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가 새로운 불평등을 낳으며 '코로나 디바이드(격차)'를 만들고 있다. 미국에서는 흑인들의 코로나 사망률이 월등히 높고 전세계적으로 세대별 사망률과 위험도 차이가 현저하다. 백신이나 치료제도 부자나라에 먼저 공급될 조짐이고 주식 등 자산시장 거품을 딴 세상 얘기로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코로나로 까발려진 세계의 민낯을 들여다봤다.
코로나 디바이드④초연결사회 속 백신 민족주의, 유행상황 오히려 악화시킬수 있다 우려도!!!
코로나19 팬데믹에 세계 각 국이 백신 물량 확보에 뛰어들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이 백신을 싹슬이 입도선매하면서 개발도상국들은 백신을 못 구하는 백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우려되고 있다.
보건 전문가들은 '백신 민족주의'는 모두를 위험에 빠트리게 한다며 모두가 안전해야 코로나19가 진정으로 끝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영·미·일 확보 물량이 내년 상반기 생산 목표보다 많아"
미국은 이미 7억회분의 백신을 확보했다. 미국 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와 옥스퍼드대로부터 3억 회분, 미국 화이자와 노바백스, 독일 바이오엔테크, 프랑스 사노피와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등과도 1억회분씩 백신 공급 계약을 맺었다.
영국은 아스트라제네카와 웍하트와 각각 계약을 맺어 오는 9월까지 3000만개의 백신 접종을 확보하기로 했다. 영국은 사노피와 GSK, 발네바와도 계약을 추진했다. 연말까지 1억회분을 공급받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다.
유럽에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4억회분을 구입하기로 한 백신 연합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일본 역시 화이자와 백신 1억2000만회를 공급받기로 했다. 아스트라제네카와는 추가적인 1억회분 공급을 협상 중이다.
미국과 영국, 일본 등 선진국들이 개발 완료도 전에 사들인 백신은 총 13억회분~15억회분에 달한다. 문제는 이 물량이 현재 전세계에서 내년 상반기까지 생산될 것으로 보이는 총 백신 생산량인 10억회분을 뛰어넘는다는 점이다.
보건 전문가들 "바이러스는 국경 몰라, 모두 안전해야 진짜 안전"
보건 전문가들은 백신 민족주의에 우려를 나타냈다. 이들은 코로나바이러스가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쉽고 빠르게 퍼질 수 있는 바이러스인만큼, 어느 한 나라가 백신을 모두 접종한다고 해도 다른 나라가 그렇지 못하면 궁극적으론 전염병 유행 기간이 더욱 길어질 것이라고 봤다. 더 많은 인명피해가 생기고 세계 경제는 계속해서 황폐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백신 민족주의는 궁극적으로 나쁜 약을 만드는 것"이라며 "세계 면역 체계에 많은 양의 코로나19 감염이 존재하면 모든 사람에게 지속적인 재감염 위험이 있다. 모든 사람이 안전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 안전하지 않다"고 전했다. 현재 33개국이 백신 접종을 예약했지만 160개국 이상은 하지 못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백신 민족주의에 대해 경고하면서 더 가난한 나라가 여전히 바이러스에 노출돼 있으면 선진국들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하버드대 의과대학의 댄 바라우치 교수는 ABC뉴스에 "바이러스는 국경을 알지 못하고 경계를 존중하지 않는다"며 "바이러스 확산은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들을 위협한다"고 말했다.
백신민족주의, 비용 올리고 경제 위기 확대시켜 ABC뉴스는???
"백신민족주의는 나라들이 소위 '입찰'을 하게 만들어 백신 비용을 올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동시에 "(백신이 아직 개발 과정에 있는만큼) 많은 양의 백신 후보를 확보한 국가들도 그들이 구입한 백신이 충분히 효과가 없을 수 있단 위험이 남아있다"며 "일부 국가에선 적은 수의 백신에 도박을 해 잠재적으로 위험한 게임을 벌일 수도 있다"고 백신민족주의가 불러올 위험성을 설명했다.
경제학자인 토마스 볼리키 교수와 차드 바운 교수는 전염병을 막는 가장 빠른 방법은 감염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들에게 백신을 할당해 전염의 사슬을 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기 위해선 백신 민족주의가 아니라 백신을 골고루 공급하기 위한 글로벌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백신 할당에 대한 글로벌 협력은 바이러스 확산을 방해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될 것"이라며 "또 경제에 박차를 가하고 공급망 중단을 피하며 불필요한 지정학적 갈등 역시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백신 동맹으로 감염 위험 큰 사람부터 골고루 할당해 전염 사슬 끊어야'
실제로 WHO와 세계백신면역연합(GAVI·가비)은 백신 공동구매·배분 글로벌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facility)라는 동맹을 시작했다. 이들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등 각 국 정부들과 유니세프 등 국제단체, 빌앤멀린다게이츠 재단 등 민간 단체를 한 데 모아 전세계에 고루 백신을 배포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코백스는 2021년 말까지 동맹에 가입한 나라들에 백신 20억 개를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각 국 정부에 동참을 요청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 힐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78개의 선진국과 90개의 개발도상국 등이 관심을 나타냈다. 6억 달러가 모금됐다.
세스 버클리 가비 최고경영자(CEO)는 "코백스를 통한 백신 초기 배포는 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이 가장 높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각 나라 인구의 약 3%에 대한 우선적 예방접종을 의미하는데, 더 많은 양이 제조되면 고령자와 양로원 근로자, 육류 포장 공장 등 감염 위험도가 높은 인구들이 모두 예방접종을 받게 된다.
버클리 CEO는 "전세계 인구의 약 20%가 백신 접종을 받게 되면 전염병을 극적으로 완화할 수 있게 된다"며 "우리는 코백스가 글로벌 유행병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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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춘천시 의암호 선박 전복 사고 발생 엿새째인 2020년 8월 11일 비가 내리는 악천후 속에서도 실종자 구조·수색 작업이 재개됐답니다. 지난 6일 발생한 사고로 4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된 상태입니다.
사고수습대책본부는 이날 오전 6시30분부터 소방·경찰·장병·공무원 등 인력 2074명을 투입해 2명의 실종자 찾기에 나섰답니다. 대책본부는 지난 8일과 10일 실종자 3명이 발견된 춘천시 서면 덕두원리 지역을 중심으로 장화와 구명조끼를 착용한 수색대원을 100m당 2명씩 배치했답니다. 수색대원들은 현재 탐침봉으로 수풀 속을 확인해가며 실종자를 찾고 있답니다.
집중수색 지점인 서면 덕두원 지역에선 지난 10일 오전 7시50분쯤 춘천시청 공무원 A씨(32)가 발견됐답니다. A씨가 발견된 곳은 앞서 수색 사흘째인 지난 8일 오후 2시쯤 경찰관 B씨(55)와 민간업체 직원 C씨(47)가 발견된 지점과 20~30m 거리랍니다. 사고가 난 곳에선 2㎞가량 떨어진 지점이랍니다.
대책본부는 또 사고 지점부터 경강교까지 양방향 30㎞ 구간을 9곳으로 나눠 정밀 도보수색을 진행하고 있답니다. 수상수색엔 보트 32대가 투입됐답니다. 청평댐∼경강교까지 구간별로 강폭 전체에 대열을 이뤄 강변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답니다.
