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16일 목요일

식품,[ 食品 ]

식품,[ 食品 ]

시의전서,[ 是議全書 ]
조선 말기에 편찬된 저자 미상의 조리서.
유형/ 시대/ 성격/ 편저자/ 제작시기/ 권수, 책수/
문헌
근대
문헌, 고문헌, 조리서
미상
1800년대 말엽
2권/1책
상·하 2편 1책. 필사본. 1911년에 설립된 대구인쇄합자회사(大邱印刷合資會社)에서 인쇄한 상주군청의 편면괘지(片面罫紙)에 모필로 적어놓았다.

이 책은 1919년에 심환진(沈晥鎭)이 상주군수로 부임하여 그곳의 반가에 소장되어 있던 조리책 하나를 빌려서 괘지에 필사해둔 것이 그의 며느리 홍정(洪貞)에게 전해진 것이다.

심환진의 필사연대는 1919년경이지만 원본은 1800년대 말엽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광범위한 조리법을 비교적 잘 분류, 정리하여 조선 말기의 식품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러나 군데군데 삽입되어 있는 조리법이 분류상 제자리에 있지 못하여 약간씩 혼란을 주고, 경상도 사투리가 현저하게 눈에 띄며 표기의 통일성도 없다. 그리고 혼돈되기 쉬운 감미음료인 식혜와 감주 사이의 관계가 밝혀져 있으나 생선식해에 관한 것은 나오지 않는다.

상편에는 장·김치·밥·미음·원미·죽·응이·찜·선·탕·신선로·회·면·만두·전골·전·구이·포·장육·자반·나물·조치·화채·약식 등이 수록되어 있고, 하편에는 전과·편·조과·생실과·약주·제물·회·채소목록·각색 염색·서답법·반상도식까지 수록되어 있다.

특히, 반상도식은 매우 귀한 것으로 구첩반상·칠첩반상·오첩반상·곁상·술상·신선로상·입맷상 등의 원형을 찾을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술의 종류, 식품의 종류, 건어물의 종류, 채소의 종류가 매우 많이 수록되어 있어서 식품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식품,[ 食品 ]
유형
개념용어
건강을 유지하고 성장 발육을 촉진하며 활동과 즐거운 생활을 하기 위하여 섭취하는 음식.

영양성분을 함유하는 물질을 식품이라고 하며, 천연식품을 그대로 먹기도 하지만 조리, 가공하여 식용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도 넓은 뜻의 식품에 포함시킨다. 식품은 여러 가지 기준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동식물별로 크게 나눌 수도 있고, 산업별(농산·축산·임산·수산)로 나눌 수도 있으며, 영양성분별로 분류할 수도 있다.

영양성분에 따라 분류하면 ① 탄수화물이 주성분이 되는 것(주로 열량을 보급함):곡류 및 가공품, 서류(감자·고구마·토란 등), 설탕 기타 천연감미료, ② 지질이 주성분인 것(열량 보급 및 조미):유지류·견과류(깨·호두·잣 등), ③ 단백질이 주성분인 것:두류·육류·어패류·난류(卵類)·유류(乳類) 및 가공품, ④ 비타민과 무기질의 급원이 되는 것:엽채류·과채류·과일류·해조류 및 이들의 가공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산업별로 분류하면 ① 농산물:곡류·채소·과일·전분·전분당·향신료·유지류, ② 축산물:유류·육류·난류, ③ 수산물:어류·패류·해조류로 분류할 수 있다.

식품은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고 건강한 활동을 하기 위하여 섭취되는 것이므로 영양성분의 양과 균형이 맞고, 소화·흡수가 잘 되어야 함은 물론 즐겁게 먹을 수 있도록 모양·맛·향기·빛깔이 좋아야 한다. 아울러 식품은 유독성분·병균·기생충·부패물 등을 함유해서는 안 되며 경제성도 있어야 한다.
포장된 우리의 주요 식품
우리의 주요 식품을 곡류(콩·감자류 포함)·채소류(과일류 포함)·육류(어패류 포함)로 나누어 특성을 살피기로 한다. 우선, 우리의 주식인 쌀과 맥류는 전분을 많이 함유하여 열량을 보급하는 주체이지만, 많이 먹게 되므로 단백질과 무기염류도 보급해 준다. 곡류는 경제적으로 생산량도 많고 수분이 적으며 저장도 잘 되므로, 예로부터 주식의 자리를 차지하여 왔다.

우리 국민의 전체 열량 섭취율 가운데 곡류제품이 약 61%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1990년 이후에는 식생활 양상이 서구화되면서 쌀·보리의 소비량은 격감하고, 밀가루의 수요량은 많이 증가하고 있다.

곡류의 하나인 콩은 오히려 단백질과 기름을 공급하며, 채소(콩나물) 또는 가공식품(두부·된장·간장·대두유)도 되는 주요 식품이다. 감자와 고구마는 곡류는 아니지만 전분을 위주로 하는 식품으로서 열량원으로 중요한 구실을 한다.

채소와 과일류는 다 같이 수분이 대부분(80∼95%)이며, 약간의 탄수화물(조섬유, 전분 또는 당류)과 아주 적은 양의 단백질을 함유한다. 이 중에서 조섬유는 섬유소와 펙틴질 등으로 되어 있어 소화가 되지는 않으나 변비에는 좋은 효과가 있다.

이렇게 채소류와 과일류는 고체물의 함량이 매우 적어서 열량원으로는 빈약하지만, 미량 영양요소인 비타민류와 칼슘·철분 등 무기물이 넉넉히 들어 있어 영양적으로 중요한 부식이 된다. 또 식품 가치면에서도 아름다운 색채와 향미·신선미가 있어 미관과 식욕을 돋우기도 한다.

채소 중에는 향신료와 약효를 겸한 것도 많다. 근래에는 재배법과 저장법이 발달하여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연중 어떠한 채소나 과일도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육류는 수육류·가금류·어패류 등을 포함하는데, 다 같이 단백질이 풍부하고(20% 이상) 지방·무기염류(특히, 인과 철분이 풍부함)·비타민({{%255}}·{{%256}}·니코틴산 등)도 상당히 함유한다.

동물의 종류에 따라 조직(근육·결체조직·지방조직 등) 또는 조직의 부위에 따라 물리적 및 화학적 성질에 있어 차이가 나타난다.

육류식품은 영양성도 우수하지만 맛도 좋고 가공성이 많은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상품의 가격도 높다. 육류는 아니지만 소나 닭의 생산물인 우유와 달걀도 영양적으로 우수하고 식품 가치도 높으며, 우유가공품인 낙농품들은 고급식품이다. 직접적인 영양원은 되지 않으나 조미료·향신료·주류·차류[茶類] 등의 기호식품은 좋은 맛이나 향미를 음식에 보태 주는 데 사용한다.

식품은 생것을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조리하거나 가공한 것을 먹게 된다. 가공한 식품은 오래 보관할 수 있고 언제든지 먹을 수 있으며, 맛과 영양을 원료에서보다 더 높일 수 있어 즐겨 먹는다.

곡식을 가루로 만들어 가공한 식품으로는 국수류·빵류·떡과 과자·엿 등이 있다. 또 곡류를 발효시켜 가공식품으로 한 것에는 여러 가지 술 종류가 있다.

콩으로 만드는 가공식품은 콩가루·두부·된장·간장·콩기름·콩나물·대두유·과자류 등으로, 예로부터 만들어져 오고 있다. 채소류는 날것으로 먹는 경우도 많지만 조리하여 반찬과 국에 쓰며, 더 나아가 김치와 장아찌로 발효, 가공하는 데, 이것이 우리 식품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서류는 전분·과자류·술·알코올 등으로 가공된다. 과일류는 생으로 식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가공되는 형태도 다양하여 건조과일·설탕조림·통조림·과일즙·잼·과실주 등이 제조된다.

육류의 가공도 다양하여 염지(소금에 절임)·건조(포를 만듦)·훈제(햄·소시지·훈제생선 등)·통조림 등으로 가공하며, 발효가공을 거쳐 젓갈(어패류)·간장(어간장·육장)도 만든다.

유가공품으로는 분유·연유·크림·버터·치즈·요구르트·음료 등이 있고, 달걀을 원료로 하는 가공품으로는 건조계란·피단·과자류·마요네즈 등이 있다.

기름가공품으로는 식용유·튀김기름·경화유·마가린·쇼트닝 등이 있다. 이 밖에 합성 또는 인조식품·조미료·음료·기호식품 등을 들 수 있다.

가공식품을 제조하는 과정으로는 건조·냉동·가열·밀폐·진공·압력·발효·효소처리·산처리·표백·탈색·정제·식품첨가물 사용 등이 있다. 문화가 발달하고 생활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식생활도 향상되어 다채롭고 새로운 음식들을 계속 요구하게 된다. 더구나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서양 식품에 대한 취향이 늘어가고 있다. 따라서 서구식 식품의 제조와 현대생활에 적응시킨 새로운 식품의 생산이 증가하고 있다.

근래에 와서 육류 소비 증가에 발맞춘 유가공품의 수요 증가, 우유와 유제품 소비 증대, 달걀과 채소·과일의 섭취량 증가가 두드러지고 있다.

즉석식품과 간이식품의 공급 증가도 현저한 추세라고 할 수 있다. 식품공업·식품화학·영양학의 발달에 따라 인조식품(콩에서 인조육을 제조 또는 단세포 단백질의 이용 등)·강화식품(强化食品)·식품첨가물 등의 제조가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식품 발달사,
선사시대.
구석기시대의 원시인은 식량을 순전히 자연에 의존해서 해결하였다. 강이나 바다에서 물고기와 조개류를 잡았고, 사냥으로 멧돼지나 사슴·새를 포획하였다. 이 무렵에는 포획한 짐승을 생식으로, 또는 구워서 먹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 나라 구석기시대의 유물로는 공주유적에서 천렵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신석기시대(기원전 약 3000년부터)에 들어오면서 석기인들은 발달된 석기를 사용하여 식품조리에 끓이는 법을 고안했는데, 여기서부터 토기의 이용이 시작된 것이다.

