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22일 화요일

'20대 대통령 당선인 "윤석열 일대기,,,

'20대 대통령 당선인 "윤석열 일대기,,,

‘아버지, 강릉, 친구들’이다.

엄격한 부친,

제2의 고향, 강릉,

명재 윤증과 家風,

전두환 대통령에게 무기징역형 구형,

사법고시 9수,

'탈원전 비판' 주도한 교수단체..尹 당선에 폐지론 솔솔,

에교협 내부서 폐지론 제기..원전전문가 등 교수 250여명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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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尹錫悅) 대통령 당선인은 1960년 12월 18일 윤기중(尹起重)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명예교수와 최성자 전 이화여대 교수 사이에서 태어났다.

1남 1녀 중 장남이다.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서 태어나 자랐다.

보문동에 있는 대광초등학교를 다녔다.

윤 당선인의 유년기와 학창 시절을 살펴보면 세 가지 키워드가 눈에 띈다.



‘아버지, 강릉, 친구들’이다.

윤석열 당선인의 돌잔치 사진. 사진=대학 동문 제공,
윤석열 당선인은 서울 보문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사진=윤석열 캠프 제공,

 
엄격한 부친,

윤 당선인은 어린 시절 야구, 스케이트 등 스포츠를 즐겼다고 한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는 동대문 운동장에서 스케이트를 배웠다.

어릴 적 성정을 짐작하게 하는 일화가 있다.

선생님이 10바퀴 돌라고 하면 친구들은 숨어 있다가 다 돌았다고 거짓말하기 일쑤였는데, 윤 당선인은 땀을 뻘뻘 흘리며 시키는 대로 다 돌았다고 한다.
 
윤 당선인의 어릴 적 친구들과 친지들은 어린 윤석열을 두고 공통적으로 ‘거짓말 안 하는 아이였다’고 표현했다.

윤 당선인의 오촌 당숙인 이문영씨는 “어릴 적부터 거짓말을 잘 못하고 강직했다,

그런 면을 보면 학자에 가깝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보이스카우트에서 창경원으로 소풍을 갔다고 한다.

소풍을 마칠 때쯤, 같이 갔던 한 친구의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러 창경원으로 왔다.

윤 당선인도 함께 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러자 어린 윤석열은 이렇게 답했다.

“제가 가면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하나. 친구들과 스쿨버스를 기다리겠다.”

이때의 친한 친구가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이철우 교수의 아버지가 바로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다.

만 2세 때 강릉해수욕장에서. 윤 당선인은 외가가 있는 강릉에 방학마다 가서 머물렀다. 사진=윤석열 캠프 제공,
윤 당선인은 서울 대광초등학교를 다녔다. 운동회날 가족이 함께 카메라 앞에 섰다. 사진=윤석열 캠프 제공,
초등학생 시절 동생과 눈사람을 만들었다. 사진=윤석열 캠프 제공,

윤 당선인의 부친 윤기중 교수는 연세대 상대 졸업생들 사이에서는 ‘원칙주의자 교수님’으로 기억된다.
 
윤 교수가 강단에 임용될 당시는 석사 학위만 있어도 교수가 될 수 있었다.
윤 당선인은 초등학교 1, 2학년 때 스케이트를 배웠다. 사진=윤석열 캠프 제공,

박사 학위 없이 교수가 된 교수들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구제(舊制) 박사’라는 제도가 운영됐다.

논문을 작성해 다른 대학 교수들에게 심사받아, 통과하면 학위를 받는 제도였다.

1975년에 사라졌다.

사실상 서로가 서로에게 박사 학위를 주는 셈이었다.

여러 석사 출신 교수들이 이 제도를 이용해 학위를 받았지만 윤기중 교수는 거부했다.

‘그런 식으로 학위를 받는 게 무슨 소용이냐’는 이유였다.
초등학교 4학년 소풍. 뒷줄 입을 크게 벌린 아이가 윤 당선인이다. 사진=윤석열 캠프 제공,
보이스카우트 단원을 하던 시절. 사진=대학 동문 제공,
초등학생 시절. 모친 최성자씨와 동생, 윤 당선인. 사진=윤석열 캠프 제공,

윤 교수는 학문으로도 원칙주의자였다.

