씨를 지배하는 이동성 고기압은 온난건조하고 중국에서 동진해 온다. 

이동성 고기압이 우리나라를 통과할 때는 날씨가 맑고 일조량(日照量)도 증가하여 기온이 올라가 따뜻한 날씨가 된다.

그 뒤에는 비를 동반하는 저기압이 이동하여, 변덕이 심한 날씨를 나타낸다.

변화가 심한 봄 날씨는 3~4일 주기로, 이동성 고기압과 저기압의 빈번한 통과에 기인한다.

봄에는 일년 중 일기 변화가 가장 자주 일어나며, 이동성 고기압과 저기압의 이동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일기 변화가 빨리 일어난다. 

한편, 이른 봄에는 때때로 시베리아 기단의 세력이 되살아나서 한파의 형태인 꽃샘추위가 나타나기도 한다.

꽃샘추위는 벚꽃의 개화기까지도 나타나며, 겨울 한파가 다시 되돌아온 것과 같은 봄추위를 느끼게 한다.

봄철에는 강한 바람이 자주 부는데 이것은 빈번한 저기압의 통과와 시베리아 고기압에서 떨어져나온 이동성 고기압의 통과가 주원인이다.

대기 상하층의 온도차에 따르는 난류(亂流) 때문인 경우도 있다. 

저기압이 한반도 북쪽을 통과할 때는 따뜻한 남풍이 불어 기온을 높혀 화창한 봄 날씨를 보인다.

봄철 강수량은 겨울철 다음으로 적어 연강수량의 15~25퍼센트에 불과하며, 제주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15~20퍼센트 내외이다.

봄철에는 가뭄이 발생하기 쉽다.

봄철 가뭄은 건조한 이동성 고기압이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띠 모양으로 오래 정체할 때 발생하며, 이때 이상 건조 현상(異常乾燥現象)도 일어난다.

보통 3~4월의 평균 습도가 60~70퍼센트 정도이지만, 고기압 내에서 기온이 상승하면 상대 습도는 낮아져 30퍼센트 이하로 떨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이상 건조와 강한 봄바람은 산불을 포함한 화재 발생 위험을 증가시킨다.

이 봄철 가뭄이 초여름까지 계속되고 장마가 늦어지는 해에는 남부지방에 극심한 한발이 일어난다.

봄철에는 낮 기온은 높으나, 밤 기온이 낮아 일교차가 큰 것이 특색이다.

그 결과 야간의 복사냉각(輻射冷却)에 의하여 안개가 발생하기 쉽고 때로는 늦서리도 내려 농작물에 큰 피해를 준다. 

봄철에는 황사(黃砂) 현상이 일어난다.

황사 현상은 고비사막이나 몽고, 중국의 화북지방 같은 건조 지역의 황진(黃塵)이나 황사가 고층 기류를 타고 우리나라를 지나 멀리 북미 대륙까지 운반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황사 현상은 겨울철에도 나타나지만, 주로 4~5월에 4~5회 정도 일어나며 시정(視程)을 나쁘게 한다.

황사는 중국으로부터 오염물질을 날라오는데, 이때 비가 내리면 자동차나 건물에 누런 황토가 덮인다.

황사가 봄에만 특별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지표면에 눈이 녹은 후 건조한 황토가 바람에 날리기 때문이다.

봄철 맑은 날에 햇볕이 강하게 쬘 때 지면 부근에서 불꽃과 같이 아른거리며 위쪽으로 올라가는 공기의 흐름 현상인 아지랑이도 봄을 대표하는 현상이다.

늦봄인 5월은 비교적 기온이 높아서, 신록(新綠)이 나타나는 때로 초여름이라고도 한다.

이 시기에는 이동성 고기압의 이동 속도가 매우 느려져서 맑은 날씨가 오래 지속되고, 높새바람이 자주 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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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ring]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봄의 식물 [植物] (한국세시풍속사전)
 (국어국문학자료사전,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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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행복한세상


2019년 7월 6일 토요일

사자의 서, 死者-書.

사자의 서, 死-書.
오시리스, 아뮤트, 토트, 호루스, 아누비스, 진리의 저울 등이 그려져 있다. <script async src="https://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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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서는 신왕조 시대 이후, 미라와 함께 묻은 지하 세계의 안내서라고 할 수 있는 두루마리이다. 

