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시대의 고분군, 古墳群,
삼가 고분군, [ 三嘉古墳群 ]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양전리에 있는 가야시대의 고분.
지정종목/ 지정번호/ 지정일/ 소재지/ 시대/ 종류/분류/
시도기념물 |
경남기념물 제8호 |
1974년 02월 16일 |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양전리 지도 |
가야 |
고분군 |
1974년 2월 16일 경상남도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었다.
자굴산 정상부 일대에 위치하며 5세기~6세기에 축조된 가야시대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원래 크고작은 봉분(封墳) 수백기가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이후 대부분 도굴되고 현재 본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소수이다.
1981년 주변의 도로를 확장하면서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모두 9기가 발굴조사 되었다.
무덤 형태는 추가 합장인 가능한 앞트기식무덤[橫口式古墳]으로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굴처럼 생긴 널길[羨道]이 있는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과 5세기까지 가야고분에서 주로 발견되는 돌덧널무덤[石槨墓] 등이 혼재되어 있다.
이 중 제4·5·6호는 봉분 하나에 관이 하나씩인 단곽묘(單槨墓)이고 나머지는 모두 봉분 하나에 관이 둘 이상인 다곽묘(多槨墓)이다.
출토 유물로는 목이 긴 목항아리[長頸壺], 다리가 붙어 있는 굽다리접시[高杯] 등의 토기류와 칼, 관옷 등의 철제 무기류, 장신구류가 있다.
합천의 옥전 고분군(사적 326)과 함께 가야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삼가 고분군 지도
합천 가산리 고분군,[ 陜川 佳山里 古墳群 ]
유형/ 시대/ 성격/ 건립시기·연도/ 소재지/
유적 |
고대/삼국 |
고분 |
가야시대(5세기 말∼6세기 초) |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 가산리 |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 가산리에 있는 가야시대의 고분군.
경상북도 고령에서 경상남도 거창으로 가는 도중의 묘산면 소재지 주변의 가산리와 도옥리에 소형고분들이 분포하고 있다. 이 고분군은 다른 가야고분처럼 야산의 서쪽 기슭에 수십 기가 분포하고 있으나 모두 봉토가 유실되어 유구식별이 어렵다.
아직 정식조사를 거친 것은 아니지만, 도굴흔적에 의하면 유구형태는 냇돌을 이용, 장방형으로 축조한 소형 수혈식석곽이 대부분인 듯하다. 맞은편에 인접한 도옥리고분군도 마찬가지 형태인데 최근 도굴흔적에서 같은 구조를 볼 수 있다.
1967년 9월 5일 이곳에서 출토되어 매장문화재로 신고된 유개고배(有蓋高杯)·토배(土杯)·평저단경호(平底短頸壺)·쇠도끼·쇠창편 등의 유물은 모두 가야지역 고분에서 자주 출토되는 것이다.
특히, 합천댐수몰지구내에서 최근 발굴조사된 인접한 합천봉계리고분군, 합천반계제고분군, 합천창리고분군, 고령지산동고분군 등의 유적에서도 서로 관계있는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으므로 이 고분군은 이 지역이 대가야영향권에 속할 때 축조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는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합천 일부리 고분군, [ 陜川 一部里 古墳 ]
유형/ 시대/ 성격/ 건립시기·연도/ 소재지/
유적 |
고대/삼국 |
고분 |
가야시대(5세기 후반∼6세기 전반) |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일부리 |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일부리에 있는 가야시대의 고분군.
합천군 삼가면 소재지의 북쪽 구릉 위에 대형고분 수십 기가 분포하고 있었으나, 주변이 경작지로 개간되면서 대부분 훼손되고 3, 4기가 지하에 유구를 남기고 있다.
고분이 위치한 구릉은 강줄기를 따라 마치 토성처럼 정상부가 나란한 모습을 하고, 그 중간중간과 옆으로 뻗어내린 가지능선 끝에 고분이 분포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동쪽 양전리에 있는 삼가고분군도 마찬가지이지만 다른 지역의 가야고분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것이다.