자유주의 경제학을 주창했다.

자유주의 경제의 기본 취지와 원칙만 제대로 지켜도 경제력 집중과 불평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정경유착 같은 문제도 시장경제의 결함이 아니라 우월적 지위를 가진 강자들의 반칙인 만큼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여로 여행을 갔다. 사진=윤석열 캠프 제공,

아들에게도 원칙을 강조한 엄격한 아버지였다.

아들이 어느 날 술에 만취해 친구 등에 업혀서 귀가하자, 윤 교수는 고무 호스로 아들의 엉덩이를 때렸다.

혼을 낼 때가 아니면 따뜻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윤 당선인의 고종 사촌 누나인 최승복(73)씨의 말이다.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가던 해 설날 풍경. 왼쪽부터 동생 윤신원씨, 부친 윤기중 교수, 윤석열 당선인. 사진=윤석열 캠프 제공,

최씨는 대학 시험 준비를 위해 고모(윤 당선인의 모친) 집에서 잠시 살았다.
 
“고모부가 얼마나 자상하신지 몰라요.
초등학교 졸업식. 왼쪽에서 두 번째가 윤 당선인, 왼쪽에서 세 번째가 윤 당선인의 모친이다. 이때 이미 키가 어른과 같았다. 사진=윤석열 캠프 제공,

제가 대학 시험 보러 가는 날이 참 추웠어요.

아침에 연탄불 위에 자갈을 올려놓으셨다가 손수건에 싸주셨던 게 지금도 생각납니다.”
 


 

제2의 고향, 강릉,

윤 당선인은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방학만 되면 강릉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경포 바다와 남대천을 누볐다.

강릉은 모친의 고향이다. 외가 친척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외손자 윤석열을 끔찍하게 아낀 외할머니가 사는 곳이었다.
 
윤 당선인의 외할머니 이덕자씨는 일찌감치 남편과 사별했다.

강릉 중앙시장에서 포목상을 하며 1남 1녀를 키웠다.

다행히 외할머니에겐 형제가 많았다.

6녀 1남의 둘째였는데, 여섯 자매 중 다섯 명이 중앙시장 일원에서 포목상, 잡화상 등을 했다.
 
시장 상인 사이에서 외할머니의 별명은 ‘이 판사’였다고 한다.

윤 당선인의 외가와 이웃해 살았던 이경숙(71·강릉 감자바우식당 대표)씨의 말이다.

“할머니가 경우가 바른데다, 불의를 보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돕기도 해서 ‘판사’라는 별명이 붙은 것 같다.”

외할머니는 장사를 하며 번 돈으로 사정이 어려운 이웃들을 도왔다.

장학금을 기탁해 수혜를 입은 학생도 여럿이라고 한다.

2019년 102세로 돌아가셨다.
 
외할머니와 그 형제들은 자녀들 교육에 무척 신경 쓴 듯하다.

윤 당선인의 모친은 강릉여고(9회) 출신으로 이화여대 화학과를 졸업했다.

그 시절에 석사까지 마쳤다.

모교 이화여대에서 교수를 하다 육아를 위해 강단을 떠났다.
 
강릉여고는 강원도에서 손꼽히는 명문고교다.

강릉여고 동문회에서는 대선 직후 강릉시 곳곳에 축하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역시 강릉여고 출신인 사촌 누나 최승복씨는 윤 당선인의 모친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석열이는 부모님이 늘 책을 읽고 공부하는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랐어요.

고모는 늘 손에 책과 걸레를 들고 사셨어요.

자녀들을 위해 일찌감치 자신은 포기하셨지요.

고모부가 교수라 월급이 많지 않아, 늘 검소하게 절약하며 사셨어요.

석열이가 새 옷을 입고 나가서 벗어주고 헌 옷을 입고 들어온 게 생각납니다.

친구들을 집에 많이 데려오기도 했어요.
출장 가는 윤기중 교수를 배웅하기 위해 온 식구가 김포공항에 갔다. 맨 오른쪽 여성이 당선인의 외할머니 이덕자씨다. 사진=윤석열 캠프 제공,

그럴 때마다 식사 챙겨주느라 고모가 좀 힘이 들었어요.”
 