죽은 이들이 안전하게 다음 세상에 도착하길 기원하는 기도문과 여러 가지 사건에 부딪칠 때 외우는 마법의 주문, 또 신들에 대한 서약에 대하여 적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죽은 자의 심판이다. 죽은 자를 심판하는 재판관 오시리스는 배심원을 거느리고 검사인 호루스 신, 서기관인 토트 신, 안내자이자 저울을 다는 아누비스 신과 죽은 이가 죄를 범했다고 판명될 경우 벌을 주는 아뮤트 신(악어의 머리, 사자의 갈기와 하마의 다리를 하고 있음)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자가 내세로 들어갈 수 있는가를 재판한다.

양심을 상징하는 죽은 이의 심장 무게를 저울에 다는데, 깃털보다 심장이 무거운 사람은 죄가 많은 것으로 판단되어 아뮤트에게 심장을 먹히나, 착한 사람은 오시리스의 왕국에 들어가 영원한 삶을 살게 된다.

고대 이집트에서 사자의 부활과 영생을 얻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쓰였던 주술성이 강한 장례문서(葬禮文書)의 일종. 피라미드 텍스트, 코핀 텍스트(coffin text), 관구 문)와 같이 가장 중요한 종교 문서. 피라미드 텍스트가 국왕 장례에 국한된 것에 반해 코핀 텍스트는 제1중 간기~중왕 국시대(B.C. 2181경~B.C. 1786경)에 개인의 관에 기재됐다. 『사자의 서』도 개인에게 보급된 것인데, 신왕국시대 이후(B.C. 1567경 이후)에 파피루스에 기재하여 관구 내에 부장 했다. 

사자의 부활에 필요한 주문을 모으기는 하나 통일된 텍스트가 있을 리 없고, 각 파피루스마다 다르다. 1842년 독일의 렙시우스 (Karl Richard Lepsius, 1813~84)가 프톨레마이오스 조의 텍스트에 따라 집성한 장명(章名)이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다. 

오시리스의 재판 때 사자의 부정고백을 기록한 제125장은 특히 유명하다. 장면을 설명하는 아름다운 삽화가 있어 미술품으로도 훌륭한 것이 많다. 『아니의 파피루스』( 제19왕조)는 그 시대의 대표적인 예다.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와 함께 매장한 사후세계(死後世界)의 안내서라고 할 수 있는 두루마리.고대 이집트의 묘에서 부장품으로 발견된 사후 세계에 대한 글과 죽은 자의 영생에 대한 기원문, 신에 대한 찬가 등이 쓰인 문서를 총칭하는 말로, 1842년 독일의 고고학자 칼 리처드 렙 시우스(KarlKarl Richard Lepsius)가 고안해냈다.

고왕조 초기부터 프톨레미 왕조까지 약 3천 년에 걸쳐 기록된 유물들을 취합하고 정리한 결과물인 사자의 서는 사자(死者)를 위한 사후 세계에 대한 안내서로, 그 안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당대 이집트인의 생각과 내세관(來世觀)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뿐만 아니라 이것에는 신화, 풍속, 사회 현상, 역사 등이 녹아있다. 

주로 파피루스나 가죽 등에 성각문자(聖刻文字:히에로글리프)·신관 문자(神官文字:히에라 틱 문자)·민중 문자(民衆文字:데모 틱 문자)聖刻文字:히에로글리프)·신관문자(神官文字:히에라틱문자)·민중문자(民衆文字:데모틱문자 등으로 적어, 죽은 자와 함께 매장되었다. 

이러한 풍습의 기원은 매우 오래되어, 고(古) 왕국시대의古 피라미드 텍스트나, 중(中) 왕국시대의中 코핀 텍스트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신앙에 의하면 사자(死者)는 사후의 세계에서 여러 가지 사건에 부딪히며, 사자의 서에는 그러한 경우에 외는 주문(呪文)이나, 신(神)들에 대한 서약 등이 적혀 있다. 그중에서도 사후세계의 왕 오시리스가 사자를 심판하는 장면을 묘사한 대목인 주문(呪文) 125가呪文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자의 서를 구성하는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자는 해질 무렵 육체와 분리된 수많은 혼령들을 태우는 태양신 '라'의 배를 타고 공포의 계곡을 건너 서쪽으로 향한다. 서쪽에 도달한 사자들은 곳곳에 가로막인 성문을 통과해 오시리스의 심판대에 이르러야 한다. 

성문의 수는 파피루스의 기록자마다 그 수를 달리하고 있으나 적게는 7개에서부터 많게는 21개까지로 기록하고 있다.

성문마다 『사자(死者)의 서(書)(Book of the Dead)』는 고대 이집트에서 죽은 사람의 관 속에 미라와 함께 넣어두는 문서로, 사후세계의 안내서로 쓰였다고 할 수 있다. 

