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씨남정기, 謝氏南征記.
역사로 통하는 고전문학 임금의 잘못을 꾸짖다,
사씨 남정기
"유배지에서 임금에게 고하는 바른 소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숙종대(1689~1692). 조선.
《남정기(南征記)》라고도 한다.
《남정기(南征記)》라고도 한다.
확실한 창작 연대는 미상이나, 숙종이 계비 인현왕후(仁顯王后)를 폐위시키고 희빈장씨를 왕비로 맞아들이는 데 반대하다가 마침내 남해도(南海島)로 유배, 배소에서도 흐려진 임금의 마음을 참회시키고자 이 작품을 썼다고 하므로, 1689년(숙종 15)에서 작자가 세상을 뜬 1692년(숙종 18) 사이에 썼을 것으로 본다.
조선 숙종 때인 17세기 후반 김만중(金萬重)에 의해 창작된 고전소설로 처첩갈등을 다룬 가정소설.
원작(原作)의 표기 문자에 대한 논란이 있으나, 국문으로 창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원작(原作)의 표기 문자에 대한 논란이 있으나, 국문으로 창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한림 유연수는 아내 사씨가 늦도록 자식을 낳지 못하자,
교씨를 첩으로 들인다. 교씨가 아들 장주를 낳고, 이어 사씨도 아들을 낳는다.
장래에 불안을 느낀 교씨는 동청․냉진 등과 짜고 사씨에게 부정(不貞)의 누명을 씌운다.
동청과 설매가 장주를 죽여 사씨의 짓이라 모함하니, 한림이 사씨를 내치고 교씨를 정실로 삼는다.
쫒겨난 사씨는 숱한 시련을 겪은 뒤 수월암에 거처한다.
한림이 승상 엄숭과 갈등을 빚고, 집에 머물면서 사씨의 애매함을 깨닫기 시작한다.
이를 눈치챈 동청의 무고(誣告)로 한림은 유배되고, 교씨는 동청을 따라 유씨 집안을 떠난다.
이를 눈치챈 동청의 무고(誣告)로 한림은 유배되고, 교씨는 동청을 따라 유씨 집안을 떠난다.
특사로 풀려난 한림이 설매를 만나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고, 이어 사씨와 상봉한다.
왕이 엄숭 일파를 내치고 한림 일파를 등용하니, 동청은 처형되고 교씨는 냉진을 따라간다.
한림이 사씨를 정실로 복위시키고 교씨를 잡아 처형한 뒤, 사씨와 더불어 화목하게 산다.
이 작품은 국문․한문․국한문혼용으로 된 필사본․목판본․구활자본 등 많은 이본이 전하고 있는데, 내용상 큰 차이는 없다.
이 작품은 국문․한문․국한문혼용으로 된 필사본․목판본․구활자본 등 많은 이본이 전하고 있는데, 내용상 큰 차이는 없다.
사대부가의 처첩갈등을 중심축으로 하여 당쟁하의 정치적 갈등도 함께 문제삼고 있는데, 작품 내적 사건이 당대의 장희빈(張禧嬪) 사건과 유사하여, 이 사건과 작품의 창작 동기나 의미가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다.
이 작품은 치밀한 구성과 적절한 심리묘사, 전아한 문체로 당대의 현실 문제들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유가적 이념성과 작품 세계의 현실성, 당대인의 보편적 기대지평에 일치되는 결말 등으로 인하여 사대부들로부터도 한결같이 긍정적 평가를 받으면서 다양한 남녀 독자층에게 폭넓게 읽혀졌다.
처첩갈등형 가정소설이라는 하나의 유형을 형성시키는 중요한 토대가 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작자는 한국문학이 마땅히 한글로 쓰여져야 한다고 주장,
한문소설을 배격하고 이 작품을 창작하였는데 이는 김시습(金時習)의 《금오신화(金鰲新話)》 이후 잠잠하던 소설문학에 허균(許筠)의 뒤를 이어 획기적인 전기(轉機)를 가져오게 하였다.
소설을 천시하던 당시에 참된 소설의 가치를 인식하고 이 소설을 씀으로써 이후 고대소설의 황금시대를 가져왔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국 명(明)나라 때 유현(劉炫)의 아들 연수(延壽)는 15세에 장원급제하여 한림학사가 된다.
유한림은 그후 숙덕(淑德)과 재학(才學)을 겸비한 사씨(謝氏)와 혼인하였으나, 9년이 지나도록 소생이 없자 교씨(喬氏)를 후실로 맞아들인다.
간악하고 시기심이 많은 교씨는 간계로써 사씨부인을 모함하여 그녀를 폐출시키고 자기가 정실이 된다.
이후 교씨는 간부(姦夫)와 밀통하며 남편인 유한림을 조정에 모함하여 유배 보내게 한 다음 재산을 가지고 간부와 도망치다가 도둑을 만나 재물을 모두 빼앗기고 궁지에 빠진다.
유한림은 혐의가 풀려 배소에서 풀려나와 방황하는 사씨를 찾아 다시 맞아들이고 교씨와 간부를 잡아 처형한다.
