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22일 금요일

로큰롤, [ Rock and Roll ]

로큰롤, [ Rock and Roll ]

본격적인 팝 음악 시대를 연 로큰롤,

로큰롤은???

2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 미국은 베이비 붐(Baby Boom)으로 인해 인구가 급증했다. 대부분의 가정에는 라디오와 흑백텔레비전이 자연스럽게 보급되었고, 음악을 포함한 여러 문화 콘텐츠들은 새로운 매체들을 통해 대중의 호응을 얻고, 나름의 영향력을 쌓아갔다.

1950년대 본격적인 팝의 시대를 활짝 열어준 음악은 로큰롤이었다. 긴 전쟁 기간 동안 움츠러든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고, 춤추게 했던 이 음악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정신을 표출했던 블루스와 재즈에 백 비트(backbeat)가 가미되고, 미국 남서부 지방을 중심에서 불려지던 컨트리와 가스펠이 뒤섞인 형태였다. 당시, 미국 클리브랜드에 위치한 WJW 방송국의 인기 DJ였던 앨런 프리드(Alan Freed)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 [Rock’ Rock’ Rock’]에서 이렇게 말했다.

“로큰롤은 많은 시냇물이 모여 만들어진 강이다. 재즈, 래그타임(ragtime), 카우보이송, 컨트리, 포크, 이 모두가 로큰롤의 강한 비트에 기여했다.”

No.아티스트 / 곡명 
1Chuck Berry (척 베리) / Rock And Roll Music (록큰롤 뮤직)음악 재생
2Chuck Berry (척 베리) / Roll Over Beethoven (롤 오버 베토벤)음악 재생
3Bill Haley (빌 헤일리) / Rock Around The Clock (록 어라운드 더 클락)음악 재생
4Bill Haley (빌 헤일리) / Rock A Beatin’ Boogie (록 어 비팅 부기)음악 재생
5Buddy Holly (버디 홀리) / Rave On (레이브 온)음악 재생
6Buddy Holly (버디 홀리) / Valley Of Tears (밸리 오브 티어스)음악 재생
7Little Richard (리틀 리처드) / Long Tall Sally (롱 톨 설리)음악 재생
8Little Richard (리틀 리처드) / Tutti Frutti (투티 프룻)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 유니버설 뮤직

로큰롤의 형성과 본격적 Pop 시대의 개막
1940년대 후반까지 흑인 고유의 특성과 정신이 잘 반영된 재즈와 블루스는 사람들에게 레이스 뮤직(Race Music)으로 불렸는데, 이는 문자 그대로 인종주의적인 의미를 내포했다. 이후, 미국 대중음악 잡지 빌보드(Billboard)의 기자 제리 웩슬러(Jerry Wexler)가 우울한 분위기의 블루스 음악에 전자 기타나 피아노, 드럼으로 리듬을 더한 음악들을 통칭하여 ‘리듬 앤 블루스 레코드’라고 불렀고, 인기 DJ 앨런 프리드는 이런 음악들을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틀 때마다 종종 ‘Rock and Roll’이라고 외쳐댔다.
로큰롤의 아버지 앨런 프리드(좌)와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우),
1950년대 이전 음악 팬들 인식 속에는 ‘블루스/재즈=흑인 음악’, ‘컨트리=백인 음악’이란 공식이 있었다. 베니 굿맨(Benny Goodman) 같은 몇몇 스윙 밴드를 제외하고 흑인과 백인이 한 울타리에서 음악을 하는 것도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리듬 앤 블루스와 로큰롤이 라디오의 전파를 타면서 흑인 음악과 백인 음악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무는 풍토를 조성했다.

