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 기억 해야 되는 일제 강정기 민족적 치욕....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였으니 일제강점기의 치욕스러운 역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으려면 영원히 잊지않고 기억해야 할것입니다
((일본이 깨우치고 반성해야 되는나라- 아시아나라들을 침탈해 많은 사람들이 (전쟁)희생된점....일류역사에 잊지 못하고 기록에 영원히 남는나라.)
우리나라 가 기억 해야 되는 일제 강정기 민족적 치욕....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였으니 일제강점기의 치욕스러운 역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으려면 영원히 잊지않고 기억해야 할것입니다.
((일본이 깨우치고 반성해야 되는나라- 아시아 나라들을 침탈해 많은 사람들이 (전쟁)희생된점....일류역사에 잊지 못할 기록에 영원히 남는나라.) 아직도 산천 곳곳에 일본이한 행적 들을보면 소나무에 송진 빼간흔적이 라던지 기타등등 약백년 이지난는데도 남아 있읍니다.
옛 식민지시대(일제강정기)를 잊지 말고 영원히 생각해야 된다는치쥐,,,!!!
일제강점기,[ 日帝强占期 ].
1910년 8월 국권피탈로 대한제국이 멸망한 이후부터 8·15광복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强占)하의 식민통치 시기.
일제 35년은 한국 민족의 장구한 역사상 단 한번 있었던 민족의 정통성(正統性)과 역사의 단절의 시기였다는 점에 치욕적인 특성이 있다.
일본은 1860년대의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전후해서 급격히 근대화의 길을 걸으면서, 종래 조선 정부의 대일외교정책에 순응하여 수동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던 대(對)조선의 외교방향을 능동화하여, 1876년(고종 13) 강화도조약을 체결함으로써 국권피탈에 이르기까지 긴 침략의 장정(長征)에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일본은 대원군의 하야로 개국으로 급전(急轉)한 조선 정계의 기류를 타고, 조선의 문호 개방을 명분으로 한반도에 상륙한 이래, 개화파와 수구파의 쟁패(爭覇), 임오군란·갑신정변 등 격변 속의 조선정계에 교묘히 대처·편승하면서 꾸준히 세력을 부식하여 나갔다.
1894년의 동학농민운동을 계기로 종래 조선의 종주국이었던 청국과 일전을 겨루어 청국세력을 한반도에서 밀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부터는 갑오개혁으로 조선의 개국 이래의 정치제도를 개혁하는 데 깊이 관여하게 되었고, 명성황후 시해(弑害)를 주도한 이후에는 한때 러시아 세력에 밀려나기도 하였으나, 러·일전쟁에 승리하여 한반도에서의 정치·군사·경제상의 우위(優位)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1904년 2월 러시아와 전쟁중이던 일본은 한국 정부를 강압하여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를 성립시켜 내정간섭의 발판을 만들고, 같은 해 8월에는 제1차 한일협약인 ‘한일외국인고문용빙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게 하여 고문정치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식민지화 공작에 들어갔다. 1905년 제2차 한일협약인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이에 따라 1906년 2월 통감부를 설치하고, 이른바 보호정치를 펴 외교권을 대행하는 등 실질적인 지배에 들어갔다.
이어 1907년 7월에는 헤이그특사사건을 구실로 고종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정미 7조약(丁未七條約)을 강제하여 통감이 입법·사법·행정 전반에 걸친 통치권을 전단(專斷)하도록 하였으며, 한국인 대신(大臣) 밑에 실권을 장악하게 하는 일본인 차관을 두는 차관정치를 실현하였다. 또한 ‘한국 사법 및 감옥사무위탁에 관한 각서’를 통해 한국의 사법권을 탈취하였으며, 이어 한국군대를 해산하였고 한일경찰관을 통합하여 한국 경찰관을 일본 관헌의 지휘감독하에 두었다.
마지막 단계로 1910년 8월 22일 합병조약의 체결을 강행함으로써 일제의 한국식민화 침략은 완성되었다. 여기에는 한국위정자들의 무능과 이완용(李完用)을 필두로 한 친일내각, 이용구(李容九)·송병준(宋秉畯) 등으로 대표되는 일진회(一進會) 등 매국노들의 반역행위도 큰 몫을 하였고, 미국·영국 등 열강국들의 묵인도 일본에게 도움을 주었다. 일본은 한국병합을 달성한 뒤 종래의 통감부를 폐지하고 보다 강력한 통치기구인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여 같은 해 10월 1일부터 구체적인 한반도의 경영에 들어갔다.
