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5일 토요일

라면,

 라면,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인스턴트

국수를 증기로 익히고 기름에 튀겨서 말린 즉석식품. 가루수프를 따로 넣는다. 

즉석식품의 하나. 지방함량 16%, 단백질 8~9%, 탄수화물 등 영양분이 많으며, 500g당 390㎉의 높은 열량을 가진 식품이다. 근래에 와서는 각 회사의 제품다양화로 3분 동안 끓이는 라면에서 더운 물만 따르면 먹을 수 있는 컵라면·즉석라면 등과 같이 제품 종류가 많아졌고, 이로 인해 국민 식생활 보급에 기여하고 있다.

라면의 유래는 중국의 건면에서 나왔다는 설과 안도[安藤]라는 일본 사람이 오뎅튀김을 보고 착안하게 되었다는 2가지 설이 있다. 현재의 즉석식품 라면을 최초로 개발한 나라는 일본으로 1958년경부터 생산했으며, 한국에서는 1963년 삼양식품이 처음으로 생산을 시작했다.

오늘날에는 라면을 생각할 때 대부분 빨간 국물을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고, 1980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고춧가루가 조금씩 더 들어가 국물이 빨간 색을 띠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은 라면을 좋아한다. 세계 최대 라면 소비국은 중국이지만 1인당 라면 소비량으로 따지면 한국이 최고다. 한 사람이 1년에 68개를 먹는다고 하니까 적어도 1주일에 한두 번은 라면을 먹는 셈이다.

라면이 국내에서 처음 생산된 것이 1963년이니까 벌써 50년이 됐다. 인스턴트 라면이 처음 개발된 해로 따지면 55년이다. 라면, 이 위대한 음식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반백 년 라면의 역사는 시련에서 출발한다. 그 탄생사는 전쟁의 고통, 그 혼란에 내동댕이쳐진 개인의 눈물, 그리고 힘든 세월을 이겨내는 인간의 의지로 점철되어 있다. 그래서 라면의 역사는 고난 극복의 궤적이며 인간 승리의 기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도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의 땀과 눈물이 모두 스며 있다.

인스턴트 라면은 1958년 안도 모모후쿠라는 사람이 처음 개발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패전국 일본 국민들 대다수는 미군이 제공하는 밀가루로 연명했다. 뒤집어 보면 국수 장사로 큰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마침 직장을 잃은 안도는 장기간 보관해도 원래의 맛을 살릴 수 있는 국수를 대량 생산해 사업화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사업이 생각처럼 잘 진행되지 않았다. 

거의 10년 동안 국수 개발에 매달린 안도는 마침내 가진 돈을 모두 날려버리고 가정은 파탄나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나이도 이미 40대 중반에 접어든 안도는 좌절한 나머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기로 결심했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술이나 한잔하자며 포장마차를 찾았다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음식 만드는 모습을 보던 안도는 포장마차 주인이 어묵에 밀가루를 입혀 기름에 튀기는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는다. 젖은 국수를 기름에 튀기면 밀가루 반죽에 포함된 수분이 빠르게 증발하면서 밀가루에 숱한 구멍을 남긴다. 이 구멍에 뜨거운 물이 들어가면 국수가 다시 부드러운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 안도는 연구에 매달린 끝에 1958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간편하게 먹는 즉석 라면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연히 라면 생산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는데 안도가 라면 제조 방법을 특허로 등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도 쉽게 라면을 만들 수 있었다.

 

한국식 라면이 만들어진 계기???

라면에첨가된 고추, 가루를 내어서 첨가한다,

그러나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곡식 위주의 생활을 하던 국민들은 들어보지도 못한 라면을 섬유의 한 종류로 오해해서 먹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삼양식품은

캠페인 성격의 시식을 실시하고 라면 알리기 운동에 나섰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또한 일본식의 담백한 국물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러다 식량 문제에 관심을 가진 박정희 대통령이 삼양라면에 흥미를 보였다.

“한국 사람은 맵고 짠 것을 좋아하니 고춧가루가 좀 더 들어갔으면 좋겠군.”


한국에서 라면을 처음 생산한 것은 1963년이다.

