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4강신화’ 평생 축구선생 박종환 감독, 성남 FC. 일화 시절, 국제 대회 성적, 月60만원으로 떠돌이 생활하게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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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영웅’ 박종환, 月60만원으로 떠돌이 생활하게 된 사연,
‘멕시코 4강신화’ 박종환 전 감독 “지인에게 전 재산 사기당해”
축구감독 박종환 프로필 근황 과거 가족 부인 자녀 나이 고향 재산 연봉 축구 감독 아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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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환(1938년 2월 9일~)은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으로 수많은 팀을 맡아 이끌었던 전설적인 지도자이다.
‘축구 영웅’ 박종환(83) 전 감독의 안타까운 근황이 전해졌다.
1983년 6월 한국의 청소년들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 대회에서 세계 강호 멕시코와 우루과이를 꺾고 4강에 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선수들을 지휘했던 박종환 감독은 대한민국 영웅으로 등극했고, 이후 성남 일화(현 성남FC) 감독이 된 그는 1993년부터 1995년까지 K리그 최초 리그 3연패를 달성하며 승승장구했다.
이어 한국 여자축구 연맹 초대 회장, 성남FC, 대구FC 감독을 역임하며 오랫동안 지도자로서 활동을 해 왔다.
화려한 전성기를 보낸 박 전 감독은 몇 년 전부터 활동이 뜸해졌다.
그러다 돌연 자취를 감춰 주변의 걱정을 샀다.
알고 보니 박 전 감독은 믿었던 지인들에게 금융 사기를 당해 많은 돈을 잃고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 것.
박 전 감독은 13일 방송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서 “지인들에게 여러 번 사기를 당하고 금융문제에 휘말려 극단적인 생각까지 할 정도로 심각한 좌절에 빠졌다”며 “친한 친구, 선배 7~8명에게 돈을 빌려줬다.
몇 천 만원이 아니고 있는 걸 다 줬다.
한 푼도 못 받고 다 줬는데 얼굴도 못 보는 신세가 됐다.
돈 받으러 가겠다는 말이나 전화도 안 했고 믿고 기다렸다.
누가 보면 화려할 거 같지만 정말 비참하게 살았다”고 밝혔다.
현재 박 전 감독은 한 여성의 집에 얹혀 살고 있다.
박 전 감독이 힘들 때 먼저 손을 내밀고 보호자를 자처한 남다경씨는 “감독님과 인연을 맺은 건 2년 반 정도 됐다.
지인에게 감독님이 많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가더라.
유명한 분인지 몰랐다”며 “전화로 상담하다가 감독님이 극단적 선택을 한다고 해 찾아갔는데 나도 힘들었던 사람이라 마음을 알겠더라.
저분을 도와줄 수 없을까 생각해 도움 손길을 내밀었다”고 했다.
박 전 감독은 6년 전 아내를 먼저 떠나 보냈다.
아들과 딸도 출가해 바쁘게 살고 있다.
박 전 감독은 “노령 연금 30만원과 아들이 주는 용돈 30만원이 전부다.
자존심이 세 신세 지는 것도 싫어한다.
축구 후배들이 후원금을 모아줬지만 거절했다”며 “다들 화려한 줄 알지만 사는 게 엉망, 속으로 후회한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멕시코 4강신화’ 박종환 전 감독 “지인에게 전 재산 사기당해” ‘멕시코 4강 신화’ 박종환 전 축구감독이 지인에게 전 재산을 사기를 당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에 첫 4강 신화를 안긴 전 축구감독 박종환이 13일 방송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했다.
박종환 전 감독은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세계적인 강호 멕시코와 우루과이를 격파하고 기적 같은 4강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는 연이어 대표팀의 지휘봉과 프로 무대 3연패 달성, 이후 한국 여자 축구 연맹 초대 회장부터 대구FC와 성남FC의 창단 감독을 지내며 대한민국 K리그 최고령 축구 감독으로 그 명성을 이어갔다.
하지만 박종환 전 감독은 각종 논란과 개인사에 얽혀 활동이 뜸해지기 시작했고, 돌연 자취를 감춰 모두를 궁금하게 했다.