흑인과 백인의 범 장르적인 행보도 이 때부터 본격화된다. 흑인 아티스트 중에서 척 베리(Chuck Berry)는 [Maybellene], [Thirty Days] 같은 곡들에서 컨트리 스타일을 구사하기 시작했고, 백인 아티스트 빌 헤일리(Bill Haley)는 [Rock a Bet Boogie], [Two Hound Dogs]에서 리듬 앤 블루스와 스윙적인 요소를 적극 차용하여 연주했다.
피아노로 독특한 로큰롤 스타일을 구사했던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
로큰롤과 앨런 프리드(Alan Freed)
록(Rock)의 사전적 의미는 ‘흔들다’, ‘요동시키다’, ‘춤추다’ 등이 있지만, 피아노 블루스에서 묵직하고, 리듬감 있는 베이스 연주 양식을 의미하기도 했다. ‘구르다’, ‘둥글다’를 뜻하는 롤(Roll)은 속어로 흑인들이 술에 취한 후 갖는 성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로큰롤이란 단어 자체가 지니는 동적이면서도, 육감적인 뉘앙스는 두 단어의 본질적인 의미와 어느 정도 연관성을 갖는다.

로큰롤의 음악적 성격은 흑인들의 우울한 ‘블루스’가 ‘리듬 앤 블루스’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조성되었다. 특히, 1950년대 유행했던 로큰롤 뮤지션들이 유년 시절 컨트리와 재즈, 스윙 음악 등을 듣고 자란 것은 로큰롤 뮤직의 리듬감과 동적인 요소에 많은 기여를 했다.

로큰롤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39년 컨트리 가수 버디 존스(Buddy Jones)의 곡 제목, ‘Rockin' Rolling Mama’로 보는 견해가 많으나, 많은 사람들이 이 용어를 대중화시킨 인물로 앞서 언급한 앨런 프리드를 꼽는다. 그는 미국 미시시피주 클리브랜드 소재 WJW 라디오에 심야 프로그램 ‘더 문독 하우스 로큰롤 파티(The Moondog House Rock And Roll Party)’를 새롭게 편성하고, DJ를 맡는다. 당시 앨런 프리드는 클리브랜드에 음반점 랑데부(Rendezvous)를 경영하던 리오 민츠(Leo Mintz)와 평소에 친분을 쌓아오면서, 백인 고객들의 흑인 음반 구매가 현저하게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위축된 소비 탓도 있었지만, 백인들의 감성을 고스란히 반영한 컨트리 음악이 음반 시장에 주를 이룬 것도 한몫 했다.

앨런 프리드는 이런 현상에 착안하여, 백인들이 어느 정도 컨트리 음악에 싫증을 낼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름의 틈새시장을 공략한다. 그는 1951년 7월 11일 첫 방송부터 백인들에게 흑인 음악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파격적인 기획과 편성을 시도하게 된다. 당시, 이런 과감한 시도는 컨트리로만 채워지지 않던 대중들의 허전한 마음 한 구석을 충족시켜줄 수 있었고, 로큰롤의 인기와 함께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앨런 프리드,
그는 라디오 DJ 이외에도 매체의 힘을 등에 업고, ‘문독 쇼(Moondog Show)’라는 공연을 기획하고 영화에도 출연하여 로큰롤 전도사로서 활약해 팝 음악사에 한 획을 그었다. 하지만, 1958년 미국 전역을 들썩이게 한 페이올라(Payola)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자신이 쌓아온 인기와 명성을 한 순간에 무너트리게 된다. DJ가 방송에서 음악을 틀어주는 대가로 가수와 매니저들에게 뇌물을 받아 문제가 된 이 사건에는 앨런 프리드 외에도 많은 인기 DJ들이 연관되어 있었다. 조사 결과 앨런 프리드는 레코드사들에게서 3만 달러가 넘는 돈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고,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이 판결 난 지 5년 후 앨런 프리드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의 나이 43세였다.

비록, 앨런 프리드의 말년은 허망했지만, 그가 로큰롤을 포함한 팝의 역사에 지대한 공헌을 한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페이올라 사건으로 인해 오랜 시간 동안 그가 쌓은 명성과 업적이 가려졌지만, 198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 And Museum)에 그의 이름이 헌액되면서 로큰롤 아버지로서 명예도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대개, 블루스의 W.C 핸디(W.C. Handy)나 컨트리의 지미 로저스(Jimmie Rodgers)처럼 장르마다 음악적으로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준 아티스트들에게 아버지란 호칭이 붙는다. 하지만, 앨런 프리드는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가 아니었음에도, 로큰롤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점을 기리는 뜻에서 사람들은 앨런 프리드를 로큰롤의 아버지로 명명한다.

