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피트의 장신 선수임에도 4번 포지션에서 뛰지만 프로 농구의 대부분의 4번과는 판이하게 다른 스타일을 구사하던 선수로, 스트레치 빅맨 정점이지만 그렇다고 전형적인 스트레치 빅맨은 아니었다.
매우 다양한 공격기술과 180 클럽의 슛터치를 기반으로 내외곽을 가리지 않고 득점을 해내는 역대 최고수준의 공격형 파워 포워드였으며, 역대 180클럽 가입자 중 최장신이자 유일한 파워 포워드이다.
우선 신체적인 부분을 보자면 착화로는 216cm로 표기되던 장신에 윙스팬도 221cm로 합격점. 더불어 신장대비 훌륭한 기동성과 민첩성은 물론 게르만 계통의 선수답게 강한 힘도 가진 선수였다.
사실 기량 유지가 잘 된 선수치곤 운동능력이 은근 빨리 꺾인데다 말년에는 실제로 느림보였기에 많이들 오해하지만, 흔히 말하는 리얼 7푸터들 중 젊었을 적 노비츠키만큼 기민한 선수는 의외로 찾기 어려웠다.
수직 점프력이 다소 낮았던 걸 제하면 흠잡을 데 없는 하드웨어를 가진 선수가 슈팅은 농구 역사상 손꼽히는 수준에, 풋워크와 드리블 등의 기본기도 뛰어나 과장 보태지 않고 7풋 스윙맨이라고 해도 좋을 기술들을 구사했으니 00년대 기준으로는 가히 게임에서나 나올 선수였던 셈.
농구계에선 장신 센터급 프로필에 기민한 몸놀림, 뛰어난 기술과 슈팅 능력 등을 모두 겸비한 선수를 환상의 동물과도 같다고 하여 유니콘이라 부르곤 하는데, 노비츠키는 이런 유니콘 빅맨들의 시초격이라 볼 수 있는 선수였다.
일단 플레이 시작을 하이포스트에서 주로 한다.
일반적인 4번 사이즈를 가진 공격형 파워 포워드나 스트레치 포워드도 이렇게 시작은 안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더욱 두드러진다.
외곽에서 공을 잡고 돌파를 시도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이포스트에서 스크린으로 시작하는 투맨 게임을 통해 패싱으로 빈 공간을 만들어내고, 슛을 던진다.
거기다 자신이 직접 미드레인지에서 슈팅을 던지면서 마무리하는 타입이라 인사이드 리바운드에 들어가지 않는다.
결국 노비츠키의 타점 높은 슛을 막으려면 상대 4번도 같이 나와서 컨테스트를 해주지 않으면 안된다.
사실 미들레인지, 그 중에서도 롱2에 해당되는 구간에서의 점퍼는 농구의 기본 명제를 고려할 때 매우 비효율적인 공격이다.
지금도 골대 가까이에서 슛을 던지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며 멀리서 던지는 것은 성공률도 문제고 실패 시 리바운드 가능성을 떨어뜨린다.
따라서 이 곳에서의 슈팅은 일반적인 상황에선 금기시되며, 멀리서 던질 것이면 차라리 3점 라인 바깥에서 던지는 것이 권장된다.
아니면 가까이 붙어서 성공률도 높이고 리바운드 다툼에도 도움이 되거나. 그래서 롱2라고 불리는 장거리 미들슛을 주무기로 삼는 선수들은 노비츠키나 라마커스 알드리지처럼 높은 성공률을 갖지 못하면 팀에 민폐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노비츠키의 주요 득점루트는 바로 이 3점 라인 살짝 안에서의 장거리 미들슛, 농구에서 가장 기대치가 떨어지며 가장 금기시되는 슈팅이다.
그리고 노비츠키의 위대함은 여기서 드러난다.
그런 비효율성을 무시해도 될 정도로 야투율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96-97시즌 부터 20-21 시즌까지의 거리, 구역 별 리딩 스코어러를 나열해보면 12~20피트 전체를 노비츠키가 독점하고 있고, 7개로 나눈 미드레인지 구역 중 6개를 차지할 정도로 미드~롱2에 굉장히 강하다는 것을 할 수 있다. 거리 별, 구역 별,
MVP를 수상한 2006-07 시즌의 골밑슛의 성공률은 .603으로 르브론 제임스처럼 7할 내외를 찍는 괴물은 물론이고 6할 중반에서 7할대를 찍었던 케빈 가넷, 팀 던컨에 비해 꽤나 처지는 수준이다.
특히 짧은 야투 성공률은 .409로 파워 포워드로서는 낙제점이었다.
그러나 중거리 성공률이 .500, 롱2 성공률이 .504, 3점슛 성공률이 .416으로 림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위협적인 슈팅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같은 시즌 골밑슛 시도 횟수가 260회, 3~10ft 내외의 짧은 야투 시도 횟수가 116회 였는데 비해 10~16ft 중거리슛 시도 횟수는 363회, 16ft~3점 라인 안쪽의 롱2 야투 횟수는 504회나 된다.
