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주의 민간 전승에 따르면 장비는 사대부 집안 출신으로 문무를 겸비하고 서화도 뛰어났다. 청나라 시대의 역대화기록에 따르면 장비는 줘저우인(탁주 사람)으로 미인도를 잘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
유비가 처음 거병할 때부터 관우와 함께 그를 따르기 시작했는데 기록이 매우 부실하다. 장비의 출신 성분을 두고도 말이 많은데 전부 추측일 뿐 검증된 바가 없다. 참고로 연의와 다르게 정사에서는 유비, 관우, 장비가 의형제였다는 기록은 없으나 여하튼 서로가 서로에게 각별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장비전에 따르면 젊어서부터 관우와 함께 유비를 섬겼는데, 관우가 몇 년 연장이어서 장비는 그를 형으로 섬겼다.
관우전에 따르면 유비가 향리에서 사람의 무리를 모으니 관우는 장비와 함께 그를 위해 적을 막아냈다. 유비가 평원상이 되자 관우와 장비를 별부사마로 삼고 부곡(部曲)을 나누어 통솔하게 했다. 유비는 두 사람과 함께 잠자며 같은 침상을 썼고 은혜가 형제와 같았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종일토록 시립했고, 유비를 따라 떠돌아다니며 고난과 위험을 피하지 않았다.
유비가 처음 거병할 때부터 관우와 함께 그를 따르기 시작했는데 기록이 매우 부실하다. 장비의 출신 성분을 두고도 말이 많은데 전부 추측일 뿐 검증된 바가 없다. 참고로 연의와 다르게 정사에서는 유비, 관우, 장비가 의형제였다는 기록은 없으나 여하튼 서로가 서로에게 각별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장비전에 따르면 젊어서부터 관우와 함께 유비를 섬겼는데, 관우가 몇 년 연장이어서 장비는 그를 형으로 섬겼다.
관우전에 따르면 유비가 향리에서 사람의 무리를 모으니 관우는 장비와 함께 그를 위해 적을 막아냈다. 유비가 평원상이 되자 관우와 장비를 별부사마로 삼고 부곡(部曲)을 나누어 통솔하게 했다. 유비는 두 사람과 함께 잠자며 같은 침상을 썼고 은혜가 형제와 같았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종일토록 시립했고, 유비를 따라 떠돌아다니며 고난과 위험을 피하지 않았다.
유표가 죽고 조조가 형주로 들어오자 유비는 강남으로 달아났다. 조조가 하루 낮, 하루 밤을 추격하여 당양 장판에 이르렀다. 유비는 조조가 갑작스럽게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처자식을 버린 채 달아났고, 장비로 하여금 20기를 이끌고 뒤를 끊도록 했다. 장비는 물가에 의지한 채 다리를 끊고는 눈을 부릅뜨고 창을 비껴 잡으며 외쳤다.<script async src="//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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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장익덕이다. 앞으로 나와 생사를 가름하자!
감히 접근하는 적군이 아무도 없었고 이 때문에 마침내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다.
구체적인 묘사는 상단의 기록이 전부이기 때문에 이 보다 더 자세한 정황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따라서 장비가 다리를 끊은 것이나 조조군을 대치한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오늘날 우리로서는 추측할 수 밖에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진수는 장비의 용맹과 담력을 강조하기 위해 저 에피소드를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이다. 이미 적군이 한 번에 우르르 몰려 올 수 있는 상황에서 움츠러들지 않고 당당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장비의 대담함과 용기를 증명한다. 이때 조조군의 정예 기병대 호표기가 5000 vs 21의 상황에서 장비를 두려워 해 공격하지 못했다는 것은 장비가 비범하게 활약하여 전국구급으로 명성을 날려왔기 때문일 터인데, 정사에서 특별히 전해지는 기록은 그가 관우와 함께 만인지적으로 불렸다는 기록 정도이다.