토기의 생김새를 가지고 빗살무늬토기문화와 무늬없는토기문화로 나누는데, 빗살무늬토기문화기에는 냇물 하류에서 주로 사냥과 물고기잡이를 했으며, 타제석기(打製石器)를 많이 썼다.
어패류 중요한 식량자원으로 양질의 단백질 공급원이다.
무늬없는토기문화기에는 내륙에서도 사냥과 아울러 농경(農耕)이 시작되었으며, 석도(石刀)·석겸(石鎌) 같은 마석기(磨石器)와 연석(碾石:갈돌)을 사용하였다. 즉 농작물을 재배하고 동물을 길들여 양축(養畜)하기에 이르렀다.

신석기시대의 식품으로는 ① 어패류:굴·백합·성게·삼치·도미·상어·고래·연어·송어 등, ② 동물류:멧돼지·사슴·소·말·돼지·개·닭·오리 등, ③ 식물류:도토리·밤·가래·개암·비름·명아주·냉이·고사리·엉겅퀴·칡·산초·달래 등, ④ 해조류:미역·다시마·김 등, ⑤ 곡류:피·기장·조·보리·밀·콩·메밀 등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신석기시대의 음식 조리는 아궁이와 불에 달군 돌[燒石]을 사용하였고, 곡식류를 가공할 때는 갈돌이나 돌절구로 제분하여 죽·떡·범벅 같은 분식(粉食)을 만들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가루식품은 나물류와 아울러 소금과 향신료로 조미하여 식용했을 것으로 본다. 이때의 식품 용기로는 독·항아리·바리·접시·병·잔[杯] 등이 개발되었다.

신석기시대에 이어 청동기시대에는 농업이 발달하여 벼[稻] 재배도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여주의 흔암리(欣巖里) 주거지와 평양의 구적지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탄화미(炭化米)가 이를 입증하여 준다. 양쪽 출토 곡물로는 쌀 외에 보리·수수·조·기장 등도 있었으므로 당시의 주식이 이 곡식들로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의 식품
중국의 철기문화가 들어오면서 명도전(明刀錢)·철제무기 등과 함께 철제농기구가 제조되었고, 주곡(조·보리·쌀 등)의 재배기술이 크게 발전하였다.

부여에서는 목축과 농경이 활발하였고, 동옥저(東沃沮)도 오곡과 과하마(果下馬:작은 말)로 유명하였다. 또 낙랑문화에서도 맷돌·시루·농기구가 발굴되어 증명되었듯이, 벼의 재배와 식용이 활기를 띠고 있었다.

고구려에서는 오곡의 재배와 소와 말의 사육이 활발했는데, 이는 안악 고분벽화에 디딜방앗간·부엌·육고(肉庫:소의 도체를 매달고 있음)·외양간 등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삼한에서도 김해패총 출토물(貨泉古錢·鐵斧·탄화미·멧돼지·사슴·소·말·물개·거북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농경과 수렵·어로가 활발했음을 알 수 있으며, 식품의 모습도 일부나마 알 수 있다. 또한 마한의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의기(靑銅儀器)에 새겨진 따비 경작 풍경과 곡식을 수확하는 모습을 통해 당시의 밭곡식 재배 상황도 상상할 수 있다.

백제와 신라는 고구려와 각축을 벌이면서도 비옥한 땅과 발달한 수리시설로 오곡·채소·과일을 재배하는 데 힘썼다. 4, 5세기까지도 맥류(麥類)가 주작물이었으나 그 후로는 벼 재배가 주요 작물의 위치를 굳히게 되었다. 즉, 답(畓:논) 자와 보(洑:냇물을 막아 만든 저수시설) 자를 만들어 쓸만큼 벼 재배가 중요시되었다.

일본의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의하면 백제와 신라에서 저수지 기술(韓人池·百濟池의 축조)과 양마(養馬)·양봉 기술, 그리고 개·염소·양·우유·매·꿩 등을 전해 주었다고 한다.

신라에서 이용된 식품으로는 오곡·채소 및 각종 육류와 아울러 술·기름·꿀·메주·포·젓갈 등이 기록에 나와 있고, 빙고전(氷庫典:여름에 음식을 냉장하고 또 청량음료로 쓰기 위한 얼음을 채취, 보관하는 기관)을 두었다는 기록도 있다. 빙고의 유적은 현재도 경주에 남아 있다.

신라에서는 민속세시(民俗歲時)인 설·정월보름·칠석·한가위·시월고사 등에 따른 갖가지 음식을 개발했으며,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이 많다.
젓갈튜,
고려시대의 식품
고려는 건국 초부터 권농정책에 힘을 기울였고, 의창(義倉)을 두어 흉년에 대비하는 비축제도를 실시했으며 상평창제(常平倉制)에 의해 곡가를 조절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개간사업에 힘쓰고 적전(籍田:왕이 몸소 경작하는 밭)의 예식을 베푸는 등 역대로 권농사업에 치중하였다. 따라서 큰 쌀창고 중 하나에는 적미(積米)가 300만(단위 불명)에 이르렀다는 ≪고려도경 高麗圖經≫의 기록도 있다. 즉, 쌀의 증산이 크게 이루어졌고, 맥류·기장·조·수수·피·콩·팥·녹두·참깨 등의 작물도 재배되었다.

≪고려도경≫에 의하면 위에 나온 작물 외에 자두·복숭아·배·대추·앵두가 있고 밤·개암·비자도 있는데, 특히 밤은 크기가 복숭아만하고 맛이 좋다고 하였다. 또 잣과 더덕이 유명하고 차도 산출되었다고 기록하였다.

고려 토산 차는 맛이 좋지 않아 중국 차를 애용하며 이에 따라 다구(茶具)가 여러 가지로 발달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 차도 상당히 발전하여 뇌원차[腦原茶]·유차[孺茶:雀舌茶와 같음]·청태전(靑苔錢)·대차[大茶] 등 명품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고려도경≫의 어업에 대한 기록을 보면, 대부분의 고려 사람들이 해산물을 많이 먹는데 미꾸라지·전복·방합·진주조개·새우·문합·게·굴·미역·다시마 등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고려사≫에 의하면 문종 34년(1080) 송나라에 보낸 방물에 인삼 1,000근, 잣 1,200근, 참기름 210근 등 식품도 들어 있었으며, 또 문종 6년에는 탐라국(耽羅國:지금의 제주도)이 세공으로 보낼 귤을 100포(包)로 변경했으며, 문종 7년에는 탐라국 왕자가 헌상한 품목에 소라·바자·해조 등이 있었다고 한다. 감귤류는 이미 제주도에서 재배되었던 것으로 일찍이 중국 강남에서 도입되었을 것이며, 일본과의 교류(선종·예종 때 일본서 相子를 바침)도 있었다.

충렬왕 때는 원나라에서 포도주를 보냈으며, 제주도에서는 수유(猷油:유제품의 하나)가 진상되었다. 공양왕 1년(1389)에 유구(琉球)에서 보내 온 방물 중에는 후추 300근이 있었다. 이와 같이 주변 이웃 나라들과의 교역으로 여러 가지 외국 식품이 들어와 식생활이 더 다채로워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원나라의 영향으로 상화(霜花:발효시켜 만든 밀가루 만두)·소주·설탕 등이 도입된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고종 때 간행된 것으로 보이는 ≪향약구급방 鄕藥救急方≫의 방중향약목(方中鄕藥目)을 참조하면 고려시대에 식용했던 여러 채소류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즉 무·배추·동아·박·순무·마늘·부추·해채·상추·가지·마·아욱·파·양파·우엉·겨자·생강, 기타 여러 가지 나물류를 재배하였다. 이 채소들은 반찬으로뿐만 아니라 약용으로도 많이 썼음을 알 수 있다.

채소류에 관한 설명은 이규보(李奎報)의 <가포육영 家圃六詠>에도 나오지만 무는 소금에 절여 구동지(九冬支)에 대비한다고 했으니 동치미나 짠지로 가공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시대의 식생활은 불교와 외국(특히 원나라)의 영향을 받았으리라고 생각되며, 불교는 국교화하여 살생을 금하는 정책이 강화됨에 따라 가축의 식용이 심하게 제약을 받았다. 따라서 해산물 이용법과 콩 가공법이 발달했으며, 두부·된장·간장 등의 제조는 사원(寺院)에서 많이 발전시켰다.

원나라의 요청으로 말과 소의 목축이 활발해지면서 제주도를 비롯하여 남해의 여러 섬에 목장이 설치되고 종축과 번식이 왕성하였다. 말은 대부분 원나라로 수출되었지만 육식 위주인 몽고족의 영향으로 한때 육식 습관이 자극되었던 모양이다.

가축의 도살은 백정이라는 특수계급이 맡았다. 소는 육우(肉牛)와 역우(役牛)로 이용된 것 외에 우유도 생산하였다. 우유는 영양제 또는 보약으로 잘 쓰였고, 유우소(乳牛所)가 설치되어 궁중에 우유를 공급하였다.

조선시대의 식품
조선시대 후기의 역대 왕들은 쇄신정책의 일환으로 수리사업·권농·농서 반포·구황사업 등에 힘썼으며, 특히 벼 재배에 치중하였다.

≪농사직설 農事直說≫에 의하면 쌀·보리·밀·조·수수·피·메밀·콩·팥·깨 등이 여전히 중요한 곡식들이었으나, 특히 쌀의 증산에 박차를 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벼의 재배법 개선과 벼 재배면적의 북방확대 등에 관심을 많이 두었다.

채소류의 재배와 가공 이용도 활발해졌음을 ≪사시찬요초 四時簒要抄≫를 통하여 살필 수 있다. 즉 무·순무·오이·가지·상추·파·마늘·미나리·부추·염교·생강·박·동아·아욱·산초 등이 많이 재배·식용되었으며, 절임·김치·장아찌 등의 가공도 다양하였다.

과일류에 대해서는 ≪도문대작 屠門大嚼≫에 명산지와 아울러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배[梨]는 강릉의 천사리(天賜梨), 정선의 금색리(金色梨), 평안도의 현리(玄梨) 등, 감귤류는 제주도의 금귤·감귤·청귤·감자(柑子)·유자 등, 감[枾]은 온양의 조홍시(早紅枾), 남양의 각시(角枾), 지리산의 오시(烏枾) 등을 들고 있다.