이로부터 시작되는 조선총독부의 한반도 지배는 시대에 따라 다소 정책의 변동이 있었으나, 일관된 정책은 효율적인 식민지배를 위한 탄압, 영구예속화를 위한 고유성(固有性) 말살 및 우민화(愚民化), 철저한 경제적 수탈 등이었다. 일제강점기 35년은 ① 제1기:무단통치시기(1910∼1919), ② 제2기:문화정치시기(1919∼1931), ③ 제3기:병참기지화 및 전시동원시기(1931∼1945)의 3시기로 구분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일제강점기 [日帝强占期] (두산백과)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1910년부터 해방된 1945년까지의 민족 수난기이다. 우리의 국권을 강탈해 간 일제는 조선 총독부를 설치한 뒤 행정, 입법, 사법 및 군대까지 손에 쥐고 우리 민족을 탄압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벌이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주요 인물
김구 |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주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활동했으며, 8 · 15 광복 후에는 자주적인 통일 정부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1949년에 안두희에 의해 암살당했다. 임시 정부에서 활동하는 동안 쓴 일기인 《백범일지》가 남아 있다.
김좌진 | 일제에 맞서 무장 독립운동을 한 독립운동가이자 군인이다. 독립군의 총사령관으로서 일본의 정규군과 맞선 청산리 대첩에서 승리를 이끌었다.
안창호 |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에 활약했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다. 호는 ‘도산’이다. 민족의 실력을 기르기 위한 교육 활동과 우리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에 앞장섰으며, 신민회와 대성 학교, 흥사단 등을 세웠다.
주시경 |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국어학자이자 교육자이다. 우리 민족의 계몽을 위해 우리말을 연구해 대중들에게 가르쳤으며, 《국어 문법》과 《국어사전》 등을 펴냈다.
이봉창 | 일왕을 향해 폭탄을 던진 독립운동가이다. 김구가 만든 한인 애국단원이었던 그는 1932년 동경 경시청 앞을 지나가는 히로히토 일왕을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그러나 일왕을 명중시키지 못한 채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사형당했다.
윤봉길 | 일제 강점기에 활약한 독립운동가이다. 1932년 상하이의 홍커우 공원에서 일왕의 생일과 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일제에게 피해를 입혔다. 이 의거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의 의거와 함께 ‘한국 독립운동의 2대 쾌거’로 평가받고 있다.
여운형 |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이다. 신민회 활동과 애국 계몽 운동으로 독립운동을 시작했으며, 1945년에 일제가 태평양 전쟁에서 항복을 선언하자,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결성해 정부 수립을 준비했다. 좌우 합장 운동을 하던 중에 한 우익 청년에게 암살당했다.
연표
• 1910년 - 토지 조사 사업 시작. 일제, 조선 총독부 설치
조선 총독부 |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를 지배했던 식민 통치 기구이다. 36년간 사실상 한반도의 정부 노릇을 했으며, 민족 정기를 말살하고 조선인을 탄압하는 정치를 폈다.
조선 총독부 |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를 지배했던 식민 통치 기구이다. 36년간 사실상 한반도의 정부 노릇을 했으며, 민족 정기를 말살하고 조선인을 탄압하는 정치를 폈다.
토지 조사 사업 | 일제가 대한 제국을 강제 병합한 직후인 1910년부터 1918년까지, 한반도의 토지에 대해 조사한 일이다. 식민 지배에 알맞게 토지 제도를 바꾸고 지세 수입을 늘릴 목적으로 시행했다.
• 1914년 - 대한광복군 정부 수립
• 1919년 - 3 · 1 운동 일어남.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 대한민국 임시 정부, 파리 강화 회의에 김규식 파견
3 · 1 운동 | 1919년에 일제의 식민 지배에 항의하며 일어난 독립운동이다. 3월 1일에 탑골 공원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한 것을 시작으로, 전국은 물론 해외에까지 확산되었다.
3 · 1 운동 | 1919년에 일제의 식민 지배에 항의하며 일어난 독립운동이다. 3월 1일에 탑골 공원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한 것을 시작으로, 전국은 물론 해외에까지 확산되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 1919년 4월 13일에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세운 임시 정부이다. 국민의 대표가 정치를 이끄는 ‘민주 공화제’를 표방했다. 1945년 11월에 김구 등 주요 인사들이 귀국할 때까지 일제와 맞서 싸우며 우리나라를 대표했다.
파리 강화 회의 |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전쟁의 뒤처리를 의논한 회의이다. 1919년 1월부터 6월까지 파리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서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민족의 일은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해야 한다는 ‘민족 자결 주의’를 주장했다.
