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16일 화요일

아리랑,

아리랑,

우리말의 어원을 밝히는 일은 흥미 있는 일이지만 매우 난해한 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자의적인 해석을 하여 여러 가지 어원설이 나오게 된다. 그 중에 아리랑도 많은 어원설을 가진 낱말 중에 하나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는 '아리랑'이다. '아리랑'은 우리 겨레에게 친숙하고, 우리 삶의 애환이 깃들인 민요이다. 각 지방과 세대별로 다양한 내용의 아리랑 노래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아리랑이 널리 불리는데도 불구하고 '아리랑'이나 '쓰리랑'이라는 말의 어원은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아리랑'의 어원에 관한 여러 가설이 있다. 이병도의 낙랑(樂浪)설, 양주동의 아리령설과 이병주의 알라고개(慈悲嶺)설, 장사훈의 구음설, 이규태의 아린설, 정익섭의 얄리얄리설, 김지연의 알영설(閼英說) 외에 아랑설(阿娘說), 아이농(我耳聾)설, 아난리(我難離)설, 아리랑(我離娘)설, 아랑위(兒郞偉)설, 알설, 메아리설, 아라리설 등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신용하 교수가 다음과 같은 어원설을 내놓아 주목을 받고 있다. 아리랑에서 '아리랑'의 '아리'의 첫째 뜻은 '고운'의 뜻이고, '랑'의 뜻은 '님'이다. '아리'가 고대 한국에서 '고운' '곱다' '아름다운' '아름답다'의 뜻으로 쓰인 흔적은 현대 한국어에서 '아리따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몽골어에서 '아리'는 아직도 '고운' '곱다'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아리랑'의 첫째 뜻은 '고운님'이다. '아리'의 둘째 뜻은 '그리운'의 뜻을 담고 있다. 현대 한국어에서 '아리다'의 동사는 사랑에 빠져 상사병에 걸렸을 때나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때의 표현이다. 이것이 형용사가 되면 '아리'는 상사병이 나도록 '사무치게 그리운'의 뜻이 된다. 이때의 '아리랑'은 '(사무치게)그리운 님'의 뜻이다.

'쓰리랑'은 '아리랑'의 둘째의 뜻과 동의어 또는 유사어이다. 마음이 '쓰리다'는 마음이 '아리다'와 유사어이다. 즉 '쓰리랑'은 마음이 아리고 '쓰리도록 그리운 님'인 것이다. '랑'은 한자로서 삼국시대에는 '낭(郞)'자를 써서 젊은 남녀를 모두 표현했다.

그런데 몽골어에서 '알랑고아'라는 여인과 그 뜻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여인의 아버지는 코리-투메트 부족의 귀족인 코릴라르타이-메르겐이고, 어머니는 바르코진-고아였다. 메르겐이란 '활 잘 쏘는 사람(善射者)'이란 뜻이고 '고아'는 '곱다/고와'의 뜻으로 한국어의 발음과 뜻이 일치한다.

알랑-고아는 도본-메르겐과 결혼했다. 다섯 아들 가운데 막내가 보돈차르-몽카크이다. 그의 후손 가운데 테무친, 곧 칭기즈칸이 나왔다. 그리하여 몽골인들은 칭기즈칸을 하늘에서 이미 정해진 운명을 갖고 있었다고 믿고 있으며. 그들은 '알랑고아'를 몽골인들의 시왕모(始王母)로 모시고 있다.

이 알랑고아 여신은 바이칼과 만주와 동해안으로 이어지며 한민족의 여신으로도 모셔졌고 이런 것은 속초의 해신당에서 동해여신과 밀양 아랑각에서 모셔졌고 정선아리랑과 밀양아리랑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다양하게 불리는 아리랑 소리의 근원을 '강원도 자진아라리'로 보고 여기에서 각 지방의 아리랑 소리가 파생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강원도를 근원지로 본 것도 흥미 있는 일이다.

아리랑 계보도,

만주족의 일파인 에벵키(Ewenki)어에도 'ALIRANG'이 있는데 '맞이하다/인내하다'의 뜻으로 쓰이며, 티베트의 아리나모우(阿里那莫)와 이족의 아리(阿里) 등의 민요에는 아리랑의 아리와 비슷한 후렴구가 있는 노래들이 많이 있어서 고대에 이들과 교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아리랑은 몽골의 알랑고아 여신과 '곱다/고와'라는 의미에서 유래하여 아리랑의 민요로 불러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쓰리랑'은 민요에서 흔히 쓰이는 기법으로 '아리랑'의 대응구로서 별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리’, ‘아라리’, ‘아라성’, ‘아리랑’이라는 입타령으로 된 후렴이 딸리는 장절 형식이며 이름에 ‘아라리’, ‘아라성’, ‘아리랑’이라는 말이 붙는 우리나라의 민요군.

아리랑은 강원도와 그 인접 지역에서 노동요, 토속민요로 부르던 메나리토리로 된 <강원도자진아라리>와 <강원도긴아라리>와 같은 ‘아라리’가 원형으로 보이고 나머지는 여기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아라리>에서도 노랫말을 촘촘히 길게 엮는 <강원도엮음아라리>가 파생되었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심사장면,

강원도 지역에 전승되던 아라리가 조선 후기에 유희요로 통속화되면서 후렴에 붙는 ‘아라리’라는 말이 운율이 좋은 ‘아리랑’이라는 말로 변하여 <강원도긴아리랑>, <강원도자진아리랑>, <강원도엮음아리랑>으로 명칭이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것들이 전국적으로 널리 불리게 되면서 서울 지역에서 <강원도자진아리랑>을 ‘강원도아리랑’이라 이르고, <강원도엮음아리랑>을 ‘정선아리랑’이라 이르게 된 것이다.

한국 민요 가운데 후렴에 ‘아리랑’이라는 말이 나오고 제목에 ‘아리랑’이라는 말이 붙는 민요는 수없이 많지만 통속민요로 정착한 것은 <강원도자진아리랑(강원도아리랑)>, <강원도긴아리랑>, <강원도엮음아리랑(정선아리랑)>, <서울긴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등이 있고, 많이 부르다가 사라진 것에는 <서울구조아리랑(서울자진아리랑)>, <아롱타령(해주아리랑)>, <영천아리랑> 등이 있다. <어랑타령(신고산타령)>을 아리랑으로 꼽는 이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이를 아리랑으로 꼽지는 않는다.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아리랑 공연중인 장면,

<강원도자진아리랑>은 강원도 지역에 전승되는 민요의 하나이다. 지금은 통속민요가 되었지만 본디 강원도와 그 인접 지역에서 모심기소리, 방아소리로 전승되던 토속민요 ‘강원도자진아라리’가 그 원형인데, 이것이 통속민요로 불리면서 널리 알려져 서울에서 이를 ‘강원도아리랑’이라 이르게 된 것이다. 이 아리랑은 강원도 동부 지역에 전승되는 <자진아라리>가 원형으로 보이며, 이것이 주목되는 것은 모든 아리랑의 근원적 특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 아리랑의 노랫말에는 아직도 토속민요의 향토적이고 소박한 특성이 남아 있다.