3점 시도 횟수도 192회로 짧은 야투 시도 횟수보다 많은 수준. 야투 시도 차트만 보면 파워 포워드가 아니라 슈팅 가드라고 봐도 될 정도다.
또한 우승을 거둔 시즌인 2010-11 시즌 노비츠키가 기록한 야투성공률은 51.7%로 커리어 하이 기록인데, 12월 부상으로 9경기를 쉬기 전까지는 무려 54.9%였다.
단순한 인사이더가 아닌 중장거리 슛을 주 무기로 삼고있는 선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말 놀라운 기록.
가뜩이나 막기 힘든 높은 타점인데 페이더웨이까지 구사한다.
보통 선수 상대라면 슛거리는 길지만 들어가봐야 2점이니 재수가 없었다고 치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게 던지는 족족 계속 들어간다.
상대 팀 입장에서는 속이 뒤집힐 수 밖에 없다.
어중간하게 마크맨이 컨테스트해도 다 씹고 들어간다.
사기츠키라는 별명은 이런 사기적인 슈팅 능력 때문에 생긴 것이다.
오죽하면 수비엔 정말 둘째가라면 서러운데다가 당대 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노비츠키의 라이벌이던 케빈 가넷조차 저걸 어떻게 막냐란 말을 했었을 정도.
그렇다고 더블팀을 들어가면 시야도 준수해서 오픈찬스인 동료에게 볼을 뿌려주면 그만이다.
게다가 저런 슛을 궁지에 몰린 중요한 순간, 역전이나 동점이 걸린 클러치 상황에서도 곧잘 넣었으니 사기란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ESPN Sport Science에서 분석한 내용을 보면 이게 왜 사기인지 이해가 갈 것이다.
야오밍의 키를 가진 선수가 데릭 로즈만큼 점프를 해도 블럭이 불가능한 슛을 어쩌란 말인가? 페이드 어웨이를 쏠 때 무릎으로 방어하는건 덤이다.
이게 사기적인 게, 야오밍은 7피트 5인치, 즉 226cm인데, 로즈의 전성기 점프력이 40인치, 즉 1m를 조금 더 높이 뛸 수가 있었다.
즉, 야오밍의 키를 가진 선수가 로즈만큼 뛰면 3m가 넘는 높이까지 올라가는 건데, 그 높이로 뛰어도 블락슛이 안되고 공은 이미 손을 떠나 림으로 향해가고 있게 된다.
그렇다고 이걸 막으려고 대인 방어로 거머리처럼 붙었다가는 노비츠키가 방어하는 무릎에 접촉 될 경우 파울이 불릴 게 뻔하며, 던져서 들어갈 경우 앤드-원, 즉 자유투를 하나 더 던지게 된다.
그런데 노비츠키가 자유투를 상당히 잘 던지는 선수라 이렇게 되면 상대 슈팅 가드에서 3점슛을 먹히는 거나 똑같다.
이 요상한 폼으로 던지는 슛이 쏘는 족족 들어가니 수비하는 선수 입장에서는 그의 공이 림을 향해 포물선을 그릴때 그저 림이나 백보드 맞고 빗나가길 바랄 뿐이다.
거기다 돌파력도 좋은 선수이니 수비수 입장에서는 슛 하나만 견제하고 있을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환장할수 밖에 없다.
골밑을 파고드는 빈도가 높진 않다보니 S급 빅맨치고는 얻어내는 평균 자유투의 수가 적은 편이었지만, 성공률은 90퍼센트를 넘긴 시즌도 수차례 있고 통산 성공률도 87프로에 달하며 통산 자유투 득점은 역대 7위이다.
그렇다보니 파울로 끊을 수도 없다.
노비츠키의 시그니쳐 기술인 ONE LEGGED FADEAWAY에 관한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페이스업 혹은 포스트업을 치며 스텝을 밟다 다리 하나를 올리며 쏘는 페이더웨이슛이다.
국내에선 슛을 쏘는 폼이 어쩐지 학과 비슷하다하여 주로 학다리웨이라고 부르는편이다.
기술적으로 기존의 페이더웨이슛과 다른 점이 있다면 마이클 조던의 턴어라운드 페이더웨이는 "에어 조던"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해준 그 말도 안될 정도의 높은 체공력을 살린 것이고 노비츠키의 페이더웨이는 자신의 큰 신장과 팔길이를 십분 발휘한 것이다.
게다가 올린 다리로 공격시 방어까지 겸하니 막기가 여간 까다로울 수밖에 없으며사실상 알고도 못 막는 수준이다.
그래서 그런지 노비츠키 본인은 이 기술을 두고 백인 버전의 스카이훅이라 말하기도.
기술의 위력이 상당한 것을 떠나 배우기엔 그렇게 어렵진 않은 것인지 다른 선수들도 많이 써먹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가장 유명한 선수들이 코비 브라이언트와 그리고 케빈 듀란트다.