도굴로 파괴된 유구에 의하면 구조는 점판암의 판석과 냇돌을 섞어 쌓은 장방형의 석실묘인데, 짧은 연도를 남쪽에 두고 천장은 장대석 5, 6장을 걸친 평천장이다. 이러한 대형분 사이에 냇돌로 쌓은 소형 수혈식석곽분이 적지 않게 분포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주변에서 수습된 토기편이나 고분의 형태, 분포상태 등은 인접한 삼가고분군·소오리고분군과는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그 축조시기 또한 같다고 볼 수 있다.
일부리고분군은 시기적으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경에 걸쳐 축조된 듯하며, 역사적으로는 대가야 전성기와 관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합천옥전고분군, [ 陜川玉田古墳群 ]
경상남도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 옥전마을에 있는 가야의 고분군 유적. 사적 제326호. 유구는 야산의 정상부 몇 개의 능선에 나누어져 넓게 분포하고 있는데, 대다수는 봉토 등이 남아 있지 않아 외형상 확인이 거의 불가능하다.
유형/ 시대/ 성격/ 건립시기·연도/ 소재지/ 문화재 지정번호/ 문화재 지정일/
유적 |
고대/삼국 |
고분 |
가야시대 |
경남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 산23-18번지 |
사적 제326호 |
1988년 07월 28일 |
경상남도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 옥전마을에 있는 가야시대의 고분군 유적.
사적 제326호. 경상남도(慶尙南道) 합천군(陜川郡) 쌍책면(雙冊面) 성산리(城山里) 옥전(玉田)골의 구릉지대에 분포하는 합천지역의 중심고분군이다. 이 유적은 1985년 여름에 경상대학교박물관의 황강변 정밀지표조사과정에서 다량의 토기, 갑주(甲胄), 금동제품편(金銅製品片)이 채집됨으로써 중요성이 인식되었다.
1985년부터 6년간 경상대학교박물관에 의해 5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대형고총고분으로부터 소형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묘제들이 확인되었고 각종 중요한 유물 2,000여 점이 수습되었다. 이를 통해 이 지역에 소재한 가야국(伽耶國) 최고지배자집단의 공동묘지임이 밝혀졌다.
고분군은 황강(黃江)변의 해발 50∼80m에 달하는 야산의 정상부에 있다. 유구는 몇 개의 능선에 나뉘어 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대다수는 봉토(封土)가 남아 있지 않아 외형상 확인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특이하게 한 지역에는 지름 20∼30m의 고총고분(高塚古墳)이 18기 군집하고 있으며 고분의 총수는 약 1,000기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까지의 조사 결과, 옥전 고분군에서 확인된 유구는 목곽묘(木槨墓) 52기, 수혈식석곽묘(竪穴式石槨墓) 10기, 수혈계횡구식석실묘(竪穴系橫口式石室墓) 1기, 횡혈식석실묘(橫穴式石室墓) 1기 등이다. 특히, 수혈식석곽묘 중에는 같은 대형이면서도 거대한 봉분이 남아 있는 것과 봉분이 깎여나가 전혀 흔적이 없는 것이 있다. 또한 소형은 측벽의 축조가 아주 정연함에 비해 대형은 극히 무질서해 보이는 특이함이 보인다.
유물은 토기를 비롯해 철제의 갑주·촉(鏃)·대도(大刀, 劍) 등의 무구(武具)와 등자(鐙子)·재갈·안교(鞍橋)·말투구[馬胄] 등의 마구(馬具), 금제이식(金製耳飾), 비취곡옥과 유리구슬로 만들어진 목걸이 등 많은 고고학적 자료가 출토되었다. 이 가운데 금동장관모(金銅裝冠帽)와 금장용봉문환두대도(金裝龍鳳文環頭大刀)·금동장안교(金銅裝鞍橋)·금동장투구·철제말투구 등은 가야 고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고분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중요유물을 유형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장신구
장신구로는 귀걸이와 목걸이가 출토되었다. 귀걸이는 15쌍이 발견되었다. 모두 순금으로 만든 수하식세환이식(垂下式細環耳飾)들이다. 중간식(中間飾)과 미식(尾飾)의 화려한 장식의장과 정교한 세공기술은 높은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목걸이는 유리제가 대다수이며, 그 밖에도 호박·마노를 비롯해 최상질의 비취곡옥 등이 있다. 특히, M2호분에서는 한꺼번에 2,000여 개가 넘는 구슬들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주목되는 것은 구슬들을 만들었던 사암제의 옥마저석(玉磨砥石)도 발견되어 이 유적에서 구슬이 직접 제작되었음이 명백해졌다.