당선인의 돌아가신 외삼촌 최명순씨는 한국전력에서 근무했고, 클래식과 화초 애호가였다.

외할머니의 남동생은 강릉, 명주, 양양에서 11, 12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봉모(李奉模) 전 의원이다.
외할머니 이덕자씨는 사별 후 강릉 중앙시장에서 포목상을 하며 1남 1녀를 키웠다.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 모범어머니상을 받기도 했다.

이 전 의원은 윤 당선인에게 때때로 조언을 해줬다고 한다.

윤 당선인이 검사 생활을 하다 잠시 변호사를 할 때도 이 전 의원은 ‘검찰로 돌아가라’고 조언했다.
 


 

명재 윤증과 家風,

윤 당선인은 파평윤씨 가문으로 보면 35세손이다.

조선 후기 유학자 명재 윤증이 파평윤씨 집안의 25세다.

명재 윤증은 백의정승(白衣政丞)이라 불렸다.

관복을 입지 않은 정승이란 뜻이다.

임금이 여러 번 벼슬을 제수했지만,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

남인을 차별하는 정권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집권 세력인 노론(老論)이 여당이었다면 경상도 남인(南人)은 야당이었다.

명재가 속한 소론(小論)은 노론과 남인의 중간에 있는 중도 통합 정당쯤 되었다.

명재는 일생 고향 충남 논산에서 후학을 기르며 소론의 영수 역할을 했다.

집권 세력의 독선에 자신의 운명을 걸고 저항한 명재의 행적과 문재인 정권의 부조리함에 대항하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손의 운명이 묘하게 겹쳐 보인다.
 
명재가 생전에 기거했던 ‘명재 고택’은 논산시 노성면에 있다.

윤기중 교수의 고향이 바로 노성면이다.

명재 고택은 선대의 적선으로 후대에 전화(戰火)를 피한 일화로 유명하다.

명재는 ‘윤씨 집안은 양잠(養蠶)을 하지 말라’고 했다.

뽕나무를 길러 누에고치를 치면 꽤 소득이 짭짤했다.

윤씨 집안은 먹고살 만하니, 양잠은 서민들이 하도록 두라는 뜻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대기업은 중소기업 분야에 진출하지 말라고 권고한 셈이다.
 
명재의 뜻은 후대로 이어졌다.
고등학교 입학시험 수험표. 윤 당선인은 충암중과 충암고를 졸업했다. 사진=윤석열 캠프 제공,

조선 말기 윤씨 집안은 추수를 끝내면 나락을 골목에 며칠 쌓아뒀다고 한다.

동네의 어려운 이들이 밤에 와서 나락을 가져가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충암고 교정에서 친구들과. 맨 오른쪽이 윤 당선인이다. 사진=대학 동문 제공,

노성면의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한 아이가 훗날 공군 조종사가 됐다.

그는 6·25전쟁이 터지자 조종사로 참전해 미군 전투기를 몰았다.
충암고등학교 졸업사진. 사진=윤석열 캠프 제공,

명재 고택이 있는 논산시 노성면이 폭격 지점이 되자 적극적으로 반대해 명재 고택을 구했다.

그가 바로 박희동 장군이다.
  

 
전두환 대통령에게 무기징역형 구형,

윤 당선인은 중랑중을 다니다 2학년 때 충암중학교로 전학했다.

고등학교는 충암고를 나왔다.

1979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신입생 때 이미 덩치가 크고 나이보다 성숙해 보였다.

1학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캠퍼스 안에서 사복 경찰이 한 여학생을 불러 세워 불심검문을 하고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 법대 동기들과 봄 엠티(MT)를 가서. 맨 왼쪽이 윤 당선인이다. 앞줄 맨 오른쪽은 석동현 변호사다. 사진=대학 동문 제공,

다른 학생들은 보기만 하고 지나가는데 윤 당선인은 경찰에게 호통을 쳤다고 한다.

‘당신이 뭔데 이 학생에게 함부로 하느냐.

대학에서 무슨 짓이냐.’