아주까리 동백아 여지 마라/ 산골에 큰애기 바람난다
아리아리 스리스리 아라리요/ 아라리고개로 넘어간다

좀 빠른 혼소박 4박자 엇모리장단으로 알려졌지만 실은 좀 빠른 혼소박 8박자(엇모리 두 장단)가 장단 주기를 이루며 전형적인 메나리토리이다. 곡조는 소박하고 향토적인 느낌을 준다.

Arirang folk song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조선민요 ‘아리랑’) Dancing to the song “Arirang” in the June15 Festival, a joint event of North Korea and South Korea. © 2002,       

<강원도긴아리랑>은 강원도 지역에 전승되는 아리랑 민요이다. 지금은 통속민요가 되었지만 본디 강원도와 그 인접 지역에 모심기소리, 뗏목소리, 나무꾼소리로 전승되던 토속민요 <강원도긴아라리>가 그 원형이다. 이 민요를 토대로 강원도 정선·평창 지역에서 ‘엮음아라리’가 파생되고 이것이 통속민요가 되면서 널리 알려져 서울에서 ‘정선아리랑’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것이 통속민요화되고 서울에 전파되면서 여기에서 <서울긴아리랑>이 파생되고, 또 여기에서 각종 아리랑이 파생되었기 때문에 아리랑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아리랑이다. 지금은 통속민요로 부르지만 아직도 그 노랫말에는 향토적인 소박한 사설이 남아 있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가 질라나/
만수산 기슭이에 실안개가 도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장단은 느린 3소박(3분박) 3박자 세마치장단을 치는데 세마치장단 네 장단이 장단 주기가 되므로 3소박 중모리장단이 맞는다. 전형적인 메나리토리로, 곡조는 처량하고 향토적인 소박한 느낌을 준다.

<강원도엮음아리랑>은 강원도 정선·평창 지역에 전승되는 민요이다. 본디 강원도 정선·평창 지역에서 <강원도긴아라리>의 사설을 촘촘히 엮는 <강원도엮음아라리>가 생성되었고, 이것이 서울 소리꾼이 부르면서 널리 알려져 이를 서울에서 ‘정선아리랑’이라 이르게 된 것이다. 사설을 촘촘히 길게 엮기 때문에 ‘엮음아라리’라 하는데 그 가락의 근원은 <강원도긴아라리>에 있다. <강원도긴아리랑>에는 아직도 사설을 엮지 않는 원형이 더러 남아 있다.

정선 읍내 물레방아는 물살 안고 도는데/
우리 집의 서방님은 날 안고 돌 줄 모르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이를 <엮음아라리>에서는 앞 행을 길게 촘촘히 엮고 있다.

정선 읍내 물레방아 일삼 삼육십팔 마흔여덟
스물네 개의 허풍산이 물살 안고 도는데
우리 집의 서방님은 날 안고 돌 줄 모르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엮는 대목은 좀 빠른 불규칙한 장단으로 되어 있고 엮지 않는 대목은 원형인 <강원도긴아리랑>과 같이 좀 느린 3소박 3박자 세마치장단으로 되어 있다. 세마치장단 네 장단에 장단 주기가 이뤄진다. 전형적인 메나리토리로, 처량하고 향토적인 느낌을 준다.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가 영문가사와 서양음계로 채보하여 수록한 악보. 1896년  잡지에 [Korea Vocal music]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제공: 정선아리랑연구소)

<강원도엮음아리랑>은 전문적인 서울 소리꾼들이 전승하면서 약간 변화되어 <강원도엮음아리랑>보다 좀 느리고 강원도 메나리토리 특유의 시김새가 약화된 반면에, 서울의 대중적인 목이 강화되어 향토적인 정서는 덜하지만 대중적인 감정 표현은 매우 세련되게 변하였다.

Arirang folk song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조선민요 ‘아리랑’) Flag being hoisted with the sound of song “Arirang” in the June 15 Festival, a joint event of North Korea and South Korea. © 2001      

<서울긴아리랑>은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수 시에 동원된 강원도 장정들이 부르던 <강원도긴아리랑>을 서울 소리꾼들이 경토리로 바꿔 부른 데서 발생한 것이라 한다. <강원도긴아리랑>은 향토적인 소박한 맛이 있지만, 전문적인 소리꾼들이 부르는 <서울긴아리랑>은 도시적이고 대중적인 세련된 정서를 담고 있다.

만경창파 너른 바다 고기 둥실 뜬 배
거기 잠간 닻 주어라 말 물어보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로구료
아리랑 아리얼수 아라리로구료

<강원도긴아리랑>과 같이 3소박 3박자 세마치장단으로 되어 있고 세마치장단 네 장단이 장단 주기인 경토리이다. 처량한 느낌을 준다.

<서울자진아리랑>은 조선 말기에 <서울긴아리랑>을 빠르게 변주하여 만든 신아리랑이지만 뒤에 이를 변주한 <본조아리랑>이 생기면서 이를 ‘구조아리랑’이라 부르기도 한다. 조선 말기에는 한때 크게 유행하였지만 지금은 <본조아리랑>에 밀려 거의 잊히고 있다. 2소박 세마치장단으로 되어 있고 세마치장단 여덟 장단이 장단 주기인 경토리이다. 서울 근대 도시민의 정서가 담겨 경쾌한 느낌을 준다.

Arirang folk song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조선민요 ‘아리랑’) Opening scene of Grand Mass Gymnastic and Artistic Performance “Arirang”. © 2012,

<본조아리랑>은 일제강점기 초기에 나운규가 일련의 아리랑 영화를 만들고 <서울자진아리랑>을 영화 음악으로 쓰면서 서양 정서로 편곡된 것이다. 일제강점기부터 널리 불렸고 외국에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요가 되었다. ‘본조아리랑’이라는 말이 원조 아리랑이라는 말로 오해되기도 하지만 실은 ‘서울 본바닥조’ 아리랑이라는 뜻이다. 일제강점기 서울 도시민의 정서를 담고 있다.

아리랑 악보,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2소박 세마치장단으로 되었고 세마치 여덟 장단이 장단 주기인 경토리이다. 근래에는 <본조아리랑>을 축제에 대중음악 양식으로 부르며 흔히 2소박 4박자로 바꿔 부르는 경우가 많다. 경쾌하고 유장한 느낌을 준다.

<밀양아리랑>은 일제강점기 초기에 강원도와 그 인접 지역에 전승되는 아리랑이 변형되어 생성된 아리랑이며, 일제강점기 밀양 지역 출신인 박남포가 지었다고 전한다. 통속민요화되어 대중적인 정서가 깃들어 있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얼시구 아라리가 났네

<강원도긴아리랑>과 같이 3소박 3박자 세마치장단이지만 좀 빠른 한 배로 되어 있는 변형된 메나리토리이다. 독특한 리듬과 선율로 활기찬 느낌을 준다.