경쟁이 치열한 일본 라면업계에서 한국에 라면 제조 기술을 이전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1인당 라면 소비량이 세계 최고지만 라면이 처음 국내에 선보였을 때는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다. 

밀가루 음식에 익숙하지도 않았고, 느끼한 국물에 값도 싼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초의 라면은 가격이 10원으로, 당시 식당에서 사 먹는 백반이 30원이었으니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라면이 널리 보급된 것은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 덕분이다. 쌀을 아끼려고 라면 보급을 장려한 것인데 대통령까지 관심을 보였다.

대통령이 우리 국민은 맵고 짠 것을 좋아하니 느끼한 국물 대신 고춧가루를 이용한 수프를 개발해보라고 제안하면서 개발 자금까지 지원했을 정도다.  그때 당시 박정희대통령,

일본 라면이 패전의 허기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발달했다면, 한국 라면은 산업화 도중 식량 자급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라면이라고 하면 인스턴트 라면부터 떠올리지만 라면은 사실 생라면을 기름에 튀기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생라면은 어디서 비롯된 음식일까?

일반적으로 생라면의 뿌리는 중국으로 보고 있다. 1870년대, 요코하마의 부두에서 일하던 화교 노동자들이 먹었던 국수를 원조로 본다. 이들이 고향에서 먹던 ‘라몐(拉麵)’이 일본의 생 ‘라멘(らめん)’의 뿌리라고 하는데, 라몐이란 쉽게 말해서 수타국수다.

수타국수가 밀가루 반죽을 바닥에 때리며 늘리는 것과 달리 라몐은 공중에서 그대로 잡아 늘리는 것이 다르고 수타국수보다 면발이 훨씬 가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는 수타국수를 주로 짜장면으로 비벼 먹지만 중국은 라몐을 쇠고기 국물에 말아 먹는다. 때문에 겉보기에도 일본의 생라면과 비슷하다.

일본에서는 생라면을 예전에는 지나(支那)소바, 또는 주카(中華)소바라고 불렀다. 생라면에는 이렇게 격변의 시대에 고향을 떠나 요코하마에 와서 돈을 벌어야 했던 중국 쿠리(부두 노동자)의 눈물이 배어 있다.

라면은 지나치게 먹으면 건강에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배고픈 사람에게 라면은 싼값에 허기를 잊도록 해주는 구원의 음식이다. 옛날에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런 라면에는 극한의 가난을 견디어낸 중국 부두 노동자들의 질곡과 패전의 고통을 극복하려는 일본인의 노력, 산업화 과정에서 잘살아보겠다고 허리띠를 졸라맨 한국인의 의지가 반영돼 있다.

목차

인스턴트 라면, 호평을 받다/ 한국인의 1인당 라면 소비량, 세계 1위/ 2009년 우리나라, 라면 종주국이 되다/ 한ㆍ중ㆍ일, 라면의 시초를 두고 논쟁하다/ 1870년 일본에 라멘으로 알려지게 된 배경/ 라멘, 일본의 전통 음식이 아니다/ 라멘에서 인스턴트 라면으로 변화해 나가는 과정/ 일본 라면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 안도 모모후쿠/ 1958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 : 닛싱 치킨 라멘/ 1971년 ‘컵 누들’이라는 최초의 컵라면 개발/ 안도 모모후쿠의 경영철학 : 인스턴트 라면 제조특허를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다/ 안도 모모후쿠, 사망하는 날까지 매일 인스턴트 라면을 먹다/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 삼양라면/ 전중윤 회장, 인스턴트 라면으로 식량 자급 문제를 해결하겠다/ 삼양라면, 1980년대에까지 가장 많이 애용되던 제품/ 한국식 라면이 만들어진 계기/ 맵고 짠 한국식 라면의 폭발적인 성장/ 라면에 밥을 말아먹는 덕에 쌀 소비도 늘어나다/ ‘우지파동’으로 라면 고급화와 다양화의 길을 걷다/ 가장 늦게 라면을 만든 한국, 세계 최대의 라면 수출국이 되다

인스턴트 라면, 호평을 받다

세계라면협회(IRMA)에 의하면 2009년 기준 전 세계에서 연간 1천억 개의 인스턴트 라면이 소비된다고 한다. 이쯤 되면 인스턴트 라면은 쌀과 빵에 이은 인류의 식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조리가 쉽고 유통기한이 길기 때문에 구호물자로도 많이 이용되고 있다. 세계 각국의 빈민들에게 라면은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주식이다.