작중인물 중의 사씨부인은 인현왕후를, 유한림은 숙종을, 요첩(妖妾) 교씨는 희빈장씨를 각각 대비시킨 것으로, 궁녀가 이 작품을 숙종에게 읽도록 하여 회오시키고 인현왕후 민씨(閔氏)를 복위하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필사본 외에 후손인 김춘택(金春澤)이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 있으며, 1914년 영풍서관(永豊書館)판과 17년 박문서관(博文書館)판의 활판본이 있고, 1955년 김민수(金敏洙)가 교주(校註)를 달아 《현대문학》에 소개하였다.
《사씨남정기》는 조선 숙종 때의 문신이자 소설가인 학자 서포 김만중(西浦) 김만중(金萬中, : 1637(인조15)∼1692(숙종 18))의 작품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정 소설이다.
임금 숙종의 잘못을 양반 가문의 처첩 간 갈등에 빗대어 풍자한 작품으로, 영웅 소설이 유행했던 시대에 가정의 문제를 다룬 가정 소설의 영역을 개척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숙종이 인현왕후를 위고당으로 태출하고 그 대신 왕자를 낳게된 장희빈을 왕비로 책봉한 것을 우회적으로 그린 풍자적 작품으로 한국 최초의 소설로 일컬어지는 「구운몽」과 함께 서포의 중요한 작품이다.
명나라 가정연간 금릉 순천부에 사는 유현이라는 명신은 늦게야 아들 연수(延壽)를 얻는다.
명나라 가정연간 금릉 순천부에 사는 유현이라는 명신은 늦게야 아들 연수(延壽)를 얻는다.
유공의 부인 최씨는 연수를 낳고 세상을 떠난다.
연수는 15세에 한림학사를 제수받으나 연소하므로 10년을 더 수학하고 나서 출사하겠다고 한다.
천자는 특별히 본직을 띠고 6년 동안의 여가를 준다.
유 한림은 덕성과 재학을 겸비한 사씨와 결혼한다.
사씨는 유 한림과의 금슬은 좋으나 9년이 지나도 출산을 못한다.
사씨는 유 한림과의 금슬은 좋으나 9년이 지나도 출산을 못한다.
이에 사씨는 남편에게 새로이 여자를 얻기를 권한다.
유 한림은 거절하나 여러 번 권하니 마지못해 교씨를 맞아들인다.
교씨는 천성이 간악하고 질투와 시기심이 강한 여자로, 겉으로는 사씨를 존경하는 척하나 속으로는 증오한다.
그러다가 잉태하여 아들을 출산하고는 자기가 정실이 되려고 마음먹고, 문객 동청과 모의하여 남편 유 한림에게 온갖 참소를 다한다.
유 한림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나, 교씨가 자신이 낳은 아들을 죽이고 죄를 사씨에게 뒤집어씌우니, 사씨를 폐출시키고 교씨를 정실로 맞아들인다.
교씨의 간악함은 이에 그치지 않고 문객 동청과 간통하면서 유 한림의 전재산을 탈취해 도망가서 살기로 약속하고, 유 한림을 천자에게 참소하여 유배시키는 데 성공한다.
유 한림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나, 교씨가 자신이 낳은 아들을 죽이고 죄를 사씨에게 뒤집어씌우니, 사씨를 폐출시키고 교씨를 정실로 맞아들인다.
교씨의 간악함은 이에 그치지 않고 문객 동청과 간통하면서 유 한림의 전재산을 탈취해 도망가서 살기로 약속하고, 유 한림을 천자에게 참소하여 유배시키는 데 성공한다.
유 한림을 고발한 공로로 지방관이 된 동청은 교씨와 함께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는 등 갖은 악행을 저지른다.
이때 조정에서는 유 한림에 대한 혐의를 풀어 소환하고, 충신을 참소한 동청을 처형한다.
이때 조정에서는 유 한림에 대한 혐의를 풀어 소환하고, 충신을 참소한 동청을 처형한다.
정배를 당한 유 한림은 비로소 교씨와 동청의 간계에 속은 줄 알고 전죄를 뉘우친다.
정배가 풀려 고향으로 돌아온 유 한림은 사방으로 탐문하여 사씨의 행방을 찾는다.
남편 유 한림이 돌아왔다는 소문을 들은 사씨는 산사에서 나와 남편을 찾아 나선다. 사씨와 유 한림은 도중에 해후한다.
유 한림은 사씨에게 전죄를 사과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간악한 교씨를 처형하고 사씨를 다시 정실로 맞아들인다.
명나라 가정연간에 금릉순천부에 유현이란 명인이 있으니, 현명 정직하고 문장과 풍채가 뛰어나 소년 등과하여 벼슬이 이부시랑 참지정사에 이르러 명망이 조야에 진동했다.
일찍이 시랑 최모의 딸을 아내로 삼으매 최씨 부덕이 있어 금슬은 좋으나 슬하에 자녀 없음을 근심하더니, 늦게야 한 아들을 낳았으나 오래지 않아 부인이 세상을 떠나니,
명나라 가정연간에 금릉순천부에 유현이란 명인이 있으니, 현명 정직하고 문장과 풍채가 뛰어나 소년 등과하여 벼슬이 이부시랑 참지정사에 이르러 명망이 조야에 진동했다.