아리랑, 한국의 서정민요(Arirang, lyrical folk song in the Republic of Korea) © 2011 by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Foundation,

<진도아리랑>은 일제강점기 초기에 강원도와 그 인접 지역에 전승되는 아리랑이 변형되어 생성된 아리랑이며, 전남 진도 출신의 대금 명인 박종기가 지었다고 전한다. 남도 음악 전문가의 손에 편곡된 것이라 남도적인 흥이 넘친다.

문경 새재는 웬 고갠고/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 난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강원도긴아리랑>과 같이 3소박 3박자 세마치장단이고, 좀 더 빠른 한 배로 되어 있다. 전적인 육자배기토리로, 남도 민요 <산아지타령>·<물레 타령>과 같이 남도 민요 특유의 가락을 담고 있어 독특한 리듬과 선율로 흥겨운 느낌을 준다.

<아롱타령>은 일제강점기 초기에 강원도와 그 인접 지역에 전승되는 아리랑이 높은 음역으로 변형되어 생성된 아리랑의 하나이다. 발생 당시에는 ‘아롱타령’ 또는 ‘아리랑’이라 일렀던 것인데 근래에 ‘해주아리랑’이라 이르는 이들이 있지만 해주와 연관은 없다고 한다.

아주까리 동백아 여지 마라/ 산골에 큰애기 바람난다
아롱 아롱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후렴의 입타령이 ‘아롱아롱’ 하여 <아롱타령>이라 이르던 것이다. <밀양아리랑>과 비슷하여 <밀양아리랑>의 모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긴아리랑>과 같이 3소박 3박자 세마치장단이고 좀 빠른 한배로 되어 있다. 변형된 메나리토리로, 활기찬 느낌을 준다.

<영천아리랑>은 3소박 3박자 세마치장단 네 장단이 장단 주기(3소박 중모리)로 된 <강원도긴아리랑>이 한배가 빨라져 좀 빠른 2소박 12박자 중모리장단으로 변형된 아리랑이다. 일제강점기 초기에 유행하였는데, 지금은 거의 부르지 않는 것을 근래에 복원하여 부르면서 <영천아리랑>이라 이르고 있다. 그 명칭의 근거는 불분명하다. 메나리토리로, 처량한 느낌을 준다.

조선 말기에 아리랑이 강원도와 그 인접 지역을 넘어서 전국으로 널리 퍼지면서 각 지역 토리로 된 아리랑이 생겼는데, 그 단초는 조선 말기 경복궁을 중수할 때 <강원도긴아리랑>이 서울에 전해지고 이것이 서울토리로 바뀌어 <서울긴아리랑>이 생기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말기에 서울이 근대화되면서 이 <서울긴아리랑>의 한배가 빠르게 변하여 <서울자진아리랑>이 생겼는데, 일제강점기에 <본조아리랑>이 생기면서 이를 ‘서울구조아리랑’이라 이르게 된 것이다. 다른 한편 <강원도긴아리랑>이 각 지역 토리로 변화된 아리랑이 생겼는데, 이 가운데 <밀양아리랑>과 <진도아리랑>이 널리 알려져 이것이 통속민요화되었다.

아리랑, 한국의 서정민요(Arirang, lyrical folk song in the Republic of Korea) © 2009 by Jeongseon County

일제강점기에 나운규가 <아리랑>이라는 일련의 영화를 만들면서 <서울자진아리랑>을 <아리랑> 영화 음악으로 삼아 영화 상영 현장에서 연주했는데, 그 곡조가 약간 근대식으로 변하여 <서울본조아리랑>이 생겼다. 이것을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많이 불러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지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로 꼽히게 되었다. 이 무렵 각 지역에서 저마다 아리랑을 만들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아리랑이 생겨났지만, 이것들은 대부분 근래에 거의 사라졌다. 그 많은 아리랑 가운데 근대 축제에서 가장 활발히 쓰이고 있는 것은 <본조아리랑>이며, 근래에 대중음악 양식으로 편곡한 것들이다.

평안남도,
자강도>전천군,

아리랑의 역사,
분류
음악 > 아리랑 도서관
1986년 브랜드 메이져 社의 아리랑 선호도 조사>에 우리 민요 중 대표적인 민요는 어떤 것인가라는 답변에서 아리랑이 97%로 나타났다. 이는 두말할 나위 없이 아리랑이 ‘민족을 대표하는 노래’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한민족이라면 누구도 이 결과를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아리랑은 처음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한 산악지대에서 출발하여 산길과 강줄기를 따라 메나리조의 노래로 형성, 확산되어 오는 과정에서 각 시대마다 기능과 성격을 달리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장르, 담당 층, 기능, 연희공간, 유통방식 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정체성를 유지하고, 독자적인 지위를 갖고 왔다. 따라서 다른 민요와 동일한 차원에서 분석하기에는 적절치 않다. 왜냐하면 다른 민요들은 변화 과정에서 곡조와 사설 그리고 성격의 변화가 있을 뿐이지만, 아리랑은 이를 포함함은 물론 당대 시기에 따라 성격의 변화를 갖고 그 변화 시점에서 변이형을 발생시키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갈래론으로 분류하거나, 성격을 규정해서는 아리랑에 관한 바른 평가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은 자명하다.

아리랑의 역사는 어떤 민요와 비교해도 이색적이며, 이러한 특징이 아리랑의 기원을 이해하는데 더욱 어렵게 만드는 국면이 된다. 백두대간의 태백산 일대를 중심으로 한 메나리토리 선법으로 ‘뫼아리’(산+소리)또는 ‘아라(어러, 우러, 우려, 아레)리’란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면서, 남한강계(긴아라리, 정선아라리)와 북한강계(잦은아라리, 강릉아라리)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경복궁 중수기에는 북한강계 ‘강릉아라리’가 춘천의 ‘강원도아리랑’을 낳고, 이것이 경기도 일대에서 ‘잦은아리랑’(‘아르렁’-헐버트記)을 낳았다.

‘잦은아리랑’은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주제가 아리랑등을 형성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중 주제가아리랑은 1926년에 개봉되어 크게 히트한 영화아리랑의 주제가로써 그 영향으로 신민요? 유행가? 대중가요 아리랑으로 까지 다양하게 확대하는 시키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남한강계로는 정선아라리가 충북 ‘중원아라성’을 낳고, 이것이 서울, 경기지역에서 ‘긴아리랑’을 형성시키는데 기여했다. 이로써 아리랑은 우리 노래 문화의 전 역사를 횡단해 온 것이다.



평양시,
함경북도>무산군,

아리랑에 뜻,
'아리랑'이란?
한국인에게는 자칫 본질적이거나 철학적일 수도 있는, 현상적이거나 시대적인 것일 수도 있는 이 복잡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일은 그 용어의 뜻과 유래를 말하는 데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아리랑의 기원이나 어원 문제는 1930년대 연구 초창기부터 최근까지 지속적인 관심거리로, 실로 다양한 견해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아리랑'이라는 명칭이 노래의 반복 후렴으로부터 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한 노래가 불린 것은 훨씬 오래 전부터이겠지만, 기록 자료로서 가장 앞선 것은 『만천유고(蔓川遺稿)』에 실린 「농부사(農夫詞)」(1790)의 후렴인 듯하다.

