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6일 목요일

관음사목조관음보살상, 觀音寺木造觀音菩薩像.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소재 관음사 법보전 내부에 보관된 조선 중기의 목조불상.

유형유적,   유물.
시대조선/조선후기,  고려/고려전기
성격불교조각/ 불상
건립시기·연도17세기 /  통형 보관을 착용하였다. 몸에는 화려한
소장처관음사
규모(면적)

불상 1구, 복장유물일괄
소재지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양지길 92-38(소천리 1224)
소유자관음사
관리자무주군
문화재 지정번호전라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16호
문화재 지정일







수량2구
재질대리석
2009년 10월 09일


관음사 관음보살상. 이불상은 원래 관음사 뒤의 관음굴에 모셔졌던 대리석 보살좌상으로 2구가 있었다고 한다. 
머리에는 앞 부분에 화불(化佛)이 있는 사각형의 각이 진 화려한 관을 썼다. 
얼굴은 이마가 편평하고 넓고 밑으로 내려오면서 타원형으로 둥근데, 눈·코·입이 가운데로 모아져 있다. 
고려시대의 불상 가운데 중국 송대의 영향이 가장 짙게 반영된 상이다.


개성시 산성리 관음사에 있었던 고려시대의 관음보살상.
관음사 관음보살상은 관음사 뒤편의 관음굴에 있었던 불상이다. 

관음보살상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원영락장식과 장신구로 치장되어 있다. 

자세는 왼발을 올려 반가부좌를 틀고 오른발은 아래로 내린 반가좌 형식이다. 

2006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실시한 ‘북녘의 문화유산’ 전시회에 출품되기도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輿)』 ‘불우()’조를 보면 개성의 박연폭포 상류에 두 석상이 안치된 관음굴이 있는데, 광종대 창건되어 있다고 기록하였다. 
이 관음보살상의 조성 시기도 광종대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관음사 관음보살상이 광종 때에 만들어 졌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또하나의 근거는 보살상 이마에 표현된 ‘팔()’자 형의 머리카락 모습이다. 

보살상의 이마 위에 팔자형의 머리카락이 표현된 사례는 952년(광종 3) 중국의 후주에서 조성되었으며 현재 미국의 넬슨·애킨스 미술관에 소장된 ‘쌍보살도’에서도 확인된다. 

이 불화의 보살 머리카락과 관음사 관음보살상의 이마에 표현된 ‘팔’자 형 머리카락은 동일한 모습이다. 

이러한 머리카락의 표현 양식은 중국에서 유행한 양식을 고려에서 광종대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관음사 관음보살상의 구체적인 조성 시기는 광종대 후반인 970년(광종 21) 이후로 추정된다. 

이 불상과 유사한 형태의 불상이 970년에 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만 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요()의 시기에 제작된 금동보살상의 대좌 뒷면에는 ‘보녕이년()’이라는 명문이 있는데, 이 시기는 970년에 해당한다. 

관음사 관음보살상과 이 금동보살상은 형태적으로 거의 유사한데, 원통형 보관, 반가부좌한 자세, 다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화려한 영락장식 등 직접 모방을 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흡사하다. 

970년경에 제작된 대만 역사박물관소장 금동보살상과 비슷한 보살상이 고려에 전래되어 이를 모방하여 관음사 관음보살상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과 보살상의 머리카락 모양, 대만 역사박물관 소장 금동보살상의 존재 등을 고려하면 관음사 관음보살상은 970년 이후 광종 집권 후반기에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명승지인 박연폭포 인근의 관음굴에 대리석으로 제작한 화려한 불상이 있다는 점에서, 관음사 관음보살상은 고려시대 당시에도 크게 유명세를 탔을 것으로 보인다. 

광종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장소에 자비의 상징인 관음보살상을 만든 배경은 『고려사()』의 ‘광종 19년’조의 기록을 통해서 유추해 볼 수 있다. 

광종은 즉위 19년까지도 가차 없는 숙청을 단행해 수 많은 사람을 처형하였다. 

집권 후반기 광종의 모습은 무자비한 폭군의 이미지로 알려졌으며 광종의 통치에 반발하는 세력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불교의 인과응보설을 믿었던 광종은 자신의 과업을 소멸하기 위해 많은 불사를 시행하였고 참회도량을 자주 개최하였다. 

관음사 관음보살상의 조성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불사를 통해 수복멸죄()하고 정치적 반발을 유화책으로 무마하고자 했던 광종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1650년(효종 1)에 전라도 일대에서 대표적으로 활동하던 조각승 무염() 등에 의해 조성된 불상으로 조성연대가 확실하고 17세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체높이 61㎝, 어깨폭 24㎝, 무릎 38㎝ 내외 크기의 목조불상이다.
2009년 10월 9일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16호로 지정되었고, 관음사에서 보존, 관리해오고 있다.