박종환 전 감독은 ‘마이웨이’를 통해 “그동안 지인들에게 여러 번 사기를 당하고 금융 문제에 휘말리게 돼, 극단적인 생각까지 할 정도로 심각한 좌절에 빠져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지인 7~8명에게 있는 것을 모두 줬다”며 “‘돈 받으러 가야겠다’고 전화를 안 했다.
‘가져갔으니까 알아서 언젠가 가져와라’ 했지만 한푼도 받지 못하고 얼굴도 못보고 있다”고 힘들었던 기억을 전했다.
박종환 전 감독은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혼자 보호소에서 얹혀살고 있다.
박종환 전 감독은 “누가 보면 잘 사는 줄 알겠지만, 비참하다”며 “노령연금 30만원과 아들이 보내는 용돈 30만원으로 산다.
사는 게 엉망”이라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강원도 춘천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박종환 감독은 ‘제2의 고향’ 춘천을 찾아 ‘축구 레전드’ 손흥민 선수와의 특별한 인연도 공개했다.
그는 “손흥민은 초등학교 때 내가 여기 와서 한 달간 훈련해 줬다”며 “노력파”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종환 감독은 현재 시니어 축구팀 감독으로 활동중이며 “다시 태어나도 축구인을 하실거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당연하다”고 답했다.
‘멕시코 4강신화’ 박종환 전 감독 “지인에게 전 재산 사기당해”
‘멕시코 4강 신화’ 박종환 전 축구감독이 지인에게 전 재산을 사기를 당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에 첫 4강 신화를 안긴 전 축구감독 박종환이 13일 방송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했다.
박종환 전 감독은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세계적인 강호 멕시코와 우루과이를 격파하고 기적 같은 4강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는 연이어 대표팀의 지휘봉과 프로 무대 3연패 달성, 이후 한국 여자 축구 연맹 초대 회장부터 대구FC와 성남FC의 창단 감독을 지내며 대한민국 K리그 최고령 축구 감독으로 그 명성을 이어갔다.
하지만 박종환 전 감독은 각종 논란과 개인사에 얽혀 활동이 뜸해지기 시작했고, 돌연 자취를 감춰 모두를 궁금하게 했다.
박종환 전 감독은 ‘마이웨이’를 통해 “그동안 지인들에게 여러 번 사기를 당하고 금융 문제에 휘말리게 돼, 극단적인 생각까지 할 정도로 심각한 좌절에 빠져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지인 7~8명에게 있는 것을 모두 줬다”며 “‘돈 받으러 가야겠다’고 전화를 안 했다.
‘가져갔으니까 알아서 언젠가 가져와라’ 했지만 한푼도 받지 못하고 얼굴도 못보고 있다”고 힘들었던 기억을 전했다.
박종환 전 감독은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혼자 보호소에서 얹혀살고 있다.
박종환 전 감독은 “누가 보면 잘 사는 줄 알겠지만, 비참하다”며 “노령연금 30만원과 아들이 보내는 용돈 30만원으로 산다.
사는 게 엉망”이라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강원도 춘천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박종환 감독은 ‘제2의 고향’ 춘천을 찾아 ‘축구 레전드’ 손흥민 선수와의 특별한 인연도 공개했다.
그는 “손흥민은 초등학교 때 내가 여기 와서 한 달간 훈련해 줬다”며 “노력파”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종환 감독은 현재 시니어 축구팀 감독으로 활동중이며 “다시 태어나도 축구인을 하실거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당연하다”고 답했다.
축구감독 박종환 프로필 근황 과거 가족 부인 자녀 나이 고향 재산 연봉 축구 감독 아내 아들,,,
박종환 감독은 '스타 다큐 마이웨이'에 나오면서 근황 소식을 알렸습니다.
전 재산 사기로 인해 떠돌이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오늘은 박종환 축구 감독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과거 축구선수 활동을 하다가 축구 감독, 체육교사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축구 감독 시절에는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대한민국 U-20 청소년 축구 국가대표팀이 4강 진출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밖에 단국공업고등학교, 유신 고등학교, 성남 고등학교, 서울시청 축구단, 숭민 원더스, 대구 FC, 성남 FC, 여주 시민축구단, 대한민국 대표팀, 일화 천마 천안 일화 천마, 우한 야치 등에서 축구 감독 활동과 체육 선생님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프로필 본명 박종환, 1938년 2월 9일생으로 만으로 나이 84살입니다.