구체적인 묘사는 상단의 기록이 전부이기 때문에 이 보다 더 자세한 정황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따라서 장비가 다리를 끊은 것이나 조조군을 대치한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오늘날 우리로서는 추측할 수 밖에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진수는 장비의 용맹과 담력을 강조하기 위해 저 에피소드를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이다. 이미 적군이 한 번에 우르르 몰려 올 수 있는 상황에서 움츠러들지 않고 당당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장비의 대담함과 용기를 증명한다. 이때 조조군의 정예 기병대 호표기가 5000 vs 21의 상황에서 장비를 두려워 해 공격하지 못했다는 것은 장비가 비범하게 활약하여 전국구급으로 명성을 날려왔기 때문일 터인데, 정사에서 특별히 전해지는 기록은 그가 관우와 함께 만인지적으로 불렸다는 기록 정도이다.
삼국지집해 장비전에 따르면 팔몽산은 장비가 장합을 격파한 곳으로 여기에 장비가 친필을 친히 세겼다고 한다.
장비의 웅장위맹(雄壯威猛)은 관우에 버금갔으므로 위의 모신 정욱 등이 모두 관우와 장비를 칭하길 만인지적이라 했다. 관우는 병졸들은 잘 대해주었지만 사대부에게는 교만했고, 장비는 군자는 경애했지만 소인은 돌보지 않았다. 유비가 늘 이것을 경계하여 말했다.
유비가 늘 장비에게 형벌이 가혹하니 이를 고치라고 충고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범강과 장달의 살인은 가혹행위로 인한 상관 살해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고대의 군법이란 것은 굉장히 가혹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도 목이 날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범강과 장달이 대체 어떤 실수를 하고 어떤 형벌을 받았기에 하필 이릉대전 직전에 그들이 장비를 암살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없으니 현대의 우리에게 있어 이 부분은 상상의 영역이다.
정사에서 이들이 장비를 죽인 이유가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삼국지연의에서는 설정을 창작해서, 조의의 표시로 쓸 흰색 갑옷과 흰색 기를 사흘 안에 준비하라 했는데 범강과 장달이 이는 불가하니 말미를 더 달라 하자 둘을 흠씬 패고는 말미를 내일까지로 줄여 이 둘이 장비를 살해했다고 각색되었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손권이 심어놓은 자객이자 스파이로서 이릉대전이 벌어질 조짐을 느낀 손권이 지시하여 가혹행위를 구실삼아 암살을 하고 도주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한다.
장비의 죽음은 유비에게 있어서 이릉대전의 대패에 또 다른 커다란 이유라는 의견이 있다. 백전노장인 장비가 있고 없고는 유비와 촉군에는 결코 적지 않은 비중인데 그 장비가 전쟁 직전에 암살당했으니 유비에게는 또 하나의 비극이었다.
계한보신찬에 따르면 '관우와 장비는 무용이 뛰어나며, 몸을 바쳐 세상을 바르게 하고, 주상을 봉대하였으며, 기세는 호랑이처럼 장렬하였다. 주상의 좌우를 지키며, 전쟁터로 번개처럼 달려나가 격투하여 주상의 곤란함을 구하고 대업을 도왔다. 그렇지만 사람들과 교제하거나 대응함에 있어서는 무례하고, 아울러 흉악한 일을 초래하게 되었다. 그들의 얕은 생각과 몸을 훼손시키며 나라를 구한 태도를 애도한다'라는 평가를 내렸다.
후주전에 따르면 260년 가을 9월, 장군 관우, 장비, 마초, 방통, 황충의 시호를 추증했다. 죽고나서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시호가 내려진 것인데 장비의 시호는 환후(桓侯)라고 했다.
정사에서 이들이 장비를 죽인 이유가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삼국지연의에서는 설정을 창작해서, 조의의 표시로 쓸 흰색 갑옷과 흰색 기를 사흘 안에 준비하라 했는데 범강과 장달이 이는 불가하니 말미를 더 달라 하자 둘을 흠씬 패고는 말미를 내일까지로 줄여 이 둘이 장비를 살해했다고 각색되었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손권이 심어놓은 자객이자 스파이로서 이릉대전이 벌어질 조짐을 느낀 손권이 지시하여 가혹행위를 구실삼아 암살을 하고 도주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한다.