일찍이 시랑 최모의 딸을 아내로 삼으매 최씨 부덕이 있어 금슬은 좋으나 슬하에 자녀 없음을 근심하더니, 늦게야 한 아들을 낳았으나 오래지 않아 부인이 세상을 떠나니,
공은 원래 공명에 뜻이 없는데다 소인배들이 조정에서 힘을 쓰므로 병을 핑계하고 벼슬을 사양하고 집에 돌아와 세월을 보낼 새,
성품이 유순하고 얌전한 누이가 하나 있으나 일찍이 선비 두강의 아내 되었다가 과부가 되어 공이 한 집에 있게 하고 우애 극진히 대했다.
유공자의 이름은 연수였다.
유공자의 이름은 연수였다.
차차 자라매 얼굴이 관옥 같고 재기 또한 숙성하여 문장재화 십여 세에 다 이루니, 공이 기특히 여겨 사랑하되 다만 부인에게 보이지 못함을 한탄했다.
연수 14세에 초시에 장원으로 뽑혔다가 15세에 급제하니 천자께서 그 문장과 위인을 보시고 한림학사를 제수하시매 한림이 연소하므로 십 년을 더 학문에 힘쓰다가 다시 출사하기를 청하니, 천자 그 뜻을 아름다이 여기사 특별히 본직을 드개로 지니도록 하면서 5년 말미를 주시더라.
한림이 급제한 후 구혼하는 이가 많으매 주파라 하는 매파가 고하여 가로되,"모든 소문과 말이 공번되지 아니하오니 진실로 바른 대로 고하오면, 노옹께서 만일 부귀를 탐하시면 엄 승상의 손녀만한 이가 없고, 반드시 요조한 숙녀를 구하시려면 신성현의 사 급사(謝給事) 댁 소저 외에 또다시 없사오니, 청컨대 이 두 곳 중에서 하나를 가리옵소서."
이에 공이 물어 가로되, "부귀는 본디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오, 어진 이를 택하려 하오. 사 급사는 본대 대간벼슬을 하다가 적소에서 죽은 진실로 강직한 선비나 그 댁의 소저는 어떠하뇨."
주파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소저의 용모와 덕행이 일세에 희한하오니 어찌 다 형언하오리까.
한림이 급제한 후 구혼하는 이가 많으매 주파라 하는 매파가 고하여 가로되,"모든 소문과 말이 공번되지 아니하오니 진실로 바른 대로 고하오면, 노옹께서 만일 부귀를 탐하시면 엄 승상의 손녀만한 이가 없고, 반드시 요조한 숙녀를 구하시려면 신성현의 사 급사(謝給事) 댁 소저 외에 또다시 없사오니, 청컨대 이 두 곳 중에서 하나를 가리옵소서."
이에 공이 물어 가로되, "부귀는 본디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오, 어진 이를 택하려 하오. 사 급사는 본대 대간벼슬을 하다가 적소에서 죽은 진실로 강직한 선비나 그 댁의 소저는 어떠하뇨."
주파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소저의 용모와 덕행이 일세에 희한하오니 어찌 다 형언하오리까.
소인이 매파로 나선 지 삼십 여년에 왕공, 재상의 모든 댁을 다니며 많은 신부를 보았으되, 이같이 요조 현철한 소저는 처음이오니 두 번 묻지 마옵소서."
이에 매파가 돌아간 후 공이 매파의 말을 모두 믿을 수 없어 사씨의 덕행을 알아보고자 두 부인과 상의하여 물어본즉,
이에 매파가 돌아간 후 공이 매파의 말을 모두 믿을 수 없어 사씨의 덕행을 알아보고자 두 부인과 상의하여 물어본즉,
두 부인의 말이 "남녀의 덕행은 필법에 나타나는 것이라 묘책을 내어, 집에 간수해오고 있는 남해관음화상을 우화암에 시주코자 하였던바,
이제 우화암 여증 묘혜를 사씨 댁에 보내 화상에 처자의 친필로 관음찬을 받아오도록 하면 그 재덕을 알 것이며 묘혜 또한 그 얼굴을 보고 올 것입니다.
묘혜는 나를 속이지 않을 것이옵니다.
"하고 말하니 공이 옳히 여겨 묘혜를 불러 사씨 댁에 가서 관음찬을 받아오기를 청하니, 묘혜가 급사 댁에 가서 불사에 쓰고자 관음화상에 찬을 써주기를 부탁하니 사씨 부인이 말하기를,
"우리 아이가 비록 고금시문에 능통하다 하나 이만한 글을 지을 수 있을는지 그저 시험이나 해보리라."
시녀로 하여금 소저를 부르니, 소저 나와 모친께 뵈오니 용모 빼어남이 짐짓 관음보살님이 강림하신 듯 한지라. 묘혜, 심중에 놀라 헤아려 보되,
시녀로 하여금 소저를 부르니, 소저 나와 모친께 뵈오니 용모 빼어남이 짐짓 관음보살님이 강림하신 듯 한지라. 묘혜, 심중에 놀라 헤아려 보되,
'진세에 어찌 이런 사람이 있으리오.'