그 밖의 과일류로는 보은의 대추, 저자도(楮子島)의 앵두, 삼척과 울진의 자두, 그리고 복숭아는 과천의 반도(盤桃), 전주의 승도(僧桃)가 유명하였다. 수박은 고려 때 홍다구(洪茶丘)가 처음으로 개성에 심었다고 하는데, 충주와 원주에서 나는 것이 매우 좋다고 하였다.

또 이 책에서는 어물로서 서해에서 나는 숭어, 강릉 경포대의 붕어, 한강의 웅어와 뱅어, 서해의 황석어·오징어·성게·대합·청어·전복·홍합, 경상도·강원도와 해주의 은어, 강릉의 열목어, 평안도 강변의 늘치, 동해의 복어·방어·연어·송어·가자미·넙치·대구 등을 들고 있다. 또 문어·정어리·도루묵·고등어·멸치·조개류(齊殼, 江瑤柱, 紫蛤)·새우(大蝦, 紫蝦, 桃蝦)·조기·병어·밴댕이 등도 설명하고 있다.

음식류로는 두부·대만두·다식류·밀국수·약밥·산자·떡·약과·강정류를 소개하고 있다. 술 종류로는 개성 봉상시(奉常寺:국가의 제사를 맡은 관청)의 것이 제일 좋다고 하였고, 또 자주(煮酒)가 더욱 좋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일종의 증류주(蒸溜酒)로 소주 같은 술이다.

임진왜란 중 중국 또는 일본을 통해 1600년대 초기에 들어온 새 식품으로는 호박·고추가 있다. 호박은 왜과(倭瓜) 또는 남과(南瓜)라고도 하여 주식 대용과 구황식품, 그리고 채소로 애용되기 시작하였다. 고추는 이전에 귀족만 썼던 값비싼 후추를 대신하여 평민들이 모두 손쉽게 재배해서 먹을 수 있는 양념감이 되어 우리 음식의 모습을 크게 변화시켰다.

고추는 매운맛뿐만 아니라 붉은 빛깔을 냄으로써 음식에 더욱 잘 쓰이게 되었고, 김치류가 발달하는 데 큰 구실을 하였다. 또 고추는 풋것은 채소로 이용하였다. 호박과 고추는 다 함께 남아메리카가 원산지로,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으로 전해졌고 16세기에 동양으로 전파된 것이다.

조선시대 초기부터 식량정책은 농작물 증산과 아울러 곡류의 비축, 그리고 흉년에 대비하는 여러 대책으로 면밀하게 이루어졌다. 천재와 전란 등에 의해 자주 닥쳤던 기근에 대한 비상대책의 하나가 이른바 구황법(救荒法)이었다.

구황법은 구황 서적의 발간으로 많이 홍보되었다. 명종 때 간행된 ≪구황촬요언해 救荒撮要諺解≫에 의하면, 구황식품으로 솔잎가루·솔잎죽·볏짚가루·메밀꽃·콩잎·느릅나무 껍질 등을 들었다. 현종 때 신속(申洬)이 지은 ≪구황보유방 救荒補遺方≫에는 도라지·칡뿌리·마·황랍(黃蠟)·검정콩·무씨·냉이·삽주·소루쟁이 등이 더 첨가되어 있다.

왜란과 호란을 연달아 겪은 이 땅에서는 국토의 황폐와 농업 생산의 타격이 심했으므로 재건과 복구에 힘을 많이 기울여야 했다. 한편으로 중국은 청(淸)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일본은 에도(江戶) 막부로 정권이 바뀌어 이들 나라와의 교류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국내 학풍에 실학(實學)의 기운이 짙어졌는데, 이는 전란의 영향과 청나라를 통한 서양 문물의 간접적 접촉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유학자들도 실용후생(實用厚生)의 기풍을 그들의 논저에서 활발히 나타냈다.

그 범위는 제도·민생·농림업·의약·군사·식품 등에 걸쳐 있었고, 식품에 관해서는 특히 ≪산림경제≫와 ≪임원경제지≫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만 무명(無名)의 규수들이 쓴 ≪규곤시의방 閨壼是議方≫과 ≪규합총서 閨閤叢書≫ 같은 요리전서도 나왔다.

≪규곤시의방≫에는 40여 종의 약주류, 5종의 장류, 8종의 죽류(粥類), 15종의 김치류, 45종의 병과류(餠果類), 10종의 면(麵)과 만두·육류·어패류·기름 등 1600년대의 음식이 망라되어 있다.

≪규합총서≫는 1824년(순조 24) 이전에 쓰여진 것인데, 이 내용에는 13종의 약주류, 6종의 장류, 9종의 국류[湯類], 10종의 김치, 25종의 생선류, 18종의 육가공품(포·자반·족편·찜·곰·회·구이 등), 14종의 새고기 요리, 67종의 병과류, 10종의 기름이 소개되어 있다.

≪산림경제≫에는 9종의 다류(茶類)·국수류, 16종의 국류, 5종의 김치류, 양념류·나물류·생선류·장류·주류·초(醋) 등이 설명되어 있다.

조선시대 후기에도 전기에 이어 다양한 식품류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편 다채롭게 개발되어 왔다고도 볼 수 있는데, 불교의 영향도 쇠퇴하고 또 중국의 영향도 있고 하여 육류도 다양하게 조리되고 보급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조리법은 고추의 재배와 식용이 보급되면서 큰 변화를 하게 되었다고 보는데, 그 변화는 양념과 김치 제조에서 특히 현저하였다고 할 수 있다. 김치, 특히 김장김치의 대표 격인 통배추김치는 속이 드는, 즉 결구(結球) 배추 품종의 개발과 아울러 고추를 포함한 각종 양념 제조의 발달로 이루어진 것이다.

서양 문물의 간접 도입에 의해 이미 우리 나라에 퍼진 농작물(호박·고추·담배)에 이어, 조선시대 후기에 들어온 작물로는 고구마·감자·옥수수 등이 있다.

고구마는 1763년(영조 39)에 통신사 조엄(趙曮)이 대마도에서 씨고구마를 들여온 것이 그 시초인데, 그 뒤 여러 사람들의 재배 연구로 영남과 호남에 퍼지게 되었다. 고구마의 재배법과 아울러 고구마의 저장법·식용법 등은 ≪감저신보 甘藷新譜≫·≪강씨감저보 姜氏甘藷譜≫, 그리고 ≪종저보 種藷譜≫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고구마가 들어온 지 약 60년 만에 감자가 북관(北關:함경도 북쪽 변경)을 통해 들어와 단시일에 전국으로 퍼지게 되었다. 이는 감자가 기후와 토양에 대한 적응성이 크고 재배법과 저장법이 고구마보다 수월했기 때문이다. 고구마와 감자는 식량을 보충하면서 구황식품으로서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옥수수도 1700년대에 중국 또는 만주를 통해 도입되었으리라고 보는데, 그 보급은 지지부진하다가 1800년 후반부터 전국 각지에 재배가 파급된 것 같다. 1700년대에는 땅콩·토마토[南蠻枾] 등이 들어왔다.

근대의 식품
조선은 고종 연간(1864∼1900)에 들어오면서 근대 열강들의 각축 속에서 내우외환으로 시달리다가 점차 국운은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중에도 서양 문물이 직접 파급되어 정치·경제·문화면의 근대화를 서두르게 되었다.

그러나 열강 중에서도 일본의 입김이 가장 강하여 결국은 일본 세력하에서 근대화가 추진되었다. 서양 문물의 직접 도입보다 일본을 통한 간접 도입으로 기울어져 갔다.

농업면에서는 일본의 국리(國利)에 맞추어 쌀농사·과수 재배·목화 경작(인삼과 담배 포함) 등에 주력하여 일본의 벼품종, 일본에서 육성된 서양 과수품종, 그리고 대륙면(大陸棉)을 도입하여 얼마 안 가서 재래품종은 보기 어렵게 되었다.

과수 재배도 미국인·캐나다인들이 과수원 규모로 시작했던 것이 점차 일본인 자본가들에 의해 규모가 커지면서 각지에 사과·배·포도·복숭아 등의 과수원이 생겨났다. 채소류도 서울·개성 등지에서 일찍이 대규모의 민간 재배가 이루어져 있었으나, 중국인들의 채소 재배도 시작되었으며 일본인들의 이주가 많아지자 이들의 채소농장도 늘어갔다.

한말의 개화 바람은 식생활에도 스며들어 와 고위층부터 양요리·우유·커피·서양 야채들을 먹게 되었다. 경술국치 이후 일본의 식량정책은 미작(米作) 중심으로 나아가 이곳에서 재배된 일본 품종의 쌀은 많은 분량이 일본으로 흘러 들어갔다. 보리를 비롯한 다른 곡식의 육성과 증산에는 거의 힘쓰지 않았다.

과수 재배도 황주·진남포·경인간·대구·구포·나주 등지에 걸쳐 더욱 활발해져 오늘날의 사과·배·복숭아·포도 등의 명산지가 되었다. 인삼과 담배는 전매화하여 중요한 재원으로 삼았다.

일본인들이 이민을 통해 한꺼번에 많이 들어옴으로써 그들의 주택가와 상가가 도처에 생겼고 그들의 식품업이 이에 따르게 되어 일식과 양식 음식이 보급되었다. 따라서 일식 요릿집은 물론 일식 식품의 제조업도 번창해 갔다. 예를 들면, 정종 등의 일본 술은 한국 전래의 약주와 탁주를 압도하여 주류업계를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맥주 제조도 일본인 자본이 독점하는 가운데에 이루어졌다.

병과류도 일본식과 일본·서양 절충식의 것이 많이 보급되었는데 ‘모치’·‘센베이’·‘요칸’·‘카스테라(한국 표준어는 카스텔라))’ 등이 잘 쓰이던 이름들이다. 일본식 밀국수인 ‘우동’도 이때부터 유행식(流行食)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일제시대를 겪는 동안 우리의 식생활에 일본 식품이 많이 스며들어 온 것이 광복 후 지금까지도 우리 음식 속에 그 잔영을 많이 남기고 있다.

현대의 식품
만 35년 만에 광복된 우리 나라는 남북이 분단된 채로 각기 일본이 독점하던 모든 사업을 떠맡게 되었다.

식량 확보를 위한 정책, 농업기술의 연구와 보급 등이 모두 우리 손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으나, 6·25전쟁으로 전국토가 황폐화해졌고, 그 뒤 복구와 재건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었다.