대책본부는 또 기상 여건이 나아지는 대로 헬기 11대와 드론 24대 등을 현장에 투입할 예정이랍니다. 앞서 이날 오전 9시부터는 소방·경찰 구조견 6마리가 수색에 투입된 상태입니다. 헬기는 경강교∼행주대교, 드론은 사고지점∼경강교까지 4개 구간으로 나눠 수색한답니다. 대책본부는 지난 11일부터 헬기를 저공비행시켜 바람을 활용해 와류를 발생시킨 뒤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일대를 수색하고 있답니다.
아울러 군 당국의 제안으로 마네킹에 구명조끼를 입히고 GPS 장치를 붙여 사고 현장에서 떠내려 보는 방법으로 실종자 위치를 가늠해보는 실험도 진행했답니다. 실종자 가족들은 “이미 실종자가 발견된 지역이지만 해당 지점을 또다시 수색하는 등 한 명이라고 더 찾으려고 노력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하다. 앞으로 남은 가족도 잘 부탁한다”고 말했답니다.
참고로 의암댐 선박 전복사고는 지난 6일 춘천시 서면 의암댐 상부 500m 지점에서 발생했답니다. 이 사고로 7명이 실종돼 이날 현재까지 1명이 구조되고 4명이 숨진 채 발견됐으며 2명은 실종된 상태입니다.
8월6일 발생한 의암호 참사는 춘천시민을 비롯한 모두에게 비극이고 아픔이다. 이 사고로 8명이 물에 빠져 2명이 구조됐고 5명이 사망했다. 1명은 여전히 실종상태다. 이 상황에서도 수문이 열린 의암댐을 통과해 13㎞를 떠내려가고도 살아남은 기적적인 사례도 있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곽원복(68)씨가 23일 강원도민일보사를 방문, 사건 당일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곽 씨가 사고 이후 언론에 입장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고 18일째다. 건강상태는???. “퇴원한 지 얼마 안됐다.겉으로는 괜찮은데 정신적인 충격이 아직 있다.”
-사고 당시의 상황은.? “작업선 후미에 타고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물 밑에서 시커먼 것이 올라와 배가 뒤집어진 것으로 기억한다. 배가 뒤집어진 원인은 잘 모르겠다. 작업복은 기억이 난다. 사고 당일 아직까지 찾지 못한 실종자 A씨는 가슴까지 오는 비옷을 입었다.
마침 나는 화장실에 다녀왔고 ‘급하니까 빨리 나가야 합니다’라며 직원들이 배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더라. 나는 일반 장화와 바지와 상의가 구분된 비옷을 입고 나갔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바지와 상의가 구분돼 상대적으로 물 속에서 견디기 쉬웠던 것 같다. 긴 우비를 입으면 물이 옷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무거워져 가라앉을 수 있다.”
-의암댐 문을 통과했는데 그 당시가 생각나는지?.
“배가 전복되고 보니까 바로 제 옆에 실종된 A씨가 빨간 양동이를 들고 있길래 ‘그거 들고 있으면 죽어. 구명조끼부터 챙겨’라고 했다. 스티로폼이 떠내려오길래 그쪽으로 밀어줬다. 그 친구와 나는 12살차이 띠동갑이다.
당시 의암호 유속이 매우 빨랐다.스티로폼을 밀어주니 그 반동으로 순식간에 내가 의암댐 앞까지 와버렸다. 수문에 물이 빨려들어가는 것을 보고 ‘들어가면 죽는다’고 생각해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을 놓지 않았다.
육군 특수부대를 나왔는데 그 당시 훈련받은 대로 얼굴가리고 눈과 귀를 막았다. 마치 엄마 뱃 속에 태아가 감겨 있듯이 몸을 최대한 웅크리니 쑥 들어가면서 몸이 돌기 시작했다. 투닥투닥 부딪히는데 뭐가 뭔지 모른다. 하여간 ‘몸이 벌어지면 죽는다’고 생각해 내려갔다. 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1부터 25까지 세니까 물이 용솟음 쳤고 갑자기 주변이 환해졌다. ‘살았구나’ 싶었다.”
-사고 직후 ‘누가 작업지시를 내렸느냐’가???. “그게 관건이라는 얘기는 들었다. 저희는 누가 나가자고 한 것도 못 듣고 강변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간제근로자이지만 주변 쓰레기는 우리가 치워야 한다는 목적이 있으니까 사명감으로 일한 것 밖에 없다.”
-수문에서 빠져나온 뒤의 상황은?.
“주변 동료들을 향해 ‘조끼 놓지 말아라’,‘정신 똑바로 차려’라고 계속 외쳐댔다.자극을 받으라고 욕도 했다. 나는 중간에 내려오는 스티로폼을 잡아 가슴에 대고 있었다. 평소 교회에 다녀 그때부터 울면서 기도했다. ‘살려달라’,‘도와달라’고 반복했다. 강촌까지만 가면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막상 근처에 갔더니 사람도 없고 차들도 없었다.
‘살려달라’고 손을 흔들었는데 사람들이 보지 못했는지 두리번거리기만 하고 날 보지는 못했다. 남이섬까지만 가면 된다고 판단해 강촌 펜션쪽을 지나면서 ‘살려달라’고 외쳤다.어떤 우산을 쓴 아주머니가 발견하고 우산을 집어던지더니 휴대폰을 찾는 듯한 모습을 봤다. 다시한 번 ‘살았구나’했다.”
-결국 춘천에서 수상레저업체를 운영 중인 김현도 대표가 발견해 구조했다.
“갑자기 배가 보였다. 나도 손을 들어서 ‘살려달라’고 했다.배가 속력을 내는 소리가 났다. 물결이 하도 세 배가 나한테 가까이 오질 못했다. 주변을 돌면서 ‘정신있지요?’,‘수영할 줄 아나요’ 계속 말을 걸어줬다. 수영할 생각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는데 뒤에서 확 잡아챘다. 간신히 보트를 잡고 올라서니 그때부터 저체온증이 너무 심해 무척 추웠다. 구해주신 선장님과 직원분들이 계속 마사지도 해주고 정신을 잃지 않게 도와주셨다. 선장님도 오랫동안 배를 운전했는데 그렇게 힘들었던 것은 처음이라고 하시더라.”
-구조되자 마자 ‘시청에 전화해 달라’했는데.
“‘기간제근로자다. 춘천시에,춘천시 환경과에 전화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는지 알아봐달라고도 부탁했다. 가장 먼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이 생각났다. 전화드렸더니 물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으셨는지 목사님이 우셨다. 저를 알아봐 준 우산을 쓴 아주머니도 보고 싶고 배를 타고 저를 구하러 와주신 선장님도 너무 감사하다. 같이 일하는 직원분들과 모두 합심했기 때문에 살아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같이 일하던 기간제근로자 분들은 목숨을 잃었고 한 명은 아직 실종상태다.