하고 있을 때 부인이 소저에게 능히 관음찬을 지을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소저가 처음에는 노둔한 재주를 들어 거절하는지라,
부인이 웃으며 다시 지어보라 하니 소저 한동안 주저하며 망설이다 손을 씻고 족자를 받아 걸고 분향 배례한 후 공경 앞에 나아가 관음한 수백서를 가늘게 족자 위에 쓰고 '모년 월 일에 사씨 정옥이 재배서'라 하였더라.
묘혜 족자를 다시 받아가지고 돌아와 공에게 드리거늘, 공이 물어 가로되
묘혜 족자를 다시 받아가지고 돌아와 공에게 드리거늘, 공이 물어 가로되
"사소저의 용모와 재주가 어떠한가 물으니 묘혜 답하되 '족자 가운데 사람과 같더이다.
" 하니 공이 크게 기뻐하여 족자를 걸고 보니 필법이 정묘하여 한 곳도 구차함이 없고 온화유순한 덕행이 글씨에 나타나서 즉시 매파를 불러 사가에 청혼했다.
원래 사소저는 사후영의 딸이라, 후영 청렴강직하여 조정의 간신들이 작란함을 분히 여겨 상소하다 도리어 간신의 모해를 입어 소주 땅에 귀양갔다가 적소에서 돌아가니, 부인이 천만가지 설움을 참고 소저를 데리고 고향 본댁에 돌아와 세월을 보내고 있더니 소저가 모친을 지성으로 봉양하나 출가할 연기를 당하였으되 주혼함이 없고 근심하더니 매파가 들어와 소년 등과한 유 한림에게서 청혼이 온 것을 알리니 부인이 유 한림의 출중함을 익히 아는 바라 허혼을 하니,
원래 사소저는 사후영의 딸이라, 후영 청렴강직하여 조정의 간신들이 작란함을 분히 여겨 상소하다 도리어 간신의 모해를 입어 소주 땅에 귀양갔다가 적소에서 돌아가니, 부인이 천만가지 설움을 참고 소저를 데리고 고향 본댁에 돌아와 세월을 보내고 있더니 소저가 모친을 지성으로 봉양하나 출가할 연기를 당하였으되 주혼함이 없고 근심하더니 매파가 들어와 소년 등과한 유 한림에게서 청혼이 온 것을 알리니 부인이 유 한림의 출중함을 익히 아는 바라 허혼을 하니,
유공이 크게 기뻐하여 택일하니, 유공은 최부인이 보지 못함을 못내 슬퍼했다.
사씨 이로부터 효도를 다하여 존구를 받들고 공손함으로써 군자를 섬기고, 정성으로서 제사를 받들고 은혜로써 비복을 부리니, 규문이 화락하고, 화기가 애애했다.
사씨 이로부터 효도를 다하여 존구를 받들고 공손함으로써 군자를 섬기고, 정성으로서 제사를 받들고 은혜로써 비복을 부리니, 규문이 화락하고, 화기가 애애했다.
하루는 유공이 우연히 병을 얻어 날마다 짙어가니, 한림 부부 밤낮으로 시탕하되 백약이 무효한지라,
공이 일어나지 못하고 마침내 별세하니, 한림 부부 호천애통함이 비할 데 없고 두 부인도 못내 애통했다.
세월이 흘러 삼상을 마치고, 군명을 받자와 조정에 나아가 소인을 배척하고 몸가짐을 강직케 하니,
세월이 흘러 삼상을 마치고, 군명을 받자와 조정에 나아가 소인을 배척하고 몸가짐을 강직케 하니,
천자께서 사랑하사 벼슬을 돋우고자 하시나 승상 엄승이 꺼리어 저어하므로 여러 해가 지나도록 직품이 오르지 못했다.
유 한림이 부부 성친한 지 벌써 십 년이 넘고 연기가 삼십에 가까웠으나 한낱 자녀가 없으니 부인이 깊이 근심하여 한림을 대하여 어진 여자를 택하여 아들 얻기를 누차 간청하니 유 한림이 매번 뿌리치다 마지못해 허락하니 매파를 통해 널리 첩을 구해 본래 벼슬하던 집 딸로 일찍 부모를여의고 형의 집에 의탁하고 있는 교채란 여자를 첩으로 들여오니 나이 16세였다.
세월이 흘러 삼삭이 차매 교씨 과연 순산하여 아들을 얻으니 이름을 장주라 하니, 한림과 사씨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고 비복들까지도 서로 치하했다.
유 한림이 부부 성친한 지 벌써 십 년이 넘고 연기가 삼십에 가까웠으나 한낱 자녀가 없으니 부인이 깊이 근심하여 한림을 대하여 어진 여자를 택하여 아들 얻기를 누차 간청하니 유 한림이 매번 뿌리치다 마지못해 허락하니 매파를 통해 널리 첩을 구해 본래 벼슬하던 집 딸로 일찍 부모를여의고 형의 집에 의탁하고 있는 교채란 여자를 첩으로 들여오니 나이 16세였다.