• 1920년 - 독립군 연합 부대, 봉오동 전투에서 승리. 김좌진 · 홍범도, 청산리 대첩에서 승리
봉오동 전투 | 1920년 6월에 독립군 연합 부대가 중국 지린 성의 봉오동 계곡에서 일본군과 싸워 크게 승리한 전투이다. 일본군은 수백 명이 죽거나 다치는 등 큰 피해를 입었으며, 기세가 오른 독립군은 이후 벌어진 청산리 대첩에서도 승리를 이어갔다.
봉오동 전투 | 1920년 6월에 독립군 연합 부대가 중국 지린 성의 봉오동 계곡에서 일본군과 싸워 크게 승리한 전투이다. 일본군은 수백 명이 죽거나 다치는 등 큰 피해를 입었으며, 기세가 오른 독립군은 이후 벌어진 청산리 대첩에서도 승리를 이어갔다.
청산리 대첩 | 1920년 10월에 김좌진의 북로 군정서와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등 독립군 연합 부대가 두만강 상류에 있는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군과 싸워 크게 이긴 전투이다. 크고 작은 전투가 약 일주일에 걸쳐 벌어졌으며, 청산리 대첩은 이 전투들을 통틀어 이른다.
• 1921년 - 조선어 연구회 설립
조선어 연구회 | 1921년 12월 3일에 우리말과 글의 연구를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이다. 나중에 조선어 학회’로 이름이 바뀌었다. 우리말 연구 발표회와 강연회 등을 갖고 한글의 우수성을 알렸으며, 1927년 2월부터는 기관지인 《한글》을 발간하기도 했다.
조선어 연구회 | 1921년 12월 3일에 우리말과 글의 연구를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이다. 나중에 조선어 학회’로 이름이 바뀌었다. 우리말 연구 발표회와 강연회 등을 갖고 한글의 우수성을 알렸으며, 1927년 2월부터는 기관지인 《한글》을 발간하기도 했다.
• 1923년 - 방정환, ‘어린이날’ 만듦
방정환 | 어린이날을 만든 아동 문학가이다. 방정환은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음 세대를 잘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린이’라는 호칭을 처음 사용했고, 어린이 교육과 어린이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힘썼다.
방정환 | 어린이날을 만든 아동 문학가이다. 방정환은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음 세대를 잘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린이’라는 호칭을 처음 사용했고, 어린이 교육과 어린이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힘썼다.
• 1926년 - 6 · 10 만세 운동 일어남
6 · 10 만세 운동 | 순종의 장례일인 1926년 6월 10일에 일어난 만세 운동이다. 순종은 조선 왕조의 마지막 임금이자 대한 제국의 황제였다.
6 · 10 만세 운동 | 순종의 장례일인 1926년 6월 10일에 일어난 만세 운동이다. 순종은 조선 왕조의 마지막 임금이자 대한 제국의 황제였다.
• 1927년 - 신간회 활동 시작
신간회 | 1927년에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의 대립을 막고 항일 투쟁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민족 운동 단체이다. 이상재가 회장으로 활동했으며, 항일 투쟁에 많은 공을 세웠지만 내부에서 다툼이 일어나 1931년에 해산했다.
신간회 | 1927년에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의 대립을 막고 항일 투쟁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민족 운동 단체이다. 이상재가 회장으로 활동했으며, 항일 투쟁에 많은 공을 세웠지만 내부에서 다툼이 일어나 1931년에 해산했다.
• 1929년 - 광주 학생 항일 운동 일어남
광주 학생 항일 운동 | 1929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항일 운동이다. 3 · 1 운동 이후 최대의 민족 운동이었으며, 일본의 식민 지배를 거부하고 민족의 독립을 주장했다.
광주 학생 항일 운동 | 1929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항일 운동이다. 3 · 1 운동 이후 최대의 민족 운동이었으며, 일본의 식민 지배를 거부하고 민족의 독립을 주장했다.
• 1930년 - 조선 총독부, 신사 참배 강요
신사 참배 | 1930년부터 일제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의 조상신을 모신 사당에 참배하도록 강요한 일이다. 일제는 식민 지배와 대륙 침략을 위해 ‘일본과 조선이 한 몸’이라는 내선일체 정책을 폈는데, 신사 참배도 그것을 위한 수단이었다.
신사 참배 | 1930년부터 일제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의 조상신을 모신 사당에 참배하도록 강요한 일이다. 일제는 식민 지배와 대륙 침략을 위해 ‘일본과 조선이 한 몸’이라는 내선일체 정책을 폈는데, 신사 참배도 그것을 위한 수단이었다.
• 1932년 - 이봉창, 도쿄 경시청 앞에서 의거. 윤봉길,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의거
• 1934년 - 한글 맞춤법 통일안 만듦
• 1936년 - 손기정,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우승
손기정 | 한국인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다. 일제 강점기인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대회에 참가하여 마라톤에서 우승했다.