로큰롤의 선구자, ‘척 베리(Chuck Berry)’
“로큰롤 음악을 들어봐요. 낡은 방식을 골라도 괜찮아요
백 비트가 있어서 놓칠 수 없지요. 어떤 낡은 박자를 사용해도 돼요
당신이 나와 춤추길 원한다면, 그게 바로 로큰롤이죠”
(Just let me hear some of that rock and roll music. Any old way you choose it.
It’s got a back Beat, You can’t lose it. Any old time you use it.
It’s gotta be rock and roll music, If you wanna dance with me.)- 척 베리의 곡 [Rock’n Roll Music] 中에서
척 베리(Chuck Berry, 1926 ~)
1950년대를 흔들었던 척 베리의 노래 [Rock And Roll Music]의 첫 소절이다. 이 노래는 1957년에 공개된 싱글로, 그 해 빌보드 싱글 차트 ‘Billboard Hot 100’에서 8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후에, 비틀즈(The Beatles)가 척 베리의 38세 생일을 기념하여 녹음한 후, 자신들의 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 [Beatles For Sale]에 수록했다. 그들은 앨범에서 [It’s got a backbeat]를 [It’s got a black beat]로 바꿔 불렀는데, 록 음악이 흑인에게서 나왔음을 알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바꾼 것이다.

척 베리 하면 생각나는 것이 엉덩이를 쭉 빼고 한 쪽 발을 든 채 유쾌한 웃음을 지으면서 기타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이다. 그는 1950년대 클럽에서 여러 밴드들과 공연을 하면서, 블루스 아티스트 머디 워터스(Muddy Waters)에게 발굴되어 세상에서 빛을 보게 된다. 척 베리는 블루스, 재즈, 스윙을 모두 수용하면서도 컨트리의 요소도 가미해, 그만의 독창적 연주 스타일을 완성했는데, 이는 로큰롤 기타 스타일의 표본이 되었다.

척 베리는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가사, 공연 도중 관객과 대화하듯 툭툭 뱉는 추임새, 그리고 역동적인 무대 매너와 연주로 당시 로큰롤의 주 관객층이었던 십 대들에게 큰 환호를 받았다.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같이 1960년대에 등장한 록 밴드들은 척 베리의 음악을 좋은 교본으로 삼아 기반을 다지기도 하였다. 또 파도 타듯 흘러가는 고유의 기타 주법은 향후 록 음악과 서핑 음악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55년 빅 히트를 기록한 [Maybellene]을 포함하여, 비치보이스가 가사만 바꿔서 발매한 [Surfing USA]의 원곡으로 잘 알려진 [Sweet Little Sixteen], 그리고 초창기 비틀즈가 함부르크에서 자주 연주했던 [Roll Over Beethoven] 등 혁신가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로큰롤 음악들을 많이 남겼다.

빌 헤일리, 로커 빌리 스타일로 대중을 흔들어 놓다.
리허설 중인 ‘빌 헤일리 앤 히즈 코메츠’
척 베리가 로큰롤의 기초를 형성한 인물이라면, 빌 헤일리(Bill Haley, 1925-1981)는 로큰롤의 대중적인 호응을 이끌어내고 미국 이외의 나라에 로큰롤을 전파한 인물로 평가된다.

이마 앞으로 내린 꼬부랑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빌 헤일리는 원래 1950년대 초반부터 컨트리 가수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의 음악은 굴러가는 듯한 컨트리 비트에 박력 있는 블루스가 가미된 모습이었는데, 당시 음악 평론가들은 이런 독특한 스타일을 ‘로커빌리’라고 칭했다. 로커빌리는 후에도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sley), 칼 퍼킨스(Carl Perkins)의 주무기가 되면서, 음악의 성격을 특징짓는 하나의 용어로 자리 잡았다.

