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차,[ STAGECOACH], 1
서유럽 ·미국 등에서 사람과 화물을 운송한 마차.
17세기에 들어서면서 농촌지방에 모직물공업(毛織物工業) 및 기타 산업이 발전하면서 사람과 화물의 운송이 빈번하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차체에 4개의 차륜이 붙은 역마차가 발달하여 사람과 약간의 화물을 1시간에 6∼8 km 정도의 속도로 주요 도시간을 정기적으로 운행하였다.
예를 들면, 런던과 리버풀 간 약 330 km를 1757년에는 3일에, 81년에는 2일에, 84년에는 30시간에 주파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철도로 4시간이 채 안 걸리는 구간이지만, 당시 1시간에 8 km나 달리는 역마차는 경이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는 울퉁불퉁한 나쁜 도로였기 때문에, 승차감도 형편없었다고 한다.
17세기 후반의 운하(運河)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역마차는 점차 쇠퇴하였으며, 철도의 개통으로 폐지되었다.
제작년도/제작국/제작사/상영시간/필름/감독제작/각본/촬영/출연/음악수상/
1939
|
미국
|
Walter Wanger
|
96분
|
흑백
|
John Ford
|
Walter Wanger, John Ford
|
Ernest Haycox, Dudley Nichols
|
Bert Glennon
|
Claire Trevor, John Wayne, Andy Devine, John Carradine, Thomas Mitchell, Louise Platt, George Bancroft, Donald Meek, Berton Churchill, Tim Holt, Tom Tyler
|
Louis Gruenberg, Richard Hageman, Franke Harling, John Leipold, Leo Shuken
|
오스카 : Thomas Mitchell(남우조연), 오스카 후보 : Walter Wanger(최우수작품), John Ford(감독), Bert Glennon(촬영), Alexander Toluboff(미술감독), Otho Lovering, Dorothy Spencer(편집), Richard Hageman, W. Franke Harling, John Leipold, Leo Shuken(주제곡)
1930년대는 서부극 장르에 있어 무척 험난한 시기였다. 몇 년 동안 「빅 트레일」(1930)과 「시마론」(1931)처럼 많은 비용을 들이고 실패작만 만든 메이저 영화사들은 서부극에서 손을 뗐고, 소규모 영화사의 B급 영화로만 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위험한 인디언 영토를 가로지르는 역마차에 관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존 웨인과 클레어 트레버를 캐스팅했을 때, 존 포드 감독은 십여 년 동안 서부극은 전혀 만들지 않았던 상태였다.
그는 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에게 그 이야기를 팔기 위해, 「역마차」는 그때까지 존 웨인이 출연했던 B급 영화와는 수준이 다른 ‘고전적인 서부극’이 될 거라고 설명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 중 하나는 여성 관객에 대한 호소력이 크리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포드와 대본작가인 더들리 니콜스는 어니스트 헤이콕스의 원작에 사랑과 출산 이야기를 가미했다. 그러나 셀즈닉은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었는지 그 프로젝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역마차」가 서부극 장르의 전통적인 관습에 거리를 둔 것은 아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웨인과 플럼머 갱 사이의 총격전과 역마차가 사막을 가로질러갈 때의 인디언의 공격 등 많은 액션이 등장한다. 그 장면은 야키마 카누트의 뛰어난 스턴트로 더욱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는 아파치 공격자 중 한 사람으로 등장하여 역마차의 말 위로 뛰어올랐다가 총에 맞아 말의 다리와 마차바퀴 사이로 떨어져 내리는 묘기도 선보였다.
이 영화는 웨인에게 「빅 트레일」의 실패 이후 메이저 스타덤에 오를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제공했다. 아버지와 형을 죽인 플럼머 형제에게 복수하기 위해 탈옥한 링고 키드 역할의 그는, 사막 한 가운데 서서 손을 흔들어 역마차를 세우며 처음 등장하는 장면부터 강렬한 인상을 새긴다. 그러나 웨인이 등장하는 시점은 역마차에 탄 다른 인물들의 소개가 끝난 후다. 그들은 각자 인상적으로 소개된다.