신농후직(神農后稷)이 시경가(始耕稼)니
자유생민(自由生民) 위대본(爲大本)이라.
종고(鍾鼓) 울여[려]라 종고(鍾鼓) 울여[려]라.
박언초아(薄言招我) 제동반(諸同伴)
아로롱(啞魯聾) 아로롱(啞魯聾) 어희야(於戱也)
사육생애(事育生涯) 노불탄(勞不憚)일셰.1)

어휘와 표현을 감안할 때 이 작품은 조선시대 후기 전반적인 사회 해체 과정 속에서, 농삿일을 장려하고 농민을 독려하기 위한 국문시가 창작 등 일련의 경향과 맞닿아 있다.2) 한시 형식은 물론 강조하는 내용도 상층 사대부의 것이다. 또한 제목이 말하는 대로 '농부의 노래'를 직접 옮겨 온 부분은 "아로롱 아로롱 어희야"라는 후렴 부분 정도이다. 이로부터 18세기 후반경에 농부들은 이미 '아리랑'과 유사한 소리를 후렴으로 하는 노래를 곧잘 불렀다는 점, 이 노래는 공동체의 생산 활동과 관련된 민중의 소망이 담긴 흙의 노래였다는 점 그리고 이것이 사회적 요구와 추세에 따라 농민을 넘어 한시 담당층으로 하여금 가창(歌唱) 형식의 한시를 창작하게까지 하였다는 점 등을 추론할 수 있다.

여기서 '아로롱'은 농부 노래의 후렴구를 음차(音借)한 것일 뿐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주변 사람들을 불러들여 농사일을 더불고자 하는 의도로 부르는, 농민들의 별 뜻 없는 가벼운 흥얼거림이다. 그런데 아리랑 연구자들은 크게 역사적 사건이나 사물 혹은 인물에 관련지어서 아리랑의 기원을 찾거나, 개인의 주관적인 감정의 발산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하는 두 갈래로 기원론의 방향을 잡고 있다.3) 이를 두고 호사가적 논자들의 견강부회라고 지나치게 몰아세울 일만은 아니다.

본래는 특별한 의미 없이 구사되곤 했던 후렴구 '아리랑'이, 구한말 대원군 섭정기와 일제 강점기, 민족 해방과 한국전쟁 등 우리 근대사에서 굵직한 민족의 위기를 거쳐 오는 동안 각 시기마다 향유자들에게 나름의 절실한 소리로 수용되었던 양상을 대변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곧 아리랑의 기원을 역사적 현실로서 의식하고 수용하려는 태도이든, 시대적 부조리로 말미암은 정한(情恨)의 노래라고 인식하든 그 다양한 견해는 그만큼이나 풍요로운 아리랑의 내용으로부터 비롯한 것이며, 다양함 자체가 아리랑의 실체인 것이다.

위기와 고난의 장면에서 힘을 발휘한 아리랑 노래는 비관적인 삶을 해학적으로 전개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어느 경우에도 좌절하지 않는 것이다. 이때 해학이라는 장치는 그것을 통해 슬픔을 잊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슬픔을 차단해 주제를 비판적으로 드러내는 구실을 한다. 쫓기는 이들의 쓰라리고 처절함을 표현할 때조차 절망 자체가 아니라 절망을 이기려는 굳센 각오를 동시에 표현한다. 아리랑의 생명력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아리랑은 고정된 하나의 텍스트가 아니라 민족·민중의식의 성장과 함께 시대사에 유연하게 대처해 온 역동적 산물이다.

민중에서 민족의 노래로
1926년 10월 1일 단성사(團成社)에서 처음 상영된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은 문화사적으로나 사회사적으로 충격을 던진 일대 사건이었다. 상상을 초월한 흥행을 기록하면서 이 영화는 이후 2년 6개월에 걸쳐 전국 각처에서 상영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이 같은 흥행에 힘입어 영화의 주제곡이었던 「신아리랑」, 일명 '나운규의 아리랑'은 전국적으로 유행하게 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나네.
청천 하늘엔 별도 많고
우리네 살림살인 말도 많다.

풍년이 온다네, 풍년이 온다네.
이 강산 삼천리에 풍년이 온다네.

산천초목은 젊어만 가고
인간의 청춘은 늙어만 가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앞길이 양양한 청년 영진(永鎭)은 불우한 현실 속에서 그만 정신이상자가 되었다가, 악질 지주의 수족 노릇을 하면서 동리 사람들은 물론 사랑하는 연인마저 유린하는 오가(吳哥)에게 이성을 잃고 낫을 휘두르게 된다. 상대의 피를 보고서야 문득 정신이 돌아온 영진이 일본인 순경에게 붙잡혀 수갑을 찬 채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던 그 마지막 장면, 바로 그 순간 흘러나오던 주제가인 「신아리랑」을 관객들은 뜨거운 공감의 눈물과 함께 소리죽여 합창했다. 일제의 검열을 피해 나운규가 몇 겹으로 걸쳐 놓은 영화 속 우의법(寓意法)은 나라 없는 백성의 설움을 더욱 절묘하게 파고들었고 응축된 감정은 마침내 주제가를 통해 분출된 것이다.

「신아리랑」은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그때까지 불리던 전통 민요의 가락이나 내용과는 다른 것이었다. 3/4박자로 편곡된 신민요로서, 그 주제 또한 본래의 것에서 멀어져 비창감이 깃든 한(恨)의 정서를 부각시켰다. 나운규의 「신아리랑」이 '아리랑'의 정신을 잘못된 방향으로 확산시켰다는 부정적 평가가 한편에서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신아리랑」의 정조가 '아리랑'의 전부는 아니며 그 전체의 성격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러므로 「신아리랑」은, 19세기 이전부터 여러 갈래로 내용과 형식이 재창조되면서 성격을 형성해 온 중요한 구비문학으로서의 민요가, 일제 침탈의 시기인 20세기에 들어 영화라는 예술장르에 걸맞게 변형된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다만 나운규의 『아리랑』이, 당시까지 일부 지역에 국한되어 그리 보편화하지는 않았던 민요 '아리랑'을 역사와 사회의 표면으로 부각시키면서 확장기와 전성기를 이끌었다는 사실만은 인정해야 한다.

『아리랑』이 등장하기 이전의 '아리랑'의 기본 성격은 어떤 것이었을까? '아리랑'은 특정한 노래 이름이 아니고 유사한 경향성을 띠는 일군의 작품 명칭도 아니다. 그 명칭이나 가락, 후렴 등이 오랫동안 민요생활권에 내재해오다가 어느 시기에 이르러 한 지역이나 한정된 주제를 넘어 유동민요4)로서 전파되고 성격을 형성했다. 앞서 살핀 것처럼, 18세기 이후 농민이 겪은 사회적 체험의 질적 변화와 함께 평민의식이 확산되고, 19세기 후반 민중의식이 성장하면서 근대요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과거 농업생산의 공동체로부터 이탈하여 격심한 사회변동과 긴박한 체험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민요 양식이 요청되었고, '아리랑'은 각 지역에 분포하는 개인적이고 소박한 노래와 더불어 보편적 사회상을 담은 유동적인 노래로서 이에 부응했던 것이다.