세월이 흘러 삼삭이 차매 교씨 과연 순산하여 아들을 얻으니 이름을 장주라 하니, 한림과 사씨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고 비복들까지도 서로 치하했다.
교씨 아들을 낳으매 한림의 대접이 더욱 두터워져 사랑이 비할 데 없는데다 노래와 탄금에 능해 한림은 교씨가 거처하는 백자당을 떠날 날이 없고 사씨 부인의 침소는 날로 멀어지더라.
이때 사부인 성친한 후 십 년 지나 태기가 있으니, 온 집안이 모두 기뻐하되 교씨 홀로 시기하는 마음을 참지 못하여 앙앙불락하며 남매와 짜고 낙태할 약을 여러번 사부인 먹는 약에 타서 드렸으나 어쩐 일인지 부인이 그 약만 마시면 구역이 나서 토해버리니,
이때 사부인 성친한 후 십 년 지나 태기가 있으니, 온 집안이 모두 기뻐하되 교씨 홀로 시기하는 마음을 참지 못하여 앙앙불락하며 남매와 짜고 낙태할 약을 여러번 사부인 먹는 약에 타서 드렸으나 어쩐 일인지 부인이 그 약만 마시면 구역이 나서 토해버리니,
이는 천지신명의 도우심이라.
간악한 수단을 쓸 도리가 없더라.
부인이 만삭이 되어 아들을 낳으니 골격이 비범하고 신체가 준일한지라.
한림이 크게 기꺼하야 이름을 인아라.
인하 차차 자라나 장주와 같이 한 곳에서 놀되, 비록 어리나 씩씩한 기상이 장주의 잔약함과는 현저히 다른지라,
인하 차차 자라나 장주와 같이 한 곳에서 놀되, 비록 어리나 씩씩한 기상이 장주의 잔약함과는 현저히 다른지라,
교씨 내심 애를 태워 생각하되,
"내 용모와 자질이 모두 사씨에게 미치지 못하고 나는 아들이 있고 저는 아들이 없어 내가 상공의 은총을 받았으나 이제 저도 아들을 낳았으니 내 아들은 쓸데없는 군것에 불과한지라.
부인이 좋은 낯으로 나를 대하나 속은 알 수 없으니 상공의 마음이 변하면 나는 어찌될 지 알 수 없다.
"하고 십랑과 의논하니 십랑은 교씨로부터 금은주옥을 많이 받은 터라 심복이 되어 교씨의 못된 꾀를 내었다.
이때 급사 댁에서 급사 부인의 환후 위중하다는 편지 왔거늘,
이때 급사 댁에서 급사 부인의 환후 위중하다는 편지 왔거늘,
사부인이 크게 놀라 한림께 고하여 가로되,
"모친의 병환이 위중하시다니 지금 뵈옵지 못하면 평생의 한이 될지라, 상공의 허하심을 바라나이다.
"한림이 가로되,
"장모님의 환후가 위중하시면 일찍 가서 뵈오심이 옳거늘 어찌 만류하리오. 나도 틈을 타서 한번 문안하리이다."
부인은 교씨를 불러 가사를 부탁하고 인아를 데리고 신성현 친정에 갔다.
부인은 교씨를 불러 가사를 부탁하고 인아를 데리고 신성현 친정에 갔다.
부인이 모친의 환후가 위중하심을 보고 쉽게 돌아오지 못하고 수개월이 지났다.
이때 흉년이 들어 백성의 질고를 살피라는 천자의 명을 받들어 한림이 산동지방으로 갈 때 미처 부인을 보지 못하고 떠났다.
한림이 집을 떠나자 교씨는 집에 서사로 있던 동청과 눈이 맞아 사통하면서 사부인을 없앨 계교를 의논했다.
사씨의 시비 설매는 납매의 동생이라 그년을 달래어 사씨가 아끼는 보물을 얻으면 일이 쉽게 이루어지리라 하고 계획대로 진행하니,
설매 납매의 설득에 넘어가 열쇠로 상자에서 옥지환을 도적하여 교씨에게 드려 가로되,"이 물건은 유씨 댁의 세전지물로 가장 중히 여기더이다.
"하니 교씨 크게 기뻐하여 설매에게 큰 상을 주고 동청과 함께 꾀를 행했다.
이때 한림이 산동지방에 이르러 냉진이라는 풍채가 훌륭한 청년을 주점에서 만나 동행하게 되었는데 한림이 보니 냉진의 속옷 고름에 옥지환이 매였거늘 한림이 이상히 여겨 그것을 자세히 보기를 청하니 그 청년이 끌러주거늘, 받아보니 완연히 사씨의 옥지환과 같은지라, 한림이 냉진에게 어디서 구했느냐 물으니 마지못해 대답했다.
"정든 사람의 정표로만 알고 비웃지 말아주게. 이것이 사랑하던 소저와의 정사이매 어찌 안타깝지 않겠는가."