장비의 죽음은 유비에게 있어서 이릉대전의 대패에 또 다른 커다란 이유라는 의견이 있다. 백전노장인 장비가 있고 없고는 유비와 촉군에는 결코 적지 않은 비중인데 그 장비가 전쟁 직전에 암살당했으니 유비에게는 또 하나의 비극이었다.
계한보신찬에 따르면 '관우와 장비는 무용이 뛰어나며, 몸을 바쳐 세상을 바르게 하고, 주상을 봉대하였으며, 기세는 호랑이처럼 장렬하였다. 주상의 좌우를 지키며, 전쟁터로 번개처럼 달려나가 격투하여 주상의 곤란함을 구하고 대업을 도왔다. 그렇지만 사람들과 교제하거나 대응함에 있어서는 무례하고, 아울러 흉악한 일을 초래하게 되었다. 그들의 얕은 생각과 몸을 훼손시키며 나라를 구한 태도를 애도한다'라는 평가를 내렸다.
후주전에 따르면 260년 가을 9월, 장군 관우, 장비, 마초, 방통, 황충의 시호를 추증했다. 죽고나서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시호가 내려진 것인데 장비의 시호는 환후(桓侯)라고 했다.
장비의 가족 관계는 상당히 재미있는데 장비의 아내는 하후연의 조카딸인 하후씨라는 기록이 있다. 위략에 따르면 하후연의 형제의 가족이 기근을 이기지 못하여 모두 죽어버리자 홀로 살아남은 어린 여자아이를 하후연이 데려다가 길렀다. 하후연의 조카딸이 땔나무를 주우러 숲으로 왔다가 장비에게 보쌈당했다고 한다. 당시 하후씨가 13세여서 장비 로리콘 설 등의 루머가 나돈다.
위략은 철저하게 위의 시각에서 서술된 저작이기 때문에, 특히 정통성 측면에서 위와 상극인 촉한에 관한 기록에 있어서 그 신뢰성이 강하게 의심받고 있고, 실제로 유선 벤허설처럼 누가봐도 왜곡인 기록이 위략에 산재해 있다. 하지만 장비가 하후씨 집안의 여식을 처로 삼은 것에는 딱히 부정적인 뉘앙스가 깔려 있지 않고, 또한 위의 개국공신이자 필두 명장인 하후연 집안에 대한 신상 정보이기도 하니 왜곡의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여겨진다. 또한 유선이 하후패를 매우 우대하였던 정황을 보더라도 장비의 부인이 하후씨였던것은 사실에 가깝게 생각된다.
후한말 중국의 경제 사정은 호적의 80~90%가 유실될 정도로 국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던 때였기 때문에 하후씨의 고아가 땔나무를 하러 산에 가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으니 건안 5년이면 황제가 끼니를 거르고 관리가 길거리에서 굶어 죽던 삼보의 난으로부터 불과 5년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는 시각이 있으나 한편으로는 장비가 하후씨를 납치했다는 기록은 위나라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기록이라는 추론도 있다. 조조는 유비의 심복들에게 관직을 줘가며 포섭을 시도했다.(관우를 어떻게든 포섭하려고 한 이야기가 너무 유명해서지 조조는 관우는 물론 유비의 심복들 전체를 포섭하려고 했다.) 장비에게 조조는 중랑장 관직을 주었는데, 아예 하후씨를 장비에게 시집보내 인척으로 만들어 확실하게 포섭하려고 했지만 장비가 결국은 유비에 대한 충성을 버리지 않고 후에 다시 유비 세력으로 돌아가자 이에 대한 변명으로 장비가 하후씨를 납치했다고 했다는 추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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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에서는 자(字)가 동음의 익덕(翼德)으로 나온다. 이것은 장비의 이름에 '飛(날 비)'가 있기 때문에 이에 어울리고자 '翼(날개 익)'을 대신 사용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하지만 의미를 고려하면 정사의 자(字)인 익덕(益德)이 맞다. '덕을 더욱 더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연의에서는 그야말로 호걸에 전형적인 막내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주호 속성이 붙어서 술이라면 사족을 못쓰고, 선의에서 한 일이 안좋게 되어 유비를 곤란하게 만드는 등, 왠지 말썽꾸러기 막내동생(?) 이미지로, 굵은 사람에겐 굵게 대하고 가는 조무래기들은 하찮게 여기는 호걸다운 모습으로 묘사된다.