“이 애석한 마음은 헤아릴 수 없다. 같이 일한지는 한 달 남짓 됐지만 다들 친하게 지냈다. 특히 실종된 친구가 최종 면접에서 했던 말이 아직도 생각난다.그 친구가 ‘자식이 셋 있는데 형편이 넉넉지 않고 입사시켜주시면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밥을 먹으러 가도 서로 한 숟가락씩 더 주려고 했고 식사 후 계산할 때도 ‘내가 살테니 다음에 사라’는 식이었다. 가장 먼저 (심정지 상태로)발견된 B씨는 우리가 대장이라고 불렀다.”
-사고 후 여러가지 주장들이 많이 나왔는데???.
“어떤 사람들은 ‘보상 많이 받겠다’고 하는데 그런거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거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가 썩어가는 것이다. 숨진 공무원은 아내 친구 아들이다. 병원에 있을 때도 B씨 장례식장도 다녀왔고 (21일 발견된) C씨 한테도 가보려고 한다. 물에 빠지자마자 구조된 반장이 있는데 그분과도 연락했다.”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
“댐을 통과하고도 손등 조금 까진 것 외에 아무 곳도 다치지 않았다는 그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우선 착하게 살아야 하고 죽음 앞에서는 두려워 말자,
삶에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 생활 신조다.이번 일을 계기로 종교적인 믿음이 더 확고해졌다.”
13km 휩쓸린 뒤 기적적 구조된 의암호 생존자"
의암호 선박 3척 전복 사고로 현재 1명이 구조되고, 5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습니다. 사고 발생 23일째, '인재'라는 지적 속 사고경위는 아직 밝혀지지 못했고 수습되지 못한 1명의 실종자가 있습니다.
5명이 목숨을 잃고 1명이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강원 춘천 의암호 전복 사고. 이 사고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68살 곽원복 씨는 그는 믿을 수 없는 사고 당시 상황을 언론에 밝혔습니다. 그는 사고 후 한 시간 동안 13km를 휩쓸려 떠내려간 뒤 기적적으로 구조됐습니다.
기간제 근로자인 곽 씨는 다른 근로자들과 함께 폭우 속 인공 수초섬이 유실될 우려가 커지자 현장에 나갔습니다. 그는 "작업선 제일 후미에 타고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물 밑에서 시커먼 것들이 훅 올라오더니 배가 뒤집어진 것으로 기억한다"며 전복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곽 씨는 배가 전복된 뒤 의암댐 수문 쪽으로 순식간에 휩쓸려갔습니다. 당시 계속된 폭우로 의암댐에서는 '초당 1만 톤'의 물이 방류되고 있었습니다.
의암댐 수문으로 빨려들어간 곽 씨. 그는 "얼굴을 가리고 손을 최대한으로 꼭 막고 그 와중에서도 불과 몇 초 사이에서도 코에다 손을 대고, 귀와 눈을 꼭 막고, 동그랗게 그대로 갔다"며 "곧, 몸이 돌고 투닥투닥 무언가에 부딪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의암 다리 밑에서 부유물을 붙잡고 돌아봤는데, 수문에 물이 계속 빨려 들어갔다"며 "'저기 들어가면 난 죽는다'라는 생각을 갖고 정신을 놓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곽 씨는 이후 휩쓸려가는 물 속에서 "몸이 벌어지면 죽는다, (구명) 조끼가 벗겨지면 죽는다는 생각에 바짝 오므리고 뭐가 때리는지 몰라도 그러고 내려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물이 너무 차가워서, 몸이 추워서 견디기 어려웠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는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며 마주친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첫 번째, 두 번째 사람은 '살려달라'는 소리만 듣고 두리번댔지만 자신을 보지 못하고 놓쳤다고 전했습니다
이후 세 번째 아주머니가 '살려달라'는 말을 듣고 휴대폰을 꺼내는 걸 보고 '살았구나' 안도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무려 13km를 휩쓸린 끝에 그는 기적적으로 한 배를 마주쳤습니다. 수상레저업체 직원이 그를 우연히 발견하고 구조에 나선 것이었습니다. 직원은 "수영할 생각 하지 말고, 그 상태로 계속 조끼 입은 상태로 몸을 맡기라"며 그를 뒤에서 건져 올렸습니다.
탈진된 상태로 구조되는 순간에도 곽 씨는 다른 동료 구조 요청부터 했다고 합니다. 그는 배에 타면서 "구해주셔서 감사하다. 하지만, 제 뒤에 세 사람이 떠내려오는 거 같은데 그 사람들 마저 구해달라"며 "춘천시청에 전화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의암호 선박 전복사고 나흘째인 9일 춘천 춘성대교 부근에서 구조대원들이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의암호 참사 사건은 생존자,그 가족들에게도 여전히 고통이다.생존자 가족 측은 9일 강원도민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사고 트라우마가 심한 상황”이라며 “같이 일하던 분들이 사고를 당했다는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생존자 가족 측이 전한 생존자들의 상태는 여전히 위태롭다.사고 이후 4일째 잠을 거의 자지 못하고 있고 작은 소리에도 놀라기 일쑤다.가족 측은 “한 배에 타고 있던 분들이고 같이 일을 해오신 분들이기 때문에 충격이 더 크다”며 “30분도 채 잠들지 못하고 있어 도저히 안되겠다고 판단해 시청에 얘기했고 지금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의 기억을 다시한 번 건드릴까 가족들도 아직까지 정확한 사고 경위를 알지 못하는 상태다. 실시간 사고 현장이 방송되는 뉴스도 시청 금지다.더욱이 이 가족 역시 민간 레저업체를 운영,사고 당시 지원을 나갔다.
이미 배는 뒤집힌 상태였고 물에 빠진 아버지를 구하러 나섰지만 옆에서 말리는 친구 때문에 더이상 다가가지 못했다.모든 것을 포기하고 강변으로 나왔고 극적으로 살아나온 아버지를 다시 만났다.가족 측은 “따로 살기 때문에 사건 당일 출근하는 모습도 제대로 못 봤고 아버지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볼 수 있어 그저 다행”이라고 했다.3명이 숨졌고 3명은 여전히 찾지 못하는 상황.‘살았다’는 생각은 곧 ‘나 혼자만 살았다’는 죄책감으로 이어진다.
가족 측은 “다른 사람들은 물 속에서 아직 찾지도 못하고 있는데 다른 실종자 가족들을 보면 미안한 마음도 있다”며 “주변에서 혹시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고 밝혔다.생존자 가족 측은 실종된 기간제근로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관심도 당부했다.
가족 측은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솔선수범 일 해오신 분들”이라며 “경찰이나 시청 공무원분들에 비해 기간제근로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는 조명이 많이 되지 않는 것 같다.그분들이 이번일로 또 다른 상처를 받지 않도록 춘천시청을 비롯한 주변에서 각별히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죽음의 고비를 넘긴 그는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 삶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 저의 새 삶의 신조"라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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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보살은 이와 같은 자비가 광대하므로 대자(大慈) 대비(大悲)라 하며 이 대자대비로써 한량 없는 중생들을 제도하는 것이다. 곧 중생에게 인자한 마음으로 즐거움을 주면서 제도하고 또 가없이 여기는 마음으로 고통을 덜어 주면서 구제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자비는 불·보살이 다 지니고 있고 또 광대한 대자 대비를 모두 갖추셔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므로 어느 불·보살에게나 다 공통한 것임을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도 특히 관세음보살만을 지칭하여 자모요 대비보살이라 하며 또 대자 대비에서 으뜸은 으례 관세음보살이라 하는데, 그것은 명호 그대로 세간(世)의 소리(音)를 관찰(觀)하는 보살이기 때문이다.