이때 한림이 산동지방에 이르러 냉진이라는 풍채가 훌륭한 청년을 주점에서 만나 동행하게 되었는데 한림이 보니 냉진의 속옷 고름에 옥지환이 매였거늘 한림이 이상히 여겨 그것을 자세히 보기를 청하니 그 청년이 끌러주거늘, 받아보니 완연히 사씨의 옥지환과 같은지라, 한림이 냉진에게 어디서 구했느냐 물으니 마지못해 대답했다.
"정든 사람의 정표로만 알고 비웃지 말아주게. 이것이 사랑하던 소저와의 정사이매 어찌 안타깝지 않겠는가."
하거늘, 한림이 옥지환을 한 번 보고 천사만념으로 심사가 늘 수란하더니 반년 만에 서울로 돌아와 홀연 냉진의 옥지환을 생각하고 사씨더러 물어 가로되,
"부인은 전일 선인이 주신 옥지환을 어디 두었느뇨."
하고 물으니 사씨 부인 대답했다.
"저 상자 속에 있거니와 어이 물으시느뇨."
"저 상자 속에 있거니와 어이 물으시느뇨."
부인이 괴이하여 상자를 가져와 열어보니 다른 것은 다 그대로 있으되 옥지환만 없는지라 사씨 크게 놀라,
"분명히 여기 두었더니 어이 없는고."
사씨 가로되,
"옥지환 간 곳을 상공이 아시나이까?"
한림이 화를 내며 가로되,
"그대가 남을 주고 날더러 물음은 어쩐 일이뇨."
사씨 이 말을 듣고 부끄럽고 분하여 말문이 막히는데 홀연 시비 고하되, 두 부인이 오심을 아뢰니 한림이 옥지환 없어진 자초지종을 말하니 두 부인이 듣기를 다하매 크게 성을 내어 말했다.
"선형이 본대 지감이 있고 천하 일을 모를 것이 없이 지내었으나 매양 사씨를 칭찬하되 그의 선행숙덕을 아심이라.
"선형이 본대 지감이 있고 천하 일을 모를 것이 없이 지내었으나 매양 사씨를 칭찬하되 그의 선행숙덕을 아심이라.
하물며 선형의 지감과 사씨의 절행으로 이같이 누명을 입개하여 옥 같은 아내를 의심하나뇨. 이는 반드시 집안에 악인이 있어 도적함이니 어찌 엄중히 조사하지 아니하고 이같이 말을 하느뇨." 하니 한림이 "고모의 말씀이 지당하여이다. " 했다.
형장기구를 갖추고 시비 등을 문초하니 애매한 시비는 죽어도 모르노라 하고 설매는 바로 고하면 죽을까 겁내어 한결같이 항복하지 아니하니, 마침내 종적을 알지 못했다.
형장기구를 갖추고 시비 등을 문초하니 애매한 시비는 죽어도 모르노라 하고 설매는 바로 고하면 죽을까 겁내어 한결같이 항복하지 아니하니, 마침내 종적을 알지 못했다.
교녀 두번째 아이를 낳으니 한림이 기뻐하여 이름을 봉추라 하고 두 아이를 사랑함이 장중보옥 같았다.
두 부인이 옥가락지의 출처를 캐고자 하나 찾지 못하고, 심중에 교씨의 간계인 듯하나 잡지 못하고 마음이 답답히 지내더니,
두 부인이 옥가락지의 출처를 캐고자 하나 찾지 못하고, 심중에 교씨의 간계인 듯하나 잡지 못하고 마음이 답답히 지내더니,
아들 두억이 장사부 총관을 하매 두 부인이 아들 따라 장사로 가게 되었는지라.
교녀 심중에 기뻐하여 동청을 청하여 사씨 없앨 꾀를 다시 의논하니 동청이 가로되 당나라『사기』를 일러 측천무후를 얘기하며 장주 죽임을 꾀했다.
교녀 사씨의 시비 춘방을 시켜 약을 달이게 한 후 몰래 독약을 썼었다.
아들 장주는 약을 먹고 즉사하니 교녀 가슴을 치며 대성통곡하니 한림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여 사유를 물으니, 납매가 가로되,
"소비가 문 앞을 지나다 우연히 바라본즉 춘방과 설매가 손짓을 하더니만 돌아가는 것을 보았으니 이 둘을 불러 물으면 짐작하실 듯하여이다."
한림이 두 사람을 잡아들여 설매를 문초하매, 매질하기 십여 차에 설매 고함질러 가로되,
"소비 죽으리로소이다.
"소비가 문 앞을 지나다 우연히 바라본즉 춘방과 설매가 손짓을 하더니만 돌아가는 것을 보았으니 이 둘을 불러 물으면 짐작하실 듯하여이다."
한림이 두 사람을 잡아들여 설매를 문초하매, 매질하기 십여 차에 설매 고함질러 가로되,
"소비 죽으리로소이다.
죽을 바에야 무슨 말을 못하오리까.