연의의 첫 장면에서 술을 팔고 돼지를 잡는다고 스스로를 소개하지만 의외로 삼형제 중 돈셔틀 포지션으로 시작한다. 바로 위의 소개문에서도 대대로 탁군에 살면서 논밭도 꽤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유비가 의병을 일으킬 돈이 없다고 말하자, 혼쾌히 자기 돈을 쓴 사람도 장비. 그리고 도원결의의 장소를 유비네 복숭아밭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본문에서는 장비네 복숭아밭이다. 모종강의 경우는 이 장면에다가 아예 "결국 돈이 많아야 큰일을 도모하기 쉽다"고 협평을 끄적여놓기도 했다.
연의에서는 그야말로 호걸에 전형적인 막내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주호 속성이 붙어서 술이라면 사족을 못쓰고, 선의에서 한 일이 안좋게 되어 유비를 곤란하게 만드는 등, 왠지 말썽꾸러기 막내동생(?) 이미지로, 굵은 사람에겐 굵게 대하고 가는 조무래기들은 하찮게 여기는 호걸다운 모습으로 묘사된다.
연의의 첫 장면에서 술을 팔고 돼지를 잡는다고 스스로를 소개하지만 의외로 삼형제 중 돈셔틀 포지션으로 시작한다. 바로 위의 소개문에서도 대대로 탁군에 살면서 논밭도 꽤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유비가 의병을 일으킬 돈이 없다고 말하자, 혼쾌히 자기 돈을 쓴 사람도 장비. 그리고 도원결의의 장소를 유비네 복숭아밭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본문에서는 장비네 복숭아밭이다. 모종강의 경우는 이 장면에다가 아예 "결국 돈이 많아야 큰일을 도모하기 쉽다"고 협평을 끄적여놓기도 했다.
연의의 여러 각색 판본 중 하나에 따르면 장비가 돼지고기를 팔고 있었는데 관우가 커다란 항아리를 장비 근처까지 들고 와서 그 항아리 속에 든 고기를 사람들에게 공짜로 나눠줬다. 장비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머리끝까지 화가 나는 상황이다. 옆에서 자기 물건보다 싸게 팔아도 열받는데 아예 공짜로 나눠주고 있다. 관우의 이 행동 때문에 관우와 장비는 싸움이 났다. 이 싸움을 유비가 중재해서 이를 계기로 유비, 관우, 장비는 도원결의를 맺었다. 단 이는 여러 판본 중 하나일 뿐이다.
싸움에서 여포를 제외하면 천하무적. 여포와 라이벌 구도를 세워 두 번의 일기토가 있었다. 첫번째 삼영전여포에서는 약간 밀려서 무예가 조금 아래라는 이미지였다. 덕분에 여포와 독특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다. 여포에게 호승심 같은 것을 느끼며 싸움에서 도전하려 하지만, 여포의 인성에 대해서는 가루가 되도록 깐다. 삼영전여포에서 여포가 정원, 동탁을 양부로 섬겼기에 삼성가노(성 셋 가진 종놈)라는 불명예스런 이명을 지어준다. 이후에도 여포만 만나면 분노를 참지 못하여 유비와 여포 간의 갈등 요소를 여러 번 만들기도 한다.