그의 슈팅 능력은 클러치 상황에서 두각을 드러낸다.
실제로 유튜브에 노비츠키가 역전샷을 넣은 장면으로만 만들어진 하이라이트들이 많을 정도다.
노비츠키가 클러치 상황에서 강한 이유는 롱2가 비효율적인 슛임에도 꾸준히 사용되는 이유와 같다.
수비 집중도와 야투율을 종합적으로 따지면, 롱2 위치는 농구코트에서 슈팅을 시도하는 난도가 가장 낮은 곳이다.
3점 라인 밖은 수비 집중도가 가장 낮고 점수가 높지만 그만큼 성공률이 낮고, 골밑은 아투율이 높지만 그만큼 수비를 뚫기 어렵다.
물론 핸드 체킹룰이 개정되고 선수들의 3점 슈팅 능력이 발전 하면서 골 밑 득점과 3점슛에 대한 기대값이 상승하였고, 롱2는 더욱 더 비효율적인 슈팅이 되면서 입지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클러치 상황에서는 다르다.
막판 원샷 플레이까지 안 가더라도, 상대팀이 수비를 악착같이 하면 팀전술로 3점 기회를 만들기도, 평상시보다 파울을 짜게 부는 플레이오프 상황에선 골밑까지 가기도 어렵다.
이 때문에 개인의 능력으로 득점을 짜내줄 수 있는 확실한 에이스가 없는 팀이 팀 전력에 비해 플레이오프에서 약한 것이다.
그런데 확실한 득점 하나하나가 아쉬운 상황에선 수비밀도가 낮은 롱2가 중요한 옵션이 된다.
막판 원샷 플레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상황에선 오픈샷이나 골밑 돌파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슛이 견제받는 터프슛이다.
때문에 클러치 3점은 시도 자체가 어렵고 성공률은 더더욱 낮아진다.
이렇게 팀 전술을 짤 여유 없이 에이스의 능력으로 점수를 급하게 짜내야 상황에선 롱2가 최고의 옵션이 된다.
하이스크린 완성도는 완벽에 가깝다.
이 뛰어난 스크린과 특유의 슈팅 능력으로 투맨게임에서 발휘하는 위력은 놀라운 수준이었으며, 제이슨 테리와 펼치는 픽앤팝은 댈러스의 리셀 웨폰이었다.
또한 데뷔 초기에는 수비를 계속 지적당했지만, 거듭된 노력 끝에 일대일 수비에서 구멍이 되는 일은 없어졌다.
수비를 잘 하진 못해도 네거티브 수비수까진 아니었다고 볼 수 있으며, 11시즌 댈러스에서 그러했듯 팀원들의 수비력이 우수하다면 충분히 커버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는 플레이오프 통산 140경기에서 25.4점 10.2리바운드를 올렸는데, 은퇴 선수들 중 플레이오프 통산 평균 25점-10리바운드 이상을 넘어선 선수는 밥 페팃, 엘진 베일러, 하킴 올라주원과 노비츠키뿐이라고. 또한 30득점 0턴오버 게임 횟수가 36회로 마이클 조던과 공동 1위다.
이 영상과 아래 영상에서 말년과는 사뭇 다른 리즈 시절 노비츠키의 운동능력을 실감할 수 있다.
특히 좀처럼 볼 수 없는 탄력적인 덩크와 코스트 투 코스트를 하는 모습들이 단연 압권.
노비츠키의 4년차 2002 플레이오프로 케빈 가넷의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를 상대로 39점 17리바운드를 기록한, 말그대로 날아다닌 수준의 경기였다.
당시 시리즈 평균기록은 33.3득점 15.7리바운드 1.3블록 3.0스틸 야투율 52.6% 3점 72.7(평균 2.6개) 자유투 88.9%. 참고로 이 시리즈에서 댈러스는 내리 3승을 따내며 다음 라운드로 진출했다.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데이비드 로빈슨, 팀 던컨과 마누 지노빌리, LA 레이커스의 매직 존슨과 코비 브라이언트, 유타 재즈의 존 스탁턴,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레지 밀러와 함께 한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며 은퇴하는 순간까지도 한 팀에서만 발자취를 남긴 원클럽맨의 상징으로 평가받는다.
'비미국 출신' 농구선수 중에서 윗세대의 하킴 올라주원, 후세대의 야니스 아데토쿤보와 함께 역대 최고로 평가받는다.
노비츠키 이상의 업적을 자랑하는 하킴의 경우 미국 국적을 취득한 뒤 드림팀에 발탁된 적이 있고, 따라서 '비미국인 농구선수'로서는 노비츠키가 십수년간 이견의 여지가 없는 No.1의 위치를 유지하였다.
2021년 현재 후발주자인 야니스 아데토쿤보가 2 time MVP 수상에 이어 노비츠키와 같은 프랜차이저 하드 캐리로 우승을 해내며 그의 위치를 강하게 위협하는 중이다.