관세음보살은 원래 관세음·관음 등으로 한역(漢譯) 하였고 또는 관세자재(觀世自在) ·관자재(觀自在)라고도 하였다. 이것은 범어의 아바로기데스바라(AVAL0KITESVARA)를 한역한 것으로 오늘날에는 관세음보살이라고 통칭하고 있으며 관음은 관세음의 준말이다.
이 관세음이라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이 보살의 이름을 부르는 이가 있으면 그 부르는 음성을 관세음보살이 두루 잘 관찰하여 들으시고 구제하여 준다는 뜻이요 관자재라 한 것은 세상을 잘 관찰하면서 모든 중생의 고통을 덜어 줌과 동시에 즐거움과 행복을 베풀어 줌에 있어 자유자재하다는 뜻이다.
또 이 명호는 자비로 중생 제도를 위해 나투는 몸의 양상에 따라 갖가지로 구분하고도 있다. 곧 육도(道)중생을 교화 제도하기 위하여 관음의 화현을 밝힌 육관음이 있고, 33신(身)에 배대하여 불리워진 33 관음이 있으며, 그 밖에 밀교에서는 25 관음·28 관음·40관음 등의 이름이 있다.
이렇게 자음자재하게 세간 중생을 구제하므로 구세대사(救世大士)라고도 하는데 이 구세에 관계되는 관음의 경전은 〈관음경〉을 위시하여 무려 50여 경전에서 직접 간접으로 말씀하고 있다.
이 관세음보살은 과거에 이미 성불하신 부처님인데, 지금은 오직 자비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보살의 몸으로 향하(向下)한 분이라는 것이다. 〈관음삼매경〉에서 부처님은 말씀하기를 「관음은 나보다 먼저 성불하였고 명호는 정법명여래(正法明如來)이시며, 나는 그 부처님의 고행 제자였다」고 했으며,,,
〈천수경〉에서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씀하기를 「이 관세음보살은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아승지겁 전에 이미 성불하신 정법명여래이시다. 대비의 위력으로 중생용 제도하기 위하여 다시 지금은 보살의 몸을 나타내고 있다. 너희들은 항상 공양 예찬하면서 그의 명호를 일심으로 부르라. 한량 없는 복을 얻고 한량없는 죄가 소멸될 것이며, 목숨을 마치면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자 나리라」고 했다.
이렇게 과거에 이미 성불하신 부처님이 다시 보살로 향하하여 있음은 오직 대자 대비의 원력으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니, 어찌 그 여느 불·보살보다도 자비가 수승하다 하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이와 같이 수승한 자비를 지닌 관세음보살은 고해(苦海)에서 헤매는 중생들이 지극한 마음으로 그 이름과 경문(經文)과 주문(呪文)을 외무고 생각하면, 어떻게 그 자비를 드리워서 즐거움을 주거나 괴로움을 없애주면서 소원이 성취되게 하는가를 <관음경〉과 〈능엄경〉에 의거하여 개략적으로 설명하여 보자.
무수한 중생들이 생사의 고통을 받아 육도를 돌고돌아 쉴 사이가 없으므로 관세음보살은 이러한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몸으로 그에 알맞게 나투어서 법을 말하여 그들로 하여금 성취되게 한다.
만일 보살로서 삼매에 들어 무루의 법을 닦아 수승한 지해(知解)가 뚜렷이 나타난 이에게는 부처의 몸을, 유학(有學)으로서 고요하고 묘하게 밝아서 그 묘함이 뚜렷이 나타난 이에게는 독각(獨覺)의 몸을, 유학으로서 12인연을 끊고 인연이 끊어진 성품에 수승한 묘함이 뚜렷이 나타난 이에게는 연각(緣覺)의 몸을, 유학으로서 4제(四諸)가 공하여지고 도제를 닦아 멸제에 들어가려 할 적에 수승한 성품이 뚜렷이 나타난 이에게는 성문(聲聞)의 몸 동을 각각 나투어서 설법하여 해탈케 한다.
만일 모든 중생들이 음욕의 마음을 밝히 깨닫고 범치 아니하여 청정하려 하면 법왕(贊王)의 몸을, 하늘의 주인이 되어 모든 하늘들을 통솔하려 하면 제석(帝釋)의 몸을, 몸이 자재하여 시방에 다니려 하면 자재천(自在天)의 몸을, 몸이 자재하여 허공에 날아다니려 하면 대자재천(大自在天)의 몸을, 귀신을 통솔하며 국토를 보호하려 하면 천대장군(天大將軍)의 몸을, 세계를 통솔하여 보호하려 하면 4천왕(天王)의 몸을, 하늘 궁전에 나서 귀신을 부리려 하면 4천왕천의 태자의 몸등을 각각 나투어서 설법하여 성취케 한다.
만일 모든 중생이 국왕이 되기를 좋아하면 국왕의 몸을, 성바지의 주인이 되어 세간에서 추앙함을 좋아하면 장자(長者)의몸을, 명언을 이야기하며 청정하게 살기를 좋아하면 거사(居士)의 몸을, 정치하고 벼슬하기 좋아하면 재상의 몸을, 술수를좋아하고 위생적으로 살아가려 하면 바라문(婆羅門)의 몸을, 남자가 출가하여 계율을 지니려 하면 비구의 몸을, 여자가 출가하여 금계를 지키려 하면 비구니의 몸을, 남자가 5계를 받아 지니기를 좋아하면 우바새(優婆塞)의 몸을,
여자가 5계를 지키며 살려고 하면 우바어(優婆夷)의 몸을, 여인이 출세하여 집과 나라를 다스리려 하면 왕후나 고관의 아내 몸을, 어떤 남자가 일생 동안 여인을 범하지 않으려 하면 동남(童男)의 몸을, 처녀가 일생 동안 처녀 몸을 유지하려 하면 동녀(童女)의 몸 등을 각각 나투어서 설법하여 성취케 한다.
만일 하늘과 용과 야차와 건달바와 아수라와 긴나라와 마후라가 들이 그의 무지에서 벗어나려 하면, 각각 그들과 같은 몸을 나투어서 설법하여 성취케 한다. 만일 중생들이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닦으면 사람의 몸을, 사람 아닌 것(非人)들이 그의 무리에서 벗어나려 하면 모두 그 몸을 나투어서 설법하여 성취케 한다
또 중생들이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불에 들어가도 태우지 못하게 하고 물에 표류해도 빠지지 않게 하며, 귀신이나 중생들이 해치지 못하게 하고 천재지변의 해를 입지 않게 하며, 감옥과 형구에서 풀려나게 하고 탐냄 성냄 어리석음을 멀리 여의게 하며, 자식 없는 이에게는 자녀를 점하고 아내를 구하는 이에게는 아내를 얻게 하며 내지 삼매나 열반을 구하는 이에게는 삼매와 열반을 얻게 한다.
〈능엄경〉에서는 「관세음보살 한 분만을 부르는 복덕과 항하모래만치 많은 보살의 이름을 부르는 이의 복덕이 똑같다」고했다. 이와 같아서 관세음보살이 모든 중생구제를 위해 드리우는 자비는 한이 없고 끝이 없다. 이 관세음보살의 자비야말로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여야 다할 것이다.