이렇게 19세기말 이후 20세기 초엽에 유행한 '아리랑'은 근대민요5)의 대표격이 되었다. 근대 생활과 근대 사회의 모습을 다각도로 조명하면서 전국적인 분포를 보인 점에서 그러하다. 또 노동과 행사, 생활 속의 의식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비기능요로서,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계승하지 않고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갖추었으며, 일상의 갈등과 고민을 구체적으로 의미화하여 현실을 총체적으로 형상화하였다. 짧고 간결한 형식으로 역설과 해학의 어조를 유지한 점도 시대적인 변화를 민감하게 반영할 수 있는 좋은 장치였다. '아리랑'은 말 그대로 "바야흐로 근대 생활의 만화경"이었던 것이다.

'아리랑'은 시대상을 단순히 반영하거나 사회 변화를 인식하기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극적 현실을 형상화하거나 항거의식을 고취함으로써 사회정신을 이끄는 적극적이고 중요한 구실을 감당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자 일제는 우리의 민족문화 내지 민족성 말살 정책 가운데 하나로 아리랑의 탄압과 변조를 일삼았다. 유흥적이고 찰나적 풍조의 잡가를 앞장서 보급하면서 '아리랑'의 가사와 곡조를 왜곡해 그 성격을 변질시키고자 한 것이다.

반면에, 일제의 의도에 맞서려는 우리의 노력도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아리랑' 개작 운동 및 장르 확산 운동을 벌여 민족의 감정과 풍속 변화를 민요가 주도하도록 하였다. 소설과 연극, 영화 등 여러 가지 예술의 영역에서 '아리랑'이 관련을 맺게 됨으로써 '아리랑'은 민요 생활층의 범위를 넘어 더 넓고 큰 세계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6) 영화 『아리랑』을 통해 비애와 감상주의에 젖은 무기력한 정서가 퍼져 나간 점은 이처럼 '아리랑'이 민족의 감정을 대변하는 예술운동의 중심테마로 부각되면서 나타난 일면의 한계로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리랑'의 민족적 성격이 두드러진 곳은 멀리 해외 망명지에서였다. 만주와 북간도 등지에서는 항일의식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개작 가사가 불렸으며, 고국을 그리면서 민족의 시련을 항일 투쟁의식으로 집약하는 사설들이 등장했다.

요컨대 여느 민요처럼 흙의 노래, 노동요에서 시작해 민중의 개인적 회한가 내지 자탄가(自嘆歌)로 존재했던 '아리랑'은, 20세기를 전후하여 근대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민족의 시련을 집약해 전달하면서 세태 풍자와 항거 의지를 고취하는 민족의 노래로 변모하게 되었다. 「신아리랑」을 거치면서 한편으로 상업주의의 물결을 타고 대중가요의 길을 가게 되거나 실용적 기능을 담은 사설도 출현했는데, 이는 '아리랑'의 범민족적 확산과 유행 현상에 편승한 한 예일 뿐이다. 큰 흐름으로 보면 시대적인 각성과 민족 해방의 잠재력을 지닌 채 시대적, 역사적 사명을 다하는 근대 민요로서 성장해 나갔던 것이다.

단순한 형식 속에 다양한 주제의구조,
서울을 중심으로 한 '아리랑' 노래의 다채로운 세태 풍자가 큰 반향을 끌어오는 것과 함께 특정한 지역 내의 '아리랑' 또는 그 비슷한 노래들이 각기 발전을 보인 것도 민요 '아리랑'만이 가진 특징이다. 사설 구성 원리나 길이, 내용면에서 근대 민요 '아리랑' 일반의 성격과 차이를 보이지만 이들 지역적 특성을 보존한 노래들도 '아리랑'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데 힘입어 한층 성행하게 되었다. 함경도 원산 지방의 「어랑타령(=신고산타령)」도 그 일종이며, 「정선아라리」를 비롯한 강원도 아리랑, 전라도의 「진도아리랑」, 경남 「밀양아리랑」이 대표적 예들이다.

「정선아라리」가 대체로 구성지고 느린 가락에 생활의 체험을 구체적으로 노래하는 독창 방식인 데 비해, 「밀양아리랑」은 남녀관계를 소재로 한 사설을 경쾌한 가락으로 되어 있다. 또한 「진도아리랑」은 부요(婦謠)적 성격과 육자배기 선율구조를 지니고 교환창(交換唱) 내지 선후창(先後唱)방식을 따르는 점이 다르다. 하지만 모두 작업의 과정이나 특정 노동에 구속되지 않는 비기능요로 창곡이 가사나 기능보다 중시되는 개방적 성격을 지닌다.7) 전체 비중으로 보면 「정선아라리」를 비롯한 강원도 지역의 노래가 다른 지역보다 압도적으로 많고 사설의 분화와 구성의 원리 등 내적 요소도 훨씬 복잡하다.

전국적인 전승 범위를 지닌 '아리랑' 일반과 비교할 때 이들 지역적 노래에서 발견되는 가장 큰 차이점은, 연행성 혹은 유흥성에 기반한 놀이 문화로서의 성격을 다분히 지닌다는 사실이다. 지리적으로 격리되고 객관적 조건이 열악할수록 다양하고 독특한 사설을 창출하면서 놀이, 자기 표출 매체로서 '아리랑'을 활용한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리랑' 전체에서 변함없이 공통되는 점은 그것이 언제나 짧고 단순한 두 줄 형식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이것은 기본 성격을 결정짓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주재소가 멀어서 화투치기 좋고요
님의 품이 넓어서 잠자리가 좋아라.
- 「원주아리랑」

속에다 불 담는 것은 시뉘 올캐 아니냐.
내 속 풀어 주는 그대는 낭군님이 아니냐.
- 「정선아라리」

모두 2행이 한 짝을 이루는 병행체(竝行體) 형식이다.8) 첫 번째 것은 똑같은 의미나 상황이 행 단위로 거듭되는 대등형 병행체이다. 제1행에 객관적 대타(對他)의 문제를, 제2행은 창자의 관심사인 대자(對自)의 문제를 배열하여 주관적 관심사를 대타의 문제에 의지하여 일반화하려는 의도로 선택된 양식이다. 두 번째 노래는 병치된 사항들의 성격이 서로 대조적 속성을 갖는 대립형 병행체이다. 긍정적 주화제와 부정적 부화제를 한 행씩 배열해 자아와 대상 사이의 괴리/조화 관계를 비교해 드러내 보인다. 이 밖에도 제2행에서 새로운 정보를 삽입해 제1행의 내용을 보충함으로써 완결시키는 보완형 병행체도 보이지만 위의 두 유형이 대부분이다.

'아리랑'의 공식적 2행 구조를 이루는 또 하나의 유형은 연결체(連結體)이다.