그런 다음 여학생을 보내고 사복 경찰에게 학교에서 나가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곤 갑자기 노래를 불렀다.
1985년 이대 앞 식당에서 열린 선배의 약혼식에서 노래를 부르는 윤 당선인.

‘앞으로, 앞으로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

난데없는 동요에 근처 학생들이 하나둘 동참했다.

학생들은 동요를 합창하며 정문까지 시위했다고 한다.
대학 시절, 신용락 변호사와 함께. 등에 업힌 사람이 윤 당선인이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함께 다녔다. 사진=윤석열 캠프 제공,

‘시위 노래’가 아니라 동요를 부르니 경찰들도 막을 수 없었다.

이철우 교수가 기억하는 1학년 시절의 한 장면이다.
 
1979년 말 박정희 정권이 막을 내리고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이 권력을 잡았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5·18사태가 일어났다.

서울법대 동아리 형사법학회는 학내 축제 기간에 모의형사재판을 열었다.
1979년 3월. 대학교 졸업식날. 뒷줄 정가운데가 윤 당선인이다. 사진=글마당 제공,

모의형사재판에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 사건을 다뤘는데, 검사 역할을 맡은 윤석열은 전두환 대통령에게 무기징역형을 구형했다.

이후 경찰 수배를 피해 외할머니가 있는 강릉으로 도피했다.

세 달간 그곳에서 지냈다.
 
윤 당선인은 술자리에서 노래를 잘했다고 한다.

빌리지피플의 ‘와이엠씨에이(YMCA)’, 돈 맥클린의 ‘아메리칸 파이(American Pie)’ 같은 노래를 즐겨 불렀다.

빌리지피플을 부르면서는 춤도 곁들였다고 한다.
외할머니의 팔순잔치에 참석한 윤 당선인(뒷줄 맨 왼쪽). 사진=친지 제공,

2012년 윤 당선인은 김건희씨와 결혼을 했다.

결혼식 후 열린 동기들 모임에 부부가 합류했다.

윤 당선인은 이때 캐리 앤드 론의 ‘아이오유(IOU)’를 불렀다고 한다.

부인 김건희씨에게 바치는 노래였다.


사법고시 9수,

고시 준비 기간이 길었으니 자연히 선후배 통틀어 아는 사람이 많았다.

서울대 법대에서 79학번을 기준으로 위아래 각각 10학번 사이에서 ‘윤석열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윤 당선인은 사시 2차에서 계속 떨어졌다.

같이 사법고시를 공부했던 이들에 따르면 윤 당선인의 공부 방법이 엉뚱했다고 한다.

고시 준비할 때는 보통 과목별로 ‘서브노트’를 만든다.

사시뿐 아니라 외시, 행시도 마찬가지다.

자신만의 요점정리 노트인 서브노트를 만들어 달달 외운다.

윤 당선인은 이런 식이 아니라 관련 분야 책을 찾아 가지에 가지를 치며 읽는 식으로 공부를 했다고 한다.

고시 준비가 아니라 학문 탐구를 한 셈이다.
대학 4학년 때의 윤 당선인. 윤석열 캠프 제공,


사법고시 공부를 하면서도 주변 대소사를 챙겼다.

오촌 당숙 이문영씨는 “시험 준비 중이니 집안에 상(喪)이 나도 안 올 법도 한데 꼭 와서 팔을 걷어붙였다”고 회고했다.

친구들의 자녀 생일까지 챙겼다.

윤 당선인은 아이들을 무척 예뻐했다고 한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윤 당선인은 친구 아이들의 생일도 챙겼다. 다들 부부 동반인데 윤 당선인만 혼자 참석한 모습. 사진=대학 동문 제공,

이름을 기억하며 생일 때마다 선물을 챙겼다.

한 친구의 아이 돌 때는 좋은 브랜드의 청재킷과 청바지를 사들고 왔단다.

그런데 5세용이었다.

이유를 이렇게 말했단다.

“매년 선물하긴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아. 이 아이가 여섯 살이 될 때는 나도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1991년 사시 2차 시험을 앞두고 ‘함진아비’를 한 일화도 유명하다.

시험을 사흘 앞두고 친구를 위해 대구까지 내려가 함잡이를 했다.