여담으로 노비츠키와 야니스의 우승은 정확히 10시즌 차이로 이루어졌다.
독일 출신으로서 먼저 NBA에 진출했던 데틀레프 슈렘프와 함께 NBA에서 성공한 독일인 농구선수로 평가된다.
독일 농구 국가대표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편. 거의 대표팀 소집을 거른 적이 없다.
심지어는 유럽농구에서 존재감이 미비한 마케도니아와 독일의 평가전때도 소집에 응했을 정도. 노예가 따로없다.
하지만 2010-11 시즌이 시작되기 전 오프시즌에는 대표팀 차출을 처음으로 거부했다.
독일 농구협회에서도 그의 결정을 이해하는 분위기. 이것이 국가대표 은퇴가 아니라고 밝힌 것으로 보아 향후에도 대표팀 소집에 응할 용의는 있는듯?
그리고 선수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2016년 그는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댈러스 구단은 홈구장 아메리칸 에어라인스 센터 바닥에 노비츠키의 실루엣을 담았는데 노비츠키의 전매특허인 ‘학다리 페이드어웨이 슛’을 올리고 있는 노비츠키의 실루엣이다.
양쪽 페인트존 부근에 하나씩 새겨질 예정이다.
또한 지난 시즌과 달리 센터 서클에 있는 말 모양 로고가 좀 더 커지고 그 아래 댈러스 도시를 형상화한 스카이라인이 새롭게 들어갔다.
2011년 독일 최고의 운동선수에 뽑혔다.
농구선수가 뽑힌 건 최초라고. 좀 늦은감이 있었다.
독일이 축구 최강국이기는 하나 한 때 2000년 초중반 독일 국대와 분데스리가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던 시기도 있었다.
사실 독일 농구 국가대표팀은 노비츠키 때문에 그나마 이만큼 먹고 산다.
노비츠키가 없으면 그야말로 시망.
이는 독일 국가대표팀 다른 선수들 기량이 노비츠키와 너무 차이가 나는데다 노비츠키 역시 국가대표 에이스라는 막중한 자리 때문에 많은 부담감을 느끼고 혼자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아닌게 아니라 FIBA 농구 월드컵에서 노비츠키 활약이 압도적이었고 2002년 미국에서 열린 FIBA 농구 월드컵에선 그가 맹활약하며 독일은 역사상 최대 성적인 3위까지 기록했다!
노비츠키는 이 대회에서 득점왕과 MVP를 동시에 차지했다.
또한 2005년에 세르비아-몬테네그로에서 개최되었던 유로바스켓 2005에서도 맹활약을 펼치며 독일은 역사상 최대 성적인 준우승까지 기록하였다!
그리고 노비츠키는 이 대회에서 득점왕과 MVP를 동시에 차지하였다.
그 외에 2001년 유로바스켓에서도 득점왕을 차지하며 독일을 4위까지 이끌고, 2006년 FIBA 농구 월드컵에서도 노비츠키가 득점왕까지 차지하면서 활약한 독일은 8강에 진출했다.
다만 2010년 대회는 부진하여 독일팀은 17위에 그쳤고 2014년 대회는 독일이 본선 탈락했다.
그 외에 유로바스켓 2007에서도 득점왕까지 차지하면서 독일의 8강 진출을 이끌었다.
플레이 스타일이 주로 슛을 위주로 한 플레이다 보니, 무시무시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한 화려한 농구를 구사하는 케빈 가넷이나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블레이크 그리핀에 비하면 좀 재미가 없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포스트업과 페이스업, 돌파를 장착하긴 했지만, 역시 재미보다는 공격의 다변화라고 보는게 맞다.
NBA에서 통산 2만 득점을 돌파한 첫 번째 유럽인 선수다.
NBA에서 자신만의 족적을 잘 남기고 있는중. 그리고 3만 득점까지 달성하고 명예로운 은퇴을 맞이했다.
2016년 ESPN에서 선정한 역대 파워 포워드 랭킹에서 팀 던컨과 칼 말론에 이어 3위에 랭크되었다.
올해의 유럽 선수상을 7회 수상했고 이탈리아 스포츠 신문인 가제타 델라 스포츠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유럽 농구선수상을 5년 연속으로 수상했다.
2005년 이탈리아 스포츠 잡지인 슈퍼바스켓이 선정하는 올해의 남자 유럽 선수상과 FIBA 유로 올해의 농구선수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2011년 NBA 챔피언이 된 이후 주가가 급상승했다.
팬들 사이에서는 플레이오프 및 결승전에서의 대활약으로 노비츠키를 재평가하는 분위기이며, 언론매체 여기저기서 찬양, ESPN에서 수여하는 "ESPY Best NBA Player" 부문에 이어 "ESPY Best Male Athlete" 부문까지 수상함으로써 2011년을 명실상부한 노비츠키의 해로 만들었다.