1952년부터 그는 빌 헤일리 앤 히즈 코메츠(Bill Haley And His Comets)라는 밴드를 만들어 활동하였는데, 멤버들의 역동적이고 요란한 무대 매너는 항상 많은 화제를 낳았다. 이들은 영화 [폭력 교실(Blackboard Jungle)] OST로 수록된 곡 [Rock Around The Clock]을 1955년 7월 9일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올려놓으면서 이후 로큰롤 팬덤의 최전선에 놓이게 된다.

밴드의 음악은 평소 쾌활한 빌 헤일리의 성격을 많이 반영하고 있었고, 이들이 연주하는 밝고 단순한 로큰롤 음악들은 대중들로 하여금 쉽게 로큰롤을 접할 수 있게 해줬다. 이러한 면모는 [Rock A Beatin’ Boogie], [Crazy Man Crazy] 같은 곡들에서 경쾌한 기타와 박력 있는 드럼 비트로 잘 나타난다.
로큰롤의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온 영화 [폭력 교실(Blackboard Jungle)]의 포스터,
이듬해, 엘비스 프레슬리의 등장으로 미국 시장에서 빌 헤일리의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지만, 평소 대중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항상 관찰하고, 자신의 음악이 어떤 시장에서 통할 지 잘 알았던 빌 헤일리는 이후 영국을 포함한 유럽 각지에서 로큰롤을 전파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로큰롤의 황제, 만능 엔터테이너 ‘엘비스 프레슬리’
로큰롤의 황제, 만능 엔터테이너 ‘엘비스 프레슬리’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네이버 뮤직에서 앨범듣기
그의 이름만 들어도 어디선가 "You ain’t nothin’ but a hound dog. Cryin’ all the time…"(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 ‘Hound Dog’ 첫 소절)이 들리는 것 같다.

1954년만 하더라도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1935 – 1977)는 극장 안내원과 트럭 운전사로 생계를 유지해나가던 멤피스의 시골 청년이었다. 그가 어머니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4달러를 들여 녹음한 [That's All The Time (Mama)]는 프로듀서 샘 필립스의 마음을 사로잡고, 엘비스는 RCA 레코드 사와 정식 계약을 하게 된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3만 5천 달러의 거금을 받고, RCA와 계약한 직후에는 그의 잠재된 끼와 탤런트가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1956년 [Heartbreak Hotel]이 싱글 히트 1위를 차지하면서, 드디어 그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1956년 한 해 동안 [Don’t Be Cruel], [Hound Dog], [Love Me Tender] 등을 포함하여 총 5곡의 싱글을 1위에 올려놓는다.

1958년에 군 입대 이후에도 그가 발표했던 곡들과 녹음해두었던 곡들은 많은 인기를 얻으면서, 시대의 아이콘으로 각광받는다.

훤칠하게 생긴 외모와 함께 묵직한 목소리로 끈적한 흑인의 느낌을 잘 살려냈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폭발적인 쇼맨십과 수많은 히트곡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또 그는 영화나 TV 프로그램 등 각종 매체를 종횡무진 하면서, 로큰롤 시대 최고의 슈퍼스타로 활약하였다.

로큰롤, 1950년 문화를 이끌다.
1950년대 중, 후반에 로큰롤이 대중 장르로 자리 잡은 것은 팝 음악 역사에 있어서 의미가 크다. 앞서 언급한 척 베리, 빌 헤일리, 엘비스 프레슬리 외에도, 천재적인 작곡 실력을 보여주었지만 불의의 사고로 요절한 아티스트 버디 홀리(Buddy Holly), 열정적인 무대 매너로 관중을 사로잡은 리틀 리처드, 그리고 거친 로큰롤을 들려준 에디 코크런(Eddie Cochran)에 이르기까지 많은 아티스트들은 로큰롤의 다채로운 느낌을 창조해냈다.

억압의 틀을 깨듯,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기타를 치며 노래 불렀던 아티스트들은 젊은 세대들의 심정을 대변해주었다. 또한 다양한 매체의 등장과 정치, 경제적으로 안정된 분위기는 로큰롤 음악이 세대를 넘어 대중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데 큰 몫을 했다.