『사자의 서』는 수천 년 동안 편집되고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처음에 주문으로부터 시작되어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오던 것으로 그 내용은 부활을 위한 주문, 기도, 신에 대한 경배, 마법의 말, 주술 공식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왕국시대(B.C. 27세기~B.C. 22세기)에 들어서면서 주로 왕들의 피라미드나 분묘, 관 등에 사자가 내세에서 천국에 도달할 수 있도록 구전되던 주문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기록들을 모아서 하나의 책자로 만든 것이 『사자의 서』다(서규석, 2009).

고왕국시대에 이집트인들은 최고 권력자인 파라오는 사후세계에서도 삶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파라오의 무덤인 피라미드 안쪽 벽면에 주문을 새겨 넣었다. 이렇게 새긴 기록들을 '피라미드 문서(Pyramid Text)'라고 하는데, 연대로는 이집트의 고왕국시대에 해당한다. <script async src="https://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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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뒷세대인 중왕 국시대(B.C. 21세기~B.C. 18세기)에는 파라오뿐만 아니라 귀족이나 관리 또는 부자들도 미라를 넣은 관에 주문들을 새겨 넣었다. 

이 주문들은 관 문서(Coffin Texts)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신왕국이 시작된 B.C. 16세기부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B.C. 305~B.C. 31) 사이의 시기에는 주문들을 파피루스 두루마리에 적어 관 속에 별도로 넣어두었다. 따라서 이 파피루스 두루마리에는 피라미드 문서, 관 문서 등에 적혔던 내용은 물론 이집트인들이 숭배했던 태양신 '라'에 대한 찬양 등 다양한 기록들이 추가되었다.

『사자의 서』는 이집트 문명사회의 총체적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다. 기록자들은 파피루스에 그 내용을 적었으며, 때로는 다양한 색채로 도안해 개인의 매장에 함께 넣는 부장품으로 팔았다(원은성, 1997). 1842년 독일의 이집트학자 카를 렙 시우스(KarlKarl Richard Lepsius)는 이 기록물들을 수집 정리해 출판하고 '사자의 서'라고 이름 붙였다. 물론 1842년 이후에도 피라미드와 관 또는 파피루스에 적어 놓은 유사한 기록들은 계속 발굴되었다.

안내인, 문지기, 전령이 있으며,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경의를 표해야만 성문이 열리고 통과가 허락되므로, 그 이름들이 사자의 서에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여러 성문을 거쳐 오시리스의 법정에 도달한 사자의 심장은 저울에 올려지고, 생전에 지은 죄의 무게를 재고, 여러 신들 앞에 차례로 나아가 생전의 행위에 대한 심판을 받는다. 

이 모든 과정을 무사히 거치고 나면 비로소 부활의 자격이 주어진다. 영혼이 부활하기 위해서는 온전한 육체가 있어야 하며, 이것이 미라 제작의 이유이기도 하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음을 육체와 영혼의 분리 현상으로 보았으므로, 죽음이란 분리된 영혼이 잠시 저승으로 가서 심판을 받는 기간에 불과했다. 그러나 심판의 결과가 부활이 아닌 ‘영원한 지옥’으로 판정되면 영혼은 육체가 남아있는 현세로 돌아오지 못해, 부활할 수 없는 진정한 죽음을 맞게 된다. 

‘사자의 서’는 지상에 남은 미라의 온전한 보존과 심판을 받으러 사후세계로 가는 영혼을 위한 주의·주술 등으로 채워져 있다. 특히 사자의 영혼이 만나게 될 신들을 달래고, 영혼이 올바른 행로를 갈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사자의 서’가 쓰인 목적이었다. 

『사자의 서』는 이집트 역사에서 각 왕조의 수도였던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었는데, 지역에 따라 다음 세 종류의 텍스트로 나누어 편찬되었다(서규석, 2009).

첫째, 헬리오폴리스 텍스트(Heliopolis Text)다. 이것은 B.C. 2494년에서 2181년경인 제5왕조와 제6왕조 시대에 사용된 것으로, 사카라의 피라미드 벽과 무덤의 안쪽 면에 상형문자 형태로 기록된 것이다. 

이 기록들은 B.C. 330년경 제2차 페르시아 지배 시대 헬리오폴리스의 신관들에 의해 집성되었다. 

그 내용은 죽은 왕을 위한 옷, 집, 뱀과 벌레 등 악령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일 등을 기록해 놓아, 죽은 자가 내세에서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것이었다. 