범능스님 관세음보살 노래,
관음신앙(觀音信仰)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불교신앙의 하나.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염불하여 현세의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영험을 얻고자 하는 신앙형태이다. 관세음보살은 광세음보살(光世音菩薩) ∙ 관세음자재보살 이라고도 하며, 줄여서 관음보살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인 보살이 위로는 불도를 구하고 아래로는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겠다는 서원을 가지는 데 대하여, 관음보살은 특히 대자대비(大慈大悲)를 서원으로 하는 보살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관음신앙은 주로 화엄경. 법화경. 아미타경. 능엄경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된다. 화엄경에 의하면, 관세음보살은 남쪽 바닷가 광명산(光明山)에 머물러서 대자비경(大慈悲經)을 연설하여 널리 중생을 일깨워 제도하고 있다.
대비법문(大悲法門)과 광명의 행을 성취하여 일체중생을 교화하고 성숙하게 하며, 항상 모든 부처님 처소에 머물면서 사섭법(四攝法)으로 중생을 받아들여 제도할 뿐 아니라,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어디에서나 중생과 같은 몸을 나타내어 감싸고 제도한다. 그의 서원은 오직 일체중생을 섭취함(攝取一切衆生)에 있다. 이는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험한 길의 공포와 열뇌의 공포, 어리석음의 공포, 얽매임의 공포, 죽음의 공포와 빈궁의 공포, 불활(不活)의 공포, 쟁송(諍訟)의 공포, 대중의 공포, 살해의 공포, 악도(惡道)의 공포, 윤회의 공포 등 모든 공포를 떠나게 한다. 또, 법화경에 의하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마음에 간직하고 염불하면 큰 불도 능히 태우지 못하고, 홍수에도 떠내려가지 않으며, 모든 악귀도 괴롭힐 수 없다.
칼과 몽둥이는 부러지고 수갑과 향쇄 ∙ 족쇄는 끊어지고 깨어진다. 또, 중생의 마음속에 있는 불안과 두려움을 제거하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삼독(三毒)을 여의게 하며, 아들이나 딸을 바라는 이에게는 뜻에 따라 자식을 얻게 한다. 그리고 방편의 힘으로 33응신(三十三應身)을 나타내어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아미타경에서는 아미타불의 왼쪽 보처(補處)로서 아미타불의 뜻을 받들어 중생을 보살피고 도와줄 뿐 아니라,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자들을 인도하는 구실을 담당하고 있다. 능엄경의 경우, 관음의 현세이익과 중생구제의 내용은 법화경의 설과 거의 같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관세음보살을 원통교주(圓通敎主)라 칭하고 32응신이라 표현하는 것은 법화경이 아닌 능엄경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든 경전에 나타나 있는 관세음보살의 공통점은 세상을 구하고 생명있는 자들에게 이익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절대적 자비심인 무연대비(無緣大悲)를 중생에게 베풀어서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권능을 실행하는 힘이 관세음보살이다. 그러므로 모든 불행한 중생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지송하고, 항상 마음속에 새겨서 공경하고 예배하면 해탈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즉, 어떠한 고난이나 재액에서도 관세음보살을 칭념하면 반드시 해탈을 얻게 된다는 것인데, 그 칭념을 통해서 관세음보살과 중생을 일체감을 형성하고, 하나가 된 세계에서 자비로운 원력(願力)작용하여 소원을 성취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관세음보살의 종류로는 성관음(聖觀音) ∙ 천수관음(千手觀音) ∙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 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 ∙ 마두관음(馬頭觀音) ∙ 준제관음(准提觀音)등으로 분류되는 육관음과 이에 불공견색(不空羂索)을 더하여 칠관음이라 하며, 백의(白衣) ∙ 엽의(葉衣) ∙ 다라(多羅)∙대세지(大勢至)등의 각종 관음을 더하여 32관음 ∙ 33관음이라고 하였다. 이 가운데 성관음은 본신이고 다른 것은 보문시현(普門示顯)의 변화신(變化身)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관음신상사를 통해서 볼 때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은 십일면관음과 양류관음(楊柳觀音) ∙ 천수관음이다.
십일면관음
11개의 얼굴을 가진 관세음보살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실라시대부터 관세음보살의 신앙과 함께 이 보살의 조상이 유행하였으며, 그 대포적인 것이 석굴암의 조각상을 들수 있다.
<십일면관음신주경, 十一面觀音神呪經>에 의하면, 11면이란 본얼굴을 제외하고 두부에 부가된 11가지 모습을 지칭한 것이다. 경에는 두부 전면에 3면이 있고, 그 좌우에 각각 3면, 그리고 후면에 1면, 정상에 1면을 가진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이를 석굴암관음상처럼 부조로 나타낼 쌔는 전면에 화불化佛 1면, 좌우에 각 3면, 정상에 3면, 그 바로 귀에 1면을 표현하게 되는데, 이는 보조의 경우 어쩔 수 없는 일반적인 형태이다. 이 11면은 관세음보살의 다양한 기능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앞의 3면은 자상(慈相; 자비로이 웃는 모습)으로서, 선한 중생을 보고 자심慈心을 일으켜 이를 찬양함을 나타낸 것이다.
왼쪽의 3면은 진상瞋相;성낸 모습으로서 약한 중생을 보고 비심悲心을 일으켜서 고통에서 구하려 함을 나타낸 것이며, 오른쪽의 3면은 백아상출상白牙上出相; 이를 드러내어 미소짓는 모습으로서 정업淨業을 행하고 있는 자를 보고는 더욱 정진하도록 권장함을 나타낸 것이다. 뒤의 1면은 대폭소상大暴笑相;크게 웃는 모습으로서 착하고 악한 모든 부류의 중생들이 함께 뒤섞여 있는 모습을 보고 이들을 모두 포섭하는 대도량을 보이는 것이며. 정상의 불면불면; 부처님의 모습은 대승근기大乘根機를 가진 자들에 대하여 최상의 진리를 설함을 나타낸 것이다. 이 11면을 본얼굴과 합하면 12면이 된다. 이 12면 중 11면은 방편을, 본 얼굴은 진실을 상징하며, 11면은 중생의 교화를 위한 행위와 관련이 있고 본얼굴은 불변의 지혜를 상징하고 있다.
즉, 선한 중생을 교화할 때는 자상을 쓰고, 악한 중생을 교화할 때는 진상을 쓰고, 선악이 뒤섞인 중생들을 교화할 때는 대폭소상을 , 정업의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는 백아상출상으로써 한다. 그러나 이 사바세계에는 선한중생이 적고 악한 중생이 많으르로, 먼저 진상으로 그들의 마음을 조복調伏하여 선심善心을 일으키게 한 뒤 자상으로써 그들을 교화한다. 그리고 한 중생을 교화람에 있어서도 정해진 일정한 상이 없다. 때로는 11면을 다 드러낼 때도 있고 1면만 드러낼 때도 있다. 또, 불면은 1면, 자상과 진상과 백아상출상을 각각 3면. 폭소상을 1면으로 한 데에는 까닭이 있다. 불면이 하나인 까닭은 과보가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상이 3면인 까닭은?,
첫째,고통만 있고 즐거움이 없는 중생에게 즐거움을 얻게 하려는 것이고,
둘째, 복은 있지만, 지혜가 없는 중생에게 지혜와 신통력을 갖추게 하려는 것이며,
셋째, 지혜는 있지만 통달하지 못한 중생에게 지혜화 신통력을 갖추게 하려는 것이다. 진상이 3면으로 되어 있는 것은 첫째는 고통스러운 과보를 떠나려는 욕심 때문에 오히려 고통을 낳는 행위에 빠진자를 보고 노하는 것이고, 둘째는 즐거움의 과보를 받고자 하지만 즐거움의 원인이 되는 선행을 닦을 줄 모르는 자를 보고 노하는 것이며 셋째는 적정寂靜한 이치를 구하려 하면서도 도리어 산란한 경계에 집착하고 있는 자를 보고 노하는 것이다.