블루스, 재즈, 스윙, 컨트리를 자연스럽게 수용했던 로큰롤은 팝 음악의 본질적인 특성인 개방성, 대중성을 추구하면서도, 시대의 유행을 이끈 장르였다. 이후 록, 포크, 펑크, 디스코 등의 다양한 장르가 형성되고, 대중들에게 자연스럽게 유입될 수 있도록 물꼬를 튼 음악이 로큰롤이라는 점도 팝 음악 역사에서 의미가 크다.

추천앨범
Colour Collection아티스트Chuck Berry(척 베리)
빌 헤일리가 1954년에 발표하여, 영화 [폭력 교실]을 통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곡 [Rock Around The Clock]을 타이틀로 한 앨범이다. 앨범에는 [Shake], [Rattle And Roll]을 비롯하여, “Rock Rock Rock Everybody, Roll Roll Roll Everybody”라는 후렴구가 인상적인 [Rock-A-Beatin’ Boogie]가 수록되어 있다. 빌 헤일리가 미국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로큰롤 음악들이 궁금하다면, 이 앨범을 추천해본다.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첫 번째 정규앨범이다. [Heartbreak Hotel]을 비롯해 [Blue Suede Shoes], [I Got A Woman], [I Want You, I Need You, I Love You] 등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로큰롤 음악이 아티스트 한 명의 정규 앨범에 실려있는 것이 지금 봐도 놀라울 따름이다.
점잖은 이미지에 천재 작곡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버디 홀리(Buddy Holly). 1959년 2월 3일 경비행기가 추락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떠오르는 로큰롤 스타였다. 비록 3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등져야 했지만, 버디 홀리가 세상에 남긴 음악들은 현재까지도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면서 로큰롤 역사의 보고로 남아있다.
빌보드는 예전에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를 ‘가장 폭발적이고 유쾌한 로큰롤 아티스트’라고 평가했다. 리듬과 필이 충만했던 리틀 리처드는 [Tutti Frutti], [Ready Teddy] 등을 포함하여, 로큰롤의 또 다른 레시피를 창조해낸 아티스트다.

1950년대 미국에서 발생한 대중적인 음악으로 1950년대 중반 무렵 필 헤일리, 엘비스 프레슬리 등의 뮤지션에 의해 시작되었다. 흑인의 리듬앤드 블루스를 모방하고 컨트리 음악을 혼합하여 만든 것으로, 비트가 강하고 열광적이다. 몸을 흔드는 식으로 춤을 추는 데서 'rock and roll'이라 명명했고, 그것을 줄여 '로큰롤'이라 부른다.

현대 포퓰러음악의 주류를 이루는 대중음악,
외국어 표기
rock(영어)
1960년대 중반 영국의 4인조 밴드 비틀스(The Beatles)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때부터 록의 새 시대가 열리며 전기음과 강렬한 비트로 1960~1970년대의 젊은이들을 매료시켰다. 록이란 명칭은 젊은이들의 사회에 대한 반항적인 태도와 결부되어 생겨났다.

록 뮤직,[ rock music ]
현대 포퓰러음악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대중적 음악.
초기 로큰롤(rock’n’roll)이 차차 ‘R&R’의 약자로 표시되다가, 더 축소된 록(rock)으로 고정된 명칭이다. 록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1960년대 초인데, 이 무렵 록뮤직은 초기 로큰롤과는 표현양식이나 내용면에서 예술적으로 세련되기 시작하여, 전위음악을 시도하는 젊은 음악인들과 재즈뮤지션들도 록에 관심을 표시, 록뮤직은 차차 프로그레시브록, 포크록, 아트록, 재즈록에서 80년대 코스믹뮤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개성이 강한 음악으로 발전해 갔다.

특히 1964년 영국의 4인조 그룹 ‘비틀스’가 미국에 진출, 《그대 손목 잡고 싶어:Ⅰ Wanna Hold Your Hand》로 미국을 통해 전세계로 그들의 노래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록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로큰롤이 E.프레슬리로부터 시작되었다면 록뮤직은 비틀스로부터 시작되었고, 이윽고 그것은 비틀스스타일을 모방한 데이브 클라크 파이브, 롤링스톤스, 맨프리트맨, 홀리스, 애니멀스 등 그룹의 전성시대로 돌입한 것이다.