고향은 황해도 웅진군이며 키 171cm이라고 합니다.
가족은 부인 안흥석, 자녀 아들 박재호, 딸 박성숙이 있습니다.
학력은 경희대학교 체육학과, 춘천 고등학교이며 연봉 정보는 1991년 기사에 5천1백60만 원에 연봉 재계약을 했으며 2002년 기사에는 계약금 2억 원, 연봉 2억 원 축구단 감독 3년 계약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10년 아시아축구연맹 공로상, 1990 대통령 포상, 1983년 서울특별시 문화상 체육부문, 1984년 대한민국체육상으로 수상 내역이 있습니다.
1965년 아내 안흥석과 결혼식을 올렸으며 자녀는 아들 1명, 딸 1명이라고 합니다.
자녀들과 아내 안흥석이 미국 생활을 하면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축구 감독으로 많은 사랑을 받다가 각종 논란, 개인사 등으로 돌연 자취를 감췄다고 하는데요.
멕시코 4강 신화를 만든 감독이지만 지인에게 전 재산 사기를 당해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고 합니다.
현재 일정한 거처도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노령 연금 30만 원과 아들이 보낸 용돈 30만 원으로 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청소년 대표팀에 선발되면서 경희대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고 합니다.
대학교 졸업 후에는 석탄공사 실업팀에서 축구 선수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과거 축구선수 손흥민 초등학교 시절에 박종환 감독이 한 달간 축구 훈련을 해줬다며 손흥민 선수와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그럼 오늘은 박종환 축구 감독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언제나 즐거운 정보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수 프로필,
- 이름 : 박종환,
- 생년월일 : 1938년 2월 9일생,
- 포지션 : 라이트 풀백,
- 선수경력,
1960 ~ 1963 | 경희대학교 축구부 |
1964 ~ 1966 | 대한석탄공사 축구단 |
국가대표 경력/ 연도/ 소속팀,
1960 | AFC U-19 챔피언십 우승 |
1962 | 메르데카배 국제축구대회 참가 |
1964 | 1964년 도쿄 올림픽 강화훈련 참가 |
지도자 프로필,
지도자 경력,
연도/ 소속팀/ 직책,1966 ~ 1969 | 단국공고 축구부 | 감독 |
1970 ~ 1972 | 성남고등학교 축구부 | |
1973 ~ 1974 | 유신고등학교 축구부 | |
1975 | 전남기계공고 축구부 | |
1976 ~ 1988 | 서울시청 축구단 | |
1982 ~ 1986 | 청소년대표ㆍ88 올림픽대표팀 | |
1989 ~ 1995 | 일화 천마 | |
1995 ~ 1996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 |
1999 ~ 2002 | 숭민 원더스 | |
2003 ~ 2006 | 대구 FC | |
2014 ~ 2014. 4. 22 | 성남 FC |
수상 경력,
연도/ 소속팀/ 업적,1992 | 일화 천마 | K리그 컵대회 우승 |
1993 ~ 1995 | K리그 우승 (3연패) | |
1996 |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
K리그 감독 기록,
일화 천마 | K리그 | 1989 | 6 | 21 | 13 | 5위 | 미개최 | 미개최 | - |
1990 | 7 | 10 | 13 | 6위 | - | ||||
1991 | 13 | 11 | 16 | 5위 | - | ||||
1992 | 13 | 19 | 8 | 준우승 | 우승 | - | |||
1993 | 14 | 12 | 9 | 우승 | 5위 | - | |||
1994 | 17 | 11 | 8 | 4위 | - | ||||
1995 | 16 | 13 | 6 | 준우승 | 우승 | ||||
대구 FC | 2003 | 7 | 16 | 21 | 11위 | 미개최 | - | ||
2004 | 9 | 16 | 11 | 10위 | 9위 | - | |||
2005 | 12 | 9 | 15 | 9위 | 7위 | - | |||
2006 | 10 | 16 | 13 | 7위 | 13위 | - | |||
성남 FC | 클래식 | 2014 | 2 | 3 | 4 | 중도 사임 |
선수 시절,
1966 ~ 1969 | 단국공고 축구부 | 감독 |
1970 ~ 1972 | 성남고등학교 축구부 | |
1973 ~ 1974 | 유신고등학교 축구부 | |
1975 | 전남기계공고 축구부 | |
1976 ~ 1988 | 서울시청 축구단 | |
1982 ~ 1986 | 청소년대표ㆍ88 올림픽대표팀 | |
1989 ~ 1995 | 일화 천마 | |
1995 ~ 1996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 |
1999 ~ 2002 | 숭민 원더스 | |
2003 ~ 2006 | 대구 FC | |
2014 ~ 2014. 4. 22 | 성남 FC |
황해도 옹진군 출신으로 1945년 고향인 옹진군을 떠나 강원도 춘천시 약사동에 정착하였으며, 춘천중학교와 춘천고등학교, 경희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주 포지션은 라이트 풀백으로 빠른발을 이용해 끝까지 상대 선수를 따라다니기로 유명한 악바리 수비수 였다고. 춘천고 3학년 졸업반 시절 대학팀의 스카우트를 받는데 실패하여, 고등학교를 1년 더 다녔던바 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청소년대표 선발전에 나가게 된 박종환 선수는 악착같이 뛰어, 대표팀에 뽑히게 되었고 1960년 제 2회 AFC U-19 챔피언십에 나가 우승까지 차지하고 돌아오게 되었다.