손기정 | 한국인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다. 일제 강점기인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대회에 참가하여 마라톤에서 우승했다.
• 1938년 - 조선 총독부, 한글 교육 금지. 민족 말살 정책 시작
• 1940년 - 조선 총독부, 창씨개명 실시. 한국광복군 창설
한국광복군 | 1940년에 창설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정규군이다. 중국군은 물론 미국, 영국 등의 군대와 연합해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1945년에 국내로 들어가 나라를 되찾는 전쟁을 벌일 계획이었으나 일본의 갑작스러운 항복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국광복군 | 1940년에 창설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정규군이다. 중국군은 물론 미국, 영국 등의 군대와 연합해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1945년에 국내로 들어가 나라를 되찾는 전쟁을 벌일 계획이었으나 일본의 갑작스러운 항복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창씨개명 |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강요한 일이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불령선인’이라고 부르며 여러 가지 불이익을 주었다.
• 1943년 - 조선 총독부, 징병제 실시. 카이로 선언에서 한국 독립 약속
징병 | 일제가 침략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 젊은이들을 군인으로 뽑아 간 일이다. 많은 조선 젊은이들이 강압에 의해 전쟁터로 끌려갔다.
징병 | 일제가 침략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 젊은이들을 군인으로 뽑아 간 일이다. 많은 조선 젊은이들이 강압에 의해 전쟁터로 끌려갔다.
카이로 선언 | 1943년에 미국과 영국, 중국 등의 대표가 이집트의 카이로에 모여 제2차 세계 대전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의논한 내용을 발표한 공동 선언이다. 우리나라에 독립 국가를 세우게 한다는 내용도 담겼으며, 12월 1일에 발표되었다.
• 1944년 - 조선 건국 동맹 결성
• 1945년 - 포츠담 회담에서 한반도 문제 논의. 8 · 15 광복.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결성
포츠담 회담 | 1945년 7월 독일 포츠담에서 미국과 영국, 중국의 정상들이 만나 이루어진 회담이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일본과 식민지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문제가 논의되었다.
포츠담 회담 | 1945년 7월 독일 포츠담에서 미국과 영국, 중국의 정상들이 만나 이루어진 회담이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일본과 식민지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문제가 논의되었다.
8 · 15 광복 | 일제의 식민지로부터 벗어나 독립한 일이다.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이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났고, 우리나라도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되었다.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 1945년 8 · 15 광복과 함께 만들어진 최초의 건국(나라를 세움) 준비 단체이다. 여운형이 위원장을 맡았으며, 인민 대표들을 모아 조선 인민 공화국 수립을 발표한 뒤 해산했다. 그러나 미군정청은 이들이 세운 새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김구
통도사여행
통도사입구.
통도사옆개천.
통도사 입구에서 가다보면 길 옆쪽으로 오래된 고목들중 ..
통도사에 견학 온 어느학생들.
...옆 다리.
통도사 입구에서 가다보면 길양쪽으로 보물들...
통도사.천왕문 ...^
통도사 경내.불자님,건물 과 탑들.,,
만세루...
통도사.석등.석탑...
통도사 석등 과 조그마 한 연못 에 동전 들(일명 복 을 빌며 동전 던지기하는곳)
통...
통...
통도사.옛 문들...
동전 던지 는 연못.통도사.
통도사.암자 자장암.
통도사 벽화...
머리 없는나무, 중간 가지만 살아있음.
통도사 길 옆 양쪽 으로 보물들.
통도사 암자 극낙암 옆 에 두소나무가...
통도사. 불보사찰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있는곳...
통도사 안양암 쪽길..
통도사 우측범종루,맨앞에 사천왕문,,,,
극낙암 연못에고기들...
통도사 극낙암...
통도사옆길..
극낙암....
통도사 벽화...
자장암.바위의동전들...
극낙암.꽃..
자장암. 일부..
자장암.....
극낙암....^
통도사 .성보박물관옆 장승.석물들..
통도사 보물.(주춧돌...)
통도사 전경..
통도사 보물...봉발탑,,
통도사,대웅전. [또는 금광보전(이곳은 불상 이 없읍니다)]....^^
참조항목
역참조항목
카테고리
- 역사 > 아시아사 > 한국사 > 일제강점기출처 & 참고문헌
- [네이버 지식백과] 일제강점기 [日帝强占期] (두산백과)
- 출처: 한 권으로 끝내는 교과서 위인
- [네이버 지식백과]일제 강점기 (연표로 보는 한국사사전, 2015..,)
또다른 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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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happyday-2100.tistory.com/224 [살맛 나는세상]우리나라 가 기억 해야 되는 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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