초기 비틀스는 로큰롤 스타일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으나, 점차 모방에서 벗어나 그들 특유의 음악 분위기를 창출, 독특한 비틀스음악을 들려주기 시작했고, 이어 비틀스음악은 록뮤직의 전형이 되었다. 특히 비틀스 멤버 중의 G.해리슨은 인도의 민속악기 시타르의 독특한 바이브레이션을 록뮤직에 도입, 라가록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1960년대 말 R.무그에 의해 신시사이저(synthesizer)라는 전자회로를 응용한 건반악기가 개발되자, 록뮤지션들은 신시사이저를 응용한 스페이스사운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이 음악에서는 특히 유럽계 뮤지션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서독의 4인조 클라프트 베르크, 프랑스의 디디에 마루아니, 장 프랑수아 자르, 그리스의 반제리스 등이 스페이스사운드, 별칭 우주음악(cosmic music)으로 록뮤직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였다.

참조항목,

역참조항목,

카테고리,
출처 ^ 참고문헌,
[로큰롤 [Rock and Roll] - 본격적인 팝 음악 시대를 연 로큰롤 (팝 음악,)
[네이버 지식백과] 로큰롤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록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네이버 지식백과] 록뮤직 [rock music]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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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명예의 전당은 어느 개인이 헌액되는 것이지 어느팀 소속으로 헌액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선수가 질문처럼 20년간 네 팀에서 활약을 했다면 네 개 구단은 명예의 전당 헌액자를 배출한 구단이 되겠지만 명예의 전당은 현역시절이 아닌 은퇴후 5년이 경과한 뒤에 투표를 실시해 헌액자를 선정하기 때문에 마지막에 몸담았던 구단이라고 해서 그 선수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는 없겠고 개인의 이름으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오르기 때문에 어느팀으로 정하고 하지는 않습니다.
어느어느팀 소속으로 선수생활을 했다는 것이 기록으로 남을테고 어느팀 소속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음악,
195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 일어나 세계적으로 대중음악의 한 주류를 이룬 연주스타일과 리듬의 명칭.
미국 펜실베이니아주(州) 존스타운 출신의 인기 디스크자키 A.프리드가 만들어낸 신조어(新造語)로 현재는 음악용어로 굳어졌다. 당초 로큰롤이라는 명칭은 뉴욕으로 활동무대를 옮긴 프리드가 1951년경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비트가 강한 최신 팝송만을 소개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로큰롤파티’의 디스크자키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는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는 유형의 음악들을 차차 사람들이 프로그램 명칭대로 로큰롤이라고 부르기 시작함으로써 하나의 음악용어로 정착되었다.
특히 1955년 B.헤일리와 코메츠가 발표한 노래 《Rock around the Clock》이 그해 6월 전미(全美) 인기차트 1위에 오르게 되면서 로큰롤 선풍은 전세계에 퍼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56년 2월에는 멤피스시(市)의 크라운전기회사의 트럭운전사였던 E.A.프레슬리가 내슈빌데이비드슨의 RCA레코드사 스튜디오에서 《Heartbreak Hotel》 《I Was the One》을 취입하였다.
음악적으로 로큰롤은 미국 남부 흑인들의 독특한 대중음악 형태인 블루스에 강한 비트가 가미된 리듬 앤드 블루스(Rhythm & Blues : R&B)에다 미국 남서부의 카우보이·광부·농부 등 백인 육체노동자들의 통속적인 대중가요 컨트리뮤직이 적당히 뒤섞여 젊은이 취향에 맞게 만들어진 대중가요 형태이다. 
통속성·즉흥성에 관능적인 요소까지 가미된 초기 로큰롤은 음악적으로 거칠고 조악하게 느껴져 비난도 받았으나, 리듬 패턴이나 감각은 1950년대 중반 이후 발표된 팝송의 귀감이 되었고 차차 예술적 감각이 가미되어 좀더 세련된 음악형태로 발전되어 갔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를 분류하는 곳. 영문 위키를 참고해 그룹으로 퍼포머 부문에 헌액된 솔로 아티스트들도 이 곳에 분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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