덕분에 대학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오게 되어, 경희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경희대를 졸업하고서는 대한석탄공사 축구단에 입단했다.
석공 시절 올림픽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태극마크를 다는듯 했지만... 올림픽대표 연습경기에서 큰 부상을 당하게 되어, 결국 올림픽 출전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후 크게 실망한 박종환은 선수 생활을 정리하자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2년 더 석공에서 뛴 뒤 은퇴를 선언하고 지도자의 길을 걷기에 이른다.
요약하자면, 감독 시절의 화려함에 비해 선수 시절은 무명에 가까웠던셈.
박종환 감독…
▲1936년 2월 황해도 옹진 출생 ▲강원 춘천고-경희대 졸업▲대한석탄공사에서 선수 은퇴(1966년) ▲축구 국제심판 ▲수원 유신고·단국공고 감독 ▲서울시청 감독(1975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대표팀 감독(1983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1984년) ▲프로축구 일화 천마축구단 감독(1989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대표팀 감독(1990년) ▲프로축구 최초 3년 연속 우승(1993∼95년) ▲아시안컵 축구 A대표팀 감독(1996년) ▲대구 FC 감독(2003년) ▲아시아축구연맹 공로상(2010년) ▲성남 FC 감독(2014년)
지도자 생활,
추가해야 함 'ㅈ ㅅ' 다음 박종환 감독 2 로 기재 예정 입니다,,,
지도 스타일,
군대식 합숙문화와 동계전훈에서의 살인적인 체력보강 훈련등 소위 스파르타식 훈련이 박종환 감독의 스타일이다. 덕분에 빠따로 선수를 패면서 조련한다더라는 박빠따라는 별명도 붙었다.
젊은 시절에는 그러했을지는 모르나 일화 천마 감독직 이후로는 굳이 빠따를 들지않더라도 선수들이 알아서 기가죽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지휘했다.
선수들은 박감독의 스타일에 크게 반발했을법도 하지만, 애초에 여기서 밀리면 끝이다 싶은 선수들만 박종환 감독이 뽑아온 탓에 군소리없이 훈련에 매진했다고.
훈련 스타일이 스파르타라면, 전술적인 스타일은 소위 정형화된 5가지의 툴을 선수들에게 반복 훈련하여 주입시키고 상황에 따라 박종환 감독이 5가지 전술중 하나를 지시하면 그에따라 움직이는 수동적인 전술 스타일을 고집하였다.
이같은 방식은 선수들이 능동적으로 경기상황에 맞춰 플레이를 바꾸기보다 감독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하기 때문에, 팀워크와 박종환 감독에 대한 선수단의 절대적인 믿음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런 훈련과 전술 스타일의 최대 강점은 평균 수준의 선수 자원을 가지고도 조직력과 경기 운영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구 FC 감독 시절의 대구의 선수단 수준과 경기력을 떠올린다면 쉽게 수긍이 갈 것이다.
다만 이 같은 스타일의 최대 약점은 감독의 비중이 너무도 막중하다는데 있다.
때문에 선수들은 박종환 감독의 그늘을 벗어나면 별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져갔다.