아리랑 고개에 북소리 둥둥 나더니
한양성 복판에 태극기 펄펄 날리네.
- 「광복군아리랑」

만주야 봉천은 얼마나 조먼[좋으면]
꽃같은 각씨 두고 만주 봉천을 가는고.
- 「진도아리랑」

백석봉 겉이두야 [같이도] 두텁던 정이
풀잎에 이슬겉이두 다 떨어지네.
- 「정선아라리」

각 행은 등가적이지 않고, 이유-상황, 주부(主部)-서술부(敍述部)의 관계로 두 행 가운데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논리적으로 구속한다. 첫째와 둘째 노래가 이유-상황의 관계를, 세 번째 노래는 행 사이의 통사적 관계가 굳어져 형성된 주부-서술부 관계의 노래이다.

다음으로 아리랑의 율격을 보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배떠라 노다가세" 등 공식화된 후렴구에서 나타나듯이 아리랑의 기본 율격은 3·3·4조의 3음보이다.

문전의 옥토는 어찌 되고
쪽박의 신세가 웬말인가.

밭은 헐려서 신작로 되고
집은 헐려서 정거장 되네.

말깨나 하는 놈 재판소 가고
일깨나 하는 놈 공동산 간다.

아깨나 낳을 년 갈보질하고
목도깨나 메는 놈 부역을 간다.
- 「서울아리랑」

3음보 내에서도 음절수의 변화는 다양하게 나타나며, 앞 음보보다 뒤 음보가 무거운 구조로 리듬감을 형성한다. 경쾌하고 가벼워 역동적인 효과를 주는 2음보 형식이나, 두 구(句) 단위의 대구를 이루며 유장하고 장중한 느낌을 내는 정통 4음보 형식을 택하지 않은 것은 노래가 담아야 할 내용과 긴밀히 관련되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9) 고려속요를 비롯하여 대표적인 민요 가운데 상당수가 3음보 형식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 미의식에 상응하는 가장 익숙한 음보율 그리고 짧은 두 줄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기억과 재생에 용이한 구조를 취한 점은 아리랑의 본질적인 속성이다.

요컨대 우리 민족적 리듬에 뿌리를 둔 비교적 단순한 형태로 규칙 내의 변화를 최대한 활용해온 '아리랑'은 형식 자체가 그 생명력의 원천이 되었다. 익숙하고 단순화된 형식 덕분에 가능한 모든 인간사의 내용이 수렴될 수 있었으며, 특정한 시간이나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융통성을 발휘해 새로운 노래로 변화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이 안정된 정형성으로 인해 즉흥성이 더해져 누구든지 어떤 사연이라도 기능과 무관하게 노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아리랑' 전파와 전승의 원리,(고정성과 유동성)
그런데 '아리랑'이 이처럼 다른 민요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급속히 확산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혹 '아리랑'만이 지닌 특별한 원리가 있어서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아닐까?

'아리랑'의 유행 과정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특징은 근대 민요로서 '아리랑'이 전국적인 전승 영역을 보이면서 성행하게 된 이후에도 여전히 각 지역의 독특한 '아리랑'이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각 지역에 속한 '아리랑'만이 지닌 어떤 성격이 있어서 그것이 고정성의 한 요소가 되고, 반면 어떤 성격은 전국적으로 떠돌아다니는 '아리랑'에만 있는 것이어서 유동성의 중요한 요소를 이루었다고 손쉽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역 '아리랑' 가운데 어떤 것은 유동성을 지니고 전파될 가능성이 존재하기도 하고, 전국적 '아리랑'의 사설 가운데에도 널리 공감을 얻기 어려운 개인적인 경험을 담은 내용들은 탈락되어 버리기도 한다. 단지 '아리랑'의 지역적인 명칭이나 속성만으로 고정적이라거나 유동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고정성과 유동성은 흔히 전승의 원리와 자작(自作) - 혹은 창작 - 의 원리라고 규정되는 '아리랑' 사설의 지속 및 변화 개념과는 다르다. 사설 전달 면에서 전승 및 창작 원리란 가사의 변개에 관계되는 구연자 개인의 문제지만, 고정성 및 유동성은 '아리랑'의 전파나 수용 과정과 관련한 전승 집단의 문제이다. 이 같은 고정성과 유동성이란 물론 '아리랑'이 한 개인의 가창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전승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이제 '아리랑'의 고정적 요소와 유동적 요소를 몇 가지 측면에서 이해해 보자.

남천강 굽이쳐서 영남루를 감돌고
벽공에 걸린 달은 아랑각을 비추네.
- 「밀양아리랑」

무저리10) 밑으로 들어간 윤선11)
평난(平亂)이 되었어도 나올 줄을 모르네.
- 「진도아리랑」

이 두 노래는 모두가 전설 또는 역사적 사건과 관련이 있는 사설이다. 첫 번째 노래는 아랑전설과 관련된 내용으로 「밀양아리랑」은 동일 전설 관련 사설이 대단히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두 번째 노래도 지역적 사건과 관련한 노래이다. 이처럼 지명이나 전설,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사설들은 전승 영역을 넓히지 못하고 한 지역 내에 고정되어 버린다.
반면 인간의 평범한 일상사나 보편적 정서를 다루고 있는 사설들은 언제라도 어디서든지 재생될 수 있는 유동성을 지닌다.


세월이 갈려면 제 혼자 가지
아까운 우리 청춘 왜 데려가나.
- 「정선아라리」

조선 팔도의 농사법은 잘두나 냈는데
젊은 과부 수절법은 누가 마련했나.
- 「강릉자진아라리」

첫 번째 노래는 늙음에 대한 한탄을 다룬 것이며, 두 번째 노래는 수절하는 청상과부의 원망 섞인 하소연이다. 이들은 개인의 일상사를 배경으로 한 것인 동시에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노래 내용으로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가창방식 면에서 생각해 보자. 독창은 창자가 고정되어 혼자 사설을 부르지만 선후창이나 교환창은 창자가 따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앞 사설에 이어지는 다음 사설 또한 창자에 따라 변하므로 개방적이다. 독창이 '아리랑'을 고정적인 것으로 묶어 둔다고 한다면, 선후창이나 교환창이라는 가창 방식은 보다 유동적 측면을 강화시킨다. 실제로 「정선아라리」나 「진도아리랑」은 대개 혼자서 진행하는 노동 작업과 함께 가창된다. 이와 더불어 음악적 문제로서 노래의 후렴 - '맞음소리' 또는 '메김소리'라고도 한다 - 을 논할 수 있다. 독창은 후렴이 있거나 없어도 무방하지만, 선후창과 교환창의 경우는 후렴이야말로 특유의 가창 방식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적 요건이 된다. 후렴은 '아리랑'의 유동성과 관련이 깊다.

다음으로 기능면에서 보면, '아리랑'에는 크게 자신의 감정을 정화시키고 안정감을 찾는 자족적 기능과,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여 노래를 통한 의사소통적 기능이 있다.