위의구
위의구(威儀具)도 다수 발견되었다. 금동제 관모(冠帽)는 23호분에서 발견되었다. 크기는 대략 너비가 16㎝이고, 높이는 23㎝ 정도이다. 맨 윗부분에 길이 10㎝ 가량의 금동봉(金銅棒)이 꽂혀 있다. 형태는 외연(外緣)에 복륜(覆輪)을 두르고 아랫부분은 문양이 없는 금동판의 대륜(臺輪)으로 구성된, 일반적으로 내관(內冠)이라 불리는 것과 거의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대륜 중앙에 금동판이 솟아 있는 것이나 투조(透彫)에 의한 삼엽문(三葉文)을 새겨 넣은 것도 있다.
용봉문환두대도는 제35호분과 M3호분에서 출토되었다. 이것은 장식의장의 화려함과 독특함때문에 주목을 받아온 자료이다. 특히, M3호분에서는 용봉문·단봉문(單鳳文)·용문장(龍文裝)의 환두대도가 한꺼번에 4자루가 발견되었다. 또한 제35호분의 것은 다소 고졸한 상감(象嵌)으로 장식되어 있다.
귀면문장식도자(鬼面文裝飾刀子)는 제12호분에서 발견되었다. 도자의 손잡이와 칼집에 장식된 금판(金板) 위에 귀신의 얼굴을 요철(凹凸)로 표현하였다. 약간 과장되게 부릅뜬 눈과 열린 코, 크게 벌린 입 등에서 완연한 귀신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이 귀면의 용도는 벽사(辟邪)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무구
투구[胄]는 철제의 종세장방판(縱細長方板) 투구들로서 모두 13점이 발견되었다. 복발(伏鉢)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섞여 있다. 이 중에는 제23호와 M3호분에서 발견된 것처럼 금동장제인 것도 2점이나 포함되어 있다.
특히, M3호분에서 발견된 투구는 지판(地板)의 형태가 종세장방판이 아니라 1점은 합천 반계제(磻溪堤) 가A호분 출토품과 같은 소찰주(小札胄)이다. 또한 다른 1점은 철판을 극히 장식적으로 오려서 횡으로 지판을 결합시킨 독특한 것이다.
이것은 미간부(眉間部)의 복륜과 수미부(首尾部) 가리개, 지판의 고정용 못, 투구 최상부에 모두 금동제를 사용하여 상상을 불허할 정도의 화려함을 보여준다. 이와 거의 같은 형태의 것이 평안북도 태천군 용상리의 총오리산성에서 발견되어 고구려 투구와의 관계를 파악하는데 유익한 자료가 되고 있다.
투구 지판들의 결합은 대개 가죽끈으로 연결된 것[革結法]들이다. 그런데 제28호의 것은 못[釘]으로 연결한다든지 제70호 출토품과 같이 지판의 폭이 엄청나게 넓어지는 등의 변화가 확인되었다. 이것은 투구의 제작에 있어서 시간의 흐름에 따른 단조기술(鍛造技術)의 변천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갑옷[甲]은 모두 5벌이 발견되었다. 비늘갑옷[札甲]은 전형(全形)으로의 복원이 거의 불가능하여 형식의 변화와 기술의 변천 등은 파악할 수 없다. 다만 이러한 자료의 발견으로 고분군 영조자들이 강력한 기병군단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갑주문화는 고구려의 벽화고분에 많이 묘사되어 있어 그 관계를 파악하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반면에 제28·68호분에서 발견된 철판갑옷[板甲]은 비교적 상태가 양호하여 어느 정도 형태 파악이 가능하다. 제28호분의 철판갑옷은 횡장방판정결(橫長方板釘結)갑옷으로서 대개 5세기 후반대에 발견되는 일반적인 갑옷의 형태를 보여준다.
그러나 제68호분의 철판갑옷은 삼각판혁철(三角板革綴)갑옷으로서 지금까지 동래 복천동 제4호분에서 1령(領)이 발견된 바 있다. 복천동 제4호분이 대략 5세기 후반대인 것에 비해, 옥전 제68호는 공반된 토기에 의하면 5세기 초로 편년된다.