달라스(클레어 트레버)는 행실 나쁜 여자로 마을의 ‘법과 질서 연맹’의 청교도 숙녀들에게 쫓겨나 술주정꾼 닥 분(토머스 미첼)과 함께 마을에서 달아나고 있는 중이며, 피콕(도널드 미크)은 수줍은 위스키 장사, 햇필드(존 캐러다인)는 남부의 도박꾼이며 임신한 멀로리 부인(루이즈 플래트)은 기병대 장교의 아내, 게이트우드(버튼 처칠)는 은행돈을 훔쳐 달아나고 있는 은행가다. 역마차 외부에는 맷집 좋은 마부 벅(앤디 데빈)과 보안관 컬리(조지 밴크로프트)가 있다. 포드는 이 묘한 조합의 무리를 통해 ‘점잖은’ 사회에서 멸시 받은 이들이 도덕적으로 더욱 우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역마차」는 포드가 유타 주와 애리조나 주 경계에 높은 사암 언덕들이 있는 모뉴먼트 밸리에서 촬영한 첫 영화였다. 작은 역마차가 그 광활한 사막을 가로지르는 동안 그 진로를 지켜보고 있는 인디언 무리를 향해 다가가는 카메라는 마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나약함을 강조한다. 포드는 인디언을 개개인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자연의 힘인 것이다. 이 영화는 흥행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면서 서부극 장르의 부흥에 기여했다. 관련영화,
그는 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에게 그 이야기를 팔기 위해, 「역마차」는 그때까지 존 웨인이 출연했던 B급 영화와는 수준이 다른 ‘고전적인 서부극’이 될 거라고 설명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 중 하나는 여성 관객에 대한 호소력이 크리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포드와 대본작가인 더들리 니콜스는 어니스트 헤이콕스의 원작에 사랑과 출산 이야기를 가미했다. 그러나 셀즈닉은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었는지 그 프로젝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역마차」가 서부극 장르의 전통적인 관습에 거리를 둔 것은 아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웨인과 플럼머 갱 사이의 총격전과 역마차가 사막을 가로질러갈 때의 인디언의 공격 등 많은 액션이 등장한다. 그 장면은 야키마 카누트의 뛰어난 스턴트로 더욱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는 아파치 공격자 중 한 사람으로 등장하여 역마차의 말 위로 뛰어올랐다가 총에 맞아 말의 다리와 마차바퀴 사이로 떨어져 내리는 묘기도 선보였다.
이 영화는 웨인에게 「빅 트레일」의 실패 이후 메이저 스타덤에 오를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제공했다. 아버지와 형을 죽인 플럼머 형제에게 복수하기 위해 탈옥한 링고 키드 역할의 그는, 사막 한 가운데 서서 손을 흔들어 역마차를 세우며 처음 등장하는 장면부터 강렬한 인상을 새긴다. 그러나 웨인이 등장하는 시점은 역마차에 탄 다른 인물들의 소개가 끝난 후다. 그들은 각자 인상적으로 소개된다.
달라스(클레어 트레버)는 행실 나쁜 여자로 마을의 ‘법과 질서 연맹’의 청교도 숙녀들에게 쫓겨나 술주정꾼 닥 분(토머스 미첼)과 함께 마을에서 달아나고 있는 중이며, 피콕(도널드 미크)은 수줍은 위스키 장사, 햇필드(존 캐러다인)는 남부의 도박꾼이며 임신한 멀로리 부인(루이즈 플래트)은 기병대 장교의 아내, 게이트우드(버튼 처칠)는 은행돈을 훔쳐 달아나고 있는 은행가다. 역마차 외부에는 맷집 좋은 마부 벅(앤디 데빈)과 보안관 컬리(조지 밴크로프트)가 있다. 포드는 이 묘한 조합의 무리를 통해 ‘점잖은’ 사회에서 멸시 받은 이들이 도덕적으로 더욱 우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역마차」는 포드가 유타 주와 애리조나 주 경계에 높은 사암 언덕들이 있는 모뉴먼트 밸리에서 촬영한 첫 영화였다. 작은 역마차가 그 광활한 사막을 가로지르는 동안 그 진로를 지켜보고 있는 인디언 무리를 향해 다가가는 카메라는 마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나약함을 강조한다. 포드는 인디언을 개개인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자연의 힘인 것이다. 이 영화는 흥행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면서 서부극 장르의 부흥에 기여했다. 관련영화,
마차, (馬車, 영어: horse-drawn vehicle ),
마차의 역사는 전차(戰車)에서 비롯되었는데, 오리엔트 ·이집트 등의 각지에서 발견되는 부조(浮彫)에 그려져 있는 1마리 또는 여러 마리가 끄는 2륜전차가 그것을 뒷받침해 준다. 중국에서도 은(殷)나라 ·주(周)나라에는 사마(駟馬)라고 하는 4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가 있었으며 당시의 왕릉 등에서는 마차(전차)가 차장(車長) ·사수(射手) ·마부를 태우고 말이 멍에에 매인 채 매장되어 있는 것이 발굴되었다. 그러나 BC 8세기경부터 기마병(騎馬兵)이 생겨 전법(戰法)이 차전(車戰)에서 기마전으로 바뀜에 따라 군사용으로 발달한 마차는 승용(乘用) ·화물운반용으로 바뀌어 바퀴도 두 바퀴에서 네 바퀴로 되었다. 15~16세기에는 호화로운 사치품이 되어 이것이 코치(coach)라고 하는 4륜마차의 기원이 되었으며, 형태도 무개마차(無蓋馬車)에서 유개마차로 바뀌어 19세기 초에는 여행용 ·유람용으로 사랑을 받게 되었다. 미국에서도 역마차가 등장하여 서부개척에 한몫을 담당하였다.
한국에서는 한말(韓末)에 프랑스에서 마차를 사들여 고종황제가 애용하였는데, 지금 그 마차가 창덕궁 어차고(御車庫)에 전시되어 있으며, 교통기관으로서 마차의 이용은 대중화되지 못하였고 주로 화물운반용으로 이용되었을 뿐이다. 세계 각국, 특히 유럽에서 교통기관으로 많은 이용과 사랑을 받던 마차는 기차 ·자동차 ·시내전차 등의 등장으로 밀려나 지금은 드물게 화물운반이나 관광용으로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