에피소드,
서울시청 축구단 감독 시절이었던 1970년대에는 지도자 뿐만 아니라 국제심판 자격으로도 다방면에서 활약하였다.
그러나 심판 출신 지도자라면 누구보다 심판의 권위를 존중해야 할거 같은데, 일화 천마 감독 시절 경기 도중 주심에게 폭력 행사를 가해 징계를 먹기도 했었다.
개그맨으로 유명한 故 이주일 씨와 절친이었다.
이주일 씨는 춘천고등학교 시절까지 박종환 감독과 함께 축구선수로 활약하기도 하엿다.
경기가 마음에 안들면 하프타임에 라커룸 집기를 집어던지면서 선수들에게 불벼락을 내리곤했다.
이후 후반에 뒤집은 경기가 셀수없이 많다.
이런 거침없는 성격은 대구 FC 감독 시절에도 그대로였다.
한번은 대구 FC와 대학 축구부와의 연습경기 도중, 대학 선수가 대구 FC 선수에게 백태클 시전 후 다이렉트 퇴장을 당했는데 쓰러져 괴로워하는 대구 선수에게 눈길 한번 주지않고 대학선수가 퇴장하자 박감독이 폭발. 그 자리에서 대학 선수의 뺨을 갈겨버렸고 대학 축구부 감독 및 심판들도 (..) 박감독을 진정시키느라 경기가 중단되었던바 있다.
문제는 성남 FC 감독을 맡은 2014년에도 이런 모습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거..
결국 이같은 행실이 2014년 4월 22일 불명예 퇴진을 당하는데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언행도 거침이 없고 관록이 묻어나는 편이다.
특히 대구 감독 시절, 내가 수원 감독이면 눈 감고도 우승할 수 있다!는 발언으로 선수가 없다는 타령을 하던 강팀 감독들에게 일침을 가했고 덕분에 국내축구갤러리 등지에서 호평을 받은바 있다.
성남 FC. 일화 시절,
성남 FC,
국제 대회 성적,
2014년 FA컵 우승으로 다시 AFC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을 획득하며 성남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일본에서는 한국에서 축구 잘하는 팀 한국왕자(韓国王者)로 알려져 있는 듯 하다.
코칭 스태프 명단,
직책 | 한글 성명 | 영문 성명 | 국적 | 생년월일 |
감독 | 김남일 | Kim Nam-il | 1977년 3월 14일 | |
수석 코치 | 정경호 | Jeong Kyung-Ho | 1980년 5월 22일 | |
코치 | 이태우 | Lee Tae-Woo | 1984년 1월 8일 | |
코치 | 남궁웅 | Namkung Woong | 1984년 3월 29일 | |
골키퍼 코치 | 백민철 | Baek Min-Chul | 1977년 7월 28일 | |
피지컬 코치 | 한상혁 | Han Sang-Hyuk | 1992년 9월 5일 | |
트레이너 | 강훈 | Kang Hoon | 1970년 6월 8일 | |
트레이너 | 이강훈 | Lee Kang-Hoon | 1992년 12월 27일 | |
트레이너 | 김한결 | Kim Han-Kyul | 1994년 4월 2일 | |
전력분석관 | 이승민 | Lee Seung-Min | 1991년 7월 18일 | |
통역 | 최혁순 | Choi Hyuk-Soon | 1993년 1월 16일 |
선수 명단,
성남 FC 2022 시즌 스쿼드 | |||||||
등번호 | 국적 | 포지션 | 한글 성명 | 영문 성명 | 생년월일 | 신체 조건 | 비고 |
1 | GK | 최필수 | Choi Pil-soo | 1991년 6월 20일 | 190cm, 80kg | ||
2 | DF | 이시영 | Lee Si-Young | 1997년 4월 21일 | 173cm, 65kg | ||
3 | DF | 권완규 | Kwon Wankyu | 1991년 11월 20일 | 183cm, 80kg | ||
4 | DF | 강의빈 | Kang Ui-bin | 1998년 4월 1일 | 188cm, 85kg | ||
5 | DF | 마상훈 | Ma Sang-Hoon | 1991년 7월 25일 | 183cm, 79kg | ||
6 | MF | 김현태 | Kim Hyun-tae | 1994년 11월 14일 | 187cm, 74kg | ||
7 | MF | 권순형 | Kwon Soon-Hyung | 1986년 6월 16일 | 176cm, 73kg | 주장 | |
8 | FW | 뮬리치 | Fejsal Mulić | 1994년 10월 3일 | 203cm, 105kg | ||