부인이 소비에게 이르시기를, 인아와 장주 둘이 같이 있을 수 없으니 누구든지 장주를 해하는 자가 있으면 큰 상을 주리라 하시옵기로 소비 등이 여러 날을 틈타던 차 마침 공이 마루에서 혼자 자고 있기에 소비는 간이 서늘하고 손이 떨려 앞장서지 못하고 실상 공자를 눌러죽이기는 춘방이로소이다."
한림이 크게 노하여 춘방을 국문하매 춘방이 설매를 꾸짖으며 매를 이기지 못하고 종시 무함한 말은 하지 않고 죽으니라.
한림이 크게 노하여 춘방을 국문하매 춘방이 설매를 꾸짖으며 매를 이기지 못하고 종시 무함한 말은 하지 않고 죽으니라.
이튿날 한림이 일가 친척을 청해놓고 사씨의 전후 죄상을 이르고 쫓아내니 사씨 영위에 나아가 사배 하직할 새, 눈물이 비 오듯 하니 일가들이 문 밖에서 절하고 이별하며 모두 눈물을 흘렸다.
쫓겨난 사씨 시부모 묘전 수간초옥을 지어놓고 살 때 하루는 비몽사몽간에 잠깐 졸더니 문득 한 사람이 이르되, 사씨 눈을 들어보니 생시의 모습과 조금도 변함없는 시부모님이라. 이르시되,
쫓겨난 사씨 시부모 묘전 수간초옥을 지어놓고 살 때 하루는 비몽사몽간에 잠깐 졸더니 문득 한 사람이 이르되, 사씨 눈을 들어보니 생시의 모습과 조금도 변함없는 시부모님이라. 이르시되,
"부는 칠 년 재액이니 남방으로 빨리 떠나라.
다만 육 년 후의 사월 십오일 배를 백빈주에 매었다가 급한 사람을 구하라.
이것은 명심불망할지어다.
"하시니 사씨 생각하기를 이는 반드시 두 부인을 찾아가 의탁하라 하심이라 하고 존묘에 나아가 재배 하직하고 유모와 차환, 늙은 창두 한 사람을 데리고 남방으로 향하니라.
수로 5천리 길이 하도 험하여 모두 죽기를 소원하나 참고 길을 가다 홀연 보니 숲 속에 한 사당이 있어 보니 '황릉묘'라 하였으니 이는 곧 두 왕비의 사당이라.
수로 5천리 길이 하도 험하여 모두 죽기를 소원하나 참고 길을 가다 홀연 보니 숲 속에 한 사당이 있어 보니 '황릉묘'라 하였으니 이는 곧 두 왕비의 사당이라.
사씨 절하고 축원하고 나오니 달빛은 몽롱한데 의지할 바가 없게 되니 죽는 것이 상책이라.
이때 뜻밖에 사당문 앞으로 두 사람이 들어오는데 놀라 눈을 들어보니 하나가 늙은 여승이요, 하나는 여동이라.
여승이 황망히 예하고 말했다.
"소승은 동정 군산사에 있더니, 아까 비몽사몽간에 관음 현몽하사 어진 여인이 환난을 만나 갈 바를 모르고 물에 빠지려 하니 빨리 황릉묘로 가서 구하라 하시매 급히 배를 저어왔더니, 과연 부인을 만나매 부처님 영험하심이 신기하도소이다."
"우리는 죽게 된 사람이러니, 존자의 구원을 만나매 실로 감격하나 존자의 암자 멀고 또 귀 암자에 폐가 될까 하나이다."
"부처님의 지시로 뫼시러 왔는데 무슨 말씀이시오니까.
"소승은 동정 군산사에 있더니, 아까 비몽사몽간에 관음 현몽하사 어진 여인이 환난을 만나 갈 바를 모르고 물에 빠지려 하니 빨리 황릉묘로 가서 구하라 하시매 급히 배를 저어왔더니, 과연 부인을 만나매 부처님 영험하심이 신기하도소이다."
"우리는 죽게 된 사람이러니, 존자의 구원을 만나매 실로 감격하나 존자의 암자 멀고 또 귀 암자에 폐가 될까 하나이다."
"부처님의 지시로 뫼시러 왔는데 무슨 말씀이시오니까.
"세 사람은 여승을 따라 배를 타고 동정호 가운데 있는 군산사 암자 수월암에 이르니, 종일 고통스러웠던지라 깊은 잠에 빠져 날이 밝아옴을 몰랐더니 여승이 불당을 소쇄하고 향을 피워놓고 예불하라 하거늘,
법당에 올라 분향 배례할 새, 눈을 들어 부처를 보니, 십육 년 전 자기가 찬을 지어 썼던 백의 관음화상이라.
놀라 슬픈 회포를 금할 수 없어 눈물을 흘리매 여승이 괴이히 여겨 물은즉,
"화상 위에 쓴 것이 내 아이 때 지은 찬이니 여기 와보매 자연 비희를 금치 못하겠노라 하니 여승이 크게 놀라며 "그러실진대 분명히 신성현 땅의 사 급사 댁 소저가 아니십니까"하고 물었다.
"스님께서 어찌 내 신분을 아십니까."하고 물으니, 여승이 대답했다.