윤 당선인과 함께 사시를 10여 년 준비하다 결국 그만두고 결혼하는 친구였다.

대구에 내려올 때 형사소송법 책 한 권을 들고 버스에 탔다.
1991년 윤 당선인은 9수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에 들어가기 전에 찍은 사진. 사진=윤석열 캠프 제공,

평소에 잘 안 보던 책의 뒷부분을 훑어봤는데, 바로 이 부분이 시험문제로 나왔다고 한다.

“그날 친구 함잡이 하러 대구에 가지 않고 신림동 고시원에 앉아 공부했다면 시험에 합격했을지 어땠을지 모르겠다.” 윤 당선인의 훗날 회고다.

그 해의 시험문제는 형사소송법상 검찰총장만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인 ‘비상상고’에 관한 문제였다.


 
35세 초임검사로 시작, 대통령까지,

1994년 윤 당선인은 대구지검으로 발령받았다.

이때 부장검사가 정상명 전 검찰총장이다.

정 전 총장은 후에 윤 당선인의 결혼식 주례를 섰다.

윤 당선인은 2001년 부산지검으로 발령받았다.

근무하던 중 검사를 그만뒀다.

변호사 생활을 하다,
2019년 7월 8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답변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2003년 검사로 돌아왔다.

노무현 정권 출범 첫해였다.

그는 광주지검에서 불법 선거자금 의혹을 수사했다.

이상수 전 민주당 사무총장,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강금원 전 창신섬유 회장 등 현직 대통령의 최측근을 구속 기소했다.
 
2013년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하던 중 특수수사팀장에서 경질됐다.

2014년 대구고검으로 좌천됐다.
2021년 3월 4일 검찰총장직을 사퇴한 윤석열 총장이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사진=조선DB

이듬해 대전고검으로 자리를 옮겨 근무하던 중, 2016년 12월 박근혜-최순실 특별검사팀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세간의 관심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2017년 5월 19일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된다.

2019년 7월 25일 검찰총장에 취임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가 시작된 후 그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과 청와대의 외압에 시달리게 된다.
 
2020년 11월 24일 추미애 전 장관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윤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를 발표했다.
대선출마-2021년 6월 29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사진=조선DB,

법원 판결로 징계의 효력이 정지되자 추 전 장관과 문재인 대통령은 다시 징계를 내렸다.

이번에도 법원은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2021년 3월 4일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에서 사퇴했다.

2021년 7월 30일 국민의힘에 입당한다.
윤 당선인 부부. 서울대 회보에 실린 사진이다.

2021년 11월 5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다.

2022년 3월 9일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선-지난 3월 10일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국회 국민의힘 개표상황실을 찾아 당선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윤 당선인의 양친. 윤기중 연세대 교수와 최성자 전 이화여대 교수. 지난해 자택에서 촬영했다. 사진=친지 제공,
이번 대통령 선거 투표를 하러 다 함께 외출한 윤 당선인의 가족. 왼쪽부터 윤기중 교수, 윤신원씨, 최성자 전 교수. 사진=친지 제공,

'탈원전 비판' 주도한 교수단체..尹 당선에 폐지론 솔솔,

에교협 내부서 폐지론 제기..원전전문가 등 교수 250여명 활동,
尹 '원전책사' 주한규 교수도 회원..5년간 탈원전 고강도 비판,
내부서 찬반 엇갈려.."차기 정부서도 에너지정책 목소리 내야"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 비판을 주도한 교수단체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 내부에서 폐지론이 제기됐다.

올 5월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탈원전 정책이 백지화 수순을 밟게 된 만큼 제 역할을 다했다는 판단에서다.

협회 일각에선 차기 정부에서도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19일 학계와 업계에 따르면 에교협이 최근 개최한 회의에서 일부 교수는 단체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첫 상업원전 고리1호기. 2017년 영구정지됐다. 

에교협의 주 목적이었던 ‘탈원전 정책 폐기’를 달성해 단체가 존속할 명분이 사라졌다는 게 폐지론을 주장한 교수들의 시각이다.

에교협 관계자는 “최근 단체 내부에서 해체 의견이 나온 건 사실”이라며 “다만 회원들 사이에서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교협은 지난 5년간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해온 교수단체다.