헬리오폴리스 텍스트에는 관 문서도 들어 있는데, 파라오가 아닌 일반 서민들까지도 생전의 선행을 통해 내세의 행복을 보답받을 수 있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둘째, 테베 텍스트(Thebes Text)는 B.C. 16세기부터 B.C. 11세기에 있었던 제18왕조로부터 제20 왕조까지 관과 파피루스에 기록된 것을 모은 것이다. 

이 테베 텍스트는 상형문자로 써졌는데, 삽화가 없는 피라미드 문서와 달리 삽화가 많이 그려져 있다. 내용은 헬리오폴리스의 원본을 베낀 것에 불과하다고 알려져 있다.

셋째, 사이 테 텍스트(Seithe Text)는 B.C. 664년 제26왕조 이후 상형문자, 신성문자, 민중 문자로 파피루스나 관, 기타 상징물에 기록된 것을 집대성한 것으로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의 것이 가장 많다. 사이 테 텍스트는 이전의 『사자의 서』를 전면적으로 개정해 각 장을 순서대로 편집하고 새로운 장을 삽입했다. 본문은 상형문자와 신관들이 사용하는 신관 문자로 기록하고 삽화를 그려 넣었다.

현존하는 사자의 서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BC 1240년에 쓰인 '아니(Ani) 파피루스'로, 여기에는 영생을 기원하고 신을 칭송하는 찬가들이, 아니(Ani)와 그의 아내가 저승을 여행하고 죽음의 신 앞에 서는 장면을 묘사한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담겨있다.

『사자의 서』는 고대 이집트에서 죽은 사람의 관 속에 미라와 함께 넣어두는 문서로, 사후세계의 안내서로 쓰였다고 할 수 있다. 『사자의 서』는 지역에 따라 다음 세 종의 텍스트, 곧 헬리오폴리스 텍스트, 테베 텍스트, 사이 테 텍스트로 나누어 편찬되었다. 

고대 이집트인은 죽은 후에도 또 다른 삶이 펼쳐질 것이라는 내세관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을 잘 드러내는 것이 '오시리스'의 신화다. 『사자의 서』가 보여 주는 또 다른 특징은 내세의 구원 여부를 생전의 도덕적 행위 여부로 판단했다는 점이다.

고대 이집트인의 사후세계와 영혼에 대한 관념은 피라미드 문서에서 시작해 관 문서와 『사자의 서』에 이르기까지 긴 역사 속에서 발전하고 변천해온 것들이다(이동규, 2010). 수천 년을 이어오며 이집트인들은 사후세계를 확신했고 인간의 삶이 영원히 계속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script async src="https://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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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영속성에 대한 사고방식은 해마다 비옥한 충적지를 남기는 나일강 범람의 규칙성을 통해서 생겨났다는 주장도 있다. 

"홍수가 지나가고 나면 새로운 생명이 싹튼다. 건기와 우기가 번갈아 찾아오듯 낮과 밤이 서로 교체된다. 이런 이유로 고대 이집트인은 삶이 하나의 거대한 순환, 곧 영원한 소멸과 생성 속에 존재한다고 믿었다"(Wolfgang Herles & Klaus-Rüdiger Mai, 2007).

순환 원리는 탄생과 죽음에도 적용되어 죽은 후에도 또 다른 삶이 펼쳐질 것이기 때문에 각종 주문과 마법이 담긴 『사자의 서』를 지참케 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잘 드러내는 것이 '오시리스'의 신화다. 

오시리스는 죽었다가 다시 부활했기 때문에 망자의 신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가장 널리 전파된 신화는 오시리스를 이집트 제1왕조가 시작되기 전에 이집트를 다스린 제왕이었다고 묘사하는 것이다. 이야기 전개는 다음과 같다.