11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노비츠키는 11시즌 연속 정규시즌에서 1500득점 이상을 올렸다.
유럽 선수 중에서는 전무한 성과. NBA에서는 칼 말론 이후 처음인데 말론는 1986-87 시즌부터 1997-98 시즌까지 이 기록을 달성한 바 있다.
2015년 기준 NBA 단일 구단에서 29000득점 이상을 올린 선수는 칼 말론, 마이클 조던, 코비 브라이언트 그리고 노비츠키인데 30000득점 이상으론 칼 말론, 코비 브라이언트, 노비츠키 셋 뿐이다.
2015년 12월 22일 기준 코비, 던컨에 이어 오로지 한팀에서 세번째로 가장 오랫동안 뛴 선수이다.
원클럽맨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추세인 NBA에서 몇 안되는 진정한 프랜차이즈 스타라 볼 수 있다.
코비처럼 한 팀에서의 근속 20년도 무리없이 채우게 될것으로 보인다.
노비츠키는 2016년을 기준으로해서 1996년 이래 커리어 +/- 탑3에 속한다.
3위는 +6,658의 르브론이고 2위는 +6,725의 노비츠키인데 1위는 무려 +10000의 팀 던컨이었다
역대 윈셰어 순위 8위에 올라있다.
非 미국인 선수 중 NBA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렸고 가장 많은 경기를 뛴 선수가 되었다.
차갑고 무뚝뚝한 독일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인터넷을 잘 뒤져보면 예술급 표정의 그의 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사진.
2016년 호세 바티스타 vs. 루그네드 오도어의 드잡이를 패러디한 사진을 오도어와 찍기도 했다.
이때 노비츠키는 호세 바티스타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농구에서는 사기꾼이지만 랩에는 젬병이다. 압권은 27초 부근이다.
샤킬 오닐의 유년기와 비슷하게도 어릴 적엔 큰 키로 놀림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스포츠 집안의 내력이어서 그런지 다른 종목에도 두각을 나타냈지만 굳이 농구를 선택한 것은 그냥 놀림을 덜 받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래리 버드는 노비츠키의 우승 시즌, 파이널이 끝나고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노비츠키에 관해 이렇게 언급한 바가 있다.
"우리는 공통점이 많다. 둘다 크고 외곽슛도 가능하다.
리바운드도 잘하며 경기에 헌신할 수 있다. 노비츠키를 고교 시절부터 봐왔는데 그때 난 사람들이 왜 나와 디르크를 비교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가 내 이름과 함께 연관된다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다.
이후 버드는 노비츠키의 은퇴식에도 참석했는데 남다른 유머감각을 뽐내며 노비츠키의 커리어를 축하해주었다.
이때 "네 덕에 NBA 리그는 성장했어."라고 말하는 버드 앞에서 노비츠키가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눈시울이 점점 붉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다룰 줄 아는 악기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첼로. 상기했듯, 노비츠키의 은사인 게슈빈드너가 오케스트라 수업까지 받길 권유했기 때문. 게다가 한 TV쇼에 나와선 기타 연주를 선보이기도했고, 취미로 색소폰을 분다고도 알려져 있다.
2014년에 본인의 농구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더 퍼펙트샷이 개봉되기도 했다.
그의 훈련방식이나 성장과정이 궁금하다면 꽤 흥미롭게 다가올 작품이다.
7풋 이상 빅맨의 3점슛 성공수 기록에서 압도적인 1위를 유지중이다.
2위하고의 차이는 꽤 큰편이다.
2016년 4월 13일 기준 전체 통산 3점슛 누적 순위는 1700개로 전체 15위에 랭크되어있다.
가드와 전문 슈터가 아님에도 꽤나 상위권이다.
역대 단일경기 팀내 최다득점 랭킹에서 6위에 랭크되어 있다.
1위부터 칼 말론, 카림 압둘자바, 마이클 조던,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디르크 노비츠키다.
몇 안 되는 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평균 25득점 10리바를 유지중인 빅맨. 정규시즌보다 플레이오프에서 기록이 상승한다는 점은 평론가들이 매우 긍정적이게 평가하는 점 중 하나이다,
매버릭스가 노비츠키의 이름을 딴 'Dirkburger'를 출시했다.
노비츠키는 칠면조 버거를 원했지만 프레즐 번에 루꼴라, 할라피뇨 비어 치즈를 곁들이고 베이컨 마멀레이드를 얹은 소고기 패티 버거로 완성되었는데 영상을 보면 노비츠키 본인이 직접 만들기도 한다.
동료선수, 스탭들과 함께 직접 시식해보는 장면 가격은 12$. 3월 동안 아메리칸 에어라인 센터 구내 매점에서 판매했다고 한다.
올랜도 매직과의 경기에서 최고매상을 올렸다고 한다.
독일 사람 답게 축구도 좋아하며 독일이 월드컵에서 우승하자 크게 기뻐하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정작 볼은 잘 차지 못하는 듯 하다.