담 넘어 갈 때엔 큰 맘을 먹고
문고리 쥐고서 벌벌 떤다.
문고리 쥐고서 떨지를 말고
할 말 있거든 들어오지.
···
오라바님 장개[장가]는 명년에 가고
농우소 팔아서 날 치아주소.
- 「아리랑」

위의 두 노래는 사랑을 품은 남자와 상대 여자 그리고 부모에 대하여 그 딸이 각각 발화하고 싶은 내용을 노래가 대신하고 있다. 이러한 적극적인 자기 표출이 공동의 것으로 수용될 수 있다면 곧 유동성의 요소가 되는 것이다. 개인적 경험에서 우러난 행위가 집단의 공감을 얻음으로써 적극적인 기능을 발휘하게 될 때 유동적인 것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설 구성의 원리에 있어서 '엮음아라리'12)도 고정성과 관계된다.

아들딸을야 못 낳는다고 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 칠성단을 모아놓고
사시장천에 방차13)
아들딸 달라고 산지 불공을 마시고
야반삼경에 오시는 님을 괄세를 마라.
- 「정선아라리」

강원도에서 특히 두드러진 '엮음아라리'의 엮음 부분은 보통 제1행의 전반부를 비대하게 늘임으로써 이루어진다. 예에서 보듯이 엮음 부분의 내용은 사실적인 데서 벗어나 창자의 노련함과 해박함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개입하여 비사실적으로 묘사되거나, 군더더기를 덧붙이는 수준이다. 엮음 부분은 특히 창자에 따른 자작 사설이 많고 이 때문에 '아리랑'의 유동성과는 한층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엮음 아리랑이 행해지는 곳은 강원도 이외에 울릉도나 제주 우도의 '잡노래' 정도인데 특이한 것은 두 곳 모두 「정선 아라리」의 엮음 사설을 변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엮음아라리'는 '아리랑'의 사설 전승이라든가 창작이 왕성한 지역에서 우수한 창자에 의해 행해지는 것으로서 고정성에 기여하는 요소가 아닌가 한다.

이상에서 '아리랑'이 급속하게 전파되면서 동시에 지역 내에서 전승을 지속할 수 있었던 요소를 점검해 보았다. 노래의 유동적 측면들을 모아 보면 '아리랑'은 다른 어떤 이유로 인하여 전국적인 확산이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자체에 전파력을 발휘할 만한 요소를 내재하고 있었다. 또 전국적 확산과 더불어 시간이 지나면서 '아리랑' 일반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어도 그 고정적 요소들 때문에 특정 부분은 살아남아 아직도 몇몇 지역적 '아리랑'이 존속하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고정성과 유동성이야말로 바로 '아리랑'을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내적 원리이다.

민요는 구비문학 가운데서도 가장 시대적인 변화에 민감한 갈래이다. 근대 민요로서 '아리랑'의 자취는, 민요가 위기의 현실을 반영하고 사회 변화를 감내하기만 하는 것이 아님을 웅변한다. 민중의식의 역사적 성장과 더불어 발전하면서 저항하고 투쟁하며 지향을 제시하는 민족의 노래로 거듭 났다.

한 사회를 둘러싼 갈등과 모순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한다. 근엄하게 관조적으로 추상화하거나 냉소적으로 회피하는 방법으로는 그것을 넘어설 수 없다. 현실 한가운데 서서 구체적 의미를 유지하면서 사태를 대상화하고 총체적으로 인식하도록 깨우치되, 역설과 해학의 어조를 유지하면서 문제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는 민요의 역할은 여전히 절실하기만 하다. 골방에 갇힌 현대시를 불러내고 박제화한 옛노래에 숨결을 불어넣어 공동체의 욕망과 이상을 대변할 현대판 아리랑을 꿈꾼다.

문제들???
1. '아리랑'이 각 지역의 노래와 전국 단위의 노래로서 보여준 속성은 어느 쪽에서나 각각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상호 배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노래의 생명력을 지속 가능하게 해주는 보완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점을 노래의 유통과 관련시킬 때 실제로 어떻게 적용 가능할 것인가?

이상에서 얻은 성과를 구체적 노래 사설에 적용하여 노래의 기능 및 전파 과정과 연동시켜 본다면, 고정적 측면을 약화시킴으로써 현재의 본바탕 '아리랑'을 전국적인 노래로 확산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고, 특정 내용의 사설만을 전파시키기 위해 유동적 측면을 더욱 강화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 '아리랑' 노래들에서 발견되는 고정성과 유동성의 요소를 비교하여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아리랑의 고정적 측면과 유동적 측면

아리랑의 고정적 측면과 유동적 측면구분고정적 측면유동적 측면
사설 내용
- 기명, 전설, 역사적배경
-개인적·경험적 현실 인식
- 개인적 경험 차원
- 비사실성
- 일상사 배경
-비판적 현실 인식
- 공동의 인식 차원
- 사실성
가창 방식
독창
(후렴이 있거나, 없어도 무방)
선후창·교환창
(후렴 필수)
기능
자족적 기능
의사소통론적 기능
공감 형성
사설 구성
엮음
일반
* 율격이 정제될수록, 곡조가 빠를수록 유동적 측면이 높다.

이러한 비교 결과에서 드러난 점을 근거로 서로 동일하거나 유사한 사설을 지닌 여러 '아리랑' 노래들의 성립 과정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특정 지역의 '아리랑'이 인기를 얻어 전국 단위의 '아리랑'으로 확산될 경우, 혹은 한 지역에서 불리던 노래가 다른 지역으로 전이될 경우를 상정한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또 그러한 확산과 전이가 불가피하다면 원래 노래에서 손질을 필요로 하는 부분은 어떤 것일지 사설 내용이나 가창 방식의 측면에서 생각해 보자.

3. '아리랑'은 20세기 초 근대 민요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하면서 세태 풍자와 민족의식의 고취, 항일투쟁의 의지 등 민중의 목소리와 갈증을 직접적이고도 신속하게 반영하는 역동적인 면모를 보였다. 구비문학의 여러 갈래 가운데서 특히 민요 '아리랑'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가?

19세기 이후 전문적인 창자인 광대의 출세와 함께 상업성과 대중성을 갖추게 된 판소리는 상층 향유층의 요구를 수렴하면서 성격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고, 역시 직업적인 소리패가 맡아 부르던 흥행 위주의 민요는 잡가라는 갈래로 구별되었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도 여전히 민중의 갈래로 남은 설화도 존재했으나 전래된 유형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내용과 의미를 부분적으로 보태야 하는 설화보다는, 가락에 의한 전승이 안정적이면서 사설 변화의 진폭이 큰 민요가 시대변화에 즉각적이고 민감하게 반응하기에 유리했다.