성시구(盛矢具)
옥전 고분군에서 10여 점이나 발견되었는데, M3호분 출토의 성시구는 교구(鉸具)에까지도 은상감에 의한 화려한 장식이 확인되었다. 이것은 옥전고분문화의 기술 수준 뿐만 아니라 이들 피장자의 성격을 유추하는데 대단히 주목되는 자료의 하나가 되고 있다.
마구
마구는 옥전 고분군에서 5점이 출토되었다. 말갑옷은 28호분에서 한 벌이 발견되었다. 말띠뜨리개[杏葉]와 꾸미개[雲珠]는 모두 금동장제로서 M2·M3호분과 같은 고총고분에서만 확인되었다. M2호에서는 편원어미형(扁圓魚尾形), M3호분에서는 검릉형행엽(劍稜形杏葉)이 출토되었다.
등자(鐙子)는 대부분 목심철판피륜등(木芯鐵板被輪鐙)이며, M3호분의 철제등자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등자의 형식변천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재갈 역시 다양한 것들이 발견되었다. 대부분 재갈멈치개가 붙은 경판비(鏡板轡)들로서, 등자와 함께 마구의 형태 차이에 의한 편년 자료가 된다. 그 중 M3호분에서는 금동장의 경판들이 채용됨으로써 실용과 장식마구의 관계규명도 어느 정도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기꽂이는 흔히 사행상철기(蛇行狀鐵器)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M3호분에서는 형태가 서로 다른 것이 2점 발견되었다. 동아시아에서의 고구려문화의 전파와 영향을 이해하는 기초적 자료의 하나이다.
기타
이 밖에도 이 유적의 특징을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관대(棺臺)는 고분축조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돌을 이용해서 만들었다. 간혹 철정(鐵鋌)이나 판상철부(板狀鐵斧)를 관 아래에 깔아서 피장자의 부와 권위를 과시하고 있다. M3호분에서는 무려 130여 개의 주조철부를 장방형으로 가지런히 깔아서 관대로 사용한 초유의 현상이 확인되었다. 제28호분에서는 돌로 만든 관대 위에 대도(大刀)들이 좌우로 나란히 잇대어 깔린 상태로 발견되었다.
이 유적에서는 다종다양한 철제품들이 발견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철기들을 직접 생산했던 망치와 집게 등의 단야구(鍛冶具)가 출토되었다. 석구(石球)는 대단히 정성을 들여 둥글게 만든 것으로, 우리나라의 고분에서 발견 예가 드문 자료이다.
이 유적은 유구의 형태에 따라 Ⅰ기-목곽묘기, Ⅱ기-대형 수혈식석곽묘기, Ⅲ기-고총고분기의 3시기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유구의 변천은 함께 출토된 자료에 의해 Ⅰ기는 대략 4세기 대를 중심으로 5세기 전반까지, Ⅱ기는 5세기 중엽경이 중심인 것 같으며, Ⅲ기는 5세기 후반∼6세기 전반대로 파악된다.
의의와 평가
이 고분군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우리나라의 고분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망라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최고 수장급의 무덤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대표적인 자료들이기 때문에 이 고분의 영조집단들도 가야의 지배자들임이 분명하며, 특히 이름만 전해오는 다라국(多羅國)의 실체 파악에 도움이 될 것이다.
고분군의 많은 출토유물 중 특히 갑주와 마구는 대다수 고구려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이것은 당시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 삼국의 정세와 나아가 동아시아의 판도를 이해하는 자료로 활용될 것이다. 앞으로 계속 조사가 진행되어 보다 많은 자료가 확보되면 될수록 다라국의 실체 파악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참조항목
가야고분, 고분, 능, 돌덧널무덤, 동아대학교, 묘, 분묘, 삼가면, 합천군, 합천 옥전 고분군, 굴식돌방무덤
카테고리
출처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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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일부리고분군 [陜川一部里古墳]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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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옥전고분군 Ⅱ: M3호분』(경상대학교박물관,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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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옥전고분군Ⅴ: M10·M11·M18호분』(경상대학교박물관,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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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
[대한민국 구석구석
[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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