9 | FW | 박용지 | Park Yong-Ji | 1992년 10월 9일 | 183cm, 74kg | ||
13 | MF | 김민혁 | Kim Min-Hyeok | 1992년 8월 16일 | 186cm, 71kg | 부주장 | |
14 | FW | 정석화 | Jung Seok-Hwa | 1991년 5월 17일 | 168cm, 63kg | ||
15 | FW | 이재원 | Lee Jae-Won | 1997년 2월 21일 | 173cm, 66kg | ||
16 | MF | 이종성 | Lee Jong-Sung | 1992년 8월 5일 | 187cm, 72kg | 재임대 | |
17 | FW | 조상준 | Cho Sang-Jun | 1999년 7월 11일 | 176cm, 70kg | ||
18 | DF | 이지훈 | Lee Ji-Hun | 1994년 3월 24일 | 176cm, 69kg | ||
19 | FW | 엄승민 | Eom Seung-Min | 2003년 5월 2일 | 181cm, 78kg | 2년 임대 | |
20 | DF | 곽광선 | Kwak Kwang-sun | 1986년 3월 28일 | 186cm, 76kg | ||
21 | GK | 허자웅 | Heo Ja-Woong | 1998년 5월 12일 | 185cm, 80kg | ||
22 | MF | 안진범 | An Jin-Beom | 1992년 3월 10일 | 175cm, 66kg | ||
23 | MF | 구본철 | Goo Bon-cheol | 1999년 10월 11일 | 173cm, 73kg | ||
24 | DF | 양시후 | Yang Si-Hoo | 2000년 4월 4일 | 185cm, 80kg | ||
25 | MF | 강재우 | Kang Jae-Woo | 2000년 5월 30일 | 180cm, 72kg | ||
26 | DF | 조성욱 | Jo Sung-Wook | 1995년 3월 22일 | 188cm, 79kg | ||
27 | DF | 장영기 | Jang Young-Gi | 2003년 3월 4일 | 175cm, 67kg | ||
28 | FW | 박지원 | Park Ji-Won | 2000년 11월 1일 | 166cm, 63kg | ||
29 | DF | 장효준 | Jang Hyo-Joon | 2000년 2월 9일 | 174cm, 67kg | ||
31 | GK | 정명제 | Jeong Myeong-Jae | 2002년 6월 30일 | 192cm, 80kg | ||
33 | FW | 전성수 | Jeon Seong-Soo | 2000년 7월 13일 | 185cm, 85kg | ||
34 | DF | 최지묵 | Choi Ji-Mook | 1998년 10월 9일 | 178cm, 70kg | ||
36 | DF | 김지수 | Kim Ji-Soo | 2004년 12월 24일 | 192cm, 84kg | 준프로 | |
41 | GK | 김영광 | Kim Young‑Kwang | 1983년 6월 28일 | 182cm, 85kg | ||
66 | MF | 박수일 | Park Soo-il | 1996년 2월 22일 | 178cm, 68kg | 부주장 | |
92 | DF | 김민혁 | Kim Min-hyeok | 1992년 2월 7일 | 187cm, 73kg |
임대 구단 | 국적 | 포지션 | 한글 성명 | 영문 성명 | 생년월일 | 신체 조건 | 비고 |
김천 | DF | 연제운 | Youn Jae-Woon | 1994년 8월 28일 | 185cm, 78kg | 2022년 9월 7일 전역 | |
김천 | MF | 유인수 | Yoo In-Soo | 1994년 12월 28일 | 177cm, 69kg | 2022년 9월 7일 전역 | |
전남 | FW | 이중민 | Lee Jung-Min | 1999년 11월 3일 | 187cm, 79kg | 임대 | |
전남 | MF | 전승민 | Jeon Seung-Min | 2000년 12월 15일 | 174cm, 69kg | 임대 | |
서울E | MF | 박태준 | Park Tae-Joon | 1999년 1월 19일 | 175cm, 62kg | 임대 | |
아산 | FW | 홍현승 | Hong Hyeon-Seung | 1999년 3월 13일 | 180cm, 75kg | 임대 |
역대 감독,
성남 FC 역대 감독 | |||