1960년대부터 주곡을 자급하기 위해 많은 힘을 기울인 결과, 1970년대 중반부터는 쌀의 자급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는 벼품종의 획기적인 육종과 재배법의 발달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밀의 이용이 급증하여 제빵·제면·제과가 활발해짐으로써 우리의 식생활에 많은 변화가 왔다. 이와 아울러 우유와 유제품의 수요 공급도 대단히 증가하였다. 그 결과 밀·옥수수·콩 등의 수입이 증대하여 전체 식량 자급을 저하시키고 있다.

1990년대에 우리 식품 수급의 가장 큰 변화는 1986년 9월부터 1994년 4월에 걸쳐 우루과이에서 열린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제8차 다자간 무역협상인 우루과이 라운드(UR)에 의한 농산물의 수입 개방이다.

수입이 제한되어온 285개 품목의 농산물이 1997년 7월 1일로 자유화되었으며, 이와 함께 많은 종류의 외래 식품 재료들이 수입되어 농산물 유통에 많은 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새롭고 다양한 식품 재료의 공급 및 소비와 함께 우리 국민들의 식생활 양상이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수입식품의 증가와 오염된 자연환경을 피해 생산한 청정 식품 재료에 대한 선호도가 증가함으로써 농약 및 방부제 처리 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식습관의 형태가 열량을 위주로 한 것에서 생리 활성을 증가시키는 비타민 및 무기질 같은 조절영양소에 대한 관심 증가로 바뀜에 따라 과실 및 채소의 급격한 소비 증가와 함께 생산량도 급격한 증가를 보이고 있다.

채소는 시설원예(施設園藝) 기술의 발달로 계절에 관계없이 풍부하게 공급되고 있으며, 각종 서양 채소의 재배 및 소비도 증가 추세에 있다.

과일은 병충해에 대한 방제기술과 과수재배법의 발달, 제주도 지역의 감귤 재배 확장 및 그 밖의 바나나, 양다래와 멜론류 등 열대과일들의 재배로 이전의 과일류보다 많은 종류가 생산되어 소비자의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게 되었다.

맥주·청주·소주·양주 및 포도주 등의 양조업도 국제적인 제조기술로 생산되어 국내산 제품에 대한 높은 소비 선호도를 보이고 있으며, 외국으로도 수출하고 있다.

아울러 1990년 이후 우리 식생활의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편의 식품 및 즉석식품의 급격한 소비 증가이며, 그 대표적인 것이 인스턴트 라면, 냉동식품, 햄버거 및 피자와 같은 식품들이다. 이는 국민경제의 성장과 더불어 소비 풍조의 증대에 따른 식생활의 다양화와 서구화 경향에서 빚어진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식품의 선택 or 소비,
식품의 선택은 여러 각도로 고려해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무엇보다도 우선 영양적인 면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즉 에너지 생산에 필요한 영양분(특히 탄수화물)과 다른 영양분(단백질·지방·비타민·광물질)을 균형 있게 섭취해야 한다. 그래서 영양학자들은 곡물과 채소 외에 육류와 유제품을 매우 중시한다.

이것은 식량이 풍부한 공업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일 뿐, 세계 인구의 대부분은 아직도 식물 자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식량으로서의 식물자원은 지역에 따라 오랜 세월을 두고 다르게 정립되어 왔으며, 각 식량 작물이 농사기술·기후·토양·관습·기호 등에 따라 특성적으로 재배되어 왔다.

예를 들어, 쌀은 기후가 온화하고 다습한 동남아 일대, 중국 남부, 한국 및 일본 지역이 강우량과 일조량 등에서 벼농사를 하기에 적합한 지역이다. 쌀은 밀과 함께 가장 소비가 많은 곡류로, 세계 대부분의 민족이 주식으로 이용하고 있다.

옥수수 및 감자는 미 대륙 원주민의 주식으로 콜럼버스에 의해 미 대륙이 유럽에 소개(1492년)된 이후 세계적으로 그 재배가 확장되었다. 옥수수는 쌀·밀과 함께 세계 각지에서 재배되고 있지만, 지금은 대부분이 동물사료로 쓰이고 있다.
근재작물(根栽作物)이라고 총칭하는 감자·고구마·카사바 등은 지금 일부 국가에서 주식으로 사용하는 것 외에는 부식으로 소비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칼로리원으로 섭취하는 이른바 주식이 극히 일부 종류의 곡식(쌀과 밀이 각기 20%씩 에너지 공급)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오랫동안의 식습관과 환경조건, 그리고 경제적인 이유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부식 가운데 우선 채소류를 보면, 주식인 곡류에 비해 종류도 다양하고 지역적으로나 국가간의 교류가 많아 재배조건만 맞으면 전파도 빠르게 된다.

우리 나라에서 많이 소비되는 채소류의 대부분은 외래 식물이 소개되어 재배된 것이다.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는 호박·고추·고구마·감자 등이 좋은 예이며, 근래에는 식생활의 일부 서구화 경향에 따라 여러 서양 채소들이 재배, 공급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의 토양 특성에 맞게 자생되어 온 많은 종류의 산나물·들나물들이 그 동안에는 계절에 한정된 채 채취되고 이용되어 왔으나, 최근 재배기술이 발달함으로써 대량생산 및 사계절 이용이 가능해지고 있다.

육류는 채취 및 수렵시대부터 중요한 식품으로서 짐승·조류·어패류 등이 소비되어 왔지만 수육류는 소·돼지·양, 조육류로는 닭·오리·칠면조 등이 주로 사육되었고, 어패류는 일부가 양식되기는 하지만 대부분 어획하므로 각국마다 근해에서 생산되는 어류에 의존하며, 일부는 원양어업에서 공급을 받기도 한다.

상고시대에는 그 많던 곡류가 현대에 와서는 불과 몇몇 가지로 압축되었듯이, 가축류의 수효나 종류가 국한된 것도 사육기술이 발달하여 위험 부담 없이 경제성 있고 식품영양학적으로 우수한 것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국가나 민족에 따라, 또는 종교상의 이유로 금기가 되어 있는 식품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일부 불교국가에서 육식을 금한다든지, 힌두교 민족들은 쇠고기를 먹지 않는다든지, 회교국가들에서는 돼지고기를 금하는 것 등이다. 또 미신에 의한 식품 금기도 있어 미얀마·벵골·자바 등지에서는 임신부나 수유부가 달걀을 피한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불교가 번성할 때, 또 원나라가 말을 징발함에 따라 쇠고기·말고기의 섭식이 억제된 일이 있었고, 지금도 절에서는 육식을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민간에는 상극음식(相克飮食)이라고 하여 동시에 같이 먹으면 안 된다는 짝음식이 있다. 예를 들면, 돼지고기와 꿀, 게와 설탕, 막걸리와 국수, 술과 연시 등이다.

금기식품들과는 대조적으로 식도락 또는 기식(奇食)의 대상이 되는 식품들이 있다. 개고기·토끼고기·뱀·개구리·메뚜기 등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들은 구황단백질(救荒蛋白質) 식품으로 발생하여 지금은 특수한 기호식품이 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은 손을 대지 않는 것들이다.

결론적으로 민족이나 국가에 따른 식품의 선택과 소비는 식품을 생산하는 환경과 지역성, 이웃 나라들과의 교류, 경제상태·종교·미신·전통풍습 등의 영향을 받아 왔다고 할 수 있다.

인류는 대부분 탄수화물의 주공급원인 쌀과 밀 같은 곡류를 기본으로 하여 육류 등 동물성 식품과 과채류 등과 같은 식물성 식품을 균형 있게 섭취하며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식습관을 형성하고 있다. 부유한 선진국가에서는 막대한 곡류를 사료로 하여 각종 육류·육가공품·유란류(乳卵類)·낙농식품을 만들어 소비하고 있다. 물론 저개발 국가 및 개발도상국들에서도 식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국제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동물성 식품의 수요가 늘어가고 있다.

채소류는 옛날부터 곡류와 더불어 중요시되는 식품으로 계절에 따라 그 종류가 다양했으며, 가공(특히 김치류)을 하여 많이 이용해 왔다. 또한 최근 들어 건강 지향적인 소비자의 인식 증대로 채소류의 소비 증가 및 이에 따른 재배기술의 발달, 종류의 다양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인구 증가에 따라 식량 확보의 필요성이 커가고, 이와 함께 농업의 증산 및 전천후 생산기술, 원양어업 등의 발전과 UR 협정에 의한 농산물의 수출입 자유화로 식품의 소비 양상은 세계적으로 평준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문제점 or 전망,
인류의 기원을 약 20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약 1만 년 전까지도 오랜 세월의 대부분을 수렵·어렵·수습 등 자연물에 의존하는 식생활로 지내 온 것이다. 약 1만 년 전에 동식물을 키우고 가꾸는 농업이 개발되어 있데, 초기에 재배된 식물은 100∼200가지였으나 차차로 줄어들어 현재는 10가지 내외로 압축되었다.

재배와 축산에 의한 식량 확보는 인구의 증가에 따른 대책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으나 자연물에 의존하는 것으로는 지구상에서 1,000만 이상의 인구를 지탱할 수 없었다. 그런데 농축업의 발달과 확산으로 인구를 늘릴 수 있게 되었으며, 인구의 증가는 다시 식량 공급에 압박을 가하여 농업 생산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인류의 인구가 10억에 도달하기까지는 200만 년이 걸렸으나, 지금은 2억5000명을 보태는 데 15년(1960∼1975)이 소요될 뿐이다. 이와 같은 인구 팽창으로 생기는 필요식량의 엄청난 증가를 경지의 계속적인 확장과 화학적으로 지향된 근대농업을 통해 충당하기 위해 그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농업이라는 기술이 사람의 지혜와 슬기로 발명된 이래 식량공급이 몇백 배로 늘어났지만 아직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은 영양실조에 빠져 있다고 한다. 이는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를 식량 생산이 좇아가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한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주식의 대상이 되는 농작물이 10종 내외이고, 그것조차도 밀과 쌀로 집중 강조되어 있어 흉작을 만났을 때의 타격이 그만큼 커지므로 위험율이 높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농업기술의 근대화에 따라 환경을 파괴함으로써 생기는 기후와 생태계 변화에 의한 사막지대의 발생과 확대가 지적되고 있다.