여포가 서주에 있던 유비에게 투항한 이후로도 계속 장비는 여포 늑대론을 주장하며 끝까지 여포를 미워하는데, 이 때문에 역으로 여포의 장인으로 설정된 조표가 끌어들인 여포가 서주를 뺏는다. 간신히 우여곡절 끝에 소패로 돌아온 유비였지만 다시 장비는 여포가 상인에게 구입한 말을 대량으로 도적질하면서 또 전쟁을 일어나게 한다.
서주에서는 여포와 1:1로 맞짱떠서 밀리는 기색없이 100합을 싸웠는데 연의에서 무신급으로 띄워주는 여포와 이 정도로 대등한 매치를 벌인 건 장비가 유일하다. 게다가 여포가 서주를 기습할 때, 장비의 용맹을 알고 있어서 추격하지 않았다는 서술까지 있다.
관우가 조조에게 신세를 지고 있을 때 안량의 목을 벤 직후 조조가 관우의 무예를 찬탄하자 관우는 조조에게 "저는 별 것 아닙니다. 제 아우 장비는 적장의 목베기를 주머니 속 물건 꺼내듯이 합니다."라고 말하여 장비의 무서움을 각인시켜준 바가 있다. 이는 고사성어 낭중취물의 유래가 된다. 이에 조조는 "장비란 이름을 옷깃에라도 적어두었다가 가볍게 상대하지 말라."라며 부하들에게 주의를 주었고, 이것은 장판파에서 현실화된다.
연의에서의 장판파 이야기는 좀 더 각색된다. 우선 병사들에게 뒤에서 흙먼지를 일으키게 만든 장비는 장판교에서 서서 조조군을 가로 막는다. 조조의 장수들이 잇따라 도착했지만 동쪽 숲에서 흙먼지가 이는 걸 보고 제갈량의 계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무도 가까이 가려 하지 않았다. 장비는 우레와 같은 큰 소리로 겁을 주고 그 기세에 하후걸이란 장수가 말에서 떨어지니 조조를 비롯한 대군이 밀물 빠지듯 줄행랑을 쳤다.
조선의 경연장에서도 선조가 장판파 대목을 언급했던 걸 가지고 유학자들이 갑론을박하기도 했다. 아무대로 이 장판교 대목은 연의 안에서도 꽤나 임팩트가 컸긴 컸나보다.
마초와도 승부를 내지 못한 유이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1:1로 하루종일 싸우고도 승부가 나지않아 횃불을 켜놓고 밤중까지 싸운 일화도 있다. 다만 승부는 나지 않았지만 당시 장비는 전성기가 지난 4~50대의 나이였고 마초는 아직 팔팔한 30대였다.
최후 묘사는 정사에서는 단순히 수급을 취하는 것만 나온 반면, 연의에선 관우의 죽음을 애도한다며 3일 내로 휘하 장병들이 쓸 흰색 깃발과 흰 갑옷을 준비하라는 명령의 기간을 늘려줄 것을 요청한 범강, 장달을 오히려 채찍으로 벌하는데, 앙심을 품은 두 사람이 장비의 목을 베어 오나라로 도망친다. 향년 55세라고 나오는 것으로 보아 연의에서는 167년생으로 설정된 것을 알 수 있다. 정사에선 오에 귀순한 범강과 장달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연의에서는 귀순 후 손권이 유비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돌려보내 둘 다 장포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나온다.
싸움에서 여포를 제외하면 천하무적. 여포와 라이벌 구도를 세워 두 번의 일기토가 있었다. 첫번째 삼영전여포에서는 약간 밀려서 무예가 조금 아래라는 이미지였다. 덕분에 여포와 독특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다. 여포에게 호승심 같은 것을 느끼며 싸움에서 도전하려 하지만, 여포의 인성에 대해서는 가루가 되도록 깐다. 삼영전여포에서 여포가 정원, 동탁을 양부로 섬겼기에 삼성가노(성 셋 가진 종놈)라는 불명예스런 이명을 지어준다. 이후에도 여포만 만나면 분노를 참지 못하여 유비와 여포 간의 갈등 요소를 여러 번 만들기도 한다.