대 | 국적 | 이름 | 기간 |
1대 | 박종환 | 1989 ~ 1996 | |
2대 | 이장수 | 1996 | |
3대 | 레네 드자이에르 | 1997 ~ 1998 | |
4대 | 차경복 | 1998 ~ 2004 | |
5대 | 김학범 | 2005 ~ 2008 | |
6대 | 신태용 | 2009 ~ 2012 | |
7대 | 안익수 | 2013 | |
8대 | 박종환 | 2014 | |
대행 | 이상윤 | 2014 | |
대행 | 이영진 | 2014 | |
9대 | 김학범 | 2014 ~ 2016 | |
대행 | 구상범 | 2016 | |
대행 | 변성환 | 2016 | |
10대 | 박경훈 | 2017 | |
11대 | 남기일 | 2018 ~ 2019 | |
12대 | 김남일 | 2020 ~ |
역대 주장,
레전드,
라이벌,
비록 성남이 시민구단으로 전환되고 기세가 예전 같지 않지만, 여전히 양 팀 간에는 명문구단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경쟁의식이 강하며 성남과 수원 간의 경기에서는 치열한 무승부와 역전승이 잘 나오는 편이다. 사실상 성남이 가장 라이벌리를 갖고 있는 팀은 수원이다.
양 팀은 서로 라이벌 관계지만, 선수 이적이 많은 편이다.
그런데 2021년 K리그 마스코트 반장선거에서 까오와 서울 이랜드의 레울이 탄천 동맹을 맺었다.
2014 시즌 FA컵 우승과 2015 시즌 리그 상위 스플릿 안착으로 고무되어 축구팬을 자처하던 성남 FC의 전 구단주 이재명 전 성남시장이 마침 K리그 클래식에 올라온 수원 FC의 구단주 염태영 수원시장에게 승리팀의 시 깃발을 패배팀의 시청에 걸자는 내기를 제안했다.
염태영 수원시장이 이재명 전 성남시장의 내기를 받아들였고, K리그 클래식 2016 시즌 개막을 앞두고 이재명과 염태영의 트위터 기싸움이 벌어졌다. 제시와 화답.
양 팀 사이에 흥미로운 볼거리가 생기는 와중에 전통의 라이벌 수원 삼성 블루윙즈 팬덤에서 반대가 터져나왔다.
성남 팬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더비를 환영한다는 평가와 이제 막 승격한 구단과 K리그 최고 명문 구단을 라이벌로 엮는 것은 이상하다는 평가 둘로 나뉘었다.
2016년 두 팀이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란히 강등을 당하고 이재명 전 성남시장이 경기도지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더비도 사라졌다.
2010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양 팀 간의 경기에서는 K리그 단일 경기 역대 최다 관중 60,747명이 몰리면서 리그 신기록을 경신한 적도 있다.
2014년 FA컵 결승전에서 성남과 서울이 맞붙게 되었다.
성남과 서울 양 팀 역시 선수들의 왕래가 자주 있었다.
해당 사건은 용의자를 특정할 증거나 증인을 확보하지 못하였고, CCTV 검증 결과 특별한 악의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을 찾지 못하였기에 수사 2주만에 사건이 종결되었다.
양 팀 간 선수 이적도 잦은 편인데, 대표적으로 성남에서 전북으로 이적한 선수에는 김정우, 김상식, 이동국, 윤정환 등이 있고, 반대로 전북에서 성남으로 이적한 선수에는 김도훈, 심우연, 임선영 등이 있다.
사건의 중심이 된 세르징요는 2015년 한 시즌 동안 대구 FC에서 브라질 국적의 외국인 선수로 뛰었던 선수였다.
그러나 2016년 10월 17일, 세르징요는 '사문서 위조 및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죄' 혐의로 경찰청 외사정보과 및 법무부 서울출입국 이민특수수사대의 보호하에 경찰청으로 이동해 이틀간 조사를 받았다.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해 강원 FC는 2016년 10월 19일 구단 보도자료를 통해 세르징요의 경찰 수사 상황을 공개하면서 법원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세르징요를 잔여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기로 했음을 밝혔다.