셋째로는 공업을 비롯한 산업의 발달로 경제성장을 이룩한 국가들에서 식생활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동물성 식품의 요구가 커지고 이를 뒷받침할 축산을 증강하기 위해 곡류가 사료로 공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옥수수와 수수, 그리고 콩 등이 축산으로 많이 돌려지는 것은 전환률이 아주 적은(곡류의 단백질이 고기로 전환하는 비율은 약 10분의 1임) 곡류의 소비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식품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은 식량 확보의 과제로 우선 세 가지 점을 들었으나,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비약적인 농업, 축산업의 기술 발달, 예를 들면 기계화·컴퓨터화·유전공학의 활용 등을 기대할 수 있다. 또 기후·계절·지역 등을 초월한 시설농업의 발달도 기약할 수 있다.

원시시대에는 수천 종의 식물종자를 수집하여 식량으로 삼았던 것이 농경시대로 들어오면서 100여 가지로 줄어들고, 지금에 와서는 10가지 정도로 주식의 종류가 국한되었다. 그리고 채소류와 과일류의 종류도 주식류에 비하면 다양한 편이나, 이들 역시 그리 많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국가에 따라, 또 지역에 따라 같은 식품이라도 먹는 법·조리법·가공법이 다양하며, 이들 방법도 계속하여 변형, 개발되고 있다. 더구나 국제문화교류에 따라 외국 식품의 영향도 많이 받게 되어 이러한 경향은 더욱 짙어가고 있다. 그리고 인구의 증가, 도시의 발달, 산업경제의 발전에 따라 식생활의 모습도 많이 달라지면서 식품의 조리가공도 탈가정화(脫家庭化)되고 있어 식품공업의 발달은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제분·제당·주조·유지·장류·제면·제빵·제과·청량음료·각종 통조림·축산가공·수산가공·조미료·향신료 등 전문화된 식품산업이 크게 발전하고 있다. 또 국민소득의 증대, 핵가족 수의 확산, 여성들의 사회 진출 등으로 즉석식품·간이식품의 소비가 늘어가고 있다.

식품산업의 발달로 인조단백질·농축단백질 생산, 다양한 즉석 및 편의 식품 생산, 식품의 기능성 유효성분 추출 및 이용 확대를 위한 기능성 식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식품산업의 발달에 부수하여 가공식품의 영양문제·위생문제·공해문제·품질문제 등이 발생하고 있어 국민보건을 위한 국가 차원의 식품정책이 필요하게 되었다.

2000년에 들어와 우리의 식품환경은 농약, 중금속 오염, 일회용품 사용 증가 및 환경오염에 따른 내분비계 장애물질 등의 신규 오염물질 출현, 유전자재조합 식품(GMO) 등 생명공학을 이용한 신개발 식품의 증가와 각종 식품 위해 요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식품안전성에 대한 국민의 기대 욕구는 증가되는 데 비해 우리 나라 산업구조는 식품산업의 85%가 영세기업으로 안전한 식품 공급에 한계가 있고,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에 따른 식품시장의 개방으로 인해 국내 식품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어 있으며, 식품안전관리 업무를 분산 관리하는 정부의 행정구조상 안전관리에 비효율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나라 보건복지부는 국민 건강을 위한 식품안전성 확보라는 큰 목표하에 식
품안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효율적인 제도를 정비, 보강하는 식품정책을 수립해 나가고 있다.

한편으로는 다양한 가공식품의 보급과 미각의 서구화로 인해 발생하는 우리 전통음식의 퇴화 또는 소멸을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새로운 식품에 대한 갈망을 전통음식의 발굴·보존 또는 시대 흐름에 맞는 변형 등으로 충족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식품, 외국 식품의 도입. (파워푸드 슈퍼푸드)
외국 식품의 도입뿐 아니라 우리 식품의 국제화도 중요하며, 실제로 우리 김치의 해외 진출은 이러한 점에서 선구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이와 함께 우리 식문화를 국제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관련 서적,
  • 한국식경대전 [韓國食經大典]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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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푸드 슈퍼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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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리법·가공법이 다양하며, 이들 방법도 계속하여 변형 개발되고 있다 #국제문화교류 #외국 식품의 영향 #인구의 증가 #도시의 발달 #산업경제의 발전 #식생활의 모습도 많이 달라지면서 식품의 조리가공도 탈가정화(脫家庭化) #식품공업의 발달 박차 #우리 나라에서도 제분·제당·주조·유지·장류·제면·제빵·제과·청량음료·각종 통조림·축산가공·수산가공·조미료·향신료 #전문화된 식품산업이 크게 발전하고 있다 #국민소득의 증대 #핵가족 수의 확산 #여성들의 사회 진출 #즉석식품·간이식품의 소비 #식품산업의 발달 #인조단백질 #농축단백질 생산 #다양한 즉석 #편의 식품 생산 #식품의 기능성 #유효성분 추출 #이용 확대를 위한 기능성 식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식품산업의 발달에 부수하여 #가공식품의 영양문제·위생문제·공해문제·품질문제 등이 발생하고 있어 #국민보건을 위한 국가 차원의 식품정책이 필요하게 되었다 #2000년에 들어와 우리의 식품환경은 농약 #중금속 오염 #일회용품 #사용 증가 #환경오염 #내분비계 장애물질 #신규 오염물질 출현 #유전자재조합 식품(GMO) #생명공학을 이용한 신개발 식품의 증가 #각종 식품 위해 요인들이 증가 #식품안전성에 대한 국민의 기대 욕구는 증가 #우리 나라 산업구조는 식품산업의 85% #영세기업으로 안전한 식품 공급에 한계가 있고 3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식품시장의 개방으로 인해 국내 식품산업의 경쟁력이 약화 #식품안전관리 #업무를 분산 #관리하는 정부 #행정구조상 안전관리 #비효율적인 문제점 #우리 나라 보건복지부는 국민 건강을 위한 식품안전성 확보라는 큰 목표 #식품안전법 제정을 추진 #효율적인 제도를 정비 보강 #식품정책을 수립 #다양한 가공식품 #보급과 미각 #서구화로 인해 발생 #우리 전통음식의 퇴화 또는 소멸을 우려 #새로운 식품에 대한 갈망 #전통음식의 발굴·보존 #시대 흐름에 맞는 변형 #실용후생()

2020년 4월 15일 수요일

비빔밥,[ bibimbap]

비빔밥,[ bibimbap]

[Rice Mixed with Vegetables and Beef ]
밥에 나물·고기·고명 등을 넣어 참기름과 양념으로 비빈 밥.
흰밥에 고기볶음·나물·튀각 등의 여러 가지 반찬을 섞어 비벼 먹도록 만든 음식.

비빔밥의 역사,
비빔밥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신인공식(神人共食, 제사에 제물로 올린 음식을 신(또는 조상)과 인간(또는 자손)이 함께 먹는다)에서 비롯된 음복설(飮福設)이 일반적이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산신제(山神祭)나 동제(洞祭), 시제(時祭) 등의 제를 지내고 난 후에 제물로 올린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었는데, 집으로부터 먼 곳에 와서 제사를 지내다 보니 그릇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서 그릇 하나에 이것저것을 섞어서 먹게 되었다. 또한 많은 손님들에게 일일이 음식을 대접하기 어려워 제사에 오른 모든 제물을 고루 섞어 비벼 먹던 풍습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비빔밥이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비빔밥은 19세기 말엽에 나온 《시의전서(是議全書)》에 처음 등장하는데, 한자로는 ‘골동반(骨董飯)’, 한글로는 ‘부뷤밥’ 이라 기록되어 있다. 골동반은 여러 가지 재료를 한꺼번에 넣고 잘 비빈다고 하여 ‘뒤섞는다’는 뜻의 ‘골동(骨董)’과 밥을 뜻하는 ‘반(飯)’이 합쳐진 말이다. 《시의전서》에 따르면 “밥을 정히 짓고 고기는 재워 볶고 간납은 부친다. 각색 남새(채소를 가리키는 고어)를 볶아 놓고 좋은 다시마로 튀각을 튀겨서 부숴 놓는다. 위에는 잡탕거리처럼 다 섞고, 깨소금, 기름을 많이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 완자는 고기를 곱게 다져 잘 재워 구슬만큼씩 빚은 다음 밀가루를 약간 묻혀 계란을 씌워 부쳐 얹는다. 비빔밥 상에 장국은 잡탕국으로 해서 쓴다”고 기록되어 있다.

비빔밥에 대한 기록은 《시의전서》가 최초이나 ‘골동반’이란 단어는 조선시대 초기의 여러 문헌에 기록되어 있어, 이미 오래 전부터 비빔밥을 먹어왔음을 알 수 있다. 이학규의 《낙하생집》에 “허리띠의 값이 부자가 여름에 먹는 골동반 한 그릇과 같은 가격으로 값이 600전에 이른다”고 기록되어 있어 당시 부자들만이 비빔밥을 먹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인조 때 박동량의 《기재잡기(寄齋雜記)》와 정조 때 이덕무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등에서 비빔밥을 제사 때 음복례로 먹거나 귀한 손님에게 대접한 음식으로 기록한 것을 보아, 조선시대에는 비빔밥이 특별한 날에 먹던 귀한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849년》에 “강남(중국 양자강 이남을 가리키는 말) 사람들은 반유반(盤遊飯)이란 음식을 잘 만든다. 반유반은 젓, 포, 회, 구운 고기 등을 밥에 넣은 것으로 이것이 곧 밥의 골동(骨董)이다”로 기록된 것을 보아, 중국에서도 송나라 이전부터 비빔밥과 같은 형태의 음식을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 비빔밥은 밥과 나물 등의 부재료를 분리하지 않고 함께 비벼서 먹었는데, 후대로 가면서 밥 위에 부재료를 얹는 방법으로 발전되었다. 비빔밥에 들어가는 재료들도 조금씩 변화되었는데, 근대 초기에는 부재료로 전류나 적류가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알쌈이나 볶은 쇠고기를 사용하는 등 조리법이 간소화 되었다.