"소승은 저 관음화상의 찬을 받아간 우화암의 묘혜입니다.
"스님께서 어찌 내 신분을 아십니까."하고 물으니, 여승이 대답했다.
"소승은 저 관음화상의 찬을 받아간 우화암의 묘혜입니다.
한데 부인은 어찌 이러한 고생을 하십니까."
사씨 유씨 댁의 부인이 된 이후의 전후 사정을 자세히 들려주더라.
사씨 유씨 댁의 부인이 된 이후의 전후 사정을 자세히 들려주더라.
이에 묘혜는 당부하기를 유 소사는 본대 공명정대하신 어른이니 그때를 기다려 어기지 말고 구하라고 말했다.
이때 교녀 정당을 차지하여 가사를 총찰하매 악독함이 날마다 더하여 비복들이 그녀의 혹독한 형벌을 견디지 못하고 사씨를 생각했다.
이때 교녀 정당을 차지하여 가사를 총찰하매 악독함이 날마다 더하여 비복들이 그녀의 혹독한 형벌을 견디지 못하고 사씨를 생각했다.
교녀 이에 동청과 더불어 한림을 해할 궁리를 하다가 동청이 우연히 한림의 책상 위에서 한 글을 얻어내니 두어 번 읽어보고 문득 기뻐 날뛰며 교녀에게 말했다.
"저적에 천자 조서를 내리사 '나의 기도하는 것을 간하는 신하는 죽이리라' 하셨는데 지금 이 글을 보매, 시적 두고 기롱하여 엄 승상을 간악한 소인에 비하였으니, 이 글을 엄 승상께 뵈면 엄 승상이 천자께 아뢰어 법으로 다스리리니, 우리 두 사람이 어찌 백년해로를 못하리오."
동청이 유 한림의 글을 엄 승상에게 전하니 엄 승상은 황제께 보이니 황제 대로하여 극형에 처하려고 하였으나 태우서세가 상소하여 귀양을 가게 되니, 교녀 비복을 거느려 상 밖에 나아가 짐짓 슬피 통곡하는 체 이별하였다.
"첩이 어찌 혼자 있으리요. 상공을 쫓아 생사를 한 가지로 하려 하나이다."
하니 한림이 가로되, "그대는 집을 잘 지키고 제사를 받들고 아이들을 잘 길러주시오.
"저적에 천자 조서를 내리사 '나의 기도하는 것을 간하는 신하는 죽이리라' 하셨는데 지금 이 글을 보매, 시적 두고 기롱하여 엄 승상을 간악한 소인에 비하였으니, 이 글을 엄 승상께 뵈면 엄 승상이 천자께 아뢰어 법으로 다스리리니, 우리 두 사람이 어찌 백년해로를 못하리오."
동청이 유 한림의 글을 엄 승상에게 전하니 엄 승상은 황제께 보이니 황제 대로하여 극형에 처하려고 하였으나 태우서세가 상소하여 귀양을 가게 되니, 교녀 비복을 거느려 상 밖에 나아가 짐짓 슬피 통곡하는 체 이별하였다.
"첩이 어찌 혼자 있으리요. 상공을 쫓아 생사를 한 가지로 하려 하나이다."
하니 한림이 가로되, "그대는 집을 잘 지키고 제사를 받들고 아이들을 잘 길러주시오.
인아, 비록 사나운 어미의 소생이나 골격이 비범하니 거두어 잘 기르면 내 죽어도 눈을 감으리로다.
" 교녀 가로되, "상공의 자식이 곧 첩의 자식이라, 어찌 봉추와 달리하여 백대하오리까." 한림이 재삼 부탁하고 떠났다.
그 후 동청은 엄 승상의 세력으로 진유현 현령으로 출세하여 부임하게 되니 교녀 매우 기뻐하며 사촌 형이 죽어 시골 간다 하고 봉추와 인아와 심복 시비만 데리고 길을 떠나니 교녀 인아 원수의 자식이거늘,
그 후 동청은 엄 승상의 세력으로 진유현 현령으로 출세하여 부임하게 되니 교녀 매우 기뻐하며 사촌 형이 죽어 시골 간다 하고 봉추와 인아와 심복 시비만 데리고 길을 떠나니 교녀 인아 원수의 자식이거늘,
죽여 마땅하다 하고 설매를 시켜 물 속에 넣어 죽이도록 하였다.
설매는 차마 죽일 수 없어 강가 수풀 속에 고이 누이고 교녀에게 거짓 고하여,"아이를 물 속에 넣으니 물결 속에 들락날락하더니 필경 보이지 않더이다."
이적에 천자께서 태자를 책봉하시고 온 천하의 모든 죄인을 모두 놓아 유 한림이 은사를 얻었으니 친척이 있는 무창으로 갈 새 한 관원이 금안백마 위에 앉아 거룩하게 지나거늘 ...
이적에 천자께서 태자를 책봉하시고 온 천하의 모든 죄인을 모두 놓아 유 한림이 은사를 얻었으니 친척이 있는 무창으로 갈 새 한 관원이 금안백마 위에 앉아 거룩하게 지나거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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