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7일 목요일

함양 용산사지 석조여래입상,

함양 용산사지 석조여래입상,  ]<script async src="https://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script>
(adsbygoogle = window.adsbygoogle || []).push({
google_ad_client: "ca-pub-4162949345545299",
enable_page_level_ads: true }); <script>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보림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불. 1997년 1월 30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318호로 지정되었다. 함양읍 교산리()의 옛 용산사지 부근에서 발견되어 한 민가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1900년 초 보림사에 봉안한 것이다. 석불은 아래위로 심하게 훼손되었는데, 배불숭유정책()에 의해 수모를 당한 결과인 듯하다. 풍만한 상호()에 삼도()가 뚜렷하고, 통편으로 가사자락은 아래까지 강렬하게 표현되고 있다. 수인()은 항마촉지인()이나 손가락을 힘주어 펼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비대한 체구에 비하여 짧아 보이는 키, 양발 부분의 어색한 모습, 특히 수인의 표현 등 불상 표현형식이 밀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교산리 용산사지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불상. 광배는 없으며 대좌와 불신은 하나의 돌로 조성되었다. 높이 2.4m.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18호. 용산사지 부근에 있으면서 주변 민간에서 미륵불로 신앙되어 왔던 불상이다. 1990년의 함양읍 도시 계획 도로 건설 계획으로 훼손의 우려가 있어 현재의 보림사() 대웅전으로 이안하였다.

소발( : 민머리)의 머리에는 낮은 육계(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얹혀졌다. 타원형의 얼굴은 넓고 큰 편이다. 안면부는 눈이 깊이 파이는 등 마모가 심하여 상호( : 부처의 몸에 갖추어진 훌륭한 용모와 형상)를 알아보기 어렵다. 목에는 삼도()가 선각( : 선으로 새김)되었으나 목이 짧아 가슴까지 내려와서 새겨졌다. 좁고 경사진 어깨에는 법의( :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를 통견( : 어깨에 걸침)으로 걸쳤는데 착의법이 매우 특이하다. 양어깨에서 흘러내린 옷자락은 가슴 밑으로 길게 늘어져 배 앞에서 완만한 곡선의 U형 주름을 형성하여, 군의( : )가 보이는 발목까지 흘러내리고 있다. 배에서 시작되는 U형 주름 가장 상부에는 왼쪽 어깨에서 내려온 옷자락이 U형 주름 속으로 들어가 있어 먼저 걸쳐진 것을 알 수 있다. 오른쪽 어깨에서 내려온 자락은 밖으로부터 속으로 넘어간 것으로 표현되었다. 이 자락 밑으로 오른손을 길게 내려뜨리고 있다.
오른손은 엄지손가락은 보이지 않고 중지와 약지를 구부렸는데 옷자락인지 무엇을 잡고 있는 형상이다. 왼손은 손가락을 편 채 가슴까지 들어 올리고 있다. 현재 광배( :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는 없으며 대좌는 불신과 한 돌로 조성하였다. 군의 자락 밑에는 양발을 대좌 위에 부조로 표현하였다. 손과 마찬가지로 크고 투박하며 신체와의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신체의 한 부속물처럼 첨부된 느낌이다.
옷주름은 측면에도 처리하였으나 양감을 살리지 않고 면을 판판하게 깎았으므로 불신도 전체적으로 직육면체형을 이루고 있다. 뒷면은 생략하였다. 대좌는 대웅전 마룻바닥에 가려 보이지 않으나 드러난 부분만으로 보면 평면은 방형( : 네모반듯한 모양)이다. 평판적인 신체에 띠 주름으로 형식화된 법의가 입혀지고 두부()와 불신()의 비례가 조화롭지 못하며 크고 투박한 손과 발의 표현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지방 양식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추정된다.


카테고리

댓글 없음:

댓글 쓰기