<뉴욕 타임즈>는 인스턴트 라면에 대해 이렇게 평한 바 있다.

“인스턴트 라면을 끓일 물만 있으면 신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사람에게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면 평생 먹을 수 있다지만, 인스턴트 라면을 주면 그 무엇도 가르쳐줄 필요 없이 평생 먹을 수 있다.”

한국인의 1인당 라면 소비량, 세계 1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라면을 소비하는 나라는 단연 중국으로 연간 408억 개의 라면을 먹는다고 한다. 그에 이어 인도네시아 139억 개, 일본 53억 개, 베트남 43억 개, 미국 40억 개이고 그를 이어 우리나라가 34억 개로 6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1인당 소비량에서는 수십 년간 한국이 독보적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1인당 연간 소비량 69개(전체 소비량으로 세계 1위인 중국의 1인당 소비량은 32개로 반절에 못 미친다)!

2009년 우리나라, 라면 종주국이 되다

러시아에서 많이 팔리는 ‘팔도 도시락’

2009년 한국 라면의 수출량은 약 1억 4천만 달러로 중국, 일본, 미국을 크게 웃돈다. 상하이에서 한국 라면의 브랜드 인지도는 90% 이상이고, 러시아에서는 ‘팔도 도시락’이라는 제품이 라면 시장 점유율의 60%를 차지해 ‘도시락’이라는 단어가 용기 라면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사용될 정도다. 심지어 라면의 종주국인 일본에서도 한국의 인스턴트 라면이 점점 인기를 얻고 있을 정도로 현재 우리나라는 라면 종주국이다.

한ㆍ중ㆍ일, 라면의 시초를 두고 논쟁하다

그런 점을 내세우며 이렇게 주장하는 이도 있다.

“라면의 시초가 일본이나 중국이란 말이 있지만 지금 팔리고 있는 한국식 인스턴트 라면은 그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러니까 ‘납면’이나 ‘라멘’은 라면과 다르다. 라면의 종주국은 한국이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시초임을 주장하며 자존심 싸움을 하는 한ㆍ중ㆍ일이기에 라면의 종주국이 어디냐는 논쟁 역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과연 라면은 어떤 식으로 시작된 것이며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오게 된 것일까?

1870년 일본에 라멘으로 알려지게 된 배경

본래 라면은 중국 음식으로 한자로는 ‘납면()’이라고 쓴다. 중국에서는 노면(), 유면()이라고도 했다. 납면을 일본식 한자 발음으로 읽으면 ‘라멘’이 된다. 메이지유신 직후인 1870년대 요코하마 등 일본의 개항장에 들어온 중국 사람들이 라멘을 노점에서 만들어 팔면서 일본에 라멘이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에는 라멘이란 명칭이 아니었고 ‘지나()소바’ 혹은 ‘남경()소바’라고 불렸다.

라멘, 일본의 전통 음식이 아니다

라멘은 닭 뼈, 돼지 뼈, 멸치, 가다랑어포 등을 우려내고 여러 소스를 가미한 육수에 중화면이라는 국수를 말아 먹는 것으로 일본에서도 중화요리로 구분되었다.

차후 라멘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라멘집이 생기기 전까지는 중화요리 집에서만 라멘을 다뤘다는 점, 중국 본토 란저우에 그와 유사한 납면(, 라미엔)이라는 국수가 오래전부터 사랑을 받아왔다는 점 등을 봤을 때 라멘은 일본에서 자생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전파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그 당시 중국인들이 만들던 납면은 수타면을 가늘게 뽑아내던 형식으로 굵은 면발의 일본라멘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납면은 일본식 라멘으로 변형된 것이다.