그리고 2017년 4월 4일, 춘천지방법원은 세르징요에게 위조사문서행사 등 혐의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고, 세르징요는 국외 추방과 더불어 향후 5년간 대한민국에 입국할 수 없게 되었다.
성남 FC의 2016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 결과 정정 요청이 한국프로축구연맹에 받아들여지지 않자, 성남은 2017년 5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한국프로축구연맹을 상대로 2016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 결과 정정을 요청하는 내용의 민사조정을 신청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측은 2016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당시 세르징요는 무자격 선수라는 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무자격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2017년 8월 24일 열린 3차 조정도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끝이 나면서 해당 건은 민사소송위의 강제조정 절차로 넘어가게 되었다.
2017년 9월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조정위는 "2016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 결과를 ‘성남의 3-0 몰수승’으로 정정하라"는 강제조정안을 제시했다.
2018년 5월 2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0민사부가 성남 FC의 청구 소송에 관해 각하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2018년 성남이 K리그1으로 승격하면서, 성남과 강원은 다시 같은 리그에서 만나게 되었다.
유니폼,
팬덤,
서포터즈 - 블랙리스트,
응원가,
홈 경기장,
클럽하우스,
논란,
둘러보기,
탄천종합운동장의 애칭은 탄천요새다.
사리체프를 능가할 골키퍼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 이중적인 표현이다. 긍정적인 측면(성적)에서도 전설적이지만 부정적인 측면(선수/심판 폭행 등)에서도 전설적인 인물..
- 월간축구 1973년 1월호에 따르면, 1972년 9월 성남고 축구부가 해체된 뒤, 박종환 씨는 동국대학교 코치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973년께부터 유신고등학교 축구부 코치 겸 주심으로 활동하였던 것으로 보면 동국대 코치는 임시적으로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 당시 박종환 감독 이외에도 청소년대표에 김삼락 전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표 감독, 故 차경복 전 성남 일화 천마 감독, 故 조윤옥 전 대우 로얄즈 감독 등이 소속되어 있었다.
- 이 때문에 혹자는 선수들이 박감독의 손가락만 보며 움직인다하여 손가락 전술이라 호칭하기도..
- 강력한 체력 훈련을 바탕으로 한 정형화된 전술 틀의 운용 측면에서 2002 FIFA 월드컵 당시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던 후스 히딩크의 지도 스타일과 유사한 형태다.
- 빳따를 맞지는 않았다고 하더라. 다만 몇몇 선수의 뺨이 벌개진걸 목격한 팬들은 있었다 (..)
박종환 성남FC 감독 "화끈한 공격축구로 명가 재건”
관련이슈,
K리그 최고령 박종환 성남FC 감독,
ㅡ오랜만에 그라운드에 돌아왔다. 감회가 어떠신지.
“7년간 그라운드를 떠나 있었다.
ㅡ고령이라 주위에서 걱정도 없지 않다.
“아직까지 20대 선수들과 대등하게 1시간 정도는 풀로 뛸 자신이 있다.
ㅡ프로축구 최고령 감독으로서 모범적으로 잘해야 된다는 책임감이 작지 않을 텐데.
“프로 감독 및 코칭스태프 대부분이 제자들이다.
ㅡK리그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한다면.
“작년에 프로축구가 출범 30년을 맞았다.
ㅡ성남 FC의 지휘봉을 잡고 난 뒤 어떤 목표를 잡았는가.
“선수들을 보지 않았을 때 기대를 크게 가졌던게 사실이다.
ㅡ현재 성남의 성적은 하위권이다. 언제쯤에나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보는가.
“선수 파악도 못한 채 팀을 맡았다.
ㅡ추구하는 파도축구는 무엇인가.
“파도가 아름다운 것은 갈 수록 파문과 위력이 커진다는 것이다.
ㅡ구단의 지원은 어떤가.
“작년에 성남 일화 구단은 200억원가량 쓴 걸로 알고 있다.
ㅡ걸어온 축구 인생을 설명해달라.
“이북 출신으로 춘천에 내려와 살았다.
ㅡ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는다면.
“박종환 하면 아무래도 1983년 멕시코 청소년 축구 4강이다.
ㅡ가족관계는.
“평생 축구공만 쫓아다니는 바람에 집사람이 애들(1남1녀)을 책임지고 키웠다.
감독님의 건행을빕니다 ^^
끝까지 시청해 주셧어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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