밥 위에 갖은 나물과 고기 등을 얹어 양념에 비벼 먹는 음식으로 ‘섞어 비빈 밥’이란 뜻을 담고 있다. 비빔밥은 제철에 나는 여러 가지 채소들로 나물을 만들어 밥과 비벼 먹기 때문에 먹기에 간단하면서도 영양적으로 균형이 잡힌 식사를 할 수 있다. 예부터 궁중에서는 비빔밥을 ‘골동반(骨董飯)’이라 하여 왕실 종친들이 입궐하였을 때 점심상으로 차려냈으며, 평민들은 섣달그믐 저녁에 남은 음식의 해를 넘기지 않기 위해 남은 밥과 반찬을 모두 넣어 비벼 먹었다.

비빔밥에 들어가는 재료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에서 제철에 나는 여러 가지 재료를 다양하게 조합하므로 현지화가 쉽고, 사용되는 재료와 만드는 지역에 따라 종류도 다양하다. 지역별로는 콩나물과 육회를 얹어 먹는 전주비빔밥, 숙주나물과 양념한 육회를 얹고 선짓국을 곁들여 먹는 진주비빔밥, 생미역과 톳을 얹어 먹는 통영비빔밥 등이 유명하다. 또한 비빔밥은 한식을 세계화한 대표적인 메뉴로 세계시장에서도 그 맛을 인정 받고 있다.
궁중비빔밥,
전주비빔밥: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전주 고궁식당의 비빔밥으로 전주의 먹거리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보편적인 일품요리로 골동반(骨董飯)이라고도 하였고, 궁중에서는 비빔이라고 하였다.

비빔밥은 1800년대 말엽의 『시의전서(是議全書)』에 비로소 등장한다. 여기에는 “밥을 정히 짓고 고기는 재워 볶고 간납은 부쳐 썬다. 각색 남새를 볶아 놓고 좋은 다시마로 튀각을 튀겨서 부숴 놓는다. 밥에 모든 재료를 다 섞고 깨소금·기름을 많이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 위에는 잡탕거리처럼 계란을 부쳐서 골패짝만큼씩 썰어 얹는다. 완자는 고기를 곱게 다져 잘 재워 구슬만큼씩 빚은 다음 밀가루를 약간 묻혀 계란을 씌워 부쳐 얹는다. 비빔밥 상에 장국은 잡탕국으로 해서 쓴다”고 쓰여 있다.

문헌으로는 1800년대 말엽에 나타나지만 그 역사는 짧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산신제·동제 등은 집에서 먼 곳에서 지내므로 식기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또 제물은 신인공식(神人共食)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릇 하나에 이것저것 받아 섞어서 먹었을 것이다. 조상에 올리는 제사의 경우도 제물을 빠짐없이 음복하기 위하여 밥에다 가지가지 제찬을 고루 섞어 비벼 먹었을 것이다. 따라서 비빔밥은 제삿밥에서 발달한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도 제사를 지내는 집에서는 자시에 음복례를 지내고 젯메와 제상에 올린 적·숙채·간납 등을 넣고 밥을 비벼서 나누어 먹는 풍속이 있다.

밥은 흰밥이 가장 좋다. 찬밥도 더운밥도 좋지 않고 김은 안 나면서 굳어지지 않은 밥이 좋다. 찬물(饌物)은 정해진 격식이 없지만 고기는 쇠고기 볶은 것, 닭고기 삶아 무친 것, 쇠고기 육회 등을 쓰고, 나물은 반드시 삶아서 무친 것, 데쳐서 볶은 것, 소금에 절였다 볶은 것 등 익혀서 만든 것이라야 한다.

계절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를 준비하며, 계란으로 지단을 부쳐서 고명으로 위에 얹는다. 육회는 맛이 좋으나 안 먹는 사람을 위해서 볶아 쓰기도 한다. 비빌 때에 넣는 재료가 많으면 따로 간을 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볶은 고추장을 딴 그릇에 담아 곁들여놓아서 식성에 따라 매운맛을 가감하게 한다. 볶은 고추장은 약고추장이라고도 하며, 자반에 곁들이는 것은 되게 만들지만 비빔밥에 쓸 것은 물을 조금 풀어서 짜지 않게 볶아야 한다. 참기름도 비비는 사람이 자유로 넣도록 딴 그릇에 담아놓는다.

섣달 그믐날에는 부엌 찬간에 있는 먹다 남은 반찬이 그대로 해를 넘기는 것을 꺼려하였다. 그래서 남은 밥에 반찬을 모두 넣고 비벼서 밤참으로 나누어 먹는 풍습이 있다.

시골에서는 농사철이면 아낙네들이 들밥을 이고 나가는데, 밥은 큰 그릇에 푸고 나물들은 바가지에 듬뿍 담아 나가고 그릇으로는 자그마한 바가지를 많이 가지고 나간다. 그러면 먹는 사람들은 바가지에 먹을 만큼 밥을 덜고, 나물과 고추장을 덜어넣고 잘 비벼 먹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고장에서나 비빔밥을 잘 만들어 먹는다. 비빔밥 중에서는 특히 전주비빔밥·진주비빔밥 등이 유명하다. 진주에서는 비빔밥을 헛제삿밥이라 한다. 또한 밤중에 음식을 파는 집을 헛제삿집이라고 한다. 이러한 말은 밤참을 먹는 것이 마치 제례 후에 음복을 하고 종부가 비벼주는 밥을 먹는 듯하다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다.

비빔밥은 반찬이 마땅치 않을 때 한 끼 식사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요즘에는 날상춧잎, 무생채, 오이생채 등의 날것을 많이 넣지만 예전에는 육회를 빼고는 날것을 전혀 넣지 않았다.

『동국세시기』(1849년)에 “강남(양자강) 사람들은 반유반(盤遊飯)이란 음식을 잘 만든다. 젓, 포, 회, 구운 고기 등을 밥에 넣은 것으로 이것이 곧 밥의 골동(骨董)이다. 예부터 있던 음식이다”고 하여 비빔밥의 유래를 중국에 두었다. 비빔밥을 한자로 ‘골동반(汨董飯, 骨董飯)’이라 하는데, 골(汨)은 ‘어지러울 골’이고, 동(董)은 ‘비빔밥 동’이므로 여러 재료가 고루 섞여 있는 밥이라는 뜻이다.

유만공(柳晩恭)은 『세시풍요(歲時風謠)』(1895년)에서 봄의 미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읊었다.

"파 싹은 푸르고, 겨자는 노라니,
여러 가지 나물을 진설하매 한 소반이 향기롭다.
밥은 골동밥을 이루어서 쓴맛이 더하니,
술을 드리매 의당 백엽주(栢葉酒)로 할 것이다.

입춘날에는 다섯 가지의 나물을 넣어 먹는 오신채 시식(時食) 풍습이 있었는데 바로 오신채를 얹어 먹는 향기로운 입춘 비빔밥을 읊은 시이다. 예부터 입춘날에는 진산채(進山菜)라 하여 경기도 산골 지방의 여섯육에서 움파, 산갓, 당귀싹, 미나리싹, 무싹 등의 오신반(五辛盤)을 궁중에 진상하고, 민가에서도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이 있었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서는 “부빔이란 곧 골동을 뜻하니, 오래되고, 파상 난 것과 헌 넝마 등을 벌여 놓고 팔고 사는 데를 골동가게라 하는 것을 보아 부빔밥도 여러 가지를 섞은 음식임을 알 수 있다. 가게도 신선하고 아담한 물건을 정결하게 차려 놓아야 보기에도 깨끗하니 골동 물건을 잡되게 벌여 놓으면 부빔밥 좋아하는 사람처럼 골동 파는 사람도 그와 같이 탁해 보인다.” 하였으니 비빔밥을 만들 때 아무렇게나 만들지 말고 잘 차려 놓은 골동품 가게처럼 깨끗이 하라는 뜻인 듯하다.

『동국세시기』에도 섣달 그믐날 저녁에 남은 음식은 해를 넘기지 않는다고 하여 그것으로 비빔밥을 만들어 먹고 궁중에서도 ‘비빔’이라고 하여 섣달 그믐날에 해 먹었다고 한다.

비빔밥이 처음 나오는 문헌은 1800년대 말의 『시의전서(是議全書)』이다. 이 책에서는 ‘부뷤밥(汨董飯(골동반))’이라 하여 밥에 나물과 볶은 고기, 전유어, 튀각 등을 넣고 소금과 기름을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고 웃기로 알지단과 고기 완자를 얹었으며, 쇠고기와 내장을 끓인 잡탕국을 곁들였다고 한다.

한편 『자학집요(子學集要)』의 ‘골동반’은 “어육 등 여러 재료를 미리 쌀 속에 넣어서 찐다”고 하였으니 밥 위에 나물과 고기를 얹어 비비는 밥과는 다르다.

우리 조상은 예부터 산신제나 동제, 시제(時祭) 등을 집에서 떨어진 곳에서 지냈다. 제에 참석한 사람은 빠짐없이 음복(飮福)을 해야 하는데 그릇을 하나씩 주고 거기에 밥, 나물, 적 등의 여러 제찬을 함께 담아 주니 먹을 때는 자연히 섞어져서 비벼 먹게 된다. 이처럼 제사 후 비빔밥을 먹는 풍습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문헌에는 1800년대 말에 처음 나오지만 훨씬 전부터 있었으리라고 생각된다.

농가에서 논밭이나 들에서 일하다가 새참으로 보리밥을 바가지에 담고 푸성귀 이것저것과 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던 들밥도 비빔밥의 한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전주비빔밥,
밥에 여러가지 나물류와 콩나물, 전주지방의 향토음식. 육회를 얹어 먹는 전라북도 전주 지역의 비빔밥.

콩나물비빔밥이라고도 한다. 전주비빔밥의 역사와 유래는 확실하지 않으나, 비빔밥의 유래에 관한 여러 가지 설 중에서 궁중음식에서 비롯되어 서민음식화되었다는 설이 가장 타당한 것 같다.

전주비빔밥의 재료는 30여 가지나 된다. 많이 쓰이는 것을 주재료,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부재료로 하여 구분하면 주재료는 쌀·콩나물·황포묵·고추장·쇠고기육회(또는 쇠고기볶음)·접장·참기름·달걀 등이며, 부재료는 깨소금·마늘·후추·시금치·고사리·송이버섯·표고버섯·숙주나물·무생채·애호박볶음·오이채·당근채·파·쑥갓·상추·부추·호도·은행·밤채·실백·김 등이다. 이 중 특히 전주비빔밥의 풍미에 중요한 작용을 하는 것은 콩나물·황포묵·고추장·쇠고기육회(또는 쇠고기볶음)·접장·참기름이다.