각주,
  • 1) 『만천유고』는 이승훈(李承薰, 1756∼1801)의 문집이라고 전한다. 여기 실린 「농부사」는 7언절구의 한시를 우리말로 노래할 수 있도록 변형시키면서 '아리랑', '어허야'에 해당하는 후렴구를 삽입한 특이한 형태이다. 시와 함께 "경술년이농청서농기고작(庚戌年里農請書農旗故作)"이라고 창작 동기를 밝혀 놓았는데, 경술년은 이승훈이 평택(平澤)현감으로 재직한 때인 1790년일 것으로 추정된다. 소개한 시는 총 9수(首) 가운데 첫 수이다.
  • 2) 이 시기에 농촌에서의 삶과 농삿일의 보람 등을 농민과 동등한 생활인의 시각에서 창작한 국문가사나 시조 작품들이 생산되었다.
  • 3) '아리랑'의 의미를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때 동원된 인부들의 심정과 연결한 '아이롱(啞而聾·我耳聾)', '아난리(我難離)', '아리랑(我離娘)'설, '알영(閼英)' 혹은 '아랑(阿娘)', '樂浪[아라]'설 등이 전자의 대표적인 견해이며, '(마음이) 아리고 쓰리다[疼痛]'설, '(누가 이 마음을) 알리오'설 등이 후자 견해의 대표적 예이다.
  • 4) 어느 한 지방에서 언제나 동일한 기능과 연계하여 전승되는 '고정민요'와 대응되는 개념으로, 지역적 한계를 넘어 널리 불리고 기능이 일정하지 않은 민요이다. '유행민요'라는 용어와도 개념상 유사하다.
  • 5) '근대 민요'라는 개념은 시기적인 유사성을 지니지만 성격은 완전히 다른 '신민요'와 구별해 사용한다. 근대 민요가 민중적 전통을 계승한 새로운 노래인 데 반해, 신민요는 상업성을 띤 완전한 창작민요를 의미한다.
  • 6)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외에 박승희(朴勝喜)의 희곡 『아리랑고개』가 공연되었고, 현진건(玄鎭健)의 단편소설 「고향」은 아리랑 노래로 끝맺음을 했다. 유진오(兪鎭午)의 희곡 『박첨지』, 이광래(李光來)의 희곡 『촌선생(村先生)』에도 아리랑 노래 일부가 인용되었다.
  • 7) '아리랑'이 기능요의 역할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면에 있어서도 대부분 특정 노동에 노래가 구속되어 노동에 걸맞은 박자와 사설을 갖추지는 않았다. 다만 밭매기, 나물캐기, 뽕따기, 방아찧기, 나무하기, 부엌일 등 개인적인 노동을 하면서 '아리랑'을 불렀다는 점에서 기능요적 역할이 인정된다는 정도이다. 이 때 '아리랑'은 작업 진행 과정에 밀착해 노동의 효율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기보다는, 흥미위주의 자기 표현적 내용으로 힘든 노동의 고통을 잊을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기능요적 역할을 감당한다.
  • 8) 병행(竝行, parallelism)은 기본적으로 반복(repetition)의 한 형태로,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 나타나는 가장 보편적인 시 구성 양식이다. 병행은 서로 대응되는 한 쌍으로 구성되는 것이 보통이며, 행을 기본 단위로 하여 구성되는 일이 많고, 병행되는 두 행 가운데 제2행은 제1행의 구성 요소 중 일부가 교체되어 나타난다는 특성을 지닌다.
  • 9) 앞에서 예로 든 「원주아리랑」이나 「광복군아리랑」 경우처럼 표면적으로 4음보에 가까운 노래들도 존재하지만, 이들 또한 한 행 내의 두 구가 대응관계를 형성해 정적(靜的)이고 장중한 느낌을 주는 전형적 4음보와는 거리가 멀다. 시조, 가사 작품들과 비교해 보면 이 점이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 10) 지명(地名)이다.
  • 11) 인명(人名)이다.
  • 12) 일반적인 경우보다 비대하게 늘어난 사설을 곡조에 맞추기 위해 촘촘하게 엮은 부분을 포함한 노래이다.
  • 13) '방차'라는 말은 아직까지 그 의미가 밝혀지지 않았다.
  • 14) 이 밖에도, 율격이 정제될수록 곡조는 완만하고 느린 것보다 빠르고, 경쾌할수록 사설의 변개를 줄이고 전파를 쉽게 해 유동성이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참고문헌,
[아리랑과 알랑고아 (어원을 찾아 떠나는 세계문화여행(아시아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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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향토대백과
[초등 교과서 음악
[아리랑소리의 근원과 변천에 관한 음악적 연구(한국민요학5, 한국민요학회,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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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가 지시하는 선법과 토리의 개념(한국음악연구51, 한국국악학회, 2012년)
[창악집성
[위대한 문화유산
[아리랑의 역사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겨레의 노래 아리랑), 2004.,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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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 장르를 넘어선 노래, 시간을 가로지른 소리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2006..,)



한국민요, 아리랑시전,그림,

#아리랑 #민요 #노래 #쓰리랑'은 '아리랑'의 둘째의 뜻과 동의어 또는 유사어이다 #마음이 '쓰리다'는 마음이 '아리다'와 유사어이다 #쓰리랑'은 마음이 아리고 '쓰리도록 그리운 님'인 것이다 #랑'은 한자로서 삼국시대에는 '낭()'자를 써서 젊은 남녀를 모두 표현했다 #몽골어에서 '알랑고아'라는 여인과 그 뜻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여인의 아버지는 코리-투메트 부족의 귀족인 코릴라르타이-메르겐 #어머니는 바르코진-고아였다 #메르겐이란 '활 잘 쏘는 사람()'이란 뜻이고 #고아'는 '곱다/고와'의 뜻으로 한국어의 발음과 뜻이 일치한 #알랑-고아는 도본-메르겐과 결혼했다 #다섯 아들 가운데 막내가 #보돈차르-몽카크 그의 후손 #테무친 #칭기즈칸이 나왔다 #몽골인들은 칭기즈칸을 하늘에서 이미 정해진 운명을 갖고 있었다 #알랑고아'를 몽골인들의 시왕모()로 모시고 있다 #알랑고아 여신은 바이칼과 만주와 동해안으로 이어지며 #한민족의 여신 #속초의 해신당 #동해여신 #밀양 아랑각에서 모셔졌고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아리랑'은 20세기 초 근대 민요로서의 성격 #세태 풍자 #민족의식의 고취 #항일투쟁의 의지 #민중의 목소리와 갈증 #직접적이고도 신속하게 반영 #역동적인 면모 #구비문학의 여러 갈래 가운데서 #민요 '아리랑'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 #19세기 이후 전문적인 창자 #광대의 출세와 함께 #상업성과 대중성 #판소리는 상층 향유층의 요구를 수렴하면서 성격을 달리 #직업적인 소리패가 맡아 부르던 흥행 위주 #민요는 잡가라는 갈래로 구별 #일제 강점기 이후에도 여전히 민중의 갈래로 남은 설화도 존재 #전래된 유형을 유지 #새로운 내용과 의미를 부분적으로 보태야 하는 설화 #가락에 의한 전승이 안정적 #사설 변화의 진폭 #큰 민요가 시대변화에 즉각적이고 민감하게 반응하기에 유리했다 #아리랑소리의 근원과 변천 #음악적 연구 #한국민요학 #한국민요학회 1997년 #아리랑소리 #생성문화 #유형과 변동 #한국민요학 #한국민요학회 2009년 #조가 지시하는 선법 #토리의 개념 #한국음악연구 #한국국악학회 2012년) #창악집성 #위대한 문화유산 #아리랑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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