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사 觀音寺
목조관음보살상 , 木造觀音菩薩像.
목조관음보살상 , 木造觀音菩薩像.
시도유형문화재 제216호
이 보살상은 1650년(효종 1)에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대표적인 조각승 무염(無染), 성수(性修), 경성(敬性)에 의해 조성된 불상으로 17세기 불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신체에 비해 다소 얼굴이 크지만 안정감 있는 자세, 오똑한 코, 단정한 결가부좌의 자세를 가지고 있다.
조성연대가 확실하고 주로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한 조선후기 조각승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소재 관음사 법보전 내부에 보관된 조선 중기의 목조불상.
1650년(효종 1)에 전라도 일대에서 대표적으로 활동하던 조각승 무염(無染) 등에 의해 조성된 불상으로 조성연대가 확실하고 17세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체높이 61㎝, 어깨폭 24㎝, 무릎 38㎝ 내외 크기의 목조불상이다.
2009년 10월 9일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16호로 지정되었고, 관음사에서 보존, 관리해오고 있다.
관음사 목조관음보살상은 무주 관음사 법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보살좌상으로, 중형의 보살상이다.
전체적으로 신체에 비하여 두부(頭部)가 다소 큰 편으로, 머리를 약간 숙이고 결가부좌(結跏趺坐)하였다.
머리에는 화문(花紋)과 운문(雲紋) 등으로 장식된 화려한 보관을 썼으며 정상부에는 높고 길쭉한 보계(寶髻)를 표현하였다.
이마 부분에는 빗으로 빗은 듯 머리카락이 가지런히 표현되었는데, 보발은 귀의 중간 부분을 감싸고 흘러내리다가 어깨 위에서 세 가닥으로 갈라져서 팔뚝 위로 흘러내렸다.
얼굴은 사각형에 가깝지만 턱 부분에 살이 올라 부드러워 보인다.
미간에는 백호(白毫)가 선명하며, 활형[弓弧]의 가는 눈썹과 가늘면서 약간 위로 치켜뜬 반개(半開)한 눈, 오똑한 콧날, 꾹 다문 얇은 입술 등은 조선 중후기 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신체는 안정감이 있고 균형이 잘 잡혀있는 편으로, 어깨 폭이 넓지 않아 아담하면서도 단정해 보이며 결가부좌한 무릎 폭도 적당하다.
양 어깨에는 조선 후기 보살상에게 흔히 볼 수 있듯이 천의가 아닌 통견의 법의를 걸치고 있다.
법의는 목 뒷부분이 약간 접혀있으며 왼쪽의 법의는 왼쪽 어깨를 완전히 가리고 어깨에서부터 무릎 부분까지 내려오면서 무릎 위에 놓인 왼손을 손목 부분까지 완전히 덮고 있다.
오른쪽에는 안쪽에 통견으로 법의를 걸친 뒤 다시 법의 한자락이 어깨를 덮고 있는데, 안쪽의 법의 자락은 오른쪽 팔꿈치 아래로 하여 배 부근으로 내려가 왼쪽에서 내려온 법의 안쪽으로 여며진 모습이다.
이와 같은 착의법은 넓게 트인 가슴, 수평의 군의(裙衣)와 함께 조선 후기 불상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올려 첫째와 셋째 손가락을 마주 잡고 있는데, 손바닥 쪽으로 길쭉한 모습의 정병이 끈으로 매달려 있다.
왼손은 왼쪽 무릎 위에 대어 첫째와 셋째 손가락을 마주 잡고 있는데, 두 손은 모두 별도로 제작하여 끼워놓았다.
자세는 결가부좌를 하고 있는데, 오른쪽 발끝 부분을 왼쪽 법의 자락으로 살짝 덮었다.
보살상의 밑부분에는 복장공(腹藏孔)이 마련되어 불상 조성 발원문과 경전류 등이 들어 있었다.
불상 발원기는 앞부분에 시주질을 적고 뒷부분에 화원 등 연화질(緣化秩)과 조성 연대를 기록하였으며, 제일 마지막 부분에 중수연대를 적었다.
발원기에 의하면 이 보살상은 1650년(효종 1)에 화주 덕인(德忍)이 조성하였고, 1676년(숙종 2)에 중수하였다고 한다.
화원은 무염(無染), 성수(性修), 경성(敬性)이라고 적혀있다.
‘
화원’이라는 명칭 아래 크게 적혀있는 성수, 경성과는 달리 무염은 작고 가는 글씨로 성수 이름 윗부분에 적어놓았다.
이로써 본다면, 무염은 불상을 제작할 때에 처음부터 관여하지 않았다가 1676년(숙종 2) 중수할 때에 참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발원기에는 존상의 명칭과 봉안사찰 등이 적혀있다.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없지만, 보살상의 규모가 크지 않은 점을 미루어 볼 때, 독존상으로 조성되었다기보다는 삼존불상의 협시보살 중 하나라고 추측된다.
이 상의 존명에 대해서는 왼손에 정병을 들고 있어 관음보살상으로 보기도 하지만 오른손은 엄지와 셋째 손가락을 맞대고 있고 정병은 따로 끈으로 매달아 놓았기 때문에 정병이 조성 당시의 것이었는가는 알 수 없다.
‘관음보살상’이라고 한다면 보통 표현되어야 하는 보관의 아미타화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존상의 명칭도 확언할 수 없다.
이 보살상이 무염과 경성이 함께 제작한 전라북도 완주 정수사 삼존불상 중 관세음보살과 착의법, 신체표현, 목걸이 장식 등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관음보살일 가능성이 크다.
이 보살상은 1650년(효종 1)에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대표적인 조각승 무염, 성수, 경성에 의해 조성된 불상으로 신체에 비해 다소 얼굴이 크지만 안정감 있는 자세, 오똑한 코, 단정한 결가부좌의 자세를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조성연대가 확실한 이 보살상은 17세기 불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한 조각승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 「고려 광종을 보는 또 다른 시각: 미술사와 고고학을 통하여」(정성권, 『한국인물사연구』19, 2013)
- 「개성 관음굴 석조보살상과 송대 외래요소의 수용」(정은우, 『시각문화의 전통과 해석』, 2007)
- 『한국의 사찰문화재』(문화재청, 2003)
-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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