여포가 서주에 있던 유비에게 투항한 이후로도 계속 장비는 여포 늑대론을 주장하며 끝까지 여포를 미워하는데, 이 때문에 역으로 여포의 장인으로 설정된 조표가 끌어들인 여포가 서주를 뺏는다. 간신히 우여곡절 끝에 소패로 돌아온 유비였지만 다시 장비는 여포가 상인에게 구입한 말을 대량으로 도적질하면서 또 전쟁을 일어나게 한다.
서주에서는 여포와 1:1로 맞짱떠서 밀리는 기색없이 100합을 싸웠는데 연의에서 무신급으로 띄워주는 여포와 이 정도로 대등한 매치를 벌인 건 장비가 유일하다. 게다가 여포가 서주를 기습할 때, 장비의 용맹을 알고 있어서 추격하지 않았다는 서술까지 있다.
관우가 조조에게 신세를 지고 있을 때 안량의 목을 벤 직후 조조가 관우의 무예를 찬탄하자 관우는 조조에게 "저는 별 것 아닙니다. 제 아우 장비는 적장의 목베기를 주머니 속 물건 꺼내듯이 합니다."라고 말하여 장비의 무서움을 각인시켜준 바가 있다. 이는 고사성어 낭중취물의 유래가 된다. 이에 조조는 "장비란 이름을 옷깃에라도 적어두었다가 가볍게 상대하지 말라."라며 부하들에게 주의를 주었고, 이것은 장판파에서 현실화된다.
연의에서의 장판파 이야기는 좀 더 각색된다. 우선 병사들에게 뒤에서 흙먼지를 일으키게 만든 장비는 장판교에서 서서 조조군을 가로 막는다. 조조의 장수들이 잇따라 도착했지만 동쪽 숲에서 흙먼지가 이는 걸 보고 제갈량의 계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무도 가까이 가려 하지 않았다. 장비는 우레와 같은 큰 소리로 겁을 주고 그 기세에 하후걸이란 장수가 말에서 떨어지니 조조를 비롯한 대군이 밀물 빠지듯 줄행랑을 쳤다.
조선의 경연장에서도 선조가 장판파 대목을 언급했던 걸 가지고 유학자들이 갑론을박하기도 했다. 아무대로 이 장판교 대목은 연의 안에서도 꽤나 임팩트가 컸긴 컸나보다.
마초와도 승부를 내지 못한 유이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1:1로 하루종일 싸우고도 승부가 나지않아 횃불을 켜놓고 밤중까지 싸운 일화도 있다. 다만 승부는 나지 않았지만 당시 장비는 전성기가 지난 4~50대의 나이였고 마초는 아직 팔팔한 30대였다.
최후 묘사는 정사에서는 단순히 수급을 취하는 것만 나온 반면, 연의에선 관우의 죽음을 애도한다며 3일 내로 휘하 장병들이 쓸 흰색 깃발과 흰 갑옷을 준비하라는 명령의 기간을 늘려줄 것을 요청한 범강, 장달을 오히려 채찍으로 벌하는데, 앙심을 품은 두 사람이 장비의 목을 베어 오나라로 도망친다. 향년 55세라고 나오는 것으로 보아 연의에서는 167년생으로 설정된 것을 알 수 있다. 정사에선 오에 귀순한 범강과 장달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연의에서는 귀순 후 손권이 유비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돌려보내 둘 다 장포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나온다.