유쾌한 성격답게 가끔 볼을 찰 기회가 생기면 개그 퍼포먼스를 펼치고는 한다. 자선경기 영상 플라핑
은퇴 이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간판 주전 미드필더인 토니 크로스 공식 인스타그램에 그의 은퇴를 기리는 피드가 게재되었다.
NBA 역대 여섯 번째로 통산 30000득점을 달성해냈는데, 이는 카림 압둘자바, 칼 말론, 코비 브라이언트, 마이클 조던, 윌트 체임벌린 다음 가는 기록. 아울러 3만 득점 - 1만 리바운드를 기록한 선수는 압둘자바, 칼 말론, 윌트 체임벌린, 르브론 제임스, 그리고 노비츠키로 5명이다.
카림 압둘자바를 넘어 역대 수비 리바운드 7위에 올라섰다.
디시인사이드 NBA 갤러리 공인 치트키이다.
2011년 코비와 르브론을 동시에 무너트린 신화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르브론 팬덤에게 아킬레스건이나 다름없는 선수이기도 한데 2007, 2014, 2015, 2017 파이널의 흑역사도 조곤조곤 반박하는 르브론 팬들조차 2011 파이널은 단 한마디의 반박도 꺼낼 수가 없을 정도다.
2015-16 시즌이 끝난 후 구단과 2년 50M에 재계약하는 과정에서 마크 큐반의 노비츠키에 대한 신뢰와 노비츠키의 구단에 대한 충성심을 알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마크 큐반이 Brown and Scoop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직접 밝힌 이야기로 노비츠키는 자신의 에이전트에게 "금액에 상관 없이 맵스에 남을 것" 이라는 말만 남긴채 휴가를 떠났고, 이에 에이전트는 구단과 협상을 시작하는데 에이전트가 "이 정도 금액이면 어때?" 라고 던지면 마크 큐반은 "야 우리 더 줄 수 있는데? 더 금액을 높여봐" 라고 해서 금액을 계속 올렸다.
그리고 결국 맵스의 2016-17 시즌 남은 샐러리캡의 전부를 노비츠키의 연봉으로 지급하는 것으로 협상은 마무리 되었다.(2년 5,000만불)
2017-18 시즌을 앞두고 코비에 이어 한 팀에서 20년 이상을 뛴 선수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NBA 아프리카 게임 2017이라는 친선경기 행사에서 만난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와 함께 훈련하는 시간을 가졌다.
늘 그래왔지만 자신과 닮은 후배인 포르징기스를 매우 대견하게 여기는 듯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석에서 만난 적은 별로 없겠지만 굉장히 돈독한 관계인 것으로 보인다.
2017-18 시즌 들어서 올타임 플레잉타임 3위로 올라섰다(단 정규시즌 한정).
1, 2위는 역시나 카림 압둘자바와 칼 말론. 아울러 출전 경기 순위는 현재 기준으론 5위라고 한다.
2012년 스웨덴 여성인 예시카 올손과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고 있다.
예시카 올손은 스웨덴 국가대표 축구선수인 마르틴 올손과 마르쿠스 올손 쌍둥이 형제와 남매지간이다.
많은 이들의 예상과는 달리 르브론 제임스와의 사이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오히려 호의적이라면 호의적인 관계, 그간 르브론이 노비츠키에 관해 동료로서 존경심을 표한적도 자주 있던 편이다.
기사 링크 아울러 노비츠키가 통산 30,000득점을 달성했을 당시 SNS를 통해 영상으로 축하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마이클 조던이 2010년대 중반에 선정한 본인의 시대에 뛰어도 통할 선수로 뽑힌 바 있다.
다른 선수들로는 코비 브라이언트, 팀 던컨, 르브론 제임스. 여담이지만 자주 오르락내리락거린 이야기는 아닌데 조던이 꽤 노비츠키의 플레이를 좋아한다고. 아무래도 자신과 같은 스코어러이고 불붙으면 막기 힘든 클러치의 강자여서 그렇다.
특이점 중 하나로 슈팅 릴리스가 매우 느린 편인데, 위에 언급됐다시피 어차피 블럭당할 일이 없으니 이렇게 느리게 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무릎의 추진력을 그대로 손목까지 전달하는 과정, 그리고 손목 릴리스가 매우 부드럽고 슛이 높고 아름다운 곡선을 그린다.
이런 느린 릴리스는 경기 중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 때문에 제한된 시간 내에 쏘아야하는 2006년 3점슛 콘테스트에서 웃지못할 해프닝이 일어난 적이 있다.
당시 예선에서 1위 레이 앨런, 공동 2위인 노비츠키와 길버트 아레나스가 각각 14점으로 결승에 올랐다.
그런데 문제는 노비츠키가 느리게 쏘는 스타일이다보니 막판에 허겁지겁 쐈음에도 시간이 촉박했던 것,
그리고 마지막 머니볼을 버저가 울린 뒤 쏴서 넣었다는 점이다.