"오시리스는 동생인 세트에게 살해되어 내장이 모두 제거되었으나, 그의 여동생이자 아내인 이시스의 힘을 빌려 환생했다. 이시스와 오시리스 사이에는 호루스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호루스가 세트를 무찌르고 이집트의 왕위에 올랐고 오시리스는 지하로 내려가 사후세계를 통치하게 되었다. 죽었다가 부활한 오시리스의 운명은 인간이 죽음 뒤에 걸어가야 할 운명의 모델이 되었다."(Françoise Dunand & Roger Lichtenberg, 1993)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자를 신과 동일시했다. 『사자의 서』에서도 거기에 수록된 주문을 외우면, 사자는 태양신 라와 마찬가지로 숭배받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스스로를 '오시리스의 아들'이라고 선언한다. 김경근(2011)은 그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자를 신처럼 높이는 것은 『사자의 서』의 기본 테마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사자는 자신의 이름 앞에 오시리스를 붙여, 예컨대 '오시리스 아니' 혹은 '오시리스 누'라고 함으로써 기본적으로 오시리스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다른 신들과 동일시도 행해졌지만 오시리스와 동일시가 일반적인 이유는 오시리스가 내세를 관장하는 신인 데다 또한 죽었다가 부활했기 때문에 사자도 같은 효과, 즉 오시리스처럼 부활할 뿐 아니라 오시리스의 아들인 강력한 호루스 신이 오시리스를 보호했듯이 자신도 보호해줄 것을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사자의 부활과 영생을 얻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쓰였던 주술성이 강한 장례 문서(葬禮文書)의葬禮文書 일종. 피라미드 텍스트, 코핀 텍스트(coffin text [영], 관구 문)와 같이 가장 중요한 종교 문서. 피라미드 텍스트가 국왕 장례에 국한된 것에 반해 코핀 텍스트는 제1중 간기~중왕 국시대(B.C. 2181경~B.C. 1786경)에 개인의 관에 기재됐다. 

『사자의 서』도 개인에게 보급된 것인데, 신왕국시대 이후(B.C. 1567경 이후)에 파피루스에 기재하여 관구 내에 부장 했다. 사자의 부활에 필요한 주문을 모으기는 하나 통일된 텍스트가 있을 리 없고, 각 파피루스마다 다르다. 

1842년 독일의 렙 시우스 (Karl Richard Lepsius, 1813~84)가 프톨레마이오스 조의 텍스트에 따라 집성한 장명(章名)이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다. 

오시리스의 재판 때 사자의 부정 고백을 기록한 제125장은 특히 유명하다. 장면을 설명하는 아름다운 삽화가 있어 미술품으로도 훌륭한 것이 많다. 『아니의 파피루스』( 제19왕조)는 그 시대의 대표적인 예다.

『사자의 서』가 보여 주는 또 다른 특징은 내세의 구원 여부를 생전의 행위로 판단하는 점이다. 사자는 신들 앞에서 생전에 죄악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고백하고 법정에 들어간다. 법정에서 심판은 사자의 심장을 저울에 올려놓고 그 무게를 새의 깃털과 비교하는 것이다. 

심장이 순수해서 깃털보다 가벼우면 영생의 길에 들어설 수 있지만, 죄를 지은 사람의 심장은 무거워서 괴물에게 잡아먹히기 때문에 소멸의 길로 빠지게 된다. 그 죄에는 신을 저주하거나 경멸하는 것도 있지만, 절도, 사기, 간통, 협박, 화내기 등 인간 사회의 범죄와 비도덕적 행위가 대부분이 포함된다.

이러한 도덕성의 강조가 고등 종교가 생겨나기 훨씬 이전부터 구원의 조건으로 고대 이집트에 등장했다는 점은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김경근(2011)의 표현처럼, "신 앞에서 무력한 인간들이 아니라 사자를 신격화하고 신을 협박하기도 하며 신과 함께 자연의 질서유지에 동참한다고 생각했던" 존재였다. <script async src="https://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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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신이 관장하는 내세에서 구원의 조건과 내용까지도 인간과 세속의 논리로 규정했던" 고대 이집트인들의 세계관이 『사자의 서』에 담겨 있다.

문헌

  • 김경근(2011년) 고대 이집트의 신에 대한 관념. 《역사 학보》 209집.
  • 서규석 편저(2009년) 『이집트 사자의 서』. 파주: 문학동네.
  • 원은성(1997년) 사자의 서. 《성경과 고고학》 14호.
  • 이동규(2010년) 고대 이집트인의 사후세계와 영혼 이해. 《중앙 사론》 31호.
  • Françoise Dunand, Roger Lichtenberg(1993년) Les Momies, un voyage dans l'éternité. 이종인 옮김(2009년) 『미라 영원으로의 여행』. 서울: 시공사.
  • Wolfgang Herles, Klaus-Rüdiger Mai(2007년) Bücher die Geschichte Machten. 배진아 옮김(2010년) 『책 vs 역사』 서울: 추수밭.
    사자의 서 (출판 기획물의 세계사,)
  • 사자의 서 [死者, 書, Book of the Dead] (미술대 사전(용어 편), 1998., 한국 사전 연구사 편집부)
  • 사자의 서 [Book of the Dead, 死者─書] (두산백과)
  • 사자의 서 [死者-書] (이집트에서 보물찾기,)


출처: https://happyday-2100.tistory.com/15 [살맛 나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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