라멘에서 인스턴트 라면으로 변화해 나가는 과정

일본식 라멘은 우리가 자주 먹는 인스턴트 라면과는 전혀 다른 음식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큰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라멘에서 인스턴트 라면으로 변화해 나가는 과정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밀가루  일본에 구호물자로 넘쳐났다

밀가루 일본에 구호물자로 넘쳐났다.

일본은 구호물자로 밀가루가 넘쳐났다. 그 시절 사업가 안도 모모후쿠는 밀가루를 원료로 한 식품을 개발하면 커다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직감했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타이완에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잃고 일본으로 건너온 뒤 전쟁과 패전의 배고픔을 겪었던 그에게는 사업 기회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인류가 배고픔을 극복할까?’라는 커다란 그림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그에게 이것은 사업의 기회일 뿐 아니라 일종의 성전()이기도 했다. 그러나 쌀을 중심으로 한 식습관의 벽을 깨뜨리는 일은 쉽지 않았고 그는 사업 실패와 탈세 혐의기소 등으로 밑바닥까지 추락하게 되었다.

일본 라면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 안도 모모후쿠

좌절 속에서 자살을 결심한 그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술이나 한잔 마시자는 생각에 조그만 선술집을 찾았다. 꿈도 희망도 잃어버린 채 마시는 마지막 술. 대화 상대도 없이 혼자서 자작을 하던 그는 멍하니 식당 주인이 주방에서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도 모모후쿠의 동상,

주방장은 어묵을 튀기고 있었는데, 밀가루 반죽을 입힌 어묵이 기름에 빠지자 밀가루 속 수분이 급속도로 빠져나가는 일상적이고 당연한 모습을 보며 안도는 방금 전까지 자살하고 싶었다는 마음 따위는 까맣게 잊고 회사로 달려갔다.

1958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 : 닛싱 치킨 라멘

조리전의 치킨 라멘 면에 양념이 배어 있는 형태이다.

“면을 기름에 튀기면 건조되어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물을 부으면 다시 원래 상태로 풀어질 테지?” 

그는 연구를 거듭한 끝에 1958년 ‘닛싱() 치킨 라멘’이라는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을 상품화하게 된다. 그러나 이 일화에는 반론도 있다. 이미 중일전쟁 당시 중국군이 건면을 튀겨서 휴대하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타이완 출신의 안도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의심은 충분히 납득이 된다.

1971년 ‘컵 누들’이라는 최초의 컵라면 개발

라멘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납면에서 유래된 중화풍의 라멘과는 면과 맛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이는 식품이었다. 하지만 닛싱 치킨 라멘의 출시 이후 지나 소바, 남경 소바 등으로 불리던 비 인스턴트 라면(즉, 일본식 라멘) 또한 라멘이란 이름으로 통일되었다.

이후 미국의 인스턴트 라면 소비자들이 컵에 면을 넣고 포크로 먹는 것을 보고 1971년 ‘컵 누들’이라는 최초의 컵라면을 개발하는 등 인스턴트 라면의 대중화와 정립에 있어 인스턴트라면 역사의 처음과 끝에 모두 관여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안도 모모후쿠의 경영철학 : 인스턴트 라면 제조특허를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다

세계최초의 컵라면과 치킨 라면

그의 경영 철학은 자서전에 다음과 같이 소개돼 있다. 

‘먹는 것에 관계하는 일은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성직()이다. 먹는 것이 풍족하게 될 때야말로 세상은 평화롭게 된다’는 식족세평(), ‘세상을 위해 먹는 것을 만든다’는 식창위세(). 

실제로 그는 자신이 개발한 인스턴트 라면의 제조특허 등을 독점하지 않고 국내외 업체에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는 등 경영 철학에 부합하는 행보를 걸어왔다.

안도 모모후쿠, 사망하는 날까지 매일 인스턴트 라면을 먹다

91세가 되던 2001년에는 우주에서 먹을 수 있는 우주식 라면 개발을 진두지휘했고, 실제로 2005년 7월 일본인 우주비행사 노구치 소이치가 디스커버리호를 타고 우주 스테이션에서 사상 처음으로 라면을 먹는 중계 장면을 보고 안도가 감개무량해 하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STS-114에서 노구치 소이치 비행사가 처음으로 우주유영을 하는 장면,

오랫동안 상하지 않으면서 싸게 팔리고 쉽게 먹을 수 있는 식품을 만들어 인류가 배고픔에서 벗어나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그의 철학은 현실이 되었다. 