리플레이로 봤을때 시간종료를 알리는 불이 켜졌을때 노비츠키의 손에 공이 있어 이것이 명백했지만 심판은 이를 무효화하지 않고 인정했다.
또한 리플레이 이후 판정 번복이 여기선 불가능한지라 오심이 정정되지 않았다.
실제로 무효가 너무 명백해서 리플레이를 보기도 전에 해설하던 찰스 바클리와 레지 밀러는 입을 모아 "시간 내에 못 던졌어!"라도 하고, 바클리는 오심으로 유명한 2006년 슈퍼볼을 언급하며 "슈퍼볼 심판들 데려왔나보네"하고 비아냥거렸다.
1500경기 이상을 뛰고도 평득 20점을 유지한 두 명 중 하나이다.
나머지 한명은 카림 압둘자바.
은퇴할 당시 몇가지 남긴 기록이 눈에 띄는데 NBA에서 가장 많이 뛴 선수 3위(1,522경기) 야투 성공 역대 8위(11,169개),
자유투 성공 6위(7,240개), 3점슛 성공 11위(1,982개), 수비 리바운드 5위(10,021개) 등에 이름을 남겼다.
댈러스에서 그의 은퇴를 기념하기 위해 4월을 노비츠키의 달로 정했다고 한다.
만장일치로 통과했던 안건이었고 지난해 댈러스의 시장인 마이크 라울링스는 노비츠키에게 도시의 열쇠를 수여하기도 하였다.
명실공히 댈러스라는 도시를 대표하는 스포츠 영웅인 셈이다.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노비츠키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우리가 여태껏 봤던 최고의 슈터였고 굉장히 특별했던 선수라는 감상을 남기기도.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댈러스 매버릭스는 텍사스 주에서도 가까이 붙어있는 지역 라이벌이고, 플레이오프에서 6번이나 만났던 사이라서 피차 지긋지긋할 만큼 치열하게 붙어왔던 사이였다.
그만큼 명승부를 많이 만들어내기도 하였는데 특히 마지막엔 1라운드에서 댈러스가 그해 우승하게 되는 샌안토니오를 4-3까지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지기도 모른다.
반면 샌안토니오는 파이널에선 4-1로 르브론의 마이애미를 싱겁게 이겨버렸다.
NBA에서 30득점을 기록한 선수중 최고령이라고 한다.
그것도 댈러스 홈에서 치룬 마지막경기에서 남긴 기록인 만큼 상당히 값지다.
여담으로 245번째로 넣은 30득점이었다고.
사실 은퇴에 대한 입장을 상당히 애매하게 비쳐 팬들 사이에선 설왕설래한 감이 없지않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댈러스를 제외한 다른팀들은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 섭섭치 않은 대접을 해주었는데, LA 클리퍼스의 닥 리버스 감독은 아예 타임아웃을 부르곤 마이크를 잡아 팬들에게 노비츠키를 향한 기립박수를 유도했다.
이후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은퇴쪽으로 자꾸 기울어 팬들은 노비츠키가 은퇴를 한게 아니라 당한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가끔 하기도 한다.
마크 큐반 구단주와의 관계가 상당히 깊다.
큐반은 노비츠키의 은퇴식때 레전드들을 초대하고 갖가지 이벤트를 준비하는 등 예산을 아끼지 않았는데, 은퇴식에서 마크 큐반 본인 입으로 영구결번은 당연하고 은퇴선물로 구단 지분에다 경기장 앞에 무진장 큰 동상(the biggest, most bad-ass statue ever!!!!)까지 세워주겠다고 얘기했으며 큐반은 노비츠키가 아이에서 남편으로, 그리고 아버지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했다며 그에대한 애정을 은퇴식때 아끼지 않고 쏟아냈다.
매버릭스와 큐반 입장에서 노비츠키가 각별할 수밖에 없는 것이, 큐반이 팀을 인수한 2000년대 초반에 매버릭스는 그야말로 안습이었다.
80년대에 날리던 강팀이긴 했지만 90년대 내내 흑역사로 보내고 00년대에도 별 비전은 없는, 비슷하게 90년대를 안습으로 보낸 밴쿠버 그리즐리스 등과 비슷하게 doormat team의 대명사였다.
그런 팀에게 반전이 일어난게 노비츠키, 마이클 핀리, 스티브 내시가 이끄는 신바람 농구였고, 이후 우승까지 하는 서부 명문 중 하나가 된다.
이 과정에서 댈러스의 팀 가치는 수직상승했고, 이걸 떠나 농구광 마크 큐반은 자신의 팀이 훌륭한 구단으로 성장하는 것에 기뻐했다.
실제로 20년 가까이 인간관계를 쌓다보니 친분도 당연히 깊을 수밖에 없고, 노비츠키가 트레이드 요구를 한번도 한적도 없을 정도로 구단에 대한 애정도 깊으니 이뻐보일 수밖에. 심지어 07년 당시 플레이오프에 탈락한 뒤 MVP를 수여받는 참사가 일어났을때, 정작 노비츠키는 차분한 태도와 예의바른 웃음으로 기자회견에 임했음에도 큐반은 기자회견 도중 울먹이기까지 했다.