유비가 조조의 밑에 잠시 의탁했다가 원술과 원소의 합류를 저지한다는 명목으로 군사를 빌려 탈출한 뒤 서주를 점거하고 조조는 유대와 왕충을 보내 토벌하게 한다. 첫 전투에서 관우가 왕충을 사로잡자 장비는 호승심에 자신도 유대를 잡아보이겠다며 나선다. 장비가 문자 그대로 며칠을 개지랄부르스를 춰도 유대는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그러자 장비는 야습을 계획하는 한편, 주정을 하는 척하며 부하 중 한 사람을 트집 잡아 죽도록 패고 야습전에 제사지낼 제물로 쓴다고 한 후 측근들에게 몰래 명해 풀어주라 한다. 그 병사는 적진에 가서 야습을 알리고 적장도 야습에 대비하는데 장비는 무슨 생각인지 병력을 셋으로 나눠 여러 방향에서 처들어 가게 한다.[21] 드디어 적진에 입성했지만 야습에 대비해 진을 비워서 함정에 걸려서 도주하는 장비를 추격하던 유대는 갑자기 말머리를 돌린 장비가 맹공을 퍼붓자 후퇴하는데 이미 진은 장비가 산을 넘어 뒤를 치게 한 부대가 점령한 상태.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는 유대를 장비가 창대로 낙마시키고 생포한다. 병사를 때린 것이 고육지계였는지, 아니면 장기말로 이용한 것인지는 원작에 언급이 없어서 확실치는 않지만 짜고친 고스톱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장판파에서 병사들에게 먼지를 일으키라하여 대군이 숨어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리고 본인은 장판파에서 사자후 를 발하여 하후걸을 말 위에서 떨어트리는 등 조조와 부하들에게 겁을 줘 쫓아버린다. 막상 그래놓고 후환이 염려된답시고 다리를 끊어버리는 바람에 조조의 의심을 사 말짱 도루묵이 되었지만, 마침 공명의 명령을 받고 도와주러 온 관우 덕분에 조조의 추격을 쉽게 물리친다.
파촉 점령 당시 엄안이 성 안에 틀어박혀 우주방어에 들어가자, 장비는 시일을 끌 수가 없어 샛길 기습을 계획한다. 성을 공격하지 않고 샛길을 찾느라 공격이 들어오지 않자 의심을 품은 엄안은 장비의 진영으로 첩자를 보냈는데, 이 때 장비는 특유의 성질과 호령으로 첩자들이 듣고 착각에 빠지도록 일부러 계획을 누설한다. 이에 엄안은 역기습을 하기 위해 선봉에 선 장비를 보내고 군량이 있는 행렬의 중간을 공격한다. 그러나 앞서 지나간 장비는 그와 닯은 사람이 연기한 대역이었고, 대열의 증간에 숨어있던 장비에게 공격을 당해 사로잡힌다. 이에 사로잡힌 엄안이 충의를 내세워 등용을 거부하자, 장비는 엄안의 밧줄을 풀어주고 절을 하며 설득하여 결국 엄안을 등용시킨다. 고우영 삼국지에서 이 부분은 병사 한명을 밤송이과 가짜 투구와 장팔사모로 변장 시켜 이용했다.
산 지형을 이용해 장합을 잡기 전에도 장합이 성에 처박혀 안 나오자 뭔 생각을 했는지 몇날 며칠을 술판을 벌이고 논다. 이를 보고 받은 유비는 그 이전의 술로 인해 벌인 실수들을 생각해서 강제소환을 하려고 했지만, 그 작전을 눈치챈 공명은 장비의 계략을 설명하여 유비를 안심시킨 뒤, 좋은 술을 한 수레 실어서 보내되 한 술 더 떠서 "군전공용미주(군중에서 다함께 마시는 고급 술)"라는 깃발까지 달아준다. 술이 도착하자 장비는 역시 공명이라면 눈치 채고 도와줄줄 알았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더욱 더 크게 술판을 키운다. 그 꼴을 본 장합은 "저 털보자식이 날 우습게 봐도 정도가 있지!!"하며 전군을 동원해 기습 공격을 하지만 술판의 상석에 있던 장비는 허수아비 인형. 그리고 진짜 장비가 술에 전혀 안취한 채 나타나서 장합을 공격한다. 대패한 뒤 성으로 숨어 들어가 농성을 하자 주변 백성들을 통해 우회로를 알아내 산을 타고 넘어가 기습한다. 그리고 역시나 장합은 대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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