백아상출상이 3면인 것은 몸과 마음과 뜻의 삼업三業으로 아무런 죄를 짓지 않는 자의 청정함을 찬양하기 위함이다. 대폭소상은 선악이 뒤범벅된 뭇 중생들을 통틀어 비웃는 까닭에 1면으로 되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전래되는 십일면관음의 설화 중에는 신라의 국사 경흥憬興의 병을 고친 이야기가 널리 전승되고 있다.
삼랑사三郞寺에 머물러 있던 경흥은 갑자기 병이 들어 여러 달이 경과하였다. 하루는 여승이 나타나서 “경흥의 병이 근심으로 인해서 생긴 것이니 즐겁게 웃으면 나을 것”이라 하고, 열한가지 모습으로 변하면서 춤을 추었다. 그 변하는 모습이 너무나 기괴하여 턱이 떨어질 지경으로 웃고 나자 경흥의 병은 나았다고 한다. 이 여승이 십일면관음의 화신이었다.
양류관음
버드나무 가지를 든 관세음보살로서 33응신 중 하나이다. 관세음보살이 중생의 소원을 좇아 이루게 하는 것이 마치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쓸리는 것과 같다고 하여 양류관음이라 하였다. 이 관음은 6세기 전게에 번역된 <다라니집경바羅尼集經>에서 최초로 보인다. 우리나라에는 보통 바다 위에 떠 있는 연꽃모양의 대좌 위에 큰 원형 광배光背를 지고 서 있는 모습으로 많이 묘사된다. 흩날리는 옷자락에 두손에는 각각 감로병과 버드나무 가지를 쥐고 발아래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선재동자善財童子,일명南詢童子를 지그시 내려다보는 모습을 휘하고 있다.
양류관음이 남순동자와 함께 묘사되어 있어서 민간에서는 남순동자를 관음이 점지하는 아들로 착각하고, 흔히 아들을 기원할 때 이 관음에게 기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남순동자는 보타락사산에서 관세음보살의 대비법문大悲法門을 경청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또한, 이 관음이 흰 옷을 입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에는 백의양류관음이라고 부른다. 백의양류관음으로 유명한 작품은 15세기에 그려진 무위사無爲寺극락전에 벽화와 해인사이 양류관음도가 특히 유명한다.
천수관음
27개의 얼굴과 천개의 손, 천개이 눈을 가진 관세음보살로서 천수천안 관세음보살 또는 대비관음이라고도 한다. 육관음 중 두 번째 관음이며. 온몸이 황금색이다. 그러나 조형 또는 그림에서는 천재의 손, 천재의 눈을 묘사하기 어려우므로, 줄여서 두 준과 두 손을 중심으로 양쪽에 각각 20개의 손을 묘사하고 손바닥마다 한 개의 눈을 나타낸다. 이 40개의 손은 한손마다 각각 25종류의 중생을 제도하므로 40x25의 천수가 되고, 따라서 눈도 천안이 된다고 보고 있다. 이것은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큰 작용이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특히 지옥의 고통을 해탈하게 하여 모든 소원을 성취시킨다고 한다.
천수관음은 654년에 한역된 <다라니집경>에서 나타나는데, 여러 관음들 중에서 가장힘이 있는 수제자로 꼽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8세기경부터 천수관음이 널리 신앙괴어 청수보살의 불화가 많이 그려졌다. 특히. 경주 분황사芬皇寺의 천수관음에 대한 신앙은 <천수경>의 보급과 함께 더욱 보평화 되었고,천수주千手呪의 영험과 함께 그 신앙이 오늘날에까지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다
역사
백제-우리나라에 관음신앙이 전래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뿌리를 내린 것은 6세기밀경의 삼국시대로 보인다. 부여 군수리사지軍守里寺址에서 출토된 금동관음보살입상이 6세기 후반의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뒤 7세기초에 걸쳐서 조성된 백제의 관음보살상은 현재까지 적지 않은 수가 전하고 있다. 또, 제나라 육과陸果의 관세음응험기에 의하면, 백제 승 발정發正이 502~519년 사이에 중국으로 유학가서 30여년을 머무르다가 고국으로 돌아오는 도중 월주지방越州地方의 관음도량을 참배하였다고 한다.
일본측 사료에도 595년 백제의 공장工匠을 시켜 관음상을 조각하였다는 기록과 백제 사문 일라日羅가 583년에 일본으로가서 일본의 태자 성덕과 관세음보살에 관해서 문답하였다는 등의 기록이 있다. 또한 일본 백제사의 본존이 관음상인 것도 백제에 관음신앙이 성행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관음신앙의 중심경전이 법화경이라는 점으로 미루어볼때, 현광玄光이 진나라의 혜사慧思에게서 법화경을 배우고 법화삼매를 증득하였다는 것과 무왕 때의 혜관慧觀이 법화경을 독송하였다는 것 등은 관음신앙의 유포를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것임을 살필 수 있다 고구려의 경우에는 고구려로 유학온 일본 승 행선行善이 고구려에서 관음보살을 염송하였다는 것이 일본의 기록에 나타나고 있을뿐 그밖의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신라-신라의 경우에는 <삼국유사>에서 많은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소판무림은 관음상 천부를 조성하고 아들 얻기를 기원하여 자장慈藏을 낳았다. 신라불국토설의 확립에 지대한 구실을 한 자장의 탄생설화에 관음신앙이 얽혀 있다는 접은 관음신앙이 불국토사사의 형성에 어떤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신라에 크게 관음신앙을 확산시킨 고승은 의상義湘이다. 의상은 당나라에서 귀국한 직후,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하고자 동해의 관음굴로 가서 백화도량발원문白樺道量發願文을 짓고 관음기도를 했다.
발원문은 “세세생생 관음을 친견하기 위해서 귀명歸命하되, 관세음보살이 아미타불을 이마 위에 이고 계심과 같이 관음대성을 이마 위에 모시고 영원한 본사本師로 삼겠다.” 는 신앙고백과, 일체중생이 관음의 이름을 생각하여 함께 원통삼매圓通三眛에 들기를 기원하는 내용을 요지로 삼고 있다. 기도한 지 7일 만에 좌구座具를 새벽 물 속에 띄웠더니 천룡天龍 등 8부신八部神이 관음굴 속으로 그를 인도했다. 굴 속에서 공중으로 향해 예배하자 수정 염주 하나가 손에 쥐어졌고 동해용으로부터 여의주 한 알을 받았지만 관음의 진신은 친견할 수 없었다. 다시 7일 동안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 정진한 뒤 관음진신을 친견하게 되었다.