관음사 목조관음보살상은 무주 관음사 법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보살좌상으로, 중형의 보살상이다. 
전체적으로 신체에 비하여 두부()가 다소 큰 편으로, 머리를 약간 숙이고 결가부좌()하였다. 
머리에는 화문()과 운문() 등으로 장식된 화려한 보관을 썼으며 정상부에는 높고 길쭉한 보계()를 표현하였다. 

이마 부분에는 빗으로 빗은 듯 머리카락이 가지런히 표현되었는데, 보발은 귀의 중간 부분을 감싸고 흘러내리다가 어깨 위에서 세 가닥으로 갈라져서 팔뚝 위로 흘러내렸다. 
얼굴은 사각형에 가깝지만 턱 부분에 살이 올라 부드러워 보인다. 

미간에는 백호()가 선명하며, 활형[]의 가는 눈썹과 가늘면서 약간 위로 치켜뜬 반개()한 눈, 오똑한 콧날, 꾹 다문 얇은 입술 등은 조선 중후기 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신체는 안정감이 있고 균형이 잘 잡혀있는 편으로, 어깨 폭이 넓지 않아 아담하면서도 단정해 보이며 결가부좌한 무릎 폭도 적당하다. 
양 어깨에는 조선 후기 보살상에게 흔히 볼 수 있듯이 천의가 아닌 통견의 법의를 걸치고 있다. 

법의는 목 뒷부분이 약간 접혀있으며 왼쪽의 법의는 왼쪽 어깨를 완전히 가리고 어깨에서부터 무릎 부분까지 내려오면서 무릎 위에 놓인 왼손을 손목 부분까지 완전히 덮고 있다. 

오른쪽에는 안쪽에 통견으로 법의를 걸친 뒤 다시 법의 한자락이 어깨를 덮고 있는데, 안쪽의 법의 자락은 오른쪽 팔꿈치 아래로 하여 배 부근으로 내려가 왼쪽에서 내려온 법의 안쪽으로 여며진 모습이다. 

이와 같은 착의법은 넓게 트인 가슴, 수평의 군의()와 함께 조선 후기 불상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올려 첫째와 셋째 손가락을 마주 잡고 있는데, 손바닥 쪽으로 길쭉한 모습의 정병이 끈으로 매달려 있다. 


왼손은 왼쪽 무릎 위에 대어 첫째와 셋째 손가락을 마주 잡고 있는데, 두 손은 모두 별도로 제작하여 끼워놓았다. 
자세는 결가부좌를 하고 있는데, 오른쪽 발끝 부분을 왼쪽 법의 자락으로 살짝 덮었다.

보살상의 밑부분에는 복장공()이 마련되어 불상 조성 발원문과 경전류 등이 들어 있었다. 

불상 발원기는 앞부분에 시주질을 적고 뒷부분에 화원 등 연화질()과 조성 연대를 기록하였으며, 제일 마지막 부분에 중수연대를 적었다. 

발원기에 의하면 이 보살상은 1650년(효종 1)에 화주 덕인()이 조성하였고, 1676년(숙종 2)에 중수하였다고 한다. 

화원은 무염(), 성수(), 경성()이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화원’이라는 명칭 아래 크게 적혀있는 성수, 경성과는 달리 무염은 작고 가는 글씨로 성수 이름 윗부분에 적어놓았다. 

이로써 본다면, 무염은 불상을 제작할 때에 처음부터 관여하지 않았다가 1676년(숙종 2) 중수할 때에 참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발원기에는 존상의 명칭과 봉안사찰 등이 적혀있다.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없지만, 보살상의 규모가 크지 않은 점을 미루어 볼 때, 독존상으로 조성되었다기보다는 삼존불상의 협시보살 중 하나라고 추측된다. 

이 상의 존명에 대해서는 왼손에 정병을 들고 있어 관음보살상으로 보기도 하지만 오른손은 엄지와 셋째 손가락을 맞대고 있고 정병은 따로 끈으로 매달아 놓았기 때문에 정병이 조성 당시의 것이었는가는 알 수 없다. 

‘관음보살상’이라고 한다면 보통 표현되어야 하는 보관의 아미타화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존상의 명칭도 확언할 수 없다. 

이 보살상이 무염과 경성이 함께 제작한 전라북도 완주 정수사 삼존불상 중 관세음보살과 착의법, 신체표현, 목걸이 장식 등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관음보살일 가능성이 크다.



이 보살상은 1650년(효종 1)에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대표적인 조각승 무염, 성수, 경성에 의해 조성된 불상으로 신체에 비해 다소 얼굴이 크지만 안정감 있는 자세, 오똑한 코, 단정한 결가부좌의 자세를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조성연대가 확실한 이 보살상은 17세기 불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한 조각승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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