4년 뒤 우승을 차지했을때 어린애처럼 기뻐한 건 덤. 큐반 본인의 NBA 여정을 그대로 함께하고, 매버릭스를 좋은 구단으로 만들어준 일등공신인데다 오랜 기간 흔들리지 않는 우정을 공유한 친구이니 사이가 나쁠 수 없는 상황이다.
플레이오프에서 50득점을 넣은 적이 한 번 있는데 그 위로는 두 번 기록한 제리 웨스트, 세 번 해낸 앨런 아이버슨과 네 번을 넣은 윌트 체임벌린, 그리고 8회나 기록한 마이클 조던이 있다.
그 밑으로는 전부 노비츠키와 동일하게 한 번씩,
댈러스에서 한 거리를 그의 이름으로 붙이기로 했다고 한다.
현재는 노비츠키 웨이라고 부른다고. 현재 공식적으로 승인되었다.
현재 노비츠키 웨이의 풍경. 구글에 검색하면 쉽게 위치와 이미지를 찾아볼수 있다.
노비츠키 본인도 애정이 깊어 은퇴한 이후에도 댈러스에 계속 살고 있다.
미국 시민권을 딸까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그냥 독일 국적으로 남기로 했다고. 독일인이 EU나 스위스가 아닌 국가의 이중국적을 따려면 정부의 승인을 따로 받아야하고, 이중국적이 독일 법에는 좀 복잡하게 적용된다.
2019-20 시즌부터 댈러스 매버릭스의 홈구장인 아메리칸 에어라인스 센터 코트에 노비츠키의 실루엣을 새기기로 했다고 한다.
이젠 매 경기마다 팬들은 잊지않고 페인트존에서 그의 시그니쳐 무브인 학다리웨이를 볼수 있게 되었다.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경기를 참관하던중 화면에 얼굴이 비치자 관중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2019년 12월 2일, 댈러스와 레이커스의 경기가 있었던 날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날 레이커스측은 노비츠키를 위한 헌정영상까지 틀어주었다.
기립박수를 받으며 인사하는 노비츠키의 앞에 댈러스팬과 레이커스팬 할것없이 모두가 경의를 표하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 참고로 노비츠키와 레이커스는 의외로 인연이 깊다.
30,000득점을 비롯한 여러 기록들을 레이커스와의 시합에서 남겼으며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코비와 가솔이 이끄는 레이커스의 쓰리핏을 4-0으로 저지한 경력도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서부의 강호팀들답게 오랫동안 엉키면서 여러 추억들을 남긴 것.
아울러 코비 브라이언트와도 내시만큼은 아니나 절친한 사이로 유명하다.
예전에 이 항목에서는 르브론 제임스와는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다라는 서술이 있었으나 바레아의 인터뷰에 의하면 노비츠키는 르브론, 웨이드, 보시 마이애미 3인방을 정말 못 견딜 정도로 싫어했다고 한다.
웨이드와는 2006년 파이널에서의 역대급 슈퍼스타콜 때문에 좋은 관계일 수가 없었고 독감 조롱 사건의 영상을 보고 노비츠키가 개인적으로도 크게 상처를 받았다고. 2019년 올스타전에서는 르브론이 악수를 하러 왔으나 노비츠키가 거부해버린 사건도 있었다.
좀 더 부연설명을 하자면 노비츠키 성격상 "누구를 싫어한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할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가 직접 한 말은 아니나, 노비츠키와 오랜기간(10시즌) 함께 뛰고 2011년 우승멤버였던 JJ 바레아가 2021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힌 것이다.
바레아는 "그(노비츠키)는 마이애미를 싫어했어요.
르브론, 웨이드, 보시를 싫어했죠.
절대 입밖으로 낼 리는 없지만 견디기 어려워했어요" https://www.cbssports.com/nba/news/dirk-nowitzki-hated-lebron-james-miami-heats-big-3-according-to-former-teammate-j-j-barea/ 또한 노비츠키는 르브론의 실력을 높게 평가하긴 했지만 한번도 그를 좋게 얘기한 적은 없다.
바레아가 반복해서 "그는 절대 이렇게 얘기 안하겠지만요"라고 하는 것에 볼 수 있듯이 원래 노비츠키는 그 누구도 대놓고 까는 사람이 아니다.
즉, 노비츠키가 인품이 훌륭하기 때문에 대놓고 디스하지 않았고, 르브론에 대한 감정과 별개로 그가 농구를 잘하는 사람이란건 팩트이기 때문에 이걸 인정한 정도지, 서로 존중하는 관계라고 보는 건 무리다.
아티스트 빈지노가 발표할 예정인 두번째 정규앨범 타이틀로 인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