“쌍죽雙竹이 나은 곳에 불전을 지으라” 는 관음의 지시에 따라 의상은 낙산사를 창건하고 친견한 진신의 모습과 같은 관음상과 수정 염주, 여의주를 불전에 모신 뒤 떠나갔다. 뒤에 원효元曉도 관음진신을 친견하기 위해서 낙산사를 찾았는데, 도중에 원효는 벼를 베고 있는 흰 옷 입은 여자를 보았다. 희롱삼아 그 벼를 달라고 하였더니 여인은 벼가 열매 맺지 않았다고 희롱섞인 대답을 했다. 또 가다가 다리 밑에 이르렀는데, 속옷을 빨고 있는 여인을 만났다. 원효가 먹을 물을 청하자 여인은 핏빛어린 물을 떠 주었다. 그 물을 더럽게 여긴 원효는 냇물을 다시 떠서 마셨는데 소나무에 앉았던 파랑새가 “제호醍醐를 싫다고 하는 화상, 제호를 싫다고 하는 화상”이라 하면서 조롱섞인 노래를 불렀다. 잠시 뒤 여자와 새는 사라지고 짚신 한짝만 남아 있었다.
낙산사에 도착한 원효는 관음상 밑의 냈가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짚신 한짝이 있음을 발견한 뒤, 전에 만났던 여자가 관음굴로 들어사서 진신을 친견하려 하였으나 풍랑이 크게 일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그 뒤 원효는 남해를 면한 현재의 금산錦山이 관세음보상의 수월도량水月道量인 동시에 화엄경 보광전회普光殿會의 관음회상觀音會上임을 확신하고 이곳에서 기도를 올려 관음진신을 친견한 뒤, 683년에 절을 짓고 보광사라 하였다. 이 절은 현재 보리암菩提庵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우리나라 3대관음성지의 하나이다.
신라 관음신앙의 대포적인 영험담은 조신調信의 설화이다. 조신은 서라벌 세규사세규사에 속하여 있는 명주 장사장사의 관리인이 되었다. 이곳에서 고을 태수의 딸을 보고 애정을 느낀 조신은 애타는 마음으로 영험 있는 낙산사 관음보살에게 낭자와 부부연을 맺게 하여줄 것을 지성껏 빌었으나, 그녀는 얼마 뒤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갔다.
조신은 소원을 이루어 주지 않은 관음보살을 원망하여 날이 저물도록 슬피 울다가 관음상 밑에서 쓰러져 잠이 들었다. 문득 낭자가 기쁜 얼굴빛으로 문을 열고 들오와서, 일찍이 조신을 사모하였으나 부모의 명으로 억지로 다른 사람에게 시집갔으나, 이제 그와 부부가 되고자 함을 고백했다. 그뒤 40년을 함께 살아 다섯 자녀를 두었지만, 가난 때문에 굶주림에 시달렸다. 10년 동안 거지생활을 하다가 명주 해현령을 지나는데, 굶주림에 지친 열다섯살의 큰아이가 죽었다. 길가에 묻은 뒤, 옥현에 이르러 초가를 짓고 살았지만, 그들 부부는 이미 늙고 병들고 굶주려서 자리에서 일어나지고 못했다.
열 살된 딸아이가 얻어오는 음식으로 영명하였지만 그 딸도 마을의 개에게 물려 자리에 눕게 되었다. 가족이 모두 물면서 옛 추억과 50년의 인연, 현실의 고통 등을 이야기하고, 부부는 각기 아이 둘씩을 데리고 헤어져 살자고 다짐한다. 막 헤어져서 길을 떠나려 할 때 꿈을 깨었다. 아침이 되니 조신의 수염과 머리털은 모두 흰색으로 바뀌었다.
실제로 한평생 신고를 겪은 것처럼 세상사에 뜻이 없어졌고 탐욕의 마음도 없어졌다. 이 설화에는 조신의 갈애渴愛를 꿈으로 풀어서, 인생이 긴 꿈임을 깨우친 것으로 신라 불교신안의 특징을 뚜렷이 담고 있다. 현실에 대한 단순한 소원의 성취가 아니라. 정법正法에 근거를 둔 관세음보살의 참된 자비를 신라적으로 수용한 대표적인 예이다.
고 려
고려초기에는 금강산 보덕굴에서 관음진신을 친견한 회정懷正이 강화의 보문사普門寺을 서해의 대포적인 관음기도처로 만들었다. 회정은 그곳의 굴에 봉안되어 있던 불상을 살펴보았다. 가운데 좌상은 석가모니불이고 좌보처는 미륵보살, 우보처는 제화갈라보살이었고, 나머지는 18나한상과 송자관음이었다.
회정은 이 22존 중 3존불과 18나한은 굴 숙에 모시고, 송자관음은 따로 관음전을 지어 모시게 한 다음 낙가산 보문사라 부르게 하였는데. 이 송자관음에는 자식을 원하는 사람의 소망을 이루게 하는 신묘한 영험담이 많이 전하고 있다. 또한, 1185년에 병마사 유자량庾資諒이 낙산사 관음굴 앞에서 분향, 배례하자, 청조靑鳥가 꽃을 물고 날아와서 갓 위에 떨어뜨린 고사가 전해되고 있는데, 지금도 이 낙산의 굴 앞에서 지성으로 예배하면 총조가 나타난다고 한다.