만드는 법은 양지머리를 푹 끓여 만든 육수를 식혀 굳은 기름은 걷어버린다. 그 다음 쌀을 넣고 밥을 고슬고슬하게 지어서 더울 때에 참기름으로 비벼 놓는다. 콩나물은 삶아 무쳐놓고 숙주·시금치·고사리 등은 데치거나 삶아 참기름과 간장으로 볶아 무친다. 황포묵은 채를 썰어 양념장으로 무치고 쇠고기는 육회로 무치거나 양념하여 볶는다. 원래는 부엌에서 여러 가지 나물과 고추장·육회·깨소금·참기름으로 맛있게 비비고 황포묵을 얹어 내는 것이었다.
요즘은 밥을 그릇에 푼 다음 그 위에 여러 가지 나물을 화사하게 얹고 고추장·육회·황포묵·달걀을 얹어 내어 먹는 사람이 비벼서 먹도록 한다.

전주비빔밥에는 반드시 콩나물국이 따르며,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황포묵이다. 황포묵은 녹두녹말로 만든 청포묵에 치잣물을 들여 만든 노란색의 묵이다. 묵을 만들려면 물에 철분과 염분이 없는 좋은 수질이어야 녹두전분이 잘 가라앉아 묵을 제조할 수 있다고 한다. 전주 오목대 부근의 지하수가 이러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예로부터 전주 황포묵이 유명하다.
육회비빔밥,
국가/ 구분/ 주재료
한국 전라북도
쌀, 콩나물, 쇠고기
비빔밥은 밥에 여러 가지 나물을 넣어 비벼 먹는 음식으로 전국 어디서나 즐겨먹는 음식이다. 비빔밥에 각 지역 특산물이 재료로 사용되면서 비빔밥은 지역별로 특색 있게 발전되었다. 특히 전주비빔밥, 진주비빔밥, 통영비빔밥이 유명한데, 전주비빔밥은 콩나물이 중요하다. 전주는 수질이 좋고 기후가 콩나물 재배에 알맞으며 전주에서 가까운 임실 지역에서 생산되는 서목태(쥐눈이콩)의 풍부한 공급으로 오래 전부터 질 좋은 콩나물이 생산되어 왔는데, 이 콩나물은 오래 삶아도 질감이 좋은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전주비빔밥의 맛을 내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육회이다. 문헌에 따르면 전주에서는 흉년으로 식량사정이 어려울 때도 매일 육회용으로 소 한 마리를 도살했을 정도라고 한다. 육회는 자연스럽게 비빔밥의 재료로 사용되었으며, 다른 재료와 잘 어울려 전주 비빔밥의 특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전주비빔밥에서 콩나물과 육회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전주비빔밥은 ‘전주콩나물육회비빔밥’이라고도 불렸다. 전주비빔밥의 또 다른 특징은 밥을 지을 때 쇠머리 고운 물로 밥을 짓는 것인데, 쇠머리 고운 물로 밥을 지으면 밥알이 서로 달라붙지 않아 나물과 섞어 비빌 때 골고루 잘 비벼지고 밥에서 윤기가 난다. 또한 전주 비빔밥은 달걀 노른자를 날것으로 사용하고 콩나물국과 함께 먹는다.

양지머리를 끓여서 식힌 물에 불린 쌀을 넣고 밥을 끓이다가 쌀알이 퍼지면 준비된 콩나물의 2/3를 넣고 불을 약하게 하여 뜸을 들이고, 콩나물이 익으면 밥과 골고루 섞는다. 콩나물과 미나리는 각각 데쳐서 참기름과 소금, 마늘, 깨소금으로 무친다. 도라지는 소금물에 바락바락 주물러서 쓴맛을 빼고 물에 헹군 다음 기름에 볶고, 고사리도 끓는 물에 삶아서 볶는다. 쇠고기(우둔살)는 채 썰어 양념장으로 육회를 무친다. 표고버섯은 채 썰어 기름에 살짝 볶고, 애호박은 채 썰어 소금에 뿌려두었다가 물기를 짠 다음 볶는다. 그릇에 밥을 담고 준비된 재료를 색 맞추어 돌려 얹는데, 이때 육회를 가운데에 놓고 그 위에 달걀 노른자를 얹는다. 엿고추장은 종지로 따로 담아내고, 콩나물국과 물김치는 비빔밥과 같이 곁들여 낸다. 

예부터 전라도는 풍류와 맛의 고장으로 이름이 나 있는데 특히 전주는 옛이름이 완산으로 조선 왕가(王家)의 본관이며 온갖 전라도 산물이 모이는 곳이고 음식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외지 사람이 전라도 음식점에 가면 상에 오른 반찬 가짓수에 깜짝 놀라곤 한다. 완산 팔미(完山八味)로 서낭당골에서 팔월에 나오는 감, 기린봉의 열무, 오목대의 청포묵, 소양의 담배, 전주천의 모래무지, 한내의 게, 사정골의 콩나물, 서원 너머의 미나리를 꼽았으나 지금은 안타깝게도 거의 찾을 길이 없다. 지금은 비빔밥이 가장 유명하며 그중에서도 ‘전주비빔밥’이 가장 이름이 나 있다. 요즘 일반 음식점에서는 돌솥에 담아서 뜨겁게 달구어 내지만 본고장에서는 유기 대접에 담아 준다.

전주비빔밥에는 갖가지 나물과 고기 등 20여 가지의 재료가 들어간다. 비법이 몇 가지 전하는데 그중 하나는 밥을 지을 때 양지머리 육수를 부어 뜸이 들 무렵 콩나물을 넣고 살짝 밥김으로 데친 다음 솥 속에서 마구 비빈다. 여기에 묵은 간장(진간장)과 고추장, 참기름 등을 넣고 맨 위에 육회를 얹는다. 이른봄에는 청포묵, 초여름에는 쑥갓, 늦가을에는 고춧잎이나 깻잎 등을 넣어 계절의 맛을 즐긴다.

전주비빔밥의 특색은 무엇보다도 정성 들여 기른 콩나물과 오래 묵은 좋은 간장(진간장)과 고추장에 있다. 전주비빔밥도 예전과 맛이 많이 변했다고는 하나, 50여 년 간 대를 잇고 있는 한 음식점에서는 비법으로 육수로 지은 밥에 오래 묵은 장으로 나물을 무친다고 한다. 또 짧고 통통한 콩나물을 교동 샘물로 끓인 콩나물국을 곁들여야 제격이라고 한다.

양지머리, 사골 육수로 지은 밥 위에 쇠고기 육회, 콩나물, 애호박볶음, 미나리나물, 도라지나물, 고사리나물, 오이채볶음, 당근채볶음, 표고버섯볶음, 황포묵채, 황백지단채를 돌려 담고 다시마튀각고추장을 얹어 낸 것이다. 기호에 따라 날달걀을 얹고 잣을 돌려 담는다.

콩나물국과 볶음고추장, 참기름, 나박김치를 곁들이기도 한다. 전주비빔밥의 맛을 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육회와 콩나물이다. 문헌에 따르면 전주에서는 흉년으로 식량 사정이 어려울 때도 매일 육회용으로 소 한 마리를 도살했을 정도라고 하여 육회는 자연스럽게 비빔밥의 재료로 사용되었으며, 다른 재료와 잘 어울려 전주비빔밥의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전주는 수질이 좋고 기후가 콩나물 재배에 알맞아 오래전부터 질 좋은 콩나물이 생산되어 비빔밥에 이용한다. 사골, 소머리 곤 물로 밥을 지으면 밥알이 서로 달라붙지 않아 나물과 섞어 비빌 때 골고루 잘 비벼지고 밥에서 윤기가 난다.

전주비빔밥: 전주 지방의 향토 음식으로 콩나물비빔밥이라고도 한다. 주재료는 쌀, 콩나물, 황포묵, 고추장, 쇠고기육회(또는 쇠고기볶음), 접장, 참기름, 달걀 등이다.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전주 고궁식당의 비빔밥으로 전주의 먹거리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진주비빔밥,
경상남도 진주의 향토 음식 중의 하나. 거섶으로 머리 없는 숙주나물, 부드러운 시금치 속잎, 어린 고사리나물과 가늘게 찢은 도라지나물을 쓰고 선짓국을 곁들이는 것이 특징이다.

경상도에는 진주비빔밥이 유명한데, 나물을 여러 가지 넣는다고 하여 ‘화반(花飯)’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로 계절 채소를 숙채(熟菜)로 마련하는데 무칠 때 뽀얀 국물이 나올 때까지 손으로 잘 주물러야 맛이 제대로 난다. 바지락 살을 곱게 다져서 볶아 밥 위에 한 수저 얹고 반드시 선지를 넣어 끓인 보탕국을 곁들인다.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유명한 향토 음식 중 하나. 처음 듣는 사람은 전주비빔밥과 헛갈리기 쉽다. 소고기 육회를 고명으로 올린 비빔밥과 경상도식 선지국이 같이 나온다. 고추장도 그냥 고추장이 아니라 소기름에 소고기와 고추장을 볶아서 만든 것을 사용한다. 그래서 보통 비빔밥보다 고기맛이 진하게 나는 비빔밥이다.

진주비빔밥은 진주 지방의 향토음식인 비빔밥으로 밥 위에 콩나물, 숙주나물, 근대나물, 애호박나물, 박나물 등을 색스럽게 얹어 놓고 가운데에 육회를 얹어 고추장으로 비벼 먹는 비빔밥이다. 비빔밥의 모양이 꽃처럼 화려하다고 하여 ‘화반(花盤)’ 또는 황금색의 둥근 놋그릇에 여러 가지 재료를 얹은 모양이 일곱 가지 색상의 아름다운 꽃 모양과 같다 하여 ‘칠보화반(七寶花盤)’이라고도 부른다.