탈원전 기조가 속도를 내던 2018년 출범해 최근까지 원전·에너지 전공 교수 등 학계 인사 25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정부 에너지 정책을 꾸준히 비판하며 국내 원전 여론 형성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출마 선언 직후인 지난해 7월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를 찾아 조언을 구했다. 주 교수는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실제 에교협 회원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된 사례도 있다.

에교협에서 원전 관련 논의를 이끌었던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가 대표적이다.

주 교수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원전 전문가로 윤 당선인 대선캠프에서 원자력·에너지 정책을 설계했다.

윤 당선인은 대선 출마 선언 직후인 지난해 7월 주 교수를 찾아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차기 정부에서 탈원전 비판 여론을 주도한 에교협 역할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이유다.

이 같은 전망은 ‘에교협의 정치화’를 우려한 일부 회원이 폐지론을 제기한 배경이기도 하다.

에교협이 특정 정부 정책에 적극 기여하면 정치적 색채를 띠게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에교협 내부에서는 폐지론 반대 목소리가 더 높은 상황이다.

에교협의 목적은 탈원전 폐기가 아닌 ‘에너지 정책 합리화’에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에교협 주축인 위원회 구성원들도 해체 보류에 잠정적으로 결론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에교협 공동대표인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에교협 결성 당시 주 목적은 ‘합리적 에너지 정책 수립’이었다”면서 “탈원전을 집중적으로 비판한 건 출범 당시 워낙 시급한 과제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인수위원회의 에너지 정책 자문 등 정치 참여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에교협은 주 교수 등 일부 회원의 활동은 단체와 무관한 개인적 영역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이 교수는 “단체 차원의 정치적 참여는 검토한 바 없다”면서 “에교협 이름으로 인수위 등에 협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차기 정부에서도 에너지 정책에 문제가 확인되면 비판적 목소리를 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재오 "권성동, 김경수 사면 못하게 초쳐…느닷없이 용산? 말 되나"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이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겠다는 것은 '풍수지리설' 영향 때문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며 날을 세웠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 News1, 겹쳐,


윤 당선인 최측근 권성동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이 틀림없이 MB(이명박)와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동시 사면할 것"이라고 장담한 건 김 전 지사 사면을 막으려 초를 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오 "얼마전까지 광화문 노래해놓고 용산?…누가 봐도 풍수지리설 믿는 것"

이 고문은 17일 밤 CBS라디오 '한판승부'에서 청와대 용산이전을 반대했다.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이 고문은 "첫 번째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국방부로 가면 제왕적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며 두 번째는 역사적으로 볼 때 용산은 1882년에 임오군란 때 일본군의 공관 수비대 주둔부터 조선군 주차사령부, 일본군 전시사령부, 일본군 사령부 등 뼈아픈 곳이기 때문이다"라는 점을 들었다.

따라서 "용산 일대는 정말로 대통령이 가면 안 될 자리다"라며 "개인 살림집 옮기는 게 아니라 나라의 대통령의 집무실을 옮기는데 무슨 풍수지리설 따라가듯이 용산으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고문은 "누가 봐도 용산으로 간다는 것은 풍수지리설를 믿는 것"이라며 "이달 초까지 광화문 내내 노래해 놓고 느닷없이 무슨 용산? 말이 되는 이야기냐"고 불편해 했다.


권성동 "MB·김경수 동시 사면 장담"…김경수 사면 못하게 초친 것,  

진행자가 "권성동 의원이 김경수, 이명박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 말은 당선인이 직접 하셔야 되는 말 아닌가"라고 묻자 이 고문은 "윤석열하고 친하다,

실세다 이런 것 아닌가"라고, 권 의원이 과시하려 한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또 "권성동이 '틀림없이 (MB를) 김경수하고 같이 묶어서 (사면) 하려고 할 것이다'고 이야기 했는데 그것은 김경수 사면을 못 하게, 초를 치는 것"이라며 "저렇게 이야기해 놨는데 김경수를 사면할 수 있겠는가, 못 한다"라며 권 의원이 노림수를 갖고 던진 말이라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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