특히, 고려시대의 관음신앙에서 주목되는 것은 충숙황 때의 승려 요원了圓이 저술한 <법화영험전>이다. 수록된 1백여편의 영험설화 중 3편만이 신라와 고려의 영험담이며 나머지는 모두 중국인에 관한 것이지만, 이 영험전은 조선시대에도 보성 개흥사開興寺, 고창 문수사文殊寺, 안변 석왕사釋王寺 등의 사찰에서 재판되었는데, 이는 일반인의 생활 속에 관음신앙이 널리 유포되어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관음신앙은 또한 대비원大悲院, 보통원普通院, 제위보濟危寶 등 구호사업기관 운영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조 선
이성계는 왕이 되기 전에 큰 뜻을 품고 팔도의 명승지를 다니면서 기도를 올렸는데, 남해의 보광사에서 백일관음기도를 드린 뒤 꿈에 관세음보살로부터 금척金尺을 하사받았다. 등극한 뒤 태조는 불은佛恩에 감사하는 뜻에서, 보광산을 금색 비단으로 둘러싸려 하였으나, 비단의 양이 엄청나고 오래지 않아서 썩게 된다는 신하의 말에 따라 산 이름을 금산錦山으로 바꾸어서 천만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는 비단산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산 1660년에는 이 절을 왕실의 원당願堂으로 삼고 보리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곳에서 관음기도를 지성으로 하면 반드시 올바른 깨달음인 보리를 성취할 수 있다는 데서 기인되었다. 이 보리암에도 수많은 영험담이 전래되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을 도와서 대승을 거두게 했던 삼련三蓮비구니에 얽힌 설화이다. 삼련은 묘련妙蓮. 보련寶蓮. 법련法蓮 등 세 비구니의 이름이다. 전라도 광양에 살았던 황유초黃維肖에게는 선옥仙玉이라는 딸이 있었다. 그녀는 출가하여 보련이 되었고, 선옥의 유모는 묘련, 선옥의 몸종은 법련이 되었으며, 그들의 스승은 지월指月이었다. 어느 알 이들은 “대도大道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관세음보살의 신력神力 과 가피를 입지 않으면 안되리라.” 고 생각하여 남해 보리암을 찾았다. 그곳에서 1천일을 관음기도를 하다가 어느 날 불상좌대 밑에 있는 고문서를 발견했다. 그 문서에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우리 세 사람은 연화도인蓮花道人을 모시고 십년간을 이 곳에서 관음성호觀音聖號를 부르며 공부하여, 마침내 관음대성의 자비롭고 미묘한 성상聖相을 친견하였다. 기쁨과 감격에 넘치어 세세생생 이곳에 와서 연화도인을 모시고 공부하기를 맹세한다. 정덕무인구월正德戊寅九月 연화도인 지월의 제자 성운性雲. 성련性蓮. 성월性月. 근기謹記”. 이 글에 적힌 연화도인은 현세의 은사 지월이고, 성운은 묘련, 성련은 보련, 성월은 법련으로 화현한 것이다. 세비구니는 더욱 신심을 굳혀서 정진하고 천일의 정진을 회향하여 자재한 신통력을 얻게 되었다. 그 뒤 그들은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손자병법을 익히고 해산열도海山列島의 지세와 해류를 살피는 한편, 거북선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뚜껑을 씌운 배를 만들어 타고 이순신과 함께 군사전략을 숙의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보련은 이순신의 막하에서 참모 겸 지휘자의 구실을 하여 싸움마다 대승을 오리게 하였고, 다른 두 비구니는 뚜껑 배를 타고 왜적을 섬멸하였다. 뒤에 조정에서는 보련에게 자운선의장군紫雲宣義將軍이라는 직함을 내렸다고 한다. 또, 조선 중기의 이창해李滄海는 제주목사의 부임을 위해서 배를 타고 가던 도중에 태풍을 만나서 일본의 지마도志摩島에 이르러 40여년을 살았는데, 어머니와 동생이 관음기도 덕분에 풍랑을 타고 고국으로 돌아와서 동생과 해후하게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그가 제주도로 떠나던 날 어머니는 낙산사 관음상 앞에서 관음의 대비주大悲呪를 외우며 기도하였고, 매년 풍랑을 만났던 날이면 명복을 기리면서 관음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조선시대 말기에 김포에는 판서 벼슬에까지 올랐던 심씨가 살고 있었다. 나이 육순이 넘도록 자식도 없이 살다가 아내까지 사별하게 되자 그 고적함을 달랠 길이 없었다. 그는 보문사로 가서 지성을 다하여 관음기도를 올리면서 아내를 맞게 하고 아들을 점지하여줄 것을 축원하였다.
심판서가 회향하던 날 꿈에 관음보살이 나타나서 배필이 될 여자를 만나게 해주었고, 이들은 아들을 낳아서 단란하게 살다가 해로하였다고 한다. 이밖에도 조선시대의 수많은 고승들은 관음기도를 즐겨 행하였다. 조 선 후기로 갈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지는데, 특히 천수대비주를 통한 기도가 널리 성행하였다.
관음성지 觀音聖地
관세음보살을 통불교적으로 신앙하고 있는 우리나라에는 3대관음성지인 낙산사. 보리암. 보문사 외에도 숱한 관음영험도량이 산재되어 있다. 특히, 금강산에 자리잡은 보덕굴普德窟과 설악산의 오세암五歲庵, 논산의 관촉사灌燭寺, 성덕산 관음사 등은 모두 특이한 이적을 보였던 관음성지이다. 또한, 서울 근교에도 예로부터 관음의 영험도량이 있었다.
동쪽에는 창신동의 안양암安養庵. 서쪽에는 옥천암玉泉庵 해수관음이 있으며, 남쪽에는 관악산 삼막사三幕寺가 있다. 이 세 곳은 오늘날에도 기도참배객들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들 관음도량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의 명산대천에는 숱한 관음연기와 함께 수많은 관음영험담이 전해지고 있다. 금강산 보덕굴은 우리나라 관음신앙의 홍포弘布에 크게 영향을 미쳤던 영험처로서 관음의 화신인 보덕각시가 출현하였던 곳이고, 고구려의 화상 보복보덕이 관음의 진신을 친견한 도량이며, 고려 의종 때의 고승인 회정이 천수주력千手呪力으로 기도하여 관음의 원통삼매를 성취한 영지이기도 하다.
설악산 오세암은 조선시대 초기에 관세음보살을 어머니로 생각하는 다섯 살 난 어린아이가 겨우내 혼자서 암자에 머물러 있었지만, 관음이 어머니처럼 보살펴주어서 무사히 생명을 건졌을 뿐 아니라 도통하게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용문산 상원사上院寺는 세조에게 백의관음의 모습을 나타내어 세조로 하여금 선정을 베풀도록 회개시킨 곳이며, 은진미륵의 관음상에서는 나라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온몸에서 땀이 흐른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요사찰에는 대부분 원통전 또는 관음전이라는 전각을 별도로 건립하고, 그 속에 관음보살을 봉안하고 있다. 보통 관세음보살상은 왼손에 봉오리 상태의 연꽃을 들고 오른손에 감로병을 들고 있다. 왼손에 든 연꽃은 중생이 본래 갖춘 불성佛性을 상징한다. 그 꽃이 활짝 핀 것은 불성이 드러나서 성불成佛하였다는 것을 뜻하나, 현재의 꽃봉오리는 불성이 번뇌에 물들지 않고 장차 필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 감로병에는 감로수가 들어 있는데. 이 감로수는 불사不死를 뜻한다. 영원히 죽음이 없는 불사의 물로써 중생의 열뇌熱惱를 깨끗이 씻어주고 사악한 기운을 서기瑞氣로 바꾼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또, 관음의 머리에 쓴 보관寶冠에는 부처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부처는 아미타불이다. 관음은 아미타불을 본사本師로 삼고 향상 모신다고 하였으므로 이를 조형화하여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원통전의 후불탱화로서 주로 아미타삼존탱화를 모시게 되는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관음현상기 觀音現相記
1481년 세조 7년에 최항崔恒이 경기도 양평 용문산 상원사上院寺에 나타난 관세음보살을 보고 그 때의 관경을 기록한 책. 1권 1책. 목판본. 1461년에 세조가 경기도지역을 순시하다가 상원사에 유숙하였는데, 그날 관세음보살이 나타났고 상서로운 빛과 아름다운 음악이 들리다가 한참 만에 흩어졌다.
이에 세조는 크게 기뻐하여 그 절에 우상優賞을 내리고 죄인들을 사면하였으며, 정부의 관원들을 축배를 올려 칭하稱賀하였다. 그리고 훈부에서는 관음보살상을 만들고 상원사를 중창하여 봉안하였다. 또 왕은 그때의 장면을 그린 그림을 국내에 두루 반포하게 하고, 초항에게 명하여 이 책을 짓게 하였다. 이 책은 상원사와 우리나라의 관음신앙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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