진주비빔밥은 임진왜란 중 진주성 전투 때에 병사들과 백성들이 왜군과 대치하면서 성에 남아 있던 소를 잡아 육회로 만들고 남은 재료를 모두 섞어 비빔밥을 만들어 먹던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진주비빔밥은 《별건곤, 1929년》이라는 잡지의 팔도명물 특집 기사에도 소개될 정도로 유명했고, 예부터 전주비빔밥보다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진주비빔밥은 쇠고기 양지 국물로 밥을 지어 그 위에 여러 가지 나물과 육회, 황포묵, 돌김 등을 얹고 ‘엿꼬장’이라는 고추장에 비벼 먹는데, 진주비빔밥은 나물을 무칠 때에 손가락에서 뽀얀 물이 나오도록 힘주어서 오랫동안 무치고, 선지로 끓인 보탕국을 곁들여 먹는 것이 주요 특징이라고 한다.

천년의 맛과 향기를 가득 담은 진주비빔밥은,
진주비빔밥은 향토음식으로서의 명성과 역사적인 의미, 그리고 시각적인 아름다움까지 갖춘 음식이다. 진주비빔밥은 그 맛과 영양성이 뛰어나 조선시대에는 궁중에서 즐겨먹는 음식 중 하나였으며, 특히 태종 때에는 한양의 정승들이 비빔밥을 먹기 위해 천리 길 진주를 자주 왔었다는 기록이 있다.

천년의 역사가 흐르는 강의 도시, 진주의 아름다운 풍경과 천년의 맛과 향기를 간직한 진주 비빔밥은 한 끼에 필요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 할 수 있는 웰빙식이다.
우리나라의 각종 비빔밥,
진주비빔밥의 특징
진주비빔밥을 꽃밥 또는 칠보화반(七寶花盤)이라고 한 것은 황금색의 둥근 놋그릇에 여러 가지 계절 나물이 어우러져 일곱 가지 색상의 아름다운 꽃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진주비빔밥은 보탕과 그 위에 붉은 엿고추장, 특히 쇠고기 우둔살을 잘게 썰어 깨소금, 마늘, 참기름 등으로 양념한 육회를 반드시 얹어 먹는다.

진주비빔밥에 사용할 쌀밥은 특별하게 짓는다. 심지어는 사골이나 양지를 장시간 곤 육수에 밥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비빔밥과 같이 나오는 선짓국에는 살코기와 선지, 간, 허파, 천엽, 내장을 푹 곤 국물에 작고 도톰하게 썬 무와 콩나물, 대파가 들어가 입맛을 부드럽게 해주면서, 특유의 얼큰한 맛을 선사해 주는 향토음식이다.

여담,
진주냉면을 파는 식당에 가면 진주비빔밥 또한 같이 맛 볼수 있는데 들어가면 진주비빔밥을 전주비빔밥해주비빔밥과 함께 조선의 3대 비빔밥으로 소개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헛제삿밥,
경상도에는 헛제삿밥이란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제사를 올리지 않고 먹는 가짜 제삿밥이다. 그 유래의 한 가지는, 쌀이 귀했던 시절 양반이라도 드러내 놓고 쌀밥을 먹기가 미안스러워 유생들이 모여 제사 음식을 차리고 축과 제문을 지어 풍류를 즐기며 허투루 제사를 지낸 후 제수 음식을 먹은 데서 비롯하였다고 한다. 또 한 가지는 제사를 지낼 수 없는 상민들이 제삿밥이 먹고 싶어 그냥 헛제사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고도 한다.

진주의 설창수 시인은 “조선 시대 경상 관찰사로 부임한 식도락가 사또가 진주 제삿밥이 특미라는 말을 듣고 밤마다 제삿밥을 바치라고 명하였다. 하지만 마을에 제사가 일 년 내내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사령들이 잔꾀를 부려 헛제삿밥을 차려 갔는데 당장 탄로가 나서 혼이 난 일이 있다”고 한다. 제사를 지낼 때에는 반드시 향을 피우므로 밥에 향내가 스며들게 마련인데 매일 제삿밥을 먹던 사또가 향내가 나지 않는 가짜 제삿밥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요즈음 경상도 안동 지방 민속촌에서는 헛제삿밥을 팔기도 한다. 제대로 하려면 제상에 육탕, 어탕, 채탕의 삼탕이 오르나 헛제삿밥에는 고기와 무를 넣고 끓인 탕과 산적, 전유어, 북어찜, 두부부침, 돔배기산적 등과 각색 나물을 함께 낸다. 나물을 무칠 때는 실제 제상에 올리듯 마늘, 파, 고춧가루 등의 양념을 넣지 않고 소금, 간장(진간장), 깨소금, 참기름만을 쓴다. 또 이 지방에서는 반드시 상어인 돔배기를 차린다. 다른 지방에서는 적을 만들 때 고기나 조기 등의 생선을 통째로 쓰는 데 비해 안동을 비롯한 경상도에서는 상어 살을 도톰하게 썰어 꼬치에 꿰어 굽고, 가오리나 문어 또는 고등어 산적을 마련한다.

조리법,
섣달 그믐날 저녁에 남은 음식은 해를 넘기지 않는다고 하여 그것으로 비빔밥을 해 먹었고 궁중에서도 ‘비빔’이라 하여 섣달 그믐에 먹었다.(『동국세시기』)

재료(4인분)
흰밥 4공기, 쇠고기 150g, 생선 흰살(전감) 100g, 고사리 150g, 오이 1개, 도라지 150g, 콩나물 150g, 달걀 2개, 다시마 15cm, 소금·후춧가루·밀가루·참기름·고추장 적량,
(가) 간장(진간장) 3큰술, 설탕 1½큰술, 다진 파 2큰술, 다진 마늘 1큰술, 참기름 1큰술, 깨소금 1큰술, 후춧가루 약간,
(나) 다진 파 2큰술, 다진 마늘 1큰술, 참기름·깨소금 각1큰술, 후춧가루 약간,
(다) 청장(재래식 간장(국간장)) 2작은술, 다진 파 1큰술, 다진 마늘 ½큰술, 참기름·깨소금 1큰술,

* 계량 단위
1작은술 - 5ml(cc) / 1큰술 - 15ml(cc) / 1컵 - 200ml(cc) / 1되 - 5컵(1,000ml)

만드는 법
1. (가)의 양념장을 만들어 채썬 쇠고기와 고사리를 반 분량씩 고루 양념하여 각각 번철에 볶는다.
2. 오이는 얇게 어슷썰기하여 소금에 절였다가 물기를 꼭 짜고, 도라지는 소금에 주물러 씻어 (나)의 양념을 넣고 볶는다.
3. 콩나물은 냄비에 물과 소금을 약간 넣고 뚜껑을 꼭 덮어 충분히 삶아서 (다)의 양념으로 무친다.
4. 생선 흰살은 얇게 떠서 소금, 후춧가루를 뿌리고 밀가루, 달걀 푼 것을 씌워 전을 부친다.
1cm 폭으로 썰고, 남은 달걀은 황백 지단을 부쳐 채썬다.
5. 다시마는 기름에 튀겨서 잘게 부순다.
6. 밥을 약간 되게 지어 위에 고명을 얹을 재료를 조금씩만 남기고, 큰 그릇에 밥과 남은 재료를 한데 넣어 비빈 다음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7. 일인분씩 대접에 나누어 담고 고명을 색스럽게 얹어 낸다.
고추장은 따로 작은 그릇에 담아 낸다.

해장이 필요한 날, 콩나물국밥만큼 반가운 메뉴가 없죠~ 밥을 말아 후후 불며 떠먹다 보면 속이 풀려 있는 마법같은 음식이랍니다. 오징어와 콩나물을 듬뿍넣어 만들어보세요.

요리 재료,
재료(2인분)- 콩나물 3줌, 오징어 1마리, 청양고추 1개, 배추김치 1/2컵, 대파 1/4대, 다시마멸치 육수 6컵, 밥 2공기, 고춧가루 약간

국물양념 재료- 새우젓 1큰술, 맛술 1큰술, 다진마늘 1/2큰술, 후춧가루 약간
만드는 법,
콩나물은 깨끗이 씻어 다듬고, 배추김치는 속 양념을 털어내고 잘게 잘라주세요. 청양고추와 대파는 송송 잘라주세요.
How To 동영상 
고추 송송썰기,

오징어는 내장을 제거하고 깨끗이 씻어 주세요. 냄비에 멸치다시마 육수를 넣고, 끓어오르면 오징어를 넣어 삶은 후 먹기 좋게 잘라주세요.

다시마 멸치 육수내기,
How To 동영상
소요시간: 5분
오징어 삶은 육수에 콩나물을 넣어 3~5분 정도 끓이다가 건져내주세요. 콩나물 삶은 육수에 국물양념 재료를 넣어 밑간해주세요.
그릇에 밥을 담고 삶은 콩나물을 올린 후 뜨거운 육수를 붓고 대파와 청양고추, 오징어, 김치, 고춧가루를 올려주세요.

기호에 따라 새우젓을 가감해서 간을 맞춰주세요. 콩나물국밥을 뚝배기에 끓여 따뜻하게 드셔도 맛있답니다.
콩나물국밥,(Kong-namul-Gukbap),
역참조항목,
나박김치, 밥, 나물밥, 전주시의 사회문화, 안동헛제삿밥, 전주비빔밥, 

카테고리,
  • 생활 > 식생활 > 요리 > 한국요리
출처 ^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 비빔밥 [bibimbap / Rice Mixed with Vegetables and Beef] (두산백과)
[한국요리문화사』(교문사, 1985)
[비빔밥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식 백가지 1, 초판 1998., 10쇄 2011.,)
[LA에서 선호하는 한식 11선
[전주비빔밥 (두산백과)
[doopedia.co.kr
[네이버 지식백과] 전주비빔밥 (전통향토음식 용어사전, 2010. 7..,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식메뉴 외국어표기 길라잡이
[네이버 지식백과] 전주비빔밥 [全州─]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요리백과사전』(삼중당, 1976)
[궁중음식 향토음식』(홍보문화사, 1980)
[전주 콩나물비빔밥에 관한 조사」(『기전여자전문대학논문집』 2, 1981)
[전통향토음식 용어사전
[비빔밥의 역사 (두산백과)
[한국음식 200선
[콩나물국밥 - 속이 풀리는 개운함 (아내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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