언론은 그를 “미스터 누들”이라 부르며 세계 평화에 기여한 안도에게 노벨평화상을 주어 마땅하다고 칭송했다. 그러나 실제로 노벨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채 그는 2007년 1월 5일 향년 96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사망하는 날까지 매일 인스턴트 라면을 먹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 삼양라면

삼양공업주식회사에서 제조한 국내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삼양라면'

우리나라의 인스턴트 라면이 일본의 인스턴트 라면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안도 모모후쿠가 제조특허를 독점하지 않은 덕에, 그리고 일본의 ‘묘조라면(Myojo Food)’ 사장이 노하우를 전부 이전해 준 덕에 1963년 삼양의 전중윤 회장은 국내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을 출시할 수 있었다.

전중윤 회장, 인스턴트 라면으로 식량 자급 문제를 해결하겠다, 박정희 대통령께보고'

이런시절,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미군의 음식 쓰레기로 꿀꿀이죽을 끓여 먹으며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었다. 밀가루가 구호물자로 들어왔지만 사람들의 입맛에 제대로 맞지 않아 무용지물이 되던 당시는 패전 직후 일본의 상황과 너무나도 유사했다. 일본식 인스턴트 라면을 도입한다면 식량 자급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전중윤 회장의 생각이었다.

삼양라면, 1980년대에까지 가장 많이 애용되던 제품

삼양공업주식회사에서 제조한 국내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삼양라면’. 국수를 증숙시킨 뒤 기름으로 튀긴 꼬불꼬불한 유탕면과 국물을 만드는 수프가 첨부돼 있다.

1966년 3월 21이라는 제조일자, “최고의 맛, 정확한 양, 최선의 서비스”라는 문구가 써 있다. 이 라면은 일본의 명성식품주식회사와 기술 제휴하여 만든 제품으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이 애용되던 제품이다.

 

종류

면의 종류에 따라 유탕면, 호화건면, 숙면 등으로 나뉜다. 유탕면은 가장 기본형태의 라면으로 기름에 튀긴 면을 말하고, 호화건면은 한번 익힌 면을 다시 말린 것을 말한다. 숙면은 반쯤 익혀서 부드러운 질감을 가진 상태에서 포장한 면이다.

이 밖에도 용도에 따라 비빔면, 컵라면, 라면사리 등으로 나눌 수 있어 비빔면은 비벼 먹을 수 있게 얇고 꼬들꼬들한 면으로 만들어지고, 컵라면은 끓이지 않고 뜨거운 물을 부어도 완전히 익을 수 있게 면의 표면에 미세한 구멍이 많이 나 있다. 

라면사리는 음식점에서 부대찌개나 전골 등에 추가해서 먹는 것으로, 분말 수프와 건더기 수프 없이 면만 포장하여 판매한다.  

 

조리법

제조방법은 제면→중숙→납형→튀김→냉각→스프첨부→포장의 공정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이것은 공장에서 라면을 생산할 때의 공정이고, 라면을 끓여 먹을 때에는 보통 해당 라면 봉지에 적혀 있는 조리방법을 따른다. 가장 보편적인 조리방법은 종이컵을 기준으로 물을 세 컵 정도 넣고 물이 끓어오르면 면과 건더기 스프, 분말 스프를 넣고 4분 30초가량 더 끓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호에 따라 계란이나 치즈를 추가하기도 하며, 아예 채소나 고기를 넣고 질이 높은 요리처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완성된 라면은 보통 김치와 곁들여 먹는다.

 

라면 영양정보,

분류1회 제공량칼로리,

면,만두류/ 500g/ 387.6kcal

라면  ⓒ 농촌진흥청

 

출처 ^ 참고문헌,

[삼양라면

[농심라면

[네이버 지식백과] 라면 -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인스턴트 (사물의 민낯, 2012.., 갈릴레오 S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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